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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독립PD의 죽음은 사고사 아닌 ‘사회적 타살’”

박환성·김광일 독립PD 영결식, 동료들과 유가족 “방송계 외주제작 갑질 적폐 개선 계기로 삼아야” 촉구

금준경 기자 teenkjk@mediatoday.co.kr  2017년 07월 29일 토요일
 

“왜 그 시간에 운전을 해야 했는지, 차에 왜 먹지 못한 햄버거가 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박환성, 김광일 PD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최영기 한국독립PD협회 전 회장은 “이 죽음은 사고사가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고 강조했다.

두 독립PD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EBS 다큐멘터리 ‘야수의 방주’를 촬영하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제작비 지원이 원활하지 않아 늦은 시간에도 두 PD가 직접 차를 몰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료들과 유가족이 현장을 찾았을 때 사고차량에선 먹지 못한 햄버거와 콜라가 발견됐다.  

▲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사진=금준경 기자.
▲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김광일(왼쪽), 박환성 PD의 영결식이 엄수됐다. 사진=금준경 기자.박환성 PD는 출국하기 직전 열악한 제작환경 문제를 앞장 서서 공론화했다. 독립PD가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받은 정부지원금을 EBS가 간접비 명목으로 요구했다는 폭로였다. 박 PD는 출국 직전 추혜선 정의당 의원실을 찾아 외주제작 불공정 거래 문제를 논의했으며, 공항에서까지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나 없는 동안 문제를 잘 해결해달라”고 당부하고 떠났다. 추혜선 정의당 의원은 “떠나기 전에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지 못한 게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권용찬 독립PD협회 대외협력위원장은 “거대 슈퍼갑인 지상파에 맞선다는 건 영원한 을인 독립PD에게 힘든 일”이라며 “고인은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적으로 이슈화해 현장 PD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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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불명' 헬기 출현... 삽교호의 잠 못 이루는 밤

 

'비행연습장' 된 충남 삽교호 생태숲... 주민들 소음 피해 호소

17.07.29 20:15l최종 업데이트 17.07.29 20:15l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소반리 우측에 조성된 생태숲에서 헬기가 저공비행을 했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소반리 우측에 조성된 생태숲에서 헬기가 저공비행을 했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 네이버 지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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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시 삽교호 인근 주민들이 주한미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군용 헬기의 저공비행으로 소음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군 부대가 사전 양해 절차 없이 주거지역인 마을 옆 생태숲을 사실상 '비행 훈련장'으로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천주교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이자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간 솔뫼성지가 있는 충남 당진시 우강면은 당진의 대표적인 평야이자 곡창지대다. 
 
 
▲ 군용 헬기 비행 장면 충남 당진시 우강면 인근에서 군용 헬기들이 비행하고 있다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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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호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우강면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계속되는 헬기 소음으로 인해 잠에 못 드는 등 고통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우강면의 강문리, 소반리, 신촌리, 내경리, 부장리, 공포리, 대포리(707세대, 1597명 거주) 지역의 피해가 크다는 게 주민들의 증언이다.
 
당진 우강면 소반리에 사는 김용훈씨는 "함께 사는 부모님이 일찍 주무시는 편인데, 헬기가 오후 9시·10시에도 다닐 때가 있다"라며 "(헬기가) 저공비행을 해서 매번 깜짝 놀라신다. 불편함이 크다"라고 말했다.

송산리에 거주하는 한 주민 역시 "뜨거운 한낮에는 오지 않다가 초저녁이나 밤이면 헬기들이 나타난다"라며 "헬기가 워낙 저공비행을 하니 창문이 심하게 흔들릴 정도다. 삽교호 생태숲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철 강문리 이장은 "지난주에는 헬기가 자정이 다 되도록 마을 위를 돌아다녔다"고 말했고, 김선태 우강면 면장은 "최근에는 헬기 비행 횟수가 더 많아졌다. 주민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비가 오지 않는 좋은 날씨엔 거의 매일 헬기들이 온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주민들이 찍은 사진 속 헬기에 'united states army'
 
 7월 5일 촬영된 사진. 헬기 뒷부분에 'UNITED STATES ARMY'라고 쓰인 글씨가 희미하게 보인다
▲  7월 5일 촬영된 사진. 헬기 뒷부분에 'UNITED STATES ARMY'라고 쓰인 글씨가 희미하게 보인다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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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호 인근 생태숲은 2015년 12월 조성됐다. 대전국토관리청은 하천변 국유지에 있는 논에 흙을 덮어 생태숲을 만들었고, 이곳에 수풀이 우거지게 되면서 온갖 동식물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현지 주민들 역시 자연보호를 위해 이곳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우강면 주민들은 생태숲 조성 이후인 2016년부터 군용 헬기 비행이 잦아졌다고 증언한다. 수풀이 우거지고 비교적 넓은 둔턱이 생기자 군 헬기들이 이곳을 사실상 훈련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게 주민들의 추측이다. 

실제로 헬기 소음으로 고통받던 주민들은 지난해 11월 평택 해군 2함대 측에 민원을 제기했다. 당시 헬기 훈련 사실을 인정한 해군 2함대 측은 '향후 훈련 시 사전통보하겠다'고 주민들에게 약속했다. 
 
 
▲ 군용 헬기 비행 장면 충남 당진시 우강면 인근 생태숲에서 군용 헬기가 착륙하는 듯한 모습
ⓒ 최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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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 들어서도 사전에 공지가 되지 않은 군용 헬기들이 지역 인근에 계속 나타났다. 올 4~5월 주민들이 촬영한 동영상에는, 군용 헬기가 주거지역 인근에서 저공비행을 하다 착륙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당진시는 해당 헬기가 평택 해군2함대 소속이 아니라고 밝혔다. 어느 부대 소속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생태숲 관리 책임이 있는 대전국토관리청도 "삽교호 생태숲 지역 군사훈련에 관한 협의나 보고가 들어 온 것은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당진시와 가까운 평택의 주한미군 부대 소속 헬기들이 우강면 인근에서 사전 양해 없이 비행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역 주민과 공무원 등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헬기에 'united states army'라고 적혀 있다.

김재운 소반리 노인회장은 "올 2월 말인가 3월 초에 미군 10여 명과 한국인 통역관 한 명이 마을에 찾아와 바닥에 빠져버린 헬기를 운반 차량으로 실어 간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신현철 강문리 이장 역시 "지난해에도 미군 2명이 헬기가 고장 났다면서 마을회관에 찾아온 적이 있다"라며 "당시 미군들이 고장 난 헬기를 이송해 갔다"라고 증언했다. 미군 헬기 역시 삽교호 생태숲이 조성된 우강면 인근에서 비행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미8군 측 "미군 헬기... 소속 부대는 확인해 봐야"

미8군 관계자는 기자와 한 전화 통화에서 "사진과 증언으로 볼 때 (해당 헬기가) 미군일 것으로 본다"라며 "다만 정확한 소속 부대와 훈련 절차상 문제를 확인해봐야 한다. 지역신문의 기사 등을 (영어로) 번역해 미군 측에 넘겨 확인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김종대 정의당 의원실도 관련 자료를 제공받아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다. 김종대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 군뿐만 아니라 미군 헬기도 해당 지역에서 비행한 것까지는 확인이 됐지만 어느 부대 소속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라며 "헬기 이착륙시에는 훈련으로 판단하고 비행계획서를 제출하는데, 삽교호 인근에서 훈련한다는 내용은 파악된 바 없다는 게 미군 측 설명"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군 측에 소속 부대 등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미군에서 구체적인 부대 정보 등을 확인해 준 적은 거의 없다"라며 "만약 주민 피해가 확인된다 해도 피해 보상은 한국 정부에서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박석규 우강면 개발위원장은 어기구 국회의원 측과 우강면의 도움을 받아 국민권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민원으로 제기한 상태지만, 우강면 주민들이 미군 측의 헬기 비행을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규정상 미군 훈련과 관련해 지역 주민에게 사전 양해를 구해야 하는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2003년 SOFA 합동위원회 특별회의를 열고, 미군부대 훈련 시 2주 전 사전 통보하도록 한 '훈련 안전조치 합의서'에 서명한 바 있다. 훈련 중이던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미선·효순이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조치였다. 다만 이 합의마저도 '경기 북부 지역'에만 한정돼 충남 당진시 우강면은 해당되지 않는다.

부산에선 미군이 통보 없이 총 쏘며 훈련하기도
 
 미군이 기지 방어 훈련을 진행중인 모습<자료사진>
▲  미군이 기지 방어 훈련을 진행중인 모습<자료사진>
ⓒ U.S.ar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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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부산에서는 지난 6월 주한미군 군수물자 기지에서 밤중에 여러 발의 총성이 울려 주민 신고가 잇따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총성은 주한미군이 가상훈련을 하면서 쏜 공포탄 소리인 것으로 확인됐지만, 주한미군 부대가 사전 양해 없이 주민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훈련을 진행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미군은 훈련을 진행하면서도 지자체나 경찰에 사전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관련 기사 : 미군, 통보 없이 부산 도심서 총 쏘며 훈련).

당시 시민단체인 '부산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부산 평통사)'은 논평을 통해 "대도시 부산의 도심에서 주민들의 생명에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총포 훈련이 아무런 사전 통고나 예방 조치 없이 감행된 것은 용납할 수 없다"라며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SOFA 등 관련 규정의 개정 및 보완을 위해 즉각 미국 측과 협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박석분 부산 평통사 상임운영위원은 2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일본이나 필리핀은 SOFA와 별도로 훈련이나 기지 운용 협정을 체결한 상태"라며 "훈련 사전 양해 문제는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SOFA 개정을 넘어 별도의 협정을 체결하고 국회 비준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관련 기사를 당진신문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삽교호#당진#당진 우강면#주한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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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紙 ‘美, 조건 없이 지금 당장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 ‘중국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
 
뉴스프로 | 2017-07-28 13:15:1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타임紙 ‘美, 조건 없이 지금 당장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그레그 전 주한미국 대사 ‘중국에 대해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 
-어떤 전쟁도 동맹국과 미국에 재앙이 될 것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 간의 갈등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타임지가 24일 ‘The Time for Negotiations With North Korea Is Now-북한과 협상해야 할 시기는 바로 지금’이라는 제목의 월 스트리트 한국 지부장과 타임지 편집장을 역임했던 펄스타인의 칼럼을 통해 미국은 북한과 조건 없이 협상에 나서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문하고 나섰다.

펄스타인이 전 CIA 한국 지부장이자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냈던 도널드 그레그 전 코리안 소사이어티 회장과의 인터뷰 형식을 빌어 기사화 한 이 기사는 특히 ‘북한과의 회담이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상을 주는 셈’이라는 미국 정부에 만연한 의견에 대해 거부하며 위험한 상황이 악화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회담은 꼭 필요하다는 그레그의 주장을 전했다.

북한을 6번이나 방문했던 그레그는 “북한 사람들은 자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언사와 선전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도자들이 “신중하며 제대로 교육받은 실용주의자들”’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레그는 ‘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똑똑하고, 강인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인물”로서, 핵무기가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는다’며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개인적으로는 북한보다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그리고 중동을 집어삼킨 전쟁에 대해 더 우려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도 ”중국은 우리 심부름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중국이 북한의 군국주의적 야심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타임지는 그레그씨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기 위해 협상을 할 것을 촉구해왔다며 대화가 전제조건 없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돈 그레그의 생각은 옳으며 ‘지금이 그렇게 해야 할 적기’라고 지금 당장 미국 정부가 협상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타임지의 기사 전문이다. 
번역 감수 : 임옥

기사 바로가기 : http://ti.me/2v265Ed

NORTH KOREA 
The Time for Negotiations With North Korea Is Now 
북한과 협상해야 할 시기는 바로 지금 
Norman Pearlstine 
10:50 PM ET

North Korea is “The longest running failure in the history of American espionage.”

북한은 “미국 첩보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실패한 국가”이다.

That’s the assessment of Donald P. Gregg, arguably, the man who knows more about North Korea than any living American.

이는 아마 미국인들 중 북한을 가장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미국인 도널드 P. 그레그의 평가이다.

Gregg, 89, is a retired State Department and CIA veteran, a North Asia specia list, and a recipient of the National Intelligence Distinguished Service Medal. He says the absence of direct dialogue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has to change. “We can’t deal with them if we don’t understand them, and we won’t understand them if we aren’t talking to each other,” he says.

89세인 그레그 씨는 은퇴한 국무부 및 CIA 요원이자 북아시아 전문가이며 미국 국가정보국의 훈장을 받았다. 그레그 씨는 미국과 북한 간 직접적인 대화가 없는 현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면 북한을 상대할 수 없고, 북한과 대화하지 않고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는 말한다.

Although Gregg’s thinking may be out of sync with much of what’s coming out of the Trump White House and the Congress — both are pushing for more sanctions in response to North Korea’s recent ICBM launch and its continued efforts to expand its nuclear arsenal — he has found an ally in South Korea’s new President, Moon Jae-in, who called for new talks with North Korea last week.

그레그 씨의 견해가 트럼프 대통령 정부와 의회(정부와 의회 모두 북한이 최근 ICBM을 발사하고 지속적으로 핵무기를 확대하려고 하는 것에 대응하여 제재 강화를 강력 추진하고 있다)에서 일어나는 상황과는 크게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난 주 북한 측에 남북 회담 재개를 요청한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은 이와 비슷한 견해를 지니고 있다.

The two sides haven’t spoken since 2015 and the U.S. has shown little interest in negotiating with North Korea since President George W. Bush branded North Korea, along with Iraq and Iran, the “Axis of Evil” in his 2002 State of the Union speech.

2015년 이후로 남북한은 회담을 하지 않았고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2002년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이라고 낙인찍은 이후로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Gregg, who has been to North Korea six times, rejects the prevailing view in Washington that meeting with North Korea rewards bad behavior. Instead, he says talks are necessary to “keep a dangerous situation from becoming worse.” He also opposes sanctions, saying they haven’t worked and they only serve to make North Korea more intransigent.

북한에 여섯 차례 방문했던 그레그 씨는 북한과의 회담이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 상을 주는 셈이라는 미국 정부에 만연한 의견을 거부한다. 대신, 그레그 씨는 북한과의 회담은 “위험한 상황이 악화되지 못 하도록”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북한에 대한 제재에도 반대하며, 북한에 대한 제재는 효과를 보기는 커녕 오히려 북한을 더욱 완고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KOREAN PENINSULA North Korea is Able to Launch a `Limited Missile Attack,` Warns Top U.S. General

북한이 ‘제한적 미사일 공격’을 할 수 있다고 미 고위급 장성이 경고

In an interview at his Armonk, New York, home, Gregg is quick to acknowledge that dealing with North Korea can be difficult and frustrating. He dismisses the country’s bombastic threats to annihilate the U.S., South Korea and other perceived adversaries. “The North Koreans aren’t suicidal. They don’t want a war,” he says. Despite the rhetoric and the propaganda, he says the that North Korea’s leaders are “thoughtful, well-educated pragmatists.”

뉴욕 아르몽크에 위치한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레그 씨는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 어렵고 답답할 수 있다고 즉각 시인했다. 그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적으로 여겨지는 다른 국가들을 전멸시키겠다는 북한의 위협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북한 사람들은 자살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북한의 언사와 선전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지도자들이 “신중하며 제대로 교육받은 실용주의자들”이라고 말한다.

I first met Don Gregg 43 years ago in Seoul, where he was the Central Intelligence Agency station chief while I was the North Asia bureau chief of the Wall Street Journal. The American Embassy was full of savvy Korea hands, including career diplomats Ambassador Phil Habib and political counselor Paul Cleveland. North Korea was a source of tension and so too was South Korea under its authoritarian leader, Park Chung Hee. Gregg, who had come to Korea after nearly a decade with CIA in Japan, was a lousy source, remote and taciturn. But when he spoke, it was clear he had an encyclopedic knowledge of North Asian geopolitics.

나는 그레그 씨를 서울에서 43년 전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미국 중앙정보부 지부의 장이었고 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동북아지부장이었다. 미국 대사관에는 한국을 잘 아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고 직업 외교관인 필 하빕 대사와 정치적 조언자 폴 클리블랜드도 그들 중 하나였다. 북한은 긴장의 근원이었고 독재자 박정희 정권하의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미국 중앙정보부에서 거의 10년을 보낸 후 한국에 온 그레그 씨는 서툰 정보통으로서, 냉정하고 과묵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하면, 그가 동아시아의 지정학에 대해 백과사전 급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Gregg returned to Washington in 1975 where he continued to work for the CIA, until, after 31 years with the agency, he resigned in 1982 to become Vice President George H.W. Bush’s National Security Advisor. When Bush became President, he named Gregg Ambassador to South Korea, a position he held for four years.

그레그 씨는 1975년 워싱턴으로 돌아가서 CIA에서 근무했으며, 총 31년 동안 CIA에서 일한 후 1982년 퇴임하여 H.W. 부시 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되었다. 부시가 대통령이 됐을 때, 그는 그레그 씨를 한국 대사로 임명했고 그는 4년간 봉직했다.

Gregg then became Chairman of the Korea Society, a New York-based nonprofit known for its thoughtful essays about the Korean Peninsula, until 2009. During his years as the Society’s head, he went to North Korea five times. He last visited North Korea in 2014 and he remains in touch with North Korean diplomats at the United Nations and elsewhere.

그후 그레그 씨는 뉴욕에 있는 비영리 기관으로서, 한반도에 관한 통찰력 있는 보고서들로 잘 알려진 코리아소사이어티의 회장을 2009년까지 맡았다.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수장으로 지내는 동안, 그는 북한을 5번 방문했다. 그의 마지막 북한 방문은 2014년이었고 그는 여전히 UN 및 다른 곳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연락을 유지한다.

Gregg supports Moon’s overture to North Korea, saying it is reminiscent of former South Korean President Kim Dae Jung’s “Sunshine Policy” which led to a softening of relations between the two Koreas. Kim, who was South Korea’s President from 1998 through 2003 and who had close ties to Gregg, advocated greater contact with North Korea, coupled with substantial economic investment. He went to Pyongyang, North Korea’s capital, in 2000 for a summit meeting with Kim Jong Il, then North Korea’s leader (and the father of Kim Jong Un, the country’s current leader.) The Sunshine policy remained in effect until 2008 when one of his successors took a harder line against North Korea.

그레그 씨는 문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제안을 지지하며, 이것이 남북한 간의 관계 완화를 가져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말한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한국의 대통령이었으며 그레그 씨와 친분이 깊었던 김 전 대통령은 충분한 경제적 투자를 포함 북한과의 더 많은 접촉을 원했다. 그는 2000년 당시 북한의 지도자였고 현 지도자인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 수도인 평양에 갔다. 햇볕정책은 이후 후임 대통령 중 하나가 대북 강경 노선을 취하기 시작한 2008년까지 유효했다.

Gregg says that Kim Jong Un, North Korea’s current leader, is “smart, tough, and a risk taker” who sees his nuclear arsenal as protection against a U.S. attack. Although he doesn’t see North Korea abandoning its nuclear weapons and its missiles, Gregg says that nuclear proliferation is a bigger problem than just North Korea, and that he is personally more worried about Pakistan’s nuclear weapons and war engulfing the Middle East than he is about North Korea.

그레그 씨는 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똑똑하고, 강인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인물”로서, 핵무기가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북한을 보호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한다. 비록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포기할 것이라고는 보지는 않지만 그는 핵 확산이 단지 북한에 국한된 것이 아닌 더 큰 문제이며, 개인적으로 북한보다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그리고 중동을 집어삼킨 전쟁에 대해 더 우려한다고 말한다.

Gregg also says the U.S. is naïve in thinking China will try to curb North Korea’s militaristic ambitions. “China’s bigger concern is a reunited Korea,” he says, and it has been consistent in opposing the continued presence of U.S. troops nearby in South Korea. “The Chinese aren’t going to carry water for us,” he says.

그레그 전 대사는 중국이 북한의 군국주의적 야심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의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는 “중국의 보다 큰 관심은 통일된 한국”이라고 말한다. 중국은 한국 근해에 주둔한 미 군대에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그는 ”중국은 우리 심부름을 해주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After each of his trips, Gregg says that he wrote or met with White House and State Department officials, urging talks. He says his efforts have been consistently rejected or ignored.

매번 방문 후에 그레그 전 대사는 백악관과 국무부 관료들에게 대화를 촉구하며 편지를 쓰거나 그들을 만났다. 그는 자신의 노력은 항상 거부되고 무시되었다고 말한다.

He has also urged negotiation of a peace treaty to replace the Korean Armistice Agreement that ended the Korean War. That agreement was signed by the U.S., China, and North Korea in 1953.

또한 그는 한국전쟁을 종식한 휴전협정을 대체하기 위해 평화협정을 협상할 것을 촉구해왔다. 휴전협정은 1953년 미국, 중국, 북한이 서명했다.

Gregg laments that “it is very hard to find anyone in Washington with experience, knowledge, and an open mind when it comes to dealing with North Korea. Everyone knows malnutrition is a problem, but people are shocked when I tell them Pyongyang is an attractive, functioning city,” he says.

그레그 전 대사는 “북한을 상대하는 일에 있어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열린 마음을 지닌 인물을 찾기 힘들다”고 한탄하며, “영양실조가 문제임은 모두가 알면서도, 평양이 매력적이고 잘 작동하는 도시라고 내가 말하면 사람들이 충격을 받는다”고 말한다.

There is no guarantee that talks will make a difference. As B.R. Myers has written in a thoughtful book, The Cleanest Race: How North Koreans See Themselves — And Why It Matters, the north’s leaders use “race-based nationalism” to control their people. Myers writes that Pyongyang would appear weak to its own people if it renounced its nuclear ambitions. Myers also writes that South Korea’s Sunshine Policy “failed to generate even a modicum of good will from the North.”

대화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B. R. 마이어가 신중한 자신의 저서 “가장 깨끗한 민족: 북한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나- 그리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에서도 썼듯이 북한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통제하기 하기 위해 “민족기반 국가주의”를 이용한다. 마이어는 만일 북한이 핵 야심을 포기한다면 북한 정부는 자국 국민들에게 약하게 보일 것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마이어는 한국의 햇볕정책이 “북한으로부터 일말의 선의조차도 발생시키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Those arguments notwithstanding, it is hard to argue against increasing our diplomatic efforts with North Korea. While U.S. Defense Secretary James Mattis may be right in saying we would win a war with North Korea, he is also right in saying that any war would be “catastrophic” — to our allies and most probably to ourselves.

그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외교적 노력을 더해야 하는 것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제임스 마티스 미 국방장관이 북한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또한 어떤 전쟁도 동맹국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미국에게 “재앙적”일 것이라고 말한 것도 맞는 말이다.

President Trump has made contradictory statements about North Korea. Along with his increasingly belligerent threats, Trump, while campaigning for the Presidency and in an interview with Bloomberg News in May, said that he would be willing to meet with North Korea’s Kim Jong Un, “under the right circumstances.” Those circumstances weren’t defined.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모순적인 발언을 해왔다. 점점 호전적인 위협의 말을 던지는 와중에, 지난 대선 캠페인 기간 그리고 5월 블룸버그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상황이 적절하다면” 북한 김정은과 기꺼이 만나겠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Don Gregg is right in thinking talks should begin without preconditions. Now is the time to do so.

대화가 전제조건 없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돈 그레그의 생각은 옳다. 지금이 그렇게 해야 할 적기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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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지역 통일선봉대 활동 본격화

8.15자주통일총궐기대회 준비를 위해 지역에서 열기를 모은다

정전협정체결 64주년을 맞아 평화협정체결을 염원하는 노동자, 지역별 통일선봉대 활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 경남 노동자 통선대 발대식

경남에서는 120명으로 구성된 '2017 경남노동자 통일선봉대'가 21일 오전 창원노동회관에서 발대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갔다.
첫째날은 창원에서 다양한 선전전을 벌이고, 저녁 7시 정우상가 앞에서 "일제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과 친일잔재 청산, 한반도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한 경남대회"를 열었다. 둘쨋날은 진주와 거제, 김해, 양산으로 흩어져 권역별 실천활동을 벌이고, 저녁에 경북 김천에서 열리는 "전민족대회 성사를 결의하는 토론회"를 벌였다. 셋쨋날은 성주 일대에서 '사드 미군기지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사드 대신 평화협정, 전쟁연습 중단, 남북대화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 대전 통선대 활동

 

대전에서는 세상을 바꾸는 대전 민중의 힘(상임대표 이대식)과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 통일위원회(위원장 이성휘)는 “사드배치 철회! 한미군사훈련 중지! 남북관계 개선!”의 요구를 걸고 ‘통일선봉대’ 활동을 진행했다. 7월 21일 오전 8시 민주노총대전지역본부 앞(대덕구 대화동)에서 출정식을 갖고 하루 동안 대시민 거리캠페인, 평화기행, 통일교육과 토론 등을 펼쳤다. 이어서 대전산업단지삼거리에서 출근길 대시민 캠페인, 대전시교육청네거리에서 캠페인, 대전역서광장 등지에서 캠페인을 전개했다.

▲ 서울 통선대 발대식

 

서울지역은 22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서울지역통일선봉대 발대식을 가지고 1박 2일동안 활동에 들어갔다. 서울지통대는 용산미군기지오염 미국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투쟁 등 서울 곳곳에서 활동을 전개했다.

▲ 부산 통선대 발대식
▲ 부산 노동자 반전평화통일 문화제

부산에서는 7월 22일 부산노동자통일선봉대 발대식을 갖고, 민주노총 부산본부, 노동자겨레하나, 부산 6.15실ㅊ펀본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부산노동자 반전평화통일 문화제에 참가하였다. 7월 27일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부산노동자 64인 출근선전전을 진행하였다.
인천, 대구 지역 등은 8월에 지역통선대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한편 민주노총 중앙통선대는 8월 8일부터 8월 15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제18기 중앙통선대장은 박상준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결정되었다.

김장호 기자  jangkim21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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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관계자 “사드 발사대 4기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중국에 통보”

청 관계자 “사드 발사대 4기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중국에 통보”

등록 :2017-07-29 12:13수정 :2017-07-2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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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BM 판명나면, ‘레드라인’ 임계치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 “사드 포함 ‘북 억제 방안’ 미와 협의” 지시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밤 북한이 자강도 일대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한 대응으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잔여 발사대 4기 배치를 포함해서 신뢰성 있는 확장 억제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미국과 적극 협의하라”고 29일 지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미 배치된 사드 발사대 2기는 신속히 진행하고, 잔여 발사대 4기를 경북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사대 추가 배치는 전날 국방부가 10~15개월 걸리는 일반환경영향평가 계획을 밝혀 내년으로 미뤄졌다는 관측을 낳았으나 하루 만에 뒤바뀐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사드 잔여 발사대 추가 배치는 문 대통령이 결단한 것으로 보면 된다”며 “일반환경영향평가가 진행될 시점이지만, 북한의 미사일 도발 강행에 따라 4기에 대해서도 임시로 추가 배치하고 환경영향평가가 끝나면 배치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사드 잔여 발사대 4기를 추가 배치하기로 한 데 대해 중국에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사드 잔여 발사대까지 추가로 배치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금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판명될 경우, 한미 양국이 북한에 넘지 말라고 경고한 ‘레드라인’의 임계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레드라인에 도달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대북 정책 기조 변화 등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는 지금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bluehouse/804797.html?_fr=mt1#csidx4df57cfdedc008eab927c8064b5e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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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 성공”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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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7/07/29 13:04
  • 수정일
    2017/07/29 13:04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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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기습발사했다.
28일 밤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기습발사했다.ⓒ뉴시스
 
 

북한은 "28일 밤 대륙간탄도로켓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 '친필명령'으로 이번 시험발사 실시를 직접 지시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중앙통신은 이어 "화성-14형은 최대정점고도 3천724.9㎞까지 상승하며 거리 998㎞를 47분12초간 비행하여 공해상의 설정된 수역에 정확히 탄착됐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시험발사로 "미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고 중앙통신은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시험발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체계의 믿음성이 재확증되고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켓을 기습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시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우리가 굳이 대륙간탄도로켓의 최대사거리 모의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은 최근 분별을 잃고 객쩍은(의미 없는) 나발을 불어대는 미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전쟁 나발이나 극단적인 제재 위협은 우리를 더욱 각성 분발시키고 핵무기 보유명분만 더해주고 있다"며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국가방위를 위한 강위력한 전쟁억제력은 필수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며 그 무엇으로도 되돌려 세울 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전략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 놈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이 땅에 또다시 구린내 나는 상통(얼굴)을 들이밀고 핵방망이를 휘두르며 얼빠진 장난질을 해댄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차근차근 보여준 핵전략 무력으로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선중앙통신 발표 전문

<조선로동당의 전략적핵무력의 일대 시위 --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에서 또다시 성공>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지도하시였다


(평양 7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군대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직접적인 지도밑에 주체106(2017)년 7월 28일 밤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

우리 당과 국가,군대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현지에 나오시여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지도하시였다.

리병철동지,김락겸동지,김정식동지,장창하동지,전일호동지,유진동지,조용원동지가 동행하였다.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담대한 배짱,령활한 지략으로 세인의 예상을 뒤엎으며 언제나 련전련승의 기적과 승리의 통장훈을 부르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로케트연구부문에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의 최대사거리를 모의한 시험발사를 빠른 시일안에 진행하여 로케트체계전반에 대한 믿음성을 다시한번 확증할데 대한 전투적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안고 령도자와 사상도 숨결도 발걸음도 같이하며 그 어떤 요새도 단숨에 점령해나가는 우리 당의 열혈충신들인 국방과학자,기술자들은 조선로동당의 전략적핵무력의 막강한 위력을 세계앞에 쨋쨋이 보여줄 신심드높이 결사전을 벌려 대륙간탄도로케트 2차 시험발사준비를 앞당겨 끝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준비기간 매일매일 그 정형을 보고받으시고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발사당일 밤에는 로케트시험발사장에 직접 나오시여 현지에서 지도하시였다.

이번 시험발사는 대형중량핵탄두장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의 최대사거리를 비롯한 무기체계의 전반적인 기술적특성들을 최종확증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진행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발사명령을 내리시자 영웅조선의 무진막강한 힘을 재운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이 대지를 박차고 장쾌한 불줄기로 어둠의 장막을 밀어내며 우주만리로 단숨에 솟구쳐올랐다.

우리 나라 서북부지대에서 발사된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은 최대정점고도 3,724.9㎞까지 상승하며 거리 998㎞를 47분 12초간 비행하여 공해상의 설정된 수역에 정확히 탄착되였다.

이번 시험발사는 최대사거리를 모의하여 최대고각발사체제로 진행하였으며 주변국가들의 안전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대륙간탄도로케트 2차 시험발사를 통하여 지난번 1차 시험발사에서 확증되였던 발사대리탈특성,계단분리특성,구조체계특성 등이 재확증되였으며 능동구간에서 최대사거리보장을 위하여 늘어난 발동기들의 작업특성들과 개선된 유도 및 안정화체계의 정확성과 믿음성이 확증되였다.

또한 전투부분리후 중간구간에서 중량전투부의 자세조종특성을 재확증하고 실지 최대사거리비행조건보다 더 가혹한 고각발사체제에서의 재돌입환경에서도 전투부의 유도 및 자세조종이 정확히 진행되였으며 수천℃의 고온조건에서도 전투부의 구조적안정성이 유지되고 핵탄두폭발조종장치가 정상동작하였다는것을 확증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대성공을 이룩한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결과에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면서 로케트연구부문 과학자,기술자들과 일군들을 높이 평가하시고 당중앙위원회의 이름으로 특별감사를 주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이번 시험발사를 통하여 대륙간탄도로케트체계의 믿음성이 재확증되고 임의의 지역과 장소에서 임의의 시간에 대륙간탄도로케트를 기습발사할수 있는 능력이 과시되였으며 미본토전역이 우리의 사정권안에 있다는것이 뚜렷이 립증되였다고 긍지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오늘 우리가 굳이 대륙간탄도로케트의 최대사거리모의시험발사를 진행한것은 최근 분별을 잃고 객적은 나발을 불어대는 미국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해서이라고 하시면서 이 정도면 미국의 정책립안자들이 우리 국가를 감히 건드리는 날에는 미국이라는 침략국가도 무사할수 없으리라는것을 제대로 리해하였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우리 국가를 상대로 한 미국의 희떠운 전쟁나발이나 극단적인 제재위협은 우리를 더욱 각성분발시키고 핵무기보유명분만 더해주고있다고 하시면서 미제야수들에 의하여 이 땅에서 참혹한 전란을 겪어본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국가방위를 위한 강위력한 전쟁억제력은 필수불가결의 전략적선택이며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려세울수 없고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전략자산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미국놈들이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또다시 구린내나는 상통을 들이밀고 핵방망이를 휘두르며 얼빠진 장난질을 해댄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차근차근 보여준 핵전략무력으로 톡톡히 버릇을 가르쳐줄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주체의 핵강국,세계적인 로케트맹주국의 자주적존엄과 위용을 다시한번 만방에 과시한 로케트연구부문 과학자,기술자들과 일군들을 열렬히 축하해주시며 그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력사에 길이 남을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위대한 조선로동당의 새로운 병진로선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우리 공화국은 조국의 존엄과 생존권을 말살하려드는 미제국주의와 그 추종세력들을 완전히 쓸어버리게 될 그날까지 주체조선의 불패의 강대성과 무궁무진한 발전잠재력을 온 세상에 힘있게 과시하는 최강의 전략무기,주체무기들을 더 많이 개발완성하여 반제반미대결전에서 반드시 최후승리를 이룩할것이다.(끝)


<김정은동지께서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단행할데 대한 명령 하달>


(평양 7월 29일발 조선중앙통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주체106(2017)년 7월 27일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를 단행할데 대하여 친필명령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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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조라떼’와 '미세먼지’로 그려질 우리 삶의 길

조성화 2017. 07. 28
조회수 316 추천수 0
 
영화로 환경 읽기 22. <리버로드>
급속한 도시화로 달라진 유목민의 삶을 그린 영화 <리버로드>
우리가 가는 길은 재난영화나 공상화학 영화에 더 가까울 듯
 
리1.jpg» 영화 <리버로드>는 위구르족 형제가 아버지를 찾아 도시에서 유목지대로 찾아가는 길을 그렸다.
 
우리는 문명을 길에 비유하곤 한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인생이나 문명의 역사를 길에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든 경험을 하게 되면 ‘고생 길’이 시작됐다고 하고, 어떤 문명이 점차 힘을 잃어 가면 문명이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왜 우리는 사람의 인생이나 문명의 역사를 길에 비유하는 것일까? 길은 실제 우리 인생이나 문명과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 교류하는 것처럼 길은 수많은 다른 길과 연결된다. 
 
또 길은 시작과 끝이 있고 방향성을 가진다. 편하고 빠른 길이 있는가 하면 험난하고 돌아가는 길도 있다. 길을 잘못 들어서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하고, 길 위를 여행하면서 다양한 사람과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길은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이런 길의 특성은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과 비슷하며, 문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길은 하나의 물리적 공간이면서도 그 안에 다양한 비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길’이 중요한 소재로 종종 등장했다. ‘영화로 환경읽기’ 칼럼에서도 이미 다뤘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나 <더 로드> 모두 길을 중요한 소재로 한 소설과 영화들이다. 이 두 영화에서의 ‘길’은 고난과 어려움을 상징했고, 그 길 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영화의 중요한 줄거리였다. 
 
02-1.매드맥스.jpg
 
02-2.영화 더 로드.jpg» 길을 주제로 한 영화 <매드맥스>(위)와 <더 로드>의 한 장면.
 
급격한 산업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륙의 길
 
영화 <리버로드>도 길을 배경으로 한다. <리버로드>는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환경과 사회,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의 현재, 그리고 그 속에서 변화를 온몸으로 겪어내는 한 가족의 삶을 조명한다. 앞서 길이 한 문명이나 사람의 삶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리버로드>에서의 길은 문명과 사람 모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10_45_17__58a2612da16bb[S750,750].jpg» 문명과 개인의 삶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한 영화 리버로드 포스터.
 
주인공은 열 살 남짓한 꼬마 형제다. 이들을 오래전부터 유목 생활을 했던 소수 민족, 위구르족이다. 형제는 할아버지와 함께 도시에 산다.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고 있고, 어머니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 형제가 태어났을 당시만 해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마을 가까이에서 유목을 하며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었지만, 인근에 거대한 도시가 생기면서 가족은 함께 살 수 없게 되었다. 도시가 점점 커지자 도시 주변의 땅과 강이 점차 메말라 갔고, 이 때문에 목초지가 사라져서 더는 유목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두 형제는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다. 화려한 도시가 생겨났지만 그 때문에 도시 주변 환경이 사막으로 변했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을 가진 인간의 삶도 붕괴한 것이다. 이러한 삶의 붕괴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리2.jpg» 도시화로 가족들이 함께 살지 못하게 되었다.
 
형제를 돌보던 할아버지가 갑자기 죽게 되자, 둘은 할아버지의 장례 후 연락이 닿지 않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기로 한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의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잡이는 과거 할아버지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던 형제의 기억이다. 기억을 더듬어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서 두 형제는 과거와는 너무 달라진 풍경에 당황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 풍부한 물이 흐르던 강은 메말라 버렸고, 푸른 초지였던 곳은 모래바람이 날리는 사막으로 변해 있었다. 이러한 급속한 환경의 변화는 형제의 기억을 방해하고, 이 때문에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두 형제는 과거 아버지가 유목 생활을 하던 장소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곳도 사막으로 변해버려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다. 
 
리3.jpg»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은 이미 사막으로 변해있다.
 
영화의 말미에서 두 형제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찾게 되지만, 아버지의 삶은 형제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영화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버지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리버로드>를 보길 권한다. 
 
사실 도시화로 인해 주변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하거나 개인의 삶이 영향을 받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우리나라도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 전통적 방식의 문화를 대부분 잃었고, 이 과정에서 지역마다 존재했던 독특한 삶의 방식들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06.아버지와의 만남.jpg» 결국 아버지를 찾지만, 아버지는 이미 아이들이 생각했던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어떨 길을 가고 있는가?
 
만약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그리고 우리나라의 문명을 누군가가 ‘길’에 빗대어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영화가 만들어질까? ‘녹조라떼’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문제가 되는 4대강의 상황을 주제로 <그린 리버 로드>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1급 발암물질인 미세먼지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배출원을 차단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모습을 표현하는 <마이크로 에어 로드>라는 영화가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영화를 만들더라도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영화화한다면, 블록버스터급 재난영화가 되거나 암울한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 영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영화 <패신져스> 칼럼 도입부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07-1.녹조라떼.jpg» 낙동강의 '녹조라떼'.
 
<리버로드>를 보면서 도시화가 일으킨 사막화와 이로 인한 한 가정의 몰락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우리의 삶을 모티브로 한 영화를 본 누군가는 스스로 물과 공기를 오염시킨 문명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인 것은 아직 우리의 길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이 길을 계속 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로 방향을 바꿀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할 시점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걸까? 또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싶은 것일까?”
 
조성화(환경과교육연구소 대표, 수원시 기후변화체험교육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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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자강도 일대서 탄도미사일 발사 "ICBM급 평가"

 

심야 발사 이례적... '화성-14형'보다 고도·비행거리 늘어나

17.07.29 06:54l최종 업데이트 17.07.29 06:54l

 

북한이 자강도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29일 "북한은 28일 오후 11시 41분께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불상의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라고 발표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후 24일 만이다.

합참은 북한의 이번 미사일에 대해 "고도는 약 3700km, 비행거리는 1000km 이상, 사거리 기준으로 지난번보다 진전된 ICBM급으로 추정된다"라며 "추가 정보를 분석 중"이라고 설명했다. 화성-14형은 최고고도가 2천802㎞, 비행거리는 933㎞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합참으로부터 북한 미사일 발사를 보고받은 후 이날 오전 1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 소집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 도발을 강행한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7차례에 달한다.

한·미·일 "ICBM급 평가"... 미국 본토 가격 가능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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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의 제프 데이비스 대변인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하고 확인했다"라며 "이번 미사일은 낙하할 때까지 약 1000km를 비행했으며, 예상한대로 ICBM급으로 평가됐다"라고 밝혔다. 이는 이론상 최소 5500km를 비행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방위성은 성명을 통해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45분 정도 비행한 뒤 일본 홋카이도 오시마반도 오쿠시리섬 서쪽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발표했다.

방위성 관계자는 "이번 미사일은 고도가 3000㎞를 초과했다"라며 "발사 각도를 평소보다 높게 설정하는 '로프티드 궤도(lofted trajectory)'로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일본 정부도 아베 신조 총리의 주재로 NSC를 열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일본 NHK에 따르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이번 미사일의 고도와 사거리 등을 고려했을 때 ICBM급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강력한 경고를 무시하고 또다시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했다"라며 "가장 엄중하고 강한 단어로 비난하며,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서 국민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다"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북한이 사전 통보도 없이 EEZ 내에 미사일을 낙하시킨 것은 항공기와 선박의 안전에 매우 위험한 행위"라며 "미국과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에 새로운 역할을 요구하면서 북한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더욱 강화될 듯... 추가 도발 우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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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CNN 등 주요 외신은 이번 미사일이 상당한 거리를 비행한 것으로 볼 때 ICBM급 가능성이 있다며 한·미·일 군 당국이 구체적인 발사 정보를 얻기 위해 정밀 분석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 전문가는 "북한이 자강도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처음이고, 심야에 기습적으로 발사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며 "그동안 북한은 대개 아침에 미사일을 발사해왔고, 심야 발사는 거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심야에 자강도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언제, 어디에서도 미사일 발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수 있다"라며 "이는 북한 미사일 발사의 사전 탐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이 최근 군사 적십자 회담을 공식 제의했으나 북한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면서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비전으로 내놓은 이른바 '베를린 구상'이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이 북한 여행금지를 포함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 데다가 다음 달 한·미 연합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시작되면 북한이 추가 도발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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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률 동지, 그러니 지금 갈 때인가”

통일애국전사 고 박석률 동지 민주사회장 추도식 엄수
▲고 박석률 선생 영정

“박석률 동지, 그러니 지금 갈 때인가. 나와 함께 계속, 40년 전의 그 ‘남민전’ 함성을 외쳐야 하지 않는가.”

‘통일애국전사 고 박석률 동지 민주사회장 추도식’이 27일 저녁 서울 도봉구 한일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과 동지들, 친지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오세제 서강대 민주동우회 회장의 고인 약력 소개에 이은 추도사에서 공동장례위원장인 안재구 남민전 동지회 대표는 “박석률 동지, 아쉽다. 정말 속상하다. 나보다 먼저 가서 아쉽고 속상한 게 아니다. 전사는, 우리 남민전 전사는, 짧든 길든 굵게 가자는 주의 아니던가. 사람답게 사는 사람세상 -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뻗쳐 온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꿈을 채 이루지 못하고 가는 동지의 처신이 정말 속상하다”고 토로하곤 “우리는 그 피어린 투쟁으로 역사를 개척해 온 동지다. 그 역사의 바탕에서 지금 세계는 어떤가. 우리 민족의 자주적 대와 힘이 융성하여 세계정세가 변혁의 문턱에 올라서 있지 않은가. 우리가 소원하는 자주, 민주, 통일세상의 빗장도 풀리고 있지 않은가”라고 고인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공동장례위원장인 안재구 남민전 동지회 대표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박형선 광주전남 민청학련 동지회 회장은 추도사에서 “지난 78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석률이 형이 찾아와서는 남민전에 가입해 새롭게 시작하자고 얘기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촛불이 타오르고, 민주주의가 조그마하게 움트기 시작하고 있는데 정작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때인 지금 형은 안 계신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소처럼 눈이 크고 맑아 돈 하고는 인연이 없는 분이었고, 죽어서도 운동을 하겠다고 했는데 아마도 먼저 가신 선배들을 만나면 세 번째, 네 번째 새로운 시작을 하고 계실 거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호상을 맡은 남민전 동지회 이강 선생은 “(고인이)만날 때마다 건강의 중요성을 느낀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니 엄청난 아쉬움을 느낀다”며 “오늘 이 자리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유족을 대표해 고인의 동생인 박석삼 선생은 “석률 형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시고, 오늘 이 추모의 자리를 가득 메워주신 여러 선생님들, 선배, 동기, 후배 여러분께 유족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고 인사하곤 “저는 석률 형이 낭만적 전사로서의 삶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저는 혁명적 전사였던 석률 형을 보낸다. 저는 이제 석률 형이 돈, 권력, 명예, 출세를 따지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경쟁하지도 않는 그런 세계로 가서 그의 혁명적 낭만을 완성하길 바란다”면서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추도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고인의 영정 앞에 차례로 나와 헌화하고 묵념했다.

▲추도식을 시작하면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박석삼 선생 등 유족들이 인사와 답사를 하고 있다.
▲추도식 참가들이 고인에게 헌화하고 있다.

고 박석률 선생 약력 및 활동

 

■ 약력

1947년 광주 출생

광주 계림초등학교 졸업

광주 서중학교 졸업

서울 경기고등하교 졸업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활동

1974년 4월 ~ 1975년 2월 민청학련 수감(7년형)

1979년 11월 ~ 1988년 12월 남민전 수감(무기징역형)

1995년 11월 ~ 1996년 8월 범민련 수감

전 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민자통) 의장

전 6.16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공동대표

전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전 평화경제미래포럼 대표

 

■ 저서

<이땅에 살기 위하여>(녹두, 1989), <저 푸른 하늘을 향하여>(풀빛, 1989), <자주와 평화 누가 위협하는가>(풀무, 2002), <자주와 평화, 개혁으로 일어서는 땅>(백산서당, 2003)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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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위안부' 문제 간섭 중단하라"

이용수 할머니 "미국도 책임..어디 건방지게 나서냐"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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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8  1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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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미 하원 일본군성노예제 결의 채택 10주년 맞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2015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일본군'위안부'합의(12.28합의) 이면에 미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짙은 가운데, 시민사회는 미국 정부의 '위안부' 문제 간섭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주한미대사관 앞에서 '미 하원 일본군성노예제 결의 채택 10주년 맞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공개요청서에서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노력과 세계의 노력은 2015한일합의로 인해 위협받게 되었다"며 "피해자들에게 정의실현이 지연되고 있는 현재의 사태에 대해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가해자 일본 정부가 범죄인정과 사죄, 배상할 자세도 갖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붑에게 '위안부' 합의를 종용하고 압박하였다. 우회적으로 한미동맹을 빌미로 한일합의를 압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정부의 모습은 피해자에게 인권회복의 권리를 제대로 요구하지 못하게 하고 포기할 것을 압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12.28합의 이후 당시 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의 합의 지지 발언, 빈센트 브룩수 주한미군사령관과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차관보 등의 '위안부' 합의에 따른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기회 발언 등이 미국 정부의 간섭을 의미한다는 것.

"미국 정부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의 권리를 한.미.일 동맹 강화와 국익의 거래수단으로 희생시키려 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 및 국제사회의 부당한 압력이 아닌, 정의로운 연대와 협력을 요구한다"며 "미국사회 그리고 구 연합군이였던 나라들에게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에 대해서 불처벌과 진실은폐로 역사청산의 기회를 놓친 책임을 더욱 높이 추궁하고자 한다"며 미국 정부의 간섭중단을 촉구했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미국도 책임이 있다. 어디 건방지게 나서느냐"고 일갈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한국과 일본정부가 10억 엔으로 우리를 팔았다. 여전히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속이고 있다. 이렇게 죄를 지어놓고 죄를 모르고 있느냐"고 일갈했다.

그리고 "미국도 책임이 있다. 어디 건방지게 나서느냐"며 "이건 협상이 아니었다. 나는 한 적도 없다. 듣도보도 못했다. 도둑협상이다. 그냥 못있는다. 그냥 죽을 수없다. 열심히 끝까지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30명이 참가했으며,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는 주한미대사관에 △2차대전 관련 공문서 공개, △간섭 중단, △올바른 해결 지원 등을 담은 공개요청서를 전달했다.

   
▲ 길원옥, 이용수 할머니가 주한미대사관 측에 공개요청서를 전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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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권연대, 반미반전 운동기간 선포

민권연대, 반미반전 운동기간 선포
 
 
 
편집국
기사입력: 2017/07/28 [03:08]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권연대는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부터 한달여간 반미반전 운동을 집중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 편집국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미 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반미반전 운동기간을 선포했다민권연대는 전쟁이 끝나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항시 전쟁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다며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와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민권연대는 북한의 '화성-14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이후 미국의 대북압박은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고북한도 이에 대응해 추가적인 핵·미사일 시험 등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것을 우려했다특히 민권연대는 “8월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며 미국의 폭격기핵항모 등 핵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집중 될 것이고 한반도 긴장은 극대화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민권여대는 그동안의 숱한 제재와 압박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 되어 왔다며 제재와 압박으로는 북한의 핵과 ICBM을 막을 수 없음이 명확해졌다고 평가했다민권연대는 남은 것은 대화와 협상뿐이라고 강조하며, “북미간 대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민권연대는 7월 27일부터 8월 26일까지를 반미반전 운동기간으로 선포했다민권연대는 전쟁훈련 중단사드배치 철회대북적대정책 철회북미 평화협정 체결 등의 내용으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28일 전국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진행하며, 29일에는 미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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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미국은 대북적대정책 철회하라!

 

오늘은 정전협정을 맺은 지 64년이 되는 날이다. ‘정전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 중인 나라들이 서로의 합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하는 일이다말 그대로 현재 한반도는 전쟁이 종식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잠시 멈춘 상태다.

 

전쟁이 끝나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 국민들은 항시 전쟁위기 속에서 살아야 했다한미연합 전쟁훈련이 진행되고미국의 최첨단 핵무기들이 한반도에 배치되고이에 반발한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을 할 때마다 국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한다또한 우리 국민들은 한미동맹이라는 이름하에 불평등한 SOFA협정백해무익한 사드배치 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더군다나 앞으로 한반도 위기는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7월 4북한의 '화성-14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이후 미국의 대북압박은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7월 5(현지시간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 대사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필요하다면 군사력까지 사용'할 것을 언급했고, 8일에는 미국의 전략폭격기 B-1B랜서가 한반도상공에서 실사격 훈련을 진행했다트럼프 행정부는 대북 독자제재에 나서는 등 경제제재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북한은 이에 대응해 추가적인 핵·미사일 시험 등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8월에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연합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미국의 폭격기핵항모 등 핵전략자산이 한반도에 집중 될 것이고 한반도 긴장은 극대화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 국민들은 이런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다. 1차적으로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이 철회되어야 하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동안의 숱한 제재와 압박에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고도화 되어 왔다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의 보고서에서도 북한이 이르면 내년에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실전에서 타격할 능력을 보유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제재와 압박으로는 북한의 핵과 ICBM을 막을 수 없음이 명확해졌다남은 것은 대화와 협상뿐이다.

 

민권연대는 오늘(727)부터 826일까지를 반미반전 운동기간으로 선포한다미국 정부를 향해 전쟁훈련 중단사드배치 철회대북적대정책 철회 등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것이다결국 북미간 대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 한반도 평화의 해법임을 알려나갈 것이다.

 

이제는 한반도 전쟁상태를 끝내야 한다미국은 대북적대정책 철회하고 북미 평화협정 체결에 나서라!

 

2017년 7월 27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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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학자 이영훈의 망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7/28 11:27
  • 수정일
    2017/07/28 11:2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주기전대, ‘위안부는 합법적 공창’ 동영상 소감문 제출 강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학자 이영훈의 망언
 
임병도 | 2017-07-28 08:44:1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전주기전대의 2017학년도 2학기 교·직원 채용 공고. 필수 제출 서류에 뉴라이트 이영훈 교수의 동영상 강의 시청 후 소감문이 포함돼 있다. ⓒ전주기전대 홈페이지 캡처

 

대학교 교직원 채용 ‘제출 서류’에 ‘위안부 망언’ 발언 교수의 동영상 강의 소감문이 포함돼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지난 7월 7일 ‘전주기전대’는 2017학년도 2학기 교·직원 채용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습니다. 채용공고 내 제출 서류 목록을 보면 ‘이영훈 교수 환상의나라-위안소의여인들1.2.3 시청 후 본인의견서 제출 1부’가 있습니다.

채용공고에는 이영훈 교수의 강의가 있는 링크 주소와 함께 ‘A4 3장 이내, 13포인트, 줄간격160 ,글씨체 휴먼명조’라며 자세하게 소감문 작성 요령까지 기재돼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동영상 소감문은 필수 제출 서류로, 만약 소감문을 제출하지 않으면 교직원 응시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전주기전대는 채용공고뿐만 아니라 지난 4월과 5월에 있었던 학교 교직원 연수에서도 이영훈 교수의 동영상을 시청하고 소감문을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전북지역 사회단체는 ‘시대착오적 사상검증’이라며 기전대학이 채용 절차와 재직 중인 교직원 연수 과정에 문제의 동영상을 포함한 의도가 무엇인지 밝혀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문을 닫고 답변을 회피했습니다.


‘위안부는 합법적 공창, 일본 극우세력과 똑같은 이영훈 망언’

 

▲이영훈 교수의 ‘위안소의 여인들’ 강의 동영상은 극우논객 정규재TV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다.

 

논란을 빚은 이영훈 교수의 동영상은 극우논객이자 박근혜씨의 탄핵 중 인터뷰를 진행했던 ‘정규재TV’에서 방송됐던 ‘극강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시리즈 중 ‘위안소의 여인들 1,2,3’편 입니다.

이영훈 교수는 ‘위안소의 여인들’ 강의에서 위안부 모집 업자가 여성의 부모에게 돈을 주고 데려왔기 때문에 ‘사기성 인신매매에 불과하다’라며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일본정부와 군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사적인 거래’라고 말합니다.

이 교수는 ‘사기와 인신매매란 방식을 통해서 종군위안부가 되기는 했으나 성노예라고 규정할 정도는 아니었다’라며 ‘피해자들에 대한 감금과 폭행이 없어 인신의 자유가 보장된 합법적 공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은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과 똑같습니다. 2016년 일본 자민당의 사쿠라다 요시타카 의원도 “일본군 위안부는 직업으로서의 합법적인 매춘부였다.”라는 망언을 늘어놓았습니다.

특히 1997년 아베가 “한국에는 기생집이 있어 위안부 활동이 생활 속에 녹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라는 발언은 이영훈 교수가 주장하는 ‘조선시대의 매춘과 양반들의 성생활’ 설명과 너무나 유사합니다.

이영훈 교수의 주장을 보면, 마치 일본 극우세력의 ‘위안부 망언’을 베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2004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사과했던 이영훈 교수’

 

▲ 2004년 MBC 100분 토론에서 ‘위안부 망언’ 발언을 한 이영훈 교수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들께 사과의 절을 했다. ⓒ한겨레 캡처

 

이영훈 교수의 ‘위안부 합법적 공창’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MBC 100분 토론에서도 이 교수는 “일본군 성노예가 ‘사실상 상업적 목적을 지닌 공창형태’였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이영훈 교수는 발언이 논란이 되자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과의 절을 했습니다.

이 교수는 할머니들의 호통에 “거듭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며 “이번 기회를 통해 할머니들의 고통을 더는 일에 동참하겠다. 할머니들의 울분을 가슴에 새기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고 해명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도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는 합법적 공창’이라고 주장하는 이영훈 교수의 모습 보면, 2004년 사과도 거짓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학자 이영훈의 망언’

 

 

이영훈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뉴라이트 학자입니다. 특히 극우세력과 뉴라이트 학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교과서포럼’을 주도했으며 ‘대안교과서’ 저자로 참여했습니다.

‘일제시대(일제강점기)는 억압과 투쟁의 역사만은 아니었다.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 78쪽)

‘지배를 위해서 철도를 깔고 도로를 뚫고 항만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것은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면 근대문명의 일환이었고, 그것은 우리 한국민족도 마찬가지로 주체적으로 적응하고 훈련을 받으면서 근대 인간으로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 (이영훈 교수)

이영훈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뿐만 아니라 아베의 망언이 담긴 담화를 가리켜 “진중하게 쓰인 훌륭한 문장이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아베는 “서울대의 한 분이 일제시대(일제강점기)에 왜 (조선의) 인구가 증가했는가 하는 관점에서 분석한 자료가 있다”라며 이 교수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이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했다는 말, 그거부터 바꿔야 한다’라며 독재를 옹호하기도 했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이런 주장은 극우세력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나오기도 합니다.

 

▲ 지난 7월 23일 별세한 김군자 할머니는 2004년 이영훈 교수가 나눔의 집에 왔을 때 ‘학자 자격이 없다’라며 호통을 치기도 했다.

 

지난 7월 23일 김군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2004년 이영훈 교수가 나눔의 집에 왔을 당시 할머니는 이 교수를 향해 ‘학자로서의 자격이 없다’라며 호통을 쳤습니다.

“학자는 무슨 학자냐? 자격 없다. 당신이 학생들을 다 버려놓았다. 우리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뚫린 입이라고 막말을 하느냐?” (2004년 김군자 할머니)

김군자 할머니가 평생 상처를 받았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이영훈 교수는 아직도 망언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하늘나라에서도 할머니의 원통한 마음은 풀리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있는 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아픔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비록 할머니는 이 땅에 없지만, 남아있는 우리가 끝까지 역사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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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원장 비판하려다 정신병원 간 스님, 불자들이 나섰다

 

[불교 적폐 청산] 적광 스님(운정스님) 인터뷰

17.07.27 22:05l최종 업데이트 17.07.27 22:29l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불교계 언론인 <불교 닷컴> <불교포커스>와 함께 '불교 적폐 청산' 공동기획 기사를 내보낸다. [편집자말]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요양을 하고 있는 적광 스님.
▲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요양을 하고 있는 적광 스님.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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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납치 폭행 당한 스님, 지금은 정신병동에

한 달 전 정신병동에서 만났던 적광 스님(운정 스님)은 결국 경찰을 고소했다. 

스님은 2013년 8월21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에서 벌어진 승려들의 집단 폭행 사건 피해자다. 이번에 고소한 경찰은 그가 폭행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종로경찰서 소속 그 경찰이다. 당시 스님이 신변 보호를 요청해 출동했는데도 경찰관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실상 직무유기했다. 적광 스님이 오래 전 기억을 소환한 이유다. 스님은 골절상 등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고, 지난 4년간 정신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7월 19일 전철과 KTX, 버스, 택시를 갈아타면서 그가 은거하는 곳에 도착하니, 녹색 철망 문의 잠금장치를 열고 마중 나왔다. 환자복이 아니라 밀짚모자에 승복을 입었기 때문일까? 그는 한 달 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적광 스님(운정스님)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뒤 농가주택을 개조한 곳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서까래가 드러난 처마 밑에 까치집이 보였다. 쪽마루에 올라 한 평 반 남짓한 방에 들어갔다. 책장에는 <서양 철학사> <인도 철학사> <코란> <플라톤의 국가론> 등 묵직한 책이 꽂혀 있다. 경전 공부하면서 수기로 써서 요점을 정리한 파일도 100여개나 있다. 
  
"요즘은 책을 못 봅니다. 우울증이 심해서. 전에는 공부를 많이 했지요. 파일을 정리해서 책도 내려고 했는데... 지금은 폐인이 다 됐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 평온하던 표정이 굳어졌다.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으면 등을 뒤로 젖혔다. 잠깐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눈을 떴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는 눈동자에 4년 전 공포스러운 장면이 스쳤다.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할 말이 남은 까닭이다.

두 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다. 그의 말을 노트북에 담았다. 기자라는 직업이 잔인하게 느껴진 건 처음이다. 그와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와 한적한 버스 정류장 앞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 벤치에 앉아 한 시간마다 한번 오는 시외버스를 기다렸다. 4년 전, 그가 조계사 앞에서 호법부 승려들에 의해 납치돼 끌려가면서 외친 뒤 이번에 처음으로 입 밖에 낸 이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한민국 경찰, 이건 아닙니다."
 

 4년전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호법부 승려들에게 납치되는 적광 스님.
▲  4년전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호법부 승려들에게 납치되는 적광 스님.
ⓒ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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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 "용서할 수 없다"

적광 스님의 절규는 4년 뒤인 지난 7월 13일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다시 울려퍼졌다. 그는 이 자리에 나오지 못했지만,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자, 제가 먼저 외치겠습니다. 적광 스님이 호법부 승려들에게 끌려가면서 외친 말이었습니다. '이건 아닙니다'."

'적광스님 폭행에 따른 조계종 승려, 경찰관 고소고발 기자회견'의 사회자인 '명진 스님과 함께하는 변호사 모임'의 조영선 변호사가 선창하자, 참석자들은 따라 외쳤다. 

적광 스님과 정의평화불교연대, 참여불교재가연대, 바른불교재가모임, 명진스님제적철회를 위한 원로모임 등은 당시 폭행에 가담한 7명의 호법부 소속 승려와 재가 종무원,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 1명의 고소‧고발장을 서울지방검찰청에 접수했다. 

호법부 소속 승려들은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경찰관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위반 직무유기 등의 혐의다. 적광 스님이 4년 전 '나홀로 소송'을 해서 1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폭행 가해자 2명(승려 1명, 재가 종무원 1명)은 제외됐다.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에 적힌 고소‧고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지난 7월13일 서울 조계사 일주문에서 열린 '적광스님 폭행에 따른 조계종 승려, 경찰관 고소고발 기자회견'.
▲  지난 7월13일 서울 조계사 일주문에서 열린 '적광스님 폭행에 따른 조계종 승려, 경찰관 고소고발 기자회견'.
ⓒ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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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광 스님의 탄원, 기자회견에도 자승 총무원장의 도박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2) 집단 폭행에 따른 상해행위임에도 승려 및 재가 종무원 2인만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경미한 처벌을 받았다. 
3) 형사처벌 받은 2인에 대한 조계종단의 징계도 없었고, 그들은 현재 그 직을 수행하고 있다.
4) 고소인은 집단 폭행 트라우마로 현재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5) 조계종 내의 폭행, 도박 등 위법, 일탈된 행위가 빈번함에도 자정 내지 처벌되지 않고 있다. 
6) 국민을 보호하고 위법행위를 저지해야 할 경찰관은 오히려 방관함으로써 폭력행위가 노골적으로, 집단적으로 전개되도록 용이하게 하였다.   

"그날 제가 외친 것에서 '대한민국 경찰'이 빠졌네요. '이건 아닙니다'가 아니라 '대한민국 경찰, 이건 아닙니다'였습니다. 납치당하는 장면을 지켜보던 5명의 경찰관들에게 '제발 나를 구해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종로경찰서에 신변보호를 요청했고,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 경찰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들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신경을 안정시키는 정신과 약을 매일 한 주먹씩 입에 털어 넣어도 꺼지지 않는 분노. 이걸 이해하려면 2013년 8월 21일 오후 2시, 조계종 총무원 청사 앞 우정공원 입구 인도에서 벌어진 상황을 알아야 한다. 아래 영상을 클릭하면 적광 스님이 이곳에서 13명의 호법부(조계종 경찰-검찰격) 승려와 종무원에게 끌려갈 때 무전기를 들고 지켜보던 경찰이 나온다.
 



적광 스님은 이날 자승 총무원장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납치돼 조계사 경내에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1층으로 끌려가는 과정에서 집단 폭행을 당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 그가 호법부 승려들이 내민 '환속제적원'(조계종 승적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강제로 지장을 찍고 다시 끌려나와 식당에 갔을 때에도 경찰 2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제 흉측한 모습을 보고 놀랐는지, 경찰들이 경찰서로 가자고 하더라고요. '상황이 끝났는데 무슨 소용이 있냐'고 대꾸했습니다. 경찰에게 '왜 저를 지켜주지 않았냐'고 싫은 소리도 했어요. 그랬더니 그냥 갔습니다.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은 늦더라도 추궁당해야 마땅합니다. 이래저래 마음은 무겁지만, 그래서 경찰관도 고소한 겁니다."

당시 납치-폭행 현장을 묵인한 경찰의 행태가 그에게 미친 참담한 상황은 아래 기사를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다. 

☞ "나는 도살장 끌려온 한 마리 짐승... 1200만원 돈 봉투에 영혼 팔 수 없었다"

[4년 전 열지 못한 기자회견] 자승 원장을 고발하고 싶었다  

4년 전 그가 기자회견을 하려다가 실패한 장소는 을사늑약 후 민영환이 자결로 항거한 우정국 터 앞이다. 적광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 재임을 막고 불교계를 바로잡고 싶었다"면서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이 고통과 위협을 무릅쓰고 독재에 항거했듯이 저도 그런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기자회견 장소에서 한 마디도 외치지 못하고 끌려갔다. A4용지 5쪽짜리 기자회견문과 <신동아>의 자승 원장의 도박 의혹 기사 복사본 100여 부도 호법부 승려들에게 빼앗겼다. 

- 호법부 승려들은 어떻게 알고 그 자리에 왔나?
"기자회견을 한다고 10여 개의 불교계 언론에 알렸다. 조계종 총무원의 입장에 충실한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그걸 총무원에 알렸을 것이다." 

- 당시 기자회견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자승 원장의 거액 상습 도박 의혹을 제기하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자승 원장이 재임을 위해서 자기 사람들을 주요 요직에 앉히는 등 불교계를 정치 세력화한다는 비판 내용도 있다."

- 당시 못다한 기자회견을 지금 한다고 해도 같은 생각인가?
"조만간 총무원장 선거가 열릴 텐데, 자승 원장은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줬듯이 자기 후계자를 심어놓고 나갈 것이다. 4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불교계의 정치세력화를 완성시켰다. 불교의 미래가 없다. 어쨌든 사람마다 자기 몫이 있는데, 저는 그 때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폭행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적광 스님.
▲  폭행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적광 스님.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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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했던 그의 과거] 무소의 뿔처럼 

<오마이뉴스>가 4년 만에 그를 인터뷰한 기사 (☞ 납치 폭행당한 스님, 지금은 정신병동에)에 달린 댓글 중 이런 게 있었다. 

"속세에서의 이종사촌 형으로서 적광스님에 대한 기억은 남다르다. 누구보다 진리추구에 밝았던 빛나고 찬란했던 젊은 열정을 지녔던 스님을 저렇게 만든 적폐세력은 새로운 정부 출범과 더불어 깨끗이 일소되고 새롭고 정의로운 종단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서박사)

적광 스님도 그 댓글을 보고 "지금은 연락이 되지 않는데 저를 끔찍하게 아끼던 형이었다"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그의 '찬란하고 젊은 열정을 가졌던' 때가 궁금했다. 조계종 호계원(조계종의 사법기관-법원격)이 승적을 박탈해서 '선학원'으로부터 다시 계를 받아 '운정 스님'으로 살고 있는 적광 스님. 

대구 능인고등학교 재학 시절 그는 수재였다. 한양대학교는 법과대학을 키우려고 고시반 제도를 운영했다.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성적인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선발해 4년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고시를 준비하게 했다. 1981년에 그는 한양대에 입학했고, 4년 장학금에 매월 10만원의 생활비도 받았다. 50명의 동기생 중 35명이 고시에 합격했지만, 그는 2학년 때부터 불교에 빠졌다.      

"세상의 영광보다는 진리의 세계가 좋았어요. 세상의 길이 모래와 돌의 길이라면 불법의 길은 황금의 세계로 보였습니다. 법구경, 화엄경 등을 보면서 진리 추구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다짐했죠. 출가를 하려는데 부모님들이 학교 졸업은 해야 한다고 반대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 포스코 계열 회사에서 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모았어요. 그 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출가의 뜻을 굽히지 않자 결국 부모님들이 허락을 했어요. 그 때 39살(2000년)이었습니다." 

그는 출가한 뒤에도 서강대 종교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동국대학교는 물론 서강대에서도 장학금을 받았다. 그래도 불교 공부에 대한 갈증은 식지 않았다. 경남 통영의 연화도에 있는 연화사에 들어가 3년 동안 기도만 하고 나왔다. 그는 청송교도소에서 3년 동안 법회를 주관했고 경북 포항 자장암 주지를 지냈다. 

- 불교에 귀의해서 꼭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참선 수행을 많이 하고 싶었다. 깨달음의 세계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옛날 일이 됐다."

- 폭행 사건을 당한 뒤에 환속(다시 속세로 돌아옴)의 유혹을 느낀 적은 없나?  
"추호도 없다. 지금 우리의 불교가 타락했지만, 나 혼자라도 바로 살면 그게 승려의 길이다."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겠다? 
"맞다."

- 지금도 출가할 때의 그 꿈을 꾸고 있나? 
"불교뿐만 아니라 우리 세상이 모두 평화로운 불법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그 꿈을 꾸고 있다. 계속 공부를 하고 싶다. 몸이 빨리 나아지면." 

그는 지난 4년간 악몽에 시달리면서 정신과 약을 끊은 적이 없다. 최근 우울증 증세가 악화돼 35일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담당 의사는 계속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퇴원했고 한 달에 한 번씩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때마다 우울증 치료약을 한 보따리씩 가져 온단다.

"몸조리하는 데 전념하고 있어요. 외출은 하지 못하지만, 집안 허드렛일을 하면서 풀도 뽑고 운동도 합니다. 건강했을 때에는 매주말 산행을 할 정도로 건강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으니 몸에 힘이 없습니다."

[정신과 치료, 그 후] "조계종 적폐 청산 촛불을 들 때"
 

 적광스님 폭행 관련 고소고발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재동 화백.
▲  적광스님 폭행 관련 고소고발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은 박재동 화백.
ⓒ 불교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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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적광 스님이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후원모임이 생겼다. 스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최근 조계종 승적을 박탈당한 명진 스님 제적 철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조계종 적폐청산시민연대 등이 주축이 돼 후원모임을 결성했다. 

지난 13일 조계사 앞에서 열린 '조계종 승려, 경찰관 고소고발 기자회견' 때 적광 스님 후원모임의 공동대표인 박재동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한 달에 한 번씩 비구들을 모아놓고 그동안의 말과 행동에 대한 비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걸 '포살과 자자'(포살은 자신의 잘못을 대중들 앞에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이고 자자는 자신도 깨닫지 못한 잘못을 지적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지적 받는 것.)라고 합니다. 이때 부처님이 제일 먼저 나서서 '내가 깨닫지 못한 나의 허물을 지적하고 비판해 달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부처님의 정신입니다. 

이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조계종 총무원이 자승 원장의 허물을 비판하려는 적광 스님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잡아서 족쳤습니다. 승복도 벗겼습니다. 종교의 문제 이전에 인간의 인권 문제입니다. 사적 형벌을 금지하는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죠. 경찰은 폭력을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않고 방조 묵인했습니다. 종단 적폐를 촛불 정신으로 청산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적광 스님 후원모임은 앞으로 치료비를 위한 모금과 소송 지원 등을 할 예정이다.

적광 스님과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우리 불교,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종교는 종교다워야 합니다. 성직자가 신도들의 아픔을 보살피고 신도들과 함께하는 게 종교인데 불교계는 일부의 일탈된 세력들이 성직자의 본분을 버리고 범계 행위를 저지르며 사유재산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불교계의 적폐죠. 이걸 드러내고 불태워야 할 자승 총무원장은 전국의 사찰을 자기 정치 세력으로 만들어서 미래가 암담합니다. 

불교 수장이 부처님의 법에서 일탈한 것도 문제인데, 행동하는 승려가 없습니다. 하나둘씩 모이면 모두 이런 불교에 불만을 드러내지만 이걸 고치려는 승려가 없습니다. 그나마 최근 재가자(불교 신도)들이 불교 적폐를 없애려고 행동에 나서고 있는데, 이게 희망입니다."  

심한 우울증을 앓는 그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4년 전의 기억을 들고 나온 것은 재가자들이 만드는 희망에 한 점 보태기 위해서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지만 조계종 적폐청산을 위해 촛불 한 개 들고 싶다는 뜻이다. 그가 힘겹게 다시 시작한 심판을 응원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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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도, 미군 지휘관들도 "원폭 사용 반대"

 
[전쟁국가 미국] 그로브스 "원폭의 주요 목표는 러시아"
2017.07.27 00:18:59
 

 

 

 

2400명 희생에 34만 명 살해로 보복한 미국

태평양 전쟁은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서 시작돼 1945년 8월 9일 미국의 나가사키 원폭 공격으로 사실상 끝이 났다. 진주만 기습으로 인한 미군 전사자는 2335명. 민간인 사망자는 68명이다. 군인 대 민간인 사망자의 비율은 34 : 1. 전투원만을 노린 정밀 폭격이었다. 

나가사키에서는 4만 명이 즉사했는데 이중 군인은 250명이었다. 군인 대 민간인 사망자의 비율은 1 : 159.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은 무차별 폭격이었다.

나가사키에서는 1945년 말까지 7만 명, 1950년까지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히로시마에서는 8만 명 즉사에 1945년 말까지 14만 명, 1950년까지 2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공식 발표를 통해 히로시마에서의 일본군 사망자는 3242명이라고 밝혔다. 

진주만 기습의 사망자는 2413명인 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희생자는 34만 명으로 진주만 사망자의 141배에 이른다. 한마디로 지나친 복수극이라 할 수 있다. 브루스 커밍스가 히로시마를 '정당한 전쟁의 부당한 마무리'라고 부른 이유다. 

히로시마 당시 트루먼은 포츠담회담을 마치고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다. 오거스타호 선상에서 저녁을 먹다가 히로시마 원폭 투하 사실을 보고받은 그는 펄쩍 뛰며 "정말 역사적인 일이야"라고 환호했다. 얼마 후 그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공표한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 가운데 가장 "행복한" 발표라고 말했다. 

히로시마 이틀 후, 트루먼이 환호했다는 소식에 민주당의 한 정치인이 대통령에게 전보를 보내 주의를 당부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장치에 대해 환호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환호한 이유는 파괴가 아니라 이제 파괴가 종식되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참전 이전 '민간인 학살 중단'을 호소했던 루스벨트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기 전인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공습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중단하자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전투 행위의 와중에 아무런 방어 수단도 없는 민간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공습은 (중략) 문명 세계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또한 인류의 양심에 심대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현재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비극적 대재앙의 시기에 이처럼 비인도적인 야만이 행해져야 한다면 수십만의 무고한 시민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현재 전쟁에 가담하고 있는 모든 나라의 정부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긴급한 호소를 공개적으로 하려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상황 하에서도, 방어 수단이 없는 도시의 민간인들에 대한 공습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랬던 미국이 정작 참전 후에는 세계 최악의 공습을 단행했다. 1945년 3월의 도쿄 대공습을 비롯해(10만 명이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이 집을 잃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공격이 그것이다.  

역사가들은 그 원인으로 진주만 기습에 대한 복수심과 일본인에 대한 인종주의를 꼽는다. 유럽에서는 독일인이 아무리 적이라 해도 인간으로 느꼈으나 일본인에 대해서는 인간이 아닌, 바퀴벌레나 쥐새끼쯤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루먼은 8월 11일, 원폭 공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변명했다.

"원자탄 사용에 대해 나보다 더 고민한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일본의 부당한 진주만 기습, 그리고 미군 포로 살해에 대해 대단히 분노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알아듣는 언어는, 그동안 우리가 계속해 왔던 공습뿐입니다. 짐승을 대할 때는 짐승으로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진실입니다"

하지만 복수심이나 인종주의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군 고위 지휘관 대다수가 원폭 사용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 맥아더 등 5성 장군 7명 중 6명이 반대했다. 이는 원자탄이 전쟁 수행에 필수적 무기가 아니었음을 뜻한다. 

나아가 원폭 사용은 군사적 필요가 아닌 정치적 고려에 의해 결정됐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미국 최고위층이 원자탄을 전후 세계 질서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외교 수단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즉 소련을 염두에 둔 것이다.  
 

▲ 히로시마(왼쪽)와 나가사키에 각각 떨어뜨린 핵폭탄이 폭파하는 모습. ⓒwikipedia.org


참전 이후에는 미영 핵 독점 추구 

마틴 셔윈에 따르면 루스벨트는 이미 1943년부터 외교 수단으로서의 핵무기의 가치를 인식했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처칠은 미영 공동의 핵 독점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전후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루스벨트는 핵 개발 사실을 소련은 물론 미국 국민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오직 처칠과만 핵 문제를 상의했다. 그는 닐스 보어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제의한 핵무기의 국제적 통제를 일관되게 반대했으며 처칠이 제안한 미영 핵무기 독점을 추구했다. 전후 미국과 소련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내심 회의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당초 나치 독일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서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는 소련을 겨냥한 핵 개발로 그 성격이 바뀐다. 이러한 사정을 잘 말해주는 게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의 발언이다.  

그는 1944년 3월 맨해튼 프로젝트 참여 과학자인 조셉 로트블랫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가 러시아를 굴복시키는 것이라는 건 당신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라고 말해 로트블랫을 놀라게 했다. 그는 또 1954년 4월에 열린 미 의회 오펜하이머 청문회에서 "이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고 나서 두 주일 뒤에 러시아가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 프로젝트는 바로 그런 토대 위에서 진행됐습니다"라고 증언했다. 

1944년 9월 루스벨트는 뉴욕 하이드파크에서 처칠과 함께 일본에 대한 핵 공격을 승인하는 비밀각서를 체결했다. "충분한 숙고 후에 일본에 대해 사용될 수도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독일의 패배가 분명해진 지 3개월 후였다. 같은 달, 그로브스는 핵 공격을 위한 특수비행단을 창설했다. 1750명의 군인으로 구성된 509혼성그룹은 태평양 티니안섬에서 원폭 투하 훈련을 시작했다.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가 사망했다. 트루먼은 대통령 직을 물려받은 직후 원폭 개발 사실을 알게 된다. 4월 13일 루스벨트의 측근이자 트루먼의 정치적 멘토였던 제임스 번스는(7월 3일 국무장관 취임) 트루먼에게 원자탄이 있으면 "전쟁 종료 후 우리가 원하는 평화협정 조건을 강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4월 25일, 전쟁부 장관 스팀슨은 비밀메모를 통해 트루먼에게 "이 무기를 제대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우리 문명을 보전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보고했다.  

4월 27일, 첫 목표물선정위원회(Target Committee)가 개최됐다. 그로브스 등이 참여한 이 회의에서는 그동안 미군 공습을 받지 않은 도시를 대상으로 '인구 밀집 지역 내 지름 3마일 이상의 도심'을 폭격한다는 원칙이 세워졌고 히로시마 등이 주요 목표지역으로 거론됐다.

이후 몇 차례 관련 회의가 열린 끝에 5월 31일 스팀슨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임시위원회(Interim Committee)가 열려 최종 방침을 결정했다. "많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으며, 노동자 주택들로 둘러싸인 핵심 군수공장"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일본에 대한 사전 경고는 없다" "민간인 지역을 대상으로 하지 않겠지만, 최대한 많은 주민에게 최대한의 심리적 충격을 가한다"는 원칙이 추가됐다. ('핵심 군수공장을 공격'한다든가 '민간인 지역을 대상으로 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희생자 거의 전부가 민간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루먼은 원폭 투하 사실을 발표하면서 적의 군사기지를 폭격했다고 강변했다.) 
 

▲ 포츠담 회담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스탈린, 트루먼, 처칠(왼쪽부터). ⓒ 미국국립문서보관소


원폭 투하, 일본 항복 여부와 관련 없었다  

트루먼은 원자탄을 투하하라고 직접 명령하지 않았다. 포츠담회담(7월 17일~8월 2일)에 참석 중이던 7월 25일 스팀슨 전쟁부 장관과 조지 마셜 육군 참모총장이 서명한 작전명령을 승인했을 뿐이다. 명령서 요지는 '8월 3일 이후 날씨가 허락하는 대로 이른 시일 내에 원자탄을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7월 25일은 일본에 항복을 권고한 포츠담선언이 발표되기 하루 전이다. 즉 미국은 일본의 항복 수락 여부와 관계없이 원자탄 공격을 결정한 것이다. 국내 일부 문헌들은 일본이 항복을 거부했기 때문에 원자탄 공격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이는 틀린 내용이다. 

게다가 트루먼은 포츠담선언 서명식에 스탈린을 초대하지 않았다. 따라서 7월 26일 발표된 포츠담선언에는 스탈린의 서명이 들어가지 않았다. 스탈린의 서명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한(소련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한) 일본은 소련의 도움을 얻어 좀 더 나은 항복 조건을 얻어내려는 허망한 노력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나가사키 원폭 공격까지 당하게 된다. 

이 때문에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주임 검사로 활동한 미국인 텔포드 테일러는 나가사키 원폭을 명백한 전쟁범죄라고 규탄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가 잘한 일이냐 못한 일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정당화하는 설득력 있는 설명은 결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시 미국에서는 원폭 1,2개로 전쟁이 그렇게 빨리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최소한 3개는 필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다가 7월 25일 트루먼의 원폭 사용 승인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8월 3일 이후에는 군부의 판단에 따라 원폭을 몇 번이고 투하할 수 있었다. 만일 일본이 8월 15일에 항복하지 않았다면 한 번 더 원폭 공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일본, 1945년 6월 사실상 항복 결정 

1937년에서 1941년 사이에 3차례 일본 총리를 역임한 고노에 후미마로 공작은 1945년 2월 히로히토 천황에게 서한을 보내 "일본의 패배가 불가피"하며 "이제 걱정해야 할 것은 패전에 따라 일어날지 모를 공산혁명"이라고 경고했다.  

1945년 4월초 소련은 일본과 1941년에 체결한 소일 중립조약(Neutrality Pact)을 갱신하지 않고 폐기하겠다고 통보했다. 소련의 참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1945년 6월 18일 천황은 최고전쟁지도회의에 신속한 평화 회복을 원한다고 통보했다. 회의도 같은 의견이었다. 소련이 중재자로서 천황의 안전과 천황제 유지를 보장할 수 있는 항복 조건을 주선해줄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이러한 일본의 속사정을 미국도 잘 알고 있었다. 7월 6일 미 합동정보위원회는 포츠담에서 회동하기로 한 연합국 합동참모본부에 제출한 비밀 보고서 <적 상황 평가>에서 일본의 '항복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일본 지배층은 군사적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점차 타협을 통한 평화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무조건 항복은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략) 우리는 일본인의 상당수가 이제 군사적 완패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본다. 해상 봉쇄와 전략 폭격에 따른 피해 누적-수백만 명이 집을 잃었고 주요 도시 대부분의 시가지 25~50%가 파괴됐다-으로 그런 생각은 더욱 보편화 될 것이다" 

"무조건 항복 요구가 평화의 유일한 장애물"이라는 7월 18일 자 일본 측 암호 전문도 해독돼 미 정부 최고위층에 전달됐다. 그러나 트루먼과 번스 국무, 스팀슨 전쟁부 장관 등은 "평화를 얻어내기 위한 일본의 술수"라며 애써 무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자탄 제조에 참여했던 일부 과학자들은 원폭 사용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다. 1945년 5월 말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 화학자 해럴드 유리와 천문학자 월터 바트키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스파턴버그에서 제임스 번스를 면담했다. 헝가리 출신의 실라르드는 가장 먼저 미국의 원폭 개발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다음은 실라르드의 전언.

"번스씨는 전쟁에 이기려면 일본 도시에 원자탄을 투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다른 행정부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일본이 사실상 이미 전쟁에서 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략) 당시 번스 씨가 훨씬 더 우려한 것은 유럽에서 러시아가 영향력을 확대하는 문제였다. 그는 우리가 원자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면 유럽 문제에서 소련을 다루기가 한결 쉬워진다고 주장했다" 

과학자들의 원폭 철회 노력 좌절되다 

1945년 6월 시카고대학 금속학연구소의(원자탄 제조의 출발점인 핵연쇄 반응을 성공시켰다) 과학자들은 원자력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하는 여러 위원회를 꾸렸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인 제임스 프랑크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정치위원회는 '원자탄 사용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 발표했다. 

보고서는 미국이 원자탄을 비밀리에 개발해 일본에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공격한다면 미국의 도덕적 입지가 훼손될 뿐 아니라 '완전 멸망'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켜 소련과의 핵무기 개발 경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원자탄의 과학적 원리는 비밀이랄 게 없기 때문에 소련은 곧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자들은 보고서와 함께 대통령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청원서를 작성했다. 시카고대학 금속학연구소와 오크리지 우라늄농축공장의 과학자 155명이 청원서에 서명했다. 원자탄을 실제로 제작한 로스알라모스연구소의 책임자 오펜하이머는 청원서 회람을 금지하고 이 사실을 그로브스 장군에게 알렸다. 이에 따라 과학자들의 청원서는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해군부 차관 랠프 바드와 전쟁부 차관보 존 매클로이 등 일부 정부 관리도 원폭 사용 반대를 건의했다. 원폭 사용을 최종 결정한 임시위원회(Interim Committee)의 해군부 대표이기도 한 바드 차관은 6월 27일 스팀슨 장관에게 메모를 보내 "위대한 인도주의 국가인" 미국은 소련이 곧 대일전에 참전하고 원자탄이 완성 직전이라는 사실을 일본에 알리고 항복 조건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며칠 후 바드는 해군 차관 직을 사퇴했다.

이에 앞서 6월 18일 존 매클로이는 트루먼이 합참 간부들을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일본에 대해 "천황은 무사할 것이며, (종전 후) 정부 형태는 일본인의 선택을 따를 것이다. 우리는 무시무시한 신형 살상무기를 갖고 있으며, 일본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경고했다. 

7월 2일에는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인 윌리스 화이트 의원이 동료 의원들에 대한 연설에서 트루먼 대통령이 '무조건 항복'이 무슨 의미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같은 당 소속의 호머 케이프하트 의원은 같은 날 늦게 기자회견을 통해 화이트의 요구를 지지했다. 특히 그는 천황을 폐위하지 않는다는 것만 보장해주면 항복하겠다는 일본 측 의사를 백악관이 이미 접수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6월 11일 자 사설에서 '무조건 항복'이란 일본인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켜 전투 종식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불길한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미 5성 장군 7명 중 6명이 원폭 사용 반대 

고위 군사지도자들도 대부분 원폭 사용에 반대했다. 이들은 원폭 투하는 군사적으로 불필요하며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미국에는 2차 대전 때의 전공으로 원수로 진급한 5성 장군이 7명 있었는데 이중 6명이 반대 의견이었다. 아이젠하워와 맥아더, 육군 항공단(미 공군의 전신) 사령관인 헨리 아놀드 장군, 해군의 윌리엄 리, 어니스트 킹, 체스터 니미츠 제독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전쟁 종식을 위해 원자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유럽지역 연합군 사령관인 아이젠하워는 포츠담회담 당시 스팀슨으로부터 원폭 사용 결정을 통보받았다. 이에 대해 아이젠하워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가 내 의견을 묻더군요. 나는 두 가지 이유로 반대했지요. 첫째, 일본은 이미 항복할 태세가 돼 있다. 그런 가공할 무기로 그들을 칠 필요가 없다. 둘째, 나는 우리나라가 그런 무기를 최초로 사용한다는 게 정말 싫었습니다" (<뉴스위크> 63년 11월 11일 인터뷰)

이이젠하워 전기를 쓴 역사학자 스티븐 암브로스에 따르면 당시 그는 트루먼과 최고위급 보좌관들에게 반대 의사를 직접 밝혔다고 한다. 

극동지역 연합군 사령관 맥아더는 원자탄은 "군사적 관점에서 전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45년 8월 6일 기자회견에서 일본은 "이미 졌다" "다음 전쟁은 그 참혹함이 지금보다 1만 배는 클 것"이라고 밝혔다. 

1960년 맥아더는 후버 전 대통령에게 보낸 메모에서 "미국이 항복 조건을 완화해 주었다면(천황제 유지) 전쟁은 몇 달 일찍 끝났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후버의) 현명하고도 정치인다운 충고를(1945년 5월 30일 후버는 트루먼에게 메모를 보내 항복 조건 변경을 촉구했다) 따랐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학살극을 예방했을 것이고, 폭격으로 인한 그 많은 파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항복) 조건을 일본인들이 흔쾌히 수용했을 것이라는 데 대해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헨리 아놀드 육군항공단 사령관은 1949년에 낸 회고록 <지구적 사명(Global Nission)>에서 "우리는 원자탄을 쓰든 안 쓰든 일본은 이미 붕괴 일보 직전이라고 보았다"고 밝혔다.
 

▲1945년 9월 2일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가 USS 미주리함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유튜브


"나는 전쟁을 그런 식으로 하라고 배우지 않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합참 의장이었던 윌리엄 리 제독은 원자탄은 화학무기, 생물학무기와 함께 "지금까지 내가 들어본 모든 기독교 윤리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전시 법규에" 대한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이렇게 단언했다. 

"일본은 이미 패했고 항복할 태세가 돼있었다 (중략) 이 야만적인 무기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용한 것은 일본과의 전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무기를 처음으로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도덕적 수준은 암흑시대 야만인과 같은 차원으로 전락했다. 나는 전쟁을 그런 식으로 하라고 배우지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을 죽임으로써 전쟁에 승리할 수는 없다" (1950년 회고록 ) 

1949년 언론인 조너선 대니얼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분노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트루먼은 나에게 '(핵무기) 사용에 합의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중략) 군사목표물만 친다는 것이었죠. 물론 그러고는 최대한 많은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죽였습니다. 그게 바로 그들이 원하는 바였으니까요" 

해군 참모총장 어니스트 킹 제독은 보좌관에게 "이 마당에 꼭 그래야 한다고(원폭 투하) 생각하지 않네. 그럴 필요가 없어"라고 말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난 원자탄 같은 건 정말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했다. 

태평양함대 사령관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1945년 10월 워싱턴 기념탑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사실 평화를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파괴로 원자력시대가 공표되기 전에, 그리고 러시아가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기 이전에 말입니다"

태평양전략공군사령관 칼 스파츠 장군은 1945년 8월 7일의 일기에 "처음 워싱턴에서 내게 원자탄 얘기를 했을 때 나는 찬성하지 않았다. 주민 전체를 죽이는 도시 폭격에 대해서는 원래 찬성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종전 이듬해인 1946년, 남태평양함대 사령관 윌리엄 홀시 제독은 "첫 번째 원자탄은 불필요한 실험이었다 (중략) 그걸 투하한 건 실수였다. 그 때문에 수많은 쪽발이가 죽었지만. 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러시아를 통해 꾸준히 평화를 타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1949년 의회 증언에서 "나는 민간인에 대한 폭격, 특히 원자탄 폭격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고 밝혔다. 

도청한 적대국 외교 전문의 요약보고서 작성책임자인 카터 클라크 준장은 해상 봉쇄만으로도 일본은 항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본의) 상선을 계속 침몰시키고 기아를 유발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완전히 굴복시켰다.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적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본인들을 두 발의 원자탄을 위한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재래식 폭탄에 의한 일본 공습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원자탄과 러시아의 참전이 없었어도 일본은 2주 안에 항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1945년 9월 21일 <뉴욕타임스>)

1945년 8월말에는 (원폭 사용을 강력히 주장했던) 번스 국무장관조차 원자탄이 전쟁 종식에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1945년 8월 30일 <뉴욕타임스>는 번스가 "일본이 히로시마에 첫 번째 원자탄이 떨어지기 이전에 이미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러시아 쪽 증거를 인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고위 군 지휘관들이 원폭 투하 전에 이러한 입장을 대통령에게 강하게 주장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로브스가 야전 지휘관의 폭격 관련 발언은 모두 전쟁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맥아더를 비롯한 장군들 입에서 원자탄 없이도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길 원치 않았다" 

요컨대 미 군사지도자들의 반대는 개인 의견에 불과할 뿐이었다. 원폭 사용은 군사적 필요가 아닌 정치적, 또는 전략적 고려에 의한 것이었다. 2차 대전의 또 다른 승전국 소련을 의식한 무력 과시가 목적이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맥아더, 아이젠하워 등 원폭 사용에 반대했던 이들이 후에는 핵무기 옹호로 입장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맥아더는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에게 패퇴하자 북한 및 만주 지역에 대한 원자탄 공격을 강력히 요청했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 대통령이 된 후 핵무기에 의한 '대량보복(Massive Retaliation)'을 미국의 공식 군사전략으로 채택했다. 

하긴 아이젠하워 정부 국무장관으로 대량보복 독트린을 수립한 존 포스터 덜레스도 히로시마 당시에는 원폭 사용을 강력히 규탄했다. 당시 미국교회연합회 지도자였던 덜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 국가라고 자칭하는 우리가 원자력을 그런 식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도덕적으로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 온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원자무기는 정상적인 무기의 하나로 여겨지고 그리하여 인류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파멸하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이러한 변모는 무엇을 말하는가? 히로시마 이후 미국 정부는 '원자무기를 정상적인 무기로 여겨지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이고 대중에 대한 정보 은폐와 왜곡을 해왔음을 의미한다. 다음 회에는 지난 회에 이어 '히로시마를 둘러싼 기억투쟁'을 살펴보기로 한다.
inkyu@pressian.com다른 글 보기
 
▶ 필자 소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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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재판, TV 생중계가 인민재판? ‘국민의 알 권리’이다

대한민국은 재판의 공개를 이미 헌법상 원칙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임병도 | 2017-07-27 09:08:1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 박근혜씨와 최순실씨가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박근혜씨의 1심 판결선고가 TV로 생중계될 수 있게 됐습니다. 대법원은 25일 대법관 회의를 열어 재판장의 허가로 1·2심 주요사건의 판결 선고에 대한 중계방송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칙을 개정하기로 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대법원의 TV 생중계 허용에 대해 “21세기 인민재판의 부활을 우려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강효상 대변인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상황에서 사법부라도 삼권의 한 축으로서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며 “정권의 눈치를 보며 무원칙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는 사법부의 행태에 국민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과연 박근혜씨 재판에 대한 TV 생중계가 ‘인민재판’인지, 각국의 사례를 포함해 알아보겠습니다.


‘미국 허용, 영국·독일·프랑스·일본은 제한적 허용’

 

▲ 각국의 재판중계 제도 현황, 한국은 판이나 변론 시작 전에만 제한적으로 촬영이 허용됐다. 그러나 2013년 ‘국외이송약취 사건’과 2015년 ‘유책배우자 이혼청구 사건’,2016년 ‘세월호 관련 사건’ 등을 생중계했다.

 

각국의 재판중계제도를 보면 미국은 워싱턴 D.C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 법원에서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일본은 금지 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국·독일·프랑스·일본이 형사재판에서 TV중계를 금지하는 이유는 피고인의 인격권과 방어권을 침해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원칙도 점차 무너지고 있습니다.

영국대법원은 2005년부터 헌법개혁법에 따라 재판과정 중계방송을 전면 허용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헌법재판과정에서 간접 공개를, 프랑스도 헌법재판에 대한 재판 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1948년까지는 재판과정 사진 촬영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조명기구가 깨져 재판관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법관의 착석 후 개정을 선언할 때까지의 2분 이내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는 대법원 대법원·항소심에 대해서는 재판중계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 스페인, 노르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고속철 폭파사건이나 기차 탈선 사건, 총기 난사 사건 등은 부분적으로 중계하기도 했습니다.

TV중계를 제한하고 있는 영국·독일·프랑스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재판중계를 점차 확대하는 이유는 주요 사건의 경우, 인격권과 사생활 보호보다 일반 국민이 얻는 정보이익의 보호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민재판인가? 국민의 알 권리인가?’

 

헌법재판에 대한 TV중계는 각국 사례처럼 허용하는 분위기입니다. 문제는 형사재판과정에 대한 중계방송입니다. 형사재판 중계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모두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형사재판의 심리과정이 공개되면, 사법부가 청렴하고 합리적으로 바뀌어 재판의 공정성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재판과정이 생중계되면 ‘막말 판사’를 막을 수 있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습니다.(관련기사:“생중계 재판이 막말판사 막는다” 국내 첫 연구보고서 나와/조선일보)

또한 재판공개로 피고인들의 범죄 사실과 얼굴, 신원이 공개되면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법의 준수 및 법규범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중계를 통해 사회구성원인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고,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재판을 사전에 알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법상 형사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할 수 있는 등의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특히 기본권과 방어권, 사생활이 침해될 수도 있습니다.

일부 피고인이나 증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 내지는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도 있으며, 법관들이 인기에 영합하는 행동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의 뇌물수수사건, 기업 부정부패, 대형인명 피해 사건은 재판중계 필요’

 

 

아이엠피터는 모든 형사재판의 하급심을 TV로 중계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대법원은 법률심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낮음) 그러나 아래와 같은 사건은 재판중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① 정치인의 뇌물수수와 비리
② 기업의 부정부패 
③ 연쇄살인사건
④ 미성년자 집단 강간등 인권유린 성범죄 사건
⑤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인명 피해 사건

비록 하급심이라도 위의 사건들을 중계하면 공공의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의 경우 국민과 여론의 감시 속에서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재판중계가 허용된다면, 오히려 자유한국당이 우려하는 제3자가 영향력을 행사하여 재판관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를 막을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씨에 대한 재판중계는 ‘정치인의 뇌물수수와 비리’에 해당하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사건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재판의 공개를 이미 헌법상 원칙으로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헌법 제109조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 다만, 법원조직법에 따라 중계방송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가능합니다.

박근혜씨에 대한 재판 TV생중계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자, 공공의 이익을 위해 꼭 필요한 절차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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