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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그리고 긴급출동 SOS

 

어젯밤 집에서 우연히 SBS에서 하는 <긴급출동 SOS>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도 14살 짜리 아들이 엄마를 폭행하는 사건을 보도해 나에게 충격을 줬던 프로였는데, 어제 방영된 내용은 동생네 부부가 지적장애를 가진 64세의 형(방송에서 불렀던 대로 아래부터는 '김씨'로 통일)을 학대하고 폭행한 것에 관해서였다. 동네 주민들은 동생네 부부, 특히 동생 부인이 김씨의 집안 살림을 해 주는 등 장애를 가진 형을 보살펴 주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김씨에게 고물 주워오는 일을 강제로 시키고 매일 같이 그에게 폭행을 일삼고 있었다. 게다가 종이 박스같이 돈이 안되는 고물을 주워올 경우 폭력은 더 심해지고, 고철류 같이 돈이 되는 고물을 주워오도록 해 결국 그에게 절도를 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

 

그러나 (방송이 사용했던 언어를 빌려 말하자면) 김씨는 제보를 받고 그를 도우려 달려온 주위의 손길(방송국, 경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같은 전문가 집단)을 피하려 했다. 여기서 심리 치료 전문가가 등장해 그의 상태를 진단한다. 결국 경찰과 '전문가'가 동행한 채 카메라는 김씨의 집에 '급습'한다.

 

흡사 삼자대면이 벌어지는 상황. PD와 '전문가'는 번갈아가면서 김씨와 동생 부인에게 폭행사실을 추궁한다. 동생부인은 길길이 날뛰고, 김씨는 카메라를 외면하려 한다. 카메라는 집안 곳곳과 김씨, 동생 부인, 그리고 뒤늦게 찾아온 동생의 얼굴을 수시로 옮겨가며 이를 전파에 담아낸다. 그러는 동안 김씨는 초조함에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입고 있던 추리닝 바지를 만지작 거리고만 있는다.

 

방송은 당연하게도 동생 부부가 자행한 폭력의 잔인함과 비인간성을 드러내고 김씨의 노예와 같았던 삶에 대한 연민을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연민에 공감하고 김씨의 삶의 끔찍함에 경악하기 전에, 방송국 카메라가 향하는 시선들에 불편함을 먼저 느꼈다. 그런 불편함을 수시로 연발하다가 같이 TV를 보고 있던 엄마에게 심한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아마 엄마에게는 내가 동생 부부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불편함은 이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왜 동생과 동생 부인의 얼굴엔 모자이크 처리를 하면서 김씨의 얼굴은 있는 그대로, 머리에 난 상처의 세세한 부분까지 다 드러내는가? 또한 김씨에 대한 여러차례 대화시도가 실패하자 방송은 진상을 파악하겠다고 김씨의 집 가까이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다. 대체 이런 조치는 누구의 허락을 받고 하는 것인가? 방송은 심리 치료 전문가의 발언을 반복적으로 전달하지만, 김씨의 심리에 대해서는 조금의 고려도 없었던 듯 하다. 김씨 입장에서는 어디서 뭐 하던 놈인지 알 수 없는 PD가 다짜고짜 얼굴을 들이밀어 "도와주러 온 것이니 집에서 맞은 적이 있는지 말해보라"고 목청을 높인다. 내 생각엔 PD의 이런 행동은 김씨에게 동생 부인의 폭력보다 더 두렵게 느껴졌을 것 같다.

 

며칠 전에 읽었던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은 이런 상황, 즉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이 범람하고 있는 현실의 기만성과 가증스러움을 낱낱이 폭로한다.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저, 이재원 역, 이후, 2004)

 

매혹적인 육체가 외부의 공격을 받는 광경을 보여주는 모든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 포르노그라피이다. 그렇지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담은 이미지들도 매력적일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자동차 충돌 현장 옆을 지나칠 때 운전자들이 차의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부분 운전자들은 뭔가 소름끼칠 만큼 섬뜩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바람을 '병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 표현이 뭔가 보기 드문 일탈 행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끔찍한 광경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 현상은 영원히 계속될 내적인 고문의 원천이라고 할 만하다. ([타인의 고통], 144-145쪽) 

타인의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고통을 충격적인 사건 전개, 탐정과 같은 PD의 추적을 통해 '관람'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고통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이는 확실히 고통과 한참 먼 '수직적' 거리를 두고,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는 행위다. 혹여나 그 시선이 연민의 외피를 두르고 있다 한들, 그것은 무능력하기만 할 뿐이다. 그런 시선으론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개입도 불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고통을 해결하기 보다는 고통의 비극성을 증폭시킨다. 개인의 고통이 만인의 관람대상, 즉 포르노그라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이른바 '고통의 사회화'인가?

 

물론 김씨의 육체가 일반적인 의미로 손택이 말한 것처럼 '매혹적인 육체'는 아니다. 하지만 그의 육체가 매혹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방송국 카메라가 그를 향해 'Shot'(손택에 따르면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사람을 쏘는 총은 'Shot'이라는 용어가 갖는 두 가지 용법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동일한 성질을 갖는다고 말한다)을 날릴 수 있던 것이다. 윤금이씨가 미군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음부에 우산이 꽂힌채로 죽임을 당한 사진이 대중에게 여과없이 공개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육체가 매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팔루자에서 학살당한 이라크 어린이들이 팔다리가 잘리고 피를 흘리며 처량한 눈빛을 보이는 사진이 지구 반대편까지 전해질 수 있는 것도 그들이 '이라크 어린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백인이며 게다가 미국인이고, 상류계층에 속한 이었다면 이런 이미지들이 '살포'될 수 있었을까? 이런 이미지들은 폭력의 외부에 남아있는 우리(그런 폭력적 이미지를 '시청'할 여유와 권리를 가진 '시.청.자.들.')에게 폭력의 끔직함을 일깨워줘서 그런 폭력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다고 하지만, 이는 오로지 '우리'의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킬 따름이다.

 

방송에 따르면 다행히도 김씨는 동생 부부의 폭력에서 벗어나 재활원에 들어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불편하다. 문제의 원인이 오로지 '동생 부부'에게만 있을까? 그들과 격리시키면 일은 다 해결된 것인가? 오히려 카메라의 시선이 동생부부에게 책임을 몰아가는 동안 나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이 사건에 대한 면죄부를 받고, 이 사건과의 물리적 거리 뿐만 아니라 '책임감'의 거리 또한 확보한 것은 아닐까? 방송이 김씨의 생활을 그 속살까지 드러내 보인 것도 시청자들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씨는 우리('시청자들')에게 있어서 지극히 낯선 존재일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화려한 '스펙터클'로서 그의 삶을 편안하게 바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희생자들, 슬픔에 빠진 친지들,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 -- 이들은 모두 자기들 나름대로 전쟁과 어느 정도 덜어져 있거나 근접해 있다. 전쟁을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 어떤 재앙으로 부상을 입은 신체를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낯선 존재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피사체가 우리에게 더욱 더 친숙할수록, 사진작가는 훨씬 더 신중해지는 법이다. (98쪽)

장애를 가진 김씨와 같은 이들이 이렇게 '구경거리'로만 남게되면서, 이들의 타자화는 더욱 공공해 진다. 우리가 폭력에 노출된 그의 삶을 아무 불편한 없이 그저 '연민'만으로 보고 있다면, 이 화면을 전송해 준 전파를 통해 '나는 그런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고 안도감을 확인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방송이 끝날 때 쯤에 자막으로 나온 광고 한마디. "다방에서 감금된 적이 있거나 그런 사실을 알고 계신 분들의 제보를 받습니다." 손택이 제시하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겹쳐지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포위되어 있을 당시의 사라예보에서는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을 호통치는 사라예보 주민들의 고함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목에 두른 장비 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시체들 사진을 찍으려고 포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164쪽)

그리고 손택은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다.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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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뉴스가 소위 '전 세계'라는어법으로 말하는 세계는 -- 어느 라디오 네트워크는 한 시간에도 수차례씩 이렇게 읊조린다. "우리에게 22분만 할애하십시오. 우리가 당신에게 전 세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전 세계는커녕) 지리적으로나 관심 여부로나 아주 국한된 장소일 뿐이며, 뭔가 알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매우 짧고 굵게만 방송되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벌어진 전쟁들 중에서도 고작 몇 개만이 추려내질 뿐이니, 그처럼 선택된 전쟁들 속에서 [대중매체가] 모아놓은 고통을 의식한다고 한들 그것은 억지 의식일 뿐이다. 게다가 카메라에 찍힌 형태인 한, 그 의식은 금방 불타올랐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 뒤, 곧장 우리의 생각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복잡한 사유, 문헌, 어휘에 기대기 때문에 비교적 소수의 독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글로 씌여진 이야기와 대조적으로, 사진은 단 하나의 언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잠재적으로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41p)

 

 

 

 

텔레비전 카메라가 매일같이 보여준 최초의 전쟁, 즉 미국이 개시한 베트남전쟁 상시에는 머나먼 곳을 상세히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통해서 죽음과파괴의 모습이 가정의 코앞에까지 찾아들어 왔다. 그때 이래로, 발생할 때마다 곧바로 필름에 담겨지게 된 각종 전투와 대량 학살은 정기적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올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작은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극적인 사건들에 노출된 시청자들이 어떤 분쟁을 중요하다고 의식하도록 만들려면, 이제는 그 분쟁을 다룬 단편적인 필름들을 일상적으로 확산시키고 또 확산시켜야 될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들이 가져다 주는 충격을 통해서 전쟁을 이해한다. (43p)

 

 

 

 

[사진이] 실제적인 사회 문제를 손쉽게 추적 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합의가 새롭게 대세를 이루게 되자, 사진작가들의 생계와 독립성이라는 쟁점이 전면에 부각됐다. 그 결과, 카파와 그의 친구들 몇 명(칭과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도 이들 중 하나였다)은 1947년 파리에서 일종의 조합인 <매그넘 포토 에이전시>(이하 매그넘)를 설립했다. (곧 가장 영향력 있고 명망 높은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의 조합이 된) 매그넘이 직접적으로 표방했던 취지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사진 잡지들이 할당해준 일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한 채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진작가들을 대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취지였다. 이에 덧붙여, 종전 직후에 새롭게 창설된 각종 국제 조직이나 동업 조합의 창립 선언문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이었던 매그넘의 선언문은 윤리적인 부담이 가중되고 예전보다 확대된 포토저널리즘자각들의 사명을 명쾌하게 밝혀 놓았다. 전쟁의 시게에서든 평화의 시기에서든, 광신적 애국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난 채 공정한 목격자의 한 명으로서 자신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기록할 것. (59p)

 

 

 

 

 

초창기 전쟁 사진들 중 걸작이라고 칭송 받은 사진들이 대부분 연출된 것이었다거나 피사체에 손을 댄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암실이 딸린 마차를 타고 세바스토폴 근처의 첩첩이 층이 진 계곡에 도착했던 팬턴은 삼각대를 고정한 뒤 똑같은 위치에서 두 차례 촬영을 개시했다. 훗날 팬턴이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인 계곡"(그렇지만 제목과는 달리, 이곳은 영국의 경기병단이 숙명의 돌격을 감행한 바로 그곳이 아니었다)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는 저 유명한 사진의 첫 번째 판본에는 길가 왼쪽에 포탄들이 첩첩이 쌓여 있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사진(오늘날 늘 복제되는 사진)을 찍기 전에, 펜턴은 포탄들을 길가에 이리저리 흩어놓았다. 실제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활양한 장소를 찍은 사진, 즉 피사체에 손을 댄 흔적이 더 많은 베아토의시칸다바그 궁전 사진은 전쟁의 무서움을 최초로 묘사한 사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궁전이 공격을 당한 것은 1857년 11월이었다. 승승장구한 영국군과 영국에 충성을 바쳣던 일군의 인도인 부대가 이 궁전의 모든 방을 샅샅이 뒤져,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1천8백 명의 세포이 반란자들을 총검으로 굴복시키고 난 바로 직후였다. 이제 죄수가 된 이들의 주검은 궁전 안마당에 던져졌으며, 독수리들과 들개들이 뒷일을 처리했다. 1858년 3월이나 4월경 이곳의 사진을 찍었던 베아토는 사진 뒤쪽에 나외 있는 궁전 기둥에 몇몇 인도인들을 세워두고, 궁전 안마당에 인간의 뼈를 이리저리 뿌려둔 뒤, 폐허가 된 이것에서 마치 주검들이 수습되지 않았다는 듯이 짜 맞춰 놓았다. (84-5pp)

 

 

 

 

 

희생자들, 슬픔에 빠진 친지들,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 -- 이들은 모두 자기들 나름대로 전쟁과 어느 정도 덜어져 있거나 근접해 있다. 전쟁을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 어떤 재앙으로 부상을입은 신체를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낯선 존재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피사체가 우리에게 더욱 더 친숙할수록, 사진작가는 훨씬 더 신중해지는 법이다. (98p)

 

 

 

 

 

1991년의 걸프 전쟁 당시 미국의 정부 관료들이 촉진했던 것은 테크노 전쟁의 이미지였다. 죽어 가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미사일들과 포탄들이 날아가며 그려낸 섬광의 흔적으로 가득 찬 하늘,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적보다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미지였다. 미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을 NBC가 획득한 영상, 즉 미국의 이런 군사적 우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수 있는지 보여준 영상을 볼 수 없었다(그 때 당시 이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방영을 거부했다). 전쟁 막바지인 2월 27일, 호송선을 타거나 걸어서 쿠웨이트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도망치던 중 이라크의 바스라와 연결되어 있는 도로에서 네이팜탄, 방사능 무기(열화우라늄탄), 집속탄 같은 각종 폭발물의 융단 폭격을 받게 된 이라크 징집병들 수천 명의운명, 미국의 어느 정부관료가 '칠면조 사격'이라고 묘사한 바 있던 저 악랄한 살육의 장면을. 게다가 2001년 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한 대부분의 작전도 보도 사진작가들의 접근이 금지됐다.

 

전쟁이 점점 더 적을 추적하는 정밀한 광학 장치들로 수행되는 행위가 되어갈수록, 전선에서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카메라를 사용할수 있는 조건도 점점 더 엄격해졌다. 사진 없는 전쟁, 즉 1930년 에른스트 윙거가 관찰했듯이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위거는 이렇게 썼다.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매우 꼼꼼히 보존하려는 행위와 자신이 지닌 무기로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몇 초, 몇 미터 단위까지 추적해 그들을 섬멸하려는 행위는 모두 똑같은 사고방식에서 수행된다." (102-104pp)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 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식민지화된 아프리카는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의식 속에 (그곳의 육감적인 음악을 제외한다면) 주로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희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잊지 못할 사진들로 존재한다. (... ...)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잔악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 ...)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머나먼 아시아 국가에 살던 외래인들은 런던, 파리, 그밖에 유럽 수도들에서 개최된 인종 전시회에서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대중에게 공개되곤 했다. (109-112pp)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전시회와 책들을 뒤덮고 있는 그의 기교, 즉 독실한 신자 가족의 일원인 척하는 그의 스타일은 그가 찍은 사진들에 오히려 해가 됐다. 살가도의 사진들은 특히 그가생생하게 묘사해 놓은 비참함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상업적인 맥락 때문에도 심술궂은 대접을 받았다. 그렇지만 정작 문제는 그의 사진이 어떻게 어디에서 전시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닐, 사진 자체에 있다.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진들의 초점, 모든 것을 그들의 무능함으로 환원하는 그 초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들에 달려 있는 설명에 그가 찍은 무력한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피사체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인물 사진은 이와 정반대 형태의 사진을 무절제하게 탐닉하도록 만들어 왔던 유명인 숭배 풍종의 공범이 되어버린다. 간단히 말해서, 오직 유명인들만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을 그들의 직업, 인종, 곤경을 상징하는 일종의 본보기로 환원하는 셈이되는 것이다. 39개국에서 이주민들의 못브을 직은 살가도의 사진은 이런 단일한 방향 아래에서, 그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상이한 고난과 그 고난을 불러온 상이한 원인을 한데 뭉그러뜨려 버린다. (120-122pp)

 

 

 

 

 

 

1890년대와 1930년대 사이에 미국의 소도시들에서 린치를 당한 흑인 희생자의 사진들이 좋은 사례이다. 이 사진들은 지난 2000년 뉴욕의 한 미술관에서 그것을 본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계시 같은 경험을 던져줬다. 린치 장면을 담은 이 사진들은 인간의 사악함과 비인간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사진들을 보고 난다면 우리는 인종주의가 악을 어느 정도까지 풀어헤쳐 놓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악이 저지른 범죄의 한가운데에는 이런 범죄를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은 파렴치함이 존재한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일종의 기념품으로 간직하기 위해서 이 사진들을 찍었으며, 그 중 몇 장을 우편 엽서로 만들기도 했다. 상당수 사진들에는 이 장면을 보면서 히죽 웃고 있는 구경꾼들의 모습이 찍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선량한 사람들이 틀림없을 테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뒤 벌거벗긴 채로 나무에 목매달려 까맣게 타버린 린치의 희생자들을 배경으로 삼아 카메라 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이 전시됨으로써 우리도 이들과 똑같은 구경꾼이 되어버린 셈이다.

(... ...)

전시회가 끝난 직후 [성역 없이]라는 제목으로 이 전시회에 전시됐던 사진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위와 같은 질문들이 제기됐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듯 소름끼치는 사진을 전시할 필요가 있었는가 반문하며, 이런 전쇠가 흑인 희생자들의 이미지를 둘러싼 대중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부추기고 영속화하지 않을까, 혹은 사람들을 이런 의미지에 무뎌지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렇지만 이 사진들을 "꼼꼼히 검토해 볼"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사진을 보게된 시련을 달게 받을 때에야, 이와 같은 잔악 행위를 그저 '야만인들'의 행위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인종주의 같은 일종의 신념 체계, 즉 어떤 인종을 열등하다고 규정해 그 인종을 고문하고 살인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신념 체계가 반영된 행위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 ...)

만약 미국인들이라면, 원자폭탄의 화염에 타버린 희생자들이나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 중 네이팜탄에 맞아 육체가 갈가리 찢긴 민간인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려고 출타하는 행위를 병적인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린치를 당한 흑인들의 사진을 보는 행위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138-142pp)

 

 

 

 

 

 

매혹적인 육체가 외부의 공격을 받는 광경을 보여주는 모든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 포르노그라피이다. 그렇지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담은 이미지들도 매력적일 수 있다. 고속도레엇 발생한 끔찍하기 이럴 데 없는 자동차 충돌 현장 옆을 지나칠 때 운전자들이 차의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부분 운전자들은 뭔가 소름끼칠 만큼 섬뜩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바람을 '병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 표현이 뭔가 보기 드문 일탈 행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끔찍한 광경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 현상은 영원히 계속될 내적인 고문의 원천이라고 할 만하다. (144-145pp)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텔레비전 화면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여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비록 우리가 권력과 맺고 있는 실제 관계를 또 한번 신비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154p)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 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162-163pp)

 

 

 

 

 

 

포위되어 있을 당시의 사라예보에서는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을 호통치는 사라예보 주민들의 고함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목에 두른 장비 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시체들 사진을 찍으려고 포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 ...)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재현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뭔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1994년 초, 포위 상태에 놓여 있던 사라예보에서 일 년 이상 거주해 왔던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어느 미술관을 빌려 자신이 찍어 왔던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 당시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던 자신들의 도시를 찍은 새로운 사진을 간절히 보고싶어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들이 포함된 데에 적잖이 언짢아했다. 로우는 소말리아의 사진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전문 사진작가이며, 그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느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사라예보 주민들로서도 언짢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행위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 (어느 지옥이 더 나쁜가?)이었다. (164-166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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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유혹, 가장 현실적인 드라마.

무슨 개소리냐구?

 

아, 나도 아내의 유혹이 막장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시청자들을 우롱한다고 느끼며 매일 저녁 분노를 표하고 있지만,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오늘 발견하고야 말았다.

 

뭐냐구?

 

이 드라마는 엄청 끔찍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

남편이 부인을 바다에 빠뜨려 죽이려 하고,

사기쳐서 건설회사를 빼앗으려고 하고,

뭐 기타 등등....

 

극악무도한 사건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이 많은 사건들을 해결하는데, '경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신애리가 만취한 민소희를 한강변에 냅다 버리고 온 사실을

구은재, 민회장, 민건우 등이 알았을 때,

경찰이 한 일이라곤 고작 이들에게 민소희가 한경변에서 머리를 크게 다친 채로 발견됬다는

사실을 알린 것 뿐이다!!

 

그리고 범인을 잡기 위해 뛰어다니는 것은 오로지!!!

자기들이 직접한다!!!

이들의 감정상태는 가희 원초적이다.

민소희 주머니에서 정교빈 명함이 나오자 꼭지가 돌아버린 민건우는

정교빈에게 냅다 달려가서 멱살잡이를 한다.

(실제로 정교빈은 그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증거라고는 예전에 천지건설 사장일때의 명함이 발견됐다는 것 뿐인데도!!!)

 

구은재가 바다에서 죽지않고 살아났을 때도 경찰에 바로 신고하지 않고

복수하겠다며 제2의 인생을 산 것도 그렇다.

 

이것만으로는 이들이 경찰을 신뢰하지 못해서 직접 행동에 나선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떤 순간에도 경찰은 처음에 수사하는 척만 하다가 어느순간 사라져버리는

기가막히게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존재들이다.

 

푸코의 말대로 근대 권력이 국민을 '살게 만들고 죽게 놔두는' 것이라 했을 때,

이 놈의 경찰들은 죽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쓰고 오로지 가족들에게 정보전달자 역할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한다!!!!

 

아, 뭐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드라마가 다 있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덧붙임1) 더 생각해 볼 점 하나.

 

가만 보면 이 드라마, 정상적으로 사는 인간이 없다.

대사만 봐도 거의 2/3 이상이 악다구니다.

신애리만 그런게 아니라, 민소희, 구은재, 정교빈, 민건우, 민회장.... 할 것 없이 다 소리지르고 집어던지면서 "복수할꺼야"를 외친다.

 

하지만, 단 한사람만이 '복수'를 말하지 않고 '인생'을 즐기며 산다.

누구냐고?

바로 얼마전 구강재(구은재 오빠)와 결혼한, 극중에서는 정신연령이 심히 딸리는 장애(이걸 장애라고 부를 수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를 가진 것으로 나오는 정하늘(오영실 분)이다.

 

그녀는 가족들이 복수심을 품고 있는 어떤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은재, 그리고 은재 오빠 구강재를 열열히 사랑할 뿐이다.

그리고 가끔 교빈이 아들 민호랑 장난감 놀이하면서 논다.

요새는 강재식구들과 떡볶이 장사도 한다.

 

그래서...

결국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악다구니 쓰지 않고 정상적인 감정상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정하늘 뿐이라는 거다. 그 사람이 장애를 가지고 있든 아니든 간에. 오히려 그녀가 정신연령이 낮기 때문에 미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지도 모르지...

 

 

 

덧붙임2) 더 생각해 볼 점 둘

 

이 드라마에서 가장 '쎈' 캐릭터는 뭐니뭐니해도 신애리다.

모든 사건은 신애리에서부터 시작해서 신애리로 끝난다.

따지고 보면 이 드라마 인기의 최대 수혜자는 장서희가 아니라 김서형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신애리의 악다구니의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극이 결말로 치달아가면서 정신나간 정교빈은 다시 은재를 자기 마누라 삼겠다고 설쳐대면서 애리를 떨쳐내려고 하고, 시어머니도 그녀를 빨리 나가주기만을 고대하는데도, 신애리 꿈쩍도 않는다. 오히려 아주 강한 귀소본능을 보인다. "난 누가 뭐래도 천지건설 며느리야!"

 

이야~ 시어머니, 시아버지의 며느리도 아니고, 천지건설 며느리랜다.

자본의 인격화된 숭상화!!! 님 좀 짱인듯!!!

그래서 본인은 바라지도 않는데, 정교빈은 다시 천지건설 사장 자리에 앉혀 놓고야 말겠단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며느리 자리로 돌아가고... 그게 원래 자기 자리라는 거다.

 

근데 이상하다.

신애리는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세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자기 싫다는 집에 며느리로 굳이 남겠다고 바득바득 버팅기는 걸까?

 

이유는 단 하나, '민호' 때문이다.

그녀는 민호를 아빠 없는, 또는 엄마 없는 자식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게다가 민호만 함께 있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적이 되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쩌면 민호가 이 드라마의 결말을 좌지우지하는

최종적인 지배자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이 드라마는 '민호'라는 상징으로 대표되는 정상적, 그리고 부르주아적 가족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신애리의 욕망이 극한에 치달으면서 주변인물들과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그린, 아주 지극히 현실적이고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막장' 드라마라고 부를 만큼 거부하고 싶은 현실을 그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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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당원 모임을 시작하며....

다시 학생운동을 고민한다

- 대전시당 학생당원 모임을 시작하며

 

 

 

 

1. 우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나를 법적인 '성인'으로 인정해 준 그 순간부터 유기체적 사회관념을 가지신 높으신 분들의 눈으로 보기에 이 사회의 암세포 같은 일들만 골라 해왔다. 주로 복무해 온 분야는 '학생운동'. 작년 이맘때쯤부터 암세포의 세포분열이 난관에 부닥치자 암세포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2. 나는 왜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얼마 전 사무처장님의 제안으로 학생당원모임의 초동주체를 하겠단 결심을 했다. 이 모임이 그냥 학생'모임'인지, 학생'운동'모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정당에서 20대 학생당원들이 모여서 뭔가를 하겠다는 모임이라 했을 때, 그 모임의 모습이 (내가 해 왔던 암세포질과 반대되는) 정상세포의 활동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그간 내가 해 왔던 고민이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 즉 나는 여기서 학생당원모임이 학생운동을 하는 모임이라 했을 때, 그것이 가져야 할 올바른 방향성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3. '88만원세대'의 소심한 변명

 

 

작년 촛불집회 이후 전 사회적으로 세대담론이 폭발했다. 주된 화두는 역시나 '촛불소녀'로 대표되는 10대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었지만, 이에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얘기는 항상 "동생들이 저렇게 고생하는데 20대 대학생은 대체 뭐하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여론은 "몇날 며칠을 토익책을 끼고 도서관에서 씨름해야 하는 88만원세대들에겐 너무 버거운 일"이라는 소심한 항변으로 맞섰다. 즉 취업을 비롯한 경제적인 문제가 대학생들을 옥죄고 있기에 너무 힘들다는 것.

그러나 이런 변명을 '이해' 할 수는 있으나, 100% '동의'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88만원세대를 386세대와 비교 하면서, 386세대의 대학생활은 졸업이후 안정적인 취업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경제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운동에 뛰어들 수 있는 '여력'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보다 80년대의 경제적 상황이 비교적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근거에서인가? 게다가 따지고보면 386세대라고 말하는 집단은 사실 그 시절 20대 전체라기 보다는 일부 엘리트 대학 재학생을 지칭하는 것인 반면, 88만원 세대는 20대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는 작금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20대 전체라고 볼 수 있다. 흔히들 '3저호황'같은 말로 80년대의 경제적 상황을 특징짓지만, 이것도 80년대 말에 가서 나타난 특징일 뿐이고, 오히려 80년대는 79년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사실상 한국에서 최초의 신자유주의 개혁이라 할 수 있는) 경제안정화종합시책의 자기장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피해는 오롯이 (최근의 88만원 여성에 비견되는) 여성 노동자 등 하위계층들이 짊어졌고, (그 명칭 자체에서도 대학입학년도가 들어가 있는) 386세대는 이런 위기비용 전가를 피해간 극소수에 해당할 뿐이다.

따라서 두 집단의 단순비교는 불가능하다. 분석의 대상은 <386세대 vs 88만원세대>가 아니라 <80년대 20대 vs 2000년대 20대>로 대체되어야 한다. 분석의 대상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질문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과 다를 바 없이 경제적인 불평등과 억압이 존재했던 20년 전에는 사회변화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게다가 '학생운동'의 주축이 될 수 있는 '학생'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지금, 학생운동이 이렇게 왜소한 이유가 무엇인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먹고 살기 힘들기는 386세대를 뺀 나머지 80년대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경쟁을 강요하는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 때는 경쟁 이데올로기보다 더 무시무시한 반공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이러한 모든 통속적인 설명은 항상 2%, 아니 20%는 부족하기 마련이다. 나는 이 비어있는 20%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4. 2000년대의 대학사회와 학생운동의 역사적 기원

 

 

내가 통속적인 설명이라고 부른 것들은 대부분 사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경제적 상황, 사회적 분위기 등등. 그러나 여기서 빠진 20%는 바로 대학과 대학사회 그 자체, 또는 더욱 구체적으로 학생운동 그 자체의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 변화의 출발점은 당연히 80년대이다. 2000년대 대학 현실에 대한 원인을 80년대에서 찾는다고? 오해는 금물, 뭐 내가 족보를 따지고 올라가서 학생운동사의 명인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역사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나는 학생운동이 전체운동의 기능적인 일부분, 즉 시스템 전체에서 하나의 부품으로서가 아니라 전체의 운영원리에 귀속받으면서도 능동적으로 그 시스템에 역반응하는 독립적인 체계라고 했을 때, 그것이 대학과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변화시키려 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금 대학의 현실은 정확히 90년대 학생운동의 부정적 성과물, 그 자기장 안에 머물러 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소멸했지만, 그 부정적 효과는 여전히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고, 그것이 지금의 학생사회를 질식하고 있는 한 축이다. 이를 굳이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반지성주의'라고 할 수 있다.

 

 

 

1) 또 다른 지식의 세계를 만들어 낸 80년대

 

 

한국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을 배제하고 생각해 본다면 대학이라는 공간은 이념형적으로나마 '지식'의 세계를 통해 민주주의를 약속하는 공간이다. 지식의 광대한 세계에 접근함을 통해 시민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서 존엄성을 인정받겠다는 것은 체계가 약속하는 유토피아를 실제로 획득하겠다는 각 개인들의 의지가 실현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속의 대학은 그러한 약속을 수시로 배반하는 공간이다. 오히려 지식의 위상을 그것을 차지하여 계층상승 욕구를 실현하려는 것으로 추락시킨다. 이러한 약속과 배반의 순환은 프랑스 혁명이 약속했던 보편적 시민권의 약속이 역사속에서 지배층에 의해 끊임없이 배반당했던 순환과 정확히 맞물린다.

대학에서 '생산'되어 사회로 '유통'되는 지식이 보편적 시민권이 부정되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대학생은 지식의 보편성, 지식의 진리성에 대해 의심하게 된다. 그 끊임없는 의심의 결과, 그들은 대학 그리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지식의 세계 외부에 또 다른 지식의 세계를 만들고자 노력한다. 우리의 80년대가 바로 그랬다. 광주항쟁은 모든 대학생들에게 그들이 배우는 지식이 학살당하는 민중들의 현실을 조금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고, 그래서 그들은 다른 지식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그 다른 지식의 세계의 중심에 바로 맑스-레닌주의가 있었고, 그들은 맑스-레닌주의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바꿔 나가려 했다.1)

다른 지식들은 교수가 강단에서 지휘하는 강의실에서가 아니라 학회와 써클을 통해 유통되었다. 학회가 1,2학년 학생들의 적극적인 '의식화의 장'이었다면, 써클은 3,4학년들이 또 다른 지식세계를 대중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이런 움직임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이 바로 '위장취업', 즉 학출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다.

80년대의 이런 활동구조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존재한다. 교조적인 이론체계의 답습, 폐쇄적인 조직문화,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는 인텔리적 습성 등등. 그러나 이런 비판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 하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실은, 이들의 실천이 '국가공인 지식공장'인 대학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그 지식생산에 균열을 내고자 했으며 그들 스스로 만들어냈던 독자적인 지식체계를 대중들에게 돌려주면서 민중의 힘으로 사회를 변혁 할 수 있다는 맹아적 가능성을 발굴해 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들을 지탱했던 이론과 이념의 힘이다.

 

 

"저기 노동자들은 목숨을 걸고 단식하며 싸우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매일 쌀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해" (SBS드라마 <모래시계>중에서 동일방직 노동자 투쟁을 보고 흐느끼는 한 여대생의 대사)

 

 

"현장에 가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고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를 태우는 일이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정리하는 것처럼 했지만, 사실 내용은 과거의 나와 결별하는 것이었다." (김원, "잊혀진 이름, 학출노동자" 중의 인터뷰 내용 발췌, <고대문화> 08년 10월호)

 

 

마음껏 쌀을 먹을 수 있다는 자신의 존재근거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결국엔 자신의 과거와 결별하고 노동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는게 개인의 순수한 마음으로 가능한 일일까? 게다가 통계로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많은 대학생들이 집단적으로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이 말이다.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준, 그들 스스로 만든 이론과 이념의 힘이 아니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2) 90년대 운동의 몰락, 이념의 과소결정

 

 

그렇게 뜨거웠던 열기가 왜 이렇게 쉽게 냉각되어 버린 것일까? 집회와 투쟁, 자유, 행복, 정치적 충만감의 경험, 슬로건과 노래, 말의 격류 ― 누구의 말대로 ‘혁명의 마법’에 취해 있었던 이들은 왜 그렇게 빨리 마법에서 깨어났던 것일까? 이제 다시는 그 ‘광기’(狂氣)의 시대는 오지 않을 거라는 자기부정은 그들 세대를 넘어 지금의 88만원세대들에게 까지 이어져 지금의 세대에게 그런 상상의 기회조차도 거세시키고 말았다.

자기부정은 80년대 말 90년대 초 부터 시작되었다. 흔히들 사회주의권의 붕괴, 91년 투쟁 패배, 3당합당을 통한 보수 대연합 등의 이유를 들지만, 이런 것들도 다 외인론일 뿐이다. 그런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어쩌면 그렇게 쉽게 무너져 내렸단 말인가? 그것을 가능케 했던 내적인 이유가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86-87년을 경과하면서 운동진영은 5공과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래서 규모있는 대중동원이 가능한 학생운동의 힘에 많이 의존했다. 그래서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학생운동은 필연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86년 NL노선이 대두하여 학생운동의 주류로 성장한 것을 한국 학생운동이 왜곡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보는 견해는 옳지 않다. 학생회 중심 운동이 먼저 제기되고, 사후적으로 NL의 대중노선, 사람중심 사상이 이에 적합한 운동론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의 사상 자체라기 보다는 그것이 실제로 작동해온 과정에 있다. 그 전까지 학회활동을 하던 학생들은 2학년이 되자마자 각급 학생회의 활동가들로 충원되고, 이들은 자기조직의 이데올로기에 맞춰 조합조직으로서 학생회의 임무와 정치투쟁체로서의 학생회의 임무를 동시에 책임지게 된다. 기존의 ‘학회-써클’이라는 지적공동체가 ‘학회-학생회’라는 틀로 대체되자 그들 스스로 생산해 낸 급진이념은 조직이데올로기 차원으로 제한된다. 학생회 간부가 된 활동가는 학생회의 조직 이데올로기에 충실히 봉사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념 자체의 역동성은 감소하게 된다.2)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3, 4학년 때 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면서 나는 90년대 초반 선배들이 만들었던 선거 자료집, 팜플렛까지 다 뒤져보곤 했다. 그 속에서 그려진 선배들의 활동 모습은 나에겐 거의 로망이었다. 첫 페이지부터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재패전략’을 비판하고, 중간쯤 가면 타 선본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생의 정치활동이구나! ‘학우들이 무서워서’ 그런 말을 쓰는걸 두려워 했던 나를 포함한 당시 나의 동료들에게 그런 자료집을 보는 것은 매우 설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또 기억한다. 대략 50페이지 안팎 되는 자료집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씨뻘갰던 정치색은 조금씩 옅어지고, 등록금 투쟁, 매점과 식당 개선, 강의평가제 개선 등 학우들의 구미를 당길 공약들이 보물상자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것을. 그 때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세계 재패전략’을 비판하는 것과 식당 밥 개선하는 것과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요런 자료집을 맨날 끼고 앉아있던 나는 4학년때 치룬 선거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가려진 성균관의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자’는 멋들어진 총기조를 뽑아놓고는(그래서 선본이름이 'Zoom In'이었다) ‘셔틀버스 무료화’라는 강력한 복지공약을 전면에 내거는 코메디를 연출했다. 이러한 지적 교조성과 정서적 대중성의 묘한 공존은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지만, 물과 기름처럼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중 중심 사상이 불러온 기이한 역설인데, 사실 이는 대중의 지식인화가 아니라 지식인-대중의 분담 관계를 전제한 뒤 그 안에서 둘의 유대를 추구한 NL 주류 사상의 심층의 문제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를 비판한 좌파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들은 NL에 비해 학생회 상층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세력재편 구상의 중심을 두었기 때문이다.3)

결국 문제는 학생회라는 자조직의 재생산을 중시하는 체계가 ‘학회-써클’이라는 지식공동체를 질식시키면서, 대항 지식인 주체 형성이 중단되고 대학내에 반지성주의의 토양이 확산되었다는 데 있다. 혹자는 80년대 이후 학생운동이 대중과 제대로 융합하지 못하고 쇠퇴한 데에는 과도한 이념에 대한 집착, 즉 이념의 과잉이 문제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념의 과소화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는 자조직의 이념에 집착해 그것을 확대재생산한 듯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이념 그 자체가 아니라 이념의 잉여적 결과물인 대학생 하위문화에 대한 집착이었다.4) 9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대학생 하위문화인 신세대 문화를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5)이 나온 것도 90년대 학생운동의 이념의 과소화에 따른 변종일 뿐이다. 나는 그래서 ‘이념의 시대’가 종결되었다고 선언된지도 이제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고리타분하게 다시 ‘이념’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참이다.

 

 

 

3) 2000년대, 반지성주의 그리고 대중의 역습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나는 1학년때 같이 하숙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조롱을 받으면서도 학생운동을 부여잡고 6년을 버텼다. 그래서 이 시절의 운동이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고 가슴아픈 기억이지만, 최대한 냉정하게 이 시절을 평가하려 한다.

自繩自縛. 2000년대 학생운동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난 망설임 없이 이 단어를 선택하겠다. 2000년대는 90년대가 만들어놓은 반지성주의라는 척박한 토양을 걷어내지 못하고 학생회라는 비료와 화학약품에 의지해 연명하다가 수시로 ‘대중의 역습’을 받은 시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억나는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에선 거의 악몽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인 ‘00년도 사태’. 2000년에 당선된 총학생회가 등록금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한 달 가까이 대학 본관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총학생회는 여기서 학교 당국의 학생회와 비판적 성향의 교수에 대한 시찰문서를 발견하고 폭로한다. 이에 학교 당국은 점거사태가 계속되면 삼성재단이 대학에서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재단 철수에 반대하는 일부 학생들은 ASA(Anti Student Association)를 결성하여 총학생회를 비판하기 시작했고, 총학생회가 삼성재단 퇴진을 주장한다는 거짓선전을 하기에 이른다. 이에 학우들 여론이 뒤숭숭해지고, ASA의 총학생회 퇴진 서명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터진 총학생회 사무국장의 공금횡령사건. 결국 이 사건 이후 성균관대에선 총학생회에 운동권이 영영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입장은 대체로 둘로 나뉜다. 하나는 운동권 총학생회의 극렬 투쟁방식이 문제라는 입장, 그리고 다른 하나는 ASA라는 조직은 학교에서 사주한 어용단체라는 입장. 나는 두 입장에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의 원인은 이미 학생운동 내부에서 싹트고 있었다. “청년좌파여, 일어나라”라고 외치는 선본 자료집에서 쌩뚱맞게 식당 개선 공약이 튀어나올때 부터 말이다. 부실한 이념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조야한 대중성으로 대중을 현혹하여 수권한 세력(이건 어떤 특정 정파를 일컫는 것이라기보다는 당시 운동세력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이 결국 대중과의 약속을 기만했을 때, 대중의 역습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가능성이 부정된 상황에서 여전히 그 ‘낡은’(즉 대중의 사상이 되지 못하고 그들만의 조직 이데올로기로밖에 기능하지 못하는) 사상에 기대어 학생회를 통해 자조직을 재생산하려는 세력에게 신뢰를 보내줄 대중은 어디에도 없었다. 맑스-레닌주의가 퇴각하고 생긴 일시적인 이념의 진공상태 이후 온갖 다양한 포스트주의 담론들이 자본주의 상품화와 기묘한 동맹관계를 형성해 대중의 의식을 지배해가기 시작했고, 대통령도 선거로 갈아버릴 수 있게 된 마당에 한 학교의 총학생회쯤을 권력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이념이 깨끗이 청소된 이후에 남은 것은 모든 종류의 저항적 정치행위에 대한 거부와 악무한적 비난 뿐이었다. 그렇게 학생사회는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또 하나는 버스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고려대학교의 05년 이건희 철학박사 학위 수여 반대 시위. 이 사건은 당시 워낙 언론을 많이 타서 유명한 것이긴 하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05년 5월 2일, 그러니까 노동절 집회가 끝나고 바로 다음날 고려대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식을 진행하려 하고, 이에 반대한 운동권 학생들이 행사장 정문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인다. “노동탄압에 앞장 선 이건희가 무슨 철학박사 학위냐?” 시위는 정당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니 그 반응은 차가워서 더 뜨거웠다. “너희들 때문에 삼성 취직 못하면 책임질래?”, “운동권이 학교 이미지 다 깎아먹는다.”는 내용이 인터넷 게시판을 달궜고, 운동권 학생들은 당황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시위 참가 진영 중 일부는 “학우들과 소통이 미흡했던 점 사과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고, 이 성명 때문에 참가자들 내부에서 몇 달에 걸친 게시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이 때 당시 우리를 괴롭혔던 가장 큰 문제는 삼성 당국과 보수언론의 역공이 아니라 대중들의 역습이었다. 대중들에게 사과성명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노동탄압의 전도사에게 철학박사학위는 안된다는 상식적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독한 반지성주의. 자신의 취업과 스펙쌓기에 방해되는 어떤 이념도 용서할 수 없다는 무(無)이념, 아니 반(反)이념의 이데올로기. 그렇다고 우리가 대중들의 그런 반(反)이념 공세에 어떤 분명한 이념으로 맞선 것도 아니었다. 철저한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는 이념의 해체를 요구받았다.

 

 

 

4) 기이한 출현, 촛불집회

 

 

이렇게 정치와 이념 전반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가는 동안, ‘새로운 민주주의’라 불리는 것들이 출현했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추모 촛불집회부터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까지, 역사는 2000년대를 촛불의 시대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작년 광우병 촛불은 쟁점이 끝없이 확장되어 대운하, 민영화, 교육 문제까지 뻗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 또한 촛불의 민주주의를 한껏 기대하게 되었다. 정치는 혐오받는데 민주주의는 칭송되는 기이한 현상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글이 촛불집회의 성격과 전망을 논하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말하자면, 정치에 대한 혐오와 촛불의 민주주의에 대한 칭송은 모순되는 것이 아니었다. 촛불은 끊임없이 자신을 정치와는 거리를 둔 순수성의 영역에 안주시키려 했고, 그것은 ‘촛불소녀’라는 캐릭터의 이미지, 유모차 부대 등 여성적 이미지를 통해 재현되었다. 여성의 정치적 진보를 표현하는 듯이 보였던 촛불 속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촛불의 비정치성, 순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던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6)

나는 물론 ‘촛불’이 ‘횃불’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촛불이 꺼진 지금 촛불이 비추지 못한 ‘우리 안의 타자’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이들에게까지 빛을 비추기 위해 더 많은 촛대와 연료를 모아올 고민을 할 ‘정치’와 ‘이념’의 문제를 우리 앞에 다시 불러오는 문제가 여전히 그리고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5. 학생운동,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그래서 학생모임이 될지 아니면 그저 ‘청년학생사업’만 하다가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모임에 대해서 내가 너무 잔소리가 많았던 것 같다. 운동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나와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기에 이 글이 마치 나 개인의 일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경제위기에 청년들이 모여서 뭔가 해보겠다고 모였으면 무라도 자를 칼 정도는 갈아야 구색이 맞지 않겠나? 사업의 세부적인 아이디어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중요한 논의는 이런게 아닌가 싶어서 괜한 종이와 잉크 낭비를 해 봤다.

앞에서도 길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세계적 경제위기라는 초유의 사태에 적합한 정치이념을 다시 사유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고루한 이념’은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시켜야 하는 것이다. 학생회 중심주의라는 왜곡된 질서가 질식시켜버린 대항 지식인 주체 형성이라는 학생사회 고유의 기능을 다시금 확인하고 이를 중심으로 다시 ‘운동’을 재개해야 한다. 나는 이를 편의주의적인 방식으로 사고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를테면 대학생이라고 그들이 당면한 문제에 초점을 맞춰 등록금 투쟁이나 심지어 학자금 무이자 대출운동에 집중하자는 주장은 학생운동을 ‘중산층 운동’화 할 뿐이라고 본다.7) 학생운동은 당연히도 지식의 세계의 체계적 배반에 맞서 전후방 가릴 것 없이 억압받는 민중을 대변하는 역할을 다 해야 한다. 나는 이를 위해 필요한 이념의 무기가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그리고 생태주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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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최근에 알게 되어 깜짝 놀란 사실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이 토익이네 토플이네, 거기다가 JPT네 하면서 외국어 공부에 열을 올린다고 하지만, 사실 7-80년대 대학생들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외국어 공부의 목적이다. 요즘엔 취업 또는 심지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자막 없이 보기 위해서 외국어 공부를 한다하지만, 옛날에는 일본어 등으로 된 자본론을 읽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했단다. 아, 너무 수준차이 나지 않나?

 

2) 장석준, 「필요한 것은 운동이다 : 90년대 학생운동의 비판적 회고와 전망」,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中, 이후, 1998

 

3) 장석준, 같은 글

 

4) 김원,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이후, 1999

 

5) 이동연 외,『대학문화의 생성과 탈주-새로운 대학문화운동론을 제안한다』, 문화과학사, 1998

6) 이상길, 「순수성의 모랄 - 촛불시위에 나타난 ‘오염’에 관한 단상」, 『당신은 왜 촛불을 끄셨나요』中, 산책자, 2009

7) 이런 운동에 메몰되면서 어떻게 임금투쟁에만 메몰되어 조합주의화 되는 민주노총을 비판하고 혁신시킬 수 있겠는가? 특히나 그것을 자기 과제라 안고 있는 진보신당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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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강령 전문(前文) 예찬!!

 

 

 

 

 

 

 

 

 

1. 참된 자유와 만남이 실현된 나라를향해 현실 국가를 끊임없이 지양하는 활동이 정치이다.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형성할 때, 나는 자유이다. 하지만 나는 오직 너와 만나 우리가 될 때에만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삶의 진리는 만남이요, 자유는 본질에서 사회적이다. 나의 자유는 그 만남의 공동체가 확장되는 만큼 넓어지고, 그 만남의 온전함만큼만 오전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로운 삶을 위해, 너와 내가 평등하게 만나 서로 주체로서 우리가 되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 바로 정치이다.

사람들의 수많은 만남이 정해진 범위와 형식 속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룬 것인 나라이다. 그리고 나라가 역사 속에서 사회적 실체로서 실현된 것이 국가이다. 이처럼 국가는 나라의 현상인 한에서 언제나 불완전하고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존하는 국가는 참된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부정되고 지양되어야 한다.

국가는 그 형식에서 모든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모든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 실질에서, 국가는 모든 시민을 위한 사회공화국으로서 평등과 평화, 공공성과 사회연대에 기반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는 만남의 최종적 전체가 아니므로, 더 큰 전체인 인류공동체를 향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과의 참된 만남을 위해 생명의 터전인 자연에 대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

 

 

 

2. 오직 자본주의를 극복함으로써만 인간의 참된 자유와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가능하다.

 

우리가 나의 자유를 너와의 만남에서 찾지 못할 때, 자유의 주체는 고립된 개인이 되고 객체는 사물이 되며, 둘의 관계는 강제와 폭력이 된다. 사람이 그렇게 홀로 자유의 주체가 되려 할 때, 다른 이를 평등한 주체가 아니라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사물의 욕망에 눈멀어 남을 도구화하는 자는 결국 자기도 사물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 아래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본의 노예이다. 자본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노동자는 오직 노동력을 파는 것 외에 다른 생존수단이 없는 사회에서노동은 자본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 끊임ㅇ벗는 이윤추구를 통해 자기증식을 추구하는 자본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상품화하고, 자연조차 수탈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 ...)

우리는 이 위기를 오직 자본의 지배 자체를 극복함으로써만 해결할 수 있다. 인류가 이 문제를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개척 또는 군사력으로 해결하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앞에기다리는 것은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전쟁과 죽음밖에 없다.

 

 

 

3. 사회연대와 공공성 대신 경쟁의 원리만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는 지옥이다.

 

시대의 위기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가 대응할 때 극복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유된 이상에 따라 사회공화국을 형성하는 것 자체가 미완의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혈연적 유대를 지양하고 보편적 이념에 따라 자유로이 결속할 수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족보는 신성시되어도, 아무런 공동의 이상도 없는 이 땅에서 국가는 모두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특정 집단에 의해도구적으로 장악된 권력기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날 식민통치와 남북분단 그리고 전쟁의 비극이 모두 그런 공화국을 건설하지 못한 것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국가는 자본증식의 도구가 되고, 권력은 독재로 기울며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은 억압된다. 그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민중을국가가 적으로 삼아 공격할 때 나라는 내부적 전쟁 상태에 떨어지고, 민중의지지 대신 외세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려 할 때 나라는 외부적 식민 상태로 전락한다.

연대와 공공성의 원리는 사라지고 경쟁 원리만이 지배하는 곳에서 사회는 양극화되고, 약자는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며, 소수자는 박해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 도처에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빈민들은 생존의 곤간에서 쫓겨나며,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다. 만남과 형성의 기쁨 대신 낙오의 공포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민중은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무한 경쟁의 지옥에서 자본의 먹이로 전락한다. 

 

 

 

5. 우리는 한국 역사 속에 이어져온 항쟁의 전통 위에 국가 전체를 다시 세워야 한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민중은 왕조시대부터 식민지 시대를 거쳐 독재 시대를 살아오면서 치열한 항쟁을 통해 자기를 억압과 차별에서 해방시켜왔다. 동학농민전쟁과 3.1운동은 물론 해방 공간에서 통일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각지에서 일어난 민중들의 투쟁 그리고 4.19혁명과 부마항쟁, 5.18 광주항쟁 및 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2008년 촛불항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근현대사는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고 안으로는 국가폭력에 맞서 줄기차게 싸워온 역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독재의 사슬을 끊어내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왔으며,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임을 안팎에 증명했다.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노동자, 농민운동 그리고 기층 민중운동은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공공성을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여러 시민운동 및 소수자운동은 인권의 지평을 넓히고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을불러일으켰으며 문화적 다양성을 북돋웠다.

그러나 6월항쟁 이래 한 시대가 지난 지금, 그 모든 진보적 성과가 자본의 폭력 앞에서 전면적으로 사라져버릴 위험에 처해 있다. 민중의 피맺힌 항쟁으로 얻어낸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자본의 통제받지 않는 착취의 자유로 전도되었다. 고삐 풀린 자본은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언론, 교육, 문화예술 가릴 것 없이 온 사회를 총체적으로 장악하여 국가를 한갓 수탈기구로 만들었다. 인간을 착취와 억압에서 구하고 생명과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새로 세우는 것이 절박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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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코드 훔치기> 중에서...

이 책은 아버지가 고물상에 팔려고 여기저기서 주어온 신문지, 중고생 참고서 더미 속에서 발견한 것. 왠지 사회과학책 처럼 생겼길래 일단 챙겨 놨는데, 나름 소득이 있었다. 사실 난 고종석이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완전 이 사람을 박노자, 진중권, 유시민과 동급의 '논객'으로 쳐 주더라. 사상적으로야 뭐 나랑 크게 겹치는 부분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다음 문장은 쫌 와 닿는다. 그간 내가 생각해 오던 '정치의 스포츠화'라는 명제와도 상통하는 듯. ㅋㅋㅋㅋ

 

 

그리고 기타 등등 여러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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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권력의 중요한 거처는 언론 매체 특히 텔레비전이라고 할수 있다. '매개학(Mediologie)'이라는 학문의 창시자인 레지스 드브레(Regis Debray)는 <유혹하는 국가>에서 기술 혀겸ㅇ이 권력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더듬는다. 드브레는 기술과 권력을 짝지으면서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언어권'의 시대 도는 구전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다. 그 다음은 인쇄술의 보급과 함께 시작된 '문자권'의 시대다. 마지막은 사진술의 등장과 함께 시작돼 텔레비전과 인공위성의 등장 이후 전성기를 맞고 있는 '비디오권'의 시대다.

언어권의 시대는 마술사-주권자의 시대, 선지자의 시대다. 곧 신권(神權)의 시대다. 근세 초기에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신권과 '말씀'의 자리는 이성이 물려 받았고, 설교의 공간은 공교육이 차지했다. 문자권의 시대는 인쇄술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논쟁을 유행시키고 공교육을 보편화했다. 그런데 이제 세계는 이 문자권과 본질적으로 다른 비디오권으로 진입했다. 문자권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본질적으로 상징의 수준에서 이뤄졌다. 태양 문양을 간직한 루이 14세의 문장(紋章)은 권력의 존재를 표상했지만, 권력이 그 표상 안에 있지는 않았다. 반면, 사진의 등장 이후에, 특히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에, 사람들은 살과 뼈를 지닌 진짜 대통령을 현실 속에서 보게 되었다.

옛날에는 정치 담당자들이 소문이나 출판물들의 느린 리듬에 실린 상징들을 통해 국민과 의사를 주고 받았다. 그 상징들은 전통적 교통, 통신의 속도에 실려있었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다듬고 설명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각적 이미지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즉각 시청자에게 도달해서 여론에 영향을 주고, 우리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그 여론의 동향을 항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늘날의 대중은 펄펄 살아있는 이미지를원하고, 그 이미지들에 감동 받기를 원한다. 브라운관은 장르 사이의 구별을 지워버렸다. 대중은 스포츠든 문화든 버리어티든 정치든 리얼리티쇼든 가장 인상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향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그래서 정치는 살아남기 위해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정책결정과 수행이라는 본업을 제쳐놓은 채, 시시각각 미디어에 볼거리를 공급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시청률 경쟁이 미디어의 논리라면, 미디어에 대한 경쟁이 정치의 논리가 돼버린 샘이다. 장기적인 방향 감각을 가지고 어떤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가치인가를 숙고하는 정치인은 사라지고, 정치 마케팅 논리의 노예가 돼 카메라 앞에 서는 데 골몰하는 정치적 유령들만 남았다. (92-3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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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체제 이래 민주화 운동 시기에 운동 단체들은 흔히 서울의 명동 성당이나 종로 5가의 기독교 회관에서 집회를 열거나 농성을 벌였다. 종교의 위엄이 배어 있는 곳이어서 공권력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공권력이 명동 성당이나 기독교 회관에 들어가길 망설인 것은 꼭 그 곳이 거룩한 곳이어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종교의 실질적 힘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제 6 공화국 이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도 종교 시설은 노조나 운동 단체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1993년의 지하철 노조 파업 때 노조 지도자들은 기독교 회관에서 농성을 벌였고, 1995년의 한국 통신 노동쟁의 때 노조 지도자들은 명동 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바로 그 1995년의 한국통신 노동쟁의 때 경찰이 명동 성당과 조계사에 들어가 노조 지도자들을 연행하자,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여러 종교 지도자들은 공권력의 '성소' 침입을 강력히 비난했다.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도 입을 모아 '성소'가 짓밟혔다는 점을 개탄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런 비판은 근거가 약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판의 각도가 잘못된 것이다. 만약에 노조나 운동 단체의 집회나 농성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 집회나 농성이 어디서 열리든 공권력에 의한 강제 해산이나 연행은 부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집회가 부당한 것이라면, 그것이 종교 시설에서 열렸다고 하더라도 공권력의 투입은 정당한 것이다. 말하자면 법의 집행은 일반적이 되어야지, 예외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 가운데 하나인 세속주의다. 종교 단체의 관련 건물이라고 해서 치외법권을 누릴 수는 없다.

물론 공권력의 집회 해산이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구정한 법 자체가 악법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그 법의 개폐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 종교단체 관련 건물을 치외 법권 지역으로 남겨 두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스러움을 이유로 법의 적용을 면제받는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통신 노동쟁의 당시 공권력이 정작 비판 받았어야 할 점은 초기의 준법 투쟁 당시부터 검찰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가가 자신들이 각자 쓴 복음서에서 전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예수는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 아니면 그래서는 안되느냐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세금으로 내는 돈에 새겨진 초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다. 그 초상이 황제의 것이라고 바리새인들이 대답하자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바치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치라"고 말했다. 물론 신약의 복음서들이 묘사하고 있는 이 장면은 미묘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그 질문을 한 것은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다. 예수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이민족의 유태인 지배를 당연시한다고 비판할 참이었고, 예수가 그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하면 바리새인들은 로마 사람들에게 예수를 위험한 선동가로 고발할 참이었다. 이런 악의적 질문에 예수는 멋들어지게 반격을 한 것이고, 그래서 예수의 이 대답이 담고 있는 참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가 갈린다. 그러나 예수의 이 발언이 일차적으로 뜻하는 것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기독교의 창시자가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세속주의를 지지한 것이다.

명동 성당에 공권력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런 세속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이 곳이 민주화의 성소로 추앙받던 특별한 시기에 그런 예외가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법의 일반성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가서는 안 된다. (109-111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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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이 이 책(<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쓴지 30년 쯤 지난 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1994)에서 노동자가 이상한 방식으로 노동의 고역과 착취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18세기에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결정적으로 거든 것이 기계였듯이, 미래 세계애서 그 착취를 사라지게 할 것도 기계다. 그러나 노동자가 착취에서 해방된 세상, 리프킨이 그리는 그 '노동해방'의 세상은 고래의 혁명가나 반역자들이 꿈꾸어 왔던 평등한 세상이 아니다.

<노동의 종말>은그 책 한 장(章)의 제목대로 '노동자 계급을 위한 진혼곡'이다. 리프킨이 그 책에서 우울하게 전망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 없는 세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동화를 핵심으로 진행된 제3차 산업혁명에 따라, 로봇화된 컴퓨터 시스템이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노동자들을 대치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지능 기계는 이미 제조업 분야의 블루 칼라 노동자들에게서 많은 일자리를 빼앗았고, 그것은 점차 서비스 분야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실상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작업장의 리엔지니어링으로부터 가장 커다란 타격을 입은 계층은 중간 관리자들이다. 전통적인 조직 위계에서 위아래의 작업 흐름을 조정해왔던 중간관리자들의 역할을 컴퓨터가 무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능 기계는 의료나 법률 상담 같은 전문 분야나 심지어 예술창작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노동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생산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것은 인사 관리를 짜증스러워하면서도 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경영자에게는 꿈같은 세상이다. 노동자가 줄어든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역사가 목격해본 적이없는 기괴한 방식의 세대 교체를 겪고 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자리를 물려받을 그 신세대 노동자는 플러그가 끼워진 종족, 리프킨이 '실리콘 칼라'라고 부르는 기계 노동자다. 이 실리콘칼라 노동자는 하루 스물네시간계속 노동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고, 배고픔이나 피곤을 느끼지도 않는다. 불평도 하지 않고 노동조합도 만들지 않는다. 이런 세대 교체에 따라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로서의 인간의 역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데모크라시(인민의 지배)를 대치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테크노크라시(기술의 지배)는 리프킨이 보기에 기술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술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최초의 목화따는 기계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을 농장 겨제의 착취로부터 '해방'시켰을 때,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북부 도시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로 변신해 제조업 분야로 흡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산업에서 서비스 부문까지 생산 활동의 전 영역을 감당하고 있는 실리콘 칼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21세기의 노동력은 어디로도 흡수되지 않는다. 이 노동자들이 재교육을 통해서 다가올 세계의 엘리트 직업 집단인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분자생물학자, 경영컨설턴트 등으로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리프킨이 '새로운 세계인'이라고 부르는 이 미래의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시간은 넘쳐나고 일은 없다. 이제 노동자들은 더이상 착취당하지 않는다. 그들으 쓸모없는 존재로서 무시당할 뿐이다. 중산층이 와해되고 실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테러를 비롯한 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그에 따라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위험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외국인 혐오증이 파시즘의 토양을 만들 수도 있다.

이 우울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리프킨이 제시하는 방도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기술진보의 열매를 공정히 나누기 위해 생산성의 향상을 노동시간의 단축과 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시장부문에서 축출된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나 공도체  서비스를 포함한 제3부문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가 노력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흔히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는 이 제3부문은 비영리적 공동체 활동을 뜻한다. 공공 부문도 시장 부문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제3부문이라고 불리는 이 영역은 일본에서는 흔히 공익법인이나 사회복ㅈ법인이라고 불리는 자선단체나 사회복지 조직들의 활동으로 이뤄지고, 요새 유행어로는 NGO활동의 일부를 포함한다. 리프킨은 이 제3부문이의 활성화가 노동의 종말 이후의 세계를 파국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세금 공제의 형태로 그림자 임금을 제공하고, 공동체 서비스(비영리 조직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복지 지출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임금을 제공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제3부문은 리프킨이 보기에 '포스트-시장시대'의 실업자들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과 연대의 식을 함양함으로써 공동체의붕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제3부문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박애의 산실이 될 수 있다. (150-15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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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예감했고 슘페터가 '혁신'이라는 개념을 통해 명료하게 이론화했듯, 모든 생산체계는 결국 과학기술의 진보에 기댄다. 그리고 그 과학기술의 진보가 이뤄지는 것은 늘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에 의해서다.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은 말을 바꾸면 실패를 통한 배움이다. 그런데 살로몽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온 산업사회에서 그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 실패를 통한 배움은 '파국을 통한 배움'의 형태를 띠게 됐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제어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그래서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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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문화의 주체로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에 사회주의 정권들이 들어선 뒤부터다. 진보의 열정으로 무장한 이 새로운 정권 담당자들은 문화에서 선전/선동의 힘,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할 수 있는 거푸집의 역할을 발견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함께 문화는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적극적인 '정책'의 대상이 되었고, 당과 정부에 설치된 문화 부서들은 흔히 선전/공보 부서를 겸하고 있었다. (...)

퓌마롤리는 프랑스를 '문화 국가'로 만든 가장 큰 책임을 드골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미테랑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에게 돌린다. 앙드레 말로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프랑스 국가는 정치적, 사회적 사업을 지도하는데에 만족하고 예술 창작자들과 예술 애호가들을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말로 이후로, 특히 자크 랑 이후로, 국가는 진정한 '문화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틀어쥐고 그것을 자기 선전이나 대중의 여가 조직의 도구로 사용해 왔다. 그 결과 문화는 일종의 국교(國敎)가 되었다. [문화 국가]의 부제가 '한 근대적 종교에 대한 에세이'인 것은 시사적이다. (...)

저자에 따르면 문화 국가의 기원이 되는 이데올로기들은 187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가톨릭 교회에 맞서 수행한 문화 투쟁, 20세기 들어 좌파 지식인들을 매료한 마르크스주의 예술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 정부하에서 민족의 문화적 중흥을 외쳤던 '청년 프랑스'운동, 문화를 프랑스 민족의 '세포조직'으로 만들어버린 말로의 메시아적 꿈 같은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일종의 '문화당' 안에서 화해하고 혼합돼, 권력을 틀어쥐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앙드레 말로는 1959년에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문화를 배급하고 전세계에 프랑스 문화를 선양하는 국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 경건한 바람의 면사포 안에는 불길한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프랑스의 예술과 문학은 무엇이 '문화적'이고 무엇이 '비-문화적'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은 한 줌의 문화 관료들에게 차압되었다. 이 경향은 자크 랑이 문화부를 맡았던 시절에 더 심회되었다. 퓌마롤리에 따르면, 이 시절의 프랑스는 파리의 문화적 성직자(곧 자크 랑)가 자신의 초현대적인 광기로 전체주의 국가에나 얼루릴 법한 전시 문화 행정을 전국토에서 수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퓌마롤리는 여기서 랑 시절의 프랑스에서 건축된 수많은 대형 건조물들과 끊임없이 조직된 떠들썩한 문화 축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

'문화 권력'은 무대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프랑스라는 '스펙터클 공화국'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서임(敍任) 장소로 삼는다. 당연히, 텔레비전은 신성함의 아우라를 부여받았다. 이 상설쇼의 가장 큰 패배자는 책과 대학이다. 책들은 이 '문화의 슈퍼마켓' 안에 진열된 수많은 무화 상품들 가운데 가장 눈에 안 띄는 곳에 처박혀 있다. 예전엔 진정한 앎에 접근하는 통로였던 대학은 이제 '문화 관광'을 위한 공간들로 대치되고 있다. 이 공간 안에서 국가는 '모두를 위한 문화'의 신도들로 변한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면, 할인판매와 자기 자랑에 열중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문화 국가'의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라고 퓌마롤리는 말한다. 즉 문화 국가는 '집단적 여가활동의 정치 경제학'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의 문화는 여가활동이나 취미생활로 변했고, 프랑스의 문화 공간은 일종의 라스베가스로 변했다.

 

(213-216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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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창세기에 따르면 신(神)은 빛을 만든 지 닷새째 되는 날과 엿새째 되는 날에 사람을 포함한 온 갖 생명체들을 창조했다. 오늘날 성성의 이 부분을 곧이곧대로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들은 찰스 단위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난 세기 중반까지는 인간이 생명의 창조에 간섭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도 거의 없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자연의 질서라고 부르든, 생명은 특히 인간의 생명은, 어떤 무제약적 존재의 소관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넘볼 수도 없고 넘보아서도 안 되는 거룩한 영역이었다. 인간이 그 성역 안으로 불경스러운 첫걸음을 내딛은 것은 1953년이다. 이 해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생명복제의 신비를 간직한 세포 내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냈다. (...)

인체게놈 사업은 우선 의학의 중요한 기능을 치료에서 예측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생물학적 운명을 높은 확률로 미리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체게놈 사업은 인류의 지성사를 관통한 선청성 대 후천성(nature versus nurture)논쟁에서 전자의 손을 들어주며 생물학적 결정론, 곧 유전자 결정론을 널리 유포시킬 것이다.

 

(299-300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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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나 시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요즘 사람들이 나에게 뭐에 관심이 많냐고 물어보면 서슴없이 '생태주의'라고 말한다. 그래, 나는 생태주의자다. 그 전까지 나는 '어렴풋이' 맑스주의자였고, '희미하게' 알튀세르주의자(??) 였는데, --왜냐면 사실 나는 이 사람들이 '직접' 쓴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복잡하고 꼬불꼬불한 해설서들만 읽었을 뿐... -- 이제는 자신있고 분명하게 나를 ~~주의자 라고 소개할 수 있다. 나는 '생태주의자'라고!!

 

그렇다고 내가 '생태'라는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게 오래된 일도 아니다. 작년 금융위기와 함께 불어닥친 식량위기, 먹거리위기 등을 접하면서 생태위기를 인식할 수 있는 길들이 조금씩 엿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길들을 조금씩 따라가다보니 생태주의라는 신비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생태주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니 맑스주의도, 알튀세르주의도, 나아가 페미니즘도 나의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생태주의는 나에게 '빛'과 같은 존재다. ㅋㅋㅋㅋ

 

 

이런 생각에 쐐기를 박아 준 책이 바로 반다나 시바의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이다.

 

내가 기존에 읽었던 생태주의에 관련된 책들이 생태계 파괴에 자본주의라는 구체적인 생산체제가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분석했다. 그런데 시바의 이 책은 한 단계 더 들어간다. 이런 생태파괴를 가능했던 자연과학이 밑바탕에 깔고 있던 철학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이다. 바로 근대과학의 '환원주의'말이다. 생명공학은 그런 환원주의가 낳은 이 시대의 '괴물'이다.

 

이런 논의 속에서 그녀는 최근의 생명공학이 여성의 모성에 대한 권리를 파괴하는 사례들을 들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에코 페미니즘'에 대한 주장을 펼쳐낸다. 생태주의를 매개로 근대과학비판, 페미니즘, 자본주의 농업 비판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정말 내공이 장난 아니다!!!

 

 

이 정도 찌질한 서평으로는 이 책의 위대함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빨리 내공을 쌓아서 더 잘 표현해 봐야지... 이제 본격적으로 생명공학 비판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다음 도전 상대는 리처드 르원틴의 이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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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스포츠화? - 대중정치에 대한 소고

좀 전에 저녁을 먹으면서 TV를 보는데, <무한도전>에서 '전국 돌+아이 선발대회'라는 걸 하더라. 얼마 전에 1차 예선을 했고, 오늘은 본선이라던가? 여튼 뭐 전국에 노홍철틱한 사람들 다 모아놓고, 그야말로 '또라이'들의 축제를 벌이더라.

 

나도 거의 정신을 놓고 국가대표 또라이들의 '또라이짓'을 넋놓고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저 넋을 넣고 볼 수만은 없는 장면들이 보였다. 약간 쌩뚱맞지만 이 얘기를 시작으로 오늘 날 남한사회에서의 대중정치의 의미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한바탕 또라이짓이 끝나고 장면이 방송국 스튜디오로 바뀌더니 이제 '전국 돌+아이 연합회 창립총회'를 하겠단다. 총재는 노홍철. 양 측면에 연합회의 전국회원들이 각자의 개성에 따라 '돌+아이'짓을 하며 총재님을 연호한다. 창립총회의 사회를 보던 유재석은 총재님의 기념사가 끝나자 귀빈으로 초대된 박명수에게 축사를 부탁한다. 그런데 박명수 왈, "저는 지금 이 행사가 맘에 들지 않아요. 제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도저히 이런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네요. 이런 1%의 사람들을 위해서 전파를 낭비해서 되나요? 이 1%를 제외한 대다수의 저와 비슷한 보수층들은 이 행사를 원치 않아요!" 박명수식 호통개그로 받아친다. 이에 노홍철 총재는 회원들에게 야유를 선동한다. 일순간 모든 회원들은 보수논객 박명수를 향해 팔뚝질을 하며 "물러가라"를 외친다.

 

그리고 이어진 전진과 정형돈의 축사. 우선 전진이 선빵을 날린다. "저는 박명수 의원(?)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이 행사는 참 뜻깊은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바톤을 이어받은 정형돈 왈, "저는 여러분들이 진정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발언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물론 다 웃자고 하는 짓인거 안다. 덕분에 나도 주말 저녁에 밥먹다 말고 실컷 웃었다. 그런데 위에서 보여진 장면에서 출연자들이 얼핏 드러낸 보수와 진보(='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물론 출연자들이야 별 뜻 없이 한 소리겠지만) 나에게 밥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밥알을 씹는 횟수만큼 '정치'의 의미를 곱씹게 만들었다. (우선 미리 전제를 깔아두자면, 여기서 내가 주장하는 위 장면에 대한 해석은 그저 상징분석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발언 의도 같은거와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이다.)

 

 

*      *      *

 

 

여기서 돌+아이 연합회 회원들은 노홍철에게 광기어린 신앙을 보여준다. 정형돈은 이들을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고 찬사를 전한다. 그리고 박명수는 이들은 단지 1%에 불과한 소수일 뿐이라고 한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 듯 하다. 작년 5월, 수십만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이명박 탄핵을 외쳤고, 이명박은 이들은 그저 소수의 사람들, 또는 그들에 의해 선동된 '정신나간' 사람들로 보았다. 아마도 이명박 눈에는 군중의 행동이 마치 노홍철과 그의 신도들이 벌이는 것과 같은 '돌+아이'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한 마디로 '집단광기'라고 말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정형돈이 그런 것처럼 이 집단광기에 찬사를 보냈다.

 

물론 작년 그 찬란했던 촛불에 대해 '집단광기'라는 말로 일갈해 버린다면, 조갑제 일당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나는 '집단 광기'라는 말에 대해 별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물론 '돌+아이'짓 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 내가 좋아하는 연구자 중 한 사람인 김원씨는 그의 책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에서 졸버그의 표현을 빌어, 80년대 남한 대학생들의 학생운동을 '광기의 역사'였다고 표현한 바 있는데, 나는 그 표현에 잠시나마 전율을 느낄만큼 감동했었다. 뭐 더 고상한 표현을 찾자면야 그 당시 대학생들만이 공유했던 집단 지성의 문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 또한 분명히 폭압적 근대로의 전환을 겪었던 8년대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던 '이성'의 스케일로는 도저히 포용 불가능한 비이성의 사건, 즉 '광기의 역사'였던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떤 종류의 광기에서건 '광기와의 거리두기'가 요구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비록 지나간 역사이지만 8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 찬사만이 존재하지 않고, 반성적 거리두기 또한 존재하는 것일테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런 반성적 거리두기가 지나간 역사에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이 곳에서의 대중운동이 그저 '광기'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도 '광기'와의 아슬아슬한 거리가 요구된다. 그 팽팽한 긴장의 간격을 유지해 주는 것이 바로 지성과 이론의 힘일 것이다. 그 지성과 이론의 인력이 혼돈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려는 광기의 관성의 힘을 끄잡아내어 '역사의 정방향'을 찾아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 나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의 80년대 이후의 역사가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수줍게라도 '민주주의'라는 말을 꺼낼 수 있게 한 것일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작년 5월은 물론이고, 아직 촛불의 자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금에도 이런 '비판적 거리두기'의 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광기의 귀환'만을 목을 놓아 기다리고 있을 뿐이고, 반대로 이명박과 그의 일당들은 충격요법으로 머리를 백지상태로 만들어 버려 정신병을 치료한다는 미국의 한 정신과 의사마냥 양 손에 전기충격기를 들고 항시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광기'와 그것에 반대하는 '광기'의 대립.

 

그런데 여기, 이 두 '광기' 사이를 비집고 욕먹을 각오하고 이론의 얼굴을 내민 자들이 있다. 저자들에게 들은 바는 없지만, 이들은 분명 '욕먹을 각오'를 했음이 틀림없다. 원래 흥분한 상태에서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잰채하며 깍쟁이마냥 바른 소리 하는 사람들은 양쪽으로부터 모두 공격받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그런 말을 한다. 쫌 용감하다. 바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의 저자들이다.

 

 

 

 

당대비평 기획위원회의 주도로 출간된 이 책에서 저자들은 "촛불을 통해 '지금 우리는 어떤 식으로 정치를 사유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망"하고자 한다. 그래서 " '웹2.0세대의 민주주의', '다중과 직접민주주의의 장엄한 출현'등 인상적 비평과 비난에서 벗어나, '기억의 자리'로 물러난 듯 보이는 촛불을 다시 혹은 전혀 새롭게 반성"하자고 말한다.

이 책에서 앞서 언급한 나의 주장과 가장 일맥상통하는 것은 바로 백승욱 교수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촛불집회를 분석하는 이론들이 보여주는 ‘낙관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입장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론은 늘 오히려 ‘비관주의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한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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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교수의 이 발언이 담긴 글의 제목은 "경계를 넘어서 연대로 나아가지 못하다"이다. 그런데 나는 '경계를 넘어 연대로 나아가는' 문제는 일단 살짝 미뤄두고 생각해 보고 싶은 문제가 따로 있다. 그가 여기서 말한 '경계'라는 것은 촛불 내부에 그어진 경계, 그러니까 촛불을 든 순수한 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또는 운동권을 비롯한 온갖 단체 회원 등을 가르는 경계를 말한다. 만약 그 경계를 꼭 넘어서야만 하는 것이라면,  촛불은 왜 그것을 넘어서지 못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그래서 다음 기회에는 꼭 그 경계를 넘어서도록 디딤돌을 놓아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촛불은 그 경계넘기에 실패했으므로 앞으로 벌어질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촛불에게 안녕을 고한다면 이보다 더 무책임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소위 '대중없는 사회주의자'의 전형적인 태도이다.)

 

이유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딱 한가지, 한국사회의 아주 '개성있는' 정치문화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여기서 내가 겪은 사례 하나를 더 얘기해야 겠다.

약 두 달 전 쯤인가? 미네르바가 체포되고 사회 전체가 들썩일 당시, 나 또한 이 문제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MBC <100분토론>에서  이 문제를 다뤘고, 나는 근무하는 중에 한가한 틈을 타 인터넷 다시보기로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 때 내 옆을 지나가던 나보다 나이가 3살 어린 동생이 지나가면서 뭐 보냐고 묻는다. 나는 어제 방송했던 <100분토론>이라고 말해 줬는데... 그 아이 하는 말 왈, "누가 이겼어요?" 나는 이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순간 당황했지만, 차분하게 대답해줬다. "야, 토론에서 이기고 지는게 어딨어? 다 서로 다른 의견 주고받는 건데..." 그러나 그 놈은 또 말한다. "에이, 그래도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나는 며칠동안 생각했다. 분위기? 대체 이 놈이 말한 분위기라는게 뭘까? 궁리 끝에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그것은 "누가 말빨이 더 쌨냐"는 거다. 분위기 상으로 누가 더 상대방에게 맹공을 퍼붓고, 누가 더 선정적인 용어 사용으로 상대를 압도하는지, 그래서 누가 더 카메라에 얼굴을 더 많이 비춰 분위기를 '주도'하는지가 이런 방송용 정치토론에 관전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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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현상을 일종의 '정치의 스포츠화'라고 명명한다.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100분토론 같은 프로그램 보는 것이 마치 WBC 생중계를 보는 것과 별 다른 점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 잠깐 방향을 틀어서 '정치의 상품화'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자.

 

87년 항쟁이 낳은 미완의 성과인 '직선제 개헌'은 많은 후과를 남겼다. 여기서 주목해 볼 후과 중에 하나가 바로 정치적 주체의 무게추가 군부세력에서 대중 그 자체로 옮겨진게 아니라 오히려 미디어로 옮겨진 것이다. 특히 2000년도 이후 선거에서는 옥회 연설회가 금지되고 미디어를 통한 선거광고가 대폭 허용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 증폭되었다. 그리고 대략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DJ가 'DJ와 함께 춤을'로 재미를 본 이후, 대중가요나 유명 연예인들의 얼굴이 선거에 적극적으로 이용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선거에서 대중의 능동적 참여가 배제되고 단지 표 찍는 기계가 되어버리면서, 선거운동은 갈수록 더 많은 표를 '벌기 위한' 판촉행사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상품화라는게 어딜가나 그렇듯이, 전국의 어떤 편의점에 가도 똑같은 상품이 진열되어 있는 것처럼, '정치의 상품화'로 인해 전국에 어떤 선거구에 가더라도 정책이라는 것은 어딜가나 고만고만하다. 그렇게 4년에 한번, 또는 5년에 한번 열리는 장날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상품이라는게 고작 '개발'과 '성장'이라는 신기루 같은 것 뿐이라는게 비극적인 사실이지만...

 

이로써 한국사회에서 정치참여의 가장 기본적 주체로 여겨졌던 '유권자'는 정치에 대한 '소비자'로 재포장된다. 물론 소비자라고 해도 보통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상품사회의 소비자와는 다른 점이 있다. 어찌되었던 정치상품 시장에서는 '1인1표'의 원칙, 즉 평등선거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도 따지고 보면 교과서 상에서만 통하는 얘기고, 선거날에도 일하지 않으면 생계가 위태로운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은 사실상 박탈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작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공정택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휴일도 아닌 날에 시간내서 투표할 여유 있는 사람이 강남 부자들 말고는 별로 없었기 때문 아닐까?

 

이렇게 정치적 권리를 가진 시민이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행동권이 '투표권' 밖에 없고, (이제  1인 시위도 맘대로 못하게 하니 뭐...) 이것 마저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관전'하는 것 뿐이다. 내가 직접 배트를 잡아보진 못해도, 내가 동일시 하는 대상이 배트를 잡고 홈런을 치면 미친듯이 열광할 권리는 있는거다. 그러나 경기는 관중이 아니라 감독과 선수가 하는 거다. 관중이 열심히 응원하면 선수들이 어느정도 힘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야말로 '어느정도'까지 인 거고, 그걸 넘어서는 범위에서는 관중의 역할은 없다.

 

그렇게  관전에 매몰된 관중들이 승패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 장 안에서 그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최대치일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진중권, 신해철 등 소위 '말빨 되는' 논객들의 등장은 게임의 열기를 달궈준다. 그러나 이들과 같은 스타플레이어들의 등장이 결국엔 관중들에겐 펜스 너머 필드에 더욱 목매게 하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관중석의 부실한 정치적 토양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는 것에 일조한다는 면에서 대중정치 발전에는 독(毒)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의 가장 부정적 인 효과는 사람들을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 가둬 놓는다는 것이다. 손석희를 중심으로 양 편으로 갈라진 패널과 방청객은 진보 아니면 보수, 그 외엔 없다. 이런 게임 속에서 사람들이 정치적 문제를 다양하게 사고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봉쇄되는 것이다. 그나마 <100분토론>은 양반이다. <100분토론>을 따라잡겠다고 SBS에서 만든 토론 프로그램을 보니까 뒤에 방청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상대편 패널의 발언이 맘에 안들면 야유도 퍼붓고 갑자기 일어나 자기 얘기 막하고 그러더라. 경기를 자기 뜻대로 움직일 권한이 없는 관중들이 '훌리건'으로 변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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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위 아고라 폐인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집단광기를 부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금과 같은 한국사회에서 집단 광기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80년대 남한 학생운동이 보여준 광기와 야구장의 훌리건들이 보여주는 광기는 분명 다른 것이다. 우리가 훌리건의 광기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국 노홍철을 교주로 삼는 '돌+아이'식의 종교적 광기로 수렴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즉 정치가 코메디화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전혀 웃기지도 않고 그런걸로 웃는데 시간 보내기에는 세상 살기가 너무 팍팍한 사람들은 어쩌나? 한판의 코메디가 끝나고 들려오는 것은 학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목숨을 끊은 어느 대학생의 이야기와 같은 것들 뿐이다. 진중권이 '집단적 유희'로 가둬지길 원했던 그 촛불이 꺼지고 난 바로 직후에 말이다. 어차피 촛불이 집단적 유희로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으니 이미 예상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1848년 프랑스에서의 혁명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시험무대였고, 1968년 5월 혁명이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예행연습"(김정한,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중에서) 이었던 것처럼, 촛불항쟁도 전례없는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 되려면 이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를 상황을 넘어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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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나 시바의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중에서...

로크(John Locke)는 자신의 글 "재산에 관한 논고"에서 유럽의 엔클로자 운동 기간 동안에 똑같이 일어났던 절도와 도둑질 과정을 효과적으로 정당화하였다. 여기서 로크는 자본주의가 건설해야 할 자유는 곧 도둑질할 자유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로크가 보기에, 재산이라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자원을 가져와서 이것을 노동과 결합시킴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자본의 통제 안에서 드러나는 '영적인' 형태로서의 노동이다. 로크에 의하면 자본을 소유한 자만이 자연자원을 소유할 자연적인 권리를갖는데, 이 권리는 다른 사람들의 공동권리를 자신들의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따라서 자본은 자유의원천으로 규정되는 동시에, 자본이 자기 것이라고 선언한 토지, 숲, 강, 생물 다양성에 대한 자유와, 자신들의 노동에 근거한 권리를 갖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부정한다. 사유재산을 공동재산으로 돌려주는 것은자본 소유자의 자유를 빼앗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자원에 대한 자신의 권리와 접근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하는 농민과 부족들은 도둑으로 간주된다. (19-20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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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성이런 무엇인가? 이 질문은 생명에 대한 특허를 두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생명에 대한 특허는, 자기조직할 수 있는 자유를 통해 생식, 증식하는 유기체에 내재해 있는 창소성을 사유화(enclose)한다. 이는 여성, 식물, 동물 육체의 내부공간을 사유화한다. 또 이것은 공적으로 창출된 지식을 사적 재산으로 변홤시킴으로써 지적 창조성의 자유스런 공간을 사유화한다. (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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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소설 같은) 대중적 신화가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이 과학자들이 개방적이었던 적은 없었지만, 특허보호를 추구하는 상업적 기업들과 함께 일하는 과학자들이 과학적 의사소통에 대해 가하는 위협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저명한 핵생물학자 엡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거거에는 동료들이 때때로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섬광계수기(scintillation counter)나 전기영동장치(electrophoresis cell)와 같이 방금나온 따끈따끈한 최신 연구결과들을 공유하고, 논문초고를돌려보는 열정적인 연구 분위기 속에서 서로 친구처럼 지내고 처신하는 거시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젠 더 이상 그렇지 않다. (곡물 개량)에 대한 희망적인 새로운 관점을 가진 UCD(캘리포니아 대학 데이브스 분교)의 과학자들도, 데이비스에 있는 곡물 유전자 관련 분야의 두개 사기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든가 혹은 이런 관련자들에게 말할 수도 있는 자기 동료들에게 자신들의 이런 새로운 관점에 대해 털어놓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금기가이미 캠퍼스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케니는 산학복합체 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고하가적 개방성의 폐쇄화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도둑맞거나 어떤 사람의 작품이 상품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두려움은 동료라고 생각되었던 사람들을 침묵하게 한다.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이, 그에 대한 어떤 통제력도 가지지 않은 누군가에 의해 판매를 ㅜ이한 생산물로 바뀌는 것을 볼 때 능욕당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일에 대한 사랑은 평범한 상품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일은 시장가격을 기반으로 해서 교환되는 물품이다. 돈이 점차 과학발전의 가치를 중재하는 결정자가 되어가고 있다.

과학에 비밀이 도입되면서, 지적 재산권과 이와 관련된 지식의 상업화, 사유화는 과학공동체를 고사시키고 그에 따라 창조성의 잠재력까지 말살할 것이다. 지적 재산권은 창조성의우너천 자체를 죽여가면서 창조성을 착취한다. 저수지가 물을 계속 공급받지 못하면 곧 말라버린다는 자명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나무의 뿌리에 영양이 공급되자 않으면 그 나무는 죽는다는 것도 상식이다. (39-41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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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원주의적 생물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 구조와 역할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못하면서 생명체들과 그 기능들을 불필요한 것이라고 선언해 버리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몇몇 농작물과 나무들은 '잡초'로 규정되어 버리고, 삼림과 가축 품종들은 '불필요한것들'로 선언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다 파악하지 못한 DNA는 '정크 DNA'로 불린다. (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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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체에 대한 재산권주장은 그 생명체가 새롭고 특이하며 자연적으로는 발생하지않는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 조작 생물체가 자연에 방출되어 나타나는 결과에 대한 '책임자' 문제가 제기될 때는, 갑자기 그 생명체는 전혀 새롭지 않은 것처럼 취급된다. 그것들은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생명공학 안전성에 대한논의는 전혀 불필요한 것인양 취급한다.

이처럼 생물체가 소유될 때는 거것은 자연적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고, 환경론자들이 GMO의 방출시 생태에 미치는 영향 문제를 제기할 경웨는 똑같은 생물체가 자연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자연적'이라는 개념의 구성에 대한 이와 같은 아전인수격 태도는, 최고의 객관성을 주장하는 과학이 실제로 자연에 대한 접근에서 얼마나 주관적이고 기회주의적인가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53-5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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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한 특허 부여는 두 가지 형태의 폭력을 부추긴다. 첫째는, 생물이 단순한 기계처럼 다뤄지게 되고, 그럼으로써 자기조직하는(self-organizing) 능력이 부정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미래 세대의 동식물에 대한 특허를 인정함으로써 살아 있는 생명체의 스스로 번식하는 능력 또한 부정된다는 사실이다

살아 있는생명체는기계와 달리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이 있다. 이와 같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새명체를 단순한' 생명공학적 발명품' '유전자 구성물' 또는 '지식활동의 산물'로 간주하여 '지적 재산권' 보호의 대상인 것처럼 다루어서는 안 된다. (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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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를 '주인 분자'로 구분하려는 태도는 생물학적 결정론의 한 측면이다. 그리고 DNA로서의 유전자가 단백질을 만든다는 '중심 교리'는 결정론의 또 다른측면이다 .이 교리는 실제로 유전자가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도 계속 받아들여지고 있다. [DNA의 원칙]에서 르원틴은 이렇게 말한다.

DNA는 죽은 분자로, 반응성이 없는 화학적 불활성 분자에 속한다. 따라서 스스로 재생산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DNA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복잡한 세포기관에의 해기본적인 물질들로부터 만들어진다. 대개 DNA가 단백질을 생산한다고 이야기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단백질(효소)이 DNA를 만든다.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유전자에 신비한 자발적 능력을 부여하여 이것을 신체의 다른 일반적인 물징들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기복제를 말한다면, 이것은 유전자가 아니라 복잡한 체계로서의 전체 생물체를 일컫는 것이다.

(59-60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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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들과 생태계가 스스로 조직할 수 있는자유는 생태학의 기초를 이런다. 생태적 안정성은 종들과 생태계가 적응하고 진화하며 반응하는능력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실재로 시스템에 허용되는 자유도가 커질수록 시스템은 그만큼더 큰 자기조직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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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조직하는 시스템은 내부로부터 성장하여 외부를 향해 스스로를 형성시킨다. 반면 외부의 힘으로 조직된 기계적 시스템은 성장하지않는다. 그들은만들어지고 외부로부터 구성될 뿐이다.

스스로 조직하는 시스템은 독특하며 다차원적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구조적이며 기능적인 다양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계적인 시스템은 획일적이며 일차원적이다. 이들은 구조적인 획일성과 일차원적 기능만을 보여준다.

스스로조직하는 시스템은 스스로 치료하면서, 변화되는 환경의 조건에 적응할 수 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직된 시스템은 자기치료를 하지도, 적응을 하지도 못하고 다만 망가질 뿐이다. (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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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시 "씨앗을 지키는 자들"

 

 

우리의 대지(大地)를 불태우라

우리의 꿈들을 불태우라

우리의 노래에 매서운 산을 쏟아부으라

톱밥으로 덮어버려라

학살당하는 우리들의 피를

당신들의 테크놀로지로 틀어막으라

자유로운 모든 이들의

야생의 본성을지닌 모든 이들의 비명소리를.

파괴하라

파괴하라

우리의 풀과 토양을

무너뜨려라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일으킨

모든 농장과 모든 마을을

모든 나무와 모든 가정과

모든 책과 모든 법과

그리고 모든 공정함과 조화로움을.

당신들의 폭탄으로 쓸어 없애버려라

모든 계곡을,

당신들의 사설(邪說)로 지워버려라

우리의 과거와

우리의 문학과 우리의 메타포들을

껍질 벗기라

숲을 그리고 대지를

어떤 벌레들도

어떤 새도

어떤 이야기들도

숨을 곳을 찾지 못할 때까지 계속.

나는 당신들의 폭정(暴政)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나는 절망하지도 않을 것이니

왜냐하면 나는 하나의 씨앗을 지킬 것이므로

하나의 자그마한 생명의 씨앗을

나는 수호(守護)할 것이고

그리고 다시 심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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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대한 권리를부정하기 위해, 과학적 사명은 종교적사명과 결탁하였다. 과학혁명이 도래하면서 출현한 기계론은 모든 생명들을 지탱하는자연의 자기재생, 자기조직화 개념을 파괴하는 기초가 되었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이컨에게 자연은 더 이상 어머니가 아니라, 공격적인 남성적 정신에 의해 정복되어야 하는 여성이었다. 머천트가 지적하는 것처럼, 자연에 데한 이해가 살아있고 양육하는 어머니에서 무기력하고 죽어 있고 조작 가능한 물질로변형된 것은 성장하는 자본주의의 착취적 지상과제와 딱 맞아떨어졌다. 만물을양육하는 대지의 이미지는 자연의착취에 대해문화적인 제약요건으로서 기능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어머니를 즉시 살해한것이 아니라, 그녀의 내장을 파헤치고 불구로 만들었다"고 머천트는 쓰고 있다. 그러나 베니컨주의자의 프로그램과 과학혁명에 의해 창출된 복속과 지배의 이미지는 모든 제약조건들을 제거했으며, 자연의 개방을 위한 문화적 승인으로서 역할을 했다. (95-96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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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교잡은 씨앗 그 자체에 대한침략이었다. 씨앗의 교잡과정은 곡물로서 그리고 생산수단으로서의 종자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과정이었다고 클로펜버그는 말한다. 나아가 바로 이 과정은 사기업들이 식물육종과 상업적 종자 생산을 통제하기 위해 필요했던 자본축적의 공간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씨앗의 자기재생적인 과정을, 원료로서 살아 있는 씨앗 공급의 단절된 단선적 흐름과 생산물로서 종자상품이라는 역흐름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생태파괴의 원천이 되었다. (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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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살아있는 재생 가능한 자원에서 단순한 원료물질로 변화시키는 것과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기술은 여성을 비하시킨다. 일례로, 생식기술은 여성의 신체를 기계화하는 -- 직업적인 의료 전문가가 관리하는 파편화되고 물신화되고 대체 가능한 부품의 조합으로 여기는 --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에 관한 한 미국이 가장 많이 발달되어 있긴 했지만, 제3세계에도 생식기술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다.

 

현재는 비정상적인 불임의 경우에 체외수정을비롯하여 다른 기술들이 제공되고 있지만, 자연과 비자연의 경계는 유동적이거니와 비정상적인 경우를 위해 창출된 기술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게 되면 오히려 정상이 비정상으로 재규정되는 경향이 있다. 임신이 처음으로 의학적인 관점에서 질병으로 취급받기 시작했을 때에는, 비정상적인 경우에 한해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았으며 정상적인 경우에는 원래의 전문가인 산파를 찾는 것이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30년대에는 출산의 70%가 집에서 분만할 수 있는 정상상태라고 생각되었지만, 50년대에는 70%가 병원에서 분만해야 하는 비정상인 것으로 인식되었다!

 

자신들이 아이를 생산하고 창조한다고 믿는 의료 전문가들은, 이미 이에 대해 잘 알고 이쓴 어머니들에게 자신들의 지식을 강요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은 절대 확실한 것이고, 여성들의 지식은 터무니없는 히스테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파편화디고 침략적인 지식을 통해, 그들은 어머니와 태아 간에 -- 태아만이 보호 받아야만 하는 생명으로 바라보며, 어머니는 태아의 생명을 위협하는 잠재적 범죄자로 환원되는 -- 갈등을 만들어낸다.

이와 같은 어머니와 태아의 갈등이라는 잘못된 구성물은 남성 의사가 여성과 산파로부터 출산을 인수하게 된 가부장적 근거가 되었으며, 한 세기 후에는 페미니스트에 의해 여성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선택을 옹호'하는 운동과 '생명을 옹호'하는 운동은 모두 여성과 생식에 대한 가부장적 구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을 통해 생명을 의학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사고력과 지력이 있는 인간으로서 여성이 갖는 삶의 경험과 서로 모순된다. 따라서 여기서갈등이 발생하면, 최근의 대리모와 새로운 생식기술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남성 전문가에 의한 여성 생명의 통제를 확립하기 위해 가부장적인 과학과 법률은 서로 협력한다. 이리하여 재생능력과 연관된 여성의 권리는, 생산자로서 의사가 갖는 권리와 소비자로서 부유한 불임부부가 갖는 권리로 대체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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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거의 마찬가지로, 약용 식물에 관한 지식도 지역의 공동 자원이다. (...) 아유르베다 경전 [차라카 삼히타]를 보면, 토착의료 시술가들이 다음과 같은 조언을 받는 대목이 나온다.

소치는 사람, 요가 수행자, 숲에 사는 사람, 사냥꾼, 정원사들로부터 배우고 식물의 형태와 특징을 파악함으로써 약초에 대하여 배우라.

아류르베다의 지식은 또한 민중이 갖고 있는 일상적인 지식의 일부분이다. 민간의 전통과 전문화된 의료체계는 서로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갇ㄹ리 제약기업들이 주도하는 의료산업 체계는, 민중은 치료법을 알고 있지못한 사람들로 간주한다. (131-132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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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리쉬디타 인디카'라는 학명을 가진 인도 특산의 이 아름다운 나무(님 나무; neem)는 여러 세기 동안 생물 농약과 약제로 이용되어 왔다. 인도의 일부 지방에서는 이 님나무의 부드러운 새싹을 먹으면서 새해를 시작한다. 또 어떤 지방에서는 이 나무를 신성하게 여기며 숭배한다. 인도 어디서나 사람들은 매일 아침 님나무 다툰(datun, 칫솔)으로 양치질하여, 그 나무의 항박테리아 성질로 치아를 보호한다. (...)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유산은 지적재산권 이라는 이름 아래 강탈당하고 있다. (...)

1985년 이래로 미국과 일본 기업들은 님나무에 함유된 천연화합물의 안정적인 용액과 유제 제법에 대해서 12개가 넘는 미국 특허를 획득하였다. 심지어 여기에는 님나무 치약에 대한 특허도 포함되어 있다. (...)

"님나무로부터 달러를 뽑아내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라고 [사이언스(Science)]지는 평가하고 있다.

[에이지 바이오테크놀로지 뉴스]에서는 그레이스 사의 가공설비를 "님나무를 원료로 한 세계 최초의 생물농약 제조시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에 있는 거의 모든 가정과 마을들은 생물농약을 만드는 설비장치를 갖추고 있다. 인도의 면화산업단체인 카디와 마을산업위원회가 님나무 제품을 생산, 판매해 온 지는 무려 40년이나 되었다. 기업가들은 '인디아라(Indiara)' 같은 님나무 제품을 출하하고 있는가 하면, 토착기업인 캘커타 화학은 몇십 년동아님나무 치약을 제조해 오고 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그레이스 사는 특허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근대화된 천연화합물 추출공정이 진정 새로운 혁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지식이 합성물 및 공정 연구개발에 실마리를 주었다고 할지라도, 우리 것은 충분히 새로우며 자연적인 상태에서 얻은 생산물이나 그것을 얻기 위한 전통적인 방식과는 다르다. 따라서 특허가 가능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자신들의 공정은 새롭고 인도인의 기술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구인들의 무지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새로움이다. 인도에서 님나무에서 얻어진 생물 농약과 약제를 사용해온 2천 년 동안, 비록 활성성분들에 라틴어 학명이 부여되지는 않았지만, 특수한 용도를 위한 정교한 공정이 많이 개발되었다. 님나무에 대한 지식과 그 이용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인동의 중앙해충방제국은 1968년의 살충제법에 님나무 제품을 등록하지도 않았다. 중앙해충방제국은, 님나물 물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여러 가지 용도로 인도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되어 왔다고 지적하였다. (134-137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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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초제 저항성 품종의 개발이라는전략은유익한 식물종들을 절명시키면서 슈퍼잡초를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특히 열대지방에서는 잡초와 농작물이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열대지방의 잡초들과 농작물은 수세기 동안유전적으로 상호 작용해 왔으며, 자유롭게 서로 교잡되면서 새로운 변종들이 생겨났다. 따라서 유전공학자들에 의해 농작물에 도입된, 제초제 저항성과 해충 저항성, 스트레스 저항성을 갖고 있는 유전자 역시 자연 교잡의 결과 주변 잡초들에 전파될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화학약품의 사용을 증가시키면서, 모든 관련 환경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1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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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생명체를 소유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애완동물을 소유하고 농민들은 가축을 소유한다. 그러나 지적 재산권은 소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창조한다. 즉 지적 재산권은 단순히 지적인 재산으로서 이식된 유전자 또는 한 세대의 동물들에 대해서만 주장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 전체의 재생산, 특히 그 특허기간에 생겨나는 미래 세대들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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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resource)'은원래 생명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 어원인 라틴어의 resurgere는 "다시 일어나는(rise again)"이라는 의미이다. 즉 자원은 자기재생(self-regeneration)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자연'자원'이라는 용어의 사용은 자연과 인간의 호혜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주의와 식민주의가 등장하면서, 그 의미가 변환되었다. 이제 '자연자원'이 함축하는 의미는 산업 생산품과 식민지 무역의 투입요소라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자연은 생명이 없는 조작 가능한 물질로 변환된 것이다. 재생과 성장을 위한 자연의 능력 또한 무시되었다.

자연에 대한 폭력과 (자연 내) 섬세한 상호관계의 파괴는 자연의 자기조직력을 무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이러한 폭력은 사회 내의 폭력으로 전환되었다. (192-193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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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가는 책 -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6일

 

 

 

요즘 나는 시간만 나면 근처 시내 대형서점에 '아이쇼핑'을 하러 간다.

아니, '아이쇼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무전독서'가 더 맞는 표현이겠다.

지난번에는 아예 이틀에 나눠서 서점에 '출근'을 하여 장편소설 한 권을 다 읽어버렸으니... ㅋㅋㅋㅋ

뭐 나에겐 대형서점은 최신도서가 즐비한 도서관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오늘도 서점으로 발길을 향했는데, 반가운 아이템을 발견했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촛불'이란 단어때문에 예전에 참여연대 쪽 인사들이 모여 펴낸 "어둠이 빛을 이길수는 없습니다." 류의 책인 줄 알았는데, 저자들의 면면을 보니 그 쪽과는 약간 뉘양스가 다르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제목부터가 좀 다르지 않은가? 왜 촛불을 껐냐? 제목은 존대말로 말을 걸어오지만 실상 내용은 쫌 시비를 거는 투다. 시비 거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진보진영 내에서 촛불에 대해 온갖 찬사를 쏟아내는 입장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말투는 신선하기까지 하다.

 

사실 나는 작년 촛불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기 시작한 7,8월 정도만 해도 이런 류의 주장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었다. 실제 내가 몸 담고 있었던 곳에서도 '촛불'에 대한 어떤 종류에 비판에 대해서도 반박하려고 항시 대기, 으르렁대고 있었다.

 

물론 나의 그런 행동에도 이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좌파들의 촛불에 대한 '비판'은 솔직히 '비판'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지점에 너무 많았다. 촛불이 가장 뜨거웠던 5-6월에는 아주 소극적인 방식으로, 촛불이 소강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7-8월에는 이 때다 싶은 마음으로 조금은 적극적으로 소위 '촛불 시민'들에게 불만 토로 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촛불의 주도세력은 자유주의자'라는 식으로 손쉽게 규정해 버린 후(이런 방식은 너무 한나라당 얘들이 하는 짓하고 비슷하지 않나?) 민주당 비판할 때나 쓰는 포퓰리즘 같은 용어를 동원해 이들의 한계를 따지고 들다가 이들이 앞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버리고는 그래서 이후 새로운 운동주체의 형성에 있어서의 대안에 대한 자기 얘기는 한마디도 안하고(아니, 못하고!!) 말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누구 말마따나 그 때고 지금이고 간에, 대중의 행동은 '점수매길' 문제가 아니라, 운동주체가 이에 어떻게 개입하여 어쩌면 대중의 정치에 대한 환멸의 증폭으로만 귀결될 수도 있을 이 촛불집회를 새로운 운동주체 형성의 계기로 만들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해 왔다. 그런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위의 입장들과의 대결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대중지성'의 찬미를 늘어놓는 이들의 입장에 얼마간 동조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것 같다.

 

 

각설하고, 그런 혼란을 갖고 지내던 차에 만나 이 책이 난 참으로 반가웠다.

촛불이 꺼지고 광우병 보다 더 굵직굵직한(특히 용산참사!!) 사건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너도 나도 손쉽게 예언했던 제2의 촛불은 왜 일어나지 않는지 조금은 차분한 마음을 갖고 고민해 볼 계기를 전해 주기에 좋은 책이다.

 

 

일단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띈다. 김정한, 백승욱.

이들은 촛불집회가 뜨겁던 작년 봄에도 찬양과 냉소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잡힌 입장을 보여줘서 나에게도 참 인상깊었던 저자들이다.

 

특히 김정한의 글에서는 두가지 지점에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촛불의 성과를 교육감선거 승리로 갈무리하고자 했던 시도의 한계점에 대해서. 그의 논의는 딱히 교육감 선거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역사적으로 굵직굵직한 대중투쟁의 양상과 그에 후속해 등장하는 선거국면의 결과가 반비례하는 예들을 보여주면서 사회운동과 제도정치의 결합이 쉬운 과제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리고는 대중정치와 선거정치의 '게임의 룰'이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런 주장은 암묵적으로 촛불집회 당시 최장집, 박상훈 등이 주장했던 '원내정치로의 복귀'에 대한 일정한 비판을 암시하는 듯 하다. 둘째로 결론 부분이 참 맘에 들었는데, 촛불은 어찌되었건 간에 앞으로 벌어질 대중운동의 장기지속의 새로운 출발점을 암시할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그는 월러스틴의 말을 인용하는데, "1848년 프랑스에서의 혁명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시험무대였고, 1968년 5월 혁명이 1990년대 초 현실사회주의 몰락의 예행연습"이었던 것처럼 촛불항쟁도 전례없는 경제위기에 맞선 대중운동의 새로운 순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진짜 그럴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전적으로 운동주체들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말이다.

 

백승욱의 글은 사실 비슷한 논조의 글을 참세상에서 접했을 때에도 그랬지만, 약간 수긍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는 글을 통해서 '우리가 민주시민이다'를 넘어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노동자다.'라는 선언을 할 것을 제안했었는데, 나는 그게 가능하기나 한 얘기인가가 의심스러웠고, 또 민주시민이라는 범주에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로 나아가는게 어떻게 넘어서는 것이 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또한 당시 대중들의 행동을 "자랑스런 대한민국 만들기" 정도로 폄하하는 신기섭의 글을 치켜세우는 것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난 이게 전형적인 '점수매기기'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점수를 매기려면 너는 50점 밖에 안되니까 90점 이상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조언정도는 달려야 하는데 신기섭은 그 정도의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기존의 지식인들이 촛불의 자발성에 무비판적으로 부화뇌동하면서 '대중지성 예찬론'을 퍼트리는 조류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런 류의 주장은 그동안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어떤 것보다도 진지하고 아직도 촛불 그 이후를 고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이 곱씹어 보아야 할 주장이다.

 

 

“…촛불집회를 분석하는 이론들이 보여주는 ‘낙관주의’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론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나는 대중의 자율성의 낙관적 측면을 강조하기보다, 그 자율성이 넘어서지 못하는 경계들을 적극적으로 지적하고 그 한계를 드러내는 입장을 채택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론은 늘 오히려 ‘비관주의적’이어야 하며, 대중에 대한 상찬으로 가득한 이론적 낙관주의는 결국 대중 스스로 환상에 빠져들게 하고 정세의 엄혹함을 회피하게 만드는 알리바이에 불과할 수 있다. 더욱이,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초해, 절망 속의 대중들이 표출하는 탈정치화의 전망을 대중적 봉기로 오해해서는 안 되는 시점에 등장하는 이론적 오해는 대중에게 독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백승욱)

 

 사실 난 어떤 식으로든 '비관주의'를 앞장세우는 주장에는 마음이 거슬리는 편이긴 하지만, 이론에서의 비관주의라는 말은 현 정세를 보는 모든 이론이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엄중하고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읽은 글은 요 두개인데, 앞으로 며칠 동안 나눠서 서점에 더 출근하면서 더 읽어봐야 겠다. 사실 요렇게 특정 정세에 맞춰서 쓴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놓은 책은 돈 주고 사기에는 아까운 면이 좀 있는게 사실이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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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천에서만큼은, 그리고 삶에서 만큼은 조금은 낙관적이어도 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비관은 그저 등돌리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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