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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팽이처럼 돌고 돌아서 심장을 겨냥한다.

이미 상실된 나는

영원히 상실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실한 거기에서부터

모든 나는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오상원,'백지의 기록' 중

 

 

최지영의 다음 글을 기다리며

 

이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안쓰고 이런 말 하지 말아야지.

무슨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언행일치'같다. 절대 말과 행동이 일치 안되는 ㅋㅋ습~ 솨~

매번 결심이 무너지는 모습이 꼭 실없는 사람 같아.

 

 

최지영 동지가 글을 내리는 과정을 사이버상으로만 지켜 보고는 화가 났었다.

그간 세웠던 내 결심과 계획을 무너뜨릴 정도로.

지금도 충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대신 화는 누그러졌다.

그녀와 그녀들의 고민과 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녀의 다음 글쓰기를 기다린다.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기다린다고.

함께 하고 싶었고, 한 편으로 난 이미 내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힘 내라고. 힘 내보자고.

 

 

 

최지영의 글쓰기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폭력의 기억이 새롭게 떠올라 매 순간 '그만'을 외쳐야했다.

그녀의 글을 통해 새로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많지도 않게 사는 동안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 많은 폭력 속에 노출되어 살아왔었다는 사실이다.

잊고 싶었고, 잊혀진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 기억은 내가 여덟살  때, 엄마친구의 아들로부터 시작됐다.

옷을 벗기려고 강하게 내 손목을 짓누르는 것으로부터 도망쳐 밖이 잠잠해질때까지,

그리고 외출했던 엄마와 엄마친구가 다시 집에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시간 화장실에서 숨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오빠도, 착한 아들을 믿는 엄마친구도 무서워서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나도 그대로 잊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폭력의 시작은 이랬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기억들은 차곡차곡 쌓이고, 누적되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나를 통제했다.

그래서 성폭력의 문제를 나에게 돌렸을 때, 나는 지금도 자유로운 것 같지 않다.

친구의 조언대로 고통의 기억은 앞으로 내가 사는 동안 품고 살아가야 할 상처로 존재할 것 같다.

그 치유의 방법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고민중이다.

현재로서는 생존자를 지지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최지영 동지의 글쓰기가 진행되면서 나는 두 가지 정도가 달라졌다.

하나는 내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털어 놓기 시작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글이 진행되면서 예전처럼 앉아서 울고 있지만은 않는다는 점이다. 난 점점 울지 않는다.

 

 

 

최근의 논의과정을 지켜보면서

 

과거의 기억들을 되돌이켜볼 때 처음의 시작은 성폭력인건가?라는 질문에서부터였다.

다음은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두려웠다. 그리고는 자책이 이어졌다.

왜 난 그 때 이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못했을까?

하지만 가장 괴롭고 참을 수 없던 것은  폭력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충격보다도

그 이후의 과정이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나에게 최지영의 글쓰기가 괴롭지만 고마웠던 이유는 마지막 사실때문이었다.

반성폭력에 대한 무수한 논의를 했었고, 사람들은 생존자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다고들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의미 이면에는 생존과 치유의 과정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 자리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내 과거를 돌이키면서 하나같이 공통적이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무섭고 공포스러운 성폭력 장면의 그 순간만큼 

그 이후에 잊으려고 노력하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려고 하면 할 수록

더 바닥으로 치닫고 힘들었던 경험이었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최지영의 글쓰기가 있기 전까지 난 이 사실을 간과했던 것 같다.

과거를 떠올리면서 나는 이제서야 반성폭력에 대해, 그녀의 글쓰기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최지영의 글쓰기는 오롯이 개인의 글쓰기로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 여기에 있다.

 

 

그녀는 "그런 일을 겪다니 힘들었겠어요." 가 아니라

"생존의 과정이 쉽진 않지만, 때론 눈물흘리며 다시 일어나는 삶을 같이 살아요."같은

진심을 바라고 또 말하고 싶은게 아닐까?

최근의 논의를 간간히 보면서, 간혹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속상하다.

 

 

 

 

 

 

 

 

 

 

상처는 팽이처럼 돌고 돌아서 심장을 겨냥한다.

앞이 보이지 않게 피 대신 눈물을 흘리게 만들고, 늘 제자리에서 돌고 있는 것 같다.

단단한 심장이 필요하다.

늘 제자리에서 돌고 돌아도 더 이상 나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단단한 심장은 혼자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심장과 함께 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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