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법 개정’ 촉구 시위 | ||
<앵커 멘트>
오늘 노동절을 맞은 미국에서는 인도적인 이민법개정을 촉구하는 시위로 전국이 몸살을 앓고있습니다.
한인상가들은 상당수 철시했습니다.
김정훈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시위대는 자신들은 미국경제를 떠받치는 성실한 근로자이지 범죄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로스엔젤레스,시카고 등 대부분의 대도시에서 라틴계와 아시아계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집회에 나서고있습니다.
천 2백만 불법체류자들이 합법적 신분으로 일할 수있도록 이민법을 조속히 개정하라는 것입니다.
<인터뷰> 메사(불법 체류자) : "내 요구를 말할 권리가 있고 그들은 들어야 합니다. 나는 일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릴리나(학생) : "가족이 같이 살아야해요. 그들이 떠나면 안 됩니다."
특히 불법체류자가 가장 많은 로스엔젤레스에서는 10만 이상의 인파가 참석한가운데 시청앞 집회를 마친뒤 거리행진에 나섰습니다.
L.A한인상가와 제조업체 등 이 일대 사업장은 라틴계 종업원들의 집회참여로 상당수 문을 닫았습니다.
<인터뷰> 제이 리(제조업) : "친구들이 참여하기를 원하니까 협조하는 방향으로 가고있습니다."
현재 부시행정부는 불법체류자들이 일단 조국으로 돌아가 일정한 벌금을 낸뒤 합법적인 비자를 받아 미국에서 일하도록하는 내용의 이민법을 내놓고있습니다.
시위대는 그러나 불법체류자의 일시귀국조치는 이산가족을 낳게하고 현실성도 없다면서 적극 반대하고 있습니다.
로스엔젤레스에서 KBS 뉴스 김정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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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김정훈 기자 입력시간 : 2007.05.02 (09:24) |
'단속추방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117주년 노동절 맞이 이주노동자 결의대회'가 MTU(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 공동체 공동 주최로 4월 29일 오후 2시30분에 서울역 광장에서 개최했습니다.
이날 이주노동자 결의대회에 민주노총 서울본부, 전비연,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 네팔공동체연합, 버마행동, 필리핀 공동체, 방글라데시공동체, 스리랑카 공동체, 인도네시아 공동체, 민주노동당 지역단위, 다함께, 사회진보연대, 전학투위, 노학연, 해방이화, 고려대~, 메이데이실천단 등 500여명이 참가하였습니다.
결의대회 후 참가자들은 명동성당 앞까지 가두 행진을 하고 마무리 집회를 하였고,이후 이주 동지들은 간단한 뒷풀이를 더불어 일찍 메이데이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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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7일) 저녁에 민주노동당 고양시위원회 사무실에서 고양파주이주연대가 주최하는 토론회가 있었다. 토론회의 주제는 '여수참사가 남긴 것들'이다. 연사로 나와 네덜란드 활동가 Jan Paul Smit가 참여하였다. 나는 이미 여수에서 그와 함께 비슷한 주제의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어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그때는 그냥 지나갔던 이야기들이 새롭게 들어오는 것도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불법일 수 있나?"는 그의 말은 지금의 미등록이주노동자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말이다. 옛말에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죄는 없어도 사람은 미워하라'는 짝이다.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아니 오히려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서 공동체에 공헌하였음에도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받아야한다는 것은 만약 같은 한국인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커다란 문제가 되었을 일들이다.
하지만 어제 토론회에서도 합법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가 있었던 것처럼 아직 이 문제는 공감대를 더 넓혀야 하는 과제가 있다.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쉬는 날이지만 아침 일찍 일어났다. 장애인들이 유시민 장관 집 앞에서 농성투쟁 중이라 아침 선전전 지원을 나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약속시간인 7시에 맞춰 도착하니 정경화, 최영희가 맞이한다. 텐트농성 중인 장애인 동지들과도 간단히 인사를 하고 선전전에 참여하였다. 장소는 유시민 장관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이다. 전경들이 진입을 막았으나 장애인 동지들이 전동휠체어를 그대로 몰아서 유시민 집 앞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어제는 1인 시위도 못하게 했는데 오늘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제대로 막지 못했나보다. 전경들은 겨우겨우 아파트 현관 앞에서 더 이상의 진입을 막고 섰다. 그때문에 마침 출근하려던 주민들이 문이 막혀 잠시동안 발을 동동 거려야했다. 사실 이런 방식의 투쟁은 좀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정해진 계획도 없이 무작정 유시민 얼굴을 직접 보겠다는 마음으로 돌진하는 식이다. 한참 몸싸움 중에 살짝 물어보니 유시민 장관이 사는 집의 호수도 잘 모른다. 그래도 장애인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비장애인으로써 이런 투쟁 방식 역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왔으니까. 주민들 중에 어떤 분은 '데모 하는 것은 좋은데 이렇게 하면 안되지'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 분이 정말로 데모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잠깐 동안이라도 생각해보셨기를 바란다.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허세욱씨가 결국 돌아가셨다. 이 정권하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야 하는 것인지....여수에서 2달여간 장례식장에 있었는데 또 다시 장례식장이라니....기가 막힌다.
오늘은 여수에서 올라와 처음으로 파주사무실엘 나갔다. 파주사무실은 공부방 책이 빠져나간 것 외에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한글교실이 있었고 언제나 열심이신 자원활동가들과 이주노동자들 몇 명이 찾아왔다. 오늘은 안산에서 스리랑카 신년축제가 있었고 크리켓 경기도 겹쳐 대여섯명 밖에 오지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저녁에는 김준휘 선생님이 리포트 작성을 위한 인터뷰를 하면서 식사를 쏘셔서 동석하며 저녁을 얻어먹었다.
여수에서 올라온 지도 얼마 안되었는데 요즘 연일 단속 소식이 들려온다.
어제는 와치사라 스님이 일산 가좌동에서 단속된 스리랑카 노동자를 빼낼 방법이 없냐고 물어오더니, 오늘은 당원 한 분이 농장에서 6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잡혔다며 역시 방법이 없냐고 물어오셨다. 나는 보호일시해제가 되는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에 대해서 설명해드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좌동에서 잡힌 스리랑카 노동자는 부인이 현재 임신 중이라 더욱 안타까운 처지이다. 다른 센터에서 일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임신 8개월 이상이면 비행기를 이용하기 어렵다는 의사 소견서를 받을 수 있어 보호일시해제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얼핏 듣기에는 임신 6개월이라고 들었는데 8개월이면 되고 6개월이면 안되는건가?
이주노동자가 내국인의 일자리를 뺏는 존재라면, 여성은 남성들의 일자리를 뺏는 존재이고 앞으로 남북통일도 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
"불타버린 10개의 코리안 드림”
이번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로 희생된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표현하는 말이다. 중국과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들은 한국에 와서 일하면 잘살 수 있게 될 거라는 ‘코리안드림’을 품고 이 땅에 발을 내딛었다. 마치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이나 ‘중동 붐’을 쫓았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꿈을 채 이루기도 전에 이들은 ‘불법체류자’라는 딱지가 붙어 하루하루를 숨죽여 지내야했다.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다 갚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에는 한국정부가 허가해준 체류기간이 너무 짧았다. 일거리가 줄어들어 사장님이 소개해준 다른 곳으로 가서 일하다가 허가된 업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하던 것도 잠시 뿐이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단속반에게 백주대낮 길거리에서 아니면 잠자던 숙소에서 끌려나와 마치 흑인노예들처럼 수갑을 차고 줄줄이 차에 실려 ‘보호소’라는 곳으로 보내졌다.
‘보호소’는 말이 ‘보호’였지 사실상 ‘수용소’였다. 두꺼운 철창으로 막힌 좁은 공간은 24시간 CCTV로 감시되었고, 유일하게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건 한 달에 한두 번 30분씩 주어지는 운동시간 뿐이었다. 일하던 곳에서 받지 못한 체불임금 등 고충을 이야기하였지만 어떻게 처리되는지 감감무소식이었다. 심지어 체불임금이 입금되었는데도 알려주지 않아 출국하지 않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사고가 난 날, 매캐한 연기에 모두들 일어나서 철창문을 붙들고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쳤지만 연기가 나고 9분이 지나서야 경비용역 직원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도 문을 열지는 않고 소화기만 몇 번 뿌리더니 그냥 가버렸다. 그리고는 이후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연기가 점점 심해져서 모두들 화장실로 대피하였다. 화장실 물을 틀어 수건을 적셔 입을 막았지만 점점 숨이 막혀왔다. 결국 이렇게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만약 직원들이 문만 열어주었다면 아무도 죽거나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화재가 난 3층 보호실에는 직원들이 아예 없었다. 직원들은 규정을 어기고 자기위치에 있지 않았고 경비용역직원만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열쇠를 들고 3층으로 올라갔고 그때조차 첫 번째 방만 문을 열고 2층 보호실에 다시 가둔 후에 다른 방을 열기 위해 3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연기가 가득차서 보호실로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사고가 난 여수외국인보호소는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2005년에 문을 열자마자 이미 화재사고가 한 번 발생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 이후에 이렇다할 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 화재경보기는 고장난 상태였고,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보호실 바닥은 가연성 소재로 만들어진 우레탄장판이 깔려있었고, 환기시설도 형편없었다. 또한 보호실과 보호실 사이의 벽이 설계도와 달리 시멘트벽이 아니라 쇠창살과 목재책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화재가 더욱 빨리 확산되었다.
하지만 사고를 조사한 경찰은 이런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화재의 원인이 방화일 가능성이 있다는 쪽으로 관심을 몰아갔다. 언론들도 여기에 동조해 각종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했다. 결국 경찰은 화재원인을 보호외국인 중 한명의 방화로 최종결론을 내렸으나 확실한 증거를 내세우지는 못하고 여러 정황증거만을 제시했을 뿐이다.
반면 역시 2005년에 보호소 화재가 발생하여 11명이 사망한 네덜란드에서는 1년여 간의 철저한 진상조사 끝에 2명의 장관과 1명의 시장이 사퇴하였다. 이 사고에서도 방화여부가 논란이 되었으나 최종 조사결과는 ‘불은 언제나 날 수 있지만 희생자가 많이 발생한 것은 다른 원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다른 원인들이란 미숙한 초기대응, 화재발생에 취약한 건물구조 등이었다.
여수참사 역시 네덜란드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방화용의자가 살아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느냐 아니면 사망해서 그럴 수 없었냐가 달랐다.
여수참사가 발생한 지 2달째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건은 보호외국인 중 한명이 방화한 사건이고 하급공무원 몇 명만이 처벌되었을 뿐이다. 전국 보호소에 대한 실태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되었지만 2005년에도 이미 국가인권위에서 실태조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보호소의 문제는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단지 행정서류 미비자에 불과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형사범처럼 아니 오히려 그 보다 못하게 대우하는 현재의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합법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2003년에 지구당 사무국장을 하던 시절 위원장님으로 모셨던 유기수 전위원장님은 현재 대구 교도소에 계시다.
건설연맹 사무처장으로 지난 포항건설노동자 투쟁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시다 검거되어 1심에서 실형 2년을 받고
6개월 넘게 복역 중이시다.
오늘은 유기수 위원장님을 면회가는 날이다.
2003년에 각각 지구당 부위원장님이시던 곽장영, 이 준 이렇게 두 분도 함께 가셨다.
곽부위원장님은 서울 고속터미널에서 만나서 함께 버스를 타고 내려갔고
이 준 부위원장님은 댁이 경남 산청이신지라 바로 대구교도소로 오셨다.
대구교도소는 평일인데도 면회객으로 붐볐다. 아마도 설연휴가 얼마남지 않은지라 그런 것 같았다.
한 20분을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어 면회를 하였다.
유기수 위원장님은 먼저 면회를 다녀온 당원들의 말대로 살이 쪽 빠지셔서 얼핏보면 대학생처럼 보일정도로 젊어 보이셨다.
안에서 게으르지 않게 생활을 열심히 하셨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지어진 최신식 시설의 포항교도소에 계시다가 가장 오래된 낙후된 시설의 이 곳 대구교도소로 오시니
불편한 점도 많으신 것 같았다. 가장 큰 불만은 운동장은 좁고 수용인은 많아 운동을 거의 할 수가 없다는 것.
워낙 운동을 좋아 하는 유위원장님이신지라 무척 답답하신 듯 했다.
그리고 포항교도소는 최근에 지어져서 난방이 잘 되는데 반해 이곳은 난방이 되지 않아
처음 이감와서 기온이 많이 떨어졌을때는 무척 추웠다고 한다. 그래도 엊그제부터 날이 많이 풀려서 다행이다.
그 외에도 화장실이 너무 좁은 점, 독방에 있다가 혼거방에 오게되어 책을 많이 볼 수 없는 점 등도 불편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유위원장님 특유의 낙천성과 유머러스함으로 인해 그런 어려움도 별로 대수롭지 않으신 듯 했다.
오히려 여러 문제점들을 "이거 다 뜯어고쳐야 돼"라고 말하시는 것에 대해
면회를 간 우리들이 이구동성으로 "뭘 뜯어고쳐요 빨리 나와야지"라고 말했을 정도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으나 면회객들이 많아 규정에 나와있는대로 딱 5분만에 면회가 끝이 나버렸다.
하루를 거의 다 투자해서 내려간 것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면회시간에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접견장을 나왔다.
못다한 이야기는 편지로 하고 더 못다한 이야기는 빨리 나오시면 그 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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