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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0/21
    오랜만에 울다
    흑무
  2. 2008/10/16
    준하에게
    흑무
  3. 2008/10/16
    다시 만나다.
    흑무
  4. 2008/10/16
    정은임 아나운서
    흑무
  5. 2008/10/16
    술. 말.
    흑무
  6. 2008/10/16
    형아가 좋아
    흑무
  7. 2008/10/12
    겸양과 겸손, 청출어람
    흑무
  8. 2008/10/12
    패기와 열정이 있는 인간
    흑무
  9. 2008/10/09
    떡국
    흑무
  10. 2008/10/01
    흑무

오랜만에 울다

아주. 오랜만에. 형이 울었다.

 

한 동지를 만나고와. 그가 촉매가 되어 요근래의 아픔을 토하며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그리고서는 방에서 뛰쳐나와 장을 밷어내듯 토한다.

 

마음이 아프다.

동지들에게 마음이 아프다는 그에게 별 도와줄 것이 없어 나도 아프다.

나도 아프다.

 

 내가 아플때 당신도 이리 아팠겠지. 하지만 스스로를 따라가기는 힘들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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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하에게

[너의 아빠인 거대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



두 번 다시 어떤 꽃도 피지 않고 어떠한 열매도 다시는 익어갈 것 같지 않았던

 

가을이 있었다.

 

밤낮없이 들끓던 시간이 어느 날 문득 질주를 멈춘 날이 있었고


그렇게 멈춘 시간이 이제 조용히 깊어갈 차례였건만


그때 시간은 벼랑 끝으로 추락했다.


단풍도 들지 않았고 세상은 온통 감옥의 벽처럼 잿빛이었고


하늘마저 어둡고 거대한 구멍처럼 보이던 그때.


신조차 용서가 되지 않았고 그보다는 비겁하고 무력했던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어


혼자 있으면 울었고 모이면 술을 마시고 급하게 취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


높은 곳에 서면 뛰어내리고 싶었고 낮은 곳에 앉으면 그대로 묻혀 버리고 싶은 욕망이


시시각각 꿈틀거리던 그때.


그때 일곱 살짜리 준하. 널 보았다.


열 살이 되었겠구나.


크레인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곳에 마징가 제트처럼 올라간 아빠랑 생이별을 하고


‘아빠 힘들면 내가 일자리 구해 줄 테니 빨리 돌아와요.’ 라고


편지를 쓰던 누나 곁에서 누나의 크레용을 빌려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빠 살랑해요. 언제와요?’ 라고 아빠 모습을 그려 편지를 썼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제 애비의 장례식장에 와서 크레인에 내걸린 영정 사진을 보고는


‘아빠다’ 반색을 하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아빠의 상여를 덮었던 하얀 국화꽃을 누나의 머리에 꽂아주며 이쁘다고 손뼉을 치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황소 같던 네 아빠였지만 준하 너만 보면 ‘아이구, 우리 막둥이’


입이 저절로 벙그러져 안고 업고 물고 빨고 꺼칠한 수염을 네 여린 볼에 부비며

어쩔 줄 몰라 하던 네가 열 살이 되었겠구나.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일곱 살짜리 아이가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았다는 준하야.


아빠가 보고 싶은 그 간절한 마음을 담아 아빠에게 드릴 편지를


그 꼬물거리는 손으로 쓰고 그렸을 준하야.


마지막 날까지 그 편지를 닳도록 읽고 또 읽다가 끝내 그 편지가 크레인 위에 남겨진


네 아빠의 마지막 유품이 되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을 준하야.


제 목을 감을 밧줄을 제 손으로 매듭을 짓던 그 모진 시간까지


차마 놓을 수 없었을 이름 준하야.


밧줄에 목을 거는 마지막 순간까지 단 한번만이라도 보고 싶고


미치도록 안고 싶었을 준하야.


힐리스를 사주마 약속했던 아빠가 왜 그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한다는 건


이 모순 덩어리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일이기에 네 나이 열 살은 아직 어리다.


아빠가 하시는 일을 적어오라는 잔인한 숙제를 받아온 날이거나


아빠랑 체험 학습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을 때거나


아빠의 손을 잡고 지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 마다


그렇게 가버린 아빠가 미울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준하야.


네 아빤 세상 어느 아빠들처럼 너랑 그렇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던 거란다.


일요일이면 의기양양하게 네 손을 잡고 동네 사람들 다 볼 때까지


골목길을 느릿느릿 걸어 목욕탕에도 가고 싶으셨을 거야.


아빠가 사준 자전거를 비틀거리며 타는 네 등 뒤에서 우리 막내가 저렇게 컸구나.


열 살이 된 널 콧날 시큰거리며 지켜보고 싶으셨을 거야.


네가 혼자 일어서 세상을 훨훨 날아다닐 때까지 오래오래 널 지켜주며


세상에서 가장 넓고 따뜻한 둥지가 되고 싶으셨을 거야.


너에게 가장 안전한 놀이터이자 가장 편안한 침대가 되고 싶으셨을 거야.


아침이면 네가 닦아 놓은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 저녁이면 네가 담싹 안겨드는 집으로


땀내 풍기며 돌아가 너랑 함께 레슬링도 하고 나란히 배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 꿈.


그게 아빠가 꿈꾸었던 세상의 모습이었단다.


그러나 준하야.


너에게 아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듬직한 거인이었을 테지만


사실은 네 아빤 난장이었단다.


수 백 명의 생존권을 난도질하고도 낯빛하나 바꾸지 않던 세상과 외로이 맞서 싸워야 했던 난장이였단다.


천막이 삭았던 세월, 2년 동안을 안 해 본 것 없이 다해가며 마침내 이끌어낸 합의안을


손바닥처럼 뒤집는 가진 자들의 농간에 맞서 바이킹보다 높고 아찔했던


크레인에 올라가는 것밖엔 할 게 없었던 난장이였단다.


129일을 혼자 매달려 있었던 크레인 위에서 기어이 목숨을 던져 모두를 살렸던

거대한 난장이였단다.


준하야.


너마저 이런 세상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통일을 향한 발걸음들이 아직도 간첩이 되고 빨갱이가 되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칸 지닐 수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만 해온 애비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짤리고 하루에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밖에는 도무지 할 게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이라는 차별과 서러움의 이름을 수번처럼 달고 살다가 그마저 쫓겨나

1년을 넘게 천막을 치고 그 천막에서 사계절을 맞고 보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세상에 남겨졌던 유일한 거처였던 그 천막마저 뜯겨져 나간 어느 날 아침.


천막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빈자리에 무릎이 꺾인 채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어야 하는


이런 세상을 너한테 마저 물려 줄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은 울고 정규직은 잔업과 성과금에 영혼을 파는


오로지 이 두 가지의 선택이 너의 미래가 되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어린 자식들은 애비를 잃고 늙은 부모들은 자식을 잃는 이런 세상은


이제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


준하야.


어느 날 육교를 오르다가 굽이 다 닳아빠진 어떤 사내의 낡은 구두를 보다가

그만 가슴이 미어진 날이 있었단다.


크레인에 올라가기 1주일 전. 새 구두를 사놓고 끝내 그 구두를 신을 수 없었던


네 아빠의 새 구두를 네가 신을 만큼의 세월이 지나면 그때가 되면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미안하다는 말.


널 간절히 지켜주고 싶었던 네 아빠를 끝내 지켜주지 못해


준하야. 정말 미안하다.


(2006년 10월 29일. 김진숙. 솥발산 열사묘역 제막식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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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다.

작년 한진중에서 밀려난 아저씨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년 일해온 일터에서 명퇴란 이름으로 강제로 밀려난 아저씨는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박창수 위원장 이야기를 하며,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 아저씨가 자꾸 미안하다며 울었습니다.

50이 넘은 사내가 10년도 더 지난 일로 술잔에 눈물 콧물을 빠뜨리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박창수란 이름은 세월의 무게로도 덮을 수 없는 아픔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박창수 하나만으로도 우린 아프고 무겁습니다.

두번쨉니다.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중공업이 인수한 이후 여섯명의 위원장 중 두 명은 구속 이후 해고되고, 한 명은 고성으로, 율도로 하루가 멀다하고 쫓겨나고, 두 명은 죽었습니다.

지난 번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어떤 아저씨가 그러셨습니다. "내는 김주익이 안 찍었다. 똑똑하고 아까운 사람들, 위원장 뽑아놓으면 다 짤리고 감방가고 죽어삐는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김주익이를 우째 또 사지로 몰아넣겠노?"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뭘 그렇게 죽을 죄를 저질렀습니까? 조양호 회장님, 조남호 부회장님, 얼마나 더 하실겁니까? 이 소름끼치는 살인게임이 몇 판이 더 남았습니까? 노동자의 목에 빨대를 꽂고 더운 피를 마시는 이 흡혈게임이 얼마나 더 남았습니까?

LGG선상 파업에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의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노동자의 가련한 처지를 팔아 따낸 권력의 맛이 꿀맛입니까? 조중동 그 찌라시들의 꼬봉노릇이 그렇게 안락하더이까?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했습니까? 21년차 노동자 기본급 105만원, 손에 쥐는 건 80만원, 그마저도 가압류 12만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하나 코빼기도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깡보리밥에 쥐똥이 섞여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치덕치 넝마처럼 기워입고, 한 겨울에도 찬물로 고양이 세수해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그냥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살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사고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임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걸 그랬습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 동지가, 김주익 동지가, 그 천금같은,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 올 수 있다면, 그 억센 어깨를, 그 순박하던 웃음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수만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조남호·조수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책봉 받은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부자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님이 재계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사교육비로 한 달 수천만원을 써도 재산은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치 임금 7만5000원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올라간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 커녕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원 주던 노동자 짤라내면 70만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명이 달라들어도 고작해야 석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는 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명의 노동자가 골반압착으로, 두부협착으로, 추락사고, 감전사고로 죽어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도시 대구, 전자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의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들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50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칩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맨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며 일자리 구해줄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진숙 동지의 이야기다. 대학로집회 중 듣다 햇살 없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도록 울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만들었던 대중 자료집에도 한 자리를 차리하고 있었다. 문득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시 생각이 나서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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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아나운서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8510189&q=%C1%A4%C0%BA%C0%D3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7851119&q=%C1%A4%C0%BA%C0%D3

 

http://cafe.daum.net/shnodo/6ah4/204?docid=t0E2|6ah4|204|20081014221738&q=%B1%E8%C1%D6%C0%CD%20%BF%AD%BB%E7&srchid=CCBt0E2|6ah4|204|20081014221738

 

기술이 발전하는 것에 대단히 감사할 때는 바로 이런 때다.

방송을 할 때도 세상을 떠날 때도 나는 존재를 몰랐던 사람인데 몇 년 전 김주익 열사가 돌아갈 당시 방송을 들었다.

응. 이런 사람도 세상에 있었구나.

 

....

새벽 세 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백여 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사발에 김치 한 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 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 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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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말.

어제 오늘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에 든 생각. 말이 너무 많아. 말이 너무 많아.

 어제, 오늘,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의 공통점은.,... 술 마신날 다음 날이라는 것.

 말이 너무 너무 많아. 뭘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좀 많다 말이.

 

 

나 혼자 알아둘 걸 괜히 말했다의 종류들,

저 사람이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를 통해 알아버렸다의 종류들,

서로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일인데 공유해버렸다의 종류들,

'말하기' 위한 이야기의 종류들.

 

지나고 나면 이렇듯 말이 너무 많아.. 라고 혼자 중얼거린다.

 

어제의 경우 위로 방문이었다. 일 년에 손에 꼽히게 술을 먹는 사람이 대단히 힘들어 하며 한 주에 몇 번씩 술을 먹고 있다. 그와 같은 경우..나는 같이 시간을 보내줄 사람이 필요했었다. 잠시 잊고 있기 위해서.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먹고 2차를 가고. 생각해보니 어제 9시간 동안 같이 있었다. 9시간을 함께 있었으니 온갖 이야기가 다 나왔다. 활동, 연애, 가족을 주제로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

정말 많은 말을 했다. 술도 대단히 많이 먹고 내속이 속이 아니며 머리는 아프며 배는 고프지만 엄두가 나지 않고 집안일은 쌓여있고 읽어야할 거리들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음.

 

아가씨. 정녕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묵언 수행을 함께 가자 하였다.

좋을 것 같지만 걱정이 앞선다. 4박5일 동안 어떻게 말을 안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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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가 좋아

방에서 형이 뒤척인다.

하여 나는 점점더 타자를 소리나지 않게 작게 치느라 자꾸 오타가 난다.

그런데도 즐겁고 고맙다.

 

세상 이런 사람이 또 있을까. 착각이라도 감사해.

잘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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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양과 겸손, 청출어람

".......겸양까지는 아니더라도 겸손한인간...." 이라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DAUM사전.

 

-겸양 : [명사] 겸손한 태도로 남에게 양보하거나 사양함.

-겸손 : [명사]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겸손과의 다름을 알아보고 싶었음.

 

 

---------

 

청출어람 청어람.

 

형과 이야기하는데 "........청출어람 청어람....." 이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형이 잘못말한줄 알았다.

나는 지금까지 "청출어람 어람청출" 이라고 수없이 써왔다. 창피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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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기와 열정이 있는 인간

지난 수요일 최문순의원의 강의에서 그는 패기있는 열정있는 인간이 되라고 이야기했다. 이후 질문을 받는 시간(대부분이 대학생이고 또 그의 대부분이 1-2학년인듯 하다)에 한 남학생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패기있는 인간이 되라 강조하셨는데 패기만 너무 강조하다보면 강의석같은 사람들이 많이 생기게 되는것 아닙니까. 사회적 문제가 생기게 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나와 내 앞자리 수염난 남성을 빼고 나머지는 모두 키득키득 공감을 표하며 웃었다. (이 둘 이외에도 또 웃지 않는 사람이 있는지는 확인을 위해 머리를 돌려볼 여유가 없어 확인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강의석=돌아이, 라고 주고받았다.

 

1. 질문자가 생각하는 패기는 뭔가.

2. 강의석은 돼 돌아이지?

3.그 질문은 왜 함께 웃으며 공유할 꺼리였던가.

 

싫었다. 강의석은 돌아이라는 등치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가 혼자서 홍길동처럼 이리번쩍 저리번쩍 나타나며 스스로가 생각하는 문제를 던지고 있는데 방식과 과정에 있어서 전부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가 패기만 있는 있간의 전형이라는 주장도 강의석이 사회의 문제거리라는 주장도 패기만 있는 자라는 주장도 동의할 수 없다.

 

가벼움과 무관심은 이렇게 폭력적이다. 주로 교실에서 나타나는 모두가 특별한 이유없이 동의하여 한 사람 똘아이 만들기. (똘아이는 돌이 아니라 똘이라고 써야 제맛이다.)

 

잠시 DAUM 사전.  [패기]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려는 굳센 기상이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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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어제 열심히. 술을 먹고 오늘 점심은 떡국을 먹기 위해 집 앞 식당으로 갔다. 요근래는먹고 싶은것이 너무 많다. 떡국, 스파케티...(떡국먹고 와서 배부르다고 나머지들은 그새 까먹어 버렸다);; 차라리 임신을 했다하고 마음껏 살찌고 마음껏 먹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된단다;;)

 

전번에 한 번 먹어보았던 길 건너 김밥천국의 떡국은 가격이 3000원인 것이 가장 큰 매력이지만 조미료맛이 너무 강해서 집 앞 상가들을 살펴보았으나.. 수줍은 관계로 그냥 지나가는척 하며 1층과 2층의 식당을 지나가며 순간 집중하여 메뉴판을 훑어보았으나 떡국은 없고 떡만두국만 있다. 무려 4000원.

 

하여 결국 길 건너 김밥천국으로 향했다. 아주머니들이 식사를 거의 마치신 상태였는데 떡국을 주문하며 말하고 싶었다.

"조미료 빼주세요" 아니지. 소금도 조미료 아닌가? (확실치 않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다 빼주세요" 아니지. 이랬다가 "우린 다시다 안써욧!!" 하고 소리치면....

"혹시 다시다가 들어간다면 빼주세요" 아니지. 너무 까탈스러워 보이나..

"전 다시다를 먹으면 잠시 후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요, 혹시 다시다가 들어간다면 빼주세요" 아니지.

너무 구차해. 라고 걸어가는 길에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는 "떡국 주세요" 로 간단하게 주문을 마쳤다. 말도 못하고. ;;

 

김밥천국의 떡국을 받아들고 먹는 기분은.. 길거리 햄버거를 먹는 느낌이랄까. 개운하고 상쾌하지 않은 느낌. 문득 나의 존재가 김밥천국 떡국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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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맥주 두 캔을 먹고 놀다가 잠든 후 아침에 꿈을 꾸었다.

 

참 생생해. 내용인즉슨.

 

나와 동료들이 떼거지로 죽게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왜 한꺼번에 죽게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죽고 나니 한동안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모두 눈에 보이고 그들도 내가 보인다. 난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하는데(어제 보고 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따온 한 장면인듯) 이걸보고 친구들이 '그러니까 이렇게 했어야지 저렇게 했어야지' 잔소리를 해댄다. 나만 투명해지고 있었으므로.

난 그대로 인데 죽은 자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하는 이에게(이 자도 죽은자)  좋다고 하니, '예전 모습의 넌 좋아지만 지금은 좀 별로야. 넌 딴 사람이 됐잖아'하며 밀어내는 등의;;;

바닥이 꿀럭하며 파도처럼 진동을 치면(이건 '매트릭스'의 한 장면인듯) 재빨리 몸을 피해야한다. 그건 죽은 자의 세계의 깡패와 같은 이들이 오고 있다는 신호이다. 이들은 신입 앞에 나타나서 그들의 젊음을 훔쳐간다;;;;

 

꿈 속에서 문득 후회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책도 더 많이 읽고 하고 싶은 일을 더 열심히 해볼껄 하고 말이다. 죽은 자의 세상에 가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빈둥거리는 것 밖에 없었던 것이다. 책도 남이 펼놓아야 볼 수 있고 텔레비젼도 타인이 틀어논 것만 볼 수 있는.

앞으로 영원히(!) 빈둥거려야하는데 살아있을 때는 덜 빈둥거릴걸 하는 후회를 했다.

 

자고 일어나 형에게 '내가 꿈에서 죽었는데 이게 무슨 꿈이야?' 하고 물으니 "어떻게 죽었는데?" 하길래 "친구들하고 한꺼번에" 했더니 "응, 개꿈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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