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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11/23
    펑펑 울다. - 이젠 씩씩해진다.(15)
    schua
  2. 2005/11/05
    호흡 - '안녕 평양'(2)
    schua
  3. 2005/10/25
    독립다큐멘터리에 흠뻑 빠져 보아요-인디다큐페스티발에 영화 보러 갑시다(6)
    schua
  4. 2005/10/21
    잘 하는 일!!!(2)
    schua
  5. 2005/10/10
    어떻게 여유 있게 살까?(2)
    schua
  6. 2005/09/27
    진보블로그 다시 그리기(6)
    schua
  7. 2005/09/27
    라디오는 내 친구(3)
    schua
  8. 2005/09/05
    이주제작노트-이해하기 1(4)
    schua
  9. 2005/08/30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4)
    schua
  10. 2005/07/05
    상태 좋음..(6)
    schua

펑펑 울다. - 이젠 씩씩해진다.

오늘로 임신 14주가 되었다.

어제 오늘 몸이 안좋더니 조금씩 갈색혈이 나온다.

 

임신 6주 정도쯤에 그런 일이 있었다.

의사는 그저 조심하라고 될 수 있으면 누워 있으라고 했다.

위험한 시기이니 긴장되고 걱정되고 우선 하던 일들을 대폭 줄이고

한달 정도는 집에 들어 앉았다.

무섭고 어렵더라...그래도 그래야 한다니 그렇게 했다.

맨날 이리 저리 뛰어다니던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들고

그 시간에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경험이 있었던 일이 아니니

어렵더라. 그래도 그럭 저럭 한달을 보내고 나니

어느정도 적응이 된 듯 싶었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했다.

그런데 그만 갈색혈이 또 나왔다.

겁도 나고 해서 병원에 갔다.

 

 



병원은 갈 때 마다 놀랍다.

처음에는 임신을 알게 돼서 놀랬고

그 다음에는 아기 심장 소리를 들어서 놀랬고

그 다음에는 아기가 2주 새 3배가 커서 놀랬고

(그 전 주에는 0.7cm,  이주 후에는 2.2cm) 

그 다음에는 아기가 사람 모양을 해서 놀랬다.

(그 전까지는 아메바 모양이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아기가 막 움직인다. 이리 저리...

그래서 놀랬다.

 

그런데 갈색혈이 좀 보인다는 말에 의사는

"조심하셔야겠네요. 될 수 있으면 누워계시는 시간을 늘리세요." 한다.

 

아기가 막 움직인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점심을 먹고

다음 일정을 위해 가는 데 자꾸 의사의 말이 생각 나면서 막 서러워지는 거다.

'얼마나 더 조심해야 하나?' 한 숨이 나온다.

하고 싶은 일은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임신 12주만 지나면 안정기에 들어가니 그때까지만 조심하자 맘을 먹었는데

그리고 나면 일을 조금씩 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직도 조심하란 소릴 듣는다.

속상하다.

 

다음 일정은 촬영이었다.

임신 때문에 지체되고 있는

이주여성 다큐의 인트로로 쓸까해서 촬영을 하기로 했다.

이래 저래 걱정이 되고

도대체 얼만큼 움직여야 괜찮은지 몰라

후배에게 촬영을 맞겼다.

후배도 급히 맞겨진 촬영에 불편한가 보다.

열심히 이렇게 저렇게 촬영하지만 익숙하지도 않은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하는 게 영 불편해 보인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역시나 속상하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동안 멍 하니 앉아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해야 하고 뭘 할 수 있을까

머리속으로 수백번을 대차 대조표를 만들고 지우고 한다.

 

그러다 눈물이 터졌다.

일이 많아서 몸이 너무 힘들어도 차라리 힘든 걸 택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았던 것 같다. 몸이 힘들면 힘든 만큼 쾌감도 있었던 것 같다.

가끔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넘는다는 생각에 기뻤던 기억도 있다.

잘하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 열심히 하는 것 만큼은 그런 대로 잘해서

내가 조금씩 확장된다는 생각에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못한다니...

막 목이 메인다.

 

눈물이 난다.

소리 없이 나오던 눈물이 어느새 엉엉 소리를 낸다.

에라모르겠다. 울자.

앞에서 해줄 것이 없어 같이 눈물만 흘리고 있는

같이 사시는 분(?)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울자.  

 

골이 아플 때까지 울고 나니

이젠 뱃속에 있는 애기에게도 미안해진다.

그래...

이젠 씩씩해지고 싶어졌다.

그래 씩씩해지자.

 

도대체 그 많은 여자들이 어떻게 아기를 낳고 기르고

자기 일을 하는지...난 도대체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이제는 좀 알아봐야겠다.

 

그래 씩씩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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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 '안녕 평양'

schua님의 [독립다큐멘터리에 흠뻑 빠져 보아요-인디다큐페스티발에 영화 보러 갑시다] 에 관련된 글.

내겐 다큐멘터리는 보약인거 같다.

이래 저래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으로 가득한 주말을 보내고 다큐멘터리를 보러 다니다 보니 그만 기분이 너무 좋아져 살맛이 났다. 정말...살맛.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살맛이 내게 있어서.

같은 상황에 있는 나의 남편(참 어색한 단어당)은 한동안 분에 못이겨 일도 손에 안잡힌다고 힘들어 했으니.

 

여하튼 그렇게 다큐멘터리에 빠져서

열심히 보긴했지만 사실 화요일부터 보기 시작했으니 그리 많은 편수의 다큐를 본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마더 데런의 모험', '나의 선택, 가족', '잊혀진 여전사', '안녕 평양'이 전부이니 말이다. 아쉬운 일이다. 보고 싶은 영화가 더 있었는데...아쉽고 또 아쉽다. 한독협에 프리뷰용 테이프라도 있으면 한번 빌릴 수 있는지 물어봐서 볼 수 있는 것을 찾아 봐야 할 것 같다.

 

아쉽게 봤지만 한 작품 마다 얻은 것은 참 다양하다.

다큐를 처음 시작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이런 마음이 스물스물 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다고 마음 먹은 이후로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정말 묘한 두려움이 나를 감쌌던 기억이 있다. 난 어쩔줄 몰라하면서 고민하다 무작정 다큐멘터리를 보기로 맘 먹었다. 이런 저런 다큐멘터리를 하루에 세네편씩 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를 보고 온 날은 무엇으로 꽉 찬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하나도 부러울 것이 없었고 가슴속에는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보다는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심히 의기소침했는데

이렇게 다큐를 보고 나니 역시 이전의 기분이 든다. 모든 다큐멘터리는 내겐 정말 보약이다. 너무 아쉬운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게 하고 너무 좋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면 나도 저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하면서 잘해봐야지하는 생각이 든다.



'안녕, 평양'이란 영화를 보면서 참 많이 좋았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큐를 보면서 이렇게 만들었구나. 구성은 어떻구나. 조명은. 저건 어떻게 했을까 등등을 생각하게 하는데 이 영화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정말 영화에 흡뻑 빠져든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통일에 대한 영화인가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은 그저 배경일 뿐이다.

다큐를 통해서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가 가 내가 가지고 있는 다큐의 가치이다. 

아무리 좋은 다큐라 하더라도 다큐를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을 혹은 그 안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단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불편하고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 다큐는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보여주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그리고 예의바르게 말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사람들은 가끔 연출이 없는 줄 안다.

하지만 극영화와는 다르지만 다큐멘터리는 그것만의 연출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넣을까 뺄까? 어디쯤 그 이야기를 넣을까? 얼마만큼 보여줄까? 그리고 그걸 어떻게 보여줄까? 등이 연출이다.

 

난 가끔 성급한 감독을 만날때가 있다. 그러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내내 호흡이 가파르고 불편하고 짜증이 난다. 나 역시 성격이 급해서 내가 만든 다큐 중에서도 어떤 부분은 창피하리만치 성급한 모습을 볼때가 있다. 그럴때는 심장이 떨린다. ㅡ.ㅡ

 

'안녕 평양'을 보면서 배려를 받는단 생각이 들었다.

억지로가 아닌 배려, 단지 연출이 아닌 배려,

다른때 같았으면 그냥 연출을 잘했네 했을텐데 이 영화를 보면서는 내가 배려 받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영화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줘서 고맙고 배려 받아서 고맙다.

 

다큐를 만들다 보면 다급해질때가 있다. 이야기상 혹은 주제상 어쨋든 들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못 들었을 때 특히 그런데 그러면 자꾸 그 질문을 하게 된다. 정말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너무 다급한 나머지 그 질문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잘 가늠이 안될때가 있다. 집에 와서 촬영한 것을 다시 보면서 나의 천박한 질문을 듣게 되면 얼굴이 화끈거려 그 질문을 한 게 내가 아니었으면 아니길 바래 본다.

 

근데 이 다큐에서도 보는 내내 드는 질문이 있었다.

나 같으면 아버지에게 몇번을 물었을 그 질문을 감독은 그저 담아두기만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점점 그 질문이 아버지에겐 어떤 의미인지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질문은 더 절실히 목구멍으로 터져나오려 했다.

그리고 포기할 즈음...그녀는 살며시 던진다.

그리고 아버지는 솔직하게 하지만 아픔을 그리고 세월을 담아 이야기해준다.

정말 고맙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배려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런 다큐를 만들고 싶다.

보는 이도 배려 하면서 나눌 수 있는, 내가 느낀 것을 나눌 수 있는,

그래서 다 같이 고마워하고 아파하고 사는 것에 힘을 얻을 수 있는..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힘을 얻었으니 그래 봐야지.

이래서 다큐멘터리는 내게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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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평양

 

감독 양영희의 아버지는 조총련 고위간부였고 아버지는 세 아들 모두를 북송선에 태워 보낼 만큼 열렬한 친북주의자이다. 어릴 적부터 감독은 그런 아버지가 원망스러웠고 어느새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자유주의자가 되어 있다. 이제 노약해진 아버지는 딸에게 용돈을 타 써야하고 자전거 타고 동네한바퀴 도는 일이 유일한 취미일 뿐이다. 그렇지만 딸이 미국이나 일본남자와 사귀는 건 절대 용납 못한다. 국적까지 한국으로 옮긴 딸 역시 여전히 갖가지 선물들을 챙겨 오빠네 가족이 사는 평양을 방문한다.
‘안녕 평양’은 감독 자신의 얄궂은 가족이야기와 함께 우리의 암울한 현대사를 오버랩시키며 관객들에게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찬찬히 보여준다. 슬픈 이산가족의 이야기지만 영화는 의외로 따뜻하다. 이 영화의 따뜻함은 조건없는 가족애 혹은 단순한 휴머니즘이 아니라 원망스런 대상에 최근접하며 화해를 만들어나가는 카메라의 힘과 역사에 대한 감독의 긍정적 시선에서 나오는 것 같다. 물론 딸의 카메라 앞에서 내복바람으로 흐트러진 모습들을 보여주는 아버지 그리고 억척스러우면서도 낙천성을 잃지 않을 것 같은 어머니 역시 감독의 그런 시선과 상응하고 있다. 담담한듯 하지만 유심히 보면 스크린엔 가족과 조국에 뜨거운 사랑, 분노와 안타까움들이 뒤엉킨채 표현되고 있다. 또 절제된 나레이션속엔 영화 외적 변수들을 고려한 감독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  
양영희 감독이 사는 오사카의 허름한 집은 한반도 그 자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흩어져 사는 감독의 가족들은 반도의 남과 북에 갈리워 살고 있는 우리자신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그 전체적 인상은 복잡하지만 대단히 희망적이다.
[김동원/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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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다큐멘터리에 흠뻑 빠져 보아요-인디다큐페스티발에 영화 보러 갑시다

schua님의 [잘 하는 일!!!] 에 관련된 글.

이제 흠뻑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설레임....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막상 영화제가 되면 이런 저런 일이 생겨서

일년 내내 기둘렸던 일을 지나치게 되지요. 그래서 인생은 아쉬움의 연타인가?ㅋㅋ

이번에는 기필코....

10월 28일 부터 인디다큐페스티발이 시작됩니다.

이제 자신감 지수 제로인 나에게 기쁨을 줄 시간이 됐네요.

좋다~일년 동안 나온 신작 다큐멘터리를 맘껏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부운~~~영화 보러 가요.

 

제가 갈 수 있는 시간. 보고 싶은 영화는 아래와 같답니다.

혹 시간 되시는 분들은 같이 보러 가보아요~~

신나게 다큐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맛난 것도 먹고 해 보아요~~

(왠...보아체...닭살임다. 그래도 좋아서 그러니 이해하시길...^^)

 

전 담주 월요일 부터 영화를 보러 갈 수 있어요.

우선 국내 신작을 중심으로 볼 생각입니다. 그 동안 시사회며 다른 루트로 본것들은 우선 제외하고요. 글고 좀 몸 상태가 가능하면 해외작을 볼 생각입니다. 우선은 국내신작 먼저 올립니다요. 보고 나서 혹은 왜 보고 싶은지 등은 이후에 덫붙이지요. 헤헤. 

 



월요일은

1시 30분 <후용리 예술 공연단, 노뜰 , The Hooyong Performing Arts Troupe, Nottle >

4시 <안녕 사요나라 , Annyong, Sayonara >

글고 몸 상태가 괜안찮다면 6시에 <잊혀진 여전사 Forgotten Warriors > 보고 몸 상태가 안좋으면 목욜날 보는 것으로...음화~~

 

화요일은

2시에 <흡년 Saving Smoking Girls >

3시 30분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What Are We Waiting For? >

 

수요일은

좀 많네요. ^^;;

11시 30분 <동경원정투쟁, 그 3일의 기록 Anti FTA : Korean Workers' Struggle in Tokyo >, <우리 모두가 구본주다 we are all GOO BON JOO >

6시 <커밍아웃 Coming Out >, <열다섯 The Fifteen >, 내가 넘 이뻐하는 경묵작품<나와 인형놀이 Me and Dollplaying >

8시 30분 <나의 선택, 가족 My Choice, Fami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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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는 일!!!

얼음곤냥이[쫑알쫑알] 을 읽다 보니 요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갑자기 변한 객관적 조건 때문에 시간이 붕 뜨고

작업에서 일정정도 시간적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갑자기 생긴 상황에 당황하다 

얼렁 한가한 시간을, 아니지 치열한 생산의 시간에 정신과 육체를 몰입하면서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적응이 대략 되었는지

조금씩 작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속도감이 달라지니 보이는 것도 다르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단 생각이 들면서

난 역시 아직도 멀고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무심히 버스에서 바라본 지나가는 거리가 너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면...ㅋㅋ

다른 감독들은 이럴때 어떻게 할까 의문도 생기고

그러면서 문득 그러니까 열심히 다큐를 많이 보러 다녀야 해.

그런 생각도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변명도 할 수 있겠지만 왠지 그건 좀 치사하다.

이제 슬슬 고민을 시작해야 겠다.

아무것도 없이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말이지.

다시 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다시 다큐를 보러 다녀야지.

자극 받고 자극 받고 느끼고 느끼고

살아봐야지.

 

잘하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투정이나 부려 볼까 했는데

역시 잘하는 일이 하나 있긴 하다.

쉽게 편안해지기!

별로 가지고 있던 것이 없던 사람이어서 그런가 보다.

 

 

 



ㅋㅋ...맛난 두부 부침, 부추 무침...음화...내일이 기둘려진다.

힘내자구요~~ 힘내는 대는 역시 먹는게 최고죠.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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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여유 있게 살까?

쌈마이님의 [그리고...여유있게 살기!!] 에 관련된 글.

쌈마이님의 유유자적한 사진을 보니 갑자기 샘이 난다.

 

나도 여유 있게 살아야지 하면서 '그럼 뭘 해야하지?'를 먼저 생각하는 날 보면서

조금 어이 없다.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보내자고 맘을 먹긴 했는데

무위의 여유와 기쁨을 모르니 뭔가를 해야지 하는 맘만 자꾸 든다.

 

뭘 할까?

아직 여유의 시간을 느낄 만큼 여유롭지 못한가 보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맘 편히 쉬어 본적이 있던가?

그놈의 조급증 때문일 거 같다. 항상 뭔가를 해야 맘이 편한.

그렇지 않으면 '나쁜 사람'(^^;;) 되는 듯이 힘들고...

이상한 모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난.

 

그래도 아무것도 안한다는 것은 힘들고...

뭔가 스트레스 받지 않으며 즐거운 것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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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블로그 다시 그리기

marishin님의 [진보블로그 다시 그리기] 에 관련된 글.

다른 사람들은 인륜지 대사라고들하는데 그저 이벤트 하나 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큰코 다치는 바람에 이제서야 제가 지명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게으른 사람이 되고 말았네요. ^^;;

그럼 슬슬...


<진보블로그 다시 그리기 10문 10답>

1. 블로그를 언제부터 알고 사용하게 되셨어요?

작년 8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블로그가 뭔지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볼 수 없다. 


2. 그런데 왜 하필 진보블로그를 ^^ ?

블로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진보네의 황국장이 '너의 인기 때문에 진보네 서버가 다운 되면 데크(영상 작업할 때 필요한 장비)를 사준다'는 말에 혹해서 시작했다. 다른 곳에도 블로그가 있었던가?

 

3. 블로깅을 계속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언젠가 한번 진보네 서버가 다운되길 바라면서...^^;;

          아직은 이유늘 못 찾았는데 소통의 다른 방식인 듯은 한데 그게 뭔지 몰라서

          답을 얻을 때까지는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최근 게을러져서 블로깅을 못해 약간 위기소침해 있당.

 


4. 진보블로그를 사용하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무엇인가요?

다른 블로그를 사용해 보지 못했으니 비교는 할 수 없고

우선 뭔가 불편한 듯 하지만 있을 것은 대략 다 있는 뭐 그런 느낌...

글고 무엇 보다 사람이겠죠. 또 다른 준거집단이 생긴 듯한 느낌...


5. 진보블로그 메인 페이지에서 보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능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혹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덧글 많은 글들 보여주기' 원츄!!


 

6. 진보블로그를 사용하면서 가장 짜증나는 점은 무엇인가요?
- 메인등 공동으로 사용하는 부분외에 개인블로그 관리화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을 말씀해주세요.

         

          짜증까지...워낙 원시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없습니다.

          생기면 그때 이야기해도 되죠?



7. 진보블로그 외에도 다른 블로그에 많이 가시나요? 주로 어떤 블로그를 많이 찾게 되나요? (특정 블로그를이야기 해주셔도 좋고, 어떤 주제의 블로그라고 말하셔도 됩니다.)

진보블로그 이외에는 어쩌다 이어 이어 가는 것 빼고는 없습니다.

아이....빈곤해라..

8. 새로운 블로그, 마음에 맞는 블로그를 만나게 되는 계기나 방법이 있나요?

         다른 블로그의 링크을 구경하면서 따라 들어가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9. 하루에 블로깅(쓰기 읽기 모두)에 쓰는 시간은 얼마나되고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블로그가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방문하나요?

대중 없는데...사무실에서 일 할 수 있는 날은 1시간 정도

하지만 주로 밖으로 다니기 때문에...규칙적이지 않아요.

 

10. 진보블로그는 블로거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통한 실험적인 운영을 해보고자 합니다.
그런이유로 초기에 블로그 홈에 추출되는 "자가증식 블로그진"을 블로거들의 참여를 통해서 구성해 보려고 했는데 현재는 그것이 잘안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블로거 여러분을 모집해서 운영편집팀을 구성해 보려고 했으나 약간은 부담스러울것 같아서 "추천" 방식으로 블로거진을 구성해 보고자 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고 더 나은 방식이나 추가할 다른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넵!!!

 


11. 이 질문에 대답할 블로거를 5명 지목한다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포스트로 트랙백 보내주세요.

        제가 막차를 타서 아직도 안하신 분들이 있을까 싶은데.

        얼렁 하세요...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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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는 내 친구

어디 무슨 광고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지만

정말 라디오는 내 친구이다.

중고등학교 다닐때 열심히 라디오를 안 들어 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다 커서 난 다시 라디오가 내 친구가 되었다.

텔레비젼을 안 본지 이제 어언 3년째가 접어들고 있는데

사람들은 가끔 그럼 답답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물어본다.

그럼 난 그럼 정신 없어서 어떻게 사느냐고 되묻는다. (속으로만 ^^;; 소심하여서.)

왠지 텔레비젼을 안보면 시류에 뒤떨어져서 사람들과 대화도 못 할 것 같고

그래도 뉴스는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약간 걱정은했지만.

그래도 사정 없이 TV를 끊었다.

물론 텔레비젼을 보면 좋을 프로그램도 많고 정보도 많지만

어느 순간 부터 심한 카메라 워크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고

과다한 자막으로 제 정신으로 화면을 제 정신으로 볼 수 업서게 되었으면서도

멍하니 보다가 하루가 다 갈때는 정말 후회가 밀려왔다.

이런 저런 걱정은 됐지만 그래도 과감히 TV를 끊었다.

섬이 될 것 같았지만 섬은 섬이되 통신이 되는 섬에 살고 있으니.

걱정 되는 상황은 아직 없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라디오가 아닐까?

라디오를 들으면 최근 히트곡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시간대별로 나오는 뉴스를 들으면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글고 시간대별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거기에 나오는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지 알 수 있다.

글고 시계가 없어도 몇시인지 알 수 있다...하하하.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것은 들으면서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데 새로 이사온 집에 라디오가 없다.

우케케...미치겠다. 라디오가 필요해.

이전 집에 있던 것은 사무실을 마련하면 그리로 가져 가려고 옮겨 놓지 않았다.

우케케...라디오가 없으니 시간도 모르겠고. 영 현실에 있지 않은 것 같은 것이.

이 것이 금단 증세인가...

그런지도 모르겠다.

라디오가 필요해.

 

어디 안쓰는 라디오 있으신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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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제작노트-이해하기 1

이주여성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이유는 두가지 인데 하나는 이러저러한 일 때문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

초반에 이주여성을 인터뷰 했었는데

인터뷰 내내 마음이 막막해서 힘들었다.

한국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통역도 있었기도 하지만

무엇 보다 그녀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녀의 경험에 대해 난 뭐라 할 수도 없고 그저 담기만 해야 한다는 것이 참 힘들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없다. 뻔히 아는데 어찌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을 통해 다시 한번 그녀가 아플텐데....

 

그런 생각에 겨우 인터뷰를 마치고 온 이후로는 카메라 들기가 겁난다.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느끼고 같이 화내고

지금 그러고만 있다.

 

하지만 또 다시 느끼는 어려움은.....이해하기 힘들다는 거다.

그렇게 힘든데 어찌 감당하며 살까?

머리로야 얼마든지 이해간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어찌 그럴까?

여전히 남는다.

이 질문은 나 뿐이 아닌 것 같다.

이 답을 잘 구해야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지 않을까?

 

답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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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일다에 쓴 원고입니다.

일다에 나간 기사는 http://www.ildaro.com/Scripts/news/index.php?menu=ART&sub=View&art_menu=1&art_sub=1&idx=2005081500013&op_idx=&BBS_idx=

로 가면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비자로 들어오는 이주여성이 결국에는 다 같은 처지에 있고

자본주의 남성중심사회에서 이주여성은 여성이 갖는 모든 모순을 극렬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연대하자!

정도로 썼는데 뭐...역시나 시간 없이 급하게 써서 넘 아쉽고 아쉬운 글이 되었고

기사로 나가면서 변하게 됐지요. 그래도 일다 기자님이 이래 저래 기사에 맞게 코멘트를 주셔서 그나마 사람들이 읽기에 거북하지 않은 글이 된 듯도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것은 제목!!!

제가 처음 쓴 제목은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거거든요.

아쉽다. 이 제목.



 

뇌를 세척하기 위하여, 그리고 연대하기 위해서

주현숙(다큐멘터리 감독)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이주여성 관련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작업을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관련 주제나 소재로 머리가 꽉 차 있게 된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머리 속은 온통 이주여성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슨 말을 꺼내도 이주여성과 관련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이주여성과 관련한 사건들은 하나 같이 충격적인 일들이라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도 않았다. 당시 최대 고민은 ‘ 이주여성의 어려운 상황을 널리 알리면서도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란 느낌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것인가’(‘이주여성의 특수한 조건을 여성 전반의 조건으로 환원하여 보여줄 것인가?’)였다. 


세뇌를 당하다


그렇게 고민에 푹 빠져있을 때였는데, 우연히 상식적으로 진보적인(?)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를 하게 되었다. 난 역시나 자연스럽게 전날 만난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60대 남자와 만난지 이틀만 결혼해서 한국에 온 이주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이 많이 때린 이야기, 남편의 거짓말로 임신중절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난 그 사건을 들을 때도 심장이 떨렸지만 말하는 순간에도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난 약간은 흥분한 상태였고 그러한 일들이 너무 많은데 어쩌면 좋을지 답답한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이러는 거 아닌가, “한국에 국제결혼 해 들어오면 맞는다는 거는 다 알고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이라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맞을 줄 알고 결혼을 한다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얘진 머릿속에 이러저러한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번쯤은 봤음직한 영상들, 어눌한 말로 남편에게 혹은 남편의 식구들에게 맞은 이야기를 하는 이주여성의 모습이 머릿속에 하나둘 떠올랐다. 너무 빨리 영상들이 떠올라 숨이 가빴다. 하지만 각 영상들 속에 이주여성은 하나 같이 똑같은 모습이었고 반복된 모습이 날 울렁거리게 했다. 그 친구에게 난 아주 조그맣게 “맞을 줄 알고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했지만 너무 작은 소리여서 들리지 않았을 거다. 


우린 가끔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어떤 이야기를 계속 반복 하여 들으면 그것이 처음에 줬던 충격은 어느새 날아가고 무뎌지는 경험, 가끔은 그 무뎌지는 것이 도를 넘어서 처음에는 이상했던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경험. 그런 것을 세뇌라고 해야 하나? 대중매체에서 볼 수 있는 이주여성은 너무나 단순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저러한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의 모습, 대중매체의 단편적이고 반복적인 이주여성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가 결국 이주여성은 ‘맞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게 만들었고 이제 이주여성은 ‘당연히 맞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나 알고 있는 ‘진실’을 당사자인 이주여성만 모르고 한국에 왔을 리 없다는 생각에 까지 이른다. 무서운 일이다. 이 세상에 당연히 맞아도 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당연히 맞을 것을 알면서 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우린 그렇게 세뇌를 당한 것이다.


이제 슬슬 뇌를 세척해야 될 때가 왔다.


이주여성의 본국에서 국제결혼에 대한 환상은 거대하다. 사회적으로 국제결혼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이 한국에 와서 맞아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본국의 식구들에게 전할 수 없다. 심지어는 남편의 폭력에 맞서 이혼을 해도 본국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살 수도 없다. 주변의 눈이 무서운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가면 맞는 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을 수 있을까? 조금만이라도 이주여성의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 조건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다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알아가는 것. 그래야만 다른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인간을 이해하기 위하여


한국에 현재 결혼하는 10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한다. 작년만 해도 25만 명이 결혼을 했는데 그 중 2만 5천이 국제결혼이었다. 국제결혼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이주노동자 또한 점점 늘어가고 있다. 이는 ‘이주의 여성화’라고 해서 세계적인 추세이다. 국제결혼을 통해 가정으로 들어오든, 관광비자나 고용허가제, 산업연수생으로 2차 산업으로 들어오든, 성산업으로 들어오든, 이주여성을 가장 옥죄고 있는 것은 체류 문제이다. 체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모든 문제가 왜곡되고 모순은 증폭된다.


국제결혼으로 들어온 이주여성은 체류와 관련해서 가장 힘든 것은 한국국적을 얻기 까지 2년이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98년 국적법 개정 이후로는 결혼을 해도 2년 동안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해야만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다. 2년 동안, 6개월에서 1년씩 체류를 연장해주는 데 남편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남편이 부인이 맘에 안 들면 더 이상 체류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그 2년 동안은 남편이 부당한 대우를 해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이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혼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이혼의 귀책사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 더 이상 체류 할 수 없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한국인 여성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어려운 판국에 체류신분이 불투명한 가난한 나라에서 온 여자가 남편의 귀책사유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 있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냐고 할 테지만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이혼을 하고 본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너무나 큰 상처가 된다. 본국에서 조금이라도 살림의 주름을 펴줄 것이라고 기대됐던 딸이, 누나가, 언니가 빈손으로 이혼녀가 되서 돌아온다면 가족들은 외면하거나 주변에 그러한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에 이혼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본국으로 가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런 역경을 이겨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다짐을 한다 쳐도 아이가 있으면 상황은 또 달라진다. 아이를 데려갈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방황하다 다시 남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2차 산업이나 성산업에 종사하는 이주여성노동자들도 체류문제로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이주여성은 한국에 90년대 초반에 온 분인데, 한국에 온지 얼마 안돼서 다니던 공장 사장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다 불법체류 신분에 경찰서에 갈 수도 없고 사장이 소문내면 나라로 돌려보내겠단 말에 두려워서 아무 대응도 못하고 다음날 조용히 짐을 싸서 공장을 옮겼다고 했다. 그때는 한국에 들어올 때 브로커에게 준 5 백만 원만 생각했다고 했다. 미등록 체류 문제로 고통 받기는 여성이나 남성,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주여성은 성폭력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있다. 이제는 그러한 고통을 호소할 곳도 많이 생겼지만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은 남성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 공유되기 때문에 그녀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남성이주노동자에 의지해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체류문제와는 다르지만 그녀들은 또 다른 문제로 괴로움을 겪는다. 다름 아닌 가족과의 관계 때문이다. 가족들과 떨어져 길게는 12년 짧게는 몇 년을 지내다 보니 가족 사이에서 그녀들은 그저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가끔씩 그녀들은 내게 하소연한다.  “거기(본국) 사람들은 내가 여기서 쓰고 남는 돈을 보내는 줄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 해서 그 돈을 버는 지 그걸 몰라. 그래서 답답해. 나랑 전화통화만 하면 돈 달라 그래. 누가 결혼해. 누가 아파. 누구 학교 가야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난 갑갑하다. 그녀들이 그 관계에서 소외당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막막해 온다. 난 가끔 한 마디 거들기도 한다. “언니, 이제 돈 보내지 마요. 그냥 언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요.” 하지만 그녀들은 절대로 그렇게 못 할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답답해진다. 


우연이었을까? 내가 만난 이주여성들은 대부분 맏이이거나 아니면 어찌 되었든 집안의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학교를 가야하는 동생이 줄줄이 있어서 뒤를 돌봐줘야 하는 그녀들은 “왜 그렇게 맞고 살았어요?” 라는 속없는 질문에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살아 보려고 했지. 내가 언닌데 동생들 뒷바라지도 해야 하고, 언니가 되서 이혼하고 그러면 동생들 결혼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듯한 말이다. 적어도 우리 엄마, 이모 정도의 나이의 여자들이라면 저런 이야기를 했을 법도 하다. 그래서 더 애틋하다. 그녀들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로 왔다. 하지만 가난이라는 것이 벗어지는 것이었던가? 벗어지는 게 아니라 더 깊고 넓게 번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이는 들고 한국 땅에서는 계속 미등록이고 결국 그녀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가서 여전히 가난할 그녀들, 혹은 어떻게든 버텨서 한국국적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그녀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제 빈곤은 여성의 한 특징이란 생각까지 든다.


변방이 아닌 중심에 서서


난 이주여성을 만나면 만날수록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하는 모든 역할의 극렬함을 본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결혼은 매매일 뿐이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혹은 다양한 이러저러한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그렇지 결혼은 매매일 뿐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국제결혼의 시스템은 그렇다고 쉽게 이야기 할 수 있게 한다. 이혼한 전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어서, 밭일을 할 사람이 없어서, 노모를 모실 사람이 없어서, 그 노골적인 국제결혼을 하게 된 남편들의 이유들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순수하다. 가족을 위해서 작업장의 성폭력도 참아냈을 이주여성노동자들을 볼 때면 그 가족들 얼굴이 떠올라 치가 떨린다. 하지만 정말 이러한 일이 이주여성들만의 일인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남성중심 사회를 사는 모든 여성의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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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 좋음..

1. 완성도가 높다

 

심수봉 언니의 노래를 듣고 있다.

최근에 나온 판인데..그 전의 곡들도 있고 신곡들도 있다.

수봉언니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주위의 공기가 맑아지고 숨쉬기가 쉬워진다.

이런 저런 걸러지지 않는 이상한 노래들이 난무한데 감정이 맑게 걸러져 한가지로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 정말 깔끔하다. 이런 걸 완성도가 높다고 하는 걸까?

 

2. 한번도 만나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갖는 것

 

최근 존버거의 책들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신간은 아니고 절판 됐던 책들이 다시 새로운 옷을 입고 이쁘게 편집까지 새로 돼서 나왔다. 얼마전에 '제7의 인간' 개정판을 샀는데 오늘 보니...'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도 있다.

꼭 읽어 봐야지..

 

알라딘에서 찾아 보는 데 참 요상도 하지 가슴이 짠하면서 떨린다.

사랑 시작할 때 가슴이 아픈 모양 마냥.

엽기적이다란 생각이 든다.

 

존버거는 내게 좋은 할배다. 인생의 묘미를 알려주는 할배다. 할배의 내공으로 한 소절씩 묘사해내는 것이 내겐 가끔 찔끔 찔끔 느끼는 삶의 묘미를 증폭해서 알려준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이주 작업을 하면서 그 할배를 알게 되었는데 이주노동자에 대한 할배의 통찰력은 놀랍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작업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것을 할배는 묘사한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싸한 일인지 보여준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밀고 나가 다른 이를 감염시킨다. 그런 작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할배의 글을 읽고 있으면 조금은 느껴지지만 감히 내가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싶어져서 머뭇 거리게 된다.

 

여하튼 또 다시 머뭇 거리겠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이것이 구나' 조금은 깨달을 수 있을 듯 해서 얼렁 또 책을 읽어 봐야겠다.

 

 



생의 한 지점, 누군가를 처음 만난 순간, 함께 식사하던 친구의 움직임 하나하나와 목소리, 그때 그곳 풍경의 색감과 향기... 사진보다 더 세밀하게 묘사한-'글로 쓴 사진(포토카피)'이라 이름 붙인 존 버거의 아름다운 산문집이다.

존 버거는 이 책에 '포토카피(사진복사)'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면서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 수없는 만남 속에서 쉽게 놓치게 되는 감흥과 기억들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잡아내어 때로는 시적으로, 때로는 그림을 그리듯이 절묘하게 펼쳐 놓는다.

여행을 가서 단 몇 분간 머문 장소를 그리워하고, 혹은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을 그리워하고, 한번도 만나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갖는 것은 결국 휴머니즘의 다른 모습이다. 이 깨달음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존 버거는 경험의 세트장을 만들어 독자 각자에게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경험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 묘사와 설명만을 통해서 이야기 속 장면이 손에 잡힐 듯 보여준다.

미술평론으로 활동을 시작해 사유의 영역을 확대해 온 영국의 대표적 지성 존 버거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이자 사회비평가, 문명비평가이다. 그는 중년 시절 프랑스 동부 알프스 산록의 시골 농촌 마을로 들어가 근 삼십 년을 노동과 글쓰기, 농부와 작가, 은둔과 참여를 아우르며 살아가고 있다.

다양한 영역에 통달한 작가답게 날카로운 '시각적 통찰력'을 선보인다. 특히 그는 도저히 같은 층위에서 다룰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 예술, 인생, 정치, 사랑, 우정, 자연, 죽음 을 공통점이 없는 인물들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고 사실과 허구를 섞어 이야기하는 탁월한 내공과 통찰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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