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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사 앞, 눈물 쏟은 5.18유공자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9/02/15 10:09
  • 수정일
    2019/02/15 10:0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오마이포토] 자유한국당사 앞, 눈물 쏟은 5.18유공자들

 

19.02.14 20:14l최종 업데이트 19.02.14 20:28l

 

자유한국당사앞에서 눈물 쏟은 5.18유공자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열린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에서 5.18민주화운동유공자회 최형호 서울시지부장(오른쪽)과 회원이 눈물을 쏟고 있다.
ⓒ 권우성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 앞에서 열린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에서 5.18민주화운동유공자회 최형호 서울시지부장(오른쪽)과 회원이 눈물을 쏟고 있다.

촛불집회 시작부터 눈물을 흘리던 최형호 지부장은 자유발언에서 "멀쩡한 사람을 찌르고, 사람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장면을 우리는 봤습니다. 살아 있지만 우리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39년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왔습니다. 이제 자유한국당 없어질 때까지 싸웁시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자유한국당사앞에서 눈물 쏟은 5.18유공자들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열린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에서 5.18민주화운동유공자회 최형호 서울시지부장(오른쪽)과 회원이 눈물을 쏟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유공자회 최형호 서울시지부장(오른쪽)과 회원이 눈물을 쏟고 있다.ⓒ 권우성
자유한국당사앞에서 눈물 쏟은 5.18유공자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열린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에서 5.18민주화운동유공자회 회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을 흘리며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권우성
자유한국당사앞에서 눈물 쏟은 5.18유공자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열린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에서 5.18민주화운동유공자회 회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자유한국당사앞에서 눈물 쏟은 5.18유공자 ⓒ 권우성
자유한국당 해체 외치는 5.18유공자 5.18민주화운동유공자회 최형호 서울시지부장(오른쪽)이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열린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유한국당 해체 외치는 5.18유공자 ⓒ 권우성
자유한국당사앞, 5.18희생자 추모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열린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에서 5.18유공자회 회원과 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5.18유공자회 회원과 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권우성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가 5.18유공자회 회원과 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 ⓒ 권우성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가 5.18유공자회 회원과 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민중당원들이 히틀러로 묘사한 김진태, 이종명, 김순혜 의원 사진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민중당원들이 히틀러로 묘사한 김진태, 이종명, 김순혜 의원 사진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권우성
'5.18망언' 향해 날리는 펀치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사앞에서  '5.18망언 비호 자유한국당 해체 촉구 촛불집회'가 5.18유공자회 회원과 진보연대,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한 참가자가 김진태 의원과 극우논객 지만원씨 사진에 펀치를 날리고 있다.
한 참가자가 김진태 의원과 극우논객 지만원씨 사진에 펀치를 날리고 있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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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저모> 사진으로 본 금강산 새해맞이 공동행사

“삼천리에 펼쳐질 통일해돋이 마중가자”<이모저모> 사진으로 본 금강산 새해맞이 공동행사
금강산=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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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4  16: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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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표단과 ‘조청 애국호’

   
▲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이 12일 오후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열렸다. 가장 멀리서 온 해외측 대표들이 앞줄에 자리잡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해외대표단이 평양에서 타고온 버스는 ‘조청애국호’다. 재일총련 계열 청년단체인 조청에서 조국(북한)에 보낸 버스를 해외측 대표단에게 배정한 것이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해외에서 금강산이 가장 먼데 있습니다. 오는 데도 3일간 걸렸고, 돌아가는 것도 3일간 걸립니다.” 해외대표들의 남북해외 공동행사 참가는 남다른 어려움이 따른다. 일본 대표단의 경우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을 거쳐 북측 대표단과 함께 금강산으로 온 것.

이번 새해맞이 연대모임에는 손형근 6.15해외측위원장을 비롯해 일본 8명, 중국 6명, 호주 1명 등 모두 15명이 참석했다. 이들이 평양에서 타고온 버스에는 ‘조청애국호’라고 써있다. 재일총련 계열 청년단체인 조청에서 조국(북한)에 보낸 버스를 해외측 대표단에게 배정한 것이다.

종교의 벽을 넘은 신계사 합장과 교황 방북 추진

   
▲ 7대종단 수장들이 신계사 대웅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13일 금강산 신계사를 찾은 7대종단 수장들은 한마음으로 대웅전에서 합장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새해맞이 연대모임에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인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를 비롯해 이흥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원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김영근 성균관 관장, 이정희 천도교 교령, 박우균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 7대 종단 수장이 나란히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남측 대표단 공동단장을 맡은 김희중 대주교는 만찬연회 연설에 나서 “우리가 걷고자 하는 길은, 과거 선조들이 원했고, 지금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며, 또한 우리의 후세들의 활로를 열어줄 길”이라며 “평화를 위한 2019년 새해맞이 남북공동행사가 우리 땅의 자주적인 평화를 위한 큰 분기점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7대 종단 수장은 신계사 대웅전에서 나란히 두손을 모아 민족의 평화통일을 기원했고, 기념사진도 남겼다. 남과 북, 종교 간의 벽을 넘어서는 장면을 연출한 것.

   
▲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왼쪽)가 만찬장에서 강지영 조선가톨릭협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교황 방북이 논의됐을지 관심이 쏠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편, 김희중 대주교는 만찬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인 강지영 조선가톨릭협회 위원장과 이야기를 주고받아 교황의 북한 방문과 관련한 이야기가 오갔을지 관심을 끌기도 했다.

김희중 대주교는 이튿날 해금강 해맞이 중 기자의 질문에 “올해 교황께서 11월에 일본 방문 일정이 예정돼 있다”며 “북한도 방문하셔서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과 함께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과 민중당 대표 

   
▲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왼족)과 이상규 민중당 대표(가운데)가 금강산호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위해 나란히 줄을 섰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번 새해맞이 연대모임에는 민화협 소속으로 여야 정치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설훈, 노웅래, 임종성, 심기준 의원과 평화민주당 최경환 의원이 참석했고, 특히 자유한국당 소속 황영철 의원이 주목을 받았다. 민중당 이상규 대표는 원내는 아니지만 진보정당 대표로서는 유일하게 참석했다.

황영철 의원은 만찬 건배사에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황영철”이라고 인사해 박수를 받았다. “보수 정치인으로서 10년만에 북한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그는 “새해에는 분단의 아픔이 눈녹듯 사라지고 평화통일의 꽃이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방북길에 동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 새해맞이 연대모임 본 행사를 마치고 김영대 조선사회당 위원장(오른쪽)과 만난 이상규 민중당 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상규 민중당 대표는 정당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영대 민화협 회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민중당 상임대표가 된 이상규”라고 인사하고 “축하서신 보내줘서 반갑게 잘 받았다”고 사례했다.

‘동지’를 두고온 통일원로들

   
▲ 금강산을 찾은 통일원로들. 오른쪽부터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장남수 유가협 회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금강산을 찾은 남측 대표단 251명의 감회는 각각 달랐겠지만 평생을 민주.통일운동에 헌신해온 통일원로들의 심경도 남달랐을 것이다.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권오헌 민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장남수 유가협 회장은 금강산호텔 로비에 걸린 대형 천지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의 ‘동지’인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과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김중기 민자통 의장은 정부의 방북 불허로 함께하지 못했다. 이규재 의장은 12일 새벽 출발 장소인 경복궁 동편주차장으로 배웅나와 통일원로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아쉬움을 달했다.

   
▲ 잔설이 덮힌 개골산(겨울 금강산)의 풍치 속에 새해맞이 공동행사가 진행됐다. 온정각 전경.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권오헌 명예회장은 “10년 만의 뜻깊은 공동행사에 세 분이 배제돼 안타깝고 서운했다. 북측 관계자들도 많이 안부를 물어주었다”며 “촛불민심으로 등장한 현 정부에서도 여전히 반북대결의식에 사로잡힌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데, 더 이상 이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명맥 지켜온 6.15공동위원장회의와 보수 품은 민화협 상봉모임

   
▲ 12일 오후 금강산 수정봉식당에서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보수정부 시기에도 중국에서 명맥을 이어온 6.15민족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회의가 12일 분야별 모임의 일환으로 금강산 온정각 수정봉식당에서 열렸다. 보수정부 시기에는 남측 당국이 북한주민접촉을 수리하지 않아 남측 대표단은 매번 백만원 이상의 벌금을 물어가며 이 회의를 지속해 왔다.

남북해외 참석자들 소개를 마친 뒤 양철식 6.15북측위 부위원장은 “오늘 회의에서는 의제를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6.15민족공동위원회의 활동 방향에 대하여’ 이렇게 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곧바로 비공개 회의에 돌입했다.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정부의 승인하에 공동위원장회의가 열렸다”며 “계기별 공동행사는 이후 실무협의를 통해 구체화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남북해외 공동단장들이 새해맞이 연대모임 본행사를 앞두고 주석단 배치를 익히기 위해 도열해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에 비해 남북 민화협 상봉모임은 공개리에 진행됐다. 김영대 북측 민화협(민족화해협의회) 회장은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과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참석에 대해 각별히 “어려운 결심, 옳은 용단을 했다”고 배려했다.

해금강 해돋이와 북녘시인의 절규

   
▲ 해금강 일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해금강 일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새해맞이 행사답게 13일 새벽, 남북해외 대표단은 해금강에서 동해 일출을 맞이했다. 2008년 새해맞이 공동행사 이후 11년만이다. 날씨도 비교적 좋아 모두들 “하늘에 우리의 뜻이 전달됐다”고 기뻐했다.

남측 김성란 민주노총 대협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해맞이 행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동쪽 먼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니 이 땅의 새 역사가 시작되고 환한 붉은 해의 기운이 우리 민족의 기상을 용솟음치게 한다”며 “100년 전 시작된 3·1운동은 이제 종전선언과 평화정착, 남북통일로 귀결돼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했다.

   
▲ 북측 김송림 시인이 격정적으로 자작시를 읇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북측위원회 문예분과 위원인 김송림 시인은 “금강산 일만이천봉우리들 한눈에 굽어보며 아득히 물결쳐오는 천리수해를 날아넘어 해가 솟는다”며 “8천만 겨레여, 민족대단결의 억센 힘으로 평화와 번영의 꿈 어서 이루고, 우리 금강산에서 다시 만나자, 삼천리에 펼쳐질 통일해돋이 마중가자”고 특유의 격정적 톤으로 자작시를 낭송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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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노'는 이슬이다

최인기의 빈민스토리(1)
  •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 승인 2019.02.14 09:42
  • 댓글 0

연재를 시작하며

노점상 단체가 만들어지고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노점상 문제를 이해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는 지적이 있었다. 다양한 사건을 중심으로 소개됐지만, 총체적으로 정리된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억압받는 자들에 의해 발전해 왔다면 도시빈민의 저항은 또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고 이어져야 한다. 집 앞에 우뚝 버티고 서있는 나무처럼 익숙하기에 어찌 보면 간과했던 노점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노점상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더불어 빈민 운동사에서 이들의 활동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다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봤으면 한다.[필자 최인기]

 

▲ 2016년 12월 24일 광화문 촛불집회와 노점상[사진 : 최인기 제공]

1. 노점상 '노'는 이슬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게 노점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서서히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세상에 모든 것이 변하듯 도시도 항상 변한다.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는 것이 도시다. 그 변화의 속도에 맞춰 거리의 노점상들도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고 또 사라지기 때문이다.

“노점상의 어원을 찾아보니 ‘길가의 한데에 물건을 벌여 놓고 하는 장사. 또는 그런 장수’라 한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노점상의 첫 번째 글자 길 ‘노(路)’로 알고 있는데, 이슬 ‘노(露)’자다 그러니까 노점상(露店商)이란 이슬을 맞으며 고달프게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 이야기는 오래전 철거민과 노점상 단체에서 빈민운동을 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김흥겸 선배의 이야기다. 그는 그때 위암에 시달리고 있었다. 술자리에서 술은 먹지 않고, 풀어냈던 이야기다. 거리에서 이슬을 맞고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이슬 노(露)자를 써서 노숙인(露宿人)이라 부른다. 종합해보자면 ‘이슬’은 가난한 사람들의 공통된 상징이 된다.

2007년 11월 11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벌어진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남편은 매일 매일 건설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제가 파는 붕어빵 마차에 들렸습니다. 어제는 덩치 큰 여러 명의 용역반이 저를 둘러싸고 마차를 부수자 길가에 반죽이며 팔다 남은 붕어빵이 흩어졌어요. 이 모습을 남편이 목격했습니다. 저와 남편이 바닥에 뒹굴며 단속에 저항했지만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구경만 하더군요. 그리고 남편은 평소와는 다르게 밤늦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보 미안해 당신에게 정말 미안하다.’, ‘ 세상 살기 힘들다.’ ‘장사를 못하니 나라도 나가 막노동이라도 해야지…….’라며 유서를 써놓고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의 붕어빵 마차가 단속당하는 것을 지켜본 고양시의 노점상 이근재 씨는 공원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싸늘한 시신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왔던 것이다. 단속이라는 위협적인 상황에 놓인 노점상들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내몰린 심정일 것이다. 이미 이전에도 그동안 수차례 노점단속으로 시달려 온 상태였다. 당시 고양시는 노점단속 비용으로 31억이라는 혈세를 쏟아붓고 있었다. 한 사람의 나약한 노점상의 비관적인 자살이라고만 바라볼 문제인가? 누가 한 노점상의 가정을 이 지경으로 몰고 갔을까?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우리의 문제설정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적 시각에서 노점상을 이해하고 이들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들이 서로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봐야 한다. 개별적 시선을 넘어 붕어빵 노점상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가난을 더욱 부채질하는 무차별한 노점단속 때문은 아닌지, 왜 노점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이를 먼저 보려 노력해야 한다. 어느 사업장이나 노동자들이 있듯이 한국사회속에서 노점상이란 과연 어떤 존재였는지 역사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2. 노점상의 형성과 역사

노점상의 형성 시기를 정확히 가늠하기는 불가능하다. 아마도 오랜 예전부터 마을 장터를 중심으로 천민들이라 불리는 가난한 이들의 경제활동의 근거지가 되지 않았을까? 지방 나름의 특정 상품이 재배되고, 그 지방의 물품들이 자유롭게 거리로 나와 마을 장터가 형성되었다. 나아가 같은 품목이라 할지라도 지방마다 재배 되고 만들어지는 한정된 물품은 가격이나 가치가 천차만별이었을 것이기에 더 큰 장터가 형성되고 점차 상업 활동도 활발해졌을 것이다.

▲ 조선후기 노점상[사진출처 : 서문당]

조선 초기 각 지방의 특산물, 농어물, 공산품들을 국가에 상납했지만, 중기 이후 세금을 쌀로 내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때문에 지방의 특산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국가가 직접 혹은 지방관청을 이용해 물건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마을 장터에서 지방 특산물이나 농작물, 공산품들이 유통되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몇몇 도시의 발달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장터가 발전된다. 이제는 생존을 위한 유통 형태에서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변화된 시장은 자신의 신체 노동으로 전국을 활보하며 유통을 담당했던 보부상과 난전 상인 즉 지금의 노점상, 그리고 본격적으로 상업을 본분으로 삼고 특정 장터에서 장을 펼치던 상인으로 발전한다.

현재의 ‘떴다방’을 연상시키는 보부상의 역사적 문헌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물교환 형태의 소규모상인으로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고려 후반 조선 초부터 보부상이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보부상은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총칭하는 말이다. 
‘봇짐장수'라고도 불리는 보상은 기술적으로 발달한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이 더 나가는 잡화를 취급하여 보자기에 싸 들고 다녔다. ‘등짐장수’라 불리는 부상은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나무, 그릇, 토기 등과 같은 생활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위주로 판매를 하였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규율과 체계를 갖춘 ‘상단’이라는 조직이 제각기 존재했다.1) 주1)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난전’이란 허가받지 않은 상태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현재의 ‘노점상’을 뜻한다. 이들을 비하하는 말로 뒤섞여 떠들어 댄다는 말의 ‘난장판’이라는 말은 난전에서 유래한다. 불법적인 거래로 상업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난전이 형성되는 장터는 상권이 만들어 지면서 공식적인 상인들과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론이 모이고 흩어지는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지금의 노점상처럼 난전에 대한 단속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조선후기 ‘금난전권(禁亂廛權)’은 말 그대로 난전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난전’을 적발할 경우 폐쇄하고 판매하던 물건도 압수했다. 일부 공식적인 시전상인은 난전 단속을 위해 ‘자경단’과 같은 자체 조직을 거느리기도 했다. 정부 역시 직접 단속에 나서기도 했는데 적발한 물품은 벌금 명목으로 몰수했고, 물품이 벌금보다 적을 경우 난전 상인을 곤장형으로 다스리기도 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황평우에 따르면

▲ 조선후기 난전으로 불리던 노점상 [사진출처 : 서문당]

“1700년대(숙종 연간) 전쟁을 겪고 기후변화까지 겹쳐 피폐한 농민들이 한성으로 몰리자 남대문 근처에 가난한 사람들의 숙소가 형성되었다. 이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자신들의 물건을 사고파는 장이 형성되었다. 도시 상업인구가 늘어난 것이다. 이때 본격적으로 가가(假家) 즉 임시로 지은 집인 ‘난전’이 생겨나며 상거래 행위가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결국 민중들이 스스로 만든 남대문 칠패 시장, 동대문 바깥에 이현시장 등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한다.”고 전한다.

특히 노점상과 보부상인은 소작농이나, 저소득 상인, 가난한 천민들의 생존에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들 스스로 거리로 나와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지만, 소작농과 겸업 하면서 물건의 유통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농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삼고 중시한 농본주의 사회였기에 상업을 억제했다. 백성들이 이문만 쫓고 농업은 등한시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사농공상(士農工商) 중 가장 천시받는 신분에 지나지 않았다. 상업에 대한 국가 통제가 커서 수도인 한성에서는 허가받은 상인만이 물건을 팔 수 있었다. 지정한 곳 외에 장을 개설하고 상거래 하는 것을 금지했다. 조선 후기 정부로부터 특권이 부여된 6개의 큰 시전이 종로 1가와 2가에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취급하는 물건 종류를 다른 상인이 거래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한, 금난전권을 부여했다. 즉 육의전은 특권적 어용 상인의 단체들이었다.2) 주2) 네이버 [지식백과] 육의전 [六矣廛] (경제학사전, 2011. 3. 9. 박은태)

그렇다면 조선은 왜 이토록 막강한 상업적 특권을 시전상인에게 부여했던 것일까. 
조선 시대 시전상인은 물건을 백성에게 판매하는 한편 일정한 형태의 국역을 부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거래세에 해당하는 상세와 시전상점을 임차한 대가로 세금을 국가에 내야 했다. 또한 왕실이나 관아에서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의무도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정부에서 행하는 부역에도 참여해야 했는데 국가 차원의 행사, 공공시설의 조성 및 개·보수, 환경미화 등의 사업에 시전상인이 동원됐다. 즉, 정부는 재정적·행정적 이유에서 시전상인의 역할이 필요했다.3) 주3) 한국경제 [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시전상인의 독점권을 철폐한 신해통공(辛亥通共) (2016. 9. 2. 정원식)

이렇게 본격적으로 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이 생겨나고 국가는 그들에게 일부 품목에 대해 ‘독점권’을 인정하면서 지방에 국한되어 있던 상품들이 교통의 발달로 폭넓게 타지방으로 활발히 유통되거나 사재기를 통해 더 큰 이익을 보게 된다. 금속화폐가 전국적으로 유통되면서 상업 발전을 더더욱 촉진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선 후기 접어들어 양반과 상민의 계급제도 붕괴를 가속하고 자본의 성장에 원인이 된다.

필자 최인기는 ‘민주노점상전국연합과 전국철거민연합’으로 결성된 ‘빈민해방실천연대에서 수석부위원장’ 을 겸임하고 있다.

현장을 지키며 카메라를 드는 이유는 ‘더불어 사는 사회,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사진 책《청계천 사람들 : 리슨투더시티》외 도시빈민 관련된《가난의 시대 : 동녘 》와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 동녘 》

《그곳에 사람이 있다 : 나름북스 》공저로《누리하제 : 노나메기》등의 책을 썼다.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수석부위원장  webmaster@minplu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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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경찰, 손쉬운 표적 ‘아기·엄마’ 군사작전하듯 죽이고 성폭행

[단독]군인·경찰, 손쉬운 표적 ‘아기·엄마’ 군사작전하듯 죽이고 성폭행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입력 : 2019.02.14 06:00:02 수정 : 2019.02.14 11:45:54
 
 

[로힝야 학살 보고서②]ㆍ여성에게 더 잔혹했다

뚤라똘리 마을 출신 맘타리(가명)가 성폭행 피해 등 자신이 겪은 미얀마 군대의 학살을 증언하며 울부짖고있다. 미얀마 군인이 민가에 방화하는 과정에서 맘타리는 얼굴 오른편에 화상을 입었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뚤라똘리 마을 출신 맘타리(가명)가 성폭행 피해 등 자신이 겪은 미얀마 군대의 학살을 증언하며 울부짖고있다. 미얀마 군인이 민가에 방화하는 과정에서 맘타리는 얼굴 오른편에 화상을 입었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뚤라똘리 마을 사망자 절반이 여성 
그중 절반, 성폭행 직후 살해당해 

2017년 8월30일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 북쪽의 로힝야족 거주지 뚤라똘리 마을. 여성들이 강변의 민가로 끌려갔다. 4~5명씩 무리 지은 미얀마 군인과 경찰들은 한데 모아둔 여성들을 다시 5~7명씩 뽑아 민가로 데려갔다. 로힝야 남성들을 죽인 뒤였다. 살아남은 여성들을 민가에서 성폭행했다.

이 마을 출신 바시다(25·가명)도 이날 얻어맞고 장신구와 돈을 빼앗긴 뒤 강간당했다. 이때 그의 품엔 생후 28일 된 젖먹이가 안겨 있었다. 미얀마 군인들은 아이를 빼앗아 여러 번 집어던져 죽였다.

같은 마을의 맘타리(30·가명)는 남성 3명에게 오전 10시쯤 성폭행당했다. 다른 피해 여성들과 마찬가지 방식이었다. 미얀마 군경은 먼저 남자들을 죽였고, 여자들을 민가로 데려가 돈과 장신구를 빼앗고 성폭행했다. 성폭행을 한 후엔 민가 문을 걸어잠근 뒤 불을 질렀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여성들만 빠져나와 도망쳤다. 맘타리의 얼굴 오른편엔 선명한 화상 자국이 남았다.

2017년 8월 말 로힝야 마을 곳곳에서 벌어진 학살은 여성에게 더 잔인했다. 살아남은 여성들은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인터뷰한 로힝야 난민들은 무차별적인 학살과 함께 여성들에 대한 집단적인 성폭력을 증언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아디의 로힝야 5개 마을(뚤라똘리, 인딘, 돈팩, 쿠텐콱, 춧핀) 학살 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은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단독]군인·경찰, 손쉬운 표적 ‘아기·엄마’ 군사작전하듯 죽이고 성폭행

■ 사망자 절반 이상은 여성 

가장 많은 집단학살 희생자(최소 451명)가 나온 뚤라똘리 마을에선 여성 사망자가 248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10~20대는 113명에 이른다. 사망한 여성 중 절반 가까운 123명이 성폭행 직후 살해당했다. 군인들은 여성들의 장신구를 빼앗은 뒤 성폭행하거나 살해했는데, 귀걸이 등을 가져가려고 귀를 자르기도 했다. 인터뷰에 응한 춧핀 마을 출신 40명 중 10명이 성폭행 피해자였다. ‘테러리스트 토벌’이 군사작전의 명분이었지만, ‘테러’와는 거리가 먼 여성들이 가장 큰 피해를 당했다.

춧핀 마을 출신 아누라(24·가명)는 학살이 일어나던 2017년 8월27일 라카인주에 사는 또 다른 소수민족인 라카인족 남성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라카인족은 당시 미얀마 군경과 함께 로힝야 학살에 가담했다. 당시 아누라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남성이 아이를 빼앗으려 하자 아누라의 아이들이 울었다. 아누라가 저항하자 남성들은 망고나무에 묶어놓은 뒤 그의 큰아들을 염소우리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아누라를 성폭행했다. 

돈·장신구 빼앗은 뒤 성폭행 
문 걸어 잠그고 불 지르는 등
‘테러리스트 토벌’ 명분으로 악행 
우는 아이들은 총 쏘거나 불태워

아누라는 의식을 잃었다. 아누라는 “남성 2명이 현장에 있었지만 몇명이나 성폭행을 저질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3시간가량 지나서야 한 이웃이 아누라를 구해주었다.

아누라처럼 많은 여성들은 어머니였다. 미얀마 군인과 경찰, 학살에 가담한 민간인들은 젖먹이 아이를 서슴없이 죽였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을 강간하려고 아이를 어머니 품에서 빼앗아 죽인 것이다. 춧핀 마을에선 인터뷰에 응한 40명 중 23명이 아동 살해를 목격했다고 했다. 총을 쏘거나 불에 태워 아이들을 죽였다. 흉기를 휘둘러 죽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성폭행을 막으려던 이들도 죽임을 당했다. 인딘 마을 출신 나후마(50·가명)는 2017년 8월25일 군경이 마을을 습격하던 날 사망한 이웃주민 후세인의 모습을 기억했다.

후세인은 나후마의 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나후마가 군경을 피해 숲속으로 도망가는데 미얀마 군인이 나후마의 딸을 붙잡았다. 붙잡힌 딸을 구하기 위해 후세인이 군인들 앞으로 달려갔다. 군인들은 흉기를 휘둘러 그를 죽였다. 

뚤라똘리 마을 출신 바시다(가명)는 생후 28일된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상태에서 미얀마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목에 난 상처는 미얀마 군인들이 흉기를 휘둘러 난 것이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뚤라똘리 마을 출신 바시다(가명)는 생후 28일된 갓난아이를 안고 있던 상태에서 미얀마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목에 난 상처는 미얀마 군인들이 흉기를 휘둘러 난 것이다.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 제공

■ 난민캠프에서 이뤄지는 ‘자조모임’ 

아누라는 국제사회에 ‘정의’를 요구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성폭행을 겪어야 했던 그에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회복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하지만 당장 가해자 처벌은 요원하고, 난민캠프의 생활도 열악하다. 여성들은 간신히 살아남은 자녀들을 돌보며 자신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끔찍한 기억을 안고 있는 로힝야 여성들은 난민캠프에 머물며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린다. 하지만 주변에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여성들의 피해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아디의 여성 조사관들이 나섰지만, 옆 텐트의 음성이 생생히 들리는 난민캠프의 특성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겪은 피해를 말하길 주저했다. ‘성폭행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했다.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또 다른 편견의 벽에 부딪혔다. 

‘성폭행 피해자’ 낙인찍힐라 쉬쉬 
살아남은 여성들은 ‘정신적 고통’
난민캠프서 심리지원 자조모임
 

아디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힝야 여성 심리지원단’을 양성해 훈련하고 있다. 이 심리지원 활동은 집단학살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을 경험한 여성들이 서로 도울 수 있는 ‘자조(自助)모임’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성폭력 등 각종 피해를 입은 난민 여성이나,

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난민캠프 안에서 훈련된 로힝야 여성 등 난민 여성들의 모임을 조직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아디 관계자는 “종교성이 강하고 전통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란 탓에 로힝야 여성들이 겪은 참혹한 피해는 오히려 사회적 낙인이 될 우려가 있다”며 “여성들끼리 서로 보듬고 도와 자존감을 키워갈 수 있는 자생적인 모임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생자 대부분 테러리스트와 거리 먼 아이·여성·노인…“인종청소 노린 집단학살”
 

유엔 조사위서 책임 묻자 미얀마 군통수권자 “끝나지 않은 비즈니스”
이양희 유엔 인권특별보고관 “한국, 인권유린 국가와 교류 중단해야”

 

 
시민단체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의 ‘로힝야 학살 보고서’ 인터뷰에 참여한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의 뚤라똘리 마을 주민들은 군인들의 군복에 새겨진 휘장을 선명히 기억했다. 왼팔에 버마어(미얀마어)로 흰색 숫자 99가 적혔다. ‘제99경보병사단’이었다. 춧핀 마을에선 제33경보병사단의 마크가 목격됐다. 

마을 주민들은 인딘 마을에선 미얀마군 535대대, 쿠텐콱 마을에선 537대대가 학살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돈팩 마을에서도 군인과 국경경찰대 등이 학살에 나섰다.
 
‘테러리스트 토벌’을 명분으로 내건 군경들은 주로 총칼을 휘둘렀다. 평소에도 로힝야족을 핍박해온 불교도 소수민족들도 학살에 가담했다. 이들은 소총이나 기관총, 칼 등을 소지한 채 마을로 진입했고, 무차별적으로 주민들을 죽였다. 하지만 보고서는 “학살이 벌어진 마을에서 테러리스트의 활동 징후가 포착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군경의 총칼에 숨진 이들은 대부분 테러리스트로 활동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이거나 여성 또는 노인들이었다. 성인 남성들은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마을 한곳에 소집된 뒤 살해당했다.
 
로힝야에게 벌어진 일을 국제사회는 일반적으로 집단학살로 규정한다.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도 불리는 집단학살은 민족이나 종족, 인종을 뜻하는 그리스어 ‘Geno’와 살인을 뜻하는 라틴어 ‘Cide’가 합쳐진 말이다. 한 민족, 종족, 인종, 종교 집단 전체나 일부를 고의적으로 제거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개념을 1944년 처음 정립한 국제변호사 라파엘 렘킨은 나치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학살을 규정하기 위해 이 정의를 사용했다. 

유엔이 1948년 채택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국민적, 인종적, 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할 의도로 집단 구성원을 살해하고, 중대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위해를 가하며, 집단 내에 있어서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된 조치를 부과하는 것 등”을 집단학살로 분류한다. 

아디가 만든 로힝야 학살 보고서는 마을 주민 증언을 통해 조직적인 인종말살을 입증하고, 체계적인 집단학살의 의도를 국제사회에 고발하기 위해 제작됐다. 

지난해 8월 유엔 진상조사위원회가 미얀마 군부 지도자들을 로힝야 학살 책임자로 규정한 보고서를 내놓자, 미얀마 군부의 통수권자인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어떤 국가나 조직, 단체도 한 나라의 주권에 개입하고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반응했다. 흘라잉 사령관은 앞서 2017년 9월 로힝야를 상대로 벌어진 군사작전에 대해 ‘끝나지 않은 비즈니스’라고 했다.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캠프 등을 방문 중인 이양희 유엔 미얀마 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서면인터뷰에서 한국 정부 역시 미얀마에서 벌어진 로힝야 집단학살에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얀마에서 벌어진 로힝야에 대한 학살은 제노사이드에 해당한다”며 “미얀마 군사령관은 로힝야에 대한 탄압을 ‘끝나지 않은 임무’라고 언급해왔고, 법과 제도 및 정책 등을 통해 수십년간 서서히 로힝야를 없애려 해왔다는 점을 보면 집단학살의 의도 역시 입증됐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과 국제사회는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에 대한 지원과 교류를 중단하는 등의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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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럼스 사령관 “주한미군,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는 주둔” 발언 ‘주목’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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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9/02/14 12:31
  • 수정일
    2019/02/14 12:3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원식 | 2019-02-14 10:03: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에이브럼스 사령관 “주한미군,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는 주둔” 발언 ‘주목’
우리 정부, ‘주한미군은 동맹 차원·평화협정과 무관’ 입장과 상당한 뉘앙스 차이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오른쪽)은 12일(현지 시간)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앵커스 킹 상원의원(무소속, 왼쪽)이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관해 질의하자,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는 주둔할 것”이라고 밝혔다.ⓒ미 의회 공개 동영상 캡처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사령관이 주한미군 유지 문제에 관해 “모든 당사자가 평화협정을 체결할 때까지는 주둔할 것”이라고 밝혀, 그 발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12일(현지 시간)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앵커스 킹 상원의원(무소속)이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관해 질의하자 이러한 입장을 밝혔다.

킹 의원은 청문회 말미에 추가 질의를 통해 “지금은 북한의 핵위협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역사상 한국에는 핵위협이 없고 재래식 위협이 있던 시절부터 미군이 주둔해 있었다”면서 “이런 역사적인 관점에서 핵무기 위협이 제거되거나 감소한 후에도 남북의 재래식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안전하게 철수(remove)할 방안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질문했다.

이에 관해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전적으로 옳다”면서 베트남 전쟁의 예를 들면서 “우리 군대의 주둔과 한반도에서의 재래식 능력 유지는 근본적으로 북한(DPRK)의 재래식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킹 의원은 “아마도 (한반도에) 핵위협이 제거되거나 감소한 후에도 재래식 위협이 (남북) 동시에 있다면, (주한미군 주둔) 필요가 있지는 않으냐”고 재차 되물었다.

이에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평화협정(peace treaty) 체결 전까지는 그렇다. 우리는 정전협정(armistice) 상태에서 주둔할 것”이라면서도 “그 사이에 모든 당사자가 평화협정을 맺을 때까지는 그렇다”고 재차 강조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이 같은 언급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차원에서 주둔하는 것으로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과 직접 관계는 없다는 입장과는 상당한 뉘앙스 차이가 있는 것으로 향후 논란이 일 것으로 관측된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청문회 전체 발언의 맥락도 한반도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는 강조하는 뜻이지만, 그가 안전한 철수 방안 수립에 동의하면서 모든 당사자가 평화협정 체결 ‘전까지(until)’라고 유독 강조한 점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에 대한 재검토 여지가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부터 최근까지 끊임없이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그는 지난 3일,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관해 “누가 알겠느냐”고 주둔 비용 문제를 제기하면서 부인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다음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 “나는 가능한 한 빨리 병력을 빼내고 싶다.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면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관해 워싱턴의 외교 전문가들은 종전선언과 이후 평화협정 체결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이다. 특히, 한반도 관련 당사국들이 모여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에는 주한미군의 주둔 명분 자체가 사라진다는 점을 우선순위로 내세운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청문회 발언에 관해 13일,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킹 의원의 질문과 한미연합사령관의 답변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면서 곤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중의소리’에 게재된 필자의 기사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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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 세포 축산기지를 가다

세계 제일 세포 축산기지를 가다<2>
 
 
 
김수복 6.15뉴욕 공동위원장 
기사입력: 2019/02/14 [10:32]  최종편집: ⓒ 자주시보
 
 

 

본 기사는 만플러스와 김수복 6.15뉴욕지역위 공동위원장의 동의를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세계 제일 세포 축산기지를 가다<2>

 

 

세포지구 생성내력은 화산이다지금으로부터 150만 년 전 현재의 세포군 성산리에 있던 화산이 폭발하면서 흘러내린 재가 일대를 뒤덮으며 평평한 대지가 생겨났다화산재는 산성이어서 농사가 안 된다수만 년 억세 풀만 무성하던 버려진 땅이었다.

 

우리가 세포군에 도착하자 과학자돌격대원인 한윤철 박사가 우리를 맞아주었다농업과학원 사리원 축산학연구소 부소장으로 있다가 세포지구 건설에 지원해 온 한윤철 박사가 우리의 세포등판 안내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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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포군 성산리 축산기지종합지령실 앞에서 돌격대원 한윤철 박사와 함께

 

목장인지 무엇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방팔방이 확 트인 광활한 풀밭에 우리가 서 있다. “젊어지라 복받은 대지여” 라고 엄청나게 큰 글씨를 보고서야

우리가 드디어 목장에 온 것을 실감하게 된다그 글자는 꽤 먼 거리인데도 내 사진기로서는 한 장에 잡을 수가 없어서 두 장으로 찍어야만 했다.

 

이렇게 수만 년 묵었던 세포지구에 대한 종합적인 개발이 김정은 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2012년 9월 22일에 세포등판 건설명령이 내려졌다.

 

성산리에 맨 먼저 종합지령실을 건설하고 5만 정보 전역을 작은 필지로 나누어 관리한다각 지역별 온도전염병풀 건강상태 등을 살핀다세포는 염소 방목이 주가 될 것인데 공사가 완성되면 50만 마리를 방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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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어지라 복 받은 대지여” 커다란 돌덩이가 모여서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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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어지라 복 받은 대지여

 

자주 등장하는 돌격대란 말이 군사작전 용어이지만 북에서는 수력발전소건설물길공사간척지공사와 같은 험난한 대자연개조공사나 려명거리건설과 같은 대규모 건설공사장에서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작업을 군인 건설자들이 맡아서 하고 그 뒤에 돌격대가 따라간다.

 

세포등판 건설명령이 하달된 날인 9월 22일을 따서 만든 922돌격대가 전국의 각 도시군 직장별로 편성되었다이와는 별도로 국가 과학원 김책공업전문대학 김일성종합대학 등에서 나온 전문가 조직인 217일 과학자기술자돌격대는 종전부터 따로 있던 전문분야 조직이다세포등판 축산기지의 과학기술적 문제를 담당할 217일 과학자기술자돌격대원 50명이 상주할 고급건물이 성산리에 한창 건축 중이다.

 

인공풀밭 조성작업은 다 끝났는데 아직은 맨흙이 보이는 곳도 있고 이제 막 풀싹이 올라오고 있는 곳도 있다여기저기 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성산리 일대는 짐승들도 많이 보이지 않았고 염소는 이미 방목공이 풀이 무성한 곳으로 몰고 가 이동한 뒤였다빈 우리와 길바닥에 깔린 윤기 있는 염소똥 더미만 보고 다음 일정을 계속했다염소와 상면은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만 했다.

 

세포등판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은 5만 정보 구석구석의 필지별 토양분석 자료를 완성하는 것이었다그 자료에 근거하여 제일 먼저 소석회와 탄재 흙보산 비료 같은 유기질비료를 준비했다그리고 평강에 큰 소석회 생산공장을 세우고 후민산 비료생산기지도 세워서 토양의 영양물질함량을 결정적으로 늘리기 위한 작업을 우선 했다그 뒤에 방목공 살림집들과 학교집짐승우리인공수정시설수의방역시설축산학연구소축산물 및 먹이가공기지 등 수천 동의 건설을 시작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고 노래했던 유명한 가수 남진이 있다그는 사랑하는 연인 둘만의 보금자리를 노래했는데 여기 세포에서는 수만 명의 군인들과 돌격대가 하나같이 손잡고 대자연개조를 통한 미래를 그리며 우렁차게 노래하고 있다.

세포축산기지에서는 필요한 물과 전기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자립자강의 당정책은 각 지방의 말단 단위들에서도 원칙으로 밀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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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풍력양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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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력양수기로 퍼올인 물을 담는 저류지들. 2층집은 염소우리이고 단층집은 방목공 살림집

 

필요한 물은 옆에 흐르는 개울물을 이용하고 개울물이 안 닿는 곳은 풍력양수기로 지하수를 뽑아 저류지에 저장한다전력은 중형 수력발전소가 완공되면 국가전력을 쓰지 않고 자체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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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랙터만 빼고 자체제작한 풀밭 조성용 기구들이 자랑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농기구들도 자체적으로 제작해서 쓰고 있다. 70년 계속되고 있는 제재 극복 수단으로서만 자력자강이 아니고항일빨치산 시기부터 자기 힘만을 믿고 나아갈 때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귀중한 경험이 있기에 북의 자력자강 정책은 제재가 해제된 이후에도 당정책으로서 변하지 않고 집행될 것이라고 한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바탕을 두고 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한 독점적 기업만이 생존하는 체제가 아니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는 나라가 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포등판 대자연개조의 1단계는 2017년 10월 27일에 완성되었다수수 천년 잠자던 갈대밭이 기름진 풀밭이 되고 동양 최대의 종합축산기지로 다시 태어났다후천개벽이 일어났다.

 

동영상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한다. “150만 년 전에 솟구쳐 올라온 자연 화산은 이 땅을 불모의 땅으로 바꿨지만 김정은시대에 터져 오른 애국의 활화산은 어떻게 대지를 천지개벽시켰는지를 머지않아 세계는 볼 것이다.”

 

집짐승우리들마다에서 닭오리돼지의 배설물이 흘러나온다오리 배설물은 쓰레기가 아니고 발효시키면 훌륭한 돼지사료가 된다.

 

애국풀단백먹이풀은 물론 콩짚강냉이 짚과 같은 짐승이 먹을 수 없는 거친 재료도 토착미생물과 함께 발효하면 맛있는 집짐승 먹이가 된다알곡먹이를 대폭 절약하게 된다돼지 배설물은 유기농비료의 원천이 되고 유기농비료는 또 다른 진거름 퇴비흙보산비료와 함께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있다유기농복합비료는 화학비료의 흡수능력을 높여서 적은 양의 화학비료만으로도 큰 효과를 보기에 화학비료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된다.

 

5만 정보 풀밭에 염소 50만 마리와 닭오리와 돼지소로 넘실거릴 것이다평강군에 자동화된 대형 고기가공공장과 짐승사료가공공장이 이미 작업중에 있다질이 높은 햄 통조림소세지요구르트산유우유치즈빠다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풀을 고기로 바꾸려는 당 정책을 실현하는 현장이다고리형순환생산체계에 의한 농축산방법을 전국으로 파급하는 본보기 공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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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당 염소 250마리 수용낮에는 방목장으로 나가서 비어있다창이 없는 윗 층은 건초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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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젖산발효 풀저림칸두터운 시멘트벽 흙을 높이 쌓아서 보온한다이제 건설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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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승 우리에서 배설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오게 설계한 메탄가스탱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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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 건물은 2.17돌격대 과학자기술자50명이 상주할 살림집

 

 

  https://youtu.be/mhBBHrPCVBU  이 것을 딸각 눌러 보세요.   

 

위 동영상은 세포지구의 천지개벽을 노래한다소요시간이 20분이다.

세포읍에 거주하는 81세인 양 옥희 할머니의 구수한 역사해설부터 돌격대 형성 과정과 건설현장에서 돌격대원들의 삶과 생각과 결의를 보여주는 좋은 동영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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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동자의 목숨이 싼 값에 거래되는 진짜 이유

[인터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
2019.02.14 08:19:01
 

 

 

 

어미는 62일 만에야 겨우 자식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9일, 아들을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했다. 지난해 12월11일, 석탄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된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 이야기다. 자식을 땅에 겨우 묻었으나 어떻게 떠나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별은 요원하다. 여전히 아들을 가슴에 품고 사는 어미다. 
 
창졸간 아들은 떠났지만, 그의 죽음이 불씨가 되어 세상은 조금 달라졌다.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을 뿐만 아니라 아들 사망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도 발족한다.  
 
아들이 일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도 직접고용은 아니지만 5개 발전사의 연로환경설비운전 업무를 통합한 하나의 공공기관을 만들고 해당 업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오는 18일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용균 씨의 어머니가 만날 예정이다.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나 인식적으로 변화가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상당하다. 여전히 원청은 하청 노동자의 사망 관련,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고,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젊은이들은 싼값에 하청 내지 파견직으로 고용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죽었고, 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났음에도 왜 이러한 구조는 지속되고 있는 걸까.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를 만나 이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가 속한 노동건강연대는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故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이상윤 대표. ⓒ프레시안

"사회 문제로 치환되지 않는 산업재해" 
 
프레시안 : 이번 김용균 씨 건은 의미를 짚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62일 만에 장례식을 치렀는데, 그 과정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개정됐다. 고인이 일했던 분야의 노동자들은 정규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공기관을 설립한 뒤, 여기에 직고용하는 것으로 합의하기도 했다.  
 
이상윤 : 아직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다. 출범하는 진상조사위에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그에 따라 권고안이 나오면, 이를 이행하는 게 필요하다. 하청 구조의 변화라든지, 책임자 처벌 등의 권고안이 조사위에서 나오게 되면 이를 제대로 이행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프레시안 : 사실, 하루 5~6명이 일하다 사망하는 곳이 한국이다. 비일비재하게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 김용균 씨의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다. 사회적 이슈가 됐고, 제도 개선 등으로 이어졌다. 김용균 씨 사례가 이전 산재사고와 달랐던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상윤 : 한국사회에서 질병으로 인한 사망 빼고 사고로 인한 사망을 따지면 1년에 1000명 정도 된다. 그 죽음과 김용균 씨의 죽음이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당사자성'이 달랐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이상윤 : 김용균 씨는 죽음의 형태가 너무나 처참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게 아니면 젊디젊은 청년 노동자였기에 사회적 공분을 만들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객관적인 요인을 이야기하는 분도 많이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주체성, 즉 당사자들(유가족들)이 얼마나 이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받아들였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용균 씨 유가족들은 고인의 죽음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을 요구했다. 거기서 이전 죽음과의 차별이 발생했다. 유족이 초기부터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예외적인 일이었다. 산재를 겪은 유족이 죽음을 사회적 문제로 치환한다는 게 쉽지 않다. 
 
프레시안 : 왜 사회적 문제로 치환하기 어렵나.  
 
이상윤 : 대부분 회사는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그 원인으로 노동자 개인 책임을 언급한다. 유족도 마찬가지다. 고인의 죽임을 운명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유가족 본인이 억울하다고 느끼기더라도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잘못했지, 그때 왜 그렇게 했대?' 이렇게 개인 잘못으로 돌리게 된다. 그러면서 죽음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식이다. 
 
또한 한국 사회의 특징인데, 회사를 '한가족'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한가족에게 문제제기를 어떻게 하느냐' 이런 정서가 존재한다. 대기업일수록 더 그렇다. 그런 복합적인 게 작용하기에 유족은 단순 경제 보상이 아닌 산재 관련,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기를 무척 꺼린다.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프레시안 : 사망자의 특수성보다는 당사자성, 즉 유족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인 듯하다.  
 
이상윤 : 그런 점에서 이번 김용균 씨 사건은 산재사고를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존 산재사고와는 다른 상황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산재사고라고 하면 일반사람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특수한 사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김용균 씨 사건으로 산재사고가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도 언제든 올 수 있는 것이라고 깨닫게 해준 듯하다.  
 
이상윤 : 산재사고는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덩어리를 일반인들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편해한다. 그래서 외면한다. 그런데 김용균 씨 사건으로 이를 다시 응시하고, 들여다보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문제가 있긴 있구나'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민대책위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 사회가 산재사망 문제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매우 견고하다는 점이었다. 
 
프레시안 :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이상윤 : 산재사망 관련, 해결안을 제시할 때, '어느 선까지는 용인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절대 안 돼' 이런 견고한 프레임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그 선은 어디까지인가.  
 
이상윤 : 산재사고는 대중에게 ' 안타깝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이러한 1차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윤리적인 감성을 울린다.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죽는 건 아니다' 이렇게 도덕적, 윤리적 감성을 건드리는 것까지는 된다. 그렇기에 죽음에 대한 공감 내지 공분까지는 도달하지만, 이를 해결하는 방안에 가서는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선은 거기에 그어져 있다.  
 

▲ 고 김용균 씨 유품. ⓒ공공운수노조

"나에게는 그런 사고가 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프레시안 : 사람들은 해결방안에서 어떤 점을 불편해하는가. 
 
이상윤 : 첫 번째는 해결방안의 적용을 산재사망 사고가 난 개별 사업장으로 한정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일반으로 확대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산재사고의 유사성으로 보는 게 아니라 특수한 사례로 바라본다. 
 
프레시안 : 결국, 산재사망은 특수한 것이기에 특수한 방법을 사용하면 해결된다는 도식이 성립하는 듯하다. 이는 '내가 일하는 일터는 안전하다'는 것을 담보 받고 싶은 마음도 기저에 있는 듯하다.   
 
이상윤 : 내 일터는 안전하지 않지만,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 그리고 나에게는 그런 사고가 안 올 거라는 믿음 내지 생각이 기저에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일반론으로 전환하면 나의 일이 된다. 그러면 이는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그렇기에 일반론으로 치환하지 않고 특수케이스로 넘기는 듯하다. 
 
이상윤 : 두 번째는 산재사망의 특성을 '사고'로 제한하려는 성향이 크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때, 자유한국당 등에서는 '교통사고를 가지고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 왜 이것을 가지고 정부를 지적하느냐'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 방식이 그대로 김용균 씨 산재사망 사고에서도 적용됐다. '사고 난 것은 안타깝고 마음 아프지만, 산재사고 난 것으로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 이런 식이다.  
 
프레시안 :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상윤 : 사고로 치부해버리면 해결은 간단하다. 안전설비를 제대로 하면 된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근간의 문제, 즉 구조적 문제는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미다. 회사 내 안전체계, 안전설비를 고치면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공학적 접근'이다. 
 
프레시안 :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 달라.  
 
이상윤 : 사건의 해결방식에는 '공학적 해결방식'과 '정치적 해결방식'이 있다. 구조적 문제는 정치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단순한 안전사고 문제는 공학적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산업재해를 공학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정치적으로 넘어가는 것을 너무나 싫어한다. 비정규직 고용이 안전문제를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명제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프레시안 : 자신 역시 비정규직이기에 비정규직 고용이 안전문제를 증가시킨다는 명제를 일반화하면, 위협감을 느끼기에 이를 부정하고 배격하는 것인가. 
 
이상윤 : 그것보다는 우리 한국 사회 시스템을 돌아가게 하는 기저에는 비정규직 사용이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정서가 깔려 있는 듯하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써야 하고, 그러한 비정규직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사후 땜질식으로 부정적인 부분만 보완하면 된다는 정서 말이다.  
 
프레시안 : 기업이 비정규직을 쓰지 못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상윤 : 이번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서도 드러났다. 원청의 책임은 강화됐지만, 도급 금지 조항은 매우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또한 도급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게 아니라 허가를 받는 식으로 전환됐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사용, 그리고 이로 인한 산재사망은 비정규직 사용의 '그림자'라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없애야 할 정도의 문제로는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프레시안 : 그러한 정서는 IMF를 겪은 경험이 아직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IMF를 겪으면서 몸으로 체화한 고통이 아직도 강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실제 당시 기업이 망하면서 모든 게 망가졌다. 그것을 우리 사회 모두가 경험했기에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 이런 논리가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이상윤 : 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비정규직 사용은 허용될 수밖에 없는, 약간의 희생이 있더라도 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는 인식이 존재한다. 
 
"정치화하지 않으면 해결은 어렵다" 
 
프레시안 : 이번 합의는 문재인 정부였기에 가능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전 정부였다면 장기화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다.  
 
이상윤 : 정부에서 진상조사와 관련된 것은 진작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부는 노동부 특별감독이라든지, 안전보건 진단이라든지 이런 것은 발 빠르게 진행했다. 과태료도 강하게 부과했다.  
 
프레시안 : 산재사망 사고가 났다고 그렇게 노동부가 나서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이전 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행보다.  
 
이상윤 : 노동부도 할 만큼 한 거다. 하지만 짚어볼 부분은 있다. 정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대중의 눈높이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산재문제 관련해서 사고 조사를 하고, 설비 개선하는 정도는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즉, 산재를 공학적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나아가, 구조적 문제인 원·하청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무척 싫어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산재사망사고를 둘러싼 프레임이 아직 변화하지 않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기간에 노동부는 산재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산재를 공학적 문제로 받아들이는 프레임을 넘어가야 한다. 외국에서는 산재사고 문제를 공학적 문제, 즉 안전 문제로만 접근하지 않고 구조적 문제로 접근한다. 대형 사고는 정치적 문제로까지 번진다.  
 
프레시안 : 그렇게 프레임이 전환되지 않는 이유는 대중이 불편해하는 것도 있겠지만, 그러한 대중을 설득하는 전문가나 학자가 거의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이상윤 : 해외의 경우는 산업재해 관련해서 연구·활동하는 사회학자, 정치학자, 역사학자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나 같은 의사나, 안전공학자, 법학자 같은 이들이 조금씩 하고 있다.  사회학자나 정치학자는 아주 적다. 안타까운 일이다. 산업재해는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면 분석이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분석을 풀어서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사회학자 내지는 정치학자가 왜 적다고 생각하나. 
 
이상윤 : 결국, 무엇이 먼저냐의 문제인데, 이는 연구자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프레임이 딱 거기까지 정해져 있는 것이다. '공학적으로 풀면 되지' 이런 식이다. 그렇다 보니 이를 구조적으로 풀어보려는 학자가 적다. 하지만 이 프레임이 전환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 산재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게 우선이다. 그래서 갈등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후 이해관계 당사자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개입이 이뤄져야 하는데, 산재 문제는 그게 안 됐다. 갈등이 생기기보다는 덮기 바빴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또다시 명확해진 것은 프레임 전환이 없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환을 위해서는 정치화하는 게 필요한데, 대중은 산재를 정치화하는 것을 너무나 싫어한다. 그것이 가장 높은 산이다. 그래서 이 약한 고리를 기업과 보수세력 등에서는 잘 이용한다. '산재 문제를 정치화하려는 외부세력들' 딱 이 표현이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교통사고를 정치화하려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이런 프레임이 깔리면 대중들은 딱 싫어한다. 하지만 이렇게 정치화하지 않으면 문제해결은 어렵다.  
 
프레시안 : 사실 그동안 산재사고는 회사에서 유가족에게 돈 주고, 개인적으로 사과하면서 덮는 식이었다. 그렇게 여태까지 정리돼 왔다. 정치화는 고사하고 갈등조차도 발생하기 어려웠다.   
 
이상윤 :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정치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해나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대중들이 불편해하는 실체가 무엇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노동자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

"공공부문의 재공공화, 언급조차 어렵다" 
 
프레시안 : 김용균 씨 관련해서 정부와 막판까지 쟁점이 된 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이를 두고도 대중의 시선은 싸늘하다. '누구는 죽어라 공부해서 발전소 들어오려고 하는데, 누구는 친구가 죽었다고 정규직이 되느냐'. 이런 식이다. 노력의 문제가 언급됐다. 공기업에 들어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공기업에 들어가려는, 그리고 노력해서 들어간 사람들 입장에서는 허탈감을 주는 듯하다. '난 노력해서 들어왔는데, 그들은 무임승차 아닌가. 이런 감정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러한 의견을 단순히 '우리 사회는 함께 사는 공동체다' 이런 원칙적인 이야기로 설득하기도 어렵다. 무임승차했다는 주장을 어떻게 풀어서 설득해야 할지 쉽지 않다.  
 
이상윤 : 산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방식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부문의 재공공화’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방안은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공공부문 재공공화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보다 더 어려운 듯하다. 외국은 산재가 발생하면 재공공화 이슈가 불이 붙는다. 민영화 내지는 민관협력 형태로 회사가 운영되면, 안전 체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재공공화 이슈는 꼭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재공공화 이슈가 수면 위로 잘 부각되지 않는다. 철도사고가 발생했을 때,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사퇴했다. 그러면서 오 사장은 철도 사고 관련해서 민영화가 원인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아무런 반향이 없었다. 
 
이상윤 : 사장이 사퇴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큰 이야기를 던졌지만 어디에서도 응답이 없었다. 김용균 씨 사건에서도 드러났지만, 민간자본을 유치한 공공부문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불투명한 운영을 한다. 부패 문제도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이것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 상황이다.  
 
프레시안 :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넘어 공공부문의 재공공화도 이야기해야 하는 부분인 듯하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시선을 전환하는 게 가장 첫 번째로 필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는 게 필요할 듯싶다. 오랜 시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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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민족적인 남북공동선언 이행운동 벌이자”

금강산 새해맞이 공동행사, ‘4.27~9.19 활동기간’ 지정
금강산=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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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3  1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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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년 새해맞이 연대모임’이 12일 오후 금강산 문화회관에서 남북해외 대표단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 발표 1돐, 개천절 등을 비롯하여 남과 북에 다같이 의의 있는 날들에 민족공동행사, 부문별, 계층별 공동회합들을 성대히 기념하여 민족적 화해와 통일의 큰 물줄기가 남북 삼천리에 도도히 흐르게 하자!”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전례없이 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남북해외 민간단체 대표단이 12-13일 금강산에서 11년만에 대규모 공동행사를 갖고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다짐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간 종단과 민화협 등 부문별 공동행사는 열린 적이 있지만 각계각층을 망라한 공동행사는 2008년 6.15공동행사 이후 처음이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2019 새해맞이 공동행사 추진위원회’는 12일 오후 3시 35분 금강산 온정각 문화회관에서 ‘2019 새해맞이 연대모임’을 개최하고 ‘8천만 겨레에 드리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남측은 공동단장인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과 김희중 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지은희 시민평화포럼 고문,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를 비롯해 251명의 대표단과 지원인력 등이 참석했고, 북측은 공동단장인 김영대 민족화해협의회 회장, 박명철 6.15북측위원회 위원장, 강지영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대표단과 금강산지역 복무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으며, 해외측은 손형근 6.15해외측위 위원장과 차상보 6.15해외측위 부위원장 등 15명이 참석했다.

   
▲ 남북해외 대표가 '8천만 겨레에 드리는 호소문'을 낭독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한솔 6.15북측위원회 부위원장, 김영희 6.15해외측위원회 사무부국장, 한충목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참석자들은 공동호소문을 통해 “우리는 희망찬 새해 2019년에 역사적인 남북선언들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남북 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힘차게 전진시켜나가려는 드높은 결의와 의지를 안고 해내외 8천만 겨레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고 네 가지 사항을 밝혔다.

△남북 정상이 열어가는 새로운 남북관계발전을 적극 지지하고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를 다함께 힘껏 열어나가자. △역사적인 판문점 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운동을 남과 북, 해외에서 적극 벌여나가자. △남북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전면적으로 활성화하여 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룩하자. △온 겨레의 슬기와 지혜를 합쳐 평화와 통일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나가자는 것이다.

특히 “4월 27일부터 9월 19일까지를 ‘판문점선언과 9월평양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활동기간’으로 정하고 전 민족적인 선언 이행운동을 적극 벌여나가자”고 호소하면서 구체적으로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 1주년과 단군릉 개건 25주년이 되는 개천절을 적시했다.

최소한 올해 세 차례 남북을 오가는 대규모 공동행사가 예상되지만 남측이 제안한 3.1절 100주년 공동행사는 포함되지 않았다.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연관된 것으로 관측된다.  

   
▲ 남북해외 공동단장 등 주요인사들이 무대위에 자리잡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남측 251명, 북측 200여명, 해외측 15명이 참석해 박수로 공동호소문을 채택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참가자들은 또한 “오늘의 좋은 분위기를 놓치지 말고 서로 마주앉아 평화.통일의 지름길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나가자”며 “상대방에 존재하는 서로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온 겨레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바람직한 통일의 설계도를 마련해나가자”고 호소해 주목된다. 북측은 최근 전 민족적 통일방안 마련과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우리 모두 함께 담대하게 떨쳐 일어나 남북선언들을 관철하기 위한 거족적 행진에 나서자”며 “올해를 우리 민족사에 빛날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의 해로 만들자”고 다짐했다.

첫 축하연설에 나선 김영대 북측 민화협 회장은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북과 남, 해외가 모여앉아 새해의 첫 통일행사인 새해맞이 연대모임을 성과적으로 개최하게 된 것을 열렬히 축하한다”면서 “나는 이번 새해맞이 연대모임이 올해 겨레의 통일운동을 힘차게 추동해 나가는데서 중요한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해서 다시한번 모임 참가자 여러분들을 열렬히 축하한다”고 인사했다.

또한 “북남 수뇌분들의 드팀없는 의지로 하여 북남관계는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되었고 우리 민족의 위상은 세계정상에 우뚝 솟았다”며 “북남선언들을 더 높이 추켜들고 수뇌분들이 마련하여 주신 새로운 평화의 궤도, 통일의 궤도를 따라 통일열차를 힘차게 몰아가자”고 호소했다.

   
▲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이 남측을 대표해 축하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무대 위에 마련된 주석단에서 연설을 경청하고 있는 공동단장들. 앞줄 왼쪽부터 박명철 6.15북측위 위원장, 이창복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 김영대 북측 민화협 회장, 손형근 6.15해외측위원회 위원장, 김희중 대주교, 강지영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축하연설에서 “남측에서는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각층 대표들, 그리고 지자체와 여야 정당의 의원들과 대표들, 그리고 경제인들이 자리를 함께 해주셨다”며 “통일의 주인인 온 겨레가 더욱 굳게 손을 잡고, 다방면의 교류와 협력, 행동을 더욱 확대, 발전시켜 나가자”고 호소했다.

남측 대표단에는 7대 종단 수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지자체 관계자들, 더불어민주당 설훈, 노웅래, 임종성, 심기준 의원과 평화민주당 최경환 의원, 자유한국당 황영철 의원, 민중당 이상규 대표 등 정치인, 박중기 추모연대 명예의장, 문규현 평통사 상임대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등 단체 대표들, 신한용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전경수 금강산기업협의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은 “앞으로도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을 비롯해 남과 북이 맺은 소중한 약속들을 더욱 철저히 이행해 나가자”면서 “분단의 적폐들을 청산하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통일 조국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했다.

손형근 6.15해외측위 위원장은 축하연설에서 “우리들 해외대표들도 새해맞이모임의 중요성을 간직하면서 멀리 이국땅에서 대륙을 넘어 바다를 건너 이곳 금강산으로 달려왔다”며 “역사청산에 등을 돌리고 군사대국화와 전쟁의 길로 돌진하고 있는 아베 정권에 대해 민족공동의 힘으로 단호하게 경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대표단은 일본 8명, 중국 6명, 호주 1명 모두 15명으로, 일본지역 대표들은 중국 베이징을 경유, 평양을 거쳐 금강산에 도착했으며, 귀환 경로도 역순으로 같다.

손형근 위원장은 “조속히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재개되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하고 평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군사적 적대행위가 중지되도록 해야 한다”며 “남북,해외 8천만 겨레가 강철과 같이 굳게 단결하여 통일운동을 추진한다면 그 누구도 우리의 앞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 13일 해금강에서 해맞이를 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13일 금강산 신계사를 찾은 7대 종단 수장 등 종교계 지도자들이 조선불교도연맹 관계자들과 나란히 예불을 드리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양철식 6.15북측위원회 부위원장 사회로 진행된 새해맞이 연대모임에서는 박명철 6.15북측위원회 위원장과 지은희 시민평화포럼 고문, 차상보 6.15해외측위원회 부위원장,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연설자로 나섰고, 공동호소문은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와 김한솔 6.15북측위원회 부위원장, 김영희 6.15해외측위원회 사무부국장이 호소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이어 분야별 상봉모임을 갖고 공동만찬으로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 뒤 이틀째인 13일 해금강에서 해맞이를 하고 신계사를 방문했으며, 남측 대표단 251명은 이날 오후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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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내 아이를 불구덩이에 던졌어요”

[단독]“그들이 내 아이를 불구덩이에 던졌어요”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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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공개 ‘로힝야 학살 보고서’
수백명 난민들 심층 인터뷰 통해 세계 첫 마을 단위 종합·분석 작업
미얀마 정부의 조직적 범죄 증거로

로힝야 여성이 지난해 6월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 집단학살을 증언하다 괴로워하고 있다. 이 여성이 살던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의 쿠텐콱 마을에선 최소 148명의 로힝야 주민이 미얀마 군인들에게 숨졌다. 10세 미만 희생자도 33명으로 추산됐다. ⓒ조진섭

로힝야 여성이 지난해 6월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서 집단학살을 증언하다 괴로워하고 있다. 이 여성이 살던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의 쿠텐콱 마을에선 최소 148명의 로힝야 주민이 미얀마 군인들에게 숨졌다. 10세 미만 희생자도 33명으로 추산됐다. ⓒ조진섭

 

2017년 8월25일 오전 3시쯤 빗소리에 섞인 총성을 처음 들었다. 미얀마 서쪽 라카인주 북부의 로힝야족 거주지 쿠텐콱 마을 주민 안다르(60·가명)는 딸에게 말했다.

“군인들이 여자에겐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남자들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모두 마을을 떠나면 저들(군인)이 집을 불태울 테니, 일단 남자들은 도망가고, 여자들은 집을 지키는 게 나을지도 몰라.” 

안다르는 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아들과 함께 마을 동쪽 숲으로 도망쳤다. 몸을 피한 뒤 멀찍이서 마을을 바라봤다. 마을 남쪽에서부터 군인들이 몰려왔다. 군인 400~500명은 초록색 군복을 입었다. 카키색 복장의 경찰도 보였다. 군인들은 총알을 퍼부었다. 총성이 멈추지 않았다. 그때 안다르의 딸, 손자, 아내가 죽었다. 

쿠텐콱 마을뿐이 아니었다. 2017년 8월 말, 미얀마 소수민족인 로힝야가 모여 사는 라카인주 북부 마을 곳곳에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총성이 울린 마을에선 주민들이 자취를 감췄다.

살아남은 사람 중 돌아온 이들은 없다. 삶을 일구던 마을을 떠난 로힝야는 지금까지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머물고 있다. 모두 미얀마 정부와 군대, 이슬람교도인 로힝야를 탄압하는 불교도들을 피해 마을을 떠났다. 

유엔 자료를 보면, 로힝야 난민은 8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도 매달 수천명이 미얀마 정부의 핍박을 피해 국경을 넘고 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의 ‘로힝야 학살 보고서’는 온통 핏빛으로 얼룩져 있다. 학살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로힝야 난민들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서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학살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어머니는 안고 있던 젖먹이를 빼앗겨도 막지 못했다며 울먹였고, 숲속에 피신한 주민들은 이웃사람들이 죽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학살 보고서는 로힝야에 대한 체계적인 심층 인터뷰를 담았다. 로힝야 학살을 마을 단위로 종합·분석한 작업은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다. 

■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 

로힝야 학살 보고서 - 마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2017년 9월13일,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많은 로힝야 주민들이 미얀마 군인의 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작정 인근 방글라데시로 넘어왔다.  EPA연합뉴스

2017년 9월13일, 나프강을 건너 방글라데시에 도착한 로힝야 난민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많은 로힝야 주민들이 미얀마 군인의 학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작정 인근 방글라데시로 넘어왔다. EPA연합뉴스

지옥에서 탈출한 사람들 
2017년 8월 미얀마 정부군 습격
로힝야 마을 400여곳서 학살 자행 
목숨 걸고 방글라데시로 피란

학살 명분은 ‘테러리스트 토벌’이다. 2017년 8월25일, 로힝야 반군인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이 미얀마 경찰 초소와 군영 등 30여곳을 습격했다고 알려진 뒤 미얀마 정부의 군사작전이 시작됐다. 대테러 작전이라던 군사행동은 민간인들이 살던 로힝야 마을 약 400곳에서 집단학살과 방화·강간·약탈로 이어졌다. 

아디는 2017년부터 난민캠프에 거주 중인 로힝야들을 출신 마을별로 분류한 뒤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경향신문은 아디가 지난해 12월 우선 제작한 인딘·돈팩·춧핀·쿠텐콱·뚤라똘리 등 5개 마을의 학살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아디와의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5개 마을 출신 203명이다. 아디는 심층 인터뷰에다 광범위한 설문조사를 진행해 학살 피해 상황을 통계화했다. 그 결과 마을별로 80% 이상의 주민들이 직계가족의 사망을 경험했고, 학살 피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디는 올해 15개 마을의 학살 보고서를 순차적으로 제작해 발표한다. 이 프로젝트는 내년까지 이어진다. 인터뷰를 완료한 로힝야 난민은 780여명이다. 이들의 인터뷰가 담긴 보고서는 학살 증거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출된다. 

■ 동시다발적 군사작전, 조직적 집단학살 

쿠텐콱 마을에 총성이 울린 2017년 8월25일 미얀마 라카인주 서북부 해안마을 인딘에도 포탄이 잇따라 떨어졌다. 아이를 안고 있던 한 남성은 폭격을 피해 달렸다. 나무로 만든 가옥에 포탄이 떨어지면 불이 붙었다. 한가로이 돌아다니던 닭들도 도망가기 시작했다. 길옆으로 포탄이 떨어졌다. 아이들이 타오르는 불길 사이를 소리치며 뛰었다. 뛰지 않으면 죽었다.

인딘마을 주민인 50대 여성 하디마(가명)는 이날 남편을 잃었다. 하디마는 소에 풀을 먹이던 남편을 집에서 바라봤다. 군인이 갑자기 마을에 몰려오자 남편은 숲속으로 피했다. 결국 붙잡힌 남편은 군인들 앞에 섰다. 군인들이 남편을 발로 차 쓰러트리고는 총의 개머리판으로 때렸다. 그리고 머리에 총을 쐈다. 군인들에게 섞여 있던 라카인주 민간인이 총에 맞은 남편에게 칼을 휘둘렀다. 다리를 잡아 뒤집어 보더니 죽은 것을 확인했다. 군인들은 남편 시신을 강에 던졌다. 하디마는 “남편을 구할 수 없었다”고 자책했다. 

이날 인딘마을에서 죽은 이들은 모두 147명으로 추산된다. 사망자 중 33명은 18세 이하였고, 90세가 넘는 노인도 1명 포함됐다. 

보고서에는 미얀마 군대와 경찰, 소수민족 탄압에 가담한 수많은 라카인주 출신 민간인들이 저지른 잔혹한 학살도 담겨 있다. 로힝야 마을 400여곳에서 며칠 사이 이뤄진 학살은 패턴으로 나타났다. 이른 오전 군경이 로힝야 마을을 사방에서 포위한다. 마을로 들이닥쳐 민가를 수색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죽인다. 학살이 끝나면 민가를 태우고 약탈한다. 학살자들은 시신은 땅을 파서 묻기도 했지만 대부분 내다 버렸다. 마을은 폐허가 됐고, 살아남은 주민들은 학살을 피해 수일에 걸쳐 맨발로 국경을 넘었다. 

아디가 제작한 ‘로힝야 보고서 - 춧핀’ 표지.

아디가 제작한 ‘로힝야 보고서 - 춧핀’ 표지.

■ 최악의 군사작전 벌어진 뚤라똘리 마을 

2017년 8월30일 오전 8시, 라카인주 북부의 마웅도 지역 뚤라똘리 마을 상공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마을 북쪽에서부터 이어진 강이 뚤라똘리 마을을 감싸듯 동쪽과 남쪽으로 흐른다. 마을 북동쪽 강변 백사장을 두고 사람들은 ‘데저트’라고 불렀다. 이날 데저트에는 1500~2000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마을행정관이 “군인들이 들이닥치면 도망가지 말고 데저트로 가면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군인 공격을 피해 뚤라똘리 마을로 피신해 온 이웃마을 와이꽁과 디오똘리의 주민도 데저트로 갔다. 하지만 데저트에는 곧 총알이 쏟아졌다. 눈치 빠른 이들이 먼저 강에 뛰어들어 도망갔다. 수영할 줄 모르거나 아이를 돌봐야 했던 주민들은 꼼짝할 수 없었다.

무사히 강을 건넌 주민들은 많지 않았다. 물가에 아이들 시신이 떠다녔다. 젊은 남자들이 머리가 터져 죽은 갓난아이 시신을 물가로 건져냈다. 물가에 시신이 늘어섰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어리둥절했다. 강을 건넌 주민들은 서둘러 물가를 빠져나왔다. 살아남은 이들은 강 건너 마을에서 벌어진 살육을 목격했다. 

뚤라똘리 마을주민 마리즈(30·가명)는 이날 목숨을 건졌지만, 생후 2년6개월 된 아이를 잃었다. “어떤 아기들은 총에 맞아 죽었고, 칼에 찔리거나 강에 빠져 죽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군인이 제 아기를 빼앗아가 (시신을 태우기 위해 파둔) 불구덩이에 던져버렸습니다.” 아이를 죽인 뒤 군인들은 5~6명씩 여성들을 민가로 끌고가 성폭행했다. 

지옥을 증언하는 사람들 
인딘·돈팩 등 5개 마을 출신 203명
진술로 확인된 사망자만 1265명 
80% 이상 “직계가족의 죽음 경험”

로힝야에 대한 학살이 가장 대규모로 벌어진 곳은 뚤라똘리 마을이었다. 아디는 뚤라똘리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을 “미얀마 군부가 주도한 군사작전 중 최악의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 마을 주민 증언을 종합해 아디가 내놓은 사망자 숫자는 451명이다. 여성이 248명, 18세 이하 청소년과 아동은 251명이다. 이 중 10세 이하 아동이 169명으로 전체 사망자 중 37%를 차지했다. 이마저도 최소치의 추산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마을을 떠난 로힝야 사람들은 며칠씩 걸어 국경을 넘었다. 음식과 물이 없어 피란 중에도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돈팩 마을에 살던 에나울라(20·가명)는 총탄에 맞아 부상당한 뒤 방글라데시로 피신을 가기로 했다. 숲속을 나흘 동안 걸었다. 가족들이 에나울라를 부축했다. 그는 “강가를 지날 때 물 위에 시신들이 떠다녔다”고 했다. 

같은 마을 주민 나빌라(44·가명)도 고향을 떠나기 싫었지만, 이웃마을에서 학살이 벌어지자 피란을 결정했다. 도망가는 동안 먹을 게 없었다. 나빌라는 “아직도 피란 가며 느꼈던 슬픔과 어려움이 생각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숲속을 걸을 때 피 흘리는 로힝야들과 시신이 보였다. 국경을 완전히 넘기 위해선 배를 얻어 타야 했지만, 그와 가족들은 빈털터리였다. 나빌라는 “돈이 없어 몸에 있는 모든 장신구를 뱃사공에게 줬다”고 했다. 

그들은 왜 우리를 죽였나 
보복 두렵지만 증언 결심한 건
국제사회의 ‘정의’를 원하기 때문 
내년까지 보고서 완성해 ICC 제출

아디 인터뷰에 응한 로힝야 피해자들은 난민캠프에 거주하면서도 자신의 신원이 드러날까봐 두려워했다. 혹시 모를 불이익을 겪게 될까,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 고향에 돌아가서도 보복을 당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디와의 인터뷰에 응한 건 자신들의 증언이 로힝야에게 벌어진 학살을 고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층 인터뷰에 응한 로힝야 피해자들은 “국제사회에 말하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하나같이 “정의를 원한다”고 했다. 뚤라똘리 마을의 한 30대 여성은 “내가 살던 집과 정의를 되찾길 원한다. 왜 이런 폭행을 당해야만 했고, 그들은 우리를 왜 죽였을까. 국제사회의 정의를 원한다”고 말했다. 다른 남성은 “내 부모를 죽이고 아내와 여동생을 성폭행하고, 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빼앗아간 데 대한 정의를 원한다”고 했다. 

학살이 벌어진 지 이미 500일이 지났다. 정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2017년 9월13일, 미얀마 군부의 군사작전을 피해 고향을 떠난 로힝야 난민들이 라카인주 북부 부티다웅의 마유강변을 따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사진 크게보기

2017년 9월13일, 미얀마 군부의 군사작전을 피해 고향을 떠난 로힝야 난민들이 라카인주 북부 부티다웅의 마유강변을 따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로힝야 학살 보고서’ 만들기까지 
 

방글라데시 난민촌 로힝야족이 직접 인터뷰… 
6~10명 조사관, 현지서 보고서 작성법 교육받고 법적 효력 갖는 증언·증거 수집 ‘총력’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가 제작한 ‘로힝야 학살 보고서’는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로힝야족 조사관들의 손을 거쳐 나왔다. 난민들이 직접 자신들이 겪은 학살 참상을 고발했다. 조사관 6~10명은 5개 마을 203명을 심층 인터뷰한 두 보고서를 작성했다. 학살이 벌어진 마을은 약 400곳이다. 

아디는 로힝야 마을 학살 보고서 제작 프로젝트를 2020년까지 진행한다. 조사관들은 최대한 많은 마을에서 학살 증거를 확보하려고 지금도 쉼없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학살 보고서의 조사관 아자쟈(40·가명)는 경향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로힝야에게 벌어진 집단학살을 입증하려고 조사에 참여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조사를 통해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를 상대로 저지른 학살 증거를 수집할 수 있었다”며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학살 책임자들을 기소할 증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조사관들은 한국과 방글라데시를 오가는 아디 관계자들에게 교육을 받은 뒤 조사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우선 난민캠프를 다니며 출신 마을을 분류하고 피해자와 목격자를 정확히 구분하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대상이 선정되면 1시간30분가량 인터뷰한다. 

집단학살, 부상, 폭행, 강간, 사회제도적 탄압 등 피해 상황을 순차적으로 자세히 묻는다. 직접 목격한 학살은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발생 장소와 시간도 확인한다. 마을주민들이 촬영한 현장 사진이나 영상, 또는 진단서가 있으면 함께 수집한다. 부상 부위는 직접 촬영해둔다. 위임장도 함께 받아둔다. 조사를 마치면 영어 녹취록을 제작한다. 

로힝야 조사관들이 자신이 경험한 학살을 조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자쟈는 “인터뷰를 할 때면 (로힝야로서)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고 했다. 무슬림으로 태어나 자라면서 잔혹한 상황을 수없이 마주해왔다.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희생자 숫자를 들을 때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희생된 부모, 형제들을 생각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난민을 붙잡고 계속 질문해야 했다. 구체적인 상황과 희생자 숫자를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난민캠프에서 조사활동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캠프 안 활동은 자유롭지 못하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캠프 내 광범위한 학살 조사를 허가하지 않았다. 아자쟈는 “늘 허가 없이 난민캠프를 다니며 조사하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가 조사관 활동을 계속하는 건 로힝야 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아자쟈는 “우리가 직접 수집한 로힝야 생존자들의 증거와 증언을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길 바란다”며 “이런 증거를 바탕으로 반인륜적인 범죄와 집단학살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기를 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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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내 구역” 뒷짐진 매가 모래밭 가로막았다

“여긴 내 구역” 뒷짐진 매가 모래밭 가로막았다

윤순영 2019. 0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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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해수욕장 터줏대감 다운 당당함과 여유로움 돋보여

 

크기변환_YSY_3585.jpg»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모래 해변에서 만난 매. 큰 짐승이 앞을 가로막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매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매 하면 군산시 어청도에서 고생했던 시간이 떠오른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 해변에 갑자기 나타난 매를 얼핏 보고 황조롱이라고 생각했다. 항구와 주택, 상가가 어우러져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에 매가 나타날 리 없기 때문이다. 황조롱이인 줄 알았던 매는 모래 해변을 선회하더니 훌쩍 사라진다.

 

며칠 지난 1월17일, 다시 찾은 아야진 해변에서 조금 떨어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해변에서 매를 다시 만났다. 문득 ‘저 매가 이곳 해변을 지배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해변을 서너 번 돌더니 태연히 모래 해변에 내려앉는다. 가까이 앉아있지만 모래 턱이 있어 매의 상체만 보인다.

 

크기변환_YSY_3115.jpg» 모래턱에 가려 상체만 보이는 매.

 

조심스럽게 자동차를 멀리 몰아 자리를 옮겼다. 매의 멋진 모습이 온전하게 드러났다. 사방을 살피는 기운찬 모습이다. 사람들이 있는 모래밭에 가까이 앉아 여유를 부리는 모습은 드문 일이다. 매는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고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강하다. 성격도 날카롭고 까다로운 편이다. 

 

어쨌든 필자에게는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좋은 기회가 왔다. 그런데 매가 자리를 뜬다. 멀리 날아가는 것이 아닐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다행히 근처 바위로 자리를 옮겼다.

 

크기변환_YSY_3301.jpg» 매가 모래를 박차고 나간다.

 

크기변환_YSY_3303.jpg» 자리를 옮기고 있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YSY_3313.jpg» 바위로 자리를 옮긴 매.

 

잠시 후 바위에 앉아 있던 매가 자리를 뜬다. 매가 날 때마다 다른 곳으로 멀리 갈까 마음이 불안하다. 그런데 다시 모래밭으로 날아든다. 모래 해변은 매의 차지가 되었다. 이리저리 성큼성큼 걷기도 하고 짧은 거리를 날아가 앉기도 한다.

 

재미나 즐거움을 찾는 행동이다.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인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매를 만나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날아갈까 봐 걱정되는 마음은 여전했지만, 매가 마음껏 촬영하라는 느낌이 들었다. 

 

■ 영역 ‘시찰’ 연속 동작



크기변환_YSY_3334.jpg» 해변가 바위에 앉은 매, 주변을 살핀다.

 

크기변환_YSY_3401.jpg» 스키점프 자세를 잡는다. 자리를 뜰 자세다.

 

크기변환_YSY_3403.jpg» 몸을 앞으로 내밀며 날개를 세운다.

 

크기변환_YSY_3404.jpg» 몸을 내던지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크기변환_YSY_3405.jpg» 매가 낮게 나는 것은 멀리가지 않을 행동이다.

 

크기변환_YSY_3409.jpg» 방향을 틀어 모래밭을 향해 보란 듯 앞으로 달려드는 매.

 

크기변환_YSY_3410.jpg» 필자 앞으로 날아와 모래밭에 내려앉는 매.

 

크기변환_YSY_3411.jpg» 발아래서 모래알이 튀어 오른다.

 

크기변환_YSY_3412.jpg» 모래에 앉는 것도 손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맨땅이 쉽다.

 

크기변환_YSY_3413.jpg» 날개를 자유롭게 움직이며 속도를 조절한다.

 

크기변환_YSY_3414.jpg» 발걸음을 옮기며 속도를 줄인다.

 

크기변환_YSY_3428.jpg» 매는 모래보다 절벽이나 나뭇가지에 앉힐 때 편히 앉을 수 있다.

 

매를 관찰하거나 만나는 일은 매우 짧은 시간에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기회가 오더라도 놓치기 일쑤다. 연출하지 않고 매와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매의 노련한 행동이 눈에 띈다. 이곳 아야진해수욕장과 청간해수욕장 일대를 손금 보듯이 훤히 꿰뚫고 있는 터줏대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하는 대범함에서 세월의 흔적이 풍긴다. 매는 이곳 해변을 앞마당 삼아 노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가 사람 가까이에서 이토록 여유롭게 서슴없이 행동 할 리 없다.

 

크기변환_YSY_3596.jpg» 필자를 빤히 쳐다보는 매. 아주 큰 짐승이 버티고 서 있는 것 같다.

 

크기변환_YSY_3561.jpg» 하늘도 모자라 모래밭까지 지배했다.

 

청간 해변 뒤쪽 암벽 위에는 청간정이라는 정자가 아담하게 서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월출이 장엄하고 밀려오는 파도가 마치 뭉게구름이 일다가 안개로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여 관동팔경 중 손꼽히는 곳이다. 매는 그곳 처마 위에 앉아 있다 모래 해변으로 달려든 것이다.

 

모래 해변에 앉아있던 매가 날아올라 하늘을 선회하더니 다시 내려와 필자 가까이 날아와 앉는다. 갑옷을 두른 듯 한 가로무늬 깃털과 노란 발가락에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검은 발톱이 선명하게 눈에 띈다. 기세가 대단하다. 걷는 모습이 위엄 있고 당당하며, 절제된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매가 오늘따라 더욱 커 보인다.

 

크기변환_YSY_3310.jpg» 하늘을 선회하는 매.

 

크기변환_YSY_3581.jpg» 다시 모래밭으로 내려오는 매.

 

크기변환_YSY_3582.jpg» 모래밭에 앉는 순간이다.

 

매가 늠름하게 걸어서 물가로 향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발걸음이 바쁘다. 설악산 골짜기에서 시작된 천진천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드는 지점에 서서 매는 서둘지 않고 물 서너 모금으로 점잖게 목을 축인다. 다급하게 물가로 다가가서 허겁지겁 물을 마실 줄 알았지만 품위를 유지한다. 청간정 해변의 제왕답다.

 

돌아서더니 물가에서 모래밭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매가 향해 간 곳에는 먹이를 사냥해 먹었던 흔적이 보인다. 매가 모래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영역을 점검하는 행동을 처음 본다.



 물먹는 모습 연속동작

 

크기변환_YSY_3452_01.jpg» 물가로 달음박질하는 매. 목이 무척이나 말랐던 모양이다.

 

크기변환_YSY_3462.jpg» 다급한 걸음이다.

 

크기변환_YSY_3463.jpg» 매가 물가에 도착했다.

 

크기변환_YSY_3466.jpg» 발걸음이 성큼성큼 아주 넓다.

 

크기변환_YSY_3470.jpg» 물이 드디어 발 앞에 있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인상적이다.

 

크기변환_YSY_3471.jpg» 그러나 물에 깊이가 있어야 매가 마실 수 있다.

 

크기변환_YSY_3472.jpg» 물을 마시러 가는 모습이 꼭 사냥감을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크기변환_YSY_3474.jpg» 물에 발을 내딛었다.

 

크기변환_YSY_3492.jpg» 벌컥 벌컥 물을 들이마신다.

 

크기변환_YSY_3493.jpg» 입을 벌려 시원함을 두 배로 만끽한다.

 

크기변환_YSY_3522.jpg» 이제는 됐다.

 

크기변환_YSY_3533.jpg» 물속에서 돌아서는 매.

 

크기변환_YSY_3535.jpg» 빠른 걸음으로 물속에서 나오는 매.

 

크기변환_YSY_3549.jpg» 뒷짐 진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먹다 남은 먹이를 마무리하려고 나타난 것으로 보이지만, 버려진 찌꺼기 조각뿐 먹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이곳을 다시 찾아왔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영역에 사냥 흔적을 지우려고 왔을지도 모른다. 

 

주변을 다니면서 한참 서성이고 살피더니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슬며시 자리를 떠 멀리 사라진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청간정 모래 해변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매는 수리과인 검독수리, 흰꼬리수리에 비해 작지만 겉모습과 행동 그리고 근성과 사냥술 하나하나가 수리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매는 하늘과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꿩 잡는 매’라는 말은 최고의 사냥꾼이라는 의미다.

 

크기변환_YSY_3587.jpg» 먹다 남은 사냥감을 바라보고 있는 매. 

 

크기변환_YSY_3604.jpg» 그러나 먹을 것이 없다.

 

크기변환_YSY_3625.jpg» 이미 먹다 남은 찌꺼기일 뿐이다.

 

흔히 큰 맹금류를 보면 독수리, 작은 맹금류를 보면 매라고 한다. 그만큼 매가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문화속에 뿌리를 내린 결과다. 특히 우리나라 전통 매사냥은 2010년 11월6일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매과에 속하며 몸 길이는 수컷 38∼42㎝, 암컷 49∼51㎝인 중형의 맹금류로 길고 뾰족한 날개와 긴 꼬리를 가졌다. 수리류에 비해 폭이 좁은 날개로 빠르게 날갯짓을 하고 사냥할 때의 순간 속도는 시속 200㎞가 넘는다. 활공할 때는 날개를 수평으로 편다. 

 

번식기 외에는 단독생활을 하며 공중에서 정확한 판단에 의해 속도를 조절하고 숙달된 솜씨로 먹이를 낚아 채 사냥한다. 땅 위의 먹이는 확실한 기회를 포착하여 덮치고 발톱으로 움켜쥐어 잡는다. 한 번 쥐면 놓치는 법이 없다.

 

크기변환_YSY_3413_01.jpg» 당당한 모습의 매.

 

크기변환_YSY_3663_01.jpg» 자리를 뜨는 매. 모래밭에서 잘 놀다가 간다.

 

 

매는 성격이 날카롭고 매서워 사냥에 나선 매가 사냥감을 추적해 몰아세우는 것을 ‘매몰차다’ 하였다. 예민하고 조심성이 많지만 대범하기도 하다. 용맹스러운 사냥꾼의 면모이다.

 

매를 보면서 엄청난 집중력과 시선을 잠시도 흐트러뜨리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가 바람을 가르는 것은 빠른 속도를 의미하지만, 바람을 다스리는 매의 훌륭한 지혜가 사냥꾼의 존재감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오늘 매는 해변가 모래밭에서 한 바탕 즐기는 날이었고 필자는 매를 만난 날이었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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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10명 중 6명, '5.18 망언' 국회의원 제명 "찬성"

[오마이뉴스 주간 현안 여론조사] TK·60대 이상 포함 모든 지역-성별-연령에서 찬성 여론 높아

19.02.13 07:40l최종 업데이트 19.02.13 07:40l

 

 

 5.18 매도 국회의원 제명 찬반 여론조사
ⓒ 봉주영  

 
여야 4당이 5.18 망언을 쏟아낸 자유한국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에 제소한 가운데, 우리 국민 10명 중 6명 이상은 위 국회의원들 제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명 중 5명은 "매우 찬성" 의사를 밝혀 의원직 제명 여론의 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12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1명(8085명 접촉, 응답률 6.2%)을 대상으로 5.18을 매도한 국회의원 제명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질문은 이랬다.

"최근 여야 4당은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매도한 자유한국당 일부 국회의원들을 윤리특위에 제소하고 의원직 제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들 의원들을 제명하는 데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사 결과, 64.3%가 제명에 찬성한다고 답해 반대한다는 응답 28.1%보다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4.4%p)를 넘어 두배 이상 높았다. 특히 "매우 찬성" 49.9%, "찬성하는 편" 14.4%로 나타나 제명 찬성의 강도가 매우 셌다. 반면 제명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매우 반대" 15.7%, "반대하는 편" 12.4%에 그쳤다.

찬성 64.3% vs 반대 28.1%... 세대·성별·지역 뛰어넘어 "의원직 제명 찬성"
 

 5.18 매도 국회의원 제명 찬반 여론조사
ⓒ 봉주영  

 
조사 결과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제명 찬성 목소리는 모든 세대와 성별, 지역에서 높았다.

 

남성의 61.1%와 여성의 67.5%가 제명에 찬성한다고 답한 반면, 반대한다는 의견은 각각 35.0%와 21.3%에 그쳤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전라의 경우 제명 찬성 응답이 82.3%로 압도적이었다. 서울(찬성 69.6% vs. 반대 26.8%)과 경기/인천(찬성 64.1% vs. 반대 28.3%) 등 수도권도 제명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대전/충천/세종과 강원 지역도 제명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각각 54.6%, 56.1%로 과반을 넘겼다.

영남지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구/경북의 경우 의원직 제명 찬성 응답이 57.6%로, 반대 32.8%를 훌쩍 앞섰다. 부산/경남/울산도 찬성 57.2% - 반대 29.5%로 나타나 대구경북과 결과가 비슷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의 68.1%, 30대의 74.6%, 40대의 79.1%가 의원직 제명에 찬성한다고 밝혀 일방적인 수치를 보였다. 50대 응답자도 56.7%가 찬성 의사를 밝혀 반대 31.3%보다 넉넉히 높았다. 전통적으로 보수·범야권 핵심 지지층으로 분류되는 60대 이상 응답자 역시 찬성 49.9% - 반대 40.4%로, 찬성이 반대 응답보다 오차범위를 넘어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도층도 제명 여론

지지 정당에 따라서는 갈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의 97.9%, 민주평화당 지지자의 81.6%, 정의당 지지자의 80.3%가 의원직 제명 찬성 의사를 밝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지지자의 경우 반대로 70.7%가 반대 의견을 밝혀, 찬성 19.6%보다 거꾸로 압도적이었다. 바른미래당 지지자의 경우도 제명 반대 56.5% - 찬성 28.0%로 반대가 월등히 많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자신이 무당층이라고 답한 응답자의 경우 52.0%가 의원직 제명 찬성 의사를 밝혀 반대 22.9%보다 훨씬 높았다. 즉, 중간층 여론 역시 의원직 제명에 기운 것인데, 이런 모습은 이념성향별 분석에서도 나타났다.

스스로를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의 90.4%는 의원직 제명 찬성을, '보수'라고 답한 응답자의 56.0%는 반대 의견을 밝혀 서로 갈렸다. 그런데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의 63.8%, 또 모름/무응답자의 62.3%가 해당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제명에 대해 찬성 의사를 밝혀 반대보다 월등히 높았다.

이번 여론조사는 무선 전화면접(10%)·무선(70%)·유선(20%) 자동응답(ARS) 혼용 방식으로 집계됐으며, 조사 대상은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식으로 선정했다. 통계 보정은 2019년 1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 기준 성·연령·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을 따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망] 국민 다수는 확실히 "제명" 쪽... 실제 이뤄질까?
 
 왼쪽부터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  왼쪽부터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자유한국당 의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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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사에서 확인되듯이, 5.18 망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에 대해 국민 다수의 여론은 확실히 분노를 넘어 명확한 처리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해당 의원 3명의 제명은 현실에서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예 '불가능'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여야 4당은 12일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징계안 발의는 현역 국회의원 20명의 동의만 받으면 가능하다. 해당 징계안이 상정되면, 우선 외부 인사가 포함된 윤리심사자문위에 요청해 자문을 받는다. 이후 윤리특위 전체회의를 거친 후 징계심사소위, 다시 윤리특위 전체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그 다음 국회 본회의에 제명안이 상정된다. 제명안은 국회의원 징계안 중 가장 수위가 높은 안이다.

문제는 윤리특위가 움직이지 않으면 징계 자체가 무의미해진다는 데 있다. 징계안이 상정되고 윤리심사자문위가 윤리특위의 요청을 받으면 두 달 안에 의견을 제출하도록 돼 있지만, 징계안 의결에 대한 시한은 정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26건의 국회의원 징계안 가운데 단 1건의 징계안도 윤리특위를 넘지 못했다. KBS '취재K' 보도에 따르면, 1991년 이후 현재까지 발의된 국회의원 징계안은 224건에 이르지만 본회의 회부는 1건에 불과하다. 

특히 국회 윤리특위는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더구나 윤리특위에는 서영교(민주당) 의원, 손혜원(무소속) 의원, 최교일(한국당) 의원, 심재철(한국당) 의원 등의 징계안이 올라와 있다. 5.18 망언 제명건이 '패키지'로 논의될 경우, 징계안 처리에 난항이 예상된다. 결국 3명 의원 제명이 현실화 되기 위해서는 윤리특위 관문을 넘는 게 1차 관건이다.

설령 윤리특위를 넘는다해도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2/3 이상 의원들의 찬성을 얻어내야 한다. 현재 국회 재적 298석 중 최소 199표를 모아야 제명안 통과가 가능하다. 더불어민주당(128석)·바른미래당(29석)·민주평화당(14석)·정의당(5석)을 모두 합해도 176석이다. 민중당(1석)과 무소속(7석)을 모두 합쳐도 184석이다. 산술적으로 보자면 자유한국당에서 최소한 15석을 끌어와야 제명안 처리가 가능한 것이다. 바른미래당 및 무소속 이탈표 등을 감안하면 '반란표 20석'은 가져와야 통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12일 MBC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5.18망언 3인방 제명과 관련 "한국당 20여명 의원들의 협력이 있다면 국회가 청소되고 5.18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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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②]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이석기 전 의원은 정치범, 빨리 석방돼야지”

[인터뷰] “내란음모 사건은 정치적 탄압, 문 대통령도 풀어주고 싶을 것”

고희철 보도국장
발행 2019-02-13 00:06:54
수정 2019-02-13 09: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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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편집자주ㅣ 한반도 정세 대전환 속에 맞이하는 3.1운동 100주년. 시민단체와 국제사회에서는 해묵은 과제인 양심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인권존중과 나라다운 나라 건설을 표방한 ‘촛불정부’의 색채가 묻어나는 3.1절 특사가 이뤄질지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오랜 기간 민주화운동을 해온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정치범을 놔두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면서 “이석기 전 의원뿐만 아니라 모든 정치범, 양심범을 석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헌영 소장을 인터뷰한 12일은 마침 자유한국당의 ‘5.18 모독 공청회’ 후폭풍으로 종일 온 나라가 들썩인 날이었다. 역사 문제를 천착해온 그에게 이 문제를 먼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임 소장은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이미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선진국은 두 가지 요건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먼저 꼽은 선진국의 요건은 ‘세계시민의식’이다. “평화, 민주주의, 인권, 세계사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국민소득보다 중요한다”는 것이 임 소장의 주장이다. 세계시민의식을 갖춘 이들이 80%가 넘어야, 이에 역행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이 20%보다 적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는 지론을 폈다. 

극우인사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에 대해 임 소장은 “어떻게 저런 말을 하고 사회 지도자급 인사로 대우를 받는가? 유럽 가면 범법자로 기소되고 실형 받는다”면서 “이런 걸 용납하는 사회도 부끄럽고,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도 부끄럽다”고 개탄했다.

임 소장이 두 번째로 꼽은 선진국의 요건은 바로 ‘정치범이 없는 나라’였다. 그는 “해산된 통합진보당이 불법이다? 선진국이라면 이걸 상상할 수 있겠나”라며 “3.1절을 맞아서 이석기 전 의원 등 정치범을 사면한다, 안 한다 하는데 정치범은 원래 없어야 한다. 언제든 빨리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범 없는 나라가 선진국 
5.18에 북한군 들어왔다는 식의 주장이 진짜 국가 위협“
 

그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이른바 ‘나치 금지법’ 또는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으로 불리는 법률이 있음을 지적했다. 임 소장은 “독일이든 어느 나라든 나치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런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가 나치화, 파시즘화 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파시즘적 주장을 규제할 법안이 우리나라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내 생각 그대로 말하자면 그게 일종의 국가보안법이다”라고 말을 던졌다. 이어 “과거 국가보안법에서 국가는 이승만, 박정희 독재국가여서 독재자를 위협하는 것을 곧 국가 위협으로 봤다”면서 “이제는 국가 개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사회를 망치고 위협한다는 것도 ‘철지난 이야기’라는 설명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로 변모하면서 국민복지와 인권,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진짜 국가 위협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어 “5.18 광주에 인민군이 들어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바로 국가를 위협하는 것”이라며 “이보다 더 해로운 반민주적, 반시민적 발언이 어디 있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오히려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임헌영 소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문인간첩단 사건과 남민전 사건, 두 차례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됐다. 이중 문인간첩단 사건은 지난해 6월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돼 44년 만에 누명을 벗은 바 있다. 오랜 기간 정치적 박해를 당했지만 진보적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2003년부터는 민족문제연구소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평생 민족통일과 민주주의를 지향해온 그에게 한반도 대전환을 지켜보는 감회를 물었다. 그는 “20세기는 민족사에서 가장 불행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식민지, 동족상잔, 분단, 냉전, 군사독재로 이어진 20세기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번영 정책을 대단히 호평했다. 임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근대사 이후의 흐름을 바꿨다”면서 “동학혁명도, 3.1운동도, 4.19혁명도 못 바꾼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지식인과 국민들은 이런 시대가 올 때까지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탄압하고 가해한 자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일침을 날렸다. 임 소장은 “나라 팔아먹은 사람들, 독재하고 수탈한 사람들, 전쟁 안 해도 되는데 전쟁한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들에게 참회하고 새로운 평화시대를 맞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름 뒤에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로 종전선언, 연락사무소 설치, 제재 완화, 나아가 평화협정까지, 이전에는 거론하기도 힘들었던 방안이 버젓이 보도되고 있다. 2013년 이석기 의원은 국회에서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그러나 당시 이 제안은 불온하거나 황당한 주장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임 소장은 이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당시에도 합당하고 합헌적인 주장이었다”면서 “우리 헌법은 남북의 평화통일을 명시하고 있지, 전쟁이나 북한 비판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을 해체한 것은 당시 헌법에도 위배되는 것이고 (이석기 전 의원)재판도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면서 “박근혜 정권의 정치공학적인 작용에 의한 것이지 법률 위반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견해를 분명히 했다.  

“이석기 전 의원은 명백한 정치범, 풀려나야” 
“문재인 대통령도 잘 알고 있고 석방시켜주고 싶을 것”
 

임 소장은 “이석기 전 의원은 명백한 정치범이고, 그러므로 풀려나야 한다. 이미 산 징역도 대단히 억울한 징역이다”라고 못을 박았다. 이 전 의원은 내란음모는 무죄를 받았으나 내란선동 유죄로 9년형을 선고받고 2013년부터 6년째 수감 중이다. 임 소장은 “정치범은 정치하다 투옥된 사람이 아니라 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 개념으로는 ‘확신범’에 해당하는 이들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이 12일 서울 종로구 한국산문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슬찬 기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의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으나 시국사범이 포함될 것인가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권 시절 ‘내란범’으로 낙인찍힌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이 최대 쟁점이다.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이 전 의원이 억울한 면이 있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보수야당과 일부언론 등의 정치공세를 걱정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에 대해 임 소장은 “그런 것을 봐주니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 하나를 찍어서가 아니라 정치범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라며 “누구는 안 돼, 무슨 사건은 안 돼 라는 논리는 틀렸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임 소장이 대통령의 ‘의지’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대통령이나 여당도 석방시켜주고 싶을 것”이라면서 “반대세력의 비난으로 시끄러워지는 것 등 세부적 문제를 계산하겠지만 원칙을 지키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나 정부여당이 나보다 더 깊이 생각할 것”이라며 “나는 출마도 안 할 사람이니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그 분들은 언론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마 내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다 안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소장은 시민사회와 국민들에게 “정부가 의지가 있으니 평화번영을 바라는 모든 이들이 정부에게 힘을 모아주면 정부도 좋고 국민 모두에게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당부했다.

오랫동안 애정을 갖고 지켜본 진보정당에게는 ‘반성’과 ‘화해’를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을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건 ‘코미디’라며 유럽 가면 중도도 될까 말까한 보수당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세계 진보세력은 다 분열돼서 망했다. 진보정치세력이 똑똑할수록 진보정당이 안 된다”면서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아도 분열되면 다 무너진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런 교훈이 있기에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서 잘하면 어제의 원한을 씻고 힘을 합쳐서 뭉칠 수 있다고 본다”면서 “전쟁한 남북도 화해하는 판에 왜 반성하고 화해 못 하겠나”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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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이냐 '스몰딜'이냐, 트럼프의 결정에 주목

[정세현의 정세토크] 새로운 판을 짠 북한, 미국 호응할까
2019.02.13 08:23:34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난 6~8일 평양에 방문해 북한과 실무협상을 진행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및 여야 대표단을 만나 "양측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견을 좁히는 것은 다음 회의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 6일부터 2박 3일동안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 특별대표와 가진 협상에서 북미 모두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다자협상을 언급했다. 이건 비핵화를 단계적‧동시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핵화만 떼놓고 할 수는 없지 않냐는 뜻"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는 평화체제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등이 비핵화와 무관하지 않으니, 비건 특별대표가 들어온 김에 이 부분에 대해 전체 그림을 그리자고 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이건 기존의 협상과는 다른 새로운 판을 짜자는 이야기"라며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구체적 방안을 실무자들이 진행하는 후속협상에 맡겼더니 비핵화 이야기만 하고 평화체제 문제나 북미관계 수립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연계시키는 판을 짜자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북한은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는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북미관계 개선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결국 북미 간 핵심은 대북제재의 완화 또는 해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반출하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고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의 '스몰 딜'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는 비핵화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도가 나간 것이고 평화체제나 새로운 북미관계와 관련해서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그친 것"이라며 "미국은 이같은 주고 받기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한 것 같은데 여기서 북한이 비건 방북을 계기로 엎어치기를 한 것 같다"고 관측했다.  

그는 "결국 북한이 비건에게 숙제를 많이 내준 셈인데, 북한과 스몰딜이 아닌 '빅딜'을 할 것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해야 한다. 미국에 공이 넘어간 것"이라며 "다음주로 예정돼있는 비건 특별대표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간 실무 협상 때 일부 답을 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인터뷰는 12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지난 6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에 들어가 직접 실무협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 계기가 됐을까요?  

정세현 : 비건 특별대표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났을 때 생산적인 회담을 하고 왔다고 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는걸 보면 협상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미국이 생각했을 때 성과는 별로 없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개 외교적 수사의 이면에는 근사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진지하게 토론했다'는 건 양측이 서로 할 말 못할 말 다했다는 뜻이거든요. 비건 특별대표는 비핵화 프로세스에서 북한의 '통 큰 양보'를 이끌어내려고, 즉 혹을 떼려고 갔는데 오히려 혹을 붙이고 나온 것 같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월 1일 신년사에서 다자협상을 언급했습니다. 이건 비핵화를 단계적‧동시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핵화만 떼놓고 할 수는 없지 않냐는 뜻입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평화체제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등이 비핵화와 무관하지 않으니, 비건 특별대표가 들어온 김에 이 부분에 대해 전체 그림을 그리자고 했을 겁니다. 

이건 기존의 협상과는 다른 새로운 판을 짜자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구체적 방안을 실무자들이 진행하는 후속협상에 맡겼더니 비핵화 이야기만 하고 평화체제 문제나 북미관계 수립 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연계시키는 판을 짜자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걸 연계시키려면 북한 입장에서는 종전선언이 필요하고 그 다음에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다자협상을 시작해야 합니다. 또 북미관계의 개선과 관련해서는 연락사무소 개설 이후 수교로 가는 동안 양국 간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제재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과정들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지난 1월 3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논평에서 북미 간 "관계개선과 제재는 절대로 양립될 수 없다"면서 "관계개선의 기초가 존중과 신뢰라면 제재의 기조는 적대이고 대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비건 특별대표가 북한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자신들은 제재 완화를 요구하겠다는 뜻을 내보인 겁니다. 제재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북미관계 개선으로 나가기 어렵고 평화체제는 시작도 할 수 없으며, 비핵화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보입니다. 

2차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실험장을 폐기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반출하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고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등의 '스몰 딜'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는 비핵화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도가 나간 것이고 평화체제나 새로운 북미관계와 관련해서는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그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미국은 이같은 주고 받기를 통해 성과를 내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는 전략을 세운 것 같은데, 여기서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지난 6~8일 회담에서 엎어치기를 하면서 판을 키운 것이죠. 비건 특별대표의 2박 3일 방북 과정에서 이른바 '빅딜'로 갈 수밖에 없는 북한의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을 겁니다.  

결국 북한이 비건에게 숙제를 많이 내준 셈인데, 북한과 '빅딜'을 할 것인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해야 합니다. 미국에 공이 넘어간 것이죠. 미국은 다음주로 예정돼 있는 비건 특별대표와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 간 실무 협상 때 일부 답을 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협상에 대해 희망적인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을 보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적 여론을 띄워 놓았는데, 자신이 한 말을 이행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회담에서 일정한 성과를 내야 합니다. 북한은 이를 이용, 자신들의 제재 완화나 해제 요구를 회담 성과와 연계시켜 밀어붙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 2박 3일 동안 평양에서 북한과 실무협상을 마치고 남한을 찾은 스티븐 비건(왼쪽)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9일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북한은 사실 북미 정상회담이 실패하더라도 내부적으로 그렇게 큰 문제가 없는 체제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다릅니다. 그렇게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요구를 받아주는 식으로 갈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하면 경제적으로 밝은 미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즉 북한에 돈을 쓰면 다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북한은 목구멍이 포도청인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북한은 소위 말하는 '경제적 동물'(Economic Animal)이 아닙니다. 미국은 채찍을 휘두르면서 경제적 비전이라는 당근을 보여주면 북한이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북한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았던 겁니다.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이 비자본주의 국가이자 비서양문화권인 북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깔고 지금까지 진행해 온 것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 미스인 셈이죠.  

사실 북한과 베트남은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베트남은 미국에 끝까지 저항했고 결국 미국도 손들게 만들었던 국가입니다. 그런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던 싱가포르보다는 베트남 하노이가 훨씬 상징성이 크죠.  

북한, 하노이를 택한 이유는 

프레시안 : 정상회담의 장소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쭤보자면, 사실 미국 입장에서도 베트남이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요? 베트남이 소위 '자유 세계'에 들어오게 되니까 이렇게 잘 살게 되지 않았냐는 걸 북한에 보여줄 수도 있고요.  

정세현 : 물론 미국은 베트남의 현재 경제적 상황을 북한에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베트남의 자주성을 더 강조할 것입니다. 

북한은 항미 전쟁에서 성공한 롤 모델로 베트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월맹이 미국을 굴복시켜서 결국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았습니까? 

북한은 이러한 베트남의 역사가 자신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국제적 제재와 압박 속에서 끈질기게 저항해서 핵과 미사일을 만들고, 결국 미국과 일대일 회담을 하게 됐다면서 말입니다.  

즉 미국을 손들고 나가게 만든 베트남의 수도에서 미국의 수뇌부와 회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김정은 입장에서는 금수산 태양궁전에 가서 보고해야 할 사안입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해결하지 못했던 일을 자신이 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미국도 이러한 점을 의식했을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을 다낭으로 끌고 가서 베트남이 개혁 정책을 통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미국의 말을 잘 들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려 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았죠. 북한은 돈에 홀려서 가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라도 다낭은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미국이 하노이보다 상대적으로 다낭을 선호한 이유가 중국을 의식했다는 관측도 있습니다.  

정세현 : 지난 1960년대 소련과 중국이 사이가 좋지 않았을 때 소련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베트남과 손을 잡았죠. 중소 국경 분쟁까지 있던 상황에서 중국을 밑에서부터 압박한다면 중국의 전력이 분산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와 유사해 보입니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명분으로 인도양으로 진출하면서 사실상 이쪽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런 와중에 미국이 베트남까지 가서 북한과 수교할 수 있는 단계적‧동시적 행동을 한다면 이는 중국 견제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베트남과 북한이 노골적으로 반중친미로 갈 수는 없지만 중립적으로만 되더라도 미국으로서는 훨씬 유리한 상황인 것이죠.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베트남에 국빈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요. 

정세현 : 김 위원장이 개혁개방을 한다고 하면 베트남식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에 국빈방문은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 베트남을 롤 모델로 삼으려고 한다면 앞으로 경제 분야에서의 실무 협력을 심화시켜야 합니다. 서로 파견 요원도 늘리고 연수단도 왔다갔다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 ⓒAFP=연합뉴스


또 북한 입장에서는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일 때 어떤 점을 조심해야 할지에 대해 베트남으로부터 배워야 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네바 합의 이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의정서(합의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는데요. 북한에서 여기에 혹시 독소 조항은 없는지 확인하느라 늦어진 겁니다. 이런 부분에서 북한은 베트남에게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받을 필요가 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 개발과 관련한 내용을 베트남으로부터 배우려는 것은 국제사회에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그렇죠. 북한은 그 대가로 비핵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 차제가 북한이 비핵화에 의지가 있다는 반증으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 통해 내놓을 결과물은  

프레시안 : 트럼프 대통령이나 미국 정부는 비핵화가 없으면 대북 제재 완화는 없다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제재를 둘러싸고 상당한 입장 차가 있기 때문에 회담 동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에 대한 면제를 통해 어느 정도 접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정세현 : 북한이 비핵화 속도를 내고 장차 제재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희망을 주려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에 대한 면제를 고려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경우 유엔 안보리의 마지막 제재가 나온 2017년 12월 이전에 이미 한국 정부에 의해 이뤄진 조치이기 때문에 면제 조치를 하기에도 나쁘지 않은 상황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 역시 단순한 의지 표현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미 간 연말 즈음부터 꾸준히 물밑협상을 했을 거고 그 과정에서 이 문제에 대한 가능성을 본 것 같습니다. 즉 미국 측으로부터 일정한 언질을 받았다든지, 확답까지는 아니지만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이 나온 것이 있었기 때문에 김 위원장이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러면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은 양측이 어느 정도 합의했다고 보고, 지금 '플러스 알파'를 논의하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정세현 :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북한에 들어간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여기에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가동 이상으로 미국이 제재와 관련해 북한에 뭔가를 더 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로저스는 현금을 가지고 들어가서 투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북한에 간다는 것을 트럼프가 막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상당하죠. 사실 돈이 움직이는 곳에는 평화가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물론 미국도 그냥 내주지는 않을 겁니다. 즉 북한에 비핵화에 대해 뭔가 하나 더 내놓으라고 하겠죠. 결국 서로 계속 플러스 알파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에 회담 한 번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을 겁니다. 사실 북한의 비핵화만 해도 지난 25년 동안 상당한 부침을 겪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정책이 북한의 선(先)행동 요구로만 전개되다가 중간에 적당한 핑계대고 없었던 일로 만드는 과정에서 북핵의 능력이 고도화됐고 판이 커지긴 했지만요.  

어쨌든 비핵화 문제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번에는 평화체제 구축 문제와 새로운 북미관계를 설정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또 북한은 이 부분에 대해 철저한 단계적‧동시적 행동을 일관되게 주장해왔습니다.  

그런데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 1월 31일(현지 시각) 스탠포드에서 '동시적·병행적' 입장을 보였고 대통령이 종전 준비가 돼있다면서 종전선언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또 연락사무소 설치와 인도적 지원 등도 언급했습니다. 이는 나쁘지 않은 신호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올해 안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또 만날 수도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미국은 비핵화를 어느 정도 하면 제재를 어느 정도 풀겠다는 식으로 갈 겁니다.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가면 제재 완화를 끌어내기 위해 또 회담을 해야 하고요.  

이런 부분을 실무협상에서 논의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이 가져오는 미국 국내에서의 정치적 파급효과를 생각하면 트럼프는 몇 번 정상회담을 더 해야 합니다. 즉 이렇게 치고 나가면서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죠. 그렇게 계속 북미 정상회담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건 마음먹기에 따라 상당히 오래 우려먹을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내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은 지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레버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평화협정의 서명 당사자로 중국을 넣어주느냐 마느냐도 사실상 미국이 결정하게 돼있는 상황입니다. 또 미북 간 관계개선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일본이 몸이 달았습니다. 이것 역시 미국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안입니다.  

게다가 지금 미국은 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중국과 경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이번 한 번으로 북미 회담이 끝나서는 안됩니다.  

이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북미 간 대화가 계속되도록 중재자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새롭게 구축되는 동북아 질서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등극해야 합니다. 물론 지금이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동안은 미국과 소련이 짜놓은 냉전 구조에서 수동적이었는데 이번에는 능동적으로 행위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겁니다.  

프레시안 : 북미 간 관계 개선으로 동아시아 질서가 바뀌게 되면 향후 동아시아의 공동 안보라는 개념도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이게 한국전쟁에 대한 평화협정 체결과 연결되는 문제인데요.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군비 통제로 시작해서 감축으로 가야 합니다. 감축은 북한에도 적용되지만 우리도 해야 합니다. 상호적으로 가야하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군비 감축을 하려면 주한미군뿐만 아니라 무기 문제도 거론될 수 있는데, 그러면 미국이 가지고 있는 전략자산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주요 쟁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자신들도 빠지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그렇다면 평화협정은 남북미중 4자로 가야하는데 이렇게 시작은 할 수 있으나, 실제 항구적인 평화 보장 체제를 만들려면 러시아와 일본도 여기에 대해 지지하는 공동선언문을 낸다는 식의 보장 조치를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의 안보 협력체를 만들자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한반도에서의 이같은 안보 협력을 동아시아까지 발전시키려면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밀접하게 연관돼야 합니다. 유럽연합(EU)도 기본은 경제였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가 과연 이같은 경제적 협력관계로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고요. 

또 1970년대 헬싱키 프로세스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객관적으로 소련의 힘이 위축되던 때였습니다. 미소간 패권 경쟁이 심화되던 때가 아니었죠. 지금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의 힘이 계속 부상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즉 미중 간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와중에 경제 및 안보 협력체가 수월하게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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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는 미국의 비극

[아침햇살12]새로운 길을 찾지 못하는 미국의 비극
 
북미대결, 사람 숭배와 돈 숭배의 대결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9/02/12 [09:35]  최종편집: ⓒ 자주시보
 
 

북미대결의 역사에서 미국은 과연 교훈을 찾았을까?

 

30여 년 북미 핵대결의 역사를 보면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사대결과 협상이 반복됨을 알 수 있다. 미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을 공격할 것처럼 군사적 위협을 극도로 끌어올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협상에 돌입, 일정한 합의를 한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 또 똑같은 행위를 반복한다. 왜 미국은 역사에서 교훈을 찾지 못하고 이런 실패를 반복하는 것일까?

 

좀 더 역사를 거슬러 가보자. 북한과 미국이 처음으로 정면 대결한 것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5일 오산전투에서다. 오산전투의 내용은 위키백과에도 자세히 나온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맥아더 사령관의 명령으로 7월 1일 주일 미8군 제24사단 21연대 제1대대가 부산에 상륙했다. 이 대대는 찰스 스미스 중령이 이끄는 스미스특수임무부대로 여러 전투에서 명성을 떨치던 부대였다. 제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은 스미스 중령에게 오산 북방에서 북한 인민군을 방어할 것을 명령했고 7월 5일 새벽 3시 경 스미스부대는 방어 진지에 도착, 전투 태세를 마쳤다. 이때만 해도 미군의 사기는 높았고 맥아더 사령관은 미군 지상군이 투입됐다는 것만 알려져도 북한 인민군이 도망칠 것이라고 여겼다. 

 

아침이 되자 북한 인민군이 나타났고 첫 교전이 시작됐다. 스미스부대는 인민군 전차를 향해 포를 퍼부었지만 인민군 전차는 스미스부대를 무시하고 계속 남하했다. 일부 파괴된 전차에서 내린 인민군 병사의 공격에 첫 미군 전사자가 나왔지만 다수의 전차가 보병 진지를 지나쳐갔고 미군은 “인민군이 우리를 못 알아봐서 그냥 지나갔다, 미군이 왔다는 사실을 알면 되돌아갈 것이다”며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전차에 뒤이은 인민군 제4사단 주력부대가 쓸어 닥치면서 540명의 스미스 부대원 중에 150명이 전사하고 장교 5명이 실종, 82명이 포로로 붙잡히는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미군 장비 대부분도 빼앗겼다. 반면 북한 인민군 전사자는 42명에 불과했다. 

 

미군의 오산전투 참패는 이후 북미대결의 전형이 되었다. 맥아더의 후임인 리지웨이 사령관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스미스부대의 참패는 맥아더의 판단 잘못과 오만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자신의 힘을 믿고 북한을 과소평가하는 주관주의를 범했으며, 북한은 미군의 위세에 움츠러들지 않고 높은 기세와 면밀한 전술로 상대를 대했다. 

 

이후 대전전투에서는 윌리엄 딘 소장이 인민군 포위망에 걸려 길을 잃고 헤매다 포로로 붙잡히는 참사가 발생했다. 역설적이게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대장이었던 딘 소장은 “전투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것은 적에게 포로로 잡히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진 인물이었다. 사단장이 전쟁 중 포로가 된 것은 미군 사상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한국전쟁 초반 참패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한국전쟁 내내 주관주의를 버리지 못했다. 맥아더 사령관은 1950년 10월 15일 트루먼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중국의 참전 가능성이 극히 적다며 전쟁을 11월 23일 추수감사절까지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맥아더의 추수감사절 공세는 한국군 제6사단과 미군 제8기병연대의 와해를 비롯한 막대한 피해로 끝이 났다. 그러고도 맥아더 사령관은 전황 파악을 못하고 11월 24일 크리스마스 공세 작전을 명령, 바로 다음날부터 북한 인민군의 총반격에 묵사발이 되고 말았다. 당시 미 제2사단은 완전히 와해돼 사단장이 직위해제됐고 장진호 전투에서 미 제1해병사단은 1만2천명 가운데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상을 겪었다. 

 

▲ 장진호 전투의 한 장면 [출처: 유튜브]     © 자주시보

 

미국의 오판은 정전협상 중에도 계속되었다. 새로 사령관이 된 클라크는 “공산주의자들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하나도 힘이요 둘도 힘이며 셋도 힘이다”며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미군은 정전협상장에서 일방적 휴회선언을 하고 퇴장해버렸다. 때마침 새 대통령에 당선된 아이젠하워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한 새로운 공세를 요구했다. 이에 클라크는 1953년 1월 25일 강원도 철원 역곡천 부근 T자형 고지에서 갈기작전(SMACK operation)을 개시하였다. 

 

미군은 동맹국 고위 인사들과 기자들을 초청했으며, 전투 시나리오가 담긴 칼라 팸플릿도 나눠주었다. 성공적인 전투작전을 홍보하여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군사지원을 요구할 구상이었던 것이다. 공군은 112톤의 폭탄을 투하했고, 탱크는 7만7천 발의 포탄을 발사했으며, 포병은 11만2천 발의 포를 발사했다. 4천5백 발의 박격포와 5만 발의 기관총알, 650개의 수류탄이 날아갔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미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남긴 채 후퇴하였다. 기자들은 정부 고관들을 초청해놓고 참패한 전투에 대해 혹평을 하였다. 북한은 이 고지가 T자형으로 생겼다고 하여 정형(丁形)고지 전투라 부른다. (Walter G. Hermes, 『Truce Tent and Fighting Front』, 1966, p385~389)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군이 왜 한국전쟁에서는 이런 수모를 겪었을까? 거듭된 패배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군이 절대 미군을 이길 리 없다는 주관주의 때문이었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전후에도 이어진다. 북한을 석기시대로 돌려놨기에 100년이 가도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 장담했지만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사회주의 공업국으로 성장(1970년 노동당 제5차 당대회에서 선포)하였다. 푸에블로호 사건(1968년), 전자정찰기 EC-121와 헬리콥터 OH-23G 격추사건(1969년), 판문점 도끼사건(1976년) 등 전쟁위기가 다시 도래했을 때도 미국은 당장 전쟁을 개시할 것처럼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들을 한반도에 집결시켰다가 결정적인 순간 전쟁을 포기해 전 세계에 망신을 당했다. 미국은 매번 당하고도 북한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북미 핵대결에서도 마찬가지다. 1993년 영변 폭격 직전까지 갔던 미국은 전쟁 시뮬레이션을 해보고서야 비로소 전쟁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후퇴하였다. 갑작스런 미국의 후퇴에 세계는 당황하였고 심지어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기가 전화로 전쟁을 반대한 덕분이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하였다. 1998년에는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곧 망할 것이라 여기며 금창리 지하시설 소동을 벌이다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결국 꼬리를 내리고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군사적 대결에도 밀리고 협상에도 밀리자 2005년에는 대북 금융제재를 통해 새로운 대결을 해보려다가 결국 북한의 핵시험에 놀라 테러지원국 해제를 하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미국은 패배를 반복하면서도 그간 아무런 교훈을 찾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미국의 제국주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

 

지난해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을 보며 일각에서는 미국이 기나긴 북미대결 과정에서 드디어 교훈을 찾고 새로운 길을 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새로운 길로 이끌고 가는 지도자라며 환상을 품기도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해 일으킨 착각이다. 

 

미국은 대중을 기만하기 위한 심리전에 능하다. 미국은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에서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대통령의 평양 방문까지 약속해 많은 이들을 기대에 부풀게 하였다. 그러다 부시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북미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며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과연 그럴까? 

 

2000년 북미공동코뮤니케의 미국 측 주역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은 트럼프 취임 직후인 2017년 3월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이 필요하다, 아주 촘촘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해에는 새로 출간한 책을 통해 북한을 ISIS(이슬람국가)에 비유하며 독재국가라고 비난하였다. 북미대화에 대해서는 북한의 ‘거짓말과 허황한 약속들’을 경계하라며 마치 자신이 과거 협상에서 속았다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사실을 따지자면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북미공동코뮤니케 이행을 안 한 건 미국이었음에도.

 

▲ 매들린 올브라이트 [출처: 세계경제포럼]     © 자주시보

 

올브라이트의 언행을 보면 과연 당시 미국의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고 해서 북미공동코뮤니케가 제대로 지켜졌을지 의문이다. 미국은 그저 북한을 속이고 시간을 벌기 위해 공동코뮤니케를 합의한 것 아니었을까?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최초의 흑인(정확히는 흑백 혼혈인 물라토) 대통령이라며 환상을 품은 이들도 있었다. 미국은 그저 전임 부시 정권의 막무가내식 외교로 인해 동맹국 사이에서 고립되자 ‘스마트 외교’를 내세워 동맹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세계 평화나 한반도 평화를 위해 뭘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예멘, 소말리아, 리비아, 이라크, 시리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미국 역사에 전쟁 대통령으로 남았으며 북한에 대해서는 ‘전략적 인내’라는 미명 아래 대화를 거부해 임기 내내 한반도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 정치인 출신에 돌출발언과 돌발행동으로 인해 종잡을 수 없다보니 온갖 예측과 환상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집권하자마자 북한을 상대로 핵항공모함을 세 척이나 투입해가며 전쟁을 추진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전쟁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닫고 대화로 돌아선 것도 똑같다. 다만 이번에는 곧바로 정상회담을 했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과 달라서가 아니라 북한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통해 전략국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연 미국이 이번에는 교훈을 찾고 새 길을 걷는 것인지 우리는 정확히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이미 주한미군 철수나 남북통일 승인을 정책으로 수립했다며 이후 한반도 정세가 순조롭게 풀릴 것으로 예상한다. 반면 다른 한 편에서는 여전히 한반도 정세는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대북적대정책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그 수위와 형태만 조절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설사 북한의 힘에 밀려 종전선언을 한다 해도 평화협정 체결을 피하기 위해 다른 공작을 펼칠 수 있다. 심지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남북통일이 이뤄진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구 소련을 붕괴시킨 것처럼 장기간에 걸쳐 공작을 펼 수 있다.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대응도 완전히 달라진다. 

 

미국은 왜 교훈을 찾지 못하는가

 

만약 미국이 북미대결에서 교훈을 찾았다면 더 이상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패권을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패퇴는 동북아 패권의 몰락으로 이어지며 세계 패권의 유실로 귀결된다. 미국은 이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패권, 이권을 결코 놓지 못하는 속성은 독점자본의 돈에 대한 독점적 욕망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국가독점자본주의 국가로 독점자본이 국가를 직접 움직이는 나라다. 독점자본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패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결국 이 문제는 사람과 돈의 관계 문제다. 독점자본은 돈을 절대화하고 숭배하며 사람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는 일부 독점자본가의 성향 같은 게 아니라 독점자본의 기본 생리이며 존재를 규정하는 출발점이다. 독점자본은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모으려고 하며 만약 이를 포기하면 경쟁에서 밀려 다른 자본에게 먹히고 만다. 억만장자들이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모습은 약육강식의 정글 세계와 같다. 

 

자본주의의 치명적 문제는 결국 독점자본가도 돈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점이다. 돈을 통해서는 행복을 느낄 수 없고 존경받을 수도 없다.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의 재산을 잃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더욱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돈으로 일시적인 만족은 느낄 수 있지만, 그리고 남들의 부러움을 살 수는 있지만 행복은 느낄 수 없으며 존경도 받을 수 없다. 돈이 많으면 남들이 자기를 숭배하기를 원하며 남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그리고 자기 심기를 거스르면 가차 없이 짓밟는다. 땅콩회항 사건을 떠올려보자. 

 

독점자본가에게 존경이나 행복이란 개념은 없으며 오로지 타인의 부러움과 공포심만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어느 순간 돈은 숫자에 불과하게 된다. 자기 재산 뒤에 0이 하나 더 붙든, 덜 붙든 자기 삶에서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점을 포기할 수는 없다. 독점을 포기하는 순간 도태된다. 끊임없이 자신의 몸집을 불려야 한다. 이것이 독점자본의 운동 방식이며 자본가가 자본의 노예가 되는 원리다. 

 

돈을 숭배하고 사람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사상이 바로 미국의 사상이다.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돈을 수단으로 여기는 사상으로 바뀌지 않고서는 미국이 올바른 교훈을 찾을 수 없다. 

 

우리 민족과 미국은 사상이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사상은 무엇일까? 우리 민족의 전통 사상은 인내천과 홍익인간이다. 인내천이란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뜻이며 홍익인간이란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인내천과 홍익인간은 우리 민족의 출발점이며 우리 사상의 근본 특징이다. 

 

북한은 인내천과 홍익인간이 국가의 사상으로 됐다는 징후가 많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좌우명은 ‘이민위천’이었다고 한다. 이민위천이란 ‘백성을 하늘같이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이는 북한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주의의 본질이 인민대중제일주의라고 규정하고 인민중시, 인민존중, 인민사랑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모두 인내천과 홍익인간의 사상을 발전적으로 현대화한 것이다. 

 

한국의 촛불 역시 인내천과 홍익인간 사상을 구현하였다. 촛불국민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세월호를 꼽을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을 때 사람들의 심장을 울렸던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이 우주 전체보다 더 무겁다.” 촛불국민은 304개의 우주를 기억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인내천 사상과 일치한다. 

 

한편 촛불국민이 가장 분노한 대상에는 정유라가 있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취직도, 결혼도, 장래도 포기하고 살 때 권력에 기대어 온갖 특권을 누린 것에 대한 분노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사상에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의 사상과 촛불의 사상은 하나며 이미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의 가장 강력한 사상적 원동력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였다. 국민이 촛불을 들 때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고 하면서 다른 길을 갔고, 집권 후에는 적폐청산하라고 촛불국민이 쥐어준 칼이 녹슬도록 방치하고 정유라에게 특혜를 준 삼성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오늘도 제2, 제3의 김용균 씨가 쓰러져가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 궁금하다. 

 

미국의 두 가지 비극

 

미국이 사람과 돈의 관계에서 입장을 바꿀 수 있을까?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이란 나라는 출발부터 돈을 위해 사람(아메리카인디언)을 학살하며 만들어진 나라다. 건국 후로도 돈을 위해서라면 전쟁을 마다하지 않고 필요하면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이라크를 쳐들어갔다는 건 미국인들 스스로도 인정할 정도다. 전쟁을 하면 민간인 대량 학살을 습관적으로 할 정도로 미국은 인간멸시와 돈 숭배로 일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망할 때까지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첫 번째 비극이다. 

 

두 번째 비극은 돈 숭배 사상을 버릴 수 없으니 주관주의도 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주관주의란 객관 사실,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태도를 말한다. 미국은 북한이 돈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체제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는 망상을 가지고 있다. 아무 효과 없는 대북제재에 수십 년 동안 매달린 이유다. 또 미국은 이미 전쟁 시뮬레이션을 통해 전쟁의 방식으로는 승리할 수 없음을 확인하고서도 매년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전쟁 시뮬레이션을 반복하고 있다. 패배에서 교훈을 찾기보다는 대충 넘어가고 어떻게든 상대를 공격할 여건을 만들려고 궁리하는 것이다. 

 

돈을 사람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면 주관주의를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돈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무엇보다 강한 힘을 갖고 있기에 북한과의 대결도 돈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긴다. 미국은 전쟁승리요소에서도 돈과 경제력을 중요하게 본다. 북한이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사상을 결정적 요인으로 보는 것과 정 반대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하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 결정론에 빠진 미국은 북한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파악도 할 수 없다. 주관주의에 빠지면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다. 한국전쟁 당시 스미스특공대의 패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돈 숭배 사상에서 사람 숭배 사상으로, 공존·공리·공영하는 홍익인간의 사상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들의 역사를 봐도 그렇고, 현재의 모습을 봐도 그렇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여기서 북미대결의 심각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북미대결은 단순한 군사적 대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돈 숭배와 사람 숭배의 사상전이다. 또한 모든 국민이 이로워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회주의와, 사유재산 보호라는 미명 아래 독점자본을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하는 자본주의의 대결이다. 이처럼 북미대결은 단순한 군사적 대결만이 아니라 사상, 체제, 군사 3대 영역의 총적인 대결이다. 

 

여기서 기본은 사상이다. 사람이 중요한가 돈이 중요한가의 대결이 북미대결의 근본 지점이기에 이 대결은 모든 걸 변화시키는 본질적 대결이다. 이것을 정확히 알 때 북미대결의 배경과 추이를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주권연구소와 자주시보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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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북한 접경지역에 10년간 13조 2천억 투자 계획

한국, 북한 접경지역에 10년간 13조 2천억 투자 계획
 
 
 
뉴스프로 | 2019-02-11 12:57: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스트레이츠타임스’ 한국, 북한 접경지역에 10년간 13조 2천억 투자 계획 
– 2030년까지 접경지역 225개 사업에 투자 
– 남북교류협력, 지역균형발전, 생태평화관광 활성화 밑그림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지난 화요일 South Korea to spend $16 billion in border areas with North Korea for next decade (남한, 향후 10년간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160억 달러 투자 예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자금은 앞으로 한국 정부가 향후 10년간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투자할 액수로 중앙정부 5조4000억, 지방자치단체 2조2000억, 민간 5조6000억이 포함, 2030년까지 이 지역 225개 사업에 투입된다고 밝혀졌다.

또, 행정안전부는 이 자금이 남북교류협력 기반 구축, 지역균형발전 기반 조성, 접경지역의 생태평화관광 활성화 및 사회기반시설 확충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투입된다고 말하면서도 앞으로 10년간 투자의 확대는 남북관계 개선과 지역균형 발전의 필요성 등 국내외 정세 변화를 반영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기사는, 13조 2천억의 투자금 중 약 5조 1천 억원은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2차선 도로 건설을 포함한 남북교류협력 기반 구축을 위한 21개 프로젝트에 배정되며 남북한이 한반도 동부와 서부에 위치한 철도와 도로 현대화와 상호 연결에 합의한 만큼 이 프로젝트에서 서울과 원산간 철도인 경원선의 남한지역구간 복원에 있어 남북한 문화교류센터가 경원선이 통과하는 철원에 건설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3조 4천억원은 국경 접경지역 균형 개발을 위한 산업단지 조성, 창업환경개선 등을 포함한 54개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비무장 지대 인근의 둘레길 조성과 국경 접경지역의 생태 평화관광 활성화를 위해 3조원 가량이 배정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머지 1조 7천억은 문화 스포츠 복지센터 확충과 액화석유가스 공급망 구축 등을 포함한 주거실태 개선 위한 42개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다고 전한다. 과거 이 지역은 군사적 보안상의 이유로 개발이 제한되어 왔으며 과거 8년간 관광사업과 산업단지 건설 및 교통기발 시설 확충에 총 2조 8천억 정도가 투입된 것이 전부이며, 남북한은 철도 도로 현대화를 위한 기공식도 작년 12월에 가졌으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아직까지 공사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글, 박수희)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스트레이츠 타임스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임옥

기사 바로가기: https://bit.ly/2I6skAi

South Korea to spend $16 billion in border areas with North Korea for next decade

남한, 향후 10년간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160억 달러 투자 예정

PUBLISHED 
FEB 7, 2019, 3:08 PM SGT

South and North Korean officials unveil a direction signboard during a ground-breaking ceremony to reconnect roads and railways across the divided Korean peninsula on Dec 26, 2018.PHOTO: AFP 
남북한 당국자들이 2018년 12월 26일 분단된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철도를 연결하는 기공식에서 이정표 현판을 공개하고 있다.

SEOUL (XINHUA) – South Korea’s government said on Thursday (Feb 7) that it will spend 13.2 trillion won (S$15.9 billion) in border areas with North Korea for the next decade.

서울 (신화) – 목요일(2월 7일) 한국 정부는 향후 10년간 북한과의 접경지역에 13조2000억 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The money, including 5.4 trillion won from the central government, 2.2 trillion won from local governments and 5.6 trillion won from the private sector each, will be spent on 225 projects in inter-Korea border areas by 2030.

이 자금은 중앙정부 5조4000억, 지방자치단체 2조2000억, 민간 5조6000억이 포함된 것으로 2030년까지 남북한 접경지역 225개 사업에 투입된다.

The projects were aimed to establish foundation for inter-Korea exchange and cooperation, lay the groundwork for a balanced regional development, stimulate ecological peace tourism in border areas and expand social infrastructure, according to the Ministry of the Interior and Safety.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그 프로젝트는 남북교류협력 기반 구축, 지역균형발전 기반 다짐, 접경지역의 생태평화관광 활성화 및 사회기반시설 확충 등을 목적으로 한다.

The development of the border areas had been limited for military security reasons.

국경 접경지역 개발은 군사적 보안상의 이유로 그간 제한되어 있었다.

For the past eight years, a total of 2.8 trillion won were spent on developing tourism projects, building industrial complexes and expanding transportation infrastructure.

과거 8년간 관광사업 개발, 산업단지 건설 및 교통 기반 시설확충 등에 총 2조8000억 원이 투입되었다.

The expanded investment for the next decade reflected changed situations at home and abroad, including improved inter-Korea relations and the need for balanced regional development, the ministry said.

행안부는 “향후 10년간 투자 확대는 남북관계 개선과 지역 균형발전의 필요성 등 국내외 정세 변화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About 5.1 trillion won was allocated to 21 projects to establish foundation for inter-Korea exchange and cooperation, including the construction of a two-lane road between Yeongjong Island and Shin Island along the country’s western coast.

그 중 약 5조 1천억원이 서해안을 따라 영종도와 신도를 잇는 2차선 도로 건설을 포함한 남북교류협력 기반 구축을 위한 21개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다.

South Korea and North Korea agreed to modernise and eventually connect railways and roads along the eastern and western Korean Peninsula.

남북한은 한반도 동부와 서부에 위치한 철도와 도로를 현대화하고 궁극적으로 연결하기로 합의했다.

The two sides held a ground-breaking ceremony in December, but the construction had yet to be launched because of international sanctions on Pyongyang.

남북한은 12월 기공식을 가졌으나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아직까지 공사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다.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and US President Donald Trump agreed to hold their second summit in late February in Vietnam. The first Kim-Trump summit was held in Singapore in June last year.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월 말 베트남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갖기로 합의했다. 제1차 김-트럼프 정상회담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Regarding the restoration of the South Korean section of the Gyeongwon Line, a train route between Seoul and the DPRK’s eastern coastal city of Wonsan, an inter-Korea cultural exchange centre will be built in Cheorwon, a border town of South Korea through which the Gyeongwon Line passes.

서울과 북한의 동부 해안도시 원산 간의 철도인 경원선의 남한 지역 구간 복원에 있어, 남북한 문화교류 센터가 경원선이 통과하는 남한 국경도시 철원에 건설된다.

To develop the border areas in a balanced way, 3.4 trillion won will be spent on 54 projects, including the creation of industrial parks and the improved conditions for business start-ups.

또한 국경 접경지역을 균형 있게 개발하기 위해 산업단지 조성, 창업 환경 개선 등을 포함한 54개 프로젝트에 3조4000억 원이 투입된다.

Some 3 trillion won was earmarked to stimulate ecological peace tourism in border regions, including the creation of a walking tour route near the Demilitarised Zone (DMZ) that has left the Korean Peninsula divided since the 1950-53 Korean War ended with armistice.

한국전쟁(1950-1953)이 휴전협정으로 끝난 이후 한반도를 둘로 나눈 비무장지대 인근에 도보 관광로를 새롭게 조성하는 등 국경 접경지역의 생태 평화관광 활성화를 위해 3조 원 가량이 배정되었다.

The remaining 1.7 trillion won was allotted to 42 projects to improve domiciliation conditions, such as the expansion of cultural, sports and welfare centres, and the construction of liquified petroleum gas supply networks.

나머지 1조7000억 원은 문화, 스포츠, 복지센터 확충과 액화석유가스 공급망 구축 등을 포함한 주거실태를 개선하기 위한 42개 프로젝트에 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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