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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19
    빈곤... 그 놀라운 결과
    hongsili
  2. 2004/09/19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 (프레시안)
    hongsili
  3. 2004/09/19
    "열사의 영전에 원내진출 보고합니다" (오마이뉴스)
    hongsili
  4. 2004/09/19
    이사 중...
    hongsili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경향일보 6.1)

6월 1일 경향일보 만평 (김용민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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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3

여기 미국 생활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의 하나는 엄청난 소비문화...

줄리엣 스호르의 신간 제목은 "Born to Buy" .. 표지에는 어린 아기와 쇼핑백이 그려져 있다.

코스트코를 비롯한 대형 마트에 들어가면 입이 쩍 벌어진다. 심지어 어제 고속도로를 지나다 본 스테이크 요리집과 대형 입간판은 그 규모에서 나를 질리게 만들었다. 저 정도 되면 식당이라기보다 대형 도축장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 ...

 

그 와중에 우리 동네에 있는 Whole Food Market 은 좀 색다른 분위기...

우리나라의 규모가 좀 큰 슈퍼마켓 정도인데.. 내가 놀란 것은 1리터짜리 우유와 1/4 조각짜리 수박을 판다는 것. 그 외에도 도저히 다른 할인점에서는 보기 어려운 작은 단위의 포장 제품들이 즐비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소매점인가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유기농 전문 매장이다. 그러다보니 물건들이 조금씩 다 비싸다. 장보러 오는 사람들도 쇼핑수레를 끌고 다니며 트렁크 가득 물건을 채워가는게 아니라 장바구니에 조금씩 사간다. 심지어 비닐봉투를 가지고 가면 5센트를 돌려주기까지 하니... 감동할 지경이었다 (-_-)

사실, 한국에서는 유기농 매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었다. 일단 가격도 그렇고, 믿을 수도 없어서...

하지만, 여기에서 곰곰히 고민해본 결과... 단위 가격은 당연히 대형할인 매장이 싸지만 혼자 사는 살림에 아무래도 오래 보관하기도 힘들고 나중에 버리느니 그냥 이곳 식품을 사는게 낫다는 결론... 무엇보다, 단순히 몸에 좋은 유기농이라기보다는 (소위 나만을 위한 웰빙? 국적불명의 요상한 단어...) 제품 포장지들이 대부분 재활용 용지일 뿐더러 비닐백에 대한 환불 조치, 각종 환경 보호 상품들을 판매하고 안내를 한다는 사실이 이 소비의 천국에서 한 줄기 신선한 자극....

 

뭐 이런 것까지 고민하며 살아야 되나 싶기도 하다가... 그래도 이 지구를 내가 구해야지 안 그러면 누가 구하나 하는 독수리 오형제 정신 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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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서 눈을 떼려 해도..

모 선배가... 미국 땅에서 동쪽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거 아니냐고 힐난(?) 했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요사이 몇 가지 관심을 끄는 것은...
우선 국가보안법. 그동안 내가 받았던 서명과 내가 했던 서명만 해도 합치면 수십번은 되는 것 같다. 하도 친숙해서 가끔은 내가 여기에 애정이 있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  이제 그 막바지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끝을 내야지... 물론 쉽게 사라져주진 않을 것이다. 국보법의 폐지와 함께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것은, 그동안 이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유린해왔던 국가기구들의 과거 행적에 대한 철저한 심판. 적어도 시민(민중도 아니고 그들이 그토록 존중하는 시민 ^^)들에 대한 인격 살해를 자행했던 이들의 처참한(!!!) 정치적 종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우당사를 점거하고, 단병호 의원이 다시 거리 투쟁에 나섰다는 소식은 정말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총선 결과가 발표될 때는... 물리적으로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야.. 너무 조급할 필요는 없지... 애써 표정관리를 하면서도 정말 기대는 하늘을 찔렀다. 하긴, 국회개원 첫날 조승수 의원이 올린 글을 보고 그 험난한 여정을 짐작이야 했지만.... 정말 뭘 어찌 손써볼 수 없는 상황들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낮에 브라질 출신의 좌파 보건학자를 한 명 만났는데, 현재 어려움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룰라  정권이 잘 해나갈 것임을 믿는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도 그래요"라고,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경제특구 내 영리법인 병원 설립, 내국인 진료 허용 방침 또한 우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느 정권보다 공공의료 강화를 강하게, 그리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강조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논의들은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자유롭게"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네덜란드에서 방죽이 무너지는 것을 막은 소년의 이야기가 허구라고는 하지만, 작은 틈새가 결국 엄청난 파국으로 이어질수 있지 않은가. .. 이 문제가 국내 공공의료, 사회보험 제도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지금도 취약한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음을 정부는 과연 모른단 말인가?
글을 쓰다보니 스스로 도취해서 흥분... -_-
자야할 시간이다. 근데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기억하건데, 영문 제목이 What's to be done?"이었다. 수동태가 여기에서는 좀더 적절했던 것 같다. 물론 이대로 번역하면 웃기지만.. 러시아어 원제목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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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힘. 또는 고급 사기.. (2004.9.17)

어제 아침에 센터의 첫 저널 클럽이 있었다. 꼭 레지던트 하는 거 같다. 어찌나 수업과 각종 세미나가 횡행하는지 정신을 못 차리겠다. 영어가 딸리니 미리 안 읽어갈수도 없고...  이 나이에 갑자기 모/범/생 (!!!)이 된 기분....
하여간... 이번 논문은 센터소장인 라이쉬가 골라온 것인데 특허가 개발도상국에서 필수의약품의 접근에 방해가 되느냐.. 이런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이었다. 결론은 정말 웃긴다. 저자가 통계를 내본 결과(물론 예의 그 regression, p-value 같은 전가의 보도들이 등장한다) , WHO 에서 지정한 필수의약품들 중, 실제로 개도국에서 특허가 법적으로 혹은 실질적으로 적용을 받고 있는 것은 불과 1.4%에 불과하단다. 특허기간이 만료되었거나 혹은 제약회사의 관용 내지는 무시(?) 정책에 힘입은 결과란다. 그리고 오히려 특허보다는 국가의 빈곤 수준이 의약품 접근성에 더 큰 장애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동안 활동가들이 주장해온, 특허가 의약품 접근성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과도한 주장이며, 제약회사 또한 이렇게 미미한(^^) 시장에서 굳이 아둥바둥하기보다는 volunteering or price discouting 을 하는게 도덕적으로 훨씬 바람직하다는 친절한 평론까지 곁들였다. 더욱 압권은... 빈곤 해결의 예시로서, 그동안 많은 선진국들이 자국 농업에 대해 상당한 금액의 보조금을 지급해왔는데, 이것만 없애도 가난한 개발도상국가들의 농업 수출이 늘어남으로써 빈곤 탈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말 깜찍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특허가 적용되고 있는 극히 일부(1.4%)의 약들이 뭔가 하면 대개 항 바이러스 제제(에이즈 치료약) 들이다. 중요한 것은 특허가 적용되는 의약품의 갯수가 아니라 인구집단 영향(population impact) 가 아닌가? 저자가 이걸 몰랐으리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글리벡 사건(?)이 터졌을 때, 정말 환자도 몇 명 안 되는데 노바티스가 약가 인하를 단행하지 않은 이유, 정부에서 compulsory licensing 을 하지 않은 이유..  이런 현실을 저자가 진정 몰랐단 말인가?
 
당연히도.. 토론모임은 저자에 대한 성토와 의심의 자리가 되고 말았다. 이 저널이 과연 peer-reviewed journal 이냐에서부터 이 사람의 소속이 어디인가, 이걸 굳이 발표한 이유가 무엇인가 등등등...
언젠가 부르디외 가라사대, 사회학의 가장 큰 분석 도구는 사회학자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부터 면밀하게 분석해보아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연구는 숨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기술적인 힘, 통계 결과에 휘둘려 진정한 본질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는 경우가 충분히 생길 수 있다. 경계.. 또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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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경제 성장의 강력한 엔진? (2004.9.14)

오늘 Dept of Population and International Health 의 첫번째 펠로우 세미나가 열렸다. 제목은 Health and Wealth of Nations. (Bloom)... 요지는, 그동안 경제발전이 건강의 주요 결정요인이라고 많이 언급되었지만 인과관계의 방향은 그 역으로도 존재하며. 즉 건강이 경제 발전 수준을 결정할 수 있으며, 그것도 많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발표자에 의하면 건강이 경제발전의 강력한 엔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population health 를 증진시키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인권적 차원은 물론 (사람들이 그리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건강이 경제 수준(여기에서는 주로 소득수준으로 측정)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문제인데... 네 가지 정도의 경로를 언급했다. 1) 생산성, 2) 교육수준, 3) 투자, 4) 인구구조...
그러면서 기대여명의 증가가 그 어떤 요인보다 경제 성장률의 증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근데... 이러한 논의가 현실을 다소 도외시한 책상 위의 통계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소위 globalizing economy 시대 (진정한 제국? ^^)에 일국의 건강 수준이 경제성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과연 얼마나 될까? 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일대에 휘몰아쳤던 경제 위기, 그로 인한 GDP 의 극적인 하락은 그동안 이들 지역에서 기대여명의 상승이 가져왔던(?) 경제 성장 효과를 하루아침만에 뒤집지 않았던가? 또한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은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 출생과 사망률만으로 측정할 수 없는 인구구조의 변화를 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이러한 분석이 "건강이 좋아지면 경제도 좋아진다"라는, 정책결정자와 대중의 설득을 위한 수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진실 탐구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경제발전"이라는 중립적(?) 가치, "건강증진"이라는 또한 중립적 용어로 내부에 자리한 근본적 모순을 은폐하고 있지 않은가?   소위, "잘못된 층위"에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
세미나 시간이 짧아서 (더욱 중요한 것은 영어가 짧아서 -_-) 질문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리고.... 아직 Sen의 capability 개념에 대해서 공부해본적이 없는데, 이것이 과연 기존의 human capital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 함 살펴봐야겠다. 왜 건강이 중요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깊이 있게 고민해보지 못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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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2 (2004.9.8)

사람나고 돈 나지, 돈 나고 사람났냐.. 이런 생각에 큰 맘 먹고 스피커를 구입했다.
아직 오른쪽 귀 청력이 안 좋은지라, 이어폰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하여 문구할인매장에 가서 가장 싼 걸로 하나 샀다. 대략 만 오천원... 특이하게도 LED 전원이 형광 파란색이다. 정신 없어라...
 
이** 선생님이 남겨주신 모니터와, 전** 선생님이 주신 키보드, 신** 선생님이 물려주신 프린터를 연결하고, port replicator, speaker 등을 셋트로 연결하고 나니 뭔가 자리가 잡힌 듯..
이승열의 나즈막하지만 강렬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열심히 데이터 정리 작업을 벌이다 블로그에 잠시 들렀다. 녹차라도 한 잔 마시고 싶지만 설거지 하기 싫어서 참고 있다.
 
이곳은 평균적으로 들어왔던 미국의 도시와는 좀 다른 모습이다. 늦은 밤까지 버스에 사람이 끊이지 않고, 불야성(?)을 이루는 술집, 삼삼오오 밤거리를 몰려다니는 학생들의 모습... 피부색과 쓰는 말이 달라서 그렇지, 한국에서의 대학 앞 풍경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 싶다. 슈퍼마켓도 차를 가지고 도시 외곽으로 나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 곳은 학생들이 많은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도심에 크고 작은 할인마트들이 즐비하게 있다. 문구류가 비싸다고 사가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와보니 대형 문구 할인 매장에 없는게 없을 뿐더러, 볼펜 같은 기본 필기구는 진짜(!!!) 싸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지? 자야겠다.
아참, 민지네 회원인 사과나무님과 연락이 되었다. 동부 번개 한번 하자는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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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1 (2004.9.2)

새로운 곳에 정착한지 어언 사흘...
미해결 보고서 때문에 여기가 도대체 미국인지 한국인지 정신이 없다.
 
아틀란타 공항에 내리자마자 눈에 띈것은 온갖 형형색색의 자판기와 가게들, 그리고 열심히 무언가를 소비해대고 있는 사람들... 오늘은 우리 동네(^^) 쓰레기 수거가 있는 날이었는데 내놓은 물건들을 보니 그저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진작에 알고야 있었지만, 정말 적응이 안 되는 이 소비문화....
지구촌 다른 이웃들과 후손들에게 짓고 있는 이 환경파괴의 업보를 미국인들은 어찌 갚으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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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글 (2004.8.28)

한 때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반 정도는 사실이었다. 학비 조달이 학창 시절 가장 중요한 화두였고, 수업은 대개 나홀로 자습... (결국 학비 마련해서 자습했다는 소리구만 -_-)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던 것 같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보내준 애정, 격려, 지지, 비판, 가르침.. 이런 것이 없었으면 지금의 내 모습(?)이 가능했을까.
고등학생 때 학비를 지원해준 이름모를 후원자. 그 존재에 대해서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게 지금으로서는 더욱 미스테리다. 싸가지가 없는 것인지, 둔감한 것인지...  물론, 대학시절 ** 장학회는 개인적으로 전혀 고마움이 없었다. 오히려 "적의 군량미"를 소진시켜야 한다는 기괴한 생각은 했지만...
대학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적" 조언을 해주신 선생님. 만일 원래 뜻대로 ** 공대에 진학했다면 지금 뭐하고 있을까나
대학 시절, 삶의 화두를 함께 고민했던 선/후배와 친구들... 그리고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피붙이의 정을 느끼게 해 준 의보사 식구들... 실제로 이들 덕분에 겨우 인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만난 예방의학/보건학계의 스승, 선후배와 동료들... 이들의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가르침은 소위 학문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데 근간이 되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러 떠나는 이 길에....
주변의 많은 분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이런 표현 닭살이지만 사실..)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누군가가 학문을 한다는 것은 본인의 재능이나 노력을 통해 스스로 무얼 한다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사적, 혹은 사회의 공적 투자를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 다듬어지고, 이에 대해 사회적 임무를 떠안는 것 아닐까?
적어도, 이 사람들에게, 사회에게 "배신(?)"을 때릴 수는 없다는 소박한 마음으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마지막.... 짐 점검을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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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그 놀라운 결과

일찍이... 빈곤에 관한 국가 공식통계가 없다는 것은 소문으로 들었지만.... 그래도 뭔가 비슷한 거라도 나올 줄 알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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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 (프레시안)

전순옥 이야기
  
  동대문 창신동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인 전순옥(50)씨에게는 전태일 열사의 동생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다.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은 전순옥씨 인생에도 큰 전환점이었다. 당시 16살이었던 그녀는 어머니 이소선씨와 함께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전씨는 22세까지 봉제의류 공장에서 일했고 그 후 노동조합 활동, 지역운동을 했다. 그녀는 35세의 늦은 나이에 영국 유학길에 올라 지난 2001년 런던 워릭대에서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을 다룬 <그들은 기계가 아니다(They are not machines)>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그해 워릭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된 바 있다.
  
 
전순옥 참여성노동복지터 소장 ⓒ프레시안

  최근 출간된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한겨레신문사 펴냄)는 이 논문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은 동일방직노조·청계피복노조 등 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 1백여명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 또 그녀들의 삶에 대한 재해석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전씨는 유학을 떠나기 전 바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영국 대학과 성공회대 교수직을 마다하고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는 동대문에서 가난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하며 "저소득층 여성노동자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를 만드는 것"이 그녀의 목표다.
  
  전씨는 또 지난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의뢰를 받아 고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A Single Spark)을 영어로 옮긴 데 이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의문사진상위원회 등의 한국 민주화운동사 영문 번역 작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 작업에는 뒤늦게 그녀의 인생의 반려자가 된 남편 크리스 조엘(61)도 함께하고 있다.
  
  조주은 이야기
  
 
여성학자 조주은 ⓒ프레시안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인 조주은(38)씨는 국내에서 드물게 '노동자 가족'을 연구하는 학자다. 노동, 노동운동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구체적인 삶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는 점에서 조씨가 석사학위 논문으로 쓴 울산 현대자동차 가족에 대한 <현대가족 이야기>(이가서 펴냄)는 올 상반기에 출간된 노동 관련서 중 도드라졌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재생산을 담당하는 곳인 가정은 노동 정책과는 거리가 먼 듯하지만 상호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 노동자 가족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우리나라의 학문 풍토에서 조씨는 일찌감치 어려운 길을 선택한 셈이다. 이런 선택에는 남다른 개인사도 한몫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늦깎이 운동권이 돼 만난 노동운동가인 남편을 따라 울산에 내려가 '전업 주부'로 살았던 경험은 연구자로서 그녀를 '관찰자'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도 '노동'과 '가족'을 화두로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전순옥ㆍ조주은 이야기
  
  두 사람에게 공통된 이슈는 '여성'과 '노동'이다. 지난 6일 오후 동대문 '참여성복지센터'에서 첫 대면하자마자 둘은 서로의 연구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이며 대담은 시작됐다. 대담을 마치면서 전씨는 조씨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이 남성 연구자에 의해 경제주의적ㆍ고립적 운동으로 폄하돼 왔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두 사람은 연구 대상을 '대상화'하는 지금까지 구태의연한 연구 방법으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제대로 설명될 수 없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했다.
  
  또 "공부한 사람들끼리만 아는 책을 쓰는" 기존의 현학적 풍토에 대한 저항 의식도 비슷했다. 조씨는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했고, 전씨는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직접 자기 얘기를 읽고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것"이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의 남성,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의식도 똑같았다. 조씨는 "대기업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자본가와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문화를 공유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들에게 희망은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전씨도 "영국의 노조가 무기력하게 무너진 것은 노조의 조직 이기주의 때문이었다"며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도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을 들여다보고 있는 두 사람은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질문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하고, 정치를 민주화하려고 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하려고 하는가?",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의 대담은 사회자가 별 끼어들 필요, 아니 끼어들 틈 없이 세 시간 넘게 계속됐다.
  
ⓒ프레시안

  대담은 지난 6일 저녁 '참여성복지터'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무관심, 폄하로 이어져"
  
  프레시안 : 전순옥 선생의 책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와 조주은 선생의 책 <현대 가족 이야기>는 상반기에 출간된 주목할 만한 노동 관련 책이다. 서로의 책을 읽은 소감이 있을 듯하다.
  
  조주은 : 먼저 시작하겠다. 그간 '노동운동'의 역사는 있는데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없었다. 2000년에 개인적인 이유로 여성노동운동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도서관에서 검색해보니 정말 한 권도 찾을 수 없더라. 일제 강점기 때 부문운동의 하나로 여성노동운동이 좀 언급돼 있고, 최초로 고공농성을 했던 강주룡 열사의 얘기 등이 부분적으로 인용될 뿐이었다.
  
  이런 무관심은 자연히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폄하로 이어진다. 남성이 쓴 많은 노동운동사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0년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1995년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말하면서, 이런 노동운동이 1970년대 노동운동의 중심이었던 여성노동운동의 경제주의와 고립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가능했다고 쓰고 있다. '그건 아닌데', 하면서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런 의미에서 전순옥 선생님이 쓴 이 책은 굉장히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전순옥 : 나는 일단 <현대가족 이야기>라는 제목이 참 좋더라. 현대에 살고 있는 가족이 파괴되고 있잖아. 난 제목만 보고도 많이 사서 볼 것 같던데. (웃음) 책은 많이 팔렸나?
  
  조주은 : (웃음) 거의 안 팔렸다.
  
  전순옥 : 사실 노동조합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많은데 실제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의 구체적 삶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이 책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돋보기를 들이댔다는 점에서 중요한 연구라고 본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이 책에서 사용한 방법론이 참 마음에 들었다. 복잡한 이론을 사용하기보다는 책에서 서술되는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가능하면 그대로 반영하려는 노력,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구체적인 삶을 들여다본 것도 참 좋았다.
  
  조주은 : 글을 쓸 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순옥 : 그런 부분이 나랑 맞았다. 내 책의 주인공들도 내가 인터뷰를 할 때, 전에도 인터뷰를 많이 했지만 도대체 내 말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몰라서 인터뷰하는 게 싫다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주인공들의 언어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래서 그들이 직접 자기 얘기들을 읽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면서 글을 썼다. 나는 학자라기보다는 노동자 출신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좀더 유리했고.
  
  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읽고,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갈 수도 있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다. 공부한 사람들끼리만 아는 책을 쓰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서구 페미니즘이 제3세계 여성을 대상화한 것은 오류"
  
 
ⓒ프레시안

  프레시안 : 책을 읽으면서 상대방의 연구에 이견이나, 아쉬운 점은 없었나?
  
  전순옥 :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서구의 여성학자들이 아시아 개발도상국 여성노동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게 됐다. 그들은 아시아 여성노동자들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은 희생을 보면서, 여성노동자들을 '희생자로 개념화((victimization)'하곤 한다. 대부분이 이런 접근인데 나는 이렇게 제3세계 여성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제3세계 여성들은 무조건 순종적이면서 희생을 묵묵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기들을 없애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의 모순을 떨쳐 일어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고, 우리나라의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은 그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현대 가족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런 접근이 좀 묻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이 현대자동차 노동자이긴 하지만 그도 노동자 출신은 아니지 않느냐, 조주은 씨도 마찬가지고. 그러다보니 조주은 씨도 노동자 가족들 속에 파묻히기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관찰자의 시선'으로 본 게 아니냐는 느낌을 받았다.
  
  조주은 : 물론 그런 측면에 있다는 걸 부인하진 않겠다.
  
  사실 울산에서 이 책은 일종의 '금서'다. 나는 남성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기를 원했다. 그들이 이 책을 읽고 성찰할 부분이 있다면 성찰하고, 너무 일상이나 관성에 젖었던 자기들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스스로 객관화시켜 자기비판의 계기로 삼기를 바랐는데...... 남성 노동자들은 아예 안 읽더라. 남편 동료들한테 책에 대해서 물어보면 말을 안 한다. 왜 자기들 사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까발려서 우리를 죽일 놈을 만드느냐, 자본가를 욕하고 기업을 욕해야지 왜 우리를 비판하느냐, 이런 식이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도 책을 보면서 기분이 별로 안 좋다고 애기했다. 한 여성은 나한테 "그래 언니 말이 맞아. 내 남편이 생산직 노동자가 맞긴 한데 그 책을 보니까 갑자기 내 처지가 서글퍼지더라"고 불편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연봉 4~5천만 원씩 받지만 그래봤자 결국 너희는 노동자다, 이렇게 규정하는 게 불편해 보였다.
  
  전순옥 : 실제로 노동자이면서 노동자라는 것을 까놓고 얘기하는 건 안 좋아한다는 얘긴데, 그게 일반 노동자의 의식이 아닌가 싶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또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임노동자와 그들의 자녀들이 정작 스스로 노동자 또는 노동자의 자녀라는 의식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갑갑했던 적이 있다. 사실 그렇게 임노동자들이 노동자 의식을 갖지 못한 것은 예외적인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조주은 : 이견이라기보다는 질문이 될 텐데, 선생님 책을 보면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과 관련된 국내 여성학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떤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전순옥 : 사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여성운동은 없었다. 1980년대 들어오면서 여성평우회, 여성민우회가 생기는 것을 시작으로 여성운동 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여성학자들은 1970년대 '여성들이 여성의식이 없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에서 단체교섭을 할 때 여성만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거나, 여성 노동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은 없었다는 둥. 이런 비판은 당시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지 않은 조금은 무책임한 것이다. 자기들은 그 때 뭘 했나?
  
  프레시안 : 그 당시 여성노동운동을 살펴보면 여성노동자들의 '생활 공동체' 같은 게 존재했다. 그런 모습을 '자생적 페미니즘'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전순옥 선생님도 '한국적 페미니즘'이라는 이유로 그런 것을 강조하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 여성노동운동은 어떻게 10년을 버텼나"
  
 
ⓒ프레시안

  전순옥 : 그렇다.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보자.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이 어떻게 박정희 정권의 억압적이고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 10년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그 힘이 바로 지적한 그런 데서도 나왔다고 생각한다. 많은 연구들은 당시 교회에서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해준 것을 중요하게 보는데 그것보다는 바로 이런 부분이 더 중요하다.
  
  그들은 정말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너무 대접을 못 받고 살아왔다. 집에서는 말순이, 섭섭이, 끝단이, 큰년이, 막내로 불리다 공장에 오니까 시다 1번, 미싱사 3번으로 불렸다. 그런데 노동조합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불러줬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위원장, 교육선전부장 등 직함으로 불리고. '아, 나한테 이름이 있었구나', 이렇게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자아, 존재를 찾은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공장에서 사장들하고 단체교섭을 하면서 사용자가 "미스 리"라고 부르면 "내 이름은 이총각이고, 지부장이다"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게 됐고 또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 '아 노동조합이야말로 나의 자아를 지켜주는 곳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노동조합을 지키는 데 헌신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프레시안 : 그런 점과 연관해서, 1970년대 여성노동운동은 노동조합의 민주적 운영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전순옥 : 맞다.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식과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조합을 운영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심리학적으로 남성은 개인적으로 지도자로 우뚝 서려고 하는 성향(individual-oriented)이 있고 여성은 같이 하려는 성향(group-oriented)이 있다고 설명된다. 노동조합 운영에서도 이런 면이 발견된다.
  
  남성들은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끌어가려다 보니 굉장히 비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게 된다. 그러나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운영할 때 모든 것을 조합원들과 같이 의논했다. 여성 노동운동가들은 조합원들 이름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려고 했고. YH노조의 최순영 씨 같은 사람은 조합원 3천 명의 이름을 다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예를 들어 남성 노동운동가들이 단체교섭을 할 때는 '빠다 조건'이라는 게 있다. 노조 지도자가 사용자한테 이번에 임금을 10%에서 1%를 더 올려주면 내가 노동자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노조가 시끄럽지 않도록 하겠다고 물밑 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조합원들한테 는 '당신들이 나를 위원장으로 뽑아준다면 다른 사람보다 임금을 1% 더 올리겠다'고 말하고.
  
  근데 여성 노동운동가들의 모습에서는 이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단체교섭을 할 때 임금 인상률을 지도부에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조합원들과 함께 결정했다. 1970년대에는 소그룹이 많았는데, 그런 소그룹에서 '이번에 우리가 임금을 얼마를 올려야 하는지' 자기들끼리 논의를 한다. 조합원들이 임금 인상률을 15%로 결정되면 집행부가 논의를 해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한 결정을 내리고, 공고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간부들은 교섭에 들어가서 반드시 15%를 올려야 한다. 조합원들의 의견이기 때문에 다른 '빠다 조건'으로 바꾸지도 못한다. 조합원들은 그들대로 내가 주장한 15% 인상을 간부들이 사용자와 교섭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지도부에 신뢰와 절대적 지지를 보낸다. 여기서 지도부는 또 싸울 용기와 힘을 얻는다.
  
  "혼자 결정하다 보니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회유가 잘 돼"
  
  조주은 : 동감한다. 남성 노조 지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이런 얘기들이다.
  
  전순옥 : 맞다. 그런 남성 노조 지도자들은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혼자 달려가다 보니 유혹에도 쉽게 무너진다.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회유가 잘 된다. 어용이 되기 쉽다. 박정희가 1960~70년대 노조를 완전히 어용화시켜 조정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남자들 몇 명만 잡고 있으면 노조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그런 분위기 탓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여성들이 중심이 된 노조는 그럴 수 없고, 비타협적이어서 오히려 박정희한테 큰 타격이었다. 그래서 더욱 박정희는 민주노조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YH노조가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할 때 겨우 여성 2백여 명이 농성을 하고 있는데 중앙정보부 김재규가 관여를 하지 않았느냐. 그만큼 그들의 행동을 큰 타격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두 사람을 회유하는 것으로 안 되니까 뿌리째 뽑아서 노조를 없애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상황을 바로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만들어냈다.
  
  조주은 : 당시에 여성노동자들의 파업을 남성노동자들이 앞장서 방해했었다. 구사대의 대부분이 남성노동자였고 여성노동자가 출근 투쟁할 때 위협을 가하고, 머리채를 잡으며 폭력을 가했던 게 다 남성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부분은 선생의 연구에서 별로 드러나지 않는다.
  
  전순옥 : 섬유나 방직 산업에서도 총 4천 명이 일하는 공장에 남자는 한 5백 명 정도에 불과했다. 1천3백 명 있는 공장에서 남자는 1백 명 정도가 있었고, 나도 당시 여성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당시 남성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당했느냐, 같은 노동자들에게 당하는 게 더 분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의 대답이 놀라웠다. 그들은 "아니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남성노동자들도 결국 사용자에게 고용된 희생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오히려 그런 남성노동자들을 노조 지도부에 넣으려고 노력했다. 이 사람들이야말로 계급의식이 훨씬 강했다. 남성과 여성의 대립 구도로 끌어가지 않았다. 만약에 그 남성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그게 바로 자본가들이 바랐던 '노-노(勞-勞) 갈등'이라고 여겼다. 개인적으로 이견이 있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최대한 그대로 반영하는 게 기록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내 책에서 남성과 여성간의 '적대적 관계'가 빠진 것은 그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 노동운동 썩었다"
  
  프레시안 : 현재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이 많이 있다. 두 분의 연구는 현재 이런 노동운동 경향에 대한 아픈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노동운동이 자기비판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조주은 : 극단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의 현재 노동운동은 '썩었다'고 생각한다. 파업을 하면서도 '삐삐 아줌마'를 불러서 같이 놀고... 울산에서 직접 보고 들은 차마 얘기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 가장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집행부를 장악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노사가 상견례를 핑계로 룸살롱을 같이 가는 경우도 많다. 사용자가 미리 대기시켜 놓은 아가씨들 끼고 양주 마시면서 놀고. 사용자가 용돈을 쓰라고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면서 미끼를 던지면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그걸 거부하지 않고 받기도 한다. 적어도 남성 노동운동가들도 자본가와 함께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놀이문화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전망을 가지고, 진보가 나올 수 있을까 굉장히 자괴감이 든다.
  
  오히려 나는 노동운동의 희망이 지금 현재 가장 변두리에 있는 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 그 중에서도 가장 주변부에 있는 노동자들의 활동 속에서 나오리라고 기대한다. 그들의 활동에서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순옥 : 자본가와 싸울 수 있는 조건은 자본주의화 되지 않는 것이다.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을 많이 올리는 것은 결코 자본과 싸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임금을 조금씩 올려 받으면서 노동자들은 '자본의 그물' 속으로 점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된 노동자라면 그런 것들을 오히려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아무리 임금을 올려 받아도 자본가처럼 잘 살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노동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임금인상이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됐다. 그것이야말로 자본가들이 원하는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들 중에서는 연봉 4~5천만 원, 심지어 6천만 원을 받는 곳도 있다. 강연을 하러 가면 아예 노조에서 그런다. 강연 듣는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임금이 올라가면 자연히 노동조합의 힘은 없어진다. 어느 정도 임금이 되면 노동자 동료들과 함께하기보다는 가족들과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각종 소비문화를 즐기고 싶어진다.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노조가 집회를 해도 '그것은 나하고는 상관 없는 일이다', 이런 식이다. 정말로 자본가들이 바라는 그런 노동운동이 지금 한국 노동운동의 모습이다.
  
ⓒ프레시안

  "영국 노동운동 조직이기주의로 망해. 현 대기업 노조 권력 다툼에 몰입"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영국 노동운동이 망했다고 본다. 그들은 노동조합이 조직이기주의에 빠져 비정규직이나 여성노동자들 등 주변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추구하는 데 등한시했고 결국 대중으로부터 소외됐다.
  
  그것을 절묘하게 이용했던 게 바로 대처다. 1980년대 대처가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있었다.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조합원 수를 줄여야 했고, 국영기업의 민영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 배경에도 이런 사정이 있었다. 국영기업을 사기업으로 만들면서 구조조정을 통해 한 사업장에서 반 수 이상의 노동자들이 해고됐다. 영국의 노조가 너무나 무기력하게 이런 공세를 당한 데는 노조의 조직이기주의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도 바로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봐야 한다.
  
  영국에 처음 간 1990년 초에 노동자 대회를 갔는데, 2백 명이 참석했더라. 당시 우리나라는 노동운동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을 때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성공할 때가 있고 기울 때가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운동도 이런 것을 똑바로 배워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조주은 : 현재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서로 조직의 권력을 잡는 데 몰두해 있다. 민주노총 현대자동차 노조 자유게시판을 한번 봐라.
  
  내가 남편하고 5년 정도를 떨어져 있었다. 남들이 남편이 '바람'을 필지도 모른다면서 걱정하곤 할 때마다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혹시 다른 여자하고 그런 일이 있다면 바로 자유게시판에 뜬다. 눈에 띄는 신인 노동운동가가 부인하고도 떨어져 있는데, 저 뒤를 캐면 속한 조직에 흠집을 낼 수 있겠구나 하면서 감시를 하는 거다. 남편이 속한 조직의 상대편 조직 사람들이 내 남편을 지켜주고 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웃음)
  
  현대자동차 노조의 경우에는 이번에 울산 북구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나왔기 때문에 권력을 둘러싼 경쟁이 더욱더 치열해질 것이다. 다음 현대자동차 노조 위원장을 하는 것은, 이후에 누가 울산 북구 국회의원을 하느냐의 문제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차마 말로 못하는 사정들이 너무나 많다.
  
  전순옥 : 사실 우리 노동운동 속에 보기에도 민망한 추악한 계파 싸움이 있다. 다들 다른 이데올로기를 표명하지만 사실 자기 조직을 지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이지 노동자를 해방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안다. 서로 자기 정파를 살리기 위해서 내분을 하고, 그 때문에 지도자들을 믿고 따랐던 노동자들이 희생을 당하고.
  
  이렇게 지도부가 계파 싸움에 몰두해 있는 동안 조합원들과 지도부의 괴리감이 커진다. 지도부가 뭘 하고 다니는지 조합원들이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없던 '지도부 불신임'이 많이 일어난다. 이런 속에서 노동운동의 노하우가 축적이 안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도부는 능력 없는 허수아비가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더 계파 싸움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프레시안 : 조주은 선생의 남편도 현대자동차 노조 활동가였다. 남편은 이 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나?
  
  조주은 : 남성노동자들을 너무 비하하는 표현들이 있어서 걸린다고 얘기했다. 예를 들면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성적인 시선으로 대한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을 "그러기 쉽다" 이렇게 고치는 식으로. (웃음)
  
  전순옥 :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여성은 18명을 인터뷰했는데, 현대자동차 남성노동자들의 수는 적다. 일부러 아내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가족 얘기를 쓴다고 해도, 부부 양쪽 얘기를 같이 들으면 내용이 더 풍부해졌을 텐데, 왜 그랬나? 남성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나, 아니면 의도적이었나?
  
  조주은 : 약간 의도적이었다. 이 연구를 하기 전에 울산 노동자 가족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부부를 같이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부인은 말을 한 마디도 못했다. 그런 거 보면서 같이 안 되겠구나 싶었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똑같은 사안을 놓고 부부를 동시해 인터뷰해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일 텐데, 울산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그럴 때 남자들은 대개 "나는 이렇게 얘기했는데 너는 뭐라고 했느냐. 너한테 이런 질문 할 테니 이렇게 답해라", 이런 식으로 아내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그래서 처음부터 아내의 목소리에 주목하기로 했다.
  
  프레시안 : 혹시 서로의 책을 읽으면서 세대차나 또는 시각차는 없었나?
  
  조주은 : 나 같은 경우는 오히려 가까워졌다. 솔직히 말하면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전순옥 선생의 책은 남성적 시각이 주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책 전체에 여성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반갑게 느껴졌다.
  
  "노동자 중에도 가장 힘없는 노동자에 마음 가. 그게 바로 여성노동자"
  
  전순옥 : 이 책을 쓸 때도 그랬고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여성주의자인지 안다. 또 여기 창신동에 와서 '참여성노동복지터'를 하고 있어서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냐' 물어보면 '아니다'라고 말한다. (웃음) 페미니즘을 거부하기 때문은 아닌데 어쨌든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노동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노동계급의 성향이 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노동계급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회에서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 같은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힘이 없는 노동자 쪽에 내 마음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항상 그곳에는 여성이 있었다.
  
  프레시안 : 괜한 것을 물은 것 같다. 그럼 상대방에 대한 조언이나 바람이 있을 법하다.
  
  전순옥 : 나는 오늘 조주은 선생이랑 같이 얘기를 해보니까 앞으로 같이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 얘기를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더 뚜렷해졌다.
  
  앞으로 빈민 여성에 관심을 가지는 학자들끼리 네트워크를 한번 해보고 싶다.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방점은 다르겠지만, 부분적으로는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일을 거라고 기대된다.
  
  조주은 : 나도 그 네트워크에 꼭 끼워 달라. (웃음) 나는 전 선생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한 게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에 <한겨레21>에 내 책에 대한 서평이 실렸는데 거기에 '여성학자 조주은'이라고 쓰인 것을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그 때 기분이 참 묘했다. 내 자신부터 여성학자라고 규정되는 게 당혹스러웠다.
  
  나는 전순옥 선생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선생이 하는 일이 가장 앞서가는 여성주의적 실천과 연구라고 생각한다.
  
  "노동자 목소리 대신 알려주는 게 내 할일"
  
 
  전순옥.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 (한겨레신문사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 :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전순옥 : 내가 연대하고 싶은 사람들, 이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이 너무 없었다. 창신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몇 시간을 일했고, 얼마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통계가 하나도 없다. 기존의 통계들은 너무나 공평하지 못하고 자의적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통계마저도 거부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고, 노동운동도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이 사람들은 그런 것과 무관하게 살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들의 통계, 아니 우리들의 통계를 만드는 것이 바로 내 꿈이다.
  
  영국에서 학위를 마쳤을 때, 그 학교에 자리가 났었다. 사실 고민하면서 영주권 신청까지 했다. 그러나 이런 결심을 굳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 마침 성공회대학에 연구교수 자리가 생겨서 가게 됐는데 거기도 딱 1년 만에 사표를 냈다.
  
  내가 원래 이 지역에서 여성노동자 공동체, 탁아소를 했다. 이제 외국까지 가서 박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니까 주변에서 '박사까지 하고 이걸 하느냐'고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바로 박사까지 했기 때문에 꼭 여기로 돌아와야 했다고 생각한다.
  
  전태일 오빠는 70년대 노동자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했다. 그런데 그가 보잘 것 없는 노동자였기 때문에 아무도 귀를 안 기울였다. 만약 전태일이 대학생이었어도 그랬을까?
  
  여기서 1960~70년대부터 노동을 하고 있던 여성노동자들이 16시간씩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어도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돌아오니까 인터뷰도 하고, 한마디 하면 신문에도 실리고 그러더라. 그게 바로 외국 유학 다녀온 박사라는 타이틀 때문이라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사회에 알려주는 역할이 바로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주은 : 나는 아직 학위 과정 중에 있으니까 큰 포부를 말하기는 좀 어렵다. 다만 노동자 가족 문제에 계속 천착해 들어갈 생각이다. 솔직히 노동자 가족을 연구하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현대가족 이야기>는 노동자 안에서도 가장 상층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젠 가장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가족에 대해서 연구해보고 싶다. 또 민족주의적인 태도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더 홀대 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의 가족에 대해서도 연구를 해보고 싶다.
  
  "권력 가진 이들의 정체된 의식이 사회의 정체 낳아"
  
 
  조주은. <현대가족 이야기> (이가서 펴냄) ⓒ프레시안

  프레시안 :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자. 각자 영역에서 두 분은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나.
  
  전순옥 : 요즘엔 현대 사회와 가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곤 한다. 가족이 어떤 가치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이런 생각 말이다. 서구와 달리 우리는 끈끈한 가족애,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었고 나는 그것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졌는데 그 동안 많이 변했더라.
  
  사회가 발전하면서 경제 성장이라는 한 가지 목표만 열중하다 보니까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제 우리 사회도 거시적인 것보다는 좀더 미시적인 접근을 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왜 노동운동을 하고, 정치를 민주화하려고 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하려고 했나. 왜 우리가 그렇게 혁명을 목소리 높였나. 바로 내 삶을, 또 이웃들의 삶을 좀더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나?
  
  그게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가치관을 어디다 놓느냐에 따라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부터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때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달려갈 것인지를 점검한 다음에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
  
  조주은 : 질문에 답하기가 막막했는데 전순옥 선생 말씀을 듣고 보니 감이 온다. (웃음) 우리 사회는 현재 엄청난 변화와 정체가 섞여 있는 것 같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여자가 법무부 장관을 하고, 그가 이혼했다는 게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변했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뭔가가 있다.
  
  난 두 아이 엄마인데 큰 애가 '가정환경 조사서'를 갖고 왔다. 너무 놀랐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그 양식 그대로더라. 여성, 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좀더 힘 있는 사람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체된 의식이 바로 사회의 정체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의사소통이 안 되고 힘을 가진 사람 위주로 돌아가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고.
  
  변화의 가능성과 과거의 정체가 혼돈돼 있는 이럴 때일수록 조금이라도 더 힘을 가진 사람들부터 우선 변할 필요가 있다. 당장 우리 사회 남성들부터 조금씩 변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이끌어내기 위한 여성들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프레시안 :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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