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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부패를 말하기 전에, ‘김성환’을 말하자!

삼성부패를 말하기 전에, ‘김성환’을 말하자!

 

‘삼성’이 떳다. 아주 확실하게 뜨고 있다. 그런데 사실, 뜨는게 아니다. 찬란한 하강을 위해 더 높이 뛰고 있을 뿐이다.  현상황은 ‘대한민국 최고’에서 ‘대한민국최고 부패’가 될지도 모르는 극적반전의 비등점이다.

 

그들은 항상 우리같은 일반인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한지를 확인시켜 주었다. 아픈 사람이 이용하는 휠체어를 ‘법원 출두용’ 회장님의 마차로 사용하는 기발함이나 ‘사과박스에 사과는 결코 없다’는 새로움을 보여준다.

 

겨우 몇십억원의 종자돈으로 1년사이에 수조원의 기업의 지배권을 세금한푼 안내고 세습시키는 대목은 ‘상상력’으로 해결할 범위조차도 뛰어넘었다. 이런건 ‘기적’이라 불러주어야 한다.

사실 삼성의 부패를 애기하기 전에 우리사회가 알아야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사람이 하나 있다.

 

김성환! 그는 현재 삼성의 부당해고, 노조탄압에 맞서다 ‘삼성그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3년5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중이다. 그리고 그는 엊그제 19일부터 ‘삼성 무노조 경영’ 등을 규탄하며 9번째 옥중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그를 소개하는 책의 표지는이렇게 씌여 있다. “골리앗 삼성 재벌에 맞선 다윗의 투쟁! 삼성 재벌이 구속시킨 노동자 김성환, 그를 국제엠네스티에서는 죄가 없다며 국제 양심수로 선정했다”

 

알아야 한다. 부패로 커왔건 과장된 신화였던 간에, 그것은 김성환과 같은 삼성노동자들의 희생과 피눈물의 결과로서 ‘대한민국 최고! 초일류 삼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상징이 바로 김성환이다. ‘58년생, 3년 5개월의 실형, 9번의 옥중단식, 엠네스티가 선정한 국제 양심수’등 그에게 따라 다니는 수많은 수식어보다 또 다른 김성환인 삼성 노동자들의 삶을 봐야 한다.

한 두해쯤 되었을 터인데 아는 지인이 삼성그룹 계열사의 명함을 가지고 나를 찾와왔다.

그가 말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잖아요. 이제 개인과 가족을 위해서 살때가 되지 않았나요. ”
도대체 뭔 애기인가 했다. 이해도 안가는 말이라 짧게 답했다. “저, 지금 그럴때도 아니고요. 여기서 일하는게 행복해요”.

 

그는 짧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떳다. “그럼, 다음에 보지요. 그리고 언제까지 그렇게 사는 것도 가족들한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그가 간뒤에 사무실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노라고 애기했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갔다.

지금와서도 그때 일은 잘 모를 일이다. 왜 갑자기 그런 애기가 오고 갔는지, 단순히 보험영업 같이 하자는 애기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알수는 없다.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다.

 

‘무노조 삼성’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현실, 삼성에 맞선 것 그 자체로 3년 5개월간 옥살이를 사는 김성환과 같은 노동자들에 대해서 이제는 알아야 한다.

삼성에서 사표를 냈더니, 만류하는 그의 부인을 보고서 “당신, 나의 생명보다 수천만원의 연봉을 탐하는 거야!‘라고 고강도 노동의 피곤한 현실을 토로했던  어느 중년 삼성맨의 고통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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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은 가능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1년 11월  어느날, 나를 비롯한 일군의 무리들은 잔뜩 긴장한채로 이리저리 서울 낯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방은 전경들로 가득차 있었다.  빨간 손수건을 손목에 두른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침묵과 함께 걷고 또 걸었다. 남의 집 옥상에서 빗물에 ‘찌지직’ 거리는 전기줄 사이를 뛰어넘기도 했다. 그리고 한시간 정도의 침묵의 행군 끝에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우렁찬 함성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것이 내가 난생 처음으로 접해본  16년전의 '전국노동자대회'였다. 비록 군사독재정권 말기였고 '물태우'정권이라 해도 그래도 ‘군사독재정권’인 법! 노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금기였던 때, 노동자들은 그렇게 한자리에 모였다.

 

 

91년 그해는 유난했다. 내 동갑내기인 강경대가 경찰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4월 29일 '노태우는 물러가라'는 육성을 남긴 전남대생 박승희씨 분신, 집회에서 질식사했던 김귀정. 군사독재정권에 항의했던 많은 사람들의 분신이 이어졌던 91년 5월은 정말로 유난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의 죽음조차도 밀가루와 계란으로 범벅이 된 정원식(당시 교육부장관이었던가!)의 등장앞에서 패륜과 '죽음'의 더러운 굿판으로 몰린것까지도 유난했다.

 

이 모든 것들이 거름이 되고 햇살이 되어, 우리의 민주주의는 커졌다.

 

그렇게 확장되고 커져가는 민주주의와 함께 16년이 흘렀다. 그런데 내 앞에 ‘민주주의’는 존재하는가!

 

시계는 거꾸로 흘러갔는지, 우리 노동자와 농민에게 ‘서울’을 향한 여정은 여전히 멀고, 험난한 곳이었다. 여전히 경찰의 눈을 피해야 했고, 그래서 뻥 뚫린 4차선, 6차선 고속도로를 뒤로하고, 국도만 따라서 3시간 넘게 돌아서 가야했다. 농민들은 동네에서 막히고, ‘씨×놈들! 권총가져와! 다 쏴 죽여버려!’라는 경찰의 외마디 고함을 들어야 했다.

 

91년도 유난했지만, 올해도 유난하다. '한미FTA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허세욱씨, 가난한 노점상들 대한 강제철거에 항의하며 분신한 이근재씨, 전기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나쁜 사업주의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며 분신한 정해진씨.

 

노동자나 농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가 죄가 되고 불온시 되는 것도, 나랏님을 향해서 자신들의 몸뚱아리를 태우는 민초들의 아우성도 어찌 군사독재정권의 그때와 왜이리도 유사한가!

 

노동자들의 고용승계는 안돼도, 회장님의 아들은 회장님으로 승계되고 가난한자의 아들은 가난한자의 아들로 확실히 승계된다. 군사독재정권은 물러나고, 그 군사독재정권에 맞섯던 사람이 정권을 잡아도 하는 짓거리는 똑같이 승계되는 사회.

 

어릴적에 ‘타임머신’의 실제를 두고서 이러쿵, 저러쿵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명토박을수 있겠다.

 

“ ‘타임머신’은 가능하다! 왜냐고! 한번 봐바! 우리가 지금 노태우정권 밑에서 살고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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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아! 문제는 가난한자의 민주주의야!

멍청아! 문제는 가난한자의 민주주의야!
 
우리 사무실 홈페이지 상담실에 올라온 글은 잠깐 인용한다.

 

“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줌마 12명 정도의 작은회사다. 관리자라는 남자 직원도 3명 있다. 사장은 여자. 이곳에선 점심시간에 10분씩 일찍일을 시작하라한다. 아침에도 10분 일찍 일을시작한다. 종종 반품되는 물량이있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남아서 처리하고 가란다. 잔업수당은 없다. 어떤날은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하라고 한다. 이 또한 잔업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게 아줌마들의 뜻은 아니다. 그 관리자중 두명은 사장의 오빠와 남동생이다. 그중 남동생은 아줌마들에게 대놓고 욕도 한다. ‘씨발 뭐하는거야!’,  아니면 ‘이 × 같은... 니들이 일을 그렇게 잘해!’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뭐 이런 단편적인 사례를 가지고 노동자들 전체가 이런식의 처우를 받는것처럼 호들갑을 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그럴까!

 

수년전 인근 지역에서 직장 관리자앞에 부동자세로 일렬로 세워진채 정갱이를 작업화에 까이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고 일주일에 두 번쯤은 이런 상담전화를 받는게 현실이다. 기업이라 하기에도 뭐라 한 10인 안팎의 영세사업장, 전근대적인 노무관리가 횡행하는 이런 사업장에서 종사하는 노동자가 팔백만명에 육박한다.  

 

지난 6월달에, 청주권역 주요대학과 기관의 청소용역노동자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했을 때, 결과는 ‘역시나!’였다.

 

7개 사업장중 두군데가 최저임금 위반, 다섯곳의 임금은 통틀어 법정 최저임금인 72만 7천삼백이십원, 인심써서 72만 7천 4백원이였다. 이들에게 임금인상은 둘째 치고, 일년마다 반복되는 재계약에서 짤리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청주에만 100여개 이상의 청소용역업체가 존재하는데 이렇게 사는 청소용역노동자만 청주에서만 2천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더불어 이렇게 최저임금에 맞추어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참여정부 1년차에 80만명에서 내년이면 210만명이 넘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떤가! 천사백만 노동자들의 월급봉투 총합을 땅투기 불로소득이 아주 간단히 역전했다. 금융소득은 나날이 늘어가고 8천만원으로 1천억의 소득을 올렸다는 주식대박신화가 나오기도 한다. 연소득 10억이상 번다는 고소득자 수가 나날이 증가한다는 통계도 나온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의 빈곤율은 심화되고 양극화는 심화되는가! 그래서 해법이 ‘경제’ 란다. 그래서 이번 대선의 화두는 단연코 ‘경제’다. 부패도 도덕성도 차후문제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가 이럴 정도로 어려울까! 이에 대해선 노무현 대통령은 이유있게 항변한다. ‘주식시장을 보라! 성장률의 구체적 수치를 보고 애기하라’고 말이다.

 

난 노무현 대통령을 절망적으로 싫어하지만, 이 말만큼은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애기한다. ‘멍청아! 문제는 경제(살리기)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민주주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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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다르고 속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

겉다르고 속다른  ‘기업의 사회적 책임’

 

‘ 아휴! 어르신 노동조합을 꼭 해야만 하나요’.  ‘네!’.

 

‘어르신은 정년도 훨씬 지나서, 괜시리 노동조합 만들었다고 해서 회사가 나쁜맘 먹고 나가라고 하면 뾰족한 대책도 없어요. 불이익이 훨씬 더 클수도 있어요. 그래도 꼭 노동조합을 만드실건가요’. ‘네!’

 

사무실을 찾아온 환갑을 훌쩍 넘긴 아저씨와 나눈 대화다. 이런 경우에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노동조합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도대체 종잡을수가 없다. 일하는 사람이라곤 50대의 여성노동자 4명, 그리고 환갑을 훌쩍 넘긴 이 아저씨가 전부다.

 

이 기업의 소유자는 대단한 사람이다.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특히 참여정부에서 아주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유력 정치인이고 일주일에 한번쯤은 9시 뉴스를 통해 접할수 있는 사람이다.

 

이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는 참 씁슬하다. 30대 초반의 젊은 관리자(과장)가 시도 때도 없이 ‘×팔’ 등 막 욕을 해댄다는 것이다. 그 뿐이랴, 수십킬로그램되는 중량물을 아주머니 여성노동자들에게 운반하게 하고, 힘에 부쳐 쩔쩔매는 아주머니들을 옆에서 조롱한댄다. 아들뻘 되는 그 관리자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해 보았지만 그게 싫으면 나가버리라는 식이랜다.

 

중소기업인상, 통상부장관부상, 철탑산업훈장, 코스닥 상장등 외양은 화려한 이 회사에서 벌어지는 이런 웃지못할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기업의 소유자인 유력정치인은 가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언급하기도 한다.

 

 

이번 주말엔 하이닉스와 매그나칩 하청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모여서 만든 음료자판기 유통업체인 ‘밝은 세상’이 문을 연다.

 

‘밝은 세상’의 모태는 하청노동자들의 복직을 거부하며 ‘사회적, 도의적 책무’를 들고나온 (주)하이닉스와 충청북도다. 사회적, 도의적 책무로 얼버무려진 그때 당시의 합의에 하청비정규노동자들은 그래도 한 20명 정도는 생계를 해결할거라고 기대했다. 이 20여명의 노동자들은 하이닉스로부터 받은 그 알토란 같은 위로금을 모아서 설립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낼 모레에 문을 연다.

 

 

그러나, 첫 출발을 하는 이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하이닉스와 충청북도의 그 ‘사회적, 도의적 책무’가 철저히 외면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의 현재 상태는 4명 정도의 생계를 유지하기도 벅찬 상황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는 광고카피나 선전용 문구로만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무슨 거창한게 아니다. 가장 일차적으로 그 안에 고용되어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게, 그리고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내년 총선이면 다시 국민께 표를 달라고 할 그 유력정치인도 지금도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을 이야기하고 있는 하이닉스에게 간절히 바란다. 거창하게 포장된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말하기 이전에 작은 것부터 해결해 주시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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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에 다녀와서

주왕산의 계곡은
낮게 낮게, 구비 구비 돌아쳐
작은 물 하나 허투루이 흘리는 법이 없다.

 

그렇게 모은 물, 내어 놓는데
뽐나지 않고 너무나 소박한데
그 소리, 사방을 휘어 감는다.

 

작은 물소리 하나 새어 가지 않고
두세배 울림으로 만들어 가는 그곳에서
말하지 못하고, 화내지 못한 모든 응어리를
가장 큰 울림으로 쏟아낸다.

 

작은 소리조차도 가장 큰 울림으로
만들어 내는
주왕산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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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법자의 굴레! 정근원지부장의 ‘멍에’

범법자의 굴레! 정근원지부장의 ‘멍에’

 

여섯 살난 그의 아들이 타고놀던 ‘인라이스케이트’도 치워지고, 라면을 끓여 먹던 휴대용 ‘코펠’ 용기도 없다. 자그마치 116일. 발부된 체포영장을 피해 그가 이곳에 들어와 생활한 날의 기록이다. 그는 바로 얼마전까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장이었고 기름쟁이 노동자인  정근원씨다. 

 

 그는 한미FTA 협상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금속노조의 지침대로 파업을 진행했고, 그 일로 파업이 시작되는 날 문자메시지를 통한 세 번의 출두요구에 불응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었다.

나도 그랬었지만, 우리나라 경찰은 한미FTA 문제와 관련해서는 꼭 문자메세지로 출두요구서를 보낸다.

 

아, 디지털 강국의 대단한 경찰!

 

116일 이라는 유배 생활을 뒤로 하고 그가 어제 경찰에 자진출두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다시 그가 기거하던 공간을 보았을 때,  물밀 듯 밀려오는 진한 설움이 요동친다.

 

우리는 늘 그래왔다. 우리가 뭘 해볼라 치면, 그리고 그 일이 끝나갈때가 되면 우리는 늘 전과자가 되어있었다. 수조원의 순이익을 올리는 그 거대기업에서 소박하게 임금인상 기대하며 노동조합을 했던 백여명의 하이닉스 매그나칩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그랬다. 하나님의 기업에서 벌어진 불법적인 외주용역화를 반대했던 80만원짜리 홈에버 아주머니 노동자들이 그랬다. 청주대 청소 아주머니들 문제로 학교 사무실에 한시간동안 방문했던 나의 아내에게는 ‘특수건조물 침입, 특수재물손괴, 업무방해, 폭력’등 테러리스트로 짐작될 죄명이 붙었다. 

 

현해 노동법 체계에서는 어쩔수 없다. 범법자가 되지 않고서는 할수 있는게 거의 없다. 도저히 우리 노동자가 지킬수 있는 법률이 아닌 것이다. 노동법에서는 노동자에게 파업권을 보장해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나! 노동자가 파업해도 사용자들은 대체인력을 고용해서 아무런 일도 없는 듯 파업을 무용지물로 만든다.(이건 명백히 불법이다). 노동부에 아무리 외처봐도 복지부동이다. 그래서, 노동자가 직접 항의하다 옷깃만 스칠라쳐도 폭력행위로 노동자를 처벌한다. 수많은 일들중에서 한가지만 불법이어도 전체가 불법으로 매도된다.

 

말 많은 노대통령, 그는 토론을 좋아한다.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기 때문에 국정수행에 국민을 참여시킨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땠나! 이익보는 사람과 손해보는 국민이 명백한 한미FTA에 관해서 그 흔한 토론한번조차 없었다. 그나마 파업이래도 한번 한다고 해야 조금 들어주는 척 한다.

 

그러니 어쩌랴!

 

정근원 전 금속노조대전충북지부장. 그를 범법자로 만든건 노무현 대통령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만큼 구속노동자를 양산했던 노무현 정권! 비정규직노동자가 헤어 나올수 없는 범법자의 굴레를 만들어놓고, 한미FTA에 관한 일체의 의사표현, 토론을 차단해서리 굴레에 빠지기만을 기다렸던 노무현 정부가 벌인 거미의 곤충사냥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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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앞에서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 앞에서

 

여지없이 올해도 노동생산성보다 임금상승률이 높다하는 어느 단체의 발표가 있었고 이것은 여지없이 8시 뉴스의 앞자리를 차지했다. 본능적으로 올 ‘평균임금 인상률’도 찾아보고 ‘물가상승률’도 찾아보고 일년에 두 번쯤 찾아볼 통계청의 홈페이지에도 접속해본다.

 

그러다가 ‘월척’을 잡은적도 있다(내딴에 월척이지만!). 아니 세상에 2005년도를 비교해보니 ‘근로자’(난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란 말을 무조건 쓴다) 1년 총소득보다 민간사유지 땅값상승액의 총액이 더 크다는 노무현정부의 비밀도 우연스럽게 알아내는 월척말이다.  통계청 덕분에!

 

내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정부를 고맙게 알기는커녕 노무현 정부의 ‘싸가지 없음’에 고개를 떨었지만 단순히 이 정부가 우리 노동자와 서민의 정부가 아니라는 슬로건이 아니라 피부로 알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감사는 ‘감사’고 우리 노동계에 항상 덧씨워지는 ‘이기주의’는 정말 답답하고 힘들었다. 노동자에 더 많은 임금이 가는 것이 우리 사회의 '분배정의' 혹은 '평등'의 척도라고 '절대신앙'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임금상승률보다 너 낮다 하는 노동생산생 수치는 적대적으로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수치조작으로 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나름대로 내 주관, 아니 좀더 과장하고 나를 좀더 포장한다면 '내철학'으로 산다 했거늘 이렇게 수치에 대해서 민감하고 나름대로 객관적일지도 모르는 수치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방어본능이 작용했다. 그렇게 수치에 얽매어 살았다.


그런데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 ‘마이너스 성장도 성장이다. 왜 성장률에 집착하냐!' 가정친화적 삶도 그렇고 자연친화적 삶도 그렇고, 그런 지향을 가지고 있으면 하루 4시간만 일해야 한댄다는 말을 들었다.

 

덜 먹고, 덜 벌고 하는 대신에 더 작게 소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삶의 철학'으로 대 전환하자는 말씀이다. 아무리 우리가 아웅다웅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재(지구)와 환경, 그리고 경쟁구도는 한계가 있고 그속에서 삶의 패러다임(성장 지상주의)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좋은 삶의 질의 개선도 없다는 거다.

 

머리가 정말로 '띵'했다. 그리고 이삼일 후, 어떤 지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고민을 나누는 분인데 그분이 살아가고 싶은 삶을 적시한 것이 너무나 강렬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 없다는 불혹을 지난 나이의 그분은 ‘필요한 만큼만 벌고, 가장 적게 소비하는 삶’의 방식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러다 머리가 두 번 ‘띵’하는 일이다. 이런 애기를 사무실 동료에 애기하다 보니 알게된 일이다.

지역 시민단체에서 내가 아는 상근자와 가족을 이루어 사는 이 사람은 삶의 목표가 ‘가난하게 사는 것’이란다. 그래서 소득 중에서 내게 꼭 필요한 것만 빼곤 나머지 소득은 나눈단다.

 

아! 오늘은 한없이 초라해지는 날이자 세상이 어떤 사람에 의해 따뜻해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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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의 딜레마

죄수의 딜레마

 

노동조합을 만들겠다고 해서 요즘 부쩍 자주 만나는 노동자들이 있다. 화물 운반용 트럭을 운전하는 노동자들인데 이들의 주된 관심사, 아니 불만은 월급봉투다. 이분들중 한분이 엄청난 비밀문서를 가지고 왔다. 회사의 규칙에 의하면 본인 이외엔 절대로 공개를 해서도 안되고, 말을 해서도 안되는 극비의 비밀문서다. 뭐냐하면 그 노동자의 천오백이십만원짜리 '연봉계약서'다.

 

무슨 프로야구 선수도 아닌데, 그냥 회사에서 짜주는 순서대로 운전하는게 전부인데 무슨 능력별 차이가 그리 크게 있다고 연봉제라니! 또 다른 노동자도 그 극비의 연봉계약서를 공개했는데 똑같이 천오백이십만원이다.

 

이 연봉계약서에는  가장 굵은 글씨로 밑줄까지 쫘악 쳐가며 강조한 것이 있는데, '본인이외에 타인에게 절대로 누설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이다.

 

참나, 별개다 기밀이다.

 

그날, 천기누설을 한 노동자 열댓명과 술자리겸 해서 자리를 했는데, 이렇게 다들 모인 것이 처음이란다. 그 자리에서 아저씨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배신하지 말자'다. 무슨 독립운동 결사조직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배신하지 말자'고 왜이리 비장한지 모를일이다. 하긴, 어떤 노동자가 노동조합 간부를 하기로 결단을 내리던 날 돌아가신 부친의 묘를 찾아가 절을 하고 왔다는 비장한 애기가 있을 정도로 노동조합에 대한 긴장감과 불안함을 조성하는 우리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 노동자들에게 '죄수의 딜레마'를 안주거리로 내놓았다. '여기 두명의 죄수가 있다. 검사는 이 두명의 죄수에 대한 충분한 물증이 없다. 그래서, 두명다 자백을 하지 않고 부인하면 증거불충분 무혐의로 풀어줄 생각이다.  그리고 한명만 자백을 하면 그 죄수는 불구속으로 하고, 자백을 하지 않은 죄수는 5년의 형량을 구형할 생각이다. 둘다 자백을 하면, 3년을 구형할 생각이다. 그리고, 둘을 따로 격리시킨 상태에서 각각의 죄수에게 이런 속내를 내비쳤다. 여기서부터 죄수의 딜레마는 시작된다.'

 

술자리에 있는 노동자 아저씨들한테 물었다.

 

이 죄수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본인들에게 가장 유리할까요! 아저씨들이 대답한다. '당연히 주딩이 꽉 다물어야지'. 하니 다른 아저씨가 '어떻게 믿어! 안 불은 놈만 쪽박차지'. 모두다 웃는다.

 

아저씨들한테 묻는다.

 

 '다들 불안하시죠. 괜시리 나만 손해보는 거 아닌가하고 다른 동료들이 배신하면 어떻하나. 그런 생각들을 하시는 거죠.'

 

아저씨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기왕에 천기누설까지 했으니, 다른 동료들 의심의 눈초리로 보지 말고 내가 변치 않으면 다른 사람도 변치않는다는 노동자의 의리를 보여주자고 했다. 아저씨들이 또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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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장은 재래시장을 가자!

아주 불편한 진실, 아니 외면하고픈 사실이다. 78만원 받고 일하던 이랜드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이 3달 넘게 더 안받아도 좋으니 이대로 일할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그 사실 말이다.

 

 

바퀴달린 바구니에 물건을 가득싣고 다다가면 그녀들은 다정하게 우리들을 맞아준다.
“고객님 어서오십시오”, “오만 이천 삼백원 나왔습니다.” 적립카드 있으십니까!“, ”비밀번호 눌러주시겠습니까!“, ”고객님 봉투 필요하십니까“,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녀들의 미소뒤에 감춰진 그녀들의 불편은 무엇일까!

 

나사로 고정된 것처럼, 하루 여덟시간을 제자리에 있어야 하는 그 불편함. 화장실조차 갈수 없어 90%의 여성 캐셔노동자들이 방광염에 걸렸던 그 불편함.

 

5만원, 10만원 바퀴달린 바구니에 가득실린 물건을 바코드에 찍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78만원의 임금으로는 제 바구니에 아무것도 담지 못했던 그 불편한 진실을 말이다.

 

언제나 똑같은 그녀들의 고운 미소와 밝은 목소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도,레,미,파,솔!  솔음의 톤으로, 소리나지 않게 “리”하고 하면 그녀들의 밝고 고운 목소리와 미소가 재생된다.

 

퉁퉁부은 다리로, 방광염의 고통으로 막상 제 남편과 아이에겐 한번도 들려주지 못했던 그 밝고 고운 그 목소리! 지금같은 상태가 조금만 더 오래가면 그녀들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수가 없다.

 

그녀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우리와 이별하게 만든건 누구일까

 

성경에 노동조합이라는 문구를 넣지 않은 원죄를 가지신 하나님일까! 하나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비정규보호법‘이라고 이름붙여 법률을 만든 노무현 대통령과 이상수 노동부장관, 금배지 국회의원들일까!

 

외주화, 아웃소싱 영어로 멋드리지게 경영의 선진기법으로 표현되는 그 고상한 말속에 진실은 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화 해야된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과의 임금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비정규법이지만 이 고상한 외주화, 아웃소싱 한마디면 모든게 해결된다.

 

하나님의 말씀중에 노동조합이란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화를 거부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누구말이 진실인가!

 

 

 78만원 받던 임금이라도 좋으니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그녀들의 목소리와 90만원 하는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기업이 존속할수 없을 정도의 위기에 빠진다는 기업가의 목소리중에서 어느것이 진실인가!

비정규보호법이라고 우겨대는 대통령의 말과 그 법 때문에 일자리에서 쫓겨나서 울부짖고 있는 이래든 홈에버 여성노동자들의 울음소리에서 어느것이 진실이란 말인가!

 

이제 이야기를 마치려한다. 그녀들의 울음소리대신에 예전의 밝고 고운 목소리를 다시듣고 싶다면...... 그러면 방법이 있다.   이번 추석 장볼 때 ....  바퀴달린 바구니대신 시장가방들고 재래시장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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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를 둘러싼 두가지 잣대

'절도'를 둘러싼 두가지 잣대

 

'유전무죄, 무전유죄'. 혹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대한민국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이 말이 다시한번 현실에서 나래비로 등장했다. 수백원의 회사돈을 빼돌린 혐의의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 수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의 정대근 농협중앙회장,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쇠파이프로 혹행하고 사람을 감금한 혐의의 김승연 한화그룹회장. 줄줄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내 주변의 노동자들 입에선, 아니 보통의 시민들 입에선 '역시나' 하고 탄식과 욕설이 튀어나온다.

현대차 그룹 정몽구회장에 대한 '사회공헌 약속을 지키고 윤리경영을 주제로 일간지에 기고하고 강연하라'. 이 놀랍도록 창조적인 사회봉사명령에 대해서 사람들은 '신문모독'이라며 조롱했다.

 

어슴푸레 기억이 떠오르는데 아마도 한 칠, 팔년 되었나부다. 청주공단의 한 제과업체에서 있었던 어떤 여성노동자의 일이다. 사소한 불량이 난 제품인데 그게 그냥 소각처리되는게 너무나 아까워 보였단다. 그래서 시가로 하면 한 몇천원쯤 하는 이 불량과자 몇박스를 몰래 담장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담장에 숨겨논 과자를 챙기는 순간 아뿔싸! 회사 관리자에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회사 제품에 대한 절도사유로 해고됐다. 그녀는 억울해 했지만, 회사제품이 크던 작던, 액수가 크건 작건간에 물건을 빼돌린건 사실이었다. 각종 판례도 회사제품에 대한 노동자의 절도에 대해선 무지무지하게 엄격해서 달리 방법도 없었다.

 

어슴푸르게 떠오르는 이 기억 때문에 정몽구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더 비참해진다. 수백억원의 돈을 빼돌리고도 건재할수 있는 선택받은 국민과 몇천원짜리 물건을 빼돌려도 '앗'소리 한번 하지 못하는 버림받은 국민으로 나누어 적용되는 이땅의 위대한 사법정의!

 

선택받은 국민의 권리와 버림받은 국민의 권리조차도 그 자식세대에게 고스란히 세습되는 봉건시대 부럽지 않은 이땅의 사법정의!

 

아아! 그래도 우리에게 절망만 있으란 법은 아니다. 희망도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만명에게만 평등한 법이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한' 법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과 염원도 더 커져가고 있고,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칼날도 더 예리해지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같아도 지나보면 어느새 한발짝 나아가 있는 것이 역사고 그 역사를 이루는 힘은 민초들의 갈망과 희망이랬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의 주인공은 오늘도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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