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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일본 보다 노무현 정부가 더 밉다?

 

 

조선일보는 일본 보다 노무현 정부가 더 밉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조선일보의 ‘오락가락 사설’ 감상하는 법
입력 :2006-04-25 09:15:00   문한별 편집위원 (mhb1251@dailyseop.com)
천지를 뒤흔들 듯 세차게 몰아치던 동해바람이 잦아들었다. 독도 인근 수로를 탐사한다던 일본 선박은 발길을 돌렸고, 일전불사를 외치던 한국의 경비정도 한숨을 돌렸다. 22일 급작스레 마련된 외무차관 협의에서 한일 양측이 각각 한발씩 물러난데 따른 결과다.

대다수 중앙지들 "파국을 피해 일단 다행스럽지만 그러나 앞으로가 중요"

이른바 '외교적 해결'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한 이번 사태에 대해 대부분의 신문들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향후 재개될지도 모를 일본의 도발을 저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분쟁이 무력 충돌이라는 파국이 아닌 외교로 해결된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앞으로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이 문제에 주도권을 쥐고 풀어 나가느냐가 중대한 과제로 남게 됐다."(중앙일보 사설 <한·일의 외교적 합의, 얻은 것과 남은 것> 2006.4.24)

"우리는 문제를 협상으로 타결한 외교 당국의 노력을 평가한다...이번 봉합으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닌 만큼 감정이 다소 가라앉은 지금이야말로 독도·EEZ 문제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다듬어야 할 때다."(한국일보 사설<한일 EEZ갈등 끝난 게 아니다> 2006.4.24)

"이틀에 걸친 차관급 마라톤 협상의 결과다. 해상 충돌 가능성을 피한 것은 다행이지만 감정의 골은 오히려 더 커진 만큼 지금부터가 새로운 국면의 시작이다."(한겨레신문 사설 <다시 일본의 각성을 촉구한다> 2006.4.24)

"당장 물리적 충돌 등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하지만 양측이 일궈낸 타협이 미봉책에 불과함을 감안하면 갈등의 잠재적 폭발력은 더 커졌다."(국민일보 사설 <한·일 동해 갈등 일단 봉합은 됐지만> 2006.4.24)


또한 한일 우호의 정신을 동해바다에 수장시키려 한 일본의 극우적 도발을 꾸짖고 주변국과의 외교역랑을 강화시켜 그 침략야욕을 꺽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적어도 이 점에서만큼은 보수.진보의 구별이 없었다.

"일본은 세계에서의 역할을 거론하기에 앞서 이웃과 아시아를 경시하고, 왜곡된 역사관에 사로잡혀 한·일 우호를 바다에 침몰시키려는 일부 망동적 정치가들의 발호를 억제해야 한다."(중앙일보 사설 <한·일의 외교적 합의, 얻은 것과 남은 것> 2006.4.24)

"우리는 ‘도발의 천재’에 맞서 독도 주권을 당당하게 지켜 내고, 한일 관계의 대국을 보고 총체적 국익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국제적으로도 지지받는 외교를 해야 한다."(동아일보 사설 <‘도발의 천재’ 일본에 또 당하지 말아야> 2006.4.24)

"과거사와 독도를 연관시켜 일본이 다시 도발할 엄두를 갖지 못하도록 몰아붙여야 한다. 이와함께 미국, 중국, 북한 등과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서울 신문 <미봉에 그친 한·일 EEZ 갈등> 2006.4.24)

"한국은 일본, 적어도 일본 우익 세력의 침략적 과거 회귀 기도에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응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한·미동맹 강화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국민일보 사설 <한·일 동해 갈등 일단 봉합은 됐지만> 2006.4.24)


그러나 모두가 '아니오'라고 말할 때 홀로 '예'라고 외치는 자칭 '비판신문' 조선일보만은 예외였다. <한국은 언성 높이고 일본은 실리 챙기고>라는 24일자 사설 제목에서 보듯, 조선일보는 억지도발을 감행한 일본보다 노무현 정부를 두들겨 패는데 더 주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두가 '예' 라고 말할 때 홀로 '아니오'라고 말하는 신문, 조선일보

▲ 2006년 4월 24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PDF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외교적 타협으로) 한·일 양국 선박이 독도 인근해역에서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최악의 상황은 일단 모면하게 됐다"고 말하면서도, “이번 협상 결과는 일본에 유리한 것”이라고 타전한 중국 언론을 앞세워 "실제 협상결과를 냉정하게 뜯어봐도 일본이 실리를 챙겼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고 깍아내렸다.

이어 일본의 거듭되는 도발에 대해 '조용한 외교'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노 대통령의 태도와 “대한민국이 두 쪽 나도 (일본의 측량을) 막겠다”는 외교부 차관의 발언을 상기시키면서 "대통령과 외교관들이 이렇게 전의를 다지는 말들을 앞세우면서..큰소리까지 쳤지만 결과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며 "이 정권 사람들"의 빈말을 질타했다.

▲ 2006년 4월 21일자 조선 만평 ⓒ조선일보PDF 
요컨대 노무현 정부는 제목 그대로 (국내용으로) 언성만 높이고, 일본은 인근 수역의 한국식 지명 등재 시기 연기라는 실익을 챙겼으니 이번 일은 일본의 판전승이라는 게 조선일보의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국내용으로 언성만 높였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4월 21일자 조선 만평을 참조하시라. ☞)

일본이 한국의 해저지명 등록을 일단 막았으니 성공이요 독도 인근 수로측량은 역사상 한 적이 없으니 ‘안 해도 그만’이라는 논리를 우리쪽에도 굳이 적용하자면, 애당초 해저지명의 IHO 등재를 약속하거나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이 없는 정부가 이번 협상을 통해 '한국어 해저지명 상정 적절한 시기 계속 추진'을 발표문에 넣음으로써 '추진' 사실을 공식화하는 성과를 올렸으니 한국의 승리라는 논리도 가능해진다. 일본 내에서 "일본의 굴욕적 패배"라거나 "외무부는 자폭하라"는 비판의 말이 나온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나아가 일본은 이번에 무리하게 독도분쟁을 일삼다가 '오야붕의 나라' 미국으로부터도 '제지'를 당하는 아픈 장면까지 연출했다. 강경자세를 고수하던 고이즈미 내각이 야치를 급파해 외교적 해결을 모색한 것도 이러한 상황변화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를 포기하면서까지 미국에 목매던 고이즈미로선 이것이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일본의 도발에 대해 한 입으로 두 말 일삼는 조선일보의 오락가락 사설들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판정승이냐 한일의 무승부냐 하는 판정결과보다 심판역을 자임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내뱉는 조선일보의 입방정이 일관성과는 거리가 먼 '제 멋대로' 라는데 있다. 양극단을 '공간이동'하며 편리하게 노니시는 조선일보의 '오락가락 사설'들을 몇개 구경해 보시라.

먼저 일본의 도발에 대한 정부의 대응태도 여하.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이고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능멸이다. 외교적 무례를 넘어 외교적 선전포고에 가까운 만행이다.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을 보위할 헌법적 책임이 있는 대통령 이하 이 정부 사람들의 대처를 주시할 것이다. 이 정권이 친미 친일 정권이라고 비방해온 이승만 박정희 시대라면 즉각 일본과의 국교를 단절했거나 즉시 한국의 주일대사를 소환이라도 했을 것이다..."(사설 <일본의 眼下無人 앞에 대한민국 정부는 어디 있는가> 2006.3.31)

"정부는 일본의 도발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는 달리 일본 내 양식있는 인사를 비롯한 일반 국민들과의 교류까지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 국민 정서를 흥분 상태로 표출시켜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불안을 느끼게 하거나, 한국 문화에 애정을 갖고 한국을 찾는 일본인들이 발길을 돌리게 해서도 안 된다. 일본 내 도발세력이 노리는 것도 한국측의 이런 반응을 끌어내 자신들의 억지 주장이 전체 일본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계기를 마련하려는 것이며, 그럴 경우 한·일 관계는 정말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사설 <日 도발세력에게 엄정한 교훈 주어야> 2005.3.18)


다음으로, 독도 침범 선박에 대한 대처방법 여하.

"우리 정부와 국민도 일본 내부의 불순한 움직임에 보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독도 침범 선박을 나포하는 등 강력 대응하기로 한 정부 방침은 당연하다. 나아가 이번 일을 계기로 독도 문제가 예상치 않은 상황으로 번져갈 가능성에 대한 만반의 대비책도 세워두어야 한다..."(사설 <‘독도상륙’ 일본 정부가 막아라> 2004.5.5)

"일본 조사선은 국제 해양법상 어선과 같은 민간 선박이 아니라 정부 선박으로 분류된다. 해양법에 정부 선박은 영해 안에서도 나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따라서 해경이 일본 선박을 나포할 경우 일본은 곧장 이 문제를 해양법 재판소로 가져갈 것이다....이번 일본의 독도 근해 측량활동은 이런 함정을 미리 파두고 벌이는 유인 전술이다. 한국 대응 전술이 이런 함정에 빠지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사설 <일본의 독도 야욕 물리칠 전략 전술에 빈틈 없어야> 2006.4.20)


나아가, 아시아를 무시하고 미국에만 굽신거리는 고이즈미의 외교에 대한 평가 여하.

"고이즈미 일본 총리는 16일 미·일 정상회담 후 “미·일 관계가 더 가깝고 친밀할수록 중국, 한국과 더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전략적 우선순위 선택이 어느 쪽에 있는가를 확실히 알 수 있게 하는 발언이다. 외교란 말로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외교의 말에는 공짜가 없다. 반드시 대가와 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늘의 전략적 선택이 한국으로 하여금 미래에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인가를 냉철하게 따져 봐야 한다."(사설 <"설명이 필요없다"는 한중, 설명이 필요한 한·미> 2005.11.18)

"지금 일본 네오콘들은 아시아 이웃 국가들이 반발해도 미국과의 동맹만 강화하면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그러나 한국, 중국 그리고 아시아는 무력하기만 했던 100년 전의 그 모습이 아니고, 세계 역시 100년 전의 그 세계가 아니다...일본 네오콘들은 아시아의 신뢰를 먼저 얻지 못하는 한 일본은 ‘국제정치의 미숙아’로 머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사설 <아시아의 신뢰 못받는 일본은 '국제미숙아'> 2005.3.31)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마법사 지니 아니고서야 세상의 어떤 정부가 극과 극을 오가는 조선일보 사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아니, 상대를 어떻게든 트집잡아 비난하려는 의도를 갖지 않고서야 세상의 어느 언론사가 이런 정신나간 사설을 작성할 수 있을까. 생각컨대, 조선일보가 깜빡 죽는 미국의 부시도 이런 신문지 앞에선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게다.

신문의 국적을 따지기 전에 조선일보가 먼저 되새겨야 할 교훈

조선일보는 사설 마지막에 "이 정권 사람들은 이번 협상 성적표를 앞에 놓고 국가 사이의 협상 결과를 결정짓는 것은 요란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자신의 의도대로 상대 국가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는 종합적 외교역량이라는 평범한 교훈을 새겨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 전에 조선일보는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은 이부지자(二父之子)"라는 가장 평범한 교훈부터 되새겨야 하지 않을까. 논리의 일관성이나 국적을 따지는 것은 그 다음 문제일 듯 하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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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칼집에서 칼 뽑기 전에 항복 선언하다니...”

 

 

 

노회찬 “칼집에서 칼 뽑기 전에 항복 선언하다니...”
24일 홈페이지 글 올려 ‘조용한 외교’ 허상 조목조목 비판
입력 :2006-04-24 12:01:00   유성호 (bonjourpoem@dailyseop.com)기자
▲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자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측량선의 독도수역 진입계획으로 인해 촉발된 한일 갈등이 지난 22일 양국 외교차관의 협상으로 일단 봉합된 가운데, 이에 대해 ‘원칙을 지켜낸 외교적 협상의 결과’라는 청와대의 평가를 두고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노 의원은 2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조용한 외교는 조용히 끝내야 한다’를 통해 “상대방이 칼집에서 칼도 뽑기 전에 항복 선언이 나온 것”이라는 표현으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노 의원은 이번 사태에 대해 “그간의 독도 도발이 일본 수상·장관·대사 등 고위 정치인의 말로 나타났던데 반해 이번 사태의 특징은 최초의 실력행사로 나타났다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는 일부 극우단체가 아니라 일본정부에 의해 충분히 준비되고 계획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7일 야치 쇼타로 일본 외무차관은 기자회견에서 “오는 6월 국제수로기구(IHO)에서 한국이 독도 해저 지형의 명칭을 제안할 움직임이 있기 때문에 대안을 제출하기 위해서”라며 측량선의 독도 출항 배경을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19일 “국제수로기구를 통한 해저지명 등재에는 면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쳐 적절한 시기에 지명변경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발언했다.

노 의원은 반 장관의 발언에 대해 “올해 6월 21일부터 열리는 국제수로기구 회의에 독도주변 수역 18개 한국명을 등록할 예정이었던 정부 계획의 철회를 사실상 천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반 장관의 발언은) 상대방이 칼집에서 칼도 뽑기 전에 항복 선언이 나온 것”이라며 “청와대는 해저지명 등록을 결코 ‘포기’한 것이 아니라 ‘연기’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노 의원은 그 근거로 “일본 측량선도 6월 30일까지만 철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7월 이후 한국정부가 해저지명 등록을 다시 시도할 경우 일본 측량선은 다시 진입을 시도할 것이고 이번처럼 ‘원칙을 지켜낸 외교적 협상의 결과’에 의해 또다시 해저지명등록을 연기하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게 노 의원의 주장이다.

“독도 분쟁에 대해 역대 정부는 무사안일로 일관”

그는 “사태가 이렇게 되자 ‘조용한 외교’의 노선전환이 얘기되고 있다”며, “실제 ‘조용한 외교’의 한계와 허상이 지적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21일 양국 차관회담에 들어가는 한국 외교차관은 ‘대한민국이 두 쪽이 나더라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끝까지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막을 수밖에 없다’고 선언했는데, 그가 말한 ‘어떤 수단’이란 ‘한국 측 계획 철회’임이 바로 다음날 드러났다”며 “독도 분쟁에 대한 역대 정부 대응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도를 실질적으로 영유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 무사안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것이 조용한 외교의 핵심”이라며 “그러나 독도도발이 본격화된 1996년 이래 ‘조용함’은 있었지만 ‘외교’는 물론, 외교를 위한 ‘준비’도 거의 없었고, 오히려 정치적 필요에 의해 독도는 ‘천덕꾸러기’ 이하의 대접을 받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조용한 외교’가 극에 달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노 의원은 특히 지난 1981년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 방문에서 40억불 차관을 약속받은 점을 지적하고, “돌아온 그가 한 일은 정광태가 부른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방송금지곡으로 묶어버리고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을 정보기관으로 끌고 가 고문하고 독도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천명한 김영삼 대통령의 정부는 1997년 7월 독도는 마치 남의 땅인 양 울릉도를 배타적 경제수역 기점으로 하겠다고 밝혔다”며 “이렇게 하면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던 것이 ‘조용한 외교’의 본질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독도는 섬이 아니라 EEZ가 적용되지 않는 무인암초이며 그래서 지명 대신 좌표로 표기하고 한일양국의 중간수역에 포함시키는 신한일어업협정이 1998년 9월 타결됐고, 일본은 그 다음해 30억불의 차관을 제공한 점”을 문제 삼았다.

노 의원은 “‘조용한 외교’가 극에 달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라며 이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가 예로 든 것은 △1999년 신한일어업협정이 발효 후 민간인의 독도 상륙이 완전히 금지된 점 △2000년 1월 1일 새천년 해돋이 생중계를 위한 방송3사 중계팀에게 독도 입도가 금지된 점 △부산 아시안대회 당시 남북응원단이 사용한 ‘한반도기’에서 남측만 독도를 표시하지 못하게 한 점 △2002년 6월 미역걷이를 나간 울릉도 어부들에게 독도 경비대가 발포와 함께 경고방송을 한 점 등이다.

노 의원은 “그러는 동안 2000년부터 5년간 일본 시마네현 의회에선 독도문제가 모두 49건 논의됐는데, 영토 문제가 17건이었고 어업협정 문제가 20여건”이라고 밝혔다.

글 말미에 노 의원은 “외교란 소리 없는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조용한 외교는 이제 조용히 끝내야 하며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아무런 대책도 노력도 없이 일만 발생하면 군대를 보내느니 호텔을 짓느니 하는 헛발질도 그만 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독도 문제는 한미동맹, 미일동맹과도 닿아 있는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남북·한일·한미·한중 관계 등 동북아 질서 속에서 한국의 지위와 역할을 스스로 자리매김하고 그 조건을 만들어가는 전략적 고민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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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김수행교수의 정치경제학 동영상 강의

 

 

 

  선재- (2005-06-18 12:51:18, Hit : 90, Vote : 0
 김수행교수의 정치경제학 동영상 강의:1강-26강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강:  제1장 시장이란 무엇인가?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7/al001frame.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강:  제1장 시장이란 무엇인가?(2)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8/al002frame.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3강:  제2장 상품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9/3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4강:  제3장 화폐와 가격(1)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0/4gang.htm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0-1/4gang-2.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5강:  제3장 화폐와 가격(2)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1/5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6강:  제3장 화폐와 가격(3)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2/6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7강:  제4장 기업(1)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3/7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8강:  제4장 기업(2)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4/8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9강:  제4장 기업(3)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5/9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0강:  제4장 기업(4)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6/10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1강:  제5장 권력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7/11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2강:  제6장 자본축적과 노동시장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8/12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3강:  제8장 해외시장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19/13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4강: 제9강 정부 경제정책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20/14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5강: 제11장 경제위기(또는 공황)을 야기하는 환경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21/15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6강: 제12장 공황이 전개되는 과정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22/16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7강: 제13장 세계 대공황의 역사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23/17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8강: 제14장 1997년 12월 한국공황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24/18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19강: 제15장 독점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25/19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0강: 제16장 노동조합(1)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26/20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1강: 제16장 노동조합(2)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1/21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2강: 제16장 노동조합(3)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2/22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3강: 제17장 국가에 의한 경제 재편(1)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3/23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4강: 제17장 국가에 의한 경제 재편(2)
                                        제18장 자본의 세계화 경향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4/24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5강: 제19장 디지털 혁명의 국내외 파급효과
                                        제20장 한국 자본주의와 '새로운 사회'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5/25gang.htm



김수행의 정치경제학 제26강: 제20장 한국 자본주의와 '새로운 사회'(2)

http://www.junnodae.org/LectureDir/soohaeng/99612050/2001_2/06/26gang.htm


자본론 123권 요약_청년좌파 기고글 | have to know 2006/01/02 14:55
http://blog.naver.com/subbu/130000637333

내가 {자본} 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 학과 오리엔테이션 때, 어떤 교수 한 분이 '경제학도라면 졸업하기 전에 『자본』은 꼭 한 번 읽어보아야 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 뒤 『자본』을 읽기 위해 10번도 넘게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다른 책을 모두 제쳐놓고 『자본』만 옆에 두고 보면서 겨우 다 읽을 수 있었다.
자기가 읽기를 권하는 책에 대해 '읽기 어렵다'는 말부터 한다는 것이 어쩌면 엉뚱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자본』은 정말로 읽기 어려운 책이다. 분량도 만만치 않으려니와 내용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 자본주의가 인류의 미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본』을 '읽어야 한다'는 것은 21세기인 지금도 여전한 진실이다. 또한 '읽어야 한다'는 진실이 '읽기 어렵다'는 것은 사실을 충분히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연재를 시작한 것은 이런 진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한 것이며, 어렵다는 자본 읽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자본』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성실하게 읽는 것이다. 대학 입시에서 수석한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흔히 '잠 충분히 자고 과외 받지 않고 교과서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알지만 『자본』을 읽으려 마음먹었다면 그야말로 '교과서에 충실'해야 한다. 나는 이제까지 한국에서 나온 『자본』을 해설했다는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자본』보다 쉬운 해설서를 본 적이 없다. 『자본』을 가장 빨리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자본』 자체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비봉출판사가 발행한 것을 교재로 선택하였다. 이 책이 가장 좋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많이 팔리고 구하기 쉽기 때문에 결정한 것이다. 북한에서 나온 『자본』을 그대로 다시 찍은 백의판이나 독일어를 직접 번역한 이론과 실천판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으나, 학자로서 깊게 연구하는 바가 아닌 다음에야 다들 비슷하다고 본다.
우리가 교재로 선택한 비봉판 『자본』은 1989년에 출판되었다. 영국에서 10년 동안 『자본』을 공부한 김수행 교수가 번역하였는데 1991년에 개역판을 내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항간에 "독일 관념철학도 모르고, 운동도 알지 못하면서 자본을 번역할 수 없다"는 비판이 있지만 현재 한국의 『자본』 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연재하는 분량은 일주일 읽을 정도를 기준으로 할 것이다. 때때로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진행하려 한다. 넉넉잡고 6개월만 따라오면 『자본』 1권을 독파할 수 있을 것이다. 첫 회인 이번에는 자본 발간사와 서문들만 살피기로 한다.

 

 

『자본』이라는 책


1843년 말 빠리로 쫓겨온 맑스는 경제학 연구에 들어갔다. 이 연구의 성과들은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로 남았다. 하지만 맑스가 경제학을 본격 연구한 것은 1849년 8월 런던으로 망명한 뒤이며 경제사, 각국 경제학, 영국의 고전경제학을 공부하였다.
맑스는 1857년 8월부터 1858년 6월까지 『자본』의 초고라고 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비판요강』을 작성하였다. 여기서 맑스는 자본주의를 자본, 토지소유, 임금노동, 국가, 국제무역, 세계시장으로 나누어 분석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1851년 맑스는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섯 주 뒤면 경제학 연구가 끝날 것이라고 했지만 『자본』 1권이 발간된 것은 그로부터 16년 뒤인 1867년 9월 14일이었다. 발행 부수는 1000부, 가격은 3⅓탈러(thaler)였다. 당시 최저 생계비가 100탈러였다고 하니 그리 비싸지는 않았던 듯하다. 『자본』은 독일에서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아 맑스의 어머니 헨리에테는 맑스에게 '돈에 대한 책을 쓰는 대신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나 프랑스에서는 많은 호응을 얻어 '노동계급의 성경'으로 될 기초를 마련하였다.
1872년 프랑스어 판을 내면서 맑스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고쳤는데 이 때 독일어 판과는 다르게 편, 장, 절을 구성하였다. 우리가 교재로 선택한 비봉판은 바로 이 프랑스어판을 번역한 영어판을 대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편, 장, 절의 구성이 백의판이나 이론과 실천판과 조금 다르다.
맑스가 죽은 뒤 엥겔스는 1883년에는 『자본』 제1권의 독일어판 제3판, 1890년에는 제4판을 출판하였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출판되는 『자본』은 대부분 이 독일어판 4판을 번역한 것이다. 아울러 1885년에는 제2권, 1894년에는 3권을 발간하였다.

 

서문들에 대한 해설


자본 읽기에 실패한 사람들이 흔히 서문부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문은 말 그대로 앞으로 무슨 얘기를 할 것인가를 써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니다. 그래도 부담이 가는 사람은 제1판 서문만이라도 주의 깊게 읽어보기 바란다. 1판 서문에서 맑스는 『자본』의 연구대상이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적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이며 최종목적은 '현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2, 3, 4권에 대한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제2판 후기에서는 2판에서 수정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헤겔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을 반박하였다. 제3판은 맑스의 죽음을 기념하여 1883년 출판한 것인데 여기서 엥겔스는 맑스가 없는 지금 자기의 임무는 자본을 정리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1886년에 나온 영어판은 맑스의 막내딸인 엘리너(Eleanor)와 사위 에빌링(Aveling)가 번역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자본이 유럽에서 '노동자계급의 성경'이 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4판은 프랑스어판과 맑스의 친필각서를 대조하여 수정한 사실을 밝히고 맑스에 대한 악선전을 논박하고 있다.


■ 청서(靑書, Blue books, p 7) : 발표된 영국 의회의 자료와 외무성의 외교 문건들을 모은 것으로 표지가 청색이었기 때문에 청서라 하였다. 17세기부터 출판되었으며 영국의 경제사와 외교를 연구하는데 기본이 되는 자료이다.

■ 꼬마 라스커(p 35) : 1871년 11월 8일 제국의회에서 국민자유당의 라스커 의원은 베벨과의 논쟁에서, 만약 독일의 노동자들이 빠리꼬뮨 참가자들의 예를 본받으려고 한다면 "정직한 유산시민들이 곤봉으로 그들을 때려죽일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표현을 공표하지 못하고 대신 속기록에는 "그들을 곤봉으로 때려죽인다"를 "그들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진압할 것이다"라고 바꾸었다. 베벨이 이 변조를 폭로하였고, 라스커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작은 체구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꼬마 라스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 성 조지의 탈출구(p. 37) :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에 폴스텝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영화 [비트]의 찬규(임창정)처럼 혼자 15명과 싸웠다고 이야기하는 허풍쟁이이다. 그의 말을 빗대 표현한 것이다.

■ 신화 속의 인물-페르세우스(p 5 페르세우스의 도깨비감투 참조) : 그리스 남부 아르고스왕국의 왕 아크리시우스에게는 다나에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는데 제우스가 그녀에게 반해 페르세우스가 태어나게된다. 그러나 예언자들이 페르세우스가 할아버지를 죽일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여 어머니 다나에와 함께 바다에 버려졌다. 하지만 이들은 어부에게 구출되어 세리포스섬에서 살게 되었다.
세월이 흐른 뒤 세리포스 섬을 다스리던 왕이 페르세우스의 어머니 다나에를 차지하려다 페르세우스때문에 실패하게 되자 왕은 그를 없앨 음모를 꾸미게 된다. 왕은 페르세우스에게 고르곤의 세 괴물 가운데 하나인 메두사의 머리를 가져오게 하였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었으나 자신의 미모를 자랑하다가 여신 아테네의 미움을 사 머리카락이 뱀이고 그 눈을 쳐다본 사람을 돌이 되어 버리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네에게서 거울 같은 청동방패를 받고, 요정들에게 날개 달린 샌들, 물건을 마음대로 운반할 수 있는 자루, 보이지 않는 모자를 얻어, 잠들어 있던 메두사를 처치하였다. 메두사를 처치하자 남은 두 괴물이 잠에서 깨어났으나 페르세우스가 보이지 않는 모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들키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페르세우스는 에디오피아 여왕 카시오페이아의 딸 안드로메다를 구출하고 그녀와 결혼하였다.
훗날 페르세우스는 자기가 태어난 아르고스왕국에서 원반던지기에 참여하였는데 우연히 그가 던진 원반에 관중석의 한 노인이 맞아 죽었다. 이 노인이 바로 페르세우스의 할아버지 아크리시우스였다. 페르세우스와 안드로메다가 죽자 여신 아테네는 그들을 하늘의 별자리로 만들었다. 요즘 같은 가을철 초저녁에 잘 보이는 페르세우스자리는 카시오페이아자리 바로 밑에 있다.

 


<교재 1권 43쪽~51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1장 상품
제 1절 상품의 두 요소 :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 상품분석으로 시작하다


맑스는 『자본』의 첫 구절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富)는 "상품의 방대한 집적"으로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이란 말이다. '부'라는 말은 이미 고전파 경제학자들도 사용하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사회형태를 고려하지 않고 쓴 데 비해 맑스는 역사적인 의미로 '부'라는 말을 쓰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부'란 '자본주의 사회의 부'인 것이다.
맑스는 자본주의를 해명하는 기나긴 여정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기본형태를 이루는 상품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본질인지 환상인지는 모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눈에 보이는 부의 형태가 상품이기 때문이다. 모든 부의 형태는 상품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예제 사회나 중세사회에서 부의 형태는 상품이 아니라 노예나 농노의 숫자였던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품은 자본주의에서 '부'의 내용과 사회형태를 함께 보여주며, 부르주아 사회의 세포형태를 이루고있다. 따라서 이는 자본주의 사회 분석을 상품으로 시작하는 이유로 모자라지 않는다.
다음으로 맑스는 상품을 정의한다. 정의한다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인간의 온갖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쓸모 있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 물건의 유용성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체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제약받고 있으며 그 상품체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고 못박는다. 이것도 아주 상식적인 내용이다.
맑스는 상품의 두 요소인 사용가치와 가치에 대한 분석을 거쳐 1절 끝에서 상품을 다시 정의한다. "어떤 물건은 상품이 아니면서 유용할 수 있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로써 자기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사용가치를 만들기는 하지만 상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는 사용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여기에 엥겔스는 사람들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생산물을 사용가치로써 사용하는 사람의 손으로 교환을 통해 이전되어야 한다"고 각주를 붙이고 있다.

 

□ 사용가치와 가치


맑스는 쓸모 있는 물건이라고 상품을 정의하면서 '사용가치' 개념을 끌어내고, 이어서 '교환가치' 개념을 끌어내고 있다. 사용가치는 "부의 사회적 형태가 어떠하든 부의 소재적 내용을 형성"하며 "우리가 고찰하는 사회 형태에서는 동시에 교환가치의 물적 담당자"이다. 그런데 교환가치는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이다. 그런데 특정한 상품의 서로 다른 교환가치들은 동일한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으며 교환가치는 "교환가치와는 구별되는 그 어떤 내용"의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이다. 만약 동일한 "그 무엇"이 없다면 교환되는 두 물건은 서로 비교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용가치를 무시해야 한다.
상품을 사용가치로 볼 때는 질적으로 구별할 수 있지만 교환가치로 볼 때는 오직 양적 차이만이 문제가 된다. 상품체의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즉 그것이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만 남는다. 그런데 사용가치를 무시했으므로 노동생산물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유용한 성질, 노동의 구체적 형태도 사라지고 노동은 모두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노동생산물에는 "인간노동의 단순한 응고물"만 남게 된다. 노동생산물은 이제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로서 가치, 상품가치"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이미 상품들이 교환될 때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와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보았다. 상품의 사용가치를 무시하면 남는 것은 상품의 가치뿐이다. 따라서 상품의 교환관계 또는 교환가치에서 나타나는 공통인자는 바로 상품의 가치다. 교환가치는 가치의 필연적인 표현양식 또는 현상형태일 뿐인데 이는 1절의 분석대상이 아니다. 맑스는 3절에 가서야 이것을 분석한다.
가치의 실체는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무차별한 인간 노동, 그 지출 형태와 관계없는 인간 노동이다. 그런데 1절에서 말하는 동등한 인간 노동, 추상적 인간 노동 개념은 아직 생리학적 동등성에 머물고 있고 사회적 의미는 아직 분명히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면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가치의 크기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으로 측정한다. 노동의 양은 노동의 계속시간으로 측정하고 노동시간은 시간․일․주 등을 기준으로 측정한다.

 

□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


만약 상품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지출된 노동의 양으로 결정된다면 나태하거나 미숙련인 사람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진 상품을 생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치의 실체를 이루는 노동은 동등한 인간노동이며 동일한 인간노동력의 지출이다.
여기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 숙련도와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노동시간"이다.
그런데 어떤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은 노동생산성에 따라 변한다. 노동생산성은 또한 노동자들의 평균적 숙련도, 과학기술의 발전 정도, 생산과정의 사회적 조직, 생산수단의 규모와 능률, 자연조건에 따라 변한다. 결국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실현되어 있는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

※ 이번 호는 『자본』 1장 1절의 내용을 교재에 따라 재구성하는 데 주력하였다. 책과 다른 것이 없다고 불평할 독자들을 위해 다음 번에는 1절을 다시 정리하고 1장 전체에서 1절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 아가니페(aganippe)


'경제'(經濟)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줄인 말로 '세상의 질서를 세우고 백성을 구한다'는 뜻이다. 원래는 중국의 고전인 {시경}에 나오는 말인데, 근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에서 영어 '이커너미(Economy)'의 번역어로 쓰기 시작했다.
그러면 Economy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 말은 오이코노미아(oikonomia) 또는 오이코노모스(oikonomos)라는 그리스말에서 나왔다. 오이코스(oikos)는 그리스말로 집을 뜻하고 노미아(nomia) 또는 노모스(nomos)는 '관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이코노미아, 오이코노모스 그리고 여기에서 온 이커너미는 '집안 살림을 관리한다'는 뜻이다. 좀더 피부에 와 닿게 말한다면 '가계부를 쓴다'고 하면 적당할까.
그런데 중세가 끝나고 국민국가가 나타나면서 국가경제 전반을 관리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나라의 살림을 관리한다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이커너미 앞에 나라를 뜻하는 내셔널(National)이나 정치를 뜻하는 폴리티컬(Political)이란 말을 붙이게 되었다. 따라서 National Economy를 국민경제학으로 Political Economy를 정치경제학으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냥 경제학이라고 하면 된다.
한 때 맑스주의 경제학을 소개한 책들이 정치경제학이란 제목을 붙이고, 요즘도 많은 사람들이 맑스주의 경제학을 일컬어 정치경제학이라고 말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는 아주 잘못된 것이다. 리카도의 저서는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이며 맬서스의 책은 {정치경제학원리}이었고 이들의 경제학을 비판한 맑스는 『자본』의 부제를 "정치경제학 비판"이라 하였다. 따라서 정치경제학이란 맑스주의 경제학이 아니고 그 당시의 경제학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래도 맑스주의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이라 하고 싶은 사람은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1장 상품
제 1절 상품의 두 요소 : 사용가치와 가치(가치의 실체, 가치의 크기) ---1장 1절 보충


□ 상품분석의 의미

 

지난 호에서는 1장 1절의 내용을 교재에 따라 재구성하였다. 앞서 말했던 대로 맑스는 상품분석을 자본주의 연구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런데 처음에 맑스는 상품이 노동 생산물의 유일한 형태인지 또는 그저 하나의 형태인지 분명히 하지 않는다. 이는 뒤에서 상품 분석을 통해 해명할 과제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일단 상품을 주어진 것으로 하고 논의를 전진시킨다.
참고로 맑스가 상품에 주의를 기울인 것은 1858년 여름쯤이었다. 이 때 쓴 {정치 경제학 비판 요강}에 "부르주아적 부가 현상하는 최초의 범주는 상품 범주"라는 구절이 보인다. 우리는 앞으로 3절 가치 형태를 공부하면서 맑스가 왜 그리 상품분석에 힘을 기울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상품을 정의할 때도 맑스는 상품을 쓸모 있는 물건이라는 측면과 사회형태라는 측면에서 이중으로 정의한다. 1절의 제목이 [상품의 두 요소]라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먼저 상품을 쓸모 있는 물건이라고 정의할 때 맑스는 상품을 사용가치로 볼 때는 역사의 어느 단계와 관계없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물건이라고 말한다. 그 욕망이 어디서 생겨나든 관계없이, 또한 그 물건이 생활수단이든 생산수단이든 관계없이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모든 물건이 상품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회 형태를 고려하여 상품을 다시 정의한다. 1절 끝 부분에 있는 정의가 바로 이것이다[50쪽 15째줄~51쪽 9째줄 참조].
결국 모든 노동 생산물이 원래부터 상품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맑스의 결론이다. 노동 생산물은 단지 특정한 사회조건에서만 상품이 된다. 맑스가 상품 분석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점은 바로 이러한 특정한 사회 조건, 특정한 생산 관계이다. 이것이 상품 분석의 목적이다. 우리는 3절과 4절에서 어떠한 사회 조건이 노동 생산물을 상품으로 만드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은 상품의 두 요소를 밝히는 일(1절)과,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이중적 성격을 밝히는 일(2절)이었다.

 

□ 가치개념의 도출-소극적 추상

 

맑스는 사용가치와 가치도 각각 형태, 본질(실체), 크기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이러한 세 가지 관점은 각각 동일한 대상에 대한 서로 다른 분석 수준을 뜻한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상품학이라는 특수분야의 연구대상"이므로 맑스는 별도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환가치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살펴본다. 왜냐하면 교환가치는 현실세계에서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로 나타나지 않고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맑스가 사용하는 방법이 이른바 '소극적 추상'이다. 먼저 사용가치의 질적 차별성의 제거하고, 그 다음 노동의 유용한 성격을 제거한 뒤, 생산적 노동의 여러 구체적 형태를 제거하는 방법을 통해 상품의 교환을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교환의 배후에는 "공통적인 …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인 "가치, 상품 가치"가 있음을 밝혀낸다. 이처럼 어떤 개념에서 그 개념을 규정하고 있는 요소를 하나씩 제거하면서 다른 개념을 도출하는 방법을 '소극적 추상'이라 한다.
이제 소극적 추상을 통해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으로서 나타나며 남는 것은 상품의 가치뿐이다. 그런데 1절에서는 가치를 그 형태라는 관점에서 분석하지 않는다. 1절은 상품의 두 요소 가운데 사용가치를 제거한 뒤 노동생산물의 가치로 나아가고 그 실체를 밝히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교환가치야말로 가치의 필연적인 표현 양식 또는 현상 형태임을 보게 될 것"이므로 "당분간 가치의 성질을 그 현상형태와는 관계없이" 살펴보겠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지난 호에서 가치의 크기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인 노동의 양"으로 측정하는데 노동의 양은 노동 계속 시간으로, 노동 시간은 다시 시간․일․주라는 자연시간의 일정한 단위들로 측정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미 인간 노동은 지출 형태와 관계없이 생리적으로 동등한 노동으로 환원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1 노동 시간은 1 자연 시간이 된다. 그러나 1 자연 시간을 1 노동 시간으로 만드는 사회관계는 3절 가치형태를 통해서만 명확히 밝힐 수 있다.

 

□ 들어간/들어갈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란 개념도 주의해야 한다. 1절에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 개념은 마치 '가치 크기가 생산 과정에서 투하된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맑스는 『자본』 1권의 다른 부분에서 가치 크기는 '들어간' 노동량이 아니라 '들어갈' 노동량에 따라, 즉 같은 상품이 재생산될 때 필요한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사적․구체적 노동이 사회적․추상적 노동으로, 또한 질적으로 같아지기 위해, 그리고 질이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가치 크기가 결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환이라는 매개가 필요하다. 교환이 전제되지 않고서 이런 개념들은 전혀 의미가 없다. 따라서 가치 크기는 교환 국면에서 결정되고 그것은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앞으로 들어가야 할 노동량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맑스가 1절에서 가치 크기를 투하된 노동량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1절에서 맑스는 개별 노동력이 평균 노동력으로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 부문에서 일정량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시간으로 충분히 비교할 수 있다. 둘째, 부문 사이의 동등화 문제도 1절에서는 사용가치의 차별성과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의 차별성을 제외했기 때문에 상품 생산에 들어간 노동량의 문제로 살펴볼 수 있었다. 셋째, 교환은 생산 과정에 대립되는 국면이지만 동시에 상품이 교환을 전제로 생산된다면 교환과 생산은 직접 연결되기 때문이다.

정리하면, 1장 전체를 볼 때 1절에서는 상품의 두 요소,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관점에서 가치 실체를 밝히고 2절에서는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이중성이라는 관점에서 가치의 실체를 파헤친다. 또한 1절에서는 추상력의 도움을 받아 가치의 실체와 크기만을 분석하지만 3절에 가면 교환 가치가 가치의 필연적 현상 형태임을 밝히고 있다.

 

□ 상향법과 하향법

 

맑스가 경제학의 방법에 대해 서술한 저작은 ‘『정치경제학의 비판을 위한 기본 개요』서설'이다. 이는 미완성의 저작으로 1857년 8월말에 쓴 것이다. 박종철 출판사에서 나온 『맑스 엥겔스 저작선집』 2권에 실려 있고 경제학 방법은 460쪽~470쪽에 해당하며 분량도 작으니 꼭 읽어보기 바란다.
여기서 맑스는 경제학의 방법으로 상향법과 하향법 두 가지를 들고 상향법을 과학적으로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다[맑스는 상향법, 하향법이란 용어를 쓰지 않았으나 서술을 편하게 하기 위해 이렇게 부르기로 하겠다].
하향법은 17세기 경제학자들이 쓴 방법으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인구, 국민, 국가)에서 출발해 점차 단순한 것으로 나아가 마지막으로 가장 추상적인 규정(분업, 화폐, 가치)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구체에서 추상으로,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반대로 상향법은 스미스나 리카도 같은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사용했다. 이는 노동, 분업, 교환가치 같은 단순한 것에서 출발해 점차 복잡한 것으로 나아가고 마지막으로 국가, 국가 사이의 교역, 세계시장 같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맑스는 경제학을 연구할 때는 구체에서 추상으로 가는 하향법을, 서술할 때는 추상에서 구체로 가는 상향법을 썼다. 여기서 구체란 '어떤 관계 속에 들어 있는', '어떤 관계로 규정된'이라는 뜻이며, 추상이란 어떤 규정이나 개념들에서 관계를 떼어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추상에 관계를 하나씩 도입하는 것을 구체라 한다. 그런데 추상에서 구체로 갈수록 외연은 좁아진다. 예를 들어 생물→동물→포유류→사람으로 갈수록 관계는 하나씩 더 도입되나 그 안에 포함되는 원소의 수는 작아진다. 『자본』의 서술 체계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 상품으로 시작하여 화폐→자본→산업자본으로 나아간다. 『자본』의 편, 장, 절들의 제목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절 안의 내용들을 서술할 때는 누구나 알 수 있고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것부터 써서 자신의 논리적 서술을 맨 끝에 쓰고 있다. 당시 사람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였던 듯하다. 왜냐하면 맑스는 스스로의 말대로 "지금까지 경제문제에 적용된 일이 없는" 독특한 방법으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교재 1권 52~58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1장 상품
제 2절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 고전파 경제학의 울타리를 벗어나다

 

지난 호까지 상품에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두 요소가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살펴본 바 있다. 마찬가지로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도 사용가치를 만들어내는 유용노동과 가치를 형성하는 추상적 인간노동이 통일되어 있다.
이 점은 맑스 말대로 ꡒ경제학의 이해에 결정적으로 중요ꡓ하다. 노동의 이중성 분석은 고전파 경제학과 맑스를 구분하는 분수령이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치를 단지 그 상품 생산에 들어간 노동량이라고 하였지만 맑스는 특정한 사회관계의 표현인 추상적 인간노동이 가치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맑스에게 가치를 형성하는 노동인 추상적 인간노동 개념은 모든 생산방식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 범주가 아니라 특정한 생산방식에서만 나타나는 역사적 개념이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상품의 가치가 그 상품 생산에 들어간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왜 노동이 노동 생산물의 가치로 표현되며 또 어떤 노동이 그렇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스미스는 이를 해명하지 못해 ꡐ가치의 역설ꡑ에 시달렸으며, 리카도는 질이 다른 노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ꡐ95% 노동가치설ꡑ이라는 기묘한 말로 피해갔다. 이 문제를 처음으로 명쾌하게 풀어낸 사람이 바로 맑스이다. 이 개념을 통해 맑스는 고전파 경제학의 울타리를 벗어났으며, 출발 자체를 다르게 할 수 있었다.

 

□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

 

먼저 유용노동을 살펴보자. 유용노동은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이다. ꡒ그것의 유용성이 그 생산물의 사용가치로 표현되는 노동ꡓ이 유용노동이다. 따라서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유용노동이 들어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용가치는 만약 거기에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이 들어있지 않다면, 상품으로서 서로 대면할 수 없다. 또한 사회의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개별 생산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사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유용노동 사이의 이러한 질적 차이는 하나의 사회적 분업으로 발전한다.
사용가치를 창조하는 노동, 유용노동으로서의 노동은 사회의 형태와 관계없는 인간생존의 조건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한 이래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사용가치를 생산해왔다. 원시인의 돌도끼며, 중세의 성경이며, 현대의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한편, 상품의 사용가치는 자연소재와 노동이라는 두 요소의 결합이다. 노동은 그것이 생산하는 사용가치[즉 물적 부]의 유일한 원천은 아니다. 이 점은 주의를 기울여 둘만 하다. 흔히 맑스가 ꡐ노동만이 부의 원천ꡑ이라 말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맑스는 이렇게 말한 적도 없고, 이는 맞지도 않는 얘기이며 오히려 자본의 이데올로기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계급사회에서는 부의 원천 가운데 하나인 자연소재는 생산수단이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해야하다고 해야 정확하다.
다음으로 추상적 인간노동을 살펴보자. 먼저 추상적 인간노동은 생리학적으로 동등한 노동이다. ꡒ재봉과 직포는, 비록 질적으로 다른 생산활동이기는 하나, 모두 인간의 두뇌․근육․신경․손의 생산적 소비이고, 이 의미에서 모두 인간노동이다ꡓ 그런데 유용노동의 질적 차이를 제거한 인간 노동에서는 오직 양적 크기, 계속 시간만이 문제가 된다.
추상적 인간노동은 또한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추상적 인간노동은 가치의 실체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결코 가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추상적 인간노동은 그대로 가치인 것이 아니라 상품으로 대상화되고 물질화될 때 비로소 가치로 된다.
1절과 2절에서는 사용가치의 제거, 유용노동을 생리학적으로 동등한 노동으로 환원해서 추상적 인간노동을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적 인간노동 개념에는 생리학적으로 동등한 인간 노동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맑스는 추상적 인간노동 개념이 가지는 적극적 의미를 3절의 가치형태론을 통해 전개한다. 3절에 가서야 상품의 가치는 오직 상품과 상품 사이의 사회 관계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사적 노동이 교환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사회화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이 추상적 노동 개념이다. 그런데 유용노동의 형태로 실제로 들어간 노동량과 추상적 노동량은 개별적 경우에 모두 일치하지 않는다. 유용노동의 형태로 투입된 노동량이 어느 정도의 추상적 노동량으로 환산될 것인지는 교환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다.
상품의 가치는 순전한 인간노동을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인간노동이라는 것은 특별하게 발달하지 않은 보통 인간이 자기 육체 속에 평균적으로 가지고 있는 단순한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다. 단순한 평균 노동 자체도 나라와 발전단계에 따라 다르지만 일정한 사회에서는 이미 주어져 있다. 추상적 인간노동 개념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제 복잡한 노동은 단순노동의 배수로 표시할 수 있는데 이는 이미 현실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숙련공이 미숙련공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
한편, 노동 생산력은 유용노동의 생산력이다. 노동 생산력이 두 배로 되면 같은 노동이 유용노동으로서는 같은 시간 안에 두 배의 사용 가치를 만들어내지만 추상적 인간노동으로서는 같은 시간 안에 같은 크기의 가치를 만들어낼 뿐이다.

 

□ 정리 :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맑스는 다음과 같이 2절을 정리하고 3절로 넘어간다.

ꡒ모든 노동은 한편으로 생리학적 의미에서의 인간 노동력의 지출이며, 이 동등한 인간 노동[또는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상품의 가치를 형성한다. 모든 노동은 다른 한편으로 특수한 합목적적 형태에서의 인간 노동력의 지출이며, 이러한 구체적 유용노동이라는 속성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한다.ꡓ


■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1623~1687)

영국의 해부학자, 측량가로 근대경제학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다. 남부 잉글랜드의 작은 도시 램지(Ramsey)에서 모직생산자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네덜란드, 프랑스에서 의학과 해부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잠시 옥스퍼드 대학의 해부학교수가 되었다. 크롬웰에게 인정받아 1652년 공화국 파견군의 군의관으로 아일랜드에서 활동하다가 왕정복고 뒤 학문에 몰두했다.
1661년 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왕립협회 창립에 힘썼다. 그리고 1667년 『조세공납론』(Treatise of Taxes & Contribution)을 썼다. 『조세공납론』은 국가 재정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다룬 책이다. 당시 영국은 청교도 혁명을 거치면서 근대 조세제도가 도입되어 국가재정이 국민들의 조세를 기초로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던 시기였다. 페티는 국가재정을 경비와 수입 모두 공평하게 부과한다는 조세원칙 아래 재정을 파악하고 있는데 이는 고전파 재정학의 기초가 되었다.
또한 이 책에서 페티가 근본원리로 삼은 것은 ꡐ토지가 부의 어머니인 것처럼 노동은 부의 아버지이며 그 능동요소이다ꡑ라는 사상이었다. 그는 조세원칙에 입각해 세원이나 조세전가의 원인을 밝혔고, 이 과정에서 지대의 신비로운 성질이나 모든 물품가격을 해명하면서 노동가치설을 주장하였다.
그 뒤 페티는 1670년대에 『정치산술』, 『아일랜드의 정치적 해부』를 썼는데 여기서는 당시에 일반화되어 있던 개개인의 변덕, 의견, 취향, 격정과 같은 주관 요인을 배제하고 ꡐ수, 중량, 척도ꡑ라는 수량 표현을 이용하여 정확한 분석을 꾀하였다. 페티는 이 밖에도 정치․경제․인구문제에 관한 수많은 짧은 논문을 통해 통계학을 창시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맑스는 페티를 ꡐ근대 경제학을 건설하였으며, 가장 독창성 있는 천재 경제학자ꡑ라 칭찬한 바 있다.


<교재 1권 59쪽~91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1장 상품
제 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 상품의 현물형태와 가치형태

 

맑스는 1절에서도 상품을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두 요소의 통일로 규정하고 경제학의 유일한 보조 수단인 추상력을 이용하여 상품 가치의 실체를 밝혀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상품에 그 현물형태와 구별할 수 있는 가치형태를 주지 못한다. 상품은 그 형태와 무관하게, 형태로부터 독립적으로 분석되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상품은 “이중적 형태(현물형태와 가치형태)를 가지는 경우에만" 상품으로 나타난다. 상품 형태는 현물형태와 가치형태의 통일이기 때문에 상품을 분석할 때에도 이러한 이중형태의 통일로 분석해야 한다. 상품의 현물형태는 사용가치형태이므로 따로 분석할 필요가 없다. 상품을 형태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리하여 상품 분석을 완결하기 위해서는 가치형태의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1절의 상품 분석은 자체로 완결되지 않은 것이었고, 상품 분석은 이제 한 상품과 다른 상품의 가치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형태론으로 넘어간다. 따라서 3절에서는 상품을 형태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가치형태가 사회형태임을 밝힘으로써 상품 분석을 완결한다.

 

□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

 

맑스가 가장 간단한 가치형태로부터 출발하는 이유는, 모든 교환은 상품-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한 가치형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가치형태는 휘황찬란한 화폐 형태에까지 이르는 모든 가치형태의 추상이고, 모든 가치형태의 비밀이 이 단순한 형태 속에 숨어있다.
① 가치표현의 두 극 :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서로 의존하며 떼어놓을 수 없는 요소들이지만 그와 동시에 서로 대립하는 극들이다. 어떤 상품의 가치는 오직 다른 상품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을 뿐이고, 그러므로 어떤 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형태는 다른 어떤 상품이 등가형태로 대면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같은 상품은 같은 가치표현에서는 동시에 두 형태를 취할 수 없다.
② 상대적 가치형태
여기서 맑스는 먼저 가치관계를 양적 측면과는 전혀 관계없이 상대적 가치형태의 내용을 살펴본다. 문제가 되는 것은 '상품 A = 상품 B'에서 교환 비율이 아니라 '상품 A의 가치는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가'이다. 상품 A는 상품 B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품 B의 사용가치를 자기 가치표현의 재료로 삼는다.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A의 가치형태가 된다. 이와 같이 다른 상품의 현물형태를 통해서 상대적으로만 표현된다는 의미에서 상품 B에 표현된 상품 A의 가치는 상대적 가치형태를 가지게 된다.
상품 A는 그것이 가치인 까닭에 상품 B와의 가치관계에서 상품 B와 질적으로 같은 성격을 가진다. 상품 A 속에 들어 있는 추상적 인간노동은 상품 A의 사용가치 속에서는 조금도 나타나지 않고 오직 등가형태에 있는 상품 B의 사용가치 속에서 상대적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치형태의 분석을 통해 비로소, 1절에서 사용가치의 질적 차별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통하여 도달한 추상적 인간노동 개념은 상품 교환이라는 현실과정을 반영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맑스는 추상적 인간노동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질적으로 같아진 두 상품의 가치크기가 어떠한 양적 관계로서 같아지는가를 살펴본다. 두 상품은 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양으로 비교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예를 들면 1개의 저고리가 20미터의 아마포와 양적으로 같다는 것은 1개의 저고리와 20미터의 아마포를 생산하는 데 같은 양의 인간노동이 지출되었음을 뜻한다. 다음으로 맑스는 노동 생산력의 변동에 따라 상대적 가치표현이 변동하는 경우를 네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③ 등가형태
20미터의 아마포 = 1개의 저고리에서 아마포는 저고리가 직접 자기와 교환된다는 사실을 통해 가치로서 자기의 존재를 외부에 나타낸다. 그런데 가치관계에서 등가형태에 있는 저고리는 자기 자신의 가치 크기를 결코 표현할 수 없다. 저고리의 가치 크기는 저고리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에 따라, 따라서 저고리의 가치형태와는 관계없이 결정된다. 저고리가 가치표현에서 등가물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저고리의 가치는 양적으로 표현될 수 없으며, 저고리는 가치등식에서 사용가치의 일정량으로서만 나타날 뿐이다.
등가형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사용가치가 그 대립물인 가치의 형상형태로 된다. 둘째, 구체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추상적 인간노동의 형상형태로 된다. 셋째, 사적 노동이 그 대립물인 직접적으로 사회적인 형태의 노동으로 된다.
상품의 가치가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되고, 한 상품의 가치를 생산한 추상적 인간노동이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를 생산한 구체적 유용 노동으로 표현될 때에만, 상품을 생산한 사적 노동은 비로소 사회적 노동의 일부분으로서 인정된다. 상품을 생산하는 사회에서 사적 노동은 반드시 다른 상품과의 가치관계를 통해서만 사회적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3절에서는 구체적 유용노동의 추상적 노동으로의 환원은 1절에서처럼 각각의 구체적 유용노동의 질적 차별성 제거라는 논리적 조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상품을 생산한 구체적 유용노동이 다른 상품과의 가치관계에서 다른 상품의 추상적 인간노동을 표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렇게 되면 추상적 인간노동 개념도 생리학적으로 동등한 인간노동이란 의미를 넘어 상품 생산자들의 노동이 사회관계 속에서 질적으로 같은 노동이란 의미를 가지게 됨을 알 수 있다.
④ 단순한 가치형태의 총체
1절에서 상품은 사용 대상과 가치라는 이중적 관점에서 정의되었으나 형태의 고찰은 배제되었다. 3절은 형태의 고찰을 통해서 상품 A의 가치는 상품 B가 상품 A와 직접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로 '질적으로' 표현되고, 또 상품 B의 일정량이 상품 A의 일정량과 교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하여 '양적으로' 표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한 가치형태에서 상품 속에 숨어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내적 대립은 외적 대립을 통하여 표현된다. 상품 A의 현물형태는 사용가치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반면에 상품 B의 현물형태는 가치로서만 의미를 가진다. 상품 A는 오로지 사용가치로만 인정되고 상품 B는 오직 교환가치로만 인정된다.
단순한 가치형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가격형태로 성숙하기 전에 일련의 형태변화를 경과해야 하는 맹아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상품 A는 B가 아닌 어떤 상품으로 표현되든지 한 상품으로만 표현되면 되기 때문에 동일한 한 상품에 여러 가지 단순한 가치표현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상품 A의 개별적인 가치표현은 무한한 시리즈의 각종 단순한 가치표현들로 전환한다.

■ 과부 퀴클리, 59쪽
셰익스피어의 작품 {헨리 4세}에 나오는 술집 여주인이다. 극중에 나오는 폴스태프라는 사람을 유혹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옷을 12벌이나 사주는가 하면, 자기 물건을 저당 잡혀서까지 돈을 만들어 주려한다. 그래도 잘 안 되자 남자를 고발해서 어쩔 수 없는 처지에 몰아넣고 결혼 약속을 상기시키는 인물이다. 우리 교재인 비봉판이나 이론과 실천 모두 1부 3막 3장이라고 역주를 붙였는데, 아마도 역자들은 이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듯하다. 2부 2막 1장에 훨씬 잘 묘사되어있다.
아울러 60쪽의 역자주도 틀린 것이다. 상품 소유자는 2장에나 가야 등장한다. 알하기 쉬울지는 모르나(사실 그렇지도 않지만) 잘못 이해하게 된다.

■ 매클라우드(Macleod, Henry Dunning : 1821~1902), 77쪽
영국의 금융이론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1849년 변호사가 되었다. 그가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854년 이후의 일로, 로얄 브리티시 은행의 이사가 되어 은행에 관한 소송사건에 관계하면서부터였다. 그 뒤 금융의 역사와 이론 연구에 몰두했으며, 이 성과가 {은행업의 이론과 실제}(1855)로 나타났다. 그는 처음으로 할인정책의 역할을 명확히 파악했으며, 신용과 화폐와 자본의 동일성을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은행의 신용창조력을 중요시하여 '은행은 신용 제조소'라는 유명한 말을 남겨 신용창조이론의 선구자로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856년 로얄 브리티시 은행이 파산하자 사기혐의로 수사를 받았으며, 대학의 교직을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았다.


<교재 1권 79쪽~89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1장 상품
제 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 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

 

단순한 가치형태(1형태)에서는 상품 A의 가치를 어떤 하나의 상품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는 특정한 가치관계에서만 타당한 표현이다. 그런데 가치는 추상적 인간노동을 실체로 하는 보편 개념이다. 따라서 이것에 적당한 가치형태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전개된 가치형태'(2형태)이다.
2형태에서는 상대적 가치형태에 있는 상품 A의 가치가 상품 세계의 수많은 다른 구성 요소로 표현됨으로써 상품 A가 상품 세계의 대표가 된다. 2형태에서는 다른 모든 상품이 상품 A의 가치를 표현함으로써 상품 A의 가치가 "참으로 무차별적인 인간노동의 응고물"임이 뚜렷이 나타난다. 또한 상품 A의 가치는 어떤 상품과 교환되든지 항상 같은 크기를 나타냄으로써 "교환이 상품의 가치 크기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품의 가치 크기가 상품의 교환 비율을 규제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한편, 2형태에서는 하나의 특정한 현물형태는 다른 많은 상품과 나란히 하나의 특수한 등가형태가 된다. 특정한 구체적 유용노동은 추상적 인간노동의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2형태도 ①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시리즈가 끝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 가치표현이 미완성이다. ② 가치표현이 조각조각 끊어져서 잡다하다. ③ 가치표현들은 서로 아무런 관계도 없이 무한히 계속된다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반적 가치형태'(3형태)로 이행하게 된다.

 

□ 일반적 가치형태

 

일반적 가치형태가 되면 이제 여러 상품의 가치를 같은 한 상품의 사용가치로 통일해서 표현할 수 있다. 3형태는 2형태를 뒤집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가치형태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2형태와 달리 3형태에서는 상품 세계로부터 분리된 하나의 상품이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표현하고 각 상품의 가치는 자신의 사용가치뿐만 아니라 모든 사용가치로부터도 구별된다. 3형태에 와서야 비로소 독립적으로 노동하는 개별 상품 생산자들의 사회관계가 상품의 가치로 나타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따라서 이제 모든 상품은 양으로도 비교 가능한 가치로 나타난다.
또한 3형태에서는 등가형태의 성격도 변한다. 등가물의 사용가치가 인간노동 일반을 표현하는 것으로 된다. 이렇게 되면 일반적 등가물을 생산하는 구체적 유용노동을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3절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2형태가 3형태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맑스는 앞서 단순한 가치형태를 설명하면서 가치 표현의 두 극은 서로 대립하고, 따라서 한 상품은 언제나 어느 한쪽에만 서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의 역할을 구분해 놓고서 이제 전개된 가치형태가 그 역의 관계를 포함한다는 논리로 일반적 가치형태를 전개시키는 방식은 언뜻 보면 모순인 듯하다. 또한 상품들 사이의 가치 관계를 분석하다가 상품 소유자를 등장시키는 방식도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82쪽, 그러나 상품 소유자는 2장에서 본격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논리 조작만은 아니다. 먼저 이와 같은 전도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개념으로 반영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현실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해왔고, 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편, 가치표현의 두 극은 전개된 가치형태에서 이미 충분히 전개되어 있지만 아직 어떤 하나의 상품으로 고정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전도를 아주 배제해놓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물론 상대적 가치형태와 등가형태는 1형태에서부터 역할이 다르다. 그러나 상대적 가치표현에서 등가형태에 있는 상품은 개별 등가물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언제나 다른 등가물로 바꿀 수 있고, 그리하여 전개된 가치 표현을 얻게 되었을 때에조차도 그것은 아직 특수한 등가에 지나지 않아서 이 경우에도 가치 표현의 두 극은 아직 완전히 고정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2형태에서는 하나의 상품이 다른 모든 상품들을 자신의 가치를 그것들로써 표현하기 위하여 배제한다. 이러한 배제는 아직 한 상품의 개별행위에 지나지 않고 객관적으로 독립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러나 3형태에서 한 상품이 일반적 등가형태에 있는 것은 그 상품 자체가 상품들의 무리에서 등가물의 역할을 하기 위해 배제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상품을 등가물로 할 것인가는 사회적 과정의 결과이다.
그런데 하나의 특수한 종류의 상품만을 등가물의 역할로 놓는 순간, 비로소 상품 세계의 통일된 상대적 가치형태를 가지게 되며 이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 하나의 상품으로 고정된다. 현물형태에 등가형태의 역할만을 하는 상품이 바로 '화폐 상품'이다. 3형태에서 등가형태에 있는 상품을 금으로 바꾸면 화폐형태가 된다.

 

□ 화폐형태

 

화폐형태인 4형태는 특정한 상품 대신 금이 일반적 등가형태를 취한다는 점을 빼놓고는 3형태와 다른 것이 전혀 없다. 1, 2, 3형태는 가치가 사용가치로부터 자립화되는 과정이다.
4형태에서는 일반적인 상대적 가치형태가 가격형태로 된다. 이제 교재의 예에서 아마포의 가격형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20미터 아마포 = 2온스의 금', 2원이 2온스의 주화 명칭이라면, 20미터 아마포 = 2원의 금.


■ 다양한 화폐단위의 이름들.

세계에는 수 백 종류의 화폐가 있다. 현재 약 180개가 넘는 나라가 화폐를 발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화폐 단위는 통화의 종류만큼이나 많고 이를 부르는 이름도 여러 가지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해왔던 냥(兩)은 원래 무게의 단위였다. 조선조 숙종 시절에 상평통보를 발행하면서 문(文)이라는 단위도 사용하였는데 엽전400문=은 1냥으로 계산하였다. 환( )이나 원(圓)은 화폐가 동그랗다는 의미에서 온 단위이다. 일본의 엔(圓)도 화폐의 모양에서 유래한 화폐단위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원'은 순 한글로 1962년 3차 화폐개혁 때 채택하여 지금까지 쓰고 있다.
국제 통화인 달러(Dollar)의 유래는 특이하다. 16세기 초 보헤미아(현재 체코슬로바키아 북부)의 요하힌스탈에서 좋은 질의 은광맥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에서 생산된 은으로 만든 은화가 인기가 좋아 유럽에 널리 유통되었다. 이를 '요하힌스 타렐' 또는 '타렐'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타라', '다렐', '다라'로 불리다가 달러로 굳어졌다.
영국의 화폐단위인 파운드(Pound)는 고대 로마의 무게 단위인 폰두스(Pondus)에서 왔다. 영국에서는 8세기쯤 1파운드의 페니 은화를 제조하였는데 1816년 은본위제를 폐기함에 따라 파운드는 은의 무게와는 관계없는 별도의 화폐 단위가 되었다. 독일의 마르크도 은의 무게를 표시하는 단위였다. 멕시코․콜롬비아․아르헨티나․칠레․쿠바․필리핀의 화폐단위인 페소(Peso)도 라틴어로 무게를 뜻하는 펜숨(Pensum)과 스뻬인어로 무게를 뜻하는 페소(Peso)에서 왔다. 이딸리아의 리라(Lira)도 고대 로마에서 무게 단위였던 리브라(Libra)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화폐단위의 이름들은 무게 단위에서 유래한 것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프랑스․스위스․벨기에․룩셈부르크의 프랑(Franc)은 14세기 프랑스에서 발행한 금화에 왕의 이름인 'Francorum Rex'를 새겼는데 이를 '프랑'이라 부르기 시작한 다음 붙은 이름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크로네(Krone)와 스웨덴․아이슬랜드의 크로나(Krona)는 1551년 이후 영국에서 발행한 은화 크라운(Crown)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파키스탄․인도․스리랑카의 화폐단위인 루피(Rupee)는 산스크리트어의 소[牛]를 뜻하는 루피아(Rupya)에서 기원한다.
이밖에도 네덜란드의 길더(Guilder)는 금을 뜻하는 골든(Golden)에서, 그리스의 드라크마(Drachma)는 그리스어로 '손에 가득히'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왔다. 엘살바도르․코스타리카의 콜른(Colon)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서양인인 콜럼버스의 스뻬인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베네수엘라의 볼리바(Bolivar)는 남미 독립운동의 유명한 투사인 시몬 볼리바(Simon Bolivar, 1783~1830)의 이름을 딴 것이다.


<교재 1권 90쪽~107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1장 상품
제 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 상품 물신성의 비밀

 

우리는 지난 호까지 상품으로부터 출발해서 화폐의 기원까지 밝혔다. 이만하면 『자본』 1장의 과제는 다 달성한 셈인데 맑스는 4절을 덧붙이고 있다. 여기서 맑스의 의도는 상품 '자체'를 문제 삼으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의 노동이 상품으로만 표현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상품은 자명하고 평범한 물건이다. 그러나 1절~3절에서 본대로 상품을 분석하면 그것이 기묘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품의 신비한 성격은 상품의 사용가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또한 가치를 규정하는 요소들의 성격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①여러 가지 유용노동이 본질적으로 동등한 인간노동이라는 것은 생리학의 진리이므로 그 안에 어떤 신비한 요소도 없다는 점, ②가치 크기를 규정하는 노동량은 노동의 질과 명백히 구별된다는 점, ③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노동하게 되면 그들의 노동도 또한 사회적 형태를 취한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생산물이 상품 형태를 취하자마자 발생하는 노동생산물의 이 수수께끼 같은 성격은 상품 " 형태 자체"에서 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품 형태란 무엇인가? 또한 노동생산물이 상품 형태를 취하는 사회의 생산조건이란 어떠한 것인가? 상품 물신성의 비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에서 찾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사용대상이 상품으로 되는 것은 그것이 서로 독립되어 작업하는 사적 개인의 노동생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자들은 교환을 통해 자기 노동생산물을 사회에 내놓기 때문에 사적 노동의 성격도 교환에 들어가야 비로소 드러나며, 생산자들 사이의 관계는 노동생산물 사이의 관계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생산자들에게는 개인들이 자기들의 작업에서 맺는 직접적인 사회관계가 아니라 물건을 통한 개인들 사이의 관계로, 그리고 물건들 사이의 사회관계로 나타난다.
또한 상품을 생산하는 독립된 생산자의 노동은 서로 의존하고 서로 관련되어 있는 사회적 노동이다. 그런데 상품 생산자 노동의 사적 형태와 사회적 성격의 모순이 해결되는 방식은 오직 노동생산물이 교환을 통해 상품 생산자의 사적인 개별노동이 사후적으로 상호 관련되는 길뿐이다.
또한 노동생산물은 교환으로 하나의 사회적으로 동등한 객관적 실재, 즉 가치를 획득한다. 바로 여기에 상품 물신성의 비밀이 숨어 있다. 사적인 개별 노동은 내용상 분명히 사회적 노동이면서도 교환하기 전에는 사회적 노동으로서 승인받지 못하고 오로지 교환을 통해서만 사회적 노동으로 승인받으며, 사회적 총노동에 대한 자신의 크기를 부여받는 것이다.

 

□ 상품 물신성은 상품 생산사회에서만 나타난다

 

상품 물신성은 그것의 기초인 상품 생산 자체가 없어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물신성은 두뇌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에 따라 가치크기가 결정된다는 것은 상품의 상대적 가치의 현상적인 운동의 등 뒤에 숨어 있는 하나의 비밀이다. 이 비밀의 발견은 노동생산물의 가치크기가 우연하게 결정되는 듯한 착각을 없애기는 하지만 결코 가치 크기가 결정되는 물적 형태를 제거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불합리한 의식 형태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이와 같은 형태들은 바로 부르즈와 경제학의 범주들을 형성"한다. 이 범주들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상품 생산사회에서만 타당하다. 오직 상품생산이 더 이상 존속하지 않을 때 "상품생산의 토대 위에서 노동생산물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상과 황당무계"는 사라진다.
그러면 이제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나타나지 않는 사회의 예를 살펴보자.
첫째, 자급 자족하는 로빈슨 크루소의 섬생활을 보자. 여기서는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되지 않으며 로빈슨 크루소와 그가 손으로 만들어 부를 구성하는 물건들 사이의 모든 관계는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그렇지만 이 관계는 벌써 가치를 규정하는 본질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유럽 중세 봉건사회에서는 물질 생산의 사회관계와 이에 근거를 둔 생활을 '인격의 예속'이 규정하고 있다. 인격의 예속관계가 주어진 사회의 토대를 이루기 때문에 노동과 노동생산물은 다른 환상적인 모습을 띨 필요가 없다. 농노가 부역 노동을 할 때 농노와 생산물의 관계는 영주와 농노의 관계,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나타나지 물건들 사이의 관계로 나타나지 않는다.
셋째, 자신의 필요를 위해 물건을 생산하는 농민가족의 가부장적 생산이 있다. 이 가족들에게 이 물건들은 집단노동의 생산물이지만 그 물건들은 상품으로 대면하지 않는다. 각 개인의 노동력은 처음부터 가족 전체 노동력의 부분으로 작용하므로 처음부터 노동의 사회적 성격이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공동소유의 생산수단으로 일하며 또 자기들의 각종 개인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지출하는 자유인들의 결합체"에서도 생산 관계는 물건들의 관계로 나타나지 않는다. 로빈슨크루소의 모든 생산물은 개인의 생산물이자 그 자신을 위한 사용대상이었지만 자유인들의 결합체에서 총생산물은 사회의 생산물이다. 이 생산물의 일부분은 생산수단으로 사회에 남고, 나머지는 결합체 구성원들에게 분배되어 생활수단으로 쓰인다. 생활수단의 분배가 각자가 일한 노동 시간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할 때, 노동 시간은 ①결합체의 다양한 욕망과 각종 노동기능 사이의 적절한 비율을 설정하고 유지하며, ②공동노동에 참가한 정도를 재는 척도와 개인들에게 분배되는 몫의 척도로 이용된다. 노동시간이 이와 같이 이중의 역할을 수행해도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이나 노동생산물에 대해 가지는 사회 관계는 생산에서나 분배에서나 물건들의 관계로 나타나지 않는다.

 

□ 상품 물신성의 발전 : 화폐 물신성과 자본 물신성

 

물신성은 일정한 사회관계가 어떤 물건이 본래 가지고 있는 속성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상품 물신성의 토대는 상품 생산사회에서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의 모순에 기초하고 있다.
굳이 여기서 얘기할 것은 못되지만, 상품에 들어있는 모순이 외적 대립으로 바뀌어 상품계와 화폐계로 상품 세계가 쪼개지면 화폐 물신성이 나타난다. 화폐가 상품이 자립화한 가치라고 할 때 화폐 물신성은 상품 물신성보다 발전한 형태이다. 또한, 자본은 물건으로 매개된 사람들 사이의 관계인데 이것이 사회 관계로 나타나지 않고 일정한 물건(생산수단)의 속성으로 나타나는 것이이 자본 물신성이다. 자본 물신성은 상품 물신성이 고도로 발전한 형태이다.


■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hism)

물신숭배는 원래 바위나 큰 나무, 조상이 남긴 물건에 영혼이 깃들어 있고, 그것이 초자연적인 마법의 힘으로 사람들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는 신앙이다. 영어로는 페티시즘(fetishism)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15~16세기에 포르투갈 탐험가들이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돌이나 나무 같은 특정 대상물에 기도하는 것을 보고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말의 어원인 라틴어 팍티키우스(facticius)는 '마법의 힘을 갖는다'는 뜻이다.
물신숭배는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동물 뿔 속에 마법을 부리는 물건[물신, 物神]을 담아두고, 물신이 사냥을 잘되게 하고 병마를 막아낸다고 여겼다. 이러한 주술적 물건에는 조상의 머리카락이나 뼈도 있는데, 이들은 물신을 개인 사당에 모시고, 자신과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했다. 물신은 세습으로 전해지며, 이것을 가진 사람들의 특권을 나타내고 권력의 밑바탕이 되었다.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이에 빗대 표현하였다. 상품, 화폐, 자본이 갖는 여러 성질은 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기원하는 것인데 마치 이들이 원래 그런 성질을 가진 것처럼 나타난다. 생산에서 인간들이 맺는 관계는 사라지고 물건의 관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교재 1권 108쪽~119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2장 교환과정


□ 교환과정과 가치형태론의 분석수준차이

 

우리는 1장 3절 가치형태 분석을 통해 상품에 내재한 가치와 사용가치의 모순이 상품/화폐의 대립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보았다. 2장에서도 상품에 내재한 사용가치와 가치의 모순이 현실의 교환과정에서 화폐 출현으로 어떻게 잠시나마 해결되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1장 3절과 2장은 분석수준이 다르다.
첫째, 1장 3절에서는 상품 소유자가 등장하지 않지만 2장에서는 상품소유자가 등장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1장 3절에서도 2형태에서 3형태로 이행할 때 상품 소유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화폐 등장의 필연성은 상품소유자들의 관계가 아니라 상품과 상품 사이의 관계로 설명한다.
교환과정에서 상품소유자는 오직 ꡒ경제적 관계의 인격화ꡓ로서만 등장한다[맑스는 『자본』의 전체 서술에서 일관되게 이와 같은 관점을 취하고 있다. 『자본』이 다루고 있는 대상은 경제관계이고, 경제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ꡒ경제적 관계의 인격화ꡓ일 뿐이다. 노동자는 노동력 상품의 보유자일 뿐이고, 자본가는 자본의 인격화일 뿐이다]. 교환과정에 참여하는 상품 소유자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상품으로서 서로 관계를 맺게 하기 위해, 자기의 의지를 물건에 담아 서로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상품을 교환하려면 상품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을 사적 소유자로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교환과정에서 상품 소유자들은 법률체계의 일부이든 아니든 계약의 형식을 취하는 법적 관계를 맺는다. 법적 관계는 하나의 의지관계인데, 이는 경제관계 자체를 통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교환과정에서 상품생산자들이 맺고 있는 의지관계는 오직 사적 상품생산이라는 경제관계의 반영인 것이다.
둘째, 가치형태론에서 상품과 상품의 가치관계는 현실에서의 교환을 의미하지 않지만 교환과정에서는 현실 교환관계 속에서 상품을 다룬다. 1장 3절 가치형태론이 분석하고 있는 대상은 ꡐ교환ꡑ이 아니라 ꡐ상품ꡑ이다. 가치형태론은 상품형태를 분석하는 것인데, 노동생산물의 상품형태, 상품의 가치형태는 상품과 상품 사이의 가치관계 속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가치형태론에서 상품은 1장 1절에서처럼 고립시켜 분석하는 대신에 다른 상품과의 관계 속에서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계가 현실에서의 교환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2장 교환과정은 현실에서의 교환을 다루고 있다.

 

□ 상품의 교환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

 

상품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사용가치이지만 그 소유자에게는 교환가치의 담당자일 뿐이다. 그러므로 상품은 교환을 통하여 그 소유자가 바뀌어야만 한다. 교환은 상품들을 가치로서 서로 관련시키고 가치로서 실현한다. 상품소유자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상품은 그 자신에게는 사용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사용가치로 실현되기에 앞서 가치로 실현되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상품의 생산에 지출된 추상적 인간노동은 구체적 유용노동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고, 구체적 유용노동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형태로 지출되었을 때에만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환원할 수 있다. 상품생산은 사회적 사용가치의 생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은 가치로서 실현되기 전에 먼저 스스로가 사용가치임을 증명해야 한다.
상품소유자가 자기 상품을 다른 상품과 교환하려고 할 때, 그는 자기에게 필요한 사용가치를 가진 상품에 대해서만 자기 상품을 넘겨주려 한다.
교환관계에서 등가물의 사용가치가 상품판매자에게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환은 상품판매자에게 그저 ꡐ개인적 과정ꡑ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상품판매자는 자기 상품을 가치로서 실현하고자 한다.
자기 상품이 다른 상품 소유자에게 사용가치를 가지든 안 가지든, 자기 상품을 자기 마음에 드는 같은 가치의 다른 상품으로 실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교환은 ꡐ일반적 사회적 과정ꡑ이다.
사용가치의 획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교환은 어떤 한 상품판매자의 ꡐ개인적 과정ꡑ이지만 가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는 모든 상품판매자의 ꡐ일반적 사회적 과정ꡑ인 것이다.
어떤 상품소유자에게도 다른 모든 상품은 자기 상품의 특수한 등가물로 간주하며, 따라서 자기 상품은 다른 모든 상품의 일반적 등가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점은 모든 상품소유자에게 적용되므로 사실상 어떤 상품도 일반적 등가물일 수 없게 된다. 이것이 교환에 내재한 모순이다.

 

□ 교환의 발전과 화폐 출현

 

교환에 내재한 이러한 모순은 오직 교환의 역사적 발전에 따라 ꡐ사회적 행위ꡑ로 어떤 특정한 상품이 일반적 등가물이 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다. 교환의 역사적인 확대와 심화는 상품의 본성 속에 잠자고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대립을 발전시킨다.
생산물의 직접 교환은 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만나는 곳에서 상품교환으로 발전한다. 상품교환이 발전하고 이 발전은 교환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모순이 해결될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 발전의 끝에서 일반적 등가물의 기능이 어떤 한 상품으로 굳어지고 금이나 은 같은 화폐상품이 등장한다.
화폐상품은 ①동등한 인간노동을 물질화한 것이므로 균질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②가치크기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하므로 마음대로 분할하고 다시 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은 본래부터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금이나 은과 같은 화폐상품의 사용가치는 이중적이다. 그것들은 사치품의 원료로 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러한 사용가치 말고도 독특한 사회적 기능으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형태적 사용가치를 가진다.

 

□ 화폐에 관한 그릇된 견해들

 

화폐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견해들이 생겨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가치와 가치형태에 대한 혼동이다. 교환과정은 어떤 상품에 가치를 주는 것이 아니라 특수한 가치형태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다른 모든 상품들이 자기 가치를 하나의 특정 상품으로 표현하기 때문이 그 특정 상품이 화폐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 상품이 화폐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상품들이 가치를 표현할 수 있다는 혼동이 생겨난다.
둘째, 화폐의 가치에 대한 오해이다. 금도 상품이기 때문에 자기의 가치를 다른 상품을 통해서 상대적으로만 표현할 수 있을 뿐이다. 일정량의 금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금을 생산하는 노동량에 따라 결정된다.
셋째, 화폐물신 때문에 화폐의 본질에 대한 그릇된 견해가 나타난다.


■마리토르네스, 107쪽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나오는 주막집 하녀이다. 얼굴이 아주 못생겨서 그 주막에 드나드는 말 달구지꾼 말고는 ꡒ누구나 구역질을 낼ꡓ 정도라고 한다. 이 여자의 용모에 대해 세르반테스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ꡒ펑퍼짐한 얼굴, 납작한 코에, 뒤통수를 찾아볼 수 없이 납작한 머리에다 한 눈은 아주 멀고, 나머지 한 눈도 시원치 않은 색시였다.ꡓ

■최초의 교환=침묵교환, 111쪽
역사상 최초의 상품교환은 원시공동체 내부의 개인들끼리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이 때의 교환은 만나서 흥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부족이 공동체의 경계에 바꾸려고 하는 물건을 갖다놓고 숨어있으면 다른 부족 사람들이 자기 물건을 경계선에 놓고 몰래 바꾸어 가는 침묵교환(Silent Trade)의 형태였다.

■아씨냐(assignats), 112쪽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혁명정부가 몰수한 왕실, 교회의 토지를 담보로 발행한 공채(公債) 형식의 지폐이다. 처음에는 1만 리브르를 발행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크게 늘어 1796년 9월에는 455억 리브르나 되었다. 혁명정부는 아씨냐를 받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거운 벌을 내리면서까지 강제로 유통시켰다. 그러나 결국 아씨냐는 액면가의 3/1000까지 가치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였다. 1897년 폐지되었다.

 

 

<교재 1권 120쪽~132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제 1절 가치의 척도


□ 3장의 위치

 

우리는 1장 3절에서 '가치 형태' 분석을 통해 화폐 출현의 필연성, 화폐의 본질과 비밀을 밝혔다. 2장에서는 같은 주제를 '교환과정' 속에서 분석하였다. 따라서 2장에서 다룬 것은 교환이 발전함에 따라 상품 안에서 대립하는 사용가치와 가치의 모순이 상품과 화폐로 쪼개지면서 해결된다는 것이었다. 1장 3절에서는 이것을 '경제 관계', 물건들의 관계로 설명했는데, 2장에서는 상품소유자를 끌어들여 '법률․인격' 관계로 설명하였다.
3장은 이렇게 출현한 화폐의 기능들을 분석하여, 화폐가 현실 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화폐가 인간들의 생활에 들어오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 가치의 척도

 

맑스는 먼저 금을 화폐상품이라고 전제한다. 화폐상품이 된 금의 첫 번째 기능은 ꡒ상품세계에 가치 표현의 재료를 제공한다ꡓ는 점이다. 금이 화폐로 등장하면 모든 상품들의 가치를 같은 이름의 크기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금은 ꡒ가치의 일반적 척도ꡓ가 되는데 이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금은 화폐로 된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화폐가 있어서 모든 상품을 같은 가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상품이 가치로서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화폐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치 척도로서의 화폐는 상품들에 내재하는 가치척도(즉 노동시간)의 필연적인 현상형태다.
여기서 맑스는 각주의 설명을 통해 상품생산 사회에서 노동화폐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노동생산물이 상품 형태를 취하는 한, 노동시간은 화폐로 측정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상품생산 사회에서 사적 노동은 처음부터 사회적인 노동이 될 수 없다. 사적 노동은 그 노동의 생산물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욕구가 만족되어야만 사회적 성격을 입증할 수 있다. 각 개별 생산자는 자신의 생산물이 얼마만큼의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을 갖고 있는지, 자신의 개별 노동시간이 그것보다 적은지 많은지 자신의 노동을 통해서는 전혀 알 수 없다. 그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 형태를 취하고 노동시간이 상품의 가치라는 사회적 형식을 취해서만, 그리하여 가격이라는 현상형태를 취해야만 알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상품생산을 폐지하지 않고 노동화폐를 도입하려는 프루동의 제안은 환상이다. 노동화폐는 상품생산사회에서는 개별적 노동시간만을 포함하고 있을 따름이며 그것을 매개로 한 교환은 가치가 다른 물건들의 교환을 모든 사회로 확대하자는 주장일 뿐이다. 이는 상품생산=등가교환과 완전히 모순된다. 그러나 오웬의 구상은 프루동과는 다르다. 오웬은 상품생산과는 정반대인 사회, 즉 개인의 노동이 직접적으로 사회화되는 사회를 전제로 하여 노동화폐 도입을 주장하였다.
그러면 가격이란 무엇인가? 한 상품의 가치를 금으로 표현하는 것이 상품의 화폐형태이며 이것이 상품의 가격이다. 예를 들어 1톤의 철=2온스의 금이라는 등식은 1형태의 모습을 띄게 된다. 이로써 1형태는 4형태를 논리적으로 추상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4형태에서 등가물 상품인 금은 이미 ꡐ화폐ꡑ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1형태로 돌아갈 수 있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앞에서 1형태의 결함으로 지적했던 것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화폐는 가격이 없다. 화폐는 2형태에서 가치표현을 얻지만 가격은 얻지 못한다. 즉 화폐는 4형태의 좌변에 참가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ꡐ2온스의 금=2온스의 금ꡑ이라는 아무 것도 아닌 결과를 얻게 된다.
상품의 가격, 화폐형태는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현실적인 물체형태와는 구별되며, 따라서 순전히 관념이고 개념이다. 그러나 관념적인 화폐만이 가치척도의 기능을 수행한다 할지라도 가격은 완전히 실재적인 화폐 재료에 의존하고 있다.
다음으로 가치의 척도와 가격의 도량표준 기능이 어떤 차이를 가지는지 살펴보자. 화폐가 가치의 척도인 것은 인간노동의 사회적 화신이기 때문이고, 가격의 도량표준인 것은 고정된 금속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척도로서 화폐는 여러 가지 상품의 가치를 가격으로 바꾼다.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 화폐는 이러한 금의 양을 측정한다.
그러나 금도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가치가 변한다. 이 점이 금의 화폐로서의 기능(가치척도, 도량표준)에 문제점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그러나 먼저 도량 표준에는 문제가 안 된다. 금의 가치가 어떻게 변한다해도 2온스의 금은 1온스의 금보다 언제나 두 배의 가치를 갖는다. 또한 가치척도로서의 기능도 상품가치와 화폐가치의 상대적 변동 관계에 따라 상품의 가격이 변동하므로 문제가 안 된다.
금속 무게의 화폐명칭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점차 원래의 무게명칭으로부터의 분리된다. ①발전 정도가 낮은 민족들에게 외국화폐가 수입된 것, ②부의 발전에 따라 저급 금속은 고급금속에게 쫓겨난다, ③몇 백 년에 걸친 군주들의 끊임없는 화폐변조가 그 원인이다. 이에 대해서는 6호를 참조하기 바란다.
가격과 가치크기 사이에는 양적 불일치의 가능성이 있다. 그 뿐 아니라 화폐는 상품의 가치형태에 지나지 않는 데도 가격이 전혀 가치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모순도 내포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양심이나 명예는 그 소유자가 팔 수 있으며 그 가격을 통해 상품형태를 취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물건은 가치를 가지지 않지만 가격을 가질 수 있다.


□ 정리

 

맑스는 가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ꡒ가격형태는 상품이 화폐와 교환될 수 있다는 것과 이러한 교환이 필연적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다른 한편, 금은 오직 교환과정에서 이미 화폐상품으로 확정되어 있기 때문에 관념적인 가치척도로 기능한다. 그러므로 관념적인 가치척도 속에는 경화가 숨어있다.ꡓ 상품이 실질적으로 교환가치로서 작용하기 위해서는 현실적 금으로 전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동전의 테두리

처음 금이나 은이 화폐의 쓰였을 때는 금과 은은 화폐의 실제 가치와 똑같았다. 그런데 금화나 은화를 손에 넣은 사람들이 주화의 가장자리를 몰래 깎아내는 행위가 성행하게 된다. 이를 클리핑(Clipping, 가장자리를 깎아내다)이라 하였다. 17세기 말 영국에서는 원래 은화 무게의 50%밖에 안 되는 화폐들까지 돌아다녔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심각하였다. 사람들은 깎인 은화를 시장에 내놓고, 깎이지 않은 은화는 자기가 보관하게 되면서 시장에서는 원래 가치의 반밖에 안 되는 은화만 돌아다니게 된다. 그레샴(Gresham)은 이런 현상을 보고 ꡒ나쁜 돈이 좋은 돈을 쫓아낸다ꡓ고 하였다. 이에 따라 무게 명칭과 일치했던 화폐 명칭이 이름만 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 당시 영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화를 다시 주조하자는 논쟁이 벌어졌다. 원래 무게의 50%인 있는 은화를 그대로 가치를 인정하자는 쪽과 모든 은화를 회수해 원래 무게대로 다시 주조해야 한다는 쪽의 싸움이었다. 결국 원래 무게대로 다시 주조하기로 했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금화로 바뀌게 된다.
금화가 도입된 다음에도 이런 행위가 줄지 않자 마침내 주화의 가장자리에 톱니모양을 새기게 된다. 톱니가 없는 돈은 사람들이 받지 않게 되기 때문에 주화 가장자리를 깎아내는 것을 방지하는데 큰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 쓰는 주화는 금이나 은으로 만들지 않으므로 톱니를 새기게 된 애초의 뜻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은 셈이다.
현재 한국의 주화는 10원 짜리 동전에는 테두리에 무늬가 없고 50원, 100원, 500원 짜리 동전에만 톱니가 새겨 있다. 그런데 톱니 수는 동전마다 다르다. 500원 짜리는 120개, 100원 짜리는 110개, 50원 짜리는 109개이다. 테두리에 톱니 대신 문자를 넣기도 하는데 이는 아주 정교한 기술이 있어야 하므로 특별한 행사를 때만 쓴다. 한국에서는 지난 1993년에 대전엑스포기념주화 테두리에 문자를 넣은 적이 있다.


<교재 1권 133쪽~165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제 2절 유통수단


□ 상품의 형태변환

 

지난 호에서는 화폐가 가치척도로서 기능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번 호에서는 화폐가 상품유통을 매개하는 ꡐ유통수단ꡑ으로 쓰일 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본다.
가치척도로서의 화폐는 관념으로만 존재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는 실제로 존재해야만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화폐가 교환과정에 끼어 들어 상품유통의 매개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교환과정은 상품과 상품이 교환되는 과정이다. 이 때 상품은 형태변환[교재에서는 변태(變態)라 하였는데 말의 느낌도 좋지 않고 형태변환이라 하는 것이 정확하다]을 하게 된다. 첫째는 상품이 화폐로 바뀌는 판매이고, 다음은 화폐가 상품으로 바뀌는 구매이다. 이 때 사용가치로서의 상품들이 교환가치로서의 화폐와 대립한다.
이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교재의 예대로 아마포-화폐․화폐-성격책의 교환과정을 살펴보자. 교환의 결과만 본다면 아마포와 성경책이 교환되는 것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정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먼저 상품이 화폐로 바뀌는 1차 형태변환은 맑스 말대로 ꡐ결사적인 도약ꡑ이다. 우리는 굳이 시장가지 않더라도 TV광고를 통해 장사하는 사람들이 이 결사적 도약을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늘 보고 산다. 아무튼 어떤 생산물이라도 화폐로 바뀌지 않고서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반적 등가형태를 취하지 못한다.
1차 형태변환의 종점인 화폐는 동시에 화폐가 상품으로 바뀌는 2차 형태변환을 위한 출발점이다. 아마포 소유자가 그의 상품을 화폐와 바꾸는 것은 그의 원래 목적인 성경책을 사기 위해서 이다. 그런데 화폐는 언제든지 다른 상품과 바꿀 수 있으므로 상품유통이 여기서 정지될 가능성이 있다. 누구나 판매한 다음 즉시 구매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공황의 가능성이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가능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단순한 교환과정도 4개의 극(아마포, 화폐, 화폐, 성경책)과 3인의 등장인물(아마포 구매자, 아마포를 팔고 성경책을 사는 사람, 성경책 판매자)이 필요하다. 과정 전체를 볼 때 상품은 그 소유자에 대해 출발점에서는 비사용가치이고 종점에서는 사용가치이다.
한편 화폐를 매개물로 하는 상품유통은 형태뿐만 아니라 본질에서도 물물교환과 다르다. 상품유통에서는 판매와 구매가 시간, 공간적으로 분리될 수 있다. 물물교환이었다면 아마포 판매자는 꼭 성경책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마포가 필요한 사람을 시장에서 만나야 한다. 그러나 상품유통이기 때문에 아마포 판매자는 결사적 도약을 수행한 뒤에는 느긋하게 성경책을 가진 사람을 찾기만 하면 된다. 또한 상품유통은 교환과정에 참여한 당사자들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 연결망에 관계를 맺게 만든다. 아마포를 팔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상품을 팔아 화폐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누군가가 성경책을 팔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따라서 이제 사회의 분업은 사회적 생산과정에서 생산자들이 맺는 관계를 그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관계로 만든다. 그들이 맺는 사회관계가 그들 자신으로부터 독립하게 되며 생산자는 생산과정을 통제하지 못한다.

 

□ 화폐의 유통

 

상품유통에서 화폐는 순환운동을 하지 못한다. 화폐가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으며 끊임없이 출발점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상품유통은 상품의 1차 형태변환과 2차 형태변환의 통일이다. 다시 말해서 ꡐ상품형태-상품형태의 탈각-상품형태로 복귀ꡑ하는 과정이다. 여기서 화폐는 단순한 매개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유통과정에서 계속 돌아다니는 것은 화폐이며, 상품은 잠깐 유통에 들어왔다가 재빨리 소비된다. 이 결과 운동의 연속성은 오직 화폐 쪽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상품유통의 표현일 뿐인 화폐의 운동이 ꡐ그 자체로서는 운동하지 않는ꡑ 상품을 유통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ꡐ유통영역이 얼마만큼의 화폐를 계속 흡수하는가ꡑ이다. 상품유통에 필요한 유통수단의 양은 상품들의 가격총액에 따라 결정되며 금의 가치가 떨어지면 상품들의 가격총액이 늘어난다. 이에 따라 유통 화폐량도 같은 비율로 증가한다. 그런데 금 가치 변동으로 발생하는 유통 화폐량의 변동은 유통수단으로서 화폐의 기능 때문이 아니라 가치척도로서 화폐의 기능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일정한 기간 동안에 유통수단으로 기능하는 화폐량은 다음 공식으로 주어진다.

유통 화폐량=상품의 가격총액/동일한 명칭의 화폐조각의 회전수

따라서 화폐조각의 회전수가 증가하면 유통화폐량은 감소하며 화폐조각의 회전수가 줄어들면 유통 화폐량은 늘어난다. 따라서 상품들의 가치총액과 그 형태변환의 평균속도가 주어져 있을 때, 유통 화폐량은 화폐 자신의 가치에 달려있다.

 

□ 주화, 가치의 상징

 

유통과정에서 주화가 마멸되면 금 명칭과 금의 실체가 분리된다(법정 무게와 실제 무게의 분리, 9호 참조). 유통수단으로서의 금 무게가 가격의 도량표준으로서의 금의 무게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화폐유통 자체에 주화를 기호 또는 상징으로 대신할 가능성이 생긴다. 이리하여 금표지 또는 화폐표지인 지폐가 등장한다. 이러한 가치표지의 등장은 ꡐ화폐의 기능적 존재가 화폐의 물질적 존재를 흡수하는 것이다.ꡑ
지폐는 객관적이고 사회적인 유효성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국가의 강제로 가능하다. 따라서 이 지폐는 국가지폐이며 주어진 사회의 경계 안에서만 효력을 가진다. 또한 이럴 때 지폐는 오로지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만 있는 것이다. 국가의 경계도 뛰어넘는 세계화폐는 3절에서 다룬다.


■ 지폐의 탄생
지폐는 650년쯤 종이를 발명한 중국에서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 때 당나라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동전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작은 거래에도 많은 동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상업거래나 취급에서 불편이 많았다. 또한 수송할 때도 무게가 많이 나가 마차로 옮겼는데 도중에 노상강도들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잦았다. 중국 상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비전(飛錢, 페이취엔)이란 종이로 만든 증서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최초의 지폐로 기록에는 남아있으나 실물은 전해오고 있지 않다.
이어 송대에 교자(交子)라는 지폐가 있었고 금․원나라에서는 이와 비슷한 ꡐ교초보ꡑ라는 지폐를 썼는데 뽕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에 목판으로 인쇄한 것이었다. 이것은 명대에 ꡐ대명통행보초ꡑ로 이름을 바꾸어 계속 사용하였다.
서양에서 지폐가 나타난 것은 12세기에 종이가 전래되고도 300여 년이 지난 1483년이었다. 당시 모로코에 살고있던 스페인 사람들은 이슬람교도인 무어족의 공격을 받자 지폐를 발행하여 전쟁비용을 조달하였다. 이 지폐는 금세공상이 나중에 금으로 갚겠다고 서명한 약속어음이었다.
한편 영국에서도 1660년대 이전부터 금세공상들이 그들의 금고에 다른 상인들의 금을 맡아두고 발행한 같은 값어치의 영수증(=보관증)을 약속어음이나 현금처럼 사용했다. 이것은 거래가 편리했을 뿐만 아니라 소액권도 발행되어 화폐와 같이 널리 유통되었다. 그러나 전쟁비용을 위해 왕실이 금세공상들의 귀금속을 몰수하자 불신이 커져 이 증서는 유통될 수 없었다.
이렇게 되자 1694년 귀족들이 공동 출자하여 왕실의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은행을 설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잉글랜드은행(Bank of England)이다. 잉글랜드은행은 왕실의 특혜를 기반으로 과거 금세공상들의 역할을 대신하여 근대 중앙은행의 모태가 되었으며 1695년, 갖고 있는 사람이 원하면 언제든지 금으로 바꿔주는 10, 20, 30, 40, 50, 100 파운드 짜리 지폐를 발행하였다. 이것이 최초의 근대 은행권이다.

 

<교재 1권 165쪽~188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3장 화폐 또는 상품유통
제 3절 화폐

 

1절에서는 금이 관념에서만 존재해도 되었고, 2절에서는 여러 가지 상징이 금을 대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3절에서는 금이 모든 상품의 등가물로서 ꡐ금 자체ꡑ로 나타나야만 수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보물축장

 

교재에서는 ꡐ퇴장화폐ꡑ라고 제목을 붙이고 있는데 ꡐ보물축장ꡑ이라 하는 것이 내용에 더 정확하게 맞는 제목이며, 따라서 교재의 화폐퇴장은 모두 보물축장으로 바꾸어 읽는 것이 좋다.
상품유통이 발전하면서 1차 형태변환의 결과물인 화폐(금) 자체를 축적하려는 필요성과 욕망이 생긴다. 왜냐하면 상품이 화폐로 바뀌려면 ꡒ결사적 도약ꡓ을 해야만 하고, 화폐는 언제든지 다른 모든 상품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상품 판매자는 다른 상품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화폐 자체를 축적하기 위해 상품을 판매하게 된다.
상품생산의 초기에는 쓰고 남은 것을 화폐로 축장하게 되지만, 상품생산이 발전할수록 이런 욕망이 더욱 커진다. 좀 앞서 나가는 얘기지만, 상품생산이 사회의 기본틀을 형성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축적 자체가 목적이 되며 축적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자본가로 존재할 수 없다.
화폐를 보물로 축장하려는 갈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화폐의 힘은 커진다. 그런데 화폐는 상품이며 따라서 누구의 사유재산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의 힘이 개인의 사적인 힘으로 된다.
보물축장의 충동은 성질상 끝이 없다. 화폐는 직접 어떠한 상품으로도 직접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질적으로나 형태상으로나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의 화폐액은 모두 양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따라서 화폐의 이러한 양적 제한성과 질적 무제한성 사이의 모순은 보물축장자를 끝없는 축적으로 몰아부친다.
한편, 보물로 축장된 화폐는 유통화폐량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상품유통의 규모와 속도, 그리고 상품가격의 끊임없는 변동 때문에 화폐의 유통량도 쉬지 않고 증감한다. 이에 따라 화폐의 유통량도 줄어들 수도, 늘어날 수도 있어야 한다. 보물로 축장된 화폐는 이러한 화폐유통의 저수지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 지불수단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 기능은 가치척도, 유통수단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지불수단의 기능은 이미 앞의 두 기능과 다르다. 화폐는 이제 상품교환을 단순히 매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환가치의 절대존재로 나타난다. 한편, 보물로 축장된 화폐는 유통 중단의 결과로 유통에서 끌려나온 것이지만, 지불수단인 화폐는 유통이 끝난 뒤 유통으로 들어간다.
상품 유통의 발전과 더불어 상품을 먼저 넘겨주고 나중에 대가를 지불하는 관계들이 발전한다. 이런 관계들은 오늘날 할부나 거래관행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어쨌든 구매자는 상품의 대가를 지불하기 전에 그 상품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판매자는 채권자로 되며 구매자는 채무자로 된다. 이 경우 상품의 형태변환의 전개가 달라진다. 구매자는 그가 상품을 화폐로 바꾸기 전에 화폐를 상품으로 바꾼다. 다시 말하면 상품의 1차 형태변환(상품→화폐)에 앞서서 2차 형태변환(화폐→상품)을 수행하는 것이다[외상으로 물건을 사는 경우]. 그 상품의 1차 형태변환은 뒷날(결제일)에 가서야 비로소 수행된다. 따라서 판매자의 1차 형태변환이 구매자의 1차 형태변환에 달려있는 것이다. 화폐는 지불수단으로 된다.
따라서 이러한 상품의 형태변환 속에 화폐 공황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만약 어떤 사정으로 지불해야할 날짜가 되어도 화폐가 지불되지 않는다면, 판매자의 1차 형태변환은 좌절되고 그 결과 이 판매자의 지불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판매자들의 1차 형태변환도 좌절된다.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는 사회적 상품생산에 서 이러한 사태는 연쇄부도사태를 낳는다. 우리는 이것을 지난 97년, 98년에 숱하게 보았다.
또한 화폐 공황의 시기가 오면 화폐는 계산화폐라는 순전한 관념에서 갑자기, 그리고 직접 경화로 변해버린다. 더 이상 보통의 상품은 화폐를 대신할 수 없게 된다. 상품의 사용가치는 가치를 얻지 못하게 되며 상품의 가치는 그 자신의 가치형태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IMF 사태 내내 유행한 이른바 ꡐ눈물의 세일ꡑ은 가치가 바닥까지 떨어진 상품에 어떻게 해서든 가치를 구현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ꡒ공황에서는 상품과 그 가치형태인 화폐 사이의 대립은 절대적 모순으로까지 격화된다.ꡓ
그러나 최초의 지불 불능이 구매자의 지불 수단 부족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 화폐부족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지불수단 부족이란 지불해야 할 상품이 넘쳐나기 때문이고, 상품이 넘쳐나는 것은 지불수단이 결제능력을 넘어서는 상품생산의 가능성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폐공황은 생산공황, 상업공황과 함께 발생한다.
상품생산사회는 발전할수록 파생된 지불수단의 기능이 원래 기능인 유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압도하게 된다. 신용화폐는 지불수단의 기능으로부터 발생하는데 그것은 구매된 상품에 대한 채무증서 그 자체가 유통됨으로써 발생한다. 또한 신용제도가 확대됨에 따라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도 확대된다. 대규모 상업거래에는 신용거래가 보통이다.
상품생산이 일정한 수준과 범위에 이르면 지불수단으로서 화폐의 기능은 상품유통의 영역을 뛰어넘게 된다. 화폐는 모든 계약의 재료가 되어 지대, 조세 같은 것들도 현물납부에서 화폐납부로 바뀐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가 발전하면 채무의 지불기일에 대비하기 위해 화폐축적이 필요하다. 부르주아 사회가 발전하면 치부형태로서의 보물축장은 없어지지만, 지불수단의 예비금형태의 보물축장이 늘어난다.

 

□ 세계화폐


화폐가 국내유통의 범위를 넘어서 세계시장으로 나아가면 귀금속의 원래형태로 돌아간다. 요즘은 달러도 금으로 바꿔주지 않지만, 1970년 닉슨이 금태환 정지선언을 할 때까지도 금은 세계화폐로 기능하였다.
세계무역에서 상품은 자기의 가치를 세계적 차원에서 전개한다. 따라서 상품의 독립적인 가치형태도 세계화폐로서 상품에 대립한다. 세계시장에서 비로소 화폐는 그 현물형태에 추상적 인간노동이 직접 사회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상품으로서 완전한 기능을 수행한다. 국제수지의 결제를 위한 지불수단이 세계화폐의 주된 기능이다.

 

■ 보아규베르(Pierre Le Pesant de Boisguillebert, 1646~1714) 162쪽, 174쪽

중농주의자 께네(F. Quesnay)의 선배에 해당하는 프랑스의 경제학자이다. 경제순환에서 자연질서를 찾아내고 이 질서를 침해하지 않는 조세제도를 구상하였다. 모든 가치의 원천은 토지이므로 토지에만 세금을 매겨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프랑스는 농업이 쇠퇴하고 조세제도가 어지러웠기 때문에 그의 이런 주장은 농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아울러 보아규베르는 조세제도 개혁을 통해 농민들의 빈곤을 제거할 것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께네를 거쳐 미라보(V.R. Mirabeau), 뛰르고(A.R.J. Turgot)까지 이어졌다.

■ 시지푸스(Sisyphus), 165쪽

시지푸스는 코린트[그리스 아테네의 서쪽 지방 도시]의 왕이었다. 어느 날 그는 우연히 한 독수리(이는 제우스가 변신한 것이었다)가 처녀를 그리 멀지 않은 섬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다. 강의 신 아소푸스가 그를 찾아와 자기 딸 아이기나가 납치당했다며, 제우스의 짓인 것 같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시지푸스는 자기가 본 것을 얘기해 주었다. 이 때문에 시지푸스는 제우스의 노여움을 받아 지옥(하데스)에서 올리면 다시 굴러내려오는 바위를 언덕 위로 끝없이 올려야 하는 벌을 받았다.
한편, 아소푸스도 제우스의 번개에 쫓겨 딸을 되찾을 수 없었다. 뒷날 제우스와 그녀 사이에 난 아들이 아에아쿠스인데, 이 사람의 손자가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그리스 장군 아킬레스이다.

 

제 1편 상품과 화폐

 

□ 독자들에게


11번의 연재를 통해 『자본』 1권, 1편을 정리하였다. 시작할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하기는 했지만, 직접 만나지 않고 글로 『자본』을 설명한다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또한 읽는 사람의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될 수 있으면 쉽게 쓰려고 하였지만, 연재가 진행될수록 모자란 능력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독자들은 연재를 시작할 때 ꡐ자본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성실하게 읽는 것ꡑ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연재되는 글을 보면서 독자들은 ꡐ역시 교재가 가장 쉽구나ꡑ하고 느꼈을 것이다.
연재 내용 가운데 가장 아쉬운 것은 2호와 3호였다. 1장인 상품을 알기 쉽기 설명하고 『자본』 읽기에 재미가 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독자들은 1장을 잘 이해해 두어야 한다. 1장만 잘 이해하면 나머지는 사실 그 반도 안 되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이 주도하는 생산이나 유통은 어디까지나 자본의 증식활동이며 자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폐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런데 1장에서 대충 넘어가면 나중에 가서 딴 소리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뵘바베르크는 맑스가 1권에서는 가치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3권에 가면 그것을 가격으로 바꾸어 일관성이 없다고 하였는데 1장에 분명히 나중에 가면 가격으로 바꾸어 설명한다고 말하고 있다.
5호와 6호에서 연재한 1장 3절은 맑스의 말대로 역시 어려웠다. 그림을 그려 설명해보려고 시도하였으나 오히려 내용을 단순화하고 이해하기만 어렵게 된 것 같아 원고를 넘기기 직전에 뺐다. 독자들은 다시 한 번 1장 3절을 잘 읽어두었으면 한다.
8호~11호까지 연재된 2장과 3장은 1장에 비하면 훨씬 쉬운 내용이다. 다만 여기서 ꡐ사회적ꡑ이라는 말을 잘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개인에게 아주 큰 가치를 지닌 것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 자본을 읽을 때는


『자본』을 처음 읽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맑스가 수도 없이 인용하는 신화, 인물, 문학, 과학의 지식이다. 맑스는 원래 천재였던 데다가 지독한 노력가였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신화와 예술, 기술사와 공학사, 화학문제, 언어학, 수학 심지어 농업과 원예까지도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자본』은 130여 년 전에 한국어도 아닌 독일어로 쓴 것이다. 만약 현재 한국을 모델로 하여 한글로 쓴 책이 하나 있다고 하자. 이 책을 130년이 넘게 흐른 뒤 이탈리아 사람이 이탈리아어로 번역해서 읽는다고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또한 독일 사람들이 ꡐ춘향이처럼 예쁘다ꡑ든지 ꡐ콩쥐처럼 착하다ꡑ든지 하는 말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자본』을 읽을 때 느끼는 어려움 가운데 많은 것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의 차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ꡐ과부 퀴클리ꡑ나 ꡐ마리토르네스ꡑ를 모른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이야말로 그냥 넘어가도 큰 지장이 없다.
또한 『자본』을 처음 볼 때, 많은 각주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각주를 읽다가 정작 내용을 놓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따라서 처음 읽을 때는 각주는 빼놓고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밖에도 내용은 잘 이해했는데 예로 든 것이 더 어려운 경우도 있다. 63쪽의 ꡐ버터산과 개미산 프로필ꡑ의 예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내용을 이해했으면 예로 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질질 끌 필요없이 넘어가면 된다.
어쨌든 『자본』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직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는 것이다. 한 번에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든다면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다. 쓴 사람도 수 십 년이 걸렸는데 그것을 읽는 사람이 한 번에 이해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자본』을 처음 읽는다면 여유를 가지고 끝까지 읽는 것만을 목표로 삼아도 좋다.

 

□ 『자본』과 현대 자본주의


연재를 시작할 때 말했던 대로 『자본』은 ꡒ현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ꡓ이 목적이다. 1권 7편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자본』은 자본주의 사회가 이윤추구에만 매달려있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는 온갖 문제를 아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자본』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의 현실을 보자. 한국이 그토록 닮고 싶어하는 미국은 전체 가구의 상위 1%가 부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밑바닥 40%의 재산은 전체의 0.2%밖에 안 되는 나라다. 미국 어린이의 1/5은 절대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뉴욕타임스조차도 분배불균형, 빈부격차 확대가 미국 경제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구나 요즘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의 세계화는 ꡐ국가경쟁력의 강화ꡑ라는 허울좋은 이름 아래 대다수 국민들의 생존권은 말할 것도 없고 피로 이루어온 민주주의 기본권마저 침해하고 있다. 『자본』이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세계경제가 인터넷 시대를 맞아 새로운 발전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세계화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과정일 뿐이며 사람들을 이유도 모르는 채 참혹한 경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는다.
현재 자본의 세계화로 후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대량실업, 고용불안, 실질임금 하락 등은 맑스가 『자본』에서 설파했던 얘기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21세기인 오늘도 맑스가 주장했던 자본주의 운동법칙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1년에 바다에 버리는 식량 1/4만 무상으로 원조해도 세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 과학 기술은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데 인간은 오히려 멸망과 보이지 않는 폭력의 공포에 떨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본』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다음 호부터는 화폐가 어떻게 자본으로 바뀌어 이윤을 얻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2편을 연재한다.


■ 맑스의 ꡐ상형문자ꡑ

맑스는 소문난 악필(惡筆)이었다. 어찌나 글씨를 못썼던지 맑스조차 가끔 자기가 써놓은 원고를 읽을 수 없었다고 한다. 런던에서 가난을 이기다 못해 철도사무소에 취직하려고 했을 때도 글씨를 너무 못써서 떨어졌다.
맑스의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그의 부인 예니, 엥겔스밖에 없었다. 맑스와 예니가 죽은 뒤 엥겔스는 혼자서 『자본』 2권, 3권을 편집하여 출판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원고를 읽다가 눈이 나빠질 정도로 맑스의 글씨는 읽기 어려웠다. 엥겔스가 뒷날 맑스의 글씨를 ꡐ상형문자ꡑ라 부르고 『자본』을 ꡐ일곱 개의 봉인을 가진 책ꡑ[신비로운 책이라는 뜻]이라 한 것은 유명하다.
맑스의 사위 라파르그는 『자본』의 러시아 어 번역자 다니엘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있다. ꡒ당신은 윌리엄[맑스의 필명]의 작은 필적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초고에서는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약어, 지운 글자, 지웠다가 다시 쓴 글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해독하기 어려운 글자가 있는 옛 문서 위에 다시 쓴 그리스 어 사본을 읽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ꡓ
여기서 말하고 있는 약어 몇 개를 보자. Arbeiter→Arbitr(노동자), Capital→Cpitl(자본), Bedufnisse→Bdfsse(필요, 욕구)라는 식이다.
약어 말고도 뒷사람들을 괴롭힌 것은 맑스의 작은 글씨였다. 그가 얼마나 글씨를 작게 썼는가 하면 t는 1mm, n은 0.3mm 정도였다.
현재 맑스가 남긴 원고 해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크루트 뮬러가 작성한 ꡐ뮬러입문서ꡑ이다. 뮬러는 독일사회민주당원으로, 1933년 반(反) 나치 운동으로 체포되었다. 그 때 감옥에서 같은 방에 있던 문서위조범에게 필적학을 배워 전쟁이 끝난 뒤 베를린 인민경찰에서 필적을 감정했다. 한편, 독일사회민주당 문고에 있던 ꡐ맑스․엥겔스 유고ꡑ는 현재 암스테르담에 있는 사회사 국제연구소가 갖고 있다. 보존문제로 초고를 직접 보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사진복사는 누구나 빌려볼 수 있다고 한다.

 


■ 중상주의(Mercantilism), 194쪽

봉건제가 해체되고 절대왕정이 성립한 이후 산업혁명 때까지 유럽에 풍미했던 사상이다. 체계가 잡힌 경제사상은 아니었고 당시 관료, 회사의 중역들이 발표한 짧은 논문, 경제정책들에 공통으로 나타난 흐름들이다. ꡐ중상주의ꡑ라는 말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1776)에서 처음 썼다.
중상주의자들은 금, 은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얻는 것이 나라의 부와 힘을 늘리는 방법이라고 보았으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무역이었다. 즉,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을 억제하여, 그 차액으로 금, 은 형태의 화폐를 획득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중상주의자들은 자립적인 국민경제의 형성을 지향하여 자급자족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수출기반 증대를 위한 광공업, 농업, 상업, 해운업 등 경제부문의 진흥과 식민지 획득, 그리고 국민경제 전반에 걸친 강력한 통제를 제안하였다.
앞서 말한대로 중상주의자들은 화폐량의 증대가 고용과 국민소득의 증대를 가져온다고 믿었으며 생산을 늘리려면 이자율이 낮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중상주의자들은 이자 소득으로 살아가는 고리대금업자, 금융업자들이 억지로 화폐가치를 인상시킨다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중상주의자들은 국제무역에서 승리하고 이윤획득을 위해서는 경쟁국보다 상품가격이 낮아야 하므로 임금수준을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중상주의자들이 인구증가에 힘을 기울인 것도 낮은 임금으로 노동력을 생산과정에 투입하기 위한 것이었다.
15, 6세기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부강책으로 생겨난 중상주의의 이론과 정책은 이미 17세기 말엽부터 서서히 비판을 받기 시작했고 18세기에 이르러 산업의 중심이 상업에서 공업으로 옮겨지게 되자 전면적인 비판을 받게 되었다. 결국 케네와 스미스의 체계 잡힌 경제학이 등장하면서 중상주의는 사라지게 되었다.

 

 

<교재 제 1 권 183쪽~194쪽>
제 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제 4장 자본의 일반공식


□ 2편 개괄

 

우리는 1편에서 상품으로부터 출발해서 화폐형태를 밝혀냈다. 이제 2편에서는 화폐가 자본으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한다.
먼저 제목들을 살펴보자. 2편의 제목은 ꡐ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ꡑ이다. 여기서 ꡐ전환ꡑ이란 말은 화폐가 반드시 자본으로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화폐가 자본으로 바뀌어 있는 현실을 설명하는 말이다. 아울러 4장이 제목이 ꡐ자본의 일반공식ꡑ인 것도 자본분파 모두에게 어울리는 공식이기 때문이다. 자본이라고 생긴 것은 모두 이 공식을 따르기 때문에 붙인 제목이다. 맑스는 자본에 관한 분석을 눈에 보이는 운동 형태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형태의 개별속성으로부터 추상하는 방식으로 살펴본다.
4장에서, 자본분파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일반공식을 살펴본 뒤에 5장에서는 이 공식에 논리적 모순이 있음을 밝히며, 6장에서는 ꡐ노동력ꡑ이라는 상품의 존재로 이 모순이 해결되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

 

□ 단순 상품유통과 자본으로서의 화폐유통

 

맑스는 상품유통과 자본유통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서 ꡐ자본ꡑ의 개념을 끌어내고 있다. 그런데 상품유통은 자본유통의 출발점이며 이 과정 최후의 산물은 화폐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상품생산과 발달된 상품유통(상업)은 자본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이다. 역사에서 자본은 어디서나 먼저 화폐형태로서, 상인자본 또는 고리대자본이라는 화폐재산으로서 토지소유에 대립한다. 그러나 맑스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 이전의 자본의 모습으로부터 자본의 발생사를 살펴보지 않는다. 맑스는 ꡐ화폐로서의 화폐ꡑ와 ꡐ자본으로서의 화폐ꡑ가 유통형태에서 갖는 공통성과 차이에 대하여 주목한다.
일단 단순 상품유통 <상품―화폐―상품>(C―M―C)과 <화폐―상품―화폐>(M―C―M)는 어떤 경우에든 모두 상품과 화폐라는 같은 요소의 대립으로 이루어져 있는 판매(상품―화폐)와 구매(화폐―상품)로 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공통성이다.
그러나 두 가지 순환은, 대립하고 있는 같은 유통단계의 순서가 바뀌어 있다는 점에 있어서 형식의 차이를 가진다. 순환 C―M―C과 순환 M―C―M은 유통단계의 순서가 뒤바뀌어 있으며, M―C―M에서는 화폐가 아니라 상품이 전체 과정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첫째, 단순 상품유통은 소비와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용가치의 획득이 목적이지만 자본으로서의 화폐 유통은 교환가치 자체가 목적이다.
둘째, 단순 상품유통에서는 모두 같은 가치를 갖는 상품이 순환의 시작과 끝을 이루고 두 극은 다만 질이 다른 사용가치를 가진다는 점으로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으로서의 화폐유통은 순환의 시작과 끝이 사용가치가 모두 같은 화폐이며 교환가치이다.
셋째, 따라서 자본으로서의 화폐유통에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화폐는 양이 차이가 나야만 의미가 있다. 만약 순환 M―C―M에서 끝점의 화폐액이 출발점의 화폐액보다 크지 않다면, 이 과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100원으로 상품을 사서 다시 100원에 팔려면 차리리 100원을 꽉 쥐고 유통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내놓지 않는 것이 낫다. 자본은 원래 이윤이 생기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 조금이라도 이윤이 생기면 지옥에서도 움직인다.
넷째, 그러므로 순환 M―C―M의 내용은 가치증식이어야만 한다. 즉, M―C―M'' (M′= M+△M)이어야만 한다. 여기서 맑스는 잉여가치를 정의하고 있다. 잉여가치는 ꡐ최초에 투하된 가치를 넘는 초과분ꡑ이다. 가치가 잉여가치를 덧붙이는 운동, 가치 자신의 운동이며 동시에 가치를 증식시키는 운동, 즉 자기증식 운동이 아니라면 M―C―M은 안 해도 되는 ꡐ헛짓ꡑ이다. 자본으로서의 화폐유통에서 반드시 ꡐ가치는 자신이 가치이기 때문에ꡑ 잉여가치를 낳는다는 신비한 성격이 나타나야 한다.
다섯째, 단순 상품 유통은 유통의 외부에 있는 최종목적(사용가치의 취득, 욕망의 충족)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자본으로서의 화폐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왜냐하면 가치 증식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이 운동의 내부에서만 실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의 운동에는 한계가 없으며 이 운동의 의식적 담당자로서 화폐소유자가 자본가로 된다. 끊임없는 이윤추구운동만이 자본가의 목적이다.
여섯째, 단순 상품유통에서 상품들의 가치가 취하는 독립적인 형태(화폐)는 상품교환을 매개할 뿐이고 운동의 끝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유통 M―C―M에서는 상품도 화폐도 모두 가치 그 자체의 다른 존재방식으로서 기능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뿐이다. 이 과정에서 가치는 끊임없이 번갈아 화폐와 상품의 형태를 취하면서 잉여가치를 내뿜는다.

 

□ 자본의 일반공식

 

판매하기 위한 구매, 정확히 말하면 더 비싼 값으로 판매하기 위한 구매 M―C―M′은 오직 자본의 한 종류인 상인자본에만 해당하는 형태인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산업자본 역시 상품으로 전환되었다가 상품을 판매해서 더 많은 화폐로 다시 바뀌는 화폐이다. 유통분야의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이 운동형태를 조금도 바꿀 수 없다. 이자 낳는 자본의 경우 M―C―M′은 단축되어 중간단계 없이 M―M′으로 간단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자본의 종류와 관계없이 ꡐ유통분야에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대로의ꡑ 자본의 일반공식 M―C―M′이 만들어진다.

 


<교재 1 권>
제 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제 5장 자본의 일반공식에서의 모순

 

□ 당부


『자본』을 공부하다가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시작하기가 참 힘들다. 대부분 사람들이 1편까지는 그래도 따라오는데 2편에서 많이 떨어진다. 몇 달이 지난 뒤 다시 마음을 먹고 1장부터 다시 읽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또 다시 4장이나 5장 쯤에서 그만두고 만다. 이러다 보니 마치 영어는 명사만, 수학은 집합만 공부하는 사람처럼 ꡐ자본ꡑ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늘 ꡐ상품과 화폐ꡑ만 보는 꼴이 된다.
혹시 독자들 가운데 중간에서 포기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 즉시 멈춘 곳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새마음 새뜻으로 1장부터 시작하려 하지 말라. 그러면 『자본』은 매일 1장만 읽게 된다. 멈춘 곳에서 다시 시작하여 한 두 개 장 정도 읽은 뒤 1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진도는 진도대로 나가면서 1장을 같이 읽으면 된다. 굳이 이런 말을 덧붙이는 이유는 연재가 잠시 간격을 두었기 때문에 잘 따라오던 독자들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 모순


그럼 4장을 잠깐 정리하고 5장을 설명하기로 하겠다.
4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환 M―C―M의 내용이 가치증식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M―C―M′(M′=M+△M)이어야만 한다. 가치가 잉여가치를 덧붙이는 운동, 가치 자신의 운동이며 동시에 가치를 증식시키는 운동, 즉 자기증식 운동이 아니라면 M―C―M은 이루어질 수 없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또 한 가지, 단순 상품유통은 유통의 외부에 있는 최종목적(사용가치의 취득, 욕망의 충족)을 위한 수단이지만 자본으로서의 화폐유통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5장은 ꡐ잉여가치가 과연 어디서 생기는가ꡑ라는 문제를 두고 유통에서 생길 수 있는지 검토해 보고 이것이 유통에서 생길 수 없고, 동시에 또 생겨야 하는 모순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여러 번 지적한대로 맑스는 자본에 관한 분석을 눈에 보이는 운동 형태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형태의 개별속성으로부터 추상하는 방식으로 살펴본다. 맑스가 4장에서 분석한 자본의 일반공식은 그 개별속성이 서로 다른 성격을 갖는 자본들이 그 유통형태에서 공통으로 갖는 일반속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은 그 외적 형태의 측면에서 우선 ꡐ자기 증식하는 가치~ꡑ, ꡐ과정 중에 있는 가치~ꡑ, ꡐ과정 중에 있는 화폐~ꡑ로서 정의된다.
유통형태의 측면에서 볼 때, 스스로 가치이기 때문에 가치를 낳는다는 신비로운 현상으로 나타나는 가치, ꡐ자기증식하는 가치~ꡑ에 대하여 원래 가치에 대한 증가분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발생한 것일까? 그것은 단순 상품유통에 대한 자본유통의 형태의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것일까?
이 문제를 밝히기 위해 맑스는 다시 단순 상품유통의 분석으로 돌아간다.
먼저 맑스는 가치법칙을 전제로 하고 잉여가치의 발생을 살펴본다. 사용가치에 관한 한 교환은 양쪽 모두 이익을 보게 되는 거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교환가치에 관한 한 평등이 있는 곳에 이득은 있을 수 없다. 교환에서 일어나는 것은 상품의 단순한 형태변화 뿐이다. 따라서 형태의 차이로부터 잉여가치가 나올 수는 없다.
가치법칙을 전제하면 원래 가치와 새로 덧붙은 가치의 차이는 오로지 가치법칙의 침해로서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상품교환의 발달된 모습인 상업에서 잉여가치가 나온다는 것은 꽁디악(Condillac)이 범한 촌스러운 오류와 마찬가지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혼동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법칙을 전제로 할 때 잉여가치는 교환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다음에 맑스는 가치법칙의 관철을 부정하고 등가물이 아닌 것끼리의 교환을 가정한다 할지라도 상품교환 자체는 잉여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점을 논증한다. 등가물이 아닌 것끼리의 교환은 다만 창출된 가치의 분배를 변경시킬 뿐이므로 계급으로서의 자본가의 자본 총량은 결코 늘어나지 않는다. 교재의 예를 살펴보자. 100의 가치가 있는 것을 110으로, 팔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판매자는 10의 잉여가치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가 판매자로 된 다음 구매자로 된다. 이번에는 제3의 상품소유자가 판매자로 10% 높여 판매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앞에서 10을 얻은 사람은 구매자로서 10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잉여가치가 명목상의 가격인상에서 생긴다든가 또는 상품을 비싼 가격으로 파는 판매자의 특권으로부터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판매는 하지 않고 구매만 하며 따라서 생산은 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어떤 계급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판매자가 그 상품을 생산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상품의 생산자를 대리하고 있듯이 구매자 역시 자신의 화폐로 표현되어 있는 상품을 생산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그 상품의 생산자를 대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자본가계급 전체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속임수를 쓸 수는 없으므로 등가물이 아닌 것끼리 교환된다고 해도 잉여가치는 생기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등가물끼리 교환된다고 하여도 잉여가치는 생기지 않고 비등가물끼리 교환된다고 하여도 잉여가치는 창출되지 않는다. 유통이나 상품교환은 어떠한 가치도 창조하지 못한다. 잉여가치는 유통의 내부에서 발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잉여가치는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유통이란 ꡐ상품 소유자들간의 상호관계의 총체~ꡑ이고 유통의 외부에서 상품 소유자는 오직 자기 자신의 상품과만 관계를 맺을 뿐이다. 그 상품의 가치는 자기 자신의 노동량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따라서 그의 노동은 상품가치와 상품가치를 넘는 어떤 초과분 양자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100이면서 110인 가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잉여가치는 유통의 외부에서 창출될 수도 없다. 생산과정에서 상품 소유자는 오직 자기 자신의 상품에만 관계하므로 자신의 노동력으로써 가치를 창조할 수 있지만 자기증식하는 가치를 창조할 수는 없다.

 

□ 맑스의 정식화(定式化)


맑스는 자본의 일반공식의 모순을 다음과 같이 정식화한다.

ꡒ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할 수도 없고, 또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할 수도 없다. 자본은 유통에서 발생하는 동시에 유통의 외부에서 발생해야 한다.ꡓ 화폐소유자는 상품을 그 가치대로 구매하여 그 가치대로 판매하여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끝에 가서는 자기가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가치를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는 6장에서 답할 것이다.


■ 로두스, 209쪽
ꡐ여기가 로두스 섬이다. 자, 여기서 뛰어보라!ꡑ는 말은 이솝우화에 나오는 말이다. 어떤 허풍선이가 로두스섬에 가면 아주 높이(어떤 책에는 하늘 끝까지라고 되어있다) 뛸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를 듣고 있던 사람이 ꡐ여기가 로두스 섬이니 한 번 뛰어보라ꡑ고 말해 허풍선이를 망신 주었다.
참고로 로두스 섬은 그리스 동남쪽 에게해에 있는 면적 1500㎢ 정도의 작은 섬이다. 봄․여름에는 마에스트랄레라는 차가운 바람이, 가을․겨울에는 시로코와 리베치오라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 이상적인 기후를 형성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 섬을 우리로 치면 ꡐ이어도ꡑ쯤 되는 신비한 곳으로 생각하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원전 1500년쯤부터 크레타 사람들이 옮겨와 살기 시작했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은 뒤 전성기를 맞이했다. 한 때는 카이사르가 학문을 배우기 위해 올 정도로 융성했다. 그러나 서기 1년을 전후로 쇠퇴하여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로두스 항에 다리를 벌리고 서있는 거인상은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이다.

 

 

<교재 1권>
제 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제 6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


□ 5장에서 맑스는 가치법칙에 근거를 두고 유통과정에서 잉여가치가 나온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그리고 유통의 외부에서 잉여가치가 생긴다는 것 또한 부정하였다. 그러나 6장에서 맑스는 다시 가치법칙으로 잉여가치의 원천을 해명한다. 맑스는 잉여가치의 원천이 획득될 상품의 사용가치와 관계 있다는 것으로 출발한다. 잉여가치의 원천은 구매한 상품의 사용가치 자체로부터, 즉 구매한 상품의 소비로부터 생긴다.
자신의 자본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자본가는 그 상품의 사용가치 그 자체가 가치의 원천이라는 특성을 지니며 그 상품의 현실적 소비 그 자체가 노동의 대상화이고 따라서 가치를 창조하는 상품인 어떤 특수한 상품을 유통 내부에서 발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특수한 상품은 인간의 몸, 즉 살아있는 인격 속에 존재하며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를 생산할 때마다 운동하는 노동력이다. 여기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것은 ꡐ노동이 아니라 노동력ꡑ이라는 통찰이야말로 잉여가치론의 기초가 된다.

 

□ 노동력 상품의 가치와 사용가치

 

① 노동력 상품의 가치
노동력 상품도 다른 모든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와 사용가치라는 이중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특수한 상품의 가치도 다른 모든 상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재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가치라는 면에서 볼 때 노동력은 재생산에 들어간 사회적 평균노동의 일정량만을 나타낼 뿐이다. 그러므로 가치증식은 첫번째 유통행위로부터 획득된 이 특수한 상품의 가치에서 발생할 수 없다. 가치증식은 이 특수한 상품의 사용가치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 때 자신의 노동능력 전체를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능력 가운데 일부분인 노동잠재력을 넘겨준다[이 점이 중요하다. 별표 다섯 개]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란 노동자가 상품형태로 판매한 노동잠재력의 가치이다.
노동력 상품의 가치에는 먼저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 소유자가 필요로 하는 생활수단의 가치가 포함된다. 그런데 가치를 창조하는 상품인 노동력 상품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노동력 상품의 가치에는 보통 상품의 가치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인이 작용한다. 노동력 가치는 노동자가 필요로 하는 생활수단을 구성하는 상품들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경우, 생활수단의 범위와 양에 따라 결정되고, 그것은 한 나라의 노동자계급이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 어떠한 요구와 관습을 가지고 형성되었는가에 따라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규정에는 다른 상품의 경우와는 달리 어떤 역사적․도덕적 요인이 포함되어 있다.

② 노동력 상품의 특수한 사용가치
잉여가치의 발생은 노동력 상품을 구매할 때 가격이 가치 이하로 구매되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력 상품의 사용가치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미 알다시피 상품교환은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어떤 상품의 가치를 지불하는 대신에 그 사용가치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도 다른 모든 상품교환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노동력 상품을 가치법칙에 따라 그 가치대로 구매하였다면 사용가치를 얻게 된다. 자본가가 얻은 것은 정확하게 노동력 상품의 사용가치이다.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노동력 그 자체의 가치를 초과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노동능력이다[이 점 또한 중요하다]. 그런데 상품으로서 노동력의 특수한 성격은 구매자와 판매자가 계약을 체결하더라도 이 상품의 사용가치가 아직 현실적으로 구매자의 수중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서 노동력은 매매 계약에서 확정된 기간만큼 기능을 수행한 뒤에야 비로소 지불을 받는다. 노동자는 어디에서나 노동력의 가격을 지불받기 전에 노동력을 구매자의 소비에 맡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비록 형식적으로는 노동력과 화폐의 교환으로 노동력을 구매하며 노동력 가치에 대하여 지불하지만 실제 결과에 있어서는 노동을 구매한다. 바로 여기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핵심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노동력을 구매할 때 자본가는 분명 노동력 상품의 가치에 대하여 지불하는 것이지만 노동력 상품의 사용가치에 대하여 지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본가가 노동력 상품에 대하여 가치대로 지불하면서 사용가치의 변화에 따라 두번째 유통단계(C-M)에서 그가 구매했던 상품의 가치 이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 때문이다.

 

□ 노동력 상품 등장의 역사적 전제


노동력이라는 특수한 상품의 등장을 통해서만 자본주의는 그 이전의 사회와 구별할 수 있다. 그러면 노동력 상품은 어떻게 출현한 것인가?
먼저 상품으로서 노동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살펴보자. 첫번째로 그것은 노동력의 소유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법률적으로 평등한 인격이어야 함을 뜻한다. 노동력의 소유자는 자기 노동능력이나 자기 인격의 자유로운 소유자이어야 하며 대등한 인격으로서 화폐소유자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 노동력을 일정 시간 동안만 판매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노동력 소유자는 노동력을 넘겨주어도 노동력에 대한 그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않게 된다.
두번째로 노동력 소유자가 자신의 노동이 대상화된 상품을 판매할 수 없고 그의 노동력 자체를 판매해야만 하는 사회․역사적 조건을 전제로 한다. 즉 노동력 소유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한다. 이리하여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로운 노동자가 등장하여야만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역사적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이중의 의미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먼저 그가 자유로운 인격이라는 점에서, 즉 봉건시대의 인신 예속관계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며, 다음으로 자기 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물질 조건, 모든 객관적 생산조건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관계는 자연사적 관계가 아니라 반드시 어떤 사회역사적 사건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ꡒ그것은 분명히 과거의 역사적 발전의 결과이며, 수많은 경제적 변혁의 산물이며, 과거 수많은 사회적 생산구성체의 몰락의 산물ꡓ이다. 물론 생산물이 상품이라는 존재형태를 갖는 것 역시 일정한 역사적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모든 생산물 또는 적어도 대부분의 생산물이 상품형태를 취하는 것 역시 오로지 하나의 완전히 특수한 생산양식,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화폐의 발전은 비교적 덜 발달한 상품유통으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ꡒ자본의 역사적 존재조건은 결코 상품유통과 화폐유통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오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ꡓ는 맑스의 말은 자본주의 이행을 이해하는 문제에 있어서 기본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맑스는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8편에서 보여준다.
이러한 역사적 전제가 충족되고 그리하여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노동력이 상품으로 취급되고 노동자가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계속 노동력을 팔아야만 한다.


■ 시스몽디(Jean Charles Lnard Simonde de Sismondi, 1773~1842), 218쪽

스위스의 역사가, 경제학자. 프랑스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담당한 역사가이며 프랑스 고전경제학 최후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어려서부터 루소의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 혁명에 열광하였으나 상층 계급에 속하는 그의 가족에 대해 자코뱅파가 억압을 하였기 때문에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혁명파로부터는 반혁명파로, 왕정복고파에게는 혁명파로 몰려 고통을 받았다. 나뽈레옹 제정이 출현하자 자코뱅파 이상으로 이를 증오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스미스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유방임을 추구하였으나 소생산을 옹호하기 위한 국가의 간섭을 주장했다. 또한 공황을 자본주의의 피할 수 없는 산물로 파악하고 과소소비설에 따른 공황론을 전개하여 소부르주아 사회주의 경제학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저서 『신경제학원리』는 민주주의가 기계제도와 대농제도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교재 1권>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7장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 3편의 위치

 

1편에서 상품분석으로부터 시작하여 화폐를 끌어낸 맑스는, 2편에서 화폐가 어떤 운동을 해야 자본으로 바뀌는지 살펴본다. 아울러 자본의 일반공식과 그 모순을 살펴보면서 노동력상품이 잉여가치를 창출한다는 비밀을 밝혔다. 3편에서는 1․2편의 논의를 기초로 하여 잉여가치가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창출되는가에 대해 살펴본다.

 

□ 노동과정

 

1편 1장에서는 사용가치와 가치가 비록 모순이지만 통일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상품을 분석하였다. 상품에 들어있는 노동이 이중성을 가지듯이 자본주의 생산과정도 두 측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맑스는 이 구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맑스에 따르면 노동과정은 어떤 특정한 사회형태와 관계없이 살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외부의 자연에 대하여 작용을 가하고, 이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본성까지 바꿔놓는다. 인간의 노동은 이미 처음부터 자기가 의식하고 있는 목적을 자연물에 실현한다는 점에서 동물의 행동과 구분된다. 참고로 교재에 나오는 거미와 꿀벌의 예는 아주 유명한 구절로 맑스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자주 인용하는 부분이다.
노동과정의 단순한 요소들은 ① 노동 그 자체, ② 노동대상, ③ 노동수단이다. 이 세 요소 가운데 노동수단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나머지는 교재의 내용으로 충분하다.
다음 구절을 보자. ꡒ경제적 시대들을 구별하는 것은 무엇이 생산되는가가 아니고 어떻게, 어떠한 노동수단으로 생산되는가라는 것이다. 노동수단은 인간의 노동력 발달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노동이 그 속에서 수행되는 사회적 관계의 지표이기도 하다.ꡓ 여기서 '어떻게'는 ꡒ어떠한 노동수단으로ꡓ를 포함하는 더 넓은 의미이며, 노동수단에 따라서 노동이 어떻게 조직되고 분화되는가, 즉 어떠한 분업 체계가 이루어지는가를 뜻한다.
노동과정은 사용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활동이며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자연물의 취득이며 인간생활의 영원한 자연조건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과정은 사회형태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노동과정이 일반적으로 특정 사회형태와 관계없다 할지라도 이 과정의 구체적 형태는 특정한 사회형태에 따라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자본주의 생산에서 노동과정이 가치증식과정과 떨어질 수 없고, 가치증식과정에 규정되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 노동과정은 당연히 가치증식을 위한 노동과정이다.
그러나 7장에서는 노동이 자본에 종속됨으로써 생겨나는 생산양식 자체의 변화를 다루지는 않는다. 7장 1절에서 맑스는 노동과정의 일반 성격을 해명한 다음, 노동과정이 자본가가 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으로 될 때, 노동과정이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한 노동과정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독특한 현상을 다룬다.
노동과정을 통해 노동은 대상화되며 대상은 가공된다. 그런데 노동과정이 자본가가 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으로 되자마자 노동생산물은 더 이상 생산자에게 속하지 않고 자본가에게 속한다. 자본가는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가치대로 지불했고, 노동력이 상품인 한 생산물은 직접생산자인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자본가에게 돌아간다. 자본가는 노동력 상품을 구매해서, 노동력의 사용가치를 건네 받았다. 그런데 자본가는 노동력이 노동대상에 잘 작용할 수 있도록 감시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노동과정은 자본가의 통제 아래 수행되고, 그 생산물은 자본가에게 돌아가며, 노동자는 노동력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를 판매한 결과를 낳게 된다.

 

□ 가치형성과정과 가치증식과정

 

상품생산에서 사용가치는 생산 자체의 목적이 아니다. 사용가치는 오로지 교환가치의 담당자일 때만 생산의 목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가에게는 먼저 교환가치를 가지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문제이다. 다음으로는 그 사용가치의 생산을 위해서 구입한 상품들의 가치총량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자본가가 사용가치를 생산하려 한다면 그것이 가치의 담당자이기 때문이고, 나아가서 그것이 잉여가치의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상품이 사용가치와 가치의 통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생산과정은 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이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과정과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은 단순 상품생산의 경우에도 구분된다. 단순 상품생산 과정을 가치형성과정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노동과정이 양적 측면으로서 나타난다. 가치형성과정에서 원료는 일정한 양의 인간노동을 흡수한다는 것으로서만 의미를 갖게 되고, 오직 노동력이 유용하게 지출되는 시간만 문제가 된다. 가치형성과정에서 노동은 상품가치를 형성하는 추상적 노동으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 상품생산의 경우에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가 보전되는 지점을 넘어서서 그의 노동시간을 연장한다면 이제 이는 가치형성과정이 아니라 가치증식과정으로 나타난다. 가치증식과정은 연장된 크기의 가치형성과정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와 같이 연장된 크기의 가치형성과정, 즉 가치증식과정이 가능한가? 이 관계를 우리는 4장~6장에서 살펴본 바 있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을 유통이 매개한다는 것은 이 전환이 노동력 상품의 구매에 따른 것임을 뜻한다. 또한 유통의 영역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함은 유통이란 노동력 상품의 구매를 통하여 생산영역에서 앞으로 진행될 가치증식과정을 단순히 준비하는데 지나지 않음을 뜻한다.
생산영역 안에서 가치증식이 가능한 이유는 노동력 안에 포함된 과거 노동과 노동력이 수행할 살아 있는 노동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크기라는 데 있다. 노동력의 가치와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크기가 다를 수 있으며, 자본은 그렇기 때문에 노동력을 구매하는 것이다. 자본가는 시장에서 노동력 상품을 그 가치대로 구입하여 생산과정에서 구입한 상품의 사용가치를 소비한다. 그리하여 상품교환의 법칙은 조금도 어기지 않았고 구입한 노동력 상품은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였으며, 잉여가치 법칙은 가치 법칙을 전혀 어기지 않은 채 관철된다.
가치증식을 위하여 자본가는 생산수단과 노동력 상품을 구매하여 잉여가치 생산의 조건을 준비한 이후, 구매한 노동력을 사용되는 부문에서 지배적인 평균 정도의 숙련과 기능․민첩성을 갖고 작용하도록 세밀하게 감시해야 한다. 노동과정에 대한 지휘는 사회적 노동과정의 성질 자체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자본가가 노동과정을 지휘하는 것은 그가 산업의 지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꾸로 그가 자본가이기 때문에, 가치증식과정의 지휘자이기 때문에 산업의 지도자, 노동과정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 매컬록

(John Ramsay MacCulloch, 1789~1864), 244쪽
영국의 속류경제학자, 저널리스트, 사전․통계․고전 등의 편집자로서도 유명하다. 밀(Mill)과 함께 리카도의 제자로서 리카도 학설의 보급과 옹호에 공헌했다. 그러나 아류가 흔히 그러하듯 세련된 논리 없이 궤변론과 변호론으로 흘렀기 때문에 그의 노력은 오히려 리카도 체계의 해체를 촉진하는 구실이 되었다. 초보적인 수요분석과 효용개념을 생각하였으나 논리를 갖추지 못해 큰 영향은 주지 못했다. 또한 기계가 도입되면 노동자들이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늘어나서 노동자들을 재취업시키기에 충분한 일자리가 생긴다는 논리를 폈다. 맑스는 『자본』 곳곳에서 매컬록의 황당한 논리를 야유에 가까운 말로 비판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정치경제학원리』(1825), 『과세와 재정제도의 실제영향과 원리에 관한 연구』(1845)가 있다.

 

 

<교재 1권>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8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 이번 호부터는 발걸음을 조금 빨리 한다. 단순히 진도를 뽑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어려운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동과정의 여러 가지 요소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생산물의 가치형성에 참여한다. 노동과정 속에서 노동자는 생산수단의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하고 보존하는 한편, 노동대상에 새로운 가치를 덧붙인다. 노동대상에 새로운 가치를 덧붙이는 것과 원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은 같은 노동과정을 통하여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전혀 다른 두 가지 결과이다.
그런데 생산수단과 노동력은 처음의 자본가치가 화폐형태를 벗어버리고 노동과정의 요소들로 전환할 때 취하는 존재형태일 뿐이다. 이런 자본 가운데 생산수단(원료․보조재료․노동수단)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가치량이 변동되지 않으므로 불변자본이다. 그렇지만 생산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도중에 불변자본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불변자본의 가치변동은 언제나 생산수단 외부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자본 가운데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변하므로 가변자본이다. 8장에서는 이 개념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교재를 참조하면 된다. 7장부터 8장의 내용을 정리하여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 노동력의 착취도

 

자본 C는 생산수단에 지출된 화폐액 c와 노동력에 지출된 화폐액 v로 나눌 수 있다. 숫자 예를 들자면 그것은 500원=410원(c)+90원(v)으로 표시된다. 투하된 자본 C의 증식은 먼저 생산물 가치가 생산요소들의 가치 총액을 넘는 부분으로 표시된다. 생산과정은 그 결과물인 상품 출현으로 귀결되는데 그 상품의 가치는 자본가치(c+v)+잉여가치(s)이다. 예컨대 90원의 잉여가치가 창출되었다면 그것은 410원(c)+90원(v)+90 원(s)이다. 투하된 자본 C는 잉여가치를 포함하는 자본 Cꡑ로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불변자본의 가치는 생산물에 재현될 뿐이며 가치증식과정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므로 생산과정 속에서 현실적으로 새로 생산된 가치는 생산과정에서 얻은 생산물의 가치와는 서로 다르며, 따라서 그것은 얼핏 보아서는 (c+v)+s인 듯이 보이나, 실은 그렇지 않고 v+s이다. 즉 v+s=v(v의 재생산)+△v(v의 증가분)인 것이다. 여기에서 새로 생산된 가치(v+s)를 생산물가치와 구별하여 가치생산물이라고 부른다.
불변자본이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다면 가변자본이 가치증식한 비율은 분명히 가변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에 따라 규정되어로 표현된다. 이것이 잉여가치율이다.
노동력 상품의 등가교환을 전제한다면, 에서 v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응결로 나타나고, s는 필요노동의 한계를 넘어서서 노동자를 위해서는 아무런 가치도 형성하지 않는 잉여노동시간의 응결로 나타난다. 따라서 잉여가치율은 잉여노동의 필요노동에 대한 비율로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잉여가치율은 노동력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착취의 절대 크기를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착취의 절대크기는 잉여노동시간의 절대 길이에 따라 규정된다.
맑스가 1절에서 들고 있는 예에 따라 잉여가치율을 계산해 보면 그것은 또는 인 =18%가 아니라 인 =100%이며, 따라서 노동자는 반날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였고 나머지 반날은 자본가를 위하여 일한 것이 된다.

 

□ 생산물의 가치를 생산물의 비례배분적 부분들로 표시

 

총가치는 20파운드의 면사라는 총생산물로서 표현되기 때문에 가치의 각각 다른 구성 요소들도 또한 생산물의 비례로 표현할 수 있다. 또 각 생산물은 가치에 관한 한 대상화 된 노동시간의 응결이므로 노동시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으로 바꿀 때는 주의해야 한다. 278쪽 각주에 나오는 예, 즉 ꡐ노동일 12시간=8시간+1시간 36분+1시간 12분+1시간 12분ꡑ은 이런 식으로 계산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이지 현실노동과정이 이렇게 분할된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만 조심하면 9장 2절은 특별히 어려운 내용이 없다.

 

□ 시니어의 ꡒ최후의 한 시간ꡓ

 

시니어는 원래 『경제학 개요』에서 ꡒ스스로 수입을 자본으로 전화하는 자는 그 지불이 그에게 주는 향락을 절약한다ꡓ면서 이윤이나 이자는 자본의 절약이라는 희생에 대한 보수라고 하는 ꡐ절욕설ꡑ을 제창했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ꡐ최후의 1시간ꡑ설을 주장하게 되어 사실상 이 ꡐ절욕설ꡑ을 부정하게 된다. 시니어는 『공장법이 면공업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편지』에서 공장주의 순이익은 공장에서의 노동의 최후의 한 시간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ꡒ노동시간이 매일 한 시간 단축된다면 순이익은 없어질 것ꡓ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공장법과 그 이상의 제한을 요구하던 10시간 운동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이 견해는 노동시간이 필요노동시간과 잉여노동시간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결코 노동자가 8시에서 12시까지는 필요노동을 하고 12시부터 오후4시까지는 잉여노동을 하는 것처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황당한 견해였다. 노동자는 노동시간 전체에 걸쳐 필요노동뿐 아니라 잉여노동도 하는 것이다.

 

□ 잉여생산물

 

생산물 가운데 잉여가치를 대표하는 부분을 잉여생산물이라고 한다. 잉여가치율이 자본 총액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이 아니라 자본의 가변 구성부분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로 규정된다. 마찬가지로 잉여생산물의 정도도 총생산물 가운데 전체 나머지 부분에 대한 잉여생산물의 비율이 아니라 ꡐ필요노동을 대표하는 생산물 부분ꡑ에 대한 잉여생산물의 비율로 규정된다.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의 합계, 즉 노동자가 그의 노동일을 보상하는 가치를 생산하는 시간과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시간의 합계가 노동자의 노동시간의 절대 크기인 노동일을 이룬다.

 


<교재 1권 291쪽~396쪽>
제3 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10장 노동일
제 11장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 이제까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7장에서는 상품생산과정을 ꡐ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ꡑ로 보고, 특히 자본주의 상품생산에 대해서는 ꡐ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통일ꡑ로 살펴보았다. 8장에서는, 7장 1절에서 특정한 경제적 사회구성체와 관계없이 노동과정의 기본 요소로 살펴보았던 것들이 가치증식과정에서는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았다. 9장은 노동력 착취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잉여가치율에 대해 살펴보면서, 자본가들의 이윤율 개념과 어떻게 다른가를 보았다.

 

□ 노동일

 

10장 노동일은 노동력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잉여가치 생산을 살펴보고 있다. 『자본』 가운데 처참한 자본주의의 역사를 섬뜩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대목이다. 좀 길긴 하지만 어려운 부분은 없으니 죽죽 읽어갈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맑스는 3편에서 ꡐ절대적 잉여가치ꡑ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는다. 4편에 가서야 ꡐ상대적 잉여가치ꡑ와 비교하면서 개념을 정리하고 있다.
1절에서는 노동력 가치가 변하지 않고 노동력이 가치대로 매매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더 많은 잉여가치를 짜내려는 자본가는 노동일을 늘리려 하고 노동자들은 그것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는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라고 말한다.
노동일을 구성하는 두 부분 중 필요노동 시간이 사회적으로 주어졌다고해도 잉여노동 시간이 변할 수 있으므로, 노동일의 길이는 잉여노동 시간에 따라 변한다. 또한 자본주의는 반드시 잉여가치를 생산해야만 하기 때문에 잉여노동시간이 0이 될 수는 없다.
한편, 노동일은 한계가 있다. 첫째, 노동력의 육체적 한계(24시간). 둘째, 도덕적인 한계. 이 두 한계로 노동일은 변동 범위가 매우 크며, 한계를 둘러싸고 자본가와 노동자는 계급 대 계급으로 맞서 싸우게 된다. 이 싸움은 모두 상품교환 법칙으로 보증되는 권리와 권리의 대립이므로 힘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절에서는 왈라키아의 지주 귀족인 보야르와 자본주의적 공장주를 비교하면서,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이 사적 소유 일반의 특징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에 와서야 그 갈망이 제한이 없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3절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조직적 투쟁이 없는 기간에는 잉여가치에 대한 자본가의 욕망때문에 노동일이 극한선까지 연장된다는 사실을 ꡒ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문ꡓ(레이스, 도자기, 성냥, 철도…)의 예를 들어 입증하고 있다.
4절에서는 기계를 놀리는 것을 손실로 보는 자본가가 그 손실을 없애기 위해 주․야간 교대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이것이 결국 표준 노동일을 늘리게 됨을 살펴본다.

 

□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5절부터는, 1절에서 ꡒ힘이 문제를 해결한다ꡓ고 했던 과정을 영국의 예로 살펴본다. 먼저 5절에서는 자본가들이 노동일 연장을 입법화하는 과정을 본다.
자본은 잉여노동에 대한 제한없는 충동으로 말미암아 노동일의 도덕적 한계 뿐만 아니라 육체의 한계까지도 넘어버린다. 또한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로 하지 않는다.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1노동일 안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 뿐이다. 14세기에서 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노동법들은 노동일을 강제로 늘리려 했다. 그러나 아직 자본의 힘이 약했기 때문에 국가 권력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1349년 최초의 노동법, 1496년 헨리 7세 통치 시대의 법령, 1562년 엘리자베스의 법령들이 모두 이런 예들이다.
6절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일 단축을 법률화하는 투쟁 과정을 그리고 있다. 또한 이런 투쟁과정을 거쳐 입법화 된 법률들에 자본가들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도 아울러 살펴보고 있다. 실제로 1802~1833년 5개의 노동법은 법률의 실시와 필요한 관리 인원들의 경비는 한푼도 비준하지 않은 죽은 법이었다. 1833년의 공장법도 미성년자의 노동시간을 제한하였으나 자본가들은 교대제를 도입하여 대처하였다. 이후 몇 가지 법률에도 자본가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로 노동일이 제한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다.
7절에서는 5절과 6절에서 살핀 역사적 사실들을 총괄하면서 표준 노동일 입법화를 위한 투쟁이 갖는 의미와 다른 나라들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영국 노동 계급의 뒤를 이어 프랑스, 미국 등의 노동 계급은 표준 노동일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또 1866년 9월 초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자협회 대회에서 8시간 노동일을 입법화할 것을 요구했다.

 

□ 잉여가치율과 잉여가치량

 

3편의 다른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11장에서도 노동력의 가치 즉 노동력의 재생산 또는 유지에 필요한 노동일 부분을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잉여가치율이 주어진 것일 때 개별노동자가 일정한 기간에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잉여가치량도 또한 주어진 것으로 된다. 이것을 기초로 잉여가치량과 잉여가치율이 노동력의 수, 착취도가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 살펴본다. 단순한 내용이므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생산과정의 내부에서 자본은 활동하는 노동력 또는 노동자 그 자체를 지휘하는 데까지 발전했다. 더 나아가 자본은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노동자 자신의 좁은 범위의 욕망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하게 하는 강제관계로까지 나아갔다. 다른 사람이 일을 하도록 만들고, 잉여노동을 짜내며, 노동력을 착취하는 자본은 정력과 탐욕과 능률면에서 직접적 강제노동에 입각한 이전의 모든 생산제도를 넘어선다.
생산과정은 이제 가치증식과정으로 되며 따라서 생산수단은 즉시 다른 사람의 노동을 흡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뀐다. 더 이상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수단이 노동자를 사용한다.

 

■ 에트루리아(Etruria), 297쪽

에트루리아사람들은 기원전 880년 쯤 로마에서 29㎞밖에 안떨어진 이탈리아 중서부 지역에서 문명을 일구었다. 에트루리아는 부족을 기본단위로 한 12개 도시국가의 연합형태였다. 각 도시국가는 독립성이 강해 공동보조를 취하는 것은 종교문제 정도였고, 정치․경제․군사문제는 따로 행동했다. 나라의 중요한 일은 점을 쳐서 결정했는데, 이를 담당한 심정관이 우두머리였다. 문명을 일으킬 때 이미 철기 제조법을 알고 있었으며, 건축기술도 발전하여 거대한 건축유적들을 많이 남겼다. 전성기에는 그리스인과 교류도 활발하였고 엘바, 코르시카, 사르데냐에도 발길을 뻗쳤다. 에트루리아인들은 밀반죽을 돌 위에 구워 기름이나 식물로 간을 하고 수프나 고기를 그 위에 얹어서 먹곤 했는데 이것이 지금 많이 먹는 피자의 시초라고 한다. 이밖에도 오늘날 카지노에서 유행하는 게임 바카라도 에트루리아에서 시작하였고, 로마에서 인기를 끌었던 검투사들의 처절한 싸움도 이들의 장례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에트루리아는 기원전 400년을 전후로 쇠퇴하였으나 문자가 없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의 문명은 로마에 큰 영향을 미쳐 로마의 군사․건축기술의 토대가 되었다.

■ 왈라키아(Wallachia), 297쪽

루마니아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카르파티아산맥 남부 지방이 왈라키아이다. 14세기에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으나 헝가리의 국내 혼란을 틈타 바사랍 1세가 1330년에 왈라키아 공국을 세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19세기까지 대영주인 보야르를 축으로 한 농노제가 유지되었다. 왈라키아와 관계있는 가장 유명한 인물은 드라큘라이다. 원래 그는 왈라키아의 왕자였으나 어린시절 오스만투르크에 볼모로 잡혀있었다. 왕이 된 뒤 드라큘라는 전쟁 때마다 볼모생활의 한을 잔인하게 풀었다고 한다. 훗날 브람스토커의 소설에 ‘흡혈귀 드라큘라'로 등장한 다음 영화도 만들어져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검은 망또를 두르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흡혈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교재 1권 399쪽~428쪽>

제 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12장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제 13장 협업

 

□ 잉여가치 생산의 두 가지 방식

 

우리는 3편에서 노동일의 길이를 늘여서 잉여노동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자연적 한계와 사회적 한계 때문에 제한된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잉여노동시간을 늘리느냐 못 늘리느냐가 자본의 생존에 결정적이기 때문에 자본가는 새로운 방법을 찾게 된다. 노동일을 늘리지 않고 필요노동시간을 줄여서 잉여노동시간을 상대적으로 늘리는 방법이 그것이다. 필요노동시간의 일부를 잉여노동시간으로 바꾸어 잉여가치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이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이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일의 한계를 결정적으로 돌파한다.
그런데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려면 오직 노동력의 가치가 현실에서 떨어져야 된다. 그러면 노동력 가치는 어떻게 해야 떨어지는가?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지려면 노동력 상품의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 수단의 가치가 떨어져야 하므로, 그것은 이 생활 수단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의 단축, 요컨대 이 산업 부문의 노동생산력이 발전해야 가능하다. 또한 이 산업부문의 생산수단을 제공하는 산업 부문의 노동생산력이 발전해도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진다.
노동생산력은 노동수단이나 노동방식 또는 양쪽 모두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발전할 수 없다. 이 점에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가지는 혁명성이 있다. 상대적 잉여가치에 대한 자본의 갈망은 자본주의를 끊임없는 자기혁신으로, 맹렬한 기술경쟁으로 몰고 간다.

 

□ 특별잉여가치

 

개별 자본가에게 노동생산력을 발전시키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이 걸린 자본가 사이의 경쟁이다. 자본주의 생산법칙은 자본의 운동에 표현되어 경쟁의 강제 법칙으로 작용하며 자본활동의 추진 동기가 된다.
어느 한 자본가가 개선된 생산방식을 도입하여 노동생산력을 발전시켜서, 같은 노동시간에 사회의 평균 수준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였다고 해보자. 상품의 가치는 그것의 개별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이므로 이 상품의 개별 가치는 사회적 가치보다 낮다. 따라서 이 자본가는 사회적 가치에서 개별 가치를 뺀 만큼을 원래 잉여가치에 더해 특별잉여가치를 얻게된다[특별잉여가치보다 가외(加外)잉여가치가 더 정확한 말이다].
그런데 더 많은 상품의 생산은 더 큰 시장이 필요하다. 다른 사정이 같다면 그의 상품은 가격을 떨어뜨려야만 더 큰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자본가는 자신의 상품의 가격을 개별 가치보다 높게, 사회적 가치보다 낮게 판매할 것이다. 그러면 이 자본가와 같은 상품을 생산하는 다른 자본가들도 생존하기 위해서 새로운 생산방식을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생산방법을 채택하지 못한 자본가는 잉여가치 감소를 견디지 못해 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모든 자본가들은 특별잉여가치를 얻으려고 앞을 다투어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한다.
이 결과 처음에 특별잉여가치를 가져다주던 새로운 생산방식은 그 생산 부문 전체에 보급되고, 이제 새로운 생산방식이 ꡐ사회적 평균ꡑ이 된다. 그렇게 되면 특별잉여가치는 사라진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전쟁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새로 도입된 생산방식이 일반화되기도 전에 그보다 더 나은 생산방식이 도입된다. 우리는 오늘날 늘 이런 것을 보고 산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에서는, 노동생산력 발전의 추진동기가 이윤확대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노동일을 줄이지 못한다.

 

□ 협업

 

12장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을 도입한 맑스는 13장~15장에 걸쳐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어떻게 현실에서 관철되는지 살펴본다.
먼저 자본주의 생산은 협업을 기초로 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ꡒ많은 노동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같은 자본가의 지휘밑 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을 이룬다.ꡓ
그런데 협업을 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매뉴팩처의 초기를 본다면 그것은 노동자의 수가 많다는 것 외에는 동업조합적 수공업과 그 생산방식에서 거의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협업의 효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협업의 효과를 10가지로 정리한다. 자세한 내용은 교재를 참조하기 바란다. ①개별 노동이 사회의 평균 노동수준으로 된다, ②공동사용으로 생산수단 절약, ③결합노동력 형성, ④개인 활동능력의 증대, ⑤연속작업 가능, ⑥작업의 공간적 다면화, ⑦작업의 분할가능, ⑧결정적 순간에 많은 양의 노동 투입 가능, ⑨노동의 작용 공간 확장, ⑩생산공간 절약. 이런 장점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백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전의 모든 생산방식으로 생산해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협업의 규모는 무한정 커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협업의 규모를 규정하는 첫째 요인은 이 임금총액을 지불할 수 있는 개별 자본의 크기이다. 이 점은 불변자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개별 자본가에게 얼마나 커다란 생산수단이 집적될 수 있는가 이다. 생산수단의 집적 정도가 자본주의 협업을 위한 물질 조건이다.
협업을 하려면 지휘자가 필요하다. 많은 노동자의 공동노동을 조직하려면 지휘․감독․매개가 필요하다. 이러한 지휘 기능은 사회적 노동 과정의 본성 그 자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노동이 자본가의 권력 밑에서, 자본에 종속된 관계 아래서 이루어지는 한, 이러한 지휘 기능은 자본의 특수한 기능이 된다. 본래 노동과정 그 자체에 내재한 지휘의 기능이 독립되어 자본이 원래 가진 기능인 것처럼 바뀌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임금 노동자들의 협업은 그들을 동시에 사용하는 자본의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노동자의 결합은 자본 속에 존재하며, 노동자의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이 된다. 노동자가 형성하는 모든 사물이 노동자로부터 떨어져나가 자본가의 것으로 나타난다. 노동자들은 독립된 인격으로 자본과 관계를 맺었지만 이제 하나의 물건처럼 대접을 받는다. 13장에서 어렵고도 중요한 것이 협업을 형태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다. 다음 그림을 참조하여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하자. 나머지 내용은 교재에 더 자세하게 나와 있다.


■ ꡐ전제ꡑ의 변화

『자본』 전체에서는 ꡐ임금의 크기가 노동력 재생산 비용에 모자라지 않는다ꡑ고 전제하고 있다. 이 말은 필요노동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말과 같다. 또한 이 말은 노동력의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노동생산성이 불변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4편에서는 이 전제가 바뀐다. 생산성이 높아지고 필요노동시간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진다. 이것만 주의하면 4편은 양이 많기는 하지만 그리 어렵지 않다. 결국 4편의 결론은 먹고살기 위해 더 적은 시간 일해도 되는데 자본주의 생산방식에서는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재 1권 429쪽~636쪽>
제 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14장 분업과 매뉴팩쳐
제 15장 기계와 대공업

 

□ 분업과 매뉴팩쳐

 

분업에 기초한 협업은 매뉴팩쳐에서 전형적이다. 매뉴팩쳐는 두 가지 방식으로 발생한다. 첫째, 여러 종류의 독립 수공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한 자본가의 통제 아래 하나의 작업장으로 결합되는 경우, 둘째, 하나의 자본가가 같은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을 수행하는 많은 수공업자들을 동시에 한 작업장에 고용하는 경우이다.
맑스는 매뉴팩쳐를 이질적 매뉴팩쳐와 유기적 매뉴팩쳐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질적 매뉴팩쳐는 부분노동자들이 꼭 같은 작업장에서 작업하지 않아도 되는 제품을 만든다(예 : 시계). 유기적 매뉴팩쳐는 서로 연관된 앞 뒤 단계들을 통과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매뉴팩쳐 시대에 들어 여러 가지 도구를 생산에 이용하지만 이 시대의 특유한 기계는 바로 수많은 부분노동자들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노동자 자신이다.
다음으로는 매뉴팩쳐의 분업과 사회의 분업을 살펴보고 아울러 매뉴팩쳐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지적한다. 분업에 기초한 협업은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일관성과 적용범위를 획득하자마자,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의 의식적이고, 규칙적이며, 체계적인 형태로 된다.

 

□ 기계와 대공업

 

맑스는 15장을 통해서 기계제 대공업의 본질, 기계제 대공업 그 자체의 특징과 그것이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었을 때의 특징과 모순을 해명하면서 자본주의 생산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먼저 공장의 신체라 할 수 있는 기계체계를 살펴본다. 매뉴팩쳐에서는 생산방식의 변혁이 노동력을 출발점으로 하며, 대공업에서는 노동수단을 출발점으로 한다. 도구와 기계는 어떻게 다른가, 또 노동수단이 ꡐ무엇에 의해 도구에서 기계로 바뀌는가ꡑ를 밝히고 있다.
모든 발달한 기계는 동력기, 전동장치, 도구기(작업기)의 3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 작업기가 가장 중요하며, ꡒ작업기야말로 18세기 산업혁명의 출발점ꡓ이다. 이어 작업기의 규모가 커지고 도구의 수효가 늘어나자 동력의 안정적 공급과 더욱 강력한 동력에 대한 요구로서 증기기관이 출현한다.
또한 같은 종류의 기계가 협업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종류의 작업기가 분업에 기초한 협업으로 묶이는 기계체계가 등장한다. 더 나아가 기계가 기계를 생산하는 체제로 발전한다. 이 체제가 확립되어야 비로소 대공업은 그에 어울리는 기술기초를 형성하며 스스로의 발로 서게 된다.
1절에서 기계를 사용가치 측면으로 보았다면 2절은 기계를 가치 측면에서 본다. 그런데 다른 불변자본과 마찬가지로 기계도 어떤 가치를 새롭게 생산해 내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한다. 여기에서 기계가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지만, 가치증식과정에는 언제나 부분적으로만 참가한다는 것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3절은 기계제 생산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기계는 노동생산력을 높이지만 결국 노동강화를 요구하고 노동력을 집약적으로 착취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고 주장한다. 기계는 많은 수의 어린이와 여성을 생산에 투입할 수 있게 되어 성인 남자 노동자의 반항을 꺾는다. 또한 기계는 어떠한 제한이라도 넘어서서 노동일을 연장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뿐만 아니라 기계는 노동일을 늘리는 강력한 새로운 동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4절에서는 공장을 살펴본다. 공장에서는 도구와 그것을 조종하는 노동이 노동자로부터 기계로 옮아갔기 때문에 전문화 된 노동자들의 위계제도를 기계에 종속된 노동자들의 단순분업이 대신하게 된다. 한편, 공장에서는 노동 조직체가 성립됨에 따라 하나의 병영규율이 발생하는데, 이 규율은 완전한 공장제도로 발전하며, 집행자와 노동 감독, 산업 병사와 산업 하사관으로 노동자들을 쪼개놓는다.

 

□ 노동자와 기계 사이의 투쟁

 

5절까지는 자본주의 생산에서 기계와 노동자의 관계와 기계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작용을 주로 공장이라는 범위에서 살펴보았다. 5절~7절에서는 이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그 경우 생겨나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자본주의에서 기계가 노동자에게 미치는 첫 작용은 노동자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쫓겨난 노동자들은 노동시장을 채우고도 남으며 노동력 가격을 가치 이하로 떨어뜨린다. 따라서 기계의 도입과 더불어 비로소 노동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격렬한 반항이 시작된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기계를 파괴했던 러다이트 운동이 대표적인 예이다. 노동자들이 공격의 표적을 기계에서 사회제도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였다.
6절과 7절에서는 기계에게 쫓겨난 노동자들에 관한 보상 이론을 살펴보고 비판한다. 18세기 말~19세기 중엽 영국의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은 노동자를 쫓아내는 모든 기계는 이미 동시에 그와 같은 수의 노동자를 활동시키는 데에 필요한 자본도 생산에 끌어들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계에게 쫓겨난 노동자가 새 일자리를 얻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한국사회를 보면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8절에서는 기계제 생산이나 대공업의 발전이 이전의 매뉴팩쳐와 가내노동에 미치는 영향과 그것들이 대공업으로 이행하는 것에 관해 살펴본다.
9절에서는 영국의 예를 들어 공장법에 대해 살펴본다. 영국 공장법의 역사는 자본가들은 아주 간단한 보건을 위한 장치조차 국가의 강제법이 아니면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영국 공장법의 교육조항은 빈약하기는 하지만 육체노동을 교육․체육과 결합시킬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10절에서는 대공업이 농업에 미치는 작용에 관해서 살펴본다. 맑스는 원래 이것을 『자본』 3권에서 살펴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몇 가지 결론만을 아주 간단하게 서술한다.

 

■ 푸리에(Charles Fourier, 1772~1837), 542쪽

푸리에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자유방임주의와 공장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산업화를 반대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너무나 기발한 상상, 특이한 문체, 변덕스러운 논리구성 때문에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푸리에는 낮에 행상으로 일하고 밤에 서툰 문장으로 글을 썼으며 어떤 정치 조직과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는 어린 시절을 리용에서 보냈는데 거기서 리용의 까뉘(canut, 견직공)들이 자위조직을 결성하려는 노력을 직접 보았다. 여기서 푸리에는 강력한 지역 전통을 가진 유토피아사상과도 만나게 되었다. 푸리에는 다가올 세계는 사회 변화뿐 아니라 자연․우주도 변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다는 레모네이드로 변할 것이며 야생동물은 인류에게 봉사하는 反벌레, 反사자로 바뀔 것이라고 하였다.
한편, 푸리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범죄,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의 감정을 만족시키는 사회조직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상적인 공동체인 빨랑스떼르를 구상했다. 빨랑스떼르는 자급자족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로 한 공동체는 1620명[810명의 심리타입이 각각 다른 사람들과 같은 수의 여성을 합한 것이다]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비어 있는 교회나 궁전을 이용해 푸리에가 그린 설계도에 따라 건물을 지은 다음, 계획에 따라 노동을 하며 지루하지 않도록 각각 다른 종류의 일을 7~8회씩 돌아가면서 한다. 빨랑스떼르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강제로 하지 않아도 되며 자신의 기질과 기호에 맞는 일을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양배추를 재배하고 저녁에는 오페라를 부를 수 있다. 빨랑스떼르의 이익금은 노동 , 자본, , 재능 의 비율로 분배된다. 그러나 푸리에는 사회적․경제적 평등은 이루어질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푸리에는 가난과 정신병에 시달리다 죽었으며, 뒷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미국에서 직접 빨랑스떼르를 건설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교재 1권 639쪽~672쪽>
제 5편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16장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
제 17장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양적 변동
제 18장 잉여가치율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공식

 

□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

 

5편은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에 대한 논의를 총괄한다. 「자본」 1권의 주제인 ꡐ자본의 생산과정ꡑ에 대한 설명은 5편에서 끝난다. 특별히 어려운 내용이 없기 때문에 교재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맑스는 먼저 생산적 노동의 개념을 정리한다. 자본주의 생산에서 노동자는 자본가를 위하여 잉여가치를 생산할 때, 자본의 가치증식에 봉사할 때만 ꡐ생산적ꡑ이다. 마약을 생산하는 것도 잉여가치만 나오게 하면 생산적이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행위도 잉여가치를 낳지 않으면 생산적 노동이 못된다. 따라서 생산적 노동자의 개념은 노동자와 그가 생산한 노동생산물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특수한 사회적 생산관계도 포함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은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를 이루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일의 길이에만 관심을 갖고,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기술과정과 사회의 인적 구성을 철저히 변혁시킨다. 따라서 상대적 잉여가치는 진정한 자본주의 생산방식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 생산방식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형식적 포섭의 토대 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한다. 이 발전 과정에서 형식적 종속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으로 대체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서는 자본에 대한 노동의 형식적 종속만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방법은 동시에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이기도 하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절대적 잉여가치이고 절대적 잉여가치는 상대적 잉여가치이다. 여기에서 다른 모든 조건이 같고 노동일의 길이가 주어져 있는 경우, 잉여노동의 크기는 노동의 자연적 조건, 특히 토지의 비옥도에 따라 변한다. 자본주의생산방식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전제로 한다.

 

□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양적 변동

 

상품이 가치대로 판매되고, 노동력 가격이 가치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전제할 때,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는 노동일의 길이, 노동강도, 노동생산성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 17장은 이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헷갈리지만 않으면 어렵지 않다.
먼저,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강도는 변하지 않는데 노동생산성이 변하는 경우를 보자. 이 때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변동한다. 노동생산성이 높아지면 노동력의 가치는 떨어지고 잉여가치는 늘어난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면 노동력의 가치는 높아지고 잉여가치는 줄어든다.
다음으로,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생산성은 변하지 않는데 노동강도가 변하는 경우를 보자. 노동강도의 증가는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을 뜻한다. 이 경우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는 동시에 증가할 수도 있다.
셋째, 노동생산력과 노동강도는 불변인데 노동일은 가변인 경우이다. 노동일이 줄어들면 필요노동시간은 변하지 않고 잉여노동과 잉여가치를 감소시킨다. 이 경우 자본가는 노동력의 가격을 그 가치 이하로 떨어뜨려 손실을 면하려 한다. 노동일이 늘어나고 노동력 가격이 변하지 않는다면 잉여가치는 절대크기와 더불어 상대적 크기도 증가한다. 노동력의 가치는 절대크기는 변하지 않더라도 상대적으로는 감소한다.
넷째, 노동의 지속시간, 생산력 및 노동강도가 동시에 변동하는 경우를 보자. 이 때는 여러 가지 조합들이 나오지만 교재에서는 두 개만 살펴보고 있다. 먼저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동시에 노동일이 늘어나는 경우이다. 이 경우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는 줄어들더라도 절대크기는 그대로 일 수가 있으며, 절대크기는 커지더라도 상대적 크기는 그대로 일 수가 있다. 그리고 노동일이 늘어나는 정도에 따라서는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와 절대크기가 같이 늘어날 수도 있다. 맑스의 다른 저작인 「임금․가격․이윤」에는 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다음, 노동의 강도와 생산성이 증가하는 동시에 노동일이 줄어들면 주어진 시간에 생산되는 생산물이 늘어난다. 노동생산성이 증가될수록 노동일은 더욱 줄어들 수 있으며 노동일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노동강도는 더욱더 강해질 수 있다.

 

□ 잉여가치율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공식

 

18장은 이제까지 설명한 것들을 여러 가지 공식으로 표현해 본다.
① = ② = ③
①과 ②는 가치와 가치 사이의 비율로 표시한 것이며 ③은 시간 사이의 비율로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고전파 경제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공식들을 찾아볼 수 있다. 교재에서는 이를 파생적 공식이라 하였다.

그러나 파생적 공식에서는 잉여 가치율이 잘못 표현되고 있다. 이 파생적 공식들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노동일 또는 그것의 가치 생산물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분배되는 비율이다.
세 번째 공식들은 다음과 같다. 내용은 교재를 참조하면 된다.

자본은 본질적으로 불불노동[불발(不發)을 부발로 읽지 않는 것처럼 불불로 읽어야 한다]에 대한 지배이다. 자본이 자기증식하는 비밀은 다른 사람의 불불노동을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교재 1권 675쪽~712쪽>
제 6편 임금
제 19장 노동력 가치(또는 가격)의 임금으로의 전환
제 20장 시간급제 임금
제 21장 개수임금
제 22장 임금의 국민적 차이

 

□ 6편 개괄

 

지난 호에서 밝힌 것처럼 맑스는 3편~5편에 걸쳐 자본의 생산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6편은 보충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19장은 노동력의 가치가 임금으로 전환될 때 일어나는 착각에 대해 설명한다. 분량은 짧지만 중요한 이야기가 많으니 주의 깊게 읽어두어야 한다. 20장과 21장은 임금의 형태를 두 가지로 나눈 다음 임금의 형태가 자본주의 착취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본다. 22장은 맑스가 국제노동자협회(1인터내셔널) 활동을 하면서 임금이 나라마다 다른 원인과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 노동력 가치의 임금으로의 전환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의 가격으로 나타난다. 독일어로 임금을 뜻하는 단어인 아르바이트론(Arbeitslohn)도 노동을 뜻하는 아르바이트(Arbeit)와 대가를 뜻하는 론(lohn)이 합해진 말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려면 아르바이츠크라프트론(Arbeitskraftslohn, 노동력Arbeitskraft+댓가lohn)이라 해야한다. 그러나 단어 자체에서 보듯이 자본주의 사회의 착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는 이런 착각이 동어반복이라면서 675쪽에서 비판하고 있다.
상품의 가치는 상품의 생산에 소요된 사회적 노동의 객관적 형태인데, 그 가치의 크기는 상품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량에 따라 측정된다. 노동이 상품으로 시장에서 판매되려면 판매되기 전에 반드시 존재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에 독립적이고 객관적 존재를 부여할 수 있다면 노동자는 노동을 팔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상품 시장에서 화폐 소유자와 직접 대면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자이며, 노동자가 판매하는 상품은 그의 노동력이다. 노동자는 노동을 파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 능력을 파는 것이다. 노동자의 노동이 현실적으로 시작될 때에는 노동력은 이미 노동자에게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노동자가 팔 수는 없다. 노동은 가치의 실체이며 또 내재적 척도이지만, 그 자체는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아주 중요한 말이다. 별표 다섯 개).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를 나타내는 불합리한 표현에 지나지 않으므로, 노동의 가치가 노동의 가치 생산물보다 언제나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얻을 수 없으며, 이렇게 되면 노동력을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 형태는 노동일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지불 노동과 불불 노동으로 분할된다는 것을 감춘다. 잉여노동과 불불노동을 합한 노동 전체가 지불노동으로 나타난다. 노예노동에서는 소유관계가 노예의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을 감추고, 임금노동에서는 화폐관계가 임금노동자의 무상노동을 감춘다.
결국 ꡐ노동의 가치 또는 가격ꡑ,ꡐ임금ꡑ이라는 형태는 이 형태 안에 있는 본질관계를 감춘다. ꡐ노동의 가치 또는 가격ꡑ은 ꡐ노동력의 가치 또는 가격ꡑ과는 구별해야 한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이것을 구별하려 하였지만 그들이 부르주아 경제학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한 불가능한 것이었다.

 

□ 시간급제 임금

 

임금은 다양한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맑스는 여기서 시간급제 임금과 개수 임금이라는 두 가지 형태만 살펴보고 있다.
우리가 늘 보는 것처럼 노동력 판매는 항상 일정한 기간을 단위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노동력의 하루 가치, 1주 가치, 한 달의 가치들이 직접 전환된 형태는 시간급제 임금의 형태 일급, 주급, 월급 형태를 취한다.
시간급제 임금을 고려할 때도 임금 총액과 노동의 가격을 구별해야 한다. 이 가격 즉, 노동의 평균 가격은 노동력의 하루의 평균 가치를 평균 노동일의 시간 수로 나누면 된다. 그런데 하루 노동량 또는 주 노동량이 일정하다면 일급, 주급은 노동의 가격에 달려 있고, 이와 반대로 노동의 가격이 일정하다면 그것들은 하루 노동량 또는 주 노동량에 달려있다는 일반법칙이 나온다. 시간급제 임금의 측정단위인 노동시간의 가격은 노동력의 하루 가치를 평균 노동일의 시간 수로 나눈 것이다.
이밖에 다른 내용들은 교재에 더 잘 나와있다. 그러나 690쪽 내용은 우리가 현실에서 자주 보는 것이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개수 임금

 

교재는 21장의 제목을 성과급제 임금이라고 하고 있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한국에서 성과급제 임금이란 연말에 기업이 보너스로 지급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보통이므로 교재의 내용과는 맞지 않다. 따라서 ꡐ개당 얼마 준다'는 개수임금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이다. 따라서 교재의 성과급제 임금은 모두 개수 임금으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
어쨌든 개수 임금은 시간급제 임금의 바뀐 형태일 뿐 또 다른 그 무엇이 아니다. 임금이 지불되는 형태의 차이는 임금의 본질을 전혀 바꾸지 않는다.
또한 개수임금은 시간급제 임금 형태와 마찬가지로 불합리한데 어떠한 가치 관계도 표현하지 않고, 노동자가 수행한 노동이 그가 생산한 개수로 측정되며, 노동은 생산물의 양으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개수 임금의 수준은 같은 시간에 생산되는 개수가 증가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따라서 같은 한 개에 소요되는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비율로 떨어진다. 개수 임금이 도입되면 노동의 질과 강도가 임금 형태 자체에서 통제되므로 노동에 대한 감독이 필요 없게 된다. 따라서 개수임금은 근대 가내노동의 토대를 이루며 자본주의 정신에 훨씬 잘 어울리는 임금 형태이다.

 

□ 임금의 국민적 차이

 

서로 다른 나라들의 임금을 비교할 때 노동력의 가치 크기를 규정하는 모든 요소들을 살펴야 한다. 또한, 세계 시장에서 평균적 노동강도는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들의 평균들은 전세계 노동의 평균강도로 측정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강도가 높은 국민 노동은 그렇지 못한 국민 노동에 비하여 같은 시간에 보다 큰 가치를 생산하며, 이는 더 많은 화폐량으로 표현된다.
맑스는 이를 한 공장 당 평균 방추 수, 노동자 한 명 당 평균 방추 수 개념을 도입하여 전세계 노동의 평균강도를 구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흔히 언론에서 한국노동자들이 일본 노동자들보다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떠드는 데 이는 노동생산성 측정의 기초도 모르는 무식한 얘기이다. 두 나라의 노동자의 기계장비율을 무시한 채 단순히 생산성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호지스킨 / 678쪽 (Thomas Hodgskin, 1787~1869)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이다. 젊을 때는 해군으로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을 돌아다니며 사회경제 상태를 돌아보고 『북부독일 여행』(1820)을 발표했다. 영국에 돌아와서는 급진주의 신문인 모닝크라클(Morning Chronicle) 의회 담당 기자로 일했다. 이 때 급진사상가, 발전하던 노동자운동과 관계를 맺고 노동자 교육에 힘을 썼다. 1824년 단결금지법 폐지 운동이 벌어지자 노동자들을 옹호하며 ꡐ자본의 요구에 대항하여 노동을 방어한다ꡑ는 팜플렛을 발표했다. 이 팜플렛으로 호지스킨은 영국 언론계의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또한 2년 뒤 그의 주요 저서인 『대중경제학』에서 당시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비판했다. 호지스킨은 로크(J. Locke)의 자연법 사상에서 출발하여 리카도(D. Ricardo)의 노동가치설을 기초로 사회주의 사상을 펼쳤다. 그리하여 뒷사람들은 그를 ꡐ리카도파 사회주의자ꡑ라 불렀다.


<교재 1권 714쪽~773쪽>
제 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 23장 단순재생산
제 24장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전환

 

□ 7편 개괄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 수도 있겠지만, 『자본』 가운데 ꡐ편ꡑ이 시작할 때 처음에 무엇인가 써놓은 것은 7편이 유일하다-눈치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눈치와 『자본』은 별 상관이 없으니까- 이는 1권~3권에 걸치는 『자본』의 체계를 설명한 것이다. 두 쪽밖에 안 되지만 중요한 부분이니 잘 읽어두어야 한다.
7편은 『자본』 1권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원래는 7편을 한 번에 묶어 설명하려 하였는데 지난 몇 번에 걸친 연재에서 독자들이 읽어야 할 분량이 너무 많기도 했고, 결론인 25장은 따로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번에는 23장과 24장만 설명하기로 한다.

 

□ 단순 재생산

 

사회가 소비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사회의 생산과정도 끊어져서는 안 된다. 이렇게 바라보면 생산과정은 동시에 재생산과정이며 생산의 조건은 동시에 재생산의 조건이다. 생산물의 일정 부분이 끊임없이 생산수단으로 전환되어야 재생산이 가능하다.
자본 가치의 주기적인 증가분인 잉여가치는 자본에서 생기는 수입의 형태를 취하는데 이 수입을 모두 소비하고 생산수단을 더 늘리지 않는 것이 ꡐ단순 재생산ꡑ이다.
일정한 기간의 노동력의 구매는 생산 과정의 출발점이다. 노동자는 잉여가치뿐만 아니라 가변자본까지도, 가변자본이 임금의 형태로 자기에게 돌아오기 전에 생산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는 가변자본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동안만 고용된다.
그런데 단순 재생산은 필연적으로 모든 자본을 축적된 자본으로, 즉 자본화된 잉여가치로 바꿔놓는다. 교재 721쪽에서는 이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므로 신경 써서 읽어두기 바란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은 물질적 부를 자본으로, 그리고 자본가를 위한 가치 증식 수단과 향락 수단으로 끊임없이 바꿔놓는다. 또한 자본가는 노동자를 임금노동자로서 생산한다. 노동자를 끊임없는 재생산해내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의 필수 조건이다.
한편, 노동자의 소비는 생산적 소비와 개인적 소비로 나눌 수 있다. 생산적 소비는 자본의 동력이 되어 자본가에게 속하며 자본가 생존의 전제이다. 개인적 소비는 생산과정 밖에서 생활상의 기능을 수행하는데 노동자 자신의 생존의 전제가 된다. 이러한 개인적 소비는 자본가에게 가장 필수 불가결한 생산 수단인 노동자 자신의 생산이며 재생산이다. 때문에 노동자의 개인적 소비는 자본의 생산과 재생산의 한 요소를 이룬다.
노동자 계급의 유지와 재생산은 언제나 자본의 재생산에 필요한 조건이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을 재생산 과정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품이나 잉여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자본 관계 자체를 생산하고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전환

 

2편에서는 ꡒ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ꡓ을, 그리고 3편~5편에서는 ꡒ잉여가치가 어떻게 자본에서 발생하는가ꡓ를 보았다면, 24장에서는 ꡒ자본이 어떻게 잉여가치로부터 발생하는가ꡓ를 살펴본다.
먼저 1절에서는, 23장에서 잉여가치가 모두 자본가가 소비하는 단순 재생산과 달리 ꡒ확대된 규모에서의 자본주의 생산과정ꡓ을 살펴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ꡐ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이 어떻게 자본주의적 취득 법칙으로 바뀌는가ꡑ이다.
단순재생산과는 달리 확대재생산에서는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사용한다. 참고로 1절에서는 자본가가 잉여가치 모두를 축적기금으로 사용한다고 전제한다. 그런데 우리가 6장에서 보았듯이 자본주의 재생산 과정에서 노동력은 언뜻 보면 상품생산의 교환법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지만 이것은 단지 형식일 뿐이다. 노동력 상품이 독특한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품생산의 일반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노동자에게는 노동력 상품의 교환가치가 지불되었고 자본가에게 노동력 상품의 사용가치가 넘어갔다. 다른 모든 매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상품교환 법칙이 적용되었다. 그러나 노동력 상품의 독특한 사용가치가 소비과정을 지나면서 자기 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는 다른 사람의 불불노동에 기초한 사적 소유로 바뀐다. 또한 자기가 노동해서 생산물을 얻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노동생산물을 빼앗는 것으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소유는 더 이상 노동에 기초한 것이 아니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기본 경제법칙인 잉여가치 법칙은 가치법칙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가치법칙에 기초하여 관철된다. 또한 상품 생산에 고유한 소유의 법칙 역시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으로 된다.
2절에서는 확대재생산에 대한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그릇된 이해를 살펴본다. 고전파 경제학은 자본주의 생산을 화폐 퇴장과 혼동하는 견해와 투쟁하였고, 생산적 노동자가 잉여생산물을 소비하는 것을 축적과정의 특징적 계기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고전파 경제학은 순생산물 가운데 자본으로 바뀌는 부분은 전부 노동자계급이 소비한다는 잘못된 견해를 유포했다.
3절에서는 잉여가치 또는 잉여 생산물이 앞에서처럼 모두 축적기금으로 사용된다는 가정을 버리고, 그것이 축적기금과 자본가의 소비기금으로 사용되는 현실에 대해 살핀다. 그런 다음 잉여가치의 양이 일정할 경우 자본가의 소득은 소비에 대한 그들의 절제로부터 나온다는 ꡒ절제설ꡓ을 비판한다.
맑스는 여기서 자본가의 낭비가 축적을 결코 방해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업상 필요로 되었다는 사실과 자본가가 등장하기 이전 사회에도 확대재생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자본축적을 자본가의 ꡐ절제ꡑ로 설명하는 것은 자본가들의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4절에서는 잉여가치가 자본과 소득으로 분할되는 비율이 정해져 있을 경우, 축적되는 자본의 크기는 ①노동력의 착취도, ②노동생산성, ③사용되는 자본과 소비되는 자본 사이의 차액의 크기, ④선대 자본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살펴본다.
5절에서는 가변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자본의 크기가 고정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을 비판한다. 가변자본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부 가운데 신축성이 있으며, 사회세력들 사이의 힘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노동기금의 ꡐ자본주의적 제한ꡑ이 원래부터 그렇다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오늘날까지 형태를 바꾸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사회의 부를 소비수단과 생산수단으로 분할할 때 노동자는 발언권이 없다는 것, 노동자는 예외적으로 운수가 좋은 경우에만 부자들의 소득을 희생시켜 노동기금을 확대할 수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 절제설

영국의 경제학자 시니어(N.W. Senior)가 처음 주장한 이윤과 이자에 관한 이론이다. 시니어는 인간의 노동과 자연력을 1차 생산요인으로 보고 그것들이 완전히 능률을 발휘하려면 2차 생산요인인 절제 또는 절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절제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을 비생산적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억제하거나 인내할 수 있는 인간행동이다. 노동이라는 희생에 대해 임금이 지급되는 것처럼 절제에 대해서는 이윤이 보수로 주어진다.
시니어는 이윤이 생산이 끝난 뒤에 생기는 것으로, 생산에 쓰여야 할 것이 아니고 생산비를 인간의 희생, 물리적 요인으로서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절제에 대한 보수는 이자이며 절제와 노동의 결합에 따른 보수가 이윤이라 하였다. 그러나 기존 용어나 분류와 다르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시니어는 스스로 자신의 이자론을 폐기하고 자본이 소유, 사용에서 생기는 모든 수입을 이윤이라고 하자고 해 혼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밀(J.S. Mill)도 절제설을 채용하고 마샬(A. Marshall)도 이윤에 관한 시니어의 생각을 잇고 있으며, 뵘바베르크(E. v. Bom Bawerk)의 이자학설을 낳는 발판이 되었다.

 


<교재 1권 774쪽~894쪽>
제 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 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 자본 구성이 불변인 경우, 축적에 따른 노동력에 대한 수요의 증가

 

지난 호에서 밝혔듯이 7편 25장은 『자본』 1권의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자본의 축적이 고용․실업․임금률의 변동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밝혀 ꡒ자본의 증가가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ꡓ을 규명하는 것이 25장의 주제이다.
자본이 늘어나면 자본 가운데 가변부분도 함께 늘어난다. 일정한 양의 생산수단을 움직이기 위해 같은 양의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하면, 자본의 증가에 비례하여 가변자본이 증대하고 노동력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노동력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넘어 늘어날 수 있으며 따라서 임금은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근본성격에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노동력은 자본을 증식시킬 수 있을 때만 판매되므로 임금의 증가는 기껏해야 노동자가 제공하여야 할 불불노동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할 따름이다. 이 감소는 결코 제도 자체를 위협하는 점까지 도달할 수 없다.

 

□ 자본축적과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가변자본부분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면 축적과정에서 노동생산성의 발전이 자본축적의 관건이 되는 때가 온다. 이렇게 되면 축적이 진행될수록 불변자본 부분은 상대적 크기가 커지지만 가변자본 부분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가변자본부분의 상대적 크기가 줄어들더라도 가변자본부분의 절대크기는 커질 수 있다. 교재 787쪽에 예가 잘 나와있다.
이미 15장에서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 생산은 대규모 협업과 분업을 할 수 있는 기계제 대공업이 전제되어야 발전할 수 있다. 자본축적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더더욱 촉진된다. 모든 개별 자본은 이미 크든 작든 생산수단의 집적이다. 개별 자본들은 서로 배척하는 한편, 서로 끌어 당겨 집적의 새로운 형태인 집중이 탄생한다. 집중은 자본주의 경쟁체제의 피할 수 없는 산물이며, 신용 제도는 자본의 집중에 더욱 속도를 붙인다. 집적은 개별 자본가의 작업범위가 완만히 확대되는 운동인 반면에 집중은 더욱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이다. 자본의 가변구성부분은 불변부분에 비해 점점 더 작아진다.

 

□ 상대적 과잉 인구 또는 산업예비군

 

자본축적과 노동 생산성의 발전은 상호 작용하고, 자본의 집중이 가져오는 자본구성의 고도화는 기존 자본량이 고용하는 노동량의 절대 감소를 불러온다.
축적의 진행에 따라 총자본이 증대하고, 총자본의 증대에 따라 가변 부분, 또는 이 총자본에 합체되는 노동력도 증가하지만, 끊임없이 감소하는 비율로 증가한다. 자본주의는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해 자본의 평균적인 증식욕을 넘는, ꡐ상대적으로ꡑ 남는 노동인구를 생산한다.
자본주의는 인구가 자연적으로 증가하여 제공하는 노동력의 양으로는 결코 만족하지 않으며 자연적 한계에 매달리지 않는 노동력의 양을 요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고유한 인구 법칙이 만들어 낸 상대적 과잉인구는 자본주의 축적의 지렛대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존재 조건으로, 즉 산업 예비군으로 된다.
산업예비군은 ①자본의 가치 증식 욕구가 인구의 자연 증가에 따라 제한받지 않고 언제라도 착취할 수 있는 인간 재료를 제공하고 ②노동력 수요의 급증에 대응할 수 있는 저수지가 되며 ③노동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취업자를 압박함으로써 취업자의 저임금과 과도 노동을 가능하게 한다. 한 마디로 자본은 산업예비군을 통해 노동의 공급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며 이를 통해 ꡐ자본의 지배ꡑ를 완성한다.

 

□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상대적 과잉 인구는 세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유동적 과잉인구는 근대 산업의 중심인 공장, 매뉴팩처 주변에서 취업했다가 쫓겨나기를 반복하는 인구이다. 이 형태는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과 불균형성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다음 잠재적 과잉인구는 농촌에 대기하며 끊임없이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전화하는 상태에 있는 인구이다. 1960년대~70년대 한국에서 ꡐ무작정 상경ꡑ했던 사람들이 바로 잠재적 과잉인구이다. 세 번째, 정체적 과잉인구는 취업이 극도로 불규칙한 노동자 군으로 요즘 피부에 와닿는 말로 하면 비정규직이다. 이밖에도 상대적 과잉 인구의 최하층은 구호의 대상이 되는 극빈자 생활을 하는데, 여기에는 고아, 불구자 뿐 아니라 노동능력자들도 포함된다.
811쪽~813쪽에 걸쳐 맑스는 『자본』 1권의 결론을 명쾌하게 서술한다. 알다시피 맑스는 원래 무엇이든 ꡐ일반화ꡑ하기를 꺼려했다. 그런데도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에는 ꡐ절대적ꡑ이라는 말까지 붙여서 더욱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을 한 마디로 줄여 말하면 ꡐ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자 계급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ꡑ는 것이다. 이를 맑스가 정리한 것으로 다시 한 번 보자. ꡒ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그 법칙은 벌컨신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결박시킨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그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한 쪽 끝에서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맞은편 끝에서의 빈궁․노동의 고통․노예상태․무지․야만화․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ꡓ
맑스는 이어 5절에서 이 법칙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에서 나타났는가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양이 많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으며 자본주의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벌컨(Vulcan) =헤파이스토스(Hephaistos), 813쪽

화산․대장장이 신으로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났다. 벌컨은 영어 이름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헤파이스토스(낮을 빛내는 사람)이다. 제우스와 헤라가 다투었을 때 헤라 편을 들어 제우스가 발로 차 하늘에서 떨어졌다. 헤파이스토스는 다행히 테티스와 에우리노의 구원을 받아 살 수 있었다. 그 뒤 해저동굴에서 9년 동안 살면서 대장간 기술을 배웠다. 훗날 훌륭한 솜씨가 알려져 올림푸스로 돌아온 헤파이스토스는 큰 대장간을 차리고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들을 기술자로 부리며 많은 물건들을 제작했다. 우리 교재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를 묶은 쇠사슬, 제우스의 번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화살을 비롯해 동방의 용궁도 그가 만든 것이었다. 이밖에도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를 만들었으며 아킬레스와 아이네이아스의 갑옷과 무기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는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이다.

■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813쪽

프로메테우스란 ꡐ먼저 생각하는 사람ꡑ이란 뜻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손재주가 뛰어나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고 아테나 여신이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에게는 결점이 많았기 때문에, 제우스는 그들을 없애려고 했다. 제우스는 인간의 음식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제물로 바치도록 요구하여 인간을 굶주리게 하려고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꾀를 부려 제우스가 맛있는 고기 대신 내장과 기름덩어리를 선택하도록 하였다. 제우스는 화가 나서 인간으로부터 불을 빼앗기로 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이 명령도 어기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몰래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주었다. 밤이 되자 제우스는 지상에서 많은 불빛이 빛나는 것을 보고 격분하여, 헤파이스토스와 그의 졸개인 크라토스, 비아를 불러 프로메테우스를 잡아다 인간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코카서스 산꼭대기에 묶어 놓도록 했다. 제우스는 매일같이 그곳에 큰 독수리를 보내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쪼아먹게 했는데, 이 간은 밤 사이에 다시 생겼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제우스는 테티스가 낳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위대해 질 것이라는 비밀을 알려준 프로메테우스를 풀어주기로 했다. 이리하여 헤라클레스가 와서 독수리를 쏘아 떨어뜨리고, 결박되어 있던 프로메테우스의 쇠사슬을 끊어주었다.

 

 

<교재 1권 897쪽~973쪽>
제 8편 이른바 시초 축적
제 26장 시초축적의 비밀
제 27장 농촌주민으로부터의 토지수탈
제 28장 15세기 말 이후의 피수탈자에 대한 피의 입법. 임금인하를 위한 법령들
제 29장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의 발생
제 30장 공업에 대한 농업혁명의 영향. 산업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의 조성
제 31장 산업자본가의 발생
제 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제 33장 근대적 식민이론

 

□ 시초축적의 비밀

 

시초축적이란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출발점을 이루는 축적, 자본관계(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만들어낸 축적이다. 우리는 앞에서 자본의 축적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자본은 잉여가치가 바뀌어 축적된 것이고, 잉여가치는 상품생산자의 손에 이미 대량의 자본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자본축적은 자본축적을 전제로 하는 것이 되어 이론적으로 문제가 된다. 8편은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출발점을 해명함으로써 『자본』 1권의 논의를 완성한다.
봉건사회에서 직접 생산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노동시장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없었다. 농노는 토지에 얽매어 있었고 수공업의 직인은 길드의 엄한 규칙에 묶여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임노동자로 되는 것은 신분제의 예속과 길드의 강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동시에 직접생산자들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하고, 봉건제 아래서 보장되었던 여러 가지 권리를 빼앗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시초축적은 직접생산자가 수탈되는 역사이고 ꡒ이 수탈의 역사는 피와 불의 문자로써 인류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ꡓ
이러한 수탈의 역사는 영국에서 잘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농노제는 14세기말에 거의 사라졌다.
16세기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모직물 공업이 성행하여 양모가격이 올라갔다. 이렇게 되자 봉건영주는 농민의 경지와 공유지를 빼앗아 양목장으로 바꾸었다. 이것이 1차 엔클로저운동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농민은 자기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는 것 말고는 살아갈 길이 없는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특히 16세기 종교개혁과 대규모 교회령의 붕괴는 전통적 토지소유관계를 완전히 해체했다.
한편, 강제로 땅을 빼앗긴 농민들은 매뉴팩처가 그들을 모두 흡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임노동자로 바뀔 수는 없었다. 또한 쫓겨난 농민들은 금방 이전의 노동과 생활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상태의 규율에 따를 수 없었기 때문에 걸인, 부랑자, 범죄자가 되어 도시를 떠돌았다.
이렇게 되자 절대주의 권력은 ꡐ피의 입법ꡑ으로 강제력을 동원했다. 절대주의 왕권은 15세기~16세기 동안 태형, 귀 자르기, 사형 같은 처벌을 가하는 잔인한 법률로 유랑민들을 강제로 일하게 하고, 자본주의 생산방식에 적당한 임노동자로 바꾸어 놓았다.
국가권력은 아직 어린 산업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임금과 최저노동일을 확정하고, 노동자의 단결을 엄한 죄로 다스렸다. 단결을 금지하는 가혹한 법령들은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으로 1825년 폐지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부분적으로 폐지되었을 뿐이며 1859년에야 비로소 소멸하였다. 1871년 6월 29일 영국의회는 노동조합을 법적으로 승인하였다. 이는 노동자들이 성장한 것을 반영하기도 한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완성되어 노동자 계급을 자본에 종속시키는 데 경제외적 강제를 이용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 자본가의 발생

 

29장에서는 농업부문의 자본가라 할 수 있는 차지농업가에 대해 설명한다. 차지농업가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여 자신의 자본을 증식하며, 잉여 생산물의 일부를 지대로 지주에게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교재가 잘 정리해 두고 있으므로 다른 설명은 더 필요 없고 차지농업가가 임금노동자와 지주를 동시에 희생시켜 부를 축적했다는 점만 기억해두면 된다.
30장에서는 공업에 대한 농업혁명의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농민으로부터의 토지 수탈은 단순히 농촌 주민의 감소와 공업 프롤레타리아트를 생기게 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농민 경제를 분해하고 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을 형성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매뉴팩처는 생산을 아주 천천히 손에 넣을 뿐이고, 그 때문에 도시의 수공업과 농촌경제는 한편으로 파괴되어도, 다른 한 편으로 새롭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농촌의 가내 부업의 뿌리를 뽑고, 그것과 농업과의 분리를 완성했던 것은 대공업이다. 대공업만이 산업자본을 위하여 전체 국내 시장을 정복한다.
31장에서는 산업자본가의 발생과정을 차지농업가의 발생과 비교하여 설명한다. 산업자본가는 차지농업가처럼 천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아메리카의 금은 산지 발견, 원주민의 노예화와 섬멸,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 아프리카의 노예시장화로 자본주의는 아주 빠르게 발전하였다. 자본주의 선진국인 영국은 식민제도, 국채제도, 근대적 조세 제도, 보호 무역 제도를 동원하여 자본주의를 발전시켰다.
이는 엄청난 수탈과정이었으며, 심지어 노예제도까지 등장하였다.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조건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또한 시초축적을 완성하기 위해서 자본은 ꡒ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ꡓ 나왔다.

 

□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시초축적을 한 마디로 하면 ꡐ자기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사적 소유ꡑ의 해체이다. 사회적, 집단적 소유의 대립물로서 사적 소유는 오직 노동수단, 외부적 노동조건들이 개인에게 속하는 곳에서만 존재한다. 이 개인이 누구인가에 따라서 사적 소유는 여러 가지로 구별된다.
노동하는 사람(=직접 생산자)의 사적 소유는 소생산의 기초이며 소생산은 사회적 생산과 노동자 자신의 자유로운 개성의 발전에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노동하는 사람의 사적 소유에 기초한 생산방식은 토지와 다른 생산수단이 분산되어 협업과 분업이 제대로 될 수 없고 이에 따라 생산력 발전에 장애가 된다. 따라서 이 방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기반한 방식에게 쫓겨난다. 자본주의 생산은 이전에 볼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로, 더욱 빠르게 발전하며 생산의 소수의 손에 집중된다. 이에 따라 빈곤․억압․예속․타락․착취의 정도는 더욱 증대한다. 동시에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훈련․통일․조직된 노동자 계급의 반항도 커간다. 마침내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자본주의와 같이 할 수 없고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부터 생겨나는 자본주의적 취득방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적 사적 소유의 첫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을 가지고 자기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이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사적 소유를 부활시키지 않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에 입각한 개인적 소유를 확립한다. 널리 알려진 생각과는 달리 ꡐ부정의 부정ꡑ이 ꡐ부정ꡑ보다 쉬운 과정이다.
33장은 당시 식민지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론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 모어(Thomas More, 1478~1535), 905쪽
영국의 사회사상가. 런던에서 재판관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포드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당대 최고의 인문주의자 였던 에라스무스와 절친하게 지냈다. 성장해서는 법관으로 성공하였고 1504년에는 의원이 되었다. 1516년에 『유토피아』를 썼는데 모어가 라파엘 히슬로데이(그리스어로 헛소리라는 뜻)라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서술하였다. 1부에서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현실을 비판하고 2부에서는 유토피아라는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도덕, 종교를 소개하였다. 특히 1부에서 ꡐ사람이 양을 잡아먹는다ꡑ면서 엔클로저를 비판하였다. 이 책은 당시에도 베스트셀러였고 이후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헨리 8세의 이혼승인을 거부하여 투옥되고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아 단두대에서 사형당했다. 죽을 때 ꡐ내 수염은 죄가 없으니 자르지 말라ꡑ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교재 1권 43쪽~973쪽>
제 1편 상품과 화폐
제 2편 화폐의 자본으로의 전환
제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5편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 6편 임금
제 7편 자본의 축적과정
제 8편 이른바 시초축적

 

□ 책거리


작년 9월 26일 '청년좌파' 창간호부터 시작한 자본연재를 통해 『자본』 1권을 정리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6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조금 길어졌다. 연재를 하면서 어려운 적도 많았지만 독자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이 기회를 빌어 독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1편을 정리하며 고백한 적도 있지만 직접 만나지 않고 글로 『자본』을 설명한다는 것은 역시 어려웠다. 또한, 중요한 얘기인데 빼놓은 것도 많다. 그러나 어떤 일을 마무리한 사람의 작은 잘못에 대해 너그러운 한국 사람들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생각 같아서는 독자들과 한 번 만나고 싶지만 언젠가 얼굴 맞대고 같이 『자본』 공부할 날을 기약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독자들은 1권을 마친 기념으로 같이 공부하던 사람들과 어울려 책거리라도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 내용정리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자본』 1편 1장을 펴보자. 맑스는 ꡒ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富)는 ꡒ상품의 방대한 집적"으로서 나타나며, 개개의 상품은 이러한 부의 기본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구는 상품의 분석으로부터 시작된다ꡓ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
맑스는 1장에서 ꡐ상품 생산 사회에서 화폐의 등장은 필연적ꡑ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했다. 따라서 1절에서는 ꡐ상품을 상품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ꡑ를 해명하였으며 이를 위해 가치의 실체와 크기에 대해 살펴본다. 그러나 정작 화폐는 3절에 가서야 등장한다. 아울러 1장 1절, 2절은 『자본』의 서술 방식인 ꡐ추상에서 구체로 상승ꡑ하는 방법 대신 ꡐ구체에서 추상ꡑ으로 하강하는 방법을 썼다는 것을 알아두면 한 차원 높게 『자본』을 볼 수 있다.
1장 2절의 결론은 ꡐ상품으로 표현되는 노동만 두 가지 성격을 갖는다ꡑ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가치는 교환가치로만 드러나게 된다.
1장 3절은 단순한, 개별적인 또는 우연적인 가치형태-전체적 또는 전개된 가치형태-일반적 가치형태-화폐형태의 내용과 왜 다른 형태로 이행하게 되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봐 두어야 한다. 맑스 스스로도 어렵다고 한 부분이므로 쉽지 않으며 볼 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1장 4절은 인간들의 관계가 물건들로 표현되는 상품생산사회는 문제가 있으며, 이 관계를 뿌리부터 바꿔야 하다는 주장을 강하게 하기 위해 덧붙였다.
2장 교환과정은 특별히 논리적인 얘기는 없다. 다만 1장 3절 가치형태론과 분석 수준이 다르다는 점만 명심하면 된다. 3장은 화폐의 기능들을 분석하여, 화폐가 현실에서 어떤 모습을 가지는지, 화폐가 인간들의 생활에 들어오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살펴본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자본』을 볼 때 1편은 주의를 기울여 봐야 한다. 1장에서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관계까지 봐야 하며, 2장은 문단과 문단 사이의 연결을 신경 써야 한다.
2편에 들어가면 화폐가 자본으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한다. 먼저 4장에서는 모든 자본이 따르는 자본의 일반공식을 살펴보고 5장에서는 이 공식에 논리적 모순이 있음을 지적하고, 6장에서는 ꡐ노동력ꡑ 상품이 이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을 살펴본다. 그림(아래)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3편은 1편과 2편의 얘기를 바탕으로 하여 잉여가치가 과연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살펴본다. 여기서부터 교재 내용 자체는 많지만 이해하기는 1, 2편에 비해 훨씬 쉽다. 7장에서는 상품생산과정은 ꡐ노동과정과 가치형성과정의 통일ꡑ이며, 자본주의 상품생산은 ꡐ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의 통일ꡑ로 본다. 8장은, 노동과정의 기본 요소들이 가치증식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본다. 9장에서는 노동력 착취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잉여가치율이며 이는 자본가들의 이윤율 개념과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10장은 ꡐ힘이 문제를 해결한다ꡑ는 것을 실제 역사로부터 살펴본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발전되고 유지되어 왔는가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자본』이 어렵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10장을 읽어볼 것을 권해도 좋을 것 같다.
4편에서는 필요노동시간을 줄여서 노동일을 늘리지 않고도 잉여노동시간을 늘리는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을 설명한다. 먼저 12장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을 정리하고 13장~15장에 걸쳐 자본주의 생산방식이 어떻게 현실에서 관철되는지 살펴본다. 특히 15장에서 기계제 대공업의 성격과 그것이 자본주의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서술한다.
5편은 3편, 4편의 얘기를 종합한다. 여기서 『자본』 1권의 주제인 ꡐ자본의 생산과정ꡑ에 대한 이론 설명은 끝난다.
6편은 보충 설명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19장은 노동력의 가치가 임금으로 전환될 때 일어나는 착각에 대해, 20장과 21장은 임금의 형태와 이에 따른 자본주의 착취와의 관계를, 22장은 임금이 나라마다 다른 원인과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방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본다.
7편은 생산력을 사회 전체를 위해 사용하면 모두 잘 살 수 있는데도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이 축적될수록 노동자계급은 가난해지며 비참한 상태로 떨어진다는 『자본』 1권의 결론을 서술하고 있다.
8편은 ꡒ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ꡓ 나온 자본 최초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목차 외우기


간단하게 『자본』 1권의 내용을 훑었다. 그 동안 독자들을 질리게 할 것 같아서 말을 안 했지만 『자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목차를 외우는 것이다. 편, 장, 절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아래 있는 소제목까지 모두 외워야 한다. 맑스는 남들이 보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완벽주의자였다. 이런 사람이 몇 번을 고친 것이 1권이기 때문에 목차도 아주 잘 짜여있다. 목차를 외우다 보면 『자본』의 구성이 한 눈에 들어오며 각각의 얘기들이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도 깨우치게 되는 날이 온다.
자본연재는 27호~30호까지 쉬고 31호부터 2권을 시작하므로 그 사이에 미처 따라오지 못해 못 읽었던 부분도 읽고 목차도 외워두기 바란다.
그 동안 열심히 읽어준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 책거리 = 책씻이
한국에서는 옛날에 자식이 서당에서 천자문이라든가 소학, 명심보감 같은 책을 떼면 책거리를 하는 전통이 있었다. 부모는 시루떡을 쪄 서당에 보냈는데 이 때 서당 훈장 몫으로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따로 차려 보냈다. 좀 서글픈 이야기지만 책거리가 보릿고개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때와 겹치면 일부러 낙제를 해서 늦추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성균관에서는 책거리는 따로 없었고 지금으로 치면 졸업식 같은 행사가 있었다. 이 때는 임금이 대포[큰 잔 : 이것이 ꡐ대포 한 잔 하자'고 할 때 바로 그 ꡐ대포ꡑ이다]에 술을 내리고 이를 돌려가면서 함께 마시며 일심동체를 다지는 의식을 하였다. 이 의식이 끝나면 파금(破襟)이라고 해서 교복인 푸른 두루마기를 서로 찢는 풍습도 있었다.

 

 


제 2권 자본의 유통과정
서문

 

□ 2권의 위치

 

이번 호부터 자본 2권 연재에 들어간다. 맑스는 자본 전체의 초고를 1865년쯤 다 썼지만 1권만 책으로 내놓고 2권과 3권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맑스의 초고를 엥겔스가 정리하여 2권을 1885년에, 3권을 1894년에 책으로 냈다. 따라서 2권과 3권은 1권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 이런 한계에 대해서는 엥겔스가 서문에서 지적해 두고 있으므로 이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2권을 읽어야 1권도 더 수준 높게 이해할 수 있으며, 현실에 훨씬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권을 연재할 때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이 부탁할 것은 교재를 충실히 읽어달라는 것이다. 2권은 1권과 달리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고 지루한 내용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떨어져 나간다. 혹시라도 읽어 가는 동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면 기초적인 맑스주의 경제학 책에 짧게 정리한 것을 보고 다시 교재로 돌아오는 것도 2권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방법이다.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자본 은 3권으로 되어 있다[카우츠키가 정리하여 출판한 잉여가치학설사 를 자본 4권이라 부르기도 한다]. 1권은 ꡐ자본의 생산과정ꡑ에 대한 연구이고, 우리가 이제부터 살펴 볼 2권은 ꡐ자본의 유통과정ꡑ을 연구한 것이다. 자본가가 화폐형태로 투자한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태를 바꾸고 가치증식하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1권이 자본의 유통부문에 문제가 없다고 전제하고 생산부문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2권에서는 생산부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전제하고 유통부문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게 된다. 이어지는 3권은 1권과 2권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설명하고 있는데 자본의 생산, 유통, 분배과정을 종합해서 살펴본다.


□ 2권 내용 개괄

 

자본 2권은 다음과 같이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1편 자본의 형태변화와 그들의 순환, 2편 자본의 회전, 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먼저 자본의 순환이란 자본가가 화폐를 투자해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사고, 노동력을 이용해 상품을 생산하게 하여 이 상품을 내다 팔아 맨 처음 투자했던 화폐액과 이윤을 얻는 과정을 말한다. 이를 그림으로 그리면 우리가 1권 2편에서 보았던 다음과 같은 익숙한 그림(그림1)이 된다.
여기서 보면 자본은 처음에는 화폐형태로 있다가 생산요소 형태로 바뀌며, 이 생산요소는 생산과정에서 상품 형태로 바뀌고, 마지막에 상품은 다시 화폐형태로 되돌아온다. 이를 우리는 자본 1권에서 자본의 형태변화[전에도 지적한 바 있지만 ꡐ변태ꡑ보다 형태변화가 정확하고 어감도 좋다]라 하였다. 그런데 위 그림 ①형태에 있는 자본은 화폐자본, ②형태에 있는 자본은 생산자본 ③형태에 있는 것은 상품자본이라 부른다. ④형태는 다시 ①과 같이 화폐자본이다. 자본은 화폐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화폐자본-생산자본-…으로 끊임없이 이어져야 자본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형태를 띄든 자본은 가치를 증식해야만 한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고 각 과정은 다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2편은 자본의 회전이다. 여기서는 몇 가지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회전, 유동자본, 고정자본이 그것이다. 그리고 잉여가치율-연잉여가치율-이윤율과 회전수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잘 보아야 한다.
회전이란 최초의 자본이 운동을 시작해서 다시 자기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회전기간은 생산기간과 유통기간을 합한 것이다. 위 그림에서 볼 때 화폐자본의 경우 ①에서 ④까지 걸리는 시간이 자본의 회전기간인데, ①~②, ③~④에 걸리는 시간은 유통기간이고 ②~③에 걸리는 시간은 생산기간이다.
생산자본은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으로 구별할 수 있다. 기계나 건물에 들어간 자본은 자기 가치를 일부만 상품의 가치에 옮기며, 회수할 때도 조금씩 되는데[정확히 말하면 감가상각액만큼 옮기고 회수된다], 이를 고정자본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한 번에 자기 가치를 모두 상품에 이전하며, 이 상품의 판매로 자기 가치를 모두 회수하는 자본을 유동자본이라고 하는데, 원료와 임금에 들어간 자본이 속한다. 불변자본/가변자본이 잉여가치 생산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로 나뉜 것이라면 고정자본/유동자본은 자본의 회전과 어떤 관계가 있느냐로 나눈 것이다.
1권에서 2권 2편까지는 하나의 자본이 모든 부문과 성격이 다른 자본의 기능을 담당하고 대변하고 있다. 하나의 산업자본이 모든 산업자본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3편으로 들어가면 사회에는 여러 부문의 자본이 있음을 설명한다. 생산재를 생산하는 자본과 소비재를 생산하는 자본으로 나누어 재생산 표식으로 설명한다. 재생산표식은 1년 동안 생산된 상품이 어떠한 교환과정을 거쳐 완전히 판매 또는 소비되는가를 쉽게 숫자로 나타낸 것이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3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식(그림2)이다.
여기서 Ⅰv +Ⅰs = Ⅱc이어야 생산을 계속해 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으며(단순재생산), Ⅰv+Ⅰs >Ⅱc이면 확대재생산이 된다는 것만 일단 기억해 두도록 하자.

 

□ 서문 해설


엥겔스는 서문에서 2권을 출간하기까지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자신이 가장 노력을 기울인 것은 ꡒ편자의 저작이 아니라ꡓ ꡒ저자의 저작이 되도록ꡓ하는 일이었음도 덧붙이고 있다. 다음에는 원고들을 설명하고 있는데 특히 2권을 위해 맑스가 쓴 원고들과 그것을 쓸 때 맑스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1판 서문에서 엥겔스가 특히 힘을 기울인 것은 맑스가 로트베르투스라는 사람의 저작을 표절하였다는 악선전을 논박하는 것이었다. 당시 맑스가 죽고 없던 현실에서 맑스의 저작이 점점 영향력을 키워가자 온갖 비난과 악선전이 판을 쳤는데 엥겔스가 이런 견해들과 싸웠다.
엥겔스는 맑스가 로트베르투스를 잘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의 저작을 읽어본 적도 없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런 다음에 리카도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사상을 검토하면서 로트베르투스의 저작이 경제학상에서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를 길게 설명하였다. 뒷부분은 맑스의 경제학이 이전의 경제학, 특히 리카도의 경제학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를 보여주므로 주의를 기울여 읽어두어야 한다.

 

■ 로트베르투스 (Johann Carl Rodbertus, 1805~1875), 8쪽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괴팅겐과 베를린 대학에서 법률학을 공부했다. 1848년 3월 혁명으로 구성된 아우에르스발트-한제만 내각에 종교․교육 장관으로 참여하였다. 장관을 그만둔 뒤에는 포메른주에 머물면서 스스로 농사를 지으며 경제학, 역사학, 언어학을 연구하였다. 영국 차티스트 운동의 영향을 받아 1837년에 「노동계급의 요구」라는 글을 썼는데, 훗날 그의 경제학과 사회개혁안은 미숙하나마 모두 이 글에 포함되어 있다. 그는 사회문제를 국가가 주도하는 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뒷날 경제학으로는 신역사학파 우익인 바그너에게 영향을 주었고, 히틀러 나찌즘 이론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교재 2권, 29쪽~69쪽>
제 1편 자본의 변태들과 그들의 순환
제 1장 화폐자본의 순환

 

□ 화폐자본의 순환

 

자본은 스스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운동해야 한다. 그런데 자본은 3단계의 과정을 거쳐 순환운동한다. 1단계는 M―C 라는 유통과정으로, 자본가는 화폐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산다. 2단계는 생산과정으로, 1단계에서 사들인 생산수단과 노동력 상품을 소비하여 생산을 한다. 3단계는 C′―M′라는 유통과정으로,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증식된 상품을 팔아 1단계에서 들인 자본보다 늘어난 가치를 손에 넣는다.
화폐자본 순환의 공식은 M―C…C′―M′이며 여러 번 말한 대로 점선(…)은 유통과정이 끊어져 있음을 뜻한다.

 

□ 1단계. M(화폐)―C(상품)

 

M―C는 일정액의 화폐가 일정액의 상품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C는 Mp(생산수단)과 Lp(노동력)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완전히 다른 시장(Mp는 상품시장, Lp는 노동시장)에서 사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Mp와 Lp도 무조건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둘 사이에 일정한 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이는 그리 어려운 얘기가 아니고 10명이 쓸 기계를 사들였으면 노동자도 10명을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지 않으면 생산수단이든 노동력이든 손실되는 부분이 생긴다.
M―C(Mp, Lp)에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자본가가 노동력의 가치보전에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노동을 짜내기 위한 생산수단도 확보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어야 자본가가 투입한 화폐는 잉여가치를 낳은 ꡐ자본ꡑ이 될 수 있다.
1단계에서 M은 우리가 1권 3장에서 보았던 지불수단의 기능을 수행한다. 아직 자본으로 되어있지 않더라도 화폐는 상품을 살 수 있으므로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1단계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화폐로 노동력을 산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이 상품화되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화폐는 노동력으로도 바뀔 수 있다. 이는 우리가 1권 6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노동력이 생산수단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자본이 노동력을 사들일 때 이미 평등한 관계가 아니다. 자본가는 ꡒ거만하게 미소를 띠고 사업에 착수할 열의에 차 바삐 걸어가고ꡓ 노동자는 ꡒ겁에 질려 주춤주춤ꡓ 생산과정에 걸어 들어간다.

 

□ 2단계. 생산자본의 기능

 

자본순환이 1단계를 지나 2단계에 들어서면 생산이 시작된다. 1단계의 결과는 2단계의 개시를 알리는 것이다. 2단계는 이미 1권에서 자세하게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자본순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도만 알아두면 된다.
M―C(Mp, Lp)…P에서 노동력은 자본가의 손에 있을 때만 자본이 된다. 노동력은 노동자에게는 상품일 뿐이다. 생산수단도 노동력과 붙어있을 때만 생산자본의 한 요소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생산수단이 시대와 관계없이 자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란 어떤 물적인 형태가 아니고 사회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2단계에서 생산자본은 자기의 구성요소를 소비하여 그것을 더욱 큰 가치의 생산물로 바꿔놓는다. 여기서 노동력은 자본을 위해 무료로 수행되는 잉여노동을 하게 되며 이것이 잉여가치를 형성한다. 따라서 2단계에서 생산된 생산물은 잉여가치를 포함한 상품이 된다.

 

□ 3단계. C′―M′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상품은 상품자본의 요소이다. 기계나 원료 같은 생산수단만 자본이고 소비재는 상품이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상품자본이 상품형태에 있을 동안 상품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3단계는 C′―M′인데 이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C+c)―(M+m)이다. 1단계에서 두 개의 시장에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산 자본가는 3단계에서 하나의 시장인 상품시장에서 상품을 판다. 자본가가 처음에 들였던 M보다 큰 M′을 얻는 것은 M보다 큰 가치를 지닌 C′를 팔기 때문이다. C′가 C보다 큰 가치를 갖는 것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자의 잉여노동에 자본가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다.
C′―M′인 3단계에서 자본가는 처음에 들였던 자본의 가치와 잉여가치를 실현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M′=M+m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일정액의 화폐이므로 상품에서처럼 붙어있지 않다. m이 다음 순환에서 M에 얼마나 추가되느냐에 따라 재생산규모가 결정된다. 우리는 이를 1권 7편에서 살펴본 바 있고, 앞으로 2권 3편에서 자세하게 연구할 것이다.
그런데 M′은 M보다 m만큼 양이 클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그것이 ꡐ자본ꡑ이라는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 M′은 자본이라는 질적 관계를 M과 m의 양적 관계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총순환

 

앞에서 본대로 자본은 화폐자본과 상품자본형태를 번갈아 가며 취하고 생산과정에서는 생산자본으로 된다. 이 총순환의 경과 중에 이런 형태들을 취하고 버리며, 이들 각각의 형태에서 그것에 대응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자본은 생산자본이다. 여기서 ꡐ산업ꡑ이란 자본주의적으로 경영되는 모든 생산분야를 포괄한다. 따라서 화폐자본, 상품자본, 생산자본은 산업자본이 순환과정에서 취하는 특수한 형태들이며 독립된 자본종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순환은 앞에서 말한 세 가지 단계에서 정체되지만 않으면 순조롭게 진행된다. 1단계에서 정체되면 자본은 ꡐ축장화폐ꡑ 형태를 띠며 2단계에서 정체하면 생산수단은 쓸모 없게 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가 된다. 3단계에서 문제가 생기면 상품들이 재고로 쌓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다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단계에서 문제가 생겨도 순환 전체는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2권 1장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59쪽부터 나오는 운수업에 대한 얘기이다. 「자본」 1권만 읽고 ꡐ서비스산업도 가치를 형성하는 데 맑스는 이를 무시했다ꡑ느니 하면서 유치한 오해를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 읽어두기 바란다. 맑스는 분명히 ꡒ생산과정의 생산물ꡓ이 ꡒ물적 생산물 또는 상품이 아닌ꡓ 산업에서 수송이 생산적으로 소비되는 유용효과의 가치는 부가가치로서 상품에 이전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62쪽~64쪽에 정리하고 있는 자본순환의 특징과, 68쪽~69쪽에 정리해 놓은 M―M′의 특징과 착각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읽어두기 바란다.


■ 스콜라(schola) / 44쪽
4세기 샤를마뉴 대제는 유럽 여러 곳에 신학원을 세우고 학문육성에 힘을 쏟았다. ꡐ스콜라ꡑ라는 말은 라틴어로 ꡐ학교ꡑ라는 뜻으로, 수도원과 주교좌 성당에 마련된 부속 학교의 이름이었다. 중세의 신학원과 대학에서 연구한 학문을 스콜라철학이라고 부른다.
샤를마뉴 대제시대~12세기까지 스콜라철학은 기반을 마련한다.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안셀무스는 신앙과 인간이성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방법론을 확립하여 ꡐ스콜라철학의 아버지ꡑ로 불렸다. 13세기는 스콜라철학의 전성기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슬람으로부터 받아들여 기존 신학연구에 적용하였다. 아퀴나스는 신학에 대한 철학의 독립을 승인하면서도 전체는 신학 체계로 종합하였다.
그러나 스콜라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이 아니고 교회가 명령하는 대로 기독교의 교의를 해석하고, 설명하고, 이해하기 위한 시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스콜라철학을 ꡐ신학의 시녀ꡑ라 비아냥거리게 되었다. 따라서 ꡐ스콜라적ꡑ이라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을 비웃는 말이다. 한자성어로는 ꡐ탁상공론(卓上空論)ꡑ에 가까운 말이다.

 

<교재 2권, 70쪽~112쪽>
제 1편 자본의 변태들과 그들의 순환
제 2장 생산자본의 순환
제 3장 상품자본의 순환

 

□ 2장, 3장의 구성

 

우리는 지난 호에서 산업자본의 순환을 화폐자본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 1장을 공부하였다. 2장에서는 이를 생산자본의 순환, 3장에서는 상품자본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2장 1절에서는 단순재생산일 때, 2절에서는 확대재생산일 때 어떻게 되는가를 연구한다. 1권 7편에서 이미 자본의 축적과정을 살펴본 바 있지만 그 때는 유통과정을 빼놓고 본 것이다. 따라서 2장에서는 자본의 재생산이 유통과정에서 어떤 형태를 취하며 이루어지는가를 보는 것이다. 3절 화폐축적에서는 잉여가치가 상품형태에서 자본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화폐형태에서 자본으로 바뀐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본의 축적을 위해서는 화폐가 먼저 축적되어야 하는데 잉여가치가 화폐형태로 바뀐 뒤 자본으로 바뀌려면 충분한 크기가 될 때까지 준비금으로 쌓여야 한다는 것이다. 4절에서는 3절에서 얘기한 준비금을 다룬다. 3장은 1, 2장만 이해하면 특별히 어려운 것이 없으며 1, 2장과의 차이점에 주목하면 된다.

 

□ 단순재생산과 확대재생산

 

생산자본의 P(생산과정)…C′(상품)―M′(화폐)―C(상품)…P(생산과정)이다. 여기서 먼저 P…P 사이에 있는 유통과정 C′―M′―C를 보자.
이 유통의 출발점은 C′=C+c=P+c이다. 이는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c만큼 불어난 것을 뜻한다. 우리는 1장에서 C′―M′를 유통의 2단계로 보았다. 이것이 화폐자본의 유통에서는 끝이었지만 생산자본의 순환에서는 전체 순환에서는 2단계, 유통의 1단계를 이룬다. 따라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M′(=M+m)에서 M과 m이 분리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해진다. m이 M에 포함되어 다음 순환에 들어가면 확대재생산이 되고, 포함이 안 되면 단순재생산이 된다.
단순재생산의 경우 모든 잉여가치를 자본가가 소비한다고 가정했다. 따라서 이 경우 M′가운데 M은 산업자본의 순환 속에서 움직인다. m은 화폐형태를 취하며 상품유통으로 들어간다. 이는 자본가에서 출발하긴 하지만 산업자본의 유통 밖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m―c로 나타낼 수 있는데 여기서 c는 자본가가 구입한 상품과 서비스이다. m은 유통이 중단된 화폐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재생산에서는 M′의 자본가치(M)와 잉여가치(m)가 분리된다. 만약 M과 m이 분리되지 않으면 자본가치가 순환과정에서 커져 움직이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확대재생산이 된다.
생산자본의 순환에서 M은 P가 바뀐 것이다. 이는 자본가치가 최초에 들어간 형태이며 처음부터 C′의 판매에 매개되어 생산자본 P가 화폐자본으로 바뀌어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M으로 노동력을 산 것도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가치의 일부분으로 다시 노동력을 사들인 것이다.
한편, 생산자본의 순환에서 화폐자본은 자본가치가 상품자본에서 생산자본(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다시 바뀌는 것을 중간에서 맺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여기서 M은 유통수단이 된다. M은 곧 사라져버릴 자본가치의 형태이며 화폐형태로 머무르는 한 자본이 되지도 않고 따라서 증식할 수도 없다. 그러나 화폐자본은 기능하고 있지 않아도 화폐로 오랫동안 유지를 할 수 있다. 상품 자본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 사용가치를 잃어버린다는 점을 볼 때 이는 아주 중요한 것이다. 또한 화폐형태에 있는 자본은 처음 생산자본과 다른 형태를 취할 수 있지만(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상품형태에 있는 자본은 그럴 수 없다.
앞에서 M에 m이 첨가되면 확대재생산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무조건 되는 것이 아니다. m이 일정한 크기가 될 때까지 생산에 투입될 수는 없다. 생산에 투입되기 전까지 m은 ꡐ잠재된ꡑ 화폐자본일 뿐이다.

 

□ 화폐축적과 준비금

 

2절에서 m이 바로 자본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크기가 될 때까지 화폐형태로 축적된다고 하였는데 3절과 4절은 이를 살펴보는 것이다.
m이 자본가치의 순환과정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m이 존재하는 것과 관계없이 결정된다. 설령 m이 다른 사업에 들어가는 경우에도 그 사업에 필요한 최소 규모가 되지 않으면 안 되며 생산 기술수준도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m이 자본순환에 들어가지 않고 쌓이는 것은 m의 기능이 아니라 생산과정이 반복된 결과이다. 자본으로 투입될 때까지 m은 축장화폐가 되며 ꡐ쉬고 있는ꡑ 화폐자본이다. 이는 기능이 중단된 것이 아니라 아직 자본으로 쓰일 능력이 없는 화폐자본인 것이다.
그런데 축장화폐는 다른 역할도 한다. 생산과정에서 생산수단이나 노동력의 가격이 갑자기 오르거나, 유통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들어갈 경우에 순환의 교란을 막는 준비금으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맑스는 96쪽 그림으로 생산자본의 순환을 정리해두고 있다. 잘 익혀두기 바란다.


□ 상품자본의 순환

 

산업자본의 순환은 화폐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의 순환이 통일되어 있다. 3장에서는 산업자본의 순환을 상품자본의 관점에서 살펴보는데, C′―M′―C…P…C′이 일반공식이다.
먼저 상품자본의 순환은 유통이 담당하는 역할이 앞의 두 경우와 다르다. 상품자본의 유통에서는 C′―M′―C가 순환을 시작하는데, 화폐자본의 경우 유통이 생산과정으로 중단되고 생산자본에서는 총유통이 생산과정을 중간에서 매개할 뿐이다.
상품자본의 순환에서 주의할 것은 자본이 결코 상품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M이 M―C(Mp, Lp)에서 노동력(Lp)과 생산수단(Mp)은 판매자 손에 있을 때만 상품이며, 이 순환을 행하는 산업자본가의 손에서는 생산자본의 요인일 뿐, 결코 상품은 아니다.
한편, 생산자본의 순환은 재생산의 형태이며 상품자본의 순환 C′―C′도 재생산이다. 다만 상품자본의 순환에서는 유통과정 두 단계로부터 순환을 시작해서 생산과정이 화폐자본의 경우처럼 계속되고 생산과정의 성과인 C′로 끝날 뿐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순환도 화폐자본의 순환처럼 완결되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순환이 계속되는 재생산과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재의 수치 예는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냥 넘어가도 된다. 나중에 수치 예만 모아서 정리를 한 번 할 것이다.

 

■케네(1694~1774), 112쪽
프랑스의 중농주의 경제학자이다. 1711년 빠리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718년 24세 때 외과의를 개업하였다. 당시 많은 지식인들처럼 케네의 연구영역도 의학뿐만 아니라 철학, 자연과학, 고전에까지 미쳤다. 외과의로서 명성을 날리던 케네는 1749년 루이 15세가 총애하던 뽕빠삐르부인의 시의(侍醫)로 베르사유궁에서 일하게 되어 귀족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조금 뒤 왕의 시의까지도 겸하게 된 케네는 정치, 경제문제에 대한 열성으로, 내노라하는 사상가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1756년 경제문제에 대해 처음 의견을 내놓은 「소작인」, 이듬해에는 「곡물론」이 당시 가장 유명한 잡지인 『백과전서』에 실렸다. 이 때 중농주의자 미라보(V. R. M. de Mirabeau)를 만나서 중농주의 학파에 참여하게 된다. 훗날 맑스가 천재적인 착상이라고 칭찬한 『경제표』는 1758년 12월 출판되었다. 경제표는 케네의 경제학 체계를 한 표에 요약했는데 사회 총자본의 재생산과정을 처음으로 과학을 동원해 분석하였다. 또한 중상주의자들의 유통주의 경향을 버리고 생산과정 분석에 치중하면서 경제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훗날 케네는 계몽주의 정치운동에 힘을 쏟았는데 1760년대 그의 글 「자연권」, 「상업에 대하여」, 「장인(匠人)의 노동에 대하여」가 『농업․상업․재정 평론』, 『시민일지』 같은 잡지에 실렸다. 이런 노력으로 케네는 현실문제를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날카롭게 관찰하여 경제학의 체계를 잡은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다.

 

<교재 2권, 113~170쪽>
제 1편 자본의 변태들과 그들의 순환
제 4장 순환의 세 가지 형태
제 5장 유통기간
제 6장 유통비용

 

□ 4장의 위치

 

1장~3장을 통해 산업자본이 화폐자본, 생산자본, 상품자본의 모습으로 순환한다는 것을 보았다. 각 장에서 우리는 자본의 모습을 한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에 비해 4장에서는 산업자본의 순환을 세 가지 형태의 통일로 살펴보면서 운동으로서의 자본을 연구한다.


□ 순환의 세 가지 형태

 

먼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세 가지 순환 모두에서 공통된 것은 가치증식이 순환의 목적이자 추진동기라는 점이다. 가치증식이 아니면 자본이 움직일 이유가 없다는 것은 1권부터 여러번 지적한 바이다. 자본의 순환운동은 끊임없이 자기증식을 하면서 계속되는 원운동이다. 원운동에서는 각 점이 출발점이자 복귀점이다. 이에 따라 세 가지 형태는 통일되며 이는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통일로 나타난다.
가치증식은 화폐자본의 순환에서는 직접 나타나고, 생산자본의 순환에서는 가치증식과정 자체가 출발점이며, 상품자본의 순환에서는 단순재생산의 경우도 증식된 가치로 시작하여 새로 증식된 가치로 끝난다.
한편 개별자본이 연속해서 순환하는 경우에도 구매, 판매, 생산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유통과정에서는 생산자본이 기능을 멈추고, 생산과정 동안에는 화폐자본과 상품자본이 운동을 멈춘다. 교재 115쪽에서는 이를 중국 수공업자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이 연속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생산력 발전을 방해하고 생산수단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발전한 자본주의 생산은 모두가 연속해서 동시에 이루어진다. 즉 세 가지 순환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며 총자본은 항상 세 가지 순환형태를 보여주며 움직인다.
자본은 하나의 운동이며 서로 다른 단계를 통과하는 순환과정이다. 따라서 자본은 운동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개별자본의 순환도 연속성을 지니며 사회적 총자본도 항상 연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개별자본의 연속성은 생산부문의 특수성, 생산을 제약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 때문에 중단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본의 어느 한 부분에서 순환이 정지되면 이는 모든 자본에 파급된다.
또한 자본순환 과정에서 어느 부분에 가치 변동이 생기면 세 가지 자본 형태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생산요소 가운데 생산수단의 가치가 줄어들면 일정 규모의 생산을 계속하기 위한 화폐자본이 전보다 적게 들어가 일부가 자본순환에서 떨어져 나와 축적된다. 이때 화폐자본의 일부가 축적되지 않고 생산수단 구매에 들어가면 생산기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생산자본의 기능이 확대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생산수단의 양은 과잉상태에 빠져 재고가 쌓이게 된다.
130~131쪽에는 교환방식이 생산방식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으며 4장의 마지막 부분은 가치실현 문제에 대한 메모를 옮겨 놓은 것이다.

 

□유통기간과 유통비용

 

자본의 운동은 시간 순서에 따라 생산과 유통이라는 두 국면을 통과한다. 자본이 생산과정을 통과하는 시간이 생산기간이고, 유통과정을 통과하는 시간이 유통기간이다. 따라서 자본이 한 순환을 이루기위해 필요한 기간은 생산기간과 유통기간을 합한 것이다.
생산기간 동안 자본은 생산자본의 형태로 존재하면서 생산적인 기능을 발휘한다. 이 기간 동안 상품이 생산되고 잉여가치가 창출된다. 이에 비해 유통기간 동안 자본은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의 형태로 존재하며 상품-화폐, 화폐-상품으로 형태변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때는 원칙적으로 잉여가치는 생산되지 않는다.
생산기간과 유통기간은 서로 배타적이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순환에서 유통기간이 계속되는 한 생산과정은 끊어지며 자본의 증식도 중단된다. 유통기간의 길이에 따라 생산과정의 반복 속도가 결정된다. 유통기간이 줄어들어 0에 가까울수록 생산기간의 비율이 커지며 자본의 생산성과 가치증식 정도는 높아진다.
생산기간은 보관기간, 노동기간, 휴지기간, 중단기간의 네 개 기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보관기간은 원료를 비롯한 생산요소들이 아직 생산과정에 들어가지 않고 보관되어 있는 기간이다. 노동기간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실제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기간이며 휴지기간은 생산과정에 들어간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생산의 성격상 기능을 중단하는 기간이다. 중단기간은 생산의 제한, 공황 같은 것으로 생산과정이 갑자기 중단되는 기간을 말한다.
생산기간 동안에는 비용이 필요한데 보관기간에 필요한 보관비용, 노동기간 중에 들어간 비용이 합해져 생산의 비용을 구성한다. 여기에 노동기간 동안 생산된 잉여가치를 합하면 생산물의 총가치가 된다. 휴지기간과 중단기간에는 가치가 증식되지 않을 뿐 아니라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생산기간과 노동기간이 맞아떨어질수록 자본의 생산성과 가치증식은 더 크게 된다.
다음으로 유통기간을 보자. 유통기간은 상품이 화폐로 바뀔 때까지의 판매기간과 화폐의 일부가 생산요소를 구매하는데 들어가는 구매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 상품이 창고에서 보관되는 기간인 보관기간, 판매가 중단되어 창고나 가게에 남아있는 정체기간, 상품의 운반을 위해 필요한 운반기간이 합해져 전체 유통기간이 결정된다.
우리가 1권에서 본 것처럼 상품 판매는 ꡐ결사적 비약ꡑ을 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구매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다. 따라서 상품 판매을 위해 유통기간에도 여러 가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이것이 보관비, 운반비, 매매비, 부기비이다. 이 가운데 보관비와 운반비는 생산과정에서 기인하는 비용이다. 이 비용들이 상품의 가치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유통과정에서 기인하는 매매비와 부기비는 반드시 필요한 비용이기는 해도 상품의 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제되는 비용으로 없어지는 부분이다. 특히 판매가 잘 되지 않아 상품이 남아있는 정체기간 동안 생긴 비용은 순손실로서 잉여가치에서 빠지게 된다. 우리 교재에서 5장은 유통기간을 정리해 두고 있고 6장은 유통비용을 여러 가지로 나누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별로 어렵지 않은 부분이라 상식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부기(簿記)의 역사, 150쪽
부기란 자산, 부채, 자본의 증감 변화를 일정한 원리원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장부에 기록․계산․정리하여 그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부기의 역사는 멀리 이집트, 수메르, 앗시리아, 중국, 그리스,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가운데 문명의 발생지였던 고대 수메르와 이집트에서 조세 징수나 간단한 거래에 관한 기록이 발굴되었다. 또한 해양민족인 고대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도 상업활동을 하면서 거래에 관한 기록과 보고를 남겼다. 한편, 로마에서는 노예가 재산을 관리․운영 하였는데 이를 노예주인에게 보고하기 위한 부기가 발달하였다.
그런데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부기는 거래 당사자 사이에 나중에 싸움이 일어날 우려가 있는 채권․채무와 재산을 관리․보전하기 위해 기록해 두는 단식부기였고 손익을 계산해서 분배한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려시대 개성상인들은 12세기쯤에 ꡐ사개송도치부법ꡑ이라는 독특한 복식부기 장부를 남겼는데, 이것이 요즘쓰는 복식부기가 세계 처음으로 출현한 기록이다. 그러나 세계에 복식부기법을 널리 퍼뜨린 것은 이탈리아 상인들이었다. 14세기쯤 베니스를 중심으로 하는 이탈리아의 상업도시에서 복식부기방식이 출현하였는데 루카 빠찌오리 (Lucas Pacioli, 1445~1514)가 1494년에 발표한 산술․기하․비율 및 비례총론 은 서양 복식부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출판물이다. 그 뒤 이탈리아의 부기법은 영국으로 건너가, 19세기 산업혁명을 계기로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 부기가 출현하게 된다.


<교재 2권, 29~170쪽>
제 1편 자본의 변태들과 그들의 순환
제 1장 화폐자본의 순환
제 2장 산업자본의 순환
제 3장 상품자본의 순환
제 4장 순환의 세 가지 형태
제 5 장 유통기간
제 6장 유통비용

 

□ 독자들에게

 

2권 연재에 들어가면서 지적한 바 있지만, 2권은 내용이 어렵다기보다 지루해서 끝까지 읽기 어렵다. 또한 자본 을 처음 읽는 사람들은 1권을 볼 때는 어느 정도 긴장과 기대를 갖고 있지만 2권은 1권과 같은 긴장과 기대가 떨어진다. 막말로 3권까지 가면 ꡐ여기까지 왔는데 좀더 못 가겠느냐ꡑ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어낸다. 1권을 마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2권이다. 혹시 독자들 가운데 벌써 지루함을 느낀 독자들이 있다면, 읽은 부분이 늘어가는 것에서 기쁨을 찾기 바란다. 먼저 읽어본 사람으로서 권할 수 있는 것은 ꡐ오직 인내가 필요ꡑ하다는 말뿐이다.
2권 연재에서 중심에 두는 것은 내용을 둘러싼 이런 저런 논쟁보다 내용을 요약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것은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자본 을 둘러싼 논쟁들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적용하는 데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3권 연재가 끝난 뒤에 할 예정이다.
한편, 이번 호처럼 자본 연재가 진도가 안 나갈 때는 복습보다 예습을 해두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아울러 권하고 싶다. 자본 을 읽다보면 앞에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뒷부분에서 이해할 때도 많고, 무엇보다 전체를 한 번 훑지 않은 채 한 부분에 매달리는 것은 자본 을 읽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번 주에 7장~9장을 미리 읽어두었으면 한다.

 

□ 2권의 위치

 

1편 내용을 정리하기 전에 2권이 자본 전체의 구성에서 가지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맑스는 1권에서 자본의 생산과정을 논의한 다음 2권에서 ꡐ자본의 유통과정ꡑ을 분석하였다. 따라서 2권에서는 자본이 움직이면서 취하는 여러 형태와 그것이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살펴본다. 결국 2권의 분석대상은 자본이 순환하고 회전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ꡐ재생산의 조건ꡑ이다.
이 때 주의해야 하는 것은 유통과정만을 생산과정에서 떼내어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까지 포함하는 자본의 형태변화 운동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1권의 단순상품유통과 달리 생산과정을 유통과정에 꼭 필요한 부분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런데 2권에서도 1권과 같이 상품이 가치에 따라 판매된다고 가정한다. 뿐만 아니라 가치→생산가격, 잉여가치→평균이윤으로 바뀌거나 잉여가치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뉘는 문제는 3권에서 살펴볼 문제이고 2권에서는 제외된다. 따라서 2권도 어느 정도 현실을 추상했다는 것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
2권을 읽다보면 자주 들어본 얘기가 1권보다 많이 나오기 때문에 섣불리 현실에 적용하려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그러다가 그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ꡐ 자본 이 틀렸다ꡑ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자본주의가 끝없이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러시아의 바라노브스키나 독일의 힐퍼딩, 그리고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 희망을 피력했던 사람들도 자본의 유통과정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던 것이 분명하다. 자본주의가 공황을 겪지 않고 발전해 갈 것이라고 큰 소리쳤던 몇몇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한심함도 자본의 유통과정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지만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전제 아래 자본의 유통과정과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를 순수한 형태로 살펴보는 것이 2권의 과제이다. 1권의 논의를 기초로 3권에서 구체적인 ꡒ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ꡓ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2권 자본의 유통과정 분석인 것이다.

 

□ 1편 내용정리

 

1편 제목은 자본의 형태변화와 순환이다. 자본의 순환이란 자본가가 화폐를 투자해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사고, 노동력을 이용해 상품을 생산하게 하여 이 상품을 내다 팔아 맨 처음 투자했던 화폐액과 이윤을 얻는 과정을 말한다. 같은 과정을 1장에서는 화폐 자본의 순환, 2장에서는 생산자본의 순환, 3장에서는 상품자본의 순환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아울러 4장에서는 산업자본의 순환을 세 가지 형태의 통일로 살펴본다.
맑스가 이런 방법을 쓴 것은 이전의 중상주의자들은 화폐의 측면에서, 고전학파는 생산자본의 측면에서, 중농주의학파는 상품자본의 측면에서만 자본을 살펴보았기 때문이다. 5장과 6장은 부연 설명에 해당하는 것으로 유통과정에서 감안해야 하는 기간과 비용문제를 다루었다.
이렇게 자본의 운동은 화폐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화폐자본-생산자본-상품자본-…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데 형태변화가 원활하지 않다면 자본은 ꡐ이윤 획득ꡑ이라는 애초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화폐자본이 생산자본으로 형태가 바뀌는 영역과 상품자본이 화폐자본으로 바뀌는 곳은 ꡐ유통영역'이고, 생산자본이 상품자본으로 형태가 바뀌는 곳은 ꡐ생산영역'이므로, 자본의 순환은 유통영역과 생산영역의 통일이다.
자본은 어느 한 고리에서만 문제가 생겨도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이렇게 되면 자본은 ꡐ축장 화폐ꡑ가 되든지, 생산수단이 쓸모 없게 되든지, 상품 재고로 쌓이게 된다.
한편, 생산된 잉여가치가 소비되면 단순재생산으로, 이것이 일정 규모가 되어 생산에 들어가면 자본은 확대재생산 되어 순환하게 된다.
자본이 세 가지 형태로 순환한다 하더라도 이 순환을 추진하는 동기는 ꡐ가치증식ꡑ이라는 것은 여러 차례 지적한 바다. 그런데 가치증식이 화폐자본의 순환에서는 직접 나타나고, 생산자본의 순환에서는 출발점으로, 상품자본의 순환에서는 증식된 가치로 시작하여 새로 증식된 가치로 끝난다는 차이점에 주목하자.
자본이 한 순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산기간과 유통기간이 필요하다. 생산기간에는 상품 생산을 통해 잉여가치가 창출된다. 유통기간에는 상품-화폐, 화폐-상품으로 형태가 바뀌며 원칙적으로 잉여가치는 생산되지 않는다. 유통기간은 상품이 화폐로 바뀌는 판매기간과 생산요소를 사는데 들어가는 구매기간으로 나뉜다. 여기에 보관기간, 정체기간, 운반기간을 합해져 전체 유통기간이 결정된다.
유통기간에는 보관비, 운반비, 매매비, 부기비같은 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유통비용은 재고처리비용과 다르다는 것이다. 유통비용은 상품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꼭 들어가야 하는 비용이지만 재고는 상품이 팔리지 않아서 발생하는 손실이다. 그런데 이는 형태에서 구분되지는 않는다. 또한 생산과 소비가 늘어날수록 재고 규모는 커지며 신용제도가 발달하면 재고를 관리하는 비용도 유통비용으로 보이는 환상이 생긴다.

 

■ 한자읽기

2권을 연재하는 가운데 색다른 이메일이 몇 번 왔다. 요지는 ꡒ자본을 한 번에 이해할 욕심도 없으며 그냥 한 번 읽어보는 것이 목표인데 2권에 들어서면서 한자 읽기가 너무 어렵다. 한자 독음을 달아줄 수 없겠느냐ꡓ는 것이었다. 우리 교재 1권은 여러 번 수정을 해서 한자가 많이 줄었지만 2권은 처음 나온 그대로 한자가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데 교재를 바꾸지 않는 이상 별 방법이 없다. 다만 한자를 따로 공부하지 말고 자본 읽는데 필요한 한자부터 공부할 것, 한자 바로 밑에 독음을 달지 말고 편마다 정리하여 각 편 마지막에 붙여 놓을 것 두 가지만 권하고 싶다.


<교재 2권, 173~213쪽>
제 2편 자본의 회전
제 7장 회전기간과 회전수
제 8장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제 9장 투하자본의 총회전. 회전의 순환

 

□ 2편 개괄

 

우리는 1편에서 자본의 운동을 순환이라는 하나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1편에서 이미 자본은 어떤 주기를 가지고 순환한다고 전제했으나 순환에 중심을 두어 서술한 반면, 2편에서는 회전에 중심을 두어 설명한다. 이어 자본의 회전에 영향을 주는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개념을 정리하고 중농주의자, 스미스, 리카도가 고정․유동자본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살펴본다. 그 다음 여러 장에 걸친 설명은 자본의 회전을 고려했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살펴본다. 결국 2편의 주제는 자본의 회전이 가치증식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이다.


□ 회전기간과 회전수

 

자본의 운동은 한 번 순환하고 끝나지 않는다. 생산이 자본주의 형태인 한 재생산도 자본주의 방식으로 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자본의 운동은 한 번의 생산과정과 두 번의 유통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 걸리는 시간이 바로 회전기간이다.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그의 자본의 회전기간은 그가 자기의 자본을 증식시키고 최초의 형태로 회수하기 위하여 자본을 투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간을 말한다.
이처럼 자본의 순환을 각각 단일 과정이 아니라 주기를 가진 과정이라고 볼 때 이를 자본의 회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자본의 회전이란 자본가치가 어떤 형태에서 움직여 다시 같은 형태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이것이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반복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100만원을 투자해 생산에 들어간 자본가가 생산과 유통과정을 거쳐 다시 그 100만원을 회수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자본의 회전기간이다.
자본회전의 측정단위는 보통 1년인데 이는 자본주의 모국인 영국이 온대지방이며 주요 농작물들이 연 1회 생산되기 때문이었다.
1년을 U, 특정 자본의 회전기간을 u, 자본의 회전수를 n이라 하며 n=U/u이다. 회전기간 u가 3개월이면 n=12/3=4이다. U가 12인 이유는 1년이 12개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자본은 1년에 네 번 회전한다.

 

□ 고정자본과 유동자본

 

우리는 1권에서 가치를 증식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자본을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나누었다. 그런데 자본은 회전방식에 따라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으로 나눌 수 있다.
불변자본 가운데 기계나 건물 같은 노동수단에 들어가는 부분은 가치를 조금씩 생산물에 옮겨놓는데 이것이 고정자본이다. 자본가치가 노동수단에 고정되어 조금씩 가치를 이전하기 때문에 고정자본이라 부르는 것이다. 혹시 독자 여러분 가운데 한 장소에 고정되어있는 것을 고정자본이라 생각했다면, 비행기나 배, 기차도 고정자본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두기 바란다. 아울러 생산과정에 오래 머문다고 고정자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농작물 씨앗은 생산과정에 1년 동안 머물지만 유동자본이다. 우리 교재 180쪽~184쪽에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이에 비해 원료나 보조재료에 들어간 자본, 노동력 구입에 들어간 자본은 1회 생산과정에서 한꺼번에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하며 이를 유동자본이라 한다. 불변자본, 가변자본, 고정자본, 유동자본의 관계를 간단하게 표현하면 <그림 1>이 된다.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은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하는 방식이 다르고 이에 따라 회전에도 차이가 생기게 된다. 고정자본은 가치를 조금씩 생산물에 이전하고 생산물은 유통과정을 지나면서 상품에서 화폐로 바뀐다. 일부분만 회전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고정자본은 더 이상 가치를 생산물에 옮길 수 없을 때까지는 새것으로 바뀌지 않으며 전체가 바뀔 때가 되어야 1회전을 하는 것이다. 유동자본은 생산과정에서 모두 소비되고 가치를 생산물에 옮긴다. 유통과정을 거쳐 화폐형태로 바뀔 때 한꺼번에 바뀌어 1회전을 하게 된다. 유동자본 가운데 생산에 투입되지 않고 재고로 남아 있어 고정자본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재고는 생산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 투하자본의 총회전. 회전의 순환

 

7장~8장에서 본 것처럼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회전방식과 회전기간은 다르다. 고정자본도 회전기간이 다르다. 따라서 투하자본의 총회전은 각각의 구성분들의 평균회전이다. 그런데 평균을 낼 때 양뿐 아니라 질에서도 차이가 난다. 유동자본은 자주 보전되지만, 고정자본은 한꺼번에 보전된다. 따라서 평균을 내자면 특수한 회전형태를 동일한 회전형태로 바꾸어야 한다.
M…M′형태로 이런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교재의 예를 통해 보면 10000원의 가치를 지닌 기계의 수명이 10년이고 1/10씩 해마다 화폐로 돌아온다면 회전기간의 평균을 내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된다. 회전의 계산방법에 대해 맑스는 미국 경제학자 스크로프의 방법을 쓰고 있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산수이므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주목할 것은 공황의 물질기초에 대한 맑스의 지적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고정자본의 가치량이 늘어나고 수명도 길어지는데,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생산수단도 아울러 빨리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고정자본이 물리적으로 쓸모 없어지기 전에 ꡐ도덕적 마멸ꡑ로 생산수단을 바꿔야 한다. 이 순환이 주기적 공황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기초가 된다. 그러나 고정자본의 회전과 공황의 주기성을 밝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공황론에서 따로 연구할 과제이다.


■ 철도의 역사

맑스는 자본 2권에서 철도를 예로 많이 들고 있다. 맑스가 살던 시대는 바야흐로 철도의 시대였다.
원래 철도는 1530년쯤 독일 탄광에서 나무로 궤도를 짜고 마차로 석탄을 운반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1776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할 때까지 마차철도여서 큰 기능을 하지 못했다. 리차드 트레비식(1771~1833)은 180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처음으로 증기기관차를 운행하였다. 발전을 거듭하던 철도는 1825년 9월 27일 21대의 기차와 화차에 600명의 승객을 태운 '로커모션호'가 운행되면서 비로소 철도로서 면모를 갖추게 된다. 1850년대부터는 철도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철도의 궤도 길이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 될 정도였다.
참고로 지하철은 1863년 1월 10일 영국 런던의 팔링턴가와 비셥스가의 패딩턴을 잇는 6.0 km 구간에 증기기관차로 운영되었으며, 1890년 전기철도가 탄생하였다.
한국에 처음으로 철도가 생긴 것은 1899년으로 일본이 부설권을 얻어 제물포~노량진 사이에 철도를 놓고 9월 18일 개통하였다.

 


<교재 2권, 214~295쪽>
제 2편 자본의 회전
제 10장 고정자본 및 유동자본에 관한 학설. 중농주의자들과 아담 스미스
제 11장 고정자본 및 유동자본에 관한 학설. 리카도
제 12장 노동기간
제 13장 생산기간
제 14장 유통기간

 

□ 중농주의자, 아담 스미스

 

케네는 고정자본에 해당하는 것을 ꡐ최초의 투자ꡑ, 유동자본에 해당하는 것을 ꡐ연년(年年)의 투자ꡑ라고 불렀다. 중농주의를 대표했던 케네는 농업에 들어가는 자본만이 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공업에 들어가는 자본은 농업부문에서 나온 생산물을 형태만 바꾸기 때문에 비생산적이라고 하였다.
케네는 자본을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으로 나누지 못하였다. 농업만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했던 케네에게 이는 당연한 것으로 그저 처음에 들어가는 자본과 해마다 들어가는 자본만 구별해도 그의 이론체계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케네는 생산물에 가치를 덧붙이는 방식, 유통방식, 재생산 방식의 차이로 자본을 구별했다. 이는 스미스나 리카도도 이루지 못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정말로 ꡐ천재적ꡑ인 발상이었다. 우리는 7장~9장에서 이를 살펴본 바 있다.
아담 스미스는 농업뿐 아니라 모든 부문의 자본이 생산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이라는 개념을 일반화하였다. 그런데 스미스는 개념을 일반화했다는 점만 케네보다 나았을 뿐 다른 것은 케네에게 훨씬 뒤떨어졌다.
스미스는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을 혼동해 잘못 구별했다. 그는 유통하지 않고 이윤을 가져오는 자본을 고정자본, 손에서 손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윤을 가져오는 것을 유동자본이라고 생각했다.
고정자본에 대한 스미스의 언급을 보자.
ꡒ토지개량에 유용한 기계 및 노동도구의 구입에 또는 소유자의 변경이나 더 이상의 유통 없이 소득 또는 이윤을 가져다 주는 이와 유사한 물건들의 구입에 사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본은 고정자본이라고 불리울 수 있다ꡓ
이처럼 스미스는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성격을 물건에 붙어있는 성격으로서 보는 잘못을 저질렀다.

 

□ 리카도

 

리카도는 임금률의 변화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해명하기 위해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의 구별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리카도의 고정자본-유동자본 구분은 스미스의 이론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발전이 없었다.
리카도에게 고정자본이란 노동수단이며 유동자본은 노동에 들어있는 자본이다. 따라서 유동자본을 가변자본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11장은 10장과 특별히 다른 내용이 없고 스미스가 불러온 혼란이 리카도에게 어떤 잘못된 인식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260쪽~261쪽에 정리된 ꡐ스미스의 혼란ꡑ은 10장과 11장을 아울러 정리하는 것이므로 주의 깊게 읽어두기 바란다.

 

□ 노동기간, 생산기간, 유통기간

 

노동일은 노동자가 매일 자신의 노동력을 지출해야하는 노동시간의 길이를 말한다. 노동기간은 어떤 산업부문에서 완성생산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서로 연결된 여러 노동일 전체를 뜻한다. 이 경우 각 노동일의 생산물은 매일 만들어지다가 노동기간의 마지막에서야 완성되는 완성생산물의 부분 생산물일뿐이다.
노동기간은 생산부문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생산부문에서도 크기에 따라 다르다. 작은 배를 만드는 데는 1개월이면 되지만 큰 유조선을 만드는 데는 몇 년이 걸린다. 교재에 나오는 예들은 모두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노동기간의 길이가 유동자본의 회전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13장은 생산기간과 노동기간의 관계를 살펴본다. 노동기간은 언제나 생산기간이지만 생산기간이 모두 노동기간인 것은 아니다.
생산기간과 노동기간이 차이가 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①유동자본이 노동기간에 들어가기 전에 생산기간 안에 있는 경우(가구 제조에 사용되는 목재의 건조에 필요한 시간), ②노동기간을 거친 이후 생산기간 안에 있는 경우(포도주나 빵의 발효기간), ③생산기간 중간 중간에 노동기간이 끼워있는 경우(농업노동), ④유통가능한 생산물의 대부분이 생산과정에 있고 훨씬 적은 부분이 연년의 유통에 들어가 있는 경우(조림업, 축산업), ⑤유동자본이 잠재적 생산자본의 형태로 투하되야 할 기간의 길고 짧음, 따라서 또 이 자본이 한꺼번에 투하되지 않으면 안 되는 양의 많고 적음은 부분적으로는 생산과정의 종류에 따라 결정되며, 부분적으로는 유통영역에 속하는 사정들에 의존한다.
14장 유통기간에서는 회전기간의 일부인 유통기간이 회전기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본다.
한편 유통기간은 판매기간과 구매기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판매기간을 보자. 판매기간은 자본이 상품자본 형태로 있는 기간이다. 이 기간의 길이에 따라 유통기간, 그리고 회전기간의 길이가 결정된다. 판매기간이 길어지면 보관비, 관리비 그리고 이런 저런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비용들이 들어간다. 판매기간은 사업부문의 성격, 시장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교통이 발달하면 상품이 이동하는 기간을 줄이고 자연적 거리와 관계없이 시장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교통수단이 발전함에 따라 생산지와 시장의 위치가 변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대전이 이런 변화의 대표이다. 철도가 생긴 뒤 급격하게 발전한 대전은 인근 강경, 논산, 공주를 쇠락하게 만들었다. 교통의 발달은 유통기간을 줄여 세계시장을 상대로 하는 산업들이 발달하고 이는 회전기간을 엄청나게 늘리게 된다.
구매기간은 유통기간의 일부이다. 이 때는 총자본 가운데 화폐상태로 일정액수가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한편, 생산적 재고 형태로 존재하는 원료는 그것이 다 떨어지면 한꺼번에 사들여야 한다. 이 시기에는 많은 화폐가 일거에 투입되어야 하므로 총자본 가운데 화폐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 마누법전, 273쪽

마누란 힌두교에서 인류의 시조로 홍수신화에 나오는 성경의 '노아'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마누법전은 인도 최고의 법률집으로 브라만을 중심으로 인도 사회의 법 질서를 규정한 것으로, 전문 12장 2684조로 되어 있다. 기원전 200~300년에 걸쳐 집대성된 것으로 조문 가운데에는 인간의 도리나 일상생활에 관하여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원래 고대 인도의 법은 오늘날의 법률의 개념보다 범위가 넓어서 종교․도덕․관습을 포함했다. 따라서 마누법전은 오랜 전통을 배경으로 하여 고대 인도의 전통과 사회 관습을 정리한 후 편찬된 것이다. 한편 마누법전은 여성차별을 지나치게 옹호하고 있어 오늘날 커다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어음, 290쪽

어음은 ꡐ언제 얼마를 어느 은행에서 갚겠다ꡑ고 적어 놓은 특별한 종이쪽지이다. 차용증서와 다른 것은 차용증서가 개인 사이의 거래인데 비하여 어음은 중간에 은행이 매개하는 점이 다르다. 어음을 발행하기 위해서는 은행에 당좌예금을 개설하고 은행에서 주는 어음 종이에 거래 내역을 쓰면 된다. 어음 결제일에 결제를 하지 못하면 그것이 ꡐ부도ꡑ이다. 또한 어음은 수표와도 다르다. 수표는 통장에 있는 금액만큼만 발행할 수 있지만 어음은 통장에 얼마가 있든지 상관없이 마음대로 발행할 수 있고, 수표는 발행되는 그 순간 수표를 받은 사람이 은행에 찾아가서 지급을 요구할 수 있지만, 어음은 어음쪽지에 적혀있는 날 은행에 찾아가서 돈으로 바꿀 수가 있다.
약속어음은 구입자가 직접 대금지불을 약속하는 어음이다. 기업어음, 상업어음, 진성어음, 융통어음, 표지어음도 약속어음과 같은 거래 방식을 취한다. 환어음은 구입자가 대금을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받으라고 대금 지급자를 바꾸는 어음이다. 환어음은 보통 무역에서 많이 쓴다.

 


<교재 2권 >
제 2편 자본의 회전
제 15장 회전기간이 투하자본의 크기에 미치는 영향
제 16장 가변자본의 회전
제 17장 잉여가치의 유통


□ 회전기간과 자본증식

 

15장과 16장은 회전기간이 자본증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밝힌다. 교재에서는 먼저 생산기간이 9주, 유통기간이 3주인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생산은 3개월(12주)마다 3주 동안 멈추게 된다.
생산이 연속해서 같은 규모로 이어지려면 생산규모를 줄이든가 추가로 자본을 투하해야 한다. 생산규모를 줄이는 것은 12주 동안 유동자본 900원이 투입된다고 할 때 생산기간 9주에만 100원씩 투입할 것이 아니라 12주 전체에 걸쳐 한 주에 75원씩 투입해야 한다.
추가자본을 투입하여 생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유동자본을 더 투입해야 한다. 교재의 예에서 보면 유통기간 3주 동안 300원을 더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교재에서 든 세 가지 예는 여기서 다시 정리하는 것보다 교재를 통해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맑스가 예 1, 2, 3을 통해 얘기하고자 했던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처음에 들어간 자본과 추가로 투입된 유동자본이 교차하면서 운동한다는 것이다. 교재의 예에서 두 자본이 따로 움직이는 것은 <예 2>일 때이다. <예 1>과 <예 3>에서는 2회전부터 두 자본이 교차해서 움직인다.
둘째, 노동기간 동안 기능을 수행했던 자본은 유통기간 동안에는 쉬게 된다. <예 2>에서 처음에 들어간 자본은 5주 동안 기능을 수행하고 5주의 유통기간 동안은 쉬게 된다. 이 때문에 쉬는 동안 추가로 자본이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추가자본의 양은 유통기간의 합계가 아니고 회전기간에 대한 유통기간의 비율이다. 따라서 추가로 필요한 자본은 2500원이 아니라 500원이다.
셋째, 생산기간이 노동기간보다 길면 회전기간이 길어지긴 해도 추가자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추가자본은 생산이 중단되는 기간을 메우는 것이기 때문에 유통기간이 길어져야 추가자본의 양이 늘어날 뿐이다.
1절~3절에는 노동기간과 유통기간이 동등한 경우, 노동기간이 유통기간보다 긴 경우, 3절 노동기간이 유통기간보다 짧은 경우로 나누어 회전기간이 자본증식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 있다. 4절에서는 이를 총괄하고 있다.
자본의 일부가 유통기간에 있는 동안에도 다른 일부가 끊임없이 노동기간에 있기 위해서는 자본은 두 가지로 분할되어야 한다. 그런데 노동기간=유통기간일 때, 1유통기간=n 노동기간(n=정수)이면 어떤 자본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그러나 1유통기간=n 노동기간(n=정수가 아닐 때), 노동기간이 유통기간보다 클 때는 유동자본의 일부가 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적 총자본의 경우 유동자본은 일부가 쉬는 것이 정상이다. 교재에서 A의 경우야말로 예외인 것이다.
5절에서는 생산요소와 생산물의 가격변동이 투하자본의 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살펴본다. 생산요소의 가격이 오르면 생산에 들어가는 자본의 양이 늘어나고 따라서 더 많은 화폐자본이 필요하게 된다. 생산요소의 가격이 떨어지면 투하자본의 양이 줄어 자본 가운데 쉬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생산물의 가격이 올라가면 생산부문에서 자본이 남아 화폐시장에 투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반대로 생산물 가격이 떨어지면 생산규모를 줄이든지, 자본을 더 투자해야 떨어지기 이전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 가변자본의 회전

 

유동자본은 가변자본과 생산재료에 들어가는 자본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가변자본의 운동은 고정자본과 다를 뿐 아니라 유동자본의 다른 요소와도 다르다.
교재는 숫자가 들어간 예들이 많아 복잡해 보이지만 그리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결론만 간단하게 요약하기로 한다.
먼저 교재에서는 문제를 간단히 하기 위해 유동자본을 모두 가변자본으로 간주한다는 점에 주의하자. 다음으로 연간잉여가치율 개념을 알아두어야 한다. 16장에서는 이 두 가지와 굵은 결론(회전기간이 짧고 회전수가 많을수록 자본이 증식된다)에 주목하고 여러 가지 숫자 예에 흔들리지 말기 바란다.
연간잉여가치율은 1년 동안 생산되는 잉여가치 총량을 투하된 가변자본의 가치총액으로 나눈 것이다. 교재의 예에서는 5000원/500원=1000%이다. 연간잉여가치율은 ꡐ1회전 기간 중 달성하는 잉여가치율×가변자본의 회전 수ꡑ와 같다. 따라서 1년 동안 생산된 잉여가치의 양이 같더라도 회전기간이 다르면 연간잉여가치율은 달라진다.


□ 잉여가치의 유통

 

잉여가치는 자본이 회전할 때마다 새로 창출되어 유통에 들어간다. 따라서 17장은 자본의 회전을 연구하는 2편의 결론에 해당한다.
먼저 기억해 둘 것은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바뀌는 양에 따라 잉여가치율이 변하지 않아도 1년 동안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1권부터 여러 번 지적했던 것처럼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쌓이는 것은 확대재생산이다. 하지만 실제 생산에서는 오랜 시간, 여러 차례에 걸쳐 쌓인 화폐자본이 고정자본 확대를 통해 생산규모를 크게 늘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생산이 커질수록 ꡐ신용ꡑ이 발전한다. 화폐자본에 여유가 있는 자본(은행, 사채…)이 앞으로 발전가능성이 높은 자본의 생산규모 확대에 필요한 돈을 투자하고 이자를 받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잉여가치가 묶이지 않고 생산에 투입될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또한, 1절에서는 단순재생산의 경우 잉여가치가 화폐형태를 취해야 한다는 것, 2절에서는 확대재생산을 볼 때 단순재생산의 논리에 추가되는 다른 어떤 논리도 없다는 것도 아울러 알아두면 17장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주식, 406쪽

주식은 투자한 자본금만큼 기업에 대한 소유권과 이익에 대한 배당금을 주겠다고 약속한 종이(주권)를 말한다. 주식회사는 이렇게 만든 자본을 자기자본으로 하여 기업을 운용하는 제도이며 주식시장은 자본주의 경제를 상징하는 시장조직이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근대적 의미의 주식이 처음 나타난 것은 17세기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1602년 설립되었고 17세기 중엽이 되면 네덜란드가 유럽 해운의 3/4를 차지하게 된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은 일약 세계무역, 금융중심지로 떠올랐다. 여기서 어음결제, 현금교환, 신용공여가 이루어졌다. 이 때 상인들의 어음, 주식, 공채들을 거래하였다.
런던은 19세기의 중심지이다. 영국에서는 17세기 잉글랜드은행이 발행한 공채를 소규모로 거래하는 비공식 주식시장이 발달했다. 그러다 1793년 주식브로커들이 거래 장소로 쓰던 런던 시내의 조나단 찻집을 증권거래소라 부르고 자치조직을 만들면서 주식시장은 아주 빠르게 발전했다. 1802년에는 550명의 증권업자가 공채, 잉글랜드은행 주식, 외국 증권 거래를 중개하기 위해 증권거래소를 설립하고 1812년 최초의 증권거래 규칙을 제정, 본격적인 증권거래소의 면모를 갖추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주식을 발행한 것은 1899년 천일은행(→상업은행→+한일은행=한빛은행)이 주식회사로 설립되면서부터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주식시장의 출발은 증권거래소가 생긴 1956년 3월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1962년 김종필은 공화당 창당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4대 의혹사건의 하나인 증권파동을 일으켜, 그나마 시원찮던 주식시장에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주식시장이 다시 활기를 띤 것은 이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74년이며 80년대에 급격하게 시장이 확장되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전성기를 맞았던 한국의 주식시장은 1997년 IMF 사태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 뒤 미국경제의 영향이 그대로 반영되는 ꡐ동조화 현상ꡑ이 두드러지고 있다.

 

 

<교재 2권>
제 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제 18장 서론
제 19장 연구대상에 관한 이전의 서술

 

□ 정리

 

18장 1절은 3편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연구 대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맑스는 여기서 3편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1권~2권 2편까지 했던 얘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어떤 해설서보다 간결하게 정리를 하고 있으므로 잘 읽어두기 바란다.
우리는 1권에서 ꡐ자본의 생산과정ꡑ에 대해 살펴보았다. 1권에서 중심에 둔 것은 ꡐ자본 자체가 어떻게 생산되는가ꡑ, ꡐ잉여가치는 어떻게 생산되는가ꡑ였다. 또한 자본주의 생산을 밀어붙이는 힘은 잉여가치(3권 수준에서 보면 이윤) 생산이었다.
그런데 1권에서는 유통과정을 빼놓고 얘기를 전개했다. 따라서 자본가는 생산물을 가치대로 판매한다고 전제했다. 또한 생산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찾아내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상정했다. 다만 노동력에 대해서는 1권 6장에서 유통과정을 연구했다.
2권에 들어와서는 제목대로 유통과정을 중심에 두고 얘기를 전개한다. 따라서 자본이 순환하면서 취하는 여러 가지 형태(화폐자본, 생산자본, 상품자본)를 연구했을 뿐 아니라 각각의 순환에 대해서도 아울러 살펴보았다. 2권 2편에서는 ꡐ주기를 가진 순환ꡑ인 ꡐ회전ꡑ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자본을 고정자본과 유동자본으로 나누고 이에 따라 다른 형태로 순환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와 함께 노동기간과 유통기간의 개념을 살펴보면서 이 기간들의 길이가 왜 차이가 나는가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어 자본이 순환하는 시간의 길이, 노동기간-유통기간의 비율이 생산의 크기와 연간잉여가치율의 크기에 미치는 영향을 보았다. 1편에서는 화폐자본, 생산자본, 상품자본 각각을 살펴보았지만 2편에서는 화폐자본, 생산자본, 상품자본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서로 얽히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움직인다는 것을 밝혔다.
2편에서도 마찬가지고 18장 2절에서도 따로 분석하는 것이 화폐자본의 역할이다. 1권과 달리 2권에서 화폐자본은 독자성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무리 없이 계속하기 위해서 일정한 화폐자본이 쌓여 있어야 한다. 이른바 ꡐ흑자 도산ꡑ이라든가 ꡐ유동성 부족ꡑ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화폐자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 3편의 과제

 

하지만 2편에서도 하나의 개별자본에 대해서만 분석을 한 것이고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회전체의 자본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살펴보지 않았다. 3편은 바로 이를 연구하기 위한 것이고 2권의 핵심이다. 우리는 앞서 각각의 개별자본들이 서로 얽혀 움직인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는 밝히지 않았다. 3편에서는 이를 설명하며 더불어 자본을 형성하지 않는 상품유통도 포함해서 사회의 총자본의 총유통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다.


□ 화폐자본

 

2절은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이므로 교재를 참조하면 된다. 그러나 화폐자본이 필요한 두 가지 요인에 대해서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먼저 화폐는 개별자본이 생산자본으로 바뀌기 위해 취해야 하는 형태이다. 따라서 상품생산사회에서,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꼭 필요한 형태이다. 상품생산과 화폐자본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다음으로 화폐자본의 필요량은 생산기간이 늘어나면서 꼭 필요해진다. 노동력과 생산수단을 이용해 생산물을 생산한 다음 이것이 다시 생산에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면 화폐자본으로 생산수단과 노동력을 구입해야 생산을 끊어지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회전기간이 짧아지면 같은 크기의 자본으로 더 큰 규모의 생산을 할 수 있다. 여기에 신용이 발달한다면 화폐자본의 양이 줄어도 생산규모를 늘릴 수 있게 된다. 또 하나 화폐자본의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집중되어 있으면 생산규모를 늘릴 수 있다는 것도 아울러 지적해 둔다.


□ 사회적 총자본에 대한 맑스 이전의 학설

 

맑스는 19장에서 이전의 학설들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 먼저 케네를 대표로 하는 중농학파의 학설을 살펴본다.
맑스는 케네가 생산기간의 출발점을 ꡐ전년도의 수확ꡑ이라 본 점, 무수한 개별 유통행위들을 사회적인 총량운동으로 총괄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물론 연간생산물의 불변자본부분에 필요 없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나 케네가 농업부문만을 고려했기 때문에 그리 큰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농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파악했다고 맑스는 지적한다. 맑스가 주의를 기울인 것은 아담 스미스의 학설이다. 평생에 걸쳐 스미스와 리카도를 ꡐ상대할만한 논적ꡑ으로 보았던 맑스였지만 재생산과정 분석에서는 스미스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스미스가 한 나라 국민들의 소득을 말할 때 불변자본을 총생산물에서 제외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과정에 대한 해명이 자본주의에서 국민소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자본이 임금, 이윤, 지대로 나뉘므로 한 나라의 총생산물에서 자본을 제외한다. 그러나 사회의 총소득에는 자본을 포함하고 있다. 맑스는 이에 대해 생산물 속에 자본이 없다면 소득 속에는 왜 포함되느냐고 묻는다.
또한 스미스는 개인적 소비와 생산적 소비를 혼동했다. 물론 스미스는 이에 대한 초보적인 관념은 가지고 있었으나 당시 사회 상태가 이를 분명히 구분할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맑스가 스미스를 ꡐ매뉴팩처 시대의 경제학자ꡑ라 한 것은 이런 이유가 있다.
3절에서 살펴보는 스미스 이후의 경제학자들에 대해서 맑스는 이들이 스미스를 넘어설만한 독창성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스미스가 달성한 위치까지도 오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다만 람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진보를 인정하고 있다.


■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 460쪽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저널리스트이다. 1809년 브장송에서 태어났다. 그의 사상은 정부 없는 사회, 상호부조주의, 중앙집권 반대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프루동 스스로는 자기의 사상체계를 정립한 적이 없다.
1848년 혁명 때는 파리에서 무정부주의 신문인 <인민의 대표자>를 발행하였으며 제2공화정의 제헌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 뒤 인민은행 설립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나폴레옹 3세의 독재를 비판하다가 감옥에 가기도 했다.
푸르동은 소유란 무엇인가 (1840)를 통해서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고 그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을 시작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ꡐ노예제가 살인인 것과 마찬가지로 소유란 도적질ꡑ이라고 하였다. 또한 프랑스 혁명과정에서 제기된 자유․평등의 원리는 헌법과 정치의 추상원리에 지나지 않으므로, 지배의 내용만 바뀌었을 뿐 지배 자체를 폐지하지 못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바쿠닌이 ꡒ프루동은 우리 모두의 스승ꡓ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사상은 국제노동자협회(1인터내셔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후 무정부주의 이론의 기초가 되었으며 러시아의 인민주의, 이탈리아 급진민족주의, 스페인의 연방주의, 프랑스 생디칼리즘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1920년대 초까지 프루동은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급진주의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1865년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대하여>를 남기고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교재 2권>
제 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제 20장 단순재생산
제 21장 축적과 확대재생산


□ 단순재생산

 

개별자본들은 사회적 총자본의 조각이면서 총자본의 움직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리이다. 사회적 자본이 해마다 제공하는 상품생산물을 살펴보면 ①사회적 자본 재생산의 진행과정, ②총자본의 재생산과 개별자본 재생산의 다른 점과 공통점을 알 수 있다.
맑스는 2권에서 사회의 총생산은 두 부문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Ⅰ부문은 사회적 재생산을 위해 자본을 보전(補塡)하는 부분이고, Ⅱ부문은 소비재원으로 들어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 계급을 유지하는데 쓰인다.
다음으로 맑스는 상품자본의 유통 즉, C′ + M C … C′를 분석한다.
상품자본의 유통을 분석하는 이유는 소비가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품자본의 운동에서는 Ⅰ부문과 Ⅱ부문에 들어가는 소비가 잘 보이나 화폐자본의 순환이나 생산자본의 순환에서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단순재생산표식을 예를 통해 보도록 하자. 여기서 잉여가치율 s/v는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100%라고 가정한다.


Ⅰ부문 4000c + 1000v + 1000s = 6000
Ⅱ부문 2000c + 500v + 500s = 3000

여기서 부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교재 469쪽에 세 가지로 나누어 잘 정리하고 있으므로 교재를 참조하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3절 두 부문 사이의 교환이다. Ⅰ(v+s)=Ⅱc가 단순 재생산의 조건이라는 것은 2권 연재 시작할 때도 강조한 바가 있다. 교재의 예에서 단순재생산의 조건이 뜻하는 바는 Ⅰ부분에서 1000을 가변자본(v)에 투자하여 잉여가치(s) 1000을 얻어 이것이 Ⅱ부문에 생산수단 2000으로 투입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은 화폐가 매개물로 작용한다. 아울러 4절에서는 Ⅱ부문에서 생활필수품과 사치품사이의 교환을 살펴보고 있다. 여기서 이른바 ꡐ소비부족ꡑ에 따른 공황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맑스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훗날 충실한 맑스주의자 였던 독일의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른바 ꡐ과소소비설ꡑ로 알려진 공황론에 대해 깊이 연구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5절에서는 3절과 4절의 논의를 총괄하고 있다. 6절에서는 부문 Ⅰ의 불변자본을, 7절에서는 두 부문의 가변자본과 잉여가치를, 8절에서는 두 부분의 불변자본을 살펴본다. 앞 절의 내용들을 각각의 측면에서 다시 한 번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므로 5절까지 잘 읽어두면 어려움은 없다. 다만 7절에서 해마다 생산되는 소비수단의 총가치가 Ⅰ(v+s)+Ⅱ(v+s)인데 이를 단순재생산의 조건과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9절~13절은 보론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단순재생산의 목적은 소비이다. 개별 자본가들은 잉여가치가 생산을 추진하는 동기이기는 하지만 이 잉여가치도 결국 자본가들의 소비에 쓰이게 되므로 소비가 중요해 보인다. 이러다 보니 단순재생산에서는 자본가가 ꡐ소비자ꡑ로서 나타나게 된다.


□ 축적과 확대재생산

 

우리는 이미 1권에서 축적에 따른 확대재생산을 살펴본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개별자본가의 수준에서 살펴본 것이었고 따라서 유통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2권에서는 '유통'에 중심을 두고 자본 축적이 확대재생산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주어져야 하는가를 살펴본다.
자본이 축적되어 확대재생산으로 되기 위해서는 상품자본이 화폐로 바뀌어 생산과정에 재투자되어야 한다. 화폐로 바뀌었다고 무조건 확대재생산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몇 번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개별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연구하는 것이므로 맑스는 여기서 Ⅰ부문과 Ⅱ부문으로 축적을 나누어 연구하고 있다.
먼저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 생산되어 화폐로 바뀐 다음 이 화폐가 유통에서 빠져 나와 어느 정도 규모를 이룰 때까지 유통과 관계없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여러 개별 자본이 서로 생산물을 구매할 경우 구매한 것 이상을 어떻게 팔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이는 생산확대가 시간의 차이를 두고 일어난 다는 것으로 해결된다.
확대재생산을 위한 조건은 Ⅰ(v+s) > Ⅱc이다. Ⅰ부문에서 추가로 조성된 자본은 Ⅱ부문에 추가로 불변자본을 공급한다. 이렇게 되면 Ⅱ부문에서는 과잉생산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과잉생산은 Ⅰ부문에서 늘어난 생산만큼만 과잉생산 된다. 아울러 이는 Ⅰ부문에서 생산요소의 구성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온다. 3절에서는 이를 수치 예를 들어 살펴보고 있다. 산수계산인 듯 하지만 한 눈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주의를 기울여 읽어두어야 한다.


□ 2권 정리

 

1권을 끝마칠 때도 뭔가 빈자리를 느꼈지만, 2권은 뭔가 중요한 것을 처리하지 않고 마무리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음 호에 한 번 더 길게 정리하는 글을 써 볼까하는 생각도 했지만, 오히려 연재가 늘어질 것 같아 이번에 간단하게 정리하기로 했다. 그리고 33호에서 수치예를 모아서 정리하겠다는 약속은 3권을 연재할 때 비교하면서 정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뺐다. 독자들의 양해를 부탁드린다.
우리는 10번의 연재를 통해 「자본」 2권 세 편, 즉 1편 자본의 형태변화와 그들의 순환, 2편 자본의 회전, 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을 모두 살펴보았다. 2권은 ꡐ자본이 움직이면서 취하는 여러 형태와 그것이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한 분석ꡑ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2권의 분석대상은 자본이 순환하고 회전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ꡐ재생산의 조건ꡑ이며 더불어 1권이 개별 자본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2권에서는 사회적 총자본으로 논의를 확대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통과정만을 생산과정에서 떼내어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까지 포함하는 자본의 형태변화 운동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결국 2권은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전제 아래 자본의 유통과정과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를 순수한 형태로 살펴보는 것이 중심과제였던 셈이다.
자본 연재는 잠깐 쉬었다가 전당대회 이후 나오는 신문부터는 3권을 연재할 예정이다. 1권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


■ 맑스와 「자본」 2권

「자본」 자체가 많은 논쟁을 낳았지만 2권 3편과 3권 1편은 특히 많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2권을 연재할 때 이런 논쟁들은 소개하지 않았다. 이는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맑스가 원하지 않았든, 원했든 간에 정치가 맑스는 푸리에나 생시몽주의자를 제압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맑스에게 묵직한 부담을 안겨주었던 정적은 라쌀레와 바쿠닌이었다. 2권을 쓰던 때에 맑스는 집산주의이자 무정부주의자였던 바쿠닌에 반대해 싸웠기 때문에 시장이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리고 이는 1권의 수준과 다른 가치론이 나타났다. 따라서 1권과 일치하지 않는 논의도 많고 자체로도 많은 결함이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얘기들은 지금 할 이야기들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에서 가장 잘못된 풍토가 저작 자체보다 논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3권까지 연재가 끝난 뒤 좀 더 수준을 높여 「자본」을 둘러싼 논쟁까지 포함한 연재를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 때까지는 반복해서 당부해 두지만 교재의 내용을 충실하게 읽어주기 바란다.
참고로, 현대의 시장사회주의자들은 주로 2권에 의지하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장사회주의」라는 잡지를 내는 비숍이 시장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교재 3권, 3쪽~26쪽>
제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서문


□ 3권 연재에 들어가며


ꡐ드디어ꡑ 자본 3권 연재에 들어간다. 엥겔스 말대로 자본은 3권까지로 ꡐ이론부분을 종결짓는ꡑ다.
자본 3권의 제목은 ꡐ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ꡑ이다. 우리는 1권에서 ꡐ자본의 생산과정ꡑ을 살펴보았고, 2권에서는 ꡐ자본의 유통과정ꡑ을 아울러 보았다. 맑스는 {자본} 1권에서 자본주의 생산과정을 직접 연구대상으로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모든 영향들을 제거한 채 자본이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연구하였다. 맑스 말대로 ꡐ경제문제에 적용된 적이 없는ꡑ 철학적인 방법으로 경제문제를 살펴본 셈이다.
2권에 들어서면서 1권에서 제외했던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현실 세계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특히 우리가 2권 마지막에 살펴보았던 3편 ꡐ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ꡑ에서는 유통과정이 어떻게 사회적 재생산과정의 매개로 작용하는가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맑스는 자본주의 생산과정은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이 통일되어 있다고 밝힌다. 이렇게 되면 3권을 굳이 서술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 3권의 과제는 무엇인가?
3권은 1권과 2권의 분석을 전제로 하여 자본의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을 포함하는 ꡐ자본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총과정ꡑ을 밝히고, 그리하여 자본이 현실에서 보이는 ꡐ구체적인 형태ꡑ들을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3권은 자본의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이 단순하게 통일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2권보다 더 현실적인 분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3권에서는 자본의 경쟁을 다루기도 하고 이것이 어떻게 사회적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도 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암시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둘러싼 사람들이 어떤 의식을 갖게 되는가를 연구한다.
그런데 내용이 구체적인 만큼 자본 3권에 대한 논쟁은 많다. ꡐ전형문제ꡑ와 ꡐ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ꡑ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연재에서는 자본 에 써있는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는데 주력할 것이다. 1, 2권 연재할 때도 여러 번 말했지만 교재를 잘 읽어주었으면 한다. 정 교재가 어려우면 아주 초보적인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 대한 책을 옆에 두고 읽어도 좋다. 여러 권을 읽을 필요는 없고 자기에게 맞는 책 한 권이면 된다. 또 하나, 3권에서는 2권보다 수치와 표가 많이 나오므로 연습장으로 쓸 노트 하나를 마련하기 바란다. 비록 산수계산에 지나지 않지만 눈으로 단숨에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 3권 내용 개괄

 

자본 3권은 엥겔스가 예상한 것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1894년에 출판되었다. 이렇게 된 사정에 대해서는 엥겔스가 서문에 길게 서술하고 있으므로 교재를 참조하면 될 것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3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먼저 3권의 목차를 한 번 살펴보자.

지나치게 반복하는 것 같아 조금 껄끄럽지만, 우리는 1권에서 자본가들의 목적은 상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잉여가치를 얻는 것이므로 생산과정에서 어떻게 잉여가치가 생산되는가를 보았다. 또한 2권에서는 만들어진 상품의 판매경로와 그 과정에서 상품 안에 있는 잉여가치가 어떻게 실현되어 자본가에게 되돌아오는지를 분석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3권에서는 물건이 팔려 잉여가치가 화폐형태로 자본가에게 돌아온 뒤, 이 잉여가치가 생산과정에 연관된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누어지느냐를 분석한다.


이를 위해 1편과 2편에서는 그 동안 써왔던 가치를 가격으로, 잉여가치를 이윤으로 바꾸어 설명하는데 이것이 가능한 문제인가를 둘러싸고 진행된 것이 바로 ꡐ전형논쟁ꡑ이다. 3편에서는 맑스는 이윤율을 개념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변수로 잉여가치율(잉여가치/가변자본)과 자본의 유기적구성(불변자본/가변자본)을 들고, 여기에서 잉여가치율이 정해져 있으며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 됨에 따라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둘러싼 논쟁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잉여가치율이 일정한 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반드시 고도화되는 지에 대한 검토를 통해 여러 가지 상반된 의견들이 제출되었다. 4편에서는 상품자본을 상품거래자본으로, 화폐자본을 화폐거래자본으로 바꾸어 부르면서 현실사회와 아주 가까워진다. 5편~7편에서는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가 어떤 과정으로 여러 계급과 분파에게 나누어지는지를 살펴본다. 부르주아 경제학에서는 자본은 원래 이윤 또는 이자를 낳으며, 토지는 비옥도에 따라 지대가 생기고, 노동에는 임금이 돌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맑스는 이는 모두 노동자의 잉여노동이 여러 형태로 나타난 것일 뿐 다른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 서문 해설

 

3권의 서문은 그리 어려운 내용이 없다. 엥겔스는 2권과 마찬가지로 저자가 없는 상태에서 저자의 ꡐ정신에 충실ꡑ하게 책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길게 서술하고 있다. 다만 2권보다 원고 상태가 더 나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앞서보다 어려움이 더 컸다고 토로하고 있다. 엥겔스는 먼저 원고 전체를 읽기 쉬운 복사본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덧붙인다.
서문의 뒷부분에서는 렉시스, 슈미트, 파이어맨, 볼프, 로리아가 자본 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이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지적하고 있다. 엥겔스가 예로 든 사람들은 현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지만 내용은 지금도 반복되는 것이므로 주의를 기울여 읽어두어야 한다.


■ 전형논쟁

스미스와 리카도가 ꡐ변하지 않는ꡑ 가치척도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하여 경제학의 체계를 세웠다면, 맑스는 노동의 이중성, 사회적 필요노동의 개념을 도입하고 노동과 노동력,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구분을 통해 당시 정치경제학 전반에 대해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맑스가 한 일은 새로운 가치이론을 세운 것이 아니라 당시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을 극점까지 밀고가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준 것이다.
한편, 맑스는 상품가격을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필요노동량에 따라 측정되는 가치라고 하였는데, 실제 시장에서 가격을 좌우하는 것은 생산가격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본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들이 서로 경쟁하기 때문에 평균이윤율의 원리가 작용하고 따라서, 가치는 생산가격으로 전형(trans-formation)된 뒤에야 가격을 좌우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맑스는 3권 1편에서 총계일치의 명제로 불리는 명제를 정식화하였다. 그 내용은 ꡐ총가치(가치의 합계)=총생산가격(생산가격의 합계)이고, 총잉여가치(잉여가치의 합계)=총이윤(이윤의 합계)ꡑ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가치를 가격으로, 잉여가치를 이윤으로 바꾸어 써도 된다고 하였다. 매우 간단할 것 같은 이 얘기가 오랜 기간 동안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이를 ꡐ전형논쟁ꡑ이라 한다. 뵘바베르크는 시간의 단위로 표현되는 ꡐ가치ꡑ와 화폐로 표시되는 ꡐ이윤ꡑ을 어떻게 결합시킬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자본 은 기괴한 책이라고 비난하였다. 한편, 캠브리지 학파의 조안 로빈슨 여사는 전형문제에서 맑스의 견해를 옹호하였다.

 


<교재 3권, 27쪽~164쪽>
제 1편 잉여가치의 이윤으로의 전환과 잉여가치율의 이윤율로의 전환
제 1장 비용가격과 이윤
제 2장 이윤율
제 3장 이윤율과 잉여가치율 사이의 관계
제 4장 회전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
제 5장 불변자본의 사용상의 절약
제 6장 가격변동의 영향
제 7장 보충설명


□ 3권 연재에 들어가며

 

3권은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번호부터 매회 1편씩 대략 7번에 걸쳐 연재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진도를 따라온 독자들은 각 편의 분량이 만만치 않아 매주 이를 소화하는 것이 벅차리라 생각하는데, 경우에 따라 호흡을 늘릴 수도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편에서는 이윤과 잉여가치가 형태만 상이할 뿐 숫적으로는 동등하다고 간주된 상태에서 논의가 전개된다. 그러나 다음 제2편에서는 이윤이 숫적으로도 잉여가치와 상이하게 되는 잉여가치의 외면화의 진전을 살피게 된다.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 비용가격과 이윤, 이윤율

 

자본가에게 상품의 비용가격이란 상품가치 중에서 소비된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격을 보전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비용가격의 외관상의 형성에서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 사이의 차이가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생산과정 중에 발생하는 가치변화의 원천은 가변자본부분으로부터 총자본으로 옮겨지는 듯이 보인다. 즉, 이 비용가격이란 개념은 가치의 형성이나 증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한 가치증식과정에서는 총자본의 일부가 들어가지만, 노동과정에서는 총자본이 소재적으로 들어가는데, 이로 인해 총자본은 잉여가치의 형성에 그 전체가 기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결국 잉여가치가 투하자본의 모든 부분들로부터 동시에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처럼 잉여가치가 총투하자본의 산물이라고 보여질 때 잉여가치는 이윤이라는 신비화된 외관을 띠고 자본관계는 은폐된다.
따라서 상품가치 c+(v+s)는 이제 (c+v)+s, 즉 비용가격(k)+이윤(p)으로 현상하게 된다.
여기서 자본가는 이윤의 현실적 크기가 가변자본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총자본에 비례한다고 믿으며, 이것을 자본운동 자체가 창조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는 또한 직접적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품가치의 초과분이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이 초과가치분의 실현이 현실적 경쟁 하에서는 시장상황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잉여가치는 상품의 비용가격을 넘는 판매가격 초과분으로 나타난다.
한편 총투하자본을 C, 이를 넘는 초과분을 s라 할 때 잉여가치율(s/v)과 구별되는 이윤율 s/C=s/(c+v), 즉 총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이 얻어진다.

 


□ 이윤율과 잉여가치율 사이의 관계

 

s‘이 잉여가치율(s/v)이라 할 때, s=s’v이다. 따라서 이윤율(pꡑ)은 s‘v/C=s’v/(c+v)로 표현된다. 즉, 이윤율은 잉여가치율과 자본의 가치구성에 의해 규정된다.
s‘과 p’ 사이의 관계를 고찰할 때 우선 화폐가치, 노동생산성, 노동일, 노동강도, 임금은 불변이라고 가정하고 회전의 요인은 무시한 다음, s‘v/C 각각의 요인을 변화시키며 이것이 이윤율에 미치는 영향을 차례로 살펴보자.(교재 3권 59~76쪽)
그 결과 이윤율의 상승, 하락, 불변 모두가 불변의 잉여가치율에 대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율의 상승 또는 하락에도 대응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회전의 요인을 고려하면, 회전기간의 단축은 교재 2권에서 보았듯이 잉여가치량을 증가시켜 이윤율의 상승을 불러온다. 따라서 연간 회전수를 n이라고 할 때 연간 잉여가치율은 s‘n이고, 연간 이윤율은 s’nv/C이 된다.


□ 불변자본 사용의 절약

 

가변자본이 불변이고 동일한 수의 노동자가 동일 명목임금으로 고용되고 있는 경우, 노동일 연장과 같은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대는 불변자본의 가치를 총자본과 가변자본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저하시키며 이에 따라 이윤율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노동일이 불변이라면, 잉여가치 증대에는 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생산조건의 가치증대, 즉 불변자본의 증대가 수반된다. 따라서 이윤율은 한편으로는 상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하한다. 그런데 잉여가치가 주어져 있다면, 상품 생산에 필요한 불변자본의 가치를 감축함으로써만 이윤율을 상승시킬 수 있다.
이러한 불변자본 가치의 감축의 한 형태는 불변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의 절약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는 한 산업분야의 이윤율 상승이 다른 산업분야의 노동생산성 발전에 의존하는데, 이는 자본가가 사회적 분업의 체제 전체에서 나오는 이익을 이용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또 하나의 형태는 불변자본 그것의 사용을 절약하는 것인데, 이는 주어진 생산규모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운영하여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적대적 성격은 이러한 불변자본 사용의 절약, 즉 노동자 자신의 생존조건과 생활조건으로 나타나는 생산조건들의 절약을 통해 노동자를 희생시키고 있다.


□ 가격변동의 영향


원료가격의 변동으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변화들은 비록 그것들이 임금이나 잉여가치율, 잉여가치량을 전혀 변경시키지 않더라도 이윤율에는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 기타의 사정이 불변이라면, 이윤율은 원료의 가격과 반대 방향으로 상승하거나 저하한다.
그런데 이는 새로이 투하되는 자본에는 전적으로 타당하지만, 이미 기능하고 있는 자본의 경우에는 다르다. 즉, 투하자본의 가치감소로부터 생기는 이윤율 상승은 자본가치의 손실과 결부될 수 있고, 투하자본의 가치증가로부터 생기는 이윤율의 저하는 자본가치의 증대와 결부될 수 있다.
한편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은 그 요소들의 가치증감의 결과로 자본의 구속이나 유리를 가져온다. 불변자본의 경우 가치증감이 없다면, 자본의 구속은 노동생산력이 증가하는 경우에, 자본의 유리는 보다 작은 가치의 불변자본이 이전 불변자본의 역할을 기술적으로 수행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가변자본의 경우 임금률이 불변이라도 생산력 발전에 따라 노동자의 수가 감소하면 가변자본은 유리된다. 그러나 이것이 동일 자본의 가치구성만 변화시킬 경우는 자본의 유리나 구속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가격변동의 영향에 대한 일반적 예증으로 1861~65년의 면화기근을 살펴볼 수 있다.(교재 3권 143~159쪽)


■ 추상에서 구체로

『자본』 3권은 전체로서 본 자본의 운동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체적 형태들을 발견하고 서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품의 분석이라는 추상에서부터의 긴 여정이 이제 구체로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맑스는 1857년 8월에 집필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 서설」에서 이미 그가 연구하고자 하는 정치경제학의 방법에 관한 사고를 근본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는 ꡒ추상적 규정들이 사유의 경로를 통해 구체적인 것의 재생산ꡓ에 이르는 방법만이 과학적으로 올바르다고 한다. 헤겔도 이러한 방식을 이용하긴 하지만 그는 ꡒ현실적인 것을 자체 속에서 총괄되고, 자체 속으로 침잠하며, 자체로부터 운동해 나오는 사유의 산물로 파악하려는 환상에 빠ꡓ졌다고 맑스는 비판한다. 반면 그 자신의 방법은 ꡒ사유가 구체적인 것을 점취(占取)하고, 이를 정신적으로 구체적인 것으로 재생산하는 방식ꡓ일 뿐이며, ꡒ결코 구체적인 것의 생성 과정 자체는 아니다ꡓ라고 말한다.
한편 우리에게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식적인 과학관은 ꡐ귀납주의ꡑ인데, 이는 과학이 경험적 사실 그 자체로부터 도출된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ꡐ구체에서 추상으로ꡑ 나아가는 것이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관념은 대개의 과학철학 개론서 초입부터 여지없이 무너진다. 여기서 자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나는 현대의 과학철학에서의 연구 성과 또한 맑스의 방법론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교재 3권, 165쪽~247쪽>
제 2편 이윤의 평균이윤으로의 전환
제 8장 상이한 생산부문들에서 상이한 자본구성과 이로부터 나오는 이윤율의 차이
제 9장 일반적 이윤율(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상품가치가 생산가격으로 전형
제 10장 경쟁에 의한 일반적 이윤율의 균등화. 시장가격과 시장가치. 초과이윤
제 11장 임금의 일반적 변동이 생산가격에 미치는 영향
제 12장 보충설명

 

□ 상이한 자본구성과 이윤율의 차이


전편에서 본 바와 같이 노동착취도가 불변이라면, 불변자본 구성부분들의 가치변동이나 자본의 회전기간의 변동은 이윤율을 변동시킨다. 따라서 동시에 병존하는 상이한 생산부문들의 이윤율은 투하자본들의 유기적 구성이 상이하거나 회전기간이 상이하다면, 상이해질 것임이 명백하다. 그러나 불변자본을 구성하는 유동자본과 고정자본의 구성비율이 각각의 생산분야에서 상이하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는 이윤율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 상이한 생산분야에 투하된 동일한 규모의 자본들은 생산된 가치와 잉여가치가 아무리 상이하더라도 동일한 비용가격을 가진다. 이처럼 비용가격이 동일하다는 것이 자본투자들 사이의 경쟁의 기초를 이루며 이 경쟁에 의해 평균이윤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는 상이한 생산분야들 사이에 평균이윤율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데, 이리하여 가치론은 현실의 운동과 일치하지 않는 듯한 외관을 띤다.


□ 일반적 이윤율(평균이윤율)과 생산가격


상이한 생산분야의 상이한 이윤율이 평균되고, 이 평균이 각각의 생산분야의 비용가격에 첨가됨으로써 성립하는 가격이 바로 생산가격이다. 이러한 생산가격의 전제는 일반적 이윤율의 존재이며, 이 일반적 이윤율은 각각의 생산분야의 이윤율들이 이미 그들의 평균율로 환원되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일반적 이윤율에 따라 주어진 크기의 자본에 귀속하는 이윤을 평균이윤이라고 부른다.
즉, 상품의 생산가격은 ꡐ비용가격+평균이윤'과 같다. 따라서 생산가격은 상품의 가치로부터 괴리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괴리는 평균이윤이 잉여가치와 틀리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생산가격이 다른 상품의 비용가격에 하나의 요소로 들어감으로 그 상품의 비용가격은 그 상품을 위해 소비된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가치로부터 이미 괴리한다는 점 때문에 발생한다.
이제 상이한 생산분야의 자본가들이 취득하는 것은 모든 생산분야의 사회적 총자본이 일정한 기간에 생산한 사회적 총잉여가치(또는 총이윤)로부터 균등한 분배에 의해 사회적 총자본의 각각의 구성부분들에게 할당되는 잉여가치(또는 이윤)이다.
이는 각각의 개별자본가들이 총자본에 의한 총노동자계급의 착취에 참가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일반적인 계급적 공감뿐만 아니라 평균이윤율이 총자본에 의한 총노동의 착취 수준에 의존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경제적 의미에서 이러한 착취에 참가하는 것이다. 각각의 상이한 자본가들은 마치 주식회사의 주주와 같은 입장에 있다.
그리고 각각의 생산분야에서의 이윤과 잉여가치 사이의 이러한 현실적인 양적 차이는 비로소 이윤의 진정한 성질과 원천을 완전히 은폐시킨다. 그러나 상품의 총가치는 총잉여가치를 규제하고, 총잉여가치는 평균이윤과 일반적 이윤율의 크기를 규제하기 때문에 가치법칙은 (생산)가격을 규제하면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한편 특정한 생산분야의 상품의 생산가격이 변하는 경우는 상품의 가치가 불변일 때 일반적 이윤율이 변동한 결과이거나 일반적 이윤율이 불변일 때 불변자본의 형성요소인 상품들의 가치가 변동할 때, 혹은 이 두 사정들이 함께 작용할 때이다.


□ 경쟁. 시장가격과 시장가치


시장가치는 한편에서는 특정의 생산분야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의 평균가치로 간주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 분야의 평균적 조건 아래에서 생산되며 그 분야의 상품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품의 개별가치로 간주된다. 즉, 시장가치는 평균적 조건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의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
그리고 시장가치는 수요와 공급의 사정에 의해 시장가격과는 괴리되지만, 시장가격이 진동하는 중심을 규제한다. 즉, 시장가치로부터 괴리하는 시장가격들은 그 평균치에서는 시장가치와 균등하게 된다. 여기서 시장가격이 실제 의미하는 것은 동종의 모든 상품들에게는 동일한 가격이 지불된다는 것이다.
만약 평균가치에 의한 상품의 공급이 일상적인 수요를 충족시킨다면 시장가치보다 낮은 개별가치를 가진 상품들은 특별잉여가치 또는 초과이윤을 실현할 것이고, 시장가치보다 높은 개별가치를 가진 상품들은 그들 자신이 포함하고 있는 잉여가치의 일부를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상이한 이윤율들이 어떻게 일반적 이윤율로 균등화되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즉, 상품들이 단순히 상품으로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생산물로서 교환되며 자본은 잉여가치 총량으로부터 자신의 크기에 비례하여 일정한 몫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경쟁의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
경쟁이 우선 하나의 생산분야에서 달성하는 것은 상품이 다양한 개별가치로부터 단일의 시장가치와 시장가격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상이한 생산분야들 사이에서 이윤율을 균등화시키는 생산가격이 성립되는 것은 상이한 분야들 사이에서의 자본의 경쟁에 의해서이다.
이 과정을 살펴보자. 이윤율이 이 분야에서는 하락하고 저 분야에서는 상승하는 것에 대응하여 자본은 끊임없이 이동하는데, 이에 따라 수요와 공급 사이의 비율이 변동한다. 이를 통해 결국은 상이한 생산분야들에서 평균이윤이 동일하게 되고 이에 따라 가치가 생산가격으로 전형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끊임없는 균등화는 자본의 이동능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노동력의 이동이 빠르면 빠를수록 더욱 빨리 달성된다.


□ 임금의 일반적 변동과 생산가격


임금의 일반적 상승은 기타의 모든 조건들이 불변이라면 잉여가치율의 하락을 의미한다. 이때 임금의 상승은 이윤의 감소를 수반하지만, 상품의 가치나 생산가격을 변동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본의 구성에 따라 임금 상승의 결과는 상이하다. 우선 사회적 평균구성의 자본의 경우 상품의 생산가격은 불변이고, 보다 낮은 구성의 자본의 경우 생산가격은 이윤의 감소와 동일한 비율은 아니지만 상승하며, 보다 높은 구성의 자본의 경우 생산가격은 이윤의 감소와 동일한 비율은 아니지만 하락한다.
반대로 임금의 일반적 하락은 잉여가치와 잉여가치율의 일반적 상승 그리고 이윤율의 일반적 상승을 야기한다. 또한 임금 하락은 평균구성보다 낮은 자본의 상품 생산물의 생산가격을 하락시키며, 평균구성보다 높은 자본의 상품 생산물의 생산가격을 상승시킨다.


■ 진입장벽 (entry barrier)
생산가격은 각각의 생산분야에서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운 매우 이상적인 상태에서만 시장가치와 같아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즉 개별 생산분야 간에 진입 및 탈퇴가 자유롭지 못한 경우에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생산가격이 시장가치와 일치하기 위해서는 진입장벽이 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경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는 정도가 큰 생산분야에서는 시장가치가 생산가격보다 높을 수 있고,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발전의 속도가 빠른 분야에서는 시장가치가 생산가격보다 낮을 수 있다.


■ 국제적 부등가교환
평균이윤의 형성과정에서 평균구성을 지닌 생산분야를 제외하고는 평균구성보다 낮은 구성의 생산분야로부터 평균구성보다 높은 생산분야로 가치의 이전이 발생한다. 물론 자본가들이 이를 의식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기계화의 진전 등을 통해 자본의 구성을 높이는 것이 실제로 생산한 가치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비결이 된다.
동일한 상품이 선진국과 후진국에서 동시에 생산되어 교역되는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비슷한 종류의 자동차가 선진국에서는 높은 구성의 자본에 의해 생산되고 후진국에서는 낮은 구성의 자본에 의해 생산된다면, 선진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는 그 가치보다 높은 생산가격으로 팔릴 것이고 후진국의 자동차는 그 반대이다. 따라서 후진국의 자동차산업으로부터 발생하는 잉여의 일부가 선진국 자동차산업으로 이전되는 일이 생겨난다. 이러한 현상을 '국제적 부등가 교환'이라고 부른다.

 


<교재 3권, 249쪽~317쪽>
제3편 이윤율의 저하경향의 법칙
제 13장 법칙 그 자체
제 14장 상쇄요인들
제 15장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 법칙 그 자체

 

그 사회의 총자본의 평균적 유기적 구성이 변화한다면, 가변자본에 대비한 불변자본의 이러한 점차적 증가는 잉여가치율 또는 자본의 노동착취도가 불변이라면 필연적으로 일반적 이윤율의 점차적인 저하를 초래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반적 이윤율의 점진적인 저하경향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점진적 발달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법칙은 사회적 자본 혹은 개별 자본가에 의해 가동되고 착취되는 노동의 절대량과 잉여노동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을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윤율의 저하와 절대적 이윤량의 증대는 동시에 발생하는 이중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사회적 자본의 크기가 가변자본 부분의 감소에 반비례하여 증대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윤율이 저하하더라도 이윤량이 불변이기 위해서는 총자본의 증가비가 이윤율 감소비의 역과 동등하여야 하고, 이윤의 절대량이 끊임없이 증대되려면 총자본의 증가가 이윤율의 저하보다 더욱 급속히 진행되어야 한다.
노동생산력의 발달에 의해 야기되는 이윤율의 저하에는 이윤량의 증가가 동반한다는 이러한 법칙은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들의 가격 저하에는 이윤량의 상대적 증가가 동반한다는 것으로도 표현된다. 그리고 개별상품들의 가격이 하락한다는 것은 일정한 노동량이 보다 큰 상품량으로 실현되어 각각의 개별상품이 이전보다 적은 노동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상을 총괄하면 다음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노동생산력의 증대에 따라 개별상품의 가격은 하락하고 상품의 수량은 증가한다는 것, 그리고 개별상품의 이윤량과 상품총량에 대한 이윤율은 저하하지만 상품총량에 대한 이윤량은 증가한다는 것.

 

□ 상쇄요인들

 

그러나 이 법칙에는 상쇄요인들이 작용하여 그 효과를 억제하며, 그 법칙에 하나의 경향일 뿐이라는 성격을 부여한다. 이러한 상쇄요인들에는 노동착취도의 증대,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의 임금 인하, 불변자본 요소들의 저렴화, 상대적 과잉인구, 대외무역, 주식자본의 증가 등이 있다.
그런데 이들 요인 각각을 살펴보면, 일반적 이윤율의 저하를 초래하는 바로 그 원인들이 이 저하를 저지하고 연기시키며 부분적으로는 마비시키기까지도 하는 반대작용을 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반대작용은 그 법칙을 폐기시키지는 못하지만 그것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그 법칙은 단지 경향으로서 작용하며, 그것의 효과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장기에 걸쳐서만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 법칙의 내적 모순들의 전개

 

이윤율의 저하와 축적의 가속화는 양자 모두가 생산력의 발달을 표현하고 있는 한 동일한 과정의 상이한 표현에 불과한데, 이윤율의 저하는 결국 과잉생산과 투기 및 공황을 촉진하며 과잉인구와 과잉자본의 병존을 야기한다.
자본의 축적과정이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모순은 여러 상반되는 현상들로 나타난다. 이윤율의 저하와 동시에 자본량이 증대하고, 또 이것에 수반하여 기존자본의 가치감소가 진행되며, 이것이 다시 이윤율의 저하를 저지하고 자본가치의 축적을 촉진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라든지, 노동인구를 현실적으로 증가시키는 자극들이 존재함과 동시에 상대적 과잉인구를 창조하는 요인들이 있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그런데 이러한 상반되는 요인들이 충돌하는 것은 어떤 특정한 지점에서는 공황을 통해 그 출로를 찾는다. 공황이란 항상 기존 모순들의 일시적 폭력적 해결이며, 교란된 균형을 일시적으로 회복시키는 강력한 폭발에 다름 아니다. 또한 가치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생산력을 절대적으로 발달시키는 경향을 지니는데, 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들은 이윤율의 저하, 기존 자본의 가치감소, 그리고 이미 생산된 생산력을 희생으로 하는 노동생산력의 발달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자본의 과다는 언제나 기본적으로 이윤율의 저하를 이윤량에 의해 보상하지 못하는 자본의 과잉을 가리키거나, 또는 스스로 행동할 능력이 없어 신용의 형태로 대기업의 자본가들에게 그 처분이 위임되는 자본의 과잉을 가리킨다. 이러한 자본의 과다는 상대적 과잉인구를 낳는 바로 그 원인들로부터 발생하며 따라서 상대적 과잉인구를 보완하는 현상이다.
이 상대적 과잉인구는 과잉자본에 의해 사용되지 않는 노동자의 과잉인구인데, 이처럼 사용되지 않는 이유는 노동착취도가 낮아서 또는 적어도 주어진 착취도에서 얻는 이윤율이 낮기 때문이다.
한편 자본의 과잉생산이란 자본의 과잉축적에 다름 아닌데, 증가한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량이 증가 이전과 동일하거나 심지어는 보다 적은 경우에는, 자본의 절대적 과잉생산이 발생할 것이다.
이제 동일한 원인에서 발생하는 이윤율의 저하와 자본의 과잉생산 때문에 경쟁전이 시작된다. 가격의 저하와 경쟁전은 각각의 자본가에게 주어진 노동생산력을 증대시키고 불변자본에 대한 가변자본의 비율을 감소시키며 이리하여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인위적인 과잉인구를 창조하게끔 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한계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나타난다.
첫째, 노동생산력의 발달은 하나의 법칙으로서 이윤율의 저하를 내포하는데, 이 이윤율의 저하는 어느 일정한 점에서 생산력의 발달에 매우 적대적으로 대항하며 따라서 공황을 통해 끊임없이 해소되어야만 한다. 둘째, 생산의 확장 또는 축소를 규정하는 것은 생산과 사회적 필요 사이의 비율이 아니라, 이윤과 이윤율이다. 즉, 생산은 사회적 필요가 충족되는 수준에서 중단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의 생산과 실현이 규정하는 수준에서 중단된다.
이를 더욱 밀고 나가면,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즉, 자본과 자본의 자기증식이 생산의 출발점과 종점, 동기와 목적으로 나타난다는 점, 생산은 오직 자본을 위한 생산에 불과하며 따라서 생산수단이 생산자들의 사회적 생활과정을 끊임없이 확대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는 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 발달이라는 수단이 기존자본의 가치증식이라는 제한된 목적과 끊임없이 충돌하게 만든다. 이렇듯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은 생산력을 절대적으로 발달시키려는 이 생산양식의 경향 바로 그것에 있는데, 이 생산력의 발달은 이 생산양식의 특수한 생산조건과 끊임없이 충돌하게 된다.


■ꡐ보이지 않는 손ꡑ의 신화, 그리고 케인즈

1929년 가을 미국 월가의 금융공황으로 시작되어 전 산업 부문에 파급, 세계 자본주의를 뒤흔든 대공황은 이제까지의 주기적 공황과는 그 규모와 깊이가 달랐다. 공황의 결과는 비참한 것이었다. 1929~33년 사이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공업생산이 50%, 무역이 60%, 국민소득도 50%나 감퇴했고, 실업자는 3천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 대공황은 애덤 스미스를 시작으로 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변치 않는 신념이었던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를 무참히 깨뜨려버렸다. 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 가격이 조절되고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전반적인 과잉생산의 공황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론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자유 경제', ‘자유 방임주의'를 최선의 것으로 생각한 경제학자들은 결정타를 맞았다.
한편, 1930년대 전반기 영국에서는 하이에크와 케인즈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하이에크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확립하고 자유방임의 원칙에 따른 시장질서의 유지를 강조한 반면, 케인즈는 자유방임의 곤란함을 지적하고,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장했다. 이 논쟁은 케인즈가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출판하면서 막을 내렸다. 대공황이 수년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하이에크의 처방은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케인즈는 자본주의 경제를 그대로 두면 장기적으로 침체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정부가 과감히 개입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케인즈식의 처방은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 혹은 약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적 모순과 그 모순의 발현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는 그 이유를 이미 살펴보았다.

 


<교재 3권>
제 4편 상품자본과 화폐자본이 상품거래자본과 화폐거래자본(즉 상인 자본)으로 전환
제 16장 상품거래자본
제 17장 사업이윤
제 18장 상인자본의 회전. 가격
제 19장 화폐거래자본
제 20장 상인자본의 역사적 고찰

 

□ 상품거래자본

 

유통과정에 있는 자본의 기능이 특수한 자본의 특수한 기능으로서 독립되고 분업에 의하여 특수한 종류의 자본가의 기능으로 고정된다면, 상품자본은 상품거래자본(또는 상업자본)이 된다. 따라서 상품거래자본은 항상 시장에서 변태의 과정 중에 있으며 유통영역에 끊임없이 묶여 있는 유통자본의 일부가 전형된 것이다.
한편, 생산적 자본가에게는 C―M인 것이 상인에게는 M―C―M′, 즉 그가 투하한 화폐자본의 특수한 가치증식으로 나타난다. 상품변태의 한 단계가 상인에 대해서는 하나의 특수한 종류의 자본의 전개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상인에 의해 투하된 화폐자본의 유통속도는 생산과정이 갱신되는 속도와 상이한 생산과정들이 결합되는 속도, 그리고 소비의 속도에 의존한다. 또한 상업자본은 재생산과정이 빠르면 빠를수록,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이 발달하면 할수록(즉 신용제도가 발달하면 할수록), 총자본에 대한 비율에서는 점점 더 작아진다. 그런데 상업자본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가치도 잉여가치도 생산하지 않는다. 상업자본이 유통기간의 단축에 기여하는 한, 상업자본은 산업자본가가 생산하는 잉여가치의 증대에 간접적으로 공헌한다. 상업자본이 시장의 확대에 기여하고 자본들 사이의 분업을 촉진하며 이리하여 자본으로 하여금 보다 큰 규모로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한, 상업자본의 기능은 산업자본의 생산력과 축적을 촉진한다.


□ 상업이윤. 상업자본의 회전. 가격

 

산업자본의 유통단계도 재생산과정의 한 단계이므로, 유통과정에서 독립적으로 기능하는 상품거래자본도 각종 생산분야에서 기능하는 자본과 마찬가지로 연간평균이윤을 얻어야만 한다. 이 평균이윤의 형태로 상업자본에게 돌아가는 잉여가치는 생산자본 전체에 의해 생산된 잉여가치의 일부이다. 이제 평균이윤은 총생산자본과 상업자본의 합계에 대해서 계산되므로 그 크기가 감소한다. 그러나 상업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의 분업은 유통비용의 집중과 이에 따른 감축을 내포한다.
이제 총상품자본의 진정한 가치(또는 생산가격)는 k+p+m(m은 상업이윤)이 된다. 그리고 상품의 매매에 직접적으로 투하되는 자본을 B라 하고, 이 기능을 위해 사용되는 불변자본(물적 거래비용)을 K라 하고, 상인에 의해 투하되는 가변자본을 b라고 하면, 판매가격은 이제 B+K+b+(B+K)에 대한 이윤+b에 대한 이윤이 된다.
한편, 상업자본의 회전은 사실상 상품자본의 운동이 자립화한 것에 불과하므로, 상품변태의 제1국면 C―M을 하나의 특수한 자본의 자기환류운동으로서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상업자본은 분명히 생산자본의 회전을 촉진하지만, 이것은 다만 생산자본의 유통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이다. 상업자본은 생산기간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상업자본의 회전은 결국 개인적 소비 전체의 속도와 규모에 의해 제한된다.
그런데 총자본에 대비한 상업자본의 상대적 크기가 주어져 있다면, 각종의 상업분야들 사이의 회전의 차이는 상업자본에게 귀속하는 총이윤의 크기와 일반적 이윤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상인의 이윤은 이 회전을 매개하기 위하여 자기가 투하하는 화폐자본량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업자본의 회전수는 상품의 상업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상인에 의한 가격추가의 크기는 각각의 상업분야에 있는 상업자본의 회전수 또는 회전속도에 반비례한다.


□ 화폐거래자본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의 유통과정에서 화폐의 지불과 수납, 차액의 결제, 당좌계정의 기장, 화폐의 보관 등과 같은 화폐가 수행하는 순수기술적 운동이 어떤 특수한 자본의 기능으로 자립화하면, 이 자본은 화폐거래자본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순수한 형태의 화폐거래업은 상품유통의 하나의 계기인 화폐유통의 기술적 측면과, 이 화폐유통에서 발생하는 각종의 화폐기능에 관련하고 있을 뿐인데, 이 점이 화폐거래업을 상품거래업과 본질적으로 구별해준다. 즉, 상품거래자본은 M―C―M이라는 특수한 유통형태를 나타내지만, 화폐거래자본은 이러한 특수한 형태를 보일 수 없다.
한편, 이렇듯 화폐유통의 기술적 매개에 투하하는 화폐자본의 경우에도 M―M′이라는 자본의 일반공식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 M과 M′사이의 매개는 변태의 기술적 측면만을 내포할 뿐이다. 따라서 화폐거래업자의 이윤 또한 잉여가치로부터의 공제에 불과하다.


□ 상인자본의 역사적 고찰

 

상품과 화폐의 단순한 유통이 바로 상업자본의 존재조건이므로, 상인자본은 사실상 자본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게된 가장 오래된 역사적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전의 모든 생산양식에서 상업자본은 자본의 기능을 가장 잘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업자본의 존재와 그것의 일정한 정도까지의 발달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달을 위한 역사적 전제조건이었으며, 상업자본의 발달은 생산에 점점 더 교환가치를 위한 생산이라는 성격을 부여하여 생산물을 점점 더 상품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16, 17세기의 지리상의 발견들과 함께 상업에서 일어난 대혁명들은 봉건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촉진한 하나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봉건적 제한들을 타파하는 데 근본적으로 기여하긴 했지만, 근대적 생산양식의 제1시대인 매뉴팩쳐는 이것을 위한 조건들이 이미 중세에 창조되어 있었던 곳에서만 발달하였다. 이는 낡은 생산양식 대신에 어떠한 새로운 생산양식이 나타나는가는 상업에 의해서가 아니라 낡은 생산양식 그것의 성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창조되자마자 그 바탕 위에서 상업의 갑작스런 확대와 새로운 세계시장의 창조가 일어났다.


■ 자본주의 이행논쟁
제4편의 20장 ꡐ상인자본의 역사적 고찰ꡑ에는 우리에게 돕-스위지 논쟁으로도 알려진 자본주의 이행논쟁과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는 맑스의 중요한 언급들이 있다. 이를 참조하면서 이 논쟁의 흐름을 간략히 짚어보자.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전통적인 해석은 상업 및 유통의 성장을 중시하는 것이었는데, 이에 관한 연구는 독일 역사학파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중세 말의 상업 부활과 화폐경제의 보급, 그리고 시장의 확대가 봉건사회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성립을 가져왔다는 ꡐ상업화 모델ꡑ이 널리 일반화된 것은 루요 브렌타노나 칼 뷔허와 같은 신역사학파 경제사가들에 의해서였다.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 발전연구』(1946)는 이러한 상업화 모델의 문제점을 맑스에 기대어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돕은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상업과 같은 외적 요인보다는 내적 요인에 의해 설명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봉건제의 쇠퇴원인을 ꡒ지배계급의 증대하는 수입욕구와 더불어 생산체계로서의 봉건제가 갖는 비효율성ꡓ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러한 돕의 주장에 대해 폴 스위지는 자본주의를 교환경제로 보는 입장으로 맞섰다. 그에 따르면 봉건제는 상업의 발전이라는 외부적 충격을 받아 무너졌다는 것이다. 뒤이어 여러 학자들이 이 논쟁에 뛰어들었는데, 대체로 판정은 돕에게 기울어졌다. 그런데 논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ꡐ농업자본주의ꡑ라는 새로운 문제의 대두를 계기로 ꡐ브레너 논쟁ꡑ으로 이어졌다. 로버트 브레너가 「전산업시대 유럽의 농업계급구조와 경제발전」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자, 역시 커다란 반향이 일어나 앞서의 이행논쟁에 버금가는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를 ꡐ신이행논쟁ꡑ이라 부르기도 한다.
브레너는 상업화 모델뿐만 아니라 인구동태의 변화에 주목하여 중세 말 농노제의 해체를 설명하는 맬더스 모델을 비판하였으며, 맑스와 돕의 견해에 기반하면서 계급투쟁과 계급관계의 변화를 통해 봉건제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대두를 설명하고자 했다.

 

 

<교재 3권, 405쪽-755쪽>
제 5편 이윤의 이자 및 기업가이득으로 분할
제 21장 이자낳는 자본
제 22장 이윤의 분할. 이자율. ‘자연’ 이자율
제 23장 이자와 기업가 소득
제 24장 자본관계의 피상적 형태인 이자낳는 자본
제 25장 신용과 의제자본
제 26장 화폐자본의 축적. 이자율에 미치는 그것의 영향
제 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
제 28장 유통수단과 자본. 투크와 풀라턴의 견해
제 29장 은행자본의 구성
제 30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Ⅰ
제 31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Ⅱ
제 32장 화폐자본과 실물자본: Ⅲ(결론)
제 33장 신용제도의 유통수단
제 34장 통화주의와 영국의 1844년 은행법
제 35장 귀금속과 환율
제 36장 자본주의 이전의 관계


□ 『자본』3권은 ꡒ많은 새로운 것을 [급하게 써서 군데군데 탈락이 있는] 최초의 초고의 형태ꡓ라고 엥겔스는 말했다. 이는 『자본』3권의 내용이 많은 논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고,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4편까지는 몇몇 논쟁지점들을 논외로 하면, 그리 큰 어려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다. 그런데 제5편은 일단 그 분량에 압도됨은 물론 초고의 형태임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편이어서 3권을 독파하는 데 있어 큰 고비이다. 역자인 김수행 교수는 이 제5편을 ꡒ전혀 정리가 되지 않은 미완성ꡓ이라고 평가하면서 대신 힐퍼딩의 『금융자본』 제1편과 제2편 읽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 편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보자.


□ 고리대자본. 대부자본의 형성

 

자본주의 이전에 대부자본이 취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인 고리대자본은 상인자본과 함께 자본의 태고적 형태이다. 고리대자본은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로부터 발생하여 화폐의 이러한 기능을 확대시켰다.
이러한 고리대자본은 상인자본과 나란히 독립적인 화폐재산을 형성하며, 이전의 노동조건의 소유자들을 몰락시킴으로써 노동조건을 취득하는 이중의 효과를 지니는데, 이는 산업자본의 전제조건을 형성하는 강력한 지렛대가 되었다.
이제 대부자본을 살펴보자. 대부자본은 산업자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화폐자본으로, 그 원천은 생산에 곧바로 쓰이지 않고 묶여 있는 화폐들이다. 이는 그 자본의 소유자가 아닌 기능자본가에 의해 실질적인 자본으로 사용된다.
그런데 대부자본의 운동은 자본이 그 출발점으로 복귀하는 자본일반의 특징적 운동과는 달리 현실적인 재생산과정과는 분리된 전적으로 피상적인 형태를 취한다. 일정 기간 화폐를 대부하고 이자와 함께 그것을 회수하는 것이 대부자본의 고유한 운동형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자본에서 자본관계는 가장 피상적이고 물신화된 형태에 도달한다.
한편 대부자본의 축적은 화폐가 대부가능화폐로서 침전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인데, 신용제도의 발달이나 화폐대부업무가 대은행의 수중으로 크게 집중하는 것, 그 자체에 의하여 이미 대부가능자본의 축적은 촉진된다. 그리고 신용제도와 그 조직의 발달에 따라 소득의 증대까지도 대부자본의 축적을 야기한다. 따라서 대부자본의 축적은 산업자본의 진정한 축적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 이자와 기업가이득. 이자율

 

이자란 대부자본가가 화폐를 빌려준 데 대한 대가로 기능자본가가 그에게 넘겨주는 잉여가치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잉여가치 가운데 기능자본가가 얻게 되는 잉여가치 부분을 대부자본가가 얻는 이자와 구별하여 기업가이득이라고 부른다.
기능자본가 측에서 보면, 이자는 자본소유의 단순한 열매이고, 기업가이득은 그가 자본을 가지고 수행하는 기능의 배타적인 열매로 나타난다. 총이윤은 이처럼 두 부분으로 질적으로 분할된다. 그런데 이윤에 대한 청구권을 가진 두 당사자가 이 이윤을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분할하는가는 그 자체로서는 순전히 경험적인 사실이며 우연의 영역에 속한다.
한편 이자율은 대부자본의 수요와 공급, 즉 산업자본가와 화폐자본가의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자율은 평균이윤율을 초과할 수 없는 한계 속에서, 산업순환의 국면에 따른 변동과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함에 따라 점점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 신용과 은행. 은행자본

 

신용이란 대부자본의 운동형태를 가리키며, 타인의 자본에 대한 일시적 사용을 의미하는데, 여기에는 주요하게 상업신용과 은행신용이 있다. 상업신용은 자본가들 사이에서 상품을 외상으로 매매하는 경우를 가리키고, 은행신용은 은행가가 화폐자본가를 대신하여 산업자본가나 상업자본가에게 이자를 받을 목적으로 화폐를 대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신용은 화폐의 절약이나 자본변태 및 재생산과정 일반을 가속화시킴으로써 유통비용을 절감시키고, 개별자본가에게 일정한 한계 안에서 타인의 자본과 소유, 그리하여 타인의 노동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신용제도 그것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내재적 형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생산양식을 가능한 한 최고․최후의 형태로 발달시키는 추진력이다.
은행은 한편에서는 화폐자본의 집중과 대부자의 집중을 상징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차입자의 집중을 상징한다. 그리고 은행이윤은 자기가 대부할 때의 이자율보다도 낮게 차입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은행제도는 한편에서는 모든 유휴화폐준비금을 수집하여 화폐시장에 투입함으로써 고리대자본의 독점력을 빼앗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음, 은행권, 수표 등의 신용화폐를 창조함으로써 귀금속의 독점적 지위를 제한한다.
한편 은행자본은 금이나 은행권 형태의 현금과 유가증권(상업어음 또는 공적 유가증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은행업자 자신의 투하자본과 예금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은행자본의 대부분은 순수히 가공적 형태인 채권(환어음), 국채(지출해 버린 자본을 대표), 주식(미래의 수입에 대한 청구권) 등으로 구성된다.


■ 주식회사의 양면성

<제5편의 제27장에서 맑스는 주식회사와 관련된 중요한 언급들을 하고 있다. 『자본』3권이 쓰여졌던 1865년 당시에는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맑스는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 일반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명확히 내다보았다고 할 수 있다(교재 3권 끝 부분에 실린 엥겔스의 보충설명을 참고하라).
맑스는 주식회사 제도가 자본주의 생산양식과의 대립을 내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제도가 ꡒ사회적 부로서의 부의 성격과 사적 부로서의 부의 성격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기는커녕 이 대립을 새로운 형태로 전개시키고 있을 뿐ꡓ이므로 그것이 자본주의적 한계 안에 붙들려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일부 사람들은 주식회사에 대한 맑스의 언급 중 일면을 과장하여 자신의 이론적 근거로 삼으면서 맑스의 충실한 제자인 양 행세하고 있다.

 

■ 힐퍼딩과 『금융자본』

1910년에 출간된 힐퍼딩(Rudolf Hilferding: 1877-1941)의 『금융자본』은 『자본』3권 제5편에서 불충분하게 다루어진 맑스의 화폐․신용이론을 나름대로 완성시키고 있다.
힐퍼딩은 금융자본을 은행에 의해 통제되는 산업자본으로 전환되는 화폐형태의 자본으로 보았는데, 금융자본에 관한 그의 분석은 몇 가지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은행자본(화폐자본)과 금융자본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 산업자본에 대한 은행자본의 우위를 과도하게 일반화시키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한편 『금융자본』은 독점에 관한 학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독점을 가장 먼저 이론적으로 해명하려고 하였고, 그 이후 모든 독점 논의의 핵심이 되는 문제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에 관한 맑스주의적 분석은 힐퍼딩의 『금융자본』을 토대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다.
힐퍼딩은 카우츠키와 함께 독일 사회민주당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활약했는데, 1920년대 이후에는 점차 맑스주의로부터 일탈하여 ꡐ유통주의자ꡑ, ꡐ수정주의자ꡑ로 인식되었다. 한때 재무상을 역임했고, 1927년에는 ꡐ조직자본주의론ꡑ을 제창하기도 했다.

 


<교재 3권>
제 6편 초과이윤이 지대로 전환
제 37장 서론
제 38장 차액지대 일반
제 39장 차액지대의 제 1형태(차액지대 Ⅰ)
제 40장 차액지대의 제 2형태(차액지대 Ⅱ)
제 41장 차액지대Ⅱ : 제 1의 경우 - 생산가격이 불변인 경우
제 42장 차액지대Ⅱ : 제 2의 경우 - 생산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제 43장 차액지대Ⅱ : 제 3의 경우 - 생산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결론
제 44장 최열등경작지에서도 생기는 차액지대
제 45장 절대지대
제 46장 건축지지대․광산지대․토지가격
제 47장 자본주의적 지대의 발생

 

□ 자본주의적 지대의 발생


가장 단순한 형태의 지대는 노동지대인데, 이는 직접적 생산자가 주(週)의 일부 동안은 사실상 자신의 토지에서 일하고 나머지 며칠은 무상으로 영주의 토지에서 영주를 위해 일하는 형태의 지대였다. 여기서 지대는 잉여가치와 일치하였다.
그 다음 단계에서 노동지대는 생산물지대로 전환되었다. 생산물지대에서는 노동지대에서와는 달리 잉여노동이 더 이상 그 적나라한 형태로 수행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적 지대 이전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이 화폐지대인데, 이는 생산물지대의 단순한 형태전환으로부터 생긴 것이었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이 생산물지대를 화폐지대로 전환시킨 동력이었다.
화폐지대가 더욱 발전하면서 토지가 자유로운 농민적 소유로 되거나 아니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대형태가 나타났다. 이 화폐지대는 잉여가치와 잉여노동의 정상적인 형태가 지대인 종류의 최후의 형태였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토지소유를 지배․예속관계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고 생산조건으로서의 토지를 토지소유(자)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리고 토지소유자는 토지에 대한 독점적 소유를 통해 지대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파생한 자본주의적 지대는 임금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 가운데 일부가 전환된 형태로 나타났다.
농업자본가는 그가 이용하는 토지의 소유자에게 이 특정의 생산분야에 자기의 자본을 이용하는 것을 허락한 대가로 일정한 기간에 계약상으로 확정된 화폐액을 지불한다. 이것이 바로 지대인데, 이는 경작지․건축지․광산․어장․삼림 등의 모든 경우에 해당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지대는 주요하게 차액지대와 절대지대의 두 형태로 구분해서 살펴 볼 수 있다.

 

□ 차액지대


두 개의 동등한 양의 자본과 노동이 동등한 면적의 토지에 투하되어 동등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에는 이러한 초과이윤이 지대로 전환되는데, 이러한 지대를 차액지대라고 한다. 여기서 초과이윤은 해당 상품이 그 개별생산가격을 넘어 일반적 시장가격으로 판매된다는 사실로부터 생긴다.
차액지대는 다시 그것의 제1형태(차액지대Ⅰ)와 제2형태(차액지대Ⅱ)로 구분할 수 있다. 차액지대Ⅰ은 동일한 면적의 상이한 토지에 동등한 양의 자본이 투하되어 생산되는 생산물이 불균등한데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러한 생산물의 불균등을 야기하는 두 개의 일반적인 원인은 토지의 비옥도와 토지의 위치이다.
이 차액지대의 유일한 전제조건은 각종 토지들의 불균등성인데, 여기서는 지대를 낳지 않는 최열등지의 생산가격(투하자본+평균이윤)이 항상 지배적인 시장가격이다. 따라서 이 차액지대는 지대를 낳지 않는 최열등지에 투하된 자본의 수익과 우등지에 투하된 자본의 수익 사이의 차액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이는 생산성 차이의 결과에 불과하다.
차액지대Ⅱ는 동일한 토지에 자본이 연속적으로 투하됨으로써 투하된 자본들 간의 생산성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 이것은 오늘날 농업경영의 집약화와 관련이 있다. 생산성의 차이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에서 차액지대Ⅱ는 차액지대Ⅰ의 상이한 표현에 불과하다. 그리고 차액지대Ⅰ과 차액지대Ⅱ는 전자가 후자의 토대이면서도 상호간에 한계로서 역할한다.


□ 절대지대


토지의 독점적 소유로부터 발생하는 절대지대는 토지의 비옥도나 위치와는 상관없이 모든 토지에서 발생한다. 즉 토지소유 그것이 이 지대를 생산한다.
농업부문에서의 유기적 구성이 공업부문의 유기적 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음으로 농업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의 가치는 생산가격보다 높다. 그런데, 농업부문은 그 성격상 일반적 이윤율의 형성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그 생산가격을 초과하는 가치가 실현된다. 이 지대는 바로 생산가격을 넘는 가치의 초과분 또는 초과분의 일부이다. 절대지대 또한 단순히 농업상의 잉여가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모든 종류의 토지로부터 시장에 나온 총생산물의 지배적인 시장가격이 상승하는데, 이렇게 토지생산물의 일반적인 가격이 근본적으로 수정되더라도 차액지대의 법칙은 결코 폐기되지 않는다. 차액지대의 법칙은 절대지대와는 무관하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지대의 현실적인 모습은 이러한 절대지대와 차액지대가 결합한 것이다.


□ 토지가격


토지는 우선 노동생산물이 아니므로 가치를 지닐 수 없다. 따라서 자본화된 지대가 토지의 구매가격을 형성하는 것은 노동의 가격이 불합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명백히 불합리한 범주이며, 이는 진정한 생산관계를 은폐한다.
토지의 구매가격은 토지의 실제 가격이 아니라, 토지가 낳는 지대를 현행의 이자율에 따라 계산한 가격일 뿐이다. 그리고 이는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지대의 크기와 이자율에 의해서 결정된다.

토지가격 = (연간지대/이자율)×100

이러한 토지가격은 단순히 이자율이 하락하거나 토지에 합쳐진 자본의 이자가 증대하기 때문에 지대가 증대하지 않아도 상승할 수 있으며, 지대가 증대하기 때문에 상승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토지가격의 상승이 반드시 지대의 증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토지가격의 상승을 가져오는 지대의 증대가 반드시 토지생산물의 증대와 결부되는 것도 아니다.

 

□ 맑스의 지대이론의 현실성


맑스는 A. 스미스와 D. 리카도의 지대이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고전적 지대이론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현대의 경제학에서 여러 가지 공격을 받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고전적 지대이론은 ꡐ본래적 농업지대ꡑ를 주요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현 단계 토지시장에서는 도시용 토지가 논의의 중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용 토지에서의 지대형성은 농업용 토지에서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둘째, 고전적 지대이론이 제시하는 ꡐ토지가격은 토지로부터 나오는 지대를 현재가치화한 것ꡑ이라는 명제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현실의 지가수준은 그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수입을 자본화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어 있으므로, 현실적 지가수준과 지대를 자본화한 이론적 지가수준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ꡐ거품가격ꡑ이라고 불리는 고지가(高地價) 현상은 고전적 지대이론으로는 해명할 수 없다는 비판이다.
먼저 전자의 비판을 살펴보자. 맑스의 논의에 따르면, 도시용 토지의 지대분석이론이 이른바 ꡐ도시지대론ꡑ으로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지지대론으로 존재한다. 엄격히 말해 ꡐ도시지대론ꡑ이라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다. 또한 맑스는 건축지지대를 포함한 모든 비농업용 토지의 지대가 본래적 농업지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는 것은 아담 스미스에 의해 이미 해명되었다고 말했다.
후자의 경우, 고전적 지대이론의 토지가격은 현재 실현된 지대수입만이 아니라 예상되는 미래의 지대수입까지 포함시킨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고지대현상이 존재해야 고지가 현상이 성립한다고 이해하는 논자들은 고전적 지대이론을 잘못 이해한것이다.
한편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거품가격은 맑스의 미경지(未耕地) 가격 관련 논의에 의해 설명 가능하다. 토지가격이 성립할 때 지대는 예상되는 미래의 지대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미경지도 자본화한 지대로서의 토지가격을 부여받게 되고 나아가 투기의 대상이 된다. 즉 미경지의 가격은 예상되는 지대수입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지, 단순히 가치가 없는 거품에 의존한 가격은 아니다

 


<교재 3권, 1001쪽~1090쪽>
제 7편 소득과 그 원천
제 48장 삼위일체의 공식
제 49장 생산과정의 분석
제 50장 경쟁이 야기하는 형상
제 51장 분배관계와 생산 관계
제 52장 계급

 

□ 삼위일체의 공식

 

자본-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 이것은 사회적 생산과정의 모든 신비성을 함축하고 있는 삼위일체의 공식으로서 현실의 생산담당자의 일상적인 관념에 기반한 속류경제학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자본-이자의 형태는 일체의 매개항이 사라진 채 자본 그것의 가장 일반적인 공식으로 환원되고, 토지-지대는 각각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서 비교할 수 없는 두 개의 대상이나 이것이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되며, 노동-임금은 가치의 개념과도 가격의 개념과도 모순되는 형태로 등장한다.
이리하여 수입의 원천인 자본․토지․노동은 이 가치부분 그 자체와 생산물의 해당부분들을 발생시키는 궁극의 원천으로 전환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삼위일체의 공식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신비화, 사회적 관계의 물화(物化), 생산의 소재적 관련과 그 역사적․사회적 특수성과의 직접적 융합을 완성한다.


□ 결과와 원인의 전도


총생산물의 가치는 [생산에 투하되어 소비된] 자본의 가치[즉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이윤과 지대로 분할되는] 잉여가치와 동등한데, 이 중에서 노동이 창조한 가치 전체는 임금, 이윤 및 지대로 분할된다. 따라서 이는 임금+이윤+지대+C(불변자본의 가치)로 현상할 수 있다.
또한 총수입은 임금+이윤+지대와 동등하므로, 총생산물의 가치는 총수입+불변자본이 된다.
이러한 외형은 상품의 가치가 결국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될 수 있다는 불합리한 도그마를 낳는데, 이것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근본관계, 잉여가치의 성질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체 토대가 올바르게 이해되고 있지 않다. 둘째,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추가하면서 동시에 구(舊)가치를 새로 생산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로 유지하는 방식이 이해되고 있지 않다. 셋째, 재생산과정의 상호관련이 개별자본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총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 나타나는가가 이해되고 있지 않다. 넷째, 불변자본을 형성하는 생산물의 일부는 불변자본 생산자들 자신에 의해 현물로 또는 상호간의 교환에 의해 보전되고 이는 소비자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데, 이것이 간과되어 소비자의 소득이 불변가치부분을 포함한 전체 생산물의 가치를 지불한다는 환상이 생긴 것이다. 다섯째, 가치의 생산가격으로의 전형뿐만 아니라 잉여가치가 각각의 상호독립된 형태들로 전환됨으로써 혼란이 야기되어 상품의 가치가 가치의 각종 분할의 토대라는 것이 망각되고 있다.
실제로 상품가치 중 임금․이윤․지대로 분할될 가치량은 이미 주어져 있고, 각각의 범주 그 자체에 대한 평균적이고 규제적인 한계도 미리 주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의 가치가 임금․이윤․지대라는 세 개의 가치량의 합계로부터 초래된다는 혼동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 이유는 먼저 상품의 가치구성분들이 독립적인 수입들로서 서로 대립하고 있고, 그 수입들은 수입으로서 노동․자본․토지라는 세 개의 완전히 상이한 생산요소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것들로부터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임금의 일반적인 상승 또는 저하는 일반적 이윤율을 그 반대의 방향으로 변동시키는 것에 의해 각종 상품의 생산가격을 변경시키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은 상품과 상품가치가 생산되기 이전에 그 크기가 주어지는 가격요소이기 때문에, 임금은 상품의 총가치로부터 독립적인 형태로 분리된 부분으로 나타나지 않고 거꾸로 이 총가치를 미리 결정하는 주어진 크기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덧붙여, 임금이 상품의 비용가격에서 행하는 것과 동일한 역할을 평균이윤이 생산가격에서 행하면서 가치의 형성요소의 하나로 나타난다.
이렇듯 상품가치의 분해의 결과들이 끊임없이 가치형성 그것의 전제로서 나타나게 되는 원인은 그 배후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끊임없이 물질적 생산물을 재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생산물 형성의 사회경제적 관계들․경제적 형태들을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 분배관계와 생산관계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특수한 역사적 규정성을 가진 생산방식이고, 다른 모든 생산방식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생산력과 그것의 발전형태의 일정한 수준을 자기의 역사적 조건으로 전제한다. 따라서 이 생산방식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이것의 이면인 분배관계 또한 특수한․역사적인․일시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생산방식은 물질적 생산물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이 생산물들이 그 속에서 생산되고 있는 생산관계와 이에 대응하는 분배관계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러한 분배관계는 생산과정과 생산관계들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형태들에 대응하며 그리고 그 형태들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다.
한편 하나의 생산양식에 위기의 순간이 도래했다는 징조는 한편에서는 분배관계 그리고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와, 다른 한편에서는 생산력․생산성 그리고 생산력 구성요소들의 발달 사이의 모순과 대립이 확대되고 심화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산의 물질적 발전과 생산의 사회적 형태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


□ 3권을 마치며


제7편은 사실상 『자본』1, 2, 3권을 총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로써 『자본』3권 ꡐ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ꡑ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3권의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전체 내용을 개괄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 이를 다시 정리하지는 않겠다.
드디어 우리는 자본에 대한 이론부분의 종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출발점에 불과하다. 『자본』 전체 권에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자본주의를 더욱 풍부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충해야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까지 도달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을 수 있다.그 과정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땅을 다진다면, 이를 담보로 재산을 늘리는 것은 보다 쉬운 일일 것이다.

 

■ 제52장 계급
『자본』 3권의 마지막 장인 ꡐ계급ꡑ은 서두 부분만 있는 미완성이다. 엥겔스는 3권의 서문에서 이 장의 의도가 ꡒ소득의 3대 형태(지대․이윤․임금)에 대응하는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의] 3대 계급(지주․자본가․임금노동자)과, 이러한 계급의 존재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계급투쟁을 자본주의 시대의 현실적 산물로서 서술하는 것ꡓ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맑스가 여기서 처음으로 계급과 계급투쟁에 관한 서술을 한 것은 아니다. 「독일이데올로기」(1846), 「철학의 빈곤」(1847), 「공산주의 선언」(1848),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1852) 등에서도 맑스는 비록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계급과 계급투쟁에 관한 핵심적인 언급들을 한 바 있다.
한편 맑스는 1852년 3월 5일 요제프 바이데마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ꡒ현대 사회에서의 계급들의 존재를 발견한 공로도, 그 계급들 사이의 투쟁을 발견한 공로도 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네. 부르주아 역사 서술가들은 나보다 훨씬 앞서 이러한 계급 투쟁의 역사적 발전을 서술하였고,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이 계급들의 경제적 해부학을 서술하였네. 내가 새로이 한 일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증명한 것이네. 1. 계급들의 존재는 생산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 단계들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 ; 2. 계급 투쟁은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귀결된다는 것 ; 3. 이러한 독재 자체는 단지 모든 계급의 지양으로 가는, 그리고 계급 없는 사회로 가는 이행기를 이룰 뿐이라는 것.ꡓ(「맑스엥겔스 저작선집 2」, 박종철출판사, p. 497)
이 장을 통해 맑스는 계급과 관련하여 자신이 새롭게 증명했던 것을 자본의 해부 작업의 성과에 바탕하여 더욱 더 전개하면서 주체와 실천의 문제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를 놓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 정리

맑스는 『자본』을 총 4부로 계획하였다. 제1부는 자본의 생산과정, 제2부는 자본의 유통과정, 제3부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 제4부는 잉여가치에 관한 이론들(또는 잉여가치학설사)을 다루었다. 이 중 제2부와 제3부는 엥겔스에 의해 편집되어 출판되었고, 제4부는 훗날 카우츠키가 정리하여 출판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3부까지 살펴보았다. 제1부는 상품의 교환이 그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추상적 인간노동의 양에 따라 행해지며, 잉여노동이 그대로 잉여가치로 실현된다고 가정한다. 이 잉여가치를 증대하기 위해 자본가는 노동시간의 연장이나 노동생산성의 향상을 위해 애쓰고 노동자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진다. 제2부는 자본가가 기계, 원료 및 노동력을 구입하여 생산을 행하고, 그 결과인 상품을 판매하여 최초의 투자액과 잉여가치를 획득하는 과정을 자본의 유통과정이라 이름짓고 이에 관련된 문제들을 다룬다. 제3부는 제1부와 제2부의 연구에 바탕하여 생산과정에서 창조된 잉여가치가 어떻게 상업이윤, 기업가이득, 이자, 지대 등으로 분배되는지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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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풀란짜스

알제리 출신의 블란서 JD학생을 보니 풀란짜스가 떠오른다. 한큐에 다 긁어본다. cafe.naver.com/klforum/159

 

 

 http://blog.daum.net/gangseo/6846327

http://blog.naver.com/noinsider/150000894926 엄청난 내공의...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과 수용에 관한 연구 / 유범상 | Foucault, Michel 2006/03/23 16:32
 
http://blog.naver.com/noinsider/150002832294
 
 

국 문 초 록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과 수용에 관한 연구

 

 

풀란차스는 초기에는 “구조주의적 국가이론”, 그리고 후기에는 “관계론적 국가이론”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복원을 꾀한다. 『국가, 권력, 사회주의』(1978)에서 관계론적 국가이론의 내용이 가장 명시적으로 나타나며, 푸코는 이러한 전환에 깊숙히 관련되어 있다.

 

푸코는 근대정치를 “진리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비판한다. 진리의 정치학은 진리의 소유자인 주체(군주·계급·국가)를 상정하고 있다. 주체는 권력을 통해 진리/허위를 심판하며, 비진리를 억압하고 배제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리의 정치학은 “권리의 이론”으로서 “과학적 진술의 정치학”이라 할 수 있다. 푸코는 마르크스주의 자체도 진리의 정치학이라고 주장하며, 경제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
푸코의 진리의 정치비판은 첫째로 왕(주체·계급)의 목을 자른다. 주체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주체는 권력에 의해 정상화된다. 두번째로 권력은 주체(개인·계급)가 소유할 수 있는 고정된 양이 아니다. 권력은 진리의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대상(피지배계급)을 억압한다는 관념은 잘못됐다. 관계성으로서의 권력은 사회내에 내재(편재)하며, 현실적인 것을 생산한다. 주체는 권력이 채용한 지식과 통치테크닉(생체정치와 해부정치)을 통해 생산된다. 세번째는 저항의 문제를 비판한다.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총체적인 혁명) 개념을 비판한다. 저항은 모세혈관과 같은 사회 곳곳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한다. 네번째는 정치를 제한하는 국가/시민사회라는 대당, 즉 진리의 정치가 상정했던 정치영역과 경제영역의 구분을 폐기한다. 푸코는 권력테크닉이 사회에 편재되어 있는 방식을 검토한다. 따라서 진리의 정치비판은 다차원적 공간(국가만이 아니라)에서 이루어지는 다주체(계급적대만이 아니라)들의 정치라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풀란차스는 푸코의 진리의 정치비판을 수용한다. 그도 동일하게 과학을 자처해온 "경제환원론적 마르크스주의"와 "도구주의적 국가론"을 비판한다. 풀란차스는 정치이론의 근거를 생산관계와 노동분업에 근거하고, 계급과 계급투쟁을 자신의 준거점으로 삼았다. 관계론적 국가이론에서 국가는 계급관계의 물질적 응축이며, 이러한 응축은 제도에 각인된다. 따라서 국가는 계급투쟁의 장이다. 이러한 기본적 입지점 때문에 푸코를 수용하면서도 비판한다. 첫째로 푸코의 정상화를 수용하여 고립화를 주장하지만, 이것은 풀란차스에 있어 무정형적 개체가 아니라 계급적 주체로 실현된다. 두번째는 푸코의 권력의 생산성 개념을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억압성을 그 기본전제로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는 생산성/억압성 모두를 통해 계급지배를 유지한다. 세번째는 미시저항의 개념을 수용하지만, 국가밖의 저항, 또는 계급적대에 근거한 총체적 전략을 꾀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분을 폐기하고 정치와 경제의 외재성을 비판하면서도, 계급국가의 시민사회에 대한 지배를 주장한다.

 

풀란차스의 푸코 수용은 형식적인 것에 머물렀다. 그는 푸코가 비판했던 근대정치로의 회귀경향을 보인다. 풀란차스는 푸코의 “미시적 적대의 다원성”을 “거시적 적대의 다차원성”으로, “미시적 우연성”을 “거시적 우연성”으로 수용하여, 구체적 상황에 근거하는 정치이론을 전개해야했다. 그러나 풀란차스는 생산관계·노동분업과 계급·계급투쟁에 근거하여 “계급적대의 단순성”과 “계급지배의 거시적 필연성”을 고수했다. 따라서 그의 정치이론은 (국가)“이론”화되고 말았다.     

 

 

 

*일러두기

1. 국문 단행본은 『』, 논문은 「」 으로 표시하고, 영문책은 이탤릭체, 논문은 "" 으로 표기한다.

2, 영문 인용문은 본문에 번역본을 표기하였을 때는 번역본을 따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영문책을 인용하였다.

3, [ ]표시는 인용문의 뜻을 정확히 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임의로 첨가한 것이다.

 

 

 

 

 

목 차


 

Ⅰ. 머리말 
 

  1. 문제제기 
  2. 논문의 구성 

 

 

Ⅱ. 5월사태와 마르크스주의 
 

  1. 관계론적 권력이론과 푸코의 마르크스주의 비판 
  2. 관계론적 국가이론과 풀란차스의 마르크스주의 비판 
  3. 푸코와 풀란차스의 유사점 

 

 

Ⅲ.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과 수용 
 

  1.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  

  2. 푸코 수용과 관계론적 국가론 

 

 

Ⅳ. 풀란차스와 푸코에게 있어서의 ‘정치’ 
 

  1. 푸코의 진리의 정치비판 

  2. 풀란차스에 있어서의 정치 

 

 

Ⅴ. 요약 및 결론

 

 

참 고 문 헌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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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1. 문제제기


본 논문은 푸코와 풀란차스의 정치 비판을 통해 정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1) 이를 위해 우선 양자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살펴보고자 한다. 양자는 공통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정교화하고 있다. 그러한 정치적 입장은 풀란차스에게서는 “관계론적 국가이론”으로 푸코에게서는 “관계론적 권력이론”으로 표명된다. 이들은 이러한 입론에서 전략적, 관계론적 권력을 수용하고 다양한 저항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풀란차스가 계급분석을 전제한 반면, 푸코는 어떠한 선험적이고 미리 결정된 주체의 존재도 부정한다는 점에서 상이하다. 푸코의 저작은 일견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무관심해 보이고, 또 사실상 그의 저작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학에 대한 토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푸코의 “분석적 초점, 방법론적 지향 그리고 [그의] 저작의 정치적 열망은 …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학에 대한 반응 또는 실질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사회주의적 정치전략 양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으로 독해”2)될 수 있다. 

본 논문은 푸코의 작업이 마르크스주의의 비판 즉 경제환원론적, 목적론적 역사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을 곳곳에 내장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른 한편 풀란차스의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는 마르크스주의의 옹호로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르크스주의의 옹호가 푸코가 비판한 경제론적 마르크스의 옹호라고 보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그는 푸코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고 볼 수 있다.3) 풀란차스의 비판은 바로 푸코가 겨냥한 경제결정론에서 도출되는 토대상부구조론, 도구주의적 국가론, 좌익-기술 관료주의 국가론 등에 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양자는 모두 경제주의적 입장의 마르크스를 비판한다.


본 논문은 풀란차스의 푸코비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본 논문은 특히 풀란차스가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에서 푸코와 유사점들을 인정하고 푸코를 수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발전시키지만, 이와 동시에 그는 수용의 측면보다는 푸코에 대한 비판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고자 한다. 이것은 풀란차스가 얼마나 철저하게 계급투쟁의 토대 위에 서 있는가를 보여 줄 것이고, 또한 양자가 동일한 경제 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푸코가 비판할 때 서 있었던 지점과 풀란차스의 지점이 서로 다르며, 그들의 비판의 효과도 상이함을 드러낼 것이며, 결과적으로 양자의 상이한 정치 비판을 보여줄 것이다. 푸코의 목적은 “모든 장소의 모든 것들을 다루는 총체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전략적 지식을 세우기 위하여 권력의 메커니즘의 종별성(specificity)을 분석하는 것”4)이고 따라서 그의 실천은 말단의 권력의 영역 곳곳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푸코의 권력 이론은 혁명이 아니라 국부적 저항의 연장함(tool kit)”5)인 것이다. 그러나 풀란차스는 바로 이러한 푸코의 정치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우선 푸코가 “권력을 무수히 미시 상황 속에서 희박화․분산화 된다는 관점의 선호” 때문에 “계급들과 계급투쟁을 현저하게 과소평가하고, 국가의 중심적 역할을 심각하게 무시”6)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풀란차스에 있어 저항의 근거는 계급적 관계 즉 생산 관계이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계급투쟁인 것이다. 그의 정치는 계급, 계급투쟁, 계급 권력, 계급 국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푸코와 풀란차스의 정치 비판을 구체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푸코는 진리의 정치를 비판한다. 진리의 정치는 보편적 진리를 소유한 국가, 계급과 같은 선험적, 거시적 주체를 상정하고 권력의 기제를 통해 허위를 억압하고 사회를 틀지운다. 푸코는 정치적 의도는 있으나, 주체는 없는 과정으로 정치를 파악한다. 따라서 지식과 권력의 결탁 속에서 항상 자신을 진리의 담지자로 파악하도록 조작하는 군주 또는 주권인 “진리의 권력”(power of truth)의 목을 자른 후 일상적이고 내재화된 정상화와 규격화에 대항하는 국부적 저항의 담론을 “새로운 진리의 정치학”7)(new politics of truth)“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중심화하고, 국가화하려는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읽혀질 수 있다. 풀란차스는 이러한 푸코의 “진리의 정치 비판”의 문제의식과 권력 테크닉을 수용하고 있다.8) 국가는 계급투쟁의 물질적 응축이며, 따라서 그의 정치 이론은 게급투쟁의 이론으로 정립된다. 그러나 그는 곧 “특정의 생산 양식”속에서 “정치의 부문 이론”9)을 완성하고자 했던 초기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정치 이론”을 “국가 이론”으로 편입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정치 이론은 “국가 비판”이 아니라, “국가의 통치이론”이다.10) 따라서 그는 국가를 계급의 통일성에 종속된 것으로 보고 억압성과 개체화의 주체를 강조하게 된다. 특히 계급적대에 모든 것을 중층결정시킴으로서 적대의 문제를 단순화한다. 이것은 계급국가와 민중으로 표상된다.


Walzer는 푸코의 논의가 현대사회의 실체에 관한 어떤 인식을 제공해 주지만, 그의 정치 이론의 가장 큰 결여는 “규율과 법과 정치의 세계를 회피”하고 결과적으로 “정치세계를 식민화”(Walzer 59)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 속에서 풀란차스가 경제주의적 형식주의적 결정 이론에 근거한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것은 옳았으나, 계급의 존재를 결정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국가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려 했던 점은 또 다른 생활 세계의 “식민화의 시도”로서, 우연성과 역사성을 무시한 정치“이론”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2. 논문의 구성

이상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우선 2장은 푸코와 풀란차스가 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논의이다. 푸코가 근대철학과 정치에 대해 비판할 때,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내장하고 있고, 란차스가 푸코를 참고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재수용하려는 노력이다.

양자는 관계론적 권력이론과 관계론적 국가이론을 비판의 준거점으로 삼고 있다. 따라서 양자가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입장은 각각의 관계론적 권력이론과 관계론적 국가이론의 함의를 드러내게 될 것이며, 이를 통해 3절은 양자의 유사점을 논의한다.

푸코의 관계론적 권력이론에서 마르크스주의 비판은 네 가지 범주에서 고찰 가능하다. 즉 이것은 주체/대상, 억압성/생산성, 편재성/저항 그리고 국가/시민사회 범주가 그것이다. 풀란차스의 관계론적 국가이론 역시 네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지배계급이 점거한 국가라는 관념에 대한 비판이고, 두 번째는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이고, 세 번째로 이행의 문제에 대한 토론이고, 마지막으로 국가/시민사회 대당에 대한 비판을 통한 풀란차스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그의 관계론적 국가이론이다. 그런데 이러한 양자의 네 가지 비판의 범주는 각각의 영역에서 유사점이 존재한다. 3절은 바로 각 범주가 어떻게 서로 수렴되는가에 대한 논의이다. 이러한 유사점은 68년의 경험을 매개로 한 푸코의 전환11)과 이를 수용하면서 동일한 68의 지형에 서 있었던 풀란차스12)에게 있어서 당연한 것이다. 따라서 68년 5월사태의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3장은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과 수용을 통해 후기 풀란차스로의 이행을 논해 보고자 한다. 따라서 이 장은 본격적인 푸코와 풀란차스의 논의의 장이 될 것이다. 우선 풀란차스의 푸코비판13)은 다른 영역에서가 아니라 유사점이 있는 그 영역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각각의 영역은 앞서의 유사점에서 논하였던 네가지 범주에서 살펴볼 것이다. 유사점에서 서로 차이가 있는 이유는 풀란차스가 생산관계와 계급, 계급투쟁의 전제를 전혀 포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그는 계급의 입장에서 모든 논의들을 변형한다.14) 이로써 앞서 푸코와 풀란차스의 유사점, 그리고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을 통해 본 차이점의 논의는 풀란차스가 푸코를 어떻게 수용하고 또 비판했는가의 실제를 보여줄 것이다. 따라서 3장 2절에서는 풀란차스의 관계론적 국가이론을 살펴볼 것이다. 관계론적 국가이론은 푸코의 영향과 초기 구조주의적 국가이론과의 연관성을 해명해 줄 것이다.


푸코의 논의와 풀란차스의 주장을 정치 이론의 입장에서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이 마지막 장이다. 여기서는 푸코의 진리의 정치 비판과 풀란차스의 푸코의 수용과 비판을 평가한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푸코와 풀란차스의 입론을 요약하고, 양자의 정치이론에 대한 평가를 통해 새로운 정치비판의 가능성을 논의할 것이다.





Ⅱ. 5월사태와 마르크스주의


  풀란차스와 푸코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였다. 5월사태는 풀란차스와 푸코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에 경험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5월사태는 “확립된 기존의 통치와 신념들 그리고 관습뿐 아니라 지배 제도들과 이에 반대하는 제도들의 정당성, 생산과 소비 그리고 정보의 모델들 등을 포함한 사회생활의 여러 근본적인 측면들에 대한 도전”15)이었다. 5월사태는 주체, 권력 그리고 저항의 문제에 대한 기존의 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 의문을 제기했다.

68년 5월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프랑스 공산당이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지도부에 체화되어 있는 당과 ‘전문가’들이 역사를 만든다”16)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진리의 체현자로서 중심적 역할을 하기를 원했다. 5월사태에 대해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위마니떼』는 “학생들의 행동을 모험주의로 비난했으며, 객관적 기준으로 볼 때 운동이 혁명적이지도 프롤레타리아적이지도 못하”17)다고 평가하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제한”18)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Glucksmann은 “공산당 지도부가 이들 운동에 대해 가한 제약이 ··· 정부적 차원의 저항보다도 훨씬 더 큰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19)고 주장했다. 스마트 역시 “68년 5월이 던진 의미 중 하나는 제도화된 정치적 반대 조직들이 그들 조직 구성원들 중 상당히 큰 분파를 대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그룹을 대변하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20)고 비판한다. 

공산당의 이러한 인식과 5월사태의 양상에 대한 입장은 푸코의 진술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푸코는 “프랑스 공산당에 가까웠던 지식인들 중에 구금이나 정신병리학의 정치적 사용, 또는 넓은 의미에서 사회 전체가 훈육적 권력의 메커니즘 안으로 매몰되어 있다는 인식 따위에 문제제기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있”었으며, “이 분야에서 내[푸코]가 시도하려고 한 것에 대해 프랑스의 좌파 지식인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적고 있다. 이어서 그는 “이러한 문제들은  정치적인 색깔을 띠면서 부각되며, 뿐만아니라 나의 초기 저작들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분명한 자세를 취하지 못했던가를 보여주게 된 것은 1968년을 전후해서야 가능해 졌”21)다고 술회한다.

5월사태의 영향은 푸코로 하여금 초기부터 권력에 대한 문제설정을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고 싶습니다. ꡔ광기와 문명ꡕ 혹은 ꡔ병원의 탄생ꡕ에서 나는 권력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하여 말했었던가? 그러나 나는 권력이라는 낱말을 사용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 임의대로 그런 분석의 모델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좌파든 우파든 이것은 분명 당시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정치적인 상황과 연계된 불가능성이 있었다고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권력의 문제가 논의되는 것을 보는 것은 어려웠습니다.22)


따라서 5월의 현장을 목격했던 푸코가  68년 5월이라는 역사의 대륙을 종단하면서 얻은 성과물은 권력에 대한 이론화이다:


권력이 행사되는 구체적인 방식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8년 이후에나 가능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권력의 미세한 그물망에 걸려 있는 민중들이 겪는 일상생활의 투쟁을 통해서였습니다. 이제 비로소 권력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수 있게 되었고 권력의 작동 메커니즘을 분석함으로써 지금까지 정치적 대상 밖에 머물러 있던 여러 가지 모습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23)


5월을 통해서 권력에 대한 이론화를 추구했던 푸코는 근대 철학의 선전자(“프랑스 좌파 지식인”)로 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가 지식-권력론, 즉 반주체적 권력 이론이다. 다시 말하면 5월사태는 푸코에게 있어 마르크스주의의 혁명과 실천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했고 이것은 “진리의 정치”에 대한 비판과 생체권력(bio-power)에 대한 이론화를 가져왔다:


1968년의 혁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럽의 혁명운동이 어떻게 19세기와 20세기를 풍미했던 마르크스주의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이 바로 1968년의 경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마르크스주의=혁명운동이라는 등식은 하나의 도그마를 만들어 냈는데, 여기에 육체적 권력, 또는 육체적 정치가 갖는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입니다.24)


이상에서 보듯이 5월사태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과 권력의 문제에 의문을 제기했고, 이것은 이론과 정치의 개방을 가져왔다. 특히 5월을 통해서 저항은 국가권력이나 계급들 간의 투쟁으로 치환되는 것이 아님을 푸코는 주장하였다. 즉 5월의 현실 앞에 절대정신의 권위에 기댄 총체적 이론의 사망선고를 내렸으며 현실의 실천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부여했다. 특히 푸코는 5월사태를 통해 자신의 초기의 주체 비판에 대한 문제설정을 극단으로 밀고 감으로써 니체에게 빌린 계보학을 더욱 현실의 영역으로 확대했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을 함유한다.25)

풀란차스 역시 68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초기 구조주의 국가이론에서 부터 그람시의 영향을 받아 국가기구 속에 계급관계가 응축되어 있다고 주장했고, 이미 관계론적인 권력개념등을 사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5월사태를 통해서 권력과 정치에 대한 비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을 수용하면서 더욱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킨다:


… 국가의 변혁은 무엇보다도 생산관계의 변형에, 따라서 그것이 초래하는 국가와 경제의 분리의 변형에 조응하며, 그러므로 계급투쟁에 조응한다. … 나는 이미 『정치권력과 사회계급』에서 이러한 연구 방향을 추구했다. 그러나 이제  1968년 5월 이전에 쓰여진 그 저작의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그 저작에서 정확하게 생산관계를 출발점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사회적 분업의 역할을 강조하였지만, 그 분업의 완전한 내용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일련의 장애를 타개한 것은 5월 그 자체이며, 그 결과 발생한 노동운동의 고유성이다.26)


1978년의 『국가, 권력, 사회주의』는 그리스 군정의 민중 봉기에 의해 붕괴되는 등 “연이은 포르투갈, 스페인의 남부유럽의 민주화를 목격하면서 풀란차스는 5월 이후 이미 보이기 시작한 ‘계급투쟁의 우위성’ 테제로의 이동을 가속화하면서 국가를 그 내부에 계급투쟁의 모순이 침투되고 각인된 ‘계급투쟁의 장’ 내지 ‘사회적 관계의 응집’”27)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인식은 5월사태를 통해 관계론적 권력개념에 주목한 푸코를 수용함으로써 관계론적 국가이론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국가이론에 근거하여 풀란차스는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

이상에서 보듯 5월사태는 푸코와 풀란차스에게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경험적 근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푸코는 권력개념을 이론화하고, 풀란차스는 관계론적 국가이론를 정립한다. 이러한 입론 속에서 양자는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 그들의 비판의 공통점은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을 지향했다는 데 있다. 즉, 경제 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가 역사 발전의 기본 원칙을 설정하고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 의해 사회 변동을 설명하려 한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들이 비판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과 권력의 이분법적 구도를 상정하고 정치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과제가 지식 또는 진리로 권력의 횡포를 막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28)이라는 서양의 정치철학의 전통에 서 있는 존재이다29). 양자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관계론적 권력이론과”과 “관계론적 국가론”을 주장한다.


1. 관계론적 권력이론과 푸코의 마르크스주의 비판

관계론적 권력(relational power) 혹은 그물망(network)으로서의 권력개념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곳곳에 내장하고 있다. 푸코의 권력에 대한 기본 시각은 ‘“누가 권력을 잡고 있는가?” 혹은 “권력자가 어떤 의도,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와 같은 문제에서 “주체가 권력의 결과로서 구성되는 과정”으로 초점을 옮겼다.30) 왜냐하면 권력은 고정된 양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개인, 계급과 같은 주체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권력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일부 사람들에게 부여되어 있다고 하는 특정한 권세도 아니다. 그것은 주어진 한 사회에서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31)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같은 관계론적 권력론을 주체/대상, 억압성/생산성, 편재성/저항 그리고 국가/시민사회라는 범주를 통해 접근하며, 각각의 이러한 영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다.


우선 주체/대상 그리고 주체에 의한 권력 소유라는 관점은 근대철학과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즉 근대철학의 심장부에 놓인 중심 주제는 주체(“인간중심주의”32))라는 문제 설정이었고, 마르크스주의는 그 주체를 계급으로 구체화시켰다. 따라서 5월 정국에서 공산당이 계급 주체의 부재라는 판단 때문에 운동에 적극 개입하기를 거부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푸코는 인간 주체는 당연히 자율적이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해 온 철학적 전통과 계급주체를 상정한 마르크스주의 양자에 반대한다.33) 근대철학의 준별점을 푸코는 주체(인간)의 출현 속에서 찾으며, 그의 주저 『사물의 질서』에서 “인간의 죽음”을 선언한다. 푸코는 다음의 같이 말한다:


어쨌든 한 가지는 확실하다. 즉 인간은 인간의 인식에 제기된 가장 오래된 문제도 아니며, 가장 영속적인 문제도 아니다. 하나의 제한된 지역에서의 상대적으로 단기간의 시기(16세기 이래의 유럽문화)를 표본으로 추출해 보더라도 인간이 그 속에서 생겨난 최근의 산물임은 확실하다.34)


그리고 푸코는 “우리는 인간이 마치 해변의 모래사장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에 씻기듯 이내 지워지게 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35)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는 근대철학의 질문방식 자체을 바꾸어 버린다. 즉 “선험적 주체”를 묻는 대신에 “인식적이거나 실천적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주체의 형식이 무엇인가”에 대해, “우리의 발전이 어떻게 가능한가” 라는 식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36)라고 묻는다.

이러한 푸코의 근대철학의 담론에 대한 비판과 주체담론의 효과에 대한 비판은 “계급주체”를 발견함으로써 관념론 철학과 결별했던 마르크스주의에도 적용된다. 푸코는 우선 마르크스주의가 근대철학의 아류임을 입증함으로써 그 비판의 포문을 연다:


서구 지식의 심층 단계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어떠한 실질적인 단층을 도입하지 않았다. ··· 마르크스주의는 그(당시의) 인식론적 배치를 뒤흔들 의도도 없었으며, 조금이라도 수정할 어떠한 힘도 갖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배치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이다. ···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의 사고 내에 존재한다.37)


마르크스주의는 주체/대상, 허위/진리의 근대 인식론적인 문제 설정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근대철학의 한 구성인자이다. 그것은 근대철학이 갖는 선험적 주체, 즉 계급을 전제한다. 푸코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주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J. A. Miller의 “서로 적대하는 주체들의 실체”에 대한 의문에 푸코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투쟁에서 한쪽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다른 쪽에서는 부르주아지라는 주어진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누구에 대항해서 싸우는가? 우리 모두는 서로가 싸운다. 그리고 다른 어떤 것에 대해 투쟁하는 어떤 것이 우리 각자 내에 항상 있다.”38) 따라서 푸코는 “우리는 한편으로는 ‘지배자’ 다른 한편으로는 ‘피지배자’와 같은 이분법적 구분과 단단하고 원초적인 지배조건은 이제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우리는 차리리 지배관계의 다양한 생산에 주목해야한다”39)고 주장한다. 푸코가 주목한 지배관계로서의 권력은 관계적인 것으로 사고되며, 하나의 전략으로서 이해되며 이제 특정한 주체를 상정하지 않는 의도성으로 나타난다.40) 다시 말해서 푸코는 “권력의 메커니즘, 기술 그리고 행위는 부르주아지에 의해서 발명된 것도, 효과적인 지배양식을 추구하는 지배계급의 창작품도 아니다. 차라리 그것들은 부르주아지에 대하여 그 정치적·경제적 효용성을 드러내는 그 순간부터 발달”41)했다. 이처럼 푸코는 선험적 주체가 권력을 소유한다는 주장을 비판하고, 오히려 이러한 주체는 권력의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42) 푸코에게 있어서 권력은 제도, 국가 등에 자리잡고 있는 개인, 계급에 의해 소유될 수 있는 고정된 양이 아니다:


 권력은 타인에 대하여 그것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어떤 개인의 손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권력은 행사의 대상이 되는 이들 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사하는 이들 모두가 사로잡혀 있는 기계이다.··· 권력은 그것을 소유하거나 행사하는 어떤 개인과 더 이상 동일시될 수 없다. 그것은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기계가 되었다.43)


푸코의 이와같은 다양한 지배관계와 관계론적 권력개념은 사회계급이 노동자/자본가라는 이분법적 문제설정과 자본주의적 계급지배라는 관념44)에 대한 비판이며, 노동자계급이 항상 자본주의라는 구조속에서 잠재적인 진보․변혁의 주체라는 신념에 대한 문제제기이고,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의 근본적인 전제인 토대/상부구조론에 대한 의문이다.

권력의 그물망에서 존재하는 주체라는 푸코의 명목론적 관점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과 이데올로기 구분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나는 이데올로기의 개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사용하기 곤란하다고 본다. 첫째는, 이데올로기는 마치 진실이라는 것이 틀림없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에 그 진실에 반대되는 지식은 모두 이데올로기라고 몰아 부치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데올로기가 갖는 용어상의 난점은 그것이 주체, 또는 주관이라는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 이데올로기는 하부구조나 물질성 또는 경제적 결정요인에 비하면 부차적인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와 같은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쓰는데 주의를 해야 한다.45)

내가 당신에게 일깨워 주려고 한 것은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이냐 아니냐 하는 쓸데없는 질문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 나는 당신이 마르크스주의를 이런 식으로 변호하는 것 자체가, ··· 과학이라는 믿음에 작용하는 권력의 효과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46)


또한 이러한 주체/권력에 대한 비판은 이제 더 이상 주체(계급)에 의한 실천이 진리를 보증한다는 근대철학(마르크스주의)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로 억압성/생산성이라는 권력개념에 대해 살펴보자. 푸코의 권력론은 권력을 소유한 주체들이 억압하고 금지한다는 전통적인 권력의 부정적 이미지의 입장을 비판한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도 해당되는데, 중세의 정치철학에서 권력개념을 군주 또는 법의 억압성에 맞추었다면,  마르크스주의는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억압으로 권력을 파악한다. 푸코는 강조한다:  


이제는 배제한다, 처벌한다, 억누른다, 검열한다, 고립시킨다, 숨긴다, 가린다 등의 부정적인 표현으로 권력의 효과를 기술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상 권력은 생산한다. 현실적인 것을 생산하고, 객체의 영역과 진리에 관한 의례를 생산하는 것이다.47)


이처럼 푸코에 있어 권력은 억압기능보다도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권력의 고유기술인 통치 테크닉에 주목한다. 푸코가 자신의 주요 저작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계보학적 분석이 사실상 모두 통치 테크닉에 대한 분석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통치 테크닉의 특징은 그 대상이 신체이다. ꡔ감시와 처벌ꡕ에서 신체에 관한 정치경제학이라는 용어가, ꡔ성의 역사ꡕ에서는 생체권력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이 두 개념은 모두 신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권력 방식”48)을 나타낸다.

생체권력이란 해부정치와 생체정치로 구분되는데 이것들은 신체에 가해지는 권력의 기술적 측면, 즉 통치테크닉의 대표적인 두 유형이다. 이 두 유형은 신체의 최대한의 발현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모두 삶에 대한 권력이다. 따라서 푸코는 “삶을 빼앗든가 살게 내버려두는 낡은 권리 대신에 삶을 북돋아 주든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권력이 들어 섰다”49)고 말한다:

생각컨대 먼저 형성된 하나의 극은 기계로서의 신체를 중심에 두었다. 다시 말해서 신체의 조련, 신체적 능력의 최적화, 체력의 착취, 육체의 유용성과 순응성의 병행적 증대, 효과적이고 경제적이고 경제적인 통제 체계로의 신체의 통합, 이 모든 것의 훈육을 특징짓는 권력 과정, 곧 인체에 대한 해부 정치에 의해 확보되었다.50)

다소 늦은 18세기 중엽에 형성된 두 번째 극은 종 개념으로서의 신체, 곧 생명의 역학이 스며들고 생물학적 과정에서 디딤돌의 역할을 하는 신체를 중심으로 한다. 다시 말해서 증식, 출생률과 사망률, 건강의 수준, 수명, 장수, 그리고 이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반조건들이 중심적인 문제인데, 일련의 개입 및 조절하는 통제 전체 , 즉 인구를 대상으로한 생체정치가 그것들을 떠맡는다.51)


이처럼 해부정치가 해부학적이고 개별화시키며 규격화시키고 육체의 개발을 조장하는 특징을 갖는다면, 생체정치는 신체를 생물학적으로 다루고 해부정치를 통해 형성된 주체의 삶의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해 주는 생산성으로 특징 지어진다. 전자의 권력은 그 작동을 통해 “천편일률적인 규율을 개인[신체]들에게 부과함으로써 규격화(normalize)”한다. 나아가 이것은 “각각의 개인들의 신체에 각인됨으로써 그들을 개별화(individualize)시켜내는 효과”52)를 거둔다. 후자는 목자적 권력(pastoral power)로 특징지워지는데, 목자(shepherd)가 모든 양떼(flock)들의 행동들을 책임지듯이, 개인의 삶과 모든 행동을 배려하는 근대권력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양떼가 목자에게 바치는 순종이 이성에 굴복했던 것이 아니라, 이성에 철저한 순종을 의미했다는 점에서 순종을 이끌어내기 위한 특별한 지식의 형태가 요구되는 계기를 설명한다. 이제 권력은 지식을 채용하고 지식자체는 권력에 의해 기능하게된다.53)

세번째로 편재성/저항이라는 논의를 통해 관계론적 권력개념에 접근할 수 있다. 앞서 권력이 어떤 주체를 전제하지 않으며, 소유될 수 있는 사물이 아니라는 진술은 권력이 사회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편재되어 있다는 진술을 내장한다. 따라서 권력관계는 그물망처럼 권력(기술)의 전사회적 확산과 국가나 계급이 소유할 수 없다는 푸코의 권력에 대한 진술은 계급이 국가권력의 점거를 통해 혁명에 도달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주장에 반대한다. 마르크스주의적 저항은 “첫째, 단순한 정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국가를 상대로 하여 싸우려 하기 때문에 (국가와) 동일한 정치적·군사적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같은 위계의 메커니즘과 권력구조를 지니고 있는 국가기구로서 출발하여야 한다. ·· 둘째, 프롤레타리아 독재기 동안의 국가기구는 계급적대에 대처하기 위하여 효율상 그대로 존속”54)시켜야 한다. 이러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전략은 푸코의 권력이론에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권력 관계들은 변화될 수 있고 뒤집어질 수 있으며 불안정한 것입니다. 주체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면 권력관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완전히 타자의 처분권 안에 있고, 상대방이 무제한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그의 소유물이 된다면, 권력관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권력관계속에는 필연적으로 저항의 가능성이 존재하며 저항의 가능성-폭력적 저항, 탈출, 계략, 상황을 역전시킬 전략 등-이 없다면 권력 관계도 있을 수 없습니다.55)

 

푸코가 권력을 소유한 국가기구를 상정하지 않듯이 저항 또한 국가기구 전복으로 등치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푸코는 일상적인 차원의 편재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미시적인 차원의 권력에 대한 투쟁없이는 사회혁명이란 무의미하며 실재로 가능하지도 않다고 본다. 따라서 국가는 이러한 일상적 권력이 기능하는 권력망을 토대로 해서 작동하므로 국가에 대한 저항 또한 국소적 특수적 투쟁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저항은 국가기구나 제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편재되고 분산된 권력 관계망 도처에 존재하며 이러한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전략이 짜질 때 의미를 갖게 된다. 이제 푸코에 있어서 저항은 권력과의 대당 속에서 권력의 사슬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권력을 강화하는 지식․지식인 등의 다양한 권력적 결집체의 곳곳에 편재되고 관계적인 특성 속에서 존재한다.56) 


마지막으로 국가/시민사회의 대당을 통해 푸코의 권력이론의 함의를 살펴본다. 관계론적 권력이론은 선험적주체가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 장에서 권력의 주체가 형성되는 것이고, 권력은 억압의 기제가 아니라, 오히려 생산성을 특징으로하고, 한점에 응집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석구석에 편재됨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새로운 권력개념은 “노동자계급의 과학”이기를 자처했던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이것은 경제적 마르크스주의가 토대/상부구조, 시민사회/국가라는 이분법을 상정하고, 경제의 우위성을 골간으로 국가는 경제적 영역의 자본의 이해를 반영하는 도구적인 수단으로 간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는데서 드러난다. 따라서 중심(주체, 국가)의 해체와 권력의 사회로의 편재됨을 강조하고 있는 푸코에게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분리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며, 이것 자체가 지식/권력의 결탁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푸코는 권력관계를 국가의 영역만으로 한정하고, 국가를 단일한 계급에 의해 점거되어 있다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속에서 권력이론을 전개한다. 푸코의 이러한 논의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정치를 경제의 부속물로 간주하고 거시정치로 모든 정치를 환원하는 입장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정치복원의 입장은 마르크스주의자의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한 풀란차스의 다음 논의를 통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본다.


2. 관계론적 국가이론과 풀란차스의 마르크스주의 비판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에서 풀란차의 마르크스주의 비판은 근본적이다. 그는 “정통”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것은 기존의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소련의 권위에 의해 공식화된 스탈린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과연 정통 마르크스주의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풀란차스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신성한 교조와 텍스트를 지키는 사람으로 행동할 수 없”으며 따라서 풀란차스 자신은 “어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이름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풀란차스 자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에 책임을 진다”57)고 진술하고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가 “과학”의 담론을 추구해 온 목표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마르크스라는 이론이 유토피아를 보증하는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이론이 아무리 과학적이라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해서) 그 이론에 가능한 한도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는 없”(SPS 22)고, “전체화를 목표로 하는 일반이론을 가지고는 문제의 모든 복잡성을 파악할 수 없”(SPS 24)는 것이다. 즉 “모든 형식주의적 이론주의의 주장과는 반대로, 다양한 생산양식을 관통하는 불변의 이론적 대상을 가지는(경제과학) 경제의 일반이론이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생산양식을 관통하는 불변의 대상을 가지는 (정치과학, 정치사회학) 정치적인 것-국가의 일반이론 또한 있을 수 없다”(SPS 19)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기존의 과학의 담론으로서 마르크스주의자에 의해 강력하게 주장되어 온 이론과 실천의 관계, 즉 실천이 이론을 보증한다는 도구주의적 실천관에 의문을 던진다. 이론과 실천의 일치에 대한 회의는 신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마르크스주의가 동유럽 사건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주장에 대한 반비판이다:


이론과 실천, 이론과 현실 사이에 항상 구조적 거리가 존재한다. … 계몽 철학자들이 서구의 전체주의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 역시 동구에서 발생한 것에 대해 책임이 없다. … 스탈린은, 나폴레옹 1세가 루소의 오류, 프랑코가 예수의 오류, 히틀러가 니체의 오류, 그리고 뭇솔리니가 소렐의 오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의 오류’가 아니다.(SPS 23)  


“정통”이라는 관념의 폐기, “과학”이라는 담론의 포기 그리고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도구적 실천관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에서 정통으로, 과학으로 그리고 합법칙적 과정의 확인으로서의 실천을 제기해 온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제 구체적으로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살펴본다.


풀란차스는 초기에는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58) 후기에는 전략관계론적인 입장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어느 입장에서나 비판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는 푸코가 비판한 토대상부구조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단선적인 발전관에 매몰된 경제환원론적인 마르크스주의이다.59)

풀란차스는 관계론적 국가이론은 국가를 “본질적인 실체로 간주할 수 없으며, ‘자본’과 마찬가지로 세력관계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계급들과 계급분파들 사이의 세력관계(항상 특수한 형태로 국가안에서 표현된다)의 물질적 응축”(SPS 128-9)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국가의 물질성은 생산관계와 사회적 분업”(SPS 75)에 기초하며, 이러한 물질적 응축은 제도적 물질성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국가는 “계급모순에 의해 구성되고, 계급모순을 통해 분화”(SPS 132)되는 것이며, 따라서 계급투쟁의 장인 것이다. 또한 국가정치는 “국가내부의 [계급]모순의 실제적 과정을 통해 확립”(SPS 134)된다. 이러한 관계론적 국가론에 입각하여 풀란차스가 비판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살펴보자.60)

이것은 첫째로 계급주체로서의 국가관념에 대한 비판을 살펴볼 것이며, 두 번째로 국가의 역할을 지식/권력과 개체화라는 논의를 통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고, 세번째로 저항 즉 이행의 문제에 대해 토론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시민사회 대당에 대한 비판을 논한다.

첫째로 풀란차스는 단일한 계급의 지주로서의 국가에 대한 관념을 비판한다. 이것은 국가를 지배계급에 의해 점거된 것, 즉 “국가는 부르주아지의 공동의 관심사를 처리하는 집행위원회”라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대한 비판이다. 이것은 도구주의적 국가론과 기술관료주의적 국가론에 대한 비판이다. 도구주의적 국가는 “각 지배계급은 자신의 요구에 따라 국가를 구성하고 자신의 이해에 적합하게 국가를 마음대로 조작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국가는 계급독재에 불과할 뿐”(SPS 12)이고, 기술관료주의적 국가론 역시 “독자적인 국가권력이 있으며 그 이후에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계급들에 의해 이용된다는 것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분명히 말해서 그들은 계급적 성격이 아니라 국가의 계급적 이용”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SPS 13)

풀란차스는 “국가는 현실역사의 주체가 아니다. 현실의 역사는 주체없는 과정이며, 계급투쟁의 과정이기 때문”(SPS 114)이다. 즉 풀란차스는 “시간적, 공간적 모태(matrix)는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의 산물로 나타난다. 이러한 모태는 역사의 주체로서 행위하는 계급의 산물이 아니라, 과정의 결과”이며, 따라서 “근대민족은 부르주아지의 창조물이 아니라, ‘근대적’ 사회계급들 사이의 세력관계의 결과”(SPS 115)인 것이다. 또한 계급관계의 물질적 응축으로서의 국가는 주체없는 투쟁의 장이다. 이러한 “계급모순은 넓은 의미의 국가요원(다양한 행정, 사법, 군대, 경찰 그리고 다른 국가관료들) 내부의 분열을 매개로 국가에 각인”(SPS 154)되고 특히 국가외부에서 진행되는 민중투쟁도 국가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는 이런 의미에서 “통일된 담론을 창출하지 않는다. … 국가는 권력의 전략과 일치하는 노선에 따라 분절과 파편으로 분열되어 있는 담론”(SPS 32)을 만든다.

이러한 진술은 국가정치가 단순히 계급의 이익을 전일적으로 보장한다는 도구주의적 국가나, 계급중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기술관료주의적 국가론에 대한 비판이다. 이러한 국가론은 특히 정치를 억압과 지배로 파악하게 하는데, 풀란차스는 “국가정치는 미시정치의 충돌의 결과이며, 국가수뇌부의 전체적 의도의 적용이 아니다”(SPS 135-6)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의, 특히 지식/권력과 개체화 논의를 통해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지를 살펴본다.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국가의 기능은 억압/이데올로기의 쌍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풀란차스는 알튀세를 같은 관점에서 비판한다. 억압적 장치와 이데올로기 장치의 구별을 통한 이해는 “국가가 억압과 이데올로기적 주입(그것 이외에는 없다)을 통해 작동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따르면, “국가의 효율성은 어느정도 국가가 금지하고 배제하고 방해하는 무엇에 있거나, 또는 속이고 거짓말하고 모호하게 하고 감추고 그리고 잘못된 것을 믿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국가의 능력”(SPS 30)에 있다는 것이다. 

풀란차스는 “생산관계의 구성에서 그리고 사회계급들의 경계설정과 재생산에서 국가가 수행하는 역할은 국가가 자신을 조직된 물리적 억압의 행사로만 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 국가의 가장 적극적인 역할은 억압+이데올로기라는 쌍으로 한정되지 않는다”(SPS 28)는 점을 지적한다. 반면에 국가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창조하고 변형하고 만든다.”(SPS 30) 그리고 풀란차스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지식과 권력」(SPS 54-62)이라는 절을 통해 이것을 설명하고 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은 “자본주의하에서 특수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 특수성은 자본주의에서 직접노동자가 그의 노동수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점”(SPS 55)과 관련이 있는데 즉 생산관계와 사회적 노동분업의 결과이다. 이러한 분할은 국가의 경우에는 결정적의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국가장치 전체, 즉 이데올로기적 장치뿐 아니라 억압적 및 경제적 장치에 있어서, 국가는 육체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정신노동을 구현하며, 정신노동과 정치적 지배 사이의 따라서 지식과 권력 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실현”(SPS 55-6)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과 지식의 기술을 생산하는데, 풀란차스는 부르주아 통계와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를 예를 들고 있다.

이처럼 정신노동(지식과 권력)은 국가에 물질화되고 육체노동은 인민대중에 집중화된다. 즉 국가는 “정신노동의 중추에서 재생산되는 권력과 지식관계의 모사”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준거틀은 가장 세부적인 것에서도, 정신노동의 중추에서 도출되고 내재화되는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사이의 자본주의적 분할을 재생산”(SPS 58-9)한다.

자본주의 국가는 또한 개인들을 개체화시킨다. 자본주의 국가는 “‘개인’, 즉 자유의 주체인 법적, 정치적 인격으로 원자화”하는데, 구체적으로 “중앙집권화되고 관료제를 확립한 국가는 이 원자화를 창출하고 형식적으로 등가인 개체(국민주권과 인민의지)로 세분화된 사회체(인민-국민)의 통일성(대의제 국가)”을 만든다. 개체화를 상품관계에서 야기되는 법적-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라고 설명하는 입장을 풀란차스는 비판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기초를 “자본유통과 ‘일반화된 상품교환의 영역’에 위치짓고자했다. 즉 ‘사적’ 상품소유자 사이의 교환, 노동력의 계약적인 구매와 판매, 등가교환, 추상적 교환가치등이다. 이것은 상품교환자들을 묶는 체계인 형식적, 추상적 법과 법적 규범의 지형일 뿐만 아니라, 법적-정치적 ‘개인-인격’으로 설정되는 시장사회의 고립된 분자들의 ‘형식적’, ‘추상적’ 평등과 자유가 발생하는 지형”(SPS 50)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풀란차스는 “이것은 개체화의 과정을 배타적으로 상품교환에 위치시키고, 생산관계나 계급관계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이 이해는 계급관계를 국가의 근거로 파악한다고 자부하지만, 개체화를 상품물신성에 기초한 단순히 신비화된 출현으로 간주하는 입장”(SPS 50)이라고 비판한다. 개체화는 생산관계와 사회적 분업에 기초하여 설명되어야 한다. 특히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이 이 개체화에 뿌리를 내리며, 동시에 국가장치는 그렇게 구성된 전체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주형된다”(SPS 65)고 풀란차스는 파악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풀란차스 자신의 초기의 입장에서 “고립효과”의 내용이 법적-정치적 이데올로기 메커니즘 및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에 국한되었다고 자기비판하고 있다.(SPS 69-70)


세 번째로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는 변혁과 관련하여 두가지 점에서 특징적인데 하나는 시원적 본질, 단선적 발전이라는 관념을 조장한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본성 또는 본질을 가진, 그리고 내부 결합관계를 통해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요소들로 구성”(SPS 15)된다고 형식주의적-경제주의 입장은 주장한다. 또한 역사가 경제과정의 합법칙적 발전에 종속된다는 생산력의 우위성에 근거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관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형식주의적-경제주의적 입장은 지속적인 유혹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SPS 15) 그렇다고 풀란차스는 말한다.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의 점거가 혁명이라는 도식이다. 이것은 권력이 국가와 동일시 되며, 따라서 국가에 대항하는 새로운 권력의 탄생을 통해 새로운 권위체의 창출을 주요한 혁명의 전략으로 생각한다. 이것이 레닌의 이중권력론61)이다. 이처럼 “이중권력 전략이 취한 전통적 태도는 국가장치의 파괴”(SPS 263)를 통한 혁명이었다.62)

우선 단선적인 발전관에 대해 풀란차스는 “다양한 생산양식을 관통하여 그 대상(국가)의 변형을 지배하는 일반적 법칙을 설정할 수  있는 국가의 일반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한 한국가에서 다른 국가로의 이행에 관한 일반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SPS 22)고 주장한다. 이것은 계급투쟁에 종속된다. 또한 풀란차스는 국가가 “가장 조그마한 혈관으로 확산되고 권력의 여러 부분들과 모든 계급권력을 둘러싸는(포위하는) 경향”(SPS 37)이 있으며, 이것은 제도적 물질성에 응축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혁명은 단순히 국가권력의 전복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국가권력의 제도적 물질성은 단순히 국가권력의 쟁취에 의해 근저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풀란차스는 이행전략으로서의 “민주적 사회주의론”를 전개한다. 이것은 국가 밖의 민중투쟁과 국가내의 투쟁을 통해 국가 내에서 권력의 센터를 장악할 수도 있고 국가분쇄를 거치지 않고서도 “진정한 질적 단절들”63)을 통해 국가성격의 변혁을 가져온다는 것이다.64)   


  네 번째로 국가/시민사회분리에 대해 풀란차스는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오랫동안 특권을 누려온 것은 경제주의적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국가를 경제관계에서 파악하고 있다. 즉 “경제적인 것의 (결과적으로 정치적인 것의, 국가의)공간과 장을 본질적으로 불변의 것으로 취급하며, 또한 그것들의 가장된 자기 재생산에 의해 그려지는 내재적 한계를 가진 것으로 취급”(SPS 15)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경제와 정치, 토대와 상부구조의 분리라는 관념을 산출한다. 풀란차스는 전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징과 비교하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점유자와 소유자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특징이라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직접생산자가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으로 부터도 분리되어 존재한다. 즉 직접생산자들은 “경제적 소유관계뿐만 아니라 점유관계에서도 그것들로부터 분리”된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와 경제의 공간(자본의 축적과 잉여가치의 생산)사이의 상대적 분리”라는 관념을 만든다. 따라서 이러한 분리는 “국가와 경제의 새로운 공간과 각각의 장”을 만든다. 이처럼 “국가와 자본의 재생산의 공간이 상호 분리되어 있는 것은 자본주의에만 특수”한 것이라고 풀란차스는 주장하며, 이 분리때문에 “마치 국가가 외부로부터 경제에 개입”(SPS 16)한다고 인식되어진다. 따라서 생산관계와 경제영역의 착취의 핵심에서 진행되는 투쟁의 역할을 모호하게 한다.

풀란차스의 관계론적 국가론은 생산관계와 노동분업에 토대를 두는 국가가 계급관계의 응축이고 생산관계의 구성과 재생산에서 상부구조로 파악된 국가가 직접 거기에 현존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관계가 생산관계의 실제적인 구성에 현존하기 때문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관계는 생산관계의 재생산에 있어서 본질적 역할을 수행하며, 또한 생산 및 착취과정이 동시에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지배와 복종의 관계의 재생산과정이 된다. 이로 인한 기본적인 전제사항에 기초하여, 생산관계의 구성과 재생산에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관계를 집중하고 응축하고 물질화하고 구현하는 요소인 국가는 특정한 생산양식에서 특수한 형태로 현존”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관계 내부에서 정치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관계가 현존하는 것은 생산관계의 우위”(SPS 26)를 나타낸다. 풀란차스는 이러한 관점에서 네가지 조류의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우선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위상기하학적인 표현은 다음의 두 가지 잘못된 관념을 산출한다:


첫째로 … 이 관념에 따르면 국가와 경제의 관계는 경제적 토대에 대한 국가의 반작용에 불과하다. 이것은 국가에 대한 전통적인 기계적-경제주의적 인식이다. 두 번째로 사회전체가 본성에 있어 그리고 본질적으로 서로 자율적인 심급  (instance) 또는 수준(level)이라는 형태로 고려된다. … 이는 다양한 생산양식을 산출할 수 있는 생득적으로 자율적인 심급들의 사후적인 조합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심급들의 본질은 주어진 생산양식에서 심급들 간의 상호관계에 선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SPS 15)


 첫 번째 입장은 도구주의적 국가론의 이해이고 두 번째는 알튀세류의 구조주의적 국가론의 이해이다.65) 이러한 이해는 풀란차스에 의해 거부당한다. 첫째로 “모두 인식론적으로 구별되는 대상인 경제의 일반이론, 말하자면 경제적 공간의 초역사적 작동에 대한 이론의 가능성과 정당성을 승인”(SPS 16)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기술주의로 귀결되는데 기술주의는 “생산관계는 궁극적으로 생산력 자체의 기술적 과정의 단순한 결정화-외피-반영에 불과”하다.(SPS 26) 두 번째 비판은 두 이해 모두 국가와 경제적 공간 사이의 관계는 원래적으로 외재성의 관계로 인식한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경제주의에서 비롯되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건축학적 이미지는 사실 사회적 실재의 접합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규정적 역할 또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SPS 16) 이러한 외재성에 대한 비판은 이미 ꡔ독재의 위기ꡕ에서 비판되고 있다:


국가와 사회계급간의 관계는 번번이 외재성의 관계로 설명되어 왔다. 이는 전형적인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지만, 마르크스의 국가이론에도 영향을 주었다. …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 국가는 주체 또는 사물로 간주된다. … 국가를 사물로 보는 것은 도구주의적 개념이다. 여기서 국가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도구, 즉 기제로서 지배계급에 의해 자의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국가가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은 지배계급이 자력으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이 도구를 ‘장악’하기 때문이다.66)   

이러한 입장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두 개의 실체로 상호대립하면서 계급들은 “외부로부터 단순히 ‘영향력’을 산출함으로써 국가에 작용하며 각각의 계급이 국가의 부분이나 전체를 장악”(CD 79)한다는 환상을 가져다준다.67)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에서 풀란차스는 “생산양식은 다른 심급과 관계맺기 이전에 불변의 구조를 가지는 다양한 심급들의 결합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심급은 시작 바로 거기에서부터 심급들의 상호관계와 접합에 의해 구성되”(SPS 17)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풀란차스는 자본논리학파를 비판한다. 그들은 “국가를 자본의 논리”에서 도출, 즉 “자본의 축적과 확대재생산과의 관계에서 자리매김”하려는 입장이다. 이들은 “자본축적이라는 ‘경제적 범주’로부터 자본주의 국가의 고유한 제도를 ‘도출’ 또는 연역”(SPS 51)하는데 풀란차스는 우선 “경제적 기능이 기본적인 기능이 아니며, 경제적 기능만으로는 정치적 제도를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SPS 52)한다. 그는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국가와 계급들 및 계급투쟁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유일한”(SPS 53) 출발점이며, 경제적 기능은 정치, 이데올로기적 관계가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특수한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접합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네 번째는 “자본주의 국가의 기초를 자본유통과 일반화된 상품교환의 영역에 위치 짓고자”(SPS 50)하는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조류(델라볼페, 체로니)와 르페브르 등에 대해 비판한다.68) 풀란차스는 이들의 “국가와 경제의 상대적 분리가 국가와 시민사회의 분리”로 나타나며, “고립된 개인의 욕구와 교환의 장소인 이 시민사회는 그 자체가 개체화된 법적 주체들의 계약적 결사체”로 표현된다. 이러한 시민사회와 국가의 분리는 “상품관계의 핵심에 머물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메커니즘으로 국가의 물신화로 환원된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이해의 근본적 잘못은 “국가의 기초를 자본의 확대 재생산의 전체 순환에서 규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생산관계가 아니라 유통관계와 상품교환에서 구하려는”(SPS 50)한다. 이러한 이해는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특수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는 하지만, 국가/시민사회, 국가/계급투쟁의 어떠한 접합도 불가능하게하며” 또한 “국가에 대한 연구를 빈약”하게 한다.(SPS 51)

(풀란차스 자신이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인) 관계론적 국가론에서 볼 때, 풀란차스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반대하여 만들어진 잘못된 비난 중에서 확실히 국가주의라는 비난보다 더 무지하고 무분별한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정치와 권력의 문제를 국가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국가주의적 시각에 빠져 있다”69)고 비판한 푸코와 신철학자, 특히 마르크스가 사적(私的)사회와 대립으로서 국가를 강조했다고 주장한 굴룩스만를 직접적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풀란차스는 “이것은 생산관계 그 자체가 권력현상이자 계급권력의 기초라는 사실을 망각한 허상의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이라고 응수한다.

풀란차스는 마르크스주의가 국가/시민사회 분리라는 관념을 과학이라는 명목아래 끊임없이 자기동일시하려 했으며, 정치는 경제의 부속물로 취급했다. 또한 이러한 범주속에 다양하게 분출되었던 마르크스주의 역시 정치의 경제로의 종속, 또는 그 역의 형태로 정치를 질식시켰다고 비판한다. 그의 관계론적 국가론은 이러한 의미에서 자신의 마르크스주의 정치복원의 프로젝트를 위한 것이다. 4장 2절은 이에 대한 논의이다.


3. 푸코와 풀란차스의 유사점


관계론적 국가론과 관계론적 권력론에서의 권력에 대한 양자의 비판은 “양적이고, 소유될 수 있다”는 전통적 관념의 폐기라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70) 이러한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에 대한 동의는 여러 측면에서 유사점을 함유한다.

양자는 첫째로 관계론적 권력에 의해구성되는 주체와 두 번째로 관계론적 권력의 본성, 즉 억압적이기 보다는 생산적이라는 특성, 그리고 이러한 권력의 생산물 즉 개체화 논의와 세 번째로 관계적 권력론에서 제기되는 저항, 이행의 문제의 영역에서 유사점을 논의한다. 마지막으로 국가/시민사회 대당이 어떻게 관계론적 권력에 의해 격파되는지를 살펴보고 정치개념에 대한 토론을 한다.

  

주체의 문제와 관련하여 “양자는 개별화의 본성과 기제에 대한 오랜 관심”을 가졌다. 즉 “시원적 주체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어떤기제속에서, 어떤 기제를 통하여 활동과 인식의 주체가 구성되는가를 설명”71)한다. 양자는 “어떻게 주체가 형성되는가?”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푸코는 근대 규율사회에서 새로운 권력테크닉에 의해서 주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였고, 풀란차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국가가 어떻게  일반민중으로부터 계급성을 박탈하여 자신을 정당화시키는가에 주체형성의 문제에 관심을 둔다. 

푸코가 주체개념을 전저작을 통해 비판했을 때, 이것은 “주체형성의 문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이 주체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양식들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것은 푸코 저작 전반에 걸친 주제)”72)을 의도한 것이다. 즉 선험적으로 주어진 “근대주체 죽이기”를 통해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현존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드러나는 상이한 주체, 그러한 주체가 가능한 배경을 고찰한다. 그는 인간이 주체로 되는 특수한 양식에 대한 분석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것의 결과가 규율권력에 의한 개별화와 정상화에 대한 분석이다.

한편 풀란차스는 국가와의 관련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계급주체를 계급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적 법적 주체, 즉 계급관계를 은폐시키는 고립효과를 창출하는가의 관점에서 주체의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입장에서는 주체형성의 문제는 “자본주의 국가의 민중통제 전략속에서 주체(민중)가 어떻게 변형되어 형성되는가”라는 문제제기이며 응답이다. 풀란차스의 개체화는 물질적 준거틀 즉, 자본주의적 사회적 분업의 전제인 공간적 시간적 모태위에 성립한다.:

    

이 기본적인 물질적 준거틀은 사회적 원자화와 세분화의 주형이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과정과 그것의 실천에 의해 구현된다. 생산관계의 전제인 분업을 구현하는 이 준거틀은 테일러리즘의 기초인 연속적이고 동질적이며 분할되고 파편화된 공간-시간의 조직화에 의존한다.(SPS 64)


두 번째로 풀란차스와 푸코 양자는 권력에 대한 관계적 접근을 채택했으며 권력과 전략사이의 연계를 탐구했다. 특히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에서 풀란차스도 투쟁의 우위성을 강조하면서 국가는 투쟁중인 계급세력들이 균형을 이룬 물질적 응축이라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국면적 권력관계를 주장하고 있다.

또한 “양자에게 있어 권력은 생산적이고 능동적”73)인 것으로 주장된다. 푸코가 권력은 생산적이고 정상화하며 능동적인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면74) 풀란차스는 레닌의 국가관(무장력과 감옥등의 특별한 몸체)을 거부하고 있다. 국가는 “장기적으로 억압만으로는 그 지배 기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지배기능에는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지배가 수반”(CD 80)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국가가 계급지배의 재생산을 위해 생산적 역할을 병행해야 한다. 국가의 생산적 역할은 생산관계를 재생산하고 물질적 양보를 조직하고 권력블록을 통일시키고 비계급적 관계에 대해 계급적으로 적당한 지위를 부여하고 지식을 생산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공간적 시간적 모태를 형성 하는 등 능동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권력과 지식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유사성을 지닌다. 푸코의 권력론의 특징이 지식-권력론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은 권력이 지식과 맺는 관계를 그의 분석의 주요 관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풀란차스는 정신/육체노동의 분리를 통해 국가에 응축된 지식이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계급지배의 재생산을 돕는다고 주장한다. 풀란차스는 푸코의 권력이 효과적 지배를 위해 지식과 결탁한다는 권력/지식 논의를 이어받아 , 지배의 효과적 주체로서의 국가는 지식의 응집체임을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장치는 생산 과정으로부터 분리되며, 기본적으로 정신노동을 결정화한 것”이다.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장치는 말할 것도 없고, 군대, 재판소, 행정기관과 경찰이라는 자본주의적 형태의 국가장치 역시 지식과 담론의 작동 및 그것에 대한 통제를 전제”로 한다. 그리고 국가는 과학-지식을 독점하여 자본주의 국가의 특수한 담론을 형성하고 지배를 확장한다.

   

세 번째 양자의 유사점은 “권력과 국가가 사회에 편재되어 있다”는 논의에서도 발견된다. 푸코에게 권력이란 “모든 사회관계에 내재 즉 권력관계란 다른 유형의 관계들 경제과정, 지식관계, 성적관계 속에 내재되어 있다”75)고 본다. 또한 푸코는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으며, 그렇지만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그렇기 때문에 저항은 권력에 대해 외재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풀란차스도 권력관계는 생산관계의 구성에 외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며, 국가는 이러한 사회관계의 응축으로서 사회관계를 반영하고 그리고 그 사회관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한다고 본다. 풀란차스는 또한 “국가는 하나의 관계이자 힘의 관계의 응집으로서 계급국가로서의 본성 자체에 의해 국가내부에 계급적 모순을 재생산”(CD 82)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항은 관계 내부 즉 국가와 제도에 내재한다.

저항에 대해 양자는 미시적 반란, 즉 일반대중운동에 관심을 갖는다. 푸코는 “다만 한 가지 투쟁에 대한 단언으로 권력관계의 처음과 끝을 전부 설명할 수 없”기에 “투쟁에 대한 논의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특정한 투쟁의 장에서, 누가, 어떠한 투쟁에, 언제,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어떠한 목적을 갖고서 투쟁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76) 한다고 주장한다. 즉 거시적 틀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저항의 장소와 다양한 저항의 형태에 관심을 기울인다.  풀란차스도 남부유럽의 군부독재의 몰락에 자극을 받아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민중들이 독재정권을 ‘내부로부터’ 전복시키기 위해 실제로 국가기구에 참여하는 것만이 독재정권의 내부모순을 첨예화시키고 그 속에서 동맹세력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라는 점이다. … 정면 공격만이 투쟁의 전부는 아니며, 또 내적 모순의 격화가 독재정권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내부로부터의 전복’과 같은 여하한 전략을 끌어내는 것도 잘못이다. 내적 모순은 민중이 국가기구로부터 얼마간 떨어져서 영구투쟁을 지속하고 국가기구내의 ‘동요하는’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할 때 가장 잘 표출된다. 정확히 바로 이때 민중투쟁의 성과가 정권의 중심부에서 최고로 내면화된다.77)  

국가 밖에서 존재하는 민중투쟁이 언제나 국가에 내면화된다는 풀란차스의 진술은 “민중투쟁이 전면적이고 정면적인 봉기형식을 취하지 않을 때조차도 최종적으로 결정적 역할”(CD 85)을 한다. 그리고 파워블럭과 노동자 계급간의 모순은 “부르조아적 국가내에서는 기본적으로 ‘얼마간 떨어져서’, 즉 국가내의 순전히 중재된 재생산에 의해 표출”(CD 104)된다.

  

마지막 유사성은 국가/시민사회의 분리에 대한 비판이다. 푸코는 권력이 편재되었을 뿐 아니라 개인을 배려하는 사목권력을 통해 정상화시켰으므로 또 다른 사적 영역의 외재적 장에 대한 관념이 필요하지 않는다. 푸코의 이와같은 사회체 전체를 가로지르는 관계적 권력에 대한 관념은 국가/시민사회의 대당은 허구적이다. 관계론적 국가론에 근거하는 풀란차스 또한 국가/시민사회의 대당설정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유래하고 지배계급의 전략에서 기인하는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실제의 운동과정은 국가가 이미 경제관계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 역 또한 그러하다.

 양자는 국가/시민사회분리에 대한 비판을 통해 정치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마련한다. 푸코는 중심화하는 몸체 즉 국가라는 실체에 대한 소멸을 통해 진리의 정치에서 제기하는 문제설정을 기각한다. 즉 그는 권리의 주체, 억압의 주체, 중심으로 환원된 국가 주체를 거부하고 미시영역에서 다차원적 다주체들의 실천과정에 주목한다. 풀란차스는 또한 국가 정치를 주장한다. 즉 단일한 실체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혼돈되고, 비일관된 국가 내의 계급관계 속에서 계급들의 다양한 세력관계의 이론화를 통해 정치의 가능성을 사고한다.


Ⅲ.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과 수용


1.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

풀란차스의 푸코비판은 관계론적 국가론과 관계론적 권력론의 근본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관계론적 국가론의 핵심은 생산관계와 노동분업에 근거하는 계급관계의 물질적 응축으로서의 ‘국가’의 중심적 역할에 대한 승인이다. 따라서 변혁은 국가내에서의 변혁, 즉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에 대한 계급역관계에 대한 점차적 변경이다. 국가․계급중심성을 강조하는 관계론적 국가론의 진술은 관계론적 권력론의 입장에서 볼때, 경제적 환원주의․(계급․국가)중심성으로 회귀한다. 이제 마르크스주의 비판에서 드러났던 모든 유사점은 형식적 사이비 유사임에 불과하다.78)

이 절은 풀란차스의 푸코비판을 통해 관계론적 국가이론과 관계론적 권력이론의 차이점을 앞서 설정했던 네 가지 범주, 즉 주체․권력(풀란차스에 있어서는 국가주체, 또는 국가내의 주체 나아가 국가의 토대), 권력(국가)의 권력행사 방식, 저항(이행의 문제), 그리고 정치의 문제라는 문제속에서 살펴본다.


풀란차스와 푸코는 “주체없는 의도성”으로서의 권력개념을 제기하고 있으며, 따라서 세력관계의 다양한 전략과 주체형성에 주목했다. 그러나 푸코가 권력관계에 따라 미시적 영역에서의 다양한 형태의 주체형성을 상정했다면, 풀란차스는 계급주체에 한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푸코는 평민정신(Plebeian Spirts)79)을, 풀란차스는 계급본능80)(Class Instincts)을 저항의 근거로 제시한다.81) 또한 “의도는 있으나 주체없는 과정의 장”을 푸코는 사회체 전체․관계자체에 개방하고, 의도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반면, 풀란차스는 국가에 한정시키고 있으며, 의도자체의 결과를 계급의 이익실현의 음모로 한정하여 파악하고 있다. 풀란차스에게 있어서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는 국가의 기능은 결정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풀란차스는 국가가 계급지배의 전사회적 확장과 효과적 지배를 위해 행사하는 권력에 주목한다. 그것은 국가가 정신노동을 국가에 집중시켜 지식을 독점하는 결집체로 나타나게 하고82) 법적․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개체화시키는 이유이다.83) 따라서 국가는 생산관계와 노동분업의 물질적 기초에 종속되며, 계급투쟁에 반응한다.84) 반면 풀란차스는 푸코가 “생산관계와 노동의 사회적 분업에 뿌리박은 권력(국가)의 물질성(materiality)에 대한 어떤 해석도 거부”(SPS 67)한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푸코는 “계급들과 계급투쟁을 현저하게 과소평가하고, 국가의 중심적 역할을 심각하게 무시”(SPS 44)한다.85) 따라서 푸코의 다이아그램은 자본주의의 특수이론으로서의 풀란차스의 국가권력과 비교된다. 푸코에 있어 “권력의 준거틀은 어떤 특수한 장의 구체화에 선행하고 그리고 그것은 다이아그램(diagram; 판옵티콘 panoptism) 즉 각 장(field)에 내재한 추상적 기계(abstract machine)를 구성”(SPS 67-8)한다. 반면에 풀란차스에 있어 “제도와 권력실천의 주요 물질적 틀인 이러한 공간적 시간적” 장소(spatio-temporal matrices)가 권력의 준거틀이며, 따라서 푸코의 “인식론적 기능에서 구조주의에 의해 사용된 구조의 개념과 유사한 다이아그램(이것은 각 권력 상황에 내재)”(SPS 98-9)은 풀란차스에 의해 “경제적인 것”에 권력의 준거틀이 없다고 비판받는다.86) 따라서 풀란차스는 우리가 푸코의 논의에서 두 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출발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선, [푸코를 이해할 때] 우리는 현대권력의 제도적 종별성(specificity)에 근거한 ‘경제적인 것’의 정확한 개념을 가져야만 한다. 푸코는 경제적인 것에 이 종별성을 관련시키려고 하나, 대부분 마르크스주의와 경제적인 것에서 제도의 물질적 개반을 포기한다. 두번째로 국가와 생산관계 및 노동의 사회적 분업 사이의 관계는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모태의 수단에 의해 모든 그것의 복잡성에서 이해되어져야만 한다.(SPS 68-9)

두번째로 풀란차스는 앞서의 논의에 근거하여 푸코를 비판한다. 푸코의 주체는 경제적인 틀을 모태로 형성되지 않으며, 사회적 지배도 다이아그램이라는 “추상적 기계”이므로, 풀란차스의 계급의 이익관철의 기제로 파악된 국가와는 달리 국가의 기능이 뚜렷한 목표를 가지지 못한다. 풀란차스와 푸코의 유사성은 정상화, 개별화와 권력테크닉의 생산성에 있다. 그러나 풀란차스가 상정하는 개별화 권력은 계급권력이므로 통치테크닉의 지배방식으로 억압성(계급억압)에 대해 강조한다.87) 따라서 풀란차스는 푸코의 규율에 의한 억압의 내면화논리88)는 “정상화 규율의 측면인 피지배 계층의 복종을 물질적으로 조직하는 권력테크닉의 한 측면을 밝히는 장점”(SPS 79)은 있으나, “권력행사에서 법의 최소한의 역할 조차 과소평가”하고 따라서 “근대 국가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억압적 기구(군대, 경찰, 사법기구 등)의 기능을 이해하는데 실패“(SPS 77)한다고 비판한다. 즉 푸코는 ”물리적 폭력과 동의의 문제까지 흡수하는 권력테크닉에 전기능적(omnifunctional) 지위를 부여“89)(SPS 79)받는데 왜냐하면 ”규율이 복종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할지라도, 어떻게 투쟁의 존재를 허용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존재“(SPS 79)하기 때문이다. 즉 전 사회적 규율과 그에 대한 동의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저항은 관념으로 존재할 뿐이다.

풀란차스는 국가가 합법적인 물리적 폭력을 독점하고 있으며, 폭력은 이전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국가에 의해 독점된 물리적 폭력은 권력의 기술과 동의의 메카니즘의 기초이다. 즉 동의 자체는 이미 폭력을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국가는 계급국가이므로 권력의 물질적 조직화를 계급관계로 파악해야하며, 이때 조직된 물리적 폭력은 계급관계의 존재와 재생산의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계급국가에 내재된 법 또한 본질적으로 억압의 조직자 즉 물리적 폭력의 조직자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법은 지배의 유지라는 차원에서 적극성과 폭력성을 드러낸다.(SPS 80-85 참조)90) 그러나 풀란차스는 ”계급분할된 사회에서 항상 법 보다 선행하는 것은 합법적 폭력과 물리적 억압의 실천가로서의 국가“(SPS 85)라고 덧 붙인다. 따라서 투쟁은 항상권력의 기초이며, 투쟁의 근거는 계급관계에서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세번째로, 저항의 문제와 관련하여 풀란차스는 푸코를 비판한다. 풀란차스는 푸코의 논리적 궁지(impasse)는 ‘저항’의 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SPS 79)는 것인데, 이것은 권력에 대한 그의 독특한 진술 때문이다. 풀란차스는 주장하기를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91)는 푸코의 테제는 권력이 있는 곳에 “왜 항상 저항이 있어야 하는지? 저항은 어디에서 나오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SPS 149)를 밝히지 못함으로써 저항의 기반을 제공하는데 실패했다. 즉 중심으로 환원되지 않고 추상적 기계에 의해 설명되는 권력은 “본질화, 절대화 되는 반면, 저항은 권력에 대한 이차적인 반사적 행위로 축소”92)된다.93) 따라서 푸코는 저항의 근거를 “권력에 대해 근본적으로 외재적(external)인 어떤 것”(SPS 150)을 상정하는데 그것이 “평민(plebs)”이다.94) 풀란차스는 “‘평민’에 대한 주장도 저항의 진술처럼 근거없는 것”이며 또한 “자연적이며 원시적이고 평민적 정신의 산물”(Jessop, State Theory, p. 288)인 평민/저항은 그들이 그들 자신의 전략을 채택하자마자 권력에 통합되고 분해“(SPS 150-1)된다. 왜냐하면 “‘평민’ 스스로 전략을 설정한다는 사실은 평민을 실체화된 권력에 ‘통합’시키고, 평민을 권력에 대해 절대적인 외부(실제로는 비장소;non-site)로부터 사라지게 하고 다시 권력망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SPS 153)95)

  반면 풀란차스는 푸코와 동일하게 권력/저항의 쌍을 상정하나 계급과 계급의 응축인 제도적 물질성을 전제하고 있다. 그는 “권력의 한계는 권력자체의 기제속에 내재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 기제는 피지배계급을 언제나 투쟁으로 끌어 들이고 응축시키고, 그들을 완전히 흡수 통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급적대에 근거하는 “계급투쟁은 언제나 권력제도와 기구보다 우선적”(SPS 149-52)이다.

  저항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정치전략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푸코의 사회적 관계로서의 권력과 권력/저항의 쌍이라는 개념은 중심(국가, 정당 등)으로 환원되지 않는 저항의 다원성을 주장한다. 즉 푸코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정치정당과 같은) 정치적 조직을 지배하는 것에 의해 동등하려는 시도를 거부해야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또한 국가체계 속으로 재흡수로 이끌어질 것이기 때문”96)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풀란차스는 “국가의 사회화”(계급관계의 응축으로서의 국가)에 대한 논의점을 통해 국가 내부의 단절을 이행의 정치전략으로 사고한다. 국가는 외부적인 민중 투쟁 조차도 이미 그 몸체에 계급관계로 각인하는 사회체이다. 그러므로 정치전략은 또 다른 몸체의 권력을 통한 현존국가의 소멸이 아니라 존재하는 국가 내에서 국가의 점유를 꾀해야한다. 그러나 제도적 물질성으로서의 국가는 계급의 역관계를 국가기구에 체화시키고 있으므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단순한 국가권력의 전환”에 의해서가 아니라 즉 이행은 “단지 국가기구의 지배자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구의 실제적 조직구조의 급격한 변환”97)이며 이것은 국가기구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전략에 의해 가능하다. 따라서 푸코와 달리 중심에로의 접근이 오히려 강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자. 푸코와 풀란차스 양자는 앞에서 보듯, 국가/시민사회의 관념을 비판한다. 그런데 계급․국가라는 입지점을 가진 풀란차스로 인해 양자는 차이를 드러낸다. 푸코는 권력과 저항의 편재성과 권력테크닉의 전사회적 규율화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정치영역인 중심적 기구와 그밖의 것에 대한 영역설정을 거부한다면, 풀란차스의 관계론적 국가론은 정치적인 것의 사회적 편재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 국가/시민사회의 대당을 비판한다. 이것에 대한 논의는 다음절에서 다룬다.

2. 푸코 수용과 관계론적 국가론


“푸코와 풀란차스의 유사점(2장 3절)과 차이(3장 1절)”의 논의를 통해 이미 풀란차스의 푸코 수용과 후기 풀란차스(구조주의 국가론에서 관계론적 국가이론으로 전환)로의 이행을 암시 받는다. 왜냐하면 앞의 두 절에서 이미 푸코의 수용과 비판이 논의 되었다. 이 절은 푸코의 논의가 계급의 관점을 유지하는 풀란차스에 의해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되었는가를 검토한다.98) 개체화, 지식/권력, 생산성/억압성, 그리고 국가/권력의 범주에서 논한다.

첫째로 풀란차스는 개별화 논의에서 푸코를 참조한다. 푸코는 권력의 실천에 의한 정상화를 분석한다. 이것은 생체권력에 의해 신체에 각인 되는 해부정치와 개인의 삶을 보장하는 생체정치(사목권력)에 의해 보증된다. 풀란차스는 푸코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는 푸코의 독창적 공헌{이것은 “특정한 권력의 제도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제공”(SPS 67)하는데}이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주체의 신체성을 형지우는 권력 행사의 [단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의 물질성에서 표현된다”(SPS 70)99)는 것을 통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곧 풀란차스는 푸코를 비판한다. 왜냐하면, 푸코가 권력의 이러한 물질성을 생산관계와 사회적 분업에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권력(개체화)의 준거틀을 판옵티콘 또는 각각의 장에 내재하는 추상적 기계(다이아그램)로 본다.(SPS 67-8) 풀란차스의 개체화는 “자본주의적 신체에 현존하는 생산관계와 사회적 분업의 물질적 형상이며 또한 이 개체화는 이러한 (정치적)신체를 창조하고 복종시키는 국가의 실천과 기술의 물질적 효과”(SPS 67)이다. 이러한 진술은 세부적으로 관찰되어야 한다.

우선 사회적 분업(특수한 자본주의의 시간적 공간적 모태)이 개체화의 기반이지만 “이러한 생산관계와 노동구조의 구조가 세분화된 사회체의 특정한 형태, 즉 개체화를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SPS 64) 이것은 테일러리즘과 같은 연속적이고 동질적이며, 분할되고 파편화된 공간-시간의 조직화인 노동과정과 그것의 실천에 의해 구현된다. 따라서 그 구조적 준거틀과 실천에 조응하는 상이한 신체성이 주조된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적 개체화와 노동자 계급적 개체화가 있으며, 또한 부르주아적 신체와 노동자 계급적 신체가 있다”(SPS 75) 이러한 통찰은 푸코의 정상화에 대한 구체화로 이해된다.

두 번째로,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이 이 개체화에 뿌리를 내린다. 이것은 국가장치가 그 개체화에 맞도록 구조화됨을 의미한다. 반면에 국가는 단지 사회적 분업의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인민대중의 고립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100) 이것은 이데올로기적 작용을 통해서 강화되는데, 이데올로기적 실천을 단순한 진리/허위의 대당속에 위치시켜서는 안된다. 즉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기본적 형태는 이미 국가의 실천에 물질화 되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국가 장치와 권력의 실천에서 직접 구현되는 사회적 분업으로부터 분비되는 기본적이고 ‘자연발생적’ 형태를 가진 이데올로기”인 것이다.101)


두 번째는 지식-권력의 논의에서 푸코를 수용한다. 우선 푸코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동전의 양면으로 파악한다. 그래서 그는 첫번째로 “지식의 장이 상관적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면 권력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관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도 이것을 구성하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102)고 주장한다. 두 번째로 그는 두 가지 유형의 지식인 즉, 보편적(universal) 지식인과 전문적(specific) 지식인을 제시한다.103)

푸코의 첫 번째 논의와 관련하여 풀란차스는 이러한 푸코의 논의를 직접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사회적 분업이라는 문제설정에서 이것을 제기한다. 이것은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이라는 사회적 분업에서부터 지식권력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데, 이러한 분할영역의 집중점은 국가이다.104) 즉 국가는 이 분리에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며 이것은 국가의 물질성으로 표현된다. 즉 국가장치 전체, 즉 이데올로기 장치 뿐 아니라 억압적105) 및 경제적 장치에 있어서, 국가는 육체노동으로부터 분리된 정신노동[지식과 권력]을 구현“(SPS 55)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적 형태의 국가장치(이데올로기 장치 뿐 아니라 군대, 재판소, 행정기관과 경찰 등)는 지식과 담론의 작동 및 그것의 통제를 행하고 이러한 지식과 담론으로부터 육체노동의 측면에 위치하는 인민대중은 배제된다. 이처럼 다양한 국가장치와 그 담당자에 의해 지식[과학]이 영속적으로 독점된다. 따라서 노동의 사회적 분업의 특수성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에서 지식과 권력의 유기적 관계는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실현된다.

두 번째 지식인에 관해 논의한다. 푸코의 권력/지식의 논리를 계급국가의 관점에서 수용한 풀란차스는 “지식인”에 대한 논의에서도 푸코의 관점을 변형한다. 푸코는 “‘보편적인 것’, ‘전형적인 것’, 또는 ‘만인에게 옳고 참된 것’”106)을 이야기하는 진리의 담지자, 위대한 작가로서의 보편적 지식인과 “[단지] 몇 명의 동료와 더불어 삶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을 파괴할 수도 있는 권력을 가진 사람, 국가에 봉사할 수도 국가에 반할 수도 있는 영혼의 찬미자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요리하는 전략가”107)로서의 전문적 지식을 구분하면서 2차 대전 후 전문적 지식인의 등장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문적 지식인의 지도적 역할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사건들(events)을 통해서 대중(the masses)이 지식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국지적이고 대중적인 형식의 지식이, 제도와 현대적인 지식인이 그 안에서 활동하는 일반화된 ‘진리의 체계’와 연결된 권력의 효과에서 점차 신용을 잃고 자격을 빼앗기고 또는 비합법적인 것으로 간주”108)되었기 때문이다.109)

풀란차스는 전문적 지식인을 국가 내에서의 지배계급인 부르주아지와 연관시킨다. 부르주아 계급의 권력을 대표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부르주아지가 다양한 직업과 정신노동에 특유한 전문화를 전제로 한 지형에 기초하는 한, 부르주아지는 그 자신이 지배계급으로 형성되기 위해서 유기적 지식인 집단을 필요로 하는 역사적 최초의 계급”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기적 지식인은 “지배계급(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를 조직하는”(SPS 61)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풀란차스는 푸코와는 달리 자본주의의 노동의 분업에 따른 유기적 지식인에 주목하였을지라도 그는 이를 계급지배의 토대에 따라 변형하여 부르주아지의 적극적 역할에 주목한다.110)


풀란차스가 푸코를 인용하는 세 번째 논의는 권력의 생산성이라는 푸코의 통찰이다. 권력은 주권자에 의해 소유되고 그의 지배를 위해 억압(때로는 이데올로기의 수단을 동원해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고 생산한다. 풀란차스는 푸코의 입장에 동의한다. 관계적 권력을 사고하고 국가의 균열을 이론화한 풀란차스는 생산관계(계급관계)를 재생산하고, 지배계급을 통일시키고 피지배 계급에 물질적 양보와 개체화를 통한(국가)권력을 상정했다.111)

그러나 계급이익의 담지자로 파악한 풀란차스의 관계론적 국가는 푸코의 생산적 권력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112) 왜냐하면 사실 풀란차스에게 있어 그 생산성은 계급지배의 확립을 위한 일정한 타협전술 즉 최소의 비용전술과 효과적 지배기술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란차스는 계급사회의 지배로서의 국가의 (내재된) 폭력성에 더 많은 주목을 하고 그 핵심기제로 “법”을 지목한다.

“자본주의적 법과 그 특수성(추상성․보편성․형식성)의 뿌리는 생산관계와 사회적 분업에서 탐구”(SPS 86)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공질서의 조직자와 시민사회 속에서의 자유롭고 평등한 법적 주체라는 관념으로서의 법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처럼 법은 외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메카니즘에 이미 내재되어 있으며, 이것은 자본주의 국가의 제도적 물질성에 각인된다. 따라서 법의 역할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노동분업의 강화와 관련있다. 그런데 계급사회에서 계급적대의 핵심은 폭력이고, 따라서 물리적 폭력이 공공연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폭력은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SPS 80)한다. 그러므로 지배 기제로서의 법의 핵심은 폭력이며 따라서 법은 억압의 조직자, 물리적 폭력의 조직자이며 죽음을 관리한다. 그러나 법은 부정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 정당성의 법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인민에게 발언을 허용할 뿐 아니라 … ‘어떤 다른 무엇’-행위-적극성이 있다는 식으로”(SPS 83) 적극적 행위를 허용하고 (지배의 틀을 유지하는 한에서, 아니 지배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피지배 계급들의 권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법의 이러한 기능은 결코 국가의 계급지배의 모든 수단일 수 없다. 국가는 국가이성이라는 명분 하에 “국가의 활동, 역할, 장소는 법과 법적 규정을 넘어서 멀리 뻗쳐”(SPS 84)진다.

      

마지막으로 풀란차스는 국가/시민사회에 대해 논의한다. 권력에 대한 푸코의 논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가 사회적 관계의 다차원성으로서의 권력과 두 번째는 권력의 편재성과 권력테크닉의 전사회적 확산이라는 차원 즉 규율, 다이아그램이라는 측면에서의 권력의 작동이다. 전자에서는 주체 없는 의도로서의 권력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고, 후자에서는 모세혈관 곳곳에서 진행되는 저항의 다원성과 저항의 목표 즉 규율의 변경에 관한 논의를 할 수 있다.113)

풀란차스는 두 가지 차원 모두에서 푸코를 수용 비판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관계를 국가 안으로 끌어들여 국가 내에서의 관계를 사고하고 있으며, 따라서 국가는 세력관계의 응축이다. 응축으로서의 국가는 계급투쟁에 종속되며 따라서 국가의 정책은 단일한 계급이 아니라, 다계급의 관계의 산물로서 (단일한 계급의 의도가 관철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주체 없는 과정이다. 이처럼 풀란차스는 푸코의 관계로서의 권력개념을 수용하되, 계급 관계로서의 계급권력으로, 그리고 사회라는 차원을, 사회관계가 응축된 것으로 파악된 국가라는 영역으로 논의를 변경한다.114)

두 번째로 풀란차스는 푸코의 권력의 편재성 논의를 국가(계급)권력의 편재성의논의로 변경한다.115) 왜냐하면 권력관계는 생산관계와 노동분업에 그 물질적 토대를 두고 있으며 국가가 자본주의적 관계의 응축이므로 권력관계는 사회에 편재된다. 따라서 국가는 계급투쟁의 응축이고 이 투쟁에 조응한다. 그리고 계급투쟁은 국가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국가를 넘어 펼쳐진다. 왜냐하면 생산관계에 내재된 계급관계를 국가는 모두 포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풀란차스의 발본적인 저항의 대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이다.

이상의 이러한 관점에서 양자는 국가/시민사회, 토대/상부구조, 사적/공적 영역의 대당을 해체하고 있다. 그런데 푸코의 해체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모든 중심성의 해체와 모든 관계에 편재된 권력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풀란차스의 입장은 논쟁을 제기한다. 그는 생산관계․노동분업의 중심적 근거를 토대로 계급과 계급투쟁으로 모든 것을 환원한다. 심지어 그는 남성․여성의 문제를 계급관계에서 중층 결정된다고 본다. 특히 그는 국가를 계급관계의 물질적 응축이지만 무정형적인 것이 아니라 계급적 통일성이 유지되는 부르주아지의 지배가 관철되는 기제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논의는 그가 그토록 비판했던 계급국가의 사회의 관여라는 외재성의 비판의 여지를 남긴다. 따라서 그는 국가의 생산관계의 내재성․편재성과 계급국가로서의 중심성 그리고 이에 따른 이행의 상이한 전략의 접합을 과제로 남긴다. 이러한 문제가 미해결된 채 맞은 그의 요절은 그에게 상이한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제솝은 풀란차스를 “자신[풀란차스]이 인정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영향을 푸코에게 받았으며 훨씬 덜 마르크스주의적이었으며 훨씬 더 푸코적이었다”116)고 평가하면서도 그가 경제환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반면 우드는 “새로운 ‘진정’ 사회주의자(New 'True' Socialism: NTS)의 최초의 대변자라기 보다는 그들의 선구자에 속하는 인물 중 최후의 사람117)”이라고 파악한다. 풀란차스에 대한 평가의 기본관점은 (경제환원론자로의 회귀냐 사민주의자냐라는) 이분법적으로 평가하기 보다는 스스로가 지적했듯이 “정통”이라는 권위를 부정하고 구체적 시간과 공간의 모태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전화노력의 적극성에 맞추어져야 한다.     






Ⅳ. 풀란차스와 푸코에게 있어서의 ‘정치’


1. 푸코의 진리의 정치비판


푸코의 관계론적 권력론은 “진리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다. 진리의 정치학이란 과학적 진술의 정치학(the politics of the scientific statement)118)으로 칭하는데 이것은 담화의 주체를 상정하고 그 주체는 진리(과학)의 소유자로 표상 한다. 진리의 정치(근대정치학)는 근대 군주제도의 성립과 관련 있다. 즉 “군주제는 봉건적 권력의 대행자들 사이에 벌어진 끊임없는 투쟁을 배경으로 성립”하였고, 따라서 “군주는 전쟁과 폭력과 약탈을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심판관”이다. 군주의 역할은 “사법적 기능과 금지 기능을 갖춘 권력 기구를 완성”하는 것이고 그래서 “주권, 법, 금지는 권력을 대표하는 체계”이고 이것이 “권리의 이론”(theory of right)이라는 틀로서 이론적 모양을 갖추었다. 이러한 문제 설정은 오늘 날까지 중요한 정치학의 문제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주권이나 법률, 금지라는 주제에 얽매여 있는 정치철학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왕의 머리를 잘라 버려야 합니다.(cut off the King's head) 정치학 이론에서는 아직도 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119)


푸코의 관계론적 권력개념은 이러한 “권리의 이론”으로서의 “진리의 정치”에 대한 비판이다. 진리의 정치비판은 왕의 머리를 자르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첫 번째 주체의 문제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 주체가 채용한 권력의 기제 즉 지식과 권력 그리고 권력테크닉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고, 푸코의 진리정치 프로젝트를 비판하고자 한다. 그것은 첫째로 권력에 대한 설명에 있어 기능주의자라는 비판을 살펴보고 두 번째는 저항의 문제에 대해 세 번째로 규범의 문제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비판을 다룬다.


우선 진리의 정치학은 국가 또는 주권자를 진리의 심판관으로 상정하고 이데올로기적, 제도적 처벌권을 가지고 허위라고 규정된 것을 억압하고 금지한다. 즉 진리의 정치학은 타자를 진리/허위의 대당에 의해 억압한다. 푸코는 이러한 진리담론을 비판한다. 따라서 “진리의 정치학” 비판의 “정치적 과제는 오류나 환상, 소외된 의식이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진리 그 자체”120)에 있다. 푸코에 있어서 진리는 그 자체로 진실인 것이 아니라 허위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인 것이다.121) 그 기준은 주체․주권․국가․계급 등으로 표상 된다. 푸코는 이러한 주체를 폐기한다. 주체의 폐기는 근대적 의미의 국가이론의 폐기로 이어지고 “그것은 사회학, 심리학, 범죄학 등등으로 대체된다. 그 왕은 목이 없고, 정치세계는 실제적 중심을 가지지 않는다.”122) 거대한 용기에 담겨져 있던 권력 또한 분산되고 파편화된다. 그리고 권력 자체가 새롭게 정의된다.


이제 푸코는 새로운 주체 또는 새로운 권위체를 설정하거나, 또는 형성하는 메커니즘에 대해 말한다. 이것은 권력에 대한 새로운 문제 설정이다. 푸코는 진리/권력쌍의 오래된 동맹을 비판한다. 즉 진리는 그 자체가 권력체계의 도움에 의해 인정된다. 반대로 권력은 진리(정의)의 담론을 통해 자신의 보편성을 강요한다. 정치세계는 이러한 진리와 권력의 메커니즘이다:


진리는 하나의 진리가 만들어지고 분배되고 통용되고 작용하도록 만드는 질서화된 절차의 체계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권력 관계와 순환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권력이 진실을 생산하고 떠받쳐 주고 있으며, 역으로 진리는 권력의 효과를 유도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진리의 체계라는 말이 그래서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의 체계는 단순히 이데올로기적이라거나 상부 구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체계는 자본주의를 이루고 발전시켜 가는 하나의 조건이다.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진리의 체계는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123)


진리의 정치학은 권력과 권력기제의 결탁을 통해 진리 제정권과 진리자의 옹립에 대한 담론이다. 이것은 두 가지 점에서 특징적이다. 우선 진리의 정치학이 지식과 지식인을 자신의 통일성 확립에 동원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권력테크닉을 발전시키고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전자와 관련하여 푸코는 더 이상 진리의 정치학이 상정하는 정치주체는 선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푸코는 “인간이 주체로서 구성되는 서로 다른 양식의 역사를 서술”124)함으로써 진리의 정치학의 주체가 권력관계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푸코의 권력에 대한 서술은 “양적으로 존재하며, 정치주체의 귀속되어 주체의 의지에 따라 질서유지와 억압에 봉사”한다는 근대권력이론, 근대주체이론 나아가 진리의 정치비판이다.

또한 이러한 주체비판은 지식과 지식인의 역할을 설명한다. 지식은 권력을 배제된 근원적인 진리의 이데아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장이 아니라, 권력과 동일한 영역에서 권력/지식으로 존재한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이 달라지면, 지식이 변한다.”(another power, another knowledge)125) 따라서 푸코는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 체계”에 주목한다. 그러므로 담론의 장, 지식의 장에서 우리는 지식의 본질이 아니라 권력, 권력의지를 밝혀내야한다. 지식인은 권력/지식에 동원된다. 이때의 지식인은 전통적 지식인이 아니라, 전문지식인이다. 후자는 전자가 보편적 지식의 표상인 반면, 특정한 삶의 영역에서 자신의 일에 전문적인 사람들을 뜻한다. 그런데 푸코가 보기에 전문적 지식인은 단순히 권력에 채용된 도구가 아니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푸코의 진술은 전문적 지식인도 권력관계의 장에 위치지워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코는 오히려 국부적 영역에서의 이들의 저항의 적극적 가능성을 얘기한다. 왜냐하면 각각의 공간에서 “진리의 체계”에 대항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푸코에게 전문적 지식인이 ”현재 진리가 작용하고 있는 사회, 경제, 문화적 주도권의 형태로부터 진실의 힘을 분리“126) 하는 가능성을 소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인의 역할은 “서로 다른 지식에 수평적 관계를 맺어 주었다거나, 정치적 초점이 다른 여러 가지 투쟁의 이슈들을 유기적으로 연관되도록 중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법관이나 정신과 의사, 의사나 복지 정책 담당자, 그리고 실험실에 처박혀 있는 기술자, 나아가서는 사회학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상호 교류와 지원을 통해 지식인이 이끌어 가야 할 거대한 정치적 운영 과정에 참여”127)하는 것이다.

이처럼 푸코는 “‘경제적, 전략적 영역에 있어서 테크닉-과학적 구조들’의 확산에서 야기되는 변화, 과학적 합리성의 형식의 성장과 확산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지적 활동과 새로운 관직 형태의 등장은 ‘지식인이 정치화되는 전반적 과정’”을 보여준다. 이제 지식인은 정치적 상품인 것이다.

푸코는 역사의 과정을 진보 또는 가치(자유 평등 등)의 실현으로 파악하고 권력행사가 폭력의 감소와 동의 (다른 의미에서 헤게모니)의 확산으로 파악하는 접근법을 거부한다. 그는 “개인과 인구를 겨냥한 권력의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과 발전, 그리고 정치적 합리성의 새로운 형식들의 접합을 포함하는 통치화라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이해”128)한다. 이것은 국가/시민사회, 폭력/동의의 대당을 설정하고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이라는 현대사회의 설명방식을 발본적으로 비판한다. 이것은 정치사회를 국가에 한정하고 정치적 실천 자체도 국가에로의 실천(혁명)으로 설명에 대한 비판이다. 나아가 개별화(정상화, 규격화)되는 개인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모세혈관의 말단에서 전개되는 저항과 전략의 새로운 차원을 또한 제기한다.


푸코의 “새로운 진리의 정치”에 대한 프로젝트는 세 가지 점에서 비판될 수 있다 첫번째는 권력에 대한 기능주의적 설명방식과 두번째는 저항의 문제이고 세 번째는 규범의 문제이다. Walzer는 푸코의 논의를 검토한 후 그를 무정부주의자 그리고 더 나아가 허무주의자라고 평가하는데 전자는 저항의 문제설정에서 후자는 규범의 문제설정에 대응한다.129)

사회 곳곳에 편재되어 주체없는 감시의 기제인 푸코의 추상적 기계(판옵티콘, 다이아그램)의 문제설정은 “종종 순수하게 기술적인 분석에 도달하고, 또 종종 가장 전통적인 기능주의의 인식론적 전제를 이어 받는 신기능주의”(SPS 87)이다. Walzer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푸코는 감옥 또는 은신처의 Kafka가 아니다. 그의 설명은 초현실적이지도 신비적이지도 않다. 이 규율 사회는 어떤 사회 즉 사회 전체이다. 그리고 이 전체의 그 부분들의 설명에서 푸코는 기능주의자이다. 아무도 이 전체를 계획하지 않았고, 아무도 그것을 통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서처럼 모든 전체의 부분은 다시 서로 적합시킨다. 때때로 푸코는 그 적합에 놀란s다.(Walzer 62)


이러한 기능주의적 설명은 사회전체를 가로지르는 권력, 그 권력이 채용한 권력테크닉과 규격화된 개인의 결과이다.

두번째는 권력/저항의 쌍이 비판된다. 푸코의 저항은 권력(구체적으로 권력테크닉)과의 연관 속에서 존재하며 이에 따라 비판의 표적이 된다. 즉 저항과 권력은 동일한 다른 이름이며, 따라서 저항은 권력과 마찬가지로 편재성 유동성을 가지게 된다. 권력의 또 다른 특성은 생산성인데 규율화된 개인은 생산적인 권력에 왜 미시저항(micro-revolt)을 시도하는지 설명될 수 없다. 그래서 저항의 근거로 “평민정신”(plebian spirit)이 등장하지만 이것 또한 사회관계가 권력관계이고 저항관계인데 여기로부터 분리되어 설명된 평민정신은 기술적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 이처럼 기능주의적 입장은 저항의 기반, 즉 중심화된 주체와 적대의 문제설정을 폐기한다. 따라서 저항의 대상도 막연한 규율메카니즘이다.

저항에 대한 이러한 입장은 세번째로 푸코에게 규범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것은 더욱 발본적이다. 인식론적 수준에서 에피스테메의 단절(연속적이지 않고 발전적이지 않은)과 정치적 지배에 있어서 통치테크닉의 상이한 형태 속에 귀속되는 푸코의 역사는 가치의 문제에 둔감하다. 그는 이성․자유․평등의 문제를 권력의지 또는 진리의 효과로 설명하면서 “진리의 정치학”의 프로젝트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한다:


푸코의 급진적 폐지주의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 허무주의자이다. 푸코에게 있어 남겨진 것 즉 명백한 인간은 없고, 새로운 법전, 규율만이 산출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푸코는 이것이 우리가 살았던 것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지 않는다. 또한 그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방식을 우리에게 주지 않는다. (Walzer 61)


이상에서 보듯이 푸코의 “진리의 정치” 비판은 근대적 정치에 대한 발본적 비판이다. 그러나 근본적 해체전략은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주지만, 근대정치학의 긍정적인 주장까지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것은 규범에 대한 문제이며, 저항주체에 대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Walzer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나는 푸코와 토마스 홉스(그는 정치 이론의 영역에서 푸코의 위대한 적대자인데)를 비교하여 획득된 논의를 정리한다. … 홉스는 정치적 주권에 관하여 매우 잘못된 설명을 제공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현대 국가의 실제에 관한 어떤 것을 포착한다. 푸코는 우리에게 국부적(local) 규율에 관한 매우 잘못된 설명을 제공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실제에 관한 어떤 것을 포착한다.130)


풀란차스는 푸코를 수용하면서도 계급과 사회주의라는 문제설정을 통해 푸코와 차이를 보인다. 다음은 풀란차스가 정치논의를 통해 이것이 어떻게 접합되었는지 살펴본다.


2. 풀란차스에 있어서의 정치


풀란차스와 푸코의 만남은 풀란차스에게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으로 와 닿는다. 즉 과학/이데올로기의 철학적 반정립과 사회/국가의 정치적 반정립을 비판하고 관계적이라는 권력개념과 권력의 유동성․편재성이라는 특징의 푸코의 담론은 풀란차스에게 계급투쟁으로서 정세적․관계적 마르크스주의를 복원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그의 관계론적 국가론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결과이다. 그러나 푸코를 수용하여 계급투쟁의 이론으로서 국가론을 복원하여 마르크스주의 정치의 공백을 시도하였던 그는 계급과 계급투쟁을 국가이론화 시킴으로써 한계를 드러낸다. 본 절은 푸코의 만남을 통해 풀란차스가 마르크스주의의 정치복원 노력과 그의 이러한 노력에 대한 비판을 다룬다.


우선 풀란차스는 푸코의 진리의 정치비판을 승인하고, 관계론적 권력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마르스스주의를 계급투쟁의 이론으로 전화시킨다. 풀란차스는 관계적인 권력의 편재성을 무정형의 사회, 즉 규율이 광범위하게 작동하는 사회가 아니라 생산관계와 노동분업에 위치지운다. 따라서 권력은 사회적 노동관계 속에 편재되며, 국가는 이러한 관계에 이미 내재되어 있다. 이것은 규율권력이 사회 도처에서 존재한다는 푸코의 주장과 동일한 맥락이며, 따라서 풀란차스에게 국가/시민사회라는 대당은 왜 그러한 관념이 생겨났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대답은 이것 또한 점유와 소유에 대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 내재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제 시민사회 자체와 국가자체의 분리를 계급투쟁이 가로지른다. 국가는 생산관계적, 노동분업적 그리고 사회적 계급투쟁의 물질적 응축이다. 사회적 계급은 국가에 각인되고 그것은 제도적 물질성에 반영된다. 국가정책과 국가진술은 단일한 계급의 의도에 따라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효과이다. 따라서 국가정치는 계급투쟁의 그 자체이며 계급투쟁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이것은 법 또한 “사회적 행위자들에게 형식적 응집의 틀”(SPS 88)을 부과한다. 따라서 “지배계급들과 피지배계급들 사이의 관계에서 계급들의 위치와 행위자를 많든 적든 배분하는 작용”(SPS 90)을 행한다. 즉 “법적 공리는 지배계급들의 정치적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 법적공리는 계급들 사이의 세력관계를 표현하면서 전략적 계산의 토대로서 작동한다. 이는 법적 공리가 법체계의 변수 속에 피지배 계급들의 저항과 투쟁이라는 요인을 포함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법은 계급투쟁에 종속된다. 따라서 인민의 저항은 국가와 제도적 물질성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풀란차스의 진술은 국가의 계급적 통일성을 주장하면서 변형되기 시작한다. 국가는 생산성을 가진다. 그러나 이 생산성은 억압성에 다름아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생산성은 효율성을 위한 억압성의 자기변신이기 때문이다. 법은 생산관계와 분업을 그 모태로하며 “행위자들의 파편화(개체화)를 형성하는데 협력”(SPS 87)한다. 법은 또한 일반적 합의의 정당성을 지니고 나타나면서 ”사회적 상상력 속에서 행위자들의 통일성을 기록함으로써 그 통일성을 표현하며, 그리고 개체화의 다양한 과정을 공고하게 한다. 그리고 사회적 행위자가 원자화되는 그리고 노동수단으로부터 분리되는 순간부터 순수한 기호(추상성․보편성․형식성) 양식에 기초하여 조직된 법은 상상의 표상인 이데올로기적 메카니즘에서 특권적 지위를 획득한다“(SPS 88) 이처럼 국가는 법과 폭력성을 이용하여 시민사회와 국가의 분리를 조장하고 개인에게서 계급성을 박탈한다.   


이상에서 보듯 풀란차스는 한쪽에서는 푸코를 수용하여 국가정치(계급투쟁)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국가권력 통일을 주장하며 진리의 정치로 회귀한다. 그러나 국가내의 투쟁을 상정할 때조차 그 권력관계의 주체는 쁘띠부르주아지와 헤게모니 분파간의 관계이고 더 나아가 국가기구의 물질성에 대한 변형을 장기적 테제로 제출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입장은 계급의 입장에 서 있으며 계급국가인 것이다. 적대의 단순성에 대한 그의 주장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성의 문제, 계층의 문제등 모든 모순에 계급적대를 상정한다. 국가는 계급의 의도가 각인되고 지배가 관철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그의 정치이론은 국가이론화된다. 그 예가 레닌의 이중권력론이다.

레닌의 이중권력에 대한 그의 평가는 그의 입장이 얼마나 이론적인가하는 것을 보여준다. 러시아라는 구체적 상황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풀란차스는 “진리의 정치학”의 입장에서 연유된 것으로 파악한다. 즉 전략과 전술은 상황성의 범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관계론적 국가이론에서 위치지우길 원했다. 따라서 계급투쟁은 물질적으로 응축된 국가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국가/시민사회의 이분법의 해체도 사실 국가의 관점에서 시민사회의 재배를 사고한다. 그리고 국가의 계급적 통일성에 대한 논의와 저항이 국가 밖의 대중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논의를 통해 국가/시민사회의 대당으로 다시 회귀한다. 이처럼 그는 관계론적 입장, 즉 투쟁의 입장에서 정치를 파악하기를 거부하고 국가의 입장에서 정치를 파악했다. 정치세계를 살아가는 대중의 입장에서 정치를 파악하기를 거부하고, 계급지배를 효과적으로 보장하는 국가의 입장에서 정치를 파악한다. 따라서 그의 푸코의 수용은 국가이론의 논의틀이 변하지 않은채 형식적인 참조에 그친다. 그는 푸코의 국가, 계급중심성의 해체와 저항의 다차원성의 일상영역의 정치를 참고해야했다. 투쟁의 우연성과 일상성 그리고 계급적대의 단순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적대의 다원성을 정치세계로부터 끌어내야 했다. 그러나 푸코가 허무주의․기능주의․무정부주의에서 고민하듯이 그는 국가주의․이론주의에서 한 발자국도 옮기지 못했다. 양자는 결국 미시정치와 거시정치의 이론적 양극에서 방황했다.









Ⅴ. 요약 및 결론


풀란차스의 푸코 비판과 수용이 정치 이론의 관점에서 과연 성공적으로 끝났는가 하는 것이 마지막 결론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우선 풀란차스는 푸코의 “진리의 정치”비판에 대한 기획에 동의한다. 그들은 “진리의 정치”의 주범을 마르크스로 보고 있다는데 유사점을 가지나, 푸코는 이것이 “정통” 마르크스주의이며, 따라서 마르크스 전체에 대한 비판이라는 경향을 보이는 반면 풀란차스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푸코가 비판한 경제주의적 마르크스주의는 허상의 마르크스주의라고 반박한다.

이처럼 푸코와 풀란차스 양자가 경제 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했던 이유는 이것이 정치를 철학화 과학화하는데 있다. 이러한 마르크스주의는 예정된 변혁, 선험적 주체, 그리고 그 선험적 주체가 점령하고 있는 국가의 문제설정을 통해 정치 영역을 질식시킨다. 따라서 푸코는 진리의 정치의 모든 문제 설정을 해체한다. 이제 푸코에게 주체는 없으며 따라서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도와 법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남는 것은 사회의 모든 곳을 관통하는 규율이며 실체 없는 의도이고 저항이다. 저항과 의도는 관계성의 범주이다.

Walzer는 이러한 푸코의 논의가 규율로 모든것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기능주의이고, 실체가 없다는 점에서 무정부주의이며, 가치의 전제가 없다는 점에서 허무주의라고 평가한다. 푸코는 근대적 문제설정의 폐기속에서 규범과 정치주체라는 핵심까지 버린것이다. 푸코는 마르크스주의가 정치를 질식시키고 있다는 자신의 비판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려진다. 그의 “새로운 진리의 정치”(new politics of truth)는 “정치 해체학”이다.

제솝이 언급했듯이 풀란차스는 이러한 푸코의 논의에서 마르크스주의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는다. 경제적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을 위해 고심하던 풀란차스에게, 특히 그의 관계론적 국가론의 완성을 추구하던 풀란차스에게 푸코가 주는 암시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우선 풀란차스는 푸코의 시원적 주체의 부정이라는 테제에 동의했고, 국가의 문제를 넘어 사회 영역의 일상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항이 각 사회 세세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해 눈을 돌린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개방한다. 따라서 정치 행위자는 일상의 영역, 즉 정치의 세계 속에서 계급과 같이 선험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로간의 정치적 행위를 통해 국가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 공간에서 드러난다.

푸코를 올바르게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는 근본적으로 포기할 수 없는 “계급범주”로 인해, 진리정치비판의 적극성을 사장한다.

푸코의 “규율”이라는 작동을 통한 사회적 지배를 생체정치, 해부정치라는 생산성에 집중할 때에도 풀란차스는 계급의 입장에서 그것이 계급성을 박탈하는 음모로 파악했고, 나아가 생산성은 계급 지배의 억압성을 통해 보증 받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푸코가 국가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사회의 편재성을 주장할 때, 풀란차스는 이를 받아들여 계급투쟁이 “국가를 넘어 펼쳐진다”고 주장하는데 이렇게 할 때에도 계급의 효과적 지배를 위해 사회 말단까지 작용한다는 계급의 입장의 주장을 견지한다. 그리고 국가가 계급들의 물질적 응축이고 불안정한 평형이며 제도적 물질성을 가진 것으로 주장할 때조차도 국가 자체가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중요한 행위자라는 입장을 잃지 않는다. 저항의 문제에 있어서도 저항의 센터를 국가와 계급모순 안에서 찾고자 했으며 국가 밖에서 찾을 때도 국가내에 포섭을 강조했다. 따라서 풀란차스의 푸코수용, 그리고 풀란차스의 토대 국가중심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기획은 푸코를 참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푸코의 수용은 자신의 계급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계급지배의 응집점, 즉 국가에서 정치를 사고했기 때문이다.

결국 푸코를 참조했을 때조차도 풀란차스의 정치 이론은 그가 초기부터 가졌던 생각 즉 정치의 부문 이론은 국가의 분석으로 대체되어야 된다는 생각에 충실했다. 단지 후기와의 차별성이 있다면 푸코의 수용 속에서 국가의 사회성 즉 국가의 편재성과 계급투쟁의 공간으로 사고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뿐이었다.

결론적으로 풀란차스는 푸코의 관계론적 권력론에서 “계급투쟁의 우연성”과 “적대의 다차원성”의 범주를 발전시키고 그것을 “구체적 상황”(정치세계)속에서 사고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가능성을 계급국가 속에서 파악한다. 즉 이론으로 확립된 계급국가에서 정치현상을 파악한다. 따라서 “계급투쟁의 필연성”과 “적대의 단순성”으로 이론화된다. 이처럼 풀란차스의 정치 이론은 푸코의 “정치 이론의 해체”를 받아들이지만 국가 이론으로 대체시키고 그것을 “정치 세계의 직접성”(directness)에 근거하지 못함으로써 역사화 시키지 못하고 이론화시켰다는 점에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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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ARY


 Study on Poulantzas' critique and acception of Foucault.

  

                                                Yoo, Bumsang

                                                Political Scienc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Poulantzas tries to revive marxist politics through "structural state theory" in his early ages and through "relational state theory" in his later years. The book State, Power, Socialism(1978) deals with relational state theory in its greatest part. Foucault was largely involved in the transformation from the former to the latter theory.


Foucault defines modern politics "politics of truth" and criticizes it. Politics of truth preconditions lord, class and state as the subject of truth. The Subject criticizes truth/false through power and ostracizes non-truth. In this sense, politics of truth, as a "theory of right", can be defined as "the politics of the scientific statement". Foucault insists that marxism itself is politics of truth and criticizes economic marxism.

Foucault's criticism of politics of truth first cuts off the King' head(subject, class). The subject is not a priori but a mere creation of power. Therefore, the subject becomes normalized through power. Second, it is wrong to conceive that power oppresses the object in order to realize the politics of power. Relational power is imminent(ubiquity) within the society and produces the real. Subject produces the subject through knowledge and domination technique(bio-politics and anatomo-politics) selected by the power. Third, he criticizes resistance. He criticizes resistance against state power(global revolution). Resistance should be made in every sector of the society like capillary. Fourth, he abolishes differentiation between politics, formed by the concept of politics of truth, and economics, in other words "state/civil society" (superstructure/base) which restricts politics. Foucault examines how power techniques are ubiquiry inside the society. Therefore, criticism of politics of truth poses the possibility that it can be accomplished in the politics of multi-subjects that it can be accomplished in the politics of multi-subjects in multi-sphere(not only in state)


Poulantzas accepts Foucault's criticism of politics of truth. He also criticizes "economic-reductionist marxism", which equalizes itself to science, and "instrumental state theory". Poulantzas based the differences of political theories on relations of production and labor distribution and modeled himself after class and class struggle. In relational state theory, state is material condensation of classes and this is inscribed to institution. Therefore, state is the field of class struggle.

Poulantzas accepts and criticizes Foucault on these grounds. First, he insists on individualization by accepting Foucault's theory, but he realizes it through the class subject not through amorphous individual. Second he accepts Foucault's production of power based on the concept of repression. Therefore, state maintains rule over class though both production and repression. Third, he accepts micro-revolt but pursues a global strategy based on resistance out of state or class antipathy. Finally, he rejects differentiation between state and civil society and criticizes the externality of politics and economics. He insists on the rule over civil society by a class state.


Poulantzas' acceptance of Foucault remained as a formality. His theory shows reduction to modern(truth) politics criticized by Foucault. Poulantzas had to develop his political theory by accepting "micro-diversity of antipathy" and "micro-contingency" as "macro-diversity of antagonist" and "macro- contingency" based on concrete examples. However, Poulantzas continued "simplicity of class-antipathy" and "macro-necessity of class domination" based on the relations between production and labor distribution and class․class struggle. Therefore, his political theory became (state) "Theory"



1) 본 논문은 푸코의 비판적 프로젝트 전체, 즉 고고학적 단계, 계보학적 단계 그리고 자아에의 관심을 보이는 시기 전체를 참고하지 않는다. 또한 전기의 풀란차스의 구조주의적 입장과 후기의 관계론적 국가이론과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 이후의 시기 모두를 고찰하지도 않는다. 주로 푸코의 계보학적 단계와 풀란차스의 관계론적 국가이론만을 검토한다. 이것은 첫째로, 양자의 초기의 입장은 기존에 많은 사람들에 의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풀란차스가 푸코의 계보학만을 참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양자의 논의 전체를 언급한다. 여기서 한가지 지적할 것은 풀란차스의 푸코 수용에 대한 논의가 국내에서 거의 소개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첫째로 한국의 80년대 정치상황에서 과학주의를 표방한 담론인 스탈린주의의 경제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나 알튀세류의 구조주의적 입장이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 그 당시 정치학자들에게 독일철학이 참조되었고, 프랑스철학이 소개 되어 있지 않은 것도 그 이유이다. 따라서 과학주의(경제결정론, 그리고 부분적으로 알튀세)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차고 정치학자에게 생소한 푸코를 참조한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는 한국정치학에서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취사선택될 뿐이었고, 푸코는 풀란차스와 관련하여 논의되지 않았다. 그리고 푸코를 위시해서 포스트논자들이 회자되는 90년대에 들어서도 ꡔ국가, 권력, 사회주의ꡕ가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최장집 교수의 언급처럼 “국가이론의 때이른 쇠퇴”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시민사회의 대당을 해체하는 푸코와 풀란차스가 볼 때 “국가이론의 쇠퇴와 시민사회론의 부활”이라는 담론은 토대/상부구조의 경제환원론적 오류이며, 따라서 이러한 문제설정은 근대정치학(진리의 정치학)의 문제설정에 다름아니다.

 


 


 


 


 


 


 


 


 


 


 


 


 


 


 


 


 


 


 


 


 


 


 


 


 


 


 


 


 


 


 


 


 


 


 


 


 


 


 


 


 


 


 


 


 


 


 


 


 


 


 


 


 


 


 


 


 


 


 


 


 


 


 


 


 


 


 


 


 


 


 


 


 


 


 


 


 


 


 


 


 


 


 


 


 


 


 


 


 


 


 


 


 


 


 


 


 


 


 


 


 


 


 


 


 


 


 


 


 


 


 


 


 


 


 


 


 


 


 


 


 


 


 


 


 


 


 


 


 


 


 

출처 : http://www.communnale.net/

 

푸코와 마르크스: 명목론이라는 쟁점 / 발리바르 | Louis Althusser 2006/04/04 11:17
 
http://blog.naver.com/noinsider/150003139251
 
 

푸코와 마르크스: 명목론이라는 쟁점**

 

 

 

ꡔ이론ꡕ 3호 92년 겨울.

에티엔 발리바르(파리1대학 교수, 철학)

역자: 윤소영(한신대 교수, 경제학)

 

 

■ 해설

 

최근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라는 이론적·실천적 정세 속에서 얼마간 주목받기 시작한 알튀세르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 중에서, 자칭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 서 있는 논자들에 의해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철학자가 바로 푸코이다. 그런데 실상 프랑스에서는 알튀세르와 푸코의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검토는 최근까지 거의 없었는데, 예를 들어 니코스 풀란차스의 ‘포스트레닌주의’적인 ‘정치사회학’적 논의1)의 맥락에서의 언급 이외에 정작 알튀세르앵들의 입장에서는 에티엔 발리바르와 피에르 마슈레의 어떤 인터뷰2)에서의 짧은 회고만이 참고가 될 수 있었을 뿐이다. 물론 도미니크 르쿠르가 ꡔ지식의 고고학ꡕ(1969) 및 ꡔ말과 사물ꡕ(1966)에서의 ‘중기’ 푸코적 작업을 바슐라르/캉기옘/알튀세르의 인식론적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논문이라든가 또는 이른바 ‘신철학파’와 ‘후기’ 푸코의 동맹을 비판한 소책자가 있었지만3)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못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번역·소개하고자 하는 발리바르의 논문은 푸코의 전저작을 특히 ‘후기’의 ꡔ지식의 의지ꡕ(1977) 및 ꡔ감시와 처벌ꡕ(1976)을 중심으로 하여 마르크스주의―그 ‘이론’이라기보다는 그 범주들, 개념들, 분석들, 테제들―와의 전술적 제유를 통한 정신분석학 비판이라는 맥락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러한 공백을 메우는 중요한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이른바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 비판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데, 알다시피 바로 이것이 ‘이론적 반인간주의’로서의 ‘철학적 구조주의’·‘구조주의적 유물론’ 또는 ‘역사적 구조주의’·‘정치적 구조주의’ 내에서 푸코와 알튀세르/라캉/소쉬르의 ‘삼자동맹’ 사이의 대결의 진정한 쟁점을 또한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4)  이와 관련하여 자칭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프의 저작 등은 ‘초기’ 및 ‘중기’ 알튀세르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무순들을 오히려 라캉/소쉬르 또는 자크-알랭 밀러(Jacques-Alain Miller) 류의 이론화로 환원하고, 또한 동시에 주로 앵글로색슨 풍의 ‘정치철학’에 의해 자의적으로 왜곡된 푸코 저작에 대한 견강부회에 의존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후기’ 알튀세르가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의 형식을 빌어 라캉의 구조주의적(-언어학적)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 바 있음을 상기한다면,5) 이들의 이론화는 알튀세르 이론화의 결국 자기비판되고 있는 일정한 계기를 그 정세적 규정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일반화한 것으로, 요컨대 그 핵심은 흔히 오해하고 있듯이 ‘생산’ 또는 ‘노동’(poiesis/le faire/doing)의 우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언어처럼 구조화된’ 무의식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 논문은 역사유물론의 맥락에서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라는 쟁점(또는 변증법적이라기보다는 명목론적인 反형이상학이라는 쟁점)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알튀세르가 푸코와는 달리 담론 분석 또는 오히려 교통 개념을 위하여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 또는 ‘언어처럼 구조화될 수 없는’ 무의식을 중심으로 노동과정에서의 적대를 개념화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전화를 위한 전망을 시도하고 있음을 상기한다면, 발리바르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 역사유물론에서의 알튀세르적 전망과 푸코적 전망의 대립을 ‘사회적 관계’(실천은 그 외부에서 주체화 효과―이것을 미셸 페쇠는 뮌히하우젠Münchhausen 효과, 즉 주체적 환상의 효과라는 아이러니한 이름으로 부른다―를 생산한다[이것은 페쇠의 논의와 맥락이 다릅니다: 서])의 물질성 대 ‘생권력’(生權力, biopouvoir)(이것은 그 자체로서 주체화적 실천이다)의 물질성의 대립과 ‘투쟁들에 내재적인 구조로서의 모순’의 역사성 대 ‘예속화 전략들과 다원적 저항들의 구조화될 수 없는 결합으로서의 사건’의 역사성의 대립으로 정식화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6)

 

 

***

 

 

왜 오늘 푸코와 마르크스주의라는, 즉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푸코의 태도라는 질문으로 되돌아가야 하는가? 적어도 70년대 말 이후,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있는 격렬했던 청산을 위하여 모른 주장들이 교환된 이후, 그 매력과 이익이 소진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그 질문 말이다. 푸코 그 자신은 논문들이나 인터뷰들을 통해서 매우 상세히 평주되었다. 그러나 통째도 인정되고 거부되는 저작과 저자의 대비(parallèle)가 불가피하게 야기했던 형식적인 종류의 해부와 해석이 그에 대해 불러일으켰던 아이러니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나는 길을 되돌아 가면서, 마르크스주의뿐만 아니라 또한 푸코와도 함께 철학에서 계속 노동하기 위하여 제기해야 할 질문들을 탐구하기 위하여, 그 쟁점들을 약간 전위시키는 (‘대각선’의) 횡단길을 그로 하여금 갖게 하고 싶다.

 

 

푸코 저작의 쟁점들

 

푸코의 텍스트들(나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그의 저서들을 생각하고 있다)에 언술들의 형성 또는 개체화의 규칙들에 대한 그의 분석 원칙을 응용하여, “그것들의 사건의 반향(incidence d’événement)을 재발견하기” 위해 그것들과 다른 것들, “그것들의 주변에 정착하여” 그것들과의 “분쟁과 투쟁 상태”에 빠져 있는 것들간의 상관관계들(ꡔ지식의 고고학ꡕ(L’Archéologie du savoir [이하 AS로 줄임], 1969), pp. 128, 138, 159)을 연구해보자(이것은 아미 축자적이지 않은 독해를 위해서 불가결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하여 일정한 전략적 영역 속에서 구성되고 그 효과들을 생산하는 담론적 전술들에 유효한 언술들(énonces)을 결부시켜 보고, 그것들이 바로 자신들의 언술행위(énonciation)에 의해 자신들의 개입의 지반을 수정하지 않는 한에서의 그러한 전술들의 전화를 연구해 보자. 여기서 말해지지 않은 어떤 것 또는 숨은 의도에 대해서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비육체적(incorporel) 물질성”(AS, p. 158) 속에서의 이론적 담론의 항상 이미 정치적인 성격을 말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철학이 하나의 전장(戰場)이라는 점은 칸트 이래 잘 알려져 있는데, 그곳에서는 갈등의 확정적인 해결이란 없으며, 따라서 어떤 지적 프로젝트도 절대적으로 단순하고 안정적인 진지[입장: 서]를 점령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기존의 언술들에 대한 자신의 반대에 의해, 그것들에 대한 부단한 ”문제화(probématisation)에 의해 발전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각에서 마르크스와 푸코의 대립에 특권적인 기능을 부여하는 것은 즉각적인 부연설명을 요구한다. 나는 항상적으로 갱신되는 형태들 아래서 마르크스와의 진정한 전투가 푸코의 전저작과 동연적(同延的)이며 그것이 그의 저작의 생산성의 본질적인 원천들 중의 하나라는 가설을 제출할 것이다. ꡔ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ꡕ(Histoire de la folie à l’age classique, 1961, rééd, 1972 [원제는 Folie et déraison이며 이것은 실은 그 부제였다])가 쓰여질 때 이미 시작되었던 전투(왜냐 하면 피에르 마슈레가 최근의 논문[“Aux sources de l’Histoire de la folie: Une rectification et ses limites”, Critique, Aug. 1986]에서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이후 그가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유래하는 모든 것에 마치 페스트같이 조심하는” 이유들을 찾아야 하는 것은 바로 소외에 대한 “구체적 비판”으로 이해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그의 최초의 지지가 반전되면서이기 때문이다), ꡔ지식의 의지: 성욕의 역사 1권ꡕ(La volonté de savoire: Histoire de la sexualité, Tome 1, [VS]1976) 이후에도 80년대의 강의초록들, 논문들, 강연들이 증거하고 있듯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전투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투는 단순한[둘만의: 서] 전투가 아니다. 여기에는 매우 분명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 전투는 차별적인 작업계획들 속에 삽입되어 있는데, 그곳들에서 마르크스와의 대결은 불균등하게 확정적인 방식으로 발생하고 또 보다 근원적으로 말하면 항상 동일한 ‘마르크스’를 향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사후적으로는 이러한 대결의 계속적 발생이 푸코가 이 책 저 책에서 이 문건 저 문건에서 추구한 연구의 통일성을 보증하는 하나의 연속성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마르크스로부터 유래하는 언술들이 학술적인 맥락에 격리되어서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근육에 대한 일종의 X선 촬영 속에서, 현대적 지식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역할(사르트르, 메를로-퐁티, 알튀세르,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의 이름이 여기서 그 표식이 될수 있다)에 대한 평가 속에서 그것들의 활용과 해석에 의해 과잉결정되는 것들로서 정세에 따라 파악되었다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그러나 푸코에게 있어서 마르크스와의 전투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고, 제1의 또는 제2의 전선에서 마르크스가 제3자로서 개입하는 다른 대결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 특히 처음부터 분명하다. “담론의 전술적 다가성(多價性)(VS, p. 132)이라는 그 상황이 여기서 모든 것을 남김없이 철저히 검토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전투의 쟁점을 유일한 질문으로 한정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 즉각 주목하자. 그 자신의 질문들을 가공해내면서 푸코는 또다른 철학적· 역사적 장소들에서 유래하는 질문들을 마르크스에게 부단히 제기한다. 그가 또다른 상대자들 또는 반대자들에게 마르크스에 의존하여 정식화된 질문들을 부단히 제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푸코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비판

 

나는 이 가설을 특히 인상적인 하나의 사례에 의해 예증하고자 한다. ꡔ지식의 의지ꡕ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질문과 정신분석학에 대한 질문이 서로 교차하는 방식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매우 논쟁적이며 동시에 프로그램적인 저작인데, 주지하다시피 그 시각은 부분적으로 정정되었지만 그러나 선택된 반대자들과 그들을 결합시키는 방식으로부터 바로 그 통일성이 나온다.

 

푸코가 여기서 양자를 연결하는 것(“억압가설”(hypothèse répressive))을 보여주고 그것들에게 본질주의적 정의를 부여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어떤 개념화와 성욕에 대한 어떤 개념화를 거부하고자 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다양하지만 그러나 체계화된, 특히 라이히가 반복적으로 거명되는, 일반적으로 현대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 속에서 체계화된 ‘시대’의 문제설정을 파괴하는데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모든 충요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푸코 그 자신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주요한 테마들을 정확하게 지적해주고 있다.

 

 

①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적 억압과 노동력 착취의 상호 연루(VS, pp. 12-13, 150-151, 173), 289/ 그것에 대응하는 정치적·사회적 혁명의 구성부분으로서의 성적 해방에 대한 위대한 전도(傳道)(VS, pp. 14-15, 105, 173);

 

② 하나의 동일한 정치적 질서의 지배 하에서의 도덕적 검열, “언술들의 경찰행위”, 경제적 관계들의 재생산과 교착(VS, pp. 25-26, 51);

 

③ 부르주아적인 권위의, 이 점에 있어서의, 아버지라는 공통의 형상 속에서 나타나는 상동성(homologie)(VS, pp. 62-64, 111-113, 132, 143);

 

④ 쾌락추구를 향해 팽창하는 자연적 에너지와 일부일처 가족과 국가 사이의 보다 일반적인 대립(VS, pp. 95, 107-108, 146, 151); “현실성의 원칙”이라는 허구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지배계급들의 성적 위선으로부터(VS, pp. 168), 그 원칙에 반대하는 거대한 저항이라는 기존의 허위적 가치들의 총체적 전복이 나온다(VS, pp. 126).

 

 

푸코가 보기에 이러한 테마들에 대한 비판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아마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가 대중문화의 차원과 지식인문화의 차원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그것이 상이한 분야들, 철학적·과학적·문학적 담론들, 전투적·이론적·미적 실천들을 관련지우는 지적 조우들의 말하자면 기하학적 장소[접점: 서]이기 때문일 것이며, 그것이 요컨대 인간과학들에 대한 대안이 수렴되는 자연적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은 이렇게 자신의 명시적인 성과들을 훨씬 넘어 확장하여 바타이유(Batille)의 후예들 뿐만 아니라 또한 정신사회학(psychosociologie)의 현재의 담론들도 포괄한다. 그런데 분명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그 이러저러한 변종)는 강력한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언술된 가치들의 ‘전도’이며, 실제로 이러한 장치들 속에서의 대결들을 고취한다. 이 투쟁들의 중요성은 푸코도 인정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에게는 그것들이 자신들이 비판하는 담론구성체와 어느 정도까지 진정으로 단절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여기서 푸코(보수주의자의 혐의는 거의 없는)가 발본적으로 질문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좌익주의 또는 혁명적 유토피아주의의 명증성과 유효성이라고 상정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또다른 이유들이 나에게는 더욱 결정적인 것 같다. 푸코가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으로 하여금 하나의 동일한 지식 영역, 더욱이 하나의 동일한 전(前)개념적 토대에 속하게 만드는 그것을 정확하게 드러낼 것이 그가 보기에 틀림없다는 점을 환기한다. 그것들이 자신들이 이렇게 ‘공유하는’ 것으로 환원될 수 있을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러나 이러한 공유 속에서 그것들에게 본질적인 어떤 규정이 틀림없이 작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은 환상적인 순수함 속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활용들 또는 응용들 속에서, 특히 그 상호작용(각자가 ‘인간과학들’의 영역에 작용하는 방식의 특수한 사례) 속에서 해석될 수 있다.

 

역으로 또한 그러한 비판은 푸코의 고유한 담론의 자율성에 대한 반증인 것 같다. 그것이 적어도 언뜻 보기에는 동일한 ‘대상들’, 즉 권력의 제도들, 저항, 배제, 도덕적·성적 ‘일탈들’에 대한 사회적 처리와 근대 사회의 정치경제에서의 그러한 처리의 중요성 등과 관련되는 한에서 말이다. ꡔ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ꡕ(Surveiller et Punir: Naissance de la Prison [SP], 1975)에서 제출된 “규준화”와 “규율사회” 같은 통념들은 적어도 표현상으로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테마들과 일치한다(그리고 이것이 우연일 수는 없다). 반드시 우둔하거나 악의있는 것은 아닌 독자들도 이 때문에 전자들이 후자들에 대한 하나의 대체물 또는 일반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이러한 ‘위험’은 권력이 대한 ‘목가적’ 형태의 분석 속에 항상 현존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분석은 일정한 성욕체제(régime)가 근대적 국가권력의 “구조”(économie) 속에서 발생하는 방식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Hubert Drefus et Paul Rsbiniw, Michel Foucallt: Un parcours philosophique, 1982(tr. fr. 1984)의 ‘후기’로 수록된 “Deux essais sur le sujet et le pouvoir” 참조). 그런데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와 푸코적 연구의 대상들과 단어들 자체의 이러한 근사성(푸코가 반프로이트적 개념들과 반마르크스주의적 개념들의 반정립적 결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같이 보일 때조차도 유지될 수 있는 그러한 근사성)은 ꡔ지식의 의지ꡕ에서 “생권력”(生權力, bio-pouvoir)이라는 통념의 최종적 출현에 의해, 또 틀림없이 그것이 고려하고 있는 중요한 현상으로서의 현대적 인종주의에 대한 반복적 주목에 의해 부각된다. 그의 최초의 구상에 있어서 ꡔ성욕의 역사ꡕ는 ‘인구와 인종’에 대한 권으로 결론지어질 것이었다. 푸코가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연구의 전망들에서 인종주의 문제가 차지하는 위치는 상당하다(VS, pp. 37, 56, 73, 88, 155-157, 161-168, 179 이하, 193-193). 개인의 육체들의 수준에서 또 인구 또는 ‘종’과 그 재생산의 수준에서 삶(vie)과 관련되는 근대 정치적 기술들의 작용의 가장 계시적인 ‘구체적’ 효과가 결국 이것 아니겠는가? 지식-권력-쾌락“의 현대적 체제에서 ‘퇴화’ ‘우생학’ 같은 통념들(그것들은 혈통에 대한 상징과 성욕에 대한 분석 사이의 타협이 형성되는 유형 자체로 이해되어야 한다(VS, p. 195))이 뿌리내리고 있는 근원의 주요한 지표가 이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푸코는 인종주의의 현대적 형태들, 그것들의 ‘대중적’ 동태, 개인의 ‘인성’(personnalité)에 대한 그것들의 영향, 그것들의 전쟁과의 관계(ꡔ지식의 의지ꡕ의 마지막 장에서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는)에 대한 고려의 필요성이 라이히뿐만 아니라 또한 아도르노나 마르쿠제(‘억압적 문명’의 탁월한 이론가)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기원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또한 그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적 이론화들(어쨌든 바로 여기서 그가 부단히 준거하고 있는 리이히의 이론화)에 의해 제기된 가장 명백한 곤란들 중의 하나가 그것들의 생물학주의 또는 에너지론의,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들 자체의 생물학주의 또는 에너지론과의 불안한 근사성에서 초래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권력, 그것이 근본적으로 “생역사”(生歷史, biohistoir)에 뿌리를 두고 “생정치”(生政治, biopolitique)를 지휘하는 생권력 또는 종에 대한 권력인 한에 있어서의 권력에 대한 분석이 어떤 조건들 하에서 동일한 모호함에 빠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제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점에 있어서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그 자신의 개념들의 차별성을 도출하고 그것으로써 그 실천적 효과들을 조정하기 위한 이론적 준비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에 대한 불가결의 증명이기도 하다.

 

ꡔ지식의 의지ꡕ 전체에 걸쳐 “억압 가설”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그러한 가설이 성에 대한 담론들의 조직(économie)에서 수행하는 기능, 즉 성에 대해 말하는 것, 그것에 대한 ‘진리’를 생산하는 것, 그것에서 각자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에 대한 금지명령(injonction)이라는 기능에 대한 해명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는 주지하는 바이다. 이러한 명령은 성에 대한 담론들의 번식(이것이 아마 근대 서양사회를 성에 대해 역사상 가장 수다스러운 사회, 성이라는 일반적 통념을 만들어낸 사회로 만들 것이다)을 보장하고 또 금지(interdit)의 표상에 의해 완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전술적으로 강화된다. 이러한 성격규정에서 출발하여 푸코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주요한 반론을 제기한다:

 

 

① 우선 그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가 역사적으로 오류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18세기부터 발전된 사회, “부르주아적, 자본주의적 또는 산업적이라고 불리우는” 사회(VS, pp. 92)가 성을 근본적으로 거부했고 실제로 성에 대하여 검열했다는 것은 사실적으로 잘못이다. 그것은 오히려 성을 항상적인 배려의 대상으로 만들어냈다. 노동자대중, 프롤레타리아를 ‘노동시키는 것’이 노동자들의 성적 육체에 대한 거세적 감시를 예비조건으로 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이다(VS, pp. 151, 158 이하)(여기서 푸코는 마르크스[ꡔ자본 I, 10장 2절]를 직접 인용하고 있다(VS, p. 167)). 역사적으로 진실인 것은 그 반대로 그 조절적이며 제약적인 장치들(가족적 도덕, 특히 근친상간의 금지, 교육적 길들이기, 의술보급, 정신치료)을 수반하는 성욕이, 경제적 관계들이 노동력의 사회적 통합과 섬세한 규준화, 아마 또한 노동력의 점증하는 지식화를 향하여 발전한 이래, 부르주아적 모델에 입각하여 노동 영역에 수입되었다는 것이다. 상관적으로 부르주아지의 도덕의 ‘금욕주의’는 경제적 합리성의 조건으로서 또는 역으로 위선으로서가 아니라 분명히 육체적 쾌락의 심화의 전술로서 표상되어야 한다.

 

② 그 다음에 주권과 법(도덕적 법, 정치적 법, 상징적 법)의 표상들을 중심으로 하는 제한된 동시에 낡아빠진 권력에 대한 순수하게 법적인 모델에 대한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의존이 지적된다. 여기서 양자의 결합을 가능하게 하고 심지어 불가피하게 했던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의 공통의 핵심에 이른다. 각자는 상대방 속에서 그 자신의 전제를 확인한다. 또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각자는 상대방 속에서 개인들의 지배 권력에 대한, 복종(obéissance)이라는 형태를 취해야 하는(VS, pp. 112-113)[100], 예속화(assujettissement) 관념의 변종을 확인한다. 이것에 대하여 푸코는 적어도 293/ ꡔ감시와 처벌ꡕ 이래 긍정성 또는 생산성이라는 관념, ‘규율’이라는 관념을 부단히 대립시켜 왔다(그런데 사실 이러한 관념은 그에게 있어서 훨씬 오래된 것이다; 감금이라는 권력의 “긍정적” 의미에 대해서는 ꡔ광기의 역사ꡕ를 보고, 또는 “긍정(affirmation)의 권력”에 대해서는 그 발생을 묘사하고자 하는 ꡔ담론의 질서ꡕ(L’Ordre du discours: Leçon inaugurale au College de France, prononcée le 2 décembre, 1971)를 보라).

 

예속화-복종의 관념과 소외의 관념 사이에는 깊은 혈족관계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 왜냐하면 최종심에서 복종은 외부적 권위에서 유래하는 법의 내부화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며, 이리하여 복종은 영혼/육체의 이원론이라는 특권화된 형태를 취하고 또한 공/사의 이원론 또는 국가/사회의 이원론 속에서도 재발견되는 주체의 분열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도덕적 검열의 상동성 속에서 하나의 설명 원리를 발견한다고 믿음으로써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또 일반적으로는 억압 가설의 모든 변종들은 그것들의 두 개의 구성요소들 각자 속에 이미 현존하는 동일한 가상적 셰마를 반복할 뿐이다.

 

③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ꡔ지식의 의지ꡕ 전체를 통해 내가 기꺼이, 유물론자들(뤼크레스Lucrèce[루크레티우스])의 공격이 일찍부터 집중되었던 관념론적인 철학적 전통에 준거하면서, 사회적 상사성(homéométrie)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이것은 사회적 또는 정치적 또는 문화적 ‘전체’ 속에서 ‘부분들’ 또는 ‘세포들’은 필연적으로 전체 그 자체와 유사하다는 관념을 가리킨다)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경우 푸코(이러한 의미에서 유물론자인)의 비판의 첨단은 가족이라는 질문에 집중된다(그렇지만 그것은 또한 학교와 병원 같은 ‘부르주아적’ 국가의 본질적인 권력들 중의 하나를 형성하는 인구조절장치 속에서의 가족(그것의 도덕화, 그것에 대한 의술보급)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만큼 그는 제도적 왜곡의 장소(VS, p. 50 이하)이며 여자의 육체의 히스테리화의 장소(VS, pp. 137 이하, 160)이며 정신병원의 대응물(VS, pp. 131, 138, 146)이며 동시에 생식행위의 사회화 수단이지만 그러나 특히 결혼 또는 혈연이라는 형태로의 육체 일반에 대한 기술들의 법적 “재코드화”(recodage)의 장소(VS, pp. 138, 142-150, 165)인 가족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체 사회의 축소된 이미지로 간주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가족은 사회를 재생산하지 않으며 또 반대로 후자는 전자를 모방하지 않는다”(VS, p. 132)[113]. 가족은 권력-지식의 “국지적 초점”(VS, p. 130)[112]이지만 그러나 ‘사회’의 단자(單子, monade), 전체적 부분(pars totalis)은 아니고, 그것의 전략적 중요성은 그 유사성이 아니라 그 특수성 또는 차별성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가족이 작은 국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는 큰 부계가족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은 그 실천들이 ‘성욕’이라는 저 복합적 대상을 생산하는 데 기여하는 모든 제도들로 즉각 일반화되고, 또 “하나의 요소 또는 집단에 의해 다른 것에 대하여 행사되는 지배, 그리고 그 효과들이 계기적인 파생들에 의해 사회적 육체 전체를 관통하는 지배의 일반적 체계”(VS, p. 121)[106]로서의 권력의 표상, 즉 사회유기체론, 그 속에서 육체의 모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영혼 또는 정신이라는 관념의 영속화를 읽어내야 하는 사회유기체론에 대한 비판의 본질적인 부분을 형성한다. 이것은 따라서 푸코가 명목론의 필연성이라고 부르는 것(VS, p. 123)[107], 그리고 또한 그 자신의 이전의 정식화들 중의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비판적 효과들을 생산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예증하게 된다. ꡔ감시와 처벌ꡕ의 판옵티즘(panoptisme)에 대한 묘사의 마지막에서 그는 “감옥이 자신을 닮은 공장, 학교, 병영, 병원을 닮았다고 해서 누가 놀라겠는가?”(SP, p. 229)라고 썼다. 그리고 분명히 독자들에게 ‘판옵티크’(panoptique) 속에서, 저항의 영역 속에서의 그것의 실현의 우연성들에 즉각 종속되는 하나의 프로그램 이외의 어떤 것을 보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면서도, 그는 감옥을 “인구에 대한 영속적 감시 수단, 즉 범죄자들 자체를 통해 사회적 영역 전체를 통제할 수 있게 하는 장치”(SP, p. 287), 그것 전체가 ‘규율적 사회’를 구성하는 규범적 권력의 모든 변종들의 출발점이며 귀결점인 그런 수단과 장치를 구성하는 다수의 제도들, 규율적 실천들의 동심원들로 만들어진 “감옥의 군도(群島)”(SP, p. 304)로 묘사했다. 그 후 푸코는 주어진 사회에 고유한 “권력의 그림들(diagrammes)”에 대한 정의가 제도들의 형태적 상동성(그 속에서 그것들 각자가 권력의 커다란 메커니즘의 하나의 부속품이거나 또는 권력의 일반적 본질의 일부가 된다는 관념이 항상 어슬렁거린다)을 그 기초로 할 수 있다는 관념과 단절하고, 권력의 모호성이라는 테제와 그 차별적 실천들의 역사적 접합에 대한 연구(칸트로부터 마르크스(또는 적어도 ‘청년 마르크스’)에 이르는 철학적 전통과 단절하여 유일한(la) 실천이 아니라 그 고유한 ‘기술체계’에 의해 각자 규정되는 다수의(des) 실천들이 있음을 시사하는)로 이행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인간주의와 ‘인간학적 원환’에 대한 그의 비판과 대위적(代位的)으로 푸코의 전저작을 관통한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근본적 테마, 즉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심리주의를 다시 문제삼는 테마와 결합하고 그것을 새로이 부연한다. 이러한 심리주의가 역사적·사회적 과정이 개인들이 자유롭게 또는 구속을 받으면서 결정되는 방식에서 그것의 위치고정(ancrage), 그것의 가능성의 조건을 발견한다는 관념(‘성적 심리’ 또는 성적 인성의 심리가 그것에 대해 외양적으로 객관적인 보충물을 제공하는 관념)과 또한 개인들의 심리, 행동 또는 의식이 정치적 제도들 또는 모순들의 영역 속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기능적 위치를 반영한다는 대칭적인 관념(마르크스주의적 ‘계급의식’은 대체로 이러한 관념의 하나의 변종일 뿐이다)을 의미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사변적 관계에 대하여 푸코는 그 제도적 기원들과 형태들을 부단히 탐구했다. 즉 그는 현대 사회에서 그것이 ‘근대화’될수록, 따라서 ‘정치화’될수록 왜 정치(정부의 실천들 또는 그것들이 야기하는 저항들의 문제)가 심리 속으로 투영되고 개인들이 사회적 존재들로서 행동하기 위해서는 ‘나’(또는 ‘우리’)라는 정체성을 갖지 않을 수 없는가를 부단히 질문한다. 개인들이 실천들의 게임 속에 삽입되기 위해서 모방해야 하는 주체성들의 모델들은 무엇인가? 이 점에 있어서 분명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정치적 유토피아는 심리정치적(psychopolitique) 망 속에 전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가치들의 단순한 전도같이 보이고, 또 그 양친인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에 내재적인 심리주의의 폭로자같이 보인다.

 

 

정신분석학 비판: 푸코와 마르크스주의의 수렴과 발산

 

그렇지만 대칭성은 여기서 끝난다. ꡔ지식의 의지ꡕ의 문맥에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는 전혀 달리 취급된다. 여기서는 하나가 다른 것보다 더 정당한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대칭성이 푸코의 담론적 전략을 표현하는 방식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우선적으로 푸코의 전략은 (바로 ‘성욕의 역사’에 대한 그 최초의 목표 때문에) 성욕은 역사를 갖지 않는다, 또는 정확히 말하자면 성은 전역사 속에서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다(ꡔ말과 사물: 인간과학들의 고고학ꡕ(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1966)의 마지막 부분에서 묘사된 인간적 유한성의 한계들을 언술하는 셰마에 따르자면)라고 본질적으로 가정하는 한에 있어서의 정신분석학에 반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이 마르크스주의를 일정하게 활용함으로써, 또는 말하자면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적인 혼효 속에서 정신분석학과 연합하였던 마르크스주의적 언술들이 정신분석학 그 자체에게 대항하도록 함으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의 저 초월적인 부분, 역사적 내재성이라는 언어 자체 즉 역사 법칙이라는 관념으로 주어지는 부분(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적 의의가 무화되는) 모두를 거부하는 것이 또한 중요한 것 같다. 그러므로 관점에 따라서(나는 이론적 준거로서 ‘마르크스’ 또는 ‘프로이트’가 선호된다고 감히 말하지는 않겠다)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이 그 수단일 뿐인 프로이트와의 단절이 본질적이라는 감정, 또는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정신분석학이 그 속에 포함되는 심리주의와의 모든 결정적 청산을 조건지우는 만큼 더욱 가차없다는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히 “진리의 정치적 역사”(VS, p. 81)[77]의 모든 장치이다. 즉 “본래부터 자유와 같은 혈통인” 진리라는 전통적 테마를 전복시킴으로써 “진리가 본성상 자유롭지도 않고 오류가 그것이 복종하지도 않으며 진리의 생산은 권력관계들에 의해 전체적으로 관통된다”[77]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 문제이다. 푸코가 인식하는 바의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비판적 테제에 대하여 근본적인 장애를 설정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고백의 실천과 이러한 실천의 부정 속에 사로잡혀 있고, 성 자체를 해방을 ‘요구하는’ 진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그것이 해방의 목표를 진리의 최종적 발현과 동일시하는, 결국 억압 가설에 속하는 그 자신의 그 부분 모두와 분리될 수 있다면 그러한 비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이것이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이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비판: 서]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푸코는 ꡔ지식의 고고학ꡕ에서의 짤막한 그러나 주목할 만한 예외를 차치한다면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를 항상 거부해 왔다(그리고 지금 다시 그렇게 한다; (VS, pp. 91, 129, 135, 165). 그러나 항상 동일한 기본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이데올로기 개념, 즉 반영으로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존재의 ‘자기의식’ 또는 ‘현실 생활의 언어’의 추상화로서 ꡔ독일 이데올로기ꡕ 속에서 언술되는 그러한 개념이 그 과학성의 자임이 고고학적으로 비판될 수 있는 담론들과 지식들의 영역 자체에서 항상 잠재적으로라고 할지라도 나타나야 했다는 점은 회고적으로 분명한 것 갈다. 그렇지만 표상과 상징signe의 문제설정으로부터 실천의 문제설정으로의 이행이 발생한다. 마르크스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또 그 때문에 문화적 경험의 역사적 범주들이 제도적 실천들의 분석이라는 방향으로 굴절되는, ꡔ진료소의 탄생: 의학적 시각의 고고학ꡕ(Naissance de la clinique: Une archéologie du regard médical, 1963)을 다시 읽어 본다면, 마르크스의 ‘현실의 생활의 언어’가 푸코에게는 콩디악의 ‘행동의 언어’의 약간 변형된, 즉 상징과 사물의 상호소속이 유착되는 본원적 경험의 역할 속에서 자연이 역사로 대체됨으로써 변형된 변종처럼 보이는 게, 그리고 따라서 모든 이데올로기 이론은 계몽시대의 이데올로그들의 후예[…] 같이 보이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ꡔ진료소의 탄생: 의학적 시각의 고고학ꡕ(Naissance de la clinique: Une archéologie du regard médical, 1963)에서는 마르크스가 문제시되지 않으며(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오히려 문화적 경험의 역사적 범주들이 제도적 실천들의 분석이라는 방향으로 굴절되거니와, 이 책을 다시 읽어 본다면, 마르크스의 ‘현실의 생활의 언어’가 푸코에게는 콩디악의 ‘행동의 언어’를 약간 변형시킨 것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으며([콩디악의: 서] 본원적originaire 경험 속에서는 상징과 사물의 상호소속이 맺어지는데, 푸코는 [마르크스의: 서] 이 변형이 본원적 경험의 역할 속에서 자연을 역사로 대체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따라서 모든 이데올로기 이론은 계몽시대의 이데올로그들의 후예 같이 보이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ꡔ담론의 질서ꡕ[1971]에서부터 계속되는 ‘담론생산의 분석들을 다시 읽어보면 그 반대로 이데올로기 개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의 인간학적 전제, 지배관계에 연루된 ’부인‘ 또는 ’환상‘의 형태 하에서의 소외를 포함하는 주체의 소외에 대한 그것의 암묵적 준거인 것 갈다. 이 두 개의 비판 사이에서 ꡔ지식의 고고학ꡕ[1969]은 불안정한 균형의 일시적인 계기를 표상한다(또한 푸코가 ’주체의 탈중심‘의 창시자들로서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에게 동등한 비중으로 준거하는 유일한 계기이기도 하다). 당시 푸코가 담론구성체들의 역사 속에 이데올로기들과 과학들 사이의 ’절단‘을 각인하기 위하여 참조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알튀세르에 의해 실천들(또한 ’담론적 실천들‘을 포함하는)의 접합의 이론가로 변모된 마르크스주의 바로 그이다. 그런데 이데올로기 구성체들로서의 담론구성체들이라는 규정은 항상 경향적으로 권력과 지식의 접합을 오인과 인식의 접합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계기는 불안정하다. 따라서 ’권력-지식‘의 통일성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여러 가지 종류의 인식에 대한 비판을 위한 다른 이름으로 대체하는 대신에 진리에 대한 실천들의 전적인 등가성으로 전위시킨다. 권력의 행사로서의 모든 실천은 진리의 규준들, 진리와 오류의 분할의 절하들을 시사하며 (과학적) 인식은 이러한 점에서 행사되는 권력들 중의 하나를 표상할 뿐이다.

 

정신분석학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비판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지만 분명히 푸코는 성의 발생을, 성욕의 역사적 장치가 모든 개인적 경험을 질서지우는 그러한 “관념상의 점”, “가장 사변적이고, 가장 관념적이고, 가장 내부적인 요소”, “가상적인 점” 또는 “가상적인 요소”로서, 예를 들어 ꡔ독일 이데올로기ꡕ에서 읽는 그러한 사변에 대한 비판을 단지 상기시키는 것만은 아닌 정식들을 사용하여 설명한다(VS, pp. 205-207). 그리고 그는 이러한 발생이 동시에 “정신분석학의 고고학”(VS, p. 172)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성에 대한 이러한 관념의 영향력으로부터 정신분석학은 이론적으로도(왜냐하면 성은 정신분석학의 진리의 이름 자체이므로) 실천적으로도(왜냐하면 정신분석학적 기술은 성적 금지와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명령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므로) 면제될 수 없었다. 그 결과 정신분석학적 명목론이라는 가설은 전혀 분명히 부조리한 것인 반면 명목론적 마르크스주의라는 가설은 적어도 검토가능한 것이다.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의 기각은 따라서 정신분석학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을 위한 단순한 준비로서 읽혀질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두 가지 대칭적인 위선, 즉 그 자신의 성욕을 부인하는 부르주아지의 일차적인 위선과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 또한 자신의 성욕을 거부하는 프롤레타리아의 이차적인 위선을 동시에 폭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그 반대로 부르주아지가 고답적인 정치적 주장을 통해 수다스런 성욕을 자신에게 부여하게 되고, 프롤레타리아가 성욕이 그 후 예속화의 목적으로 자신에게 강요되었으므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오랫동안 거부해 왔던 과정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성욕’이 복합적인 정치적 기술체계에 속하는 어떤 장치에 의해 육체, 행동, 사회적 관계들에 대하여 생산된 효과들 전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장치가 여기저기서 대칭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동일한 효과를 생산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오래 전부터 비난받아 온(sic) 정식화들로 되돌아가서, 부르주아적 성욕은 본래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인데 그것의 계기적인 전위와 전환을 통해 특수한 계급적 효과들을 유발한다고 말해야 한다(VS, p. 168).[140]

 

<개역: 그러므로 오래 전부터 비난받아 온(sic) 정식화들로 되돌아가서, 부르주아적 성욕이 있다고, 계급의 성욕들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성욕은 기원적으로,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적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자체의 계기적인 전위와 전환을 통해 특정한 계급적 효과들을 유발한다고 말해야 한다.>

 

푸코가 정신분석학의 가능성 자체는 아니라고 할지라도(왜냐하면 정신분석학은 지식의 대상으로서의 성의 객관화의 전역사 속에, 성, 말, 금지를 결합하는 전역사 속에 각인되어 있으므로), 적어도 그것의 구성의 장소와 계기를 해명하기 위하여 상기시키는 전위들 중의 하나가 정확히 말하자면 바로 이것이다.

 

성욕의 존재 또는 오히려 성욕의 “계급적 육체”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VS, p. 164), 정신분석학의 담론과 실천의 존재는 계급들간의 전략적 관계들에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라는 의미에서의 계급적 입장과 분리될 수 없다(VS, p. 170 이하). 과거 푸코는 가난한 계급들의 정치적 억압과 성의 통제 사이의 유사성이라는 관념에 오랫동안 반대해 왔다(VS, p. 158 이하). 가족은 오히려 성욕 장치의 집약화의 장소로서 인식되어야 하므로, 성욕은 그것의 의학적 측면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의 쾌락적 측면에 있어서도 부르주아지의 특권, 그 문화의 기본적 요소를 우선적으로 구성해 왔다. 그리고 또한 유전과 우생학에 결부되어 있는, 고유하게 부르주아적인 국가적 인종주의의 토대를 구성해 왔다.

 

더욱이 이런 과정은 부르주아지의 차별성과 헤게모니가 확립되는 운동에 연결되어 있었다. 계급의식의 원시적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육체의 확립이라는 점을 아마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18세기의 부르주아지에게는 이것이 사실이었다. 부르주아지는 귀족의 고귀한 혈통을 튼튼한 육체와 건강한 성욕으로 변화시켰다. 부르주아지가 다른 계급들, 바로 자신이 착취하는 계급들에게 육체와 성을 인정하는 데 오랫동안 그토록 망설여 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VS, p. 166-167).[139].

 

19세기의 산업화, 도시화, 사회적 갈등들은 이러한 특권을 다시 문제삼음으로써 “성적 육체”의 사회적 육체로의 확장(VS, p. 169)[140], 즉 성욕화(sexualisation)의 가족적, 의학적, 인구학적 기술들의 확장을 초래했다. 이 때 계급적 분할이 전위되어, 그것은 더 이상 향락 또는 성적 육체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금지가 강제되고 논란되는 방식과 관련되는 것이다. “자신의 성욕에 대한 배려의 배타적인 특권을 상실했던 사람들이 이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그것의 금지로부터 고통받고 또 그러한 억제를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을 보유하게 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VS, p. 172). 동시에 정신분석학은 부르주아계급 내에서 정신치료 장치의 결정적인 완성의 지위를 차지하고, 인민계급들은 퇴화된 ‘인종’층으로 낙인찍혀 근친상간을 추적하는 행정적·사법적 분할통치를 받는다.

 

정신분석학의 이러한 계급적 입장은 비판의 두 측면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정신분석학의 관념성들의 발생과 고유하게 관련되는 다른 측면에 있어서도 마르크스주의와 유사한 테마체계가 마찬가지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에 대한 준거가 분할과정에 불가피하게 개입해야 할 곳은 오히려 바로 여기이다. 푸코에 의하면, 육체의 규준화의 규율들의 발전의 단순한 귀결로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숨겨진 것과 드러난 것, 욕망과 법, 죽음과 본원적으로 결합된 혈연의 게임에 기초하는 것으로서의 성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표상 속에서, 권력을 실현하는 실천들에 대한 권력의 법적 또는 오히려 “법담론적”(juridico-discursif)(VS, p. 109)[97] 모델의 반작용 효과를 보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ꡔ감시와 처벌ꡕ에서 보다 상세히 분석되었던(처음에는 “규준의 권력”과 “법의 권력”을 대립시키면서(SP, pp. 185-186), 나중에는 규율적인 즉 규준적인 권력 속에서 “최대의 권력” 또는, 법적 현실을 생산함으로써 법적 허구들에게 그것들의 현실에 대한 영향력은 부여할 뿐인, 그 “보충물”을 증명함으로써(SP, pp. 224, 251 등)) 규칙들과 규준들의 복합체에 내재적인 모순으로서 간주하고자 한다.

 

게다가 푸코가 자신이 “정신분석학의 정치적 명예”라고(VS, p. 197)라고 부른 것, 파시즘에 대한 그것의 이론적·실천적 반대 또 도착·유전·퇴화에 대한 사회유기체론적 “대체계”와의 그것의 최초의 단절의 원천 자체로 소급되는 반대(VS, pp. 157-158)를 지적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그것들로부터 유래하는 규율들에 대한 법 또는 그 법적 이상의 이름으로 실현되는, 이러한 비판적 전도에 준거함으로써이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적) 관념론의 핵심에 법적 관념성, 주권에 대한 역사적으로 구성된 가상의 명백한 영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영향을 푸코는 하나의 환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러나 단지 그것이 어떤 시대착오를 영속화하는 한에서만 그렇게 한다:

 

규준화하는 사회는 삶을 중심으로 하는 권력 기술체계의 역사적 효과이다. 18세기까지 경험해 온 사회들과 관련해 보자면, 우리는 법적인 것의 퇴보 국면에 들어 섰다. 프랑스혁명 이래 전세계에서 작성된 헌법들, 작성되고 개정된 법령들, 항상적인 소란스러운 모든 입법 활동에 환상을 가져서는 안된다. 바로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규준화하는 권력을 수용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형식들에 불과하다(VS, p. 190)[155].

 

몇 개의 단어들을 제외한다면(‘노동’ 대신에 ‘삶’, ‘경제’ 대신에 ‘규준화’라는 단어들 말이다; 그러나 양 담론에서 문제는 생산 또는 오히려 생산성일 것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에 이상하리만치 가까운 것 같다. ꡔ철학의 빈곤ꡕ의 마르크스에게 있어서와 같이 “물방앗간은 봉건 사회를 가져올 것이며 증기방앗간은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가져올 것이다” 라고 주장하면서 프루동의 “개인적 사회(société personne)의 허구”를 비판하는 그런 마르크스주의, ꡔ부뤼메르 18일ꡕ의 마르크스와 1905년의 레닌에게 있어서와 같이 봉건제에 대한 투쟁형태들을 반복하는 혁명가들의 “입헌적 환상들”을 묘사하는 그런 마르크스주의, 또 물론 ꡔ자본ꡕ의 마르크스에게 있어서와 같이 공장법 속에서 법적 계약형태들에 대한 세력관계들의 항상적 ‘과잉’의 효과를 묘사하는 그런 마르크스주의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국 마르크스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있다. 푸코가 마르크스주의를 국가에 관하여 군주적 주권의 표상에 사로잡혀서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변증법에 따라 국가의 전능의 관념과 국가의 발본적인 무능력 또는 순수히 기생적인 기능의 관념 사이에서 동요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간접적으로 묘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이미 ꡔ감시와 처벌ꡕ에서 뤼셰Rusche와 키르하이머Kirheimer의 분석들을 검토하면서 푸코는 국가장치들에 관하여 가상되는 그러한 ‘전부 아니면 전무’, 통제 또는 파괴라는 법칙과 육체의 접촉 자체에 작용하는 유효한 “미시권력들”의 분산적 망을 체계적으로 대립시켰다. SP, p. 29[53] 이하). 마르크스주의가 그 자신이 비판하는 법적 환상(또는 법과 폭력의 반정립에 기초하는 ‘결정론적’décisionniste 환상)에 대하여 이렇게 의존하는 것은 결국 그것의 착취 분석과 그것의 국가 분석 사이의 내적 절단 또는 탈구로 해석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담론의 일부는 따라서 권력의 법적 표상에 대한 내재적 반대, 규율적 실천들에 있어서 정신분석학이 수행하는 내재적 반대와 이러한 의미에서 대칭적인 반대로서 해석되는데, 그러한 표상은 19세기 인간주의적 사회주의의 본질적 부분이다:

 

정치적 제도들에 대한 또다른 유형의 비판이 19세기에 나타났다. 현실적 권력이 법의 규칙들을 회피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또한 법체계 그 자체가 폭력을 행사하고, 어떤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독점하고, 일반법칙의 외양 하에서 지배의 비대칭과 不正을 기능케 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이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점에서 훨씬 더 발본적인 비판 말이다. 그러나 법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아직도 권력이 본질적으로는 기본법un droit fondamental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공준에 기초하고 있다(VS, p. 117).[103]

 

법과 법비판 사이의 이러한 사변적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푸코 그 자신이 실제로 제안한다. 그는 ꡔ감시와 처벌ꡕ에서 ꡔ자본ꡕ에서의 매뉴팩추어적 분업에 관한 마르크스의 분석들을 원용하여 규율적 절차들이 어떻게 육체의 저항을 완화시켜, 또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축적과 자본의 축적이라는 두 개의 과정을 통일시켜 육체의 효용을 증대시키는가를 증명함으로써 그렇게 한다(SP, p. 221[국역321-22] 이하). ‘규율’과 ‘미시권력’은 따라서 경제적 착취의 또다른 측면l’autre versant[斜面, 비탈: 서]과 법적·정치적 계급지배의 또다른 측면을 동시에 표상하고 또 그 통일성을 사고할 수 있도록 한다. 즉 그것들은 생산과정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마르크스가 수행한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회와 국가 사이에서 수행한 ‘단락(短絡)’의 지점에 정확히 삽입되게 된다(이리하여 우리는 그것에 ‘실천’의 견실함consistance을 부여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ꡔ지식의 의지ꡕ에서 다시금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그람시를 강하게 상기시키는 바가 없지 않은 헤게모니 개념을[106] 나름대로 원용하면서 그렇게 한다. 즉 계급을 주체 또는 신분으로 표상하지 않는 것(VS, p. 125), 특히 계급의 정의 자체 속에 권력 관계의 복합성, 갈등 및 저항 형태들의 다수성을 편입시키는 것(VS, p. 126), 최종적 위기와 전복의 필연성이 항상 관념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이중적 대분할”의 셰마로부터 벗어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것(VS, p. 127)[110]이 실로 문제이다. “사회적 헤게모니들”(VS, p. 122), “거대한 지배”를 만들어내는 “헤게모니적 효과들”(VS, p. 122), 그것들에서 출발하여 규율적 제도들과 실천들의 망이 사회 전체로 확장되는 “헤게모니적 초점들”의 구성(VS, p. 169)은 주어진 조건들로서가 아니라 차별적(différentiel)이며 또는 관계적(relationnel)인 형태들인 동시에 “단말적(端末的, terminale)인 형태들”의 결과들 또는 합력들로서 인식되어야 한다(마찬가지로 혁명은 “저항지점들의 전략적 코드화”(VS, p. 127)[110], 달리 말하자면 미리 결정되지 않은 정세적 통합의 효과들로서 인식되어야 한다(랑시에르Jacques Rancière와의 인터뷰《“Pouvoirs et straégies”, Les révoltes logiques, no 4, Winter 1977》에서 푸코가 지배의 “가장 약한 고리”에 대한 그의 ‘이론’에 관해서 비꼰 바 있던 레닌 그 자신이 “어떤 군대가 어떤 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우리는 사회주의를 지지한다’라고 말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군대가 다른 곳에 다른 진지를 구축하고 ‘우리는 제국주의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것이 사회혁명이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진정한 혁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만의 혁명가이다”《ꡔ저작집ꡕ, 25권, p. 383》라고 썼음에 주목하자). 요컨대 이러한 정정은 마르크스주의가 그것의 일부인 역사에 대한 종말론적 가상에 분명히 반대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실천된 전략적 분석들과 양립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고 마찬가지로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적’ 목적론 비판이라는 유사한 목적들을 위해 사용했던 ‘과잉결정’의 관념과 대립하지도 않는다.

 

반면 환원될 수 없는 상위점(divergence)을 특징지우는 것은 사회적 갈등의 구조에 대해 푸코가 제안한 관념 그것이다. 상위점은 ‘국지적인 것’과 ‘총체적인global 것’의(말하자면 권력의 미시물리학과 거시물리학의) 양자택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모순’이 기껏해야 그것의 특수한 배치configuration paticulière일 뿐인 세력관계le rapport de forces의 논리와 ‘세력관계’가 그것의 전략적 계기일 뿐인 모순의 논리 사이의 대립opposition에 관한 것이다. “권력 관계들은 다른 유형의 관계들에 대하여 외부적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전자들은 후자들에 내재적이다”(VS, pp. 123-124), 또는 “권력은 밑으로부터 나온다”(VS, p. 124)[108], 즉 권력은 그 유효성 또는 그 현실성을 모두 그것이 행사되는 물질적 조건들로부터 끌어낸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푸코에게뿐만 아니라 또한 마르크스에게도 결국 정당할 것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VS, p. 125)고 주장하는 것은 더욱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 테제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되지는(s’entendent) 않는다[원번역에는 étendre로 잘못 봐서 ‘확장되지는’으로 오역되어 있다: 서]. 푸코는 그것들을 순수히 외부적인 것으로en extèrioritè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전략적 갈등 속에서 대립하는 ‘목적들visées’이 서로 파괴하고 상쇄하고se neutralisent[원번역에는 ‘완화’: 서] 강화하고 또는 수정하지만 그러나 통일체d’unité 또는 상급의 개체individualité를 형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한다. 반대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갈등의 발전은 관계 그 자체의 내재화를 조건으로 하고, 그 결과 적대적인 양항들은 이 관계의 기능들 또는 담지자들porteurs이 된다. 이 때문에 사회를 “지배자들과 피지배자들 사이의 이원적이며 총체적인binaire et globale 대립”(VS, p. 124)[108]에 의해 전적으로 특징지워지는 것으로 경험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계급투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표상에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계급관계들을 내재적으로intérieuriment 화해불가능한inconciliables 것들로서, 피지배자들이 예속assujettissement관계 그 자체를 파괴하고 그럼으로써 그 관계가 ‘구성하는’ 것들과는 다른 개인들로 스스로 전화함으로써만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뿐인 관계들로서 인식하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다.

 

아마도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발산(divergence)(이 때문에 사람들은 푸코에 있어서 갈등으로부터의 탈출을 지연시키기 위해 갈등의 항들을 불확정적으로indéfiniment 전위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인상을 항상 받게 된다)은 실천에 관한 반대 방향으로의 발산에 준거한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실천 그 자체(par exellence)는 그 자신의 외부에서 자신의 효과들을, 그 결과 주체화subjectivation의 효과들을 생산하는 외부적 생산이고(갈등은 ‘생산관계들’의 영역에서 전개된다), 반면 푸코에게 있어서 권력은 우선적으로 육체 그 자체에 대하여 작용하는, 우선적으로 개인화 또는 주체화(극한적으로 말하자면 ‘자기 실천’pratique de soi 또는 ‘자기의’du soi 실천)를 목적으로 하는visant, 그 결과 객관성의 또는 지식savoir의 효과들을 생산하는 생산적 실천이다. 결국 푸코적인 세력관계 논리는 삶의 어떤 가소성可塑性 관념에 의해 지지되는 반면, 마르크스주의적인 모순(세력관계들을 내부화하는) 논리는 구조의 어떤 내재성과 분리될 수 없다. [원번역에는 가소성plasticité이 탄력성élasticité으로 되어 있다: 서]

 

 

푸코인가 마르크스인가: 물질성과 역사성

 

미셸 푸코의 텍스트 하나에 대한 재독해에 의지한 이상의 긴 검토는 아마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실은 특권화되고 있는 어떤 계기에 있어서 마르크스에 대한 푸코의 관계가 나타나는 복합적 형태를 좀더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 교훈은 일반화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지만 그러나 통일된 전략적 복합성이 그의 저서들을 가로질러 표시될 수 있는 그의 작업 국면들 각자를 특징지운다. 나는 그것이 하나의 일반적인 그렇지만 여러 차례 반복되는 셰마에 따른다는 점을 기꺼이 지적하고 싶은데, 그 셰마 속에서 단절에서 전술적 제휴로의, ‘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총체적 비판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또는 마르크스주의와 양립가능한 언술들의 부분적 활용으로의 이행이 이루어진다. 게다가 이러한 언술들이 점점 더 제한적이 되는 동시에 점점 더 특수하게 마르크스주의적이 된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이렇게 모순적으로 마르크스의 ‘이론’과의 대립이 부단히 심화되는 반면, 마르크스의 한정된 분석들과 개념들과의 수렴은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푸코가 마르크스를 가장 많이 활용한 것은 그가 그를 가장 많이 인용했을 때가 아니고, 푸코가 마르크스에게 가장 발본적인 비판들을 제기했던 것은 그가 그를 가장 자세히 읽었을 때가 아니라는 점을 첨언해 두자(마르크스 저작 및 이름의 인용빈도는 그것만으로도 주의깊게 연구할 가치가 있다).

 

1세기가 지난 다음, 마르크스처럼 그렇지만 마르크스와는 다르게(이 때문에 그들의 대결은 필연적이다), 푸코는 스스로 “역사의 작업장에서의 철학적 단편들”(ꡔ불가능한 감옥: 19세기의 감옥제도에 대한 연구ꡕ(L’impossible prison, Recherches sur le système pénitentiaire au XIXe Siècle: Débat avec Michel Foucault, 1980), p. 41)이라고 부르는 것을 생산했다. 동일한 심급들이 여기서도 작용한다. 즉 역사철학이라는 종류의 철학(그런데 이것은 아마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또는 오히려 이것은 ‘부르주아’ 사회와 그 계기적인 정치적 형태들의 독자성이라는 유일한 문제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역사가의 조사와 저술이라는 종류의 역사(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여러 가지가 있다)라는 심급들 말이다. 마르크스의 시도가 역사철학의 완성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인지 또는 역사에 대한 또다른 비철학적 관계의 시작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인지는 1세기 동안 끊임없이 질문되어 왔다. 푸코 그 자신도 이러한 질문에 참여했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들(나는 거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과는 달리 순수히 이론적인 대답, 즉 “접시 속의 태풍”에 대한 ꡔ말과 사물ꡕ의 유명한 귀절들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대답을 정식화한 연후에, 그는 다른 정세 속에서 다른 대상들에 입각하여, 뜻하지 않게 철학적 질문들(진리, 권력, 실천의 질문들, 시간, 주체의 질문들)의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되는 철학에서 비철학으로의 ‘도약’을 다시 시작함으로써, 그 대답을 실천적인 형태로 다시 제시한다. 이 때문에 우리의 관심사가 어떤 점에서 우리의 지평이 비가역적으로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인가(이 표현의 이중적 의미에서)를 결정하는 것이라면, 푸코의 독해는 그것을 위한 특권적 방법이 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모험해 볼 수 있다. 푸코의 담론적 전술들이 본질적인 부분에서 ‘반마르크스주의적’ 전술들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몇 가지 공통의 쟁점들이 존재해야 한다. 마르크스에 의해 또 푸코에 의해 실천된 철학의 전위가 한 마디로 말해서 역사에 대한(de) 철학에서 역사 속에서의(dans) 철학으로 이행해야 할, 적어도 1세기 전에 발견된[1세기 전부터 우리가 처해온: 서], 필연성과 관련되는 것이 사실이라면, 정의되어야 할 이론 영역의 세력선들은 일련의 딜레마들(마르크스인가 또는 푸코인가)의 엄밀한 형태로 그려져야 한다. 이 영역은 일정한 방식으로 이미 그곳에 있고 또 이미 탐색되었고 특징지워졌다. 그렇지만 그것의 상당 부분은 아직도 발견되어야 하고 또 그 지도를 작성해야 한다. 이 영역이 ‘역사유물론’의 영역인가?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분석 속에 함축되어 있는 철학적 입장을 특징지우기 위해 이 표현을 스스로 사용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러나 그는 그것을 대체로 허용하였고 또 거부한 적이 없다.

 

결국 이 표현은 이론의 대상 속에서의 철학의 위치고정l’anchrage de la philosophie dans l’objet que se donne la théorie, 즉 계급투쟁 따라서 모순의 물질성, 따라서 역사적 전화(모순의 유효성에 의한 전화 또 계급투쟁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적 관계들’의 영역에서의 전화)의 필연성이라는 급소를 다른 표현들만큼 잘 지적하고 있다.

 

[개역: 결국 이 표현은 급소le point sensible를, 그리고 이론이 스스로에게 주는 대상 속에서의 철학의 위치고정l’anchrage de la philosophie dans l’objet que se donne la théorie을 다른 표현들만큼 잘 지시해 주는데, 이론이 스스로에게 주는 대상이란 계급투쟁의 물질성과 따라서 모순의 물질성이며, 따라서 (모순의 효과에 의해 이루어지는, 그리고 계급투쟁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적 관계들’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적 전화의 필연성이다: 서] 여기서 다음과 같은 아직 회의적인aporétique 철학적 질문이 나온다. 즉 더 이상 모순들의 종언fin에 대한 가상적imaginaire 예상이 아니라 모순들의 내적 결정들 속에서의 모순들의 현동적actuel 운동의 분석인 하나의 변증법이 사고될 수 있는가? 곤란의 중심에 ‘사회적 관계’ 개념 또는 세력관계들에 내재적인 구조로서의 모순 개념이 나타난다. 마르크스적인 역사유물론 관념을 지지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점점 더 명시적으로 푸코가 다시 문제삼고 있는 것도 또한 바로 이것이다. 이 점에 대한 그의 발전의 (잠정적인) 결말에 이르러(ꡔ감시와 처벌ꡕ, ꡔ지식의 의지ꡕ, 기타 관련 텍스트들에서), 그는 또한 ‘역사유물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해도 잘못은 아니지만 그러나 마르크스의 그것들과 조목조목 대립되는 그런 테제들, 즉 ‘사회적 관계’의 물질성이 아니라 육체들에 대해 행사되는 것으로서의 권력의 배치들dispositifs 및 실천들의 물질성, 모순(투쟁들의 총체화의 심급으로서 또는 투쟁들의 필연성의 내재화의 심급으로서 인식되는)의 역사성이 아니라 사건의(즉 예속화 전략들과 다면적mulitples이며 부분적으로는 통제불가능한 저항들의 있을법하지 않은improbable 결합résultante의) 역사성이라는 테제들에 이른다. 여기서 이제 푸코가 열어놓은 철학적 아포리가 나온다. 그것은 내 생각으로는 ‘권력의 미시물리학’에 입각하여(따라서 불확실성aléatoires의 견지에서) ‘전화’를 사고하는 것의 곤란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형태변화métamorphoses의 지평이라는 또다른 형태의 목적론 속에 역사적 사건을 각인시키지 않고 육체의 물질성에 입각해서 역사성의 범주들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라는 곤란함 속에 있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역사철학들의 유심론(‘역사적 시간의 논리 또는 담론성’으로서의 ‘모순, 필연성, 구조의 내재성’)에 의해 항상 아직 시달리고 있다면, 푸코의 ‘유물론’과 ‘역사주의historicisme’ 속에서 생물학주의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생기론의 바로 근방으로 이끄는 것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당연히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자마자 그는 자신의 실증주의로써 (사람들이 불신disqualification의 표시로 그에게 그렇게 규정했고 또 그가 그 사용법을 변화시켰던 그 용어 말이다) 또는 오히려 자신의 명목론으로써 그것에 대비한다. 명목론이라는 용어는 이중적인 이점을 갖는데, 왜냐하면 ‘역사명목론’을 실천하는 것은 ‘성’, ‘이성’, ‘권력’ 또는 ‘모순’ 같은 관념성들idéalités을 발본적으로 해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들의 물질성에서 변증법의 관념성으로 부단히 (다시) 이행하고 있을 때 육체의 물질성에서 삶의 관념성으로 이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지란 그렇지만 스스로 부과할 때조차도 양면적인 명령일 뿐이다. 그것은 질문을 삭제하는 것이 아니라 억제할 뿐이다. 그리고 특히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 가상적으로fictivement 마르크스에게 발언권을 주어 보자――당신은 권력을 영유되는 ‘물’로서 이해하는 실체론substantialisme에 반대하고, 모든 권력을 주권의 발로émanation와 동일시하는 (법적) 관념론에 반대하여, 그것의 순수히 관계적relationnel인 성격을 명시하는 권력의 분석학analytique을 구성한다고 주장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노동력의 소비-재생산과정으로서 또 계약-교환형태들에 대한 영속적인 과잉excès으로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분석함으로써 나도 결코 다른 것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당신의 ‘유물론’의 모호성들을 미리 비판하는 결론들을 그것으로부터 끌어냈습니다. 즉 나는 역사적 개인들이 규율, 규범, 정치적 조절에 예속된 육체들이라는 점에서 당신에게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만, 그러나 나는 이 ‘육체들’ 자체가, 그들의 계급적 독자성singularité de classe(또 성적, 지식적 또는 문화적 독자성이라고 하면 왜 안되겠습니까) 속에서, 관계들(rapports)의 견지에서 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관된 명목론자, 우리 둘 가운데 덜 형이상학적인 사람은 바로 납니다.

 

내가 보기에는 어쨌든 쌍방에서 그런 개념들(‘육체들’과 ‘관계들’)로 시사하는 것을 별도로 검토하지 않고 여기서 단정을 내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방금 전에 추상적으로 정식화된 질문을 부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할 뿐이다. 마르크스에게서 푸코에 이르는 역사철학들에 대한 비판에서 물질성, 따라서 ‘유물론’이 항상 문제가 된다. 물질성 속에서 또는 ‘물질적인 것’으로서 역사적인 것을 사고하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반전될 수 있는 모호한 시도이다. 명목론을 물질성(경제적, 정치적 또는 담론적 물질성)의 형이상학으로의 모든 반전을 금지하는 데 필요한 유물론의 보충물이라고 부르는 데는 의견이 일치될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 대 푸코의 대결은 명목론자가 되는 적어도 두 가지 방식, 따라서 역사에 대한 철학들에 반대하여 역사 속에서 철학을 실현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인식에 대한 그 관계에 있어서의 철학의 운명이 오늘 위치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적어도) 두 가지 방식 사이의 괴리, 능동적 대립 속에서이다. 우리가 미셸 푸코의 작업에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은 따라서 커다란 이점이다. 즉 마르크스를 반추하는 대신에,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을 위하여 마르크스 안에서 준거점을 찾는 모호함 속에 남아 있는 대신에, 우리는 지금 분리된 동시에 필연적으로 대립되는 두 개의 이론적 집합ensembles을, 따라서 지식에 대한 질문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진술되는 하나의 이단점(point d’hérésie)을 갖고 있는 것이다.

 

[끝]

 

 

 

 

[주]

 

** Étienne Balibar, “Foucault et Marx : L’enjeu du nominalisme”, in Michel Foucault Philosophe: Rencontre Internationale, Paris, 9-10-11 janvier 1988, Seuil, 1989, pp. 54-75(본문중의 소제목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역자가 붙인 것임).

 

1) Nicos Poulantzas, L’Etat, le pouvoir, le socialisme, PUF, 1978.

 

2) Étienne Balibar and Pierre Macherey, “Interview,” Diacritics, Spring 1982.

 

3) Dominique Lecourt, “Sur L’archéologie du savoir: A propos de Michel Foucault”(1970), repris in id., Pour une critique de l’épistémologie: Bachelard, Canguilhem, Foucault, Maspero, 1972(보다 상세한 것은 Peter Dews, “The Nouvelle Philosophie and Foucault”, Economy and Society, May 1979 참조). 이와 관련하여 알튀세르 자신의 푸코에 대한 언급으로는 ꡔ마르크스를 위하여 영어판 역자가 작성한 권말 「용어해설」에 부친 “사소한 한 가지 논점”을 들 수 있는데(“A Letter to the Translator”[1969. 1. 19.], in Louis Althusser, For Marx, NLB, 1969, pp. 257-58) 그것은 의미심장하게도 바로 자신의 ‘인식론적 절단’(및 ‘문제설정’) 개념과 바슐라르, 특히 캉기옘, 그리고 푸코의 개념화의 관계에 관한 것임을 지적해 두자.

 

4) Étienne Balibar, “Fascisme, psychanalyse, Freudo-Marxisme”, Dires(Revue de l’Université Paul Valéry), 1990[「프로이트맑스주의의 교훈―빌헬름 라이히의 ꡔ파시즘의 대중심리ꡕ에 대하여」, ꡔ문화과학ꡕ 제3호, 1993.] 또한 Elisabeth Roudinesco, “Freudo-Marxisme”, in Georges Labica, dir., Dictionnaire critique du marxisme, PUF, 1982도 참조.

 

5) Louis Althusser, “Freud et Lacan”, Nouvelle Critique, dec. 1964; “La découverte du Doctor Freud”, Revue de médecine psychosomatique et de psychologie médicale, 1983, nO 2;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하여」, 윤소영 엮음, ꡔ마르크스주의의 역사ꡕ, 민맥, 1991. 알튀세르의 자기비판의 맥락에 대해서는 발리바르, 「알튀세르여, 계속 침묵하십시오!」, 윤소영 엮음, ꡔ루이 알튀세르ꡕ, 민맥, 1991 소수 참조. 특히 정신분석학이라기보다는 언어학적 담론분석에서 출발한 Michel Pêcheux, “La sémantique et la coupure saussurienne: Langue, langage, discours”(avec Claudine Haroche et Paul Henry, 1971), in id., L’Inqiétude du discours, Ed. des Cendres, 1990; Les Vérités de La Palace: Linguistique, sémantique, philosophie, Maspero, 1975; “Il n’y a de cause que de ce qui cloche”, in L’Inqiétude du discours도 참조. 페쇠의 ‘지적 전기’는 D. Maldidier, “(Re)Lire Michel Pécheux aujourd’hui”, in ibid. 참조.

 

6) 보다 상세한 것은 발리바르, 「‘이행’의 아포리들과 마르크스의 모순들」; 「비동시대성」 참조. 또한 M. Pécheux, “Remontons de Foucault à Spinoza”, in id., op. cit.(프랑스에서는 발표되지 않았던 이 글에서 페쇠는 마르크스주의적 모순 개념과 이데올로기 이론의 관계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Le discours: structure ou evénement?”, repris in ibid.[영역: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 1988](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는 발표되지 않았던 이 글에서 페쇠는 구조와 사건을 매개하는 담론에 대해서 숙고하고 있다); Michel Plon, “Machiavel: De la politique comme un impossible”, M: Mensuel, Marxisme, Mouvement, jan. 1991도 참조. 한편 (알튀세르의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적’) 철학에서의 명목론의 쟁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마슈레의 언급을 참조할 수 있겠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법칙은 실체의 존재로부터 그 힘을 얻는다, 푸코의 저작에서 그러한 추론의 윤곽을 찾으려는 것은 아주 분명히 헛된 일이다. 바로 여기서 스피노자가 푸코를 읽는 데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그러나 우리는 푸코가 그 자체 실체성의 테마와 역사성의 테마 사이에서의 선택을 우리에게 강제하는 대결을 통해서 스피노자를 읽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또한 자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마지막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역사적인 것과 실체적인 것을 함께 생각하려는 새로운 시도인 바 ‘역사유물론’의 지위가 마르크스에게 제기하는 질문들로부터 이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다”(P. Macherey, “Pour une histoire naturelle des normes”, in Michel Foucault Philosophe, Seuil, 1989, p. 221; id., “Foucault lecture de roussel: La littérature comme philosophie”, in id., A quoi pense la littérature?: Exercise de philosophie littéraire, PUF, 1990 참조).

 

 

출처 : http://www.communnale.net

 

삼성이 본 자본주의 국가
 
[한겨레 2005-08-15 19:27]
 
[한겨레] 올 여름 무더위를 더욱 무덥게 해주는 것은 옛 안기부의 불법도청 테이프(엑스파일) 사건이다. 그런데 그 엑스파일 중 일부가 언론계에 입수돼 삼성이 자본권력으로 국가기구를 흔들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내용은 이학수 당시 삼성 비서실장이 언론계의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을 통해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주요 대통령 후보자들에게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검찰에도 돈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특히 재벌이란 자본권력이 국가기구를 지배하려 했다는 사실이 국가정보기관인 안기부의 도청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필자는 이 사건을 이해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니코스 풀란차스(1936~1979)를 서재에서 만나보기로 했다. 풀란차스는 국가기구를 억압적 국가기구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로 나눈다. 억압적 국가기구에는 검찰·경찰·정보부·군대·형무소 등이 있다. 이 국가기구는 지배권력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질서를 지키도록 주먹 등 물리적 생체권력이란 억압수단을 동원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는 언론사·대학·종교단체·정당·조합·가정 등이 거론된다. 이 국가기구에서는 지배이데올로기를 만들어 이를 널리 보급하고 백성들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기능을 담당하며, 여기에는 지식권력이 주로 동원된다. 그런데 이 두 국가기구는 경제부문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면서 기존 사회관계의 재생산 구실을 맡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풀란차스의 눈으로 삼성사건을 살펴보자.

삼성은 자본권력을 가지고 억압적 국가기구의 상징인 검찰에 돈을 뿌렸고,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핵심인 언론사 대표를 동원해 정치자금을 뿌렸다. 그리고 이 두 국가기구의 정상이 될 대통령 후보군에게 돈을 뿌렸다고 한다. 이 외에도 삼성은 상시적으로 정부 고급관료 출신을 삼성 경영진으로 충원함으로써 정경유착을 통해 정부 간섭과 감독으로부터도 벗어나고자 하였음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삼성이 자본주의 국가론을 세상에 어떻게 읽어주었는가를 보게 된다. 삼성은 국가기구들의 상대적 자율성마저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본권력으로 국가기구들을 지배하려 하였고, 국가기능의 축소와 퇴각을 꾀한 것이다.

한가지 더 짚을 것은 문화방송의 이상호 기자가 문제의 엑스파일을 입수하여 삼성의 정경유착 죄업과 원형감옥의 감시체계를 관리해 온 옛 안기부의 촉수를 폭로했다는 점이다. 이 기자는 푸코의 말대로 잘못되고 있는 역사적 현실을 폭파하는 ‘연장통’을 들고 나선 것이다. 이 기자의 엑스파일 보도문제에 대해서는 관계법령을 둘러싸고 시비공방이 되고 있으나 보도사실 외에 다른 흑막이 없다면 설사 실정법상 유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제3심의 법률심을 넘어선 제4심인 역사심에서는 무죄 또는 영예가 안겨질 것이다.

이제 삼성이 읽어 내린 자본주의 국가론의 오류를 바로잡는 연장통을 우리 모두 짊어지고 나설 때가 되었다고 본다.

참여연대가 삼성사건 관련 인사를 고발하는 것이 하나의 신호다. 자본권력에 의한 국가기구 장악, 특히 자본권력이 국가기구의 상대적 자율성과 고유성까지 훼손하려고 하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정병호 /4월혁명회 공동의장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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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68혁명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68운동 기존질서 엎으려는 ‘국제적 저항’
문화혁명이었나 과격주의자들의 발작이었나
세대반란이었나 카니발이었나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등지서
따로 또 같이 일어난 ‘저항의 지도’를 되짚어본다
한겨레 오철우 기자
▲ 68운동
잉그리트 길혀-홀타이 지음. 정대성 옮김. 들녘코기토 펴냄. 1만2000원
서구사회를 이해하는 열쇠말 가운데 ‘68세대’가 있다. 1968년 절정에 달했던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참여했고 그에 감화받았던 세대다. 세대로 계산하면 벌써 40여년 전 일이니, 어찌보면 한 세대 이상이 지난 아득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68운동’에 대한 분석은 다 끝나지 않는다. “이제껏 세계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1848년에, 그리고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 실패로 끝났지만 둘 다 세계를 바꾸어놓았다”(이매뉴얼 월러스틴)라는 평가가 있듯이, 그 거대함은 한 세대의 시간만으로 다 어루만질 수 없기에 말이다.

독일 역사학자 잉그리트 길혀-홀타이(빌레펠트대학 교수)가 쓴 <68운동>은 해일처럼 몰아쳐 서구사회의 정신과 제도를 뒤흔들었던 1968년 운동의 기승전결을 되짚으며 분석한 책이다. 비교적 적은 분량에 68운동의 핵심을 빠르게 정리한 이 책은 68운동이 자양분을 준 지금의 서구 시민사회와 저항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만하다.

68운동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지은이 길혀-홀타이 교수가 열거했듯이 ‘학생봉기’, ‘세대반란’, ‘문화혁명’, ‘세계체제 혁명’으로, 또는 ‘카니발’이나 ‘과격주의자들의 발작’으로 이해됐다. 저항하는 젊음의 열병 같은 축제였을까, 정신문명의 새로운 자각이었을까. 한 나라 안의 격동이었을까, 세계 차원의 새 살 움틈이었을까. 평가자들마다 다른 시선들은 그 때마다 다른 이름을 만들어냈다. 지은이는 여기에 또하나의 이름을 얹는 것일까.

길혀-훌타이 교수의 분석은 이전의 68운동 분석들과는 다르게 독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 독특함은 68운동이 프랑스, 미국, 독일, 이탈리아 같은 여러 나라에서 ‘기존 권위에 대한 전사회적 대항의 기획’이라는 닮은꼴로 일어난 국제적 운동이었을 강조하는 대목에 담겨 있다. 지은이는 각 나라마다 ‘따로 또 같이’ 일어난 ‘저항의 지도’를 역사비교의 방법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셈이다. 저항의 과제는 어느 나라에서건 언제나 ‘참여 확대’와 ‘의식 개혁’이라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국제베트남회의, 혁명을 배태

1968년 앞뒤의 시절에 서구사회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책의 첫 장면은 베트남혁명을 지지하여 1968년 2월 독일에서 열린 ‘국제베트남회의’ 안의 긴장과 활기다. 여기에 참여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의 신좌파 대표들은 구좌파과는 뚜렷히 구분된 새 세대들이었다. 68운동의 중심이었다. 회의 뒤에 1만5천여명이 참여한 다국적 평화행진은 68운동이 바로 이들을 잇는 국제적 운동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 사건으로 묘사된다.

신좌파 지식인의 새로운 인식은 현실사회주의인 소련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분명한 반기였다. 무력한 선배 좌파들은 새 세대 좌파들한테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만 했다. 반자본의 목소리에 더해 사회주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쏟아졌다. 권위와 관료주의는 배격됐다. 또한 신좌파는 실존주의와 심리분석을 그들의 사상 지평에 과감히 끌어들였고, 집단 해방과 더불어 개인 해방을 부르짖었다. 개인의 생활세계, 가족, 성적 관계는 강조됐다.

▲ 비틀즈의 1967년 새 앨범 <페퍼 상사의 외로운 마음 클럽 밴드>의 표지.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앨범은 히피 문화의 영향이 깊게 베인 작품으로, 당시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자들이 벌인 펜타곤 앞 시위의 모습과 닮아 미국 68운동의 시위문화에 종종 인용됐다. 사진 <68운동> 102쪽에서.
신좌파와 대항문화의 새로운 자각엔 여러 요소들이 접합됐다. 체 게바라와 호치민은 영웅으로 떠올랐고, 히피, 록, 비틀즈, 밥 딜런은 이들의 문화가 됐다. 자유분방한 하위문화는 찬양됐다. 사르트르, 마르쿠제, 프란츠 파농의 책들은 이들의 필독서였다. 대학 캠퍼스에선 대학과 교수사회의 권위에 반발하는 자율과 자치, 평의회의 깃발이 점거농성과 시위 속에서 세워졌다. 차별에 반대하는 흑인과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코뮌 형태의 대안적 집단 생활공동체의 창설이 실험됐다. ‘조직보다 직접행동’을 내세운 그들은 갖가지 깜짝 시위를 동원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흐름의 중심에 미국 민주사회학생연맹, 독일 사회주의학생연맹, 프랑스 혁명적 공산주의청년 같은 신좌파들이 있었다.

참여와 저항의식, 보물로 남겨

지은이는 68운동의 붕괴 과정에서도 닮은꼴을 발견한다. 조직과 폭력의 문제는 붕괴를 촉진했다. “68운동은 조직문제와 대결하는 가운데, 경쟁하는 집단이나 정당, 분파, 하부문화 속으로 용해된다. 나아가 68운동은 폭력문제와 대결하며 분열되고 지지를 잃는다. 행동의 급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폭력문제가 조직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더 첨예하게 만든 것이다.”(154쪽) 예컨대, 미국 민주사회학생연명은 폭력시위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내부논쟁을 벌이다 분열해 1969~70년 해산했으며 무장투쟁을 주장한 일부 그룹은 지하로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붕괴과정에서 “68운동은 그 신성화나 악마화에 관계없이 공히 일상의 정치투쟁을 위해 도구화됐다.”(175쪽)

68운동은 무엇을 남겼고, 68세대는 무엇으로 남았는가. 68운동이 품은 ‘저항의 구상’은 얼마나 실현됐는지를 따져볼 때,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의 실패와 부분적인 성공’으로 비쳐질 만하다.

신좌파 그룹은 기존 조직에 복귀해 다시금 개인을 집단에 종속함으로써, 자기 결정과 개인 해방을 목표로 삼은 68운동의 반권위주의를 포기하기도 했다. 또 68운동의 정서는 대안적 대항문화의 환경에서 계속됐지만 동시에 그것은 여러 차례 단순화해 때때로 하부문화의 우상화를 낳기도 했다. 68운동의 후계로 등장한 여성운동과 대안운동, 생태운동 같은 운동은 68운동이 그린 구체적 유토피아와 비교할 때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전 사회적 대항의 구상을 펼쳐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값진 경험은 기억의 공동체에 남았다. 지은이는 68운동의 영향이 조직적으로 계승되진 못했지만 서구사회에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한다. “68운동은 이런 의식 전환이 무관심의 타파와 활발한 사회 ‘참여’, 그리고 상품사회와 소비사회에 대한 비타협과 거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나아가 68운동이 선전한 이행 전략은 ‘개인’에서 시작하고, 사회 참여를 통한 개인의 변화가 ‘다른’ 사회를 낳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보았던 것이다.”(178쪽) 기존 질서 전체에 맞서는 ‘대항의 구상’을 지닌 것으로는 “최후의 사회운동”이었던 68운동이 남긴 보물은 참여와 저항의 의식이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펌] [프랑크푸르트 학파 | 게시판

2004/12/12 14:28
http://blog.naver.com/dkddyd/80008464853
출처 블로그 > 잡다 혹은 섬세
원본 http://blog.naver.com/krinein/20004929158

아래 글은 노명우님의 홈페이지( http://myhome.naver.com/mwnho/index.html )에서 퍼왔습니다.

 

***

 

현대사상의 궤적 - 프랑크푸르트 학파

노명우(사회학, {문화/과학} 편집위원)

 

 

한 학파의 역사와 궤적 서술은 위험한 시도이다. 게다가 궤적을 쫓고있는 학파가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기반으로 스승이 천명한 학문의 목표를 제자들이 이어받아 계속 발전시키는 과정을 통해 형성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더더욱 위험하다. 우리에게 '프랑크푸르트 학파' 혹은 '비판이론'으로 알려진 연구집단이 바로 이 경우에 해당된다. 우리는 관행적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라고 말하지만, 그 학파는 다른 학파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형성사를 보여준다. 호르크하이머(Horkheimer), 아도르노(Adorno), 마르쿠제(Marcuse), 뢰벤탈(L wenthal) 그리고 벤야민(Benjamin)과 같은 학자군을 부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학파'라는 기호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학자군을 구성하는 학자들의 독창성과 고유한 연구영역의 다양성을 생각해보면, 이들을 하나의 집합체로 파악하는 관행은 사실이라기 보다 희망에 가깝다. 또한 우리가 '프랑크푸르트 학파'라고 부르는 일련의 학자들이 관여했던 [사회조사연구소(Institut f r Sozialforschung)] 역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공간이 아니었다. [사회조사연구소]는 유태인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공유했다. 따라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한 현명한 방법은, 그 학파를 단일한 연구집단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상의 핵을 찾는 것보다는 [사회조사연구소]의 부침 속의 불연속성이 빚어내는 다양한 색깔의 흔적에 주목하는 것이다.

 

1. 그륀베르크와 [사회조사연구소] 설립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형성과 [사회조사연구소]는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하지만 [사회조사연구소]의 역사를 통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궤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연구소 역사내의 네 개의 중요한 단절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회조사연구소]는 1) 1923년 설립되고 칼 그륀베르크(Carl Gr nberg)가 소장을 맡았던 시절 2)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조사연구소장으로 취임한 1930년 이후 3) 나치즘으로 인한 사회조사연구소의 망명 시기 4) 종전 이후 독일로 귀환이라는 단절적 계기를 거치면서, [사회조사연구소]와 결합했던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바뀌었고, 그에 따라 연구소의 중요 연구 방향도 크게 달라졌다.

[사회조사연구소] 설립의 기원은 1922년의 마르크스주의 워크샵(marxistische Arbeitswoche)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5월 20일 튀링엔(T ringen)에서 열린 이 워크숍에는 이후 서구 마르크스주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게오르그 루카치(Georg Lukacs)와 칼 코르쉬(Karl Korsch) 등이 참가하였다. 참가자들 중 [사회조사연구소]의 성격과 관련하여 우리의 주목을 끄는 인물은 프리드리히 폴록(Friedrich Pollock)과 펠릭스 바일(Felix Weil)이다. 펠릭스 바일은 대부호의 아들이었다. 펠릭스 바일의 아버지인 헤르만 바일(Hermann Weil)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거액의 기부금을 넘겨주었다. 이로써 훗날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사회조사연구소]는 설립될 수 있었다. 초대 소장으로 경제학자인 쿠르트 게를라흐(Kurt Gerlach)가 내정되어 있었으나, 1922년 그가 갑자기 사망하게 됨에 따라 칼 그뤼넨베르크가 초대 소장을 맡았다.

1923년 연구소의 설립부터 1933년까지 [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방향은 경험주의적 색채가 강했다.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었던 그륀베르크는 [사회조사연구소]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유물론을 경험적이고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중심지로 만들려 했다. 따라서 그륀베르크 소장의 [사회조사연구소]의 중요 인물들은 1923년의 마르크스주의 워크샵 참가자들이었다. 그륀베르크 시절 [사회조사연구소]는 {사회조사연구지(Zeitschrift f r Sozialforschung)}의 전신이라고할 수 있는 {그륀베르크 연보(Grnberg Archivs)}를 발행했는데, {그륀베르크 연보}에는 주로  마르크스주의 워크숍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코르쉬의 {마르크스주의와 철학(Marxismus und Philosophie)}, 루카치의 {모세스 헤스와 관념론적 변증법적 문제(Moses Hess und die Probleme der idealitischen Dialektik)}와 같은 논문들이 대표적인 그 실례이다. 그륀베르크 시절 [사회조사연구소]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경험적으로 연구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에 기여하려 하였다. 비트포겔(Wittvogel)의 {중국에서의 경제와 사회}, 그로스만(Grossman)의 {소련 연방에서의 1917-1927년간의 경제 계획의 실험} 등이 이러한 경향의 연구들이다. 하지만 그륀베르크 이후 [사회조사연구소]의 소장에 새로 임명된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 경향은 새로운 방향을 따라가게 된다.

 

 

3. 호르크하이머와 비판이론

 

그륀베르크 시절의 학자들과 달리 1930년 호르크하이머(Horkheimer)가 새로운 연구소장으로 임명되면서 우리가 '프랑크푸르트 학파'라 부르는 새로운 학자들이 [사회조사연구소]에 영입되었다. 연구소의 새소장 호르크하이머는 그륀베르크와 달리 연구 강조점을 경험적이고 실증적 방법론보다 철학에 두었다. 이런 경향은 1932년 마르쿠제(Marcuse)가 1938년에 아도르노(Adorno)가 [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영입되면서 한층 강화되었다(호르크하이머 소장 시절 [사회조사연구소]의 중요 연구원으로 프롬(Fromm), 라이히(Reich), 노이만(Neumann)과 준 연구원으로 있었던 블로흐(Bloch) 등이 있다).

아주 잘 알려진 삽화가 있다. 호르크하이머가 왼쪽에 하버마스를 가운데에 아도르노를 그리고 오른쪽에 마르쿠제를 두고 뒤편에서 셋을 감싸고 있는 삽화이다. 이 삽화에서 호르크하이머는 누구보다도 커다랗게 그려져 있어서, 그와 비교하면 마르쿠제, 아도르노 그리고 하버마스는 어린아이처럼, 혹은 갓 박사학위를 마친 신참내기 학자처럼 보인다. 이 삽화는 [사회조사연구소] 내의 호르크하이머의 주도적 위치를 보여준다. [사회조사연구소]의 책임자였던 호르크하이머는 그 누구보다 연구소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지칭하는 또 다른 명칭인 '비판이론'이라는 호칭은 호르크하이머가 {사회연구지}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 [전통적 이론과 비판적 이론(Traditionelle und Kritische Theorie)]에서 유래했다.

호르크하이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엥겔스를 연상시킨다. 호르크하이머는 대부르조아의 자제였지만 도덕적 판단에 근거한 보다 나은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 열망을 늘 간직하고 있었다. 호르크하이머가 조카에게 보낸 젊은 시절의 편지에는 이런 말들이 쓰여있다. "누가 이 비참함을 고발할까? 너? 나? 우리는 우리가 도살한 자의 살점이 복통을 일으킨다고 불평하는 식인마에 불과해. 아니. 아니. 그보다 더 심해. 넌 안정과 재산을 향유하고 있지만 그 안정과 재산의 대가는 밖으로는 희생자들의 숨통을 조르고, 그들을 피 흘리게 하고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하지....넌 침대에서 잠을 자고 옷을 입지. 하지만 그걸 생산하려고 우리는 채찍을 휘두르며 배고픈 사람들에게서 돈을 강탈한다. 넌 네 모닝 코트의 재료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기계 옆에서 쓰러지는지 알지 못해. 다른 이들은, 네가 심리 치료를 위해 지불하는 돈을 너의 아버지가 계속 벌 수 있게 하려고,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유독 가스에 타 죽는다. 넌 도스도예프스키의 작품을 두 페이지 이상은 읽을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될 거야. 우린 괴물이다. 그렇지만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아."

가난한자에 대한 호르크하이머의 이러한 연대의식은 그를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가깝게 서게 하였고, 그는 사회비판이론 생산을 연구소의  중요 과제를 삼았다. 호르크하이머에게 비판이론은 전통적 이론과는 달리 사회와 과학에 대한 긍정이 아니라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이론을 의미한다. 호르크하이머는 비판이론을 이렇게 요약한다. "비판이론이 1920년대에 생겨났을 때, 비판이론은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사유에서 출발했고 비판이론은 사회에 대해 비판적으로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가 전통적(traditionell) 이론이라고 비판하는 경향은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적' 태도처럼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이론을 지향하지 않고, 단지 부분적 사실의 관찰에 만족하는 '경험주의'적 편향을 보여주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러한 전통적 이론은 사회비판으로 나가지 못하고 사회를 긍정하는 보수적인 이론으로 회귀된다고 주장했다. 자연과학을 과학지식의 모델로 삼는 전통적 이론과 달리, 호르크하이머는 독일관념론의 급진화(Radikalisierung)를 통해 전통적 이론을 넘어서려 했다. 전통적 이론은 이론가를 사회의 연관망에서 벗어난 추상적인 중립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지만, 호르크하이머에게 비판적 행동은 전통적 이론과는 달리 "사회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인간행동"을 지칭했다. 호르크하이머에게 전통적 이론을 벗어나는 문제는, 실증주의적 방법론을 넘어섬과 동시에 이론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재고를 포함했다.

호르크하이머 시절의 [사회조사연구소] 연구원들은 현실을 비판하는 또 다른 비판 기획인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려는 공통된 목표의식을 지녔다. 이는 분명 그륀베르크의 [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 프로그램과 구별되는 지향점이었다. 비판이론은 도구화된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통해 마르크스 사상을 현재화(Aktualisieurung)하면서 동시에 혁신(Radikalisierung)하려 하였다. 스스로를 비판이론진영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는 이링 페쳐(Iring Fetscher)는 비판이론을 이렇게 정리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일련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시도들을 현재화하는 것으로 해석할 경우 하나의 학파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마틴 제이(Martin Jay)의 {변증법적 상상력} 이후 비판이론의 역사를 개괄한 뛰어난 연구서로 꼽히는 {프랑크푸르트학파(Die Frankfurter Schule)}의 저자 비거하우스(Wiggerhaus)는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내부의 이론적 패러다임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자본주의적재생산의 물신성 비판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의 전통 내부에서 이론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지향한 단일학파라는 것을 지적한다.

 

4. [사회조사연구소]의 망명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하자 [사회조사연구소]는 더 이상 비판이론 연구 프로그램을 독일에서 수행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사회조사연구소]의 중요 인물들은 유태인이었기 때문이다. 1933년 4월 15일 호르크하이머는 교수직에서 물러났고, 나치의 위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도르노 역시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피신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 미국으로 망명한 [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원들은 1935년 컬럼비아 대학의 도움으로 뉴욕에 [사회조사연구소]를 재건했다.

[사회조사연구소] 또한 유태인의 운명을 걷고 있던 이 기간 동안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1세대의 대표적 인물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공동으로 {계몽의 변증법}을 출간하였다. {계몽의 변증법}은 망명을 통해 오히려 성숙해진 [사회조사연구소]의  비판적 연구의 기획을 잘 담고 있다. 이 저서를 통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사회조사연구소]뿐만 아니라 독일과 인류의 문명 자체를 위험에 빠트린 나치즘의 뿌리가 바로 서양의 계몽정신에 내재해 있음을 밝혔다. {계몽의 변증법}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현대의 야만의 근원을 규명하면서, 현대적 야만의 또 다른 형태를 '문화산업'에서 발견하였고, 이로부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중요한 연구 영역인 문화현상에 대한 주목이 자연스럽게 발생하였다. 미국 망명 시절 [사회조사연구소]는 나치즘의 기원을 규명하기 위한 권위주의에 관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또한 이들은 {가족과 권위에 관한 연구(Studien  ber Autorit t und Familie)}와 {편견에 관한 연구}라는 공동연구를 통해 나치즘 현상을 정신분석학과 대중심리학을 통해 규명하기 시작하였다. 이 공동연구는 후에 마르쿠제와 프롬의 심리학적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사회조사연구소]가 미국에 망명해 있는 동안,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전통적 이론 비판과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넘어서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고유한 연구영역을 개척했다.

 

5. 독일 귀환과 68운동

 

나치의 패망 이후 [사회조사연구소]는 다시 독일로 귀환했고,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다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로 복직되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1969년에 재발간된 {계몽이 변증법}의 공동 서문에서, [사회조사연구소]의 귀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이 책이 씌어진 곳인 미국으로부터 독일로 돌아왔는데, 그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어떤 다른 곳보다 독일이 작업하기에 더 나으리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프리드리히 폴록과 함께 우리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언급한 관념들을 더 발전시키겠다는 생각 속에서 사회연구소를 재건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영향력은 독일로 돌아온 이후 강해졌다. {계몽의 변증법} 서문에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밝혔듯이, 귀환 이후 이들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시도된 지향들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고, 이 시기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각자 기념비적인 연구들을 출간했다.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비판 (Zur Kritik der instrumentellen Vernuft)}을 통해 이성의 도구화로 인한 현대사회의 야만을 비판했고, 아도르노는 {부정의 변증법(Negative Dialektik)}, {프리즘. 문화비판과 사회(Prismen. Kulturkritik und Gesellschaft)}를 통해 {계몽의 변증법}에서 제기된 비판사회이론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독일로 귀환한 [사회조사연구소]는 아도르노가 칼 포퍼와 벌인 실증주의 논쟁과 1968년 독일사회학대회 개회연설을 계기로 한 '후기 자본주의 사회/산업사회' 논쟁을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지만, 연구소의 중요 멤버들 사이의 관심분야는 [사회조사연구소]의 설립 초기와 미국 망명 시절과는 달리 공동의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분화되어 있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정년 퇴임을 앞 둔 1958년 [사회조사연구소] 소장직을 공동소장이었던 아도르노에게 물려주었지만, 아도르노 곁에 미국에 남는 길을 선택한 마르쿠제와 피레네 산맥을 넘다 자살한 벤야민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영향력은 1968년 운동에서 꽃을 피우는 듯 했다. 학생들은 비판이론이 정치적 행동주의의 사상을 풍부하게 해줄 원천이라 생각했다. 미국에 남은 마르쿠제는 학생운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학생운동이 격화되고 있던 당시 아도르노는 직접적 정치적 실천을 선택하지 않고, 미학이론을 선택했다. 아도르노는 정치적 급변의 시기에 {부정의 변증법} 이후의 다음 저서로 {미학이론( sthetische Theorie)}을 선택했다. 이러한 아도르노의 '정치적 절제'에 실망한 학생들이 [사회조사연구소]를 점거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6. 1968년 이후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신좌파 운동이 유럽을 휩쓸고 있던 1968년 아도르노는 '정치적 절제'의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미학이론}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호르크하이머도 1973년 세상을 떠나게 됨에 따라,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재건했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시대는 끝이 났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이후 위르겐 하버마스(J rgen Habermas), 오스카 넥트(Oskar Negt),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그리고 알브레히트 벨머(Albrecht Wellmer)와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2세대로 호칭되는 학자들이 배출되지만,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사망 이후 구심점이 상실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하나의 학파라기보다 비판적 사회과학에 대한 은유에 더 가까워졌다. 하버마스는 역사유물론의 재구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언어학적 선회를 통해 의사소통이론으로, 넥트는 노동운동이론으로, 오페는 정치학으로, 벨머는 미학이론으로 나아갔다. 2세대들에게는 그 어떤 구심점도 없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상사적 영향력은 여전하다. 1999년 1월 27일 개최된 나치희생자를 위한 추모행사에서 연방의회 의장인 볼프강 티제는 이렇게 말했다. "1월 27일은 우리 독일인에게는 공공영역에서 그리고 사적으로 우리의 최근 역사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을 회고해야하는 동기를 제공합니다. 따라서 기억 속에서 현재의 과제와 미래를 동시에 착목해야 합니다. 아도르노의 잘 알려진 테제, 즉 교육의 과제는 다시는 아우슈비츠는 되풀이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시민들을 겨냥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오늘의 추모식은 깨어있음에 대한 요구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 연방의회 의장이 연설문에서 학자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의아하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은 우리와 다른 문화를 지닌 독일의 문화적 독특성이라고 볼 수도 없다. 연방의회 의장이 아도르노를 언급한다는 것은, 독일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단지 하나의 학파가 아니라 비판정신 일반의 은유에 해당된다는 것을 지시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단순히 학자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기호로 사용되지 않는다.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현실을 비판하고,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하려는 학자들의 지향을 지칭하는 기호에 가깝다. 나치와 협력 혐의 때문에, 하이데거의 전후 하이데거의 영향력은 학문적인 파장만을 불러일으킨다면,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영향력은 학계를 뛰어넘는다. 헬무트 베커는 이렇게 말했다. "전후 독일의 모든 사회학적 그리고 철학적 사유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비판하든가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해는 전후 현대 독일사회를 파악하는 중요한 실마리이자, 현대 독일의 인문사회과학의 지형을 파악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비판이론가들이 현대 독일의 인문사회과학을 대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인물의 삶 속에 독일 현대사의 중요한 궤적들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을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독일 현대사의 야만의 근원을 학문적으로 파고들었고, 야만의 근원과 지속적인 대결을 벌였다. 그랬기에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학문적 업적과 정치적 태도 사이의 괴리를 보여주는 하이데거와 달리, 학자들에게만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이 아니라 동시대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독일의 비판적 지성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학파의 궤적을 찾는 작업은 단순히 이 학파가 제출한 테제를 해석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궤적은 지식인이 사회 속에서 자기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치 않는 비판정신에 있다는 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펌] 프랑크푸르트학파 | 게시판 2004/12/12 14:27
http://blog.naver.com/dkddyd/80008464843
출처 블로그 > 혀비땅
원본 http://blog.naver.com/naligood93/40004690115

(당시에 난 모든 리포트를 책베끼기로 대체하는 유행에 반기라도 들 듯 모두 스스로 찾아서 내 글을 썼다. 그러나 지금도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그래도 제출시한에 밀려서 어거지로 쓰긴 했는데 영...)

 

 

Ⅰ. 들어가며


서구 철학의 현대적 흐름은 크게 주류·비주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근대 이후 인간 이성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선형적 역사관을 갖고 있는 주류 사상은 보수성과 함께 급진화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구조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더군다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 그로 인한 세계시장 단일화에도 사상적으로 긍정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반면에 마르크스나 막스 베버 이래의 비주류적 사상은 선형적 역사관을 버리고, 변증법적인 나선형 역사관을 통해 인간과 사회의 성격을 규명하려고 시도했다. 반면에 이러한 이성적인 모든 노력은 단지 허구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비합리적이고, 비사회적인 심미주의로 진리를 찾으려는 일단의 흐름이 생겼다. 특히 1960년대 말 서구에서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을 주도한 지식인과 보수나 탈현대 모두를 거부하고 정치세력화를 통한 신사회운동을 주장한 독일의 녹색당등의 흐름도 있었다. 전인류의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진보와 어떤 관계를 갖는가를 두고 보수·진보라는 구분하기 힘든 틀 속에서 유럽의 지적 전통은 다른 지역의 지배적·피지배적인 많은 집단들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기도 한다. 안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도 그런 맥락의 하나이다.

20세기 초반의 혼란스럽던 이런 지식사회의 흐름들 속에서 마르크스와 헤겔 등의 독일철학의 전통 속에서 비판이론이라는 원칙적 흐름을 가지고 저서와 논문집발표를 통해 활동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본다. 특히, 이 학파의 성격과 발전과정, 대표적 학자들을 살펴봄으로써 현대사상사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영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생성 및 흐름


1.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 연구소의 건립(1923-1933)


1922년 펠릭스 바일에 의해 ‘제 1회 마르크스 연구 주간’에서 <비판이론>이 나타날 계기가 주어졌다. 물론, 이때는 비판이론학자들인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아도르노는 보이지 않았다. 코르쉬, 비트포겔, 폴로크, 졸게, 루카치 등이 모여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 연구소가 1923년 설립되었다. 물론, 펠릭스 바일 아버지로부터의 기부금이 재정적 원천이어서 대학으로부터 재정적 독립이 가능했다. 최초의 연구과제는 노동운동의 역사와 이론들, 경제와 문화의 상호작용, 사회적 발전의 특성 등이었다. 초대 소장으로 그뤈베르크가 임명되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낙관적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신념적 방법론과 비맑스적 방법론에 대한 연구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설립 후 몇 년간은 소련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다양한 접촉을 했으나 공식 정당과는 어떠한 정치적 영향을 받지도 않으려 했다. 이때. 내부에는 소비에트 공산주의 지지자와 폴로크나 호르크하이머와 같은 맑시즘의 회복을 바라는 두 그룹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호르크하이머는 사회문제에 대한 학제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실증주의를 비판했다. 즉, 단순한 실증가능한 사실을 떠나 헤겔적 사회철학을 개선하는 것을 통해, 인간의 실질적·정신적 문화 전체를 다루는 사회철학으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철학적 이론과 개별 과학적 실천을 변증법적으로 상호 침투시키는 것이 호르크하이머의 목표인 것이다.

1932년 최초의 <사회연구지>가 출판되었으나, 1933년 9월부터는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여기서도 호르크하이머의 이론 확립과 그 이론의 보완을 위한 학제간 연구의 필요성과 이상향적 추구라는 특성이 나타났다.

1939년에서 1941년까지는 <철학과 사회과학 연구>라는 이름으로 뉴욕에서 간행되었다. 이 연구지를 통해 현실 적용적 마르크스연구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연구가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2. 미국 망명시기(1933-1950)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자 연구소는 제네바 지부로 이주했다. 이때 명칭은 ‘국제사회연구협회’였다. 대부분이 교수직에서 해임되어 탈출했고, 비트포겔은 강제수용소에서 동년 11월 석방되어 영국으로 망명했다. 1935년 회원들은 미국의 뉴욕으로 건너가 컬럼비아 대학의 건물에서 영위했다. 1922년이래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친교를 맺고 1929년 연구소와 관계를 갖고, 1938년에는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정회원이 되었다. 마르쿠제·프롬·라이히·노이만·그로스만·보르케나우·뢰벤탈 등도 관계를 가지며 활동했다.

파시즘에 대한 대항의 의미에서, 또 생계를 위해서 2차 대전 중 마르쿠제·노이만·뢰벤탈은 미국 정보국의 OSS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들은 히틀러-스탈린 협정을 두고 파시즘과 소비에트 맑시즘을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결론 내렸고, 자본주의의 파시즘화는 필연이라고 파악하고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다만 미국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서 그러한 비판적 내용은 조심스런 어휘선택을 해야 했고, 미국의 학자들과의 교류를 줄어들게 했다. 특히, 아도르노는 미국에서 대중매체에 의한 규격화와 예술의 소비재화의 현상은 존재의 물상화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런 말은 나중에나 할 수 있게 되었다.


3. 귀국이후(1950년 이후)


종전 후 1946년 프랑크푸르트 시(市)와 대학으로부터 귀국요청을 받았고 1950년 아도르노·폴로크와 함께 호르크하이머도 독일로 돌아 왔다. 그러나, 마르쿠제 등은 미국에 남았다. 새로운 프랑크푸르트 2세대들은 이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하버마스·오스카 네그트·슈미트·오페·벨머 등이다.

하버마스는 맑시즘을 받아들여 현대의 입장에서 그것을 해석하고 개선한 비판이론을 전개했다. 『사적유물론의 재구성』(1976)이 바로 그런 류이다. 그는 주류 사회과학이론과의 대결을 통해 사회학의 주요 흐름을 역사적으로 검토했으며, 『정신분석학을 언어분석으로 받아들인 나의 시도』를 통해서, 해석학의 중요성 때문에 언어를 고찰해야 하고, 의사소통이 사회적 행위의 전부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분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후에 <비판이론>연구를 프랑크푸르트 대학 밖에서 진행했는데, 과격한 헉생들과의 대결 때문이었다. 1971년 막스-프랑크 연구소의 지도자가 되었다. 오스카 네그트는 사회학 교수였으나, 새로운 교육학습형태에 대한 발표와 비판이론적인 칸트·헤겔 연구가 주목받았고, 특히 프랑크루르트 학파에서 보기 드물게 정치활동에서도 적극적이었다. 클라우스 오페는 자본주의와 서독의 정치체제의 관계, 정치적 결정의 정당성의 문제 등을 연구했다. 슈미트는 마르쿠제의 저서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사회연구지>를 변역해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초기 사상을 소개한 점에서 공적이 컸다. 벨머는 포퍼와 비판이론의 관계, 언어분석학과 비판이론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으며, 아도르노와 하버마스에 근거해서 마르크스에 대한 내재적 비판을 시도했다.


Ⅲ.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성격 논쟁


1. 서구 맑시즘의 변형 과정에서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1) 서구의 좌파적 흐름

①네오맑시즘

-맑스주의의 본질은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하고, 현대의 비인간화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이러한 흐름은 맑스 초기 저작들의 발견으로 인본주의 논쟁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소    련의 맑시즘이 독단적이고, 교조적으로 왜곡되었다는 자기성찰적 자세에서 그것에 도전하    는 이론적 계기를 마련했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역시,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네오맑시즘의 일단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②신좌파운동(New Left)

-1950년 후반에 구좌파에 실망하면서 선진산업사회의 부조리와 병폐에 대한 저항과 비판    에서 비롯되었다. 스탈린체제에 반대한 좌익지식인들이 냉전 심화로 정치무관심이나 보     수적으로 변질된 것이 구좌파였다면, 이에 반한다고 신좌파라 한다. 1960년대 미국 대학     에서 인종차별문제 등의 민권운동, 베트남전 반대, 반핵, 소외문제에서 비롯한 히피족의     반문화운동 등의 형태로 과격한 반체제운동으로 전개되었다.

③유로코뮤니즘

-2차대전 이후 소련중심의 세계공산주의운동에 반발하여 다원적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표    방하였던 유고의 티토, 폴란드의 듀브체크·차우체스크 등의 노선에서 그 이념적 기초를 두    고 있다. 스탈린 사후에 스탈린 격하운동, 중·소 이념분쟁, 소련의 체코진압(1968)은 소련    의 사회주의 맹주로서의 역할에 의구심을 갖게 했고, 소련 공산당에 불만이 고조되었다.     또한, 경제 성장 속의 복지국가 지향적 서구사회에서는 맑스-레닌주의의 기반이 약화되었    다. 이러한 주·객관적 여건이 1970년대, 특히 이태리·프랑스·스페인의 공산당들은 ‘반소 독    자노선’ , ‘다원적 사회주의 건설’을 주장하도록 했다.


2)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네오맑시즘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사상은 변증법적 유물론과 소외론이고, 경제이론은 잉여가치설과 자본주의 몰락론이다. 그리고, 정치적이론은 계급투쟁론과 폭력혁명론이다. 그런데, 초기의 맑스 저작은 휴머니즘적인 성향이 강했고, 후기는 공산주의적 혁명이론이 주를 이룬다. 이것은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혁명이론이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레닌은 후진 러시아의 공산혁명의 합리화를 위한 전술적 도구로 이용했으며,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 건설론에 의해 소련의 이익 추구와 스탈린 독재의 기반으로 이용했다. 국가사회주의권에서는 이러한 맑시즘의 왜곡으로 비인간화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또한, 자본주의는 몰락하리라는 예언적 믿음은 약점을 보완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산업화에 의한 문화수준·생활수준의 향상, 교육수준의 향상 등으로 대중은 평화와 안정을 바라게 되었다. 여기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의 맑시즘 비판을 막아야만 하는 3중의 과제 때문에 좌파적 지식인들은 맑시즘의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운동을 모색해야만 했다. 네오맑시즘이 바로 그것이다. 지역적으로는 서구에서는 실존주의적 맑시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이론, 유로코뮤니즘의 형태로, 제3세계에서는 해방신학이나 종속이론으로 전개되기도 했다. 분야별로는 정치, 경제, 사회, 심리, 미학, 신학 등에 두루 접합되어 발전했다.


3)좌파적 실천철학으로써의 프랑크푸르트 학파

프랑크푸르트 연구소의 초기과정에서 맑스.엥겔스 사상을 심도 있게 연구 했다. 그들의 비판이론은 네오맑시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련의 국가사회주의는 맑시즘의 왜곡이었고, 자본주의도 인간성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 아래 현대산업사회의 기술발달은 이성의 도구화현상으로 나타났으며, 맑시즘적 노동해방을 넘어 일상생활의 전반 속에서의 소외론을 전개했다. 예를 들면, 성, 가족, 노동문화, 언어, 의사소통, 사회적 행위, 제도, 정신분석 등의 여러 각도에서 분석을 시도했다.

또한, 그 방법적 극복방안으로 인간성의 회복과 주체성 부활에 초점을 두었다. 특히, 자본체제하의 이러한 방법은 사회구간의 개혁을 통해서만이 가능한데, 계몽된 사람들이 조직체를 이루고 현재의 집권세력을 교체하는 과정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버마스는 특히, 현재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공개적인 갈등관계가 사라졌으며, 과학기술의 발달로 지배의 감시 도구가 발달한 지배, 조작을 통한 계급의식의 마비의 지배를 통해 보이지 않는 억압구조를 재생산한다고 했다.

또한, 현대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본질적 모순은 계급적 대립이 아니라, 기술적 인식에 의한 지식과 대화의 개량화, 표준화로 행동이 도구화되어 버렸으며, 인간관계마저 규제하고 있는 점이라 했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단점은 주체적 각성을 못하게 하고, 결국 개인적 소외를 조장한다고 보았다. 마르쿠제는 자본주의 사회든, 공산주의 사회든 비인간화에 대항하는 투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노동자 계급은 계급투쟁의 주체로서, 지위가 상실되었기 때문에 -기업경영에 동참, 생활수준의 향상, 계층상승욕구를 통한 경쟁에의 맹목적 지향- 보수적으로 바뀌었으며, 대신에 과학기술의 창조, 소유가 가능한 지식인과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인간해방을 위한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유물사관이라는 카테고리에서 출발했지만, 경제 결정론을 수정해서 개인의 의식적 각성에 의한 경제라는 하부구조와 사회제도라는 상부구조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4) 맑시즘에서 출발한 “변증법적 비판이론”

이론과 현실을 통합해서 변증법, 역사성, 전체성을 고려한 사회철학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계몽주의의 변증법』을 통해 Marxism의 혁명이론으로써 기존의 분석 철학을 비판했다. 그러나, 맑시즘의 수정을 내부에서 불가피하게 느꼈는데, 그 주요내용은 아래과 같다.

①경제 결정론에 대한 비판이다. 결국 하부구조의 변화 동인에 의해 상부구조가 변동한다    는 도식과 자본주의 붕괴론의 신념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②프롤레타리아에 의한 현실 부정과 그 조직적 힘에 의한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인데,    더 이상 노동계급은 자신을 계급적 전위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현실    절망적, 비관적 상황인식이 녹아있다고 볼 수 있다.

③잉여가치론에 대한 반론인데, 마르쿠제는 잉여가치론적인 착취보다는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 해결을 위한 복지국가와 같은 내적 보완장치가 개발되며, 통합적 현상들이 생겨난다    고 했다.

④맑스가 상정한 유토피아는 역사적 발전과정의 끝을 예정한 것인데, 헤겔의 역사종말론과    동일한 실수를 했다는 입장이다. 더군다나 유토피아는 ‘평등과 자유’ 라는 제로섬적 두 요    소의 성격으로 정당성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이러한 비판적 수용을 통해서 실은 맑시즘의 현대화를 유지하려 했다는 점에서 마르쿠제의 사상은 논쟁의 근거가 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학파 중에서 가장 실천적인 측면을 많이 강조했고, 맑시즘의 카테고리를 지키려 한 사람이다. 현대 사회의 폭력적 구조를 인식하기 힘들게 하는 조작된 욕구충족과, 비판의식 망각을 위한 여러 기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폭동과 반란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부분적인 수정이나 개혁보다도 근본적인 전복만이 유일한 수단이라 여겼다.


2. 사회철학에서 막스 베버 후계자로서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기술적인 합리성에 의한 새로운 지배 체제의 대두라는 관념과 근대 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설명했던 막스 베버의 관념 사이에는 부정할 수 없는 유사성이 들어 있음을 찾을 수 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론적 전개는 점점 더 마르크스의 사상으로부터 벗어나서 선진 산업사회에 내재하는 역사적 성격을 논리화했던 막스 베버의 이론으로 탈바꿈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기술적 합리성이나 합리화의 성격을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통제력이 미칠 수 없는 새로운 사회를 형성시켜 나가고 있는 추상적인 힘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과학과 합리적인 행정 체계에 의해서 개인뿐만이 아니라 사회 집단까지도 변화시켜 버린다는 뜻이다. (원초적인 기술적 결정론)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비관적이라는 점까지 베버와 흡사하다. 막스 베버는 냉혹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합리주의와 차가운 지성주의의 확대 현상으로 인하여, 사회는 보다 더 순수한 의미의 도구적인 사회 관계의 지배 속으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인간에게는 이러한 것을 막아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지책이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이다. 마르쿠제도 베버의 인식과 마찬가지의 성격을 보여준다. 즉, 사회적인 삶을 지배하는 것은 기술적 합리주의이며 이와 같은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는 전개 과정에서는 어떠한 힘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극히 예외적이지만, 미미한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이러한 상황에 맞서는 적대적인 혁명 세력의 봉기를 사회의 최하 계층 속에서 기대할 수 있을 뿐이라고 믿었다. 최하 계층이란 기존 체제로부터 소외된 국외자나 추방된 사람들이며, 약탈당하고 있거나 다른 인종 또는 다른 색깔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억울하게 억압당하고 있는 사람들과, 직장을 잃어버린 실업자들, 그리고 곧 실업자의 운명에 놓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보여주기 시작한 사회적 변혁에 대한 절망적인 인식은 사실상 근대 서구 사회의 분석에서부터 연유된 일반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그 당시 사회적 사조의 광범한 성격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과학으로서의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에 대한 일반적인 적대감의 한 표현이었다. 특히 과학과 기술이 미친 사회적 결과에 대한 깊은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1차 대전에 의해서 조성되었던 사회적 대변혁과 문명의 파괴,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났던 독일 국가사회주의자들의 전체주의적 정치 체제의 괴로운 경험과 그 뒤를 이로 1945년부터 국제 사회가 초강대국에 의해서 분할 지배됨으로써 끝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핵무기의 경쟁으로 치달리는 현실 상황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문화의 상실감과 전락감을 누적적으로 경험하게 했으며 극단적인 비합리성의 횡행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런 것들로부터 파생된 생각이 실증주의에 대한 적대감이다.

마르쿠제의 사상은 1960년대 후반기 동안 비교적 짧은 시기이나마 미국의 학생 운동에 상당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유럽 여러 나라의 학생 운동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합리적인 생산 양식과 행정 체제라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사회 현상에 대한 막스 베버의 주장을 바탕으로 하여 나타난 것이 바로 “후기 산업사회”논쟁이다. 다니엘 벨과 같은 보수주의자들은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중요한 계급들 사이의 차이가 점차 줄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중산 계급이 중심이 되고 있는 바람직한 사회로의 지향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면에 급진주의자들의 해석은 19세기 자본주의의 계급 구조는 대단히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이제 새로운 기본적 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후기 산업사회의 직접적 갈등을 가진 집단은 더 이상 부르죠아지 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 과정이나 경제적인 행동 과정에서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과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점점 더 종속적인 참여만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런 비관론적 사고는, 호르크하이머가 말년에  더 이상 비판론자로서가 아니라 종교 사상가로서의 접근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3. 실증주의 등의 균형론자나 기능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유럽의 지적

  반항으로써, 사회구조주의로써 프랑크푸르트 학파


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또는 과학주의나 객관주의라는 이름으로 과학적인 인과 관계의 명증성을 주장하고 있는 균형론자들의 주장이 큰 반격을 받았던 적은 60년대와 70년대였으며, 이러한 반격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었던 내용은 학문 연구에서의 가치의 문제에 대한 것으로서 이것은 곧 학문과 인간에 대한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논의에 대한 인식의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얼굴을 인간답게 그리려는 노력”이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면, 학문에 대한 연구도 학문이 인간과 어떤 관계 위에 서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초적인 문제에 대하여 유럽의 지적인 전통 위에 서서 사회 구조의 전체성을 조감함으로써 인식의 실마리를 발견하려 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학문적인 기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인간과 학문의 관계라던가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사회 속의 인간의 관계를 깊이 있게 밝히기 위하여 때로는 유럽적인 지적 전통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마르크르의 이론에서부터 막스베버의 주장에 이르는 여러 가지 논의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마침내 사회학과 심리학, 철학을 하나로 결속시킬 수 있게 되었고 그 뒤에는 역사학과 경제학도 부가시킬 수 있었다. 즉, 20세기 후반의 지적 토양의 편향과 이용 가능한 지식만의 생존이라는 환경 속에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심층적이고, 전체적인 인식적 사고는 그런 것들을 회복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Ⅳ.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 학자들


1. 막스 호르크하이머  Max Horkheimer (1895-1971)

아버지의 권유로 사업가로 훈련을 받았으나 결국은 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1925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강사로 일했다. 이때부터 일생동안의 친구였던 폴 로크와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 연구소의 초창기 연구원이 되었다. 1931년 그는 이 연구소의 제 2대 소장이 되었다.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자, 제네바로 피신했다가 1934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때부터 독일로 귀국할 때까지 컬럼비아 대학의 한 건물에서 임시로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다. 1950년에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 연구소와 함께 독일로 귀국하여 1957년 은퇴할 때까지 소장직을 맡아 했다.

저서로는 『비판이론 : 논선』, 『이성의 침식』, 『계몽(주의)적 변증법 -아도르노 공저』등이 있다.


2. 프리드리히 폴로크  Friedrich Pollock (1874-1970)

사업가로 훈련을 받다가 1차 대전이 끝난 후 뮌헨 대학, 프라이부르그 대학,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수학했다. 1923년 <제 1차 마르크스주의자 연구 주간>에 참여했으며,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 연구소의 창립에 주도적 인물의 하나로 일했다. 호르크하이머와의 깊은 우정으로 뉴욕으로 이주했다가 그와 함께 1950년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1959년 은퇴 후에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스위스의 몽타그놀라의 한 촌가에서 보냈다. 폴로크는 주로 소련의 계획 경제 문제에 대하여 연구하였으며, 1930-40년대에는 그의 중요한 논문을 수집해서 저서로 발간했다. 『자본주의의 단계』,『자동화의 사회·경제적 결과』등이 그것이다.


3. 허버트 마르쿠제  Herbert Marcuse (1898-1979)


베를린 대학과 프라이부르그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했으며 그 뒤에 훗설·하이데거 등과 함께 수학하기도 했다. 1932년에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 연구소의 일원이 되었다. 1933년에 다른 연구원들과 함께 처음에는 제네바로 피신했다가 뉴욕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1934-40년까지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후에 한때나마 미 국무성의 동유럽부서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1950년에는 컬럼비아 대학으로 되돌아왔다. 1954년에서 1967년까지는 브렌다이스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며, 그 뒤에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연구했다.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이성과 혁명』,『소비에트 맑시즘의 비판적 분석』,『일차원적 인간』,『부정론 : 비판이론의 논집 -30년대 그의 논문들을 수집한 것』등이 있다.


4. 데오도르 아도르노  Theodor W. Adorno (1903-1969)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철학, 사회학, 심리학, 음악이론을 연구한 후 1925년 비엔나로 갔다. 음악이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다가 다시 프랑크푸르트 대학으로 돌아와서 1931년 강사로 일하면서 연구소와는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후에 나치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그는 약 4년 동안 옥스퍼드 대학에서 보냈으며, 뉴욕으로 이주하여 1938년 그곳으로 이주해 있던 프랑크푸르트 사회과학 연구소의 정회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아도르노는 미국에서 그의 철학적인 연구와 음악에 대한 이론 탐구를 계속 하였으며, 편견과 권위주의에 대한 연구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연구 결과를 수집한 저서가 『권위주의적 개성』이다. 1950년에 사회과학 연구소가 다시 독일로 돌아가자 아도르노는 부소장, 공동소장으로 일했고, 1959년 호르크하이머와 폴로크가 은퇴한 이후에는 소장으로 일했다. 저서는 『부정적 변증법』,『계몽주의적 변증법 -호르크하이머 공저』,『현대 음악철학』,『 권위주의적 개성』등이다.


5. 위르겐 하버마스  Jügen Habermas (1929- )


그는 후기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적 사상가로서 아도르노와 함께 이곳에서 연구했다. 처음에는 아도르노의 조교로 일하다가 그후에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했다. 다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철학과 사회학 교수로서 일했고, 1972년에 스탄베르그에 있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로 옮겨갔다. 1980년대에 다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정교수로 지내고 있다. 그는 주로 지식이론과 그것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으며, 최근에는 마르크스의 역사이론과 후기 자본주의 사회분석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 저서는 『이성적인 사회를 위하여』,『지식과 인간의 관심』,『정통성의 위기』,『커뮤니케이션과 사회의 발전』등이다.


Ⅴ. 결론


프랑크푸르트 학파는 독일의 철학적 전통 -칸트, 헤겔, 마르크스 등- 위에서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비인간화라는 점에 입각한 연구와 해결방안을 모색했다. 학문적인 면에서도 과학주의에 의한 이념적 보수성과 학문풍토의 협소성을 극복하는데 공헌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서구 전통이론을 망라하는 방대한 작업을 진행했으며-맑시즘의 재검토, 니이체와 막스 베버적 인식, 하이데거·슈팽글러로부터의 영향, 유대교에 대한 연구 등등- 마르크스의 원형을 현대화하는 작업과 함께, 실재로 정치 투쟁적 급진성을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실천철학으로써의 사회이론을 정립하고자 하였다. 사실 그들의 노력은 새로운 창의적 학문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이론들을 통합하고 전체적으로, 직관적으로 연결하려는 실험들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으로 유물론적 구조화를 시도하기도 했으며, 심리학에서부터 사회구조적인 이론에까지 그 영향력은 진행형이다.

그러나, 지나친 실증주의에 대한 회의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과학적 개량적 접근을 부정했다. 따라서, 대안 없는 비판이나 부정으로 매도되기도 했다.

한가지 더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학파를 단순하게 관념론자들이라거나 맑시스트, 혹은 근본적으로 우파적 성향을 지닌다는 등의 결론을 내리기가 쉽다는 점이다. 또한 그런 고정관념으로 프랑크푸르트 학파를 검토하려 해도 그 증명이 용이하다. 그러나, 그것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의 방대한 적업과 학자간의 상이한 관심영역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한 휴머니즘을 위한 학제간 연구를 말했듯이 그들을 평가 혹은 검토할 때에도 그런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제 2 장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 게시판 2004/12/1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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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

1. 비판의 의미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비판이론은 인식론적으로 독특한 비판정신에 입각한 것이다. 비판이론에 있어서 비판이라고 하는 개념은 독일철학 특히 칸트, 헤겔 및 마르크스의 인식론에 흐르는 비판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비판이론은 독일철학에서 발전된 비판의 두 가지 개념을 창조적으로 종합한 독특한 비판정신에 근거하고 있다. 한가지는 선험철학을 위한 칸트의 프로그램에 그 뿌리가 있고, 그래서 정당성의 검증(testing of legitimacy)을 뜻하며, 다른 한 가지는 이론과 실천의 대립에 관한 청년 헤겔학도들의 입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는 부정(negation)을 뜻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실재론적 과학의 개념을 개척하면서부터 비판개념의 이 두 가지 의미는 종합될 수 있었다. 『변증법적 이론의 출현』에서 워랜(Scott Warren)도 비판이론의 비판정신을 다음과 같이 특징짓고 있다. 비판이론의 철학적 근원은 마르크스사상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변증법적 정신을 회복하려는 것이며, 이는 곧 변증법적 이론의 칸트적 및 헤겔적 근원에 복귀하는 것이다. 비판이론의 본질은 마르크스사상에 체현된 칸트와 헤겔의 인식론적 근원을 재정립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당시 객관주의적이고 결정론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고, 칸트의 구성적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헤겔의 변증법적 인식론을 구체적 현실비판과 실천에 적용한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비판정신을 복권시킴으로써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칸트에 있어서 비판개념은 인간인식의 능동적 구성능력에 따라 지식의 정당성을 검토하는 순수이성의 특징을 의미한다. 경험영역과 무관한 초험적(transcendent) 사변과 독단의 형이상학에서 태어난 칸트는 모든 지식이 경험과 더불어 시작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이라고 하는 감성의 선험적 형식이 없으면 대상직관이 이루어질 수 없고, 범주라는 오성의 선험적 형식이 없다고 하면 개념이 형성될 수 없다고 함으로써, 그는 인식의 모사설을 극복하고 구성설로의 인식론적 전환을 이룩한 것이다.
 감성형식과 오성형식은 선험적 주관이기에 경험에 앞서 있고, 그래서 무질서한 경험적 실재에 질서를 부여한다고 하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대상중시에서 주관중심으로의 인식론적 전환이며, 이렇게 볼 때, 이는 인식의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인식의 주체를 복권시킨 근본적 비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은 경험적 객관세계를 무시하고 관념적 주관세계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인식의 구성적 능력이 매개가 되어 주체와 객체, 의식과 대상이 변증법적 상호결정 관계를 이룩함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적 인식론은 인과의 원칙도 현상 그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나타난 현상에 대하여 보편적 주관이 선험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형식에 따라 우리가 능동적으로 구성한 것이라 규정함으로써, 휴움의 회의론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식대상을 인식주체가 선험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범주에 의하여 구성하는 것으로 보고, 인식의 종합적 기능을 강조함으로써 의식과 실재, 주관과 객관, 혹은 합리론과 경험론의 진부한 대립을 고차적으로 지양하였기 때문에 칸트는 비판적이면서도 변증법적인 지식이론의 발전에 기여하였다고 하겠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존재와 사유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강조한 점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에 계승되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이 지식의 대상을 역사적 상황하에서 주체의 구성적 활동에 관련시키려 하는 것도 칸트, 헤겔, 마르크스의 이러한 인식론적 전통에 입각한 것이다.
 그러나 칸트는 인식이 감성과 오성의 종합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신, 영혼, 자유, 도덕률처럼 경험영역을 초월하는 세계에 대해서는 이론적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였다. 사실과 현상의 세계는 이론적 인식이 가능하나 가치와 본질의 세계는 이론적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순수이성의 구성적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감성과 오성, 객관과 주관간의 이원론을 극복할 수 있었던 칸트가 사실과 가치, 필연과 자유, 현상계와 본체계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심연을 상정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이원론적 문제를 남기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식주체의 선험적 주관이 칸트에 있어서는 미리 주어진 확고하고 완성된 것으로 전제되었으나, 헤겔은 주관적 의식의 자기형성과정 그 자체를 밝히는 것이 참된 인식비판이라고 보았다. 주관적 의식을 완결된 형태로 전제할 것이 아니라 자기형성의 기나긴 도정에서 점진적으로 정교화 되는 것으로 볼 때, 경험의 전제조건이라기보다 거듭된 경험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결과적 속성으로 개념화함으로써 비로소 주관과 객관의 대립이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칸트의 출발점이 헤겔에 있어서는 기나긴 여정의 종착점이라 할 수 있다.  헤겔은 아주 단순한 의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완전한 의식에 이르게 되는 유한정신의 현상학적 자기발전의 과정을 노동을 매개로 하여 밝히고 이 과정에서 이론과 실천, 객관과 주관, 보편성과 특수성의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할 수 있음을 보였다. 인본주의적 신마르크스주의자들 특히 루카치, 그람시 및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마르크스사상의 헤겔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헤겔이 이와 같은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이론적 골격을 제시하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을 통하여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제도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고, 이때 인간은 소외와 탈소외의 동태적 과정을 거듭하는 가운데 절대정신의 오묘한 섭리에 힘입어 완전한 의식에 이르게 된다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절대정신이 유한정신의 변증법적 자기 발전을 통하여 스스로를 실현한다는 것이므로 이는 절대적 관념론이며, 여기서 헤겔은 분명 소외의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하였다 아니할 수 없다.
 노동을 자기창조의 과정으로 개념화하고 인간을 스스로의 노동의 결과로 파악한 헤겔의 사상을 마르크스는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그는 헤겔의 위대성을 격찬하면서도 헤겔에 있어서 노동개념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정신노동이며, 의식의 대상은 대상화된 자기의식일 뿐만 아니라, 헤겔은 소외의 긍정적 측면만 강조하고 부정적 측면을 외면함으로써 현상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데서 그친 보수적 결론에 이르게 되었음을 신랄히 비판한다.
 이제 마르크스에 이르러 비판이론은, 『포이에르바하 제11명제』에서 선언한 것처럼, 인식비판을 넘어 변혁논리로 발전하게 되며, 이는 당시 자본주의 선발국에 있어서, 노동의 현존이 그 본질로부터 심히 괴리됨으로써 자아창조의 활동이어야 할 노동이 인간성의 긍정이라기보다 오히려 그 부정이라는 현실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은 관념적 종교적 존재라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기보다는 의식주와 같은 물질적 생산수단을 생산하는 활동에 있어서 동물과 뚜렷하게 구별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다. 동물의 경우와 달리 인간에겐 기본욕구의 충족 그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성장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인간의 노동은 본질적으로 대자적이다. 욕구의 필연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의 노동이 참된 의미에서 인간노동이며 잠재적 능력을 외화하는 자유로운 활동이라는 것이다. 소여의 환경을 이용만 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이를 능동적으로 변형할 수 있는 창조적 존재이다. 환경에 대한 제어능력을 발전시켜 삶을 쾌적하게 가꾸려고 하는 창조적 활동은 인간노동의 고유한 특성이라는 것이다. 동물의 경우는 본능에 생리적으로 각인된 반사적 활동만 하나 인간은 활동에 앞서 의도적으로 계획하는 유목적적이고 의식적인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동물의 경우와는 달리 인간은 스스로를 개(個)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동류의식이 있는 유적 존재(類的存在)이므로, 동물이 단일방향으로 생산하는 데 비하여 인간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컨대, 인간노동의 본질은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의식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이기 때문에, 노동은 인간성을 실현하는 인간성의 긍정이어야 하나, 당시 노동의 현존은 인간의 자아실현을 가로막는 인간성의 부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 초부터 오웬 등의 지도 아래 노조운동이 활성화되어 마치 오늘날 우리의 노동현장처럼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격렬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경제적 모순의 누적에 따라 사회변동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고 하는 객관적 결정론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본의 가치 증식 과정에 내재된 부도덕성을 감상적으로 비판하고 노동조직을 동원하려고 하는 정치적 자원론자도 아니다. 계급의식이 역사적 과정과 무관하게 인간의 의지에 따라 자의적으로 선택될 수 있는 자율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 나타나는 신비로운 역전이 자본가와 노동자계급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역사적 조건과 주관적 의식의 성숙을 동시에 탐색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칸트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헤겔의 변증법적 방법을 구체적인 현실비판과 개혁에 적용한 마르크스의 비판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비판이론의 비판정신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내포한다고 하겠다. 첫째, 비판이론은 인간을 능동적, 자율적, 창조적인 존재로 본다. 둘째, 인간은 지식만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정치, 종교, 언론, 교육제도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도 만든다. 셋째, 인간에 의하여 창조된 이러한 사회제도나 과학적 지식이 인간을 위한다는 명분을 표방하면서도, 인간의 창조성, 능동성 및 자율성을 가로막고 억압하는 구조적 질곡이 되기도 한다. 넷째, 인간이성의 능동성, 자율성, 창조성에 대한 확신을 토대로 하여, 이성의 자유로운 실현을 가로막는 구체적인 사회역사적 상황에 대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서 이러한 질곡으로부터 해방을 성취하려는 정신이 비판정신의 핵심이라 하겠다.
 제1세대 비판이론과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은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압과 지배체계에 의해 예속된 인간성을 해방시키고 보다 합리적인 사회를 이룩하며, 개인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려는 기본정신에 있어서는 일치된다고 하겠다. 따라서 우리가 비판이론을 수용함에 있어서도 이론의 실질적 내용을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2. 전통이론과 비판이론
 호르크하이머(Horkheimer)의 「전통이론과 비판이론」(1937)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며, 그가 이 논문에서 밝힌 기본신조는 비판이론의 방향과 주요관심을 나타낸 것으로, 아도르노와 마르쿠제도 대체적으로 같은 입장이라 할 수 있다. 마르쿠제(Marcuse)의 『철학의 비판이론』(1968)은 물론 아도르노(Adorno)가 『독일사회학의 실증주의 논쟁』(1969)에 붙인 서문도 비판이론의 방법론적 특징을 밝힌 것으로 호르크하이머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가들은 모든 전통이론을 비판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특히 실증주의를 대표적 전통이론으로 규정하고 이를 철저하게 비판하였다. 여기서 실증주의는 꽁트를 비롯한 19세기 실증주의, 비엔나 학파의 논리실증주의, 포퍼와 알베르트의 비판적 합리주의 등 자연과학적 모델에 입각한 경험의존적 인식론에 근거한 것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논리실증주의는 경험적 현상과 그 현상에 관한 지식이 객관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일종의 모사설이다. 카르납, 노이라쓰, 쉴릭 등 당시의 실증주의자들은 경험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관찰 기술하고, 경험적 사실들간의 관계를 논리적으로 귀납하여 보편적인 법칙을 수립하는 이와 같은 방법이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통합과학적 방법론이라 믿었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베이컨 이래로 과학적 방법의 원형으로 인정되어 온 단정적인 귀납논리의 오류를 지적하고 이를 가설적 연역법으로 대치하고, 검증의 원칙을 반증의 원칙으로 대치함으로써 논리실증주의의 인식론적 오류를 극복한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포퍼도 경험의존적이며 방법론적 개체주의에 빠짐으로써 구조적 모순의 파악을 외면하는 새로운 유형의 실증주의라는 것이다.
 비판이론가들은 실증주의가 경험적 사실만을 절대시하는 일종의 물신숭배(fetishism)이며, 사회적 현상의 인간적 함의를 망각한 물화된(reified)사상이라고 본다. 실증주의는 자연과학적 모델에 입각한 경험의존적 인식론이기 때문에 현상의 이면에 숨은 본래적 모순을 밝히는 데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실증주의가 원래는 신화와 환상 그리고 형이상학의 꿈에서 깨어나 대상세계를 경험적 이성으로 직시하려는 계몽주의적 각성(disenchantment)의 산물이고 계몽주의적 이성의 산물이라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실증주의는 존재와 당위, 사실과 가치,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고 이론의 가치중립성을 표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현상유지 이데올로기로 전락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호르크하이머는 당시의 생철학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니체, 딜타이, 베르그송 들이 인간이성이 고정적이고 추상적인 합리주의로 변질된 점을 비판하고, 인간의 구체적 삶에 있어서 정신적 차원을 회복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부패한 사회에 대한 무비판적 동조주의로부터 개인을 구원하려 했던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호르크하이머는 생철학이 주관성과 내면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삶의 사회역사적 차원을 외면하고, 현실의 물질적 자원을 과소평가 하였으며, 추상적인 합리주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이성 그 자체를 거부한 것 등을 생철학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보고 이를 비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한계성 때문에 생철학은 그 특유의 비판적 계기를 사회비판이론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정치적 실천과의 관련성을 이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비판이론가들은 듀이(John Dewey)류의 실용주의사상도 실증주의처럼 철학을 과학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였고, 현실적 삶과 진리의 관계를 지나치게 실용적이고 도구적인 관점에서 이해하였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이 환경에 대한 적응만을 강조하는 실용주의는 사회이론의 비판적 계기를 상실하고 현실에의 동조를 수반하였다는 점에서 역시 전통이론에 머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비판이론은 현상유지 이데올로기로 이용되는 모든 이론을 전통이론으로 규정하고 비판하나, 그 중에서도 실증주의를 대표적 전통이론으로 본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실증주의가 배타적으로 강조되는 경우에는 기존의 정치경제적 질서에 대한 비판적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치적 타율성을 조장함으로써 가치중립이라고 하는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현상유지 이데올로기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비판이론가들은 특히 이와 같은 위험한 사조가 마르크스주의에 접목되어 형성된 이른바 실증주의적 마르크스주의가 제2인터내셔널 이후에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로 교화되었고, 스탈린 치하에서는 드디어 인간해방의 철학이 인간억압의 무자비한 도구로 악용된 역설적인 전도를 심각한 우려와 함께 개탄하였다. 따라서 비판이론은 사실과 가치, 객관성과 주관성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강조한 마르크스사상을 실증주의로부터 구출하고, 이성의 비판적 계기를 회복하려는 것이며, 그 특징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비판이론은 이론의 실천지향성을 강조하고, 실천적 의도를 가진 이론이다. 비판이론은 인간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실천적 관심이 그 특징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려고 하는 자기 반성적이고 자아의식이 있는 인간의 노력에 의하여 현실을 개선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회변혁의 주체인 우리 개개인이 비판적 성찰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우선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것이 비판이론의 역할이다.
 둘째, 가치중립적 사회과학 혹은 초연한 연구를 강조하는 실증주의의 주장을 비판이론은 정면으로 거부한다. 실증주의가 가치중립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증주의적 논리의 이면에는 대상세계를 기술적으로 통제하려는 관심이 내재되어 있다. 비판이론은 실증주의의 객관주의적 환상이 사회과학에 있어서 매우 위험스러울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기존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이를 철저히 배격한다.
 셋째, 비판이론은 사회적 현상에 대한 객관적 이해 그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사회적 현상을 특정의 역사적 맥락에서 인식주체의 구성적 활동과 관련시키는 데 주된 관심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즉 지식의 사회적 및 역사적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넷째, 다양한 사회현상의 저변에 숨겨진 본질을 파악하려는 것이 비판이론의 관심이므로, 비판이론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비판을 강조한다. 비판이론은 실재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하여 현상과 본질을 구별하고, 주어진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끊임없는 부정적 기능을 강조한다.
 요컨대, 실증주의적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은 여러 가지로 대조적이다. 전자가 분석적 논리를 중요시하는 반면에 비판이론은 변증법적 논리를 강조하고, 전자가 경험적 검증이나 반증을 강조하는 데 비하여 후자는 해석학적 입장을 취하며, 전자가 존재에 관한 가치중립적 기술에 치중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후자는 당위에 관한 가치판단을 이론의 핵심으로 삼고 있으며, 전자가 외현적 사실 그 자체를 연구대상으로 하나 후자는 경험적 현상에 의하여 은폐된 사회모순의 심층적 본질을 파헤치려 한다. 그래서 전통이론이 기존사회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비판이론은 기존사회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는 이데올로기 특히 도구적 이성의 비판에 주력한 것이다. 

3. 도구적 이성의 비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설정한 문제는 왜 인류가 계몽된 삶을 누리지 못하고 다시금 야만의 시대로 접어드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계몽의 변증법』(Dialectic of Enlightenment)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핵적 관심을 이루는 도구적 이성의 출현과 도구적 이성의 지배에 관한 비판적 성찰이기 때문에, 비판이론의 발전과정에 있어서 획기적인 저서이며, 그래서 마르쿠제는 이를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하였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비판이론이 당초에는 이론적 탐구와 정치적 실천간의 통일성을 추구하였으나, 점차 정치적 실천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비판이론의 이와 같은 방향전환은 우선 무엇보다도 독특한 역사적 체험 때문이다.
 첫째,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현실은 사회주의 사회는 가일층 강화된 중앙집권적 관료기구의 출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베버의 예측이 타당함을 입증하였고, 특히 스탈린주의자들의 비인간적 횡포는 비판이론가들에게 로자 룩셈부르크가 왜 레닌식의 당조직 원리를 그리도 철저하게 반대하였는가를 극명하게 예시한 것이다.
 둘째, 파시즘의 출현으로 비판이론가들은 선진자본주의 사회가 위기의 상황에 있어서 그 정치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혁명적 변화의 위험을 방지할 능력이 있고 노동조직의 단결된 투쟁의 예봉을 둔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고, 따라서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역사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 없다는 암담한 체험을 한 것이다.
 셋째, 전후의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사회는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을 체제내에 흡수 통합할 수 있음을 현실적으로 보여주었고, 특히 대중문화를 통해서 가시적인 억압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대다수 시민의 의식을 기존체제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조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왜곡된 마르크스주의, 계몽주의의 오도된 합리화 추세, 과학과 기술, 문화산업 및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의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형태를 모두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압축된 개념하에 비판적으로 해석하였고, 따라서 계급투쟁과 사회주의적 이행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그 대신 도구적 이성과 계몽의 역설을 철학적으로 비판하는 데 몰두한 것이다.
 이와 같이 비판이론가들은 독점자본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만 비판한 것이 아니라, 점차 권위주의적 관료주의로 경직화되어 가는 공산주의 국가의 비인간적 현실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들은 이와 같은 두 가지 추세의 근본원인이 모두 도구적 이성 혹은 기술적 이성에 있다고 보았고,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만으로는 이러한 심각한 문명의 병리를 극복할 수 없다고 믿게끔 되었다.
 바로 이러한 관점 때문에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마르크스나 루카치와는 달리 정치적 혁명으로서의 실천을 거부하고, 도구적 이성을 비판하는 이론적 실천에 매몰되었고, 정치경제학 비판을 주요 과제로 삼았던 마르크스와 달리 병든 문명 전반에 관한 보다 근본적인 철학적 비판에 몰두하였던 것이다. 마르쿠제도 현대철학 특히 실증주의 사조가 이론의 가치중립성을 강조하고 지식은 사실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오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전체주의를 조장하였다고 비판하는 점에 있어서는 호르크하이머 및 아도르노와 같은 입장이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 비판이론가들은 히틀러의 극우 전체주의든 스탈린의 극좌 전체주의든, 모든 유형의 전체주의는 근본적으로 볼 때, 계몽주의적 이성이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았다. 계몽주의적 이성의 이중적 성격은 일찍이 칸트에 의하여 예리하게 지적된 바 있다. 인간에게는 스스로를 보편적 주체로 여기고 자유로운 사회적 삶을 영위하려는 초개인적, 초월적 이성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보존의 목적에 따라 대상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이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성의 개념에는 이와 같이 초월적 이성과 경험적 이성, 보편적 이성과 특수적 이성, 혹은 해방적 이성과 도구적 이성이 있으나, 오늘날은 도구적 이성만 존중되고 결국 계몽주의적 이성이 실증주의의 시녀가 되어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가 드디어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로 둔갑하는 계몽의 역설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계몽의 변증법'이라고 하는 것은, 한때 인류를 신화와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계몽주의적 이성이, 오늘날에 이르러 인류를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신화와 공포의 도가니로 밀어넣게 된 역설을 뜻한다. 계몽의 변증법은 "신화는 이미 계몽되었다"는 명제와 "계몽은 신화로 전도되었다"는 두 명제, 즉 중세의 암흑과 억압상태에서 문명사회로 계몽하려던 모더니티의 과제가, 실제로는 문명에서 새로운 차원의 억압으로 되돌아가는 역설, 말하자면 해방과 속박, 계몽과 몽매로 표현할 수 있는 역설적이고 이중적인 구조를 뜻한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따르면, 타락한 현대인의 모습은 사회진보와 깊이 관련된 현상이다. 한편에서 보면, 경제적 생산성의 발전이 보다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 필요한 물적 조건을 창출하였다고 할 수 있으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것은 기술적인 지배기구와 이를 장악한 사회집단이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적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현대사회의 추세와 발전 방향 중 회의적 차원을 계몽주의적 이성의 전체주의적 특성이 빚어낸 것으로 규정하고 이 측면만을 파헤친 것이다. 종교적 독단과 신화, 가연의 횡포와 가난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킨 계몽주의적 이성이 그 자체의 내적 논리로 인하여 삶의 의미를 파괴하고, 과학과 예술을 야만화하였으며, 인류로 하여금 상품의 물신숭배와 권위주의적 관료주의에 얽매이게 함으로써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여 계몽주의적 이상 그 자체를 타락시킨 역설적 전도를 계몽의 변증법이라 한 것이다.
 대중사회에 대한 비판은 당시에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나 니체(Friedrich Nietzsche) 등 사상가들에 의하여 이미 제기되었으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를 비롯한 비판이론가들이 제기하는 문명비판의 특색은 이를 과학과 실증주의에 대한 전면적 비판과 연결시킨다는 데 있다. 계몽주의적 이성이 실증주의의 시녀가 되어 모든 것을 수량적 척도로 환원하고, 자연을 오직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목적 달성에 대한 유용성의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연계의 현상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관념까지도 어떤 목적에 대한 유용성의 관점에서 판단하며 따라서 자연과 인간을 모두 조종과 지배의 대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적 이성 그리고 오늘날의 실증주의는 주관성과 객관성, 인간과 자연을 근본적으로 분리하며, 이는 곧 조종과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래서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 즉 생산력의 놀라운 발전이 이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가 기대했던 자유로운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한층 더 심화된 물신숭배와 물상화현상 그리고 허위의 욕구를 자극하는 퇴폐적 문화산업에 의하여 새로운 지배와 억압 속에 인류는 노예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주의 사조로부터 비롯된 모더니티(modernity)를 너무나 철저하게 비판함으로써 진보의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이와같은 병든 문명을 치유할 수 있는 어떤 구체적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였다. 이점에 관한 한 하버마스는 그들과 구별된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논의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모더니티가 진보적 발달 혹은 사회진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4. 문화산업 비판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은 원래 루카치(Lukacs)의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Hegelian Marxism)에 깊이 공감하였다.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운동(1920년대)이 무참히 짓밟히고 파시즘이 출현한 반면에 후진국이었던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건은 실증주의적이고 경제결정론적인 정통마르크스주의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이에 호르크하이머를 비롯한 초기 비판이론가들은 경제결정론과 실증주의로부터 마르크스사상의 변증법적 계기를 되살리기 위하여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History and Class-Consciousness)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루카치에 따르면, 마르크스사상의 진정한 특징은 아들러나 바우어 등 오스트리아 마르크스주의(Austro-Maxism)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주관적 자원론(subjective voluntarism)도 아니고, 제2인터내셔널 이후 엥겔스, 플레하노프, 부하린 등의 소위 정통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객관적 결정론(objective determinism)도 아니다. 마르크스사상은 객관과 주관, 존재와 당위, 이론과 실천의 상호관련을 강조하는 변증법적 사회이론이며 사회적 실천의 철학이란 것이다.
 벅 모어서(Susan Buck-Morss)는 루카치가 제기한 헤겔적 마르크스주의를 다음과 같이 다섯가지 명제로 요약하였다. 첫째,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적 요체는 총체성을 강조하는 데 있다. 둘째,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이며, 역사발전의 주체요, 동시에 객체이다. 셋째, 전위적 엘리트로 조직된 공산당(vanguard party)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을 계도하고 이를 대변하는 메타주체이다. 넷째, 마르크스사상의 특징은 주관과 객관, 존재와 당위 및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며, 이는 엥겔스의 자연 변증법과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끝으로 물화현상(reification)은 상품의 물신숭배(commodity fetishism)적 태도가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널리 확산된 현상이며, 이러한 물화 현상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비판하는 데 마르크스사상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위의 다섯 가지 명제들 중에서 총체성 개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중요성 및 당의 선도적 역할 등은 정치적 실천을 강조하는 적극적 차원이고, 자본주의 사회의 물화된 사회의식에 대한 변증법적 규명과 그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넷째와 다섯째 명제는 부정적 차원으로 볼 수 있는데,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루카치로부터 계승하는 것은 부정적 차원인 것이다.
 비판이론가들은 루카치, 코르쉬(Karl Korsch), 그람시 같은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들이 역사발전의 견인차로 규정해 온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당의 전위적 역할에 대하여 회의적이었고, 이 점에 있어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정치적 실천을 지향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명백한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역사적 상황으로 인하여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에 대한 신념을 완전히 상실하고, 당의 선도적 역할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판적이었다. 이와같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개념인 총체성,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확인 및 당의 선도적 역할 등을 수정 내지 폐기해버린 것처럼, 이데올로기 비판의 보조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비판이론은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의 이성을 억압하고, 이성의 자유로운 실현을 가로막는 문화산업을 비판하고, 문화산업에 체현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철학적 성찰에 주력한 것이다. 
 대전 후 미국은 갈브레이스(J.K. Galbraith)의 『풍요한 사회』(Affluent Society), 다니엘 벨(Daniel Bell)의 『이데올로기의 종언』(End of Ideology)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는 것처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대량소비사회로 진입하였다. 사회과학자들은 사실에 대한 실증주의적 기술에 치중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질서를 예찬하고 정당화하였다. 『에로스와 문명』(1966)에서 마르쿠제는 이와같이 물적풍요를 누리는 선진 산업사회는 그 표면적인 풍요의 외양과는 달리, 가공한 억압과 지배 이데올로기가 이면에 숨어 있다고 보고, 이를 폭로하는 사회 비판이론을 전개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마르크스사상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을 독창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에는 인간을 파시즘, 스탈린주의 및 소비위주의 자본주의에 무비판적으로 동조시키는 심리적 메카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마르쿠제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과 문명론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은 쾌락원칙과 현실원칙간의 갈등에 입각하여 문명의 발전을 설명한다. 모든 문명사회는 문명의 가치와 인간본능의 요구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본능적 욕구를 억압한 사회적 노력의 결과로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에로스(Eros) 혹은 삶의 본능은 성본능이며, 생산적 노동을 위해 에로스의 성본능은 억압되어야 한다. 타나토스(Thanatos) 혹은 죽음의 본능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본능으로, 이는 자연을 정복하고 노동의 능률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과 그 불만』에서 프로이드는 세계대전과 같은 역사적 경험을 반성해 볼 때 인간에게는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본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는 사유재산제도를 철폐하면 인간간의 적대적 관계가 해소될 수 있다고 믿는 사회주의 사상가들의 신념을 '근거없는 환상'이라고 비판하면서,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도 성적 욕구와 공격본능으로 인하여 인간은 격렬한 적대적 관계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따라서 프로이드는 에로스의 욕구를 억압하여 창조적 노동으로 승화시키고, 타나토스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본능을 억압하여 자연을 정복하고 노동의 능률성을 제고하는 데 전용하지 않으면 문명의 유지발전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문명과 불만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문명사회가 인간의 성욕과 공격적 욕구에 엄청난 억압을 강요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인간이 문명사회를 이룩하는 대가로 많은 불만을 인내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마르쿠제는 쾌락만을 추구하는 본능의 원초적 욕구를 억압하여 이를 창조적으로 승화시킬 때, 즉 쾌락원칙을 현실원칙에 예속시킬 때, 비로소 문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고, 따라서 억압없는 사회는 없다고 하는 프로이드의 문명론을 사회비판의 출발점으로 하되 이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였다. 마르쿠제는 억압은 문명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인간이 지불하여야 할 대가라고 하는 프로이드의 견해를 수용하면서도, 이러한 문명론의 보수주의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정치적 함의를 비판한 것이다.
 마르쿠제는 억압의 보편적 차원과 역사적 차원 혹은 억압의 불변적 차원과 가변적 차원을 구별하고,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것이 프로이드의 한계성이라고 하였다. 억압의 불변적 차원은 문명의 유지 존속을 위하여 모든 사회에 필요한 억압이며, 이는 쾌락밖에 모르는 에로스의 욕구를 창조적인 활동으로 승화시켜 개인의 자아실현과 사회의 공익에 이바지하는 바람직한 억압이며 따라서 이를 기본억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억압의 가변적 차원은 후기 산업사회의 역사적 특성 때문에 사회통제와 지배의 목적으로 악용되는 과잉억압을 뜻하며, 마르쿠제가 "억압없는 사회"라고 할 때의 '억압'이란 과잉억압을 뜻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후기 산업사회는 높은 생산성으로 인하여 물질적 풍요를 이룩하고, 노동시간의 단축에 따라 여가시간의 증대로 인하여 리비도(libido)의 에너지가 흘러 넘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흘러 넘치는 본능적 에너지 즉 과잉의 에너지가 잘못 정치적으로 동원되면, 기존의 체제를 전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후기 산업사회는 과잉의 억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억압과 통제원리는 물리적 억압이나 가시적 폭력보다 더욱 무서운 가공할 억압의 메커니즘이다.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서 현대사회의 억압 즉 과잉의 억압을 건전하지 못한 불량만화, 전자오락, 프로경기, 록 콘서트, 향락산업, 성의 해방, 포르노그라피 등 주로 흥행위주의 문화산업과 퇴폐적 활동을 조장함으로써 에로스의 창조적 승화를 방해하고 허위의 욕구를 충동하여 비판적 이성을 마비시키는 억압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향락 및 흥행위주의 퇴폐적인 문화산업은 긍정적 문화를 짓밟고, 해방과 자유를 표방하면서 인간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억압적이며, 에로스의 창조적 승화를 가로막는 것이므로 역승화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향락위주의 일차원적 존재로 전락시키는 후기산업사회의 지배원리를 마르쿠제는 억압적 역승화라 하였다.
 아도르노도 『미니마 모랄리아』(Minima Moralia)에서 소비사회와 문화산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문화산업이란 문자 그대로 문화의 산업화를 지칭하고, 그 주된 기능은 사회구성원들의 욕구, 태도 및 성향에 영향을 미쳐 그들을 소비사회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소비사회는 재화와 용역뿐 아니라 예술, 정치, 문화 및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상품처럼 표준화시키고 획일화하여 현대인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베블렌(Thorstein Veblen)의 문화비판의 관점을 수용하면서, 아도르노도 현대인의 소비성향은, 진정한 욕구를 충족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가 그 특징이라고 하였다. 과시적 소비를 주도하는 상류계급은 물론, 이들의 허장성세를 흉내내기 위하여 능력에 무리한 출혈구매를 하거나, 아니면 상류계급이 애용하는 상품과 유사해 보이는 모조품이라도 소유하려는 중산계급의 애처로운 모방풍조는, 근본적으로 볼 때 현대판 야만의 병리적 징후이며, 이러한 병리는 확대일로에 있는 문화산업에 의하여 더욱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도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상품의 물신숭배(commodity fetishism)를 지적하고 이를 비판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 대중문화 및 상업주의가 노동자계급을 완전히 통합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도르노와 마르쿠제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산업과 그것이 창출하는 허위의 욕구 속에 노동자 계급이 완전히 흡수 통합되었기 때문에 사회변혁의 가능성과 사회변혁을 주도할 계급 혹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집단의 존재가능성에 대하여 매우 회의적이었다.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의 회의적 관점은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5. 부정의 변증법
 비판이론의 특성은 변증법적 방법을 중요시하는 데 있다는 점은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으나, 아도르노의 변증법은 헤겔, 마르크스 및 루카치의 변증법과는 다르다. 헤겔, 마르크스 및 루카치의 변증법은 부정의 부정에 의하여 긍정이 될 수 있는 변증법이나, 아도르노는 이성의 부정성(negativity)은 인정하면서도 부정의 부정에 의하여 긍정이 될 수 없는, 그래서 주관과 객관의 통일성을 부정하는, 부정의 변증법(negative dialectics)이다. 변증법을 보는 이러한 인식론적 견해의 차이는 정치적 실천에 대한 입장의 차이와 깊이 관련된 것이므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서, 부정의 변증법은 매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철학은 대체적으로 인식론적 혹은 형이상학적으로 절대적 출발점, 궁극적 실재를 전제로 하여 이에 근거하는 혹은 동일성의 철학(philosophy of identity)에 말려드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주관과 객관, 특수와 보편, 이론과 실천 혹은 존재와 사유 같은 이원적 대립개념을 접근함에 있어서, 철학자들은 대립항의 어느 한쪽에 일차적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어떤 통일적 체계를 형성한 후, 다른 모든 것을 이 체계에 포섭하려하는데, 이를 동일성의 철학이라 한다. 비판이론가들은 주관과 객관, 사유와 존재간의 완전한 일치를 주장하는 이러한 동일성의 철학을 비판한다.
 그래서 그들은 헤겔의 관념론적 동일성 이론(idealist identity theory)은 물론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동일성 이론(materialist identity theory)도 거부하는 것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는 경제적 생산양식내의 객관적 모순이 누적되면 역사 발전의 법칙성에 따라 사회주의로 이행된다고 봄으로써 객관적인 역사법칙에 인간의 주관성이 포섭된다고 하는 유물론적 동일성 이론에 근거하고 있으나, 아도르노는 역사발전을 물질적 요인의 객관성에 환원할 수 없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과정은 결코 세계정신이나 절대정신의 자기현현으로 환원될 수도 없기 때문에 관념론적 동일성 이론도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헤겔이 인간정신을 활동의 과정으로 개념화하고 인식에 내재한 부정성을 강조한 것은 탁월하나, 그가 주객 동일성을 전제하고 절대정신의 자기현현에 토대한 것은 심각한 문제점이며 근거없는 환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헤겔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적 관계를 밝힘에 있어서 인간의 자의식이 사회적 삶의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인식의 발전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체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삶의 실제적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한 것은 헤겔 철학의 강점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아도르노는 헤겔이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동일성을 상정하고 특히 이러한 동일성을 절대정신의 자기 전개과정을 이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신이나 주관성을 객관세계보다 우위에 두는 것은 칸트나 피히테의 주관적 편향성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이와 같이 동일성의 철학은 객관적인 것에 입각한 실증주의적 통합이나, 주관적 요소에 치중한 관념론적 통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관과 객관, 존재와 사유 등 모든 차이를 해소하고 종결시키려 하나, 아도르노에 따르면, 이러한 차이는 결국 완결적으로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이며, 변증법적 진리는 오히려 끝없는 비동일성에 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동일성의 철학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것은 벤야민(Water Benjamin)과 니체(Nietzsche)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 크다. 벤야민은 첫째로 개별적 현상은 일반적 개념에 비추어 이해될 수 있다는 주장을 반대하였고, 둘째로 보편성은 오직 구체적 현상들과 그 구조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는 이유로 보편과 특수간의 동일성 이론을 반대하였다. 벤야민처럼 아도르노도 특수와 보편간의 동일성이론 혹은 총체성이론에 철저하게 반대한 것이다. 총체성이론을 반대하는 아도르노의 입장을 존슨(Pauline Johnson)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아도르노는 주객관계의 모순성을 극복하려는 총체론적 관점을 거부한다. 총체론적 관점은 주객관계의 이율배반적 특성을 그 관계의 한쪽을 흡수병합함으로써 관계의 본질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마르크스사상은 이와 같은 총체론적 시각을 비판하는데 관심이 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특수와 보편간의 관계에 관한 비총체론적 시각이 타당함을 밝히려는 것이다.
 니체는 철학의 근원주의나 일반범주가 구체적 삶의 역동성을 파악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동일성 철학을 폐기하였고, 특히 그는 철학적 범주들이 궁극적으로는 권력의지에 불과하다고 함으로써 모든 철학적 체계의 정당화를 냉소하였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어떤 절대적 기점과 궁극적 근원을 상정하며 동일성을 추구해 온 모든 철학에 대한 니체의 성상파괴적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였고, 니체의 사상을 "서구사상의 진정한 전환점"이라고 격찬하였다. 이러한 측면을 생각할 때, 니체는 물론 아도르노의 사상에서도 우리는 탈현대사상의 선구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르노가 니체사상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니체가 모든 지식을 권력의지로 보면서도, 이 권력의 원천을 구체적인 사회경제적 문맥과 관련시키지 않고 절대화함으로써, 니체의 생철학은 비판적 계기를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아도르노의 부정의 변증법은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과 깊이 관련된 것이며, 구체적 상황에 대한 철학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나 루카치 등이 예견하였던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의 가능성이 유럽에서는 극히 회의적이라는 상황인식, 노동운동의 탄압이나 나치의 반인륜적 파쇼주의의 등장과 스탈린의 극좌 전체주의가 자행한 테러적 만행은 말할 것도 없고, 독재권력의 이와 같은 비인간적 횡포에 무기력한 동조 내지 잔인한 침묵으로 일관했던 현대문명의 위기, 그리고 대전 후 선진 자본주의 사회가 근본적 변혁에 대한 자기방어력을 보였던 독특한 상황에 직면하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좌파 지식인들은 극도의 절망과 좌절을 느꼈고, 이러한 극단적인 좌절의 표현이 부정의 변증법으로 표현된 것이다.
 헤겔의 절대정신이나 마르크스의 경제법칙은 부정의 부정에 의하여 긍정이 될 수 있는 긍정의 변증법이나, 위에서 밝힌 문명의 암전으로 인하여 긍정과 희망의 신학을 상실한 아도르노는 부정의 부정에 의해서 긍정이 될 수 없는 부정, 극단적인 부정을 일관되게 견지해야 하는 부정, 그래서 고차적 지양이 불가능한 절대적 부정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하여 부정의 변증법을 제안한 것이다. 그래서 아도르노는 변증법을 객관적인 기만의 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반성이며, 따라서 무모한 실천으로부터 이론의 자율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론과 실천의 일치에 대한 지나친 요구로 인하여 이제 이론은 무모한 실천의 시녀로 전락되고 있다...... 실천에 혈안이 된 독단과 금기가 진정한 이론을 파괴하고 있으나, 올바른 실천을 위해서는 우선 이론의 자율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결코 고정된 확고불변의 관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변화하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가변적임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걷잡을 수 없는 혼란과 소동으로 인하여 이론이 경멸되고 무력화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은 혼란과 무질서의 극을 치닫는 이 시대를 냉정히 증언하는 역할을 담당하여야 한다.
 정치적 실천으로부터 사회비판이론의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이상과 같은 주장은 아도르노뿐만 아니라 호르크하이머에서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은 학파형성 초기에 그들이 강조했던 입장과 비교할 때 주목할 만한 시작전환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래 그들은 인식주체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사회변동의 객관적 필연성을 강조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경제결정론을 비판하면서, 비판이론에 자기성찰적 차원을 회복시키고, 그래서 객관과 주관, 존재와 당위, 이론과 실천의 동태적이면서도 변증법적인 관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전술한 바 역사적 상황의 변화로 인하여 점차 정치적 실천에 회의를 품게 되었고, 드디어 호르크하이머는 자신의『비판이론』에 붙인 1968년의 서문에서 마르크스주의적인 급진적 실천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사이비 혁명론자들이라 매도하기에 이르렀다.
 제1세대 비판이론은 첫째, 결정론적이고 실증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조류를 비판하고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초를 회복하였고, 둘째,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 진리나 확고한 교리로 보지 않고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 사회를 비판하는 개방적 비판이론으로 재해석하였고, 셋째, 문화영역을 경제적 토대의 부수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역동의 핵심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넷째, 마르크스주의가 소홀히 했던 비판이론의 심리학적 차원을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제 1세대 비판이론은 결과적으로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을 거부함으로써 이론적 지식과 정치적 실천간의 괴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이를 미해결의 유산으로 남긴 것이다. 이론과 실천간의 근본적인 통일성을 이룩하고, 그래서 제1세대가 남긴 탈정치화된 비판이론을 인식론적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이 하버마스의 출발점이었다.

 

 

 

 

 

 

 

 

 

 

 

 

 

 

제 3 장 하버마스의 비판이론

 1. 지식과 관심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가 사망하고, 1970년대 초반에 신좌파운동이 퇴조하며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역사는 종결되는 듯 했으나, 오늘날 이 학파의 사회비판이론은 하버마스(Habermas), 오페(Clauss Offe), 슈미트(Alfred Schmidt), 벨머(Albrecht Wellmer) 등에 의하여 비판적으로 계승되고 있고, 특히 하버마스는 그 중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이 이론과 실천의 동일성을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실천과 유리된 이론의 자율성을 주장한 것과 달리, 하버마스는 비록 인식록적 차원이긴하나, 이론과 실천의 불가분성을 강조하였다. 실증주의를 전면적으로 그리고 철저하게 배격한 전자와 달리, 하버마스는 실증주의적 방법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전자가 고급문화와 긍정적 문화에서 현실초월의 가능성을 탐색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후자는 문화를 보다 경험적이고 일상적이며 상호주관적인 생활양식으로 이해한다.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이 가공할 억압과 소외가 만연된 현대문명에 대하여 베버와도 같이 극히 회의주의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하버마스는 모더니티(modernity)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으며, 전자가 일차원적이고 도구적인 이성을 비판하는 것으로 일관했던 것과는 달리, 후자는 도구적 이성의 비판과 함께 민주적 상호작용의 가능성 및 의사소통적 이성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루카치로부터 아도르노에 이르기까지의 사회비판이론이 결과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은, 하버마스에 따르면, 그들이 모두 의식의 철학에 묶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후기 비트겐슈타인(Wittgnenstein) 이후의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의식도 언어적으로 구성되고 언어를 통해서 형성된다고 보는 것처럼, 근년에 이르러 하버마스도 비판이론이 이제 의식의 철학을 버리고 언어철학으로 파라다임 전환을 하여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하버마스의 이와 같은 언어적 전회를 이해하기 위하여, 여기서 우리는 우선 그가 인식론적 수준에서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기 위하여 제기한 지식구성의 관심에 관한 개념을 검토하고자 한다.
 『지식과 관심』(Knowledge and Human Interests)에서 하버마스는 지식을 구성하는 준선험적 관심을 기술적 관심, 실천적 관심 및 해방적 관심으로 범주화하였다. 그는 기술적 관심 실천적 관심, 해방적 관심에 상응하는 지식 혹은 학문을 각기 경험적 분석적 학문, 역사적 해석적 학문 및 비판적 사회과학으로 분류하고, 각 학문영역의 지식은 그에 상응하는 인지적 관심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실증주의와 역사주의가 소홀히 했던 인식론적 문제점을 재검토하고, 기술적 관심과 실천적 관심의 한계성을 비판하여, 이를 토대로 사회비판이론의 인식론적 근거를 정립하려 하였으며, 따라서 이는 모든 근원주의를 파괴한 아도르노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이라 하겠다.
 경험적 분석적 학문은 가설연역적 이론을 수립하여 이를 토대로 대상세계를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기술적 관심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 즉, 경험적 분석적 학문은 대상세계를 경험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관찰하고 이를 독립변인과 종속변인으로 구분하여 그들간의 규칙적 관계를 탐구한다. 이러한 규칙성에 관한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경험적으로 검증하거나 혹은 반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검증과 반증의 과정을 거쳐 보다 완벽한 보편법칙을 수립하고 보편법칙에 힘입어 보다 정확한 예측을 하려고 하는데, 예측의 궁극목적은 대상세계를 기술적으로 통제하는 데 있기 때문에, 경험적 분석적 탐구는 도구적 행위체계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경험적 분석적 학문은 환경에 대한 인간적응의 필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표방하는 가치중립성과는 달리, 환경을 기술적으로 통제하고 조종하려는 관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이와 같이 경험적 분석적 학문이 실재를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으로 기술하는 것을 표방하고 있으나, 그 논리의 이면에는 기술적 통제의 관심이 은폐되어 있다는 것이다. 경험적 분석적 학문의 대표적 유형인 자연과학의 방법론적 특징은 실재에 관한 보편명제를 형성하여 자연을 통제하는 기술적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연과학적 지식의 의미는 예측가능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적 지식이 예측적 지식이라는 것은 그 궁극적 의미 혹은 관심이 기술적 이용 가능성에 있고, 그래서 본질적으로 가치중립적 지식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경험적 분석적 학문은 도구적 행위에 긴밀히 관련된 것이므로 도구적 조종과 질적으로 다른 행위유형, 가령 의사소통적 행위를 설명하기에는 범주적 제약이 있다고 하겠다. 이는 마르크스가 하부구조로 분류한 생산영역 즉 노동영역, 혹은 목적합리적 영역에만 한정된 유용성이 있을 뿐이며, 따라서 경험적 분석적 지식은 모든 지식의 보편적이고 정당한 척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도 그것이 법칙정립적 지식을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사회적 실재를 기술적으로 통제하려는 도구적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모든 경험적 분석적 학문으로 범주화하고 있다. 그가 경험적 분석적 학문이 기술적으로 통제하려는 도구적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모두 경험적 분석적 학문으로 범주화하고 있다. 그가 경험적 분석적 학문이 기술적 관심에 의하여 주도된다고 한 것이 과학자가 반드시 기술적으로 통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탐구에 종사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므로, 기술적 관심이 과학자 개개인의 특정 동기유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적 관심이라는 것은 인간이 자연에 노동력을 투하함으로써 스스로를 생물학적 및 문화적으로 변형시키고 재생산하는 삶의 방식과 관련된 것이며, 이러한 생산활동은 기술적 통제의 관심을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이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래서 하버마스에 따르면, 관심이라는 개념은 순수하게 경험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순수하게 선험적인 것도 아니며, 우리 삶의 일반적 특성에 유래하는 것이기 때문에 준선험적인 개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 해석적 학문은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적 틀이 다르다. 역사적 해석적 학문이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은 경험과 관찰보다는 의미 이해를 중요시하고, 가설의 검증이나 반증보다는 텍스트의 해석에, 인과적 설명보다는 주관적 의미세계에 대한 해석학적 이해에 의존한다.
 역사적 해석적 학문은 일상적인 언어교류에 의하여 매개되는 상징적이고 상호주관적인 의미세계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고, 그래서 해석자는 텍스트의 지평에 스스로를 전치하고 감정이입하여 상호이해하는 실천적 관심에 의하여 지배된다. 두 가지 유형의 인지적 관심 즉 기술적 관심과 실천적 관심을 구별함에 있어서 하버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구별에 따른다. 즉, 기술은 무엇을 제작하거나 조립할 때 나타나는 목적합리적 행위유형을 지칭하고, 실천은 상호주관적인 의사소통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상호작용적 행위유형을 뜻하기 때문에, 하버마스가 실천적 관심이라고 할 때 실천의 개념은, 마르크스의 실천 개념과는 달리, 다분히 일상적인 언어생활과 깊이 관련된 것이다.
 일상적 언어놀이의 문법 혹은 문화적 전통의 구조가 상징, 행위, 그리고 표현을 연결해주고 상호작용과 세계해석의 틀이 된다는 점에서, 역사적 해석적 탐구는 상호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적 전통을 중요시한다고 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해석학적 전통이 상징적 상호 작용, 이해 및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 강점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면서도, 해석학이 비판적 성찰과 자기반성을 판단중지한 채, 전통에 묶인 삶의 형식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무비판적 역사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였다. 마치, 경험적 분석적 학문이 인간존재의 근본적 관심과 무관하게 대상세계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관찰 기술하고, 그러한 관심으로부터 초연한 순수이론을 수립할 수 있다고 하는 객관주의적 환상에 젖어 있는 것처럼, 역사주의도 정신적 사실을 직접적 소여의 증거인양 착각하여, 이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이해하여 순수이론을 수립하려고 하는 또다른 유형의 객관주의적 환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사회인식에 필요한 비판적 성찰과 자기반성이라고 하는 비판적 계기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의 사회과학계에 관심의 초점이 되었던 가다머와 하버마스간의 논쟁도 바로 이 점에 관한 것이다.
 하버마스가 경험적 분석적 학문과 역사적 해석적 학문을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들의 가치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모두 지식의 한 가지 유형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사회현상에 대한 경험적 분석적 학문의 객관주의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나 의미세계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는 사회과학의 방법론에 해석학을 도입한다. 가치중립석이나 객관주의에 대해 가다머(Hans-Georg Gadarmer)는 하머마스보다 더욱 철저하게 비판적이다. 가다머에 따르면, 계몽주의와 계몽주의의 산물인 자연과학적 객관주의도 다른 선입견을 배격하는 일종의 선입견이라는 것이다. 그는 딜타이나 베티(Emilio Betti)같은 해석학자들까지도 자연과학적 객관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인식의 무전제성이란 오류에 빠지게 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가다머는 인간의 인식은 역사적 삶의 공동체에 그 뿌리가 있는 이해의 전구조(fore-structure)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고, 소속된 사회적 환경과 문화적 전통의 선입견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합리적 비판보다는 전통의 권위를 강조하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하버마스는 일상언어에 반영되고, 사회제도에 각인되며, 역사적 전통에 체현된 이데올로기적 조종과 도구적 이성의 억압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를 왜곡하고 제약하는 객관적 요인에 대하여 철저한 자기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요컨대, 가다머의 해석학이 반계몽주의적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하버마스의 비판이론은 계몽주의적 이성과 자기반성의 힘에 깊은 확신을 견지하고 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주관적으로 의도된 의미세계와 객관적 제약요인간의 괴리는 결국 경험적 분석적 학문이나 역사적 해석적 학문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자는 각기 사회적 실재의 상이한 영역 혹은 상이한 차원에 초점을 두고, 자기의 입장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타협이 불가능하며, 바로 이와 같은 모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적 중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관적 의도와 객관적 제약의 차원으로 인하여 사회적 삶은 자율성과 규칙성이라고 하는 상호모순된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비판적 사회과학은 문화적 업적만을 긍정하는 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업적의 의미를 비판적으로 반성하여, 기존의 사회를 보다 자유로운 사회로 발전시킬 수 있는 변증법적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경험적 분석적 학문과 역사적 해석적 학문은 지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지적 관심들 중에서 각기 한 가지의 관심에만 집착함으로써, 마치 그것을 모든 지식에 보편타당한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여기는 독단에 빠져 있기 때문에 하버마스는 이러한 독단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자기성찰을 강조한 것이다.
 비판이론 혹은 비판적 사회과학은 사회적 행위의 과학적 예측에 목적을 둔 법칙정립적 지식을 형성하는 데 만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호주관적으로 합의된 의미만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비판이론은 왜곡된 의사소통의 근본원인이 되는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지배구조를 심층적으로 파헤치는데 그 특징이 있기 때문에 해방적 관심에 의하여 주도된다고 하겠다. 이와 같은 해방적 관심에 의하여 인도되는 비판적 사회과학이 하버마스가 분류한 지식의 셋째 유형이다.
 하버마스는 자기반성을 그 요체로 하는 비판적 사회과학의 원형을 경험적 분석적 학문의 인과적 설명과 역사적 해석적 학문이 강조하는 해석학적 이해가 변증법적으로 종합된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에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통하여 자본주의 경제의 구조와 역동을 분석조건으로 파헤친 후, 이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자기성찰이 물질적인 생산조건에 의하여 체계적으로 왜곡되는 이데올로기를 비판하였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비판은 해방적 관심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한편, 프로이드는 심리적 억압의 원인이 된 과거의 에피소드를 치료자가 분석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꿈을 심층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자기성찰을 할 수 있게 하는 방법적 틀을 제공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비판적 사회과학의 원형은 인과적 설명과 해석적 이해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설명적 이해라 할 수 있고,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과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은 모두 법칙적 관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당사자의 의식에 자기성찰을 촉진하려는 해방적 관심에 의하여 주도된 것으로 불 수 있다는 것이다.

 2. 사적 유물론의 재구성
 위에서 본 것처럼, 경험적 분석적 학문은 기술적 관심, 역사적 해석적 학문은 실천적 관심에 의하여 각기 주도되기 때문에, 모든 지식은 상응하는 지식을 구성하는 관심과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와는 달리, 하버마스는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을 인식론적으로 정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구성하는 관심에 관한 그의 이론에 대하여 몇 가지 비판이 제기되었다.
 첫째, 세가지 관심은 모두 지식에 선행하는 전제라는 점에서 보면 선험적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관심은 사회적 삶의 경험적 과정을 통해서만 구체화된다는 점에서 볼 때 경험적이라 아니할 수 없고, 따라서 하버마스의 지식구성 관심의 개념은 인식론적으로 매우 애매한 것이다. 이는 선험적인 것이라면 경험에 앞선 것이며, 우리가 경험적 내용에 의존한다면 선천적 종합 판단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정당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세 가지 관심 혹은 하버마스의 표현처럼 준선험적 관심들은 각기 상응하는 지식에 고유한 것이므로 대등한 것처럼 보이나, 기술적 관심과 실천적 관심은 궁극적으로는 해방적 관심으로 통합된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세가지 관심들은 결코 대등한 관계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하버마스는 기술적 관심과 실천적 관심이 인식주체의 자기 성찰을 통해서 해방적 관심으로 통합되며, 자기성찰의 힘을 통해서만 자식과 관심은 통일성을 이룩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성찰 혹은 자기반성은 인지적 관심에 관한 하버마스의 이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나, 맥카시(Thomas McCarthy)나 번스타인(Richard Bernstein)에 따르면, 가장 애매한 개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사용하는 성찰(reflection)이라는 개념은 이중의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애매하다. 한 가지는 퍼어스(Charles Peirce)나 딜타이에서 볼 수 있는 지식구성의 주관적 조건에 관한 성찰이고, 다른 한 가지는 마르크스나 프로이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언어와 행위의 구주에 은폐된 이데올로기 비판이라 할 수 있는 자기성찰이다. 전자는 지식비판, 후자는 이데올로기 비판과 각기 관련된 성찰을 뜻하므로, 『지식과 관심』에서 하버마스가 사용하는 성찰의 개념은 매우 애매한 것이다.
 따라서, 지식과 관심에 관한 그의 이론은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쟁점을 해결한 것보다는 오히려 많은 문제점을 제기한 것이다. 그래서 『의사소통적 행위이론』(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에서는 지식과 관심에 관하여 제기한 당초의 삼분법을 버림은 물론 인식론적 접근을 폐기하고, 사회적 삶의 역사적 과정을 목적합리적행위와 의사소통적 행위로 범주화하게 되며, 그는 이를 위하여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 한다.
 하버마스는 마르크스가 『경제적 철학적 초고』에서 이미 노동(labor)과 상호작용(interaction)이라는 두 가지 차원을 상정하고, 이들간의 관계를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변증법적 관계로 파악한 것은 탁월한 통찰력이라고 격찬하였다. 그 이유는 인간의 사회적 삶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상호작용, 기술적 지식과 도덕적 의식, 혹은 목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는 두 가지 차원의 발전이 조화롭게 이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독일 이데올로기』이후에 마르크스는 노동과 상호작용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밝히기보다는, 상호 작용 영역을 노동으로, 의사소통적 행위를 도구적 행위로 환원하였고, 그래서 하버마스에 따르면, 결과적으로 마르크스는 자신의 변증법적 사상이 기계론적 이론으로 오해될 소지를 스스로가 만들었다는 것이다.
 
 .....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인간과 자연환경간의 물질적 상호작용을 규제한 생산활동 즉 도구적 행위가 모든 범주를 형성하는 파라다임이 된다. 그래서 모든 것이 생산의 자기운동 속으로 해소되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생산력과 생산관계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탁월한 통찰력은 종종 기계론적 방식으로 오해될 수밖에 없었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개념을 노동과 상호작용 혹은 목적합리적 행위와 의사소통적 행위로 대체함으로써, 마르크스사상에 대한 기계론적 해석을 극복할 수 있고, 이와 같은 재구성을 통하여 마르크스가 원래 의도했던 비판적 계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적 삶의 실질적 토대는 물질적 생산양식이며,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이 생산력의 발전 단계에 대응하는 일정한 사회적 생산관계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생산력 발전이 일정한 단계에 이르게 되면, 발전된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에는 갈등과 모순이 야기되고, 이러한 모순이 누적되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생산관계가 출현하며, 그에 따라 조만간 그 사회의 정치적, 법률적, 철학적, 종교적 측면을 포함하는 모든 이념적 상부구조의 변화가 수반된다고 봄으로써, 마르크스는 역사발전의 원동력은 생산력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사적 유물론의 기본명제인 이와 같은 상하부 구조론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된 실상을 설명하기에는 결정적으로 한계성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마르크스 당시와 같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단계에 있어서는 국가의 역할이 극히 제한적이었고 따라서 경제활동은 자유경쟁과 시장원리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규모기업의 출현이 본격화되고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권력의 개입이 현저하게 증대된 후기 자본주의 즉 '조직화된 자본주의'(organized capitalism)단계에 있어서는 더 이상 경제 영역과 정치영역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갈등과 위기의 중심부는 경제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 영역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의 경제활동은 상당한 정도로 재기업과 연결된 정부에 의하여 조종되고 있기 때문에, 국가기구의 정치적 권력이 기업의 자본축적을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만약 이러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 기능에 대한 대중의 동의와 충성심을 얻지 못한다고 하면 정당성의 위기(legitimation crisis)에 처하게 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후기 자본주의의 가장 핵심적 모순은 경제적 모순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정당성의 위기경향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아담 스미스(Smith)가 신뢰하였던 '보이지 않는 손'이 국가개입이라고 하는 보다 가시적인 통제로 대치된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마르크스의 고전적 상하부 구조론은 결정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계급갈등이 사회변혁의 잠재적 요인이었던 마르크스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의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노동자 조직과 사용자 및 정부간에 이른바 노 사 정 간의 타협과 계약이 제도적으로 확립되고 있어 계급화해가 선진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계급의식의 개념은 퇴색되고, 해방에 대한 관심도 더 이상 경제적 차원에서만 접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소외현상도 더 이상 경제적 측면에 국한하여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넷째로 오늘날은 연구와 개발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본격화되어, 과학과 기술 및 산업생산이 상호긴밀한 관계를 이룩하였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한 후기 자본주의적 생산에 있어서는, 과학과 기술이 잉여가치를 생성 창출하는 주요 원천이라 할 수 있고, 따라서 노동력만이 잉여가치를 창출한다고 하는 마르크스의 노동 가치설은 이제 그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끝으로, 하버마스가 후기 자본주의의 가장 뚜렷한 특성으로 우려하는 것은 과학과 기술의 논리가 하나의 보편적 기준으로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깊이 침투하였고, 특히 과학 및 기술주의가 정치적 문제해결에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이 정치가 테크놀로지의 일종으로 왜곡된 이른바 정치의 과학화 현상은 선진 자본주의사회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등장한다. 과학과 기술이 보급하는 지식은 한편으로는 덜 이데올로기인 듯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 보면 보다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기술적 의식은 허위의식과 같은 전통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이라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세계가 갖는 소박성과 상식성에 비하면 그 과학성과 엄밀성으로 인하여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에서 전통적 이데올로기보다 더욱 강력한 정당성의 근거로 작용한다. 따라서 현대사회에 만연된 기술적 의식은 생활세계의 상징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억압하고 대중의 탈정치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이며, 이와 같이 기술적 의식이 우리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문명의 병이를 하버마스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 하였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방식의 인식론적 한계성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과학과 기술이 현대사회의 새로운 지배 이데올로기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과학과 기술을 전면적으로 비판했던 초기 비판이론가들과는 달리, 하버마스는 과학과 기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자 공동체가 지식의 단순한 생산에 안주하지 않고, 그들의 연구결과와 지식이 갖는 사회적 및 인간적 함의에 대하여 부단한 자기성찰과 개방적 논의를 거듭함으로써 과학과 기술이 인류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하버마스의 입장이라고 하겠다.
 요컨대, 후기 자본주의는 경제에 대한 국가권력의 증대된 개입, 정당화의 위기, 계급화해로 인한 계급갈등의 퇴조, 일차적 생산력으로서의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와 사물화 현상의 만연 등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와 사물화 현상을 극복하는 방안에 있어서도 하버마스는 마르크스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문명의 병리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사회주의 혁명으로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오히려 사회주의 사회가 되면 국유화된 거대한 생산수단을 국가가 획일적으로 통제 조종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가일층 강화된 중앙집권적 관료기구가 출현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이행에 극히 비판적이었던 베버(Max Weber)의 관점을 지지한다.
 이러한 입장을 그는 『의사소통적 행위이론』의 제2권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체계(system)와 생활세계(life-world)는 마르크스에 있어서도 '필연의 영역'과 '자유의 영역'이라는 은유로 표현되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이 후자를 전자의 통제로부터 해방시킬수 있다고 보았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이와 같은 기대를 반대했던 베버의 진단은 옳다. 사적 자본의 폐지가 결코 현대 산업노동의 철창(iron cage)을 폐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소통적으로 구조화된 생활세계가 사물화되는 현상을 단순히 계급분화의 문제로 환원한 것이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오류라는 것이다. 후기 자본주의의 핵심적 갈등은 단순한 물질적 재화의 분배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의사소통적 이성에 의하여 생활세계를 되찾고 삶의 규범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혁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 기인된다는 것이다.
 
3. 언어적 전회
 하버마스는 우리의 일상적 의사소통의 형식 그 자체 속에 이른바 자유, 정의, 진리와 같은 보편적 원칙이 내재해 있으므로, 의사소통적 행위이론이 사회이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비판적 사회이론을 위한 이와 같은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는 후기 비트겐슈타인 이래 의식의 철학에서 언어철학으로 전환되고 있는 20세기 철학의 한 조류와도 같은 것이다.
 언어가 인간생활의 독특한 특징이고, 인간의 삶은 의사소통 과정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으므로, 그는 언어행위(speech actions)를 분석하는 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촘스키(Noam Chomsky)의 언어학이론과 오스틴(Austin)과 서얼(Searle)이 제기한 언어행위이론에 힘입어, 하버마스는 의사소통능력도 합리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촘스키는 언어능력(linguistic competence)과 언어수행(linguistic performance)을, 각기 심층구조와 표면구조에 비유하여 엄격하게 구별하였다. 그의 변형 생성문법의 주된 관심은 전자 즉 언어능력에 집중되었고, 언어능력만이 보편적 개념화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버마스에 따르면, 재구성적 언어분석의 목적은 문법적으로 타당한 문장을 구성할 수 있고 타인에게 납득될 수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유능한 화자라면 누구나 숙달해야 할 규칙들을 명백하게 규명하는데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언어행위이론이나 언어학이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언어학이 언어능력에 관한 전제로부터 출발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언어행위이론은 의사소통능력을 상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능력뿐만 아니라 의사소통능력도 개념으로 정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문장의 구문론적, 음성학적 및 의미론적 측면뿐만 아니라 언술행위의 실용적 측면도, 말하자면 언어능력뿐만 아니라 언어수행도 보편적 개념으로 정립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하버마스가 의사소통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촘스키의 언어수행과 같은 개념이다. 요컨대, 의사소통능력도 보편적 개념화가 가능하다고 보는 하버마스는 언어능력만이 보편성이라고 보는 촘스키와는 그 입장이 다르다.
 촘스키의 변형생성문법이 언어능력의 보편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하버마스의 의사소통론은 언어수행의 측면도 보편적 근거를 갖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버마스는 촘스키가 언어능력을 생래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상정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고, 일상적인 언어수행에 분석의 초점을 두었다. 이와같이 일상적인 언어수행에 초점을 둔 언어이론은 비트겐슈타인에서도 볼 수 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본질은 실재를 묘사하는데 있다고 하는 자신의 전기사상 즉 언어그림이론에 내재된 본질주의를 스스로 비판하고, 언어에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공통된 특성은 없고, 오직 일상적 문맥에 따라 언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언어현상도 놀이처럼 상호주관적인 어떤 규칙에 따르며, 이러한 규칙에 따름으로써 언어사용자들이 합의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하버마스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놀이이론을 수용하고, 의사소통행위가 상호주관적인 규칙에 대한 성찰을 내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상적인 언어행위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분석은 오스틴과 서얼에서 볼 수 있다. 언어적 의사소통의 기본단위는 언어행위이며,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말이 기본단위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언어행위는 분석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두 가지 요소, 즉 명제적 내용(propositional content)과 비언표적 행위(illocutionary acts)로 구성되어 있다.
 어떤 명제를 P라 할 때, '나는 P라고 주장한다', '나는 P라고 약속한다', '나는 P를 명령한다'와 같은 언어행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동일한 명제적 내용(P)이 상이한 수행동사(주장한다, 약속한다, 명령한다 등의 동사)와 연결될 때, 비언표적 행위 혹은 지배문장과 명제적 내용 혹은 종속문장으로 구별할 수 있는 두 요소로 구성된다. 지배문장은 언어행위의 비언표적 효력을 결정하고, 동시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간의 관계 즉 의사소통의 양식을 결정하며, 이는 곧 종속문장(명제적 내용)이 소통되는 실용적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종속문장 혹은 명제적 내용은 의사소통내용을 실재세계와 연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의사소통능력은 문법적으로 타당한 문장을 만들고 이해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양식에 따라 언어를 수행하고 이해할 수 있음은 물론 의사소통되는 내용을 실재세계와 관련지을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의 보편적 실용론은 일상적인 언어행위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에 관한 형식적 특성을 구체화한 것이다. 형식적 특성으로 볼  때, 모든 언어행위는 문법적으로 옳고, 외적 실재, 내적 실재 및 사회의 규범적 실재에 합당하다는 것을 암암리에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언어행위를 수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나 암암리에 네 가지 타당성주장을 깔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편적 실용론의 핵심은 첫째,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법적으로 타당하고, 둘째,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은 외적 실재에 비추어 볼 때 진리이며, 셋째, 말하는 사람은 나타낸 표현이 자신의 내면적 의도를 정직하게 말한 것이며, 넷째,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은 기존의 사회적 규범에 비추어 볼 때 정당하다는 것을 암암리에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네 가지 타당성 주장 즉 이해가능성(comprehensibility), 진리성(truth), 진실성(veraciousness) 및 정당성(rightness)은 모든 언어행위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전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네 가지 타당성 주장 중에서 이해가능성 주장만 언어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고, 다른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언어외적실재(extralinguisticd reality)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갈등과 견해차를 극복하고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타당성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도록 개방적인 논의와 담론을 존중하여야 하며, 개방적이고 진정한 담론의 규범을 준수하여야 한다.
 
4. 계몽과 모더니티의 과제
 우리가 이미 앞에서 본 것처럼,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 이르러 경제영역에 대한 국가권력의 점증하는 개입, 새로운 유형의 과학화된 이데올로기 기능에 의한 계급화해와 그에 따른 계급갈등의 점진적 퇴조, 하이테크혁명에 의하여 잉여가치의 주요원천으로 등장한 과학과 기술의 높여진 위상, 그리고 이에 수반된 생활세계의 황폐화와 새로운 차원의 문화적 물상화 등 일련의 징후로 인하여, 이른바 '역사의 진보'라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도, 마르크스가 제시한 역사법칙에 따르지 않는다는 역사적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되자, 오늘날의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 중에는 이같이 변화된 현실상황을 해석하는 또하나의 이론적 자원을 마르크스와는 이념적 입장이 다른 베버(Weber)의 사상에서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
 하버마스가 역사의 진보 혹은 진보적 역사관이라고 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18세기 경에 꽁도르세(Condorcet)를 비롯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형성한 계몽의 과제 혹은 현대의 과제를뜻한다. 베버가 지적한 것처럼, 현대의 특성 즉 모더니티(modernity)는 종교와 형이상학의 중세적인 획일적 세계관의 미몽으로부터 깨어나, 과학과 도덕률 그리고 예술이 각기 자율적영역으로 분화된 데서 비롯되었다. 말하자면 계몽주의적 사조에 의하여 중세의 봉건적 횡포와 종교적 독단이 무너짐과 동시에 중세의 획일적 세계관이 붕괴되면서 과학적 진리, 규범적 정의, 심미적 가치의 영역은 이제 자율적 영역으로 분화되어 각 영역고유의 내적 논리에 따라 독자적으로 제도화되기에 이르렀으니, 베버는 이를 모더니티의 출현으로 보았다.
 과학적 지식의 발전은 인류로 하여금 자연환경을 합리적으로 통제 지배할 수 있게 하고, 도덕과 법 그리고 예술 영역의 자율적 발전은 우리의 사회적 삶을 합리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모더니티의 과제(project of modernity)는 곧 인류를 몽매에서 계몽으로 인도하는 계몽의 과제이며, 일찍이 꽁도르세는 이를 '인간정신의 진보'로 요약하였다. 하버마스가 모더니티의 과제라고 하는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조에서 비롯된 역사의 진보에 관한 확신과 사회적 삶의 합리적 조직에 대한 확신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명백히 구별하여야 할 것은 합리성 개념이다. 합리성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 차원의 합리성이 있을 수 있으나, 우선 두 가지 유형의 합리성을 구별하여야 한다. 우리가 설정한 어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적인 수단들 중에서 가장 능률적인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타산적 이성이라는 의미의 합리성을, 일반적으로 목적합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목적달성에 비능률적이라 하더라도, 가능한 한 우리 모두가 동의하고 합의를 이룩하는 데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목적합리성과는 다른 차원의 합리성이기 때문에, 이를 특별히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합리적이라는 것도 착안점에 따라서 목적합리적인 것도 있고 또한 의사소통에 합리적인 것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원래 모더니티의 과제는 목적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한 바, 계몽사조에서 비롯된 모더니티의 과제를 보면 하버마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 객관적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환경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과제는 목적합리적인 것이요, 도덕과 법 그리고 예술의 자율적 발전으로 사회적 삶을 합리적으로 영위하려고 한 당초의 기획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베버, 루카치,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의 문명비판을 따르면서도, 이들에 대하여 하버마스가 철저한 비판을 제기하는 이유의 하나는 그들이 모두 계몽사조의 후예이면서도, 계몽주의적 과제가 원래 설정했던 두 가지 유형의 합리성 중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망각해 버리고, 계몽의 과제 즉 모더니티의 과제를 목적합리성 그 자체인양 착각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계몽주의적 과제가 완전히 낭패가 난 것처럼 허무주의적 결론을 내렸다는 데 있다.
 다소 현학적이고 난해한 하버마스의 글을 저자가 쉽게 푸는 과정에서 하버마스의 사상의 심오함을 단순화하고 왜곡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나, 『의사소통행위론』(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Vol. I.) 143페이지부터 두서너 장을 보면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를 접할 수 있다. 요컨대, 베버가 합리화라고 하는 것, 호르크하이머 등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도구적 이성, 도구적 합리성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목적합리성이며, 이들이 계몽주의적 이성의 전면적 몰락을 선언한 것도 계몽의 과제 즉 모더니티의 과제 중 한 측면만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버마스도 계몽의 역기능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다각적인 비판을 제기하였으나, 그는 모더니티를 전향적 발전으로 보는 모더니티의 대변자이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하버마스는 서구사회의 근대화(modernization)를 베버와 같이 합리화(rationalization) 과정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그는 근대화 과정을 도구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자율적 하위체계의 분화로 보는 베버, 이를 물상화로 개념화한 루카치 및 이성 그 자체를 도구적 이성으로 본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의 합리성 개념을 비판적으로 극복한 것이다.
 루카치는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상품의 물신숭배가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 사람의 모든 영역에 폭넓게 침투함으로써 지본주의적 경제원리가 인간관계까지도 사물의 관계로 타락시킨 것을 지적하면서, 서구의 합리화과정을 물상화로 개념화하였고, 역사발전의 주체요 동시에 객체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에 의해서 물상화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루카치의 물상화개념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특정의 역사적 맥락에 국한하지 않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가릴 것 없이 점증하는 도구적 이성이 수반한 필여적 귀결이라 봄으로써 물상화개념을 철학적으로 한층 더 정교화하였다. 
 루카치의 관점은 현대사회의 인간소외를 단순한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의 모든 영역으로 일반화시켰다는 점에서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편협한 인식을 극복할 수 있게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급갈등이 계급화해로 대치된 선진사회의 변화된 상황하에서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는 진부한 관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등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이 물상화 개념을 체제 초월적으로 일반화하고 철학적 수준에서 대상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려는 도구적 합리성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은 루카치를 능가하는 통찰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결론은 인간의 합리성 혹은 이성 그 자체를 도구적 이성과 동일시함으로써, 이성의 이름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비판이론 그 자체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역설적 결론이며 따라서 극복되기 어려운 회의론에 빠진 것이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론은 바로 이와 같은 딜레마로부터 탈피하기 위하여 제기되었고, 이를 위하여 그는 의식철학(philosophy of consciousness)으로부터 언어철학(linguistic philosophy)으로의 파라다임 전환을 강조하고, 인간이성의 인지적이고 도구적인 측면을 보다 포괄적인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일부로 여기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
 그래서 탐구의 초점은 인지적 도구적 합리성으로부터 의사소통적 합리성(communicative rationality)으로 옮겨진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파라다임에서는 객관세계의 어떤 것과 단독적인 주체간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어떤 것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이룩되는 상호주관적 관계가 중요하다.
 데카르트 이래의 인식론적 유아론(solipsism)에서는 객관세계에 대한 어떤 규정은 사유하는 인식주체 혹은 단독적 주체의 사유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데카르트적 관점을 거부하고 헤겔적 관점에서 인간의 인식작용을 이해하고 있다. 즉, 우리는 우리의 주체 혹은 자아를 의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과학적 지식도 과학자 개인의 단독적 성찰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개인의 인식주관 그 자체도 다른 과학도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므로, 과학자 공동체의 상호주관적 합의를 전제로 한다.
 사회는 독자적으로 유리된 원자적 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대화적으로 구성되고 상호일체를 지향하는 공통체로 인식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과학자가 객관적 자연에 관한 단순한 지식만을 생산하는 데 만족할 수 없고, 과학적 지식의 사회적 및 인간적 함의에 대한 자유롭고 개방적인 토론을 거쳐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과학이 인간해방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버마스가 생산성 제고나 행정의 능률화가 중요시되는 경제와 행정 같은 하위체계에 통용되는 인지적 도구적 합리성뿐만 아니라, 대화적으로 구성되는 의사소통적 삶의 영역에 필수적인 윤리적 정치적 합리성 및 심미적 실천적 합리성도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하버마스가 현대의 특성(modernity)를 합리화과정으로 규정할 때, 그가 합리성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목적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합리성이며, 특히 전자를 후자의 일부로 내포하는 포괄적 개념의 합리성을 뜻한다. 과학과 기술발전이 경제성장에 기여함과 동시에 생태계를 파괴하여 궁극적으로는 인류존재의 종말을 실감케 하며, 테크노크라시가 행정의 능률성에 기여하는 것 못지 않게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진정한 언로를 차단하며, 그래서 민주적 가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공장자동화, 사무자동화, 가정생활의 자동화 등 각종 편의의 증대와 함께 문명의 이기가 확대됨과 동시에 시민의 모든 사적 삶이 치밀한 분석과 감시를 피할 수 없는 원형감옥(panopticon)에 속박되는 문명의 병리로 인하여 삶의 세계가 황폐화되는 추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같이 정립된 합리성 개념 혹은 의사소통적 행위론은 하버마스에게 여러 가지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하게 되었다.
 첫째, 일상적인 언어수행의 과정에서 우리가 타당성 주장을 수용하고 있다고 하는 보편적 실용론이 강조한 것처럼, 일상적인 대화에까지 강력한 합리성 개념을 부여함으로써, 하버마스는 제1세대 비판이론의 회이론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및 마르쿠제는 지식이나 가치의 어떤 궁극적 토대가 있다는 데 대하여 극히 회의적이었고, 이 점에 있어서 상대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였으나, 하버마스는 의식철학에서 언어철학으로 전회함으로써 언어행위에 내재된 타당성 기초는 부인할 수 없는 보편적 전제이며, 이런 의미에서 선험적 전제(transcendental presupposition)라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실용론 혹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사회이론의 보편적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하버마스의 새로운 합리성 개념은 정치의 과학화를 극복할 수 있는 규범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후기 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는 갈등과 위기의 중심부가 경제영역이 아니라 정치영역이다. 오늘날의 정치적 결정은 윤리적 과제라기 보다는 과학적 과제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따라서 기술적 이성의 도구적 논리에 따르기 때문에 정치의 과학화를 초래하였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언어의 메카니즘에 내재된 자유와 화해의 규범을 준수할 때, 비로소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위하여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시민들의 폭넓은 참여를 촉구하고,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논의를통해서 의사결정과정을 민주화함으로써 갈등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그는 목적합리성까지 내포하는 포괄적인 합리성 개념을 상정함으로써, 편협하고 단편적인 합리성 개념에 의존한 나머지 회의주의적 결론을 내렸던 베버, 호르크하이머 및 아도르노 등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베버와 제1세대 비판이론가들은 모더니티를 도구적 합리성과 동일시함으로써 모더니티의 잠재적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였으나, 하버마스는 계몽주의적 이성의 병리현상 혹은 합리화의 역설은 우리가 합리성을 포괄적 개념으로 볼 때, 합리성이 과다해서라기보다는 합리적 정신이 덜 발달한 데서 기인된 현상이며, 따라서 모더니티의 병리는 계몽주의적 이성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한층 더 계몽된 이성에 의해서 극복될 수 있다고 보았다. 

출처 블로그 > 가우리블로그정보센터(GBC)
원본 http://blog.naver.com/uuuau/40008422226
제3강: 인간성 상실과 소외의 심화
우리는 어떻게 소외와 불안, 고독에서 벗어날 것인가:
프랑크푸르트철학 對 三空과 緣起


당신은 왜 사무치는 고독에 몸부림을 칩니까?

우리의 삶은 왜 늘 고독하고 불안한가? 독거노인처럼 가난하고 헐벗고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사람만이 아니다.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 한 번 뜨면 수십만 대중들이 환호를 보내는 스타조차 언뜻 돌아보면 혼자이다. 당신은 왜 혼자입니까? 다른 이들을 위하여 그리 많은 일을 하였고 재산도 넉넉하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존경한다며 따르는 사람들도 주위에 많은데 이 밤 당신은 왜 뼈에 사무치는 고독에 몸부림을 칩니까?
당신은 왜 주위 사람으로부터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합니까? 덜 먹고 덜 입으며 그리 베풀었는데도 그들은 왜 은혜를 원수로 갚습니까? 당신이 높은 자리에 있을 때는 쓸개까지 내줄 것 같았던 이들이 왜 지금은 당신을 애써 외면합니까, 그들이 숭배한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자리란 말입니까? 직장처럼 약육강식하는 장은 그렇다 치고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마저 왜 당신을 무시합니까?
카프카의 <<변신>>이란 작품이 있다. 평범한 샐러리맨 그레고르 잠자는 잠을 자다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한다. 그러자 그가 가장 사랑하였고 그를 사랑하였던 가족들은 그를 징그러워하고 혐오스러워 한다. 그가 그토록 사랑하였던 누이마저. 그는 끝없는 소외와 고독 속에서 죽어간다. 마침내 그가 죽자 가족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소풍을 떠난다.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이는 현실성이 없는 소설이다. 그러나 이 소설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는 가에 대하여 극명하게 보여준 작품도 드물다. 우리 모두는 벌레가 아닌가? 벌레 같은 존재이면서도 위엄이 있는 인간이라고, 모두에게 사랑 받고, 인정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잠자가 죽었을 때 오히려 가족들이 피크닉을 떠난 것처럼 내가 죽었을 때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리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살아가지 않겠는가,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존재인 것은 아닌가?

소외란 따돌림이 아니다

널리 보면 요새 유행하는 따돌림, 왕따도 소외의 일종이다. 무슨 일인가 같이 하고 싶은데 “넌 빠져.”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다들 정장을 입고 왔는데 나만 허름한 차림으로 모임에 나타났을 때, 모두들 잘 하고 있는데 나만 못하여 그것을 지켜보는 대상으로 머물 때 우리는 소외를 느낀다. 그러나 소외는 따돌림 이상의 것이다. 20세기에 와서 왜 사람들은 서로를 소외시키고 자기 스스로도 소외되어 끝없는 고독과 상실감에 몸부림을 치고 때로는 소외를 못 이겨 히틀러의 파시즘 같은 것에 열광하는가?
프랑크푸르트 철학자들은 이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였다. 따돌림이란 인간 집단이 형성되면서부터 생긴 것이라면, 소외는 엄격히 말하여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하여 고도 산업사회로 발전하면서 보편화한 것이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등은 20세기 고도 산업사회 속의 인간 문제를 탐구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현상학과 헤겔을 종합한 독특한 사회철학을 폈으니 그를 일러 프랑크푸르트 철학, 또는 비판철학이라 명명한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마르크스, 6백만을 학살하는 히틀러에게 환호를 보낸 독일 국민처럼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대중들의 무의식을 분석하는 도구로 프로이트를, 사회현상을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 실증주의를 넘어 주체의 자유의지에 따라 분석하는 틀로는 현상학을 종합하여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들은 비판에 머물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인간주체가 갖추어야 할 이성의 지표는 헤겔에게서 끌어왔다.
이들이 볼 때 자본주의 체제는 사용가치를 교환가치로 뒤집어버린 사회이다. 이것이 무슨 소리인가? 나는 십 년이 넘게 쓴 만년필을 한 자루 가지고 있다. 이제 펜촉이 닳고닳아 글씨는 쓰는 족족 번지고 뚜껑은 너덜너덜해져 쓸 때마다 소음을 낸다. 남들은 이제 버리라고 하지만 이 펜에는 버릴 수 없는 역사가 스미어 있다. 나는 이 펜으로 편지를 써서 한 여인의 마음을 사 그를 아내로 삼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좌절해 있는 후배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나에게 이 펜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고급 만년필보다도 소중하다. 이것을 다른 물질, 특히 화폐와 교환하여 얻는 가치는 단돈 몇 십 원에 불과하지만 나는 수십 만원에 달하는 고급 만년필과 이것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내 만년필에나 해당할 뿐, 다른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것을 들고 백화점에 가서 이것과 몇백 원 짜리 볼펜 몇 자루와 바꾸어 가겠다고 하면 점원은 나를 미친 놈으로 알 것이다. 그는 만년필에 담긴 역사를 모른다. 그 만년필이 잉크만 주입하면 아직 얼마나 많은 글을 쓸 수 있고 이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지 잘 알지 못한다. 그에겐 사용가치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교환가치만 따져지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사회,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보다 우월한 사회다.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전도된 사회에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 물화(物化, reification)다. 자본주의 사회는 교환가치를 우선시하여 모든 것을 물질로, 돈으로 대체하여 바라보기에 사람들의 관계가 사물의 성격을 지닌다. 노동은 진정한 자기를 실현하는 것도, 자기 앞의 세계를 변화시키는 인간 주체의 실천 행위도 아니다. 돈 버는 수단일 뿐이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하여, 돈을 벌어 더 많은 물질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육체를 소진하고 마음에 없는 아부를 하기도 하고 남을 곤경에 빠트리기도 한다. 인간 주체가 노동을 기획하고 다른 이들과 토론을 하고 협동을 하며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계의 한 부속품이 되어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인 일을 반복할 뿐이다.
스무 너댓 살까지는 좀더 많은 돈을 벌 능력을 키우고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기를 코피를 흘리며 밤을 새워 공부하는 것으로 보내고, 그리 하여 학벌을 따면 그 간판으로 좀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던지고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러다 몇몇은 그리 빨리 달려온 탓에 병을 얻어 도중 하차하고 남은 자들은 종착역까지 달려가지만 그때서야 그렇게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온통 물화한 삶의 연속이다.
물화한 개인은 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물질의 눈으로, 상품관계로 바라본다. 그래서 우리 집에 대해 묻는 이들에게 우리 집 창으로 아름다운 관악산 능선이 보이고 뒤뜰에는 과꽃이 흐드러졌다고 하면 그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평당 얼마짜리 아파트의 몇 평 아파트라 해야 금세 이해한다.
온갖 삶들이 이렇듯 물화되어 있으니 우리는 서로를 소외시킨다. 배우자를 고를 때조차 그 사람의 교환가치를 따진다. 돈이나 권력이 있는 가문이냐, 그렇지 않으냐, 몇 평의 아파트와 몇 개의 열쇠를 가지고 오느냐, 연봉은 얼마인가가 중요한 척도이다. 좀더 약은 사람이라면 지금은 가난하더라도 미래의 가치, 학벌은 어떠며 머리는 좋은 지, 성실성은 있는 지 따진다. 인품은 그 다음이다. 더 심한 경우는 자신의 아내가 결혼 때 가져온 지참금이 작다고 폭행을 하고 이혼을 해 버린다. 결혼해서 해로하는 부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랑은 이미 식어버리고 “그냥 산다고”들 말한다. 아내는 남편을 돈 벌어 오는 기계로, 남편은 아내를 살림하는 가정부쯤으로 생각한다. 남편은 승진과 출세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가정을 유지하고 아내는 홀로는 부양 능력이 없어서, 아님 애써서 자식들의 성공에 자신의 삶의 목표를 맞추고 가족을 끌어안는다. IMF 때 직장에서 잘렸다고 가장 따스하게 보듬어줄 줄 알았던 아내가 이혼하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과연 어디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까?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하는 부부관계가 이런데 다른 인간관계야 어떻겠는가?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서로 경쟁의 대상일 뿐이다. 나 스스로가 인간성을 상실하였으며 타인 또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 현실은 카프카의 <<변신>>보다도 비극적이다. 거기선 그래도 죽이지는 않고 죽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몇 푼돈을 얻기 위하여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 부모나 자식, 아내나 남편, 친구들을 살해하기도 한다. 우리는 나를 가장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몇몇 물질을 얻고자 나를 죽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에 있으면서도 모두가 고독하고 항상 불안하다.
현대인을 병들게 하는 소외가 더 있다. 동일화의 소외. 현대인들은 매스미디어가 던지는 환상에 젖어 주체를 상실하고 자신을 그들 환상과 동일화한다. 서민 주부들은 연속극의 스타들에 자신을 동일화하여 그들과 같이 울고 웃는다. 그러는 가운데 드라마 속의 가난한 여주인공이 갖은 고생 끝에 재벌 2세와 결혼하여 고급 차 타고 특급 호텔에서 감미로운 클래식을 들으며 캐비어를 먹으면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는 사이에 서민 주부가 가졌던 불만과 갈등은 사라진다. 동일화의 소외가 기존체제를 유지시키는 기제로 작용하는 것이다.
자기로부터, 정확히 말하여 자기 동일성으로부터 소외되는 것 또한 문제이다. 어떤 행동을 한 후 그런 자기 자신이 굉장히 낯선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행정고시에 합격하였다는 소식을 듣는 그 순간 “야, 이제 고급 공무원이 되었으니 무지막지하게 뇌물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고 그것을 상납도 하여 출세 좀 해야겠다.”라고 맹세한 사람이 있을까? 촌지를 받지 않는 선생이 없다고 한국 사회가 온통 난리를 칠 때 필자는 사범대 졸업반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단 한 명도 그럴 눈빛을 가진 학생은 없었다. 거의 대부분 선생을 천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그 또래 대학생에 비하여 유달리 선한 눈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왜 청렴한 공무원이, 올곧은 선생님이 몇 년 지나지 않아 타락할까?
타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남보다 더 돈을 좋아하여 뇌물을 받는 것도, 남보다 더 악해서 촌지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제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한 마디로 착한 사람을 병들게 하는 구조 때문이다. 언론계나 교육계로 진출한 내 제자들 가운데 몇몇이 그런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촌지 받지 않고 버티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그 중 한 학생은 촌지를 받지 않고 버텨서 심한 왕따를 당하고 있고 정신병이 걸릴 지경이라고 하였다. 동료들과 술이라도 한 잔 걸칠라 치면 “김선생, 이거 더러운 돈으로 술 먹으러 가는데 깨끗한 양반이 왜 끼십니까?”하더란다. 그 선생이 동료들과의 유대를 위하여 촌지를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선생은 그 순간 자기로부터 소외당한다. 자기가 아는 자기는 청렴하고 학생들을 자식처럼 아끼는 선생인데 촌지를 받는 나는 그런 나와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내가 여태까지 아무리 가난하여도, 여러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여도 나 자신은 청렴한 공무원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는데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외부의 압력에 못 이겨 뇌물을 받은 자기 모습을 발견하였을 때 그는 얼마나 충격에 휩싸였을까? 얼마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낯선 기분을 느꼈을까?
더 무서운 것은 이 소외감도 차츰 면역이 되어 버리고 기존 질서에 동화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처음엔 갈등도 하고 심한 소외감을 느끼겠지만 그는 곧 그를 느끼지도 못한다. 기자가 된 몇몇 제자들은 촌지를 받지 않으면 취재가 되지도 않고 동료들과 불화도 심하여 결국 촌지를 받기로, 대신 동기인 누구에게 곧바로 보내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들을 돕는데 쓰기로 하였다고 한다. 참 아름다운 결정이기도 하고 고육지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절대 동화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서면서도 과연 이들이 언제까지 그런 절충안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맞설 수 있는지 적이 걱정되었다. 그들이 세상에 결국 져선 촌지를 받고, 졸업하면서 꿈꾸었던 올곧은 기자상과 거리를 확인하고는 곧 그 충격에서 벗어나 그도 또한 물화한 인간이 되어 모든 이들을 물적 관계로 대하며 기존질서에 편입되는 날이 언제일까, 그리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공룡, 자본주의 체제의 미래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러기에 마르쿠제는 이 체제가 인간을 더 철저하게 억압하는 전체주의로 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1차원적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어떤 대안이 있을까?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철학자 중 한 사람인 마르쿠제는 ‘일차원적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그래도 20세기 초반에는 노동자들이 나서서 인간다운 사회를 펼쳐보자고 일어섰다. 지구의 한 편에서는 그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열었다. 그러나 왜 사회주의에서조차 인간은 소외되어 있는가?
일요일 날 흔들의자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며 메이저리그 야구를 시청하고 있는 미국의 노동자를 상상해보자. 그는 일상의 안락함에 젖어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을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불만과 갈등은 없다. 그러나 불만과 갈등이 없으니 노동자로서의 의식, 즉 계급의식 또한 없다. ‘사이비 행복의식’이 그의 계급의식과 반역을 향한 동경을 앗아갔다. 텔레비전이 만들어주는 환상에 마취되어 그에 따라 울고 웃는 愚衆만 있다. 엄청나게 먹어대고 그로 인한 비만을 줄이기 위하여 우리나라에서만 1년에 2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을 다이어트로 낭비하는 것에서 잘 드러나듯, 광고 이미지에 속아 변혁을 향한 욕망은 억압당하고 헛된 욕망만 부풀려 과잉소비를 행하고 있는 육체만 있다. 이것이 1차원적 인간의 참모습이다. 현재에 만족하기에, 계급의식을 잃어버리고 그 자리를 허위의식으로 채웠기에, 주체는 사라지고 맹목적인 자아만 남았기에, 이성 대신 국가와 자본과 대중문화가 조장하는 감성과 욕망에 따라 행동하기에 일차원적 인간은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도 못하며 사회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오늘의 행복과 향락만 유지되면 그 뿐, 사회의 변화나 도덕의 달성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럼 대안은 없을까? 마르쿠제는, 물화와 소외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지 않는 한, 이미 계몽의 힘을 상실하고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과학기술에 덜 조작 당하고 산업사회와 대중문화의 도구적 합리화에 아직 덜 길들어져 1차원적 인간으로 전락하지 않은 국외자와 학생들이 혁명의 불길을 활활 타오르게 하지 않는 한 그 어떤 것도 미봉책이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6, 70년대에 프랑스를 필두로 하여 세계 곳곳에서 마르쿠제 등의 비판에 고무된 학생들이 일어났다. 고도 산업사회의 모순이 첨예화한 서양 사회는 물론 일본과 멕시코에서도 소외를 강화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와 억압을 강화하고 있는 기존체제의 모든 구조를 뒤엎고자 하였다.
68혁명은 막을 내렸으나 사회 전반에 대해 혁신을 가져왔다. 노동자를 억압하고 소외시키던 포디즘에 메스가 가해지고 노동자의 참여와 자치가 속속 보장되었다. 학교와 언론 등 사회 모든 부문에서 억압적이고 관료적인 양식이 무너지고 수평적이고 평등적이며 민주적인 소통양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억압된 성이 해방되고 여성의 지위가 상승되었다. 기존의 가치체계, 상상력을 뒤엎고 새로운 가치와 상상력을 펴나갔다. 이는 페미니즘, 녹색운동, 노동자의 자치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문화운동만으로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 청년들의 낭만적인 운동은 자본가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으로 전화하지 못하였다. 청년 학생들의 급진적인 부정의 상상력은 계급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다. 결국 이에 대한 반혁명이라 할 신자유주의가 나타나 68혁명이 이루었던 성과들을 집어삼키며 전 세계에 걸쳐 억압과 소외를 더욱 심화하고 있다. 그럼 원효의 사상에 소외를 극복하는 대안이 있을까?

공해진 그 공도 또한 공이다

“三空이란 空相도 또한 空이요, 空空도 또한 공이요, 所空도 또한 공이라는 것이다. 이런 공은 3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진실이 없는 것이 아니니, 글과 말의 길이 끊어져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공상도 또한 공이다’고 한 것은 공상이 바로 俗諦를 버리고 眞諦의 평등한 상을 나타낸 것이요, ‘또한 공했다’란 곧 진제를 녹여 속제를 만든 것이다. ‘공공’이란 순금을 녹여 장엄구를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니, 열반경의 말과 같다. 즉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는 이것을 ‘공공’이라 하며 ‘이것은 옳고 그르다’고 하는 이것을 ‘공공’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은 속제의 有無와 是非의 차별의 상을 밝힌 것이다. 이 ‘공공’의 뜻은 평등에서 공한 것이니, 이 공은 속제의 차별을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별의 ‘공공’이라 하는 것이다. ‘공공도 또한 공이다’라고 한 ‘공공’은 곧 속제의 차별이며, ‘또한 공이다’한 것은 이 속제를 녹여 진제로 만든 것이니, 이것은 장엄구를 녹여 다시 금병으로 환원시키는 것과 같다. 셋째 ‘소공도 공하다’라고 것은, 처음 공 가운데의 공이 나타낸 속제와 둘째 공 가운데의 공이 나타낸 진제의 이 두 가지가 다름이 없기 때문에 ‘또한 공한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二諦를 융합하여 일법계를 드러낸 것이니 일법계라는 것은 이른바 일심이다.”(<<金剛三昧經論>>, <入實際品>)

하늘에 반달이 떴다. 스승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반달이라고 대답하자 스승은 일갈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햇빛을 받지 않아 보이지만 않을 뿐 반달의 어두운 부분도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데 햇빛에 반사되는 부분만 보고 반달이라 할 수 있느냐고.
그토록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은 허상이다. 반달의 밝은 부분은 어두운 부분과 관계를 통하여 드러난다. 어두운 부분 없이 밝은 부분 스스로는 공하다.[關係性] 어두운 부분을 의지하여 밝은 부분이 드러난 것을 보고 반달이라 한다. 어두운 부분을 의지하지 않고는 반달은 드러나지 못하니 공하다.[相依性] 지구를 따라 돈다는, 태양 빛에 반사된다는, 더 멀리로는 이 우주가 생긴 인연이 있었기에 달은 지금 반달로 있는 것이다.[因果性] 또 달은 스스로는 무엇이라 할 수 없다. 지구가 있기에 달은 존재한다. 지금이라도 지구가 사라진다면 달은 주위에 중력이 강한 어느 별엔가 이끌려 그리로 가게 된다. 달은 또 스스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달을 달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달 때문이 아니라 태양이나 지구와 대비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태양이 있기에 태양이 왕이라면 달은 왕비가 되고, 태양이 광명의 세계를 뜻하면 달은 어두움의 세계를 의미한다. 달 스스로 아무런 본질도 존재의 실재도 나타낼 수 없으니 공하다.[無自性] 달은 또 그대로 지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차고 기울며 오늘 하루의 반달도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변한다.[無常] 또 달은 달 스스로 달인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투사한 것이자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삼라만상을 갈라 그리 부른 것이다. 그러니 달은 카르마의 총합일 뿐이다. 그러니 모든 것이 공하다.[畢竟空]
인도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장님에게 어떻게 흰 색을 알려 줄 것인가?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하여 눈과 종이와 흰 털을 가진 토끼를 가져갔다. 그러나 장님은 그것으로 흰 색을 알 수 없다. 장님은 눈의 차가움과 만진 후의 축축함, 종이의 평평함, 토끼 털의 복슬복슬함을 느꼈을 뿐이다. 우리 모두 장님과 같다. 공(흰색)은 알 지 못한다. 다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존재의 경계(눈, 종이, 토끼)에 휩싸여 그것들의 현상(차가움, 평평함, 복슬복슬함)을 그것으로 아는 것이다.
다음 날 달이 다시 떴다. 스승은 다시 물었다. 저 달이 무엇이냐고? 어제 반달이라 하였다가 혼난 제자는 대답하였다. 온달이라고. 스승은 그런 제자에게 일갈을 한다. “예끼! 너는 왜 반달로 보이는 것을 온달이라 거짓말을 하는가?”라고. 반달은 반달이다. 반달은 스스로는 무엇이라 말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기에 공하나, 어두운 부분을 통하여 밝은 부분이 드러나고 밝은 부분이 있어 어두운 부분이 나타난다. 처음에 반달이라 말한 것이 속된 인식에서 반달이라 한 것이라면 나중에 반달이라 한 것은 평등공조차 공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반달이다. 현상계의 차별적인 모습을 부정하여 반달을 부정하는 것이 空相이라면 차별이 없이 평등한 세계를 부정하여 반달이라 하는 것은 空空이다. 삼공의 눈으로 보면 다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우리는 무엇을 일러 반달이라 하는가? 정확히 50%만 햇빛에 반사되어 환한 달이 존재하는가? 반달은 0%인 달과 100%인 달 사이에서 움직이니 반달은 반달인 동시에 반달이 아니다. 처음의 반달이건 나중의 반달이건 우리의 인식 속에서 그리 생각한 것인데 우리의 인식 자체가 공이다. 달이 ‘지구의 위성’이란 것을 부정하면, 달이 높이 떠서 산과 들을 가리지 않고 비추니 귀족과 서민을 가리지 않고 자비의 빛을 뿌리는 관음보살임이 드러난다. 다시 이를 부정하면 달빛 아래 모든 차별이 사라지고 하나를 이루니 달은 만다라이며, 달의 빛은 서로를 헤살 놓지 않고 무수한 빛들이 서로를 비추고 있으니 화엄이다. 그리고 이 모두 마음 속에서 빚어진 것이며 말로 드러낸 바다. 그러니 一心으로 보면 空相도 空하고 空空도 空하다. 空相은 차별상을 떠난 것이므로 眞諦다. 공공은 평등상을 부정한 것이므로 俗諦다. 공상과 공공은 모두 반달이라 했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이렇듯 所空에서 보면 공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으며 眞도 아니고 俗도 아니다. 둘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박테리아 한 마리도 지구 대기의 균형에 관여한다

공은 부정의 사유가 아니다. 이중부정을 통하여 긍정하는 사유이며, 이것이 공이라 하면 저것이 드러나고 저것이 공이라 하여 이것을 드러내는 사유이다. 自性에서 벗어나 우리 앞의 세계를 서로 서로 연기가 된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나타나는 것과 감추는 것을 동시에 보려는 총체성의 철학이다.
1991년 미국은 애리조나주 오라클에 유리로 밀폐시킨 가상지구 바이오스피어2(Biosphere Ⅱ)를 14만 평방피트에 달하는 너른 땅에 지었다. 흙과 물, 공기, 들과 언덕을 갖추고 동, 식물 또한 살게 하였다. 빛만 빼놓고는, 산소도 바람도, 꽃가루받이도 모두 자체적으로 이루어지게 하였다. 8명의 사람들이 이 작은 지구에 들어가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채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였다. 그러나 18개월만에 바이오스피어2는 치명적인 불균형 상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산소 농도가 처음 21%에서 14%로 떨어져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가 없었다. 대신 가상지구에 충만하게 된 이산화탄소와 질소로 인해 잡초만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자랐다. 바퀴벌레와 개미 같은 몇몇 곤충들만 번창하게 되었고, 25종의 작은 동물들 가운데 19종이 전멸하고 말았다.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대신해 주던 곤충들이 죽자 식물들도 번식할 수 없게 되었다.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모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건물의 콘크리트 벽이 산소를 흡수하고는 방출하지 않았고 농사용 토양에 함유된 박테리아가 산소를 많이 소비하는 통에 산소농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하찮은 박테리아가 대기의 균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앞에 떠다니는 미세한 먼지보다 작은 박테리아 한 마리도 다른 모든 생명의 균형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가 인연의 비늘로 철저히 겹쳐있는데 홀로 존재한다 할 수도 없거니와 홀로 무엇이라 내세울 수도 없으며, 홀로 삶을 영위할 수는 더 더욱 없는 것이다. 나는 없다. 그러나 네가 있어서 나는 있다. 우리는 홀로 남겨진 존재가 아니다. 인연의 사슬이 깊어 수천억년 가운데 같은 시대에 수조개의 별 가운데 같은 별에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이 있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그들이 있는 것이다.
서양 속담에 “여섯 다리를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다.”라 한다. 나는 방송국의 한 드라마 PD와 친한 선후배 관계이니 두 다리만 건너면 그가 연출한 드라마의 탤런트들과 만나 식사할 수 있다. 한 사람이 대략 3,000명의 사람을 소개받고 300여명과 가깝게 지낸다고 한다. 그러니 한 다리를 건너면 나는 300명을 알고 있으며, 여기서 한 다리를 건너면 내가 아는 300명에 각자 300명씩을 곱하게 되니, 9만명의 사람을 알게 되고, 또 한 다리를 건너면 2,700만명의 사람을 알게 되고, 네 다리를 건너면 81억명을 알게 된다. 물론 여기에 지역과 문화의 제약을 상정하지 않은 것이지만, 산술적으로 볼 때 인류는 네 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친구인 셈이다. 열 다리도 아니고 네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인데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다르다고, 서로 피가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르다고 으르렁거리고 서로 총을 겨누어야 할까?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중산층은 해체되고 세계의 가난한 나라, 가난한 백성은 더욱 가난해졌다. 한 켠에서는 산해진미를 가득 쌓아놓고 그 가운데 1/10도 채 먹지 않은 채 쓰레기로 버리는데 다른 켠에서는 밥 한 숟가락만 먹어도 살릴 수 있는 어린이들이 1년에도 4백만 이상씩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다 죽어가고 있다. 97년 6월 현재 인류 가운데 13억이 하루에 1달러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세계 10대 갑부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1천3백30억 달러로 최빈국 총수입의 1.5배에 달한다. 그럼에도 이것은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중심국가는 거의 모든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공세를 취하며 더욱 착취를 강화하고 있다. 굶주려 죽어가는 어린이들을 나라고,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불평등과 부조리가 계속 야만을 범하고 있는 것을 방관하겠는가? 우리 모두가 이웃이고 우리 인류 모두가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데 굶어죽어 가는 어린이의 고혈을 짜서 내 배를 불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이제 동일성의 철학에서 연기의 철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야 한다. 베이징에서 나비가 팔랑이면 뉴욕에서 폭풍이 분다는 것은 황당함을 말하는 비유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기온과 기압이 임계상태일 경우 한 사람의 기침으로도 그 균형은 깨져 대기를 혼란시키며 이것은 차례로 고공의 대기마저 불안정하게 하여 그 영향으로 뉴욕에서 폭풍이 불 수도 있다.
지난 세기에는 폐수를 몰래 버려 정화비를 아낀 사람이 유능한 경영자였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폐수를 먹은 물고기를 그 자신이 먹고 그 폐수로 더럽혀지고 더워진 바다가 이상기온을 만들고 이로 돌풍이 일어 그 사람의 공장을 무너트릴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날아다니는 새에서 한갓 돌이나 이끼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모든 사물이 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데 버릴 것은 무엇이고 파괴할 것은 또 무엇인가? 세상 삼라만상이 나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믿음이 있는데 고독하고 소외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태양계와 같은 것이 수억 개 모여 은하계를 이루고 이 은하계가 또 수억 개 모여 우주를 이룬다. 우리가 고개를 들으면 수조개의 별이 반짝인다. 그 별 가운데는 태양에서 명왕성에 이르는 태양계 전체를 포개도 전혀 미치지 못할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별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별을 모아도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대부분은 별이 아니라 암흑물질이다. 이는 빛을 내지 않지만 질량을 가지므로 주변에 중력을 미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주변의 별의 운동을 관찰하여 그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반짝이는 별만 보고 우주라 하면 드러나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암흑물질을 부정하게 된다. 별들과 은하계의 집합을 우주라 할 수 없다. 어두운 부분을 통하여 빛나는 별들이 드러나고 별을 통하여 어두운 암흑물질이 드러난다. 너와 나도 마찬가지이다. 본래 내가 없는데 나를 내세우면 나를 더욱 부정하는 꼴이 된다. 그러나 너를 통하여 내가 드러나고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모든 타인은 내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초기불교부터 있어온 공과 연기 사상을 응용한 것이다. 그러면 원효의 공 철학을 응용하면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일심에서 보면 공은 같지도 다르지도 않으며 眞도 아니고 俗도 아님을 어떻게 우리 현실에 적용할까?
라깡은 욕망이란 타인을 지향하는 것이기에 욕망할수록 자아는 자기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를 채우려는 것은 타인의 돈과 권력, 향락을 빼앗는 것을 뜻한다. 나에 집착하면서, 부자는 가난한 자를 더욱 고통에 몰아넣고 있고,(1960년대에 미국 대기업 지원과 최고경영자 사이의 연봉 차이는 1 대 41이었으나 99년에는 1대 457로 벌어졌다. 97년 6월 현재 인류 가운데 13억이 하루에 1달러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세계 10대 갑부들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1천3백30억 달러로 최빈국 총수입의 1.5배에 달한다.)인간은 자연을 파괴하였고, 남성은 여성을 억압하였으며, 서양은 동양을 착취하였다. 대신 인간은 극심한 소외감에 몸부림을 치고 있다. 소외는 개인의 심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소외감을 못 이겨 자신을 마약, 향락 등 자신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트려 해체하거나 타인에 대한 극도의 폭력으로 드러낸다. 때로는 히틀러의 파시즘 같은 전체주의적 폭력에 열광적으로 환호를 보낸다.
그러나 씨가 자신을 죽여 싹을 내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공이 생성변화의 조건이다. 나무는 스스로는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나 풀과의 차이를 ‘목질의 줄기를 가진 다년생의 식물’이란 의미를 갖는 것처럼 공은 다른 것과의 관계를 통해 나를 드러내는 사유이다. 나를 부정할 때 우리는 소외감에서 벗어나 세계의 모든 인류, 더 나아가 전 우주상의 모든 생명체들과 굳건한 유대를 맺을 수 있다.
심우도의 여덟째 그림은 동그란 원 뿐이다. 왜 소라는 깨달음을 얻었는데 빈 원이 이어지는가? 이는 人牛俱忘, 곧 자기와 소를 다 잊는다는 것인데 본디 제 자리로 되돌아간다는 返本還源과 궁극의 광명 자리에 든다는 入廛垂手가 이어진다. 나를 비워야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통찰이 가능하다. 산은 산이며 물은 물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통찰이 가능한 후에야 나와 너의 구분을 허물고 세상의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그를 통해 대중을 소외에서 벗어나게 하고 나도 또한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연기의 패러다임이 없는 68혁명은 신자유주의에게 먹히고 대중들은 더 혹독한 소외를 겪고 있다. 연기의 패러다임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야금야금 내부로부터 파열시킬 수 있다. 영성의 힘은 물성의 힘을 이길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시장의 원리에 종속되어 수행을 닦기보다 입장료 수입과 시주 액수를 올리는 데 더 혈안이 된 스님에게 먼저 자기부터 비우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암자에서 고고하게 무소유의 행을 실천하고 있는 스님을 개인적으로는 존경한다. 이 분들의 공력으로 인하여 많은 대중들이 소외를 극복하고 ‘眞我’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성불은커녕 소외나마 극복하게 할 수 있는 대중의 수는 기껏 10%나 될까? 그러면 나머지 90%의 대중은? 차원 높은 공의 철학을 설파한다 해서 얼마나 많은 대중들이 해탈을 이룰 것인가? 그토록 자본주의 체제를 만만히 보았는가? 오히려 자본주의의 원리는 산사의 깊은 암자까지 파고들어 수행자까지 물화시키고 그들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그가 알고 있는 스님의 참 형상으로부터, 진아로부터 소외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시주 액수에 연연하는 오늘의 나의 모습이 下化衆生을 위하여 나를 버리겠다고 서원한 젊은 날의 나의 모습에서 꽤나 멀리 낯설게 느껴진 적은 없는가? 스님조차 소외시키는 것이 자본주의의 힘이다.
사찰이 진제라면 시장은 속제이다. 이미 사찰에도 시장의 원리는 들어와 있다. 사찰의 공과 시장의 공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사찰의 공이 관념적이라면 시장의 공은 삶이다. 사찰의 공이 없음과 비워둠의 사유라면 시장의 공은 무소유의 행이다. 사찰의 공이 연기의 사유라면 시장의 공은 타인, 또는 다른 생명체와의 연대와 사랑이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산사 속의 절마저 시장원리에 종속당할 것이다. 더불어 스님 또한 시장의 원리를 알고 시장의 공과 사찰의 공을 하나로 아울러야 한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불사에 시주하였으나 자신을 비우지 못한 보살이 천박하다면 마음에서는 자기를 비웠으나 그 깨달음을 자비행으로 옮기지 않고 있는 스님은 현학적이다.

출처:춤 이론 연구소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비교 고찰*


-영국 및 스웨덴과의 비교 중심으로-

민춘기**

 

I. 머리말

한국의 독어독문학은 대학개혁이라는 현실적인 요구에 부딪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적지 않은 변화를 겪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띠는 특징으로 독일학, 지역학, 지역연구, 문화학 등으로 불리는, 이른바 독일어권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와 교육으로의 확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독어독문학에서도 독일학이라는 영역이 하나의 부분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실제로 전통적인 독어독문학과의 명칭이 다른 이름으로 바뀌거나 교과과정에서 독일학 관련 과목을 개설하고 있는 추세이며, 최근에는 독어독문학 관련 학술지에서도 독일학에 관련된 논문들이 종종 실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필자가 소속된 대학에서는 '독일문화와 사회'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수강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과목에서 필자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에 관련된 부분을 맡게 되었으며, 강의와 교재를 준비하기 위해 이 분야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하게 되었다. 여기서는 이 분야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분야는 독일학이나 독일지역학에서 언급될 수 있는 하위 분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연구목적은 독일학의 한 하위분야로 볼 수 있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살펴봄으로써 보다 깊이 있는 독일 이해에 기여하는 것이다. 막연한 지역 이해보다는 특정분야의 깊은 이해를 통해 보다 생산적인 독일지역학 연구를 해야할 상황에서 그 기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독일학 관련 교과목의 수업 자료를 부분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으로 볼 수 있겠다. 여기서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영국 및 스웨덴의 경우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연구대상은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을 이루는 사회보험, 즉 연금보험, 의료보험, 재해보험, 실업보험 등이며,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과정, 주요특징, 개혁동향을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하겠다.

II. 발전과정

사회보장제도의 발상지는 유럽이다. 19세기부터 대중 교육제도의 확산과 함께 발전된 서구 민주적 자본주의가 보여주고 있는 가장 큰 특성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는 국가별로 매우 상이한 역사적 조건과 정치적 과정을 통하여 발전하였다. 따라서 사회보장제도의 역사를 거시적인 단계로 구분하여 파악하는 것이 전체적인 이해에 도움이 된다. 대개 빈민법 단계, 사회보험 단계, 복지국가 단계 등으로 크게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여기서는 이를 중심으로 전체적인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개별 국가의 발전과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빈민법은 유럽 절대왕정시대에 국가가 제정한 것이다. 이는 교구 단위의 자선행위로부터 행정기구 수립과 빈민세 활용에 의해 정부활동으로 전환된 것이다. 빈민법을 통한 구제는 그 대상자의 권리와는 전혀 무관했으며, 급여는 그 제공자인 국가와 교회의 완전한 재량에 좌우되었다. 빈민법은 절대왕정시대에 농촌 노동력에 대한 통제를 위해 절대주의 국가가 제정하였기 때문에 사회보장제도의 범주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빈민법이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근대적인 사회복지정책인 공적부조(公的扶助)로 이어졌다는 점을 인정하여 사회복지제도의 뿌리 혹은 전사(前史)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사회보험은 자본주의적인 사회복지정책이다.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보다 더 큰 비중을 갖게 되면서, 기본적 욕구의 충족 또는 사회적 재생산을 위한 새로운 제도의 출현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사회보험은 사회적 위험, 즉 산업재해나 노령으로 인한 정년퇴직, 각종 질병, 실업 등 봉건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회보험은 그 주된 대상자가 노동자인 점, 재정을 자본가, 노동자, 국가 등 삼자가 부담한다는 점, 강제성을 띤다는 점, 대상범주가 넓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형태의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사회보장제도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성격의 사회보험을 처음 도입한 것은 1880년대 독일이며, 스웨덴은 1901년에, 영국은 1911년에 도입하였다. 사회보험 시대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보장제도가 시작된 시기라 할 수 있다.
복지국가 단계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과 함께 시민계급의 힘이 강해졌고, 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국가가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에서 처음 등장하여 점차 서유럽 전체로 확산된 복지국가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입각하여 시장의 불평등과 불안정성에 대항하여 사회적 연대와 소득과 부의 평등, 사회적 위험에 대한 공동체의 보장을 추구한다. 복지국가가 성립된 이후에도 사회보험이 복지국가의 핵심제도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보험과 복지국가는 중첩된다고 볼 수도 있으나, 복지국가 시대에는 사회보험의 대상이 사무직 종사자와 자영인 계층으로 확대된다.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제도의 대상자를 전 국민으로 확대한 것이다. 또한 소득보장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주택, 교육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이 다양화되었으며,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재정이 투입되었다. 복지를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면서 욕구의 충족을 중시하게 된 것이다.
이상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전체적인 역사를 간단히 조망해 보았다. 사회보장제도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빈민법 단계에서 출발하여 현대적인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이라할 수 있는 사회보험 단계를 거쳐 보다 폭넓은 대상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특징으로 하는 복지국가 단계에 이르러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강세에 따라 사회보장제도에 있어서도 '제3의 길'이라는 노선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으나, 여기서는 논의에서 제외하였다. 여기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깊이 파고들기보다는 일반적인 이해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독일을 중심으로 국가별 발전과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독일에서는 비스마르크 시대인 1883년에 첫 사회보장제도인 의료보험 관련 법률을 제정하여, 1920년대부터 1950년대에는 의료보험제도를 민간협력 체제로 추진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경제발전과 사회변화에 따라 의료보험제도를 확충하게 되며, 이로 인해 비용이 현저히 증대하면서 국민의 보험료와 세금의 부담이 더불어 증대하게 되어 재정상의 문제가 점차 두드러지게 되었다. 의료보험의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77년에 의료보험 비용 억제법이 제정되어 1978년부터 각종 의료비를 위한 제반 조치가 취해진다.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을 계기로 1991년 1월 이후에는 의료보험 체제가 독일의 전 지역으로 확대 적용되기에 이른다. 1992년 6월에는 의료구조법(Gesundheitsstrukturgesetz)이 제안되고 몇 차례 수정을 거쳐 같은 해 12월 18일에 연방의회에서 가결되어 1993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독일에서는 1884년에 세계에서 최초로 노동재해보상보험법을 제정한다. 그 당시에는 공장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이후에 운수업과 농림업 등의 분야로 확대된다. 1911년에는 질병보험법과 노령보험법이라는 보험법과 더불어 제국보험법으로 통일된다. 그 후 수 차례의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특히 1960년에 가장 큰 개정이 이루어진다. 현행법은 1963년에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밖에 1889년에는 연금보험의 법률적인 토대가 이루어져서, 지출규모가 가장 큰 보험으로 발전한다. 1927년에는 실업보험이 도입되었으며, 완전고용의 보장, 직업훈련 및 재훈련을 통한 최적의 고용기회 보장, 실업 및 조업단축으로 인한 사회적 지위의 저하 및 경제적 악화를 방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95년에는 간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간병보험이 도입되어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5대 축을 이루고 있다.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과정은 자선시대, 집합주의 시대, 보편주의 시대, 선별주의 시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자선시대로 불리는 1907년까지 영국에서는 자선(慈善)이 상류 및 중류계급의 사회적 필수품이었다. 집합주의 시대라 불리는 1908년부터 1947년 사이에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변화를 맞게 되면서 1908년에 노령연금법이 도입되고, 사회보험 원칙이 받아들여지면서 국민보험법(The National Insurance Act)이 1911년에 통과된다. 보편주의시대는 1948년부터 1958년 사이를 일컬으며, 이 시기에는 사회보장의 일체 급부를 모든 국민에게 동액 수준으로 제공하려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1959년부터 시작되는 선별주의 시대에는 노령연금에 관한 국민보험법이 1959년에 통과됨으로써 '고소득자-고부담 : 저소득자-저부담'의 새로운 체계를 병행하여 실시하기에 이른다. 1973년에는 이러한 부분적인 변화의 시도에 의거한 사회보장법(The Social Security Act)이 통과된다. 1974년에는 연금개혁(Better Pensions) 백서가 발표되고, 이에 기초한 사회보험연금법(The Social Security Pensions Act)이 1975년에 통과되어 1978년부터 실시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스웨덴이 활발한 사회복지를 실시하며 이른바 생계의 곤란이나 질병에 대한 보호를 법률로서 규정하게 된 것은 중세에 있어서 노령이나 질병에 걸린 양친에 대한 보호를 자식의 의무로 규정한 법률이 지방에 만들어지면서부터이다. 1891년에는 자발적 의료기금에 대한 국가보조금제도의 채택을 시작으로 1913년에는 보편적 강제노령보험과 폐질보험이 도입되었다. 국가적 차원의 강제적 보험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16년의 산재보험의 경우가 유일한 것이었지만 그것의 사회경제적 비중은 미미하였다. 1930년대에 사회보장제도가 성립되었으나, 본격적 출범은 2차대전 이후의 일이다. 1950년대 초에 도입된 임금연계의료보험제 등과 1960년에 제정된 국민보충연금계획안(ATP), 그밖에 고용, 교육, 주택 정책에서의 주요 개혁들이 스웨덴 복지체계의 중심 내용을 형성한다. 1962년에는 종래의 건강보험과 연금보험을 하나의 법률로 통합하는 개정이 이루어져, 이 두 보험을 통합한 법률을 공적보험법이라 부르게 되었다. 보편적인 고수준의 급부와 고품질의 서비스를 지침으로 한 스웨덴 복지체계의 골격은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스웨덴은 광범위한 사회복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어 오늘날 복지국가의 대표적인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이상에서 사회보장제도의 국가별 발전과정을 비교 고찰해 보았다. 독일의 경우 비교적 이른 시기에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법률을 제정하였으며, 계속적인 발전단계를 거쳐 오늘날에는 5대 사회보험을 구축하고 있다. 영국과 스웨덴의 경우에는 본격적인 사회보장제도의 실시가 독일에 비해 늦은 편이라 할 수 있으며, 계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사회보장제도는 이를 둘러싼 제반 여건의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에 따라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사회보장제도는 사회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III. 각국 사회보장제도의 특징

III.1. 독일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역사적 근원은 독일이라 할 수 있다.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장제도의 규범에 따른 유형으로 분류에 따라 서구대륙형 모델을 대표한다. 사회보장제도의 이념에 따른 유형으로 분류하자면 독일은 사회적 성과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고용 및 사회적 지위와 연결시키는 이른바 보수주의 유형을 대표한다. 독일의 사회보장은 사회정책(Sozialpolitik)의 일환으로 간주되며 여러 제도로서 성립되어 있다. 오늘날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어떤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구상에 따라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며, 각 제도를 일관하는 통일적인 사상을 찾기는 어렵다.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그 보장의 방식에서 볼 때 사회보험, 특수제도, 공적보호 및 공적서비스 등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그 중점은 사회보험에 있다.
독일의 연금보험은 이미 1889년에 법률적인 토대가 이루어졌으며, 지출규모가 가장 큰 보험으로서 전체 사회보장제도 비용 중 약 30%를 차지한다. 이 보험은 직장에서 퇴직하고 나서 노후에 어려움을 겪지 않고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기능을 한다. 연금의 재정은 기본적으로 보험료에 의존하며, 고용주와 근로자는 정해진 보험료율(保險料率)에 따라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한다. 보험료율은 1999년 4월 1일 기준으로 총수입의 19.5%이다.
독일 의료보험 재원의 대부분은 피보험자 및 고용주와 자영자의 보험료와 연방노동부의 편입 보험료 및 연방보조금이며, 국고보조금은 약 3% 정도이다. 독일은 역사상 최초로 1884년에 노동재해보상보험법을 제정하였다. 노동재해보험의 재원은 대부분 보험료에 의해 부담되며, 전액을 고용주가 부담한다. 독일의 실업보험은 1927년 직업소개와 실업에 관한 법(Gesetz  ber Arbeitsvermittlung und Arbeitslosenversicherung)에 의하여 도입되었으며, 현재는 1969년의 고용촉진법(Arbeitsf rderungsgesetz)에 의해 운용되고 있다. 재원조달은 임금지불액의 6.5%를 근로자와 고용주가 절반씩 부담한다. 1995년에는 간병보험이 도입되어 사회보장제도의 기반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재정은 근로자와 고용주가 절반씩 부담하며, 보험료율은 1.7%이다.

III.2. 영국

영국에서는 광의의 사회보장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회서비스(Social Service)'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소득보장으로서의 협의의 사회보장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에서 공적연금제도의 중심은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퇴직연금이며, 이는 국민보험의 성격을 띤다. 사회보험제도로서의 국민보험의 재원은 피보험자 본인과 피보험자를 고용하는 고용주로부터 갹출되는 보험료와 국고부담으로 충당된다. 보험료는 피보험자의 자격, 즉 취업의 형태와 소득의 수준에 따라 4종으로 구분된다.
영국의 사회서비스에는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도 포함된다. 보험료를 조건으로 급여를 받는 국민보험과는 달리, 국민보건서비스는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라도 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국민보건서비스 제도는 전체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질병의 예방과 치료 및 재활을 비롯하여 정신적·육체적 건강의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포괄적인 제도이다. 이 제도의 실천목표는 주로 공공자금에 의한 재원조달, 서비스의 배치에 관한 합리적 통제 그리고 경제적·기술적 조직화와 계획성에 입각한 구조의 조직화란 의미로서의 합리화의 지향에 있다.
영국에서 노동재해에 대한 고용주의 책임이 확립되어 그 결과 노동자에게 보상청구권이 인정된 것은 1880년의 고용주 책임법이었으나, 이 법에는 과실책임주의가 남아있었다. 노동재해에 무과실책임이 도입된 것은 1897년의 노동자보상법이 그 최초였으며, 국민보험법에 편입되어 고용주의 개별적인 책임에 따른 노동재해 보상제도로부터 강제적인 사회보장제도로 전환하였다. 그 후 1965년, 1975년, 1986년에 법률이 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적용범위는 전체 피고용자이며 자영업자는 제외된다. 재원에 있어 피고용자는 소득의 5-9%를 부담하고 고용주는 피고용자 임금의 5-10.45%를 부담하며, 정부는 비용의 14%정도를 부담한다.
실업보험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은 영국이며, 1911년의 국민보험으로 이것을 강제화하였다. 영국의 실험보험제도의 유형은 강제보험제도이다. 영국의 실업보험의 특징으로서는 국민보험에 가입한 피고용자가 실업을 당한 경우 최고 1년간에 걸쳐 국민보험으로부터 실업급여를 지불한다. 재원조달을 위하여 노사가 함께 주급에 따라 임금의 5%, 7%, 9%를 부담하며, 정부는 총합보험료수입의 14.5%를 부담한다.

III.3. 스웨덴

스웨덴의 사회보험은 20세기초에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계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폭넓게 발전하였다. 모든 스웨덴 국민은 하나의 통합시스템 안에서 직업에 관계없이 개별적으로 보장받는다. 많은 경우에는 개인의 소득능력의 유무와도 무관하다. 그래서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를 보편주의적 사회보장제도라 부르기도 한다. 스웨덴의 사회복지 활동은 공적보험법에 입각한 사회보험과 공적서비스를 그 중심으로 한다. 스웨덴에서 사회보험의 집행자는 보험금고이다. 스웨덴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16세 때부터 보험금고에 신고된다.
스웨덴의 연금보험을 무갹출연금, 혹은 보편주의적 조세방식연금이라고도 한다. 이 연금은 1913년에 실시되었으며, 1946년에는 자산조사를 폐지하고 부유층으로까지 그 대상을 확대함으로써 보편주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도시 노동자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그들의 입장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피고용자만을 대상으로 하여 급여를 소득에 연계시킨 소득비례연금이 1958년에 실시되었다. 스웨덴의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재정을 정부와 고용주만이 부담한다. 피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득비례연금에서도 피고용자의 부담은 없다. 직업연금의 보험료도 고용주만이 부담한다.
스웨덴의 의료보장의 근간은 국민건강보험제도로서 1955년부터 전 국민을 일률적으로 가입시키고 있다. 재원은 고용주의 갹출 및 정부의 보조금으로 조달되며, 피고용자에게서는 갹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보건의료 자원인 병·의원과 의사가 사회화되어 있다. 스웨덴의 노동 재해보험법은 1976년에 제정되었으며, 노동재해보험의 적용대상은 스웨덴 거주의 모든 피고용자와 자영업자이다. 재원은 고용주가 전액을 부담하므로 피고용자와 정부의 부담은 없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은 갹출제이며, 이를 보조하는 것으로서 1974년부터 '노동시장현금원조(KAS)'가 도입되어 있다.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는 자본과 노동자 사이의 역사적 대 타협에 의한 협정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협정의 주요내용은 생산관련 결정은 자본가계급에게 일임하되 정책결정 환경은 국가와 노조가 강력하게 통제하는 체제를 만든다는 것이다. 생산환경에 대한 통제로서 단체협상을 통한 실질임금의 보장과 완전고용 및 소득재분배를 지향하는 사회보장제도가 수용된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수요와 공급을 보다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성장·고용·복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모델로서 스웨덴을 영국식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넘어선, '태내에서 천국까지'의 수준 높고 관대한 복지국가로 만들었다.
이상에서 독일을 중심으로 영국과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해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는 세 나라의 각 사회보험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사회보험의 재원조달 방식면에서 독일은 주로 근로자 자신과 고용주의 보험료에 외존하는 반면에, 영국은 부분적으로 보험료에 의해 재원이 마련되고 스웨덴은 대체로 국가에 의해 지원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여기서는 위에서 언급한 세 나라의 사회보장제도의 특징을 건강보험과 실업보험을 중심으로 비교하여 고찰하기로 한다.

III.4. 비교

독일은 세계에서 최초로 사회보험방식으로 국민의 의료보장을 실시한 국가이다. 독일의 사회보험제도는 지난 세기 사회경제체제의 변화에 따른 사회적 불안과 긴장을 완화할 목적으로 근로자의 생활보장과 생계보장을 위하여 실시되었다. 독일 의료보험은 연대와 자치를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 국민의 약 90%는 공적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고, 나머지 약 10%는 민간의료보험 가입자와 특별제도에 가입된 공무원으로 전국민이 어떤 종류이든 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의료보장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의료보험제도는 법령에 의해 지역별, 직역(職域)별로 조직된 자치법인체인 768개 의료금고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의 특징은 사회보험에 의한 의료보장과는 달리 의료기관이나 의료종사자 등 의료를 제공하는 측의 사회화를 전제로 하여 의료를 모든 국민에게 공적서비스로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보건서비스가 1948년에 발족했을 당시에는 모든 서비스가 무료로 공급되었던 것이 그 후 수차에 걸쳐 약제를 비롯한 비교적 소액의 의료비의 일부 부담제가 채택되고 있다. 국민보건서비스의 비용은 약 81%가 국고에서 조달되고 있다. 14%는 국민보험기금으로부터의 갹출금에서 조달되며, 환자의 일부부담은 4% 정도이다.
오늘날 스웨덴에서 의료보건에 대한 책임은 지역별로 분담되어 있어서 지방행정단위인 카운티(County)가 의료보건정책을 그 지역사정에 맞추어 결정한다. 스웨덴에는 25개의 카운티가 있는데, 지역별로 병원과 의과대학 및 의료기관을 관리하고 지역적 의료보건정책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전반적인 의료보험 정책에 협조하고 정책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재정적으로는 국세 및 지방세와 국가보험청으로부터의 보조금에 의하여 조달되고 있다. 재정적으로는 국고보조는 크지만 실제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은 주로 지방자치체로서 스웨덴에 있어서의 의료제도의 특색의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
의료보건 정책을 위한 비용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영국은 3.8%, 독일이 5% 정도이다. 스웨덴은 지방 행정구역에서 자치적으로 의료시설을 운영·관리하므로 중앙정부의 공공지출은 통계상 적어 보이나 전국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의료보건 정책을 위한 지출 총액이 국민 총생산의 6% 정도이다. 천 명당 환자 수는 스웨덴이 156명, 영국은 104명 정도이다. 독일에서는 진료횟수에 따라 의사들의 보수가 결정되고 스웨덴과 영국의 경우는 봉급제로서 진료회수에는 개의치 않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수와 각 의사가 진료하는 환자 수에 따라 보수가 결정된다.
강제보험방식의 유형에 속하는 독일의 고용촉진 실업보험제도의 특징으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실업의 사실에 대해 관대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실업급여의 주급을 위한 대기일수가 없으며, 급여 수급자에게 20일의 시간제 근무를 허용하고, 연장급여의 일종인 실업부조의 급여기간을 무제한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실업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고 볼 때, 사회가 실업자의 생계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용촉진제도의 비용이 전체 사회예산에서 점유하는 비율이 통일 후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다.
영국 실업보험의 의의는 소득원 상실로 인한 빈곤의 구제와 근로의욕의 유지에 있다. 영국 실업보험제도의 특징으로는 균일 갹출과 균일 급여라는 소득비례 급여가 영국경제의 장기적인 정체에 따른 사회보장부담의 가중으로 인하여 정액급여로 전환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잉여노동력의 정리로 노사관계의 악화방지와 산업재편성의 촉진을 위하여 잉여노동력급여가 지급된다는 점도 특징의 하나이다. 그리고 국민보험의 일부로서 실업보험이 운영되기 때문에 보험재정에 있어 자금을 공동 관리하는 데서 제도 운영의 묘를 찾을 수 있다.
스웨덴의 실업보험제도(Eak)는 무릇 노동조합의 공제조직을 모체로 하여 발전한 것이며, 노동조합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기금의 운영에는 조합원의 대표가 직접 참여한다. 스웨덴 실업급여제도는 실업보험의 유형에 있어 독일이나 영국과 같은 강제보험방식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모체로 하여 발전된 임의의 실업보험조합으로서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는 임의보험과 이를 보조하는 노동시장부조(扶助)제도의 이원적 제도로 되어 있다. 또한 스웨덴에서는 노동시장정책을 통하여 실업을 예방하는 정책에 무게를 두며, 현금 급여를 통해 실업자를 사후 구제하는 정책은 최종적인 수단으로 여긴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상에서 독일, 영국,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가 지니는 특징을 각각 살펴보고 상호 비교해 보았다. 이를 위해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을 이루는 사회보험 가운데서 비교적 차이를 많이 보이는 의료보험제도와 실업보험제도를 중심으로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영국 및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와 비교하여 고찰하여 보았다. 이어서 독일에서 사회보장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개혁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연금보험과 의료보험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연금보험을 중심으로 두 국가와의 비교를 시도하기로 한다.

IV. 개혁 동향

독일 정부는 '연금개혁 2000'을 통해 연금수혜자에게 매력적이고 믿을만한 연금정책을 꾀하고 있다. 그래서 2020년까지 연금보험료율을 20%까지 올리고 2030년까지는 가능한 한 22%로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시에 연금수준이 64%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연방정부의 연금구상에서 새로운 것은 사적인 노인부양을 추가로 구축한다는 것이다. 연방정부는 사적인 노인부양과 공적연금을 통해 전체연금수준을 70%로 보장하려고 한다.
연방정부는 노후보장을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 속에서 이루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래서 1999년 12월에 이미 '노후보장의 미래'에 대해 초당적으로 협의 중에 있다. 연방노동사회부는 연금개혁법 초안을 2000년 9월 26일에 내놓았다. 주요 골자는 보험료 수입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연금을 개혁해야한다는 것이며, 공적연금보험의 개혁과 노후부양을 위한 재정능력 구축의 요구도 여기에 포함되는 주요 내용이다.
독일은 70년대 전반까지 의료보험의 적용범위와 급여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왔다. 그 때문에 의료비는 년 20%를 넘는 폭발적인 증대를 가져왔다. 70년대 후반에는 정책을 전환하여 80년대 중반까지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지만, 의료비가 다시 증가하여 1989년 제1차 구조개혁이 실시되었다. 이 개혁은 독일 의료보험이 시작된 이후의 대 개혁이라고 받아들여졌지만, 효과는 단기적인 것에 그쳤다. 이어서 등장한 것이 제2차 구조개혁이었다.
1993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제2차 구조개혁법의 기본적인 이념은 보험자간의 재정조정을 통해 공평하게 부담하게 하는 것이며, 점차로 의료보험에 시장원리를 도입하여 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993년부터 1995년까지의 3년간은 의료비를 임금증가 범위 내로 억제하여 그 3년 동안 의료비의 총 예산제를 도입하며 의료보험의 장기적인 구조개혁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중장기적인 구조개혁의 핵심은 리스크 구조조정이라고 불리는 재정조정의 실시, 보험자 선택의 자유화와 진료보수계약에 있어서의 규제완화이다.
독일에서는 1989년 의료보장개혁법(GRG)과 1993년 의료보장구조법(GSG)에 이어서 1997년부터 '제3차 개혁'이 예정되어 그 동향이 주목되어 왔다. 1995년부터 1996년에 걸쳐서 연립여당과 야당에서 각각 개혁법안이 제출되었는데, 이와 함께 병원 부문의 개혁을 중심으로 한 그 밖의 개혁과 함께 의료의 질을 높이고 보험료율의 인상을 가능한 한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이 법안에서는 보험료율을 0.1% 인상하는 것에 따라 약제·입원·교통비에 있어서의 본인부담을 1마르크 인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법안에서는 보험료 부담의 인상에 따르는 일부부담의 인상이 과중하게 되지 않도록 부담한도액의 변경이 행하여지고 있다. 종래는 연수입이 보험의 강제 가입한도액 미만의 사람은 연수입의 2%, 한도액 이상의 사람은 4%로 되어 있었는데, 후자의 경우도 2%를 부담한도액으로 변경하였다. 만성병 때문에 1년 이상 걸쳐서 연수입의 2%까지 일부부담을 한 경우는 2년째부터 부담한도액이 1%로 인하되었다. 사회부조(社會扶助) 수급자(收給者) 및 저소득자는 부담을 면제하려는 조치가 강구되고 있다.
1996년 11월 12일에 연방의회에 제출된 제2차 의료보험 급여청구를 촉구함과 동시에 보험재정에 이바지하기 위해서 환자부담을 인상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1997년 7월 1일부터 정액(定額)부담에 관해서는 5마르크, 정율(定率)부담의 경우는 5%의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예컨대 약제는 현행의 4∼8마르크의 본인부담이 9∼13마르크로 인상되고, 입원 때의 본인부담은 1일 12마르크에서 17마르크로 인상되게 되었다. 피보험자 부담의 증가는 의료보험 개혁 때마다 되풀이 되어온 대책이고, 그 효과와 한계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에서 근대적 복지개념의 제도화는 1908년의 '노령연금법(Old Age Pension Act)과 1911년의 '국민보험법'(National Insurance Act)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 당시의 이념인 최소한의 보편적 급부라는 정신은 향후 영국 복지체계의 기본정신으로 작용한다. 이후 1942년 비버리지가 제출한 보고서에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두 방식은 기여식 강제사회보험과 공공부조 프로그램이다. 비버리지의 최소평등주의 원칙이 한계에 이르자 1959년에는 국민보험법을 개정, 소득연계 기여와 그에 따른 급부제를 도입하였다.
이어서 1974년에 새로운 사회보장법을 제정하여 국가소득 연계 연금제를 도입하면서부터 정률 원칙에 의한 기본연금은 완전히 폐지되었고 모든 보험은 소득연계의 원칙을 채택하였다. 1986년에 도입한 사회보장법은 사적 개인연금의 비중을 급격히 강화시켰으며, 1989년에 이르면 국가연금은 연금생활자 총소득의 반 정도만 책임지고 나머지 반은 개인저축과 개인연금으로 충당되었다. 1970년대 이후 영국 복지체계가 보인 가장 특기할만한 변화는 복지정책의 기반이 과거의 보편적 공여 원칙에서부터 점차 시장에서의 개별적 공여로 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국에서 1986년이래 시작된 사회보장개혁에서는 소득보장 프로그램의 축소 내지는 선별적 재조명을 통하여 사회보장비용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었다. 개혁이 필요하게 된 근본원인은 1970년대 이후 지속적 경기후퇴와 높은 실업률로 인하여 사회보장기여금은 감소한 반면 실업급여 등의 지출은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인구의 노령화로 인하여 사회보장 기여자 대비 수혜자 비율이 늘어나는데 기인한다. 정부는 연금개혁을 통하여, 연금수급연령을 상향조정하고, 급여는 축소하며, 일반조세로 충당되는 자산조사급여의 의존도를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적연금제도를 중심으로 한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에서는 사회서비스 비용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크게 앞지르게 됨으로써 정부와 고용주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가의 역할을 가능한 한 축소하면서 개인에게 보다 큰 책임과 자립을 떠맡김으로써 이와 같은 부담이 경감될 수 있도록 그 정책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사회보장의 확충을 통한 제도개선에 수반되는 재원의 부담은 앞으로도 증가될 것으로 보아 사회보장의 확충과 재원조달의 문제는 스웨덴에 있어서 장차 중요한 사회보장제도의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현재 스웨덴의 사회보험은 심도 있는 개혁을 꾀하고 있다. 의회에서는 새로운 연금시스템에 대한 기본법을 체결하였다. 동시에 이른바 연금위원회에서는 연금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를 계획하고 있다. 스웨덴의 새로운 공적연금 시스템은 현재의 기초연금과 보조연금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개혁된 연금은 모두에게 기본적인 재정적 보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스웨덴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는 연금시스템을 갖게 될 것이다.
스웨덴의 현재 연금시스템은 한 세대 전에 기본연금이 설치되었고 부가연금은 1960년에 도입되었다. 80년대 중반에는 이 시스템을 개정하기 위해 연금위원회가 설립되었다. 1990년에 이 위원회는 결과와 제안을 내놓았으며,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위원들이 1991년에 회람(回覽)하였다. 대부분 개정이 제안된 것 보다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래서 연금 연구진이 출범하였으며, 일곱 개의 정당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1994년 스웨덴 의회에 개혁노후연금시스템을 위한 법률안이 상정되었고, 의회는 이를 미래 개혁의 기초로 삼기로 결정했다.
의회의 결정에 이어서 연금개혁 추진 연구진이 만들어졌는데, 이는 개혁을 지지하는 다섯 정당의 대표들로 구성되었다. 연금개혁추진 연구진의 주요임무는 세부법률조항을 만들어서 완전한 법률제정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포괄적인 임무이며, 1994년부터 법률조항의 초안이 개혁의 다섯 영역에서 추진되어 1998년 7월 8일에 의회에서 의결되었다. 스웨덴의 연금개혁에서는 연금시스템이 전체 국민들에게 노후에 안정적인 수입수준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 개혁에서는 장기간의 질병과 직업불능의 상태에 있는 경우에도 보장이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의 연금시스템에서처럼 이 개혁된 연금시스템에도 모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개혁이 필요성한 이유는 몇 가지 원인으로 상대적인 연금지출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금자의 수는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급속도로 많아지고 있다. 2000년에 경제활동인구 100명에 연금자는 30명이다. 25년 후에는 41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높은 실업상태에서 연금시스템을 위한 기여금은 줄어든다. 지난해에 연금액수는 총수입에 비해 24.5%에서 30%로 월등하게 상승했다.
낮은 경제성장 속에서 증가하는 연금지출비용도 연금개혁의 중요한 요인이다. 현재의 연금시스템은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에 연금자수는 증가한 것에 비해 성장률은 매우 낮았기 때문에 시스템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40년대에 만들어진 시스템을 2010년에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따라서 개혁을 통해 미래의 연금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국가들이 과도한 복지지출로 인하여 위기를 맞아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운영에 기본 틀을 제공하는 상황적 변수는 무엇보다도 국가 경제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가 책임의 수단이 되는 재정 확보 가능성의 상당 부분이 경제상태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제 상태는 사회보장 혜택의 수준에 대한 국민 기대의 상승 정도를 결정해 주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계속적인 개혁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사회보장제도를 실패한 경우라고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유럽에서는 정책입안자나 국민들의 복지 마인드가 공고하다. 또한 복지국가를 탄생시킨 국민적 연대감은 지금도 굳게 남아 있는데, 영국 성인의 3분의 1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그 보기이다. 유럽에서는 가진 계층이 높은 세금 부담을 감수해서라도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복지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반세기 동안 이어져 왔으며, 유럽인들은 이미 사회보장급여가 주는 비교적 안전한 사회 속에서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직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사회보장제도가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V. 맺음말

이 논문에서는, 독일어권의 문화 전반에 대한 연구와 교육으로의 확대라는 한국 독어독문학계의 추세를 반영하여, 독일학 관련 교과목의 개설을 통한 경험을 토대로 한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고찰을 시도하였다.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과정, 주요특징, 개혁동향을 살펴보았으며, 이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국 및 스웨덴의 경우와 비교하여 논의하였다. 이를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겠다.
 사회보장제도의 발전과정은 빈민법 단계, 사회보험 단계, 복지국가 단계 등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현대적인 의미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보험 단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독일의 사회보장제도가 시기적으로 다른 국가에 앞선다고 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1883년의 의료보험 관련 법률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1884년에는 재해보상보험법이 제정되었다. 1889년에는 연금보험의 법률적인 토대가 이루어졌으며, 1927년에는 실업보험이 도입되다. 1995년에는 간병보험(독일어는 Pflegeversicherung이며, 우리말로는 이외에 노령보험, 수발보험, 간호보험 등으로 불리기도 함)까지 추가되어 사회보장제도의 5대 축을 이루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자선시대로부터 출발하여 1908년에는 노령연금법이, 1911년에는 국민보험법이 제정된다. 1973년에는 사회보장법이 통과되고, 1974년의 연금개혁 백서를 기초로 사회보험연금법이 1978년부터 실시되어 오늘에 이른다. 스웨덴에서는 1913년의 노령보험과 1916년의 산재보험이 국가 차원에서 도입되고 1930년대에 사회보장제도가 성립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의 일이다.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사회적 성과에 대한 다양한 요구를 고용 및 사회적 지위와 연결시키는 보수주의 유형을 취하며, 그 중심은 사회보험에 있다. 사회보험 가운데 재해보험을 제외하고는 주요 재원이 근로자와 고용주가 절반씩 부담하는 보험료에 의해 충당된다. 이에 비해 영국의 경우에는 이른바 사회서비스라는 개념에서 출발하며, 사회보험에서 피보험자는 부분적으로만 재정을 부담한다. 스웨덴의 경우에는 보편주의적 사회보장제도라 불리며, 재정을 정부와 고용자만이 부담하고 피보험자는 직업에 관계없이 보장받는다. 의료보험에 있어서 독일은 연대와 자치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점, 영국은 사회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 스웨덴은 지역별로 분담한다는 점 등이 특징적이다. 실업보험과 관련하여 독일이 실업의 사실에 대해 관대하다는 점, 영국이 빈곤의 구제와 근로의욕의 유지에 의의를 둔다는 점, 스웨덴이 실업을 예방하는 정책에 무게를 둔다는 점 등을 그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독일에서는 감소하는 보험료 수입능력 때문에 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2000년 9월 26일에 '연금개혁 2000'이라는 연금개혁법 초안을 제시하여 초당적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연방정부의 연금개혁 구상에서 새로운 것은 사적인 노인부양을 추가로 구축하는 것이며, 노후보장을 광범위한 사회적 연대 속에서 이루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독일의 의료보험에서도 계속적인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보험재정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환자부담을 인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인구의 노령화 및 연금수혜자의 비율 증가 때문에 1986년 이래로 사회보장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는 국가의 역할을 가능한 한 축소하면서 개인에게 책임과 자립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사회보험의 심도 있는 개혁을 꾀하고 있으며, 1994년에는 의회에서 개혁노후연금시스템을 위한 법률안이 상정되기에 이른다. 개혁의 필요성으로 경제활동 인구 대비 연금자 수의 증가, 낮은 경제성장 속에서 증가하는 연금지출 비용을 들고 있으며, 전체 국민들에게 노후에 안정적인 수입수준을 보장하기 위해 개혁을 통한 미래의 연금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영국 및 스웨덴의 경우와 달리 비교적 이른 시기에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사회보장제도의 중심은 사회보험에 있으며, 다른 두 나라에서와는 달리 사회보험의 재정을 근로자와 고용주가 대부분 부담하게 되어 있다. 의료보험과 실업보험을 예로 살펴본 것처럼,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영국이나 스웨덴의 이념이나 운영방식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공통점으로는 인구의 노령화와 연금수혜자의 비율 증가에 따른 개혁의 불가피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에서 독일학의 한 하위분야로 볼 수 있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를 비교 고찰한 내용은 독일을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생산적인 지역학 연구를 해야할 상황에서 막연한 지역 이해보다는 특정 분야의 깊은 이해를 통해 그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논의된 내용은 한국 독어독문학에서 독일학 관련 교과목을 다루는 데 있어서 수업자료의 일부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분야의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보다 실질적인 독일학 교육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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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Eine vergleichende Studie  ber die deutsche Soziale Sicherung
-Im Vergleich zu England und Schweden-

Min, Chun-Gi(Chonnam Nat. Uni.)

Gegenstand dieser Arbeit ist die deutsche Soziale Sicherung und ihre Darstellung im Unterricht. Im Mittelpunkt stehen Entwicklung, Merkmale und aktuelle Reformen der deutschen Sozialen Sicherung. Um die Besonderheiten der deutschen L sungen zu unterstreichen, wird auch ein Vergleich mit dem britischen und dem schwedischen System der Sozialen Sicherung durchgef hrt.
Soziale Sicherung im modernen Sinne ist  blicherweise auf das System der Sozialversicherung gegr ndet. Dies ist zuerst in Deutschland zu beobachten, denn in Deutschland wurde schon im Jahre 1883 das Gesetz  ber die Krankenversicherung eingef hrt. In der Folge erschienen 1884 das Gesetz  ber die Unfallversicherung, 1889 das Renten-, 1927 das Arbeitslosen- und 1995 das Pflegeversicherungsgesetz. Im Gegensatz dazu wurden in Gro britannien und Schweden verh ltnism ssig sp t gesetzliche Grundlagen der Sozialversicherung geschaffen.
Die Finanzierung der Sozialversicherung geschieht in Deutschland durch parit tische Beitr ge von Arbeitnehmern und Arbeitgebern, mit Ausnahme der Unfallversicherung. In Gro britannien leisten die Arbeitnehmer nur teilweise Beitr ge zur Sozialversicherung, und in Schweden werden die Versicherungsbeitr ge von Regierung und Arbeitnehmern aufgebracht. Die Krankenversicherung in Deutschland ist institutionell nach den Prinzipien von Solidarit t und Autonomie aufgebaut. In Gro britannien gilt Sozialisierung, w hrend Schweden die Versicherung regional organisiert.
Am 26. 9. 2000 wurde in Deutschland wegen der Gefahr weiter ansteigender Pflichtbeitr ge die 'Rentenreform 2000' durchgef hrt. Kennzeichnend f r das neue Rentenkonzept ist der Aufbau einer zus tzlichen privaten Altersrente. Auch in der Krankenversicherung wird Reformbedarf angenommen, wobei die Kranken zus tzliche Leistungen erbringen sollen, um die Finanzierung der Krankenversicherung zu sichern. Gro britannien reagiert seit 1986 mit Reformen auf steigendes Durchschnittsalter und steigende Rentnerzahlen. Dabei will die Regierung die Rolle des Staats verkleinern und den B rgern die Verantwortung f r ihre eigene Vorsorge  berlassen. Auch Schweden bereitet Reformen am System der Altersrenten vor, um allen B rgern stabile Rentenertr ge anbieten k nnen.
Diese Arbeit soll zum besseren Verst ndnis der deutschen Kultur und Gesellschaft beitragen. Auch bei produktiven area studies kann diese Arbeit hilfreich sein sowie als Unterrichtsmaterial im Landeskundunterricht. Deutsche Landeskunde ist stets erforderlich, um einen aktuellen Unterricht bieten zu k nn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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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어 : 독일학 Deutsche Landeskunde, 사회보장 Soziale Sicherung, 사회보험Soziale Versicherung
필자 E-Mail : chgmin@chonnam.ac.kr
투고일 : 2002.3.30. / 심사일 : 2002.4.23. / 심사완료일 : 2002.5.22.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 | 게시판 2004/12/12 15:43
http://blog.naver.com/dkddyd/80008466461
출처 블로그 > 푸른나무
원본 http://blog.naver.com/celly2002/100006234821

      III. 사회보장의 특징과 문제점

     1. 사회보장과의 관련문제들
    (1) 임금과 사회보장
 임금과 사회보장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최저임금과
사회보장의 급여수준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베버리지는
사회보장정착의 전제로 아동수당, 공영의료보장 그리고 대량 실업의 방지를
주장했으나(주 67: Beveridge, op. cit., p. 8.) 그 후 영국은 최저임금제의
실시도 사회보장의 중요한 전제로 추가한 것이다. 사회보험의 실시에서 고용의
일정 수준의 유지 못지않게 임금수준이 중요한 것은 갹출료의 부담이 어렵지
않아야 하며, 또한 최종임금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급여의 적절한 수준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임금은 사회보장실현에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국민복지 연금제도가 지금까지 실시 안되고 있는 큰 원인도 바로
보험료 지출이 부담스러울 정도의 저임금 근로자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제가 실시되어야 하고 최저임금제 실시를 위해서는
최저생활비계획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는 1973년과 1978년의 두번에 걸쳐
반물량방식에 의한 최저생활비 계측작업을 한 바 있다. (주 68: 안창수,
국민생활실태조사보고서(보사부, 1974). 최저생활비(Minimum Cost of Living)는
그 계측목적에 따라 최저생활비, 노동력재생산비, 그리고 생활수준지표를 위한
최저생활비의 세 가지가 있는데, Engel 계수를 원용한 생활수준지표 목적의
최저생활비계측이 적절하다.
 계측대상자로 영국은 미숙련노동자, 독일은 저임금노동자, 일본은 6대 도시의
일용노무자, 그리고 1973년 한국은 일용노무자, 영세상인 및 5단보 미만의
농가를 정했다.
 계측방법으로 이론생활비방식과 실태생활비방식(근로자의 실제 생활비를 조사
계측하는 것으로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이 있고, 전자는 다시 전물량방식(Market
Basket방식; 생필품을 품목별로 수량화하고 이를 다시 금액으로 환산하여
최저생계비를 추계하는 계측)과 반물량방식(음식물량방식 또는 Engel방식)의 두
가지가 있는데 우리 나라는 Engel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는 최저음식비는
전물량방식으로 추정하고 그 이외의 기본수요(피복, 주거, 광열 및 잡비)는
Engel 계수를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추계하는 방식이다.) @p503
 근로자에 있어서 노동의 재생산은 재직중의 생활유지뿐만 아니라 퇴직 후
노동불능시의 생활유지도 가능케 해야 한다. 그러나 퇴직 후의 생활보장문제를
재직중의 임금에 포함시킬 수가 없으므로 여러 가지 사회적 임금의 형태가
성립된다.
   1) 노동조합의 상호보험
 근로자가 공동부담으로 기금을 설립하여 우연의 사고를 당한 자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것으로 질병급여금, 재해수당, 양로부조금, 장제비 및 실업수당 등이
있고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발달했다.
   2) fringe benefit(부가급여, 보완임금)
 노동조합이 발달한 구미에서 1930년대부터 노사간의 단체교섭에 의해 결정되는
후생복리시책으로 그 주요 내용은 생명보험, 의료급여, 재해보험, 퇴직,
실업연금, 통근, 교육 등 각종 수당 등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유럽과는 달리
사회보장제도보다는 프린지 베네핏제도가 발달했는데 그 이유는 임금수준이
비교적 높고 노사관계가 원만하기 때문이다.
   3) 사회보험급여
 국가의 강제보험제도에 의한 재해, 질병, 폐질 및 노령 등 각종 보험급여는
강력한 노동운동의 결과로 얻어진 것으로 오늘날 가장 대표적 사회임금의 한
형태이다.
    (2) 기업(노동)복지
 사용자가 부담하는 자혜적이고 자의적인 종업원 복지증진책은 전술한 사회적
임금의 최초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기업복지는 근로자의 경제,
사회생활의 전반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 근로조건을 제외한 근로자의 일상생활의 @p504 향상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나 시설을 의미하는 협의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업복지의 실시 주체는 정부, 지방행정기관(관계공사 포함), 기업 및
노동단체인데 대체로 기업이 행하는 사업이 중심이 된다. 정부가 행하는 것으로
산재보험과 재산형성의 운영이 있고, 노동복지공사가 운영하는 산재종합병원과
산업재활원이 있으며 이 밖에 근로복지회관의 운영 등이 있다.
 기업이 행하는 후생복지는 법정과 법정 외의 두 가지가 있는데 법정사업은
사용자가 전액 부담하는 산재보험과 퇴직금제가 있고 의료보험은 사용자
부담분만 지급한다. 법정외 사업으로는 식사비용, 체육, 오락비, 의료보건비,
근로자자녀 학비보조비, 출퇴근 교통비, 각종 경조비, 그리고 주택보조비 지급
등이 있다.
 여러 가지 생활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 제도에만 의존하는 것은
불안하다는 것이 사회보장 연구자들의 공통된 이론이다. 그래서 흔히들 삼층
또는 삼단보장론(전술)을 들고 나온다. 이는 개인저축이나 사보험제를 이용하는
자기보장, 퇴직금이나 기업연금 및 기업의 후생복지를 받는 직장보장 그리고
공적연금보험이나 공적부조의 혜택을 받는 사회보장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우리 나라는 공적연금의 조속한 실시는 물론이려니와 우리의 문화, 사회적인
전통배경과 노동현실의 특수성(노동운동의 역사가 짧고, 노동의식이 약하며,
노사간의 세력균형이 성립되지 않음)을 감안할 때 기업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방안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3) 사회보장과 재분배
 소득재분배정책은 누진세제를 통한 조세정책과 사회보장을 통한 재분배의 두
가지가 있다. 사회보장을 통한 재분배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한
가지는 계급적 생산요소간의 재분배로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에로 소득이전이
이루어지는(예, 공적부조) 수직적 재분배(vertical redistribution)이다. @p505
 다른 한 가지는 수평적 재분배(horizontal redistribution)인데, 이는 동일
계층 안에서 재직시의 소득(생산활동자)과 퇴직시의 소득(노령자)간, 건강한
근로자와 재해입은 근로자간, 그리고 부양아동이 없는 가족과 있는 가족간의
소득이전을 의미하는데 연금보험이나 의료보험은 이런 재분배의 효과가 있고
보험의 원리와 연대구축의 원리(principle of solidarity)의 효과가 잘 나타나는
제도이다. (주 69: 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ntroduction to
Social !Security (Geneva: ILO, 1984), p. 128)
 이 두 가지 재분배는 양립하여 적용될 수 있고, 특히 사회발전 과정에서 분배의
평등화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수직적 재분배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조세의 누진도를 높일수록 수직적 공평을 더 실현할 수 있다.
 평등화의 해석과 더불어 보편원칙(universality) 대 선별원칙(selectivity)의
문제가 있다. 사회보장은 전국민에게 무차별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보편원칙이고, 니즈(needs)는 개인적, 사회적 처지에 따라 급여 또는 서비스가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 선별원칙이다. 그런데 형식적인 평등은 니즈의 차를
경시한 나머지 필요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지급되거나 반대로 니즈 충족에서
차별적으로 취급되는 오평등적인 보편원칙이 적용되어서는 안된다.
 이 때문에 오늘날 평등화의 의의는 신중히 이해되어야 한다. '자유평등'할 때는
생산확대에 따라 분배도 평등해지는 듯 했으나 곧 독점화로 불평등화하게 되어
개인적 니즈 충족이 어렵고 자기책임 아닌 사회적 생활사고가 증가되어
국가개입에 의한 이해조정과 복지증진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래서 많은
나라들은 자유와 영리의 혼합정책을 쓰는데 역시 서구제국은 기회균등의 조건을
최대한 실현하는 분위기에서 민주화의 이름으로 자유주의 요소가 강하다.
 그런데 롤즈(John Rawls)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는
최소수혜자에게 최대의 혜택을 주고, 모든 직장이 기회균등의 이름으로 개방되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주 70: John Rawls, !!A Theory of !Justice (Cambridge:
Havard University Press, 1971), pp. 302~303.) @p506
 평등, 공정 및 적절성 등은 중요한 사회가치이나 이들 사회가치는 항상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정책의 수립 및 시행이 어려운 점은 바로 이
때문이다. (주 71: Neil Gilbert and Harry Specht, !!Dimensions of Social
Welfare !Policy(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74), p. 40.)
 한편 니즈 원칙(according to needs: 필요에 상응한 분배)은 자원의 희소성
원칙 때문에 완전히 실현될 수 없으나 사회보장에 해당되는 연금, 의료, 교육,
주택 등 공동적 소비영역만은 어느 정도로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사회보장제도의 특징과 문제점
    (1) 특징
 #1 사회보장에 대한 전문지식의 부족으로 제도의 내용이 미흡하다. 대체로
일본의 제도를 모방했는데, 그것도 일본 자체가 기본계획 없이 필요에 따라
제도를 수립함으로써 계층별, 직종별로 분립되어 있던 것을 우리는 한 수 높여
같은 분야의 여러 제도를 한 개의 법제에 담았기 때문에 제도의 내용이 복잡하게
된 것이다.
 의료보험의 경우 급여수준이 너무 높게 급여를 제한한다. 자기부담을 올린다는
등 개선이 아닌 개악의 수정이 급하게 된 것이다. 정상적인 제도발전의 모습은
제도의 운영과정에서 차츰 급여수준이 나아지고 자기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2 제도수립이 개별적, 분립적 그리고 미봉식으로 이루어져 관리운영이
다원화돼 있다. 이 때문에 한 가지 제도를 위한 관리 주체가 여러 기관이고
갹출료와 급여의 내용도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적용대상수 1백만도 안되는
공직연금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관리기관이 세 개(총무처, 국방부, 문교부)나
되고 급여내용도 각각이다. 의료보험의 경우 적용대상의 종류에 따라 네
가지(직장, 임의지역, 당연지역, 공, 교 및 직종)나 되고 역시 갹출료와 @p507
급여내용도 서로 다르게 되어 있다.
 #3 정책결정이 관주도적이어서 국민의 정책수요나 지지에 대한 투입기능이
약하다. 따라서 정책결정을 관이 완전 주도함으로써 전문가의 참여, 이익단체의
이익표면 부재 그리고 일반 국민의 참여 등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책결정과정에서의 관의 독주는 사회보장제도의 당위성이나 국민의 간절한
소망의 표출을 어렵게 만들고 정책공약이 늘 정치의 기류에 따라 그리고 행정의
편의주의에 따라 좌우되는 수가 많다. 국민복지연금의 실시에 대한 약속이 그
몇번이었던가를 생각해 보면 정책에 대한 비전이나 숭엄한 자세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2) 문제점
 #1 복지국가를 지탱하는 문화적 조건 즉 복지문화의 수준이 낮다. 로브슨은
복지국가는 거기에 상응하는 복지사회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복지사회가 되는
조건으로 다음 몇 가지를 들고 있다. (주 72: W.A.Robson, !!Welfare State and
Welfare !Society(London: George Allen & Unwin Ltd., 1976), p. 178, p. 44
and p. 175
 정치에 정치문화가 있고, 행정에 행정문화가 있듯이 복지사회, 복지정책에도
'복지문화'가 있다고 본다.
 가령 복지를 종전의 온정이나 시혜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권, 복지권으로
인정하는 문제, 급여수준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보험료갹출의 의무나
보험재정보호의 의무도 중시하는 태도, 그리고 '도와 줄 가치가 있는
자'(deserving poor)만 돕듯이 자조, 보족의 노력을 하는 자세 등은
경제성장이나 국민소득의 높고 낮음 못지 않게 한 나라의 복지정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의료보험의 경우 의료비의 수익자부담 내지 환자부담 강화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의 견지에서 찬성하는 주장도 높다. 영국인들은
공짜보다는 보험료 갹출을 더 떳떳하게 여긴다고 베버리지가 주장한 것은 바로
복지문화의 수준을 잘 설명하는 것으로 복지에 대한 국민의 의식, 태도 및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보장의 수혜자에게
'치욕의 낙인'(stigma of pauperism)을 찍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른 한편 서구의 복지국가 달성의 배경문화로 박애주의(philanthropism),
우애조직(friendly society), 그리고 노동조합의 발전과정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런 여러 태도와 역사적 경험들이 바로 복지문화라고 본다.)
 첫째는 누구나 복지국가에서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마땅히 보완할 만한 의무의
수행, 둘째는 성실한 근로태도(a more serious attitude to work), 세째는 사회
전체에 공동의식(a sense of fellowship)과 공공심(public spirit)의 @p508
존재, 네째는 복지정책의 수익자가 동시에 사회발전의 담당자가 되는 일 등이다.
이를 요약하면 복지국가의 시민은 개인의 만족을 성취함과 동시에 집단적 또는
공동사회의 복지에 공헌할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73: 복지문화에 대해서는, 손규, '복지사회의 조건', '사회보장론집'
(동국대 한국사회보장연구소, 1985), 제5집 참조.)
 그런데 이 복지문화는 복지정책의 모형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주요
복지정책의 모형을 소개하면 먼저 티트머스(R.M. Titmuss)는, a 보완적 복지
모형(residual welfare model of social policy: 자조원칙 유지), b
업적주의복지 모형(industrial achievement-performance model of social
policy: 생산성응보형), c 재분배형복지 모형(institutional redistributive
model of social policy: 제도적 재분배형)의 세 가지를 소개한 바 있다. (주
74: R.M.Titmuss, !Social !Policy(London: George Allen & Unwin, 1979), p. 30
and p. 31)
 또한 핀커(R. Pinker)는, a 자본주의(capitalism: 자유경쟁경제시장의 존중이
개인과 집단의 복지를 증진한다는 입장), b 사회주의(socialism: 자본주의
체제의 폐지에 의해서만 집단의 복지가 향상된다는 입장), c
집합주의(collectivism: 의회제 민주주의에 의해서만 복지가 증진된다는 입장)의
세 입장을 내세운 바 있다. (주 75: Robert Pinker, !!The Idea of
!Welfare(London: Heinemann, 1979), Ch.12.)
 티트머스는 치욕(shame)이나 낙인(stigma)을 찍는 일이 없이 가장 니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사회 서비스(급여)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복지문화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다. 한편 핀커의 세 입장의 정책원리는 각각
자조적 복지, 타조적 복지 그리고 상호부조적 복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때
어느 모형에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복지문화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사회가 빈궁을 구제하는 의무와 개인이 가능한 한 빈궁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의무와의 조정문제, 그리고 절약, 자조라는 도덕률의 선행문제 등은
복지문화의 큰 쟁점이 되는 것이다.
 #2 사회보장정책의 확충이 중요한 문제이다. 사회보장의 필요성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다. 국민소득수준별 실시국수를 보아도 이미 우리는 10년
전부터 전면 실시를 착수할 수도 있었고, 또한 여러 분야의 @p509 격차현상에서
오는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고 급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당위성면에서 보아도
진작 제도의 확충이 있었어야 했다.
 먼저 소득보장면에서 전국민에 대한 연금제도를 기업연금제와 병행하여
실시해야 하고 현재의 생활보호수준을 실질적 최저생활이 가능하도록 인상해야
한다. 그리고 고용보험제를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체부터 실시하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다음으로 의료보장책을 전국민에게 확대 적용해야 하는데 지역대상자들(주로
농어민, 영세상인 및 자영자 등) 중 일정 기준의 소득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공영제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 (주 76:
현재의 다원화된 의료보험제도를 통합하여 #1 의료보험제도와 #2
공영의료사업(현재의 의료보호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의료시설과 의료의 질을
높이는데, 이는 영국의 NHS의 수정모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으로 이원화하여
실시한다. 이렇게 되면 막대한 정부제정의 지출 없이도 전국민에게 의료보장의
혜택이 가도록 할 수 있다.)
 끝으로 사회복지 서비스는 종래의 사후적 시설중심 방법에서 탈피하여 가정과
지역공동체가 책임지고 예방하는 이른바 community care 이론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데, 이의 추진, 실천은 민간 중심으로 행해지되 정부나 지방자치기관은
지원,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가정에 잠재해 있는 경제적 여유와 높은
교육수준의 인적자원들을 어떻게 동원(mobilizing)하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3 분립된 제도와 다원화된 운영을 단일, 통합(unification)하여 같은 목적을
위한 상이한 제도 때문에 오는 격차의식과 관리, 운영의 비능률을 막아야 한다.
@p510

      IV. 사회보장의 전망
 체제안정과 사회갈등의 해소, 그리고 격차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을 위해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점진적 실시가 필요한데 다만 복지와 효율이 양립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 특히 남북간의 체제 대항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민주화와 균등한 생활수준 향상이 중요하며, 그 중에서도 사회적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는 사회복지는 사회질서와 체제존립의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만약
경제성장을 이유로 사회정책을 소홀히 하면 이는 무책임사회가 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복지정책의 일부 부작용을 해소하면서 이미 고차원화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물질적 복지의 최저한 보장을 목적으로 하는 National
Minimum형의 기초적 소득 보장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활의
쾌적성(amenity)보장형, 문화환경과 노동환경보장 그리고 정책결정에서의 불평등
시정 등의 고차원 복지사회로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정책실현을 위해서 최근 OECD 가맹제국은 이른바
통합복지정책(integrated social policy)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팽창하는 사회보장을 조정하고 그 효율을 높이기 위해 복지정책을 개혁,
재편성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정책은 통합을 창조하고 소외(alienation)를
저지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현재 사회보장에 관한 한 에치오니(Amitai Etzioni)가 말한대로
수단의 부족(the dearth of instruments)이 문제가 아니고 지침의 결 (the
paucity of guidance)이 문제인 것 같다. (주 77: Amitai Etzioni, !The !Active
!Society (New York: The Free Press, 1968).) 현재 국민복지연금의 경우
위정자는 담당관료의 소신있는 정책안을 기다리는 데 반해 담당관리들은
위정자의 양단간의 결단을 고대하고 있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이 소중한 @p511
제도는 1개 국책연구기관의 만년연구과제가 되고 있다.
 제6차 경제사회발전 5개년계획 (1987~1991)안에 의료보험제도의 전국민 확대와
노령, 사망, 재해 등의 사회적 위험에 대비한 연금제도의 실시계획이 들어 있을
뿐 사회보장 전반에 대한 기본계획이나 구상은 없다.
 오늘날 국민소득의 대소가 생활수준과 비례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소득과 같은
경제적 지표 외에 생활관계지표(복지지표, 사회지표, social indicators)의
수준이 높아야 하고 따라서 경제적 후생은 경제외적 후생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빈곤정책사에서 2차대전까지를 빈곤에 대한 투쟁의 역사라고 한다면, 그 후엔
불평등에 대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대응책이 바로 사회보장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빈곤은 사회안정의 저해요인인데 경제가 성장할수록 새로운 빈곤계층이
발생하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제적 발전 못지 않게 정신적 발전도
중요하므로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났던 사회개혁운동이나 20세기 초반
일본에 나타났던 사회개량운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신적, 도덕적 발전이
앞서지 않은 어떤 제도나 물질(부)도 오래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치, 낭비
그리고 허영심은 바로 다른 계층의 빈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68혁명, 그 긍정성과 한계 | 동네 우물 2006/03/23 02:55
http://blog.naver.com/silkliver/22838385

68혁명, 그 긍정성과 한계



 

1. 들어가며

 

  1968년 혁명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그것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세계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1960년대 초부터 시작된 미국에서의 학생운동 및 반전운동과 1960년대 중반 폭발한 이탈리아에서의 학생운동 및 북부노동자들의 공장점거운동에서 점화되어, 1968년 5∼6월 프랑스에서의 학생봉기와 1천만 농자 총파업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던 이 시기 저항운동의 사례들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만큼 포괄적이고 세계적인 수준의 것이었다. 프랑스에서의 학생봉기와 노동자투쟁, 미국에서의 시민권운동·학생운동·흑인인권운동·여성해방운동, 멕시코 대학생들의 올림픽 개최 반대 운동과 정부군에 의한 학살, 일본에서의 전공투와 반전, 반제운동, 등등이 이 시기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68년 운동의 의의는 위와 같은 '세계적' 운동으로서의 의의를 넘어 저항운동사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넓은 의미의 구좌파를 제도화한 것은 1848년이었으며, 새로운 사회운동을 제도화한 것은 1968년이었다. 1848년은 1871년의 빠리꼬뮨과 이후의 바쿠대회, 반둥의 거대한 예행 연습이었다. 1848년이 이루어 놓은 근본적인 정치전략은 사회적 변혁으로 가는 길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영역으로서 '국가권력의 장악'이라는 목적지를 설정하였다는 점이었다.(주1) 역사적인 구좌파 반체제 운동의 세 가지 주요형태는 ①제 3인터내셔널의 공산주의운동과 ②제 2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운동, 그리고 ③유럽 외부에서의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이들은 한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는데, 이들은 공히 근대세계의 기본적인 정치구조를 '국가'라고 여겼으며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국가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제일의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표 1> 세계반체제운동의 역사

상승하는 계급 혹은

계급들

조직형태

전망

전술

1789 : 부르조아지

대의제적 의회

형식적 민주주의

자유·평등·박애

혁명전쟁

1848 : 도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적 의회와 정치정당

경제적 민주주의

노동조합

민주적 헌법

인민봉기

1905 : 농촌 프롤레타리아트

소비에트/평의회

보통선거권

노동조합

제국으로부터의 해방

총파업

1917 : 도시와 농촌의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정당

"프롤레타리아트독재"로서의 사회주의

토지·빵·평화

권력의 조직적 획득

1968 : 새로운 노동자 계급

행동위원회/집단들

자주관리

민중에게 권력을

상상력

공공영역의 쟁탈

일상생활

자료) G. 카치아피카스, 『The Imagination of the New Left: A Global Analysis of 1968』, pp.87

  1960년대와 1970년대 초기의 운동들은 이러한 19세기 이래의 반체제운동 방식들과 대립되고 또한 그것을 공격하는 특질들을 지니고 있었는데, 중국의 문화혁명과 서유럽·일본·멕시코의 학생운동들, 유럽의 자치주의 노동운동 등은 공히 운동 스스로가 관료제적 구조를 세우고 공고히 하는 것이 갖는 위험을 하나의 주제로 삼은 운동들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운동경향의 출현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요인들에 힘입은 것인 바, ①19세기적 반체제운동의 여파로 관료제적 조직의 권력이 엄청나게 확대되고 심화되었다는 점, ②그러한 조직들의 출현과 팽창에 밑거름이 되어준 기대들을 충족시킬 능력이 그 조직들에게 점점 줄어들었다는 점, ③직접적인 형태의 행동들, 즉 관료제적 조직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행동들의 효력이 커졌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주2) ( <표 1> 참조)

  한국에서도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68년의 정신을 나름대로 수용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어왔다. 특히나 현재와 같은 정세는 68년 당시의 상황과 일정부분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에서 68과 신좌파에 착목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1968년의 수용은 이 역사적 사건을 지나치게 미학화, 혹은 철학화하고 있으며, 이것의 필연적인 귀결로서 정치적 낭만주의, 혹은 자유주의적 반(反)노동자주의의 폐해를 낳고 있다. 이 글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68년 시기 생성되었던 실천적·사상적인 흐름들 가운데 기존하는 계급운동과의 논쟁적인 함의에 관련하는 특정한 경향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68년 운동의 형성과 전개에 대한 역사적 기술은 생략하고, 68년의 반란을 상징하고 있는 사상적 흐름들을 검토하며 68의 유산을 그 긍정성과 한계에 대한 일정한 입장을 서술하고자 한다.

 

2. 1968년의 유산Ⅰ- 자치(autonomy): 아래로부터의 혁명

 

  남한 변혁운동에서도 역시 그러하였던 것처럼,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관한 공식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는 이행의 가장 핵심적인 의제로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의 문제를 상정해왔다. 이러한 입장에서 두드러지게 보여지는 모습은 反자본주의적 운동의 핵심과제를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와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수립이라는 두 가지 지점에 고정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레닌의 국가론에서 탁월하고 명료하게 정돈된 이 관점은, 자본주의 하에서 부르주아 국가권력의 행사가 초래하는 총체적인 효과에 대한 가장 예민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은 지난 백여년 동안의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속에서 개량주의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해 왔다.(주3)

 

  그러나 이와 같은 관점은 혁명의 근본문제를 국가권력의 문제로 설정함으로써(주4), 反자본주의운동의 근본적 문제설정을 전략적 요청에 의해 대체하는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라는 전략적 요청이 있기 이전에 존재한 것은 분명 자본주의의 부정이며, 자본주의의 부정이 바탕하고 있는 철학적인 기초와 정치적인 요청은 '인민의 자기통치와 자기관리'인 것이다. 마르크스에게서 부르주아 사회의 근본문제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의 조건과 삶의 양식, 그리고 생산 조건, 생산활동, 생산물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상과 같은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부정을 표현하는 역사적 전거로서 1871년의 빠리 꼬뮌, 1905년과 1017년의 러시아 소비에트, 1920년 독일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 1919-1920년의 이탈리아 평의회 운동, 1937년 스페인에서의 투쟁, 1956년 헝가리 소비에트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와 코민테른 공산주의, 그리고 이후의 유로코뮤니즘이 공유하고 있는 점은, '국가'를 둘러싼 투쟁을 이행에 있어서의 유일한 전략적 과제로 삼고 있었다는 점이다.

 

  1968년은 급진적인 자본주의 비판과 더불어 스탈린주의 및 사회민주주의와의 투쟁이라는 형태로 현대적 자주통치·자주관리의 정신과 그 운동의 조직적, 정치적, 문화적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반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역사적 의의를 갖는 것이었다 : ①집단주의의 폭력에 대항하여 개인주의의 혁명적 잠재성을 입증하였고, ②저항운동의 과정에서부터 개인적 해방과 사회적 해방의 결합이 추구되어야 함을 보여주었으며, ③중앙계획에 의존하는 공학적 사회주의론에 대항하여 자주관리 사회주의론을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내재해 있으며, 스탈린주의에 의해 그 역사적 형태를 드러내었던 집단주의의 테러에 대한 철학적 비판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당시 프랑스의 실천적 지식인들의 대표였던 사르트르의 철학적 작업들이다. 그에 의하면 현상태에 대한 비판은 개개인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러한 비판적 탐구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 의하여 생성되고 또 가능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 역사적 조건이란 스탈린주의로 인하여 맹목적이고 원칙없는 실행과 굳어진 사고 사이의 분리가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실천과 지식 사이의 괴리가 생산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조건 위에서 생성된 비판적 탐구는 생산 및 생산관계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의 운동에 반대한다. 그것은 개개인들의 비판적 탐구를 통해 타자들 및 다양한 실천들과의 유대의 총체성을 발견하기 위하여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실천을 완성하는 활동을 추구한다. 지적인 활동은 수동적이고 대상화된 개이들을 동원하기 위한 사회공학의 수단이기를 멈추고 저항의 주체가 되어야 할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실천과 결속을 이루어내기 위한 방법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한편, 1945년부터 66년까지 존재하였던 저널인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지도적 사상가였던 카스토리아디스는 1968년에 분출된 자치사상의 철학적 기초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에 의하면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타율성이란 스스로 선택되지 않은 법칙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며, 그것은 현실과 욕망을 정의하는 기능을 갖는 자율화된 상상계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 수준에서의 자치란 의식적인 자기 통제와 자기 입법을 의미한다. 즉 그것은 상황에 대한 인식에 기초한 결정권력인 것이다.(주5)

 

  여기에서 그는 두가지의 문제를 지적한다. 첫째로, 관념론적인 절대적 자아, 혹은 절대적 타자를 상정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자아란 타자의 외부에 존재하는 독립적 실체가 아니며 또한 그것은 다른 자아들과의 연관속에서만 존재하는 상호주관성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타자를 제거하는 것이 순수한 자아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에 위한 지배로부터 자율적인 삶으로의 전이는 그 자신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에게서 유래하며 그 자신을 역사와 사회 속으로 뿌리내리게 하는 진실에 참여하는 것을 통하여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와 연관된 두 번째의 문제는 타자의 지배가 단지 '담론'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라고 아는 익명적 물질성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장의 경제적 메커니즘, 계획의 합리성, 그리고 무기와 급료, 상품, 법정의 결정, 감옥 등을 포괄한다. 지배는 단지 무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물질적인 제도들에 의해서 개개인들에게 육화되어 있는 것이다. 소외는 제도화 되어 있으며, 따라서 자치를 향한 투쟁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것이다.

 

  카스토리아디스와 더불어 1968년 자치사상을 이론적으로 규명하고 있는 이가 앙드레 고르이다. 고르는 자신의 자주관리사회주의론을 통해 노동조합주의적 관점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노동계급 전략으로 임금수준에 대한 요구, 자주통제에 대한 요구, 노동자들의 자주적 결정권에의 요구를 서로 분할할 수 없는 목표 및 전략속에서 통일시킬 것을 주장한다. 분할되어 있는 노동자계급을 통일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은 고용자들과 국가를 공격하는 것이며, 그를 위한 유일한 길은 그들로부터 결정과 통제의 권력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의 전략은 그와 같은 일체의 사안들에 대한 결정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의 자주관리 사회주의론은 이제까지 사회주의가 경제 전반에 대한 관리적 효율성과 우월성에 기반하는 축적수단으로서 인식되어 왔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게 있어서 사회주의란 '결합된 노동자들'에 의한 자기 결정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현존했던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가장 문제시되어야 할 부분은 개인적인 필요를 총체적인 생산계획이 요청하는 바에 종속시켰다는 점에 있다. 이에 따라 구체적인 개인들과 사회적인 개인들 사이의 거리, 개인적 이익들과 일반이익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그들간의 괴리는 구조화되어 간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성장한 생산의 윤리는 자기부정·검소·자기단련·청결함·성적 억압 등과 같은 부르주아의 청교도적 윤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인간은 생을 즐기고 자기 자신을 한껏 배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던져진 것이 아니라 노동·사회·도덕·사회주의 등과 같은 타자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기 위하여 이 곳에 태어났다는 식이었다.

 

  고르의 탁월함이 드러나는 곳은 바로 이 부분인데, 그는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전체주의적 지배의 기원을 이념의 문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저발전 사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생산력적인 요청을 사회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작용한 정치적, 경제적, 이데올로기적인 변수들의 앙상블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로의 복귀, 사회주의의 진전이냐의 갈림길이 되는 곳은 '생산력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한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적 계획의 필요성'이 '결합된 생산자들의 조직적인 자기결정 행위'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도 이러한 지점에서이다. 고르에 의하면, 이 지점에서 결정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당면한 행정적·관리적 과제들 및 정치적지지의 필요성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운 독립적 정당과 노동조합이다. 사회주의적인 경제운영을 위해서는 자유로운 노동조합들의 조직적인 토론과 의사결정으로부터 경제계획을 위한 사전적 정보를 끌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주관리는 사회주의에 대한 철학적·정치적인 규정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위상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주6)

 

  한편 프랑스에서의 자치사상이 주로 철학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서 발전해 왔다면, 미국 신좌파에 뿌리를 준 SSA학파의 경우 경제이론 및 노동과정론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의 자주관리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했다.(주7) 이들이 내세우는 '작업장 민주주의'론은 임노동의 철폐나 사적소유의 폐지 등의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현실적 조건들을 중심으로 해서 노동자계급의 세력관계를 강화하는 데 주로 관심을 두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대안이 혁명에 의하여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변혁이 가능한 여건이 되는 '민주적인 사회적 축적구조'를 구축하는 데 적합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경제적 권리장전이라는 대안을 통해 이러한 주장을 구체화하고 있는데, 이의 가장 중요한 골자는 노동자의 참여를 통해 생산의 위계구조를 완화하고, 투자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모두 4기의 큰 조항으로 이루어진 경제적 권리장전의 두 번째 항은 민주적 작업현장에 대한 권리로, 이는 '민주적 노동조합에 대한 공공의 노력', '노동자들의 의사결정권', '민주적 생산유인', '공동체 기업의 발주'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의 이론속에서 '노동의 정치'는 유토피아적이라는 이유로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장 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적인 통제체제라는 정치적인 과정으로 인해 도입되지 않는 것'으로 설명된다. 또한 노동자의 자주관리 능력에 대해서도 이들은 역시 형이상학적인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이론과 분석으로 응수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이론이 앞서 언급된 카스토리아디스, 고르 등의 자치사상적 관점과 통합되지 않는 한, 최근 유행하는 리스트럭쳐링류의 경영학적 노동과정론 및 우경적 포스트포드주의론과 크게 차별점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쉽사리 노동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신보수주의라는 반동에 대한 처절한 반항이라는 의미에서 이들의 충고는 한 번쯤 귀기울일만한 가치를 갖는다 할 것이다.

 

 

3. 1968년의 유산Ⅱ - 프롤레타리아트 개념과 저항주체의 문제

 

  68년 운동은 저항의 주체와 그 장소에 있어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의 근본전제들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독일·미국(그리고 어느 정도는 이탈리아까지)등과 같은 중심부의 발전된 나라들에서 발발되었던 이 운동들은, 기술자들과 고용된 전문가들, 오프라인 사무노동자들 서비스 부문 노동자들, 그리고 학생들과 같이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주변적'집단으로 이해되어 왔던 집단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러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68년 운동이 마르크스주의적 혁명론의 근본전제가 지니고 있었던 권위를 결정적으로 실추시키는 심각한 도전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루카치로부터 가장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형태를 찾아볼 수 있는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은 다음의 두 가지 기본전제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첫째, 동질적인 집단적 주체로서의 (산업)프롤레타리아트야 말로 사회주의 혁명의 유일한 과학적 담지자라는 것이며(주8), 둘째,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이 수행되고 대안적 권력이 수립될 유일한 장소는 공장이라는 것이 그것이다.(주9) 사회주의 운동과 이론에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혼돈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임금생활자 가운데 직접적으로 상품생산과정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로 포괄할 수 없는 집단이, 축적을 위한 중요한 구성요소로서 등장하면서부터였다. 68년은 프롤레타리아트 개념 규정을 논쟁적인 것으로 만드는 또 한번의 역사적 사건이 되었으며, 그것은 투쟁의 주체와 장소 모두에 대한 뜻밖의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우선, 68년이 제기한 본격적인 문제들을 살펴보기 전에 구좌파의 완고한 프롤레타리아트론이 지녔던 내용과 함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공식 마르크스주의의 규정에 따른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맑스의 문헌적인 정의에 따라 '생산적 노동을 수행하는 계급'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 때, 생산적 노동이란 지출된 노동과 노동력 재생산비용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잉여노동을 의미하고, 이러한 잉여노동은 오직 상품생산-어떤 상품의 최종 소비지까지 운송하는 것을 포함하여-에서만 추출될 수 있는 것이다. 상당부분 맑스 자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이러한 관점에 따를 때, 상품의 유통에 소요된 시간(판매, 구매, 정보의 교환)은 어떠한 잉여가치도 산출하지 못하는 순수비용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가 생산적 노동을 노동자계급을 정의하기 위한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면, 채취업이나 제조업, 그리고 운송업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만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성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19세기에나 전형적이었던 남성 육체노동자라는 의미로 협애화될 것이다.(주10)

 

  이러한 방법은 그 형식상의 차이만을 떼어놓고 본다면, 상당부분 부르주아 사회학자들의 방법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맑스주의자들이 생산적 노동만을 완고하게 고집하듯 부르주아 사회학자들은 신분, 직업, 수입 등의 여러 가지 분류표를 통해 '계급'을 구분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학자들의 결론 또한 완고한 맑스주의자들의 그것과 너무도 유사하다. 이러한 분류방법을 통해, 이들 역시 노동자계급을 육체적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축소시키고 이러한 계층의 비율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점점 더 줄어들고 있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의 맑스를 따르고자 했던 위의 논리와는 달리, 맑스의 '방법', 혹은 그 정신을 이어받는 길은 없었을까? 68년이 제기했던 난제들은 바로 이러한 창조적인 접근을 통해서만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맑스 자신이 이러한 접근을 부분적으로 시사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근대공업은 "기계, 화학공정 및 다른 방식들을 통해 생산의 기술적인 기초에서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기능과 노동과정의 사회적 결합까지도 계속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동과정의 사회적 결합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포착할 수 있을까? 아마도 68년의 변화, 특히 전통적인 노동자계급과는 다른 새로운 그 누구를 포착하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은 맑스의 다음과 같은 문구들로부터 추적될 수 있을 것이다.

 

  날이 갈수록 전반적 생산과정의 진정한 지렛대는 개별 노동자가 아니게 된다. 그 대신, 사회적으로 결합된 노동력과 전체 생산기구를 함께 구성하는 여러 경쟁하는 노동력들이 상품을 만드는 직접적 생산과정에 매우 다른 방식으로 참여한다. …… 어떤 사람은 손으로 더 잘 일하고 또 어떤 사람은 머리로 더 잘 일한다. 어떤 사람은 경영자, 엔지니어, 기술자로서 어떤 사람은 감독으로서, 또 어떤 사람은 육체노동자나 근면한 일꾼으로서 더 잘 일한다. 꾸준히 늘어나는 노동유형들의 수는 생산적 노동이라는 직접적 개념 속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생산적 노동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생산적 노동자, 즉 자본의 직접적 착취를 받으면서 생산과정과 그 확장과정에 종속된 노동자로 분류된다. 그들은 자본에 의해 직접 착취당한다. …… 그리고 이 집단적 노동자의 구성원에 불과한 개별적 노동자의 기능이 직접적 육체노동에서 더 먼 것인지 가까운 것인지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이다.(주11)

 

  이러한 맑스의 직관적인 영감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두가지 방향의 수정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①우선,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의만을 바꾸는 것으로서, 이때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적 노동'을 수행하는 계급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력을 팔도록 만드는 사회경제적 강제에 종속되는 사람들"(만델)이다. 이러한 입장에 설 때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의 범주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게 되고, 이제 착취를 당하면서(즉, 프롤레타리아트이지만) 비생산적 노동을 수행하는 (은행원, 국가공무원, 등) 사람들을 프롤레타리아트로 규정하는 것이 개념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캘리니코스, 라이트, 스미스 등이 취한 입장인데, 이는 두로 2차대전 이후 복지국가에서 크게 확장된 국가, 공공부문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취해진 입장이다. 하지만 이러한 몇몇 설명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설정으로는 자본주의적 적대의 역동적인 성격이 충분히 파악될 수 없다. 노동력의 판매라는 규정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감수해야 하는 착취의 현실을 지적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새롭게 구성된 적대가 갖는 독특한 질을 포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68년이 제기한 계급의 문제는 단순한 착취의 실존을 설명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즉 그것은 '새로운'노동자계급의 착취를 기술하는 것에 머무르기보다 그들의 계급위치가 해방을 향한 투쟁에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인가가 오히려 중요한 관심사인 것이다.

 

  ②또한 앞서와 같은 문제의식에 입각해 첫 번째와는 다른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는 생산적 노동의 범주를 수정하는 것이다. 이는 네그리, 말레, 고르등이 나아갔던 방향인데, 이들의 문제의식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변화된 패턴 및 이에 따른 계급적대의 변화된 위치와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다.(주12) 네그리가 생산의 변화된 패턴에 따른 계급적대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말레와 고르는 이러한 변화로부터 유래하는 새로운 계급의 내용과 특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들에게서 '생산적 노동'은 앞서의 협소한 정의처럼 가치증식의 상품생산적이고 물리적인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특정한 노동이 수행되는 총체적 관계망 속에서 파악된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전체가 생산적 노동의 행위자로 간주되어야 하며, 다양한 형태의 프롤레타리아적 노동의 상호의존은 이런 노동이 생산적 부분과 비생산적 부분으로 구분된다는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네그리는 60년 말과 70년대 전체에 걸쳐서 이탈리아에서 적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아우토노미아 운동의 이론가로 유명한데, 아우토노미아는 번역어 그대로 노동자계급의 자립적 힘을 강조하는 입장을 말한다.(주13) 그의 초기 입장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계급적대의 논리를 확대하는 속에서 이를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자본의 확장은 스스로를 표현하는 강력한 힘이지만 대신 확장할 때마다 해결해야 하는 적대적인 관계를 수반한다. 그는 이러한 적대적인 관계를 개념화하면서 '계급구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 이는 노동자계급의 사회화과정 및 투쟁속에서 자본에 대항하여 아래로부터 구성되는 노동자계급의 적대적 경향의 확산과 통일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계급구성의 변화는 다음과 같은 세가지 단계-대공업 시기의 첫국면에 나타나는 '전문 노동자', 대공업의 두 번째 국면인 1차 세계대전에서 1968년 혁명까지의 시기에 나타나는 '대중 노동자', 68년 이후의 '사회적 노동자'-를 통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높은 숙련수준을 안에서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되지만, 노동 사이클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기에 이들의 기술적 자질이 대량화되고 복잡해진 초기적인 기계생산의 보완물이 될 수 있었다.(주14) 한편,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도전에 직면하여 자본은 노동과정의 재구성을 끊임없이 추구했는데, 그 결과가 대중 노동자의 형성이었다. 대중 노동자를 주요 구성원으로 하는 포드주의적인 축적체제는 구상과 실행의 분리를 통한 노동과정의 조직으로써 유래없는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유래없는 생산성은 케인즈주의적인 복지국가의 분배 메커니즘을 매개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타협이 가능한 조건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아글리에따가 지적하듯-이러한 재구성은 직접적으로 노동의 집단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집단화는 노동자들을 분할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개별적 산출 보너스를 통해 노동조건의 악화에 노동자 스스로 협조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포드주의적 작업규준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전반적 투쟁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는 경향을 드러낸다.(주15)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전투성에 직면하여 자본은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도약'을 시도하게 된다. 자본은 노동자계급이 보여준 저항의 완강함을 피하기 위해 지리적 이동성과 시간적 유동성의 극대화를 꾀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정보과학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하이 테크놀로지는 '노동자 없는 공장'이라는 계획을 수행함으로써 대중 노동자의 요새를 잠식한다. 이러한 생산의 재조직화는 부르주아 정보화사회론에서 묘사되는 탈산업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네그리가 보기에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맑스를 따라 '자본에 의한 실질적 포섭'으로 묘사될 수 있다. 과학기술적인 하부구조에서의 간접노동은 작업장에서의 직접노동만큼 중요하게 된다. 유통-마케팅, 소매, 금융업 및 은행업-은 곧 바로 생산과 맞물리게 되었고, 스스로가 이윤추출을 위한 주요한 영역이 된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대규모로 상품화된다. 정보기술의 통합적이고 계산적인 힘을 통해 이러한 발전은 강력하고 상호연관적인 새로운 정점에 도달한다. 이제 직접적인 물리적 생산의 장소인 공장만을 잉여가치가 추출되는 특권적인 장소라고 말하기는 힘들게 되었다. 그 대신, 생산의 공간은 자본의 거대한 대사가 증식하고 있는 접속부들로 확대된다.

 

  사실, 대중 노동자론과 사회화된 노동자론 사이에는 일정한 시각의 단절이 존재한다. 포드주의적 대량생산 체계가 가져온 노동자계급의 집단적인 힘의 표출과 노동현장의 적대에 대한 설명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 대중 노동자론이라면, 사회화된 노동자론은 사회적 적대의 확산과 이에 따른 계급투쟁 및 노동의 변화양상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68년의 대폭발은 대중 노동자에서 사회화된 노동자로의 이행기에 터져나온 자본과 노동 사이의 중층적인 적대의 표출이었다. 2차대전 이후,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의 당근에 묶여 있던 대중 노동자들은 더 이상 케인즈주의적인 타협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로 인해 자본은 대중 노동자들을 사회적 노동자들로 대체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러한 자본의 목숨을 건 가치증식에 제동을 걸고 나타난 것이 바로 68년의 불꽃, 즉 사회적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비록 68년의 학생봉기를 사회화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단순규정할 수는 없지만, 이 투쟁은 "이전에 생산에 대해 부차적인 것으로 보였던 일련의 전체 기능들이 자본의 순환 속에 완전히 통합되어"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1950년대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잠재적 잉여에 의존했던 지배계급은 수백만명의 노동자를 화이트칼라 부문으로 전환시켰다. 대학생 인구의 양적인 증가는 대학생의 사회적 역할의 질적 변화를 반영한다. 대학생 수의 엄청난 증가는 "기술적 사회조작의 테크닉에 대한 자본의 엄청나고 갈수록 커지는 욕구에 따른 것이었다."(주16)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은 직접생산에 집중된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사회적 노동력으로 확장된다. 사회적 노동력은 새로운 노동자계급의 잠재력을 표현한다.

 

 

4. 1968년의 유산Ⅲ - 대학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

 

  앞서 네그리와 말레, 그리고 고르의 이론적 모색에서 보듯, 대학혁명은 분명히 적대의 새로운 경향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학은 더 이상 전통적인 지배자들의 인문교육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대학은 오히려 자본이 요구하는 새로운 노동의 유형, 즉 사회적 노동으로의 편입이 발생하는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사회혁명의 이행자로서의 청년층 및 대학생의 중요성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대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1968년의 반란은 그동안 불안정하게 지탱되어 오던 자유주의적인 교육학의 전제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사건이었다. 자유주의 교육학적 전제들이 갖고 있었던 모순은 그것이 규범적으로 상정하고 있었던 자유롭고 전인적인 인간상이 자본주의의 총체적인 관계망과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①우선 자유주의적 관점은 교육제도가 교육 및 학습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장소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반면에 필자는 노동의 성격이 인간발달의 기본적인 결정인자라는 보울즈와 진티스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주17) 이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면, 교육과 인간형성에 있어서 문제되어야 하는 것은 교육제도 내에서의 기술적인 문제나 혹은 교육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과 일상적 삶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망의 형성일 것이다. 만약 인간적인 인간의 형성에 대한 공유된 바램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은 현존하는 사회적 관계망의 정당성 그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②다음으로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앞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교육장치는 SSA학파의 연구성과를 통해 발견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관료적이고 감시적인 재생산원리 속에서 포위되어 있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학교제도 자체가 이러한 정치적 지배관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적극적 구성요소라는 점이다. 교육제도의 역할은 소외되고 계층화된 노동력의 생산으로 귀결되므로 교육제도 자체도 당연히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구조를 발달시킬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주18)

 

  여기에서 단순화 하여 이해하기 쉬운 점은 교육제도의 자율성에 부과되는 이와같은 한계를,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의미로만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든 흔히들, 교육제도의 형식과 교육내용의 역사적인 변화가 자본주의의 특정한 발전단계에서 요구하는 노동의 질을 생산하기 위한 요청에 따라서 이루어져 온 것이라는 입장에 서 왔다.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같이, 교육제도의 형식적 변화와 교육내용의 변화들은 분명 자본주의의 특정한 역사적 발전단계와의 관련 속에서 진행되어 온 것이지만, 우선 교육제도는 그 자체의 존재기반과 재생산의 논리들을 갖고 있을뿐더러, 더욱 중요한 점은 교육장치가 자본주의적인 사회관계 속에서 수행하는 기능은 그 나름의 특수한 양식을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와 교육제도와의 연관관계 속에서 교육적 재생산이 하는 역할은, 교육내용이나 정보의 전달과정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생산의 형식에 있다. 특정한 교육-피교육 관계의 형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은 자본주의적 인간화를 위한 검열과 자기검열의 육화이다. 즉, 교육과정에서 구조화되어 있는 사회관계는 학생들에게 작업장과 회사의 규율을 훈련시키며, 인간의 태도유형 자기표현방식 자기이미지 사회계급에 대한 정체감 등을 형성시킨다. 다시 말해서, 교육에서의 사회관계는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업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위계적인 노동분업의 형식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주19)

 

  교육적 장속에서의 권력관계와 재생산 기능에 대한 가장 정치한 분석을 해 낸 것은 부르디외와 파세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1967년 『상속자들』에서 프랑스 대학생들의 출신계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대학 내에서의 학생문화를 상세히 검토하여 1968년 운동에 일정한 영향을 행사하였다. 이들의 교육사회학적 연구를 훌륭하게 담고 있는 『재생산』은 교육행위와 교육적 권위, 교육체계 등의 상대적 자율성과 상관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교육적 행위란 상징적 폭력인데, 이것은 사회구성을 형성하는 집단간 혹은 계급간의 권력관계야말로 교육적 소통관계 수립의 기본전제가 되는 자의적 권력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별과 배제의 기제를 통한 특정한 의미의 주입행위에 수반되는 한정효과는, 집단 및 계급이 문화적 자의성속에서 형성하는 자의적 선별행위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교육적 행위는 특정한 교육적 권위를 전제로 해서만 수행되고 유지될 수 있다. 이 교육적 권위란 바로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의 관계에 내포되어 있는 권력적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적 권위에 의해 물질적 권력을 보장받는 교육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재생산의 효과란 바로 오인에 기초한 허위적 동일시이다.(주20)

 

  교육으로부터 자기훈육으로, 검열로부터 자기검열로 나아가는 기제에 의해 강화되는 허위적 동일시는, 학교교육과 사회관계에 내재하는 불평등한 지배화의 권력관계를 자연적인 것으로(즉 정당하며 수정될 수 없는 것으로)인식하게끔 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써 총체적인 사회관계에서의 권력관계는 교육적 행위의 매개를 통해 재생산되며, 역으로 그렇게 재생산된 권력관계는 교육적 권위의 사회적 기초로 작용한다. 총체적 권력관계와 교육적 상징폭력 사이의 순환관계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러한 순환관계가 도전받지 않고 재생산될 수 있게 하는 물질적인 장치가 바로 교육체계이다. 교육체계는, 권력관계의 사회적 재생산, 교육체계, 교육적 권위, 교육행위 사이의 상호기능적 상호관계의 거대한 원환이 제도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위에서 서술된 주장들을 받아들인다면, 자본주의 하에서 학교교육의 기능은 축적양식과 생산방식 생산구조의 변화가 요청하는 노동의 질을 공급하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다. '예비노동자'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현시기 학생운동의 대학비판은 완전히 정당한 것인 동시에 그만큼이나 결핍된 주장이다. 자본의 축적양식과 생산조직상의 변화는 대학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변화시키지만, 그것은 경제적 요청을 대학교육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을 취하지는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예비노동자'론의 실천적 한계를 낳는 근본원인이다. 예비노동자라는 사실만으로 학생들이 자신들의 존재조건에 내포되어 있는 지배의 그림자들을 자동적으로 발견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인 것이다.

 

  투쟁의 중심점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자본 국가의 요구에 종속시키는 물질적 조건들(경제적 혹은 정치적)과 자본주의적 인간형을 형성시키는 권력관계의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공격이다.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계급지배는 그것을 집행하고 영속화시키기 위한 매개를 통하지 않고는 완전하게 관철될 수 없다. 익명의 권력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지배는 시장의 압력과 같은 경제적인 변수로서 직접적으로 개개인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일종의 헤게모니가 되는 것은 피지배자들의 반란을 잠재우는 더욱 교활한 기제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이 점차로 예비노동자로서 수련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대학생들이 결속된 저항의 길로 들어서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의식적인 실천의 고리는 바로 이 부분, 즉 사람들의 자기검열과 자기훈육이 생산 재생산 변형되는 매개항들에서이다.

 

 

5. 소결

 

  이상으로 간략히 1968년의 유산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우리가 1968년 학생봉기로부터 어떠한 영감을 끌어내고자 하는 데 있어서 이들의 특정 부분, 혹은 긍정적 부분만을 사고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일 것이다. 이는 반문화 운동의 영감을 수용한 이들의 경우와 같이 1960년대를 온갖 종류의 저항적, 해방적인 상상력의 융합으로 이해하는 낭만적 해석이라든지, 좌익주의적 흐름에서와 같이 68년을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마지막 통첩이자 세계적 수준에서의 전민항쟁의 서곡 정도로 해석하는 극단의 오류를 낳을 여지가 다분하다. 68년의 모은 운동들을 꿰뚫고 있는 역사적 의의를 사장하고, 그것을 인상주의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머무는 것은 결코 구체적인 변혁 전략을 짜내고자 한다면 결코 정당한 태도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손쉬운 해결책들은1968년을 직접적인 선동의 질료로 가공함으로써 지적 비판성을 잠시 상쇄할 수는 있겠지만, 이념·강령·전략·전술로 구체화되지 못한 레토릭들은 결코 대중적이고 지속적인 권력을 얻어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배신하게 될 것이다. 감동은 자폐적인 열정의 소모로 끝나버리고, 현실적 세력관계의 냉혹한 목소리는 우리의 미래에게 또다시 침묵할 것을 강요할 것이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1960년대의 저항운동의 복합성 속에서 문화혁명적 요소만을 고립시켜 그것을 적대화하는 경향이 점차 지배적인 것으로 되어왔다. 그러나 1960년대의 투쟁, 특히 미국과 프랑스에서의 저항운동의 결정적 한계는 문화적 혁명을 그 자체로 지탱될 수 있는 자기완결적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는 순진성에 있었으며, 반면 이탈리아에서의 10여년간의 투쟁은 그것이 학생운동과 녹색운동,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과 산업노동자들의 노동자 자치 운동 및 공장점령투쟁과의 내용적인 결합을 이루어내었기에 산업 프롤레타리아트 지역에서의 조직적, 법적, 제도적 성과를 남겨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질문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기존 문화와 세대에 대한 청년층의 반발처럼 보이는 낭만적인 운동을 어떻게 자본가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운동으로 전화시킬 것인가?" 다시 말하자면, 기존의 가치체계에 쉽게 흡수되지 않는 청년학생의 특질 및 그 급진적인 상상력을 어떻게 계급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문제해결의 단초는 선진자본주의의 발달에 필수적인 생산의 기술적 조직 내에서 일어난 기본적인 변화가 이제는 계급관계 뿐 아니라 그 관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도 변화시키게 된 방식을 이해하는 데 놓여 있다. 이 변화를 검토하면서, 우리는 현재의 청년운동이 '19세기 노동계급으로부터 새로운 노동계급으로의 전화'를 반영하는 보다 광범위한 운동의 맹아적 부분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검토는, 사회주의자들이 현재의 청년운동을 넘어서면서 동시에 그것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선진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일어난 노동계급의 전화에 대한 자기의식적인 이해를 가지고 매일의 투쟁에 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낳는다.

 

<미주>

 

 1. I. 월러스틴, 『반체제운동』, 창작과 비평사, pp. 116-120

 2. ibid, pp. 45-68. 월러스틴은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제안을 제시하고 있다. 즉 국가기구들 내에서의 권력의 획득을 하나의 전술 차원으로 격하시키고 운동의 건설적 힘을 동원의 과정 속에 투입하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추출되는 대안적인 전략은 국가권력 획득을 넘나들면서 "잉여의 생산지점에서 그 잉여의 흐름을 공격하는" 전략이다.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창작과 비평사, pp. 51, pp.159-160.

 3. 국가의 총체적인 권력효과에 대한 현대적 이론에 대해서는 폴란차스의 『정치권력과 사회주의』, 풀빛, 1장과 『국가, 권력, 사회주의』, 백의 참조. 그는 르포르, 카스토리아디스 등의 반(反)관료제논자들과 푸코, 들뢰즈 등의 프랑스 철학자들의 순진함을 비판하고 있다.

 4. V.I.레닌, 「혁명의 근본문제」, 『제 1차 대전과 10월혁명시기의 레닌의 저작』, 태백

 5. 여기서 '상상계'란 어머니와 유아의 관계, '사랑'에 빠진 남녀 사이의 관계, 아버지상을 가진 지도자·선배와의 관계등에서 생겨날 수 있는 허위적 동일시를 설명하는 라깡의 정신분석학적 범주이다.

 6. 이 시기 고르의 기본전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이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를 운용할 수 있는 관리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그는 이후의 사상적인 변화과정에서 이 시기의 사회주의론 및 계급이론을 거의 전면적으로 수정하였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의 특수성과 제한성을 넘어 사회체계를 총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은 부정되었으며, 노동계급의 자주관리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은 비현실적 유토피아로 간주되었다.

 7. SSA학파란 '사회적 축적구조론'을 지칭하는 학파이다. 이 학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보울즈, 진티스, 웨이스코프, 고든, 라이히, 에드워즈 등이다. 미국 학계에서 68혁명의 세례를 가장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이들은, 대개 하버드 경제학과의 유일한 좌파 교수인 마글린의 제자들이다. 이들은 자본축적과정과 관련한 제도들의 발전에 대한 역사적 분석과 이를 위한 이론적 분석을 통합할 것을 주요한 목표로 삼는다.

 8. 게오르그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거름)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사회적 총체성을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집단적 주체로서의 특권을 철학적으로 부여하였다. 문제는 의식의 사물화를 극복하는 것 뿐이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주의주의적(voluntaristic)전환을 표현하고 있는 이러한 견해에 대한 비판으로는 페리 앤더슨, 『서구 마르크스주의 연구』(이론과 실천)를 보라.

 9.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은 다음의 두가지 점에서 이러한 장소의 정치학을 정당화해왔다. 첫째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본의 독점화 과정에서 생산수단을 공간적으로 집중시키는 경향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 속에서 공간적으로 밀집된 프롤레타리아트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둘째로는 노동의 탈숙련화과정을 통하여 프롤레타리아트가 하나의 계급으로서 동질화되어 간다는 점에서이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통찰에 주목한다면, '새로운 노동계급'을 투쟁의 주체로 포괄하고자 할 때, 이들의 노동조건의 질적 특성에 근거한 고유한 조직론을 발굴해야 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10.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풀란차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신쁘띠부르주아론에 따르면,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프롤레타리아트화를 주장하는 것은 '최후까지 혁명적일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허무는 것이다. 그에게 노동자계급과 쁘띠부르주아지를 구분해주는 경계선은 다름아닌 '생산적 노동/비생산적 노동'이다. 우드에 다르면 풀란차스의 이러한 명확화는 당시에 매우 모호한 형태로 존재했던 프랑스 공산당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건강한 기초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E.M.우드,『계급으로부터의 후퇴』, 창작과 비평사, 60쪽).

11. 마르크스, 「직접적 생산의 제결과」, 캘리니코스, 『오늘날의 노동자계급』, p. 57 재인용

12. 여기서 말레와 고르의 이론은 생략하기로 다. 말레의 '신노동자계급'론은 기본적으로 네그리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Dick Howerd, "New Situation, New Strategy", Unknown Dimensions of Marxism"이 있다.

13. 그에 따르면 "생산범주는 차이의 범주로서, 주체·차이·적대의 총체성으로 구성될 수 있을 뿐이다."(네그리, 『맑스를 넘어선 맑스』, 샛길, p. 124) 즉 자본은 노동자계급을 "모순"이라는 상호배타적인 동시에 상호필수적인 범주로 포섭해 자신의 가치를 증식하고자 하지만, 생산은 이러한 변증법적인 모순상태에 속박되지 않는다. 생산의 일반적인 개념은 생산의 요소들 및 그것들의 적대적 관계가 지닌 주체성을 고양하기 위해 자신이 유물론적이고 변증법적인 규정성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다.

14. 윤수종, 『아우토노미아』,『이론』12호, 81쪽.

15. 미셸 아글리에따, 『자본주의 조절이론』, 한길사,152쪽

16. 스미스, 앞의 책, 193쪽.

17. 보울즈·진티스, 『자본주의와 학교교육』, 사계절, p. 83

18. 이반 일리치의 자유학교 사상이나 다양한 종류의 자유교육운동의 오류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총체적인 사회적 관계망, 특히 노동현장에서의 권력관계는 부차적인 것으로 남겨둔 채, 교육제도의 혁신을 통하여 인간형성의 근본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19. 보울즈 진티스, 『자본주의와 학교교육』, 사계절, p.160-161, 171, 232, 306. 이 점에서 보울즈와 진티스는 자본주의 학교교육을 기술적 재생산의 측면에서만 독해하는 경제주의적인 순진함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대학과 노동계급』(창비사)에 실린 데이비드 스미스의 단순논리 앞에서 느끼게 되는 의아함과는 다른 차원의 설명이다.

 

20. 여기에서 '오인'이라는 범주는, 앞의 카스토리아디스에게서 '상상계'와 '허위적 동일시'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정신분석학적인 개념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문화적 자의성의 주입과 재생산에 의해 이루어지는 오인 효과는 기존하는 문화시장의 특정한 권력관계를-막스 베버의 의미에서-정당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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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루카치, 『역사와 계급의식』, 거름

G. 카차아피카스, 『The Imagination of the New Left: A Global Analysos of 1968』, Soouth End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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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왜 보수정당에게 표를 던질까?

왜 계급대로 투표 안하냔 말이다.

 

 

서민들은 왜 보수정당에게 표를 던질까?



[프레시안 여정민/기자]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에게 그렇게 큰 해를 끼치는 부시에게 투표할 수 있는 거지요?"
 
  사람들은 투표장에서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질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하기 마련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다. 그러나 실제 선거 결과는 때때로 전혀 엉뚱하게 나타난다.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사람들
 
  2003년 주지사 선거가 한창이던 캘리포니아주. 당시 현임 주지사였던 그레이 데이비스(민주당) 후보와 새롭게 등장한 아널드 슈워제네거(공화당) 후보가 열띤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노동조합들은 현 주지사였던 데이비스가 슈워제네거보다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좋은 정책을 내걸고 있다고 홍보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조합원들은 "데이비스와 슈워제네거 중 누구의 입장이 당신에게 더 유리한가?"는 질문에 "데이비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누구에게 투표할 예정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엉뚱하게도 "슈워제네거"라는 대답이 똑같은 사람들로부터 튀어나왔다. 결국 승리는 슈워제네거의 것이었다.
 
  비슷한 일은 세계 곳곳에서 종종 일어난다. 한국만 하더라도 그렇다. 서민들은 노동자ㆍ농민이나 빈민층보다는 재벌에 더 친화적인 정당에 자신의 표를 던진다. 쌀 개방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성난 농민들은 투표일이 되면 쌀 개방을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다시 표를 던지고, 늘 갑작스런 해고의 공포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자는 정당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한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인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유나영 옮김, 삼인 펴냄)에서 이 당혹스런 현상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물론 그들은 자기 이익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기의 정체성에 투표합니다."
 
  또 저자는 번번이 보수세력에 맞서 패배하는 미국의 진보 세력의 패인에 대해 그들이 굳건하게 믿고 있는 '신화'의 오류를 지적한다. 진보주의자들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는 신화를 믿고 있다는 것. "사람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가정은 단지 실재하지 않는 '신화'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프레임에 부합해야 합니다. 만약 진실이 프레임과 맞지 않으면, 프레임은 남고 진실은 버려집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가면서 '세금 구제(tax relief)'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세금은 '악'이고, 그것을 없애주는 것이야말로 '선'이라는 이 공화당의 감세 프레임을 상징하는 용어는 곧 민주당과 <뉴욕타임스>까지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미국의 공론을 지배하게 됐다.
 
  프레임, 다시 말해 '생각의 틀'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대방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우리는 바로 최근 소위 '황우석 사태'를 통해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황우석과 그의 논문을 둘러싼 진실공방의 결론이 내려진 다음에도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홍역을 앓고 있다.
 
  "우리는 사실을 접할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그것이 의미를 지니려면 그것은 우리 두뇌에 존재하는 시냅스와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은 우리 머릿속으로 들어왔다가 그대로 밖으로 나갑니다. 그것은 우리 귀에 아예 안 들어오거나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아니면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집니다. 그러고는 그것이 비합리적이거나 미쳤거나 어리석은 것이라고 딱지를 붙여 버립니다."
 
  저자는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걸 기억하라"고 충고한다. 상대 후보의 거짓말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한 길 사람 속'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해답은 진실이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해주는 프레임에 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코끼리를 떠올려야 한다"
 
  저자는 버클리 대학에서 '인지과학 입문' 수업을 진행할 때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내 준 과제는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이 과제에 성공한 학생을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코끼리'와 같은 단어는 그에 상응하는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그것은 어떤 이미지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종류의 지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끼리는 크고, 펄럭이는 귀와 긴 코가 있고, 서커스와 연관되어 있고… 등이지요. 이 단어는 그러한 프레임에 의거하여 정의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그 프레임을 부정하려면 우선 그 프레임을 떠올려야 합니다."
 
  미국의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한 '코끼리'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미국의 진보세력이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말하고 있다. 하나로 단결되어 '엄격한 아버지' 모델을 표방하는 공화당에 맞서 제각기 자신들의 관심사가 가장 진보적이라 믿는 '자상한 부모'를 지향하는 미국의 진보 진영이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를 존중하라. 프레임을 재구성함으로써 대응하라. 가치의 차원에서 사고하고 발언하라. 자신이 믿는 바를 말하라."
 
  어설픈 눈속임을 통해 자신의 정책이 유권자들의 이익과 동일한 것인 것처럼 위장하지 말고, 상대방 후보의 정책에 대한 '깎아내리기'나 '진실 폭로'가 아닌 자신만의 가치관과 프레임을 통해 스스로 믿는 바를 말하라는 저자의 충고는 5.31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정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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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quot;강남부자, 친북좌파보다 못하다&quot;

리플보니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번은 맞는다고 썼던데...

 

 

 

조갑제 "강남부자, 친북좌파보다 못하다"
"싸우는 좌파가 안싸우는 우파보다 도덕적으로 우월"
텍스트만보기   석희열(shyeol) 기자   
▲ 조갑제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 오마이뉴스 남소연
우익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사진)이 일부 강남 부자들을 향해 "못 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구는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조갑제씨는 16일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조갑제닷컴)에 글을 올려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라며 이같이 일갈했다.

조씨는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라고 주장했다.

또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평소엔 호화판 생활 즐기며 애국 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부자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며 "밟았을 때 꿈틀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며, 무생물체는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고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이어 "친북좌파들은 여론과 언론과 권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 하에서도 자신들의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계속해왔다"면서 "따라서 도덕적으로 봐서 싸우는 좌파는 안 싸우는 우파보다 우월하다"고 독특한 결론을 내렸다.

끝으로 조씨는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사는 사람들'"이라며 "2007년 대선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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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 “프랑스사태, 우파 정부의 오만…68세대 감성 건드려”

 

 

 

프랑스엔 ‘68’이 있고 한국엔 ‘광주’가 있지만...”
프랑스사태 ‘68의 재현?’…“한국, 이겨서 바꾼 경험 없다”
입력 :2006-04-15 09:39   민일성 (mini99999@dailyseop.com)기자
▲ 3월부터 프랑스를 뜨겁게 달군 CPE법률 반대시위가 68년 혁명의 재현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68혁명은 여전히 상존하는 그들의 정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YTN 화면 캡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빈민 청년 실업 해소를 내걸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최초고용계약제(CPE)가 결국 학생, 노조의 대대적인 시위에 무릎을 꿇었다.

프랑스 우파 정부는 지난 10일 CPE 철회를 발표했으며 국가의 역할을 대폭 강화한 대책을 발표했다. CPE를 내건 지난 10주간 프랑스 전국 200여 도시에서는 300여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철회를 촉구하며 연일 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크리넥스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온 프랑스 민중들의 분노와 외침은 한국 사회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 선 많은 국가들에게 무엇을 던져주는가.

이번 프랑스 사태에 대해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서용순(39)씨는 프랑스가 믿고 있는 평등과 보편적인 가치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것이며 신자유주의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서 씨는 <데일리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가 1968년 학생운동만큼 심각한 변화를 초래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특기할 만한 것은 학생들이 긴 침묵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며 “앞으로 신자유주의와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대중들의 투쟁은 더욱 격렬해지고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는 것, 대세로 보면 안 된다”며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신자유주의는 쉽지 않은 괴물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에 더 가둬놓고 감시해야지 방치해둬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자본주의는 완전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번 프랑스 사태는 상황은 계속 그대로만은 가지 않을 것이며 심각한 저항에 부딪히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서 씨는 지적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프랑스 혁명과 68운동 등을 통해 민중의 긍정의 힘을 경험해본 세대, 서열을 스스로 바꿔본 경험을 해봤던 이들이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서 다시 한번 긍정의 힘을 얻었다는 것이라고 서 씨는 주장했다.

서 씨는 “이 문제는 젊은 세대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던져주었고 그동안의 실패와 개인주의에서 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시위에 참여했던 당사자들의 의식의 변화를 초래했다”고 평가했다.

청년 실업을 희생양으로 기성세대들이 들이댄 ‘자본의 논리’

▲ 프랑스의 젊은이 300만명이 거리에 쏟아져 나왔다. CPE법률의 반대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이 운동은 결국 신자유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안티운동이 될 것이라고 프랑스 내부에선 전망하고 있다. ⓒYTN 화면 캡쳐 
최초고용계약법(CPE)은 20인 이상 사업장에서 26세 미만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용자는 최초 고용 2년간 특별한 사유나 설명 없이도 노동자를 자유로이 해고할 수 있는 법이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빈민지역 청년실업 완화를 위한 대책으로 들고 나왔지만 지난 10주간 범국민적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프랑스 실업률의 심각성에 대해 서 씨는 “프랑스는 2%의 저조한 성장률에 15년째 실업률이 15% 이하로 내려간 적이 별로 없다”며 “청년 실업률은 22%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자신의 이익은 내놓지 않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이유로 청년 실업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서 씨는 주장했다.

프랑스에서는 26세 이하는 해고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25세까지 일단 취업이 되면 고용 안정성이 유지된다. 그래서 기업이 해고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26세 이하의 젊은 세대를 고용을 하지 않는 것이 일반화됐다.

일부 언론이 대서특필하듯이 프랑스의 평생 고용제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서 씨는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나라가 어떻게 18%까지 실업률이 올라가느냐며 이는 명백한 정치적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서 씨는 “젊은 세대는 10년 전부터 취업에 대한 무지막지한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아왔고 그것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그런 세대간의 불균형, 불만 등이 이번 CPE 법안으로 완전 표면화됐다”고 말했다.

또한 프랑스 정치적 상황과 관련해 “드빌 팽 총리가 대선으로 노리고 CPE 법안을 자신의 치적을 삼으려 했고 타협과 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며 그는 “정치권에서도 지원 사격을 많이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과도하게 들이밀었던 드빌 팽 총리의 ‘자본의 논리’는 프랑스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 깨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침묵하는 한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 26세 미만의 최초 고용자는 2년간 고용주의 임의대로 해고가 가능하다는 CPE법에 반대하는 한 젊은이가 스프레이로 자신들의 의지를 담듯 표적을 그리고 있다. ⓒYTN 화면 캡쳐 
어찌 보면 젊은 층에 국한된 법안 하나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었을까. 철도 파업, 지하철 파업을 바라보는 우리와는 다른 모습에 대해 서 씨는 정치가 일상화된 프랑스 사회의 특성에서부터 풀어나갔다.

옛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드골 장군은 ‘프랑스 정치가 복잡하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프랑스는 매일매일 다른 치즈를 먹어도 일년 동안 같은 치즈를 먹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사람의 입맛이 그렇게 까다로운데 정치를 하는 것이 쉽겠느냐는 뜻으로 소개한 비유였다.

서 씨는 “이처럼 프랑스 사람들이 세세한 특성이 있기도 하지만 68운동 이후 이들의 의식에는 ‘내가 침묵하는 한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지킬 수 없다’는 생각이 박혀 있다”고 말했다.

또한 프랑스 사람들은 평상시에 보면 아무 생각도 안하는 것 같은데 일단 어떤 사안을 갖고 토론에 들어가면 말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 고등학생 아무나 붙들고 TV 인터뷰를 해도 자기 생각을 잘 말한다.

이는 “교육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서 씨는 “68운동이 던져 준 큰 효과는 대학을 국립화하고 통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프랑스 사태에서 자주 비견되고 있는 68운동은 1968년 5월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작은 대학인 낭떼르 분교 학생들의 시위에서 촉발되어 노동자계급의 다양한 부문이 참여한 전국적 운동이다. 모든 기성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미국과 서유럽뿐 아니라 체코나 유고 등의 동유럽과 남미, 파키스탄과 일본 등 아시아까지 퍼져나갔다.

프랑스 대학은 모두에게 열려 있다. 시험만 통과되면 거주지 중심으로 대학에 들어간다. 특수한 몇 개 엘리트 교육을 빼고는 대학이 평준화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적 의식이 사회에 많이 생겨났으며 이에 따라 평등 의식이 구체화되어 누구나 기회를 균등하게 갖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는 것이 서 씨의 설명이다. 그는 “공공의식이 높아졌다”며 “이 때문에 평등 마인드가 프랑스 머릿속에는 상당히 깊이 박혀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각인된 ‘침묵 하면 안 된다’ ‘나의 권리를 어떻게든 지킬 줄 안다’는 생각들이 표출된 것이 이번 프랑스 사태의 주관적인 측면이라고 서 씨는 설명했다.

이 모습은 지하철 파업이나 민주노총에서 총파업을 제기했을 때 남의 일로 보는 우리 사회와 대조된다. “언론에서 유도하는 ‘시민 볼모론’이 먹히는데 사실 ‘시민 볼모론’ 자체가 시민들의 화합의 발목을 잡는 ‘시민 볼모론’”이라며 서씨는 “자신의 권리에 대한 의식이 없는 한국에서는 생존권을 지켜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서 씨는 “26세 미만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CPE 법안 하나에 300만명이 쏟아져 나오는 프랑스와 공권력이 투입되고 ‘시민 볼모론’이 대두되면 수그러드는 한국은 분명히 다르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객관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프랑스 민중들이 10년 넘게 우파 정부의 정책을 막아내지 못하고 밀리면서 강화된 위기의식이다. 서 씨는 “교육개혁을 좌절시킨 것, 연금법안 저지 다 실패했다”며 “계속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에 계속 밀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파 정부가 내놓은 CPE는 완전히 젊은 사람들을 언제든지 고용했다가 버릴 수 있다는 법안으로 들린다”며 서씨는 “거기서 ‘우리는 크리넥스가 아니다’라는 외침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내에 위기의식이 팽배해져 ‘다 줘도 이것은 안된다’는 문제 의식이 확산됐다는 것. 그것이 바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300만명의 힘이었다.

“복지는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당연한 국민의 권리”

프랑스 복지국가의 개념은 공교육을 토대로 평등 의식이 고양되면서부터 시작됐다. 80년대부터 자기 형태를 잡아나가 프랑스 사회주의 모델이 완성됐다.

물론 문제도 많아 많은 부분 개혁도 필요하지만 복지는 국가에서 던져주는 선물이 아니라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라는 인식이 민중들에게 명확하게 자리 잡았다.

서 씨는 “우리는 국가에서 복지정책을 하면 인정을 베풀어준다고 생각하는 데 그것은 ‘거지 근성’”이라며 “프랑스 사람들은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CPE 같은 법안을 던져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모욕으로 다가온다는 것.

그는 “300만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고 과격 시위를 하는 이유가 ‘사실상 나쁜 놈들, 가장 폭력적인 것은 우리가 아니고 너희들(프랑스 정부)이다. 사람을 완전히 기계로 대했다. 휴지조각으로 대한 것이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느냐, 보편적 가치를 침해한 것으로 느끼고 분노하느냐는 ‘역사의 계속성’에 의해 갈라진다는 것.

서 씨는 구체적 예를 소개하며 프랑스인들을 움직이게 한 힘의 근본에 대해 설명했다. 시위대들이 소르본 대학을 점거해 경찰이 이들을 해산시켰는데 그 때 몇몇 대학 총장들은 총리에게 ‘법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편지를 썼다. 파리 10대학을 400명의 학생들이 점거했을 때도 30여명의 교수들은 학생들의 점거시위에 동참했다.

서 씨는 “이러한 행동의 의미는 이번 대규모 시위가 학생들을 동정하거나 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가 믿고 있는 평등과 보편적인 가치 때문”으로 “이것이 사람들을 거리로 움직이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87이 바꾼 것이 많은가 IMF가 바꾼 것이 많은가”

서 씨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닌데 한국에서는 이번 문제를 프랑스 외국인 노동자 문제나 태국의 탁신 총리 실각 문제보다 더 작게 보도했다”며 “한국에서 CPE와 비슷한 법안이 얼마전 통과되기도 했고 의도된 바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싸움을 꾸준히 해왔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또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다”면서 “싸움을 제대로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이번 프랑스 사태를 곱씹어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서 씨는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충고를 이어갔다. “대중의 자발성이 없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면서 “단위노조가 투쟁을 끌어간다는 것은 이미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모든 사람의 문제이기에 노조 연합체 단위에서도 담아낼 수 없는 문제”라며 “노조 단위가 정치전방위를 선도해서 될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의 좌파도 이미 대중운동의 성공을 뺏어가는 집단으로 인식돼 선거에서의 좌파 승리가 선거의 결과일 뿐 결국은 우파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민중들 사이에 팽배해진 생각이라고 말했다. ‘투표는 희망이다’는 말도 다 옛말로 대세를 뒤집는 방법은 대중의 자발성밖에 없다는 것.

또한 대중의 자발성이 나올 수 있는 환경으로 서 씨는 “이겨본 경험, 이겨서 서열을 바꿔본 긍정적인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80년대 이후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87이 바꾼 것이 많은가 IMF가 바꾼 것이 많은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며 서 씨는 “한국은 져서 많이 바뀌었지 이겨서 바뀐 경험이 적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 씨는 “프랑스의 긍정의 힘은 68 이후에 다 나오지만 프랑스의 68을 환상이나 신기루, 향수로 볼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그 사건으로 말미암은 일회성의 변화가 아니라 그 변화가 던져준 교훈을 계속해서 삶으로 피워 나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그렇게 68 이후의 현실은 계속되며 더 올라가 프랑스 혁명의 현실은 계속된다”며 강조했다. 그는 “그것이 바로 정치가 삶이 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프랑스에게 68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광주가 있다. 그러나 광주는 우리의 삶 속에서 계속되고 있는가.

서 씨는 “1980년 5월 사건으로 감화를 받고 정치투쟁을 하고 주체가 됐던 사람들이 과연 여전히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는가는 의문”이라며 “광주가 우리에게 과연 있는가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 68운동의 배신자들도 많지만 자신의 것으로 생각했던 권리, 평등 등 보편적 가치는 그대로 후세대들에게 물려줬다”며 “이런 가치들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의 광주는 용어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채 그 정신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서 씨는 아쉬움을 표했다.

얼마 전까지 프랑스 사태를 직접 보고 온 서용순 박사는 프랑스에서 바디우 지도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재 철학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으며 진리와 주체적 정치를 위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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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20세기 후반 내내 복지국가 운영 경험”
입력 :2006-04-15 09:38   민일성 (mini99999@dailyseop.com)기자
▲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자료사진). ⓒ 2005 데일리서프라이즈 최고다 기자 
홍윤기 동국대 철학과 교수는 “프랑스의 이번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지국가 운영’을 국시로 표방하며 20세기 후반을 보내온 서유럽 국가의 사회 체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데일리서프라이즈>와의 인터뷰에서 “서유럽의 경우 2차 대전 이후 거의 반세기인 20세기 후반 내내 ‘복지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이 국시였다”며 “프랑스의 경우 복지 예산이 60%에 달하며 서유럽국가 중에는 70, 80%를 넘어서는 국가도 많다”고 지적했다.

복지국가 체제에서는 돈을 벌면 이익을 세금으로 국가에 모아 놓고 국가가 국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 운영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 홍 교수는 “스웨덴의 경우 최대 갑부의 개인 재산이 800억원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맘먹고 국가에 헌납하는 재산이 8000억원이라는 것에서 비교가 된다”며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를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했다.

“국가의 복지 정책도 우리나라처럼 ‘국가의 덕 좀 봤다’는 식이 아니다”면서 홍 교수는 “우리나라는 복지 예산이 25%정도 밖에 안 되는데 복지 예산 하나 늘이는 것도 굴욕감을 주면서 찔끔찔끔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국은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복지에서부터 부동산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목소리가 많아 국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홍 교수는 차이를 지적했다.

이러한 복지국가를 국시로 삼고 삶의 형태를 만들어온 68세대가 프랑스의 저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의 근간이 됐다는 것.

홍 교수는 “프랑스 사회의 저변에는 진보적 의식이 고착돼 있다”며 “사회 저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68세대는 사회적 민주주의를 통해 복지 국가를 실제로 운영해 본 경험을 갖고 있고 복지 국가로 생활기반을 닦았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이들의 특성에 대해 좀더 설명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는 제국주의는 몰아냈으나 민주화와 자유화는 제대로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1968년 학생혁명 이후 기득권 전면 청산으로 서유럽의 오랜 꿈인 민주화와 자유화가 완전히 현실화됐다.

그 구체적 내용으로 홍 교수는 “서구세력의 반동세력인 제국주의, 파시즘, 불필요하게 완고한 보수주의의 정치적 청산, 정치적으로는 평등 개념 실현, 사회적으로는 자유화 분위기”라며 “현실화의 결정적인 역할 한 것이 68세대”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복지국가 체제는 국가의 수혜 차원이 아닌 프랑스인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삶의 질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중앙정부 예산의 60% 가량이 국민 개개인의 삶의 떠받들어 주고 있는 체제이다.

“신자유주의, 돈에 모든 삶의 질, 보편적 가치를 종속시켜”

그러나 20세기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가의 부를 몇몇 기업에게 몰아주자는 해결책을 내놨으며 이것이 프랑스 국민들의 생활기반을 전면적으로 뒤흔들게 된다.

“저성장, 높은 실업률, 과도한 복지 예산 등 복지국가의 병폐가 있지만 프랑스는 지금까지 해서 삶의 질의 하락과 신자유주의에 의한 오염의 질을 받아들일 감성이 안 되어 있다”며 홍 교수는 “사회 저변의 진보적 지축을 통해 움직이는 서유럽 국민들의 근본적인 감성을 우파 정부가 이번에 건드린 것”이라고 이번 프랑스 사태를 진단했다.

“68 체제가 운영하고 있던 복지국가 체계에서도 국가의 실패가 있다”며 “그 때문에 프랑스 국민들은 우파 정부의 ‘손질’에 대해 거의 저항다운 저항을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비정규직 법안은 이전의 ‘손질’과는 차원이 다른 국가의 실패를 치유하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으로 “사람들을 완전히 기업의 푸들로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프랑스 시민들이 갖고 있는 삶의 기반과 자존심을 근본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홍 교수는 “분명한 우파 정권의 오만”으로 “우파 정부가 많은 부분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동안의 부분적 치유에 대해 고무돼 오버를 했다”고 말했다.

“작년에 유럽연합 헌법 국민투표를 거부했던 것도 근본적인 감성을 건드렸기 때문”이라며 홍 교수는 “국가적 차원에서 쌓아온 복지국가의 체계를 흔든다고 보았기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세계화를 하려고 했을 때 한계를 여지없이 보여준 것으로 68운동 세대와 부딪힌 것”이라고 홍 교수는 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서유럽의 진보 좌파는 복지 국가 체제에 기반을 둔 세력이기에 동유럽 국가의 사회주의에 복속된 사람들과는 의식의 질이 다르다”며 “강력한 시민 의식과 자기 삶의 조건에 대해 투철한 의식 갖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치적 억압 속에서 반세기를 보낸 사람들과는 질이 다르다”고 동유럽과 서유럽을 구분해 설명했다.

한미FTA 협상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한국의 경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철학에 대한 물음에 먼저 답해야 한다고 홍 교수는 지적했다.

“미국과의 거래에서 돈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그는 “ FTA나 신자유주의나 이익에 다른 것을 다 종속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익은 반드시 보는 사람만 보며 또한 이익이 있으면 손해가 있기 마련으로 이익만 보는 거래는 있을 수 없다”며 홍 교수는 “이익을 보고 난 후 지불해야 할 삶의 비용을 투명하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한미 FTA 협상 과정을 투명하게 해야 하며 협상을 통해 얻은 이익이 얼마만큼 어떻게 삶의 질을 지배하는가를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파병 문제에서도 정부는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하면서 투명하게 공개한 부분이 없었다며 홍 교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정치권의 질이 문제”라면서 “ 정부는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고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부한테 굳은 일 다 맡겨놓고 ‘나 몰라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국민들이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투명성과 삶의 질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한다”며 “돈을 안 갖다 줘도 좋으니 우리 삶의 수준을 제대로이야기 해주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관/련/기/사
“프랑스엔 ‘68’이 있고 한국엔 ‘광주’가 있지만...” /민일성 기자
프랑스 ‘최초고용계약제’ 철회 /이성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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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비정규직이라도 원하는 사람, 막을 권리 없다”

몸팔겠다는 사람, 막을 권리 없다.

 

아래 명제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런 인간이 노동 운동 했다고...

이런 인간이 법을 만든다니...

 

 

이목희 “비정규직이라도 원하는 사람, 막을 권리 없다”
[대정부질문] 비정규직3법 두고 노동계·민노당 반발에 불편한 심기 드러내
입력 :2006-04-12 22:01   권대경,최한성 (kwondk@dailyseop.com)기자
▲ 12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한덕수 총리대행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박항구 기자 
국회 대정부질문 경제분야에서 여야는 외환은행 론스타에 부실 매각 의혹과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특히 한나라당은 외환은행 매각이 국부유출의 중대한 사건이라는 전제하에 외환은행의 BIS조작 의혹을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12일 대정부질문 한나라당의 첫번째 주자로 나선 김성조 의원은 “외국기업에 매각을 할 수는 있지만 매각을 위해 BIS비율을 조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조작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고, 답변에 나선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당시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BIS비율을 조작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또 “외환은행장은 매각을 도운 대가로 17억의 부당이익을 챙긴 것으로 보도됐던 같은 시각에 외환카드 근무자 상당수는 길거리로 나왔다. (이같은 현상이)양극화가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 부총리는 “당시 직장을 잃은 이들에게는 개인적으로 가슴이 아프다. 임원이나 담당자들이 받은 보상의 적절성 여부는 이미 국회가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했고, 검찰에도 수사를 요청했다. 법적으로 위반사항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재엽 한나라당 의원은 정부의 FTA정책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단기대책이 나왔고 중장기 대책은 연말에 나온다 한다. 그럼에도 FTA를 3월 말에 마무리 하겠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한 부총리는 “농업에 대한 장기적인 육성대책은 만들어져 있다. 앞으로 협상하게 되면 어떤 결론을 갖고 협상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에 반해 열린우리당 의원은 방향을 틀어 론스타의 수익에 과세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정부도 긍정적으로 고려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는 무엇보다 이목희 열린우리당 의원이 비정규직 3법 입법을 두고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의 반대에 불편한 심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이 의원은 “일부 노동계와 민주노동당의 소수 강경파들이 아직도 (비정규직 3법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량실직이 초래되는 사전사용사유제한을 수용하라며 반의회주의적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참으로 안타깝다. 대부분의 비정규직을 실업자로 만드는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라고 일축했다.

이 의원은 또 “물론 비정규직 일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비정규직으로라도 취업해서 생계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권리를 막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정규직법안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이 의원의 질문에 한 경제부총리는 “차별금지와 남용을 방지할 균형 잡힌 법안이라 생각한다. 차별시정 효과는 내년부터 일부 나타날 것이다”며 “기업규모별 단계적 시행 때문에 중기 근로자들에게는 시간을 두고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의 차별시정 효과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4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은 13일 교육·사회·문화 분야를 끝으로 4일간의 일정을 마치게 된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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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조선 11일자 사설, 특정후보 옹호하는 언론의 장난질”

바로 이런걸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진중권 “조선 11일자 사설, 특정후보 옹호하는 언론의 장난질”
12일 SBS컬럼 “근거 찾다 없으니 근거도 미제를 수입해 사용”
입력 :2006-04-12 11:44   조은영 (helloey@dailyseop.com)기자
▲ 진중권 시사평론가.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민원기 기자 
“‘서울 시장 선거는 미래 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라는 제목의 11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언론이 어떻게 독자의 얼을 빼놓는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예이다.”

시사평론가 진중권씨는 12일 자신이 진행을 맡고 있는 ‘진중권의 SBS 전망대’를 통해 ‘서울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서울시장이야말로 미래의 대통령감’이라는 부당한 전제가 깔린 11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이 사설이 서울시는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축소판이자 대한민국에 열려 있는 가능성의 집합체이기에, 서울시장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내고, 서울의 잠재력을 현재화하는 능력을 발휘한다면 그에게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십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는 의견을 싣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시장이 이런 중차대한 의미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정치 패션’ ‘미디어 노출도’가 높은 인물을 내세워 표 줍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여야 모두를 비판하고 있어 공정하고 타당한 시각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사설이 말하고 싶은 본질은 그게 아니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미래의 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재의 서울 지도자를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씨에 따르면 “이런 사설의 바탕에는 서울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서울시장이야말로 미래의 대통령감’이라는 부당한 전제가 깔려 있는 것으로 그 분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짐작들 하실 것”이라며 언론에서는 주로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친다며 조소를 보냈다.

그는 “조선일보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미 카터 이후 현재까지 5명의 미 대통령 중 4명이 주지사 출신이라는 미국의 예를 들고 있다”며 “근거를 찾다가 없다 보니 근거도 미제를 수입해다 쓰고 있다”며 씁쓸해 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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