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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자신의 통계부터 따져보라

 

 

 

중앙일보>, 자신의 통계부터 따져보라
[창과 방패]정부 규모 논하다가 웬 '장관 거친 언행'?
텍스트만보기   진중권(angelus) 기자   
"정부가 주장하는 재정규모는 GDP의 28%이지만 실제 재정규모는 GDP의 38%이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 이런 내용의 탐사기획 보도가 실렸습니다. 물론 보수언론에서 주장하는 '작은 정부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기사겠지요.

하지만 복지수준이 바닥을 헤매는 한국에서 "정부의 씀씀이가 미국과 일본 수준"이라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지요. 실제로 <중앙일보>의 통계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 보도를 "국가 기본통계를 훼손하는" "위조지폐"에 비유했네요. 예산처의 한 관료는 이는 "무지의 소산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깔린 악의적 보도"라며 분개했다고 합니다. 한국은행에서도 <중앙>의 보도는 왜곡보도라는 입장을 내놨네요.

어떻게 28%가 38%로 늘어난 걸까요? 인천대 경제학과의 황성현 교수에 따르면, "어떤 기관의 활동에 시장성이 없을 때만" 정부 산하기관으로 잡아야 하는데, <중앙일보>에서 웬만한 공기업은 다 정부 산하기관에 집어넣고 그 씀씀이를 산출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전문성이 부족한 취재팀이 일부 전문가들만의 이야기를 듣고 국가의 기본 통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하루아침에 1년에 77조원을 더 쓴 정부로 만든 것도 언론의 건전한 비판과 감시 기능에 속하는지 묻고 싶다." 황성현 교수의 지적입니다.

통계의 오류에 대한 지적들이 쏟아져 나오자 <중앙일보>, "장관들의 거친 언행 도를 넘어섰다"며 지면을 장관들 언행에 관한 비난으로 도배하고 있네요. <중앙일보>에서는 먼저 자신들이 내놓은 통계가 옳았는지부터 되살펴보고, 장관의 거친 언행 따지는 건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네요.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 따지다 말고 갑자기 남의 말버릇 붙잡고 늘어지는 것. 논리학에서는 이런 걸 '논점일탈의 오류'라 부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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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神)인가?

 

 

 

예수는 신(神)인가?

다음의 예수자신의 말을 통해서 보면 그는 분명히 여호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자신이 신이라면 이런 말을 했겠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정말 잘들어 두시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할 뿐 아무 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할 따름입니다.[요한 5:19]

나는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그저 여호와께서 하라시는 대로 심판을 할 뿐입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기 때문에 내 심판은 올바릅니다.[요한 5:30]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 24:36]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그때가 언제 될른지 모르니 조심해서 항상 깨어 있으라.[마가 13:30-33]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들이 영접치 아니하나 만약 그분(another)이 자기 본래의 이름(his own name)으로 온다면 영접하리라.
[요한 5:18]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요한8:28)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요한12:49~50]

내가 아버지께로 나와서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요한16:2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한6:38~39]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3: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호와가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요한8:42]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한14:28]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7:21]

예수와 여호와가 분명 위격(位格)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죽음을 앞둔 때부터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게 될 때까지를 살펴 보면 더욱 명확히 알 수 있다.

1) 예수는 운명하는 순간 "나의 여호와! 나의 여호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면서 부르짖는다. (마태복음 27장 46절)

2) 예수는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라"하면서 약속을 한다.(누가복음 29장 49절)

3) 예수가 부활하여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마침내 하늘로 승천하였다. 이 장면을 성경은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 하늘로 올리우사 여호와 우편에 앉으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 16장 19절)

먼저 1)의 장면을 보면 예수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그 자신이 신이라는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시여! 왜 이 아들을 돌보지 않으시나이까"하면서 여호와께 원망까지 하였다.

여기까지는 아직 인성이 다하지 못하여 신성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일 것이므로 그런 대로 접어 두기로 하고 사망의 고통을 이겨내고 죽음에서 승리한 후의 예수의 모습을 보기로 하자.

2)을 보면 예수는 사망의 늪을 빠져 나와 부활한 상태이므로 예수는 마땅히 신성을 회복하였어야 함에도 아직까지도 예수는 그 자신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모르고 "내 아버지"하고 여호와만 찾았으니 이 구절 역시 예수의 신성을 입증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다음 장면인 3)를 보면 예수는 스스로를 승천하지는 못하고 무엇인가에 이끌려서 승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he was received up into heaven) 삼위일체인 예수가 스스로 승천하지 못하고 누구에겐가 도움을 받아 승천하였으니 이 또한 예수의 신성을 입증하지는 못한다고 하겠다.

또한 이끌리어 승천한 예수는 삼위일체인 여호와와 합쳐지지 못하고 하나님 오른쪽에 따로이 좌정하여 앉았다고 하였으니(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God)이것은 예수가 여호와가 아니라는 증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구약성서를 다 같이 인용하고 있는 유태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는 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이슬람교는 예수를 마호멧과 같은 예언자로 봄) 기독교는 예수를 신이라고 보고 있다.

예수의 설교를 음미하면 할수록 예수는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예수 생전에도 사후에도 변함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경의 내용이 이러한데도 사람들은 한결같이 예수를 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여호와와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여호와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여호와와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1:1~14]

여호와와 함께 있었고 말씀이 곧 여호와라고 한 다음 그 말씀이 육신이 된 분이 예수라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말씀=예수'의 등식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A(말씀)와 B(여호와)가 함께 있었다"와 "A는 곧 B다"라는 명제가 동시에 주장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이러한 논리적 모순은 영지주의의 신비주의적 세계관에서 파생한 것이며 말씀이 갖는 두 기능, 즉 우주생성론적 기능과 구속론적 기능이 동시에 주장됨에 따라 파생된 모순이다.[김용옥<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중에서]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무시하고 요한복음의 "여호와=말씀=예수"라는 공식을
무조건 인정한다고 가정하고 한 번 생각을 해 보자.

신약을  살펴보면

1)예수의 행적
2)예수의 가르침
3)예수의 생존시 함께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이야기
4)성경저자의 견해와 주관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서

1)번 예수의 행적과 3)번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이야기는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으나
2)번 예수의 가르침과 4)번 성경저자의 견해와 주관은 문제가 될 수 있다.

2)번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하면서 예수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기록한 
  대목이고
4)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 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 1:14]" 하면서 성경저자의 견해를 기록한 대목이다.

성경에서 2)번과 4)번의 내용이 같다면 상관없는 일이지만 2)번과 4)번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면 이때에는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 것인지 혼돈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은 하나는 예수의 이야기요 또 하나는 예수 추종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하여 보라. 예수는 그 자신이 여호와가 아니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가 신이라고 하였으니 예수는 여호와일까? 신이 아닐까? 요한복음의 저자가 예수보다 더 크고 위대하다면 혹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예수는 신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은 성령의 감화를 받아 쓰여진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해하면서 성경 전체를 예수의 이야기이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이건 성경저자의 견해이건 간에 구분하지 않고 무조건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데에서부터 성경은 수많은 모순을 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성경e에 있는 내용을 근거로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진 것이므로 성서의 이해는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전개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렇게 난해한 말씀도 있다.

그러나 그냥 읽어서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한 내용까지도 성령 운운한다면 성경의 존재이유가 없지 않은가? 성령을 통해서 성서를 이해를 했는지 안했는지 그 판단은 누가 하는가? 결국 인간이 하지 않는가?

기독교의 교파가 전세계적으로 25,000여 개를 넘어서는 이유가 무엇인가? 모두 인간들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모두 서로 무조건 나의 해석이 정통이고 남의 해석은 이단이라고 매도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는 스스로 밝혔듯이 여호와의 가르침을 직접 전달한 대역자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로부터 가르침을 직접 사사받은 사람들이고 성서의 저자들은 구전을 통하여 들어 두었던 내용을 견해와 주관에 따라 기록한 사람들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이러한 성경을 빌미로 하여 신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 크기를 표시한다면 " 예수> 제자들> 성경의 저자들> 기독교인"이 될 것이므로 이것을 이해한다면 성경은 의문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성경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은 "시대적인 소산물" 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는 요한복음에서 "나는 곧 길리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고 하였다.

예수가 복음을 전파하던 그 당시는 전통적인 유태인의 종교적 습관이 완고하리 만큼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때였다. 예수는 결국 그들의 손에 붙잡혀 죽음을 당하였지만 예수는 그들에게 새로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르침은 후대인 이 시대에도 경종이 될 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 시대의 정말 안 통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깨달음의 자극을 주기 위하여 이야기했던 시대적인 소산물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소산물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보다도 훨씬 이전에 세상을 다녀갔던 석가모니,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은 예수를 몰랐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없다"는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하고

조금 양심 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몽땅 지옥에 보내는 것이 안 되었던지 "그들이 가는 세계가 따로 있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이는 예수조차 모르는 사실을 그들이 더 알고 있는 셈인 것이니 예수보다 더 위대한 사람들이 기독교 안에는 많이 있기라도 한 모양이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을 종합해 본다면 예수는 스스로 신이 아니라고 이야기 해 왔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는 성자(聖子)인 여호와이다."고 믿고 있음을 볼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예수는 무능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요한복음을 기록한 저자도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예수는 곧 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예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여호와에게서 특별히 선택받아 세상에 왔으므로 예수를 무능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터이므로 이러한 추론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추론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어떻든
예수의 진위가 무엇이건 상관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고쳐가면서 신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수는 자신과 여호와는 그 능력과 위격(位格)이 서로 틀리다는 것을 누누이 말하고 있다. 성경에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명백히 쓰여진 곳이 백 군데라면, 예수가 여호와와 동일하다고 해석할 만한 곳은 한 두 구절밖에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작 예수 자신은 "내가 여호와"라고 말한 곳이 있는가?

그리고 자신이 왔을 때는 사람들이 환영하지 않았지만 다른 분, 즉 여호와가 직접 오신다면 사람들이 영접할 것이라고 예수 자신이 명백히 말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수와 여호와는 분명 다르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위일체론의 성립과정

그러면 예수의 본래 가르침이 어떻게 해서 오늘날과 같이 왜곡되었는지 삼위일체 교리의 성립과정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2세기 중엽 무렵에 당시 퍼져 있던 페르시아의 태양신 미트라 신앙이 쇠퇴하고 기독교가 로마의 중류 및 상류층까지 전파되어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313년)되고 기독교가 억압받는 자의 종교에서 로마제국 지배계급의 종교로 됨에 따라 초기 억압받던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기독교 신앙의 핵심사상(하늘나라의 도래와 예수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기대)이 변질되게 된 데에서 기인한다.

현실의 역사적 세계가 결코 변혁(종말)될 필요없이 인간의 구원은 오직 부활하는 예수를 믿음으로써 보장된다는 신앙으로 변질된 것이다.

또한 인간인 예수가 진리를 깨닫고 죽음을 뛰어넘어 신이 된 것이 아니라 애당초 신이었던 예수가 인간구원을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빌려 잠시 왔다는 식으로 변질되었다. 즉,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말살한 것이다.

예수가 세상을 떠난 지 300여년이 지난 4세기까지만 해도 3위일체론은 확고하게 정립된 교리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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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론은 4세기 초반의 초기 기독교회에 있어서 기독론(Christology)을 둘러싼 교부들의 패싸움에 기인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성서적 근거조차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마태 28:19, 고후13:14 등의 언급은 삼위일체론을 구체적으로 지칭한 것으로 볼 수 없다." [ 김용옥<老子철학 이것이다>중에서] <---

많은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예수에게 여호와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당시 "3위1체" 인정여부에 대해서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다.


아리우스(258~336)

아타나시우스(297~373)

여호와

여호와는 단 한 분이시며, 여호와는 신성의 본질과 존재를 나누어 가질 수 없다(3위를 부정)

여호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이루어져 있다.(3위 인정) 3위는 각기 완전하며, 셋이 합하여 완전한 동등성을 이룬다.

아들

예수

아들 또는 말씀은 피조물이다. 명목적으로만 여호와로 불려질 뿐 참 여호와가 아니다

아들 또는 말씀은 피조물이 아니라 참 여호와이다. 만일 로고스가 약점을 갖고 있다면 인류는 구원될 수 없다

예수는 본래 신 아니었으나 나중에 여호와에 의해서 신성이 부여되었다.(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존재)

예수는 본래 신이다. 인간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잠시 인간의 모습을 빌려 내려왔다(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말살)

 

삼위일체교리를 확립한 최대의 공로자는 콘스탄틴황제이다.
기독교 교리의 절대적인 힘을 빌려 로마제국을 강력하게 통치하려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속적, 정치적 속셈이 아타나시우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예수는 본의 아니게 신이 되어 버린 것이다.

로마제국과 기독교

로마제국이 신흥의 기독교가 모든 측면에 있어서 제국문명의 논리에 반하는 요소를 함장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를 탄압하였지만은 결국 그 역기능을 순기능으로 이용하여 기독교 그 자체를 제국문명화해 버린 역사의 아이러니를 잘 기억하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야말로, 로마제국에서 억압돼왔던 기독교 저항문화가 갖는 강력한 조직성과 반체제적 생동성을 제국문명자체의 정신적 유대감의 기저로 역이용하여 제국문명을 재건하는 기발한 구상을 도모했던 정치적 천재였던 것이다.

그 뒤로 교회와 국가의 파트너쉽은 서구라파 역사패턴의 한 기저를 이루는 형식이 된 것이다. 후대의 비잔틴 제국이나 카롤링그 왕조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의 모습에서 그러한 기독교제국의 전형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그 맥락과 종교조직적 성격면에서 매우 상이한 것이기는 하지만, 유교가 시황제(始皇帝)에 의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참상에 이르기까지 탄압을 당했으면서도 새로 정립된 한제국(漢帝國)에 이르러서는 그 제국문명의 주축을 이루는 국교(state ideology)로 등장한 것은 인류보편사적 패턴에 있어서 기독교의 운명과 대동소이한 것이다.

최소한 유교의 이론체계나 이념지향성이 제국문명의 논리에 반한다고 판단되었던 그 역기능적 측면들, 예를 들면, 종교공동체적 천명(天命)민주주의 사상이나, 고대봉건체제의 하부구조로 이상시 되었던 정전제(井田制)의 옹호라든가, 주종실(周宗室)을 주축으로 하는 정명(正名)사상의 보수성이라든가 하는 모든 역기능적 측면들을 제국문명의 순기능적 요소로 전환시키는 패턴은 동일하다. 한무제(漢武帝)야말로 중국의 콘스탄티누스대제였던 것이다.

"예수"라는 보편사적 사건이 바로 가능하게 되었던 것은 기실 알고 보면 "여호와(야훼) 하나님"의 보편성이 아니라 바로 로마제국의 논리라는 역사적 보편성이었던 것이다.

예수는 그 논리의 씨앗을 그 형성 초기에 뿌렸으며, 그것은 그러한 토양의 맥락 속에서 장대하게 성장하였으며 급기야는 바로 로마제국 그 자체의 이데올로기의 제공자로서 그 인위문명의 구조 속에서 신격화되어 세계문명사의 주요부분을 제패하기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논리와 초기부터 결탁된 예수가 오늘날 21세기에 이르기까지도 그 막강한 정경적 힘(Canonical Power)을 휘두르게 되는 것은 인류보편사의 빤할 빤자의 운명, 그 결정성과 한계성의 비극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 김용옥<老子철학 이것이다>중에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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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유다복음, 기독교 질서 뒤흔들 뜨거운 감자인가

 

 

 

외전 유다복음, 기독교 질서 뒤흔들 뜨거운 감자인가
에수의 지시로 유다가 배반했다는 기술에 대한 논쟁 격화
입력 :2006-04-07 11:00   뉴스앤조이 방철섭 기자
최근 실전(失傳) 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유다복음이 공개될 예정이어서 논란을 부를 전망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유다복음은 30년 전 이집트의 골동품 시장에 나온 것으로 지금 스위스 메세나 고(古) 미술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4월 6일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 공개되는 유다복음은 1-2세기 경 이단인 영지주의(Gnosticism, 靈知主義)의 한 분파인 가인 파(Cainites)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원래 그리스어로 된 것을 4세기 당시 이집트에서 사용되던 콥트어로 번역해 파피루스에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유다복음은 주후 2세기경 예수의 성육신 사건과 육체적 부활 부정했던 영지주의라는 초대 교회의 이단 종파가 복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으로 정경은 물론 외경에도 들지 않는 신빙성 없는 문서에 불과하다. 그런데 공개된 유다복음의 내용 가운데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의 배신이 없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을 것이고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를 생각하고자 한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기 위해 유다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자유 의지와 관계없이 무작정 따라가게 되는가 아니면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와의 관계를 설명해 보고자 한다.

첫째 생각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심에 있어서 유다의 역할이 필수적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유다복음서의 주장대로 만일 유다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성취될 수 없었는가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유다의 배반 여부에 관계없이 인류 구속 사역을 얼마든지 이루어 가실 수 있는 주권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가정(假定)이지만 만일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았을 지라도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인류 구속 사역은 성취되었을 것이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요셉을 높이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창 37:5~11)이 요셉의 형들의 음모와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이 반드시 필수적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역시 그렇지 않다 그들의 악역은 요셉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만일 요셉에게 훈련이 필요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 말고 다른 사람을 사용하실 수 있고, 다른 방법을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사람의 결정에 따라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와의 관계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인간의 자유 의지와 관계없이 무작정 따라가게 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악역을 하기로 예정되었고 그 예정에 따라 그저 악역을 했을 뿐인가 하는 것이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종으로 판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나 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유 의지로 선택한 사항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고 그들은 자유 의지로 그 일을 선택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는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한 가지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이루어지는 일기도 하면서 한편 인간의 자유 의지 가운데 선택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벌카워라는 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요셉의 형들은 머리를 짜내 계교(計巧)를 꾸미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악하고 질투심 많은 그들의 행위를 통해 지평을 밝게 비추셨다” 카슨은 말하기를, “요셉의 사건은 한편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다른 한편 하나님께 로서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해치기 위해 악한 행위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선을 이루신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일이다”라고. 이는 요셉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였나니” (창 50:20).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자유 의지를 따라 행하게 하시면서도 의도하신 목적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褓)의 물과 같이 움직이신다고 했다. (잠 21:1) 때로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마음속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이 그르치는 것을 방관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를 강제로 행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 하게 하신다.

성경에는 인간이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로봇처럼 움직인다고 하는 표현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한다.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의 선택, 동생을 팔아 넘겼던 요셉의 형들의 선택, 예수님을 사형 언도했던 빌라도의 선택,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선택 역시 모두 자신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있어서 유다가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다고 하는 것은 선정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실 맨리는 “이(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관계)는 신비에 해당하는 일이다. 성경은 신비에 대해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신비는 더 높은 차원의 계시나 조명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시편 50편 21절을 보면 “내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는 말씀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과 같지 않으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 인간으로서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의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가지고 선택하게 하신다. 그럼에도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뤄지도록 섭리(攝理)하신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관/련/기/사
“유다, 예수요구로 배반”…유다복음 일부 공개 /김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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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근대성 넘어 ‘이진경주의’로

 

 

 

 

마르크스 근대성 넘어 ‘이진경주의’로
유물론은 물질개념 탈피 ‘외부에 의한 사유’로 재해석
노동계급과 구분해 ‘프롤레타리아 되기’ 주장
오염된 마르크스주의 재구성 작업의 결실
“불온함으로 또다른 불온함 촉발 기대한다”
한겨레 안수찬 기자
[관련기사]

▲ 이진경은 탈근대주의를 거쳐 다시 마르크스로 돌아와 ‘미래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의 사유를 펼친다. 사진 왼쪽부터 자본주의 비판의 거두인 칼 마르크스, 서구 근대이성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프랑스 탈근대 사상가 미셸 푸코와 질 들뢰즈, 세계자본주의체제를 ‘다중’의 자율주의 운동을 통해 전복할 것을 제안했던 이탈리아 정치철학가 안토니오 네그리. <한겨레> 자료사진.

‘사회구성체론’ 20년만에 ‘미래의 맑스주의’로 사유 큰매듭

이진경씨의 새 책이 나왔다. <미래의 맑스주의>(도서출판 그린비)다. 그의 이력은 그가 쓴 책으로 대표된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1986년), <철학과 굴뚝청소부>(1994년), <맑스주의와 근대성>(1997년),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2000년), <노마디즘>(2002년), <자본을 넘어선 자본>(2004년>. 그는 쉼없이 생각하고 썼다.

<사회구성체론…> 이후 꼭 20년만에 나온 <미래의 맑스주의>는 그 이력에 책 하나를 더하는 의미 이상이다. 책 제목에 마르크스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실은 ‘이진경주의’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앞으로 그를 말할 때는 <사회구성체론…>과 <미래의 맑스주의>를 언급하게 될 것이다. <사회구성체론…>에서 그러했듯이, <미래의 맑스주의>에서 그는 사상가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를 따라가며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두 책의 또다른 공통점이다.

90년대 이후 그의 화두는 근대의 패러다임에 오염된 마르크스주의를 재구성·재작동시키는 것이었다. 이 화두를 풀기 위해 10여년이 넘도록 사상의 초원 위를 유목하며 고독한(실은 난해한) 전투를 벌였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 서구 탈근대론자들의 문제설정과 씨름했다. 동양사상과 생명과학 등도 섭렵했다. <사회구성체론…> 이후에 나온 모든 책들은 그런 편력의 특정한 대목을 반영하는 것이다. 책이 나올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이진경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박수를 치건 돌을 던지건,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그동안 몇몇 책에서 등장했던 독특한 사유와 개념들이 <미래의 맑스주의>를 통해 비로소 전체적인 얼개 속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유물론을 물질개념에서 탈피시켰다. “물질이란 말로부터 유물론을 해방시키지 않고서는 유물론에 대한 적절한 정의에 이를 수 없다.” 그는 물질과 관념을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유물론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대신 “유물론이란 ‘외부’에 의한 사유”라고 말한다. 이에 비해 관념론은 “내부에 의해 스스로 완결되는 사유”다. 유물론은 “모든 것의 본질은 그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의해 결정된다”는 철학이다.




이어 마르크스주의 인식론의 한계도 넘나든다. 인간과 자연의 결합을 넘어 인간과 기계와 자연의 합일을 말한다. 그의 생태학 안에서는 “기계와 자연은 더이상 대립하지 않는”다. 예컨대 “자연으로 돌아가는 보존의 생태주의가 아니라 기계와 문명조차 거대한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게 그의 세계 인식의 틀이다.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핵심인 노동가치론도 전복시켰다. 기존의 노동가치론은 “노동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자만이 인간이라는 인간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의 특권적 중심성을 제거해 노동과 비노동의 구별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명제는 과거의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과정의 기계화를 언급하면서 “이젠 ‘인간화된 기계’가 가치를 생산한다”고 말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그의 계급론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노동계급을 구분했다. 그가 보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자 계급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란 “사회를 지배하는 척도에서 배제되거나 벗어난 자들”이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되기’ 전략이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 척도에 복속되는 길을 벗어나 이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 다른 종류의 가치, 다른 종류의 세계를 창안하는 것”이 핵심이다. ‘프롤레타리아-되기’는 기존 지배질서를 거부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전략은 그가 주창해온 ‘코뮨주의’의 핵심이다.

거칠게 보자면 그는 국가·노동계급·인간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진경주의’는 확실히 ‘과거의 마르크스주의’와 상당히 다르다. <미래의 맑스주의>는 이진경이 몸담고 있는 연구집단 ‘수유+너머’가 주창한 코뮨주의적 실천에 대한 하나의 선언이거나 알리바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의 불온함이 책을 읽는 분들의 또다른 불온함을 촉발하고 증식시키길 바란다”고 적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함의를 오늘에 되살리려는 그의 깊은 모색의 끝에서, 그러나 여전히 남는 의문은 있다. 지금 이진경의 사유와 ‘수유+너머’의 실험을 불온하게 여기며 두려워 하는 이는 과연 누구인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이진경의 지적 이력

화염병→감옥→사회주의 붕괴→‘수유+너머’
포기하지 않는 혁명의 꿈 ‘코뮨주의’

400여쪽의 책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맑스주의와 코뮨주의’라는 제목의 장이다. 20여쪽의 짧은 글에서 이진경은 자신의 지적 이력을 담담하게 돌아보고 있다. “돌맹이와 화염병, 매캐한 최루가스로 가득찬 전투의 바람, 혹은 아련한 꿈같은 혁명의 바람”이 스물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적었다. 1980년대에 대한 회상이다.

그러나 감옥에 있는 동안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했다. 고민에 빠졌다. “좀 더 나은 삶의 꿈을 포기할 수 없는 한, 맑스스주의는 쉽게 버릴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아니었다.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집스런 지조로 그저 안고 가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이념도 아니었다.”

그는 기존의 사회주의 사회 역시 또다른 ‘근대 사회’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부터 ‘근대성’에 대한 긴 모색이 시작됐다. 근대적 마르크스주의를 넘으려는 모색은 “맑스주의 외부에서 던져져야 했고, 맑스주의 안에 없는 것, 그 공백을 통해서 사유돼야 했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 네그리, 심지어 동양의 화엄학까지 끌어들였다. ‘수유+너머’ 연구실을 출범시킨 것도 이때문이다. 그는 여기서 “연구와 삶이 하나로 결합된, 근대적인 것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창안하고 실험하며 새로운 종류의 습속과 무의식을 생산하는 ‘연구자들의 코뮨’”을 시도했다.

이진경은 이제 “기존의 맑스주의, 지배적 형태의 맑스주의를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계급과 혁명에 대한 구도에 다른 이질적 요소들이 침투해 뒤섞이는 것, 이미 자본주의 사회의 또다른 주류 계급이 된 노동운동을 소수화의 전략을 통해 새롭게 혁명화하는 것”을 통해 이뤄진다고 믿는다.

그런 그가 ‘급진 혁명가’가 아니라 스테디셀러 작가로 인식되는 경향은 분명 불행한 일이다. 20년전 봄에 나온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서문에서 이진경은 “사상적 논쟁 과정이 주체의 형성과정”이라고 썼다. 코뮨주의의 주체를 형성하려는 그에겐 지금 논쟁할 상대가 없다. 어쩌면 논쟁하려는 사람들이 없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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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강금실 출마선언은 한편의 연극”

 

 

 

진중권 “강금실 출마선언은 한편의 연극”
7일자 <경향> 칼럼 통해 “관조 이론 넘어 실천의 삶 사는 선언” 평가
입력 :2006-04-07 15:00   이응탁 (et-lee@dailyseop.com)기자
▲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자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출마선언에 대해 “희곡의 대사를 인용하는 등 한편의 뛰어난 연극과 같았다”고 풀이하며 “현실 안으로 뛰어드는 실천의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또 “강 전 장관의 출마선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선거전 패러다임의 변화”라며 “그가 화려한 보라색을 실천의 색으로 갈아입은 것은 사회가 색깔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영상문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진씨는 7일자 경향신문 칼럼에서 강 전 장관을 ‘여성 파우스트’로 비유하며 이같이 밝혔다.

강 전 장관 출마선언, 실천의 삶을 살겠다는 선언

그는 강 전 장관이 출마선언 자리에서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로지 영원한 것은 저 생명의 나무’라고 밝힌 것에 대해 희곡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 박사에 접근해 유혹하며 던진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 전 장관이 이런 말을 한 이유가 “한마디로 서재에 처박혀 현실의 밖에서 관조만 하는 이론(theoria)의 삶이 아니라, 현실 안으로 뛰어드는 실천(praxis)의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라고 진씨는 밝혔다.

그는 “사실 현실과 거리를 둔 지식인형의 인간에게 정치권이 보내는 러브콜은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과 다름없다”며 “파우스트처럼 강전장관도 악마의 유혹에 제 영혼을 맡겼다”고 덧붙였다.

진씨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가 가진 마법의 힘을 빌어 현실 속에서 여러 체험을 하는 것이 마치 오늘날 우리가 컴퓨터 그래픽의 힘을 빌려 사이버 공간에서 가상의 체험을 하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며 “가상과 실재, 정치와 오락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정치는 날로 ‘폴리테인멘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여당의 후보가 출마선언을 당사가 아닌 극장에서 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덕수궁 돌담을 끼고 정동극장까지 걸어가는 강금실 이벤트는 탄탄한 드라마투르기에 입각해 짠 한 편의 뛰어난 연극을 방불케 한다”며 “출마선언을 하면서 희곡의 대사를 인용한 것 역시 연극적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고양시킨다’ 역시 ‘파우스트’에 나오는 구절”이라며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을 구한 것이 박근혜라는 여성 정치인이었듯이, 위기에 빠진 열린우리당 역시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서 구원을 찾으려는 모양이지만 이 구원은 여당만의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의 구원이다”고 주장했다.

강 전 장관의 화려한 보라색, 선거전 패러다임 변화 반영

진씨는 이와 함께 선거전의 패러다임이 “2002년 서울시장 선거가 문자와 문자의 대립이었다면, 2006년 선거는 문자와 영상의 대립이 될 모양이다”이라며 강 전 장관의 출마 선언에서 이런 것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낡은 문자문화와 새로운 영상문화. 미래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말할 필요 없을 것”이라며 “게다가 우리의 정치도 서서히 살기 위한 저개발(低開發) 정치에서, 놀기 위한 과개발(過開發) 정치로 이행하고 있잖은가”라고 반문했다.

진씨는 “문자에는 색깔이 필요 없지만, 영상에는 색깔이 필수적”이라며 “색깔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영상문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잿빛 이론의 색깔을 벗고 화려한 보라색 실천의 색으로 갈아입은 우리의 여성 파우스트. 그의 앞에는 이제 정치라는 악마가 펼쳐줄 마법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며 “오늘날 메피스토펠레스의 마법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영상의 테크놀로지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하는 법이다’ 역시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인데, 인간이 실수를 한다는 것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잿빛 이론의 밖으로 나와 여러 오류를 범했던 파우스트 박사. 생의 마지막에 메피스토펠레스는 그의 영혼을 앗아가려 하나, 신은 그의 영혼을 구제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강금실의 영혼은 어떻게 될까? 정치라는 악마의 손에 떨어질까? 아니면 신의 손으로 돌아갈까? 시민이라는 이름의 신들은 그의 영혼에 과연 어떤 판결을 내릴까?”라며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글을 마무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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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마아파트 보면 정부 거짓말이 보여요

 

 

 

은마아파트 보면 정부 거짓말이 보여요
[부동산 가격의 진실ⓛ] 공시지가 시세반영률 91% 아닌 42%
텍스트만보기   김성달(seongdal) 기자   
경실련 아파트거품빼기운동은 4일부터 '대통령은 모르고, 국민은 알고 있는' 부동산 문제 진실 바로 알리기를 시작한다. 이 내용 가운데 일부를 재구성하고 추가 취재를 통해 경실련 김성달 부장이 6차례에 걸쳐 <오마이뉴스>에 글을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 서울 강남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김시연
대책이 자꾸 나오면 그 대책의 효과와 진정성은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꼭 그 꼴이다.

'8·31대책을 우습게 보지마라'던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주택가격 상승의 주범은 재건축이라며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에 중점을 둔 3·30대책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3·30대책은 실패한 8·31대책을 감추기 위한 또 하나의 미봉책일 뿐이다.

지금 집값상승이 재건축단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일까?

강남재건축단지뿐 아니라 강남의 모든 아파트와 서울 양천, 여의도, 경기도의 과천, 평촌, 분당, 용인 등지의 아파트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지방 대도시인 부산, 대구, 대전, 청주 등에서 조차 주변가격보다 2배 이상 비싼 고분양가의 짓지도 않은 아파트가 분양되고 있다.

2000년 이후 선분양 아파트의 고분양가를 정부가 방치함으로써 집값폭등 현상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참여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은 14% 정도밖에 오르지 않았다고 집값상승의 심각성을 부인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발표된 부동산대책만 30개가 넘고, 10·29, 2·17, 5·4, 8·31. 3·30 등 종합적인 부동산안정대책만 5번이나 발표됐다.

그러나 여전히 집값은 상승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대책이 미봉책 때문이고, '부동산투기만은 반드시 근절하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직도 참여정부는 거짓말과 거짓정책으로 국민을 속여가며 집값상승과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

이제는 국민들도 참여정부 부동산정책의 진실과 거짓을 알아야 하며, 경실련은 4일부터 '대통령은 모르고, 국민은 알고 있는 부동산 진실'을 연속 발표해 나갈 계획이다. 그 첫 번째는 '부동산가격의 진실 : 공시지가의 시세 반영률'이다.

믿을 수 없는 정부 통계

2006년 1월 건교부가 발표한 2005년 지가상승률은 4.98%이다. 그러나 2월 발표한 공시지가의 상승률은 17.8%이다. 정부는 지가와 공시지가 상승률의 차이에 대해 '공평과세를 위해 누적된 현실지가와의 격차를 보정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밝힌 공시지가 시세반영률이 91%인 상황에서 2006년도의 현실화율은 얼마나 되는지 밝히지 못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를 사례로 보면 정부의 주장이 거짓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은마아파트의 경우 2005년 정부가 발표한 땅 한 평의 공시지가는 평당 1600만원이다. 은마아파트의 용적률이 200%(땅 한 평에 아파트 두 평을 짓는다는 개념)이니까, 땅값이 1600만원이라면 아파트 한 평의 땅값은 평당 800만원이고, 건축비를 300만원으로 계산할 경우 아파트가격은 평당 1100만원 정도가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시세는 얼마인가? 은마아파트의 아파트 평당가격은 지난해 2500만원이었고, 올해에는 3000만원을 넘어서고 있다.

▲ <표> 공시지가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 사례
ⓒ 김성달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정부가 밝힌 지가상승률과 공시지가 상승률을 적용해봐도 알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전년대비 공시지가 상승률(17.8%)을 적용할 경우 은마아파트의 올해 공시지가는 평당 1885만원이 된다. 정부가 발표한 전년 대비 시세 상승률 4.98%를 적용할 경우 시세는 1845만원이 된다(표 참조).

결국 올해 공시지가가 시세보다 평당 40만원이나 높고, 현실화율은 102%나 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이런 엉터리 통계로 언론의 비판을 받자 건교부 관계자도 "지난해 공시지가의 시세반영율이 91%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계산이었다"고 시인한 바 있다.

경실련이 은마아파트 단지의 땅값 시세와 공시지가를 비교한 결과 시세반영도는 지난해뿐 아니라 올해도 4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실련은 132개의 필지의 공시지가와 시세를 비교한 결과 공시지가의 시세반영률은 평균 42%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은 91%라며 경실련의 주장이 틀렸다고 반박하면서도 정작 관련 자료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건교부는 올해 공시지가의 현실화율조차 공개하지 못했다. 스스로 잘못을 시인한 꼴이다.

엉터리 통계는 잘못된 대책을 부른다. 따라서 건교부는 무엇보다 공시지가 평가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엉터리 통계가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성달 기자는 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본부 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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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없었더라도 조선은 근대화되었을 것&quot;

 

 

 

일본 없었더라도 조선은 근대화되었을 것"
식민지 근대화 논쟁 ①]'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주장하는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
텍스트만보기   김종성(qqqkim2000) 기자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식민지 근대화 논쟁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일제 식민통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의 논쟁으로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 문제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이 논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일단 논쟁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필자는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주요 학자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어 보기로 하였다. 원로 경제사학자인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가 첫 테이프를 끊었으며, 그 뒤를 이어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인터뷰에 참여하게 된다. <필자 주>

▲ 주종환 동국대 명예교수.
ⓒ 오마이뉴스 김지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일본 식민통치가 단순히 조선을 착취한 데 그친 게 아니라 조선사회를 근대화시키는 데에도 기여를 했다는 이론이다. 이는 1980년대에 등장하였으며, 안병직·이영훈 교수 등이 이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영훈 교수 등은 사료와 수치를 바탕으로 한 실증적 접근법을 보이고 있다.

반대편에 서 있는 입장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일제의 착취 때문에 조선이 주체적인 근대화의 기회를 상실했다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민족주의적 접근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자본주의 맹아론'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북한·중국 등에서 활발히 연구된 자본주의 맹아론은, 서구 제국주의가 강제로 자본주의를 심어주지 않았더라도 한국·중국 등이 내재적(주체적)으로 얼마든지 자본주의 사회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논쟁의 초점은, 일제 식민통치가 한국 역사에 '독'이 되었느냐 아니면 '약'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사 청산이나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일제 식민통치는 '독'인가 '약'인가

현재 한국사회가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 대해 다소 감정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이번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각 학자들의 주장을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소개하기로 한다. 어느 쪽 입장이 맞느냐 하는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이번 인터뷰에 나오는 주종환 교수는 식민지 반봉건사회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을 지지하는 학자다. 주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일 이후 2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1단계에서는 여러 차례의 이메일 교환을 통해 기본적인 사항에 관한 질의·응답이 이루어졌고, 2단계에서는 주종환 교수의 마포구 도원동 자택에서 보충적인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경제사학자인 주종환 교수는 일제 치하에서 출생하여 일본 도쿄대학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으며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농업경제학 전공)를 받았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동국대 교수 및 농과대학장 등을 지낸 바 있는 주종환 명예교수는, 70을 훨씬 넘긴 지금도 여전히 학문과 현실참여 양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주 교수는 지난 1983년 국내에선 최초로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장한 바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관해서도 1980년대부터 비판적 입장을 개진해 왔다.

다음은 주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안녕하세요? 학문과 실천 두 방면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데,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요?
"78세이지만, 건강합니다. 아내가 4년 전에 세상을 떠나 약간 외롭지만, 자식들이 잘 보살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6·15 공동선언의 실천을 위한 통일운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선생님께서 2003년 한국경제학회 학술발표회 때 발표하신 <식민지 근대화론의 허구성 : 한국경제 근대화와 소농>이라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갖고 계신데, 그렇다면 선생님은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쪽에 서 계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일제시대의 지배적 산업은 농업이었습니다. 그 농업에서 지배적이었던 게 바로 예속적인 소작농민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자본주의가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이 시대를 '반(反)봉건 사회'였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식민지 반자본주의사회론'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일제시대는 식민지 반봉건사회

-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지난 2002년 <역사와 현실>이라는 학술지에 <조선후기 이래 소농사회의 전개와 의의>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이 교수는 1950년대까지의 한국사회를 소농사회로 규정한 뒤에, 소농은 이윤추구동기가 희박하기 때문에 소농사회가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적 사회 즉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기는 힘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반해 선생님께서는 조선조 말의 소농으로부터 자본주의의 맹아 즉 자본주의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조선시대의 자본주의 맹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자본주의 맹아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는 상품경제의 발전 정도이고, 둘은 그 상품경제의 주도세력이 어떤 사회계급 또는 계층인가라는 측면입니다. 설사 상품경제가 발전되어 있어도 직접 노동하는 농민층이 전근대적인 봉건적 지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아직 근대사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직접 경작하는 농민에게 토지소유권이 없고 봉건지주들에게 소유권이 있을 경우에는, 상품을 내다 파는 계급은 지주계급이므로 농민은 완전히 소외되어 상품의 거래담당자로 등장하지 못합니다. 그럼, 조선조 말에 근대화의 싹은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요?

나는 토지소유를 위한 소작농민들의 투쟁의 발달 속에서 그 싹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조의 농민 대부분은 경작권은 있었지만 소유권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학문용어로 달리 표현하면, 하급소유권은 있어도 상급소유권은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 소농이 토지를 소유하기 위해 지권투쟁(地權鬪爭)을 벌이는 게 근대화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 언뜻 생각하기에는 소농은 무력한 존재처럼 보이고 또 자본주의화에는 별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선생님께서는 소농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이룩한 것은, 봉건제가 가장 먼저 붕괴되고 세계에서 가장 먼저 독립자영농민 즉 소농이 광범하게 나타난 데 있습니다. 소농이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에서도 소작농을 자작농으로 만드는 것이 근대화의 초석입니다. 이런 관점은, 소작농과 자작농을 뭉뚱그려 '소농'이란 개념 속에 집어넣은 이영훈 교수의 견해로는 파악될 수 없습니다.

'조선조 말에 소농이 지배했으니까 한국이 내부의 힘으로 근대화할 가능성이 없었다'라고 보는 것은 '형태를 달리한 식민사관'입니다."(소농이 토지소유권을 차지한 다음에 상품경제의 주도자가 되는 것이 자본주의화의 길이라는 것이 주종환 교수의 인식이다. 토지소유권을 장악하기 이전 즉 지권투쟁을 벌이는 단계를, 주종환 교수는 자본주의 맹아 단계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필자주)

▲ 국가보안법 폐지 기자회견에 참여하고 있는 주종환 교수(왼쪽에서 두번째)
ⓒ 오마이뉴스 권우성
- 그런데 '평균적 토지소유'라는 것은 이미 고대로부터 동아시아 사회의 이상이 되었습니다. 중국 주나라의 정전제(井田制)는 후대에 오래도록 한국·중국 등에서 이상적인 제도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전근대 사회에서도 토지를 획득하기 위한 농민의 투쟁은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에나 농민은 토지를 소유하려고 했는데, 굳이 조선 말기의 지권투쟁만을 특별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을까요? 토지 소유를 위한 농민의 투쟁이 자본주의적인 것이라면, 그런 것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지 않습니까?
"물론 어느 시대에나 농민들은 토지를 위해 싸웠어요. 하지만, 조선조 말의 농민투쟁은 농민 스스로 주체가 되어 토지를 소유하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 이전 시기의 농민투쟁과는 다른 것이죠."(이 대목에서 이영훈 교수와 주종환 교수의 차이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영훈 교수는 소농의 농업은 자급자족을 특징으로 한다고 보았다. 지배계급에게 공납과 지대를 내기 위해 혹은 자급 불능의 생활 필수품을 구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상품작물을 재배할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자급자족에 만족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소농을 자본주의의 맹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이영훈 교수의 견해다. 이에 비해, 주종환 교수는 소농의 지권 투쟁에서 자본주의의 맹아를 발견하고 있다-필자주)

"소농의 지권 투쟁은 자본주의의 맹아"

- 한편, 이영훈 교수의 주장에 대해 연세대 최윤오 교수는 조선 후기에 '경영형 부농' 혹은 '광작 농민'이 존재했다는 점을 근거로, 조선의 농업이 자본주의적 농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반론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윤오 교수는, 조선조 말에 임금노동을 이용하는 자본주의적 광작농민(경영형 부농)이 광범하게 성립되어 있었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는 김용섭 교수의 견해를 답습한 것입니다. 이 견해는 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봅니다. 광작농민의 경영은 지주-소작 관계 아래서 이룩되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피지배농민들은 신분적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고공' 즉 종놈 같은 신분의 계층도 많았습니다.

조선조 말에 이미 '자본주의의 맹아'가 상당한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으므로 자체적 힘으로도 근대국가가 될 수 있었는데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그 싹이 잘렸다는 역사해석을 하려는 것 자체는 좋은 시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농업경영의 성립을 제시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증적으로나 지나친 해석이라고 봅니다.

조선조 말에 그렇게 농업이 근대화되어 있었다면, 일제하의 소작쟁의나 2차 대전 이후의 농지개혁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세계사적 안목에서 역사를 해석해야지, 도식적인 이론을 가지고 무리하게 선진국의 발전모형에 두들겨 맞추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이영훈 교수의 입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주종환·최윤오·김용섭 교수의 견해가 일치한다. 그런데 무엇을 자본주의 맹아로 볼 것인가를 놓고 세 교수의 견해가 나뉘고 있다. 최윤오·김용섭 교수는 "조선조에서 경영형 부농이 출현하였기 때문에 자본주의 맹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비해, 주종환 교수는 부농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소농의 지권투쟁만 갖고도 자본주의 맹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필자주)

"부농이 없었더라도 소농만으로 자본주의 맹아 인정 가능"

- 조선조 농업에 어느 정도는 자본주의적 요소가 나타났다고 해도, 그 '정도의 문제'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만약 조선조의 자본주의 맹아가 사소한 정도에 불과했다면, "일본이 아니었으면 조선은 자본주의로 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않겠습니까?
"조선이 스스로 자본주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는 유력한 증거는 바로 동학농민혁명입니다. 동학농민혁명은 하급소유권(소농의 경작권)이 상급소유권(지주의 법률적 소유권)을 물리치고 완전한 소유권으로 올라서기 위한 투쟁의 산물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운동이 실제로 폭발한 것이 동학농민전쟁이었습니다. 조선조 말의 근대화의 싹은 바로 이런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농민전쟁을 가져오게 된 정치·경제적 배경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학농민혁명은 소농 특히 살기 어려운 소작인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난 농민전쟁이었습니다. 훗날 한국에서 2차 대전 이후에 실시된 농지개혁을, 조선조 말기에 선구적으로 시도한 것이라고 자리매김할 수도 있습니다. 이 혁명은 외세의 간섭으로 무참히 짓밟혔지만, 그때 외세의 간섭이 없었다면 한국의 근대화를 결정적으로 견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영훈 교수는 이 점을 보지 않고 '소농이니까 근대화의 힘을 갖지 못했다'고 보고 있는데, 이는 소농의 역사 창조적 역할에 대한 인식 부족을 폭로한 것입니다.

조선조 말은, 그처럼 지주계급 주도의 근대화의 길과 피지배계급인 농민 주도의 근대화의 길이 첨예하게 대립한 시기였습니다. 이 두 개의 길의 대립관계를 분석하면, 그 가운데서 근대화의 싹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견해입니다. 동학농민전쟁은 소농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한국사회가 소농이 지배하는 사회였으니 자체의 힘으로 근대화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일본인 사학자들의 오래된 견해입니다. 우리 사학계는 이런 견해를 극복해야 하는데, 이영훈 교수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럼, 조선시대에 이미 자본주의의 씨앗이 나타났으므로, 일제가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도 조선이 스스로 자본주의사회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동학전쟁은 자생적 자본주의화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

- 자본주의 맹아론은 특히 북한과 중국에서 활발히 논의되었는데,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매우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한 찬성 여부를 떠나, 이 논의의 배경 자체가 정치적이고 민족주의적이지 않습니까? 서구 침략의 당위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는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런 동기 자체가 학문의 과학성을 방해하는 요인은 아닐까요?
"자본주의 맹아론이 민족주의 사관의 입장에서 주장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본다면 그것도 문제 아닐까요? 역사라는 것은, 언제나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재해석한 것입니다. 실제의 역사 과정은 객관적으로 존재하지만, 그것을 취사 선택하고 그 의미를 해석할 때에는 역사가의 주관 즉 역사관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객관적 사실 자체를 억지로 두들겨 맞추는 것은 비과학적이겠지요. 그러나 객관적 사실을 놓고 그 해석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서울대 법학과 박병호 교수는 조선조에 경작권자와 소유권자의 토지소유권 다툼에서 소유권자가 언제나 승소했다는 사실을 들어 조선조 말에 근대적 소유권이 이미 완전히 지배적이었다고 해석했는데, 나는 '이 사료를 뒤집어 보면 경작권자가 끈질기게 자기 소유권을 주장했던 사실 자체가 경작권자에 대해서도 소유권의 일부가 인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선조 말의 농지 소유권은 상급소유권과 하급소유권으로 분리되어 대립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렇듯 같은 역사적 사실도 사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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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총-경총 '양극화 해법' 시각차 커

 

 

 

민노총-경총 '양극화 해법' 시각차 커
민주노총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현"...경총 "대기업 노동자 임금 동결"
텍스트만보기   김문창(moonlh) 기자   
양극화 해소의 해법을 놓고 노동계와 경총이 커다란 차이를 보여 올 임금인상 투쟁을 놓고 노사간에 격돌이 예상된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말 가구주소득이 222만3천 원으로 가계지출 254만3천 원보다 낮아, 가구주소득격차가 2004년 -26만4천 원에서 2005년 -31만9천 원으로 그 차이가 더욱 커졌다. 근로소득 증가율과 가구소득 증가율에 견주어 가계지출 증가율과 소비지출 증가율이 웃돌고 있어 노동자들의 생활이 불안정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데 ▲정규직은 04년 8월 말 211만 원에서 05년 같은 시기 220만 원으로 9만원(4.2%) 인상 ▲ 비정규직은 110만 원에서 112만 원(2.3%)으로 인상됐다. 그 결과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월평균임금총액은 2000년 53.7%, 01년 52.6%, 02년 52.7%, 03년 51.0%, 04년 51.9%, 05년 50.9%로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고용형태별로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이 82~98% 가입되어 있는 반면, 비정규직은 31~33% 가입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유급휴가는 정규직이 81-98% 수준에서 적용받고 있지만, 비정규직은 15~20% 수준에서 적용받고 있다.

또한 영세 기업과 대기업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도 해마다 늘고 있는데 노동부 매월 통계조사(05년 1~10월)에서 500인 이상 업체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을 100으로 할 때 규모별 임금격차 추이는 05년 ▲300~499인은 2000년 89.9%-05년 80.9% ▲100~299인은 2000년78%-05년 72.7% ▲30~99인은 2000년 71.4%-05년 65.2% ▲10~29인 2000년 68.2%-05년 60.1% ▲5~9인은 2000년 58%-05년 51.9% 등으로 하락했다.

민주노총은 올 임금격차해소와 연대임금 쟁취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먼저 ▲임금격차해소와 생활임금 쟁취를 위해 전체노동자 임금의 1/2 수준으로 '법정최저임금 현실화', '산별 최저임금협약의 체결', '지자체 조례제정을 통한 지역 내 저임금해소', '원·하청 공동투쟁을 통한 임금격차 축소' 등을 제기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연대임금으로 ▲정규직은 표준생계비 확보를 위해 올해 경제성장율 5%에 물가상승율 3%를 더해 실질임금유지선 8%와, 노동소득 분배율 최고 분배율이었던 63.4%(96년)를 회복할 경우 4.6%를 더해 최고 12.6%의 평균인 9.1%(8~12.6%) 인상안을 제시했으며 ▲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동일가치 동일임금 원칙을 적용해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리려면 단계적으로 올해는 정규직의 56% 수준까지, 비정규직 임금을 17.4%를 인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원은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7개년 계획으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비율) 06년 56%(인상률 17.4%), 07년 61%(16.3%), 08년 65.9%(15.3%), 09년 70.4%(14%), 10년 74.9%(13.6%), 11년 78.1%(11.8%), 12년 80%(9.3%)를 제시했다.

한국경제인총연합은 06년도 임금조정 기본방향에서 임금조정의 기본원칙으로 ▲대외환경변화를 고려한 임금조정 ▲경제양극화해소를 위한 임금조정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 도모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적합한 인적자원 관리체계의 확립 ▲직무급과 연봉제 확산으로 임금 유연성 제고 등을 제기했다.

경총은 이러한 근거로 ▲원자재가격 인상과 환율 등 대외경제여건 악화 ▲기업규모에 따른 수익성 임금소득의 양극화 등 경제적 양극화 심화 ▲일자리 창출 역량의 저하 ▲고령화와 인건비 부담증가 등을 들고 있다.

따라서 경총은 경제양극화의 해소방안으로 기업규모에 따른 수익성, 재무구조 격차심화, 수출과 내수 및 임금 소득의 양극화를 제기하고 그 해법으로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동결과 ▲중소기업의 정기 승급분을 제외한 임금총액 2.6% 인상안을 제시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중소기업 저임금은 그대로 둔 채 대기업임금만을 동결하겠다는 것으로 책임 떠넘기기 억지 논리"라고 반박했다. 또한 "중소기업 임금 2.6%는 실질임금 유지선인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 8%에도 못 미치고, 05년 상반기 매출액 영업이익률 7.7%, 매출액 경상이익률 8.8%에 이르는 등 40년간 기업경영상태가 가장 양호한 상태를 무시한 처사"라고 꼬집었다.

그리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과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도도 없는 등 이러한 논리는 임금격차를 축소는커녕 오히려 임금격차를 확대만 야기시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민주노총과 경총이 양극화 해소와 임금 인상을 놓고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올해 임금정책과 교섭에서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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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바로 우리 문제&quot; 대학생들 '꿈틀'

 

 

 

비정규직은 바로 우리 문제" 대학생들 '꿈틀'
부산지역 대학생들 "비정규직 강행처리 반대"
텍스트만보기   김보성(jookchang) 기자   
▲ 3일 저녁 7시경 서면 아이온시티 앞에서 비정규직법 강행처리 반대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보성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4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법안을 강행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부산에서 3·4일 비정규직법안 강행 처리를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촛불시위와 대학생 기자회견이 연이어 열렸다.

특히 부산대를 비롯 경상대, 창원대학 학생대표자들이 참여한 기자회견은 등록금 인상 등 교육 문제해결에 주력해온 학생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사회적 사안에 공식대응을 표명한 것이라 주목된다.

부산민중연대, 50개 거점 대시민선전 진행

▲ 120일째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지하철해고노동자가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김보성
3일 저녁 7시경 열린 비정규직법안 강행처리반대 촛불집회는 허남식 시장의 선거준비사무소인 서면 아이온시티 앞에서 부산민중연대 주최로 부산지하철매표소해고노동자(이하 부지매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진행됐다.

지난 14일 전격 철수를 결정했던 허남식 선거캠프는 며칠 만에 아이온시티로 되돌아와 다시 업무를 보고 있다. 이에 3월 29일부터 부지매 해고노동자들은 허남식 시장에게 고용승계 약속을 요구하며 아이온시티 앞에서 거리노숙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노동당 이화수 부위원장은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비정규직 법안은 국민들을 2년짜리 비정규직 인생으로 전락시키는 법"이라며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이 강행 처리되면 일하는 사람은 금방 쓰고 갈아치우는 '1회용품 신세'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부산지역의 대표적 비정규직 현안인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문제 해결 촉구와 더불어 비정규직 법안 강행처리 저지에 힘을 모아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산민중연대는 서면을 비롯해 50개 거점에서 대시민 선전전을 진행하며 국회본회의 비정규직법안 강행처리의 부당성과 비정규직 확산반대 여론을 모아내는데 힘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부산지역 노동계는 6일부터 진행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더불어 6일 오후 2시 부산시청 앞에서 대규모 규탄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7일에는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도 총파업집회를 개최한다.

학생들 "비정규직 문제는 바로 우리 문제"

▲ 대학생들도 비정규직 확산법 강행처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본격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 김보성
ⓒ 김보성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 등 학교와 교육문제에 주력해오던 대학생들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안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걸 태세다.

부산대, 동아대를 비롯한 경상대 총학생회 등 13개 대학 학생회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는 4일 오전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악법을 강행하지 말고 청년실업문제나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이번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된다면 대학생들의 미래는 암울하다"며 학생들이 본격 대응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이들은 "몇천만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로 겨우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사회에서 결국 기다리는 것은 비정규직 신세"라며 정부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이 대학생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동아대학교 신경준(26) 총학생회장은 "등록금 때문에 몇천만원 빚을 지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며 "이렇게 어렵게 졸업하고 나면 열에 아홉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만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한 채 4월 국회에서 개악을 시도한다면 이는 대학생들의 희망을 짓밟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생대표자들은 참가자 모두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문제를 상징하는 검정봉투를 뒤집어 쓰고 퍼포먼스를 진행해 박수를 받았다. 대학이 학사모를 쓴 학생들을 볼모로 잡고 대학생들의 1년치 등록금에 해당하는 소 2마리(천만원 가량)를 잡아먹은 뒤 오리발(졸업하면 비정규직신세로 전락시킴)을 내밀고 있는 것.

"5·31 지방선거에서 대학생들의 이름으로 심판할 것"

▲ 대학생 대표자들은 미래가 암울한 현실을 상징하며 검은 봉투를 둘러쓰며 정부, 여당, 한나라당의 비정규직 정책을 비판했다.
ⓒ 김보성

▲ 소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기? 1년치 등록금인 소2마리를 잡아먹고 비정규직 오리발을 내미는 대학을 비꼬는 퍼포먼스.
ⓒ 김보성
퍼포먼스 이후 학생들은 기자회견문 낭독했다. 이들은 "정부당국과 열린우리당, 한나라당은 등록금 천만원 시대 교육재정을 확보하여 등록금 인상 문제해결의 노력보다는 사회양극화와 고용불안,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비정규직악법을 강행 처리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비정규직악법을 강행 처리한다면 학생들은 결코 방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한 "다가올 5·31 지방자치제 선거에서 대학생들의 이름으로 반드시 심판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프랑스의 상황보다 더 악화된 고용불안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요소가 있는 비정규직 법안 통과는 학생들의 반발을 필연적으로 부를 것"이라며 비정규직 문제에 학생들과 연대할 입장을 분명히 했다. 프랑스의 경우 최초고용계약(CPE) 조항 시행에 반발하는 대규모 시위의 주력이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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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박성준 교수 “순수·무욕이 한명숙의 장점”

 

 

 

남편 박성준 교수 “순수·무욕이 한명숙의 장점”
“외유 내강형, 겸허하게 국민의 말 경청해주길”
입력 :2006-03-24 20:11   연합뉴스 김병규 장하나 기자
한명숙 총리 지명자의 남편인 박성준(65)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24일 "(아내는) 진실하고 순수한 외유내강형이다. 정치쪽에서 아내의 이런 덕목이 소중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자신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아름다운가게'의 이사회에 참석한 박 교수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아내가 총리 지명자가 된 소감을 이처럼 밝혔다. 아름다운가게는 재활용품으로 나눔과 순환을 실천하는 시민단체이다.

박 교수는 "아직 인준 절차가 남아서 소감을 언급하기 부담스럽다"면서도 "장관직을 두번(환경부.여성부)이나 수행한 것과 국회의원에 당선된 과정을 살펴보면 사람에 대한 검증은 거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총리 인준에 대한 자신감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일각에서 한 총리 지명자의 운동 전력 등을 문제삼는 것에 대해서도 박 교수는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고 단점도 뒤집어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며 "(아내의) 진실한 성품과 경험이 사회 양극화를 비롯한 갈등을 아우르며 화합을 일궈내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만한 안정감 있고 또 욕심이 없는 사람인 데다 타고난 인내력 덕분에 총리직도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믿음을 보였다.

박 교수는 "앞으로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텐데 외조자며 동반자로서 격려하고 건강하도록 보살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성공회대 NGO(비정부기구)학과의 겸임교수이며 '비폭력평화물결'과 '아름다운 가게' 등 시민단체에서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박 교수는 한 총리 지명자와는 대학 재학 시절 '경제복지회'라는 기독교 학생연합단체에서 처음 만났다.

4년 간의 열애 끝에 1967년 결혼한 두 사람은 이후 여섯 달 만에 박 교수가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13년 간 떨어져 살아야 했다. 이 기간 한 교수는 여성운동에 전념하면서 옥중에 있던 박 교수를 뒷바라지했다.

한 지명자는 대전교도소에 수감된 남편이 출감할 때까지 교도소 규정대로 일주일에 한번씩 봉함엽서 한 장에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보냈고 한달에 한 번씩 면회를 갔다.

한 지명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우린 편지만으로도 깊은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철학까지 공유할 수 있었다"며 "나는 남편의 편지를 먹고 사는 새댁이었고 점점 더 강하고 맹렬한 투사가 돼 갔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박 교수는 이런 한 지명자에 대해 "누군가 나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진심에서 '나의 아내 한명숙'이라고 대답해왔고 이 마음은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아내' 한명숙에 대해 "따뜻한 사람이라서 함께 있으면 편안한 아내"라며 "내면에서 나오는 이런 힘이 여태껏 내게도 큰 힘이 돼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침에 잠깐 만났을 때에는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를 아내에게서 들었지만 아직 직접 통화를 하지는 못했다"며 "'정말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겸허한 자세로 경청하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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