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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앞 여의도 촛불 "분열 아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0/29 12:13
  • 수정일
    2017/10/29 12: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촛불 1주년, 여의도 '촛불파티' 열려... "굿바이 수구좌파" 현수막 내걸기도

17.10.28 22:32l최종 업데이트 17.10.28 22:32l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한 참석자가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하며 '다스는 누구겁니까'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한 참석자가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하며 '다스는 누구겁니까'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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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자유한국당 당사를 향해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자유한국당 당사를 향해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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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는 광화문뿐만 아니라 여의도에서도 진행됐다. 

28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진행된 '촛불파티'에서, 참석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향한 지지와 "MB(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 "다스는 누구겁니까"로 대변되는 적폐청산을 강조했다.

집회는 록밴드의 공연과 시민들의 자유발언, 적폐 시상식, 다스체조 등으로 채워졌다. 이어 참석자들은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까지 행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적폐세력 여전, 촛불처럼 꿋꿋이 버텨달라"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무대를 향해 환호를 보내고 있다.
▲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무대를 향해 환호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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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행사에는 8000여 명이 참석(주최 측 추산)해 촛불을 들었다. '촛불파티'라는 제목처럼 록밴드와 디제이(DJ)의 공연이 집회의 흥을 돋웠고, 스태프들은 마법사 분장을 한 채 참석자들을 안내했다. 

 

참석자들은 1주년 축하를 의미하는 '촛불돌떡'과 향후 적폐청산을 상징하는 과자(쿠크다스, DAS)를 나눠 먹기도 했다. 곳곳에선 할로윈 분장을 한 참석자도 눈에 띄었다.

자유발언에 나선 한 남성은 "1년 전, 여기 모인 여러분이 상식과 정의에 맞게 행동하면 이 나라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셨다"라며 "정말 존경하고, 큰 절을 드리고 싶다. 제게 큰 깨달음을 주신 스승님들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우리는 잘못된 것을 한 번 고쳐냈으나 국회에 있는 모들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라며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비집고 오려는 적폐세력이나, 어떻게든 갈라치려는 몇몇 언론들을 상대로 여러분이 지금 들고 있는 촛불처럼 꿋꿋이 버텨주길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자유발언대에는 최성 고양시장이 올라오기도 했다. 최 시장은 "지난 겨울, 바로 이곳에서 박근혜 탄핵소추안 의결 결정을 보시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않았나"라며 "그래서 여의도 이곳으로 왔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최 시장은 "아직 여의도의 적폐는 청산되지 않았다. 적폐 척결이 대상이 누군가"라며 "당리당략에 의해 소탐대실하는 정당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진정한 적폐청산은 어렵다고 본다. 우리 함께 진정한 적폐 청산을 위해 힘차게 전진하자"라고 강조했다.

이날 주최 측이 진행한 적폐 시상식에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공동 대상을 수상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가면을 쓴 이들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분장한 이들에게 직접 상을 수여하는 퍼포먼스도 벌어졌다.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이날 집회에서 발표된 '적폐 시상식'에서 최순실·박근혜가 '적폐 커플상'을 수상했다.
▲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이날 집회에서 발표된 '적폐 시상식'에서 최순실·박근혜가 '적폐 커플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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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주최 측이 1주년을 기념하는 '촛불돌떡'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주최 측이 1주년을 기념하는 '촛불돌떡'을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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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적폐 신인상(최순실), 적폐 커플상(박근혜·최순실), 적폐 베스트 드레서상(김기춘), 적폐 공로상(우병우), 적폐 단체상(새누리당, 현 자유한국당) 등도 발표돼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참석자들은 '다스체조'에도 크게 호응했다. 무대 화면에서 국민체조 구호의 "다섯"을 "다스"로 바꿔 "하나, 둘, 셋, 넷, 다스, 다스, 다스" 소리가 나오자, 곳곳에서 폭소가 쏟아졌다. 

이날 집회는 자유한국당을 향한 행진으로 마무리됐다. 주최 측은 당초 "자유한국당 근조"를 상징하는 침묵 행진을 계획했으나, 참석자들은 자유한국당 앞에서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 "이명박을 구속하라", "다스는 누구겁니까" 등의 구호를 거세게 외쳤다.

"광화문 쪽, 생각 다를 수 있어"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자유한국당 당사 앞을 지나며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참석자들이 자유한국당 당사 앞을 지나며 행진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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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날 행사는 광화문에서 열리는 '촛불 1주년 기념대회' 주최 측이 청와대 행진을 기획한 것에 반발해 기획됐다(이러한 반발로 광화문 집회 주최 측은 청와대 행진을 취소했다). 

이 때문에 집회 현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손팻말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참석자들은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합니다", "광화문 대통령 문재인 사랑해요"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최 측은 "작은 차이점으로 분열하는 게 아닌 큰 공통점으로 하나 되는 정부 촛불이 꿈꾸는 세상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배포하기도 했다.

특히 이날 사회자와 자유발언에 나선 이들은 "시민들을 위한 자리", "특정집단이 주최가 아닌 집회", "정치적 색깔이 없는 파티" 등을 강조했다. 집회 무대 뒤에는 "굿바이 수구좌파, 자유로운 시민들의 촛불 1주년 기념축제 촛불파티"라고 적힌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앞서 이날 집회를 소개한 포스터에 "선동꾼, 운동권, 직업시위꾼, 분란세력, 집회알박기, 폭력시위, 수구좌파와 작별한 21세기 대한민국 첫 번째 시민축제"라는 내용이 담겨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분열이 아니다", "이후 한 방향으로 수렴되길 바란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손지민씨(31, 남)는 "저도 그렇고, 여기 모인 분들도 그렇고 여의도 집회를 선택한 이유는 (당초 광화문 집회 주최 측이 기획한) 청와대 행진 때문일 것이다"라며 "그러한 의사표현도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지금 시국에서 더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곳은 국회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손씨는 "향후 이런 식으로 대립되는 양상이 계속된다면 사회적으로 마이너스일 것이다"라며 "완전히 합치될 순 없겠지만 서로 존중하며 방향성을 같이 잡아갔으면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손씨는 "일부 보수언론에서 '촛불이 갈렸다'라과 표현했지만 그렇게까지 보이진 않는다"라며 "오늘을 기점으로 이후 여론을 더 봐야할 것 같다"라고 내다봤다.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한 참석자가 "다스는 누구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하고 있다.
▲  '촛불 1주년'을 맞은 28일 오후 6시 여의도에서도 기념 집회(촛불파티)가 진행됐다. 한 참석자가 "다스는 누구꺼?"라고 적힌 손팻말을 든 채 자유한국당 당사로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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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광화문 사전 집회에 참석한 뒤 여의도 집회로 이동해왔다는 김지혜씨(40, 여)는 "어쨌든 광화문이란 공간이 의미가 있는 곳이잖나"라며 "그곳을 무시하고 여기에만 오기엔 조금 그렇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촛불이 둘로 갈렸다는 말이 있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광화문 그곳도 정말 분위기가 좋았다"라며 "서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오늘처럼 따로) 집회가 열릴 수도 있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씨는 "광화문 쪽은 또 그쪽대로 (정부에) 주장해야 하는 것들이 있더라"라며 "어찌됐던 광화문 집회 주최 측에서 청와대 행진은 취소하지 않았나. (그것을 비판하는)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니 좋게 본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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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만개의 촛불로 수놓은 ‘민주주의 시민 미학’

[소설가 김숨의 촛불 1년]1700만개의 촛불로 수놓은 ‘민주주의 시민 미학’

입력 : 2017.10.27 22:09:00 수정 : 2017.10.27 23:18:20

 

ㆍ다시 광장으로…못다 이룬 민주주의 완성 위해 모입니다

김숨씨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광장을 1년 만인 지난 24일 찾았다.

김숨씨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광장을 1년 만인 지난 24일 찾았다.

 

#1. 

“어디에서 왔지?” 

“한국에서.” 

“북쪽? 남쪽?” 

“남쪽.” 

“티브이에서 너희 나라 소식을 전하더군. 너희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다소 격앙된 사내의 얼굴빛은 거무스름하다. 단단히 굳은 벽돌 같은 얼굴. 사내는 푸른빛이 도는 경비복장을 하고 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방인의 얼굴을 한 사내는 그럼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하다.

“아웅산…… 폭파…… 전두환…… 나는 전두환을 알아…….” 

사내의 눈빛이 반짝인다. 

“아, 미얀마……?” 

“박근혜…… 너희 대통령…… 그녀는 어떻게 되는 거지?” 

작년 12월 독일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마주친 경비원과 나누었던 대화다. 그는 고향 사람이라도 만난 듯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지만 나와 일행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전날 밤 보훔에서 만난 한 독일인 기자의, 조용하지만 강렬하던 눈빛은 내게 묻고 있었다.

“너희 나라가 어떻게 될 것 같니?” 

한국인을 아내로 둔 그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일들이 권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일어났고, 그로 인해 한국 국민들이 얼마나 깊은 분노와 절망에 빠져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한국에서는 지금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계층을 막론하고, 세대를 막론하고…… 독선적이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려.”

그렇게 말할 수 있어서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향하는 시민들 덕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에게 고맙고 고마웠다. 그날 밤 보훔에 사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는 아리랑을 연주했다. 한국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 보훔은 우리나라가 최초로 광부를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아리랑 선율이 아름답다는 걸 나는 그날 밤 처음 깨달았다. 아리랑을 들으며 몰래 눈물을 훔친 것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의 크고 작은 광장들에는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순하지만 지혜로운 초식동물의 심장처럼 작고 빨간 촛불을 들고.
 

#2.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은 변두리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했다. 우리 다섯 식구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가게 뒤편에는 절이 있었다. 소박하고 작은 절이었지만 신도들이 제법 되는 절이어서 초파일이면 멀리서부터 신도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으레 우리 가게에 들러 흰 초를 사갔다. 초를 사려는 발길은 오후 늦도록 이어졌고, 초등학생이던 나는 꼼짝없이 가게에 붙어 앉아 초를 팔아야 했다.

조선소 노동자로, 중동 근로자로, 우리나라가 경제 성장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버지는 어느 날 백수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어머니는 먹고살기 위해 마당 담벼락과 부엌을 터 구멍가게를 냈다. 

절의 신도들은 다양했고, 가게에 들러 초를 사가는 손님들 역시 다양했다. 근사한 승용차를 타고 오는 사람,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 빛나는 구두를 신은 여자, 변변한 신발이 없는지 쥐포처럼 닳은 고무 슬리퍼를 신은 여자. 손님 중에는 대학교 교수도, 넝마주이도, 교사도, 미용사도, 미화원도, 야채 장수도 있었다. 

우리 가게에서 파는 초는 한 가지였다. 염소 다리처럼 길고 흰 초. 초 종류가 한 가지였기에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똑같은 초를 사갔다. 저마다 소원은 다르겠지만, 자신들이 믿는 하나의 대상에게 초를 바치기 위해서. 

#3 

“촛불 데모가 만든 민주정권이 아니었다면 나는 올 수 없었다.”

지난 10월, 한국을 방문한 재일조선인 소설가 김석범 선생의 소회다. 제주 4·3항쟁을 다룬 대작 <화산도>의 저자인 그는 아흔두 살(1925년생)로 무국적자이기도 하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그 누구보다 염원하는 그는 북한 국적도, 남한 국적도 취득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어로 소설을 쓰지만 한민족의 소설가이기를 바라기에 일본 국적 역시 스스로 거부했다. 2015년 10월 박근혜 정부는 그의 입국 요청을 거부했다.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민족반역자 세력을 등에 업고 탄생했다”는 그의 비판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소원하고, 한국인 이름으로 4·3항쟁을 다룬 소설을 일본 문단에 발표해 파장을 일으킨 소설가의 입국을 정작 한국 정부에서 허락하지 않은 아이러니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촛불시민혁명으로 불리는 촛불집회가 아니었다면, 그의 이번 한국행은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행이 성사되었다 해도 노 소설가의 심정은 착잡하고 서글프지 않았을까.

4년 전 겨울, 나는 광화문광장을 지나다 여남은 개의 촛불을 보았다. 마치 지상으로 떨어진 북두칠성처럼 그곳에 놓여 있던 여남은 개의 촛불이 2만 개로, 100만 개로, 190만 개로, 232만 개로 늘어나리라는 것을 나는 그때 상상이나 했던가. 집회 횟수가 늘어날수록 촛불의 개수도 늘어났고, 우리가 평소 무심한 발걸음으로 지나쳤던 광장들은 민주주의 성소가 되어갔다.
 

#4 

2016년 서울 광화문에서 첫 촛불집회가 열린 것은 10월29일 토요일이다. 10월은 농부들이 여름내 공들여 키운 곡물들을 거두어들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농사를 지으며 말년을 보내는 내 부모님은 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고추를 따고, 깨를 털며 10월을 났다. 해가 떨어지면 티브이 앞에 앉아 저녁을 먹으며, 티브이 속 점점 늘어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탄핵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여드는.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어, 다시 추수의 계절 10월이 돌아왔다. 부모님은 수확물을 거두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계신다. 일기예보에서는 단풍 소식을 전하고, 대학들은 수시 모집이 한창이다. 티브이와 라디오에서는 전 세계 유일 분단국가인 한반도에서 당장이라도 일어날지 모를 전쟁 관련 기사를 수시로 내보내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가 연일 신문과 방송의 단골 기사로 등장한다. 

아버지 자신에게는 물론 우리 가족에게 혹독했던 백수의 시간, 그 시간이 아버지 개인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을 나는 언제 정확히 알았을까. 그러니까 아버지의 게으름이나 무능, 무책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해방 이듬해에 태어난 아버지와 그 세대는 국가 이데올로기와 독재 정권, 조작된 여론, 왜곡된 역사 교육, 비윤리적이고 독단적인 통치자들의 지배를 받는 피해의 인생을 살았다. 그들이 태어나던 순간부터. 아니, 그들이 어머니의 몸속에서 잉태되던 순간부터.

그러한 아버지들의 자식들인 우리는 아버지의 월급을 종이쪽지에 적어 담임선생에게 제출하기도 하는 기이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졸업한 후에는 비정규직이거나, 정규직이라 해도 비정규직이나 마찬가지인 직장을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우리 아버지의 직업과 경제력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처럼 우리에게 대물림되었듯, 우리의 그것이 고스란히 우리 자식들에게 대물림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우리는 흙수저도 아닌 무수저라는 농담을 서로에게 씁쓸히 건네며.
 

#5 

촛불집회가 독일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재단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비폭력 집회로 “한국 민주주의에 새 활력을 불어넣은” 시민 한 명 한 명에게, 그러니까 지난해 늦가을부터 올봄까지 촛불을 들었던 시민 모두에게 주는 상이라는 것 또한.

수십, 수백만이 넘는 시민이 모였지만 누구 하나 다치지 않은 비폭력 평화 집회에 우리 스스로도 놀랐고, 세계인들도 놀랐다. 집회를 모두의 축제로 승화시킨 시민들에게 세계 언론들은 부러움이 담긴 찬사를 보냈다. 

촛불집회 때 시민들의 손에 들려 있던 초도 길고 흰 초였다. 시민들은 때로는 직장 동료의 손을 잡고, 때로는 어린 딸들의 손을 잡고, 때로는 스승과 제자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향했다. 그들 중 누군가는 가게에 들러 자신의 손에 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손에 들려줄 초를 샀을 것이다. 그중 어느 가게에서는 구멍가게 시절의 나처럼 어린 여자아이가 초를 팔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한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하던 미얀마인 사내는 지켜보았을 것이다. 보훔의 독일인 기자도 한국인 아내와 함께. 낫처럼 구부러져 선량하고 성실한 시민들의 등을 콕콕 아프게 찌르던 민주주의를, 한국 시민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반듯하게 일으켜 세우는지를.

더듬어보면 1987년 6월9일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분노해 거리로 뛰쳐나와 민주항쟁을 이끈 이들도, 미군 장갑차에 효순·미선 두 여중생이 깔려 숨졌을 때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촛불을 든 이들도, 용산 참사 현장에 국화와 촛불을 들고 모여든 이들도, 세월호 유가족들의 곁을 지킨 이들도,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망한 구의역에 추모의 메시지와 국화를 바친 이들도, 이제 서른다섯 분밖에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이들도 시민들이었다.

작년 10월29일부터 4월까지 23차례에 걸쳐 1700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남편과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친구는 말했다. 그곳에 모인 시민들이 “특정한 한 사람이 든 깃발 아래가 아니라 내 손에 든 촛불 아래 서서” 탄핵을 외쳤다고. 다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곳에서 “소외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고. “촛불이 다 타들어 더는 들 수 없을 때까지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고.

“촛불은 질량을 가지지 않은 존재이면서 더욱 강한 존재”라고 가스통 바슐라르는 말했다. 촛불집회 일 년을 맞아, 촛불의 강함을 일찍이 깨달은 지혜로운 시민들이 다시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촛불로 수놓은 시민 미학을 우리의 민주 광장에서 마저 완성하기 위해.
 

 

▶소설가 김숨(43)은 

 

[소설가 김숨의 촛불 1년]1700만개의 촛불로 수놓은 ‘민주주의 시민 미학’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백치들> <바느질하는 여자> 등을 내놓았고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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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땅 앉지 않는 큰기러기, 착지 동작도 ‘만점’

더러운 땅 앉지 않는 큰기러기, 착지 동작도 ‘만점’

윤순영 2017. 10. 27
조회수 355 추천수 0
 

강한 가족애와 부부애로 예부터 친근한 새, 한강하구에 출현해 가을 알려

농경지는 아파트와 창고로 바뀌어, 멸종위기종 지정됐다지만 위협은 여전

 

크기변환_YS1_0375.jpg»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큰기러기.

 

9월 28일 큰기러기가 어김없이 한강하구에 찾아 왔다친숙한 겨울철새인 큰기러기가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한반도를 찾아 오는 큰기러기는 중간 기착지인 한강하구에 잠시 머문 뒤 천수만우포늪주남저수지 등 우리나라 전역에서 월동한다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대표적인 겨울철새다.

 

크기변환_DSC_0675.jpg» 한강하구 갯벌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큰기러기 무리.

 

크기변환_YS1_8778.jpg» 이른 아침, 추수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낱알을 먹으러 날아드는 큰기러기.

 

큰기러기는 행동이 묵직하다가족애가 강해 가족과 먹이를 함께 먹고 이동도 같이 한다가족이 사고를 당하면 좀처럼 그 자리를 뜨지 않는다.

 

다친 가족을 위해 상처가 아물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사례가 종종 관찰되곤 한다큰기러기는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하며 암컷과 수컷 중 하나가 남게 되더라도 새로운 짝을 맺지 않고 홀로 사는 새다.

 

크기변환_YS1_0025.jpg» 날개를 뒤로 한껏 젖히고 힘을 싣는 큰기러기.

 

크기변환_YS1_0022.jpg» 속도를 줄이기 위해 날개를 최대한 펼쳐 공기의 저항을 늘린다.

 

크기변환_DSC_4132.jpg» 주변을 경계하는 큰기러기.

 

가을에 무리지어 찾아오는 새라 하여 추금(秋禽)’, 달 밝은 밤 갈대 숲을 찾아 기러기 떼가 날아드는 광경에 달밤에 떠다니는 새라 하여 삭금(朔禽)’이라고도 한다계절이 변하는 소식을 전해주는 새로 여겨져 편지를 雁書(안서)’라고도 했다기러기만큼 많은 이름을 가진 새도 없을 것이다.

 

크기변환_DSC_9541.jpg» 초저녁 달과 함께하는 큰기러기.

 

크기변환_YSJ_8635.jpg» 달을 스쳐가는 큰기러기.

 

갈대 ()’와 기러기 ()’을 쓴 노안도(蘆雁圖)에서는 저녁노을의 붉은 해 혹은 달을 그렸다해 질 무렵 기러기가 갈대밭 잠자리로 찾아들어 편안하게 쉼을 상징한다이 한국화에는 다른 사물을 그리지 않는다노안(蘆雁)을 늙은 노(편안할 ()’의 의미로 여겨 노후의 안락함을 기원하는 그림으로도 그렸다.

 

크기변환_YSJ_9360.jpg» 석양빛에 물든 하늘을 나는 큰기러기.

 

안평대군의 회화 수장목록에는 안견의 노안도 한 폭이 언급되어 있고, 조선시대 노안도 가운데는 신사임당의 그림 두 점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지금도 변함없이 화가들은 기러기 그림을 그린다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새임이 분명하다.

 

크기변환_YS1_9939.jpg» 혼자 나는 기러기는 외롭다. 그래서 자기가 있는 곳을 소리 내어 알리며 날아간다.

 

단풍이 들면 우리나라를 찾아오고 얼음이 풀리면 번식지로 돌아가는 큰기러기는 암컷과 수컷 모두 어두운 갈색과 흰색주황색 3가지 색으로 멋을 부리지 않는다어두운 갈색으로 몸보다 어둡게 보이는 목은 몸보다 길고 앞가슴은 연한 회갈색이며 주황색의 다리는 짧아 뒤뚱뒤뚱 걷는다. 유난히 하얀 엉덩이는 우습게 실룩거리지만 해학적이다.

 

크기변환_YS1_7886.jpg» 착지를 위해 속도를 줄이는 큰기러기.

 

크기변환_YS2_7388.jpg» 큰기러기는 항상 무리를 이루어 나는 습성이 있다.

 

검은 부리 중간에 주황색 띠가 선명하고 날개깃 중심은 어두운 갈색이다. 깃 가장자리엔 흰색 테두리가 있어 물고기의 비늘이 박혀 있는 것처럼 눈에 띈다.

 

내려앉을 때는 짧은 꼬리 끝 가장자리 흰 선이 부채 모양으로 활짝 펼쳐져 순박한 아름다움을 더한다육중한 몸을 하늘에 맡기고 힘차게 나는 모습은 하늘을 당장이라도 부숴 버릴 것 같은 힘을 느끼게 한다.

 

크기변환_YS1_9785.jpg» 큰기러기의 뒷모습.

 

크기변환_YS1_9777.jpg» 날다가 서로 부딪힐 것 같지만 그런 일은 없다.

 

지난 날 농한기 겨울철 기러기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독극물과 엽총으로 사냥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현재는 야생동식물 보호법에 의해 포획이 금지되어 평화롭게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위협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크기변환_YSJ_9175.jpg» 큰기러기의 비상.

 

크기변환_DSC_8544.jpg» 농경지를 매립하고 들어선 건축물과 비닐하우스는 큰기러기의 월동을 힘들게 한다.

 

크기변환_YSY_8583.jpg» 농경지의 볏짚 수거는 월동하는 큰기러기의 먹이 부족을 초래한다.

 

3월이면 번식지로 돌아가는 기러기는 남쪽의 봄소식을 전하며 민가 근처 농경지로 날아들어 더욱 친근감이 든다물가 가까이 있는 농경지를 좋아한다. 밤하늘을 떠가며 과안과안~’ 울어대는 소리는 깊어가는 가을을 얘기하는 듯하고갈대와 황금 벼 이삭과 어우러져 날아드는 모습은 넉넉함을 안겨 준다수천 년을 부모로부터 이어온 본능으로 변함없이 찾아오지만 그들의 땅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큰기러기 착지 연속 동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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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기러기는 우리에게 가장 정겨운 새다. 이 땅을 버리지 않는다면 기러기는 자연과의 약속을 지키며 이곳을 변함없이 찾아올 것이다기러기는 높이 날면서 더러운 땅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곳에선 사람도 살 수 없다.

 

·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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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가

우리는 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가
 
박찬운  | 등록:2017-10-27 14:34:51 | 최종:2017-10-27 14:42: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촛불집회 이후 정권이 교체되자, 많은 사람들은 우리 대의민주주의(이하 대의제)의 문제(주인의 의사와 대리인의 의사가 불일치하는 것)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직접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일각에선 직접민주주의는 결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하면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대의제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촛불집회로 만들어진 현 정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후자를 대표하는 이가 최장집 교수이며 그로부터 영향 받은 이들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최교수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현 시점에선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촛불집회를 제대로 계승한 것이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우선, 촛불집회야말로 역사상 우리가 경험한 가장 소중한 직접민주주의였다는 점이다. 촛불집회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점은 일부 수구세력을 제외하곤 누구도(물론 최장집교수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대의제가 박근혜 정권의 부정과 무능을 해결하지 못할 때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촛불집회였다. 이것이 준 교훈은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국민이 직접 나설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의 대리기관인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주인이 고통을 받는다면 주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따라서 촛불집회의 결과로서 직접민주주의를 제도화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촛불시민들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또한,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그것이 최선의 정치제도이기 때문이 아니다. 최교수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제를 비교하면서 후자의 우월성을 말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거로 선출한 대표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귀족주의의 장점과 평등한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민주주의의 장점을 결합한 체제이기에 더 우월하다”(중앙일보 2017. 10. 11.자 칼럼)는 것이다. 이 말은 촛불집회가 있었다고 해서 우리의 대의제를 직접민주주의로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는 이런 주장이 우리가 요구하는(제도화하고자 하는)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어느 누가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보다 우월한 제도이기 때문에 아예 대의제를 포기하고 직접민주주의를 하자는 사람이 있을까. 이 복잡한 사회에서 우리가 그리스식의 직접민주주의를 하자고 누가 말하는가. 그런 사람도 없고, 그럴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우리가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대의제를 보충하자는 것뿐이다. 대의제가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 상황에서 주인이 직접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지,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에 비해 우월하니 그것으로 전면 대체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촛불집회 이후 시민사회에서 분출하는 직접민주주의의 요구는 당연하다. 현재 우리의 대의제는 상당부분 왜곡되었고 그것을 고치기도 쉽지 않다. 선거제도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선거구를 조정하고 비례대표제를 강화하려고 해도 정당마다 국회의원마다 생각을 달리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주인ㅡ대리인의 의사가 왜곡되는 일은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그대로 보아야 하는가. 경우에 따라서는 주인인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국회가 공론을 모으지 못하는 경우는 국민이 참여해 그것을 만드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대통령을 포함 국회의원이 국민을 배신하면 소환제도를 통해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위기에 있는 대의제를 교정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박찬운 /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본글주소: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325&table=byple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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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러 틀어쥔 무서운 김정은위원장 외교 전략

미중러 틀어쥔 무서운 김정은위원장 외교 전략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0/28 [02:25]  최종편집: ⓒ 자주시보
 
 

 

▲이 사진은 러시아의 수직갱에 설치된 고정발사대에서 토폴-M 대륙간탄도미사일 전투부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장면이다. 3단형으로 설계된 토폴-M은 8축16륜 발사대차에 탑재되기도 하고, 수직갱발사대에 장착되기도 한다. 러시아는 3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장착된 각개발사식 다발재돌입체를 들어내고, 스크램젯 조종재돌입체를 장착하는 전투부 개조작업으로 토폴-M을 만들었다. 그래서 토폴-M은 4세대 대륙간탄도미사일이다. 재돌입체에 스크램젯을 부착한 조종재돌입체는 크고 무거워서 토폴-M 전투부에 1개밖에 장착될 수 없다. 스크램젯 조종재돌입체가 장착된 토폴-M 전투부 덮개가 길고 두툼한 원뿔꼴로 설계된 까닭이 거기에 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 러시아의 타이픈급 잠수함에서 '블라바' 미사일을 발사하는 장면

 

2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타르타스 통신, 디플로매트 등 외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11월 3∼14일)을 앞두고 러시아가 지상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3발, 장거리 전략폭격기를 이용한 다수의 순항미사일 등을 시험발사하였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직접 훈련에 참가해 탄도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렀다.

 

▲ 2017년 10월 26일 러시아에서 4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 발사 장소와 목표지역들     © 자주시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핵미사일 탑재 전략 핵잠수함(SSBN)이 26일(현지시간) 오호츠크 해에서 가상 표적인 서북부 아르한겔스크주(州)의 '치좌' 훈련장을 향해 2기의 SLBM을 시험 발사했으며 북해함대 소속 다른 SSBN도 북해에 가까운 서북부 바렌츠 해에서 극동 캄차카 반도 내 '쿠라' 훈련장을 향해 SLBM 1기를 발사했다.

이와 함께 북부 플레세츠크 기지에서도 전략미사일군이 이동식발사 차량으로 ICBM RS-12M '토폴'(Topol) 1기를 캄차카 반도의 쿠라 훈련장으로 발사하는 등 이날 하루에만 4기의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미사일 발사시험이 엄격한 군 훈련계획에 따라 이뤄졌으며, 모두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장거리 전력폭격기인 투폴례프(Tu)-160, Tu-95MS, Tu-22M3 등이 극동 아무르주의 '우크라인카', 남부 사라토프주의 '엥겔스',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주의 '샤이코프카' 군용비행장 등에서 각각 이륙해 캄차카 반도의 '쿠라' 훈련장과 북서부 코미공화국의 '펨보이' 훈련장, 카자흐스탄의 '테렉타' 훈련장 등에 있는 지상 목표물들을 순항미사일로 타격하는 훈련도 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의 잇따른 핵ㆍ장거리탄도미사일 시험으로 한반도 군사위기가 고조되던 지난달 이후 토폴과 RS-24 '야르스'(Yars) 발사시험을 잇달아 한 바 있다.

 

최대 사거리 1만1천㎞인 토폴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보다 폭발력이 53배나 큰 800kt의 핵탄두 한 발을 기본적으로 장착한다. 

최대 사거리가 1만2천㎞인 야르스는 150∼250㏏(TNT 폭발력 15만∼25만t) 위력을 가진 MIRV를 4개 이상 탑재한다. 야르스는 특히 적의 방공망을 교란할 수 있는 미끼 탄두(decoy), 대응장치 체계 등을 장착, 사드 등 미국의 MD 망을 뚫을 수 있는 효과적 무기로 평가받는다. 1만㎞가 넘게 떨어진 목표물에서 벗어나는 오차를 표시하는 '원형 공산 오차'(CEP)는 150m에 불과하다.

 

지도상에서 거리를 측정해보니 잠수함발사용이건 지상발사용이건 탄도미사일들이 사거리 5000-6000km를 비행했다. 실제 사거리보다 절반 가까이 줄여서 쏜 것으로 아마도 고각발사 방식을 적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 돌이킬 수 없는 러시아와 미국의 대결전

 

문제는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 맞추어 이런 강력한 핵전력을 과시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과 러시아는 돌이키기 힘든 대결전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에도 미국은 러시아 서부에서 나토무력을 동원하여 무력시위를 하는 등 러시아를 강하게 압박하였고 이에 대응하여 러시아도 벨라루스와 강력한 연합훈련으로 맞섰다. 그 연합훈련이 끝난 후에도 러시아군 주요 장비들을 철수하지 않고 벨라루스에 그대로 배치해두었다며 훈련 이후에도 미국은 러시아에 시비를 거는 중이다.

 

뿐만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8월 말 미국 내 러시아의 워싱턴 대사관 상무부, 뉴욕 총영사관 영사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3곳을 폐쇄했다. 이는 러시아가 지난 7월 자국 내 미국 외교관 755명을 추방하기로 한 데 대한 맞대응이었다. 특히 미국은 이 폐쇄된 러시아 영사관 문을 뜯고 들어가 러시아 국기까지 강제로 내리는 등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외교테러를 자행하자 러시아에서 강경 항의하는 등 날로 두 나라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중동 시리아에서도 IS 축출을 위해 러시아와 미국이 모두 자국에게 유리한 세력을 지원하며 맞붙고 있다. 러시아는 시리아정부군을 돕고 있으며 미국은 자유시리아군 등 친미반군을 지원하고 있는데 현재 전과는 러시아와 시리아정부군이 압도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러시아와의 군비경쟁을 끝내지 못한다면 미국의 군사비 지출을 줄일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망쪼가 들어가는 미국 경제를 다시 추스려세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러시아와의 대립을 피하려고 했지만 집권 초부터 러시아 스캔들이 줄줄이 터지면서 친러 인물로 분류되었던 플린 국가안보보좌관이 선임되자마자 낙마하고 러시아의 트럼프 대선 지원문제에 대한 조사가 확대되었다. 

그 수사를 담당했던 연방수사국(FBI)의 제임스 코미 전 국장을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해임해버리자 미국의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공화당까지 가세하여 특검을 결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탄핵불사 엄포를 놓자 결국 트럼프도 특검을 받아들인 상태이다.

 

북이 핵과 미사일 시험을 했을 때 러시아가 동북아시아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 등을 진행한 것은 북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핵미사일을 빌미로 무력을 증강하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사드 배치 등에 대해서도 그래서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의 지휘봉에 따라 미국은 러시아와 끊임없는 군비경쟁에 빠져들어 막대한 군사비를 쏟아붓게 되는 형국이다.

 

 

▲ 2017년 9월 22일 이란이 시험발사에 성공한 코람샤흐르 신형 다탄두 미사일     ©자주시보

 

 

✦ 미국의 대북제재는 제 이마 찍는 부메랑

 

중동의 시리아도 친북국가이다. 북의 군사적 지원으로 정부군의 전과가 확대되면 미국도 더 많은 전비를 투여하지 않을 수 없다. 중동의 이란도 최근 신형 탄도미사일 코람샤흐르 시험을 전격 단행했는데 북의 신형 화성-12형과 똑같은 엔진화염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그런 이란에 대해 핵합의 파기 수순에 돌입했다. 다시 이란과 나토, 이란과 미국의 전면적인 군비경쟁이 재개될 상황이다.

이란에서 미국 동부 즉 대서양 건너 미국 뉴욕과 워싱턴을 직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그 미사일에 장착할 핵무기라도 개발하게 되면 미국은 더욱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지금도 미국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막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한화 약 100조가 넘는 돈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란의 미사일까지 막으려면 금고 바닥까지 긁어야할 것이다.

거기다가 러시아의 엄청난 핵전략무기에 대한 대응책도 세워야 하며 날로 커가는 중국의 군사력에도 대항해야한다. 

 

북의 핵전략미사일 한 발을 시험발사하면 그것이 미국의 대응군사적 압박을 낳고 그것이 다시 러시아와 중국의 엄청난 군사력 증강의 빌미가 되고 있다. 이것이 중국 러시아만이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게 되면 군사과학기술이 약한 나라들은 모두 북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러시아도 전략적인 무기 기술은 절대로 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에서 아무리 미국이 대북 제재와 압박에 동참하라고 해도 평양에 있는 인도 대사관만은 폐쇄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은 이유도 이런 맥락과 닿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도 든다.

미국의 압박에 친북적이었고 북과 군사분야 교류를 해온 미얀마 등 동남아국가들과 우간다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북과 교류를 일부 접을 수는 있겠지만 뒤로는 더 맹렬하게 군사기술 거래를 진행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사실, 러시아도 미사일과 전파교란 등의 핵심 기술을 북에서 도입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니 북의 세계적 군사기술 영향력은 현재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친미 리비아정부가 군 재건을 북에 동째로 맡기겠다는 발표까지 했겠는가.

 

결국 미국의 대북 제재와 압박은 강하게 던지면 던질수록 더 세게 날아와 미국 자신의 이마를 찍는 부메랑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본지의 권말선 시인은 미국의 대북제재에 대해 불이 무서워 꺼버리겠다고 삼켜버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풍자했는데 매우 정확한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다.

 

 

✦ 러시아를 지렛대로 지구를 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11년 즈음 한 해에 몇 번씩 중국을 방문하며 북중관계를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던 시기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를 지렛대로 지구를 뜨겠다고 북 측근의 입을 빌어 세계에 발표한 바 있다. 그땐 그 말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중국을 지렛대로 삼는다면 조금 이해가 되겠는데 북과 당시 매우 관계가 소원했던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는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미국과 러시아의 치열한 대결전을 보면서 그리고 최근 북러관계가 밀월 수준으로 높아지는 것을 보면서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 심화는 결과적으로 판가리 최후의 북미대결전을 펴고 있는 북에게 나쁠 것이 전혀 없는 일임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 아닌가. 미국이 온 동맹국을 총동원하여 북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마치 내일 당장 북이 망할 듯이 세계 언론을 이용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중 삼중 궁지에 몰리고 있는 쪽은 미국 자신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국 시진핑 주석의 2기 출범을 축하하는 전문을 보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과의 관계까지 강화할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 같다. 사드배치와 미국의 핵심 무력을 서태평양과 동남아 해역으로 집중시키는 미국의 행보로 인해 중국과 미국의 관계도 점차 첨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날아간 전문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자명한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이치를 미국이 뻔히 알면서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러시아나 이란, 중국 등과 군사적 마찰을 피하려고 해도 북이 핵미사일 펑펑 쏘아대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어떻든 군사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런 나라를 또한 자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세계 외교의 지휘봉을 북이 쥐고 있는 형국이란 것이다.

 

미국이 북의 지휘봉을 꺾을 유일한 길은 대북적대시정책을 근본적으로 철폐하는 것인데 그것은 또 미국 패권의 붕괴를 의미하게 된다. 참으로 곤혹스런 미국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교전 성과를 이어가고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교전략이 무시무시하다. 매우 폭넓게 보고 정확한 행동 지점을 포착하며 제 때 적중한 공격을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보당국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일심단결 사상적 지도능력, 경제건설지도 능력, 군건설능력만이 아니라 외교전 지휘능려도 반드시 눈여겨 보아야 할 것 같다.

 

10월은 자주시보 후원확대의 달입니다.

기자는 퍽 늘었는데 점점 정기후원이 줄어들어 후원히 절실한 상황입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후원격려부탁합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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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되나? 쉬는 시간에 갔다" 한국당 의총 참석한 고영주의 적반하장

'국감 거부' 한국당 가서 MBC 상황 설명... 신경민 의원 질책 받자 "왜 시비 거나" 반발

17.10.27 16:39l최종 업데이트 17.10.27 16:39l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오른쪽)이 27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장직을 대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간사 신경민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고 이사장이 이날 오찬시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사실이 발단이 됐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오른쪽)이 27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장직을 대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간사 신경민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고 이사장이 이날 오찬시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사실이 발단이 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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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 : "왜 시비를 겁니까.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
신경민 : "똑바로 해요."
고영주 : "똑바로 하세요. 어디다 대고 증인 보고 똑바로 하라고 해요."

27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고성이 오고 갔다. 국감 증인으로 출석한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아래 방문진) 이사장이 오후 국감 재개 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일이 알려지면서 벌어진 소란이었다. 한국당은 지난 26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MBC 대주주인 방문진 보궐이사 2인을 새로 선임한 것에 반발, 국감을 거부하고 의총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민주당 간사 신경민 의원은 오후 국감 재개 전 이를 지적하면서 "피감기관 증인으로서 여러 가지로 처신과 발언에 굉장히 조심하셔야 하는데 국감을 거부하고 있는 정당의 연사로 출연했다. (그것이) 공적인 자리에서 제대로 된 처신인가"라고 따졌다. 

그러나 고 이사장은 "가면 안 되는 곳인가. 쉬는 시간(점심시간)에 갔다"며 맞받았다. 신 의원이 "쉬는 시간에 아무 일이나 하나"라고 다시 되물었을 때도 "이해가 안 된다. 한국당이 MBC 사태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간 것"이라고 맞섰다. 신 의원은 재차 "(고 위원장은) MBC를 감시·감독하는 방문진 이사장으로서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다. 좀 제대로 된 처신을 해 달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 이사장은 재차 "증인은 거기 가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느냐"라고 반발했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오른쪽)이 27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장직을 대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간사 신경민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고 이사장이 이날 오찬시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사실이 발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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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왼쪽)과 더불어민주당 신경민 의원이 27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고 이사장이 오찬시간에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것과 관련해 말다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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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서로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신 의원은 "지금 이걸 상식적이라고 보느냐", "똑바로 하라"고 질책했고, 오히려 고 이사장은 "왜 시비를 거나", "(신 의원이나) 똑바로 하라"고 맞섰다. 두 사람 사이에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국감은 잠시 정회됐다. 

하지만 고 이사장의 반성은 끝내 없었다. 그는 "(휴식시간도) 국감 연장선상에 있는데 한국당 의총에 간 게 적절한 행위이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는) 11월 3일부터 가시라"는 유승희 민주당 의원의 질책에 "질문하면 답변드리겠다"면서 물러서지 않았다. 

유 의원이 "(국감에) 박사모 일원으로 온 것은 아니잖나"라고 되물었을 땐, "증인이 뭘 잘못했다고 이러나"라고 불만을 토했다. 직무대리로서 회의를 진행하던 신경민 의원이 유 의원의 질의 끝에 "앉는 태도부터 불량하다"고 지적했을 땐 "위원장 (직무대리)이면 인격 모독해도 되나요"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오른쪽)이 27일 오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장직을 대신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간사 신경민 의원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고 이사장이 이날 오찬시간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사실이 발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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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MBC 어떤 압박 받는지 알고자 모셔, 기꺼이 응해주셨다"

한편, 고 이사장은 이날 오후 점심시간께 한국당 의총에 들러 MBC 내부 상황과 부당노동행위 논란 등에 대한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재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고 이사장이) 간단하게 5분 정도 얘기하고 (의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면서 "방통위나 언론 문제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나. 고 이사장이 오셔서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된 내용이 어떤 것인지, 그 뒷얘기 등을 좀 들었다"고 설명했다. 

고 이사장이 의총에 참석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정우택 원내대표가 비공개 의총 직전 '고 이사장이 과방위 국감으로 국회에 오시니까 잠시 모시고 MBC에 정부가 어떤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 알고자 모셨다'고 했다. 고 이사장이 기꺼이 응해주셨고"라며 "아마 (고 이사장도) 11월 2일 불신임 결의안이 상정된 상태라 마음 먹고 나와서 말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원내대변인은 구체적인 발언 내용에 대해서는 "비공개로 진행한 것"이라며 밝히지 않았다. 다만, 그는 "숨길 만한 내용은 아니다. MBC에 3노조가 만들어진 배경, 사내의 왕따 분위기, 스케이트장에서 일을 시켰다는 얘기 등이었다"며 "우리는 사실을 모르니까 여쭤보고 자세하게 얘기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당당한 고영주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MBC 정상화를 위해 고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쏟아지는 사퇴 요구에 당당한 고영주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MBC 정상화를 위해 고 이사장과 김장겸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여당 의원들의 지적에 당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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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당 “내년 지방선거에 비정규직·청년 후보 대거 출마”


대표단 기자간담회 “80%가 새 당원, ‘낙인찍기’ 말길… 미국에 ‘노’할 수 있는 정당”
▲사진 : 민중당 대변인실

민중당은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당이란 정체성에 맞게 내년 지방선거에서도 비정규직과 청년 후보들이 대거 출마할 것이라고 26일 밝혔다.

김종훈·김창한 공동상임대표과 장지화 공동대표 등 민중당 지도부는 이날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당의 기치인 ‘민중의 직접정치 실현’과 관련해 “그 어떤 당보다 비정규직,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선 이분들이 가장 많이 후보로 출마할 것이다. 이분들을 통해 직접정치를 실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종훈 상임대표는 모두발언에서 “민중당은 한국 정치사에선 처음으로 ‘비정규직과 청년들의 정당’을 지향하는 진보정당”이라며 “비정규직과 청년 문제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 가장 집중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종훈 대표는 이어 “우리 당원들은 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헌신해왔고, 헌신하고 있고, 또 헌신할 사람들이다. 새로운 힘으로 나아가려 한다. 부탁 말씀은 통합진보당 재건 아니냐는 ‘낙인찍기’하지 말아 달라”면서 “함께 가야할 소중한 사람들이고, 80%가 새로운 사람이다. 민중당은 심폐소생술을 하려는 게 아니라 신생아를 잘 키워 이 땅의 자주와 민주, 통일을 하는데 헌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창한 상임대표 역시 “당원의 70%가 비정규직과 청년들이다. 학교비정규직, 대형마트, 건설노동자 등이 3만 명이고 청년 당원이 5000명”이라며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비정규직과 청년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민중당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창한 대표는 이어 “(민중당은)미국에 ‘노(NO)’할 수 있는 정당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의 힘으로 당선됐다고 하지만 (대미 관계에서)제 역할을 하지 못해 유감”이라면서 “맹목적인 한미동맹만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얘기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천만한 일이다. 제재와 대결로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지화 공동대표(여성부문)는 “촛불집회를 전후해 (민중들이)정치의 주인으로 나섰던 것처럼, 정당활동을 처음 하는 1000여명의 엄마 당원과 이 땅의 여성정치를 꿈꾸고 만들어온 여성당원 1000여명이 민중당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엄마와 여성들의 정치에 많은 관심 부탁한다”고 말했다.

민중당은 이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등록증을 받아 중앙당 창당을 마친 만큼 다음달까지 전국 16개 광역시도당 창당대회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당원수는 5만 명이라고 한다.

아래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오간 질의응답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발언자는 생략했다.

- 새민중정당 창당 당시에도 밝혔는데 진보대통합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정의당과의 통합 논의는 어떻게 되고 있나?

“계속 진보대통합 과정에 있다고 보면 된다. 우선 합의가 되고 준비가 된 두 당(새민중정당과 민중연합당)이 1차로 통합을 했지만 이후에도 모든 진보세력들과 함께할 고민이 있다고 보시면 된다. 그런 과정에 있다고 봐달라. (정의당이)당내 논의가 안 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마치 통합을 반대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어렵지만 점차적으로 논의해 갈 계획이다. 무리하게 통합하는 것은 아니고,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 의원이 2명뿐이고, 지난 15일 광장출범식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의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는 계획이 있는지.

“소수정당의 어려움이기도 하다. 광장출범식을 1만 당원들이 치러내 한국정치사의 역사적인 일을 해냈지만 언론에서 주목해주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당에)‘스타’가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스타 중심이 아니라 힘들어도 옹골차게 5만 당원들을 믿고 진보정치를 개척해 나간다는 마음으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힘써 나갈 것이다.

창당한 만큼 지방선거를 잘 준비해 실질적인 진보정치의 도약을 이루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특별위원회를 꾸려 내년 지방선거를 잘 준비할 예정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선 비정규직과 청년들이 가장 많이 출마할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우리당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겠다.

또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라고 하지만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위기의 대한민국에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노 트럼프(NO TRUMP), 노 워(NO WAR)’ 투쟁을 적극 전개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구체적인 사업,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월세 10만원 상한제 등 정책사업도 구상 중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면 국회 연설이 예고돼 있다. 이와 관련된 활동계획이 있나?

“현재로선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평화를 말해야 하고 국회 연설에서도 평화를 선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설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필요하다면)국회의원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엇을 할지)고민하고 있다.”

- 문재인 정부의 공과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지.

“아직 한 일이 많지 않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는 선언의 기본 취지는 응원을 한다. 하지만 자회사 (고용)형태가 아니라 직고용으로 해야 진짜 정규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 국민과 소통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잘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에 있어서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부분은 아쉽다. 노동자 조직률이 10%에 그치고 있고 노동자들 스스로 권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필요한데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아직 합법화되지 않고 있다.

또 노동계와 관계개선을 얘기하고 있지만 한상균 위원장이 아직 구속돼 있다. 한 위원장과 이석기 의원 등 양심수 석방을 곧바로 진행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 민중당은 민중의 직접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당 조직운영이나 정책 수립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실현하려 하는지.

“(한국정치가)그동안 거의 대리정치여서 민중들이 정치의 주체로 참여하지 못했다.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들이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민중이 직접 정치에 나서는 것이 진보정치의 중요 요소라고 생각한다.

민중당은 당내에 노동, 농민, 여성, 청년 등 계급계층별 조직을 만들었다. 당내 당 체계이다. 많은 민중들이 짧은 기간에 당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당원가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민중당은 당명도 당원들이 투표로 정했다. 당 정책 또한 당원들의 의사로 만들기 위해 정책 (선호)투표가 가능한 오픈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스페인 포데모스와 같은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내 당’이어야 (여기서)‘내 삶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민중당은 그 어떤 당보다 비정규직,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선 이분들이 직접 가장 많이 후보로 출마할 것이다. 이분들을 통해 직접정치를 실현하려고 한다. 진보정치의 참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겠다.”

김동원 기자  ikaros07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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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김장겸 지키려 결국 보이콧…"생떼 전문 정당"

한국당 "김장겸 교체=좌파 공화국…방통위원장 해임결의안 제출"
2017.10.26 18:31:52
 
 
 

 

 

 

자유한국당이 26일 결국 국정감사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기로 했다. 공영 방송을 망쳐 놓은 장본인들이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몫 이사 추천권'을 자신들에게 달라는 이유로 국회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쳤다는 비판이 야당에서도 제기됐다. 

자유한국당은 26일 방송통신위원회가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보궐 이사 두 명을 선임하자, 국정감사를 중단하고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국정감사를 전면 보이콧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보이콧 해제 시점에 대해서는 "내일 오전 10시 다시 의원총회를 열어봐야 한다"고만 말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공영 방송 장악이라는 날치기 폭거 앞에 국정감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공영방송 장악 첫 시도의 배후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고 보고, 문 대통령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 공영방송 장악의 전위대 역할을 한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반드시 사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자유한국당은 이효성 방통위원장에 대한 해임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또 이날 방통위가 새로 임명한 김경환, 이진순 방문진 보궐 이사에 대한 '임명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의 국정감사 전면 중단으로 자유한국당이 상임위원장을 맡은 국감장은 곳곳에서 난항을 겪었다. 특히 이날은 한국방송(KBS) 국정감사가 예정됐지만 자유한국당이 고의로 파행시켰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은 국정감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등 일부 상임위원회는 자유한국당 없이 국감을 진행하기도 했다. 

한국당 "김장겸 MBC 사장 교체=좌파 공화국"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날 정부과천청사에 있는 방통위를 '항의 방문'하며 그동안 관행적으로 인정되던 방문진 '여당 몫' 이사 추천권이 야당인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이날 면담에서 설사 여야 추천권 관행을 인정하더라도 "여야가 바뀌면 여당 추천 몫은 바뀐 여당(민주당)에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전례가 있다"고 일축했다.
 

▲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등 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들이 26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방송통신위원회를 항의 방문해 이효성 위원장(왼쪽)을 만났다. 자유한국당은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몫' 이사 추천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행 방송문화진흥법대로면, 방통위가 방문진 이사를 선임하면 된다. 방통위는 이날 회의를 열어 법대로 방문진 이사를 선임했다.  

그럼에도 자유한국당이 방문진 이사 추천권을 두고 '생떼'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는 것은 MBC 사장 선임권에 대한 마지막 미련에 가깝다. MBC 사장은 방문진이 선임하는데, 이날 인사로 방문진의 여권, 야권 성향 이사 비율이 3대 6에서 5대 4로 역전됐기 때문이다. 방문진은 '부당 노동 행위'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김장겸 현 MBC 사장을 해임하고, 새 사장을 임명할 수 있다.  

'방송 장악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공포는 이날 의원총회 공개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방송장악저지투쟁위원장은 이날 방문진 이사 임명에 대해 "좌파 노조와 함께 국민의 귀와 눈을 좌파 색깔로 덧칠해서 이 나라를 좌파 공화국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철수 "국감 보이콧은 부적절"…정의당 "생떼 전문 정당"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한국당을 비판하며 국회 일정 복귀를 촉구했다. 제윤경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한국당의 국정감사 중단 결정과 상관 없이 남아 있는 국정감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제윤경 대변인은 방문진 신임 이사 선정에 대해서는 "사퇴한 이사의 추천은 여당 몫이니 기존 관례대로 우리 당이 추천할 수 있으나, 추천권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의 정치적 관행을 깨고 이제는 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여당은 물론, 다른 야당들 역시 한국당의 행보에 눈길을 찌푸리고 나섰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감사 보이콧은 적절하지 않다"며 "오히려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서 제대로 비판하는 것이 야당"이라고 했다. 국민의당은 방송의 독립성을 담보할 방송법 개정안에 힘써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바른정당 전지명 대변인도 "국감 보이콧은 맞지 않다"고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밝혔다. 단, 바른정당은 방문진 이사 선임 자체에 대해서는 "독단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종철 바른정당 대변인은 "민주당 방송 장악 내부 문서의 '절정'이며, 이제 곧 사장 해임으로 '마침표'를 찍는 수순만 남게 됐다"고 한국당의 손을 들어줬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국정감사 거부) 사유를 보니 공영방송 공정화라고 하는데,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며 "고대영 KBS 사장이 전 정부에서 국정원 돈을 받고 편파 방송을 했다는 사실이 불거졌는데, 지금 고대영·김장겸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김종대 원내대변인은 "여당 자리에서 물러난 주제에 여당 몫을 자신들이 행사하겠다고 하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 전개냐"며 "과연 '생떼 전문 정당'다운 발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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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몰고 오는 트럼프 오지 마라"

각계 220여 단체, 'No 트럼프 공동행동' 발족...11월 8일까지 방한반대행동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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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6  13: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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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각계 220여 단체와 정당이 26일 '노 트럼프 공동행동'을 발족시키고 이날부터 방한반대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 트럼프, 노 워(No War)"

다음 달 7일 국빈자격으로 방한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가방에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전쟁위협과 무기강매, 통상압력이 들어있다고 우려하는 각계 220여 단체와 정당이 26일 '노 트럼프 공동행동'을 발족시키고 이날부터 트럼프 방한 반대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평화행동)과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반전평화를 위한 각 계층과 각 지역 및 여성, 청년 등 부문, 민중당, 민중민주당 등 정당이 함께 '과제 해결을 위한 한시적 연대체'로 구성한 '노 트럼프 공동행동'은 2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대표자회의에 이어 발족 기자회견을 갖고 공식 발족을 선언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노 트럼프 노 워 트럼프 방한반대 투쟁선포문'에서 "우리는 전쟁위협, 무기강매, 강도적 통상압력으로 이 땅의 평화와 민생을 위협하는 미 대통령 트럼프의 방한을 반대하고, 이를 저지 규탄하기 위하여 '노 트럼프 공동행동'을 결성하며, 지금 이 순간부터 트럼프의 방한을 반대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할 것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에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 최대 핵무기 보유국이자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먼저 대북 적대정책을 중단하고, 매년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전쟁연습을 중단하는 등 한반도 긴장고조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제재가 아닌 대화로 평화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며, 미국이 "남의 땅에 전쟁무기를 팔아먹고, 부당한 통상압력으로 자기만 잘 살겠다는 욕심을 거두면 된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결코 환영할 수 없는 트럼프의 망동을 제지하고 이 땅의 평화를 수호하며 쌍방간의 대화를 유도해야 할 문재인 정부는, 말로만 '전쟁은 안 된다'고 할 뿐 오히려 그의 망발을 칭찬하고, 제재에 앞장서고, 트럼프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무기구매를 자청하고 있으며, '폐기'라는 위협 한마디에 한미FTA개악의 문을 열어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그를 '국빈'으로 초청하고 국회 연단까지 내주는 굴욕외교로 일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트럼프 공동행동'은 오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기간을 '트럼프 오지마라' 행동주간으로 정하고 광화문 일대에서 종교행사와 홍보활동, 시국선언 등 항의행동을 벌이며, 단체별 특성에 맞는 다양한 행동을 기획해 추진하기로 했다.

11월 1일 오후 1시 광화문광장에서 '노 트럼프 노워 시국회의'를 열어 중간 집중행동을 벌이고 주말인 11월 4일 오후 4시부터 종로1가 르메이에르 앞에서 '노 트럼프 노워 범국민대회'를 개최, 광화문 미 대사관 앞까지 도심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는 11월 7일에는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그의 귀국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저녁에는 광화문 광장에 전국 집중 방식으로 '트럼프 반대 전쟁반대 촛불행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회연설이 예정된 11월 8일 오전에는 이에 대응한 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트럼프 방한에 앞서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 참석차 내한하는 27~28일에는 사전활동으로 SCM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 등을 진행하기로 했다.

'노 트럼프 공동행동'은 트럼프 방한을 저지·규탄하기 위해 10월 30일부터 집중 실천활동을 전개하며, 트럼프 방한을 앞둔 주말인 11월 4일, 방한 당일인 11월 7일 저녁 광화문에서 열리는 범국민 촛불대회를 통해 트럼프를 반대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전 국민의 의지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 왼쪽부터 박석운 대표,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한충목 평화행동 대표,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김창한 민중당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석운 대표는 "전 세계의 평화시민들로부터 '미치광이', '깡패'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독 한국에서는 국빈대접을 받으며 방한하는데, 국회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전쟁이 일어나도 한반도에서 나는 것이라는 그의 호전적 발언은 평화를 바라는 1,700만 촛불의 정신에 위배된다. 강력히 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트럼프는 이번 방한을 통해 무기강매, 통상압력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따르라는 굴욕적인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같다"며, '서글프다'는 심경과 함께 "노동자, 농민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트럼프의 방한을 막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충목 평화행동 대표는 "분단 70년이 넘도록 한반도의 평화가 실현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이번 트럼프의 방한으로 한반도에는 평화가 아니라 군사적 대치가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며,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들, 촛불시민들이 반 트럼프·평화실현의 길에 함께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김창한 민중당 상임대표는 "지금 한반도 정세는 당장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무조건 전쟁은 안되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아래 대북적대와 대미추종을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트럼프는 이 땅을 밟을 자격이 없다. 망언을 사죄하고 전쟁하지 않겠다는 약속하는 것이 지금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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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촛불집회 1주년, 우리 광장에서 다시 만나요!

[일상 비틀기]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인권상' 수상, 촛불시민의 자존감 잊지 말고 살아요

17.10.26 20:43l최종 업데이트 17.10.26 20:43l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60만 명이 참여한 소등 퍼모먼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공범처벌과 적폐 청산의 날-8차 촛불집회'에서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1분 암흑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본집회가 시작된 이후 6시 40분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65만 명이 일제히 동참하며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황교안은 물러나라. 김기춘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겨울 공화국이다"라며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간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한 촛불이 되겠다"는 마음을 모아 소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들은 "곧 새벽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둠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고 잘못이 없다. 모른다. 버티겠다고 한다"며 "스스로 물러갈 어둠이 아니기에 촛불을 끌 수 없고 더 크게 타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 60만 명이 참여한 소등 퍼모먼스 지난 2016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공범처벌과 적폐 청산의 날-8차 촛불집회'에서도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1분 암흑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본집회가 시작된 이후 6시 40분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65만 명이 일제히 동참하며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 황교안은 물러나라. 김기춘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이들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겨울 공화국이다"라며 "어둠과 빛이 공존하는 혼돈의 시간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기 위한 촛불이 되겠다"는 마음을 모아 소등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들은 "곧 새벽이 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둠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고 잘못이 없다. 모른다. 버티겠다고 한다"며 "스스로 물러갈 어둠이 아니기에 촛불을 끌 수 없고 더 크게 타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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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의 촛불시민 이창희라고 합니다. 우선, 촛불혁명의 성공을 축하하며 대한민국의 1700만 촛불시민을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듣지 못했다면, 해결되지 않은 일상의 고단함에 치여서 우리가 같이 만들어낸 '승리'를 까맣게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이 상을 계기로 그날들의 승리에 나도 촛불 한 개를 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며, 질척한 현실에 방치되었던 저의 자존감을 다시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2016년 겨울, 촛불이 타오르던 광장에 있었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네요. 지난해 10월, '최순실'이라는 낯선 이름을 뉴스에서 듣게 된 후로 저는 놀라운 것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동안 이해가 되지 않던 정부의 모든 행위들이 납득이 되기 시작했거든요. 그들이 왜 저렇게 국민을 무시하려 했는지, 국민의 기대와는 전혀 관계없이 정책을 결정하는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에게 '대한민국'은 왜 이렇게 가혹하게 대하는지, 정말 혼란스러웠던 그 모든 상황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던 거예요. 

'설마' 했던 것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우리끼리 반목하며 서로 싸우게 만들었던 이유도 '국정 농단 세력'의 이익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너무나 허탈했어요. 정권 내내 '대한민국'으로부터 배신당하면서 '정말 이민을 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촛불이 타오르고 광장에 자리를 펴고 앉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요. 지난해 11월 12일이었을 거예요. 제가 참석했던 첫 번째 촛불집회였는데, 시민 문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광화문에 자리를 펴고 앉은 순간부터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라고요. 광장에서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도, 국가와 권력에 대해 이렇게 환한 광장에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런 기분 아세요? 너무 좋아서 자꾸 웃음이 나고, 입으로는 함성에 동참하여 깔깔거리고 있는데, 자꾸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쏟아지는 상황 말입니다. 그날, 제가 그랬어요. 기괴한 장면이죠. 한낮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권력에 반대한다'고 외칠 수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거든요. 

얘기가 자꾸만 과거로 돌아가는데, 죄송해요. 2015년 11월 14일에도 저는 광화문에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광화문 광장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8차선 대로에서, 누구 하나 빠져나갈 수 없도록 빽빽하게 쳐 놓은 차벽 안에 갇혀 있었죠. 대한민국의 모든 경찰에게 총동원령이라도 내려진 것처럼 광화문 광장엔 경찰들로 가득했고, 1차 민중총궐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사거리의 통제구역 안으로 몰아넣어졌어요. 

그날 시위대와 합류하려던 시민들은, 빽빽한 차벽 사이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좁은 통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가 있었답니다. 게다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은 국민에게 열어준 '개구멍'을 통과하는 우리를 여기저기에서 채증하며, 계속 겁을 주는 겁니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으니까, 조심해' 하는 듯한 압박이 계속 느껴졌어요. 

여지껏 '겁먹은 시민'으로만 살았는데... 그날 광장이 열렸습니다
 
2015년 11월 14일의 광화문 광장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경찰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 '이 나라 도둑들은 오늘이 장날인가?'
▲ 2015년 11월 14일의 광화문 광장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던 경찰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 '이 나라 도둑들은 오늘이 장날인가?'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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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된 시위는 제대로 행진 한 번, 구호 한 번 외쳐보지 못했어요. 그날의 언론 보도로는 '반정부 전문 시위꾼들에 의한 폭력집회'라고 했지만, 그곳에는 저처럼 '나라에 기대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크게 얘기하고 싶었던 우리 '일반 시민'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우리가 경찰이 쳐 놓은 통제선 안에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이던 동안, 살수차가 물을 뿌리기 시작했고 백남기 농민께서 쓰러지신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도 무력했고, 분노는 했지만 힘을 낼 수가 없었어요. 내 편이 누구인지 몰랐고, 어디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났거든요. 백남기 어르신에 대한 폭력을 보고 나니, 저는 더 겁이 났어요. 나도 저렇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는 저를 그렇게 '공포심'으로 길들였던 거죠. 

다시 2016년이네요. 그렇게 '겁먹은 비겁한 시민'으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그저 '도망쳐야겠다'하는 생각밖에는 못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광장이 열린 거예요. 기적 같았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것, 미소만으로도 '우리가 기대하는 희망'을 전달할 수 있다는 연대감, 정말 기적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어요. 흘러내리는 눈물도 벅찬 가슴도, 제가 첫 번째 집회를 위해 나간 광장에서 느꼈던 그 모든 감동을 대변하는 것이었겠죠. 이 감동은, 아마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졌던 광장의 축제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테고요. 

그러다가, '그 사진'을 찍게 된 거예요(관련 기사: '시위대 농민' 기념사진, 무릎 굽혀 찍어준 경찰관). 아직 광장의 열기가 계속 이어지던 오후 9시 30분쯤, 저는 슬슬 광장을 벗어나서 서울역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포항 가는 마지막 기차가 오후 10시 20분에 있었거든요). 모르는 길도 아니었고, 지하철을 타기엔 광장에 모인 100만 명의 시민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다만,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은 시민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사람들의 바다를 거슬러서 헤엄치는 게 힘들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간신히 걷다 보니, 눈앞에 남대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거기에 계셨어요. 벼 이삭이 그려진 붉은색의 전국 농업인 연합회 깃발과 그분들의 흥겨움을 기꺼이 사진으로 남겨주신 경찰관 말이에요. 갑자기 제 머릿속에는 정확히 1년 전, 그러니까 2015년 11월 14일의 광장에서 대치했던 그분들이 떠올랐어요. 아, 그때는 서로에게 그렇게나 심하게 상처를 주던 분들인데, 오늘은 이렇게나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주고 계시다니! 다시 눈물이 흘렀고, 저도 그분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왔어요. 

'(제게 좋은 순간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덧 '탄핵' 촛불집회 1주년, 광장에서 다시 만나요
 
2016년 11월 12일의 촛불집회를 마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순간이예요. 저도 이분들이 서로를 위해 무릎을 굽히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행복했답니다. 감사합니다!
▲ 2016년 11월 12일의 촛불집회를 마치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던 순간이예요. 저도 이분들이 서로를 위해 무릎을 굽히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행복했답니다. 감사합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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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집회에서의 감동으로 그 후로도 여러 번 '상경투쟁'을 이어갔어요(고백하자면, 그냥 재밌어서, 광장에 모인 우리에 행복해져서 올라갔던 것이지만 말입니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광화문에서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잡았네요. 울진의 제 동생은 애들 셋을 데리고 거의 매번 참석해줘서, 제가 그 방에서 신세도 많이 졌네요. 막내 조카가 그 당시 네 살이었는데, 우리의 광장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을지 궁금하기도 해요. 그 아이들이 살게 될 대한민국은, 더 이상 국민을 버리지 않는 나라이길 원했던 촛불이니까요. '촛불의 목표'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끝날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에요.

이렇게 또 1년이 지나서, 2017년 11월이 다가오고 있네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깜짝 놀랐어요. 저, 정말 세상이 바뀐 것을, 그것도 '우리 힘으로' 바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았거든요. 억울하지만 '촛불 시민' 이창희가 '생활인' 이창희로 바뀌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지 않아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출근하는 아침이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윗사람의 지시에 한없이 주눅 들어서는 '나 아니어도 될' 자리에서 '자존감은 집에 두고 나올걸' 후회하며 살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인권상' 수상이라니요! 갑자기 놀라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제 '조급함'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기다리는 시간이 갑갑해지는 것도 어쩔 수가 없겠지요. 짙은 구름을 걷어내고 환하게 얼굴을 드러낸 햇살이, 울창한 나무를 뚫고 바닥의 들풀들에게 닿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잘 알아요. 그럼에도 자꾸만 조바심이 고개를 들고는 '저것 봐, 햇살은 저 큰 나무들이 다 가져가고 있잖아' 말할 때는 너무 두려워요. 분명히 세상은 바뀌었고 2015년의 11월의 물 대포도 2016년 11월의 빽빽한 차벽도 모두 사라진 평화로운 광장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이 환하게 웃고 계신 데 말이에요. 

다시 짐을 챙겼습니다. 1년 전과 똑같은 꽃무늬 가방에 광장 바닥의 한기를 막아줬던 천 원짜리 깔개를 조심스레 접어 넣었어요. 크지 않은 배낭이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가 불러올 감기가 두려워 얇은 목도리와 작은 담요도 꾸역꾸역 챙겼습니다. 자꾸만 조바심으로 불안은 커지고, 먹구름이 걷혔다고 '한편이었던' 우리끼리 또 싸우게 될까 봐서 아직은 두렵지만, 완성되지 않은 촛불의 염원을 다시 기억해 내야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구겨졌던 자존감도 햇살에 말려서 다시 마음에 챙겨 넣어야 할 테고, 우리 모두가 같이 바라는 희망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런 건 어때요?

'다스는 누구 겁니까?'
'우리끼리 싸우면 누가 좋아할까요?'


다시 한번, 뜻깊은 상을 통해 사라지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멋진 승리를 우리 모두가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 냈다는 것을, 글을 읽으시는 '우리 촛불시민들'도 잊어버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아직 혁명은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 광장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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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헌 선생, 이제 미국과 끝장을 봐야

[목요집회] 권오헌 선생, 이제 미국과 끝장을 봐야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7/10/27 [02:46]  최종편집: ⓒ 자주시보
 
 

 

▲ 1142차 목요집회, 2017년 10월 26일 탑골공원 삼일문 앞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권오헌 회장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16일 서울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 양심수전원석방과 국가보안법철폐를 위한 민가협·양심수후원회 추최 1142회 목요집회가 어김없이 열렸다. 이번 집회는 우연히 남북해외 3자연대 집회로 진행되어 더욱 의의가 컸으며 참여자들도 평소 2배나 모였다.

 

위중한 병마와 싸우고 있는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은 여는 말 연사로 나와 “28일은 박근혜 적폐정권에 항거를 시작한 촛불시위 한 돌이 되는 날이다. 국민들은 뜨거운 투쟁의지로 적폐정권 몰아내고 촛불정부를 세웠다. 현재 곳곳에 쌓여있는 적폐를 청산 해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적폐 중에 최악의 적폐인 분단적폐와 억압구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특히 국정원과 적폐정권들이 조작한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12명 북 여성종업원문제와 통합진보당 폭압적 해산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각성과 국민들의 적폐청산 투쟁 동참을 정열적으로 호소하였다.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양심수들을 위해 매주 목요집회에 참석해온 권오헌 회장,

양심수들의 재판이란 재판은 다 참여하였고

전국 구치소를 돌며 양심수들에 힘과 용기를 주었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그러면서 권오헌 회장은 이어 “또 하나 지적할 것은 미국의 한반도 주변 합동해상훈련문제이다. 한 척의 항공모함이 이미 와 있고 트럼프 방한에 맞추어 두 척이 더 온다고 한다. 미국은 제너럴셔먼호사건 등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에 첫 발을 내 디딜 때부터 꼭 함포를 몰고 와서 우리 민족을 폭력적으로 겁박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챙겼다. 지금 항공모함을 끌고 한반도에 오는 트럼프도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다.”며 이제는 우리민족이 이런 미국의 폭압을 끝장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집회 후에 대담에서 권오헌 회장은 “어제 무리하게 등산을 해서 밤에 잠을 한 숨도 못 자 집회 도중 눈이 자꾸 감겼다.”고 했었는데 연설을 할 때는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뜨거운 포효를 터트렸다. 그만큼 분단문제 미군문제만 나오면 온몸이 바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렬한 애국의 피가 그의 가슴에서 언제나 식지 않고 끓고 있었던 것이다. 

 

▲ 송영애 미주 양심수후원회 동포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이번 목요집회에서는 로스앤젤레스 사는 송영애 미주 양심수후원회 동포도 참석하여 연단에 섰다. 송영애 동포는 “벌써 목요집회가 1142회나 되었다. 그간 어머님들과 선생님들이 얼마나 고생하셨겠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목요집회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고 국회에서 하루빨리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굳은 연대의지를 표했다.

 

▲ 김련희 평양시민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이어 확성기를 잡은 김련희 평양시민은 “나는 이념도 잘 모르고 정치도 모른다. 오직 북녘에 있는 가족들과 단 한번만이라도 오붓하게 둘러앉아 식사 한 끼 해보고 싶은 게 소원이다. 이런 사람의 초보적인 꿈마저 무참히 짓밟는 나라가 무슨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더군다나 현재 한반도는 전쟁위기가 일촉즉발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남과 북이 서로 적대시하지 말고 힘을 합치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김련희 동포는 연설 말미엔 충혈된 눈물어린 눈을 감추지 못했다. 가족 말만 되뇌어도 그렇게 눈이 충혈되고 있는 것이다. 

 

▲ 민중당 서울시당 최나영 공동위원장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10월은 자주시보 후원확대의 달입니다.

기자는 퍽 늘었는데 점점 정기후원이 줄어들어 후원히 절실한 상황입니다.

애독자 여러분들의 따뜻한 후원격려부탁합니다.

관련 기사 바로 가기 :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35885

 

김련희 동포로부터 확성기를 이어받은 민중당 서울시당 최나영 공동위원장은 “정치는 결단이다. 적폐세력 이명박근혜정권 퇴진을 위해 열심히 투쟁하다가 투옥되어 옥중고초를 겪고 있는 양심수들의 전원 석방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8.15때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이제 물리적 시간이 퍽 지났다. 겨울이 오기 전에 결단을 내려라.”라며 문재인 정부의 양심수 전원석방 결단을 강하게 촉구하였다.

 

▲ 지영철(왼쪽), 이동근 씨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마지막으로 지영철, 이동근 민족민중당 관계자들이 출소 인사를 하였다. 이들은 먼저 길바닥이지만 민가협 어머니들과 원로 선생들에게 넙죽 큰 절부터 올렸다. 

지영철 씨는 “힘든 감옥 생활이었지만 지지, 지원해주고, 투쟁해준 사람들 덕분에 고립된 곳에서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다. 나와 보니 세상은 여전히 감옥이다. 더 열심히 투쟁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피력했다.

 

 

이동근 씨도 “옥중으로 들어오는 밖의 투쟁 소식, 민가협 양심수 후원회 정성스런 편지에 큰 힘을 얻었다. 그 힘으로 감옥 안에서 나 스스로를 혁신하는 투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출소해서 행복했다. 더 큰 행복을 위해 더 열심히 자주통일투쟁을 전개하겠다. 승리를 확신한다.”며 계속적인 투쟁의지를 밝혔다.

 

▲ 2017년 10월 26일 목요집회에서 시민들에게 나누어 준 6대종단 양심수 전원석방 촉구 유인물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2017년 10월 26일 삼일문 앞 1142회 목요집회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2017년 10월 26일 삼일문 앞 1142회 목요집회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 2017년 10월 26일 삼일문 앞 1142회 목요집회, 적폐정부와 싸운 이들이 왜 감옥에 지금도 있어야 하는가.자녀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들을 부모형제 아내와 남편 가족들의 품으로 어서 돌려보내야 한다.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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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국정원·군·경찰 동원 ‘여론 조작’…MB에 매일 보고

 
입력 : 2017.10.26 06:00:05 수정 : 2017.10.26 06:00:57
 

ㆍMB 청와대, 사이버 댓글 공작 ‘배후 조종’ 확인
ㆍ홍보 박형준·소통 김철균 라인 ‘친정부 여론몰이’ 주도
ㆍ여론동향 파악·댓글 공작 동시 진행…전면 수사 불가피

[단독]국정원·군·경찰 동원 ‘여론 조작’…MB에 매일 보고
 

이명박(MB) 정부가 벌인 댓글 공작의 실체가 25일 전모를 드러냈다. 이명박 청와대가 ‘사이버 컨트롤타워’를 두고 댓글 공작을 진두지휘했으며,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방위사령부 등은 수족 노릇을 한 사실이 파악됐다. 

사이버 컨트롤타워가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된 점, 댓글 공작 지휘부인 국민소통비서관실이 인터넷 여론동향을 이 전 대통령에게 매일 보고한 점 등을 감안하면 이 전 대통령의 댓글 공작 지시·관여 정황도 뚜렷해졌다. 

국정원과 군 말고도 경찰의 댓글 공작 개입 의혹도 제기됐다.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전면적인 수사가 불가피해졌다. 

■ 대통령 직속 ‘사이버 컨트롤타워’ 

경향신문이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을 통해 입수한 유관기관 보고 문건(2008년 7월23일 작성) 내용을 보면, 사이버 컨트롤타워는 홍보기획관실과 위기정보상황팀 등 두 축으로 편제됐다.

“국가를 위협하는 해킹, 사이버 테러 등에 대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위기정보상황팀은 차두현 전 KIDA 연구원이 팀장을 맡았다. 문제는 홍보기획관실-국민소통비서관실로 이어지는 다른 축이다. 문건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역할을 “국정 관련 인터넷 공간 통제를 위한 컨트롤타워”로 규정했다.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업무는 “사이버상 여론 수집·분석” “불법 폭력시위 주동자 및 악성 루머 유포자 색출” “인터넷 토론방 내 악성 게시물 대응 및 정부 시책 옹호글 게재” 등이다. 인터넷 여론조작이 주요 업무였던 셈이다. 

문건에는 국민소통비서관실 업무 내용과 관련해 “보안 유지 요청”이라고 적혀 있다. 청와대가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업무 내용에 대한 보안 유지를 요구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도 국민소통비서관실 업무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 문제가 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 인터넷 여론 수집, MB에게 보고 

국민소통비서관실은 국정원·국방부·경찰 관계자 등과 주기적으로 회의를 하고 인터넷 여론동향 및 인터넷 공간 통제 방안 등을 논의했다. 문건에는 국민소통비서관실이 국정원·경찰 등을 통해 인터넷 여론을 수집한 것으로 나와 있다. 

청와대에 ‘사이버 컨트롤타워’가 생긴 이후 군 사이버방위사령부 등의 댓글 공작이 본격화된 것을 보면 국정원과 군의 댓글 공작 역시 국민소통비서관실의 지휘를 받아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의 댓글 공작 개입 여부도 주목된다. 

이철희 의원은 “법 집행기관인 경찰이 불법적 댓글 공작과 여론조작에 버젓이 참여했다는 건 처음 밝혀진 사실”이라며 “경찰은 더 이상 남의 일처럼 외면 말고 과거청산과 재발방지책 마련에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소통비서관실은 국정원·경찰·군을 통해 인터넷 여론동향을 수집한 뒤 분석해 한 쪽짜리 일일 여론동향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매일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같은 기관이 2009년 4월2일 작성한 문건에는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는 ○○(해당 기관) 제공 자료 중 평균 2건 이상을 포함하여 ‘일일 여론동향 보고서(1P)’를 생산, 대통령님을 비롯한 BH 수석실 내 148명에게 일일 단위로 배포”라고 적혀 있다.


국정원과 군의 인터넷 여론동향 파악이 댓글 공작과 동시에 진행된 점을 보면, 해당 보고서에는 단순 여론동향뿐 아니라 ‘조치 방안 및 결과’ 등 불법적 댓글 공작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홍보기획관은 박형준 전 의원, 국민소통비서관은 김철균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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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화'는 처음부터 없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10/26 12:11
  • 수정일
    2017/10/26 12:1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저자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③·끝
2017.10.26 02:46:53
 
 

 

 

 

2013년부터 <프레시안>에 연재됐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중 박정희 유신 체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단행본 9, 10, 11권이 발간됐다. 이번에 발간된 세 권은 1972년 10월 17일을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된 '유신 쿠데타'와 관련 △유신을 왜 일으켰나(9권) △왜 유신 체제를 막지 못했나(10권) △유신의 뿌리, 일본 군국주의(11권) 등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는 1945년 해방 후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민주화 흐름을 짚어보는 기획으로 해방과 분단을 다룬 1권, 한국전쟁과 민간인 학살을 다룬 2권, 이승만 독재와 이에 맞선 조봉암의 비극을 그린 3권, 4월 혁명을 다룬 4권에 이어 5권부터는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번에 유신 체제를 해부하는 세 권의 단행본에 이어 향후 6월 항쟁에 이르는 과정도 다뤄질 예정이다. 

<프레시안>은 촛불 시위 1주년이자 11월 14일 박정희 탄생 100년을 맞아 저자인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를 만나 촛불 시위의 의의를 되새김과 동시에 유신 체제와 한국의 앞날을 조망하는 인터뷰를 마련했다.  

촛불 시위가 없었다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성대한 박정희 탄생 100주년 행사를 지켜봤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서 교수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 '박정희 신드롬'이 만연해있다며 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프레시안>은 이번 인터뷰를 세 편에 나누어 소개한다. 마지막 편으로 "박정희가 경제는 살렸다"는 주장의 맹점을 짚어봤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유신'이라는 명칭은 메이지유신(1868년)에서 따온 것으로 흔히 이해된다. 그러나 1936년 2·26쿠데타를 일으킨 황도파 군인 등 군국주의자들이 쿠데타 등으로 강력히 요구한 쇼와 유신이 그 원형이라고 지적하셨다. (2·26쿠데타는 일본의 청년 장교들이 조선 총독을 지내기도 한 사이토 마코토를 비롯해 주요 인사를 살해하고 강력한 군부 통치를 요구했던 사건이었다. 토론과 협상에 의한 정치를 부정하고 강력한 군부 통치를 추구한 것이다.편집자) 박정희가 대구사범에서는 열등생이었다가 만주 군관학교 이후 우등생이 됐다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박정희의 국가 운영 방식이 일본 사관학교의 군대식 교육과 만주국 국가 운영에 그 원형이 있다고 했는데, 결국 일본 식민 시대의 국가 운영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서중석 : 박정희가 메이지 유신을 중시했다는 것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회상을 통해 나온 말이다. 기시는 만주 침략의 핵심 인물이었고 연합국에 의해 A급 전범으로 지목됐는데도 두 번이나 일본 수상을 지내면서 박정희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그의 글에는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메이지 유신 지사들을 떠올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게 사실이라면 박정희가 5.16 쿠데타 직후에 쓴 글들, 특히 <우리민족의 나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 등의 책에 메이지 유신 지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한 문장이라도 나와야 하는데 언급이 전혀 없다. 특히 <국가와 혁명과 나> 에서는 메이지 유신을 한 항목으로 다루고는 있는데도 이런 말이 한마디도 안 나온다. 추측건대 메이지 유신 지사들을 떠올렸다는 것은 박정희가 기시에게 외교적으로 한 말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정희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는 1936년 젊은 군인들이 일으킨 2.26 사건에서 큰 감명과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무엇보다도 쇼와 유신과 박정희 유신 체제가 닮은 점이 많다. 기성 민간 정치인에 대한 불신, 강력한 통치, 군대식의 능률적 사고 등이 그렇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박정희는 쇼와 유신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가 만주 군관학교에 재학중일 때, 일본 육사에 있었을 때, 또 만주군 군인이었을 때 군인 사회를 풍미했던 것이 쇼와 유신이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박정희가 이른바 국가개조 운동으로 재건 국민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는데 그때 <조선일보>에는 재건 국민 운동은 일제 말기 군국주의 일본의 전시 동원 국민 운동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재건 체조는 일제 말기의 라디오 체조를, 신생활복은 국민복을, 국민가요는 말 그대로 일제 말기의 국민가요를 연상시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 박한용이 쓴 글에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등 국민 개조 운동, 국민 교육 헌장이 쇼와 유신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교육 헌장은 메이지 교육칙어, 황국신민서사와 연관시켜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국기에 대한 맹세와 애국조회, 국기 하강식 등 국가주의 맹세의 의례와 교련과 체육의 모의 수류탄 던지기 군사교육, 충효교육, 라디오 체조와 내 집 앞 쓸기 운동, 국민가요 부르기, 퇴폐풍조 일소와 미풍양속 고취, 반상회, 고도 국방 체제를 목표로 한 총력 안보 체제, 국가 통제형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이 일제가 식민지 조선과 만주국에서 실행했던 국가주의를 본 떠 되살린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유신 체제는 일본 극우가 꿈꿨던 쇼와 유신의 한국형 변조라는 지적인데 대체로 적절한 평가라고 본다.  

유신 체제는 쇼와 유신의 군국주의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쇼와 유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만주 인맥이라고 평가되는데,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 중심 인물로 체포됐을 때 살아난 것도 국내 만주 인맥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박정희 정권 18년 동안 박정희 정권과 경제적 관계를 포함해서 각별한 관계를 가졌던 자들이 아베의 외조부 기시를 비롯한 만주 인맥이다.  
 

▲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9, 10, 11권 (서중석 지음, 오월의 봄 펴냄, 2017)


프레시안 : 그런데 대다수 국민은 박정희의 경제 개발 공로는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박정희의 경제 개발 업적을 어떻게 평가하나?

서중석 : 한국인 중 상당수가 1960~70년대의 경제발전을 박정희의 공으로 이해하고 있다. '개발 독재'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붙어있던데 이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 특히 유신체제가 경제 발전에 효율적이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그래서 이 점을 특별히 유의해 검토하고 있다. 

<현대사 이야기> 8권 전체가 박정희 집권기의 경제 발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9권에서 유신 쿠데타를 다룰 때도 이 문제를 포함했다. 앞으로 유신 붕괴 과정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다루려고 하는데, 경제가 유신 붕괴에 얼마나 지대한 역할을 미쳤는가를 살펴볼 예정이다.  

일부 진보 세력의 '개발 독재' 주장은 심각한 허점을 안고 있다. 우선 3공화국과 유신체제가 삼척동자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명백히 다른 정치체제인데도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박정희 유신 체제의 경제 정책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이 중화학 공업인데, 1970년대에 한국에 중화학 공업 시설들이 많이 세워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거나 간과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유신체제 붕괴에서 경제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대만도 1972년 10대 건설 계획을 세우며 1970년대 내내 중화학을 크게 발전시켰다. 우리의 경우 1972년 유신 체제 이전에 중화학 공업은 이미 포항제철이나 비료공장 등 중요한 시설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1972년에서 76년까지 진행된 제3차 경제개발계획도 1971년에 구체적 계획이 다 세워졌다. 즉 이 개발 계획은 유신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박정희가 중화학 공업화를 1973년 1월에 선언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정확한 평가가 아니다. 

박정희는 1971년 7월 1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중화학 공업을 선언한다. 그는 앞으로 중화학 공업 시대의 막을 올리고 한강 변의 기적을 4대강에 재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즉 유신과 중화학 공업화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 박정희 스스로도 중화학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신 체제 같은 강권 체제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개발 독재론자나 중화학 공업 건설과 관련한 글 등에서 보면 1973년 정부의 각종 특혜 정책으로 중화학 공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 1974~75년 중화학 공업에 대한 투자는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는 두 해 다 경제성장이 둔화된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중화학 공업을 시작하려면 엄청난 자본이 투자돼야 하는데 당시까지 우리나라의 재벌들은 그 정도의 자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한국 경제에 기적이 출현했다.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74년부터 '중동 건설 특수'가 나타났다. 석유 폭등으로 떼돈을 번 산유국들이 대규모 건설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것은 다 알다시피 박정희와도, 유신체제와도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 중동특수에 맞춰 한국은 1975년부터 몇 십억 달러씩 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현대를 포함해 몸집이 엄청나게 커진 업체들이 있었고, 1975년을 전후로 해서 부동산 투자와 투기가 벌어졌다. 

여기서도 건설 업체들이 상당한 부를 가져갈 수 있었다. 즉 중화학 공업화의 발판은 유신 체제가 아니라 중동 건설 특수에 따른 막대한 외화 수입, 그리고 부동산 투자 투기에 따른 대기업의 막대한 이윤 창출이었다.  

이런 요소들이 작용하면서 국가가 보증해주는 차관을 가지고 중화학공업에 투자해서 누가 경쟁에서 선두를 달리느냐가 당시 재벌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대재벌로 성장하는데 중화학 공업처럼 좋은 게 없었기 때문에 너도나도 중화학 공업에 투자했다. 그러다 보니 엄청난 과다 중복 투자 현상이 일어났다.  

유신 체제 붕괴에는 경제 문제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1978년 12.12 선거에서 여당이 심각한 패배를 당했는데 당시 공화당과 중앙정보부가 박정희에게 경제통인 김정렴 비서실장, 남덕우 부총리 등을 포함해 경제 각료를 교체하라고 요구했다. 경제 문제가 심각해져서 선거에 패배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가 나온 것이다.  

대통령은 처음에 말을 안 들었지만, 김정렴 회고록에 따르면 계속 이러한 요구가 나왔고 결국 김정렴은 9년여 만에 비서실장에서 물러났다. 남덕우 등 경제 각료를 다 바꿨다. 

1979년 YH 여성 노동자 신민당 농성 사건과 10월 16일 부산대 학생들이 거리에 나오면서 시작된 부마항쟁 역시 유신 체제의 경제 정책이 얼마나 문제가 있었고 이에 따라 유신 체제가 경제 파탄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김재규 중정부장이 유신의 심장을 쏘겠다고 한 것도 부마항쟁 현장에 다녀오면서부터였다.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 회고록에는 김재규가 경제 문제에 위기감을 갖고 있었다고 나온다. 
 

▲ 박정희 정권은 군사 작전을 하듯이 밀어붙여 수출을 늘렸다. 그 밑바탕에는 노동자들을 말 그대로 쥐어짠 병영 같은 공장이 있었다. 이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1979년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는 YH 여성 노동자들. YH 여성 노동자들의 저항은 유신 체제의 몰락을 앞당겼다. ⓒ연합뉴스


유신체제에서는 특히 재벌 중심의 팽창 정책이 주조를 이뤘는데, 유신 체제를 지키기 위해 성장 경제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정부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화학 공업 투자가 일어난 이유도 과도한 성장 위주 정책 때문이었다. 결국 박정희가 1979년 1차 조정을 했지만 이어 정권을 차지한 전두환이 두 차례에 걸쳐서 대대적으로 조정을 했어야 할 정도였다. 1979, 80년에는 중화학 공장 가동률이 40~60%에 머물고 있었다.

박정희의 고도성장정책은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피부로 느끼게 했고 너무나도 지독한 투기 광풍에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불만이 높아갔다. 1978년 한 해에 지가가 48%가 올랐다. 부마항쟁 때 낮에는 학생들이 시위를 이끌었지만 밤에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샐러리맨도 있었지만, 가지지 못한 자, 당하고 사는 사람들, 소외된 자, 실업자, 저임금 노동자 등 20대 안팎이 시위 대열에 대거 합류했고, 세금 폭탄으로 불만이 컸던 상인들도 가세했다. 김재규는 이를 민란으로 규정했다.  

물론 1979년 제2차 석유파동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해에 중동 노동자 송금액이 11억 달러를 넘어서 기록적이었고, 현대의 총 매출액이 36억 달러로, 미국 종합경제지인 <포춘>이 집계하는 기업 총 매출액 순위에서 세계 98위에 올랐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1978년에는 노풍(통일벼 계열 신품종)벼 피해도 발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작물 시험장 책임자인 박노풍의 이름을 따서 노풍으로 불린 새 볍씨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새로운 볍씨가 나왔으면 실험 단계를 충분히 거쳐야 하는데 박정희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빨리, 많은 양을 수확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장려했다. 박정희 정권은 12·12선거 나흘전인 12월 8일 이듬해부터는 노풍을 재배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돌아선 농민들의 마음을 붙잡기는 역부족이었다. 농민들은 박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다. 

1978년 후반기부터 나빠진 경제는 1979년에 한층 악화되었고, 1980년 경제성장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자료에 따라 다르지만 –5.6%(전두환 회고록 등), -5.2% 등으로 나온다. 남한이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 

일각에서는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것은 잘못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박정희가 얼마나 경제를 잘못 운영하고 있었는지가 막 드러나고 있었던 시점이었는데 김재규가 조급하게 움직였기 때문에, 박정희 유신 체제가 경제에 얼마나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지를 미처 깨닫게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한미 동맹과 촛불 민심 

프레시안 : <현대사 이야기>에는 유신 선포 하루 전 미국 대사관에 관련 사실을 통보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한국에서 미국이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인식은 1980년 광주항쟁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바뀐다. 하지만 1960년 4월 혁명이나 1987년 6월 항쟁 때는 미국이 강경 진압을 막았다는(그리하여 민주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한미 동맹을 절대시하는 측과 자율성을 늘려야 한다는 측이 대립하고 있다. 촛불 민심을 받들어 자주적 외교를 하라는 요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핵 위협이 커지면서 남한 정부의 운신 공간이 좁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민주화가 대외 관계의 민주화로 나아갈 길은 없을까 

서중석 : 미국은 자신의 국익 범위 내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관련한 역할을 했다. 기본적으로는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4월 혁명 때만 해도 미국은 4월 18일까지 3.15 부정선거를 용인하고 이승만-이기붕을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 문제를 바라봤다. 그런데 4.19 시위를 보면서 달라졌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때가 됐다고 본다.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문제를 풀어가기가 어렵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은 한말에도 있었고, 그러면서 중립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한반도의 중요성은 해방후 미·소 점령 아래서, 특히 좌우 합작 세력에 의해 강조됐다. 친미파로 미 군정 입법의원 의장이었던 김규식은 '친미 반소'나 '반미 친소'는 모두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그건 자주적 입장을 망각하고 미·소 양국의 조선에 대한 진정한 협조를 방해하는 행위라고 질타했다. 

미 군정에서 민정장관을 지낸 안재홍도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중심을 바로잡고 '중앙당'으로서의 길을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 길만이 통일 독립을 보장하고 국익을 최대화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이 친미파임에도 왜 이런 주장을 했는지, 이들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울리고 있는 때가 지금이라고 본다. 
 

▲ 서중석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에 대해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990년을 전후로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와해되는 가운데. 냉전의 최전선이었던 한반도가 여기서 벗어나려면 전략적 사고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김규식과 안재홍, 여운형 등이 활동할 때만 해도 미·소 두 나라가 가장 중요했다. 그렇지만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한국은 4강 시대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됐다. 21세기 들어오면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세계 4강으로 부상했는데, 이 4강은 모두 한국을 둘러싸고 있다. 한반도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러한 4강시대를 맞게 되었다. 

1990년 전후로 냉전이 와해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은 1992년 중국과 수교한 이후 경제 및 문화 관계가 강화되면서 굉장히 긴밀해졌다. 중국은 어차피 우리와 이웃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가깝게 지낼 수밖에 없는 국가였는데, 이제는 경제적으로 한국에게 가장 중요한 국가로 부상했다.  

한국 경제의 돌파구로서 남북 관계라든지 만주, 시베리아 등지로 진출해 유라시아 시대를 여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한반도가 중·러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북핵 해결도 4강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전처럼 한쪽에 따라다니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있고, 우경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전쟁국 가를 지향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는 중국과 협력해 대응할 필요도 있다. 그런데 미국은 이러한 일본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일본을 중·러에 대한 대항마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이런 차원에서 한·일 군사관계도 권고하고 있다. 심지어 트럼프는 한반도가 전쟁터가 되는 것도 불사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 평화를 지키는 길만이 우리의 살길이며 미국에 대해 할 말을 해야 한다. 한국은 역사상 처음으로 찾아온 4강 시대에 적절히 대처하기 위해 4강에 대해 자주성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김규식이나 여운형, 안재홍 등이 친미친소를 중요시했던 것은 두 나라로부터 강력한 지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친미친소만이 두 나라로부터 주체성 자주성을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두 나라가 경쟁적으로 한반도를 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이 점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에서 아주 뚜렷하게 드러났다. 이때를 전후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태도가 싹 달라졌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 이후 북한과 관계가 아주 심하게 틀어졌는데 이 때 북한에 대한 원조를 강화하고 김정일이 8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최상의 환영을 받고 장쩌민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해 7월 김정일은 평양에서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더 놀라운 것은 그해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김정일과 포옹을 하고서는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가능성을 속삭였다는 점이다. 미국 못지 않게 북에 적대적이었던 일본은 그해에 갑자기 북한에 대한 식량 원조를 크게 늘리고 2002년 고이즈미 수상의 평양 방문을 진행했다.  

이 나라들이 김정일이 좋아서 그랬을까? 남북 협력시대가 열릴 때 북한에 일정한 관계를 갖는 것이 동아시아 또는 세계 정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동북아 정세는 또다시 경색됐다. 

2000년대에 사는 우리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안목으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에 대처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 아무런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작스럽게 배치를 결정했다. 더군다나 탄핵을 받은 상황에서 이른바 사드 '알박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 문재인 정부가 전쟁 반대를 명확히 선언하고 그에 따르는 노력을 하는 것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과연 한반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비판도 받고 있다. 앞으로 우리가 4강 시대에 얼마나 자주성,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는 데 관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한반도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대해 명료한 인식과 확고한 실천이 요구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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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적폐청산 핵심 ‘서버’ 조사…이를 막는 ‘내부자들’

[단독] 국정원 적폐청산 핵심 ‘서버’ 조사…이를 막는 ‘내부자들’

등록 :2017-10-26 09:15수정 :2017-10-26 10:57

 

기로에 선 국정원 개혁발전위·적폐청산 TF
지휘부 지시·특수활동비 내역 등 
서버 검색, 국정원 직원이 전담
TF 외부위원은 제공 자료만 분석

엉뚱한 자료 보내거나 누락도
검찰 수사 지연·혼선 사례 반발

채동욱·RCS건 부실조사 유발
서버 검색 문제와 관련 있는듯

검찰 “선별 압수수색 허용해야”
국정원 “파견검사 필요따라 접근”
‘쥐를 잡자(MB 잡자) 특공대’, ‘이명박 심판 국민행동본부’ 회원들이 25일 낮 서울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부터 학동역 6번 출구 인근에서 단식도 진행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쥐를 잡자(MB 잡자) 특공대’, ‘이명박 심판 국민행동본부’ 회원들이 25일 낮 서울 논현동 이명박 전 대통령 집 앞에서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이날부터 학동역 6번 출구 인근에서 단식도 진행한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전 정부 국가정보원의 불법 정치공작 관련 각종 문서와 기록이 저장된 ‘서버’ 검색은 국정원 적폐청산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꼽힌다. 그곳에 실행 계획과 지휘부의 지시 사항, 공작 실행 후 보고서,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 등 모든 근거 자료들이 보관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 국정원(원장 서훈)이 기밀·보안 등을 이유로 서버 검색을 ‘내부자’인 보안요원들에게 전적으로 맡겨놓고 있어, 자칫 부실 조사와 미완의 개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국정원이 검찰에 수사의뢰한 사안들의 경우 서버에 보관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본 자료조차 누락한 채 보내지 않거나, 엉뚱한 자료를 보내 수사 지연과 혼선을 초래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는 것으로 25일 파악됐다.

 

 

 
국정원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는 최근 <한겨레> 기자와 만나 “국정원의 적폐와 관련된 모든 문서와 기록들이 저장된 서버 검색은 개혁 작업이 시작된 이래 적폐청산 티에프(TF) 소속 내부 요원들이 전담하고, 조남관 감찰실장을 비롯한 티에프 파견 검사 4명은 이 작업에서 배제돼 있다. 티에프는 이들 ‘내부’ 요원들이 검색해서 가지고 온 자료들을 토대로 분석과 판단을 하는 상황”이라며 “보기에 따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모양새’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실장을 포함한 파견 검사 등 티에프 구성원은 국정원법에 따라 ‘직원 신분’으로 적폐청산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서버 검색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정원 대변인실 관계자는 “국정원 감찰실장과 파견 검사가 필요에 따라 국정원 서버에 접근해서 조사하고 있다”며 “서버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건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실태를 왜곡하는 주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티에프 상황을 잘 아는 또 다른 관계자는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국정원 개혁위원 일부가 신현수 국정원 기조실장을 만나 ‘파견 검사들이 직접 서버 검색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그 뒤로 상황 변화가 없다”며 “23일 공개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 개인정보 유출사건, 아르시에스(RCS·원격통제시스템)를 통한 민간인 사찰 사건 등의 조사 결과가 부실한 것도 최초 서버 검색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은 참여정부에서 활동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위)보다 후퇴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안병욱 전 진실위 위원장은 “과거 진실위 때는 마이크로필름 목록에서 키워드 검색으로 우리가 보려 하는 문서를 찾아야 했는데, 그 검색을 할 때마다 진실위 조사관 등이 검색 요원들 옆에 붙어 앉아 제대로 검색하는지를 확인하고 검증했다”며 “그쪽에서 찾아 넘겨준 것만 봐서는 조사와 검증에 한계가 명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가 ‘이달 말’까지로 활동 시한을 정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개혁위는 이달 말까지 15개 청산 과제 대부분의 결론을 내고, 그때까지 처리 못 한 사안은 감찰실에 넘기기로 했다”며 “그렇게 되면 현재 티에프에는 검사 4명만 남아 ‘고립된 섬’처럼 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검찰에서도 국정원의 부실한 자료 이첩 등으로 불만이 누적되면서 검사들이 선별적으로라도 국정원 서버를 압수수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에 필요한 디테일한 자료가 전혀 오지 않고 있다. ‘우리는 던지는 거로 임무를 다했으니, 나머지는 검찰이 재주껏 알아서 해보라’는 식이다. 국정원의 태도를 보면 ‘이 사람들이 개혁 의지가 있나’ 의심까지 하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국정원의 조직 보호 논리가 작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이버 댓글 외곽팀의 경우 수사의뢰를 하면서 거기 투입된 특별활동비 예산과 집행 내역 등을 기록한 원장과 전표 없이 개별 영수증만 ‘달랑’ 보내왔다고 한다. 또 공작에 관여한 것으로 파악된 직원이나 관련자 명단에서 이름을 가리거나 지우고 보낸 사례도 있다고 한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도 “모든 공작에는 시행계획과 지휘서신, 사후 보고서 등이 있게 마련인데 그런 걸 보내온 적이 없다. ‘자료를 왜 안 보내느냐’고 따지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시간 끌다가 대놓고 엉뚱한 자료를 보내오는 것도 봤다”고 했다.

 

검찰은 수사가 지체되고, 수사팀 규모를 계속해서 키워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2013년 댓글 수사 때도 심리전단 명단을 (국정원이) 넘겨주지 않아 수사가 필요 이상으로 장기화됐었다”며 “검사들이 수사상 필요한 자료와 기록을 서버에서 찾을 수 있도록 선별적인 압수수색이라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6096.html?_fr=mt1#csidxa95e8b8f66d8e88b031bf2c6cf0e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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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 방사능 수산물이 식탁에 오를 수 있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10/26 11:03
  • 수정일
    2017/10/26 11:0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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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수산물 규제 조치에 대한 WTO의 판단은 '부정적'...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17.10.25 21:02l최종 업데이트 17.10.25 21:02l

 

 시민방사능감시센터,서울방사능안전급식연대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와 관련해 진행중인 세계무역기구 (WTO)분쟁의 결과가 패소할것이라는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긴급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시민방사능감시센터,서울방사능안전급식연대 등 환경단체 회원들이 지난 9월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와 관련해 진행중인 세계무역기구 (WTO)분쟁의 결과가 패소할것이라는 전망이 짙어지고 있다"며 정부의 긴급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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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한국 정부가 WTO(세계무역기구)로부터 '일본 수산물 WTO 분쟁 패널 최종보고서'를 송부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보고서는 WTO 규정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지만, 내용은 긍정적이지 않으며 패소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9월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 조치로 그나마 확보했던 먹거리 안전에 다시 구멍이 뚫리게 생겼다.

전혀 뜻밖의 결과는 아니다. 2015년 일본 정부가 WTO 제소 절차를 준비하던 시점부터 현재까지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을 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량의 방사능은 먹어도 괜찮다는 태도를 가진 원자력공학자를 '방사능안전관리 민간전문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위촉해 대응해 왔다. 

이 위원회의 활동 내용은 시민사회에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통해 어느정도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민간전문위원회는 단 두 차례의 현지조사만으로 해체했다. 현지 조사 내용도 후쿠시마 주변의 수산물 7건과 표층수 4건에 불과했다. 

후쿠시마 수산물 이제는 안전한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6년이 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사고 초기처럼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수습이 완료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 안에는 녹아내린 핵연료 냉각을 위해 원자로에 쏟아 부어 생겨난 방사능 오염수를 보관 중이다. 지난 7월 도쿄전력 회장은 탱크에 보관 중인 약 78톤의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겠다고 말했다가 일본 어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입장을 번복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녹아내린 핵연료를 수습할 방안을 아직 찾지 못했고, 언제 완료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14년 9월 도쿄전력은 하루에 스트론튬90이 약 48억 베크렐, 세슘137이 20억 베크렐이 바다에 방류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국정감사에서 일본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 게시된 일본산수산물 방사능검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산물 검사건 총 1만 8868건 중 1976건(10.5%)에서 세슘-134와 세슘-137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수산물 중 40%인 803건이 후쿠시마현이 원산지였다. 또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는 수산물의 원산지가 우리가 수입금지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는 후쿠시마 주변 8개현에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 주있다. 특히 후쿠시마현에서 세슘 기준치인 100Bq/kg을 초과한 경우가 7건이었는데, 최대 160 Bq/kg까지 방사성 물질 세슘이 검출되기도 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의 배경

사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한국정부는 일본산 수산물을 비롯한 식품과 공산품 등에 대해 제대로 된 방사능 검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만큼 엄격한 규제를 취하지 못했다. 검사 인력과 장비는 부족했고, 사고 이전의 규제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산 수산물 등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어도 기준치 미만이라는 이유로 전량 시중에 유통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실은 일본산만 아니라 국내 유통 중인 수산물에 대한 전체적인 불신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 수산물의 특성상 원산지 표기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둔갑하는 게 쉽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또한 방사성물질의 오염 여부는 육안으로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결국 수산물 기피 현상까지 벌어졌다. 소비자뿐 아니라, 어민, 상인들까지 일본산 수산물 수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반영해 2013년 9월 후쿠시마 등 주변 8개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기준치 미만이라도 방사성물질이 검출될 경우 추가 핵종(스트론튬, 플루토늄)에 대한 검사를 요구하는 규제조치를 실시하게 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23일 오후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전 앞바다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노후 원전 수명연장 반대 및 폐쇄, 원전 건설 반대 등을 요구하며 고무보트로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국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2011년 부산시 기장군 고리원전 앞바다에서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노후 원전 수명연장 반대 및 폐쇄, 원전 건설 반대 등을 요구하며 고무보트로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다.
ⓒ 환경운동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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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 이후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규제 조치는 수산물의 방사능 불안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 규제 조치 이후 4년이 지나가는 지금 국내 유통 중인 수산물에 대한 기피 현상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실제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 및 검사 현황을 보면 상당히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규제 조치 시행 전까지 2년 6개월의 기간 동안 총 131건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수산물이 있었지만 단 1건도 반송 없이 시중에 유통됐다. 하지만 규제 조치 시행 이후 지난 2014년 7월까지 총 5건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되었고, 모두 반송 처리 되었다. 

방사성물질 검출 건수도 대폭 줄었지만, 실제 검출된 수산물들이 시중에 유통되지 않고 반송된 것이다. 이는 일본의 수산물에서 이제 더 이상 방사성물질이 검출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입 업자들이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수산물을 들여오지 않을 뿐이다. 

왜 일본은 한국을 제소상대로 택했을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중국, 러시아, 대만 등 일본과 인접해 있는 나라들은 각각 일본산 농수축산물 등에 대해 다양한 규제를 실시하고 있다. 생산지, 품목 등에 따라 수입금지, 방사성물질검사증명서, 산지증명서, 전수검사, 샘플검사 등 각국의 상황을 고려하여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과 거리가 먼 미국과 EU에서도 일부수입금지, 검사증명서 등의 요구를 하고 있다. 

일본산에 대해 한국만이 유별나게 조치를 하고 것이 아니다. 일본산 수산물 전체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며, 점점 수입량도 늘어 후쿠시마 사고 이전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국 정부만 유독 WTO 제소 상대로 삼았다. 한국 정부의 미온적 대처와 외교적 무능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지난 정부는 시민사회를 배제한 채 원자력 전문가들을 앞세워 대응을 진행했다. 방사능 기준치 이하니,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일본의 방사능 오염 조사를 제대로 했을지 의문이다. 

심지어 지난 2015년엔 일본 정부와의 관계 개선의 카드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관련 기사 : '일본산 수산물' 실상 이런데, 그냥 먹으라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등한시한 정부의 안일함과 국내 원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까 전전긍긍하는 원자력 전문가들이 '사실상 WTO 패소'라는 결과를 낳은 것 아닐까. 

먹거리 안전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기본 임무

일본산 수산물 WTO 분쟁이 끝나지 않았다. 내년 1월 최종 결과가 공개되면 항소할 수 있고, 2019년에나 그 결과에 대한 이행을 하게 된다. 남은 기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또 현재의 결과에 대해 어떤 대책을 마련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계속 이 사안이 비공개라는 이유로 국민들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공개할 수 없는 문서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대처해온 방식의 문제를 인정하고,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하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알권리를 보장하라는 거다. 외교적 대응은 하더라도 대책 마련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민관합동대응기구 등을 통해 소통하고 지혜를 모으는 것도 필요하다. 정부는 지금까지 대응전략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응 방안을 시급히 내놓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안재훈씨는 환경운동연합 탈핵팀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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