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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8/04
    보너스
    무화과
  2. 2006/08/03
    더운날 뒹굴면서
    무화과
  3. 2006/08/03
    가방을 찾아주세요(1)
    무화과
  4. 2006/07/30
    내 블로그의 성격(1)
    무화과
  5. 2006/07/28
    빈집철거는 마음을 철거하는 것(1)
    무화과
  6. 2006/07/22
    망각
    무화과
  7. 2006/07/21
    재판통지를 받고서
    무화과
  8. 2006/07/20
    개혁의 시대에 인간으로 사는 법, 야만의 시대에 인간으로 죽는 법
    무화과
  9. 2006/07/20
    아름답게 나이먹고 싶다(2)
    무화과
  10. 2006/07/19
    박래군 석방을 위한 탄원서
    무화과

보너스

갑자기 문득 생각이 들었다.

2006년, 아마도 나에게 존재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2006년이 절반도 훌쩍넘은 지금

지난 몇달, 특히 경찰조사를 받은 3월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의 보너스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전쟁없는세상과 병역거부연대회의에는 미안하지만

불안정한 상황을 핑계 삼아 정말이지 하고 싶은 일들에만,

내 감정이 가는 대로만 나를 내버려두었다.

계획적으로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난 몇달은 본판과는 상관없는

그야말로 그냥 즐기는 보너스판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비록 내 인생의 본판의 시간들을 사용했겠지만

그래도 보너스 덕분에 자칫 지루할뻔 했던 세월이

재밌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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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날 뒹굴면서

1.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해야할 일과 맡은 일들이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냥 퍼질러 집에서 뒹굴뒹굴거린다.

뙈약볕에 일하고 있을 대추리지킴이들에게는 미안한 맘도 들지만,

이 일 저 일 수많은 일들에 영화볼 시간도 내기 힘들어하는

활동가친구들에게는 미안한 맘도 들지만,

이틀째 집에서 뒹굴거린다. 청소도 안하고 그나마 설거지만 하고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싫고 만사가 귀찮고

집중이 안된다.

더위먹은 건가?

 

1.

오랫만에 예전에 학교에서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을 만났다.

예전에 만났을때보다 한 걸음 정도 더 거리감이 느껴졌다.

물론 그들중에는 지금도 자주보고 놀고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들도 있다.

오랫만에 만난 이들에 대한 반가움은 딱 그만큼의 거리감으로 존재했다.

특히 결혼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난 왠지 외딴 섬이되어있었다.

사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말아야할 필요는 없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할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해야할, 아이를 낳아야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결혼과 출산, 혹은 입양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그 이야기에서 외로움을 느낀것은

그 자리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지고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같이 보냈던 사람들인데,

지금은 떨어져 지낸 시간만큼 생각과 감수성의 차이가 드러난다.

그래도 만나면 반갑고 또 만나고 싶은 관계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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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을 찾아주세요

700일 촛불집회 하는날

대추리 들어가기 위해 자전거타고 위장해서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방을 맡겼는데

가방이 그만 분실되었습니다.

그날 대추리로 사람들이 타고 들어왔던 차 어딘가에

있을듯한데, 찾지 못하고 있어요.

옆으로매는 청색계열의 가방입니다.

가방안에는 씨네21과 MP3와 젊은베르테르의 슬픔이 있습니다.

혹시나 화요일날 대추리에 오셨던 분들중에

제 가방의 행방을 알고계신분들은 꼭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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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블로그의 성격

갑자기 옛 노트를 읽다가 나의 과거들이 궁금해 뒤지던 중

이 블로그의 시작을 다시 돌아보았다.

물론 진보넷블로그의 시작은 네이버가 삼성꺼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맨 처음 글부터 보기시작한 나는

내 진보넷블로그를 한가지로 규정내릴 수 있겠다.

이것은 특정한 시기의 나의 일기이다.

이 블로그의 첫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작년 10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난 예비 구속자다.

그 당시부터 곧 수감되겠구나 예상하고

삶은 10개월이 넘게 이어져버렸다.

불안과 무계획의 삶이 10개월이 넘어버렸다.

덕분에 블로그도 상당히 알차게 운영하고

얼굴만 알던 사람들과 친해지고

전혀 새로운 좋은 친구들을 여럿 만나게 되었지만...

 

아마 시간이 흐른 뒤 작년 10월부터 올 8월까지의(이러다 또 늦어지면 어쩌나) 글들을 보면

여러가지를 떠올릴 것이다.

지금 내가 지난날의 특정한 시기들의 내 일기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처럼...

예상보다 훨씬 길어진 덕분에 남은 20대가 짧아져가는 이 시간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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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철거는 마음을 철거하는 것

이를테면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는 타워팰리스 같은 사람살기 힘든 집들은

돌덩이가 맞다. 그 집을 철거한다는 것은 그냥 돌덩이를 부수는 것이다.

 

건설회사가 대규모로 뚝딱 만들고 마치 닭장처럼 사람들을 가두어 두는

고층의 아파트들은 그냥 잠을 자는 숙소일 뿐이다.

 

원래 사람사는 집은 그런것이 아니다.

원래 사람이 꽃과 나무와 벌과 나비와

지렁이와 개미와 함께 살아가는 집은 단순한 돌멩이 흙덩어리가 아니다.

 

건설회사따위가 지어낸 싸구려 겉치장은 없어도

직접 살아갈 사람이 지어낸 집들은 그 정성과 마음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 집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땀과 채취와 영혼이 담겨있다.

사람들과 더불어 세월을 견뎌온 나무와 바위 모두가

그 집의 식구이자 주인이다.

 

단순히 국가에 등록된 주소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회사의 돈벌이와 부동산투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집은 완성되어 있는 조그만 한 세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집을 철거하는 것은 국가의 행정구역에서 주소가 하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돌덩이와 나무, 흙덩이를 부수는 일이 아니다.

 

그 집과 함께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생명을 부수는 일이며

이미 완성된 한 세상을 부수는 일이며

그 집에 담겨있는 사람의 마음을 부수는 일이다.

인간의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추리 도두리의 빈집이 철거되면

마을에서 쫓겨나는 것은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뿐일까?

우리는 과연 인간의 마음이 세상의 마음이 파괴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집을 철거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 실제 중장비를 움직이며

그 집들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은 과연

인간의 마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있을까?

자신이 세상의 마음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대추리 도두리의 마음이 무너지고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

내 마음도 파괴되고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의 마음도 파괴되고 복구되기 힘든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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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생채기 상처투성이의 우둘투둘한 기억들을

온몸으로 지우느라

네 몸은 작아지고 닳아지면서

피부또한 그리도 매끄러워졌구나.

 

아픔이 닳고 닳아

슬픔이 넘치고 넘쳐

온갖 것들을 다 지워낸 뒤

네 살갖처럼 나도

매끄럽고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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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통지를 받고서

마지막일 것 같던 하루는 계속되었고

언제나처럼 익숙한 일상과는 갑작스레 이별하게 된다.

 

만남은 언제나 헤어짐을 준비하는 것이고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는 것이기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한 사람이 떠나면 다른 사람이 돌아오고

돌고 돌고 도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마치 잠깐 이세상에 들른 것처럼

또 그 곳도 잠깐 들릴 것이기에,

이 세상의 삶이 순식간인것처럼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시간도 찰나일것이다.

 

다만 더러는 서운하고

더러는 허전하다.

 

(보고싶은 얼굴들이 무작정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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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시대에 인간으로 사는 법, 야만의 시대에 인간으로 죽는 법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을 하고

대통령이 일개 검사들과 대화를 하는 탈권위주의 시대에

민주주의 평화통일의 시대에

 

인간으로 사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바다를 메꾸고 산을 뚫고 논밭을 갈아없는

개혁정권의 시대에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

이땅에 사람으로 살기위하여

민주주의 개혁정권 탈권위주의 시대에 사람으로 살기위하여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하는 것인가?

아직도 더 많은 죽음이 필요한 것일까?

아직도 더 많은 피가 필요한 것일까?

아직도 더 많은 바다와 산과 들이 눈물흘려야 하는 것일까?

 

농사지을 사람이 아스팔트에서 맞아죽는

이 야만의 시대에

노동할 사람이 방패에 찍혀죽는

이 야만의 시대에

신부와 승려가 길거리에서 굶어가야할

이 야만의 시대에

제 몸뚱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열손가락 모두 피범벅이 되어야하는

그래도 그 손에 검은 잉크 쳐바르는

이 야만의 시대에

 

인간으로 죽는 일은 너무도 어렵다.

 

인간으로 죽지 못하고 사람으로 죽지 못하고

경찰에 맞아 죽고

방패에 찍혀 죽고

도시사람들을 위해 무참히 깎아내린 산

폭우에 휩쓸려 죽고

바다를 막아버려 죽어버린 갯벌과 함께

그 갯벌에 빠져 죽고

 

죽음을 살아 끝끝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이 야만의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일까?

 

거짓 개혁과 민주주의 시대에

사람으로 살기위해서는

죽음조차 각오해야만 하는 것인가.

모든 생명에 대한 예의가 사라지는 야만의 시대에

 

인간으로 죽기위해서는...

 

인간으로 살기위해서는...

 

끝끝내 살아남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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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나이먹고 싶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나의 육체가 나이를 먹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체력이 떨어지는 것도 싫고 피부가 노화 되는 것도 싫고 머리가 빠지는 것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세월을 거스르지는 않으련다.

나는 억지로 젊어지기 위해서 추해지기 보다는 아름답게 나이먹고 싶다.

영화 송환의 포스터를 장식하고 있는 할아버지처럼

그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 나이먹고 싶다.

 

여기 아름답게 나이 먹어가고 있는 한 사람이 있다.

그의 피부는 유독 새까맣게 그을려 있는데

그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시절 논밭의 햇살과 더불은 것인지

그가 노동자, 장애인 소수자들의 친구로 거리의 햇살과 함께한것인지

그 모두인지는 모르겠다.

덕분에 그는 그의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일은 없게 되었다.

 

한 때 그와 함께 했을법한 이들은 이제는 꽤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올라서있다.

금뱃지를 달기도 하고, 교수가 되기도 하고, 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하다못해 어느 단체 대표라도 되어있다.

양복쟁이가 되어있고 번듯한 사무실에서 이런 여름에는 에어컨과 함께 일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직까지 그냥 활동가다.

활동가로서 황새울 논바닥을 뒹구르며, 이제는 그보다 20살도 더 어린 전경들과

몸을 맞대고 아직도 길바닥에서 싸우다 연행되고 유치장에 들락날락하고 있다.

 

그가 집에서 어떤 아버지인지, 어떤 남편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집에는 그리 많이 충실하지 못했을것이라 짐작한다.

게다가 그는 너무나 썰렁하다. 아무리 그의 나이를 감안해 주더라도...

그는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참 아름답게 나이를 먹어간다.

사람이 나이 먹으면서 욕심이란것이 덕지덕지 붙기 마련인데

그는 욕심이 붙을 자리에 솔직함을 드러냈다.

 

나이가 들면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일 수록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 부족함은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솔직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길거리의 향기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무서운 것은 주름이 아니라 욕심과 허영과 자만인 것이다.

솔직해지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계속 발견해가는 사람은

나이가 먹을수록 아름다워진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높은 곳을 탐하지 않으며 자기 자리를 지켜가는 사람의

꾸준함과 솔직함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그가 빨리 우리 곁으로와서 예의 그 썰렁한 말한마디라도 건네주면 좋겠다

오늘 촛불집회 뒷풀이에서 그와 함께 택시를 타고

아저씨에게 "아저씨 온수들려서 역곡들려서 부천역 가주세요"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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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군 석방을 위한 탄원서

 

인권옹호자 박래군에 대한 부당한 구속을 당장 철회하라



지난 7월 9일 새벽 연행된 박래군에게 검찰을 기어코 영장을 청구했다. 우리는 박래군의 구속이 단 하나의 정당성이나 적법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먼저 연행의 빌미가 되었던 9일 새벽 평택경찰서 앞의 항의집회가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신고되지 아니한 불법집회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는 긴급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열리는 긴급집회라고 생각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항의할 권리는 이미 대법원의 판례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집시법이라는 것이 집회를 못하게 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하나의 장인 집회 및 시위를 보다 원활히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법이라면 이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야간에 일어난 긴급한 상황에 대한 항의를 일반적인 집회신고의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사실은 항의를 하지 말라는 것이며, 집회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그날의 가장 큰 불법행위는 바로 경찰에 의한 무리한 연행이었다. 당시 박래군은 상황이 악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발적으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을 설득해서 나오게 하고 심각한 욕설을 퍼부으며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던 경찰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려고 했고, 또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안좋아지자 자진해산할 것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경찰은 박래군을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을 적법적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심각한 수준의 폭력행사와 욕설을 곁들여 연행하였다. 연행과정에서 상상을 초월한 인권침해가 있었다. 특히 박래군은 집회참가자들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길 건너에 있는 것을 표적으로 삼고 쫓아와 연행하였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연행이 과연 법적 타당성이 있는지, 피의자의 인신을 구속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그날의 집회가 불법집회이고 연행과정에서 경찰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연행 자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치더라도 박래군의 구속은 부당하다. 박래군은 구속 수사의 전제인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 평화행진단은 서울에서 평택까지 내려오는 동안 비폭력을 원칙으로 했다. 우리는 우리의 주장의 타당성 뿐 만아니라 행동의 정당성 또한 굳게 자신한다. 우리는 절대 비굴하거나 비겁할 이유가 없다. 이는 그 동안의 과정이 여실히 보여준다. 한 점 부끄럼 없는 행동이었고, 행진단의 일정과 논의들은 이미 다 공개된 내용이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숨기려고 하거나 우리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때문에 평화행진단의 단장이자 일원이었던 박래군 또한 자신의 주장과 행위에 떳떳하며 그 어떤 책임도 질 용의가 있음을 검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자를 구속수사 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나는 정치적인 구속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박래군의 구속은 사회공동체의 크나큰 손실이다. 국가가 완전한 존재가 아닌 이상 국가의 의한 인권침해는 언제나 존재한다. 인권의 수호자를 자처해도 모자랄 판에 국가가 막대한 권력으로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침해할 때, 이를 막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권활동가들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박래군이 있다. 오히려 국가는 자신이 못하고 있는 그렇지만 꼭해야만 하는 인권보호에 앞장서고 있는 박래군을 비롯한 인권활동가들의 활동을 보호해야만 한다. 그것이 국가가 현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낳은 미래를 약속하며 스스로의 존재의 이유를 검증하는 것이다. 박래군의 구속은 안그래도 취약한 한국의 인권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이다. 국가권력을 잘못된 폭주를 막아내고 견제할 사람들을 보호는 못할 망정 잡아가두는 것은 국가가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상 박래군의 구속의 부당함을 역설하였다. 지금이라도 법원은 현명한 판단을 내려서 박래군을 석방하고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것이 법원칙을 지키는 일이며, 재판부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이며, 우리 사회의 인권신장에 한걸음 다가서는 일이다.



                                     

                                                               2006년 7월 19일 평화행진단 이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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