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진숙 언니, 언니에게 진 빚 갚으려 사람들이 모입니다

[릴레이 기고] 12.19 해고 없는 세상, 김진숙 쾌유와. 복직으로 가는 희망버스 ①

20.12.11 07:31l최종 업데이트 20.12.11 07:31l
"35년의 긴 세월동안 김진숙이 해고노동자들의 싸움에 함께 할 때 정작 그의 복직은 어떻게 되었는지 묻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그의 머리는 하얗게 세고, 암은 다시 그의 몸을 파고들었습니다. 해고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쟁했던 김진숙의 뒤늦은 복직을 위해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겠습니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2011년 희망버스 각계 부문 차장과 승객들이 다시 모여 희망차에 오릅니다. 2-3회에 걸쳐 릴레이 기고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35년 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는 원로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까? 옛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고 복직 의지를 피력했다.
▲  35년 전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 10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자신의 복직을 촉구하는 원로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해 "저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던 문재인 대통령님, 저의 해고는 여전히 부당합니까? 옛동지가 간절하게 묻습니다"라고 복직 의지를 피력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020년 6월 23일 당신의 복직투쟁 소식을 들었습니다. 작년 여름 뒤늦게 들었던 당신의 투병 소식에도 저는 안타까운 마음만 끌어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아직 다 낫지 않은 몸으로 부산에서 100km를 걸어 대구까지 간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영남대 의료원 건물 옥상에서 복직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던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을 응원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대구에 다다를 쯤에는 당신이 홀로 걷기 시작한 그 길을 따르는 순례단이 수백 명이 되었다 했지요. 저는 그 모든 소식을 그저 활자로만 접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32년간의 삶을 뒤흔드는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의 선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인지를 돌아보느라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그때 당신이 아픈 몸을 이끌고 또다시 연대의 발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몸을 일으켜 제 곁의 공동체 식구들을, 흔들리고 지친 동료들을, 우리보다 더 외롭고 가난한 아이들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이 해고되었던 1986년,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인천에 있는 오래된 바닷가 공장지대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이웃이, 아이들이 저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이 모두에게 희망이 될 수 없다는 현실과 직면해야 했고, 32년간의 삶을 되돌아봐야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지치고 두려웠습니다. 그때 당신이 대구에 도착해 방문진 지도위원을 만나 얼싸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털모자를 쓰고 외투를 입은 두 사람이 서로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언니의 고공농성에 가슴이 철렁

여전히 부끄럽고 미안했지만 당신이 참 고마웠습니다. 저도 그때 더는 주저앉아 있지 않고 일어나 곁에 있는 동료들의 손을 잡았습니다. 2020년 가을 SNS로 당신이 영도조선소 정문 앞에서 35년 전 용접공이던 당신의 사진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복직 투쟁을 시작했다는 것을 그새 또 잊고 있었습니다.

9년 전이던 2011년 1월, 당신이 35m 높이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이미 고공농성이 낯설지 않을 때였습니다. 현대미포조선의 노동자가 투신한 뒤 100m 굴뚝에서 노동운동가들이 고공농성을 했고, 인천 GM대우자동차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굴뚝에서 농성을 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의 고공농성에 가슴이 철렁했던 이유는, 그곳이 85호 크레인이었기 때문입니다. 2003년 9월 9일, 당신의 동료 김주익 열사가 삶을 내려놓았던 그 곳. 자신의 몸을 내놓아 많은 동지들을 살릴 수 있다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던 김주익 열사, 아들에게 힐리스 운동화 한 켤레 사주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안타까워했던 그 김주익 열사가 목을 맸던 85호 크레인. 당신은 그곳으로 "땅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쪽지를 남기고 올랐습니다. 자신의 복직이 아닌 정리해고 철회를 위해서였습니다.

항상 당신의 선택은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2011년 여름, 미래의 노동자가 될 우리 아이들에게 당신의 싸움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가는 희망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밤중에야 도착한 영도조선소 앞, 경찰에 의해 길이 막혔습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던 아이들이 아저씨들 손을 잡고 담장을 넘었습니다. 공장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들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노동자 삼촌, 아저씨들과 하나가 되는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그 뒤로 네 번을 더 희망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 스물 둘 청년이 되어 대학에 다니거나 군인이거나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그 영도조선소 밖에 있습니다. 저는 그때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갈 때마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습니다. 크레인 위의 당신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는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당신의 몸이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왔을 때, 투쟁의 승리보다 당신이 무사함이 더 고마웠습니다.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김진숙. 웃음이 해맑다.
▲  309일 만에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김진숙. 웃음이 해맑다.
ⓒ (주)시네마달

관련사진보기

 
최초의 여성 용접노동자로 정년 퇴직하기를 

한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자신이 평생을 불복종의 삶을 살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저항이 그리고 정의가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양심을 깨닫게 하고, 세상을 변하게 할 거라고 믿습니다. 저도 믿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복직에 우리가 함께합니다.

복직한 당신이 회사 식당에서 동료들과 밥을 먹고, 동지들과 웃으며 커피를 마시고, 다시 용접을 하며 소금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용접노동자로 정년 퇴직의 날을 맞이하는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35년 동안 당신과 함께 길 위에 섰을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가 하늘에서 흐뭇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해고자로 살아온 35년을 저는 감히 상상하지 못합니다. 당신의 삶은 해고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복직은 해고자 모두의 복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몹시 아프고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당신이 해고된 뒤 경험한 일곱 번의 정권, 그들의 비호로 더 큰 부자가 된 대기업들이 당신의 존재를 지우려고 해도 당신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지워지지 않은 당신에게 우리는 큰 빚을 졌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사람들이 모입니다.
 
 왼쪽 눈 밑이 용접 불똥에 맞아 부어있는 40여 년 전 김진숙 지도위원의 사진
▲  왼쪽 눈 밑이 용접 불똥에 맞아 부어있는 40여 년 전 김진숙 지도위원의 사진
ⓒ 김진숙

관련사진보기

 
전태일 열사는 유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기억합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의 복직을 볼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아는 김진숙, 우리의 전체이고, 우리의 일부입니다. 당신의 복직이 우리의 복직이고, 당신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이고, 당신의 건강과 안녕이 우리의 건강과 안녕입니다.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연대의 힘을 보여준 당신의 노년을 함께 지켜보고 함께 가고 싶습니다.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가 더는 이어지지 않도록 우리 함께 살아서 계속 싸우자고 당신께 손을 내밉니다.

먼 부산과 인천에서 만날 날은 적었지만 비슷한 삶의 꿈을 꾸며 살아온 지난 35년. 첫 공장생활 때 만났던 언니들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언니라 불러봅니다. 진숙 언니, 부디 건강하시고, 복직해서 정년은퇴의 날 활짝 웃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2020년 12월 10일.
당신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떠났던 강화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김중미가 씁니다.
- <괭이부리말 아이들> 동화작가
 
 리멤버 희망버스 포스터
▲  리멤버 희망버스 포스터
   
 
2020년 김진숙 복직 2020명 선언
- 선언 기간 : 12월 8일(화) ∼13일(일)
- 선언 참여 : https://bit.ly/김진숙복직2020서명

 
태그:#김진숙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민주노총, 노조법·근기법 개악 규탄…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안 된다”

  • 기자명 조혜정 기자
  •  
  •  승인 2020.12.10 15:22
  •  
  •  댓글 0
    •  
 
 

 

노조법·근기법 개정 두고 “개악 기조 유지” 비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입법 촉구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노조법 개정안,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그렇다.”

지난 8~9일 새벽까지 이어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탄력근로제를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민주노총은 이를 두고 “정부여당이 현행법을 후퇴시키면서까지 ILO 협약을 위배하는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중 일부 독소조항은 덜어냈지만 여전히 노동현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독소조항들이 살아남아 개악 기조가 유지됐다”고 규탄성명을 냈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9일 오후 열린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민주노총은 다음날인 10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민주노총이 10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법, 근로기준법 개악을 규탄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즉각 입법을 요구했다. [사진 : 노동과세계
▲ 민주노총이 10일 오전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조법, 근로기준법 개악을 규탄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전태일 3법 즉각 입법을 요구했다. [사진 : 노동과세계]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핑계로 노조법 개정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온데간데없고 여전히 일부 독소조항을 남긴 노조법 개악”, “재계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해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고착화시키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탄력근로제 확대와 선택근로제를 담은 근로기준법 개악”이 본회의에서 통과됐고, 반대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아직 국회 법사위의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맞서 민주노총은 “투쟁은 끝나지 않았고 계속 이어갈 것”임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개악된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을 되돌리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할 것”,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ILO 핵심협약 비준과 함께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위해 노조법 2조 개정에 나설 것”, “사업장의 규모에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 모두가 근로기준법에 적용을 받도록 근로기준법 11조 개정에 나설 것”을 선포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회견문에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노조법과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두고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는 속담에 비유했다. “정부가 제출한 역대급 개악안에서 핵심적 개악요소는 덜어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개악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면서 개악 요소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냈다.

▲ 지난달 25일. ‘노동개악 저지 전태일 3법 쟁취’ 총파업 총력투쟁대회 연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진 : 뉴시스]
▲ 지난달 25일. ‘노동개악 저지 전태일 3법 쟁취’ 총파업 총력투쟁대회 연 민주노총 조합원들. [사진 : 뉴시스]

‘개악’ 말고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먼저, 개정안이 “‘해고자, 실업자가 기업별 노조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해고자와 실업자는 해당 노조의 임원, 대의원이 될 수 없고, 근로시간면제한도를 산정하거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조합원 수를 산정할 때에도 제외시켰다”면서 “조합비 납부 등 조합원으로서의 의무만 지어질 뿐 권리는 행사할 수 없는 서류상의 조합원”으로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ILO나 EU가 문제로 제기했던 부분은 조합원 자격, 노조의 운영 등을 해당 노조가 자주적으로 정하여야 하고 국가나 사용자가 이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현행 2년이던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한 것에 대해선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와 맞물려 단체교섭권 등 노동3권 행사에 제약을 가져오게 됐다”고 제기했다.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동조합은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동안 교섭도 할 수 없고, 근로시간면제를 인정받아 조합활동을 하는 것도 공정하게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개악안이 시행되면 사용자와 어용노조가 담합하여 최소 4년간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노조의 단결권, 단체교섭권을 ‘법’을 근거로 제약할 수도 있다”는 것. 이 역시 소수노조의 노동3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ILO 기준 및 유엔 인권감시기구의 권고와 상충되는 부분이다.

개정안엔 노동계의 반발은 산 독소조항 중 하나인 ‘사업장 내 점거 전면 금지’ 문구는 삭제됐지만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됐고, 사업장 내 점거 제한, 사업장에 종사하지 않는 조합원의 사업장 내 노동조합 활동 제한은 유지됐다. 민주노총은 “개악안에 새로 삽입된 이 규정들은 ILO 협약 비준과는 무관하며,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한 청부입법에 다름 아니”라고 규탄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온데간데없고 오히려 ILO의 권고와 국제기준에 위배되는 방향으로 개악됐다”면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도 전에 이를 선제적으로 막아서는 결과를 초래한 꼴”이라고 일갈했다.

탄력근로제와 선택근로제를 확대한 근로기준법 개정도 ‘개악’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탄력근로제 6개월 확대에 이어, 경영계 요구를 추가로 수용해 ‘선택근로를 3개월까지 확대(연구개발분야)’한 것은 명백한 개악”이라는 것.

올해 1월엔 특별연장근로제 도입을 ‘경영상의 사유’로까지 확대한 바 있다. 특별연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사용자의 건강권 보호조치’를 신설했지만 사용자가 이를 위반했을 때 부과할 처벌조항이 없다. “특별연장근로제 사유 확대를 한시적 조치가 아니라 상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1일 노동시간제한, 과로방지 대책, 사용자의 임금보전, 건강권 보호조치 의무 강화 등 노동자의 임금과 건강권 보장 강화 요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민주노총은 “이게 개악이 아니면 달리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 사진 : 뉴시스
▲ 사진 : 뉴시스

“다시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설 것”

개악 추진과는 반대로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ILO 권고는 이번 국회 논의에서 제외됐다. 10만 명의 노동자, 시민이 발의한 노조법 2조 개정안은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정기국회가 마무리 될 때까지 법제사법위 안건에 오르지도 못했다.

민주노총은 “정부의 의지를 반영해 공수처법 등을 밀어붙이는 힘,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의 개악을 밀어붙이는 힘” 등을 빗대며 “이번 국회에서 180여 석을 가진 거대 여당의 힘과 실체를 목격했다”면서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다. 180여 석의 힘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노동자, 시민이 입법발의한 전태일3법 입법에 제대로 사용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미룰 이유가 없다”면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국제기준에 맞도록 다시 하나하나 꼼꼼하게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끝으로 ▲개악된 노조법과 근로기준법을 되돌리는 투쟁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ILO 핵심협약 비준 ▲노조법 2조 개정 ▲근로기준법 11조 개정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서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민주노총 산하 지역본부도 더불어민주당 광역시도당사를 찾아 항의행동을 벌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김훈 작가 특별기고]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노동자들이 부서진다

김훈 작가


입력 : 2020.12.10 06:00 수정 : 2020.12.10 06:00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과정을 지켜보며 

[김훈 작가 특별기고]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노동자들이 부서진다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과정의 담론을 지배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은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소위원회의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했다. 거대 양당이 이 법의 필요성을 말로만 외치다가 입법절차를 시작하려니까 무서워서 피해버린 꼴이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가중시키거나 이윤 추구를 불편하게 하는 일의 두려움은 한국사회에 토착된 풍토병이다.

대기업이 국민과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자비의 설화가 입법 과정의 담론을 지배하고 있다. ‘먹여 살린다’는 이 설화는 이윤과 임금의 관계를 설명하는 경제이론이 아니라 한 시대 전체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본과 노동의 관계 위에 군림하고 있다.

‘먹여살리는 자’는
‘감옥에 못 간다’ 소리치고
정치는 이 고함에 화답한다
징역·벌금…껍데기뿐인 법
무엇이 ‘과잉처벌’인가
 

이 이데올로기는 노동의 주체성을 부정해서 자본에 복속시키고, 국가의 행정력과 선출된 정치력을 무력화시키고, 더 잘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내세워 희생자들을 ‘소수자’로 몰아붙이고, ‘먹여 살리는 자’가 이윤 추구의 과정에서 저지르는 온갖 탈규범적 행태들을 정당화해왔다. 이것은 다수가 신봉하는 미신이다. 밥벌이하다가 죽는 죽음과 불구가 되는 사고를 줄이려는 많은 노력들은 이 미신 앞에서 좌절되었고, 좌절을 거듭할 때마다 미신은 더욱 번창했다.

이번 입법절차의 발단에서부터 정치권은 사용자 단체의 논리를 수긍하고 있는데, 그 핵심은 중대재해의 형사적 책임을 물어서 기업총수에게 실형을 언도하는 것은 ‘과잉처벌’이라는 주장이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소홀히 해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게 되어 있다. ‘7년 이하’라니까 당연히 ‘7년 이상’은 없을 테지만 ‘7년 이상’뿐 아니라 7개월도 7일도 언도한 적이 거의 없고, 벌금은 ‘1억원 이하’의 범위 안에서 대체로 500만원 정도였다. 법은 껍데기뿐이었다(2018년부터 2019년 사이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피고인 1065명 중 집행유예 없이 실형을 받은 사람은 21명으로 전체의 2% 정도이고 평균 형량은 9.3개월이다. KBS 2020년 12월6일 보도).

이러니, 중대재해의 기업주 처벌이 과잉처벌이라는 말은 무엇이 ‘과잉’인지 아무런 비교기준이 없다. 이 말은 ‘감옥에 못 간다’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먹여 살려주는 자’의 무서운 고함이다. ‘감옥에 못 보낸다’는 정치의 메아리가 이 고함에 화답하고 있다.

‘감옥에 못 가는’ 또 하나의 논리는 노동의 최하위 현장에서 벌어진 사고의 책임을 최상부의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올려서 밀어붙일 법리적 연결고리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CEO는 사고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먹여 살려주는 자’의 논리다. 노동자가 몸으로 당면하는 현장이 최하이고, CEO의 위상이 최상이라는 인식이 이 논리의 기본틀이다. 법은 최하층에서 최상층에 이르는 여러 단계의 아랫부분에서 인과관계의 고리를 끊고 스스로 물러간다. 물러가면서 이 물러감을 다시 논리화한다. 논리 안에 정의는 없고 말의 형식만이 존재한다. 말의 형식이 결국 법제를 이루는데, 국회는 이 위력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노동자들은
돌덩이처럼 떨어진다
부딪히고 깨진다
 

내가 이 답답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식인·분석가·활동가들이 TV에 나와서 이 문제로 특집좌담을 하는 동안에도, 국회에서 권력의 지분을 놓고 악다구니를 하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고층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100600015&code=940702#csidx83e21a6af18188196a7fe822f2715bf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재인표 부동산 정책은 실패했다... 이제 남은 건 이것뿐

[전강수의 경세제민 ②] 변창흠 새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게 바란다

20.12.10 07:31l최종 업데이트 20.12.10 07:31l
부동산 정책 전문가이자 토지정의 운동가인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가 경제정의와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론을 피력하고 그때그때 부각하는 경제 이슈를 해설하는 '전강수의 경세제민'을 연재합니다. '경세제민'은 세상을 잘 경영해 국민을 편안히 한다는 뜻으로 썼으며 이 말을 줄인 것이 '경제'이기도 합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잠시 실현했던 '평등지권 사회'를 회복하기를 꿈꿉니다.[편집자말]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2020.12.8
▲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출근하고 있다. 2020.12.8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동안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 24개나 되는데도 부동산값 상승률 역대 정부 최고, 풍선효과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최근에는 매매가격과 임대가격이 동시에 폭등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이 와중에 변창흠 LH공사 사장이 새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도무지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 전개되는 가운데 중책을 맡게 됐으니 변 후보자의 마음은 기쁘기보다는 착잡할 것 같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 국토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은 채로 3년 반을 지내왔으니 지금 와서 가던 길을 돌이켜 되돌아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새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미 실패한 정책이 초래할 피해를 어떻게든 줄이는 것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 정도라도 제대로 해내려면, 이미 시행된 정책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시행된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에 대해 평가한 후, 새 장관이 펼쳐야 할 정책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변창흠 장관 후보자는 오랫동안 한국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어온 부동산 시장만능주의나 가격규제 만능주의에 물들지 않은 흔치 않은 부동산 전문가이다. 우리나라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살아온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경제학 훈련을 받았기에, 대증요법이나 규제정책의 부작용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상황이 좋을 때 국토부 장관으로 임명됐더라면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을 텐데 요즘처럼 '험악한' 상황에 그리 됐으니 보는 마음이 참 안쓰럽다.   나는 현 정부 들어서 적지 않은 개혁적 지식인들이 정권에 참여해 정책성과를 내기는커녕 자신의 개혁적 정체성마저 상실하는 것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이 글은 변 후보자마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고언이다. 


변창흠 후보자도 내심 동의하리라 생각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는 바로 잡을 생각 없이 윗단추들도 계속 끼워왔다. 작금의 낭패스러운 상황은 그 정책 오류가 유발한 불가피한 결과다. 충언역이(忠言逆耳)이나 이어행(利於行)(바른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함에는 이롭다)이라고 하셨던 공자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몇 가지 냉정한 평가를 하고자 하니, 부디 변 후보자가 유념해주기를 바란다. 

부동산 투기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

문재인 정부 인사들은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큰 질곡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대한민국은 부동산공화국으로 전락하여 대수술이 필요한 상태에 도달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정권 초기에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용으로 하는 '세 바퀴 경제정책'을 내세웠지만, 정작 그 세 가지의 발목을 잡는 것이 부동산 불로소득임을 깨닫지 못했다. 부동산 투기란 거대한 괴물과도 같은 존재임에도 그것을 제압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필요함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니 올바른 정책 철학 아래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투기를 근절할 개혁 정책을 마련할 리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저 단기 시장조절 정책으로 부동산값이 폭등하지 않도록 적절히 관리하면서 거기에 약간의 주거복지 정책을 덧붙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7·10 부동산 대책 실행을 위한 소득세법·법인세법·종합부동산세법 개정안 이른바 '부동산 3법'과 '임대차 3법' 중 하나인 전월세신고법이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5일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 매물 정보란앞으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핀셋증세의 문제점

문재인 정부가 근본대책 대신에 마련한 것은 '핀셋증세'와 '핀셋규제' 그리고 사후약방문식 대책이었다. 부동산 불로소득과 부동산 투기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토지보유세 강화다. 이 정책은 불로소득을 환수하면서 가격도 안정시키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가 있고, 부동산 보유비용을 높여 투기 유인을 억제하므로 선제적 대응의 효과가 크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이를 의도적으로 회피했다. 

2018년 4월 서울의 아파트값이 폭등하면서 보유세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빗발치자 민간 위원이 다수인 재정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서 보유세 개편문제를 논의하도록 했다. 같은 해 7월 이 위원회에서 발표한 최종 권고안은 종합부동산세의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연간 5%씩 높이고 세율을 약간씩 인상해 과세를 강화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세수 증가 효과가 작아서 '찔끔증세'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는 이 권고안조차 무시하고 그보다 세수 증가 효과가 작은 정부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쉽게 끌 수 있는 투기 불길을 방치하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이었다. 주지하듯이 그 후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종합부동산세는 그 후에도 세 차례 찔끔찔끔 강화됐다. 

문재인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과세 강화는 3주택 이상 소유자 또는 조정대상지역 2주택 이상 소유자에 한정되었다. 2주택 이하 소유자에 대해서는 약간의 세율 인상이 있었을 뿐이다. 토지에 대해서는 나대지 등에 부과하는 종합합산 토지의 세율을 찔끔 인상했을 뿐, 빌딩 부속 토지 등에 부과하는 별도합산 토지의 세율은 이명박 정부 때와 똑같이 그대로 두었다. 게다가 지방 보유세인 재산세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2020년 7.10대책을 발표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을 6%로 인상한다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에 해당하는 대상자는 극소수였다. 문재인 정부의 보유세 정책은 '핀셋 증세', '찔끔 증세'의 전형이었다. 

언론에 의해 '세금폭탄론'이 시중에 확산되면서 실상이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똘똘한 한 채' 소유자나 토지·빌딩 소유자의 보유세 부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실수요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시종일관 부동산 부자를 배려한 셈이다. 2020년 11월 3일에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서 자연스럽게 보유세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지만, 1주택자 재산세 감면을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될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시장 상황이나 정권의 소재에 상관없이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할 보유세 강화 정책을 단기 시장조절용으로 활용했다는 점도 문제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침체할 경우 이번에 강화한 종합부동산세를 다시 완화하라는 사회적 압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심각한 점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배경에 '1주택자는 실수요자, 다주택자는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작금의 투기열풍이 다주택을 보유한 일부 투기꾼들의 탐욕스러운 행동 때문에 발생했으므로, 이들에게 중과세와 규제라는 '벌칙'을 부과하면 열풍을 잠재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부분적 진리만을 담은 이 프레임 때문에, '부동산보유세는 벌금이요, 1주택자에게는 투기적 동기가 없다'는 오해가 사회 전반에 퍼졌다. 물론 소수의 민첩한 투기꾼들이 투기열풍을 선도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다수 국민이 그들을 따라 투기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 1주택자도 얼마든지 투기적 동기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부동산보유세는 투기행위를 징벌하기 위해 부과하는 벌금이 아니다. 사유재산이지만 국민의 공공재산이라는 성질도 갖는 토지를 보유하면서 그로부터 편익과 소득을 얻는 데 대해 대가를 징수하는 것이 보유세다. 물론 이 세금을 강화하면 조세의 자본화 효과로 인해 부동산가격이 하락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부동산보유자가 부담하는 보유비용이 늘어나므로 사람들은 공연히 불필요한 부동산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부동산보유세는 이런 효과를 유발해 결과적으로 부동산투기를 억제하기는 하지만, 투기꾼을 타깃으로 부과하는 벌금이 아니다. 부동산을 소유하면서 국가와 사회로부터 일정한 혜택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 가운데 1채를 가진 사람들만 골라내서, 대가 납부라는 공적 의무를 면제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이율배반적 정책 추진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하면서도 동시에 부동산 투기를 자극하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추진했다. 두 가지가 대표적인데 하나는 연간 10조 원, 총 50조 원을 투입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등록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 투기꾼에게 꽃길을 깔아준 것이다. 

특히 임대주택의 실태를 파악하고 임대료 상승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등록 임대사업자에게 과도한 혜택을 부여한 것은 치명적인 오류다. 이 제도는 문재인 정부 투기대책에 거대한 루프홀(구멍, loophole)로 작용했다. 사실 임대주택 등록제를 처음 도입한 것은 박근혜 정부였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이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8년 이상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혜택을 한층 확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17년 12월 13일 발표된 '집주인과 세입자가 상생하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에 오롯이 담겼다. 임대주택 등록 시 취득세·재산세와 임대소득세를 감면하고, 양도소득세 감면을 확대하며, 임대소득세 정상과세에 따른 건강보험료 인상분을 대폭 감면한다는 내용이었다. 

임대주택 등록제가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주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문재인 정부는 등록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혜택을 줄이는 조치를 발표했다. 2018년 9.13대책을 발표해 조정대상지역에서 신규로 등록하는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지는 세제 혜택을 줄이겠다고 했고, 2020년 7.10대책에서는 4년 임대와 8년 아파트 장기임대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기등록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진 과도한 특혜다. 약 160만 호에 달하는 기등록 임대주택은 기간 만료 때까지 기존의 혜택이 유지된다. 그러니 이미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사람들이 투기 목적으로 보유한 주택을 내놓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 

집값을 더 끌어올릴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정책 

문재인 정부는 공급확대 정책을 시장안정의 주요수단으로 삼았다. 2018년 9.13대책에서 수도권 내 교통여건이 좋고 주택 수요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신규 공공택지 30곳을 개발하여 30만 호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이후, 이 방침에 따라 2018년 12월 19일과 2019년 5월 7일 두 차례에 걸쳐 3기 신도시 5곳(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부천 대장)을 포함하여 총 86곳에 택지를 개발해서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며, 2020년 8.4대책에서는 기존 공급 목표에 13만 2천 호를 더해 2028년까지 수도권 지역에서 총 127만 호를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틀림없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 작용으로 결정되고, 가격 상승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 생긴다는 인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고 가격 폭등 문제를 공급 확대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공급부족론 내지 공급확대론은 부동산 시장만능주의자들이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업자 등 부동산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기 위해 활용해온 단골 메뉴다. 물론 일반상품은 가격 상승 시에 공급을 확대하면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은 이런 원리를 적용하기 어려운 특수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첫째, 일반상품과는 다르게 부동산 수요에는 투기적 가수요가 더해질 수 있다. 투기적 가수요는 실수요와 달리 단기간에 크게 팽창할 수도 있고 삽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미래 집값에 대한 예상이 투기적 가수요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미래 집값에 대한 예상이 낙관적으로 바뀌면 투기적 가수요는 급팽창하고, 반대로 비관적으로 바뀌면 급속하게 줄어든다. 이처럼 변동성이 큰 수요에 공급을 정확히 맞춘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고, 한때 크게 팽창한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렸다가는 나중에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둘째, 투기국면에서는 공급확대 정책이 오히려 새로운 투기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 공급확대 정책의 발표 자체가 시장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개발 호재를 던져주는 행위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토지투기와 주택투기가 일어나기 쉽다. 수요-공급 이론을 적용해서 설명하자면, 정부는 공급곡선을 바깥쪽으로 이동시켜 가격을 안정시키려 하지만 수요곡선이 원래 자리에 머물지 않고 바깥쪽으로 크게 이동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가격이 내려갈지 올라갈지 알 수가 없다. 

셋째, 주택의 공급곡선이 바깥쪽으로 이동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공급확대 방침을 발표하더라도 실제 공급이 이뤄지는 데는 3~5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공급곡선은 바깥쪽으로 거의 이동할 수가 없다. 앞에서 공급확대 정책을 발표하면 투기가 발생하여 수요곡선이 바깥쪽으로 크게 이동한다고 했다. 이처럼 수요곡선은 바깥쪽으로 크게 이동하고 공급곡선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주택가격은 하락하기는커녕 오히려 큰 폭으로 상승한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내재한다. 우선, 이 방안에 도심 내 군 부지와 공공기관의 이전·유휴 부지를 신규택지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택공급을 증가시키겠지만, 어떻게든 지켜나가야 할 국공유지를 소멸시킨다. 2019년 현재 우리나라 국공유지 비율은 30%로 싱가포르(81%), 대만(69%), 미국(50%)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낮고, 대부분이 공원이나 도로 등 경제적 이용의 여지가 작은 토지들이다.
 
 정부가 2030년까지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로 맞추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힌 27일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2020.10.27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이구동성으로 토지비축 제도를 활용해 국공유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사유지를 민간에게서 강제수용해 조성하는 공공택지도 가능하면 민간 건설업자에게 분양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2020년 8.4대책에서 정부는 군 부지나 공공기관 부지를 활용하여 건설할 주택 중 분양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비율이 얼마나 될지 밝히지 않았으나, 분양주택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도심의 국공유지에 주택을 지어서 민간에게 팔아넘긴다니, 과연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내린 결정인지 의심스럽다. 정히 이 정책을 추진하고 싶다면, 토지의 국공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주택 위주로 공급하는 것이 옳다. 

설사 장기공공임대주택이나 토지임대부 주택 위주로 수도권 주택공급을 확대한다 하더라도, 수도권과 지방 간 불균형을 심화시킨다는 문제점은 여전히 남는다. 그렇지 않아도 자본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되어버린 수도권에 주택투자가 더 집중된다면, 지역 간 불균형은 더 심해지고 지방소멸은 가속화될 것이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 정책까지 재가동하겠다는 정부·여당이 이처럼 수도권 비대화를 촉진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대표적인 토건국가다. 전체 산업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기형적으로 크고, '토건족'이 경제정책과 부동산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까지 토건족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때는 부동산 경기부양 정책을,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 때는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며 이익을 챙겨왔다. 문재인 정부의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정책도 외형상 주택가격 안정을 표방하지만, 실상은 토건족의 이해관계를 챙기는 성격이 강하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완수해야 할 단기 과제

이상의 평가를 요약하면,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를 옥죄는 최대 질곡임을 인식하지 못했고, 따라서 그것을 해결할 근본정책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할 수 있는 정책 전략이 필요하다. 나는 여러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이 정책 전략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바 있는데, 아마 변창흠 후보자도 그 내용은 알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길어야 1년 5개월밖에 일할 수 없는 변창흠 장관 후보자 입장으로는 나의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난감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아래에서는 장관 재임 중 할 수 있는 간단한 일 몇 가지만 제안하고자 하는데, 변 후보자가 이것만이라도 완수해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토부 장관에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을 내정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4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2020.12.4
▲   문재인 대통령은 4일 국토부 장관에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을 내정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4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는 변창흠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2020.12.4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첫째, 투기꾼들에게 꽃길을 깔아주고 매물을 잠기게 만든 임대주택 등록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바란다. 다주택을 소유한 임대주택 사업자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혜택을 감축하라는 말이다. 당장 혜택을 없애면 혼란이 초래될 터이니 시한을 정해 혜택을 줄여서 다주택자들이 보유주택을 매각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는 단기간에 주택 매물을 증가시켜 투기 열풍을 잠재울 비책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 7.10대책에서 제도의 일부를 폐지하기로 했으나 약 160만 호에 달하는 기등록 임대사업자가 누리는 혜택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게다가 제도 폐지 결정이 아파트에만 해당하고 빌라나 다세대 주택에는 적용하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그쪽 방면에서 투기가 발생하는 것을 방치했다. 

둘째, '핀셋규제'니 '추가대책 마련'이니 하는 말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기 바란다. 이런 말들은 정책의 공표효과를 저해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정책 가운데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내용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지난 11월 3일 발표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이다. 이 계획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만 하면, 보유세 과표 산정의 형평성을 실현하면서 보유세를 보편적으로 강화해 갈 수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이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투기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부동산 시장은 빠르게 안정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임을 천명함으로써 부동산정책의 공표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동결 효과를 유발하는 양도소득세 중과 정책은 완화할 필요가 있다. 양도소득세 완화 정책은 홀로 추진할 경우 불로소득을 허용해서 투기를 자극하는 문제를 낳을 수 있지만, 보유세 강화와 패키지로 묶어서 추진할 때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다주택자로 하여금 보유주택을 시장에 내놓게 만드는 데 이보다 좋은 정책은 없다. 또 7.10대책에서는 취득세도 대폭 강화했는데 이렇게 모든 부동산세를 강화하는 것은 변칙이다. 이는 빨리 원래대로 되돌릴 필요가 있다. 

넷째, 금융규제의 범위에 금융기관 대출뿐만 아니라 전세금까지 포함해야 한다. 전세금에는 임대료의 의미도 들어 있지만,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제공하는 사금융의 성격도 있기 때문이다. 전세금이 금융규제의 대상에 포함되면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성행한 갭투자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사실 보유세 강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할 경우, 이런 내용을 갖춘 금융규제가 단기 시장조절의 주요수단이 될 것이다. 그래서 향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하여 부양이 필요해 보일 때는 즉시 금융규제 완화로 대처할 수 있다. 다만 금융규제의 틀을 개편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이는 원칙 정도를 밝히고 장기 과제로 넘기더라도 상관은 없다. 

사족 : 진정한 시장주의자

국민의힘과 수구 언론은 강한 경로 의존성 아래에서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양이다. 헨리 조지를 들먹이고 토지사회주의를 운운하며 변 후보자와 그의 주변을 공격하니 말이다. 외국 학계에서는 자유지상주의 계열로 분류되는 헨리 조지가 한국에서는 좌파의 두목쯤으로 여겨지는 현실은 코미디 중의 코미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명토 박아 둔다. 헨리 조지는 물론이고 변창흠 교수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숭상'하는 시장주의자다. 이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반대하는 유일한 요소는 부동산이나 특권에 의존해 얻는 불로소득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누더기' 경제개혁법 본회의 통과…공수처법도 표결 초읽기

"재벌 앞에서 왜 이리 무력한가" 비판에도 상법 개정안 등 일사천리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수처법 등 3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진행했고 해당 법안은 9일 중 처리가 불가능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면 필리버스터가 자동 종료된디는 점을 이용, 10일 소집을 요구한 임시국회에서 이들 법안을 가결시킬 계획이다.

 

국민의힘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대북전단 규제법 △국정원법 등 3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최종 신청하고, 밤 9시부터 이를 진행했다. 국민의힘은 당초 △5.18 왜곡처벌법 △사회적참사특별법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 신청안을 냈으나 본회의 도중 "양당 협의 끝에 3가지(법안에 대해서만) 진행키로 했다"고 배현진 원내대변인을 통해 밝혔다. 필리버스터 신청이 철회된 법안 2개는 앞서 진행된 본회의에서 바로 가결됐다.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은 그러나 문언대로 '무제한' 이어지지는 못할 전망이다. 올해 정기국회 회기는 9일 자정까지이고, 국회법은 "무제한 토론을 실시하는 중에 해당 회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무제한 토론의 종결이 선포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해당 안건은 바로 다음 회기에서 지체 없이 표결해야 한다(법106조의2 8항)"고 정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말 패스트트랙을 통해 현행 공직선거법·공수처법이 통과될 때도 여당은 이런 방식으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한 바 있다. 여당에서도 필리버스터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기보다는 "오늘 자정에 저절로 끝나니 따로 조치할 게 없다", "9일은 필리버스터로 시간을 다 보낼 것 같고, 10일 정도에 표결이 가능하지 않을까"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앞서 민주당은 전날 법사위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기립 표결로 처리한 데 이어, 같은날 오후부터 이날 새벽에 걸쳐 국정원법·경찰청법·상법·5.18왜곡처벌법(법사위), 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사회적참사특별법(정무위), 노동조합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징수법(환노위) 등을 모두 일방 처리했다. 여야 간 합의 처리가 이뤄진 곳은 국방위(5.18진상조사특별법) 정도였다.


 

특히 전날 밤 정무위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야당으로부터 "입법 사기"(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민주당은 정무위 안건조정위원회에 참여한 정의당을 설득하기 위해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를 약속해 놓고는, 전체회의에서는 재계 반발을 고려해 이 부분을 삭제한 수정안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도 성명을 내어 민주당을 비판했다.


 

그러나 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이날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필리버스터가 시작되기 전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상정됐을 때, 반대 토론에 나선 것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정의당 소속 배진교 의원이었다.


 

정무위 안건조정위원이었던 배 의원은 토론에서 "전속고발권 폐지는 공정위 스스로 역할 한계를 인정하고 당사자들에게 고발권을 되돌려주는 안"이라며 "전속고발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었다. 민주당이 기억상실증인지, 청와대의 특별 지시가 있었는지, '친(親)재벌당' 본색을 드러낸 것인지 해명해야 한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배 의원은 또 민주당이 안건조정위에서 전속고발권 폐지안을 통과시켜 놓고도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이를 뒤집은 데 대해 "이렇게 할 거면 안건조정위나 소위원회의 심사 권한이 무슨 권한이 있느냐. 최소한의 신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지적하고는 "내용적·절차적 공정성과 정당성이 훼손된 이번 안에 동료 의원들이 반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진 공정거래법 개정안 표결 결과는 재석 257인에 찬성 142명, 반대 71명, 기권 44명, 가결이었다. 재석 과반(129명)을 10여 표 넘긴 비교적 아슬아슬한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가결은 됐지만, 민주당 의석 수(174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찬성표가 나온 셈이다. 

정의당 의원 전원은 물론, 국민의힘 등 보수 성향 의원들도 정의당과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였지만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에서도 우상호 의원이 반대 투표를 해 눈길을 끌었고, 박용진·진성준·한준호 의원은 기권표를 던졌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도 기권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등은 당일 새벽에 있었던 '법안 뒤집기' 사태에 대해 이날 본회의 안건상정 전 이례적으로 빠른 대응 논평을 내어 "공정거래법과 상법 개정안은 경제민주화를 저버리고 재벌들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법안들"이라며 "본회의에서 반드시 수정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무위에 그쳤다.


 

공정거래법과 마찬가지로 '개혁 후퇴'라는 비난이 일었던 상법 개정안은 이날 본회의 처음 순서에서 일찌감치 통과됐다.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조정훈 의원이 나서서 "국회는 재벌 앞에 왜 이렇게 무력한가"라며 기업 감사위원 임명시 대주주(연결주주) 의결권 제한이 '합산 3%'에서 '개별 3%'로 변경되는 등 법안심의 과정에서 원안보다 내용이 후퇴한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조 의원과 정의당 의원들이 반대 표결을 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의힘 등 보수진영의 반대 이유는 정의당·시대전환과는 정반대로 '지나친 규제로 기업을 옥죈다'는 것이었다. 상법 개정안 표결 결과는 재석 275인 중 찬성 154명, 반대 86명, 기권 35명이었다. 이 역시 찬성표가 민주당 의석 수에 미치지 못했다.


 

야당의 필리버스터에도 불구하고 상법·공정거래법 등 '공정경제 3법'을 포함한 법안들이 다수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무쟁점 법안은 필리버스터 실시 이전에 먼저 통과시키자'는 여야의 신사협정 덕분이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회의 모두에 "주호영 의원 등 102인(국민의힘)으로부터 무제한 토론 요구서가 제출된 안건은 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해 상정을 잠시 보류하고, 무제한 토론 요구서가 제출되지 않은 다른 안건부터 먼저 상정해 심의·의결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이날 본회의 상정 안건 131건 가운데 필리버스터 대상 안건과 여야 추가 협의가 필요한 안건 등을 제외하고 약 100여 건의 법안·결의안·비준동의안 등을 통과시켰다. 김기현 의원부터 시작된 야당의 '무제한' 토론은 다른 안건들의 처리가 모두 마무리된 후, 밤 9시 정각이 돼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0916444278933#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여순사건의 핵심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학살'

[인터뷰] 여순특별법 공동발의·입법공청회 마친 서동용 국회의원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0.12.10 01:16
  •  
  •  수정 2020.12.10 08:24
  •  
  •  댓글 0
 
여순특별법 공동발의자중 한명인 서동용 의원을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특별법 추진 현황와 의미, 전망에 대해 들었다. [사진-조천현]

72년전인 1948년 10월 19일 새벽.

제주 4.3사건 진압명령을 받은 여수 주둔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그날 밤 무장을 한 채 뛰쳐나와 20일부터 여수와 순천, 광양·구례·곡성·벌교·보성·고흥을 차례로 장악했다. 이들은 일주일만인 27일 토벌군에 의해 완전 진압되었다.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이다.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된 그들을 잡기 위해 군경은 산간마을을 이 잡듯이 뒤졌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1955년 4월까지 여순지역을 비롯해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대구 일부 지역에서 무력충돌과 진압이 이어졌다. 

다수의 민간인이 이 과정에 희생당했다.

제14연대의 진압을 위해 계엄법이 없는 상태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해 12월 1일에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졌다. 여순사건을 계기로 한반도 남쪽에는 확고한 반공국가가 틀을 갖춰가게 되었다.

국군이 국가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오랜 세월 '반란'의 멍에가 들씌워졌지만 여순사건의 핵심은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진실이 지금 힘을 얻고 있다. 

지난 7일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앞서 지난 7월 28일 전남 동부지역 5개 지역구 의원인 소병철(순천·광양·곡성·구례갑)·서동용(순천·광양·곡성·구례 을)·주철현(여수 갑)·김승남(고흥·보성·장흥·강진)·김회재(여수 을) 의원을 비롯한 152명의 민주당 의원이 공동발의한데다 야당 의원들도 반대하지 않는 기류여서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어느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지난 16대 국회부터 18, 19, 20대 국회에서도 특별법은 계속 발의되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회기만료로 자동폐기됐었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가 주최하는 입법공청회까지 거치는 등 절차도 순조롭고,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올해 정기국회가 9일 마무리되었고 내년 1월 10일까지 임시국회가 소집되어 있으나 여야 공방이 첨예한 상황에서 여순특별법 제정은 내년도 다음 회기로 넘어갈 공산이 큰 것으로 보인다. 

특별법 공동발의자중 한명인 서동용 국회의원을 공청회 이튿날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특별법 추진 현황과 의미,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서 의원은 자신이 여순사건의 피해 가족이기도 하고 올해 초 민간인 희생자인 장환봉(당시 29·순천역 철도원)씨의 재심 변론을 맡아 72년만에 무죄 판결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여순특별법 입법공청회 거치며 기대감 커져
 

서 의원은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서 의원은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며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사진-조천현]

□ 통일뉴스 : 어제(12월 7일)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그 의미와 주요 내용에 대해 소개해 달라.

■ 서동용 국회의원 : 법을 제정할 때는 입법공청회를 거치도록 법에 나와 있다. 상임위 내에서 법안을 전담하는 소위를 두고 또 결산을 담당하는 소위도 두는데, 상임위 의결로 법안소위 차원에서 공청회를 할 수도 있고 전체 공청회를 할 수도 있다. 어제는 상임위 차원에서 전체 공청회를 한 것이다. 

여순사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향토사학자인 주철희 박사와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최현주 소장 두 분이 나와 각 10분씩 진술을 하고 국회의원들이 질의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이 법안을 공공발의한 소병철, 서동용, 김회재 등 세명의 국회의원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맨 마지막에 발언기회를 주어서 한마디씩 했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정의당 이은주의원이 참가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사위 앞에서 농성하느라고 한명도 없었다.

전체적으로는 진술자들도 그렇지만 국회의원들도 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을 했고, 왜 이 법이 이렇게 늦게 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최근 행정안전부에서 이 문제를 특별법이 아니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기본법'(진화위법)을 통해서 해결하자는 의사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주철희 박사가 그러면 안되는 이유에 대해 세심하게 설명을 했다.

제정 법의 경우 소위 의결로 공청회를 건너 뛸 수도 있지만 보통은 다들 거치는 절차이다. 어제 공청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입법과 관련한 외부적 절차는 다 밟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상임위 법안소위에서 구체적으로 조문을 들여다보는 '축조심사'를 하고, 국회의원들과 행정안전부가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뒤,  법안소위에서 원안 그대로 또는 수정안으로 통과시키는 절차를 밟게 된다. 그 다음 행안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본 회의에서 채택하면 법안이 만들어지게 된다.


□ 법 제정을 위해서는 행안위 법안소위 통과와 법제사법위원회 및 본 회의를 거치게 되는 데, 152명의 민주당 국회의원이 찬성의견을 낸 상황이어서 어느때보다 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높다. 특별법 제정 전망은?

■ 어제 입법공청회는 꼭 해야 하는 절차이기도 하고 또 그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외적 절차는 다 거친 것이다. 

다른 법률의 경우 상임위 공청회를 마쳐놓고도 안된 경우들도 있다. 지금은 공청회를 안하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데, 그 절차를 마쳤고 국회 행안위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이 법의 통과에 뜻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법 통과는 충분히, 많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약간의 우려가 있는 것은 8~9일 사이에 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간 극한 갈등과 국회 공전과 같은 외적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여순사건은 발발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여순반란사건이라고 명명되어 있는데, 이것을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로 아직 남아 있다. 

혹시라도 이념대립의 양상이 벌어지면 이 법이 또 희생양이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여전히 조심스럽다. 정말 유리구슬을 옮기듯이, 아주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나 하나 풀어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여순사건의 본질은 무엇인지, 여순사건을 좌우 이념대립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나.

■ 그동안 제14연대 군인들의 소위 '반란', 그 봉기가 남로당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 때문에 지역에서도 '반란사건'이라는 표현이 끊이지 않았던 측면이 있는데, 주철희 박사가 어제 이와 관련한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백선엽 회고록에도 여순사건은 남로당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기록이 있고 처음부터 그런 의견이 많았었는데, 1967년에 처음으로 남로당 연관설이 나온 후 마치 그것이 정설인양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가짜가 진짜를 뒤덮어 버린 사례인 셈이다.

이 문제가 처음으로 제기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저로서도 여순사건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배우게 됐다.

가슴 아픈 일인데, 여순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저를 포함해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나서지 마라', '남앞에 서지 마라'는 이야기를 늘상 들으면서 커왔다.

1949년 전라남도 통계로 1만 1,131명이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이 통계에는 내가 알고 있는 사례들도 반영이 안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내가 들어 알고 있는 광양의 집단학살 사례만 해도 50~60명씩 끌어다 놓고 총살해 버린 경우가 여러 건 있다.

어제 주철희 박사는 1만5,000명~2만5,000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하더라. 그렇게 많은 민간인들이 '빨갱이, 반란군이었고 부역했기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아무 거리낌없던 세월이었기 때문에 그 자식의 인생이 어떻게 잘못될 지 몰라서 입다물고 숨기며 살았던 세월이 70년이었다.

육사 진학을 희망했던 제 친구도 아버지가 뚜렷한 설명없이 절대 안된다고 말리는 통에 꿈을 꺾었다가 최근에야 할아버지가 반란군으로 낙인찍혀 돌아가셨다는 것이 이유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얼마전 94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임종 직전에야 작은 아버지 한 분이 여순사건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해서 알게 된 사연도 있다. 이렇듯 여수·순천·광양 곳곳의 가정에는 진실을 숨기고 가슴속에 통한의 눈물을 안고 살아왔던 세월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그런 세월에 대해 이제는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도 중요한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주철희 박사는 이 사건의 핵심은 국가권력기관인 군에서 촉발된 사건이며, 군의 잘못은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왜 국가는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는지 △왜 그들이 이야기하는 반란군으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고 구하려고 하지 않고 반란군과 한편이라는 이유로 총을 쏘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고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는 높지만 이념의 덫에 넣어 해석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사진-조천현]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에 대한 현실적인 기대는 높지만 이념의 덫에 넣어 해석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무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사진-조천현]

□ 특별법이 제정되면 가장 먼저 할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 이 사건과 관련해서 1949년 전라남도 통계에 1만1,173명의 희생자가 있다는 기록만 있지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은 한편으론 너무 당연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국은 살아계신 분들의 진술을 통해서 진실이 규명될 수 밖에 없는데, 72년의 세월이 흐르다보니까 굉장히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고 치매가 온 경우 신빙성있는 진술을 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른 분들도 너무 많다. 

조속히 특별법을 제정해서 진상규명에 착수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고도 시급하다.


□ 특별법 제정이 아니라 진화위법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있는데...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진화위)를 거치지 않고 왜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질문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의 명예회복만 놓고보면 거길 통해서 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건의 성격상 국가기관내에서 촉발된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피해자 조사를 주로하는 다른 조사위와는 조금 성격이 다른 면들이 있다. 

또 여순은 워낙 광범위한 사건인데 진화위 활동의 한 분야, 부분으로 다뤄지다 보니  지난 1기 진화위에서도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서 충분한 조사가 되어야 한다는 개선 의견이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여러 사안 중의 하나로 처리하기에는 피해의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전담해서 할 수 있는 위원회 구조를 만들지 않으면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진화위법에 따라 구성된 1기 진화위가 제대로 홍보도 안된 상태에서 조사 신청도 미처 받지 못하고 부랴부랴 끝냈던 문제를 극복하고 폭넓은 진상규명을 하자면 조사위원회 직권으로 여수·순천·광양·구례·고흥·보성 등 6개 시·군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아직 살아계신 분들의 진술을 듣고 그 이야기를 토대로 또 다른 조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화위의 한 부문으로서 조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주4.3이 있었기 때문에 여순이 있었고 여순은 4.3의 결과라는 점에서 개별 민간인 희생사건이 아닌 제주4.3, 광주5.18과 같은 역사적 사건으로 여순사건이 갖는 의미, 그 지위에 걸맞는 법적 체계를 갖추는 것도 국가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징표일 수 있겠다.

그런 측면에서 4.3이 별도의 특별법을 통해서 '한국현대사를 여는 사건'이라는 규명을 얻은 것 처럼 여순도 당연히 별도의 특별법을 통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많기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지난 7일 여순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입법청문회가 처음으로 열려 법안 통과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진제공-서동용 의원실]

□ 특별법 제정에 대한 야당쪽 태도나 반응은 어떤가.

■ 현재로서는 특별히 반대하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이미 1기 진화위를 구성하는데도 동의를 했고 또 제주 4.3특별법이 있기 때문에 단지 진실을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하는, 즉 배상과 보상규정을 포함하지 않는 여순법에 대해서 특별히 반대하는 기류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만약 이념적인 문제가 정국을 유리하게 끌어가는 기제로 작동하는 시점이 오면 그걸 이유로 해서 여순법을 문제삼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긴 하다.


□ 현재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상황은 겉으로 보기에 특별법 제정에 걸림돌이 되는 요인은 없어보이지만 이념적 갈등으로 표면화되는 상황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남아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나.

■ 앞으로 혹시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왜 진화위로 가지 별도의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갈등 또는 문제였는데, 거기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이 됐다고 본다. 현재로서는 웬만한 문제들은 다 해소되어 있다.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고 지금 여야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이유는 배·보상 규정을 두자는 것과 관련된 것인데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주 4.3이나 여순도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민간인 희생자가 확인되면 보상을 해 주긴 하는데 그 보상을 재판을 통해서 받아야 한다. 지급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특별법으로 지급규정을 두면 국가가 조사를 해서 직접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것이어서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훨씬 좋은 수단이 된다.

그런데 지금 국가폭력에 대한 배·보상 규정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은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정도 밖에 없다. 

거창양민학살사건과 노근리양민학살사건, 제주4.3 모두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배·보상 규정은 없다. 

정부에서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예산 문제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에 대한 보상기준을 적용하면 전체적으로 최저 4조5천억원에서 최대 8조5천억원 정도의 예산이 드는데, 어느 하나 물꼬가 터지만 모두 다 들어올 것이라는 것 때문에 꺼리는 것 같다.

그렇지만 정부 입장에서 보더라도 끝까지 계속 무시하면서 보상하지 않고 가는 방법은 없을 것 같다. 두고 두고 계속 제기될 문제를 마냥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선도적으로 나서서 풀되, 재정이 문제가 된다면 분할지급을 한다든지, 지급 대상을 한정한다든지 하는 방안을 찾아볼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풀어나가야 할 일이다.


□ 행정안전부는 특별법이라는 개별입법보다는 '진화위법'을 통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건 어떻게 보아야 하나?

■ 정부는 당초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일반법인 진화위법으로 해결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었다. 그러나 사건의 성격, 피해자의 수 등에 비추어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한다면 따르겠다는 것으로 선회했다. 

그러다가 얼마전 김태년 원내대표 주재하에 여순특별법을 발의한 소병철, 서동용 의원과 행안위 여당 간사인 함병도 의원, 그리고 행안부 차관과 담당 국장이 모여서 심도있게 토론을 거친 결과 행안부도 특별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 이후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행안부 입장은 특별법 제정에 동의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다.


□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피해를 다루는 특별법 중 여순사건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상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다시 한번 왜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하는지 말해달라.

■ 한국전쟁 전후 시기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최초의 특별법이 만들어졌던 건 제주4.3 특별법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거창양민학살진상규명특별법이 만들어졌고 노근리양민학살진상규명특별법을 비롯한 몇개의 법이 별도로 만들어졌다. 

노무현 정부 들어와 매번 특별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일반법을 만들어서 포괄적으로 다뤄보자는 접근이 있어 '진화위법'을 만들었다. 진화위의 조사대상에 웬만한 사건은 다 포함되어 있었고 여순사건도 진화위 조사대상에 포함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여순사건만 빠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사건의 성격, 피해자 규모 등에 비추어 특별법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여순사건은 남아있는 유일한 특별법 대상으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서의원은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오랫동안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것들을 신원하고 풀어내야 비로소 공동체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조천현] 

□ 국회 입성 전인 지난 2019년 6월 서동용 변호사는 '스무살 도망자'가 불러낸 1948년 여순'이라는 제목의 신문 칼럼을 통해 70여년전 여순의 소용돌이에서 피해를 당한 아버지로부터 광주항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들로 이어지는 잔혹한 우리 현대사를 일깨운 바 있다. 국가와 시민들은 여순특별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기를 바라는지 말해달라.

■ 만약에 국가의 주장대로 이 사건이 반란이었다면 국가는 나서서 반란군으로부터 민간인들을 보호했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는 오히려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았다. 

설령 적국 소속일지라도 총을 들지 않은 양민에게는 총을 쏘지 않는다는 것이 전쟁터에서도 지켜야 할 약속인데, 오히려 국가가 나서서 제 나라 국민들을 마구잡이로 쏘아 죽였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국가가 그래서는 안되지 않나.

어제 여순항쟁유족연합회 회장인 이규종 선생이 그러더라. 구례에서 토벌대장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고난 뒤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나도 빼지 말고 다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와서 엄청난 양민들이 학살당했다는 거다. 국가가 그런 짓을 했다.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쏘고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행태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하고, 그걸 딛고 극복하려는 성찰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항상 역사는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저는 그게 광주에서 또 한번의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한 가족사에서 대을 이어 그런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한 동네에서 한 사람은 가해자이고 다른 한 사람은 피해자인 그런 집들도 굉장히 많다. 광양·순천·구례 같은 곳에 가면...

어젯밤에 반란군(?)이 쌀을 한되 얻어갔다고 해서 다음 날 들어온 군경은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았다. 평소에 미워했던 동네사람들을 향해 '손가락 총질'이 가해지고 바로 총으로 쏘아 죽이는 그런 비극이 있었다.

지금까지 가슴에 묻고 살아왔던 세월인데 이런 것들을 신원하고 풀어내는 계기를 만들어야 비로소 공동체가 복원될 것이다. 

이것이 개인과 개인사이에 벌어진 문제였다면 어떤 형태로든 풀고 화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겠지만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국가가 나서서 풀지 않으면 해결하지 않는 것이다. 그걸 지금까지 제대로 하지 않아서 우리는 반복되는 역사속에 더 큰 비극을 키워 온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전국에서 나오는 목소리 “이번엔 반드시 하자, 검찰 개혁”

편집국 | 기사입력 2020/12/09 [16:54]
  •  
  •  
  • <a id="kakao-link-btn" style="font-variant-numeric: normal; font-variant-east-asian: normal; font-stretch: normal; font-size: 12px; line-height: 16px; font-family: dotum, 돋움, Arial; color: rgb(102, 102, 102); text-size-adjust: none;"></a>
  •  
  •  
  •  
  •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전국에서 나오고 있다.

 

9일 대구에서는 대구·경북 시·도민 717명이 중단 없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으며, 광주와 부산에서는 정치검찰 규탄과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영호남 공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었다.

 

◆  대구·경북 717명 ‘검찰 개혁 완수하자!’

 

▲ 9일 대구에서는 대구·경북 시·도민 717명이 중단 없는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 조석원 통신원

 

© 조석원 통신원

 

대구·경북에서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채형복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정금교 목사 등  500인 선언에 참가한 시민들은 오전 11시 대구지방고등검찰청 앞에서 ‘중단 없는 검찰개혁 대구·경북 시·도민 500인 선언’을 발표했다. 애초 목표였던 500인을 훌쩍 넘는 717명이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채형복 교수는 “법학자인 제가 검찰 개혁 지지 선언에 나선 이유는 현재 대한민국 사법정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지금 들불처럼 일어나는 검찰 개혁 목소리는 '윤석열 한 명' 쳐내자는 게 아니라, 공수처를 설치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내린 검찰 개혁이라는 헌법적 명령을 즉시 완수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검찰 개혁 법안이 통과된 지 벌써 1년이 가까워져 오지만 여전히 공수처는 출범하지 못하고 있고 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일부 검사들의 이른바 ‘항명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라며 “이 같은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남용과 검찰 개혁 방해를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더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선언 이유를 밝혔다.

 

특히 “검찰 개혁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독점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찰 권한을 나눠 국민에게 검찰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라며 “그러나 통제받지 않은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검찰의 비위와 범죄를 다스릴 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 조정을 반대하는 검찰의 ‘항명소동’은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비판했다. 

 

또 “검찰 개혁에 저항하고 각종 비위와 범죄로 얼룩진 검찰 인사들에 대해 엄중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라며 “정부와 여당은 촛불 국민혁명의 명령인 검찰 개혁을 끝까지 완수할 것”을 주문했다. 

 

대구·경북 시·도민은 ‘1. 공수처 출범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의 조속히 마무리 2.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각종 비위와 범죄로 얼룩진 검찰 인사들에 대해 엄중 조치 3. 촛불국민혁명의 명령인 검찰개혁의 완수’ 등을 담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구·경북 500인 선언은 지난 12월 4일부터 8일 자정까지 SNS 등을 통해 선언 참여자를 모았다. (조석원 통신원) 

 

아래는 선언문 전문이다.

 

--------------아래-------------------

 

중단 없는 검찰개혁으로 적폐 기득권을 청산하고,

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 조정을 완수하라! 

 

검찰개혁 법안이 통과된 지 벌써 1년이 가까워 온다. 그러나 여전히 공수처는 출범하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개혁에 저항하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일부 검사들의 이른바 '항명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남용과 검찰개혁 방해를 우리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더이상 간과할 수 없다.

 

검찰개혁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 독점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검찰권한을 나누어, 국민에게 검찰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통제받지 않은 권력을 휘둘러온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검찰의 비위와 범죄를 다스릴 공수처 출범, 검경수사권 조정을 반대하는 검찰의 '항명소동'은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기간,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극우정당, 보수언론, 수구지식인 집단은 끊임없이 검찰개혁에 흠집을 내고, 격렬히 반대해왔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의 적폐기득권에 균열을 내는 검찰개혁이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을 가하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와 징계절차를 통해 우리 대구·경북 시·도민은 더욱 검찰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절실히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재판부 불법사찰과 정치적 중립위반 혐의는 국민들을 기망한 중대 범죄 혐의로 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위시한 검찰은 말로만 검찰개혁을 따른다고 하면서 뒤로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검찰개혁을 방해하고 최악의 집단이기주의로 국민들의 검찰개혁과 적폐청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선별적인 수사와 기소로 편파적인 업무수행을 바로잡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국민들의 비판받아온 검찰의 조직 이기주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단없이 검찰개혁을 완수해야 한다.

 

오늘날 윤석열 총장과 일부 검사들의 검찰 개혁 방해 행위는 검찰이 뿌리에서부터 철저히 개혁되어야 할 대상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검찰 개혁을 바라는 우리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지난 검찰 개혁 촛불에 호응하여 대구와 경북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국민들의 준엄한 검찰개혁 요구를 외쳤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만들어진 국회의원 180석은 검찰 개혁을 완수하라는 준엄한 국민의 명령이었다. 우리 시·도민들은 엄청난 인내로 검찰개혁의 과정을 지켜보았지만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 이에 검찰개혁을 바라는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1. 정부와 여당은 공수처 출범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을 조속히 마무리 짓도록 중단없이 검찰개혁의 속도를 높여라!

 

2. 검찰개혁에 저항하고 각종 비위와 범죄로 얼룩진 검찰 인사들에 대해 엄중 조치하라!

 

3. 촛불국민혁명의 명령인 검찰개혁을 끝까지 완수하라!

 

2020년 12월 9일

대구·경북 717인

 

◆ 광주 43개 시민사회단체 ‘검찰은 국민의 명령에 따르라’

 

광주 시민사회 단체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정치검찰 규탄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영호남 공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열고 긴급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 9일 오전 10시, 광주지검 앞에서 진행된 "정치검찰 규탄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영호남 공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모습     ©김태현 통신원

 

이들은 “현 사태의 본질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개인적 충돌이 아니라 검찰 개혁이라는 시민의 준엄한 명령과 그에 저항하는 검찰 내 반개혁적 기득권 세력의 대결”이라면서 “노골적인 정치검찰의 행태를 보여 시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은 국민의 준엄한 요구인 검찰 개혁의 대의에 동참하라”라고 촉구했다. 

 

사법부를 향해 “재판부 사찰을 비롯한 노골적인 정치검찰 행위에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분명한 입장과 대응책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정부, 여당에 “적폐 청산이 지지부진하고 있다. 이는 적폐기득권의 준동을 일으킬 뿐이다.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여 사회대개혁에 적극 나서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기득권을 두둔하고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 부끄러운 작태를 중단하고 진실의 파수꾼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다하라”라고 꼬집었다.

 

이번 시국선언은 광주의 43개 시민·사회·교육·종교·문화예술 단체가 참여하였다. (김태현 통신원)

 

<시국선언 참여 단체>

 

전국교수노조 광주전남지부/동강대 교수협의회/광주전남 대학 민주동우회 협의회/광주대 민주동우회/동신대 민주동우회/전남대 민주동우회/조선대 민주동우회/호남대 민주동우회/(재)누리문화재단/광주전남 민주언론시민연합/4·19 문화원/광주전남 시민행동/호남 의열단/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사)한국민족극운동협회/(사)한국곰두리봉사회 전남지부/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NCC)/광주노회(예장통합)인권위원회/(사)인문연구원 동고송/시민플랫폼 나들/광주교육희망네트워크/광주전남기독교민주화운동동지회/광주전남 작가회의/함께하는 세상을 위한 가톨릭 사회교리 실천 모임/(사)지역공공정책플랫폼 광주로/사단법인 광주전남6월항쟁/광산시민연대/5·18평화연구원/광주여성장애인 연대/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사) 5·18 유족회/사) 5·18부상자회/사)5·18구속부상자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범민련 광주전남연합/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1987합창단/우리문화연구회 풍물패 "두드림"/4·19풍물단/오월 민주여성회/광주전남교수연구자연합 

 

◆ 부산 ‘검찰 개혁은 각 분야 개혁의 출발점’

 

부산의 시민사회 단체들은 오전 10시 30분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정치검찰 규탄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영호남 공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부산의 시민사회 단체들은 오전 10시 30분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정치검찰 규탄과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영호남 공동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 조윤영 통신원

 

  © 조윤영 통신원

 

단체들은 “검사들의 집단항명을 정치검찰들의 반개혁적 난동으로 규정하고 강력한 검찰개혁을 촉구하기 위해 4년 전 박근혜 탄핵 국회가결이 된 오늘 모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며 엄격하고 공정한 잣대로 수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지금 검찰은 법 위에 군림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검찰의 안위를 위해 남용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라며 “박근혜 탄핵 때 미처 해결하지 못한 과제 검찰개혁을 이번에는 반드시 완성할 것이다”라며 기자회견 취지를 밝혔다.

 

이정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을 보며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정치적이었던 검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목격했다. 현 정부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 정치와 국민의 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한순간도 정치적 중립을 지켰던 적 없는 검찰이 자신의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끝까지 국민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현 사태를 진단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검찰은 수구정치 세력과 결탁하여 권력기관 개혁을 저지하며 지금과 같은 검찰공화국을 유지해왔다. 검찰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며 민주정부와 더불어 국민 앞에 검찰개혁을 약속한 것을 본 적이 없다”라며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호범 부산대학교 교수는 “검찰 개혁은 사법, 언론, 사학, 노동, 경제 등 사회 각 분야의 개혁을 위한 시발점”이라고 밝혔다, 계속해 그는 “우리는 검찰개혁의 선봉에 섰던 노무현 대통령을 당시 검찰이 겁박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을 기억한다. 그때 우리는 바라만 볼 수밖에 없지만, 이제는 촛불혁명을 만든 촛불시민이 있기 때문에 두고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 검찰이 국민이 신뢰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고 개혁에 동참하라”라고 발언했다. (조윤영 통신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MB·박근혜 그늘’에 갇힌 국민의힘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0/12/09 09:23
  • 수정일
    2020/12/09 09: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심진용·박홍두 기자 sim@kyunghyang.com

인쇄 글자 작게 글자 크게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뒷줄 가운데)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 앞으로 김 위원장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한 대국민사과 의지를 비판한 배현진 원내대변인이 걸어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뒷줄 가운데)이 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 앞으로 김 위원장의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한 대국민사과 의지를 비판한 배현진 원내대변인이 걸어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종인 ‘탄핵 사과’ 돌파 의지
내용·시점 등은 조절 가능성
 

홍준표 “탄핵 공동 가해자들”
유승민 “역사 평가에 맡겨라”
친이·친박 반발…“혁신 한계”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80)이 ‘탄핵 사과’에 대한 당내 반발을 정면 돌파할 것으로 8일 전해졌다.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내고, 3선 의원들이 집단 항의하는 등 반발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대국민사과 방침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두 전직 대통령 과오에 대한 사과와 함께 당 혁신, 문재인 정권 비판 메시지를 섞고, 사과 시점도 여당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처리 등을 감안해 당초 9일에서 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탄핵 사과’에 대한 내홍은 혁신과 변화를 외치면서도 두 전직 대통령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민의힘 현실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은 이날 비상의원총회에서 “국민 마음을 우리 편으로 돌리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다소 불편하더라도 그런 노력에 다 같이 협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또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당 운명을 가름한다”며 “총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절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전날 “9일 대국민사과를 할 것이고, 못하게 한다면 위원장직을 던지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당내에서 쏟아지는 반발에 대한 내부 단속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당내 반발은 거세지고 있다. 친이·친박계 의원들을 비롯해 복당 문제로 지도부와 갈등 중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비판을 쏟아냈다. 대여 투쟁을 벌여야 할 시기에 ‘긁어 부스럼’이라고 성토하고, 김 위원장 등 주요 지도부가 탄핵에 동조한 ‘배신’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홍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김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민주당 의석에 앉아 있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탄핵에 찬성하고 탈당해 바른정당에 있었다”며 “탄핵의 공동 가해자가 피해자를 대리하여 사과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고 적었다. 친홍계로 분류되는 배현진 의원도 “(김 위원장이) 가장 먼저 사과해야 할 일은 잘못된 역사를 여는 데 봉역한 것”이라고 SNS에 썼다.

3선 의원들도 김 위원장을 항의 면담했다. 면담에 참석한 한 의원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김 위원장이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가 아니라 탄핵 이후 당 혁신이 더딘 점을 사과할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본회의 일정이나 당내 반발을 고려해 김 위원장이 사과를 연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SNS에서 “탄핵을 두고 분열한다면, 문재인 정권의 집권 연장을 돕게 될 뿐”이라며 “진정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탄핵은 역사의 평가에 맡기고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사과 기조’에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비대위원장직을 던질 수 있다고까지 얘기한 상황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안 할 수는 없다”며 “다만 당 혁신과 문재인 정권에 대한 비판을 섞는 정도로 메시지 조절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의 자중지란을 파고들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이라고 이름만 바꿨지 박근혜당, MB당일 뿐”이라며 “박근혜의힘으로 당명을 바꾸시라”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082104035&code=910402#csidx614e0f8c42865e093b81c8cf03fd45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흘마다 ‘김용균’ 스러지는데…중대재해법 지운 국회

등록 :2020-12-09 04:59수정 :2020-12-09 07:12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김용균법’ 이후 열 달 산재사망
72명이 ‘끼임사’…나흘에 1명꼴
안전설비 미비 등 변한게 없어
지난 6월23일 충남 아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도중 유압 성형기와 체인컨베이어 로더(적재 벨트)에 끼였다가 이튿날 숨진 필리핀 이주노동자 제프리 푸가한의 빈소가 회사 기숙사에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사고 현장 유압 성형기의 모습이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제공
지난 6월23일 충남 아산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도중 유압 성형기와 체인컨베이어 로더(적재 벨트)에 끼였다가 이튿날 숨진 필리핀 이주노동자 제프리 푸가한의 빈소가 회사 기숙사에 마련되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사고 현장 유압 성형기의 모습이다. 아산이주노동자센터 제공

기계 밑으로 들어가 몸이 끼였을 때, 그는 혼자였다. 28명의 직원과 관리자는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렇게 등과 팔이 끼인 채 한참을 발버둥 쳤다. 윙윙 굉음을 내며 돌아가던 기계가 소리 없이 멈춘 걸 이상하게 생각한 직원들이 뒤늦게 그를 발견했다. 10여분이 지난 뒤였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하루 뒤 숨을 거뒀다.

28살 제프리 푸가한은 6년 전 한국에 왔다. 고향은 필리핀 마닐라 북쪽에 있는 라트리니다드라는 곳이다. 그는 충남 아산의 제조업체인 ㅊ사에서 철근 받침대의 모양을 만드는 유압 성형기 운전 일을 했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재해조사의견서와 아산이주노동자센터(센터)의 조사를 종합하면, 지난 6월23일 오전 11시19분께 유압 성형기의 센서가 오류를 일으키며 작동을 멈췄다. 공장 내 먼지나 흙, 진동으로 유압 성형기가 작동을 멈추면, 푸가한은 늘 홀로 기계 안으로 들어가 수리했다. 그는 이날도 위쪽의 유압 성형기와 아래쪽의 체인컨베이어 로더(적재 벨트) 사이에 몸을 집어넣고 센서 정비 작업을 했다. 그러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센서가 작동했고, 유압 성형기가 아래쪽으로 움직여 푸가한의 몸을 짓눌렀다. “소식을 듣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청소가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현장에는 안전보건관리자도 없었죠. 동료 노동자들은 평소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더군요.” 우삼열 센터 소장이 말했다.

기계에 끼인 채 홀로 방치됐던 상황도, 재해 발생 뒤 누군가의 청소로 흔적이 사라져버린 현장도, 안전보건관리자가 부재했던 환경도, 모두 헬멧을 쓰고 방진 마스크를 쓴 채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우리를 바라봤던 그를 떠올리게 했다. 2년 전 한국 사회를 공분하게 한, 충남 태안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작업 도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24살 김용균의 산업재해는 그렇게 변한 것 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오는 10일 김용균씨 2주기를 맞아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추모위원회 기획으로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전시실에서 ‘꽃이지네 눈물같이’ 전시가 열렸다. 김용균이라는 꽃이 피었다가 산업재해로 시들어버렸음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전시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오는 10일 김용균씨 2주기를 맞아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추모위원회 기획으로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인권중심 사람’ 전시실에서 ‘꽃이지네 눈물같이’ 전시가 열렸다. 김용균이라는 꽃이 피었다가 산업재해로 시들어버렸음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전시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8일 <한겨레>가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김용균의 죽음 이후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시행된 지난 1월16일부터 집계할 수 있는 가장 최근인 10월31일까지의 산재 사망사고를 취합한 결과, 모두 72명의 노동자가 ‘끼임사’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푸가한이나 김용균과 같은 죽음이 나흘에 한번꼴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푸가한은 그 72명의 죽음 가운데 40번째 사망자에 해당한다.

72건의 끼임사 산재 가운데 강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재해조사의견서 64건을 입수해 분석해보니, 근로감독관들은 전체의 68%에 해당하는 44건의 끼임사 발생 사업장에서 안전과 관련해 중복되는 문제들이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44건 가운데 안전설비가 미비한 사례는 16건이었고, 작업 때 안전을 위해 기계를 덮어주는 덮개나 노동자의 끼임을 방지하는 센서 등 방호 장치가 없었던 경우는 10건이었다. 등록되지 않은 낙후 장비를 활용하다 사고가 난 사례도 2건 있었다.

재해조사의견서는 현장 동료나 관리 인력의 부재도 끼임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었다. 2인1조를 이루지 않고 홀로 작업하다 사고를 당한 사례가 확인된 것만 9건이었다. 또한 사망사고가 잦은 위험 작업임에도 현장에 작업 지휘·감독자가 없거나 ‘신호수’ 등 필수 보조인력이 없었던 경우도 6건 있었다. 안전환경 미흡 및 교육 미비 사례는 모두 31건이었는데, 세부적으로는 교육 미비 5건, 전원을 끄지 않았거나 관리 미비가 4건, 작업계획서 미비가 6건, 낮은 조도가 2건 등이었다.

두달 새 끼임사와 추락사가 발생한 삼표시멘트

72명의 죽음 가운데 30번째 사망에 해당하는 김동석(가명·62)의 끼임사에도 똑같은 문제가 여러 겹으로 중첩돼 있었다. 강원 삼척에 있는 삼표시멘트 공장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 김동석은 지난 5월13일 합성수지를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변을 당했다.

재해조사의견서 내용과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김동석은 사고 당일 청소를 위해 보조 컨베이어벨트를 작동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기계가 작동하지 않자 오전 9시20분께 점검구를 열고 컨베이어벨트 내부를 들여다봤다. 그러다 갑자기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그대로 상체가 끼였다. 다른 작업에 투입됐던 동료가 김동석을 발견한 건 2시간 정도가 지난 오전 11시10분께였다.

회사 쪽은 “당시 2인1조 근무 수칙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그랬다면 왜 김동석이 기계에 끼인 채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홀로 방치되어 있었는지, 회사는 답하지 않고 있다. “7개월이 지났지만 사망 원인에 대해서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기계 점검을 하는 동안 누가 기계를 움직인 건지, 혼자 일하신 게 맞는 건지도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어요.” 지난 6일 <한겨레>와 만난 김동석의 아들 김수찬(34)이 이렇게 말했다.

김동석을 끼어 숨지게 만든 기계는 약 한달 만에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고용노동부 태백지청이 2인1조 근무를 조건으로 가동을 허가했다. 하지만 형식적인 조처일 뿐이었다. “한 기계당 한명이 맡는 방식을 두 기계당 세명이 맡는 방식으로 근무 형태가 바뀌었어요. 정확한 2인1조 근무가 아닌 거죠.” 이재형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 삼표지부장의 말이다.

형식적인 조처는 곧 또 다른 죽음을 낳았다. 김동석의 죽음 이후 두달이 지난 7월31일 또 한명의 삼표시멘트 하청노동자가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도 컨베이어벨트가 문제였다. 멈춘 컨베이어벨트 위에 올라가 작업하다 기계가 작동하며 추락한 것이다. 올해 초에는 한 노동자가 원료 이송 장치 수리를 위해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갑작스레 기계가 작동하며 중상 재해를 입기도 했다. 삼표시멘트의 반복되는 재해와 풀리지 않는 진상을 보며 김수찬은 “몇년을 싸워도 제자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 큰아버지도 동양시멘트(삼표시멘트의 전신)에서 30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분도 일하다 위에서 구조물이 떨어져서 사망하셨다고 해요. 할아버지·할머니는 그러니까, 30년 전에도 그 공장에서 큰아들을 잃었던 거죠.”

삼표시멘트 관계자는 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중대재해 사고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재발 방지와 안전한 작업 현장 조성을 위해 시설물 보완, 관리감독 강화 등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험의 외주화·이주화 막지 못하는 개정 산안법

김용균의 죽음 이후 28년 만에 산안법이 전면 개정됐을 때부터 이런 사태는 예견되어 있었다. 우선 2인1조 문제다. 푸가한이나 김동석이 재해를 당했을 때 2인1조로 작업하는 동료가 유압 성형기나 컨베이어벨트 비상정지장치를 눌러줄 수 있었다면, 이들은 사망에까지 이르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산안법 개정 때 ‘위험 작업 2인1조 근무’ 원칙을 법에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반영되지 않았다. 김치년 한국산업보건학회장은 “건설업의 추락사만큼 부각되지 않았지만, 제조업의 끼임사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고질적인 문제”라며 “현장의 끼임 방지 설비 마련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수리하다 기계에 문제가 생기면 작업을 중지하는 원칙을 세워야 하며, 작업 현장의 조도 관리 등을 엄격하게 규정하도록 기업에 산업안전관리 의무를 강하게 부과해야 한다. 현장 감독관을 늘리고, 안전 매뉴얼을 정립하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산안법에 포함된 위험 작업에 대한 도급(하청) 금지 규정도 문제다. 푸가한이 일하던 사업장이나 김동석이 일한 사업장은 이 규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심지어 ‘김용균법’이라 부르기 무색하게 김용균이 일했던 태안화력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개정 산안법이 도급 금지 위험 사업 분야를 도금·수은·납·카드뮴 관련 작업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위험 작업을 도급하려면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시행령에서 이 승인 대상 위험 사업 분야도 ‘1% 이상의 황산, 불산, 질산, 염산을 취급하는 설비를 개조·분해·해체·철거하는 작업’ 등으로 한정했다. 박다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끼임과 추락이 반복되는 위험 작업에 도급 금지가 확대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일관되게 나왔고, 구체적인 안까지 나왔던 상황인데도 개정 산안법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관리 담당자를 두는 규정도 사실상 건설업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의무가 아닐 정도로 허술하다. 개정 산안법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관리자가 다른 업무를 겸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푸가한이 일했던 회사도 28명이 일하는 작은 사업장이어서 전임 안전보건관리자가 없어도 되는 곳이다.

위험이 외주화 혹은 이주화하는 현실도 문제다. 앞서 재해조사의견서를 입수한 64건의 끼임사 가운데 피해자가 하청업체 소속이거나 일용직 노동자였던 경우는 30건으로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김동석과 그의 사망 두달 뒤 추락사한 노동자 역시 모두 하청노동자였고, 푸가한은 이주노동자였다. 특히 64건 가운데 81.2%에 이르는 52건이 50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50~100인 미만 사업장은 6곳(9.4%), 100인 이상 사업장이 6곳(9.4%)이었다.

이 때문에 산안법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손익찬 변호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도입되면, 원청 등 사업장에서 처벌받기 싫어서라도 안전 조처를 강화할 것”이라며 “그게 형벌의 효과라고 본다. 반드시 (사업장 내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과점 열고자 했던 꿈은 재가 되어 사라졌다

푸가한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를 “동생과 부모님을 보살피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육남매 가운데 둘째인 푸가한은 대부분의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처럼 네 동생과 부모를 위해 한국에서 받은 월급 대부분을 필리핀으로 보냈다. 내년에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계획했고, 한국에서 번 돈으로 필리핀에 제과점이나 가구점을 열고 싶어 했다. 그는 직장을 옮기지 않고 4년10개월 동안 일하고 귀국하면, 3개월 뒤 다시 같은 기업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성실외국인근로자 재입국’ 대상자로 선정될 만큼 열심히 일했다. 푸가한이 숨지기 전달인 지난 5월 그의 월급명세서를 보면, 한달 노동 시간은 모두 213.5시간, 연장 및 휴일근로 시간 61.5시간이라고 적혀 있다. 일주일 평균 50시간꼴로 일한 셈이다. 푸가한은 생전 센터에서 필리핀어 통역자로 일하는 리가쵸 잘리에게 “우리는 토요일,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일을 시키면서도 위험에 대한 대비는 이뤄지지 않았다. 센터의 면담 기록을 보면, 푸가한이 일했던 제조업체에선 2007년과 2018년에도 노동자의 팔이 기계 안으로 말려 들어가는 끼임 사고가 발생했고, 2016년에도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했다. “사장님들은 회사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데, 직원 입장에선 그렇게 말할 수가 없어요. 사장님한테 ‘일하기 무서워요. 진짜 필요한 안전장치가 없어요’라는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워서 말을 하지 않을 뿐이죠.” 푸가한과 같은 필리핀 출신 친구이자 ㅊ기업 인근 업체에서 일했던 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ㅊ사 쪽은 <한겨레>에 “사업장 내에 주기적으로 안전교육을 했다. 사고 이후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왔다”며 “예전에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지는 파악 중”이라는 입장을 보내왔다.

결국 푸가한의 가족에겐 아픔만 남게 됐다. “오빠가 한국어시험에 합격해서 한국에서 일하게 됐을 때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엔 문화 차이로 힘들어하다가 시간이 흘러 적응을 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오빠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꿈도 희망도 모두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푸가한의 여동생 말은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을 닮아 있었다.

박준용 선담은 기자 juneyo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973373.html?_fr=mt1#csidx0bcb9919654ab64b5be8b0e710f10b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국은 주둥이로만 수습하는데..." 오죽하면 이 글에 공감할까

[取중眞담] 사실관계 틀린 '호주 코로나 자영업 대책'이 던지는 진짜 질문

20.12.09 08:21l최종 업데이트 20.12.09 08:21l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수도권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가운데, 7일 오후 평소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 골목길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수도권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가운데, 7일 오후 평소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 골목길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그야말로 잔인한 12월이다.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자영업자와 영세상인들은 휘청거리고 있다. 전국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되면서 정부 추산 약 203만 개의 업체가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심지어 수도권은 2주 동안의 거리두기 2단계를 거쳐, 3주 동안의 거리두기 2.5단계를 맞이하게 됐다. 피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누적되고 있다.

자영업자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불만이 터져 나온다. 먼저 규제의 형평성 논란이다. '카페'는 매장 이용이 안 되지만 패스트푸드점에서 음료를 먹는 것은 가능하다. 오후 9시 이후 식당 영업은 금지 되지만, 정작 오후 6시~9시에 영업하는 식당에서는 술을 마시며 붙어 앉아 대화를 나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마스크 쓰고 이용하는 헬스장과 학원은 영업이 중단됐는데, 종교시설은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는다.

'기준'이 불명확한 게 자영업자들을 더욱 분통 터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일례로 PC방은 '개편된 거리두기' 실시 전인 지난 8월에는 2단계부터 운영이 중단됐지만, 그보다 강력한 규제인 현행 거리두기 체계의 2.5단계는 운영 중단 대상이 아니다. 

또 다른 불만은 명확한 정부의 지원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거리두기 조치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 지원에 초점을 맞춘 3차 재난지원금을 설날 전 지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들은 어느 정도의 금액을 받을 수 있을지, 혹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부터 막연한 상황이다. 

호주는 자영업자에게 2천만원 일시불 지급, 임대료도 면제?
 

 어제 화제가 된 한 누리꾼의 페이스북 글 캡처
▲  어제 화제가 된 한 누리꾼의 페이스북 글 캡처
ⓒ 페이스북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이런 가운데 7일 '한국은 늘 주둥이로만 수습하는 나라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글이 SNS를 뜨겁게 달궜다. 호주의 자영업 지원 대책을 설명하며 한국 정부를 비판하는 글이었다(현재는 삭제). 글쓴이는 "(호주는)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종업원 해고 금지 조건을 붙여 모든 매장주에게 현금 2천만원을 쏘고, 회계 마감 텍스 리턴에서 전년 대비 올해 매출 차감 금액을 보전해줬다"라며 "그러니 그들의 생계가 위축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어 "정부는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유권해석을 명확히 언론에 발표했다. 지금은 임대차 계약상의 '불가항력'에 해당되는 기간이다. 마이너스가 날 시에는 영업주는 굳이 렌트비를 안 내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며 호주의 자영업자들이 임대료를 면제받고 있다고 썼다.


그는 은행 이자에 관해서는 '앞으로 6개월간의 이자 청구를 삭제했다. 원금 상환은 향후 6개월 동안 딜레이 되며...'라는 내용을 담은 ANZ 뱅크의 공지문을 언급하며 "다음날 다른 모든 시중은행들도 그들을 따라 행동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왜 주둥이로 팬데믹에 대처하는가? '위험하오니 자리에 그대로 앉아 계십시오' 외치던 세월호 선장과 다를 바가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이 글은 페이스북에서만 공유가 800회가 넘었고,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에도 퍼져나갔다. 글을 공유하는 누리꾼들은 '한국 정부는 뭐하냐'면서 분개하거나, 호주의 지원책을 부러워했다.

부정확한 사실 투성... 호주의 자영업 지원 정책 왜곡하거나 과장  

그러나 확인 결과 이 글은 사실과 거리가 먼 내용이 다수였다. 호주가 자영업자를 위한 코로나 지원책이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글은 호주의 자영업 대책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전하고 있었다.

먼저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2천만 원 지급'은 사실이 아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따로 있다. 3월 이후 매출이 30% 이하로 감소한 경우, 호주 정부는 지난 5월부터 6개월동안 고용유지를 전제로 사업주에게 1명당 2주에 1500달러(120만 원)씩 지급했다.

여타 지원 대책들도 많지만 기본소득처럼 일시에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각자 자신의 상황에 맞는 지원 대책에 따라 현금을 지급받는 상황이다. 또한 텍스 리턴(한국의 연말정산)을 통해 자영업자의 매출 차감 금액을 보전해주는 대책은 실시한 적이 없다. 다만 '연금 조기 환급'을 손쉽게 해준 것이 (최대 1만 달러) 코로나 대책 중 하나이긴 했다.

임대료가 면제된다는 것도 '거짓'이다. 호주 정부는 지난 4월 부동산 임대차 계약에 적용되는 '의무행동규칙'(Mandatory Code of Conduct)를 발표했다. 이는 의무적인 '행동 강령'으로서, 임대인은 코로나로 인한 영업피해에 비례해 임대료를 면제하거나 유예해야 한다. 

만약 전년 대비 이달 50% 손해가 났다면, 최소 25%는 면제해줘야 한다. 나머지 25%는 유예된다. 한국에 비하면 정말 혁신적인 안이지만, 유예된 돈은 계약 기간 내에는 결과적으로 갚아야 할 돈이므로, 임차인의 부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또한 해당 글은 호주 은행이 코로나 시기에 '은행 이자' 부담을 없앴다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이자의 청구가 미뤄진 것일 뿐이었다. ANZ 뱅크 등 4대 호주 은행 등은 소상공인 대출이나 주택대출에서 6개월동안 이자와 원금의 상환을 유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의 분노한 목소리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500명대 후반으로 폭증하며 대규모 확산이 우려되는 11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가 한산한 모습이다.
▲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가 500명대 후반으로 폭증하며 대규모 확산이 우려되는 11월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가 한산한 모습이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팩트체크는 이정도만 하면 될 것 같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출처 불명 사례와 비교되며 '주둥이로만 수습한다', '세월호 선장과도 같다'는 말을 듣는 것은 정부로서 유감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바로잡는 것과 별개로, 왜 시민들과 자영업자들이 이 글을 공유하며 분노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게 정부의 진정한 몫이다.

한국의 자영업자 대책은 실제 호주의 자영업 지원 대책과 비교해도 현저히 부족하다. 호주의 고용유지지원금 개념으로 지급되는 한국의 일자리안정자금은 1인당 최대 18만 원밖에 안 된다. 임대료 정책은 '착한 임대인'이 임대료를 인하해줄 경우 세금을 지원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도 지난 10월 호주의 '의무행동규칙'과 같은 '임대료 감액 행정명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나,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영업은 멈추는데, 임대료와 이자는 멈추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온다. 자영업자의 희생도 한계에 도달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둥이' 글의 광범위한 공유는 더 이상 구호나 위로가 아닌 실천으로 자영업자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분노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방역은 코로나19 유행을 막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경제적 희생을 감수했던 이들을 국가가 충분히 '지켜주는 것'이 방역 후에 남는 국가의 과제다. '무조건 돈을 지급하라'거나 '퍼주기'를 하라는 게 아니다. 적어도 자영업자들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정부가 부디 귀담아듣길 바란다. 더 늦으면 안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변창흠, 3기 신도시에 ‘찐 반값아파트’ 세울까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주택 묶은 공공자가주택…“LH가 땅장사, 분양가 올리는 구조 깨야”

홍민철 기자 plusjr0512@vop.co.kr
발행 2020-12-08 16:59:32
수정 2020-12-08 16:59:3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변 후보자는 개혁 성향의 학자이자 주택·도시계획 전문가다. 서울주택도시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을 거치며 실무력을 검증받았다. 그가 주장했던 ‘공공자가주택’이 3기 신도시에서 현실화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변 후보자가 세종대 교수 재직 당시 발표한 논문이나,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시절 밝혔던 발언 등을 8일 되짚어 보면, 그는 공공분양·공공임대 중심으로 짜인 주거복지정책 빈틈을 메울 대안으로 ‘공공자가주택’을 강조해왔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과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7일 오전 경기도 과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으로 출근하고 있다.ⓒ제공 : 뉴시스

공공분양은 잘 알려진 대로 ‘로또’를 양산한다. 분양가를 낮춰 공급해도, 이후 가격이 주변 시세 추종하니 분양받은 사람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었다. 공공 아파트를 아무리 싸게 분양해도, 집값 안정엔 결국 도움 되지 못했다.

공공임대는 ‘내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다. 10년, 20년 주거를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중·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 꿈’과 거리가 먼 정책이다.

변 후보자는 공공자가주택으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자고 주장했다. 시세의 50~70% 수준으로 분양하고, 대신 분양받은 사람은 정해진 가격에 공공기관으로 되팔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른바 ‘반값아파트’로 받아서 시세차익은 최소한만 가져가는 구조다. 변 후보자는 2007년 쓴 글에서 “결국 저렴한 분양가격으로 주택을 분양해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되, 최초 분양자가 갖는 개발이익을 환수해...거주공간으로서의 주택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한 설계가 필요하다. 당장, 분양가를 절반으로 끌어 내릴 수 있느냐가 문제다. 해법으로 ‘토지임대부 주택’이 제시된다.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아파트·주택)만 분양하는 방식이다. 분양원가는 토지비와 건축비를 합하고 여기에 건설사 이윤을 붙여 산정한다. 이름처럼, 토지임대부 주택은 분양가에 토지비를 빼고 산정한다. 땅값이 평당 1천만원에, 건축비가 평당 800만원, 건설사 이윤이 200만원으로 가정하면 분양가는 평당 2천만원이 된다. 여기에 땅값 1천만원을 빼면 분양가는 절반으로 줄어드는 식이다.

계산에서 빠진 토지비는 분양자에게 ‘월 임대료’ 형식으로 거둬들인다.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은 택지를 조성해 민간 건설사에 판매한 수익으로 조성비를 회수해왔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초기 조성비를 정부가 부담하고 ‘임대료’를 통해 장기적으로 회수하는 구조다.

토지임대부 주택을 분양받은 사람이 시세대로 팔 수 있으면 집값 안정에 도움이 안된다. 변 후보자는 ‘환매조건부 주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분양자가 되팔 때는 반드시 공공기관에 팔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는 것이다. 되파는 가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시세차익을 모두 공공이 회수하면 분양가격을 더 낮게 하고, 반대로 시세차익을 분양자가 가져갈 수 있도록 설계하면 분양가를 좀 올려 더 받는 식이다.

3기 신도시, 변창흠표 반값주택 얼마나 들어갈까

‘토지임대부+환매조건부’ 공공자가주택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꾸준히, 그리고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절반 수준의 분양가로 공공자가주택이 수도권에 꾸준히 공급된다면 집값하락을 유도할 수 있다.

형태는 아주 다르지만, MB정부 시절 ‘보금자리주택’은 분양가를 낮춰 집값을 ‘대세 안정화’ 한 바 있다. 서강대 이수형 경제학부 부교수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된 주변 아파트값은 평균 5~7%가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인근 주민들은 집값이 내려간다는 이유로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을 반대하는 소송전을 벌이기도 했다.

부작용도 있었다. 2010년 보급된 보금자리주택에는 ‘토지임대부 주택’도 일부 있었다. 강남과 서초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주택은 평당 분양가가 880만원대로 시세의 절반에 불과해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이후 주택가격이 상승하며 토지임대부 주택가격까지 덩달아 올랐다는 점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인 서울 강남구 자곡동 LH강남브리즈힐 시세는 84㎡ 기준 10억원 선으로, 분양가 2억2천만원에 비해 5배 가까이 올랐다. 시세차익을 수분양자가 가져가는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때문에 변 후보자는 “토지임대부 주택을 시행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환매조건부 주택 제도를 동시에 채택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발표한 3기 신도시에 얼마나 많은 물량이 공공자가주택으로 공급될지 주목된다. 변 후보자는 지난 7일 한 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환매조건부·토지임대부 주택)도입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어 향후 얼마나 공급할지 논의할 시기가 됐다”며 “도입 논의를 본격 시작하는 데도 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3기 신도시 현황
수도권 3기 신도시 현황ⓒ제공 : 뉴시스

3기 신도시는 남양주 왕숙·고양 창릉·인천 계양·부천 대장·하남 교산 등지에 17만3천채 규모로 조성된다. 아직 사업 시행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정부는 내년부터 사전청약을 예고하면서 속도를 내고 있다. 추진 일정이 빠른 남양주 왕숙이나 하남 교산 등은 공공자가주택 형식의 분양 물량이 검토될 수 있다.

신도시 아파트는 민간분양, 공공분양, 공공임대 등 다양한 형식으로 공급되는데, 이 중 얼마나 많은 물량이 공공자가주택으로 공급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토부는 임대와 분양 등 각각의 공급 비중에 대한 지구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계획은 국토부와 해당자치단체 등이 협의를 통해 확정한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3기 신도시 공급 물량 대다수는 공공임대주택과 공공자가주택으로 공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LH 등 공공기관이 공공택지를 조성하고 건설사에 비싸게 팔고, 이것이 분양가를 올리는 구조를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민철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하철에서 만난 ‘강제동원 사죄배상’ 광고, 시민참여 메시지·인증샷으로 풍부해져

[기고] 정은주 겨레하나 국제평화부장

  • 기자명 정은주 
  •  
  •  입력 2020.12.08 11:32
  •  
  •  댓글 0
 
‘강제동원 사죄배상’ 광고 앞에서 사진 찍는 대학생들. [사진-정은주]
‘강제동원 사죄배상’ 광고 앞에서 사진 찍는 대학생들. [사진-정은주]

지금 지하철 종각역에 가면 “일본은 강제동원 사죄배상하라”는 구호가 크게 새겨진 광고를 만날 수 있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강제동원 공동행동)에서 게재한 강제동원 배상판결 2년 지하철 조명광고이다. 그리고 올해 연말까지 광고 인증샷 찍기 이벤트를 진행한다.

‘우리가 기억한다‘ 피해자와 함께 나서는 시민들

광고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일본은 강제동원 사죄배상하라”는 구호를 채운 사람들이다. 광고에는 피해자와 시민 1,087명이 동참했다.

자세히 보면 이들은 모두 ‘우리가 기억한다’, ‘우리가 증인이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강제동원 공동행동은 이들의 사진을 모아 구호와 강제징용 노동자상으로 형상화했다.

종각역에 게재된 “일본은 강제동원 사죄하라” 지하철 조명광고. [사진-정은주]
종각역에 게재된 “일본은 강제동원 사죄하라” 지하철 조명광고. [사진-정은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목요일 항의행동을 하고 있는 청년들은 광고를 직접 찾아와 응원 메시지를 붙이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참가했던 류고은(20) 학생은 “실제 광고를 보니 우리가 한 행동들이 이렇게 큰 성과로 만들어진 것 같아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반일선동’이라는 방해 포스트잇도 붙어

강제동원 공동행동은 아침저녁으로 시민들이 붙여주신 응원 포스트잇과 광고가 잘 있는지를 확인하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광고를 폄훼하고 비난하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내용과 전혀 무관한 포스트잇이 다수 붙어있기도 했다.

광고에 붙은 방해 포스트잇. [사진-정은주]
광고에 붙은 방해 포스트잇. [사진-정은주]

판결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여전히 배상 거부

2018년 ‘일본 가해기업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배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강제 매각이 다가오자 일본 스가 총리는 적반하장으로 한국에 해결책을 요구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강제동원 공동행동은 “피해자와 시민들이 끝까지 연대하여 일본에 사죄배상을 요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응원 메시지를 적을 수 있도록 현장에 펜과 포스트잇을 상비해두고. 인증샷 이벤트도 함께 진행한다. 오늘도 강제동원 사죄배상 광고에는 시민들의 응원 포스트잇이 붙는다.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싸우겠습니다” “강제동원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일이다!”

이렇게 지나가는 시민들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이들의 사죄배상 요구는 계속될 것이다.

 

강제동원 사죄배상 광고 인증샷 이벤트

종각역 3번 출구 인근 ‘일본은 강제동원 사죄배상하라’ 광고 앞에서 사진을 찍은 뒤 해시태그와 함께 자신의 SNS에 올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당첨되신 분들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필수 해시태그 : #판결2년 #강제동원사죄배상 #일본은_사죄하라
선물 : 강제동원사죄배상 일회용 마스크, 커피 쿠폰 등 랜덤 증정
이벤트 기간 : 2020년 12월 7일 ~ 2020년 12월 24일
(선물은 이벤트 종료 후 참가해주신 분들에게 직접 연락하고 발송해드립니다)

[사진-정은주]
강제동원 사죄배상 광고 인증샷 이벤트. [사진-정은주]

- ‘일제 강제동원·강제노동을 고발한다’ 홈페이지 http://JapanApologize.com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비혼 출산’ 열광하는 청년 세대에게 가족이란?

  • 임지영 기자
  •  호수 690
  •  승인 2020.12.07 11:16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은 청년 세대의 생애 전망이 바뀌는 흐름에서 봐야 한다. 청년 여성은 가족을 스스로 구성한 용기에 환호하고, 결혼으로 묶이지 않는 인간관계의 품앗이에 열광한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갈무리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 소식은 한국 청년 여성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1월14일 일본 출신의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씨가 출산 소식을 알렸다. 한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는 근황을 전한 그의 SNS 글에 일주일 만에 댓글 3800여 개가 달렸다. 대부분 응원하는 내용이었다. 비슷한 고민을 했다는 댓글 속 누군가는 그의 선택을 두고 ‘한국 여성이 속으로만 삼켰던 질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에선 정자를 기증받는 게 불가능해 일본으로 건너가 출산을 감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도 활기를 띠었다. 비혼 출산이라는 유명인의 결정에 많은 이들, 특히 여성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ins cla결혼을 생략한 사유리 씨의 이번 선택은 출산 혹은 가족을 구성하는 데 결혼이 단지 ‘옵션’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를 보며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의 최지은 작가는 아이를 낳기 위한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사람이 동시대에 존재하는 걸 보는 게 강렬한 경험인 것 같다. 익명의 누군가가 아니고 유명인인 데다가 스스로 원해서 했고 그 결과가 좋다고 실시간으로 말하고 있다.”</ins>

그의 말대로 여성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생애 과업으로 여겨졌던 결혼을 기피하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비혼과 1인 가구 위주의 미래’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현재 서울시 전체 가구의 3분의 1이 1인 가구다. 만 13세 이상 3만8000명을 대상으로 한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체의 51.2%에 그쳤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미혼 남녀 중에서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비율이 더 떨어진다. 남자는 40.8%, 여자는 22.4%만이 결혼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훨씬 적다.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3명꼴로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좀 더 적극적으로 결혼을 꺼리는 사람들로 좁히면 또 다른 게 보인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올해 6월 30대 미혼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의 30%, 남성의 18.8%가 결혼에 부정적이었다. 여성의 경우 결혼을 꺼리는 이유로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25.3%)’와 ‘가부장제, 양성 불평등 등의 문화 때문(24.7%)’이라는 응답이 비슷했다. 남성이 ‘현실적으로 결혼 조건을 맞추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되어서(51.1%)’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할 거라고 생각해서(29.8%)’의 순서인 것과 결이 좀 다르다. 특히 ‘성공하거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을 선택할 것이다’라는 질문에 여성의 67.4%가 ‘비혼’을 선택했고 남성은 76.8%가 ‘결혼’을 선택했다.

이처럼 결혼을 원하지 않는 여성이 늘고 있는데 이들에게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더욱더 비혼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홍재희씨는 비혼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던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외가 친척의 이혼과 재혼 전력 때문에 친정 이야기만 나오면 기를 못 펴던 어머니는 대역죄를 지은 사람처럼 당신 탓을 했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나 20대를 보낸 1990년대만 해도 결혼하지 않은 중년 여성이 흔치 않았다. ‘여자가 서른 넘어서 결혼하는 건 벼락 맞기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비혼 1세대다. 30대까지 느긋하던 친구들도 마흔 언저리를 앞두고 쫓기듯 결혼식을 올렸다. 가임기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일부 작용한 결과였다.

그가 쓴 〈비혼 1세대의 탄생〉에 따르면 비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데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 1990년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국가와 집단이 우선시되었던 1970~80년대와 달리 개인의 자유가 가장 앞 순위에 놓였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라는 집단이 아니라 나라는 개인에 대해 자각한 첫 세대’가 출현했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자 ‘일하는 아빠, 살림하는 엄마, 토끼 같은 자식들로 구성된 중산층이 몰락했다’. 여자 인생에서 당연하던 결혼과 가정도 위기를 맞았다. 개인의 자유와 남녀평등 사상에 익숙해진 여성들은 제도 바깥을 상상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독신’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2010년대 초부터는 ‘비혼’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상태(미혼)에 머무는 게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비혼)는 의미다.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부장제의 핵심인 결혼제도를 비판하고 비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여성들이 생겨났다. ‘비혼이 폭넓게 대중성을 획득하는 시대’로 진입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결혼제도를 대하는 요즘 20·30의 시각을 분석한 흥미로운 보고서가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20∼39세 6350명을 대상으로 생애 전망 인식조사를 벌였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 ‘저출산 대응정책 패러다임 전환 연구(Ⅰ):청년층의 젠더화된 생애 전망과 정책정합도 분석’에 따르면,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노동자로서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건’이다. 여성들은 파트너가 그 위험을 적극적으로 나눌 때(양육 참여, 가사 분담, 파트너의 출산휴가·육아휴직 등)에만 자녀를 갖는 게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남녀 모두 결혼이 아니라 일이 생의 중심이다. 과거 ‘남성의 노동 중심 생애과정과 여성의 가족 중심 생애과정’이 해체되고 ‘노동 중심 생애과정’이 성 구별 없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다.

조사를 진행한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즘 세대를 삼포 세대, 오포 세대 같은 포기 담론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남성과 여성은 같은 생애 전망을 가졌지만 사회적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 특히 결혼제도로 형성되는 불평등한 관계가 비혼과 저출산의 공통적인 원인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결혼을 안 해서 출산율도 낮아지니 결혼을 장려해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정책 방향이었다. 문제는 결혼이 아니라 이로 인해 진입하게 되는 불평등한 관계 자체였다.

생물학적 아버지가 정말 필요한가

사유리 씨의 선택을 지지하는 흐름과 김 연구위원이 만난 청년들의 목소리에는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흔히 성평등을 주장하며 혼자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 관계 맺는 걸 싫어한다고 여기기 쉬운데 실제로 내가 만난 청년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해 희구와 기대가 있었는데, 그게 기존의 결혼제도를 통해서는 아니다. 우리 사회는 그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사유리 씨가 결혼 말고 다른 형태의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게 가능하다는 걸 삶으로 보여주어 열광하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을 청년 세대의 생애 전망이 바뀌는 흐름 안에서 봐야 한다. 큰 사회변동이 일고 있다.”

낙태죄 등의 이슈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배경도 있다. 아이 낳을 권리와 아이 낳지 않을 권리는 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최근 임신 주수에 따라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여성계는 낙태죄의 전면 폐지를 요구했다.  SNS상에서 공유된 한 컷의 이미지가 있다. 간단한 도식이다. ‘왜 낙태가 죄야?→생명이 소중하니까!→그래서 혼자라도 키운다는데 왜 정자 기증 못 받아?→비혼 여성이 어케(어떻게) 애를 키워?→그래서 낙태한다는데→왜 낙태가 죄야?’ 질문은 계속해서 돌고 돈다.

ⓒ시사IN 이명익2020년 10월8일 청와대 앞에서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회원들이 낙태죄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국가는 출산을 장려하고 난임 부부를 지원해왔다. 그에 반해 ‘임신중지(낙태)’는 오랫동안 불법이었다. 모두 여성의 ‘인구 재생산’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 사회가 비혼 인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출산과 관련이 있다. 결혼을 늦게 하거나 기피해 출산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자 인구통계 안에서 비혼의 숫자가 유의미해졌다. 김소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여성에게 출산을 강조하면서도 정자은행을 통해 비혼이 출산하는 건 인정해주지 않는다. 여성의 신체를 줄곧 재생산의 관점에서 봐온 국가의 이중적 잣대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 가족’의 신화가 허물어지고 있다. 사유리 씨의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비혼 출산 그 자체보다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을 스스로 설계한 용기에 환호한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비혼 공동체 ‘에미프’의 구성원들이 쓴 책 〈비혼수업〉을 보면  “비혼은 말 그대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지, 결코 사회로부터 등을 돌리고 고독을 즐기며 혼자서 살아가는 인생을 택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은 “인간관계의 품앗이는 꼭 ‘결혼’의 형태로 묶이지 않은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사유리 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추가로 임신 과정을 공개했다. 임신 사실을 확인하기 직전엔, 임신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무섭다며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일각에선 아빠 없이 태어날 아이 생각은 안 하느냐며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12년 전 방송인 허수경씨가 같은 선택을 했을 때와 비슷한 패턴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꽤 많아졌다는 게 큰 차이다. 최지은 작가는 한편으로 사유리 씨가 한국인 여성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일본인이라 가능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한국 여성이었다면 가해질 억압이 지금보다 훨씬 가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혼한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 ‘배드파더스’가 만들어졌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애비규환〉은 재혼 가정의 딸이자 미혼모인 주인공이 아빠 노릇을 외면했던 친부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에는 처음부터 모유가 아니라 분유 수유를 선택하고 ‘누구 엄마’보다 자기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는 비혼모가 등장한다. 마침 우연히, 동시에 생물학적 아버지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그게 정말 여성과 아이에게 필요한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왜 결혼을 안 하느냐’는 질문도 곧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왜 결혼을 하는가.’  

임지영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헌법에 없는 ‘5심제’](1)대법원서 승소해도 끝나지 않는 재판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seirots@kyunghyang.com

입력 : 2020.12.08 06:00 수정 : 2020.12.08 09:30

 

실상

재판이 끝나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대법원에서 승소한 사건이 헌법재판소를 거쳐 대법원에서 다시 패소로 뒤집힌다. 이는 헌재가 어떤 법률이 특정 사건에 적용되면 위헌이라는 전에 없던 주문(主文)을 내면서 시작됐다.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가리는 대신 특정인에게는 어떤 법률을 적용하지 말라고 결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재판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한 대법원도 태도를 바꿨다. 헌재 결정이 더러 받아들일 만한 것도 있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비난받는 판결을 수습하는 방편인데, 이 과정에서 헌재 결정을 다시 손보기도 한다.

헌재와 대법원의 모호한 태도가 조금씩 알려지자 “법에서 나만 빼달라”는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운이 좋으면 헌재가 받아들일 것이고, 더 좋으면 대법원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을 속였다가 유죄를 받아 면허가 사라지게 된 의사는 “내가 저지른 시력교정술 관련 혐의는 사기죄에서 빼달라”고 헌법소원을 냈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을 받아 공직을 잃게 된 정치인은 “3심은 양형부당을 다루지 못하게 한 형사소송법에서 정치인은 예외”라고 헌법소송을 냈다. 최근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사징계법에서 검찰총장을 제외해달라는 헌법소원을 냈다.

이러한 상황은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과거사 피해자에게 적용해선 안 된다고 2018년 헌재가 결정하고, 이듬해 대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판사들은 “이제는 헌재가 법원의 판단을 일일이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한다는 헌법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법원도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특별한 헌재 결정을 수용하면서 아무런 설명을 안 했다. 대법원이 재판에 대한 간섭이라고 주장하면서 언제든지 무시할 수 있다. 입맛에 따라 헌재 결정을 고르겠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이 3심제인지, 4심제인지 아니면 5심제인지 아무도 모르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헌법에 합치되는 법률이라도
적용 범위 좁혀 ‘위헌’ 주장 늘어

요즘 헌법재판소에 지금까지 없던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어떤 법률이 헌법에 합치된다 해도 ‘내 사건에 적용되면 그때는 위헌’이란 소송이다. 특정 법률이 적용되는 사건들 가운데 비슷한 것들을 추려, 이런 종류에 적용된다면 법률의 그 부분은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정치인 A씨도 최근 이런 헌법소송을 냈다. 먼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을 받으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피선거권이 5년 동안 없어진다. 이미 공직에 있는 사람은 옷을 벗어야 한다. A씨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돼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정치인으로서 위기였다. 3심에서 유무죄가 바뀌지 않는다면 양형이라도 깎아야 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은 3심에 가는 이유로 양형이 너무 높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대법원은 법률심이라 양형부당 주장은 사형·무기징역 같은 특별한 경우만 인정한다. 그러자 3심 가는 길을 까다롭게 한 형사소송법 제383조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위헌이 나올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그래서 형소법 제383조가 자신의 혐의인 정치자금법 제45조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 받은 이에게 적용되면 안 된다고 했다. 이를 법률문장으로 다듬어 “형사소송법 제383조가 정치자금법 제45조 위반의 죄를 범한 자로서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의 선고를 받은 경우에까지 적용되는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했다.

이는 아주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동안은 법률 조항 전부 혹은 특정 어절이나 단어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똑떨어지는 위헌 결정이어야 그 결정문을 받아든 법원이 승소 판결, 무죄 판결, 재심 판결을 해줬다. 이렇게 조항이 통째로 사라진 사례로 간통죄 위헌 결정이 있다. 2015년 헌재는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그와 상간한 자도 같다’는 형법 제241조 제1항을 마침표까지 모조리 없앴다. 일부 문장을 무효로 하기도 한다. 2009년 혼인빙자간음죄 위헌 결정이 그렇다. 헌재의 주문은 “형법 제304조 중 ‘혼인을 빙자하여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이다. 그래서 전체 조항인 “혼인을 빙자하거나 기타 위계로써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를 기망하여 간음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가운데 ‘혼인을 빙자하거나’만 삭제됐다. 남아 있던 ‘위계 간음’은 2012년 국회가 없앴다.

정치인 A씨와 같이 3심으로 가는 길을 정치인에게만 열어달라는 주장도 가능한 것일까. 사업에 실패해 돈을 못 갚아 징역 9년을 받아도 양형이 높다는 이유로는 3심에 가지 못하다. 허위진단서를 써줬다가 금고형을 받아 면허가 없어지게 생긴 의사도 벌금형으로 깎아달라고 3심에서 말할 기회가 없다. 그런데 정치인은 벌금 100만원 이상 받으면 출마를 못하니 3심까지 가게 해주지 않으면 위헌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인도 사정이 있겠지만, 사업이 망한 사장도 딱하고, 피치 못할 부탁을 들어준 의사도 억울하기는 매한가지다. 이런저런 사정 다 봐주면 도대체 법은 어떻게 되는 걸까. 정치인 A씨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보는 사람들(주로 판사들이다)은 헌법재판소법 제45조를 들이민다. “헌법재판소는 제청된 법률 또는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만을 결정한다.” 법률 전부를 없애든가 조항을 없애라고 했지, 누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걸 나눌 권한을 줬냐는 것이다. 헌재 재판관이 이제 국회의원 행세까지 하느냐고 비난한다.

헌재, 일단 ‘각하’로 대응하지만
행간 추출해 위헌 결정하는 등
일관된 입장 없이 건마다 달라
대법, 태도 모호해 논란 부추겨

그렇지만 꼭 그렇지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을 나눠 없애기도 하는데 대법원도 인정한 바가 있다. 과거 법원은 명예훼손을 저지른 사람에게 곧잘 사과광고를 명령했다. 근거는 민법 제764조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하여는 법원은 피해자의 청구에 의하여 손해배상에 갈음하거나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할 수 있다”이다. 그런데 헌재가 1991년 이 조항에서 사죄광고라는 형태를 추출해 위헌이라고 했다. “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사죄광고를 포함시키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이다. 2014년에도 헌재가 야간 옥외집회와 시위 처벌 조항에서 시간을 추출해 위헌을 선고했다. “누구든지 일출시간 전, 일몰시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집시법 제10조에 대해, 일몰시간 후부터 같은 날 24시까지 부분이 위헌이라고 했다. 조항에 써 있지 않은 24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무엇보다 두 결정 모두 대법원이 받아들였다.

문제는 두 결정이 매우 드문 예외라는 점이다. 보이지 않는 문장을 추출해 내리는 위헌 결정 대부분을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제주특별법에 따라 환경영향을 평가하는 심의위원회가 있다. 이곳 위촉위원 B씨가 업체에서 현금을 받았다며 검찰이 뇌물죄로 기소했다. 그런데 뇌물죄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공무원뿐이다. 사인(私人)은 돈을 받아도 다른 죄로 처벌된다. 형법은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제129조 제1항에서 정했다. 해당하는 사람은 국가·지방 공무원이다. 아니면 다른 법률에서 ‘형법 제129조에 해당하는 공무원으로 본다’고 의제(擬制)해야 한다. 제주특별법에는 의제 조항이 없었다. 그런데도 뇌물죄 ‘공무원’에 제주특별법이 정한 위촉위원이 포함됐다. 대법원이 그렇게 봤기 때문이다. 이에 2012년 헌재는 형법 제129조 제1항 ‘공무원’에서 제주특별법 위촉위원 부분을 갈라내 위헌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사이 징역형이 확정된 B씨의 재심청구도 기각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무슨 일인지 지난해부터 정치인 A씨와 같이 ‘내 사건에 적용되면 그때는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위헌소송이 크게 늘고 있다. 헌재 소식에 밝은 법조인은 “법률 적용 범위를 (나에게 적용되는 부분으로) 구체적으로 좁혀 위헌이라 주장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의사 C씨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시력교정술 진료를 하고도 보험적용 진료를 했다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속여 돈을 타냈다. 2018년 사기죄로 유죄가 났다. 그러다 지난해 항소심에서 갑자기 사기죄가 ‘내 사건에 적용되면 그때는 위헌’이라고 했다. 사기죄를 정한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다. C씨는 “ ‘기망’에 ‘시력교정술 전후의 진료행위 후 건강보험공단에 이에 대한 요양급여를 청구하는 것’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송을 냈다.

밀려드는 새로운 소송에 헌재는 각하로 대응하고 있다. 법률을 해석하는 법원으로 가야지 법률을 심판하는 헌재로 오면 어떡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헌재가 받아준 사건과 각하하는 사례는 얼마나 다를까. D씨는 발광다이오드(LED) 제품 제조업체와 영업위탁 계약을 맺고 일한다. 관공서에서 납품계약을 따내면 LED 제조사가 20~30% 판매수수료를 준다. 2018년 D씨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019년 3심에서 자기 사례에 적용되는 변호사법 부분은 위헌이라고 했다. 제111조 제1항은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건 또는 사무에 관하여 청탁 또는 알선을 (후략)’이라고 정하고 있는데,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무’에서 공무원 본연의 업무가 아닌 LED 구입 같은 사적거래 부분은 빼야 한다고 했다. 헌재는 “(이 사건은) 조항 자체의 고유한 위헌 여부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단순한 포섭·적용을 다투는 것”이라며 각하했다. 그러면서도 “적용 부분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청구는 원칙적으로 적법하다”고 했다. 이러니 헌재의 입장을 여간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헌재 소식에 밝은 한 법조인은 “최근 법률이 적용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해 위헌법률 심판을 청구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소송이 잇따르는 원인은 2018년 헌재가 대법원의 부당한 과거사 판결을 정리한 결정에 있다. 취재에 응한 법조인은 “언론과 여론이 일제히 환영한 결정이지만 사실은 부정의를 수습하려 무리한 면이 있다”면서 “언제 어떻게 재판이 끝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12080600035&code=940301#csidx75c48769ec99731a40c9527a3ad46a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로나 팬데믹 1년, 인포데믹 창궐 1년...정보 전염병은 계속된다.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⑦

우리는 지난 1년간 코로나19에 얼마나 잘 대처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코로나가 일상이 된 현실을 어떻게 현명하게 타개해나갈지를 성찰해야 한다. 정치가 과학을 무시하거나 과학 위에 군림할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코로나19에 잘 대처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나라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시대에 나타난 인간의 군상들은 어떠했는지 톺아보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 불안에 빠진 사람들을 겨냥해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제품과 상품을 파는 장사꾼들과 이들의 홍보꾼으로 전락한 언론의 부끄러운 모습도 다시금 되짚어야 한다. 방역 우선이란 무기를 앞세워 인권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훼손한 일은 없었는지 살피는 것은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성찰이다.

 

코로나가 바꾼 세상과 앞으로 바꿀 세상의 모습은 어떠할 지에 대한 통찰과 분석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 그리고 각자도생과 각국도생이 아니라 국제협력을 바탕으로 코로나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는 한 코로나가 지구를 떠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하나씩 냉철하고 과학적으로 톺아보고 이를 토대로 코로나 일상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개인과 국가, 세계가 터득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코로나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① 오늘은 '코로나 전쟁' 발발 1주기...종군기자가 돌아본 '인간과 인간의 전쟁'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② 코로나 2차 가을·겨울 대유행, 스페인 독감 유행의 재현인가?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③ 혼돈 세상과 새로운 표준, 코로나가 나눌 4가지의 계급 

[코로나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④ 방역과 경제 균형? 방역 낙제하면 경제는 추락한다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⑤ 무엇이 코로나 방역 성공과 실패 국가를 갈랐나? 

[코로나 1년, 성찰과 희망 찾기] ⑥ 백신과 치료제는 정말 코로나 일상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정보전염병이고 부르는 인포데믹은 이제 감염병, 특히 팬데믹과 실과 바늘처럼 함께하는 동반자가 됐다. 달갑지 않은 동반자다. 동반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 동반자라고 하니 우리는 감염병뿐만 아니라 정보전염병이라는 또 하나의 적과 싸워야 하는 짐을 안고 코로나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2003년 중국 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즉 사스 유행 당시 새로운 현상으로 일컬어졌던 인포데믹(infodemic)은 ‘정보(inform)’와 ‘전염병(또는 유행병, epidemic)’의 합성어이다. 일반적으로 질병과 같은 무언가에 대한 정확하거나 부정확한 정보가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과 소문, 두려움이 섞인 채 사회에 퍼지면서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필수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정보전염병은 코로나19 대유행을 맞아 물 만난 고기처럼 세계 곳곳으로 펴져나갔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코로나 정보전염병과 씨름했다. 코로나 전투가 벌어진 세계 곳곳에서 정보전염병 전투가 벌어졌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았다. 이란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죽인다며 메탄올을 마구 마셨다가 실명하거나 숨진 사람들이 1천 명 가까이 됐다. 정보전염병이 감염병처럼 사람을 직접 죽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전염병, 공포와 편견을 기르는 배양기가 되다.


 

인도와 브라질 등에서는 코로나 입원 환자의 장기가 사라졌다는 가짜뉴스가 퍼져 의료진에 대한 불신까지 키웠다. 가짜뉴스는 감염병에 대한 공포는 물론 의료진, 아시아인, 종교집단, 소수자, 제약회사, 특정 국가나 집단을 향한 사회 편견을 가시화하는 비방의 목소리로 키우는 요소로 작용했다.(‘팬데믹만큼 무서운 인포데믹은 어떻게 편견·혐오를 조장했나.’ <동아사이언스> 2020.12.2.)


 

우리나라에서도 소금물이 바이러스를 죽인다며 교회 쪽이 예배하러 온 신도들의 입안에 분무기로 뿌렸다가 외려 감염이 크게 확산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또 한 교회에서는 목사가 하나님을 믿으면 코로나에 걸리지 않는다고 설교했다. 신도들이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를 소홀히 해 많은 신도들과 이들과 접촉한 시민들이 무더기로 코로나에 걸려 세계적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감염병 역사상 코로나19 만큼 가짜뉴스와 정보전염병, 허위 정보가 판을 친 사례는 보기 어렵다. 특히 각종 소셜미디어와 개인미디어가 폭발적으로 늘어 사회 구성원들이 이를 활용하고 또 그 영향력이 커지면서 정보전염병은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뜨겁게 논란이 되었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코로나19 감염병의 기원과 관련한 주장 또는 음모론이 대표적 정보전염병이다. 치명적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퍼진 것은 △생명공학으로 만든 인공 바이러스 △중국 생물무기 설 △미국 생물무기 설 △유태인 생화학무기 기원설 △반무슬림 설 △인구 조절 설 △5기가 휴대폰 네트워크 설 △소아마비 백신 내 코로나바이러스 함유 설 △중국 과학자의 캐나다연구소 절도 설 등이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들을 모두 거짓으로 보고 있다.


 

독감 백신 접종 사망 보도, 녹차·비타민C·김치의 코로나 예방 활개 쳐


 

정보전염병 가운데는 한때 반짝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있는가하면 시차를 두고 다시 등장해 혹세무민하는 것도 있다. 마치 감염병이 처음 등장했다가 자취를 감춘 뒤 일정 시기가 지나 재유행하는 감염병, 즉 재만연 감염병(reemerging infectious disease)의 행태와 꼭 닮았다. 최근 지인과의 단체대화방에서 새로운 것이라며 일정 시간 숨을 참을 수 있으면 코로나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이런 것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크게 문제가 된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보도도 넓은 의미에서 정보전염병으로 볼 수 있다. 독감백신 접종 후 하루·이틀 뒤 또는 며칠 뒤에 숨진 사례는 두 이벤트 간 선후 관계 외에는 별다른 인과관계가 엿보이는 요소가 없다. 오비이락(烏飛梨落) 격 현상임에도 이를 마치 인과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상당한 것처럼 우리 언론이 혹세무민하는 보도를 한 것이다.


 

이 사안은 단지 유튜브나 소셜미디어 등에서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과 일간지 등 정통 미디어에서 확대 재생산해 보도한 것이어서 우리 사회의 정보전염병 차단 기능이 매우 취약함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그 끝이 언제가 될지 모를 코로나 전쟁에서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정보전염병은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판단의 근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신고) 보도였다.


 

지난 1년간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허위·가짜뉴스가 범람했다. 그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신뢰도가 높다는 기성 언론에서도 △비타민C, 홍삼 등이 면역력을 높여 코로나 감염 예방 효과가 있고 △녹차에 포함된 특정 성분과 김치가 코로나 예방에 도움이 되며 △구강 청결제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죽여 코로나 예방 효과가 있다는 등의 보도를 해왔다. 증명되지 않은 비과학적 근거나 실제 코로나 예방에 사용하기 어려운 내용을 토대로 한 정보전염병 사례들이다.


 

만의 하나 이런 엉터리 내지 별로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는 정보들을 ‘복음’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 등 방역수칙을 소홀히 할 수 있고 운 나쁘게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실은 감염자라면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퍼트리게 된다.


 

지난 1년간 팩트 체크 전문매체를 비롯해 많은 방송·신문사가 팩트 체크 기능을 강화해 가짜뉴스 또는 정보전염병이 문제가 될 때마다 사안 별로 분석해 대중에게 알려왔다. 이른 순기능은 대중이 올바른 정보를 얻도록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종종 정보전염병 유행 초기가 아닌 이미 퍼질 대로 퍼진 뒤 팩트 체크를 하는 경우가 있어 그 폐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인 경우도 있었다. 드론 방역, 야외 길거리 방역과 건물 외벽 소독 등과 실내 공기 소독 등이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정보전염병 차단, 질병청 등 정부가 직접 나서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질병관리청 등 정부가 직접 나서 문제가 될 만한 요소를 지닌 정보전염병이나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사소한 일로 치부하거나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 말고 국민과 제때 효과적인 소통을 해야 한다. 하루 확진자 발생 소식을 경마중계 하듯이 매일 브리핑하는 것보다 때론 이런 정보전염병 대응이 훨씬 더 중요할 경우가 있다.

 

그리하여 앞으로는 코로나 확산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코로나 정보전염병 확산을 막는 것도 정부의 주요 임무가 되어야 한다. 정보전염병이 될 수 있는 정보나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조기에 이를 적발해 이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효과적 메시지를 만들어 정보전염병 유포자들보다 한발 앞서 퍼트려야 우리 사회가 정보전염병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1년간 코로나와 관련해 어떤 가짜뉴스와 정보전염병이 있었는지를 톺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들이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또 정부와 언론의 대처는 어떠했는지 등을 백서든, 연구분석이든 어떤 행태로라도 해야 한다.

 

필자 안종주는 최근 코로나 사태를 분석한 책으로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낸 저자입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120717183738847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