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午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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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비정규직노조위원장 안기호씨의 편지

안기호 위원장이 원하청 동지들과 농성장 동지들에게 보내온 편지
현자비정규직노조
21028 769  /  3
2005년 02월 27일 14시 42분 54초
[구속 중인 안기호 위원장이 원하청 동지들 및 농성장 동지들에게 보내온 편지]


현대자동차 원하청 노동자 동지 여러분께


과분한 사랑 깊이 간직하고 원하청 동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현대자동차에서의 하루하루는 원하청 자본의 탄압에 맞선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2003년 5월 비투위 결성, 7월 비정규직노조 설립, 2005년 2월 구치소까지 부족한 저와 비정규직노조에 보내주신 지원 연대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원하청 자본에게 지금 무슨 또 할 말이 남아 있겠습니까? 남아 있는 건 어떠한 명분도 설득력도 없는 무모한 탄압 뿐입니다.
현대자본에게 GT5가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현대자본은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서 이미 불법파견 세계 1위, 노조탄압 왕국으로서의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파견근로가 금지되어 있어도 대규모 불법을 밥 먹듯이 저질렀고, 불법파견 판정이 났어도 불법과 폭력을 또다시 자행하는 파렴치한 현대자본을 노동부조차 고발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원하청 자본의 천인공노할 만행과 반노동자적인 노조탄압은 법과 상식은 물론 물불 안 가리고 범죄보다 더한 극악한 탄압으로 사실상 최단기간에 걸친 전면적인 탄압에 나섰습니다.
할 말이 남아 있으면 교섭에 응해야 합니다. 텔레비전 공개토론에 나서야 합니다. 무모한 탄압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보라! 원하청 자본의 법도, 상식도, 대화도, 도덕도, 양심도, 인륜도 저버린 추악한 발악을!!

우리는 비정규직 노조의 2005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영원히 다시오지 않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천금같은 기회라는 것을 너무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이번 투쟁을 포기하지 않거나 성공적인 투쟁이 된다면 비정규직노조는 명실상부한 노동조합으로서 정규직에 버금가는 강력한 노조로, 통합노조로, 산별노조로 나아갈 것이며, 평생을 걸려도 이룰 수 없는 직접고용을 포함한 정규직화의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은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가 분명 아닙니다. 2005년 투쟁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투쟁이자 끝까지 투쟁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밖에 없는 1,2,3차 모두의 투쟁이자 전국적인 투쟁입니다.

원하청 자본이 왜 전면탄압에 나섰는지, 도대체 어떠한 의도가 숨어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자본이 미쳐 날뛰는 것은 원래 법이 그렇고,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고,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현대자본의 능력과 조건이 안돼서의 문제 또한 결단코 아닙니다.
자본의 의도는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 따른 비정규직노조의 숙원인 정규직화를 막고 비정규직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임이 너무도 분명해졌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자본은 물론 불법업체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천년 만년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비정규직으로 쓰기 위해 언제든지 마음대로 짜를 수 있는 비정규직으로 쓰기 위해 비정규직노조의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목숨 걸고 탄압하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하지 않습니까? 피가 끓고 눈물이 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참을 수 없는 수모와 탄압을 받아야 합니까? 이제 당한 만큼 돌려주고 받을 건 받아야 합니다.

2005년을 오뚜기처럼 잡초처럼 우리 함께 단결하고 투쟁하며 사는 것이 영원히 승리하는 길이며 인간답게 사는 길입니다.
상대방 선수의 펀치가 매섭다고 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원하청 자본의 탄압이 두려워 단결투쟁을 외면만 하시겠습니까? 전쟁이 무서워 전투에 불참하신다면 개인의 권리도, 노조의 권리도, 나라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은 명확하지 않습니까?
진정! 우리에게 무섭고 두렵고 부끄러운 것은 무엇입니까? 단결하고 투쟁할 때 단결하고 투쟁하지 못하고, 나서야 할 때 눈치보고 도망가는 것만큼 부끄럽고 두려운 것도 없습니다.
이젠 생각을 바꿔야 행동이 바뀌고 승리도 있습니다.
홍수환이 링에 올라 수없이 날아오는 펀치를 맞고 네 번씩이나 다운됐다고 해서 패배했습니까? 현자노조가 17년간 탄압을 받았다고 단결투쟁을 그만 두었습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하더라도 얼마 전까지 단결투쟁에 눈치보고 도망가던 노동자들이 여러 차례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지금도 5공장의 파업농성장에선 우리 모두의 승리와 미래를 위해 원하청 자본의 살인만행과 극악한 탄압을 물리치고 전기도 물도 없는 파업농성장에서 밤낮없이 공포처럼 다가오는 살인적인 추위와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짐승보다 못한 비인간적 대우와 깜빵보다 못한 참담한 현실에서 원하청 자본과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월 19일 면회 온 동지들은 저에게 단식을 풀지 않으면 농성장에 있는 동지들이 전원 단식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동지적 애정과 투쟁의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저는 만감이 교차하면서 울고 말았습니다. 이미 우리는 탄압 속에서도 하나가 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1·2·3차 구분 없이 현대자동차의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05년 단결투쟁에 다함께 참여합시다. 2005년 투쟁에서 원하청 노동자의 공동투쟁을 호소하며 공동 승리를 기원하겠습니다.
위기와 기회는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언제든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와 실천입니다.

동지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누가 뭐라 해도 먹어야 하듯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

비정규직노조가 노동조합을 만들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이 1,2,3차 구분없이 모두가 정규직화와 직접 고용을 내걸고 단결투쟁하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누가 하지 마라고 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듯이, 지금 나에게, 나의 가족에게, 나의 동료에게, 나의 노동형제이자 동지에게, 우리 모두에게 가장 소중하고 절실한 것은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진지하게 되돌아보면 2005년 투쟁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하청 공동투쟁에서 실패의 대표적 사례가 아닌 공동투쟁의 모범을 만들어 냅시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2005. 2. 19

울산구치소에서 안기호 올림




농성장 동지 여러분께


농성장 동지들에게 인사드립니다.
농성장을 떠난 후 경찰서 유치장에서 동지들을 생각했습니다. 원하청 자본의 짐승보다 못한 비인간적 만행과 노조탄압에 분노했습니다. 동족에게조차 총칼을 든 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용서할 수 없는 자들과 맞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니 도장부 아줌마와 정영미 동지의 말이 떠오릅니다. 아줌마가 어느 날 말씀하셨습니다. 맞교대하면서 하루에 세 번씩이나 5공장에서 구정문으로 그리고 명촌으로 뛰어다니니 몸이 되다고... 그럼에도 여유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정영미 동지는 2005년 투쟁 반드시 승리해서 정규직으로 새롭게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동지 여러분!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은 오를수록 힘들고 어렵지만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많은 것을 볼 수 있듯이 2005년 투쟁은 한만큼 성과로 돌아올 것입니다.
구치소에 오던 날 서쌍용 사무국장님이 출소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박경렬 황재현 동지가 새 조끼를 입고 면회를 왔습니다. 동지들이 돌아간 후 있을 때 잘할 걸 하는 때늦은 후회도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동지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펜을 놓습니다.


2005. 2. 19

울산구치소에서 안기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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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교섭 관련 기사

"대의원대회 유보" Vs "반드시 사수"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민주노총의 진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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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세계 kctuedit@nodong.org
민주노총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기아자동차노조 취업비리 사태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란으로 대의원대회가 거푸 유회되는 등 '조직적 위기상황'으로까지 치달은 것. 2월22일 다시 대의원대회가 열리지만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견해차는 여전하고, '사태수습'의 처방도 엇갈리는 실정이다. 난국을 헤쳐갈 묘안은 없는가. 불행하게도 아직은 모두가 공감하는 대안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지금까지 사회적 교섭을 놓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온 두 대의원의 문제의식과 민주노총 중앙위(2월15일)에서 쏟아져 나온 의견을 모아봤다.

김태일 한국생산성본부노조 위원장
"지도부 투쟁의지 믿고 안건처리를"
폭넓은 투쟁조직 위해서도 필요
이정원 leephoto@nodong.org


▲'사회적 교섭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 민주노총 대의원들이라면 교섭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충분히 논의하자'는 주장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진정성'이 무엇인가 묻고싶다. 회의지연을 위한 전술적 판단이라면 문제다. 부족하다면 전문가가 모여 깊이 있는 찬반토론을 벌이되 대의원들이 자기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회의는 진행해야 맞다.
▲1998년 노사정위에서 정리해고, 파견법 법제화 등에 합의하는 바람에 불신이 뿌리깊다. 그 때와 정세가 바뀌었는가. 나아가 우리가 얻을 것이 있는가.
=지도부가 중대한 오류를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시 참여과정에서 제대로 교육, 선전, 조직을 했다면 오히려 올바른 도구가 됐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은 여전하지만 저항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성과가 있을 수 있다. 조그마한 권익에 대해 소홀히 생각하는데 이를 성과로 챙겨야지 실리·실용주의로 몰아가고, 투쟁회피주의로 몰고 갈 일은 아니다. 또한 '얻을 것이 없다'는 주장에는 '구조결정론'적 시각과 '패배주의'가 깔려 있다. 노사정 주체의 행보에 따라 역학관계는 변할 수 있는데 이런 역동성을 보지 못한다. 물론 무엇을 얻을 것인가는 '물음표'다. 2월투쟁 관련해 악법을 지연시키면서 내부를 조직하자.
▲2월투쟁을 앞둔 시점에서 사회적 교섭이 그렇게 시급하냐는 비판이 있다. 오히려 사회적 교섭에 앞서 비정규악법, 로드맵 등의 철회를 먼저 걸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세가 엄혹하지 않을 때가 있는가. 한번은 넘어야 한다. '2006년 큰 투쟁하겠다'는 지도부의 의지를 믿자. 사회적 교섭에 참여하더라도 위상, 의제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투쟁으로 돌파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발목을 잡기 위해 활용하자는 전술적 판단이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투쟁을 안 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이 있는데, 이는 지도부에 대한 신뢰 문제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꼴'이 돼서는 안 된다. 의제 또한 사회개혁, 공공성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교섭이 필요한 것 아닌가. 광범위한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도 사회적 요구는 필요하다.
▲당장 2월투쟁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불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갈라치기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질서, 체계를 올바로 갖추지 못하면 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더욱이 지난 대대에서 안건처리를 반대했던 한 대의원이 언론을 통해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부, 자본이 파견했다"는 모욕적 발언을 했는데 분노가 치민다. 정부, 자본은 적대적이지만 내부 의견그룹은 적대 대상이어선 안 된다. 민주집중제 원리에 따라 질서를 세워야 한다. 지도부가 그간 과오를 범한 것도 아닌데 불신하는 것은 근거 없다. 구체적 과오와 근거 없이 선험적, 주관적 판단으로 지도부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2월22일 대대를 앞두고 조정의 여지는 없는가.
=지도부가 사태해결 노력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각 단위와 만나야 한다. 지금은 조직질서를 세워나갈 국면이다. 안건처리 못하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지혜를 모아나가자.
박승희 ddal@nodong.org

이경수 민주노총 충남본장
"내부갈등 심각, 대의원대회 유보를"
안건 폐기하고 투쟁 조직에 힘써야
이정원 leephoto@nodong.org


▲"민주주의의 최하위원칙인 다수결만 강조하며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는데.
='민주노총의 지향점이 무엇인가'하는 추구방향에 따라 내용을 수반하는 민주주의가 돼야 한다. 사회적 교섭안을 다수결로 처리하는 그 형식적 측면은 맞지만 자본주의 구조를 인정하는 꼴로 가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 예를 들면 국회가 (반노동자적 법안을 처리하는데) 다수결이라는 형식을 갖추면 민주노총이 투쟁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렇게 내용과 절차는 틀리다.
▲"사회적 교섭이 더 거대한 폭력"이라고도 했는데 그 이유는?
=사회적 합의(교섭)라는 것은 네덜란드 등 유럽에서도 이미 역사적인 무덤으로 가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용안정이나 노동조건 확보 등과 관련해 생산성 협조 등의 유연성은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를 증명하고 있다. 민주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것이고, 결국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변혁운동은 사회적 합의와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집행부는 조직내부의 간극을 좁히는 일에 힘써야 하는데, 오히려 노무현정부의 틀 속에 들어가 사회적 합의를 고집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을 뛰어넘는 더 거대한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집행부의 의지가 뚜렷한데, 이에 대한 절충안이나 대안은 가지고 있나.
=대안을 두고는 갑갑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교섭안을 폐기하는 게 핵심이다. 비정규직의 투쟁동력이 없는 지금, 사회적 교섭으로 정부의 기도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를 판단해봐야 한다.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안건의 폐기지만 굳이 말한다면 내부에서 투쟁의지를 가다듬고 투쟁을 조직하는 일일 것이다. 사회의제화(쟁점화)가 꼭 사회적 교섭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현 집행부는 '사회적 교섭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되지 않았는가.
=선거 과정을 통해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할 때 꼭 공약만 보고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공약사항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단순히 공약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용에 대한 공유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끝으로 2월22일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이에 대한 견해를 간략히 정리해달라.
=2월1일 폭력사태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는 집행부의 의지 때문인지는 몰라도 현재'대의원대회 사수'와 '폭력반대집회'를 내용으로 하는 문건이 나돌고 있다. 결국 대의원대회를 강행할 경우 극렬한 반대 사태가 예상되는 마당에 얻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회적 교섭안은 노동자계급의 권리를 언제나 보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국 투쟁성을 거세당하고 자본에 포섭되는 결과를 부르며, 민주화의 투쟁성과를 갖다바치는 꼴이 되고 만다. 대의원대회 강행은 극렬한 반대를 부를 것이다. 민주노총이 '저들만의 잔치'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존재한 이유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지향에 있다. 토론이 부족하다고 하는 의견도 분분한 마당에 집행부는 유보나 철회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내부갈등의 분열을 고착화시키는 단초를 제공하지 말기를 바란다.
강상철 prdeer@nodong.org
2005년02월16일 19:22:51

 

 

2차 중앙위 발언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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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호 정은희 kctuedit@nodong.org
"22일 대회 유보"-"반드시 사수" 팽팽
"예정대로 열되 차이극복 위해 지도부가 최선"으로 마무리


지난 2월15일 열린 민주노총 2차 중앙위에서는 대의원대회 유회사태가 불러온 조직적 혼란의 수습방안이 집중 논의됐다. 주로 2월22일로 예정된 임시대의원대회 관련 의견이었는데, 총연맹은 이와 관련해 △대의원의 정확한 발언과 의결 보장 △별도의 참관인석 마련(영상 실황중계) △산하조직에서 파견한 안전요원 배치 등의 대책을 내놨다. 이에 대해 30여명이 발언에 나서는 등 열띤 토론이 이어졌으며, '대회 유보론'과 '대회 사수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대회를 열되 첨예한 대립요인인 사회적 교섭안은 제외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다음은 이날 안건토의 발언록 요지.

-안전요원을 배치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물리력에 의한 성사일 뿐이다. 문제는 현재의 분열상을 수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이다. 22일 대회 이후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통합과 차이극복을 고민해야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맹점을 되새길 기회를 갖고 스스로 비판하고 함께 비판해야 한다. 거듭할수록 분열되는 대의원대회를 한 달에 세 번씩 강행해야 하는가.
-22일 대의원대회는 사수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명예를 회복하는 대회인 만큼 안건의결 이전에 총파업보다, 임단투 결의보다 더 중요하다. 이번 대회는 참관인을 제한하고, 고의적인 회의방해에 대한 강력한 징계와 사전제재를 중앙위 결의로 채택하자.
-대회사수가 신뢰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의심된다. 물리력으로 사수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걱정하는 동지들을 아울러 갈 수 있는 게 필요하다. 이미 사회적 교섭안을 떠난 문제로, 22일 대회 강행은 더 큰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대회를 열자.('대회사수 대책'을 담은 한 총연맹 간부 명의의 문건을 거론했으나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집행부 의도와 상관없다"고 해명)
-사회적 교섭은 집행부 공약으로 언젠가는 결정돼야 하지만 왜 지금 해야하는지 설득하든가, 논의시점을 재고해야 한다.
-사회적 교섭안을 상정하면 지난번처럼 충돌이 예상된다. 총파업 찬반투표처럼 조합원 총회로 결정하자.
-2월 총파업과 22일 대회를 어떻게 동시에 할 수 있는가. 사회적 교섭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2월 총파업은 삭제돼야 한다. 투쟁으로 갈 것인지, 교섭으로 갈 것인지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문제는 22일 대회도, 사회적 교섭도 아니고 내부분열이다. 정파적 관계를 넘어 이성과 공존의 힘을 발휘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절차적 민주주의에 의해 파견된 대표자들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문제다. 지난 두 차례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찬성이든 반대든 사회적 교섭안에 결론을 내러 온 것이다. 이런 대의원들의 뜻을 모아 22일 대회를 열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하고, 집행해야 한다.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결정에 따른 행동통일'이 요체인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는 지난 100년의 역사를 통해 만들어진 의사결정 구조다. 폭력이 우려되고, 분열이 우려된다고 대회를 포기하는 건 결국 폭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대회를 사수해야 한다.
-사회적 교섭과 노동조합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통합지도력을 위해선 22일 대회를 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하더라도 투쟁을 결의하는 대회여야 한다.
-22일 대회는 반드시 열어야 한다. 지도부가 사회적 교섭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지도부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믿고 따라갈 필요가 있다. 과거 노사정위의 아픈 경험에 언제까지 얽매일 것인가. 가부간에 결정을 내려 전조합원이 단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지도부 판단을 존중하고 조직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야 한다. 우리 힘으로 사회의제와 당면과제를 실천할 수 있다면 모르되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므로 교섭을 전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우려되는 점에 대해서는 예방조치를 만들면 된다.
-2월 총파업이 조직되지 않는 건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게 아니라 민주노총의 권위가 깨진 탓이다. 민주노총 권위를 회복하는 대회가 되도록 정상적 절차에 따라 최대한 토론할 수 있는 대회가 되도록 중앙위원들이 결의를 모아야 한다.
-안전요원, 참관인 분리 등을 통해 대회를 사수하더라도 추락한 지도력이 회복되겠는가. 내부이견과 차이를 좁히는 합의가 사회적 교섭 안건보다 더 중요하다. 칼자루는 지도부가 쥐고 있다.

회의를 주재한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은 "이견이 여전함이 확인됐지만 표결로 정리할 생각이 없다"며 정회를 거친 뒤 "22일 대회는 공지된 대로 진행하겠지만 그 때까지 차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기풍을 살릴 수 있도록 지도부가 최선을 다하겠다. 대회사수를 위해 노력해달라"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2005년02월17일 12:23:10
추천
1. 머식이 02/18 19:22
대대는 치러야 한다.
힘으로 밀어부치는 일부 난동자들은 색출해야 한다.
의결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자들은 지구를 떠나거라
2. 1/의결민주주의 부정?? zz 02/25 12:45
민주노동당 의원들 다 지구를 떠나야지요..
국민이 뽑은 의결 민주주의를 부정했거든요..
3. 조합원들의 고귀한 의견을 폭력에 묻어선 않된다.! 조합원 02/25 14:09
민주노총의 최고의결기구인 대의원대회를 무엇때문에 하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조합원들의 의견을 결정하는 정말 중요한 의사결정 기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조합원이라면 잘 알것이다. 그렇다면 조합원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무엇을 원하는지,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아온 대의원들의 뜻은 분명하게 표출이 되어야 한다. 누가 무슨 권한으로 조합원들의 숭고한 의견을 막을 수 있겠는가! 찬성을 하던 반대를 하던 그 결정은 자유롭게 표출하도록 하고, 그 결정에 따라 이후의 투쟁의 전술과 전략을 위한 총력적 방법이 정해져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을 따로 구분하지 말자!

사회적 교섭이 뭐길래
|노동운동 이슈&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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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호 chanh@nodong.org
정녕 차이를 존중하되 건강한 토론으로 극복하기란 이리도 어려운가.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오랜 견해차이는 결국 민주노총을 위기상황으로 내몰고 말았다. 지난 1월20일 정기대의원대회가 정족수미달로 유회된 뒤 민주노총은 한 달 째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마침 터진 기아자동차 채용비리 사태까지 겹치면서 그 동안 쌓아온 '이 사회를 대표하는 진보세력'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비리사태에 따른 상처는 썩은 곳을 도려내고, 철저한 자정노력을 기울이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조직내 첨예한 이견이다. '현재 진행형'인데다 시간이 흘러도 이견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견해차이의 뿌리는 깊다. 1기 노사정위에 참여한 민주노총이 정리해고제 도입 등을 합의하면서 거센 내부반발을 부른 것을 비롯해 민주노총은 두 차례 참여와 철수를 반복했다. 그 뒤 불참기조가 웬만큼 자리를 잡은 가운데서도 노사정위 참여 주장은 계속 제기됐고, 지난 2003년 2월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노사정위 참여여부를 놓고 표결 직전까지 갔다가 관련 안건 심의 유보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지난해 4기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4기 집행부는 주요 선거공약으로 사회적 교섭 추진을 내걸고 당선됐으며, 지난해 9월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이를 추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비정규직 관련법 개악을 추진하고 나섬에 따라 그 직전에 열린 중앙위에서는 이를 올해 정기대의원대회로 유보했다. 그리고 정기대의원대회가 열렸고, 지금까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조직내 논의의 간추린 역사다.
한편 사회적 교섭에 대한 찬반의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정세나 조직상황에 따라 취지나 강조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 상황을 중심으로 공식 의결기구를 통해 제시된 각각의 논거를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먼저 집행부의 방침과 찬성론. 현재 집행부가 제출한 사회적 교섭방침은 '전술적 활용론'으로 요약된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 노무현 정권 아래서 교섭을 통해 제도개선 등을 이루기는 어렵지만 2006년 세상을 바꾸는 큰 투쟁을 앞두고 교섭을 사회쟁점화의 계기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즉, 투쟁이 핵심이고 사회적 교섭은 전술구사의 폭을 넓히는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현재 가장 큰 현안이자 변수로 등장한 비정규 노동법 개악저지와 관련해서도 총파업으로 맞서기에는 현장 투쟁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섭을 통해 이를 돌파해야 할 상황이라는 주장이다. 반면 찬성론 가운데는 전술적 활용을 넘어 구체적 성과를 챙기는 장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회적 교섭의 필요성에는 일치한다.
다음은 반대론. 노무현 정권의 정책기조로 볼 때 사회적 교섭은 신자유주의 전략 즉, 각종 반노동자 정책의 들러리 노릇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가까이는 1기 노사정위의 뼈아픈 오류, 멀리는 유럽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술적 활용론'과 관련해서는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 노동법을 개악하고, 로드맵을 통해 노동통제를 강화하려하는 마당에 교섭에 매달리는 건 맞지 않다는 것. 그렇다고 산별·노정교섭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적 교섭은 이미 그 폐해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회적 합의주의'일 뿐이라는 것이다. 반대론 가운데는 사회적 교섭을 활용할 수는 있으나 노사정위에서 철수할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주장이 공존한다.
이러한 견해차이는 결국 합일점을 찾지 못한 채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도 엇갈린다. 모두가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지만 한쪽은 '절차적 민주'를, 다른 한쪽은 '내용적 민주'를 강조한다. 그러니 사태수습의 해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조직의 권위회복'과 '분열상황을 해소할 통합적 지도력 발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2월22일 임시대의원대회가 다시 소집됐다. 지도부는 그 때까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분명한 건 이번 대회가 더 큰 물리적 충돌을 부르고 조직의 분열을 극한으로 내몰아 수습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민주노총은 한 달만에 다시 중대한 시험대에 서게 됐다.

이견해소가 열쇠…'낙관'은 쉽지 않아
<사회적 교섭안 처리 연기> 다양한 의견에도 속에서도 "전화위복 계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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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철 prdeer@nodong.org
사회적 교섭안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어온 민주노총이 임시대의원대회를 한 달 가량 연기함에 따라 이 기간 동안 견해차이를 얼마나 좁힐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대의원대회 연기를 결정한 5차 중앙집행위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다수의 지역본부장들이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한 내부이견 해소가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힘에 따라 이것이 총연맹 집행부의 판단에 적잖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수봉 교육선전실장은 이와 관련해 "쟁점은 사회적 교섭이 아니라 실질적인 투쟁을 위력적으로 펼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아니겠느냐"며 대화를 통한 이견해소 가능성을 내비쳤다.
사회적 교섭에 찬성한다고 밝힌 벽산건설노조 김동우 위원장은 "집행부가 너무 숫자의 힘에만 의존해 문제를 풀 게 아니라 소수의 단위노조와 중앙집행위원 개개인의 의사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며 "내부문제가 외부로 드러나면서 사회에 책임성 논란을 부른 만큼 방법을 찾아내려면 대의원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부분이 더 확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의원대회 연기는 이와 함께 '사회적 교섭에 대한 충분한 토론'을 요구해온 반대론의 주장도 일부 수용된 결과여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그러나 '한 달 정도 논의를 늦춘다고 해서 쟁점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찬반론 양쪽에 상당한 부담으로 남아 있다. 이를 반영한 듯 낙관적 전망은 쉽게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해결방법은 사회적 교섭안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다. 연기된 기간 동안에 대의원조직을 동원해 사회적 교섭 찬성여론을 퍼뜨리려는 집행부의 계획은 반대론자들에게 설득이 될 수 없다"는 시설노조 이동우 교선부장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교섭에 반대하는 현장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민주노총의 최근 상황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각도 다양하다.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대흥정공노조 권순화 위원장은 "매번 싸울 수만은 없으니 교섭을 하긴 해야겠지만 불법파견 등의 현실을 볼 때 사회적 교섭 내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며 반대론을 폈다.
반면 농협유통노조 이철이 사무국장은 "반대파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지말고 대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며 "폐기는 대안이 될 수 없고, 폐기한다면 대안으로 내용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를 내놓아야 한다. 투쟁만 하겠다는 것은 발목잡기 위한 반대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대병원 임미경 정책부장은 "가족들하고 TV를 보면서 낯이 뜨거웠다"며 "조합원들에게도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국민들은 오죽했겠느냐"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바스프노조 백윤석 사무국장은 "이번 대의원대회 과정은 소모적인 결과를 낳았다"며 "민주노총 자료나 정보를 통해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단위노조로서 대의원대회 준비 못지 않게 분야별로 각각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편 문제해결 방향에 대한 의견이 엇갈림에도 현장은 대체로 최근 사태가 '수습불능'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벽산건설노조 김 위원장은 "진짜 위기라는 것은 체제나 사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을 때 표현하는 것이다. 변화의 과도기에서 강해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지만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국파스프노조 백 사묵구장도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 스스로가 민주적으로 커나간다고 본다. 말하자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상중계| 환노위에서 벌어진 '노정 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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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 ddal@nodong.org
"비정규직 대중의 이익을…" "자본가 대중의 이해겠죠"

23일 민주노동당 의원단과 민주노총 지도부가 '점거'한 환노위 소회의실에 오후 3시20분께 이목희 의원 등 열린우리당 환노위원들이 들어오면서 입씨름이 벌어졌고, 환노위원장실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가시 돋친 설전은 이어졌다. 이날 '대화'는 비정규 개악법안을 둘러싼 노정간의 견해차를 극명히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2월23일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실에서 민주노총 임원들이 이경재 환노위위원장과 이목희 의원에게 비정규법안처리에 관련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사진=프로메테우스 양희석

-이목희 의원(열린우리당) :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의사일정 방해하러 왔는가.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 : 오늘 아침 브리핑을 보니 (비정규 개악안을) 2월에 통과시키겠다고 해서 사실관계 확인하러 왔다.
-이목희 : 노사간 비공식 대화 협상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지켜볼 것인데, 상황에 따라 2월내 처리하는 것을 고집하지 않겠다.
-우원식 의원(열린우리당) : 네거티브에서 포지티브로 가는 것으로 당정 합의했다. 진전된 형태라는 생각이다. 그런 정도면 양해할 수준 아니냐. 조직되지 않은 중소영세 비정규노동자 요구도 미룰 수 없다.
-이목희 : 누구한테도 '2월에 처리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노동계 지도부 어려움 잘 안다. 그러나 자신들의 정서 문제 때문에 국회 심의일정을 연기하라는 것은 너무 나갔다. 일방의 요구만 만족시킬 법을 만들 순 없다. 한국경제 현실, 비정규직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적절한 정책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협조해 달라.
-노회찬 의원(민주노동당) : 국보법은 대단히 신중히 처리하면서 비정규 법안을 서두르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노동계와 대화하고, '5당 정책협의회' 하자고 합의했다면 여기서 법안을 논의하자.
-이목희 : (정규직 중심의 노총뿐 아니라) 비정규직 대중의 이익 여부도 봐야 한다. 한국경제, 노동안정성, 사회안전성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법안을 봐야 한다. 대화하라면 하겠다.
-심상정 : 자본가 대중의 이해를 대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대화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자리를 환노위원장실로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 안 그래도 선거과정에서 '민주노총 따라하기' '민주노총 2중대' 따위의 소리를 들었는데 한국노총 입장은 없겠는가. 민주노총과 함께 하고픈 소망이 있다. 함께 재논의 구조에 들어가든 민주노총이 안 되면 4월 가서 단독으로 들어가겠다. 만약 법안을 통과시키면 모든 정부 위원회 탈퇴하겠다. 초강성으로 앞장서겠다.
-이혜선 민주노총 부위원장 : 사회양극화를 노동계가 나서서 해결코자 사회적 교섭안을 제출한 상태다. 그러나 대대가 유회되면서 지도부가 어려움에 빠져있다. 지난 노사정위 합의 때 정리해고말고는 지켜지지 않아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똑바로 보고 나라의 중심을 세우려는 고민을 해야한다. '비정규직 대중의 정서'를 거론한 이목희 의원의 발언은 과도하다. 집권당답게 대화문을 크게 열어라. 법안통과는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다.
-오길성 민주노총 부위원장 :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근본적으로 노동계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정부-여당의 통보로 볼 수밖에 없다. 3월15일 대대 열 필요도 없다.
-이경재 환노위원장(한나라당) : 뭔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은데, 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중재하고, 여러 채널로 얘기 듣겠다. 우선 환노위를 열자.
-우원식 : 정부 입법안 고칠 부분 있을 텐데 이를 법안소위에서 하고 있다. 또 하면 된다. 우리당 의원들은 대부분 노동, 환경운동 경험 있어 열려 있다. 오늘부터 내일, 모레 논의하면 된다. 2월엔 하지 말라거나 손대지 말라고 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왜 시기가 문제인가.
-이혜선 : 선수끼리 이러면 안 된다. 여당이 급선회 한 지점 알고 있다. 일부 비정규직의 의견이라 하는데 여당이 비정규직과 대화를 얼마나 했나.
-이목희 : 그 판단을 누가 하나. 민주노총은 60만 조합원 다 불러놓고 했는가.
-이혜선 : 그래서 대표가 필요한 것 아닌가. 민주노총 대표성 부정하는 발언이다. 취소하라.
-이용득 : 노사·노정문화 바꾸기 위해 민주노총이 대대 곤욕 치러가며 하고 있다. 3.15 대대가 남아있으니 시기를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교섭 내걸고 있는 것 뻔히 알면서 명분 다 빼앗아 가면 어떻게 반대조직 설득하겠나. 반대논리는 '사회적 대화틀 속에 들어가 봤자 정부가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뒤통수 맞는다'는 것이다. 2월에 강행처리하면 그들 주장이 맞는 것이고, 우리 명분 잃는 것이다. 명분을 달라. 3월까지 민주노총 결정 못하면 한국노총이 돌팔매질 맞더라도 운동의 대표성 갖고 논의구조 뛰어들겠다.
-이목희 : 노사정위 합의사항을 하나도 안 지켰다고 하는데 이는 정서상 그렇지, 명백히 안 지킨 건 '실업자 초기업단위노조 가입 허용' 뿐이다. 비공식 대화, 민주노총 대대 결과 등에 따라 2월 처리 고집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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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웅씨의 북한인권 발언

백태웅씨 "탄핵 막아낸 한국 국민 대단"

"서울의 속도는 가히 세계 최고입니다. 그 빠른 속도 속에서 대통령 탄핵 등 어려움을 몸으로 막으며 견뎌낸 국민과 사회, 노동단체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의 총책으로 지목돼 옥고를 치른 뒤 사면복권된 백태웅(42)씨는 2일 고려대에서 '미국 인권소송 중 일본군 위안부 소송기각을 중심으로'란 주제로 특강을 하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났다.

백씨는 먼저 "사람들의 걸음 속도도, 높은 건물들이 들어서는 속도도, 일처리 속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추켜세운 뒤 "3년 만에 귀국해 그런 속도에 적응하려니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1999년 사면복권후 미국에서 국제인권법 석.박사학위를 받은데 이어 캐나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조교수로 임용돼 한국법 등을 강의하고 있는 그는 그러면서 "외국에서 무엇을 배워 (한국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그러나 백씨는 "사실 사회운동의 제1선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활동하는 사람도 아닌 만큼 제 얘기를 어떤 사회적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건 과도한 것 같다"면서 "책임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면서 몸을 낮췄다.

두번째로 고국을 찾은 데 대해 그는 "지난 2월 이 대학의 한 교수가 캐나다 밴쿠버의 UBC에서 한국의 민법에 대해 특강을 해주었다"면서 "저도 이번에 그 빚을 갚으러 왔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와함께 진보 성향의 법무법인 '정평'이 제안한 '평화안보국제협력(PSIC)팀' 구성문제도 이번에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그는 전했다.

오는 16일 출국 예정인 백씨는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박노해씨 등 지인들과 만나 "느슨해져 있는 정을 돈독히 하고 무뎌진 감각도 벼리고 한국 사람들의 에너지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UBC에서 조교수로 '한국법' '아시아의 인권법' 등을 강의하면서 미국 인디애나주 노틀담대 법대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내년중 학위를 마치는 대로 한국에 돌아와서 강단에 서는 방안도 강구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 지역의 인권 시스템'을 주제로 아시아 지역의 법 규범과 인권 협력 체계, 인권의 이행과 발전 과정 등을 다룰 논문을 준비 중이다.

백씨는 이날 강연에서 제3국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미국 법정에서 소송을 내고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 불법행위 청구법' '외국인 주권 면책법' 등의 특징 등에 대해 강연했다. 한국 등 4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이 법에 의거해 미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백태웅 교수 “북한 인권문제 정치적 이용 안된다”


“운동권도 북한 인권문제 제기해야”

“미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등을 통한 다자적 접근법 택해야”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의 주모자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백태웅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교수가 이제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세력도 북한 인권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할때라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10일 미국 하버드대에서 하버드대 한국연구소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미국 동북부 지부 등 6개 인권, 학술 단체 공동주관으로 열린 북한 인권문제 토론회주제발표 및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은 단기간에 민주화를 이룩한 경험을살려 진보적 어젠다와 북한 인권문제를 어떻게 결합시킬 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백 교수는 한국 운동권 인사들에게 직접 이 같은 논리를 설득할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하고 “이미 한국의 운동세력 내에서도 이런 방향으로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의 조사원으로서 중국내 탈북자들과의 광범위한 면담조사를 토대로 보고서를 내기도 했던 백 교수는 “북한 인권은 과거의 독재정권이 압제나 반공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용됐기 때문에 민주화 세력으로서는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가 꺼림칙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그러나 “북한 인권의 개선은 햇볕 정책이나 대북 포용정책, 나아가 통일한국의 비전을 수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다만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할 때는 정확한 사실에 기초해야만 하며어떤 정치적 의도가 작용하거나 외부세력에 의해 협상의 지렛대로 이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북한 정권은 인권 침해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주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주체도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접근은 세심해야 한다”면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은 ’북한 인권법’을 통해 압박을 가할 것이 아니라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등을 통한 다자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와 함께 주제발표를 한 데이비드 호크 전미북한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북한 핵문제에 관한 ’포괄적 해결방안’을 논의할 때 한국과 미국, 일본은 북한 인권문제도 반드시 함께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크 사무국장은 “북한은 탈북자나 정치범을 수감하기 위해 정규 감옥 이외에관리소, 교화소, 집결소 등 다양한 이름의 수용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북한은이런 시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지만 이들 시설의 위치와 개요 등에 관한 탈북자들의 진술은 민간 위성이 촬영한 영상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케임브리지 <미국 매사추세츠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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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지 전략과 선택

 

노동운동에서의 두 가지 전략과 노동자 투사들의 선택

(개량주의 전략에 맞서 노동해방주의 전략을

단호하게 제창한다!)



1. 개량주의자들의 전략 제시를 환영한다!


  민주노총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노동조합주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개량주의와 타협성을 합리화하고 하나의 체계적인 정책으로까지 격상시키고자 하는 이데올로기 작업을 집대성한 ꡐ노동운동 발전 전략ꡑ이 탄생했다. 아직 이것은 ꡐ초안ꡑ 정도의 공식성을 띠고 있지만 그것이 이후 완성된 형태로 노동자들 앞에 제시될 ꡐ개량주의 전략ꡑ의 핵심을 모두 담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완성된 전략이란 오직 이 초안에 더 현란하게 ꡐ노동자적ꡑ인 옷을 입히고, 투사들의 비판을 교묘하게 회피하기 위한 모호한 추상적 공문구를 덧붙이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ꡐ노동운동 발전 전략ꡑ은 전혀 새롭지 않다. 우선 그것은 이제껏 한국 노동운동을 질식시켜 왔고, 노동자계급의 역동적 힘을 매장시켜왔으며, 노동대중의 생존권을 자본가 승냥이들에게 송두리째 갖다 바쳐왔던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배신과 굴종, 타협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남아공 코사투를 지배하는 개량주의자들이 전투적인 남아공 노동자들을 세뇌하고 타협과 굴종의 길로 이끌기 위해 사용했던 ꡐ셉템버 위원회 보고서ꡑ를 한국에 적용한 ꡒ모방품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온통 개량주의적 입장으로 채워진 셉템버 위원회 보고서와 ꡐ노동운동 발전 전략ꡑ이 차별성이 있다면, 그것은 여기에 담겨 있는 정신이 아니라 그 정신이 고려해야만 하는 객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양자 모두를 관통하는 정신은 분명하다. 그것은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기는 타협과 굴종, 배신, 개량주의의 정신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ꡐ노동운동 발전 전략ꡑ은 ꡒ노동해방 투사들ꡓ에게는 새로운 것이며, 하나의 소중한 기회다. 그것은 다음의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 노동운동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펼쳐지는 자본과의 전투를 통해 ꡐ발전ꡑ한다. 이 세 가지 전장에서의 전투의 결과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전체로서 노동운동에 발전과 후퇴를 명한다. 가령 구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를 가장한 변종 자본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일어난 정치그룹의 전향과 변절의 물결은 선진 노동자들로부터 ꡐ이데올로기ꡑ를 앗아갔다. 낡은 민중주의는 파산했지만 노동해방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이 선진 투사들에게 제시되지 못하는 불행한 상황에서 형편없는 노골적 개량주의가 파고들었다. 결국 ꡒ노동운동의 목표와 방향을 결정하는 이데올로기ꡓ 전투에서 선진 노동자들은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 구 소련의 붕괴와 함께 현실에서 명백히 파산한 낡은 민중주의 이데올로기(전략)로는 서구 사민주의 전략을 계승하는 이 노골적 개량주의 이데올로기와 결코 맞설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계급적 목표와 운동의 방향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정처없이 표류하게 된 선진 노동자들의 무기력성을 거침없이 파고들면서 개량주의 세력은 번성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국 노동운동 내에서 펼쳐진 ꡐ자본가계급, 소부르주아계급의 분견대들과 전투적 노동자 투사들 사이의 투쟁ꡑ에서 힘의 저울추가 명백히 개량주의자들 편으로 기울어진 것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전장에서 노동자 투사들이 패배함으로써 출발하지 않았다. 노동자 투사들의 패배는 ꡐ이데올로기 전장ꡑ에서의 패배로부터 시작되었고, 그것이 정치투쟁 전장에서의 패배로 나아가고, 최종적으로 ꡐ경제투쟁 전장ꡑ에서의 패배로 귀착되었을 때 한국 개량주의 세력은 압도적인 승리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운동의 목표와 방향, 다시 말해 노동운동의 전략을 규정하는 이데올로기는 노동운동의 ꡐ미래ꡑ를 결정한다. 왜냐하면 이 이데올로기는 자본과 정부에 맞선 직접적인 투쟁인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ꡐ정신ꡑ을 규정하며, 그것이 나아가는 ꡐ방향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노동해방 투사들과 개량주의자들 사이의 전투가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먼저 전면화되고, 여기에서 노동해방 투사들이 명백히 패배한 이후에 ꡐ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전장ꡑ에서 패배로 나아갔다는 사실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것이다. 자신이 전진해야 할 목적지와 방향을 잃어버린 투사들에게 매번의 일상적 전투에서 강하고 단호한 발걸음을 내딛기를 기대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기대일 뿐 현실화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물론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전장에서의 패배는 이데올로기 전장에서의 후퇴를 가속화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세 가지 전장은 따로 전투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참호와 도로, 철도, 보급 창고, 진지를 통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전투가 펼쳐지는 총체적인 전장의 한 부분을 이루기 때문이다. 한 전장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다른 전장에서의 승리와 패배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따라서 오직 이 세 전장 모두에서 나란히 협동하고 무기를 예리하게 다듬어 내지 않는다면 진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껏 한국의 노동자 투사들은 경제투쟁에만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왔을 뿐 정치투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에 제대로 착수하지 못했다. 그나마 정치투쟁과 관련해서는 공권력과의 부단한 충돌로부터 정치투쟁의 필요성을 어렴풋하게 자각해오기는 했지만, 이데올로기 투쟁과 관련해서는 침묵과 무관심이 팽배했다. 그것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비극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개량주의자들이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국제노동운동에서는 이미 무척 낡은 것을 새롭게 광을 내고 예리하게 벼린 무기로 포장해 맹렬히 공격해 들어오지만 이에 맞서 대적할 수 있는 자신의 이데올로기 무기를 전혀 갖지 못한 노동자 투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저항 수단이란 ꡐ이데올로기 전장을 포기하고 경제투쟁 전장으로 퇴각하는 것ꡑ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맨 몸으로 개량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검과 대적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장기적인 대응책이 될 수는 없었다.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승리한 개량주의자들은 이 승리를 그것에만 제한하지 않았다. 그들은 경제투쟁 전장으로 철수해, 거기서 진지를 구축하고 포복하고 있는 노동자 투사들을 제압하기 위해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확보한 진지들을 동원했다. 현장 경제투쟁에서 맹렬한 반격을 당할 때마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은 소리쳤다. ꡒ당신들은 노동해방을 하자는 것이냐? 그러나 사회주의는 명백히 파산했다. 그것은 노동운동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노동자 해방의 대안이 없는 한, 당분간 우리는 이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위배하는 지나치게 과격한 요구는 자제해야 하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제한된 수준으로만 보호해야만 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회사와 자본주의 산업을 정상화시키고, 나라를 살리는 것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우리의 경제적 요구를 제시하고 투쟁해야 한다. 그 점에서 타협을 거부하는 당신들 투사들은 무정부적이며, 대안 없이 단지 소리만 치고 있는 무책임한 분자들일 뿐이다. 전략, 대안을 제기할 수 없다면 잠자코 있으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불충분하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다. 전투적인 현장 경제투쟁은 노동해방적 대안이 있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그것을 제시할 수 없다면 우리의 소심하고도 타협적인 안을 받아들여라!ꡓ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더 나아갔다. 그들 개량주의 노조관료들은 아예 노동조합으로부터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힘을 앗아가려 했다. ꡒ노동조합은 경제투쟁, 정당은 정치투쟁ꡓ이라는 이분법을 들이밀면서 그들은 ꡒ변혁적 정치투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은 정당이 하는 것이며 노동조합은 잠자코 경제투쟁만 하면 된다ꡓ고 주장했다. 그런데 정치투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을 거부하고 이것과 분리된 경제투쟁에만 자신을 제한하는 노동조합, 그것은 개량주의 노동조합일 뿐만 아니라 경제투쟁 영역에서도 타협과 굴종으로 일관하는 무기력한 노동조합일 수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자본가 정부에 맞서 정치적으로 투쟁하지 못하는 노동조합은 모든 경제 파업에서 무참히 학살당하고 박살나는 그런 허약한 노동조합일 수밖에 없으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맞서 노동자 해방의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대치시키지 못하는 노동조합은 자신이 벌이는 투쟁의 정당성을 당당히 제출할 수 없으며, 그리고 이 투쟁을 통해 전진해야 할 방향성을 원대하게 제시하지도 못하는 편협하고도 소심한 노동조합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무혈입성하여 전리품을 쟁취한 개량주의 세력이 그 전리품을 이런 식으로 경제투쟁 전장에서도 동원하여 조여오는 한, 경제투쟁 전장에서도 노동자 투사들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전개해야만 했다. 결국 여기서도 하나 하나씩 투쟁 진지들이 개량주의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기 시작했고, 그것의 최종 결과는 민주노총과 같은 조직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이 개량주의자들의 주도권 하에 확고하게 장악된 것이었다. 역으로 이처럼 경제투쟁 영역에서도 개량주의자들의 주도권을 허용하게 되자 한국 노동운동은 완전히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하게 되었고, 운동은 온통 개량주의자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경제투쟁 영역에만 여전히 웅크리고 있으려 한다면, 노동자 투사들은 이데올로기 전장에서 완전하게 패배할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 이데올로기 전장에서의 완전한 패배, 그것도 공공연한 열린 전투에서의 패배는 재차 정치, 경제투쟁 전장에 영향을 미쳐 노동자 투사들에게 더욱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펼치도록 강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껏 이어져 온 역사적 패배를 단호하게 거부하고자 한다면 개량주의자들이 던진 ꡐ결투의 장갑ꡑ을 받아야 한다. ꡐ공공연한 이데올로기 전투!ꡑ 바로 그것이 전투적 투사들 앞에 던져진 당면의 절박한 과업이다. 여기서는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다. 그것은 개량주의자들이 공공연한 방식으로 결투의 장갑을 던지고, 공개적인 대중적 무대에서 한 판 겨룰 것을 신청한 이상 이 전투에서 물러서서 ꡐ이데올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장 경제투쟁이 중요하다ꡑ고 응답하는 것은 ꡐ전투를 회피하고 항복하는 것ꡑ에 다름 아니라는 점이 대중적으로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회복하기 힘든 거대한 상처를 투사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ꡒ단호한 응답을 통해 개량주의자들을 공개적인 무대에서 폭로하고 우리의 투쟁깃발을 당당하게 휘날리는 것!ꡓ 바로 그것이 진지한 투사들에게 제기되는 절박한 새로운 과업이다.


  둘째, ꡐ민주노총 노동운동 발전 전략ꡑ은 ꡒ우리 노동운동이 전진해야 할 목표와 방향ꡓ을 세워내는 절박한 과업과 관련, 또 하나의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목표가 없는 운동,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수단들을 분명히 하지 못하는 운동은 생명력이 없다. 기껏해야 기존 운동(자본주의 체제의 운동)에 반대할 수 있을 뿐 새로운 사회를 우뚝 세워내는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운동이 아니라면 승리에 이르기까지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원대한 운동으로 발돋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현존 사회의 모순과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는 명확한 대안을 가지고 비판하는 것만이 이 비판에 강한 힘을 실어주며, 다른 무엇보다도 이 비판의 주체에게 확신과 당당함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낡은 것을 타도하는 작업은 오직 새로운 것을 건설하는 작업을 통해서만 비로소 완전해지고 결연해지며, 낡은 것을 비판하는 작업은 오직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작업을 통해서만 비로소 철저해진다. 역으로 낡고 부당한 것에 대한 규탄과 비판, 저항은 이러한 건설적이고 창조적이며 대안적인 활동을 부단히 성장시키고 지배적인 힘으로 끌어올린다는 견지에서만 근본적으로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다.

  지금은 반동화되었지만 부르주아 계급을 비롯한 모든 계급이 이런 방식으로 성장했으며, 오직 이런 방식으로만 낡은 계급을 타도하고 주인으로 격상되었던 것이다. 그 점에 비추어보자면 한국 노동운동의 가장 결정적 취약점은 낡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한 저항과 분노, 비판의식을 노동계급의 위대한 건설적 전망, 대안과 긴밀하게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한계에 있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자본의 공격에 본질적으로 항상 수세적으로 대항해야 했으며, 개량주의자들의 배신을 근본적으로 타격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크고 작은 저항과 투쟁, 비판을 우리가 주인되는 노동해방을 향한 출격으로 일관되게 성장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나아가서 이런 취약성의 결과, 우리는 저항과 비판에서도 불철저할 수밖에 없었으며, 항상 좁은 범위에서만 자본주의 체제와 맞설 수 있을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전투에서 지속적으로 퇴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개량주의자들의 ꡐ노동운동 매장 전략ꡑ은 우리 노동운동이 반드시 응답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노동운동이 반드시 제시해야 할 목표와 수단들에 대해서 ꡐ개량주의적으로 일그러진 결론ꡑ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결론에 노동해방주의의 결론을 대치시키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우리 노동운동의 ꡒ계급적이고 노동해방적인 전략ꡓ을 곧추 세워내는 과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개량주의 전략에 대한 단순한 비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우리 노동운동의 진실한 전략을 세워낸다는 관점에서 ꡐ노동운동 매장 전략ꡑ에 대처하는 것은 그 가치가 빛난다.


  셋째, ꡐ노동운동 발전 전략ꡑ 비판은 도탄에 빠진 현장 노동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당면 투쟁에서도 소중한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검토해온 한국 노동운동의 뼈저린 역사적 경험은 우리에게 서로 손을 맞잡고 나란히 전진할 수밖에 없는, ꡒ경제투쟁, 정치투쟁, 이데올로기 투쟁ꡓ 영역 모두에서 투사들의 진지를 구축할 필요성을 정면으로 제기한다. 그러므로 현장에서 펼쳐지는 대중적 경제투쟁과 긴밀히 연결되며, 이 투쟁의 성장을 체계적으로 돕고 방향과 정신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다. 그것은 강단 교수들의 허약하고 아카데믹한 정신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노조, 연맹, 민주노총의 사무실의 편안한 소파에 앉아 서류를 뒤척이면서 정책대안을 고민하는 관료들의 실무적인 정신을 표현할 뿐 현장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절규하는 노동자들의 한 복판에서 자본에 맞선 맹렬한 전투를 진두지휘하는 노동해방 지도자들의 계급적 정신을 표현할 수 없다.

  진정 노동자계급의 투쟁 방향을 지시하고, 이끄는 전투교본으로서 전략은 이들처럼 현장 투사들과 분리되어 있는 관료들, 강단 교수들로부터는 절대 탄생할 수 없다. 오직 현장에서 맹렬히 분투하는 투사들이 현장 한 복판에서 절실하게 떠오르는 과제들과 씨름하는 가운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전략을 모색할 때만이 그 이름에 부합하는 노동운동 전략은 탄생할 수 있다. 현장에서 노동대중과 함께 전선을 밀어나가는 투사들만이 이 전략을 행동으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략은 관료들과 교수들의 머리와 서류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간절한 열망과 진지한 모색으로부터 떠오르며, 바로 그렇기에 현장의 경제투쟁을 지도하는 전투 교본이 될 수 있으며 정치투쟁과도 긴밀하게 결합할 수 있다. 그런 전략만이 절충과 모호함, 시시콜콜함으로 범벅된 쓰레기와 같은 전략이 아니라 하나 하나의 조항이 현장에서 생생한 투쟁으로 현실화되는 엄격한 행동지침으로서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투사들은 대기업 임단협 안을 꽉 채우는 그 수백 가지 조항의 대부분이 사문화되어 단지 서류 상의 조항으로만 남게 되는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장 노동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그런 서류상의 조항이 결연코 아니다. 단 서너 가지의 투박한 조항일지라도 그것이 현장에서 떠오르는 절박한 요구를 정확히 담고 있을 때, 그것은 더 이상 한 무더기의 서류가 아니다. 구 전노협 시절의 요구안이 바로 그랬다. 요구안은 분임토론을 통해 현장 대중들 한 복판에서 떠올랐고, 그것은 헌신적인 행동으로 뒷받침되었다. 투사들에게 그것은 목숨처럼 소중한 지침이었고, ꡐ죽을 수는 있어도 질 수는 없다ꡑ는 결연함으로 집행되었다. 그렇다! 이런 단사 요구안보다 훨씬 더 결정적이고 근본적인 의의를 갖는 노동자계급의 전략은 ꡐ노동해방을 위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ꡑ를 알고 싶어하고, 그것을 목숨을 다바쳐 행동으로 승인할 수 있으며, 현장 한 복판에서 노동대중과 함께 그것을 집행할 수 있는 견결한 투사들에 의해 논의될 때만이 진정 전략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현장 투사들에게는 현장 투쟁을 선도하고 그것에 방향타를 부여하며, 노동자 해방을 향해 진군할 수 있는 ꡒ정확한 나침반ꡓ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를 싹둑 자를 수 있는 날카로운 검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검은 이제 단순한 현장 경제투쟁만으로는 벼려낼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대중화되어 현장에서 일정하게 뿌리를 내린 한국 노동운동은 이 뿌리에 노동자계급의 해방전략이라는 자양분을 공급해야 성장할 수 있을 만한 발전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자양분이 제 때 공급되지 못한 결과 뿌리는 말라 비틀어지고 있으며, 썩어버릴 위험성과 맞닥뜨리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ꡒ노동운동 발전 전략ꡓ을 검토해야 하는 가장 본질적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지금 노동자계급의 해방전략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ꡐ노동운동 매장 전략ꡑ과 같은 장난감이 제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성장 그 자체가 거스를 수 없는 힘으로 ꡐ우리 노동계급의 해방전략ꡑ을 세워내도록 간절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이 우리가 ꡐ노동운동 매장 전략ꡑ을 새롭고도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을 명확히 한다. 우리가 진지하게 모색하고 세워내야 할 전략은 오직 현장에 뿌리박은 진실한 투사들에 의해서만 창조될 수 있다. 당연히 이 전략은 현장의 투쟁요구, 삶과 긴밀하게 연결된 가운데 확립되는 것이며, 현장투쟁의 사활적 요구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논의의 주체는 현장 투사들이어야 하며, 논의의 결과물은 현장으로 응당 돌려져야 한다. 현장에서 분투하는 투사들이 주저없이 견해를 제시하고, 진지한 토론에 착수하는 것,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이다. 바로 거기에 노동자계급의 해방 전략을 간절하게 요구하는 진실한 투사들, 자본주의를 제압할 수 있는 미래의 거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2. 개량주의 전략과 노동해방주의 전략, 노동운동의 두 가지 전략 노선


  이 글은 개량주의자들의 ꡐ전략ꡑ을 검토하면서 우리의 전략을 대치시켜 나가는 방식을 취할 것이다. 이런 방식은 비록 우리의 전략적 입장을 명료하고 체계적으로 제시하는 데는 부적합할 수는 있지만, 개량주의 전략과 노동해방주의 전략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데는 적합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 글은 2000년 9월 30일에 '민주노총ꡐ에 공식 제출된 ?노동운동발전전략위원회 초안?(이하 ꡐ초안ꡑ)의 체계를 따라 서술되게 되었다. 이 점을 참고 바란다.

  ꡐ초안ꡑ은 ꡒ발전전략위원회(이하 ꡐ위원회ꡑ)의 구성, 경과ꡓ에 대한 보고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우선 한 눈에 드러나는 사실은 이 위원회가 현장 투사들의 절박한 투쟁요구를 받아안지 않았으며, 그들과 긴밀히 결합하지도 못했다는 기본적인 사실이다. 올해 투쟁의 선봉에 섰던 이랜드, 롯데, 전사노와 같은 투쟁사업장들,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비정규직, 중소기업 투쟁 사업장들에서 분투하는 현장 투사들은 단 한 명도 위원회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이들의 절실한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한 간담회나 토론회는 단 한 차례도 조직하지 않았다. 이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이 위원회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위원회는 ꡐ조직발전전략ꡑ이라는 항목에 수십 페이지를 할애하고, 특히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사업장을 조직하는 작업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한다면서 이러저러한 대안들과 정책들을 열거한다.

  그러나 진정 현장에서 비정규직과 중소 영세업체 운동을 이끌어가고 있고, 조직을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보기 좋은 서류상의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ꡐ자본과 정부에 맞선 현장투쟁의 한 복판ꡑ에서 절박하게 떠오르는 요구들로서, ꡐ어떻게 적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ꡑ라는 단 하나의 핵심으로 집약된다. 이런 핵심을 포착하고 전략, 전술로 구체화하는 작업은 당연히 이 투사들과의 긴밀한 호흡, 다른 무엇보다도 그들의 투쟁 현장 한 복판에서 그들과 함께 투쟁하고 책임지는 실천활동을 요구한다. 최소한 이런 실천활동에 종사하는 투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의 실천적 주장을 정책으로 집약하기 위한 진지한 대화를 요청한다. 불행하게도 위원회는 이런 가장 기초적인 활동에 대해 전혀 보고하고 있지 않은 채 단지 상급 단체와 대기업 노조의 관료들과 교수들이 구성하는 위원회 분과들을 열거하고 그들이 사무실에서 벌이는 세미나의 일정에 대해 나열하는 것으로 보고를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무언가 현장 투쟁에 도움이 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ꡐ썩은 나무에서 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ꡑ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왕 쓰레기 매립장에 들어선 이상 우리는 구토할 각오를 하고 쓰레기 더미를 파헤쳐야 한다.


  제1장 ꡒ민주노총의 현재와 과제ꡓ의 3절 ꡐ민주노조운동의 투쟁과 성과ꡑ에서 ꡐ초안ꡑ은 그 악명높은 ꡐ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론ꡑ과 동일한 연장선에서 몰계급적인 주장을 제시한다; ꡒ사회, 경제민주화를 통한 사회전체의 보편 이익 실현 노력ꡓ(p.11)

  불행하게도 이 주장은 민주노총의 ꡐ성과ꡑ가 아니라 이제껏 민주노총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아온 ꡐ한계와 오류ꡑ를 반영할 뿐이다. 노동자와 자본가가 서로 화해할 수 없도록 대립하고 있는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ꡐ사회전체의 보편 이익ꡑ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은 개량주의자들의 머리 속에서나 있는 것이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쥐어짜서 이익을 얻는 자본가들과 자본가들의 이윤을 침해해야만 자신의 이익을 수호할 수 있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ꡐ공동의 이익ꡑ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ꡐ이런 공동의 이익ꡑ을 추구하려 한다면,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노사협조주의의 늪으로 빨려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이익이건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이 거둔 이익은 모두 자본가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맹렬한 투쟁의 결과였지 ꡐ자본가들, 노동자들, 중간계급들 모두의 보편 이익ꡑ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확보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ꡒ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ꡓ 류의 ꡐ사회전체의 보편 이익 실현 노력ꡑ이란 신기루에 현혹된 결과, 우리는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와 같은 ꡐ노동자 죽이기ꡑ를 용납했고 절박한 노동자의 이익을 희생해야 했다. 만일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진정 획득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과감하게 자본가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만 진실인 것이 아니다.


  사회전체의 보편 이익이 진정 실현될 수 있는 무계급 사회, 즉 착취가 없는 사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그들의 이익을 송두리째 제거해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착취를 종식시키는 노동자 해방은 오직 자본가 착취자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자본)을 전체 노동자계급의 소유로 전화시키는 사회화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는데, 그것은 이제껏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거대한 부의 성을 건설해 왔고 그로부터 온갖 이익을 향유하던 자본가들에게는 ꡐ자신들의 이익을 모두 제거하는 것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 번 양보하여 ꡐ계급 사회를 종식시켜 무계급 사회로 이행한다는 측면ꡑ에서 ꡐ사회전체의 보편 이익 실현ꡑ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ꡒ사회, 경제 민주화ꡓ 따위로 가능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착취자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을 몰수하여 노동자 정부로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수중에 장악하는 노동해방적 행동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즉 사회전체의 보편 이해는 오직 노동자 해방을 통해 계급 제도를 종식시킬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말할 수 있는 것이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대 추구될 수 없는 것이며(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을 추구하려고 할 때 그것은 명백하게 ꡐ노사협조주의ꡑ로 귀착된다), 따라서 그 시기 이전에는 우리는 사회전체의 보편 이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ꡒ압도적 다수의 노동자계급의 이익이냐 아니면 한줌 자본가 착취자들의 이익이냐ꡓ만을 말할 수 있다. 당연히 우리의 결론은 ꡒ자본가계급에 맞선 맹렬한 계급투쟁ꡓ이다.


1. 사회개혁투쟁 ?? 개량주의 캠페인


  이런 비판이 단지 말꼬리 붙잡기가 아니라는 점은 ꡐ초안ꡑ의 주장의 구체적 항목으로 들어가면 더욱 분명해진다. ꡐ사회개혁투쟁ꡑ이라는 악명높은 개량주의 캠페인을 기간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성과의 한 항목으로 제시하면서 ꡐ초안ꡑ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회개혁투쟁; 사회개혁투쟁과 관련하여 크게 주목을 받고 실질적으로 변화가 진전된 부분은 경제민주화와 사회복지제도 개선이라 할 수 있음. 사회개혁투쟁의 사회복지제도 개선 요구들은 의료보험 통합 일원화와 보험적용 확대, 연금기금의 민주적 관리 운용,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적용확대, 사회복지예산의 증액 등으로서 일정 부분 관철되었으며, 이는 일정 정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음. 한편 사회개혁투쟁의 경제민주화 요구는 재벌그룹 소유분산, 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 상호지급보증제도 및 상호 출자제도 폐지, 연결재무재표 의무화, 재벌총수 퇴진과 재벌2세 세습 금지 등 재벌체제 개혁과 관련된 요구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들은 이전부터 시민단체들과 함께 제기해온 정경유착과 재벌체제 재생산의 핵심 기제인 전경련의 해체 주장의 연장선상에 있음. (p.11)


  우선 다음을 분명히 하자. 자본주의 체제의 ꡐ개혁ꡑ이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온 몸에 생산자둘의 피를 묻히고 탄생한 이래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억누르고 착취하지 않았던 적은 결코 없었다.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을 먹고 성장해 왔으며, 노동자들을 짓밟고 가두고 죽이면서 생존을 유지해 왔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ꡐ개혁ꡑ의 대상이 아니라 ꡐ폐지ꡑ의 대상이다. 정확히 말해서 자본주의는 노동자 생산 공동체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착취적이고 억압적이며 야만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조금이라도 ꡐ개혁ꡑ할 수 있다고 믿으며, 모종의 ꡐ개혁 방침ꡑ을 제시하는 ꡐ초안ꡑ은 자본주의 체제를 수선하여 말끔하게 새단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개량주의를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이는 물을 것이다. ꡒ자본주의 체제 중에서 일정 착취가 제한된 사회도 있지 않은가? 가령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부처럼ꡓ

  그러나 노동자의 전략은 대단히 분명해야 하며, 정확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혼란을 조장하며, 노동자가 전진해야 할 방향을 흐릿하게 만든다. 그 점에서 어떤 의도에서 제출되건 사회개혁투쟁 주장은 전진하는 노동자 투사들의 발목을 붙잡고, 환상을 조장할 뿐이다. 자본주의는 단 한번도 개혁된 적이 없다. 자본주의의 본성은 항상 반노동자적이었고, 이런 본성은 경쟁과 축적의 증대에 따라 더욱 철저해졌을 따름이다. 무언가 노동자들에게 조금 나은 상황이 조성되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가 개혁된 결과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착취적 본성이 마음대로 발휘되지 못하도록 ꡒ노동자들이 투쟁한 결과ꡓ였고, 특히 자본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노동자 해방 투쟁이 성장하는 것에 위협받은 자본가계급이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에게 양보한 결과였을 뿐이다.

  그렇기에 노동자 투쟁의 성과는 있을 수 있지만, 사회개혁투쟁의 성과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일 뿐이다. 한국 노동자들이 무언가 성과를 얻어냈다면 그것은 사회개혁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노동자 투쟁의 결과였을 뿐이다. ꡐ초안ꡑ의 주장이 완벽한 개량주의라는 점은 사회개혁투쟁의 구체적 항목들로 들어가면 의심할 여지없이 더욱 분명해진다.

  ꡐ경제민주화ꡑ(여기서는 그들의 용어법에 대해 문제삼지 않도록 하자)에서 실질적으로 변화가 진전되었다고? 물론 아주 충분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단 그것은 성과가 아니라 ꡐ후퇴ꡑ로 반드시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70% 대 부유한 30%의 사회에서 90 대 10의 사회로 현격한 후퇴가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한국만이 아니라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공히 나타나는 현상인데, 그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이 창조한 부를 확대되는 비율로 더욱 강하게 착취해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불가피한 역사적 결과다. 그런데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런 ꡐ부익부 빈익빈ꡑ 현상을 우리의 위원회 성원들은 애써 무시하면서 ꡐ경제민주화ꡑ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이는 뒤에서 살펴보도록 하고 계속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ꡐ사회복지제도 개선ꡑ에서의 실질적인 진전? 이것 또한 완전한 허깨비다. 의료보험의 경우 적용범위가 미미하나마 확대된 것에 비하면 노동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의료비용은 훨씬 더 증대했다. 의료보험은 통합 일원화되었지만, 그것의 성과는 오직 자본가 정부만이 독식하면서 전사노 노동자들에게 고용위기과 강화된 노동강도를 강요하고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경우 그것은 물론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백만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를 떠돌고, 700만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이라는 半실업자가 되어 항상적인 고용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대가로 확대된 것이다. 일자리를 찾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이용해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을 아무런 안전장비도 없이,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한 채 수행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산재가 훨씬 더 높은 비율로 발생한 결과 산재 보험은 확대되었다. 이런 것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ꡒ사회복지제도의 개선ꡓ인가? 당신들은 이것들을 가지고 우리 노동자들에게 ꡐ사회개혁투쟁의 빛나는 성과ꡑ를 인정하라고 떠벌이는 것인가? 이런 것들이 당신들이 말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성과인가? 아주 훌륭한 성과!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에게 그것은 성과가 아니라 지옥같이 열악한 처지를 뜻할 뿐이다.

  사회개혁투쟁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지는 영역은 이른바 경제민주화 요구와 관련해서다. 여기서는 조합주의자들, 민중주의자들의 ꡐ재벌해체론ꡑ과 ꡐ전문경영인 도입론ꡑ이 찬란하게 등장한다. ꡐ재벌그룹의 소유분산ꡑ, ꡐ상호지급보증제도 및 상호 출자제도 폐지ꡑ, ꡐ연결재무제표 의무화ꡑ, ꡐ재벌 총수 퇴진과 재벌2세 세습 금지ꡑ 등과 같은 착취자들의 소유 형태를 변형시킨 것을 그들은 ꡐ경제민주화ꡑ로 간주한다. 이것은 경실련과 같은 자본가 단체의 입장이지 노동자 조직의 입장이 아니다. 노동자를 갈취하는 착취자들이 10명에서 20명으로 증대하는 것이 ꡐ경제민주화ꡑ인가? 물론 그것은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민주화일 수 있다. 거대 기업 경영주가 한 명에서 3명으로 늘어나면 그들 착취자들에게는 그것은 ꡐ소유가 민주화ꡑ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그것은 아무런 변화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착취당하고 있으며 생산수단의 소유로부터 자유롭다. 오히려 노동자들은 경실련과 같은 자본가 단체들이 떠드는 ꡐ경제민주화의 진전ꡑ과 같은 허깨비 주장과는 달리 이 사회는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으며 ꡐ경제민주화ꡑ는 후퇴하고 있음을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ꡐ발전전략위원회ꡑ의 정신은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정신이 아니라 서로 기업의 오너가 되려 발버둥치는 자본가들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으며, 노동자 조직의 정신이 아니라 경실련과 같은 자본가 단체(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 대안을 제시하려는 경실련이 자본가 단체가 아니라면 무엇인가!)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을 너무나 쉽게 알게 된다.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강화된 착취를 의미할 뿐이며, 오직 자본가들 사이에서나 관심사가 되는 이러저러한 사안들에 목을 매달고 그것을 ꡐ경제민주화ꡑ의 실질적 성과로 받아들이는 이 따위 작자들이 감히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ꡐ노동운동 발전 전략ꡑ을 제시하고 있다니 얼마나 비통한 현실인가?

  악취는 계속 이어진다. ꡐ초안ꡑ은 착취의 직접적 담당자를 누구로 할 것인가의 문제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이 개입할 것을 주문한다. ꡐ소유와 경영의 분리, 전문경영인 제도ꡑ가 그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노동자들은 자신을 쥐어짤 노예 경영인을 직접적인 소유자 대신에 전문적 경영인으로 추대할 것을 제안받는다. 그런데 ꡐ전문경영인ꡑ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소유자를 대신해서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ꡐ소유과 경영의 분리ꡑ란 소유자들은 주식배당금으로 휴양지와 호텔을 떠돌면서 놀고먹는 반면 전문 경영인은 이들을 대행해서 노동자들을 직접 착취하는 역할 분담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이미 미국과 유럽 자본주의에서는 보편화된 것으로 자본가들로서는 이것을 꺼릴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노동자들에 대한 강화된 착취라는 점에서 보자면 전문경영인 제도 도입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체로서의 자본가들에게는, 그들의 공동의 이익은 ꡐ노동자들을 얼마나 많이 쥐어짜느냐ꡑ에 의해서만 확대될 수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분할되건 파이는 모두 노동자들의 ꡐ공짜 노동ꡑ으로부터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전문적인 착취자를 이용하는 것은 이 파이의 크기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이런 ꡐ소유와 경영의 분리ꡑ, ꡐ전문 경영인 제도ꡑ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만일 기업 오너가 꺼린다면 그것은 대주주가 직접 경영을 담당하면서 빼돌렸던 특별이윤이 사라지고, 그것을 다른 주주들과 경영진이 함께 나누어 먹게 되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런데 자신을 쥐어짜서 확보한 이윤을 착취자들이 서로 어떻게 나누어 먹는가의 문제에 노동자들이 개입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따라서 ꡐ초안ꡑ의 주장은 결국 다음으로 요약된다. ꡒ노동자 조직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에게 더 강하게 착취당하기 위해 투쟁하라는 호소! 착취자들 사이의 소유권 문제에 개입해서 가능하면 오너 착취자들의 수를 늘리라는 호소! 바로 이것이 사회개혁투쟁과 경제민주화의 객관적 실체다!ꡓ

 



2. 사회적 합의주의


  초안의 개량주의 입장은 총노동과 총자본, 자본가 정부 사이의 대타협에 의지하면서 노동과 자본, 자본가 권력 사이의 ꡐ공동의 이해ꡑ를 추구하는 ꡐ사회적 협조주의ꡑ로 나아간다. 이른바 ꡐ사회적 합의주의ꡑ로 일컬어지는 이런 협조주의는 발전전략위원회의 내심에 자리잡은 포괄적인 계획인데, 이 계획이 의미하는 결론은 이미 그 유명한 노사정 위원회에서 명백하게 입증된 바 있다. 그것은 자본에게서 약간의 사소한 떡고물을 얻어낸 대가로 노동자의 생명 같은 권리를 헌납하는 것이며, 노동대중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대가로 민주노총과 연맹의 상층 관료들의 합법성을 얻어내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조운동의 생생한 역사적 경험은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소중한 권리를 쟁취했던 것은 노사정 위원회와 같은 ꡐ협상과 타협ꡑ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 협상 테이블 ꡐ바깥ꡑ에서 펼쳐지는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졌음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이런 분명한 경험들로부터 노동자들은 ꡐ노동자 죽이는 기구ꡑ로 판명된 노사정 위원회로부터 철수하도록 개량주의 지도자들을 압박했으며, 그 결과 이들은 내심과는 달리 일단 이 위원회로부터 발을 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대중들과 투사들을 호도할 명분만 생기면 이 노사정 위원회로 복귀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으며, 여러 방식으로 복귀 명분을 쌓고 있다.

  이들에게는 노사정 위원회에 불참하는 이유는 그것이 참된 ꡐ타협과 조정ꡑ의 기관이 아니라 ꡐ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배제ꡑ하는 기관이라는 한계 때문이기에, 언제든지 타협의 가능성이 열리면 복귀하려 한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은 ꡐ사회적 합의주의ꡑ와 같은 타협주의, 협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ꡐ사회적 합의주의ꡑ에 입각해 제대로 타협과 조정이 이뤄지는 기구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투사들과 노동해방주의자들이 노사정 위원회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타협과 조정의 기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타협과 조정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협조주의를 불어넣고, 투쟁 대신에 자본주의 체제와의 협상에 매달리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노동해방을 향해 진군하고자 하는 노동운동에 해방이 아닌 개량과 타협을 설파하고, 자본과 정부에 맞선 투쟁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에게 투쟁이 아닌 교섭과 협상을 제시해 점차 노동운동을 자본과 정부의 시혜에 의지하는 볼품없는 운동으로 찌그러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해방을 페스트보다 싫어하고, 투쟁을 겁내는 개량주의자들의 정신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대표하는 발전전략위원회는 노동해방적 전략이 없기에 불가피하게 자본주의 체제 내의 개량을 최고의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들은 이른바 사회적 합의주의로 명명된 타협 전략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이 자본과 정부와 공생할 수 있는 길에 집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란 노동자들은 임금노예인 반면 자본가들은 노예주인 그런 극악한 착취제도이며, 따라서 이 체제 내에서 이뤄지는 타협과 조정이란 오직 임금노예제도를 용인한 가운데 임금노예의 발에 칭칭감긴 사슬의 조임을 늦추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불행하게도 이 전략은 노동자들을 해방으로 인도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요, 그들이 집착하는 개량적 성과조차 선사할 수 없다. 그것은 ꡐ진정 유의미한 개량은 노동해방적 투쟁의 부산물ꡑ일 뿐이며, 따라서 노동해방 투쟁을 멈추고 타협과 조정에 의지하는 노동운동은 심지어 개량적 성과물을 쟁취하는 데서도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적 합의기구가 형성되고, 거기서 무언가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개량들이 제시되었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 성장하는 노동자들의 노동해방 투쟁에 위험을 느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체제 내로 결박하고 투쟁의 기운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단기적으로 양보한 결과에 불과하다. 유럽과 남아공을 비롯해, 사회적 합의주의자들에게 칭송받고 모델로 간주되는 합의기구들은 모두 이처럼 노동자들의 해방 투쟁을 제압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의도를 표현했으며, 마찬가지로 노동해방적 노동운동을 두려워하는 개량주의자들의 책동을 반영했다. 사회적 합의기구, 그것은 노동해방적 노동운동에 대항하는 ꡒ자본가계급과 개량주의자들의 신성동맹ꡓ에 다름 아니었다.

  한국의 사회적 조합주의자들의 비극은 이들은 이런 해방적 투쟁 없이도 자본가계급으로부터 사회적 합의기구라는 개량을 선사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데 있다. 이런 믿음은 노사정 위원회가 개량을 하사하기는커녕 자본가들의 요구를 일방 집행하는 기구라는 점이 명백해지자 산산조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정신을 차리고 ꡐ그것은 사이비 사회적 합의기구ꡑ라고 소리치면서 ꡐ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기구ꡑ 건설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사회적 합의기구란 실현불가능하거나 아니면 실현되는 경우에는 노동자들의 변혁적 투쟁을 잠재우기 위한 책동을 의미할 뿐이기에 어떤 경우건 노동운동이 받아들일 수 없는 반동 기구일 뿐이다. 하지만 발전전략위원회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주의를 고수하고 있으며, 단지 개량주의자들이 그것을 작동시키기에는 노동해방적 노동운동이 아직 충분하게 발전하지 못했기에 그것을 ꡐ당장의 대안ꡑ으로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명백히 사회적 합의기구가 도래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것을 구축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다. ꡐ초안ꡑ은 다음처럼 주장한다.


  2) 사회적 합의주의; 노동조합이 산별노조 체계로 전환하고 사용자들과 사회적 수준에서 교섭하고 투쟁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 이 기초 위에서 필요하다면 경제사회협약 등과 같은 노사, 혹은 노사정 3자 합의 기구를 통한 전국적 계급협약 정책을 추진하는 것. 서구의 다른 나라들에서 오랫동안 정형화되어 있었던 노사관계로의 전환. 한국에 있어서 정권의 종속성,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자본의 노동배제적 합리화정책 등으로 판단해볼 때 사회적 합의구도는 중단기적으로는 실현 불가. … 사회적 합의주의는 현실적으로 중단기적으로 실현불가능하며 나머지는 모두 민주노총의 대응기조와 방향에 따라서 가능성이 현실성으로 전화될 수 있는 바람직하지 못한 체제임. (p.19)


  초안의 이 주장은 위원회의 실체를 수줍은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노사정 위원회의 실패로부터 아주 뼈저린 경험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타협과 조정(이것의 핵심은 노동해방적 투쟁을 포기하는 대가로 개량주의적인 떡고물을 약간 얻어내 이것으로 노동대중을 길들이고 자신의 지위를 보호하는 것이다)이 현 한국에서는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 이미 밝힌 바대로 그것은 아직 노동해방적 노동자 투쟁이 본격화되지 않았기에 자본가계급이 개량의 보따리를 일시적으로라도 풀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내건 개량주의자들의 입지는 상당히 약하다.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전면화시키기 위해서는 자본가계급이 시혜하는 개량적 보따리가 간절하게 필요한데, 아직 한국 자본가계급은 그런 양보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회적 합의주의를 내건 자신들이 대중들의 압력과 자본가들의 강경함 사이에 끼어 압착당할 위험성을 깨닫고 이것이 지금 당장에는 ꡒ실현불가능하다ꡓ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상당히 영리하며 노동대중들을 호도하는 데 숙달된 관료들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그들은 ꡐ사회적 합의주의ꡑ라는 개량주의 전략을 절대 폐기하지 않고 있다. 그 반대다. 그들은 내심 오직 이것만이 노동운동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ꡐ일본식 기업별 협조주의ꡑ, ꡐ사이비 합의주의ꡑ에 대해서는 ꡐ바람직하지 못하다ꡑ고 명백히 반대하고 있지만 ꡐ사회적 합의주의ꡑ에 대해서는 단지 ꡐ현실적으로 중단기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하다ꡑ고 말할 뿐이다.

  이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추구하되, 단지 그것이 중단기적으로는 실현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장에는 그것을 직접적인 전략으로 제시하지 못할 뿐이라는 것을 뜻한다. 결국 우리는 다음의 결론을 자연스럽게 끌어내게 된다. ꡒ위원회가 사회적 합의주의를 전면에 내걸 때, 다시 말해 그것이 실현가능해질 때는 과연 언제인가? 그 시기는 노동해방 투쟁이 성장하고, 그리하여 이 노동해방적 투쟁으로부터 자본주의 체제를 보호할 필요가 자본가계급에게 절박한 문제로 대두되는 시기다. 이 때 자본가계급은 단기적으로 약간의 개량들을 제공함으로써 근본 변혁을 비껴가고 마비시키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에 이런 자본가계급의 저항에 화답하여 노동운동을 타협과 굴종의 늪으로 끌고 사소한 개량에 만족하도록 만들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2중대, 방파제로 기능할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다름 아니라 그 시기에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어 노동운동에 개량의 마취제를 주입할 개량주의 지도자들이고, 사회적 합의주의자이며, 전략위원회의 이데올로그들이다. 이런 개량주의 전략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분명하다. ꡐ자본가계급의 2중대로서 지금 노동자 투쟁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이 작자들은 노동자들의 해방 투쟁이 성장하여 노동해방이 눈앞에 다가올 때 자본주의 체제를 구원하는 전면에 설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전략에 노동해방주의자들의 해방 전략으로 정확히 맞받아쳐야 한다. 노동과 자본, 자본가 정부 사이에 무언가 이끌어낼 수 있는 합의란 없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들과 이들의 정부에 맞선 단호한 투쟁을 통해서만, 그것도 이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단호한 투쟁을 통해서만 자신의 권리를 수호하고, 노동해방을 쟁취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전략은 사회적 합의주의 따위를 단호하게 걷어내고 해방적 계급투쟁을 곧추 세워내는 단호한 투쟁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ꡑ   

  위원회의 ꡐ사회적 합의주의ꡑ 전략은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전략을 전면에 내걸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에 나선다. 이들은 파산한 노사정 위원회의 또다른 이름인 ꡐ노정 합의ꡑ를 예쁘게 포장해 내밀며, 노사정 위원회를 개편해 여기에 복귀할 명분을 조성하려 한다. 이런 책동은 산별노조의 중앙교섭 체계를 완성해서 보다 고도한 유형의 노사정 위원회를 설치하려 하는 데로 나아간다.

 

  현재 민주노총이 요구하고 있는 노정간 직접 교섭, 산별노조 건설과 발맞추어 제기되고 있는 산별 중앙교섭 요구 등은 크게 보면 사회적 합의의 툴을 벗어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위한 실질적인 전제조건을 만들어 나가자는 요구이며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노사정위원회에의 참여 여부는 실질적인 쟁점은 아니다. 민주노총이 제기하는 전제조건들이 충족된다면 다시 참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혹은 노사정위원회의 개편을 요구할 수도 있다. … 노사정위원회 참여 여부는 그 구성과 운영의 개선 여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에 말한 실질적인 전제조건들의 충족 여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노정간 직접교섭의 성사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사용자들이 산별노조의 실체를 인정하고 산별교섭에 응하여 사회적 수준에서의 노동 규준을 산별협약의 형태를 설정해 나가는데 동의하도록 하는 것 역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p.127)


  개량주의 관료들의 정신 상태를 해부하면 가장 먼저 드러나는 공통점은 이들이 치장하는 ꡐ투쟁을 결합해야 한다ꡑ는 약간의 공문구를 제외한다면 그들은 투쟁을 죽도록 겁내며 모든 것을 자신들 관료들과 자본가들 사이의 협상과 타협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런 정신을 대변하는 ꡐ초안ꡑ은 몇몇 구절에 ꡐ투쟁을 교섭에 결합시켜야 한다ꡑ는 말을 포함시키는 것을 제외한다면, 거의 99%의 항목을 ꡐ효과적인 교섭 체계ꡑ가 무엇이 되어야 하며, 이에 맞게 ꡐ민주노총의 체계가 어떻게 정비되어야 하는가ꡑ에 할당한다. 역으로 ꡐ초안ꡑ은 노동자들의 독자적인 투쟁을 어떻게 조직할 것이며, 어떻게 자본과 정부를 투쟁으로 압박할 것인가와 관련된 투쟁조직화 방도, 위력적인 투쟁전술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약간 언급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온통 개량주의적인 소심한 타협 전술, 압력용 전술로 채워진다. 한 예를 살펴보자.


  산별노조체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업장 내에서 조직력을 갖추고 파업투쟁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조건에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의 형식만으로는 투쟁참가가 어렵다. 따라서 파업의 사회적 파급력 있는 사업장의 파업과 수많은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두집회투쟁을 주요한 투쟁유형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는 총연맹의 투쟁이 정부나 경총, 전경련 등 총자본을 상대로 하는 투쟁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1분과에서 세우고 있는 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주요한 투쟁방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p.124)


  자본을 압박하는 노동자들의 투쟁력은 생산을 멈추는 파업투쟁으로부터 발전한다. 어떤 노동자 투쟁이건 그것이 완강하고 철저하게 전개될 때는 파업을 그 기초로 삼는다. 이 점에서는 중소 영세업체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건 단 하나의 예외도 없다. 그런데 ꡐ초안ꡑ은 이들로부터 파업투쟁의 힘을 앗아가고 가두집회투쟁으로 축소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하지만 2000년 내내 벌어진 영세사업장들과 비정규직 투쟁들은 하나같이 파업투쟁을 기초로 삼았고, 바로 이로부터 투쟁력을 끌어냈다. 임창인쇄, 마마전자, 이랜드, 삼창프라자, 볼보기계건설코리아, 일진중공업, 한통 계약직 등등 모든 투쟁들은 파업 없이는 아무런 힘도 동원할 수 없었다.

  물론 이것이 편협하게 ꡐ작업장 점거냐 가두집회 투쟁이냐ꡑ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긴밀하게 결합해야 하는 것이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초안은 중소 영세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으로부터 파업 투쟁의 힘을 앗아가 단지 가두집회투쟁에 가두려 한다는 점에서 왕창 빗나가고 있다. 이는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투쟁의 한 복판에 있지 않고 사무실이나 연구실에서 이 투쟁을 제단하면서 투쟁전술을 고민하는 관료들과 교수들의 시야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뿐만 아니다. 초안은 노동자가 채택하는 일상적 투쟁전술을 근본적이고 결정적인 노동해방 투쟁전술로 치환함으로써 ꡐ투쟁전술에서 개량주의의 본모습ꡑ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들은 대사업장 노동자들의 파업과 여타 부문의 노동자들의 가두집회투쟁을 결합하는 것이 ꡐ바람직한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의 주요한 투쟁방식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업이나 가두집회투쟁은 노동자가 동원하는 ꡐ하나의 투쟁방식ꡑ이지 전체가 아니며, 또한 가장 결정적인 투쟁방식도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해방의 시기에 동원하는 노동자 투쟁방식은 파업과 가두집회를 기초로 하되, 그것을 종합하고 확장하며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린 ꡐ변혁적 투쟁방식ꡑ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해방운동이 전면화되면 이것을 깨뜨리기 위해 사희의 전면에 떠오를, 군대, 경찰, 감옥, 정보기구와 같은 자본가 국가권력의 물리력들과 투쟁해서 이것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해방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 자본가 국가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면적인 투쟁방식을 채택할 필요성을 조금도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작업장 단위에서 떠오르는 자주적 노동자 투쟁기구들을 강화시키고 이것들을 종합함으로써 노동자의 해방부대를 창조해야 하며, 이를 사병들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창조할 새로운 병사 기구와 긴밀하게 결합시켜 새로운 유형의 권력을 창조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본가 권력의 반동적 억압기구들과 맞서 싸워 그것들은 완전히 해체시켜야 한다. 노동운동을 단지 파업과 가두집회 투쟁에 제한하면서, 이것을 ꡒ새로운 사회를 건설ꡓ하는 ꡐ유일한 투쟁방식ꡑ으로 제출할 때 그것은 단호한 계급투쟁 대신 평화적인 방식으로 노동해방을 달성하고자 하는 개량주의 전략이 투쟁전술에 투영된 것으로 분명히 간주할 수 있다.


  당연히 이들은 ꡐ가두집회투쟁ꡑ의 진실한 의의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침을 제시할 수 없다. 단지 그들은 대사업장 투쟁을 파업만이 아니라 가두집회투쟁으로 확대시킬 필요성을 제출할 수 없으며, 중소사업장과 비정규직의 파업투쟁을 강화시킬 방도를 밝힐 수도 없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 분리된 파업과 가두집회투쟁을 ꡐ대사업장의 파업과 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두집회를 결합시킨다ꡑ는 기묘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가두집회투쟁의 참된 의의는 그것이 경찰과 검찰, 정보기구, 감옥 등과 같은 자본가계급의 폭압기구들에 맞선 투쟁력을 배양함으로써 미래의 해방 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힘을 축적해 나간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에 노동해방주의자들은 중소 영세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대사업장 노동자들 또한 파업투쟁을 전투적인 가두집회투쟁과 긴밀히 결합시킬 것을 중요한 투쟁전술로 제시하는 것이다. 이것의 연장선에서 노동해방주의자들은 가두집회투쟁이 의의를 갖기 위해서는 폴리스라인에 갇힌 박제화된 소심한 투쟁이 아니라 폴리스라인을 과감히 돌파하면서 자본가 권력의 기구들과 맞서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런데 가두집회투쟁 때마다 터져나오는 노동자 투사들의 분노와 그 때마다 입증되는 개량주의 지도자들의 합법주의와 소심함은 정치투쟁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개량주의자들은 작업장 단위에서 직접민주주의에 입각해 떠오르는 노동자 투쟁기관들을 대체 권력으로 수립해, 노동자 권력을 수립하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에 그들은 자본가 국가권력을 민주적으로 수정하고, 약간의 압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이 자신의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파업에도 경찰을 투입하기를 꺼려하지 않는 억압적인 반동 권력에 대한 환상을 보여줄 뿐이며, 변혁적 정치투쟁 없이도 노동자들이 자신의 세상을 건설할 수 있다는 평화주의를 표현할 뿐이다. 이처럼 단호한 투쟁 없는 노동해방을 꿈꾸는 것은 모든 나라의 개량주의자들의 특징인데, 하지만 철저한 계급투쟁을 거세시킨 노동해방이란 완전히 빈껍데기뿐인 것이다. 왜냐하면 변혁적 계급투쟁 없이 노동자계급이 해방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량주의자들이 희망하는 길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환상적인 길이다.


3. 연약함과 소심함의 극치


  이처럼 근본적 전략에서 출발해 그것의 연장선에 있는 투쟁전술에서도 개량주의자들과 노동해방주의자들 사이의 차이는 아주 명확하다. 양자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적대적인 두 세력이며, 모든 사안 하나 하나에서 첨예하게 충돌하며 정반대의 정신을 갖고 임한다. 그 정신적 차이의 핵심은 개량주의자들은 노동해방 없는 노동운동을 꿈꾸는 반면 노동해방주의자들은 노동해방이라는 견지에서 노동운동을 이끌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데 노동해방적 원칙을 잃은 개량주의자들은 모든 부분적 투쟁에서조차 결코 결연하지 못하다. 노동해방주의자들은 해방을 향한 힘을 배양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체제가 강요하는 울타리를 넘어서서 모든 문제에서 결연하게 자신의 계급적 요구를 당당하게 내걸고 완강한 투쟁을 조직할 것을 호소하는 반면 개량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용인할 수 있는 ꡐ가능한 한 최대치ꡑ에 요구를 제한하고 합법적 울타리에 투쟁을 가둘 것을 요구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에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에게 절박한 생존의 요구들에 대한 태도에서도 양자의 입장은 확연하게 갈라진다.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 제도에 대해 위원회는 지극히 소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의 정리해고제는 법률상의 미비점과 법률 시행상의 불법행위 만연 등으로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크게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 따라서 정리해고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함. … 정리해고 관련조항들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정리해고가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거나 정리해고자 선정이 자의적인 경우가 많음. (p.48)


  정리해고 철폐투쟁은 임금노예로서라도 최소한 생명은 부지하겠다는 가장 절박하고 기본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만일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수호하고자 한다면 노동운동이 절대로 용납해서는 정리해고제에 대해 위원회는 ꡐ철폐ꡑ 대신에 ꡐ규제 강화ꡑ를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소심함의 극치로서 ꡐ적들에게 칼자루를 넘겨주고서 단지 그 칼의 사용에 대해 규제ꡑ하고자 할 뿐인 병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식의 태도를 갖는 노동운동이란 자본가계급을 제압하고 세상을 호령하는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없으며, 단지 칼을 든 주인 앞에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요구하는 가장 비참한 처지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위원회가 제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정리해고를 인정하되, 단지 그것이 무분별하게 이뤄지지 않도록 규제하는 데 요구를 제한하도록 충고하고, 심지어는 이 살생부에 올라가는 노동자들에 대한 선정에서 자본가들이 자의적이지 않도록 요구하라고 주장하는 것, 그것은 노동운동의 원칙과 절대 양립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동료들에 대한 해고를 받아들이되, 단지 그 해고자 명단이 공정하도록 자본에게 요구한다면, 노동자들의 집단적 정신은 완전히 죽어버릴 것이다. 동료에 대한 살생부 자체에 반대하면서 ꡐ단 한 명의 동료도 차가운 거리를 떠돌게 할 수 없다ꡑ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ꡐ동료들을 사형시키는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하라ꡑ고 요구하는 것, 그것은 노동운동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노동운동이 ꡐ살생부를 작성하는 기준ꡑ에 대해 언급할 수 있단 말인가? 노동자들에게 ꡒ합리적인 해고 기준ꡓ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이윤의 관점에서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고자와 고용자를 선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자본가들이나 고민할 수 있는 ꡐ기준ꡑ이지 해고에 반대하여 생존권을 사수하려 하며 집단주의적인 대의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노동자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ꡐ기준ꡑ인 것이다. 그런데 위원회는 노동자들에게 이 ꡐ기준ꡑ을 합리적으로 설정하기 위해 고민하고 투쟁하라고 점잖게 충고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영역에서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던지 초안은 세 줄의 각주를 달면서 ꡐ정리해고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내부에 이견이 있었으며, 현재까지는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철폐를 공식 방침으로 하고 있음ꡑ을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초안에 담긴 정신은 다시 한번 분명하다. ꡒ자본가들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가운데 이 정리해고가 조금이라도 노동자들에게 덜 불리하게 적용되도록 만드는 것!ꡓ 이런 한심하고 소심한 굴종의 정신이 초안을 관통하고 있는데, 이것은 동료에 대한 해고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숨걸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집단주의 정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비굴한 정신이다. 이런 정신은 ꡐ비정규직 문제ꡑ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서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하여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고 이들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며, 각종 사회보험제도를 개편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적용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이들의 생활권을 보장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이들을 노동조합으로 조직화함으로써 이들을 노동조합이 대변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임. (p.49)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며, 그로부터 극도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당면 투쟁 목표는 너무나 분명하다. 그것은 ꡐ비정규직 제도를 박살내는 것ꡑ이다. 실제로 모든 비정규직 투쟁 현장에서 ꡐ비정규직의 정규직화ꡑ는 가장 기본적인 대중적 투쟁슬로건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의 테두리에 완전히 갇혀 있기에 자본이 강요하는 질서를 전혀 넘어설 의지가 없는 개량주의 관료들은 이 비정규직 제도를 온존한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려 한다. 이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개선할 수 있는 것이란 비정규직이라는 굴레를 용인한 가운데 이 굴레의 조임을 약간 완화하는 정도의 것일 뿐이다. 초안이 제시하는 요구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미 700만에 달할 정도로 보편화되어 노동자들의 과반수가 비정규직화된 상태에서 위원회는 ꡐ비정규직의 확산을 막는 것ꡑ을 처방으로 제시하며, 이들 이미 비정규직화된 다수 노동자들과 관련해서는 ꡐ법적 보호, 사회보험적용ꡑ 정도의 것들, 다시 말해 비정규직 제도를 인정하는 대신 비정규직의 처지를 약간 개선하는 데 비정규직 투쟁을 제한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소심함은 그들의 전략 노선을 관통하는 정신을 볼 때 불가피한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승인하는 가운데,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려 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노선이기에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논리를 승인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현대판 半실업자들인 비정규직들이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믿기에(자본주의 체제에서 그것은 진실이다) 그들은 비정규직의 철폐란 불가능하다고 마음 속으로 확신한다. 그 결과 그들은 노동자들의 강한 투쟁열망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더라도 마음 속으로는 ꡐ그것은 실현불가능하다ꡑ고 생각하면서, 비정규직 제도를 인정하면서 그 파멸적 고통을 완화시키는 데 노동운동을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확신이 표현된 것, 바로 그것이 ꡐ초안ꡑ의 비정규직 항목이다.

  그렇다면 노동해방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그것이 비정규직이건 아니면 다른 형태이건 半실업자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부정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반대로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비정규직이라는 형태로건 아니면 다른 형태로건 半실업자들(유동적 실업자들)은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인 확신은 위원회의 확신과 어떤 점에서 확연하게 구별되는가? 이것을 검토하는 것은 위원회의 개량주의 전략과 노동해방주의자들의 전략 사이의 질적 경계선을 무엇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

  노동해방주의자들은 그런 확신으로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半실업자들의 도탄에 빠진 삶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자본주의 체제를 분쇄해야 한다는 노동해방적 전망을 끌어낸다. 이런 노동해방적 전망에 입각하고 있기에 노동해방주의자들은 ꡐ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실현가능성ꡑ 여부와는 무관하게 ꡐ비정규직 제도 철폐ꡑ를 전면에 내건다. 그것은 이런 투쟁 하나 하나를 통해 노동자들은 이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지 않는다면 절박한 문제들을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노동해방적 자각을 키워나가기 때문이며, 또한 노동해방을 수행할 수 있는 주체로 자신을 조직해 나가기 때문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런 투쟁이 전진함에 따라, 아직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자신들의 절박한 요구들을 쟁취하고자 갈망하는 노동대중들 속으로 노동해방주의의 전망을 나를 소중한 수단들과 경험들이 성장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노동해방주의자들은 ꡐ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실현가능성ꡑ에 기초해 투쟁을 배치하지 않으며, 오직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조직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느냐, 그리하여 진정 노동자들의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노동해방을 달성할 힘을 축적하느냐에 입각해 투쟁을 배치한다. 그렇기에 노동해방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半실업 문제가 해결가능하다는 환상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ꡐ비정규직의 정규직화ꡑ, ꡐ모든 유형의 해고와 실업 철폐ꡑ라는 투쟁요구를 전면에 휘날리고 기운차게 투쟁할 수 있다.


  반면 노동조합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은 이런 노동해방적 전망을 견지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하에서 半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동일한 과학적 확신으로부터 정반대의 결론을 끌어낸다. 그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ꡐ과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실현될 수 있겠느냐? 그것은 실현불가능한 공상이다. 노동운동은 실현가능한 투쟁에 자신을 제한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비정규직 제도를 인정한 가운데 법적으로 약간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실업 기금을 비롯한 사회복지제도를 적용받도록 투쟁하는 것을 뜻한다. 실현가능한 현실적 노동운동!ꡑ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정반대의 상이한 전략으로부터 당면 노동자 투쟁의 요구들과 관련해서도 확연하게 구별되는 투쟁요구들과 지침, 노선이 도출되는 것이다. 개량주의자들의 입장은 실업문제에 대한 초안의 입장에서는 더욱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대량실업을 가져오는 근본원인은 정부와 자본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인력삭감형의 구조조정정책과 유연화 정책임.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에 바탕을 둔 노동시장정책은 근본적으로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일변도의 정책을 전환하여 사회통합적 구조조정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일변도의 정책을 전환하여 사회통합적 구조조정과 고용창출적 노동시장정책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임. (p.56)


  실업의 근본원인은 자본주의 체제의 고유한 모순이다. 생산에 대한 사회적 계획화가 아닌 자본가들 개개인의 이익을 위한 무정부적 생산에 의지하는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불가피하게 과잉생산을 낳을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생산의 사회적 연결망을 따라 전체 자본주의 체제로 파급되면 공황으로 폭발한다. 동시에 이는 ꡐ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ꡑ의 결과이기도 하다. 압도적 다수의 소비자들인 노동자들이 나날이 증대하는 생산량에 비해 작은 일부만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산량의 비약적인 증대가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이것이 노동자들의 실업과 소비축소를 낳아 확대되는 악순환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처럼 생산의 무정부성과 ꡐ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ꡑ이 공황을 야기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수시로 대량의 실업문제와 맞닥뜨린다. 그렇기에 대량실업을 가져오는 근본원인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체제이며, 실업을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를 철폐하여 생산을 사회적으로 계획하고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여 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는 노동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런 모순들을 자본주의 체제에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ꡐ잘못된 정책ꡑ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설혹 그것을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간주하더라도 자본주의를 뛰어넘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일종의 ꡐ필요악ꡑ 정도로 생각하는 개량주의자들은 실업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엉뚱한 곳에서 찾게 된다. 그들은 실업문제를 자본가들이 구사하는 하나의 정책(가령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여기기에 이 정책을 다른 정책(가령 그들의 표현에 따르면 사회통합적 구조조정과 고용창출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대체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최소한 그것만이 채택가능한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믿는다. 바로 이런 사고들이 ꡐ신자유주의 반대ꡑ를 주장하는 조합주의자들과 개량주의자들의 머리를 관통하는 핵심적 실이다.

  반면 노동해방주의자들은 실업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에 고유한 현상이며, 또한 노동유연화와 자본주의적 구조조정을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들에게 가하는 억압과 착취의 ꡐ현대적 형태ꡑ로 간주하기에 ꡐ신자유주의 반대ꡑ가 아닌 ꡐ자본주의 반대ꡑ를 내걸며, ꡐ사회통합적 구조조정과 고용창출적 노동시장 정책(이것이, 국가가 실업자들을 위한 공공 근로사업을 계발하라는 ꡑ케인즈주의 정책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ꡐ자본주의 철폐라는 노동해방적 구조조정과 임금노예제도의 철폐, 그리고 모든 형태의 해고와 실업 반대ꡑ를 요구한다. 우리는 자본가계급의 하나의 정책을 다른 하나의 자본가 정책으로 대체하는 데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를 죽이는 정책을 야기하는 이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는 데서, 그리고 이 체제에 맞선 불굴의 투쟁을 전개하는 데서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런 명백한 차이는 자본가 국가에 대한 태도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개량주의자들은 자본가 국가에 압력을 행사해 국가의 정책을 노동배제 정책에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정책으로 바꾸는 데 집착하며, 자본가 국가를 설득하려 무한히 애쓴다. 애당초 그들은 자본가 국가를 타도하고 노동자계급의 권력을 세워내는 노동해방 정치를 거부하므로 그들로서는 자본가 정부에 의존하는 그런 개량적 정치말고는 선택할 것이 없다. 이들 개량주의 정치 내에서의 차이는 고작 이런 것에 있을 뿐이다; ꡐ노골적인 자본가 정당 중 온건한 부위를 비판적으로 지지할 것이냐 아니면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같은, 자본가 국가를 침해하지 않는 개량주의 당을 건설해 집권할 것이냐?ꡑ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유럽의 자본주의 역사가 분명히 증명한 것처럼 실업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개량주의 정치는 무수한 약속을 늘어놓은 것을 제외한다면 실업 문제에서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지 못했다. 그들은 수천만 번 ꡐ실현가능한 투쟁ꡑ을 떠벌였지만, 아무 것도 실현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ꡐ실현가능하느냐ꡑ는 질문은 개량주의자들 자신에게 정면으로 던져져야 하는 것이다. ꡒ당신들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것이오!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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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론에 대한 비판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반격을!
 맑스 코뮤날레 제1차 쟁점토론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를 보고

기관지노힘  제39호
송석현 (노동자의 힘 회원)


신자유주의 반동이 세계를 지배 통치하는 오늘날 맑스주의의 반격을 준비하는 하나의 움직임으로 맑스 코뮤날레가 조직되었다. 지난 5월 제1회 맑스 코뮤날레 학술문화대회를 마치고 나서 주요한 쟁점으로 떠오른 몇 가지 주제를 좀더 심도 있게 토론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 시도가 9월5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를 주제로 개최된 쟁점토론회이다.
이날 토론회 사회는 김세균 교수가 맡았으며, 손호철·윤수종·정성진·조정환 선생 등 4분의 진보진영의 학자가 발제 및 토론자로 나서 네 시간 여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지면에서는 이 날 토론에서 주되게 쟁점을 형성하였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내 나름의 문제제기와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토론 내용 중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나의 무지 또는 오해의 소치임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쟁점 1. 반세계화 운동은 과연 반동인가?

토론회는 손호철 선생의 대단히 도발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손호철 선생은 지난 수년 간 자신이 적극 참가했던 반세계화 운동이 반동적인 행위에 불과하다는 네그리와 하트의 저작 {제국}을 보고 쇠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제국}에 드러난 네그리와 하트의 주장은 "자본주의적 지배가 훨씬 더 전지구적으로 되고 있다면, 자본주의적 지배에 대한 우리의 저항은 국지적인 것을 방어해야 하고 자본의 가속화하는 흐름에 장애물을 건설해야 한다"는 전통적 좌파의 주장이 반동적이고 해롭다는 것이다. 손호철 선생은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제국}의 핵심 가설 네 가지를 내세우면서 비판하였다: "제국과 지구화는 피할 수 없는 역사적 현실이며 필연이다(가설1). 제국과 지구화는 역사적 진보이다(가설2). 따라서 반세계화(반신자유주의적 지구화) 투쟁은 역사적 반동이다(가설3). 우리의 대안은 (반지구화 투쟁이 아니라) 자본의 지구화를 가속화하는 것, 이를 통해 대항지구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1)지구적 시민권, 2)사회적 임금권, 3)재전유권(再轉有權)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가설4)."
손호철 선생은 위의 가설은 전적으로 정확한 것이며, 따라서 '제국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 가설을 인정하고 분명하게 논쟁할 것을 요구하였다. 먼저, 자본의 지구화를 가속화시키는 데 장애가 되는 WTO 반대, 자유무역협정, 투자협정 반대 투쟁 등이 반동적이며 해로운 것인가?
이에 대해서 윤수종 선생은 전혀 반동적인 것이 아니며 그와 같은 투쟁을 지지한다고 답변했다. 다만, 운동에 反=안티가 붙었을 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자율주의자들은 반대 투쟁을 경계하며, 권력에 반대하면서 권력을 닮아 가는 행태를 비판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자율주의자가 보기에, 농민들의 WTO 반대 투쟁이 뭔가 새로운 기반을 만들 수 있다면 그와 같은 반대투쟁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윤수종 선생은 네그리도 같은 맥락이라고 하면서, 네그리는 제노바 투쟁을 '대항세계화' 운동으로 표현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자본의 지구화는 노동의 지구화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화 찬성이 자본의 지구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곧바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정환 선생은 '반동적reactive'이라는 표현은 능동적이지 않고 즉자적인 반발이나 소극적인 반작용적 실천 또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또, 국지성과 민족국가에 기초한 반세계화 투쟁과 다중(Multitudes)의 역능에 기초한 전지구적 반세계화 투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데, 손호철 선생은 전자에 입각한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조정환 선생은 반세계화 투쟁을 문제제기 차원과 문제해결(대안적) 차원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제제기의 차원은 다중의 현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정치 경제 문화적 어려움을 호소함으로써 공동의 경험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표현이다. 여기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미국과 이태리에서의 반세계화 투쟁에 자율주의 활동가들이 동참하고 있다. 문제해결의 차원에서 보자면, 민족국가적 차원에서 풀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반동적, 반작용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만약 이와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 조정환 선생은 자본의 지구화를 가속화하자는 네그리의 주장을 손호철 선생이 전적으로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했다. 즉,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운동이 잠재적으로 축적해 가는 다중의 추진력, 네트워크적 힘들을 통해 자본의 족쇄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 네그리의 의도이며, 이것이 대항지구화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손호철 선생은 농민들의 WTO 반대 투쟁은 농민의 기본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 우선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것은 비록 국지적이고 민족적인 것이지만 반대해서는 안 됨을 분명히 했다. 즉, "민족주의와 국지적 정체성이 억압성을 내재하고 있고 국제주의와 대항지구화라는 지구적 연대에 장애가 될 수 있지만 자본의 전지구화에 저항하여 국지적 것을 방어하는 반지구화투쟁은 그 나름의 진보성을 갖고 있으며 진보진영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대표적인 사례로 시애틀 항쟁을 들었다. 시애틀 항쟁은 "{제국}이 바라는 대로 대항지구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자본의 전지구화 과정을 가속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국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로부터 '국지적인 것을 방어하려 하고 자본의 가속화하는 흐름에 장애물을 건설'하려는 반지구화투쟁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었다." 손호철 선생은 이와 같은 반지구화투쟁과 보다 적극적으로 민중적인 대항제국 건설에 도움이 되는 대항지구화투쟁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쟁점 2.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는 제국(Empire)인가, 제국주의(Imperialism)인가

토론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또 다른 핵심 쟁점은 과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나타나고 있는 현대 세계 자본주의를 '제국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정성진 선생이 신랄하게 '제국론'을 비판하면서 포화를 열었다.
정성진 선생은 '제국론'은 세계화 담론들을 들뢰즈·가타리의 포스트 구조주의 방식으로 재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비록 복수의 맑스주의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고전 맑스주의와 대립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천적으로도 '제국론'은 혁명적 사회주의와 동떨어진 개량주의 정치의 헤게모니에 봉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성진 선생은 그 이유로 '제국론'이 노동가치론과 공황론을 무시함으로써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을 부정하고 있으며, 국가간 경쟁이라는 제국주의론의 핵심을 폐기함으로써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국가간 경쟁이 약화된다는 것은 오늘날 세계 현상을 봐서도 맞지 않으며, 이것은 카우츠키의 '초제국주의'론의 새로운 버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미국 제국주의 지배 현실의 부정,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의 진보성의 부정, 세계화 찬양, 노동자운동의 중심성 부정 등을 들어 '제국론'을 공격하였다.
이에 대해 조정환 선생은 고전적 맑스주의 패러다임에서 얼마나 이탈했는가를 통해 '제국'을 봐서는 안 되며, 자신은 그와 같은 '틀'을 인정할 수 없음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제국 주권의 특징을 통해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제국'임을 논증하고자 했다: 1)제국적 질서 아래에서 생산은 공장 기반을 떠나 사회 전체로 확산되고, 상품과 자본의 국제적 이동은 더욱 자유롭게 된다. 제국은 탈영토적 질서를 의미한다. 2)제국에서는 낡은 생산 기반, 유통 수단, 주권 기관들은 새로운 생산 기반, 유통 수단들, 그리고 주권기관들과 더불어 네트워크를 이루어 헤게모니적 명령 구조에 종속되는 총체적인 질서를 갖는다. 3)제국은 주권들의 합성체 혹은 혼합체이다. 통합세력으로서 미국-G8강대국들-군사, 경제, 정치, 금융, 무역 등에 걸친 이질적 연합체들, 절합세력으로서 초국적 기업들-지역적·영토적 민족국가들의 연합체, 대의세력으로서 개별 민족국가-미디어와 종교-NGO들의 주권합성체로 이루어진다. 이것들은 다중의 삶을 억누르고 통제하며, 포획하는 장치이자 '마디'이다. '제국주의론' 옹호자들은 '미국'만을 중심으로 본다. 이 주권합성체는 정치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 등 전 영역에서 삶의 생산과 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삶 권력'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조정환 선생에 따르면, 각 마디들이 항상 순탄한 것은 아니다. 제국 속에서도 '경향으로서의 제국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제국은 그 자체가 위기를 관리하는 시스템이며, 그래서 제국 네트워크의 각 단, 각 층에서 움직이는 마디들(기구들, 국가들, 기업들, 연합체들, 그리고 미국 등)을 절합하고 통합하는 일은, 그 과정 속에서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불안정성을 갖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제국주의와 같은 낡은 경향들이 때로는 제국의 혼합적 총체성의 균형을 뚫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부시의 일방주의적 패권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제국적 주권 패러다임을 파괴하거나 대체할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제국론'에 따르면, 부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어 조정환 선생은 '제국주의론'을 객관주의적 발전단계론, 국가주의, 가치중심적 관점과 프롤레타리아트 희생자론에 입각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정환 선생에 따르면, 제국주의론은 자본/노동의 적대가 감추어지고 자본주의 한계내로 문제를 설정하는 문제가 있다. 그 이유는 '제국주의론'이 '독점자본/비독점자본 간 갈등'의 해결이나 '중심부국가/주변부국가 간 갈등의 해결'로 문제의식을 설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설정 속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능동성이나 자기가치화 능력을 갖지 못한 희생자로 묘사되며 그것이 혁명적 호명을 받을 때조차도 부르주아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동원되는 피동적 동원군으로 나타날 뿐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적대 관계에서 적보다 우리의 행위에 주목하는 다중 주체의 대응을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러나, 손호철 선생은 현실 속에 '제국'의 '요소'와 '계기'가 현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낡은' 제국주의적 요소와 계기도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으므로 제국이 이미 우리의 현실이며 제국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잉일반화 내지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미국의 자본 소유의 규모,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략 전쟁,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민국가의 위상, 그리고 보다 주요하게는 부시의 일방주의와 "중상주의적 제국주의"를 들었다. 또, "하트는 세계가 '제국'이 아니라 낡은 미국의 제국주의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세계를 자신들이 주장해온 '제국'으로 이끌어 가지 않는 '전세계 지배자들의 어리석음'을 통탄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현재 세계가 제국이라는 주장에 강한 의문을 던졌다.

쟁점 3. 개량인가, 혁명인가?

정성진 선생은 '제국론'이 말하는 세 가지 요구, 즉 1)지구적 시민권, 2)사회적 임금권, 3)재전유권을 위한 투쟁은 분명 개량주의적이라고 비판하였다. 그는 과거 70년대 아우토미아의 '노동거부' 투쟁에는 혁명적 경향성이 있었는데, 지금 {제국}에서는 이마저 상실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제국론'이 '제3의 길'과 뭐가 근본적으로 다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또, 개량이라는 것은 '국가'를 전제한 것인데, '국가주의'에 반대하면서 국가를 전제로 하는 주장을 한다는 것은 형식논리적으로도 모순임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정환 선생은 지구적 시민권, 사회적 임금권, 정보적 힘의 재전유는 개량주의적 요구가 아니라 혁명적인 요구임을 강조했다. 지구적 시민권은 이민 이동 분산들 속에서 국가적 경계선을 철거하기 위해서 나온 개념인데, 시민권을 획득한다면 노동자 또는 다중 차원에서 단결하게 됨을 말했다. 자본에 의해서 분할 통치되는 상황에서 이것은 분명 혁명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회적 임금권은 자율주의 운동 이전 60년대에 나온 임금 형태로서 모든 사람들이 사회적 삶에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받아내자는 것인데, 이 또한 매우 중요한 전략적 방안임을 역설했다. 끝으로, 정보적 힘의 재전유는 생산수단을 재장악하는 것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성진 선생은 이 세 가지 요구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제국론'에서 국가를 매개로 주장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되물었다. 허공에 대고서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즉, 세 가지 요구 중에서 세 번째 '재전유' 부분은 추상적이라서 그렇고, 시민권과 임금권은 국가 매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고, 현실은 국민국가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이행기 강령의 설정 속에서 그와 같은 요구를 제기한다면 부정할 이유가 없으며, 이런 것이 없는 상황이라면 개량적이라는 점, 그리고 국가권력 문제, 즉 국가분쇄와 소멸의 문제 설정을 회피한다면, 또한 '개량주의'라고 말했다. 손호철 선생도 세계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국민국가 또는 국민국가간의 합의를 통해서 실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통해 비록 혁명적인 주장이라고 할 지라도 국민국가 문제는 여전히 이슈로 남기 때문에 공허하다는 요지의 의견을 밝혔다. 이로써 쟁점은 자연스럽게 현대 세계에서 국민국가의 위상 문제로 넘어갔다.
이에 대해 조정환 선생은 국가를 매개로 한 문제가 아니며 어떤 국가가 이것을 보장해 주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전지구적 다중의 연합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며, 이것은 운동 주체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윤수종 선생도 '제국론'은 주민대중을 훈육하는 장치로 국민국가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힘의 논리가 작동하며 힘 관계에서 대중들이 능동적으로 대항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깨뜨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보완하였다. 계속해서 조정환 선생은, 제국 속에서 국민국가가 제국주의보다 쇠퇴한 것은 사실이며, 그렇다고 국민국가가 껍데기만 남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국의 '명령'을 받아서 국민국가가 다중을 분할하는 것임을 주장했다. 또, 시애틀 투쟁 등이 미국이라는 국민국가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WTO 등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이 '제국'의 실재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제국'에서는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 양극화가 아니라 계급적 양극화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제국주의 국가들에 대항하는 국가의 자립성과 자립적 국가들의 연대'를 대안으로 사고하면서 그것을 노동계급에 의한 국가권력 장악에서 찾는 것은 이제 명령관계로 전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착취관계의 폐절이라는 당면 과제를 미래로 유보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문제는 대안 정치의 전망과 노동자계급의 투쟁이다.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나는 '제국론'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설명하기도, 실천적으로 대항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였다. 정성진 선생의 지적대로 '제국론'은 '제국주의' 국가간, 그리고 독점자본간의 경쟁과 갈등을 고려하지 않는 '초제국주의'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에서 드러난 국민국가 간의 대립은 미국의 '어리석은 지도자'의 쿠데타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제국주의 독점 자본의 이해와 이해 관철을 위한 경쟁의 표현이라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분열과 대립의 구도는 중부유럽, 동유럽, 발트해 지역, 카스피해-카프카즈 지역, 중앙아시아, 중동을 잇는 지역의 자원과 정치군사적 지배력을 둘러싼 제국주의간의 쟁투를 의미하며 이것은 군사적 쟁투, 군수독점자본간, 석유독점자본간, 기축통화간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번 칸쿤에서의 사례를 보면, '주권합성체'의 한 영역인 WTO에서도 이들 국민국가(선진국 대 개도국) 간의 이해 대립이 완강함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민국가의 조절 역할은 여전히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제국론'에서 말하는 '포획'과 '훈육'은 애초부터 국민국가의 가장 주요한 기능과 역할이었다. 자본의 노동에 대한 '포획'과 '훈육'은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원래부터 꿈꾸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는 자본이 자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지구화를 가속화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에 대항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점차 거세게 일어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96-97년 총파업 투쟁, 02년 아르헨티나 항전, 서유럽에서의 무수한 파업 등에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일국에서의 투쟁이라고 해도 그것은 분명히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따라서 세계는 '제국'이 부여한 위계와 명령으로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칸쿤에서의 투쟁은 '국지성'에 기초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과 국제주의적 연대와 실천이 여전히 가장 중요한 투쟁의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물론 현재의 반세계화 투쟁이 넘어야 할 과제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 가장 핵심은 민족주의적 관념으로부터 반자본주의 계급 대립 관계에 입각한 투쟁으로의 뚜렷한 전회이다. 물론 '제국론'에서도 계급 적대와 자본의 착취를 폐절할 것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제국론'이 말하듯이 다중의 네트워크적 힘의 역능성을 통해서 실현된다기보다 사회적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대안 사회의 정치적 전망을 갖고서 반세계화 투쟁이 전면적으로 벌어져야 함을 의미할 따름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전망을 구축하고 그것을 기초로 단결하고 국제주의적 실천을 벌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전망은 사회적 생산에 걸맞게 소유를 사회적으로 재전유하는 데에 중심성을 두고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성 위에서 미시적 억압과 폭력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대안 사회의 상을 그릴 수 있다. '대항제국'은 운동의 중심성 없이 네크워크적 힘의 역능성을 과대평가하고 있을 뿐, '지구적 시민권'과 '사회적 임금권', 나아가 '재전유권'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중심 주체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제국론'은 그 대상에서 '지구'라는 거대한 설정을 하였지만, 주체의 운동에서는 중심없는 미시적 공간만을 파고든다는 느낌을 준다. 이래서는 대안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의 정치 전망은 노동자계급이 정치적 주체로서 낡은 부르주아 지배 장치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을 대중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며, 이것에 복무할 노동자계급의 당파적 조직의 건설이 시급한 과제이다.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하여 일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노동자계급이 대안 사회 건설의 지도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투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면,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투쟁의 전망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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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의원 선고공판 연기

337. 권영길 의원 선고 공판, 3월18일 이후로 연기
등록일: 2005.02.15 12:38:18   조회수: 107  

권영길 의원 선고 공판, 3월18일 이후로 연기
- 국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법률안 처리 예정

○ 2005. 2. 16 14:00에 열릴 예정이었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에 대한 제3자개입금지 등에 의한 항소심 선고공판(사건번호 2001노 1474)이 검찰 측의 심리 ‘재개’ 요청을 재판부가 수용함에 따라 2005. 3. 18. 14:00, 서울중앙지방법원 320호실에서 열릴 추가 심리 이후로 연기됐다. 따라서 권영길 의원에 대한 선고 공판일정은 3월 18일 이후로 확정될 전망이다.

○ 검찰의 재개 요청은,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이 시작 된지 10년이 지나 상황과 조건이 많이 변했을 뿐 아니라 수 차례에 걸친 담당 검사의 변경으로 인해 사건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정리가 필요하다는 상황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 졌다. 그 결과 2005. 1. 14 로 마무리된 심리가 ‘재개’된다고 권영길 의원의 변호를 담당하고 있는 이덕우 변호사는 밝혔다.

○ 한편, 권영길 의원에 대한 선고 공판 일정이 다가옴에 따라 시민사회, 노동계,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국회의원 등 사회 각계의 탄원과 의견서 제출이 계속되고, ‘권영길 의원 구하기’라는 신조어가 만들어 지는 등 언론과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특히, 국회에서는 2005. 2. 4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법률안이 단병호의원 대표발의로 제출됐다. 이 법률개정안은 2월 임시회기 중 소관상임위인 국회환경노동위원회에서 처리 될 전망이다. 법률개정의 취지와 내용은 희대의 반민주악법으로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자 민주화의 대상이었던 제3자개입금지법이 오랜 노력 끝에 사문화된 마당에 다시 적용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바로 잡기 위해 법률 적용의 근거가 되고 있는 부칙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다.


■ 담당: 이호성보좌관 (017-245-9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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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비정규직노조 지도부와의 인터뷰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 사무국장 직무대행
조가영 동지와의 인터뷰



현재자본이 파업노동자들과 외부와의 연대를 철저히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파업거점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가 잘 전해지고 있지 못하다. 현자불파투쟁의 면모를 더 자세히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우리는 5공장 파업농성장에서 투쟁을 이끌고 있는 현자비정규직노동조합 사무국장 직무대행 조가영 동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인터뷰는 불법파견 철폐투쟁의 선봉에서 파업을 전개하고 있는 5공장 도장부 파업거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활동과 투쟁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조가영 동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파업농성장과 파업참가자들의 심리와 의식적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문] 5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답] 우선 지난해 5공장 정리해고 분쇄투쟁이 있었다. 40명의 해고자 중 전원이 복직되는 완전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정리해고된 노동자들 가운데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던 노동자들이 복직되는 것을 보면서 노동자들에게 ‘투쟁하지 않으면 쟁취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무관심한 듯 보였지만, 정리해고 분쇄투쟁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배우고 있었다. 5공장 도장부의 경우 1년 동안 수차례의 교육을 진행하여 축적된 성과들이 있었다. 또한 정영미 동지를 중심으로 여유인원 확보 등 차별과 탄압에 맞선 투쟁을 진행했던 경험도 있었다.

현장의 일상적인 투쟁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쟁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원하청 자본가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하는 정영미 동지의 헌신적인 모습은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투쟁은 가능하다는 대중적 신뢰를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일상적인 투쟁의 누적된 성과들은 이후 꾸준한 현장활동으로 이어졌고, 불법파견 철폐투쟁 국면에서 자본이 불법대체인력투입을 강행하면서 도장부 40여명이 즉각적인 항의투쟁에 돌입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자본이 불법 대체인력 저지투쟁에 나섰던 정영미 동지를 비롯한 노동자들을 부당해고, 고소고발,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탄압해오자 파업으로 연결된 것이다.

[문] 파업참가자가 계속 확대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답] 5공장 비정규직은 주야간을 합쳐서 430여명이다. 생산물량의 축소로 절반가량인 215명이 휴가 중이다. 나머지 215명 중 120명 정도가 파업에 동참하고 있다. 라인의 절반이상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도장부에서 시작된 투쟁은 의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B조 중심이었으나 A조의 파업참여가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처음 도장부 노동자들이 파업을 결의하면서 토론을 통해 업체 탈의실에 파업거점을 잡은 것이 파업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파업거점에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오는 의장부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교육했다. 활동하는 동지들의 참가도 있었지만, 탈의실에서 노동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업체 다수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하게 되었다. 파업의 중심축도 이동하고 있다. 처음에는 도장부 아주머니 노동자들이 투쟁의 중심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노동자들이 중심축으로 일어서고 있다. 젊은 층의 경우 “아주머니들은 할 만큼 했다. 이제 우리가 아주머니들을 지킨다”며 높은 투쟁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아주머니 조합원들도 젊은 노동자들을 동생처럼 챙기고 있다. 그리고 젊은 노동자들의 경우 부서를 뛰어넘어 또래들과 어울리며 동지애를 쌓아가고 있다.

[문] 파업에 참가한 5공장 노동자들은 평범한 노동자들이라고 전해져 있다.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은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가?

[답] 한 업체 20여명의 노동자들이 “파업하러 왔다”며 찾아왔다. 노동자들은 “업체 소장이 1년 후에 정규직을 시켜준다고 해서 입사했고, 그동안 단 한 번도 월차, 연차를 쓰지 않고 성심껏 일해 왔다. 그런데 신규채용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고, 서럽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겠다!”며 자신이 투쟁에 나선 이유를 분명히 밝혔다. 이 같은 투쟁의 확대는 대체인력이 투입되면서 라인이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노동자들은 이제 자본에 허리를 굽히려 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투쟁을 통해 정규직을 쟁취하겠다고 의지를 세워가고 있다. 노동자들의 가장 큰 변화는 자주적인 활동과 투쟁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업거점은 조 체계로 활동과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아주 강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조장이 된 노동자의 경우 달라지는 모습이 확연히 보이고 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굳건한 책임감과 헌신성으로 조를 운영하고 있다. 조원들도 조장을 중심으로 응집력 있게 뭉치고 있다. 평소에 잘 알지 못하던 다른 업체 사람들과도 친밀감을 높이며 동지애를 쌓고 있다. 동료들의 파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전화기를 돌리기도 한다. 파업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발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는 것이다.

[문] 파업대열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는데, 규율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답] 명문화된 규율은 없다. 조별 규율 토론을 진행했고, 조별 규율만 있다. 똘똘 뭉친다, 무임승차 없다, 끝까지 함께 한다, 3인 1조로 움직인다 등 일반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지만 조합원(파업참가자들이 대부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들은 자발적으로 철저하게 파업규율을 지키고 있다. 파업농성장을 계속 사수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으나, 급한 사정이 생길 경우 외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루에 조별로 1명만 외출을 허용하고 약속시간에 반드시 돌아올 것을 결의했다. 아직까지 한 명의 조합원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마치고 처음으로 투쟁에 참여한 업체노동자들의 경우에도 농성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집에 다녀온다고 했을 때, 믿고 보냈는데 단 한 명의 이탈 없이 모두 복귀했다. 현대자본이 파업노동자들의 집에 악선동을 해서 부모님이 와서 설득해도 “내가 빠지면 나도 죽지만, 동료들도 다 죽는다. 그래서 빠질 수 없다.”며 강한 동지애를 보여주고 있다.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집단적 의식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한 가지 명시된 규율은 지도부가 박수 3번치면 30초 만에 조별로 대열을 정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안기호 위원장님을 중심으로 파업대오가 하나로 단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도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파업대오는 강한 결속력과 일사불란함으로 사수되고 있다.

[문] 파업사수를 위한 선봉대가 조직되었는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

[답] 선봉대는 자발적으로 조직되었다. 젊은 남성조합원들 20명가량이 참가하고 있다. 선봉대는 “아줌마는 우리가 지킨다.”는 결의로 파업을 사수하고 있다. 도장부 아주머니 조합원들의 투쟁은 젊은 남성조합원들에게 투쟁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이들의 경우 투쟁하다 깨져도 밖에서 깃발을 세우고 싸우겠다는 결의를 갖고 있다.

선봉대는 따로 조직할 경우 무규율해질 우려가 있고, 당사자들도 전체 일정에서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아서 조별 활동을 함께 진행하면서 선봉대를 하고 있다. 선봉대는 파업거점 앞을 사수하면서 원하청 관리자들의 침탈을 막고, 출입자들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선봉대의 교육은 따로 진행하지 않고 파업대오 전체 교육에 함께 하고 있다.

[문] 정규직화 쟁취를 주요 요구로 내걸고 있다. 집배원, 캐리어와 같은 경우 정규직이 되자 투쟁에서 이탈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는 비정규직 투쟁이 아직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인데. 이를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가?

[답] 투쟁이 정규직화 쟁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임금은 올라가겠지만 잔업, 특근과 고된 노동은 정규직이 되더라도 계속된다. 투쟁동지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보장받기 위한 정규직화라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차라리 정규직 노동자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동료들과 운명을 같이 할 줄 알며, 단결하여 투쟁할 줄 아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사는 것이 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합원들에게 왜 정규직이 되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며 토론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정규직이 되더라도 우리의 연대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가자고 매일 약속하고 있다. 부품사업장, 이주노동자의 사례를 들며 우리보다 어렵고 힘들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힘이 되자고 강조하고 있다.

세원의 이야기도 자주 언급한다. “만약 현자 정규직 노조에서 몇 시간이라도 라인을 끊었다면 세원의 두 동지가 열사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억울하게 당하는 세원테크와 같은 노동자를 더 이상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정규직이 되면 대의원, 소위원이 되어서 적극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자고 이야기하는데, 조합원들은 이런 말을 덧붙인다. “대의원, 소위원이 되면 유인물만 쓰는 간부가 되지 말고 발로 뛰는 간부가 되자!” 조합원들은 현장에서 정규직 노조의 모습을 직접 보면서 진정한 간부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아직 충분치는 않지만 조합원들의 의식이 정규직화 쟁취를 뛰어넘기 위해 지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본다.

[문] 20일 오전에 5공장 도장부 현장진입투쟁이 진행되었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전술이었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조직되고 진행되었는가?

[답] 현자 정규직에서 한시하청(1개월 계약자)을 합법적인 형태의 대체근로라며 대체인력투입을 막지 않고 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파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라인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본 도장부 노동자들은 라인을 세우는 적극적인 투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밤을 새며 투쟁전술논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도장부에 진입투쟁을 전개하는 것을 결정했다.

도장부 문을 관리자들이 막아서 현장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단련되어가고 있다. 이제 관리자 수십, 수백 명이 와도 전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현장진입투쟁 후 조합원들은 “좋았다, 또 가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조합원들은 더 효과적인 형태의 투쟁이 없는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도장부 진입투쟁 동안 사측 관리자들이 농성장을 기웃거리며 도발하자 남아있던 조합원들은 “올 테면 와 봐라”며 구호와 노래에 맞춰 발을 구르며 힘차게 투쟁했다. 농성장이 2층인데, 발을 구르면 의장부 조립라인이 쿵쿵 크게 울린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아래층에서 일하던 정규직 대의원, 소위원들이 비상이 걸려서 농성장으로 뛰어올라오는 일도 있었다.

[문] 파업참가자와 정규직과의 관계 변화는 어떠한가?

[답] 현자노동조합과의 관계는 이전과 차이가 별로 없다. 5공장의 경우, 소수의 민주파 대의원과 소위원들이 적극적으로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현자노조가 대체인력을 허용하려는 제스처를 취하자 소위원들은 단체로 조퇴를 하기도 했다. 이들은 비정규직에게 잔업거부 투쟁하라고 부추기고 대체근로를 못 막는 것이 쪽팔려서 조퇴했다고 한다. 이들 정규직 활동가들은 이 투쟁으로 현장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의 경우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호의적이다. 조기축구회나 현장라인 모임에서 투쟁기금이 들어오고 있다. 현자노조보다 오히려 라인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형님, 아우로 지내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적극적인 연대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도 예전과는 다르게 우리의 투쟁에 반대하고 있지 않다. 특히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비정규직 조합원들과 정규직 조합원들은 평소에 형성되어 있던 동료애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찾아오면 우리 조합원들이 달려가서 부둥켜안는 광경을 보면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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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회한, 김광수

현자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회한
김광수   | 2005·01·23 23:41 | HIT : 19 | VOTE : 0 |

    
안기호위원장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위원장이다. 이 안기호 위원장은 평등연대의 창립멤버였다. 울산에서 송철호 시장후보가 뻘짓을 하는 통에 불거진 문제로 당을 떠났고, 평등연대마저 떠났다. 그 잘난 북구청장 이상범이가 국회의원되는 것을 막았다고 야합운운하며 중상모략을 하는 당내 분위기에 질려버린 탓도 있고, 무언가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런 탈당을 결심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을 할 뿐이다.
안기호 위원장은 90년대 초반 효성금속 위원장을 역임했었다. 전노협 시절에 울산에서 가장 큰 전노협 가입 사업장을 이끌었다. 현총련이다 해서 기업별 체계에서 노닥거리던 현대계열사 노조들과는 근본부터가 다른 출발이었다. 연대파업으로, 단위사업장 파업으로 2번이나 감옥에 갔고, 노진추 사건(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사건)으로 3번째 감옥을 갔다왔다.
효성금속은 주력이 컨테이너 제작이었는데, 우리나라 컨테이너 제작산업은 90년대 중반 중국의 등쌀로 없어졌다. 그래서 1500명이 넘던 대형사업장이었던 효성금속이 없어졌고, 안기호 위원장은 회사의 적만 두면 월급을 주겠다는 회유책도 마다하고 조합원과 함께 실업자가 되었다.
그런 전노협의 기간투사가 생계를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고 또 한번 현실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조위원장이 되었다. 지금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을 하고 있는 이상욱은 안기호 위원장이 전노협 주력사업장중의 하나를 이끌고 있을 때 현총련 소속의 그것도 별볼일 없는 어용사업장 조합원일 뿐이었다.
그런 이상욱이 안기호 위원장앞에서 절차를 운운하며 거드름을 피고 있다. 왜 쪼그만 비정규직 노조에서 정규직노조의 윤허도 없이 투쟁일정을 짜고 연대해 달라고 엉기냐고 야단을 치고 있다. 안기호 위원장이야 워낙 점잖은 동지니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입장에서는 속에서 불이난다.  
까놓고 말하면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민주노동당에 남아 당의 혁신이다, 사회주의 실천강화다 하며 이러저리 굴러다는 나도 생각해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안위원장은 도대체 이게 뭔가? 솔직히 탈당을 한 안위원장을 보며 한편으로는 부러운 맘도 있었다. 더러운 꼴은 안볼테니 하는 뭐 그런생각이다. 그런 생각은 도대체 사회주의 노동운동근처에는 꼴도 안보이던 놈들이 사회주의자 운운하며 꼴갑을 떨때도 나고, 다함께니 뭐니 하는 국제 00이들이 노동운동에 대해 헛소리 할때도 나고, 개골목인가 하는 친구가 막말할 때도 나고, 신문사 기자가 대표할 때도 나고, 정윤광위원장이 근본도 잘 모르는 아줌마한테 대표경선에서 질 때도 났다. 허영구니 주대환같은 사람들이 정책위의장 선거에 나오는 걸 볼 때도 났다.
그런데 안위원장의 최근 모습을 보면 내가 겪는 수모와 절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40일동안 단식하고, 추석연휴때 농성장을 좀 쓰게 해달라고 애걸을 해도 돌아오는 말은 비정규직이 설쳐서 정규직 노조가 상처받았다는 말이고, 이제는 내 살점같은 조합원이 몸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별힘도 주지 못하고 바깥에서 변죽이나 올리는 처지에서 더 화가 나는 것은 불파투쟁과 관련해서 노동운동권이 보여준 비겁과 몰염치다. 불파와 관련해서 비정규직 노조가 기획한 집회가 12일과 19일이었다. 이 집회에 참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나도 이바닥에서 20년인데, 참 별꼴을 다봤다.
먼저 노동위원회 회의, 불파투쟁에 결합하자는 제안에 아이구 노동위원회 반응은 정말 끝내주었다. 별 핑계를 다대며 빠져나갈 구실만 찾았다.
의원실, 12일 현대하이닉스집회가 있어 갈 수 없다고 말하는 보좌관의 낯빛이 환하다. 끝내주는 핑계거리가 있었거든!
금속연맹, 12일은 하이닉스, 19일은 상근자 수련회, 아이구 신나라
민주노총 : 비정규, 미조직담당인 신승철 부위원장 중심으로 아주 조금 움직였다.
소위 좌파단위들, 비정규직 투쟁하는데 비정규직 노조사무실에는 슬쩍 혹은 아예 모습을 안보이고 이상욱을 배출한 민투위 사무실에 득실거린다. 말은 뻔지르하거든 노동자의 힘? 이름바꿔라, 이상욱의 힘!
더럽다, 치사하다. 막말좀 더 보태면,  인간이 되라! 이 더러운 것들아






DEO
김광수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곳에 가끔 들러서 제가 배울것이 있나하고 들르는 실업 노동자 입니다. 내부적인 상황에 대해 글을 올리셔서 상황이 이렇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출내기인 제가 보기에 님께서 올린 글의 목적, 효과 등을 생각한다면 좀더 말을 아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군요.
힘드시더라도 님같은 분들을 따라 전선에 나서려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세요.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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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전진>의 전술 제안


2005 당 대회에 즈음해 <전진>이 당원과 대의원 동지들께 드리는 글

- 세 가지 투쟁제언과 한 가지 약속 -





2005년, 우리가 놓여있는 정세


원내진출의 감동, 의회 제3당 지위확보, 국민 지지 15%를 받고 있는 명실상부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한 2004년은 참으로 감동스런 한해였습니다. 그런 감동을 딛고 희망차게 맞이해야 할 2005년, 그러나 우리 민주노동당 앞에는 놓여있는 정세는 매우 준엄합니다.


그 첫째는 ‘사회 양극구조’의 고착화입니다. IMF사태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빈부격차가 확대돼 더 이상 회복이 불능할 정도로 빈부의 양극구조가 고착되었습니다. 급기야 굶어죽는 아이가 나오고, 노인들은 자살하며,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청년들은 실업과 반실업을 오가며 하루에도 몇 번이나 까닭모를 분노와 우울증 사이를 헤매고 있습니다. 개혁을 자처하는 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지금 이 나라에는 ‘두 개의 국민’ 체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결과를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극도의 한반도 긴장체제’입니다. 이 정세는 근본적으로 제국주의 미국의 대북 압박과 한국 정부의 대미 종속이 빚어낸 것이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북한 정부 역시 핵무기 보유라는 극단적 카드로 선택지를 좁혀나가고 있습니다. 이 긴장체제에서는 다른 누구보다 남북한 민중들이 희생양입니다. 전쟁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한반도 민중의 고통은 배가되고 있는 것입니다.



2005년 당 대회, 다음 3대 투쟁을 결의합시다!


2005년 당 대회는 이와 같은 엄중한 정세에서 치러집니다. 당 대회는 이 두 가지 정세, ‘빈부양극화 구조의 고착화’와 ‘극도의 한반도 긴장체제’에 맞서는 민주노동당의 적극적인 실천을 결의하는 장이 돼야 합니다. 이에 <전진>은 당원과 대의원 동지들에게 다음 세 가지 실천투쟁을 제안합니다.


그 세 가지는 ‘비정규직 철폐투쟁’, ‘부유세 도입과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공보육 쟁취투쟁’, ‘평화군축을 중심으로 하는 자주통일투쟁’ 등 3대 투쟁입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민주노총이 조직하고, 당은 필요할 때 연대하는 그런 투쟁이 아닙니다. 비정규 노동자 조직은 민주노동당의 집권과제입니다. 즉,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이 난맥상에 빠져있을 때조차도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투쟁에 몸을 내던져야 합니다. 민주노동당이 먼저 나서서 지역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을 듣고, 그들의 계급적 각성을 촉구하며, 조직적 단결을 지원해야 합니다. 각 지역위원회는 지역의 민주노총과 함께 비정규직 투쟁의 주체로 우뚝 서야 할 것입니다. 올해 만들어지는 비정규직 철폐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전당적인 실천을 결의합시다.


<부유세 도입,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공보육 쟁취투쟁>은 우리가 지난 총선에서 민중들에게 했던 가장 중요한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지난 수십년간 노동자․민중으로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고, 입 밖에 낼 수조차 없었던 이 계급적 구호에, 우리 민중들은 몇 날 몇 일을 고민한 끝에 단 한 명의 의원도 없는 군소정치세력 민주노동당에 자신의 소중한 주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연 그들에게 해준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부유세 도입과 무상의료, 무상교육, 공공보육 쟁취’를 하나로 묶는 전 당적 실천기구를 건설하고, 각 지역에서 민중들의 뜻을 모아나갑시다. 보수파가 장악한 시의회에 맞서, 민중들을 투쟁의 주체로 우뚝 세워 ‘참여예산제’를 관철시켰던 브라질 노동자당(PT) 당원들의 헌신을 우리 민주노동당원들도 이 땅 민중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민중들이 우리에게 듣고 싶은 것은 ‘299명중 10명’이라는 누구나 아는 변명이 아닐 것입니다.


<평화군축을 중심으로 하는 자주통일투쟁>을 벌여나가야 합니다. 그동안의 통일운동은 남북교류나 방북성사투쟁 등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평화’의 원칙,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군축’은 얼마나 강조되었습니까. 물론, 평화군축 투쟁은 명백히 미국의 한반도 긴장책동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야 합니다. 그러나,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남북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촉구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평화군축투쟁이 오히려 미국의 대북위협을 완화, 종식시킬 수 있는 진정한 힘임을 민주노동당은 남과 북의 민중들에게 호소하고 참여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이상의 세가지 과제를 당 대회에서 결의할 것을 동지들께 제언 드립니다. 그리고, 결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전진>이 드리는 한 가지 약속! 대중을 향한, 실천하는 당 대회를!


우리 민주노동당내에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당원들과 그룹들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지난 한 해 이들 각 주체들은 대중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투쟁함으로써, 대중들의 지지를 당과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데 충실하지 못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 내에만 머물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는 데에만 매몰된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느 정파, 어느 의견그룹을 막론하고 제3당으로서 변화된 위상에 걸맞는 당의 실천과제, 실천양태에 대한 모범을 제출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모범은 단순간에 제출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각 의견그룹들과 당원들이 서로의 한계를 인정한 채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실천과제를 도출할 때에만 만들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당에 필요한 것은 ‘당의 다수파가 돼 당권을 거머쥐는 데 집중하는 정파’가 아닐 것입니다. 변화된 정세, 변화된 환경에서 당을 살찌우고, 당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닦는 의견그룹이 필요할 것입니다. 당내 모든 의견그룹, 정치세력들이 이를 위해 경쟁할 것을 제안 드리며, <전진>도 당원과 대의원 동지들에게 실천하는 당 대회를 만들 것을 약속드립니다.




변화된 조건, 변화된 정세에 맞는 혁신적 투쟁으로 2006년을 맞이합시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참으로 많은 변화와 부침을 겪었습니다. 7만 당원, 전국 1백50개의 지역조직, 1천여 분회의 활성화, 시도당의 내실화, 10명의 국회의원과 전문 보좌관 및 정책연구원의 확충, 그리고 각 영역을 나눈 최고위원회와 중앙당 등 민주노동당은 이전까지 결코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조직이 되었습니다. 그런 만큼 각 영역의 활동에서 서로 긴장관계와 갈등이 나타났습니다. 최고위와 의원단 활동의 삐걱거림, 최고위와 정책연구원간의 갈등, 언론과의 긴장관계, 전문인력의 사퇴, 지역조직 재정비를 둘러싼 난맥상 등 많은 문제점들이 그것입니다. 이 많은 문제들은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지만, 한가지만큼은 모두가 공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정세와 조건이 변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풀어야 할 과제는 새로운 것인데 그것을 풀 수단은 과거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늘 자신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그러나 당의 지도력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과제를 명확히 제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당내 다양한 세력의 견해를 반영하지 못하는 지도부는 스스로 혁신해야 합니다. 지도부에 있는 동지들은 늘 자신의 견해가 당의 다양한 목소리를 옳게 반영하고 있는지, 과연 통합적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의 지난 모습에서 이러한 통합적 지도력이 없었던 점은 반드시 평가되고, 혁신돼야 할 대목입니다.


둘째는, 당의 지도력의 이원화 현상을 극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당은 최고위원회라는 ‘당 내부적, 조직적, 실질적 지도력’과 의원단이라는 ‘당 외부적, 국민적, 상징적 지도력’이 하나의 지도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회주의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도입했던 ‘당직-공직 분리’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통합적 지도력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질적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당원, 대의원 동지들의 헌신 없이는 결코 볼 수 없을 민주노동당의 승리!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민주노동당이 믿는 유일한 힘의 원천은 바로 민중의 열망, 그리고 당원동지들의 땀과 눈물이었습니다. 그 결과 2004년의 성과가 있었지만, 빈부양극화와 한반도 긴장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아직 우리가 흘려야 할 땀과 눈물이 많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땀과 눈물 없는 민주노동당의 승리는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2005년 당 대회에 참여하는 모든 대의원 동지들에게 연대의 인사를 다시 전하며, <전진>도 당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2005.2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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