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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무노조 삼성의 ‘단결금지법’
 
"당시 구조본 내 임원들은 김성환 위원장을 두고 '구속시켜야 하는데'라며 고민했다"며 "나는 속으로 가능한 일일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구속을 시키더라" 이는, 김용철 변호사와 한 인터넷 신문(프레시안)사이의 대담 내용이다.

 

여기 나오는 김성환 위원장은 다름아닌 ‘삼성일반노동조합’의 위원장이다.

 

그는 2005년 2월 검찰이 삼성SDI가 불법적으로 행한 노동자 위치감시추적 사건에 대해 '기소중지' 결정을 내려진 뒤,  1주일만에 다시 구속됐다. 삼성이 그에 대하여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고소를 했고 법원은 검찰측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법정구속했기 때문이다.

 

삼성하면 ‘무노조 경영’이고, 이 거대 골리앗의  ‘무노조경영’에 맞선 다윗의 투쟁이 그의 삶이었다.

 

그랬던 그가 올 1월 1일, 구속된지 3년만에 석방됐다. 엊그제, 일면식도 없던 그를 아주 우연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덥수룩한 수염, 작은 체구, 오랜 수형생활로 인한 잦은 기침. 그의 인상은 그랬다.

 

그가 감옥에서 3년만에 출소하던 날, 소주 한잔을 마시고 기절하듯 쓰러졌다는 그에게 석잔쯤을 강권하고 그다음날, 떠나는 인사를 하는 그에게 서명을 부탁했다. 바로 그의 투쟁을 엮은 ‘골리앗 삼정 재벌에 맞선 다위의 투쟁’이란 책에다가....

 

그때  내가 무슨 심보로 그랬는지 모른다. 그는 간결하게 서명을 남겼다. ‘치사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1799년이면 아주 오래전일까!

 

그때, 영국에는 ‘단결금지법’이라는 법률이 만들어졌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즉 노동조합을 만들면 법으로 처벌한다는 거다.

 

얼마후엔 그 이웃인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이와 유사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쟁의가 발생하자 왕정에 대한 청원을 통해서 이 법률을 만들었고, 이 법률에 근거하여 몽둥이로서 노동자들의 쟁의를 제압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자 더 많은 노동자들의 저항과 피흘림이 있었고 생긴지 25년만인 1824년에 이 법은 폐지됐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삼성의 무지막지한 공작, 그리고 그것을 교묘히 에둘러서 뒷받침 하는 대한민국의 사법당국.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박물관으로 가버린 ‘단결금지법’의 현대판에 다름아니다.

 

삼성권력은 대한민국 제일의 권력이다. 18세기 절대왕정의 권력에 비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력으로도 유지되지 않는 것이 무수히 많다. 현대판, 아니 삼성판 ‘단결금지법’도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움켜쥘수록 빠져버리는 모래알처럼, ‘무노조’를 움켜쥘수록 ‘부끄럽지 않게, 치사하지 않게’ 살아가는 더많은 김성환을 만들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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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식코’

영화 ‘식코’


‘저기, 아무개가 올해 안으로 결혼 한다메!’.  ‘ 그 아무개가 ○○이랑 결혼 한다며!’.  ‘ 아무개와 ○○이랑 날 잡았다며!’. 하루만에 전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이 풍문 때문에 우리 사무실 사람들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아침에 ‘올해 안으로 결혼을 한다 더라’ 에서 시작한 이 풍문은 그새 ‘누구와 날까지 잡았더라’까지 발전했으니, 만약 당사자가 해명하지 않았다면 저녁쯤이면 아마 청첩장까지 받았으리라.

이것은 눈덩이 불어나듯 한칸 한칸 옮겨질때마다 점점커지는 말과 소문의 습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리라.

 

이런 류의 '무엇 무엇 하더라'통신은 정말로 그 위력이 대단할진대, 최근에 가수 나훈아씨의 잠적에 대한 여러 풍문만 보더라도 야쿠자, 유명 여성 연예인까지 등장하며 급기야는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상황까지 발전했다.

 

근거도 없고, 사실도 명확지는 않지만 이 '하더라' 통신은 그 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 '하더라'통신이 무조건 재미만 있는 것도 아니다, 생각하기만 해도 끔직하거나 공포스러운 것도 있다.

 

'잘린 손가락 두 개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는데, 치료비가 7천만원이라 더라. 그래서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하더라’식의 애기를 듣는 당신의 반응은 어떨까!

 

당신은 담방에 ‘미친×’ 하고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애기는 영화속 애기다. 영화는 ‘픽션’이다. 그래서 당신은 안심할지도...

 

그러나, 문제는 이 영화가 실제상황을 다룬 ‘논픽션’이라는게 문제다.
 
영화 ‘화씨 911’로 유명한, 감독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Sicko)’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실제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도 당신은 안심하는가! 그저 먼 발치의 남의 나라 미국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그만일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다음달이면 대통령으로 취임할 이명박 당선자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당선자는 공공연히 지금도 애기하고 있다.

 

 지금은 국민건강보험증 하나면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나 전국 아무   병원에서도 보험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상황은 전적으로 바뀌게 된다. 어떤 병원에서는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고, 그곳은 미국식의 고가의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만을 치료한다.
 

무섭다. 영화 식코(Sicko)는 정말로 무서운 애기고, ‘무엇무엇 하더라’가 아니라 우리가 처해질지도 모를 ‘미국식 선진화’의 함정이다.

 

그래서다.  영화를 보자! 그리고 소문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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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나봤나! 기업살인

들어나 봤나! ‘기업살인법’

 

자본주의의 모국 영국에서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이 오는 4월부터 시행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입장에선 도무지 납득할수 없으니  분개하시라! 그리고 경악하시라!  왜냐! 이법의 내용이 그렇기 때문이다. 노동재해는 기업의 ‘과실’이 아니라 ‘고의’에 해당되는 만큼 중대 노동재해를 발생시킨 사업주는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게 법안의 요지다. 이런 법의 내용물을 ‘비즈니스 프렌들리’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하란 말인가!

 

걱정된다! 자본주의의 모국에서 하필이면 ‘기업살인’이란 용어를 쓰나! 기업을 잠재적 살인자로 몰아 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킬 것이 뻔한데 말이다.

 

정말로 남의 나라 애기다.  그래서 천만다행이다.

 

남의 이야기 말고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 이야기를 하자!

 

‘그 새끼들 깡패새끼래요. 괜시리 그 놈들 만나고 하면 돈 뜯기고 뒤통수만 맞아요’. 여기서 그 새끼는 ‘민주노총’이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하이닉스 A-Project 건설현장의 담당자이시고 이 귀한 말씀을 들으신 분은 그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사망한 유족중 한분이다.

 

그리고 그 분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셨다. ‘사망에 대한 보상합의금조차 이런 저런 경비가 들어갔다고 하면서 1/3정도를 빼고 지급했어요. 민주노총 연락처조차 그 사람들이 다 뺏어서 찢어버리드라고요. 그놈들 깡패새끼라면서...’

 

속에서는 이런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 바깥에선 난리다. 하이닉스 산재사망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는 애써 취재했던 내용이 데스크에서 짤렸다고 했다. 무슨 건설협회인가 하는 데에서는 이런 저런 인맥을 통해서 민주노총이 충북경제를 말아먹는다고 그래서 자제를 부탁한다는 소리를 연방 전한다.

 

그래서 안심이다. 남의 나라는 남의 나라고, 그래도 우리는 ‘비즈니스 프렌들리’이다.

 

나는 지금  두장의 사진을 쳐다보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공에서 파이프에 두 발을 딛고 ‘곡예’를 하는 우리나라의 신축공사장 사진과, 작업을 위해 계단과 통로를 완벽한 구조물로 설치한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의 한 아파트신축공사장의 현장사진.

 

그런데 도무지 납득이 안간다.

 

노동안전과 보건에 관한 법률만 480개에 이른다는 자본주의 모국인 영국, 그리고 ‘작업공기’는 생각지도 않고, ‘다칠수 있는 작업은 아예 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애기하는 스웨덴의 어느 청년노동자.

‘반기업정서’가 판쳐서 문제라고 하는 우리나라도 걱정인데, ‘기업살인’ 운운하는 저 나라가 망하지 않는게 이해가 안간다.

 

에둘러 애기했다.

 

‘죽지않고 안전하게 일할수 있는 권리’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 다.

그 권리 앞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도 필요없고, 그 어떤 경제논리도 필요없다. 이 애기를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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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이판사판 공사판’ 이란다!

 

 

이천냉동창고, 40명이 죽었다. 아직 살아남은 노동자들 속에는 내일을 기약할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 내 옆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다친 한명의 노동자가 산재상담차 방문해 있다. 그에게 따듯한 커피를 건네자 그가 한 첫마디는 이랬다.  ‘미쳤지요. 우레탄 작업을 하면서 용접작업을...’

 

“안전(安全)은 또 질식당했다”(조선일보). “곳곳에 시너․LP통 … 그곳은 ‘화약고’였다”(중앙일보). “3박자 갖춘 … 예견된 ‘人災’”(쿠키뉴스). “공사장 안전불감증이 화마 불렀다”(YTN).

 

충격이 커서였던가!

 

언론의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아니 사후약조문(死後藥弔問)이 대단하다. 그래선가! 이번주 한주 만큼은 우리 민주노총과 심지어 보수언론조차도 ‘한마음 한뜻’이리라!(딱 한주만큼만)

 

지난해, 하이닉스청주공장 신설현장에서만 3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갔다. 그 중에서 마지막으로 노동자가 죽어나갔던 12월, 노동부청주지청은 무엇을 면피하려고 그랬는지 작업현장을 세웠다. 이 결정이 오래가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딱 일주만에 '역시나'였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세상을 가릴수 있겠는가! 공사재개의 근거로 제시된 각종 안전대책수립 및 보완은 새파란 거짓말(왜 꼭 거짓말은 ‘새빨간’이라고 해야 하나!)이라는게 드러났다. 사고나기 이전의 그 공간 그대로 작업은 진행되고 있었고, 그 장면이 담긴 수십장의 사진을 통해서...

 

두려운게 있다. 어제 그 전조가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온 충북 무슨 건설협회 대표자라고 했던 그사람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따져 물었다. ‘어렵게 살아난 충북건설경기인데 이런식으로 민주노총이 발목을 잡으면 어떻게 하냐는 거냐’고, ‘그리고 당신들이 (생계를) 책임질수 있냐’고... 

 

하이닉스 청주공장은 ‘신앙’같은 존재다. 이 공장이 빨리 들어서야만 청년 실업자에게 일자리도 생길 것 같고, 서민들에게 돈이 돌 것 같고, 경제특별도가 된댄다. 그래선가! 도지사, 청주시장이 나서서 노동부의 공사중지명령을 반대하며 ‘신앙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발벗고 나선다. 그런 사이에 노동자들의 안전문제는 뒤로 게눈감추듯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두렵다. 이천냉동창고 화재사건처럼 노동부와 언론이 우리노동자들과 딱 일주일만 동거하는게 두렵다.

 

한 건설노동자가 자신들의 처지를 이렇게 토로했다.

 

 “떨어져서 죽고, 질식해서 죽고, 부딪혀서 죽고, 감전되어서 죽고... 그렇게 하루에 2명이 죽습니다. 흔히들 건설현장은 이판사판 공사판이라고 합니다. ‘이판’은 이승이라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판’은 저승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건설노동자 이지경의 편지중에서)

 

국민소득 2만불 시대라고 하니 한벌 웅얼거려 본다. 이제, 건설노동자가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365일 관심을 가져주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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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우리는 혹, '진보' 안의 '수구'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문제를 냈다. '여러분, 여기 사과가 열 개 있어요. 그런데 지금 철이가 세 개를 먹었어요. 그럼 몇 개가 남았을까요?'

 

한 아이가 답했다.

 

'세개가 남았습니다!'. 틀립 답이라는 신호를 주고, 다시 아이들에게 '몇개가 남았을까요?'하고 재차 물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계속해서 '선생님 세 개라니까요'라고 소리를 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선생님, 그래도 교육자의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서 '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아이 왈 '우리 어머니가 먹는게 남는거랬거든요. 세 개를 먹었으니 세 개가 남은 게 맞잖아요'

 

이 아이는 아마도, 교실에 선글라스낀 아저씨나 머리가 벗겨진 아저씨의 사진이 걸려있던 시대의 학생이었다면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맞았을 것이고, 요즘 같으면 상상력이 풍부하다거나 혹은 창의적이다는 운좋은 칭찬도 받을수 있었을 게다.

 

그러나, 어찌됐건 난처한건 아이보다는 선생님일게다. 아이의 답이 나온이상 수학적 논리로 아이의 대답을 오답으로 처리할건지 아니면 아이가 부모로부터 학습받은 '구전명제'속에서 정답처리를 해야할것인지 선택은 선생님이 해야 하니까!

 

지난 몇 달전쯤에 '참여정부평가포럼' 같은 노비어천('盧飛御天) 집단이 생뚱맞게 각종 수치를 국민들에게 들이댄적이 있다. 성장률이 얼마고, 주식시장의 주가지수가 어떻고... 그러면서, 참여정부가 경제를 못했다는 근거가 뭐냐고 따져 물었다.

 

이 질문을 받은 국민들은 수학적 논리, 경제적 논리는 완전 제쳐두고, 경포대,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하며 등을 돌렸다.  그러자 참평 선생님들은 이 우민(愚民)한 국민들에게 대포(대화포기)를 쏴대다가 그들만의 근거지로 숨어가 '盧飛御天歌'만 불렀다.

 

새해가 밝은 지금, 민주노동당을 한번 보자. 민주노동당은 지난 대선에서 참혹할 정도의 냉정한 국민들의 평가를 받은 터이다.

 

그런데도 내부에는 책임지는 세력이 없고 세상과는 동떨어진 자기최면의 평가가 난무한다. 모든 비판은 유령을 대상으로한 비판이고, 이렇게 된건 '짝퉁좌파, 위장좌파'인 노무현 정부의 실정 때문에 동반피해를 입었다는 거다. 이렇다면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게된다. 이 기대상실의 이유는 '지지율 3%'라고 하는 국민들의 창의적의 대답을 인정치 못하는 교조적, 신앙적 집단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노동운동 또한 마찬가지다.

 

대기업노동자 혹은 내가 속한 기업의 울타리라는 허위의식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상, 내 월급봉투에 잔업수당이 빠짐없이 빼곡히 채워지는 것에 안주하는 이상 우리는 고립을 빠져 나올수 없다.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우리 노동운동에게 보내는 비판의 수위를 넘은 살기(殺氣)에 대해 정말 창의적으로 해석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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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돌을 던지랴!

따르릉! 따르릉! '

 

네, 민주노총입니다'하고 다소 힘빠진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데, 전화건 아저씨가 다시한번 힘을 빼게한다. 전화건 아저씨 ‘소득공제영수증 때문에 전화했는데요. 홈페이지 소득공제가 안보이네요’하고 묻는다. ‘저, 선생님 우리 민주노총은 소득공제와 관련이 없는데요. 혹시 민주노동당에 전화할려고 하신게 아닌가요. 혹시 민주노동당에 세액공제 기부를 하셨나요’하고 조심스레 답하는 나.

 

내 추측따라 ‘어. 민주노동당하고 민주노총 같은거 아니였어요’하고 말하는 그 아저씨.

 

대선결과는 참담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득표한 3%. 세 번째 출마한 권영길 후보의 기호가 3번이라 3%밖에 받지 못했나! 차라리 무소속 이회창후보의 기호인 12번을 얻었더라면! 별별 가설이 다나오는 내가 참 한심하다.

 

지난주 택시에서의 일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운하추진 관련 뉴스가 라디오 뉴스에서 연방 나오는데, 기사아저씨가 한소리 하신다. '저거! 꼭 해야될까요. 선거도 끝났는데 그만 하지. 저거해서 먼 돈이 될것이며, 뭔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어. 태안 앞바다를 봐! 에휴...'

 

맞장구를 치며, 당선자에 대한 호박씨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기사아저씨에게 슬그머니 말을 던졌다. '근대요. 걱정이에요. 민주노동당이 못한것도 맞지만 너무나 표가 안나왔어요. 살아남을 정도는 줘야지. 3%는 죽으라는 거 아닌가요. 이제, 삼성에 대한 견제 같은 것은 누가 하나요. 그래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없으면 안되는게 많은데...‘

 

그 살갑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딱 잘라 말한다. ‘거! 누가 (민주노동당에게) 표 주겠어. 다 알어. 봐바. 우리같은 택시기사가 얼마나 불쌍혀. 비정규직들 얼마나 불쌍한겨. 저 사람들 우리한테 (도움)안되는 겨. 있는 노동자들만 지들끼리 등따실라고 그런겨’라고 뚝 잘라서 말씀하는 택시 아저씨!

 

나는 ‘아저씨, 그건 아니에요. 그리고 민주노총 꼭 정규직 대기업노동자들만 위하는 데 아니거든요. 그래도 민주노총 만큼 비정규노동자들 위해서 싸우는데가 어디 있겠어요’라고 항변하고 싶은 맘도 있었지만, 결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구분조차 하지 않는 대다수가 국민인 현실. 노동시장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20대를 일컫어 ‘88만원세대’라고 부르는 현실. 조직된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주노총이 이들을 대표해 제대로 투쟁하지 못하는 현실. 극히 일부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알량한 월급봉투 때문에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해서 구사대로 등장하는 현실.

 

결국 이런 것들에 대해서 국민들이 심판한 거다. 우리에 대한 비판이 설령 ‘조,중,동’식의 언어와 표현을 빌려왔다 하더라도 어쨌든 비판의 빌미는 우리한테 있는 것 아닌가!

 

국민들의 평가는 냉정한 거다. 노동운동이 비정규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을수 있도록 다시 태어나라는 거다. 누가 누구에게 감히 돌을 던지랴! 그가 ‘사이비진보’든 아니든 간에 노무현은 노무현이다. 쏟아지는 돌무더기 속에서 우리를 돌아볼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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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절망하지 말자!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내가 물었다. 비정규 노동자를 포함한 그대여!  오늘 절망하는가!

그럴지도 모르지.  괜한 기대를 품었다가 매번 허탈과 절망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현실속에선 ‘희망’이란 단어는 오히려 상처고 아픔이잖아. 차라리 절망이 나은 게야.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자넨 희망을 품고 있는가!

 

천오백만 노동자들의 임금총액보다도 땅값 상승에 의한 땅바기 불로소득이 더 크다네. ‘88만원 세대’의 아우성은 들어봤는 가! 그 88만원 세대중 어떤 청년이 비정규직 늘리겠다는 유력대선후보 유세에 나와서 ‘제발 살려주이소’ 하는 그 우스꽝스런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삼성의 떡값앞에 온통 떡판 위에서 춤추는 경제관료와 검찰을 보지 않았나! 비정규노동들의 파업 때문에 잔업 못해서 월급 줄었다고 비정규노동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거대 자동차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지 않았는가! 윤똑똑이와 부라퀴는 넘쳐나는데, 패배로 지친 동료의 손을 잡아주는 공동체의 연대가 존재하는가!

 

 DJ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진 신자유주의 공고한 벽 앞에서,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자인 이명박과 또 다른 신자유주의자인 정동영. 탈출구가 있는가! 죽어라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50%와 가만 있어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아도 더 부자가되는 10% 앞에서 넌 희망을 품고 있는가!

 

지난주, 고 정진동 목사님이 계신 곳에서 삼성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하고 있는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 두렵지 않으세요’하고 다른 분이 물었다.

 

‘처음엔 너무 두려웠어. 삼성에 얽혀있는 그 실체적 사실을 접하는 순간 그 사실자체가 두려웠어. 그 다음엔 거기서 희생된 노동자들, 그물망처럼 탄탄하게 얽혀있는 감시망에 대해 두려웠어. 그리고, 마지막으론 우리 사회 전반에 형성된 삼성권력과 맞서 싸운다는 것이 두려웠어. 그러나 지금은 아니야. 아주 편해’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

 

다시 신부님이 말씀하신다. ‘1:8:1이란 규칙이 있대. 이게 뭐냐면 돈을 주면 받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고 8명은 받는 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1은 왜 나에겐 돈을 주지 않냐고 와서 따지는 사람이 있대’. 

‘우리가 질수도 있어. 이번에 안될수도 있지만,  하지만 우리는 이 싸움에서 딱 한번 이기는 싸움을 하는 거야. 그럼 된거야’

 

다시 원래 애기로 돌아오자. 난 답한다.

 

‘지금보다 나은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해’라고.

 

모두가 절망하면 모르지만 한사람이라도 다른 세상을 상상하면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상상해보자! 비정규직 없는 세상, 집걱정, 병원비 걱정, 교육비, 노후 걱정없는 공동체를 상상해보자! 그렇다면 미련을 갖지 말자. 간단하게 우리가 생각하는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며 나무 한그루를 심자! 투표장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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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이명박, 이용득씨 통해 ‘어용 득’(御用 得) 했다.

 

한국노총이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공식선언했다. 노동자를 위하는 것은 눈꼽만치도 없고, 오로지 ‘反노동’뿐인 사람을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단체에서 지지한댄다.  귀통바기를 한 대 후려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정치적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애면글면 활동해온 수많은 선배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전태일 열사’의 사진을 배경으로 서있는 이용득과 이명박의 사진을 접할땐 내 가슴속까지 뭉개졌다.

 

어찌 되었건 이명박씨는,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을 통해서 ‘어용득’(御用 得) 하게됐다.

 

‘어용’(御用)이 무슨 뜻이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권력자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하는 것을 낮잡아 이를 때 ‘어용’이라는 표현을 쓴다. 

 

 또 다르게 임금님이 쓰던 물건을 지칭할때도 쓰인다.

 

후자의 뜻으로 보자면, 임금님이 될 이명박씨가 쓸 물건은 ‘어용’인 것이고, 이용득씨는 그렇게 쓰여지기로 했으니 ‘어용’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명박씨가 이용득씨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은 결국 ‘어용(御用) 득(得)’한거다.

 

이명박씨는 ‘어용득’했으니 참 좋겠다.

 

잠깐, ‘어용’의 가계도를 톺아보자. 이 어용의 가계도는 이승만 정권때 ‘대한독립촉성노동조합총연맹’(일명 대한노총, 초대의장 이승만)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이 대한노총뿐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조합에 대한 해산명령을 내리고 ‘중정’에서 훈련시킨 9명을 통해 ‘한국노총’ 재건을 지시한다. 한국노총은 박정희의 쿠데타를 지지했고, 1987년 전두환이가 4.13 호헌 조치를 했을 때 한국 노총은 기꺼이 지지 성명을 냈다. 역시 어용답다. 정말, ‘어용’스럽게 태어나서 ‘어용’답게 활동해왔다.

 

그래서, 뿌리가 중요하다. ‘어용’의 뿌리가 튼튼해야 ‘어용’의 본분에 충실할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노동자들은 경험속에서 배운 것이 있다. 결코, ‘어용’은 노동자의 편이 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어용노총에 버림받고서 나중에 본인이 할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한 전태일 열사 이후에, 이땅의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박살내고, 민주노조 건설하자!’라고 외쳤고, 87년 노동자 대투쟁 때는 이 구호가 전국을 뒤흔들었다.

 

무릇, 우리 노동자가 심판해야될 것은 집권세력만이 아니다. 입으로는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비정규직만 양산한 그 거짓말 대통령 뿐만이 아니다. 비정규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몰 정치집단과 그 집단의 ‘어용’이 된자들에 대해서까지 심판해야 한다.

 

지금, 한평생 노동자를 위해 헌신해왔던 故 정진동 목사님의 따스함이 배어있는 빗줄기가 대지를 적신다. 그가 살아왔던 것처럼, 노동자의 권리는 ‘어용’들의 거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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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해!

멍청하지 않다면, 스스로 입증하라!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회자한다. 이말은 ‘20대가 한 달에 88만 원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뜻으로 우리사회의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로 통한다.

 

‘희망’이란 단어는 주머니에 넣어둔지는 오래전이고, 백대일의 경쟁속에서 살아남을 자신감도 없으면서 도서관에서 공무원 고시생이 되어버린 그들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건 나에겐 엄청난 곤욕이다.

 

그들을 보노라면 ‘안스럽다’거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고 ‘미련 곰퉁이’ 같아 보이고 그래서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는 충동이 막 치밀어 오른다.

 

뻔히 안되는 줄 알면서도, 고시생 이외엔 다른 선택을 안하는 그들! 세상이 왜이러냐고 한번 큰소리라도 칠법도 한데,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해 세상에 쓴소리 한번 안하는 그들!

 

꼭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의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나 부러웠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2년전, 그들이 사회에 최초로 고용되었을 때 보장되던 사회안전망이 정부에 의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을 때 두말않고 거리로 뛰쳐나왔었다. 대핵생뿐만이 아니라 고등학생까지, 학생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선생님까지, 그리고 그들의

 

할머니까지 ‘내 손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기꺼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이 뜨뜨미지근한 자세로 방관했지만 나중에는 학생들의 전사회적 연대투쟁의 기세에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즉 학생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간 노동자들을 견인한 것이다.

 

2년전 그렇게 싸웠던 프랑스의 그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대학과 일부 고등학교, 그리고 거리는 학생들에 의해 세워진 바리케이트로 봉쇄되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이번 투쟁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미국식 경쟁체제로 교육시스템을 바꾸는 것에 대한 투쟁이다.

 

우리의 거세된 ‘88만원 세대’여! 보라! 권리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이런 과정속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100대 1’의 경쟁구조는 비상식이자 비정상이다.

 

 단 백명중 한명만 공무원이 되는 이 비정상의 구조에 대해서 돌을 던지는 것이 맞지, 도서관에서 그 한사람이 되기위해 청춘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 판단해야 된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손가락을 잘랐다’는 비난을 받았다는 한 고등학교 실습생의 산재사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사회가 젊은 세대들에게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확실히 알았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지 2년이 지났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더 공공해지기만 할뿐이다.

‘88만원 세대’여! 사회를  원망하지 마라! 

 

스스로 궐기하지 않으면, 싸우지 않으면 바뀌는 것이 없다.

 

‘88만원 세대’여! 충고를 전한다.

 

 “너희가 도서관에서 잠든 사이, 사회와 기성세대, 기득권층은 너희들의 권리를 알음알음 갉아먹고 있다네. 좀 한번 알아주게!  이제 좀 화날때가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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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신부님!

신부님! 신부님!

 

 

'삼성 비자금'의 실체를 증언하고 있는 김용철 변호사. 그의 기자회견장에는 항상 신부님들이 계셨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 바로 김인국 신부님이시다. 굳이 김용철씨 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에겐 신부님은 피난처, 안식처가 되어주시곤 했다.

 

고마우신 신부님!

 

그가 함께 하시는 일이기에, '삼성 비자금' 및 '부패커넥션', '삼성 장학생'은 단순히 어떤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확신이 든다. 강직하고 정의로운 신부님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말이다.

 

신부님의 언론인터뷰 내용을 접했다. 그 중에서 유난히 가슴끌리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을 옮겨 쓴다.

 

 "대부분이 김용철 변호사들이 했던 이야기들로, 가슴이 아픈 건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다. 이 대명천지에 무노조 비노조 경영이라는게 말이 되는가! 그걸 무마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동자들을 탄압했을까, 또 이런 불법 편법을 무마시키기 위해 국가기관을 얼마나 오염시켰을까 를 상상해야 된다".(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 입니다>인터뷰 중에서 옮겨옴)

 

신부님 말마따나 삼성의 노동자들은 정말로 많이 아팠다. 책꽂이 꽂혀 있는 "무노조 삼성, 왕국은 없다"라는 삼성의 노조탄압 사례를 모은 174쪽 백서로도 표현 안되는 큰 아픔이 있다. 이 아픔은 '납치, 감금, 미행, 테러, 회유, 매수' 이 모든 것들이 여지없이 동원되는 과정이었다.

 

이 과정은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영혼을 파괴한다. 10여년전, '대한민국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타이어의 노조탄압을 옆에서 보았던 나는 '분노'가 아니라 '공포'를 느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공포는 내 가슴을 파고들어가 한국타이어 혹은 그 계열사에서 노조를 만든다 하면 내 피부는 닭살처럼 소름이 돋는다.

 

 

청원군에 있는 작은 회사, 일하는 사람이 50명 정도되는 그 회사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그게 한달전인데, 그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풀이 잔뜩 죽어서 나타났다.

 

 "회사에 갑자기 깍두기가 나타났어요. 문신도 장난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다음날 사장이 직원 전체를 모아놓고 새로 채용한 직원이라고 소개를 했어요. 근데 이 놈아가 장난이 아니에요. 지 어므이 아부지뻘 되는 우리들한테 등뒤에서 온갖 욕설을 해요. 갑자기 점심도 그 놈아 한테서 식권을 받아야만 먹을수 있어요. 그리고는 이제, 조합원이 10명밖에 안 남았어요" 

 

김인국 신부님은 어떤 기자에게 떡값 받은 검사들을 '1만2천원에 영혼은 판 사람들'이라는 비유를 한 적이 있다. 

 

 신부님에게 갑자기 하소연 하고 싶어진다. 아니 고자질이다.

 

'신부님! 신부님! 그 사람들만 영혼을 팔았겠어요. 힘센 젊은이들이 일당 10만원 20만원에 눈이 멀어 아무생각 없이 어머니,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협박하는 이 난잡한 현실은요.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해서 청맹과니처럼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우리 사회는요. 실제는 우리 사회가 집단적으로 영혼을 판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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