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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 아이와의 데이트

영화표를 끊고나서

백화점 광장을 달려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본다

 

세상 가장 맑은 미소로

뛰놀다가도 아빠 있는 곳을

한번씩 확인하는 해바라기 웃음

 

눈가에 걸린 순수한 결정

저녁햇살로 모이더니

가지런한 옥수수 알갱이처럼 박혀온다

 

태어난 달이 늦어서   

또래들의 놀림받는 날

작은 몸뚱이로 울면서 들어오길 몇번

 

'네 몸엔 아름다운 씨앗이 있어

그게 자라면 씩씩한 어른이 된단다'

일러주자 그때서야 고개 끄덕였던 아이

 

이 여린 영혼이

큰 탈없이 커온 것에 감사하고

성년 되어 내 품을 벗어날 때까지

변함없이 평온하기를

 

혼돈의 세상

시기와 질투 그리고 경쟁이

거미줄로 엮이는 수많은 갈래에서

제 길 잃지 않고 커가기를

 

반나절을 단 둘이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

잠든 아이를 보듬고 서로의 심장박동을

맞추며 기도했다

 

사랑하는 아이야

네가 앞으로 겪을 시련과 아픔도

나 같지 않기를

아니 조금 더 현명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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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 회의가 들어

 

지난 주는 내내 회의에 시달리면서

그 회의가 나를 뜯어먹으면서

나는 먹힐 각오로 작성과 수정을 반복했던 리포트...

 

그럴수록 도피를 꿈꾸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승부를 내고 싶은 욕심도 함께 자극한다

앞으로 남은 시간들이 또 한번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더 여유로와져야 한다

조금은 더 게을러도 된다

단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만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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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 - 마지막 인사

 마지막 인사

 

- 김남주 -


오늘밤 아니면 내일
내일밤 아니면 모레
넘어갈 것 같네 감옥으로
   
증오했기 때문이라네
재산과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자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네
노동의 대지와 피곤한 농부의 잠자리를
  
한마디 남기고 싶네 떠나는 마당에서
어쩌면 이 밤이 이승에서 하는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니
유언이라 해도 무방하겠네
  
역사의 변혁에서 최고의 덕목은 열정이네
그러나 그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니네 지혜가 있어야 하네
지혜와 열정의 통일 이것이 승리의 별자리를 점지해준다네
한마디 더 하고 싶네 적을 공격하기에 앞서
반격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지않으면
공격을 삼가게 패배에서 맛본 피의 교훈이네
  
잘 있게 친구
그대 손에 그대 가슴에
나의 칼 나의 피를 남겨두고 가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만세!

 

 

 

새벽길님의 [김남주 - 마지막 인사]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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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 짝 사 랑 ]

 

 

 별빛도 흔들려 눈감는
 깊은 밤에는 소리내어
 외쳐도 좋으련만

 

 꾹 눌러 담아낸 인심 후한
 아낙네의 밥공기만큼
 쌓아놓으면 무엇하나
 모락 피어나는 김이 서려서
 눈물로 맺는구나

 

 흔한 단어 서투른 손짓으로
 교차로 늘어 선 이정표마다
 곧은 글씨 새겨놓아도
 눈에 안차는 바겐세일 옷가지처럼
 널려져서 바래는 그리움

 

 변덕스런 삭풍에
 귓속말 건네 본들 흔적없고
 품으로 기어드는 봄바람은
 담장에 달라붙어서도  메마른 넝쿨

 꽃피워 낼 재간없다

 


-  070130 어리석은 사람의 가여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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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납함' 서문중에서

 

 

"가령 철로 밀폐된 방이 있다고 치세. 전연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 방일세. 그리고 그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곤히 잠들고 있으니 오래 지나지 않아 모두가 다 질식해 죽을 것일세. 그러나 그들은 혼수 상태에서 막바로 사멸 속에 드는 것이라 전연 죽음의 비애를 느끼지 못하네. 그런데 자네가 지금 큰 소리를 쳐 아직도 약간 의식이 맑은 몇 사람들을 놀라 깨게 함으로써 그들 불행한 사람들에게 도저히 구원의 길이 없는 임종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면 도리어 자네는 그들에게 못할 짓을 저지른 꼴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미 눈뜬 사람이 몇이라도 있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때려 부술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세."

그렇다. 내 비록 내 나름대로의 주견을 굳게 가졌다 해도 희망을 드러냈을 때 그것을 말살할 도리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에 속해 있는 것이니까, 절대로 오늘의 나의 부정을 가지고 그가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꺾어 넘길 수도 없었다. 나는 마침내 글을 쓰겠다고 승낙했다.

 

 - 루쉰 '납함' 서문중에서

 

 

 

《납함》은 루쉰의 첫 창작집으로 1918년부터 1922년까지 쓴 열다섯 편의 작품을 묶은 것이다. 요즈음 번역되면서 '외침'으로 나오기도 한 이 창작집 제목의 원래 뜻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듯 여럿이 함께 외친다는 뜻이다. 이 책에는 수록된 작품 중에는 잘려진 〈아Q정전〉과 〈광인일기〉를 비롯해 〈약〉과 〈쿵이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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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유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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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詩 모음

 

 

 

 

별똥별 

 

- 정 호 승 -


밤의 몽유도원도 속으로 별똥별 하나 진다
몽유도원도 속에 쭈그리고 앉아 울던 사내
천천히 일어나 별똥별을 줍는다
사내여, 그 별을 나를 향해 던져다오
나는 그 별에 맞아 죽고 싶다

 

 

별똥별 

 

- 정 호 승 -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내가 너를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 순간에
내가 너의 눈물을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내가 너의 눈물이 되어 떨어지는 줄
넌 모르지

 

 

 

미안하다

- 정 호 승 -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누더기


- 정 호 승 -



당신도 속초 바닷가를 혼자 헤맨 적이 있을 것이다
바다로 가지 않고
노천횟집 지붕 위를 맴도는 갈매기들과 하염없이 놀다가
저녁이 찾아오기도 전에 여관에 들어
벽에 옷을 걸어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잠은 이루지 못하고
휴대폰은 꺼놓고
우두커니 벽에 결어놓은 옷을 한없이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무인등대의 연분홍 불빛이 되어
한번쯤 오징어잡이배를 뜨겁게 껴안아본 적이 잇을 것이다
그러다가 먼동이 트고
설악이 걸어와 똑똑 여관의 창을 두드릴 때
당신도 설악의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이며 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같이 묵묵히 등을 쓸어주는
설악의 말 없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은
바다가 보이는 여관방에 누더기 한 벌 걸어놓은 일이라고
누더기도 입으면 따뜻하다고

 

+_+_+_+_+_+_+_+_+_+_+_ +_+_+_+_+_+_+_+_+_+_+_ +_+_+_+_+_+_+_+_+_+_+_ 

 

맨 처음 정호승이란 시인을 알게된 것은 별똥별때문이었다.

PC통신 참세상 시절 친구 푸른노트가 내 아이디를 보고는

국문과답게 몇개의 시를 골라서는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정호승의 '별똥별'

 


그 친구의 푸른 마음이 좋았고 내게 권해 준

정호승의 날것처럼 치명적인 시어들도 맘에 들었다

그래서 솔직히 정호승을 흉내낸 습작도 몇개 있다

 

등단한지 35년이 되가는 정호승시인은

동년배의 것들과는 다른 젊은 치기가 있다

마치 일탈을 시작하는 중년

그 눈가에 덧칠하는 진한 화장보다도 더 자극적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한풀 죽은 모습이다

조금 더 깊이가 있어졌다고 누구는 말할지 몰라도

내겐 실패한 사랑의 쓴맛이 느껴진다

 

그가 젊은이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젊은 날의 시보다 나이 먹어 녹여낸 말들이 더 가슴에 와닿기에

정호승이란 시인이 고급 품격을 갖춘 것도

또 치열한 시대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어서

더 많이 흉내내려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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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알고 나를 알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김 해 화

새벽에 일 나가고 저녁에 돌아옵니다
일 있는 날 일하고 일 없는 날 놉니다

노동해방 부르짖지 않습니다
자본가 타도 외치지 않습니다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깃발 내리지 않았습니다

적을 압니다
나를 압니다


            ---< 김해화의 꽃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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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봄을 부른다

 

 

 


[새벽에 일어나 봄을 부른다]

 

제 갈길 잃은 계절이

쏟아낸 바람에는

 

마디마디 쇠못이 박혀

스치는 길 따라 피멍이 든다

 

햇볕 비껴간 그늘 속

폭도되어 서성이는 그리움

 

닫힌 문 열고 들 용기는

노련한 도적들의 몫

 

밤이 깊어져서야 

그대 이름을 불러 삼키지만

 

골목 어귀 가로등 밑

채 오다만 봄이 웅크리고 있다

 

잠을 다시 청하려해도

한번 떠진 눈 쉽게 감기지 않고

 

움츠려든 몸뚱이 접어

아래목에 고이 뉘여도

뜬 눈으로 지새겠다

 

새벽으로 가는 길

참 멀기도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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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품

 

[ 나는 부품 ]

 

 


 분주한 출근 길
 빼곡히 채워진 성냥갑
 만원버스에 오른다

 

 빈자리 생기면
 왜그리 고마운지

 

 팽팽했던 실밥이
 스르르 풀려
 하얀 솜 드러내듯
 염치없이 몸을 기댄다
 
 서서 갈 때
 거슬리던 안내방송도
 자장가삼아 눈을 감고

 

 새벽녘 알람에 끊긴
 단꿈의 줄기 엮어보려
 어설픈 최면술사처럼 애쓴다

 

 아구대가리 벌어진 입으로
 빨려가는 플랑크톤은
 제 운명 모르는 알갱이 신세

 

 녹슬지 않는 쳇바퀴 실려
 최면과 주문 섞여
 몇 만번째 굴러가는 부품

 

 - 2007.01.23. 출근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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