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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삼 - 정글고등학교 159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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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삼 - 정글고등학교 158 <잉그리쉬 헤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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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내셔널가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

1.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해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2.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릴 구원 못하네
우리 것을 되찾는 것은 강철 같은 우리의 손
노예의 쇠사슬을 끊어 내고 해방으로 나가자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3. 억세고 못 박혀 굳은 두 손 우리의 무기다
나약한 노예의 근성 모두 쓸어 버리자
무너진 폐허의 땅에 평등의 꽃 피울 때
우리의 붉은 새 태양은 지평선에 떠 온다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인터내셔널 깃발아래 전진 또 전진

 

 

전세계 노동자들의 영혼이 숨쉬고 있는 노래, 바로 <인터내셔널가>이다.

외젠 포티에의 시에 누군가의 즉흥 오르간 연주과 씌워져 탄생한 이 곡은

파리코뮌을 시작으로, 유럽과 남미, 아시아 변혁의 과정에서 면면이 이어 내려오고 있다. 

 

이미 100년이란 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파리코뮌의 최후 바리케이트 안에서 이 노래를 나지막히 읖조리던 한 병사의 마음과, 오늘 날 새 세상을 바라며 주먹 불끈쥐며 이 노래를 부르는 전 세계 노동자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

 

많은 활동가들에게 인터내셔널가는 점차 추억이 되고 있는것 같다.

노동절, 그러니깐 메이데이마다 이 노래를 꼭 한 번은 불렀는데,

이제는 언제 마지막으로 이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다.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노동자들의 노래인만큼, 다양한 언어와 버전들로 만들어 지고 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베스트 곡들을 선정했으니, 가끔 생각 날때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전 세계 곳곳에서 변혁을 꿈꾸는 이들의 감수성을 나눠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1. Jazz 인터내셔널가


 

너무 좋죠? 이지리스닝입니다.

우리나라 민중가요도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되었으면 좋겠네요.

 

 

2. 피아노 솔로의 인터내셔널가

 

 

plsong에서 보니 "이 곡은 청년진보당(현 사회당)이 정치연수원을 개원하고 1기 간부학교를 마치고 난 졸업식때 공연된 것의 녹음입니다" 라고 설명이 붙어있네요. 매우 감미롭습니다.

 

 

3. 볼쇼이 합창단의 인터내셔널가

 

 

러시아 볼쇼이 합창단의 인터내셔널입니다. 매우 웅장합니다.

 

 

4. 중국의 인터내셔널가 (Rock ver.)

 

 

중국어가 좀 낯설긴 하지만, 경쾌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록밴드라고 하던데...

 

 

5. 영화 <랜드앤프리덤>의 인터내셔널가

 

 

영국의 좌파감독 켄로치의 <랜드앤프리덤>에서 나온 인터내셔널입니다.

 

 

 

6. Hannes Wader의 인터내셔널가

 

 

들어본 외국 인터네셜널가 중 가장 멋진 노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기타 하나들 들고 마치 어느 선술집에 모여서 다같이 합창하는 분위기인데,

마지막의 구호합창이 정말 압권! 꼭 끝가지 들어보시길!

 

 

7. 최도은의 인터내셔널가(이게 최고!)

 

 

아무리 좋은 외국곡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가사가 들리는 한국어버전이 제일 귀에 익습니다^^;

그 중에 폭발력 있는 가창력의 민중가수 최도은씨의 인터내셔널이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 집회에서 이 분의 노래를 들을때마다 온 몸에 전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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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달구경가자

휘영청 커다란 달이 둥둥 뜨면
 
달집은 모두의 소원을 묶어 타오르고
 
그 아래 모인 이들 모두 평등하여라
 
 
 
맘 깊이 비는 소원 모두 이루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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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 '들불'

 

이순구의 들불 연작

 

작가 블로그 - 이순구 그림 Yi, Soongu Painting Art'


 
이순구, <들불>, 유화, 30호 , 2007
 
 
 
 

 
이순구, <들녘>, 유화 , 60호, 2007
 
 
 
 
 

 
 
이순구, <들녘>, 유화 , 60호 , 2006
 
 
 
 
 

 
이순구, <들불>, 유화 10호, 2007
 
 
 
 

 
이순구, <들녘>, 유화, 80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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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사랑

꽃샘  사랑 

 

 

 

 

 

일기예보는 꽃샘추위

 

 

  

서슬퍼런 계절의 덫에 걸려 

혼자된 짐승은 겁에 질린 채

더디오는 봄볕에 투덜거리고

 

  

 


주홍 낯빛으로 물드는 설레임

고운 님의 품에 자라는 꽃만 

어떤 시샘에도 주눅들지 않아라

 

 

 

 

나도 따라

그대의 꽃으로 흐드러지려면

고목의 껍질 뚫고 나올

새순의 결심을 배워야지

 

 

 

 

가녀린 실뿌리 뻗어

녹아내릴 대지의 눈물을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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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수 열사 4주기...절망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

사실 참 고마운 글이다.  벌써 4년전... 기자와 처음 해봤던 전화인터뷰 ^^;;;

어쨋든 내가 만든 영상을 언론 기사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게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기분 좋았다.

 

물론 이 앞과 뒤의 적지 않은 것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공중파 방송이 찍지 못한 투쟁을 알리기 위해 내 찍은 영상을 어쩔 수 없이 빌려주는 정도였으니...

 

더구나 난 민주노총에 들어온 이후.. 2005년 플랜트 투쟁 영상을 만든 것 말고는

내 맘에 드는 영상은 단 한편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나의 무기였던 캠코더도 회사경비들에게 꺽인 마이크 그대로 덩그라니 먼지에 쌓이고,

그대신 투쟁현장에서 카메라를 배우게되는 신참 미디어활동들을 격려하는 걸로 만족한다.

 

그런데 제 박일수 열사 4주기에 만났던

르포라이터 연정동지에게 이 영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래의 기사를 보고 궁금했던 것들이라 했다. 그래서 다시 떠올리는 4년전의 기억들...

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나중에 꼭 극영화로 열사의 삶과 투쟁을 담고 싶다 말했다.

 

맞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10년을 위해 다짐한 두번째 바램이 생겼다.

 

열사가 나에게 주었던 숙제는 아직 그대로이고

난 또 다시 열사 앞에 다짐하고 약속했다. 게으르기 짝이 없는 지금을 반성하며,,,

 

 

 

 

 

 

 

 

절망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

박일수 열사 투쟁기록 영화로…한때 ‘동지’였던 탁학수-박일수의 엇갈린 운명
 
두 사람이 있었다. 같은 기업,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다. 투쟁의 자리마다 함께 했다. 함께 어깨 걸었고, 함께 소리 질렀다. 함께 눈을 맞았고, 함께 주먹을 뻗었다. 한 사람은 정규직, 다른 한 사람은 비정규직. 같은 노동자면서도 다른 노동자. 그래도 그들은 ‘동지’란 이름으로 함께 싸웠다.
 
시간이 흘렀다. ‘정규직 그’는 원청노조 위원장이 됐고, ‘비정규직 그’는 변함없이 하청노동자였다. ‘정규직 그’가 이끄는 노조를 현장에선 ‘어용’이라 불렀고, ‘비정규직 그’가 소속된 노조는 회사가 인정하지 않았다. 둘 사이엔 어느덧 깊은 강이 흘렀다.
 
‘정규직 그’가 잘 나가던 어느 날, ‘비정규직 그’는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한 마디 말만 남겼다. 새까맣게 탄 ‘비정규직 그’를 두고 ‘정규직 그’가 말했다. “분신했다고 다 열사가 되는가?” 순간 ‘정규직 그’는 두 가지 이름을 버렸다. ‘민주노조’란 이름과, ‘동지’란 이름. 수많은 목숨이 피 흘리며 지켜 온 이름, 그 먹먹한 이름을.
 

 
희망 없이 버텨야만 하는 곳, ‘절망의 공장’
 
‘정규직 그' 탁학수, ‘비정규직 그' 박일수. 두 사람이 조우했다 멀어져 간 곳은 ‘절망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이다. 올해로 8회째인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엿볼 수 있다.
 
영화제에선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외치며 지난 2월 14일 분신, 생명을 끊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박일수 열사 사건 투쟁이 상영 중이다. ‘절망의 공장-현대중공업 그리고 비정규직’이란 제목을 달았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중심으로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투쟁을 한껏 고양시킨 박일수 열사 사건의 영화제 상영은 시기적으로도 의미심장하다.
 
‘절망의 공장’은 박일수 열사 분신 후 장례식을 마치기까지 54일간의 기록이다. 9월 15일 민주노총 금속연맹의 현대중공업노조 제명이란 충격적 결정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영화는 생생하게 보여 준다.
 
현재 민주노총 울산본부 미디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감독 배문석씨는 박일수 열사 분신 직후부터 사건 수습 전 과정을 카메라로 담아 성격이 각기 다른 몇 개의 편집본을 별도로 만들었다. 각종 인권·노동 관련 영화제 출품만 이번이 네 번째로, 상영 목적에 맞는 그림을 따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번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 상영 중인 편집본은 원래 현중노조 제명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 직전, 대의원들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영상이다. 자연히 편집의 초점은 사건 수습 과정에서 현중 직영노조가 하청노조에 보인 부적절한 행태에 맞춰져 있다. 배문석 감독의 말이다.
        
“제명표결 직전에 상영한 영상이 대의원들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독려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현중노조를 제명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겐 원죄 같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제명 결정 후엔 현중노조가 항의하는 과정에서, 이 영상이 제명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촬영 당시에는 현중노조로부터 협박도 많이 받았다. ‘찍지 말라’는 말 외에도, ‘죽여 버리겠다’는 말도 들었다. 멱살을 잡히는가 하면, 술취한 현중 경비들이 카메라를 탈취하려고 해서 경찰이 출동했던 적도 있다.” 
 
영화는 박일수 열사 분신 직후부터 투쟁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좇아간다. 카메라는 고통스런 장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숏과 숏, 신과 신, 시퀀스와 시퀀스 사이에서 앵글이 멋을 부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 '절망의 공장'을 연출한 배문석 민주노총 울산본부 미디어국장.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던 3명의 하청노조 조합원들이 현중경비들에 의해 바지와 신발이 벗겨지고, 손이 뒤로 묶이고, 청 테이프로 입이 봉해진 채 끌려 내려오는 장면, 현중 정문 안으로 투쟁대오가 처음 진입한 날 경비들이 살수차로 쏘아대는 물과 뭉텅이로 뿌려대는 최루가루를 뒤집어쓰고 추위 속에서 얼어 가는 장면, 오토바이 헬멧 쓴 경비가 항의하는 노동자의 얼굴에 소화기를 들이대고 뿜어대는 장면, “아기가 있어요”란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농성천막을 뭉개 버리는 장면, 경찰이 수수방관하며 교통정리나 하고 있는 장면….
 
여기에, 탈진해 가는 하청노동자들이 “현중자본 박살내자”란 구호를 쥐어짜듯 끌어올릴 때, ‘회사사수대'로 동원돼 이를 지켜보던 정규직들이 여기저기서 웃음을 흘리고, 그 중 한 명이 엄지손가락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좆까”를 외치는 장면에까지 이르면, 가슴 속에서 우뚝우뚝 솟는 그 무엇과, 눈가에서 슬금슬금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그 무엇 때문에, 관객은 뻣뻣해지는 뒷목을 쓸어대며 떨어지는 시선을 주체하지 못한다.      
 
“당시는 정몽준 의원이 걸린 총선이라는 특수 상황이었기 때문에 현중자본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올인했던 시기였고, 민주노조 진영에서도 모든 것을 쏟아 부어 한판 대결의 장을 펼쳤던 때였다. 현중 쪽에서는 선거 때마다 암약했던 사조직들까지 다 노출시킬 정도였다. 이 조직들이 자신들의 명의로 플래카드를 만들고 유인물도 뿌리면서 ‘박일수는 정신병자다’ ‘술 취해서 죽은 사람을 열사라니 웃긴다’ 등 온갖 악선전을 해댔다. 현중은 2만 명 정도 되는 전 사원들을 회사사수대회 같은 걸로 소집해서 과장급들을 사수대로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하청노동자들의 가장 큰 설움은 같은 ‘노동자’란 이름 아래, 같은 현장에서 일해 온 동료 정규직 노동자들의 태도였다. 박일수 열사 분신대책위의 활동을 “선거에서 정몽준 의원에 위해를 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며 현중노조 조합원이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가 하면, 노조 대의원들은 대책위 농성장으로 대거 몰려와 천막을 부수고, 플래카드를 뜯고,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글귀가 쓰인 만장을 압수한다. 그리고 각목. 이들 중 한 명이 손에 각목을 들고 이리저리 휘저을 땐, 하청노동자들이 느꼈을 암담함이 스크린을 뚫고 객석까지 전달된다.    
   
절망스럽다. 분노보단 절망이란 말이 정확하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탄압하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을 절망이라는 말 외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현중은 그래서 ‘절망의 공장’이다.
 
“현중에 ‘절망의 공장’이란 이름이 붙은 지 오래됐다. 98년도 이후부터 현장 활동가들은 자기의 공장을 ‘절망’이라 불렀다. 95년 이후부터 회사가 집요하게 현장을 깨오는 과정에서 연유한다. 회사는 대의원 포섭뿐 아니라, 대의원선거 자체에도 철저히 개입했다. 활동가에 대한 폭행도 예사였다. 이런 과정이 거듭되면서 노조는 조합원들의 불만을 고자질하는 회사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했다. 조합원들이 희망을 꿈꾸기보다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치지 않고 버티는 ‘절망의 공장’이 되고 만 것이다.”
 
하여, 카메라는 곳곳에서 운다. 가족들과 같이 울고, 해금가락과 같이 운다. 시신을 빈소로 옮기는 장면에서 울고, 관이 화장터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상복 입은 노동자들도 울고, 뼛가루를 땅에 묻는 장면에선 노래가사도 운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감독은 대책위에도 메스를 들이댄다. 대책위 위원장 직무대행(장인권 민주노총 울산본부 수석부위원장)이 “민주노총 총연맹 멱살이라도 잡고, 하청노동자들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시키겠다. 분명히 약속한다”며 거듭 다짐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와 전격합의, 합의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에, 하청노동자들이 울분을 터뜨리는 장면도 빼지 않고 고스란히 담았다. 촬영 당시 ‘제3자’였던 감독이 이후 대책위의 주축인 민주노총 울산본부로 자리를 옮겨 ‘당사자’가 됐지만, 이 민감한 장면을 굳이 넣은 것은 정규직 지도부로 구성된 대책위의 한계를 숨겨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울산본부에서 일하지 않을 당시에 찍고, 울산본부 간부가 된 후 편집을 했지만, 정규직 노조 지도부가 가질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합의를 이끈 후 하청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던 본부 수석위원장도 편집본을 보고 별로 개의치 않았다. 우리 운동의 감출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울분을 토했던 하청노조 동지의 분노 역시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일 수 있다. 양측 사이의 더 심한 갈등도 있었지만, 투쟁동력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포함시키지 않은 부분도 많다.”
 
박일수-탁학수의 엇갈린 운명
 
▲ 작년 2월 배달호 열사 관련 투쟁현장에서 앞뒤로 앉아 있는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오른쪽 아래로부터 시계방향으로 두 번째)과 박일수 열사(세 번째).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엔딩 부분에 나오는 한 컷의 사진이다. 유독 눈길을 끄는 사진 속 두 사람의 얼굴 때문이다. 작년 초 사망한 두산중공업 배달호 열사와 관련한 투쟁현장에서 열사의 영정을 든 노동자 뒤로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과 박일수 열사가 앉아 있다. 영화는 먼저 클로즈업시킨 탁학수 위원장 얼굴 위로, 탁 위원장이 박일수 열사 사망 직후 열린 대책위에서 한 말을 오버랩시킨다.     
 
“개인적이고 조직적 역할이 없던 사람(박일수 열사)이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열사가 되나?”
 
조성웅 하청노조위원장이 “박일수가 노조활동을 조직적으로 못했다고 해서 열사가 아니라고 말하는 건 잘못”이라고 했지만, “분신이 곧 열사인정은 아니”란 취지의 뜻을 굽히지 않던 탁 위원장은 다음날 대책위에서 현중노조의 이름을 뺐다.
 
그렇다면 탁학수-박일수 두 사람이 배달호 열사 투쟁현장에서 앞뒤로 나란히 앉은 건 우연이었을까? 우연이 아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증언하는 배문석 감독의 말은 충격적이다.
 
“마지막 장면의 사진은 투쟁이 끝난 후 입수한 것이다. 작년 초 배달호 열사 투쟁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은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 박일수 열사가 정규직 노동자 중에 가장 친했던 사람이 탁학수였다. 현중에서 같은 작업분과에서 일했다. 두 사람은 많은 것들을 같이 이야기하고 고민했던 사이였다. 심지어 분신을 처음 마음 먹었을 때 탁학수한테 가서 ‘내가 죽어야겠다, 죽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맘을 털어놨을 정도였다.”
 
박일수 열사를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던 탁 위원장이 박일수 열사의 친구였다는 배 감독의 말은 당혹스럽다. 배 감독의 이어지는 말은 한 때 동지였던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한 순간에 극명히 엇갈리는지 보여 준다.   
 
“그랬던 두 사람이었는데, 1년 뒤 한 사람은 활동가에서 어용노조 위원장으로 돌아섰고, 한 사람은 분신자살했다. 당시 현장활동가 신분으로 배달호 열사 투쟁에 같이 참석했던 탁학수는 작년 말 선거를 앞두고 현장활동을 다 끊고 회사쪽으로 돌아섰다. 이 순간부터 탁학수는 비정규노조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았고, 표현도 늘 ‘하도급노조’란 말을 썼다. 현중과는 상관없는, 현중이 책임지지 않는 노조라는 뜻이다. 아주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탁학수 위원장은 박일수 열사에 대해 “친했다기보다 좀 잘 안다”는 표현을 썼다.
 
탁학수 위원장과의 전화통화 내용이다.
 
- 박일수 열사와 절친했던 사이라고 들었다. 사실인가?
“그런 걸 나한테 확인할 필요가 있나. 친했다기보다 좀 잘 안다.”
 
- 박일수 열사는 한 때 위원장님을 많이 신뢰했다고 들었다.
“작년 6, 7월경에 헤어졌다. 같이 일을 해 오다가 그 즈음에 헤어졌다.”
 
- 헤어졌다는 말은 운동의 길을 달리했다는 뜻인가?
“그런 뜻이다. 한 조직에서 같이 활동했을 때 잘 알았다는 것이고, 작년 5월쯤 해서 박일수씨가 조직을 떠나면서부터 서로 외면하고 지냈다.”
 
- 박일수 열사가 분신 전에 위원장님을 찾아가서 “죽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의 사이였다고 하던데.
“그런 일이 있었다. 직전이라기보다도, 떠났을 당시도 그런 이야기가 가끔 있었는데,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되고, 살아서 해야 한다’고 말을 해 줬다. 그때도 (박일수씨의 말도) 운동적으로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뭔가 사건이 있어야 한다’라는 차원이었지, ‘자기가 해야겠다’라는 건 꼭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는 운동하는 사람들은 다 하는 이야기 아닌가.”    
 
- 박일수 열사를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 의견은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그런 질문에도 답해야 하나.”
 
- 답변을 부탁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박일수와 친한 것과는 별도로, 일반적으로 열사라고 규정하는 대목에서 과연 분신했다는 이유, 유서 하나 남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열사로 규정해야 하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판단하기에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 한 때 절친했던 사이고, 고민도 나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길을 달리하면서 아주 극명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부분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박일수씨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박일수가 분신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경로가 안 있었겠나. 우리 현대중공업도 협력업체와 관련해서 비정규노동조합도 있고, (그건) 박일수가 같이 합류해서 만들려고 했던 노동조합이다. 회사와 협력업체와 관계 문제가 있다고 할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게(분신했다는 게) 쉽게 이해되겠나. 우리가 활동 속에서 분신이나 타살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열사로 볼 수 있는 건데, 그런 점에서 박일수씨는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누가 뒤에서 지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는 운동적 관점에서 그건 아니라는 것이다.”
 
“분신했다고 다 열사라고 인정할 것 같으면, 이 땅에 열사 아닌 사람은 누가 있나. 예를 들어 노숙자가 열차에 치어 죽으면 열사가 되나. 그것도 열사지. 안 그런가. 산업현장에서 쫓겨나서, 명퇴 당해 가지고 오죽 했으면 열차에 치어죽겠는가. 그런 사람은 유서 안 썼다는 이유만으로 열사 안 되고, 유서 쓰고 불살랐다고 유서를 인정해서 열사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안 맞다는 거다. 친한 거하고는 다른 거지.“
 
- “나의 운동적 관점 아니다”라 했는데, 그렇다면 대책위 투쟁과정에서 직영노조가 하청노조 운동 거점을 부수기도 했는데, 이른 불미스런 일은 운동의 관점에 맞나.
“겉으로 볼 때 내가 시켰다고 보는 건데, 내가 시킨 적도 없고, 나간 적도 없다. 다만 지역 대책위 하고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우리 중공업 하고 상황에 맞게끔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느냐는 논의를 하려고 정중하게 우리의 요구를 요구했지 실력행사 했던 것은 한 번도 없다. 문제가 된 건 대의원들이 주도가 돼서 그런 행위들이 몇 번 있었다. 할 때마다 내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만, 하지 말라 한다고 되는 일인가. 노동조합 현실이 그런데.”   

 
탁학수 현중노조 위원장의 얼굴이 다시 작아져 스크린 한쪽으로 되돌아가면, 이번엔 박일수 열사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얼굴은 곧 그가 죽었던 그때처럼 불타오른다.
 
박일수 열사가 사망으로 촉발된 하청노조 투쟁은 이후 소지공들의 현중사내하청노조 집단 가입을 낳으며 ‘희망’을 기대하게 했지만, 현중의 교란으로 머지 않아 와해됐고, 현중과 대책위간의 합의사항도 거의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 말처럼 ‘사람 대접’ 받기 위해선 열사를 휘감은 불길이 아직은 꺼질 수 없을 것 같다.
 
열사가 뜨거울지언정.
 
이문영 기자  2door0@labortoday.co.kr



박일수의 희망, 박일수의 투쟁정신으로
14일, 박일수열사정신계승결의대회 열려  


▲ 박일수열사정신계승집회에 참가한 울산지역 노동자
14일 오후 6시, 현대중공업 전하문 일대에서 '박일수 열사 정신계승 결의대회'가 열렸다.

집회 대열의 앞에는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열사정신계승'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었고 대열의 마지막에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집회가 끝날 때까지 선 채로 함께 했다.

금속노조 울산지부 노동자들, 울산지역 투쟁사업장인 이랜드 일반노조, 삼성SDI하이비트, 중앙케이블방송지부, 울해협, 한국사회당, 사회주의노동자연합(준), 열사회 등 300여명이 참가했다.

여는 발언에 나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조성웅 위원장은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하늘로 오르고 있다. 차별에 항거하며 제 몸에 불을 지르고 있다"면서 "이 자리에서 우리의 전망, 우리의 희망을 얻어갈 수 있었으면 한다. 박일수의 희망이 박일수의 투쟁정신이 동지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우리의 현실에서 찾아오는 박일수라는 이름을 내치지 말고 그 이름, 그 투쟁정신을 그리워하듯 우리의 새로운 투쟁 결의 하는 자리였으면, 동지들의 어깨를 일으키는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발적으로 스스로 일어서는 하청 대중,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단결된 조직적 투쟁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울산지역 투쟁사업장인 이랜드일반노조, 중앙케이블방송지부, 삼성SDI하이비트 노동자들의 투쟁 발언이 이어졌다.

마무리 발언을 한 금속노조 울산지부 강태희 지부장은 "단결된 힘, 연대의 힘으로 현실을 바로잡자. 열사의 피끓는 한을 잊지 말고 제대로 투쟁하자. 울산지역 투쟁사업장 동지들과 함께 제대로 투쟁하자"고 말했다.

울산지역노래패연합과 현대중공업 노래마당의 노래와 시낭송 공연이 있었다.

4년 전 50세의 나이로 분신한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땀흘려 노동하고 투쟁하던 공장 앞, 퇴근하는 한 무리의 지친 오토바이들이 지나가고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작업복 차림으로 집회에 참가한 50대 금속노동자들이 인도 한켠에 앉아 있다.

집회가 끝난 현대중공업 앞 거리에는 비정규직 악법과 외주용역화에 저항하는 현실의 노동자들이 오늘의 투쟁과 내일의 일정을 기약하며 다시 일터와 천막농성장을 향하고 있었다.






이나라 기자     2008-02-15 오전 9: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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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소은화 동지에게!&quot; (감옥에서-144) 울산구치소/ 민주노총 울산 '배문석'님

구속되기 하루 전 -  2007.12.04 울산홈에버 매장내 현장순회와 집회

소은화 동지에게

 

구속되고서 이렇게 아름다운 X-mas 카드를 받게 될 줄은…….

동지가 보내준 편지에 우리 방 수감된 모든 이들이 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군요. ^^

 

저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에 일한지 4년차입니다. 원래 맡은 일이 문화국장이고, 올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이었기에 그 기념과 계승사업을 진행했지요.

 

87년에 저는 고등학교 1학년, 그 뒤 곧 만나게 된 전교조까지 삶이 변한 계기였기에 의미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비정규직 철폐가 20년의 노동운동의 변화 중 가장 큰 숙제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올해 E-land 투쟁에 소동지도, 저도 다 함께 연대했고 그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제가 구속된 사안은, 지난 9월 18일 이랜드노조 울산분회장과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조직국장이 연행되면서 벌어진 것입니다.

 

두 달여 매장 안팎 투쟁을 이끌었던 세 명의 동지가 천막농성장에서 저녁식사 중 개 끌듯 강제연행 된 거죠. 사실 우리 모두 각오하고 있었고, 저 역시 이선을 결의하고 있었지만 그 분노 역시 참 컸습니다.

 

특히 처음 파업을 경험하는 이랜드울산분회 조합원들. 서울지도부 연행에 이어 울산의 지도부가 구속된다면 한꺼번에 흔들릴 거라는 자본과 공안의 판단이 가증스러웠죠.

 

결국 9월18일, 중부경찰서에 체포된 세 동지 면회와 항의투쟁이 새벽 2시까지 4시간여 진행되었고... 그 후 12월 4일까지 2달 반의 이랜드 울산투쟁을 진행했습니다.

 

울산은 서울과 달리 매장 안팎을 완전 봉쇄하는 투쟁과 매장 안을 순회하는 실제 투쟁이 가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울산 홈에버 매출은 70% 감소했다고 합니다. 이랜드조합원과 연대해 온 우리 동지들 모두의 힘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특수공무집행방해, 업무방해' 두 건을 묶어 구속되었습니다.

물론 그전에 작년 말 비정규법안 처리 규탄 투쟁과 올해 금속노조 FTA 파업 등 몇 건의 불구속 기소와 묶였지요.

 

하지만 사실 지금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 직전 이랜드, 뉴코아 조합원 집단해고가 증명하듯, 투쟁이 끝나기 전, 자본의 발악이 계속되는데 함께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입니다.

 

처음 이랜드조합원을 만날 땐 집회에서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했고, 구호도 낯설어 했습니다. 카메라 셔터소리가 들리면 얼굴 돌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분노와 설움 그리고 숱한 시련을 함께 넘기면서 단련된 동지들은 이미 투사 이상이었습니다.

 

이랜드자본은 우리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갈라쳐서 분열시키는 책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소 고발이 남발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각종부당노동행위, 온갖 탄압 구시대폭력 등 사측의 범죄행위는 사법처리 없이 - 노동자에 대한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었죠.

 

이랜드 조합원들이 걱정됩니다.

 

오늘 낮에도 면회를 온 동지들이 환히 웃고 돌아갔지만, 6~7개월 투쟁 동안 인내해 온 어려움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연말, 연초 연대의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을까 더 걱정됩니다. 대통령선거 올인 한다고 외면당하지 않았을까, 투쟁이 길어졌다고 뜸해지지 않았을까 걱정됩니다.

 

소은화 동지!

 

제가 조직국장 대행으로 있었던 두 달 반 동안 울산에는 이랜드 말고도 삼성SDI 사내하청, 효정재활병원 간병인 비정규직, 건설플랜트, 중앙케이블 비정규직 등 수 많은 투쟁이 있었습니다.

 

어디 울산뿐이었나요 . 전국 어디서나 상처입고 투쟁하는 이들이 함께 합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지요.

 

이런 모든 투쟁의 과정에 다시 이랜드 투쟁을 중심으로 전열을 갖추어야 합니다. 끝마무리까지 승리로 맺음 해야 우리의 미래가 있습니다. 이 싸움에 멋진 패배란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혹여나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 등 기만적인 타협을 말 한다면 혹독히 비판합시다.

 

지금까지 우리는 잘 해왔습니다. 부족해도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마무리’입니다.

 

그 길에 소은화 동지가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안에서 함께 합니다. 구치소에서 나가면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복귀합니다. 다 같이 투쟁해서 모두 함께 승리합시다.

 

워낙 악필인데다가 소은화 동지에게 편지 쓰는 이 시간, 11명이 함께 사는 방안에서 부대끼다보니 글이 마구 날아다닙니다.

 

끝으로 동지의 바람대로 저에게 큰 위안과 기쁨이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나중 어디에선가 노동자대회나 큰 싸움의 공간에서 함께 서고 만나게 된다면 오늘의 이 편지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되겠죠.

 

동지도 건강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새해 복 많이 쟁취! 건투를 빕니다.

 

덧불임 : 갑자기 떠오른 노랫말,

‘절망만큼의 성숙 그 깊이만큼의 희망’

이제 비로소 꿈과 현실이 부딪혀 굵은 눈물로…….

더 이상 기다릴 것은 없어, 우린 스스로 강해져야 할 뿐

자 이제 주저하지 말고 다시 힘찬 발걸음 !

 

[출처-구속노동자후원회]

 

 



나는 소은화 동지를 모릅니다.

다만 지난 연말 울산구치소에서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깨알같이 적힌 그 동지의 글...

 

구속노동자회의 자원활동가라는 자기소개와 함께

왠지 어릴 적 '국군장병 위문편지' 처럼

갇혀있는 이에 대한 연민과 정성에 감동했었다.

 

그리고 적어보냈던 이 편지가 구속노동자회 블로그에 실려 있었다

과연 소은화 그 동지는 내 답장을 읽어봤을까 ㅋ  ^_________^

 

어쩌면 나는 홈에버 동지들.. 그리고 혹여나 내가 지칠까 걱정해주었던

동지들 덕분에 두달만에 나올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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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기장을 꺼내며...

새 일기장을 꺼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새해는 참으로 지친이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이다

 

처음의 그마음은

날이 더해질 수록 바래지는 것일테니

그래서 더욱 그립고

또 다른 출발선을 꿈꾼다

 

나는 한참을 달려왔다

그래서 늘 명분있게 주저앉을 기회만을 노려왔었다

 

그리고 지난 두달동안

반은 예상했고, 또 반은 의도하지 않았던

격리의 시간을 달게 여겼고

또 다른 크기의 조바심을 키우며 한해를 보내고 또 맞았다

 

그리고 오늘은

끝나지 않은 삶, 내 딛어온 길의 모퉁이에서...

난 또 다시 일기장을 꺼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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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그리움

가을 비 따라
세상 온갖 그리움 번지네
 
빗방울은 송알
미련했던 지난 사랑의 기억
희뿌연 창마다 맺혀 흐르고
 
텅빈 들녘
할일 잃은 허수아비
새들 떠난 외로움에 흠뻑 젖듯
나는 받힐 우산도 없이
그대 살던 골목길만 온종일 서성였네
 
이 비
그치면
 
저 산
꼭대기부터
순결한 그리움 타들어
열병 도진 가을 날은
붉은 낯빛으로 물들고
 
그대 떠나는 날
막지도 쫒지도 못해
새파랗게 멍든 하늘은
가을 햇살 머금은
빨간 석류되어  알알이 터지겠네
 
 
- 10월 한복판 ... 가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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