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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조중동! 한국인이 만만하니!

몹쓸 조중동! 한국인이 만만하니!

 

 

‘몹쓸 광우병! 한국인이 만만하니!’ 동아일보는 작년 3월 23일 이렇게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협상 대상일 될 수 없다’. 중앙일보는 2004년 1월 28일날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의 종폭된 (광우병에 대한) 불안감 뒤에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2003년 12월 29일 조선일보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배꼽을 움켜쥐었다. 요즘, 네티즌들의 용어중 하나인 ‘열사’목록에 중앙일보가 추가되었다 하는데, 내용인즉 중앙일보의 취재기자와 인턴기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사진을 찍어놓고 ‘미국산 쇠고기 1인분에 1700원’이란 기사를 내보냈다는 거다.

 

그러면서, 손님들이 열심히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있다고 부연설명까지 해주는 중앙일보의 센스!

 

이러니 국민들이 ‘조중동’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니네들(조중동)이 신문이면 우리집 두루마리 화장지가 팔만대장경’이 라나!

 

‘조중동’ 불매 소비자운동을 펼친, 네티즌 20명에 대해서 검찰이 출국금지를 취했단다. ‘조중동’이 쓰면, 한나라당이 읽고, 청와대의 ‘땅동관’님께서 노래하고 검찰과 경찰이 실행하는 대한민국 권력구조의 실상이 낱낱이 공개된거다.

 

네티즌들은 수군거린다. ‘우리. 조중동 안보면 이제 잡혀가는 거니!’ 그래서 네티즌들이 불매운동에서 방향을 180도 수정했단다. ‘조중동 불매운동’에서 ‘조중동 칭찬하기 운동’으로!

 

그래선가! ‘조중동’은 국민들이 정말로 만만한가보다. 어제도, 오늘도 자신들의 모습은 돌아봄도 없이 계속해서 국민들을 협박한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를 들고서, 국민들을 폭도라고 협박하고 심지어 동아일보께서는 ‘폭력세력’과는 대화하지 말랜다.

 

그러나, 국민들을 만만하게 보는 ‘조중동’을 시대를 역주행하는 우를 범했다. 자신들만이 여론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 수직적인 낭떠러지 비행을 하지만, 요즘 국민들은 8차선 쌍방향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이 결과물이 나왔다.

 

조중동의 신문시장 점유율이 처음으로 50%대로 떨어졌다. 방송,포털, 신문등 언론매체의 영향력에서 신문은 꼴등으로 나타났다.

 

 

유신과 5공시절의 향수에 도취돼 아예, 그시절로 역주행해버린 ‘조중동’ 언론권력의 착시현상이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요즘, 개인적으로 즐겁다. ‘조중동 칭찬하기 운동’을 벌이는 네티즌들을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  난 오늘 한건했다. ‘조중동’을 칭찬한 결과 평소 다니던 식당에서 한건했다.

 

영어몰입결과 ‘몹쓸 광우병’에서 ‘알라뷰 미국산쇠고기’로 전향한 ‘조중동’, 이래도 국민들이 만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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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칸 부자가 한칸 가난뱅이에게 고통을 전담하라고!

아흔아홉칸 부자가 한칸 가난뱅이에게 고통을 전담하라고!

 

 

‘지금 받는 월급이 백오십만원 정도 하는데요. 팔십오만원 받는 정규직으로 하던지, 백십만원 받는 일용직으로 하던지 선택하래요. 노무사가 와서는 설명회를 한답시고,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어쩔수 없이 해고될 수밖에 없데요’.

 

 오십을 훌쩍 넘긴 이 아저씨가 한숨을 내쉰다. 이 아저씨는 제천의 한 노인요양 보호시설에서 근무한다.

여기만이 아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충주의 한 노인요양보호시설에서도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요양원의 사측은 노동조합에게 50%의 임금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노인요양보호시설에서 동일한 일들이 발생한 걸까!

 

배경은 '노인장기요양보호법'이 이달부터 시행된다는 거다. 노인보호시설의 사업주들은 이를 이유로 파격적인 임금삭감을 요구한다. 이 제도의 시행에 따라서 기존에 지자체에서 지원되던 것도 사라지고, 오로지 몇 명을 돌보았느냐는 실적에 따라서 수익이 결정되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 거다.

 

참 편하다. 편하다 못해 뻔뻔하다. 하루아침에 월급을 반토막 내겠다는 파격적인 제안도 그렇지만, 수년간, 많게는 십수년간 ‘봉사의 나눔의 미덕’으로 함께 한 사람들에게 ‘싫으면 나가’라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걸까!

 

노무현 정부의 지극한  ‘노동자 사랑’ 덕으로 결실을 맺은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된지 딱 1년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참담’ 그 자체이고, 자본과 사용자들에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0개월 계약서’등 이름도 듣도 못한 근로계약서가 등장했고, 외주화, 용역 같은 간접고용노동자만 양산됐다. 같은 시기 정규직 대비 비정규노동자들의 임금도 2% 가량 줄어들었다. 애꿋게 그나마 직접고용비정규직으로 있던 일자리조차도 쫓겨났다. 통계는 형용수사가 들어가지 않는다. 수치로만 애기할 뿐이다.

 

‘비정규노동자 보호법’ 시행 후 1년의 통계는 묵묵히 말해준다. ‘비정규노동자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노동자 보호말살법’임을!

 

세상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명박산성’에 은신해 ‘수도승’의 길을 걷는 MB 정부가 또 한건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해서 현재의 비정규직 사용제한기간인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겠다는 거다. 2년으로 제한하니까 2년만에 해고되는 사태가 발생하니까 이를 위해서 3년으로 연장하면 그만큼 보호가 된다는 주장이다.

 

명분은 ‘보호’지만 결론적으론 아흔아홉칸 부잣집 소출이 걱정되니까 한칸 가난뱅이집 보릿쌀 한되를 내놓으라고 거다.

 

지금, ‘가진자’들과 ‘위정자’들의 ‘말의 성찬’이 정말로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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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와 ‘화물연대 노동자’, 그리고 우리

‘다음 아고라’와 ‘화물연대 노동자’, 그리고 우리

 

 

오늘, 한 노동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거뒀다. 산다는 건 힘든거고 치열한 거다. 저마다의 삶의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아니 확장하기 위해, 아니 때론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전쟁을 치른다. 영어로된 원문조차 공개하지 못하면서 90점짜리 라고 자화자찬 하는 그 통상교섭본부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조차도 어찌보면 자신의 자리, 밥이 나오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오늘도 누군가를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것일수도...

 

“oo 펄프에서는 처음부터 제품비용과 별도로 운송료를 책정해서 지급을 해요. 톤당 오천원을 보조해 줘요. 회사는 그거에서 우리한테 반반 줘요. 그것도 지난 오월말에 이천원을 인상해줬어요. 근데, 우리가 요구하는 것만틈 운송료를 인상해주면 회사가 망한다 해요. 우리는 oo 펄프에서 책정한 운송료를 다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은 밥 때문에 싸운다. 내가 엊그제 만난 화물 노동자도 밥 때문에 싸운다. 살기위해서!

 

밥이 왔다. '다음 아고라' 회원들이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파업투쟁 현장에  보낸 밥이다.(참고로 화물연대 파업은 끝난게 아니다. 사업장별로 운송료 협상이 타결이 되지 않은 곳은 현재도 파업을 진행중에 있다. 오늘까지 제천지역에 한 시멘트 제조 사업장, 충주 지역에 두군데의 사업장에서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저씨들은 밥을 먹는다. 영문조차 제대로 모른다. "아저씨! '다음 아고라'에서 보낸 밥인데 그게 뭔지 아세요!" 하고 물어 봤더니 모른댄다. 그냥 부연해준다. ‘아저씨들이 광우병 소고기 운반 안한다고 해서, 그걸 지지하는 사람들이 보내준 밥인데, 그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는 인터넷 공간이 ’다음 아고라‘라고 하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자신의 밥을 지키기 위해서 전쟁처럼 싸우는 것만은 아니다. 손을 내민다. 생면 부지의 사람들이 내민 손을 잡으면 다 같이 '우리'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연대'라고 부른다.

 

반대 급부도 있다.  밥 많이 가진 사람들이 지키기 위해 뭉친다. 자신이 먹고 자기 아들이 먹고 온 일가친척이 먹고도 남을 것을 가진 사람들이 똘똘 뭉친다. 나는 이것을 ‘패거리 담합’이라고 부른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많은 것을 가져서 지켜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들도 연대한다. 한쪽에선 손을 내밀어 ‘우리’가 되고, 한쪽에선 ‘법과 제도, 안정’ 같은 것으로 제도적 강제를 한다.

 

한편의 연대는 나의 눈물을 자아내게 하고, 한편의 연대는 나의 ‘피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갑자기 질문이 생긴다. 오늘 나의 하루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이었을까! 아님 ‘피눈물’이 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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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은 외친다. 차라리 죽여라!

김사장은 외친다. 차라리 죽여라!


16일 아침 진천 고수부지, 백여대의 덤프트럭과 ‘공육’이라 불리는 굴삭기 50여대가 나래비로 서있다.
그리고 차량 유리문에는 ‘차라리 죽여라’라는 작은 펼침막을 걸어놓았다.

 

 얼마나 절절했으면 저런 문구를 선택했을까!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이 문구. 보는 사람조차도 불편해질 수밖에 없어 외면하고픈 이 문구 ‘차라리 죽여라!’. 노동운동 밥 먹고사는 나도 섬뜩하다.

 

잠시후 건설기계 조합원 80여명이 모이고, 그 옆에는 건설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굴삭기 운전하시는 아저씨들이 나래비를 맟추어 모여들었고 파업집회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옆이 소란스럽다.

 

오십대로 보이는 두 아저씨가 서로 주먹다짐을 한다. 뭣 때문인지는 모르나 주먹질이 오가고 금새 뒤엉킨다. 사람들이 말린다. ‘김사장, 그만해! 이사장, 저리 떨어져’

 

속으로 웃음이 나온다. 세상에, 사장님과 노동자들이 공동으로 파업집회를 하는 이 기상천외한 광경에 웃음을 참고 버틸 재간이 무슨수로 있나!

 

굴삭기 운전사들인 그네들은 서로를 사장님이라 부른다. 하긴, 지금 파업을 진행중인 화물차 운전하는 운수노동자들도 그랬고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건설노동자들도 이전에는 서로를 사장님이라 불렀다.

 

지금도 정부에서는 화물연대 소속 운전하시는 분들을 노동자로 부르지 않고, ‘파업’이라는 단어 대신에, ‘운송거부’라 부른다.

 

그러나, 이들의 호칭이 ‘사장님’이냐, ‘노동자’냐가 핵심은 아니다. 사장님이건 노동자이건 이들의 외침이다. 도저히 정상적으로 수입을 만들 수 없는 현실, 일을 하면 할수록 빚만 늘어가는 현실에 대한 외침이 핵심이다.

 

운송료의 삼사십프로를 ‘알선수수료’ 라는 명목으로 중간에서 가로채는 다단계구조. (이쯤되면, 봉이 김선달도 민망할거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고유가! 이런 환경에서 도저히 살수가 없던 거다.

 

반면, 이들이 재주부리는 곰이였다면 잇속은 누가 챙겨갔는가!

 

첫째, 기름장사다. 그 기름장사는 누구인가. 정유회사다. 그 정유회사는 누군가! 현대, SK, LG 내노라 하는 대기업이다. 이들은 건설, 운수노동자들의 운송수임료중에서 칠팔십프로를 떼어간다.

 

두 번째는 누구인가! 알선수수료란 명목으로 중간착취를 하는 다단계물류회사다. 그런데 그 다단계물료회사의 정점엔 누가 있는가! 현대의 글로비스, 엘지의 하이로지스, SK의 SK로지스. 대기업이다.

 

세 번째는 누구인가!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지적됐듯이 환율이 백만원 올라도 앉아서 1조원이상 이득을 본다는 대기업이다. 환율이 오르면 석유값 올라 이들 화물, 건설 노동자들을 울상이고 수출하는 대기업은 이득을 본다.

 

더 이상 애기 안해도 이쯤되면 증명되지 않았는가! 이제, 이들의 외침(차라리 죽여라)에 대해서 누가 답해야 되는지 명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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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장님! 맘 편히 버스 타는 서울 시민이 부러워요!

남시장님! 맘 편히 버스 타는 서울 시민이 부러워요!

 

 

뒤늦게 나마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한다. 천만 다행이다. 그런데 웬걸, 10일 새벽 광화문 네거리엔 컨테이너 만리장성이 쌓였다. 역시나 ‘MB’ 스럽다. 국민들 입장에선 ‘소통’이 아니라 ‘울화통’이다.

 

국민들에게 집단적으로 ‘울렁증’이 도졌다. 나도 마찬가지다. 본의 아니게 ‘울렁증’을 술로 푼다. 술을 먹으니 속을 풀어야 한다. 나한테는 속을 푸는데, 장어탕이 제일이다. 단골집에 들러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히도록 이명박 대통령 국밥 먹는것처럼 시원하게 잘 먹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장어탕값이 갑자기 6천원이란다. 자그마치 천원이나 올랐다. 농담삼아 말했다. ‘에이! 여기가 중국집도 아닌데 값이 왜 올랐어요’. ‘왜요. 여기 수제비에 밀가루 들어가잖아요’라고 겸연쩍은 듯이 말하는 장어탕집 아주머니가 능글맞다.

 

그러고 보니, 수제비가 몇 개 들어가긴 한 것 같다. 그램단위까지 정밀하게 측정할수 있는 저울로 밀가루 무게를 달아볼수도 없는 노릇. 시원한 맛은 싹 사라지고 속이 쓰려온다.

 

민생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라면 16.2%, 김밥 16.1%, 아이스크림 15%, 자장면 14% 등 서민층이 즐겨 찾는 음식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한다(부산일보). 자동차학원비(17.6%), 유치원 납입금(8.4%), 종합반 대입 학원비(7.2%), 보습학원비(6.9%) 등도 마찬가지 추세란다. MB 백일만에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

 

고유가의 여파가 장난이 아니다. 딱 1년만에 경유가가 50%나 올랐다. 촛불이 활활 타오르던 지난주, 큰맘먹고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이 꺼지고 모처럼 만난 버스노동자 한분과 버스에 올랐다.

 

한마디 건넸다. ‘힘들겠네. 버스 회사도 힘들고 또 요금인상되겠네’.

 

그런데 그 아저씨 왈 ‘여긴 괜찮아! 준공영제잖아!’

 

아, 그랬다. 서울은 2004년에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했다. 유가 상승등 업계의 손실분을 시 재정으로 보전해온 왔다. 그리고 5월 5일 버스요금 동결을 선언했고 그에따른 비용을 추경예산으로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서울시는 유가인상에 따라 발생한 추가비용은 서울시민 개인의 호주머니를 털어 해결하는 아니라, 시가 책임을 진 것이다.

 

우리 청주시도, 이미 2004년에 준공영제 도입을 청주시와 버스노조가 합의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행에 관한 어떤 계획도 없다.

 

청주시내 버스업계도 불가피하게 감차 운행을 예고했다. 그런데 청주시는 무대책이다. 그렇다보면 결과는 뻔하다. 버스요금 인상이고 그것은 시민들 빈지갑의 남은 동전까지 털어가는 거다.

 

청주시 남상우 시장은 버스 탈 일 없으니 잘 모를거다. 그러나, 버스 타는 서민들 입장에선 서울시가 마냥 부러울 수밖에 없다. 준공영제 도입과 관련된 2004년 합의의 이행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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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어물쩍’ MB 백일, 그게 통할거 같니!

‘은근슬쩍, 어물쩍’ MB 백일,  그게 통할거 같니!

 

지나가던 길손이 하룻밤 재워달랜다. 주인장은 방이 하나밖에 없어 우리식구들 자기도 비좁다며 손사래를 친다. 길손은 처마밑이라도 좋으니 이슬만이라도 피할수 있게 해달란다. 딱한 처지를 감안해 주인장은 마루에서 묵으라고 했다. 그런데, 이 고약한 길손의 다리가 어느새 문주방을 넘어 방안에 들어와 있다. 주인장이 이걸보고 처음과 말이 틀리지 않냐고 따지자, 길손은 잠결에 일어난 실수란다. 그리고 잠시, 이 고약한 길손의 몸통 전체가 방안에 들어와 있다. 주인장, 길손이 안스러워 가만히 냅두었더니 이불까지 끌어당긴다. 

 

이 고약한 길손 마냥,  출범 백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가 꼭 요모양새다.

 

대운하 반대여론이 비등해지니, 대운하를 안한다 했다. 그러더니 하룻밤 지나고 나니, 은근슬쩍 하천정비작업을 한댄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이 양심선언을 하고 ‘하천정비’가 아니라 ‘대운하 토대공사’라고 하니 아니라 했다. 또 며칠 지나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대운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광우병 미친소 반대 촛불이 활활 타오르던 5월 27일, 슬그머니 상수도 민영화 법안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분명이 ‘2MB’는 상수도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한지 한달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것이 언론에 공개되자 청와대는 ‘민영화’가 아니라 ‘전문화’란다.

 

쇠고기 파동에 대한 ‘대국민 사과’ 자리에서도 은근슬쩍, 국회 ‘한미FTA'의 조기비준을 끼워넣었다.

이렇게 이명박 정부 백일은 모든게 ‘은근슬쩍, 어물쩍’이다.

 

이제, 국민은 ‘은근슬쩍, 어물적’ MB백일의 통치방식에 대해서 넌더리를 낸다. 뿔난 민심은 ‘명박, OUT'을 외친다.

 

 야구에서 아웃된 타자는 다음타석때 들어서면 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상황은 야구경기가 아니다.

 

대통령 외유를 틈타 은근슬쩍 끼어넣었던 ‘쇠고기수입’ 장관고시, 오늘도 어물쩍 ‘30개월 쇠고기 수입중단요청’을 들고 나왔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국민들은 실체를 다 알고 있다. 미국이 거부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이 ‘뽀뽀뽀’ 노래를 개사해 부른다.

 

‘아빠가 출근할땐 고유가, 엄마가 시장갈땐 광우병, 동생이 병원가면 영리병원, 우리가 학교갈땐 0교시, 온가족 목욕할땐 상수도, 우리가족 모두모여 명박 아웃’

 

자, 이쯤되면 MB정부와 한나라당은 눈치를 채셔야 하는게 아닌가! 은근슬쩍, 어물쩍 자신들이 돌려막기 했던 각각의 모듬전체에 대해 국민들이 왕따 놓는다는 것을. 백일만에 MB정부의 유일한 밑천인 ‘은근슬쩍, 어물쩍’이 바닥났으니 이제부터라도 민심에 귀기울이기를 바란다. 국민들이 귀후비개를 선물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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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촛불 , 보수언론 ‘쌩얼’을 발가벗기다!

디지털 촛불 , 보수언론 ‘쌩얼’을 발가벗기다!

촛불들이 외친다. '조․중․동은 내려와! 내려와'. 잠시후 촛불과 대치하고 있는 세종로 사거리 전경버스위에서 기자로 보이는 두사람이 내려온다. 아마도 촛불들이 내려오라고 외쳤던 그 아날로그 언론사의 기자이겠지. 나는 이 장면을 공중파를 통해서 본 것이 아니다, 카메라 하나, 노트북 하나, 한명의 기자, 한명의 사주로 운영되는 ‘디지털 촛불 게릴라’의 방송을 통해서 나는 이장면을 생생하게 보았다.

이런 인터넷 방송만 수천개다. 6월 1일 ‘아프리카닷컴’에서만 2천5백개의 방송이 촛불들의 축제를 중계했고, 동시에 10만명, 하루에 1백2십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낡은 아날로그 보수언론은 미쳐 몰랐다. 바로 얼마전 촛불들이 꽃을 피울 때 그들 아날로그들은 ‘배후세력’을 당당하게 선동했다. 아날로그 정부는 촛불의 외침을 ‘괴담’이란 입소문으로 당당하게 격하시켰고 ‘아날로그 보수언론’의 선동문에 ‘배후세력 색출엄단’ 방침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아날로그 보수언론의 육일승천하던 기세도 고작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끌려나오고 말았다.

아날로그 보수언론은 진정으로 시대를 착각했다. 점유율 70%, 80%를 넘나드는 자신들이 여전히 밤의 황제라 착각했고, 자신들의 펜끝 방점하나로 세상분위기를 좌지우지 하리라 확신했다. 세상의 여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중간에서 꺽어버렸다. 그들 아날로그 보수언론이야말로 대중이 자신들의 선동질에 놀아난다고 보는 확신범이였다.

반면, 누리꾼들의 활동공간은 그물망이다. 광장(아고라)으로 집결했다가, 블로그로 산개하고, 엄지로 개별소통하는 철저한 그물망이다. 그 그물망 속에서, 누리꾼들은 이 확신범들의 선동질을 아주 통쾌하게, 그리고 즐겁고도 가벼운 놀이(엔터테인먼트)로 제압했다. 광우병이 위험하다고 선동질했던 1년전의 보수언론의 사설과 기사를 들춰내, ‘조중동 스럽다’고 가볍게 일축했다. 배후설을 제기한 심재철의원에게는 ‘18원 정치후원금보내기’ 놀이로, 배후색출에는 그물망으로 흩어져 ‘내가 배후다, 나를 잡아가라’는 ‘닭장투어’ 놀이로 화답했다.

이 디지털 촛불들은 아날로그 보수언론의 엄숙주의와 선동성을 가벼운 놀이로 맞대응하며 이제, 그들의 ‘쌩얼’을 낱낱이 발가벗겼다.

언론은 이제, 더 이상 아날로그만 고집하는 한 소통의 매개기능을 지속하지 못한다. 단선적이고, 수직적인 방식으로 여론을 지배한다고 착각하고, 그 길목을 지배하는 자신들이 대중을 선동한다고 하는 건 정말로 착각이다. 교육감의 홍보용 보도자료나 자치단체장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놓고서 여론이 만들어질거라고 보는 아날로그 방식은 이젠 ‘조롱놀이’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0’교시 수업현장을 바라보는 아이들과 교육관료, 민영화의 효율을 강조하는 정부관료와 그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상호작용(피드백)하는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디지털 촛불은 언론이 특정 몇몇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디지털 촛불은 요구한다. 소통의 매개체로서 아날로그 언론의 귀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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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 두 손에 떡들고 분탕질하는데

놀부, 두 손에 떡들고 분탕질하는데

 

 

2004년 우진교통의 파업이 한참 진행중이던 어느날 검찰청사 앞에서,  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우진교통 아저씨들 앞에서 울고 말았다.

 

당시의 우진교통 아저씨들은 수개월의 임금체불과 장기간의 파업으로 월급봉투 만져본지가 1년이 넘었다.

 

이런 상태인태도 사업주는 요지부동이었고, 우진교통 이외의 또다른 기업을 소요했던 그 사업주는 여전히 부유하고 호화로웠다. 놀부 두손에 떡들고, 약자들을 괴롭히는 꼭 그 형상이었다.

 

그래서였다. 검사를 만나서 애원했고 또 애원했다. ‘임금체불 사태에 대해서 처벌이라도 있어야, 이 사태가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아저씨들, 일 밖에 모르는 저 순진한 아저씨들이 길거리로 나선지 벌써 몇 달입니다. 검사님! 근로기준법위반(임금체불) 위반하면 처벌받는다는 사실도 있어야지 저 시커멓게 타들어간 아저씨들의 가슴팍이 그나마 위안이라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검사는 어떤 답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면담이 흐지부지 끝나고, 면담결과만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아저씨들 앞에 다시 섰을 때, 그냥 눈물이 나왔다.

 

그 아저씨들 한테 아무것도 못해주는 우리의 무능력이 서러웠고, 그 현실을 외면하는 사회가 서글펐다. 그런데도 한줄기 희망을 가지고 순박한 눈망울을 굴리던 아저씨들 앞에서 그렇게 눈물만 흘렸다.

 

 그런 나를 아저씨들은 예의 그 사람좋은 큰형님의 품으로 다독거리고 위로해줬다.

 

시간이 흘러서, 오늘 그 우진교통 아저씨들 때문에 또다시 속이 타들어간다. 그렇게 고생했던 그 아저씨들에게 월급봉투가 정상적으로 지급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아저씨들은 그 고통을 또 다시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므로... 그런데도 이 아저씨들은 그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라고, 에둘러 마음을 다잡고 간다. 이백명

 

그 아저씨들은 숯검댕이 같을 그 속을 감추고 예전처럼 또다시 나를 위로한다.

 

나쁜 사람들이다.

 

2004년 한참 싸울때는 민주노총이 우진교통을 이용해 청주시로부터 사무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용하니까 민주노총한테 속지 말라고 우리 속을 후벼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자 자주관리기업으로 전환된 뒤에는 민주노총 간부들이 우진교통 돈가지고 수백만원씩 유흥비로 탕진한다고 우리속을 후벼파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우진교통 망하라고, 나머지 이백명의 생계는 안중에도 없이 현재의 그 수렁텅이로 밀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놀부 두손에 떡들고 약자를 괴롭히는 자는 나쁜 기업주 뿐만이 아니라 우리 노동자 내부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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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보기 남세스럽다!

아이들 보기 남세스럽다!

 

여덟살난 아이의 앞니가 빠졌다. 첫아이의 이가 빠진것만으로 부모입장에선 그것이 신기하고 대견하기도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초등학교 1학년. 산수, 자연은 학교에서 배워도 글쓰기 교육만큼은 아빠가 같이해야지 마음먹고 예전에 눈여겨 봤던 책한권을 샀다.

 

머리말부터, 소개되는 시 한편이 있는데 너무나 정겹다. 그래서 옮겨본다.

“시험은 무섭다.

 

시험보고 매 맞고

통지표 맞고 매 맞고,

내 다리 장한 다리”   (초등학교5학년 학생의 시 ‘시험’).

 

 “ 딱지를 칠때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친구가 딱지를 친다. 내 딱지가 넘어간다.

윽, 내 마음도 넘어간다”(딱지)

 

눈을 감아도 이 아이의 표정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역시, 아이들은 꾸밈이 없고 솔직하다. 아이의 글쓰기 교육을 하겠노라고 나섰던 내가 쑥스러워지고 오히려 배우게된다. 위선적이고 교묘히 나를 합리화하는 식으로 글쓰기를 이용하는 어른(나)이 부끄러워진다.     

 

우리사회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 많은 사회다. 아니,  못된 짓을 참 많이 하는 사회다. 후라이팬의 도리뱅뱅이 처럼, 어릴 때 부터 피아노학원, 영어학원에 잡아돌린다. 아이들 건강은 뒤로한채 ‘돈’ 하나 때문에 불량식품을 쏟아낸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금기와 이념으로 ‘초전박살, 멸공’을 주입시키며 호전성을 키우기도 했다.

 

우리사회의 미래라는 청소년에겐 밤 한시 까지 사육장에 가둬놓는다.  순응하는 아이, 말잘듣는 아이, 생각없는 아이가 모범생이라고 호도해놓고 다시 사육장으로 밀어 넣는다.

 

그런데, 우리의 청소년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저 아직 15년 밖에 못살았어요’라며 울음 섞인 피켓을 들고 나왔던 촛불여학생은 처음엔 광우병 때문에 뿔났다. 그런데, 지금와서는 어른들이 벌이는, 그것도 단순히 어른이 아닌 ‘공권력’과 대통령같은 정치권력의 ‘치사찬란’함에 더 뿔났다.

 

수업중인 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배후를 대라’며 경찰이 나선다. 교육감이 나서서 전교조 선생님들을 배후로 지목하고, 학생부장님 몇백명이 ‘오호담당제’의 감시조로 투입되어 외친다. ‘어서 빨리, 사육장으로 돌아가라고!’

 

아이들은 솔직하고 맑다. 꾸밈이 없다. 그 맑은 시각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은 정말로 못됐다. 그게 문제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어른들은 자꾸 거짓말로 덮으려 한다는거다.

 

오늘도 정부는 추가협상 결과를 발표했지만 ‘추가협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보기가 정말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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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간지’, ‘명박하다’, 그리고 ‘남주사’

‘노간지’, ‘명박하다’, 그리고 ‘남주사’

 

초등학교 6학년인 처조카와 대화중에  ‘노간지’란 말이 나왔다. ‘노간지’라! 도통 무슨뜻인지 모르겠다. 아이들 인터넷 신조어는 나름대로 알아둘려고 했던 터인데.... 음, 도통 떠오르질 않는다. 그래서 물어봤다.

 

“에이, 이모부 그것도 몰라요. ’간지‘는 국어사전에도 나와있는 말인데... ’노간지‘는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아이들이 부르는 말이에요”.

 

허, 그것참 그래도 무슨말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말(노간지)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초등6학년 처조카아이는 ’멋있고, 폼난다‘는 말이란다. ‘노무현 대통령’의 ‘노’자와 ‘간지’가 합쳐진 말이라는데,  즉, 노무현 대통령이 ‘멋있고 폼나는 사람’ 이란 뜻이란다.

 

그런데, 왜 하필 ‘노간지’일까!  “이모부 눈에는 ‘노간지’라고 부를 만 한게 하나도 없는데, 왜 ‘노간지’야!”하고 물었다.

 

이미 ‘귀찮다’는 투로 넘어간 처조카 아이는, “이모부! ‘명박하게’ 왜 자꾸 물어요!"라고 한다. 

 

아, 대충 이해가 갔다. 요즘, 네키즌 사이에서 즐겨쓰이는 '명박하다'라는 말의  반사적 비교우위가 '노간지'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예전,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반쯤에 '놈현 스럽다'란 말이 유행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놈현 스럽다'의 반사작용으로서의 결과가 지난 대선에서의 이명박 후보의 압도적 표차였었다. 그런데, 어째 찝찝하다.  이제 출범 갖 몇 달만에 ‘명박하다’란 국민불만이 터졌고, 그 반사작용으로서 ‘노간지’다.

 

여기서 전현직 대통령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수 있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욕을 먹고 일을 안하고 놀고 있을수록 칭찬받는단 사실! (심지어 전현직 두 대통령을 빗대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식한 사람들이 부지런한 것’이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다).

 

여기 청주에서도 남상우 청주시장을 빗대 ‘남주사’란 말이 떠돌았었다. 내가 ‘남주사’를 떠올린 것은 우리지역의 장애인들에 대한 최근의 청주시의 이해못할 대응방식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대화한다면서 이들이 들어갈수 없는 지하식당에 회의를 잡은 청주시의 태도는 빼고 애기한다. 더불어, 이들의 요구를 과장시키고 수백억의 혈세가 들어가는 것처럼 호도한 것도 빼고 애기한다.

 

정말로 ‘남주사’가 어처구니 없는 것은 ‘법과 원칙’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내가 ‘남주사’를 거론하는 것은 각종 법률에 의해 당연히 시행되어야 할 사항조차 이행하지 않고, 더불어 자신의 선거공약까지 내팽겨치며 이행하지 않는 그가,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계층이자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법과 원칙’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전임 청주시장시절 현재의 ‘남주사’처럼 하지는 않았다. ‘남주사’ 덕분에, 갑자기 전임 시장이 ‘한간지’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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