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10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1/08
    계몽의 시대?(3)
    hongsili
  2. 2004/11/04
    모터사이클 다이어리(9)
    hongsili
  3. 2004/11/02
    하워드 진의 사인을 받다!!!(7)
    hongsili
  4. 2004/11/01
    시간 바이러스?(2)
    hongsili
  5. 2004/10/30
    무엇을 할 것인가 2(2)
    hongsili
  6. 2004/10/29
    인류 생태학...(6)
    hongsili
  7. 2004/10/28
    중국의 보건의료개혁...(2)
    hongsili
  8. 2004/10/22
    조카 편지
    hongsili
  9. 2004/10/21
    빨간 양말의 우승(4)
    hongsili
  10. 2004/10/21
    캠브리지 생활 #5 - 요리 이야기(6)
    hongsili

[필독] 방문 이벤트

* 이 글은 홍실이님의 [방문 이벤트 *^^*]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포스트가 밀려서 안 보일까봐 친절하게(^^) 다시 공지합니다.

 

3천번째 방문객, 그리고 2999 혹은 3001번째 방문객께서는 친히 덧글을 달아주세요.

 

그럼...

 

두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프레시안 펌] 위기의 한국의료 2

영리병원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과연 한국의료의 대안인가?
  
  지금 우리나라 보건의료 제도는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지난 9월부터 정부가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는 여러 법률들의 제정 및 개정 때문이다. 대표적인 보기 두 가지만 살펴보자.
  
  먼저 재정경제부가 제출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9월 10일 입법예고). 이 개정안은 기존 법률에서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라는 용어를 없애고, 의료기관 개설의 주체로 기존의 "외국인" 외에 "외국인 투자 기업"을 덧붙였다.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이라는 용어를 없앤 것은 곧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경제자유구역에 사는 외국인만을 상대해서는 외국병원이 수입을 올릴 수 없고 따라서 들어올 외국병원이 없다는 것이 법률 개정의 이유라고 한다. "외국인 투자 기업"을 덧붙인 것은 국내 기업이 영리병원을 세우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외국인투자촉진법은 "외국인 투자 기업"을 "외국인"의 투자 금액이 5천만 원 이상이면서 주식의 10% 이상인 기업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 중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다음으로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한 복합도시개발 특별법(기업도시법) 제정안(9월 22일 공청회 자료). 법안 공청회 자료에 따르면 기업이 도시개발과 동시에 의료기관을 세울 수 있으나 병원 운영을 시작할 때 비영리 의료법인으로 바꾸어야 한다. 특이한 점은 노인 병원, 생명공학 전문병원, 암 전문병원 등 특수 목적 병원을 운영할 때 발생하는 잉여금 일부를 기업도시 개발에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으나 실질적으로는 의료기관을 운영해서 생기는 수익을 의료기관 바깥으로 유출하는 것을 허용한다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이다. 말하자면 실질적으로는 영리법인 의료기관 운영을 용인하는 법이다.
  
  "의료'기업' 만드는 데 혈안된 정부
  
  여기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정부가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는 핵심 법안들이 모두 영리법인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나라 의료 제도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이들 정책은 모두 경제 부처에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은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가 복지정책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부처들의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정책에 맞서는 방파제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이 나라의 국정의 형편이다.
  
 
  ⓒ연합뉴스

  참여정부 보건의료 정책의 핵심 공약이라 할 수 있는 45%에 머물고 있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진료비가 100만원이면 자기 주머니에서 55만원을 내야한다는 뜻)의 80%까지의 확대와 8%에 머물고 있는 공공의료기관의 30%까지의 확대(OECD 평균은 공공의료기관비율이 75%이다) 정책은 새 정부 출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근 경제 부처의 정책 드라이브가 참여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리병원, 정확하게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정책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병원을 세우는 데 외부의 자본을 끌어들이고 병원을 운영하여 거둬들인 이윤을 자본 투자자들에게 배분하는 것이 영리병원이다. 영리병원은 '이윤 획득'을 존재 이유로 삼는 하나의 의료 '기업'인 셈이다.
  
  영리병원의 장점은 단순한 경제 논리, 즉 경쟁 논리라는 경제학의 상식에 기초하고 있다라는 점에서 주장되고 있다. 그리하여 이윤 동기는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경쟁력 강화는 서비스 개선과 비용 절감, 가격 하락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보건의료가 다른 재화나 서비스에 비해 특수하다는 것이 모든 보건학과 보건경제학 교과서의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요약하면 의료라는 재화는 다른 상품과 달리 소비자가 의료라는 상품을 판단하기 곤란하고 따라서 공급자가 주도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의료가 필수재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효율적일까?"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보다 효율적이다? 이론적으로도 사실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진지 오래다. 우선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일 경우 하지 않아도 될 비용부담이 크다. 영리병원은 우선 비영리병원보다 세금부담이 높다. 또한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마케팅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비영리병원을 운영할 때는 그리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가 있다.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배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푸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먼저 수입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의료의 특성인 소비자 무지(consumer's ignorance)를 악용하여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환자는 자신의 병이나 치료 내용에 대하여 (설명을 듣더라도) 알기 어려우므로, 속수무책인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환자의 조기 퇴원을 유도하여 병상 회전율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은 의료 산업에서는 의료진, 특히 간호사나 보조 인력의 수를 줄이는 것이 효과적인 방안일 수 있다.
  
  이렇게 상식선에서 파악할 수 있는 영리병원의 장단점은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을까? 미국의 사례가 도움이 된다. 미국의 경우 2002년 현재 영리병원의 병상수가 전체 병상수의 13%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을 비교할 수 있는 자연 실험(natural experiment)의 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연구 결과 몇 가지만 살펴보자.
  
  -메디케어(Medicare)* 중증 환자의 영리병원 사망률은 비영리 비수련(non-teaching) 병원보다 7%, 비영리 수련병원보다 25% 정도 높았다. (메디케어는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미국 연방 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장 제도다.)
  
  -여러 연구에서 영리병원 진료비가 비영리병원 진료비보다 3-11% 가량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영리병원 진료비가 더 싸다고 보고한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보다 관리 운영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반면, 간호사와 기타 의료진에 대한 인건비 지출은 더 작은 것(40.9% 대 48.0%)으로 나타났다.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환자 사망률을 비교한 15편의 연구 결과를 메타분석을 통해 종합한 결과, 영리병원 환자 사망률이 의미 있게 높았다.(메타분석은 쉽게 말하면 여러 연구를 분석하는 포괄하여 분석하는 연구방법이다.)

  
  서비스의 질 개선과 비용 절감, 가격 하락 등 영리병원에 대한 희망 섞인 기대가 현실 속에서 보기 좋게 배반당한 셈이다. 단지 영리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유로 환자의 사망 확률이 커진다면, 그 어떤 것이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을 정당화할 수 있단 말인가?
  
  "영리법인 의료기관 도입하면 '민간의료보험'도 도입될 것 뻔해"
  
  그럼에도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경우, 뒤이어 따라오는 변화는 '민간의료보험' 도입이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감당하는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절반 수준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건강보험을 의료보장 제도가 아니라 '진료비 할인 제도'라고 비꼬기도 한다. 이렇게 급여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비영리병원보다 진료비가 비싼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목돈을 당장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별도의 보험에 들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영리병원이 허용되지 않더라도 건강보험의 급여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다른 대안을 찾기 마련이다. 바로 민간의료보험이다.
  
  마침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민간의료보험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보험개발원의 연구 결과가 거의 모든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지난 10월 14일 보험개발원은 이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경우 본인부담금 비율은 OECD 조사대상국 중 최상위로 나타났으며, 전체 의료비 지출 중 공적건강보험의 지출구성비는 최하위로 나타나 민영건강보험의 활성화가 절실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연구 결과는 정부가 펴내는 <국정브리핑>에 실린 것은 물론, KBS, SBS, iTV, CBS, YTN, MBN 등 방송 전파를 탔으며, <중앙일보>, <한국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국민일보>, <문화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심지어는 <스포츠한국>도 같은 내용을 논평 없이 고스란히 "받아 적었다."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과연 그렇게도 매력적인 대안인가? 공적건강보험의 지출 구성비가 최하위라는 문제의 해법이 공적건강보험의 급여 확대가 아니라 민영건강보험 활성화가 될 만큼 민간의료보험 도입이 절실한가?
  
  이 또한 상식선에서 문제를 본다면,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영리병원과 마찬가지로 사(私)보험의 존재 이유도 역시 '이윤 획득'이다. 사보험도 보험 '기업'이 파는 상품이다. 획득한 이윤을 투자자들에게 배당하기 위하여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위한 공세적인 마케팅 활동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관리 운영비가 커질 수밖에 없다. 바로 그만큼, 환자 진료에 쓰는 비용은 줄어들게 된다. 건강하고 돈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가입도 쉽지 않다. 나이가 많고 가난한 사람일수록 질병 발생 확률이 크기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보험료가 많거나 아예 보험회사가 가입 자체를 기피할 수도 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공적인 건강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1백원을 내면 기업주가 1백원을 내야한다. 건강보험공단 관리비로 15원이 들고 따라서 가입자가 받는 비용의 혜택은 1백85원이다. 그러나 모 생명보험의 경우 작년 한해 수입은 2조원인데 비해 가입자에게 지불한 돈은 6천억원이다. 말하자면 1백원을 가입자가 내면 돌아오는 돈은 30원이다. 6배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식을 다시 자연 실험의 장인 미국으로 가져가서 극적인 두 가지 사례만을 살펴보자. 인구 3천4백만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큰 건강보험으로 꼽히는 것은 비영리의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와 영리적으로 운영되는 청십자(Blue Cross) 건강보험이다. 그런데 2000년 기준으로 전자는 보험료 수입의 96%를, 후자는 76%를 보험 의료비로 지출하였다. 결국 20%의 차이에 해당하는 금액이 투자자에 대한 이윤 배당과 공세적인 마케팅 비용 등 간접비로 지출된 셈이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공적의료보장 제도에 해당하는 메디케어와 비영리 청십자 건강보험, 그리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의료보험의 간접비 비중을 비교한 그림이다. 그림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는 막대그래프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고 있는 암보험 상품의 간접비, 정확하게는 사업비의 비중을 보여준다. 2003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따르면 건강보험의 간접비, 즉 관리운영비는 4.1%였다.
  
  "우려스러운 참여정부의 '선택'"
  
  지난 7월 14일, 재정경제부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제출한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이라는 보고 문건을 통해 "개방과 경쟁을 통한 서비스의 질 향상, 고용 창출 및 성장 기여, 국제수지 개선 등의 효과를 체험케 함으로써 이해집단의 인식을 바꾸고 사회적 합의 기반을 확충"할 것을 주장했다.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도입 정책은 그 주장의 핵심에 서 있다. 과연 이들 정책이 한국 의료의 새로운 대안인가? 대답은 부정적이다. 우리의 상식과 현실적 근거들은 재정경제부의 바람과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변화의 갈림길에 놓인 한국 의료, 참여정부의 선택이 우려스럽기만 하다.

 

최용준/한림의대 사회의학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프레시안 펌] 위기의 한국의료 1

위기의 한국의료, 현실 진단과 해법
  
  요즘 한국 의료의 속내를 유심히 살펴본 사람이라면 한결같이 '내우외환의 위기 상황'이라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위기의 징후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우선 급증하는 의료비 지출이다. 1995년 5조원이던 건강보험재정 지출이 2003년 현재 16조원으로 무려 3배 이상 증가했다.
  
  병원업계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병원협회의 추산에 따르면, 1998년 3.7%이던 병원 도산율이 2002년 9.5%로 급증했다. 상당수의 병원이 경영적자를 호소하고 있는데, 이를 단지 병원업계의 엄살로 치부하기는 곤란한 실정이다. 의료에 대한 국민의 반응도 위험 수위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의료소비자권리찾기' 토론방에는 개설 6일만에 1천3백50여건의 의견이 올라왔고, 조회 건수만도 20여만 건에 달했다. 게시된 의견의 대부분은 병원과 의사, 그리고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불만을 여과없이 드러낸 것들이었다. 여기에다 2006년 예정된 의료시장 개방은 한국의료에 대한 불안감을 한층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 의료의 위기, 고령화 진행될수록 더 본격화될 것"
  
 

  문제의 심각성은 아직도 한국의료의 위기가 본격화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한국에서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급속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인구 고령화는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키는데, 그 중 하나가 의료비 급증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2001년 현재 33조, GDP의 6.1%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의료비는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2020년경에는 1백71조, GDP의 11.4%로 증가하고, 2040년경에는 7백43조, 2050년경에는 1천2백87조로 GDP의 26.5%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 부양비가 높아지면서 국가 생산성이 현저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사회가 과연 이 같은 의료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을지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의료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법을 마련하는데 있어 의료비 지출을 '적정화'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병원의 위기는 '의료의 과잉'이 빚어낸 구조적 문제"
  
  한국은 의료장비의 본산이랄 수 있는 미국보다 더 많은 고가 의료장비를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백만명당 CT와 체외충격파쇄석기 보유대수는 30.9대(미국 : 13.1대)와 6대(미국 : 2.9대)로 미국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 병상 수도 마찬가지다. 인구 천명당 급성병상수의 OECD 평균이 3.1병상인데 반해 한국은 5.2병상에 이른다. 게다가 매년 3천5백여명에 달하는 신규 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병원의 출혈, 과다경쟁이 불가피하다.
  
  특히, 경제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병원 구조는 한국의료를 정상화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규모의 경제'에 미달하는 3백병상 미만의 중소병원이 전체 병원의 83.1%, 병상 기준으로는 54.1%에 달한다. 의료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과거에는 굳이 '규모의 경제'를 충족시키지 않아도 병원 운영에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과잉상태로 접어든 지금, 더 이상의 정상적 병원 운영은 불가능해졌다. 일부 병원은 도산했지만, 더 많은 수의 병원은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고, 매출을 늘리는 생존전략을 택하고 있다. 병원인력 감축과 노동조건 악화에 따른 의료의 질 저하, 매출 증가를 위한 과잉진료와 부당청구 등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같은 '의료의 과잉'은 한국의료의 미래를 설계하는데 있어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큰 우환거리이다.
  
  "의료의 양극화, 불만의 양극화"
  
 
  한국의 의료가 위기에 처해 있다. 1997년 IMF위기 이후 진행돼 온 부의 양극화는 이렇게 의료의 양극화까지 초래하고 있다. ⓒ연합뉴스

  모든 것이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사회 전반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의료도 예외가 아니다. 매년 적지 않은 수의 부유층 환자가 질병 치료를 위해 미국병원을 찾고 있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이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일선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예전 같았으면 벌써 병의원을 찾았을 환자들이 2천~3천원 하는 진료비 부담 때문에 병의원 찾기를 꺼린다고 한다. 가족 중에서 중한 환자가 생기면, 집 팔고 전세금 빼는 경우도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우려되는 점은 의료이용의 양극화가 건강의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이미 그런 조짐은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울산의대 강영호 교수가 최근 분석한 바에 따르면, 학력과 경제력이 낮은 계층이 중류 이상의 계층보다 사망위험이 1.5~2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 건강의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의료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부유층은 의료서비스 수준을 탓한다. 한마디로 기대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돈을 더 내도 좋으니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 달라는 요구다. 이에 반해, 상당수의 국민은 의료비가 비싸다고 호소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과 크기로 볼 때, 응당 후자의 불만 해소에 정책적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정부정책 방향과 언론을 통해 형성된 사회적 의제는 이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오히려 '다양화되고 고급화된 의료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에 더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고급의료에 대한 '선호'를 보장하기 위해 대다수 국민의 필수의료에 대한 '권리'를 배제하거나 축소하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의료와 건강의 양극화는 이해당사자간의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갈등구조를 고착시킨다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위기의 한 측면이다.
  
  "의료시장 개방, 병원업계의 공갈ㆍ협박"
  
  많은 이들은 의료시장이 개방되는 2006년이면, 파란 눈의 외국인 의사가 한국으로 물밀 듯이 몰려 올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루빨리 한국의료를 옭아매고 있는 각종 규제를 철폐해서 자유경쟁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2006년의 상황은 그야말로 상상에 그칠 공산이 크다. 현재 WTO DDA 서비스 개방협상이 진행 중인데, 자국의 의료인력을 선진국으로 수출하려는 일부 개발도상국을 제외한 대다수 국가가 의료시장 개방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대다수 선진국들은 '의료의 공공성'을 근거로 서비스 협상 대상에서 의료를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정황을 모를 리 없는 이들이 한사코 의료시장 개방을 들먹이는 데에는 숨겨진 의도가 있다. 병원업계는 이 사안을 정부에 규제 완화를 요구할 수 있는 호재로 인식하고 있다. 영리법인 허용, 민간의료보험 확대,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탈퇴 허용 등을 요구할 때마다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논리가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이해관계도 일치한다. 시장 원리에 맡기는 의료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정부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의료시장 개방이라는 외부의 위기요인은 사실상 한국의료 내부의 문제이다. 실체도 없는 외부의 위기를 들먹이면서 편법적으로 최소한의 규제조차 없애겠다는 것은 한국의료의 위기를 더욱 가중시킬 뿐이다. 집 대들보가 썩어 무너져 가는데, 오지도 않을 손님 맞겠다고 대문에 페인트칠하는 꼴은 면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과연 우리의 대안인가"
  
 


  한국의료는 보편적 국제규범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다. OECD 국가를 비교해 보면, 한국은 멕시코, 미국과 함께 시쳇말로 '독도'다.
  
  이런 경향은 각국 국민의 건강수준과 의료제도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독도' 국가의 건강수준과 만족도가 다른 국가보다 뒤쳐지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국민의료비에서 공공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적은 재원으로 더 나은 의료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 연구의 공통된 결론이다.
  
  현재 한국의료의 진행방향은 미국의 위치로 수평이동하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한국의료의 바람직한 귀착점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많은 선진국이 우리보다 앞서 인구 고령화와 의료의 과잉을 경험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현재의 의료제도를 갖추게 된 것이라면, 대다수 OECD 국가가 위치한 방향이 보다 나은 대안이 아닐는지?
  
  "한국의료, 어디로 갈 것인가"
  
  거시경제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민생이 계속 피폐해져 간다면, 그 경제를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의료서비스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의료제도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거나 상당수의 국민이 자신의 질병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바람직한 의료라고 할 수 없다.
  
  정부는 의료부문에 자본참여를 활성화시켜 의료를 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일관된 정책기조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은 그렇지 않아도 과잉상태에 있는 한국의료를 폭발직전의 상황으로 내몰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정확한 원인 진단이 필요하다. 한국의료에 부족한 것은 '활성화'가 아니라 '적정화'다. 실체 없는 외부의 위기를 근거로 한국의료의 진짜 위기를 간과하는 경향도 경계해야 한다. 과잉투자를 조장하고, 의료의 영리화를 부추기는 정책은 국민의료비 급증에 대한 사회적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곧 본격화될 한국의료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외양'이 아니라 '내실'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진석/충북의대 교수, 의료관리학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방문 이벤트 *^^*

다른 사람들 블로그에 가보니 방문 이벤트라는 것이 있더라.

**** 번째 방문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같이 영화를 보거나 기타 등등...

 

재밌을 것도 같다. 하여.. 내 블로그에도 3천번째 방문객에게 경품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한번 해볼까 한다. 근데, 진보넷 블로그의 속성 상 본인 스스로 알려주기 전까지는 도대체 누가 언제 다녀갔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방문객의 양식을 믿고 진행할 뿐...

 

- 공 고 -

 

홍실이 블로그 3000번째 방문자께서는 꼭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푸짐한 상품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 3000번째 방문자 : 1일 무료 숙박권(우리집) + 저녁 만찬 초대권(우리집에서 하는) + 무료 커피 시음권(물론 우리집)

 

2. 아차상- 2999 혹은 3001번째 방문자 : 새해맞이 연하장 수령권(홍실이 자필 사인 첨부)

 

한가지 주의할 점은.... 당첨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선물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선물은 반드시 전달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반/드/시...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quot;Victory by the Inch&quot;

뉴욕타임즈 1면 기사 제목이다.

그 옆단 기사에는 10명의 미국 군인이 전사했다는 소제목이 달린 기사가 자리해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이라크 민중들은 폭탄세례를 받고 있다. TV나 신문이나, 뉴스를 보고 있으면 눈물이 핑 돈다.

 왜? 이라크 민중들의 모습이 너무 불쌍하고 참혹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장면은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모습들은 미군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이걸 거창하게도 "embeded" 라고 표현한다), 소위 기자라 불리우는 개들이 촬영한 미군의 용감한, 혹은 박진감 넘치는 장면들 뿐이다. 

 저널리스트들마저 떠나버리고, 환자를 치료할 의사도 병원도 없는 지구 반대편의 저 곳.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Nobody cares!

 

  팔루자 소식도 한 꼭지, 보스턴 시내 터널 누수도 한 꼭지, 뉴잉글랜드 지방의 플라잉 낚시 명소도 한 꼭지... 미국 뉴스는 참 공평도 하더라.

 

 인간은 과연 이성을 가진 존재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캠브리지 첫 눈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이 깊고 어두운 겨울을 어찌 통과할 것인가.....

라고 고민하기 전에 임박한 이 보고서들을 어찌 해치울 것인가 고민해야된다.

아까... 서울에서 원고독촉 국제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서 실신할 뻔했다.

영어도 아닌데 막 혀가 꼬이면서... 하핫... 잘 지내시죠...

 

사실... 지금 이거 쓸 때가 아닌데.. 꼭 시험때, 보고서 마감 때면 뭔가 다른게 하고 싶어지니 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The Optimism of Uncertainty


.........  by Howard Zinn  November 06, 2004   
  
In this awful world where the efforts of caring people often pale in comparison to what is done by those who have power, how do I manage to stay involved and seemingly happy?

 

I am totally confident not that the world will get better, but that we should not give up the game before all the cards have been played. The metaphor is deliberate; life is a gamble. Not to play is to foreclose any chance of winning. To play, to act, is to create at least a possibility of changing the world.

 

There is a tendency to think that what we see in the present moment will continue. We forget how often we have been astonished by the sudden crumbling of institutions, by extraordinary changes in people's thoughts, by unexpected eruptions of rebellion against tyrannies, by the quick collapse of systems of power that seemed invincible.

 

What leaps out from the history of the past hundred years is its utter unpredictability. A revolution to overthrow the czar of Russia, in that most sluggish of semi-feudal empires, not only startled the most advanced imperial powers but took Lenin himself by surprise and sent him rushing by train to Petrograd. Who would have predicted the bizarre shifts of World War II--the Nazi-Soviet pact (those embarrassing photos of von Ribbentrop and Molotov shaking hands), and the German Army rolling through Russia, apparently invincible, causing colossal casualties, being turned back at the gates of Leningrad, on the western edge of Moscow, in the streets of Stalingrad, followed by the defeat of the German army, with Hitler huddled in his Berlin bunker, waiting to die?



And then the postwar world, taking a shape no one could have drawn in advance: The Chinese Communist revolution, the tumultuous and violent Cultural Revolution, and then another turnabout, with post-Mao China renouncing its most fervently held ideas and institutions, making overtures to the West, cuddling up to capitalist enterprise, perplexing everyone.

 

No one foresaw the disintegration of the old Western empires happening so quickly after the war, or the odd array of societies that would be created in the newly independent nations, from the benign village socialism of Nyerere's Tanzania to the madness of Idi Amin's adjacent Uganda. Spain became an astonishment. I recall a veteran of the Abraham Lincoln Brigade telling me that he could not imagine Spanish Fascism being overthrown without another bloody war. But after Franco was gone, a parliamentary democracy came into being, open to Socialists, Communists, anarchists, everyone.

 

The end of World War II left two superpowers with their respective spheres of influence and control, vying for military and political power. Yet they were unable to control events, even in those parts of the world considered to be their respective spheres of influence. The failure of the Soviet Union to have its way in Afghanistan, its decision to withdraw after almost a decade of ugly intervention, was the most striking evidence that even the possession of thermonuclear weapons does not guarantee domination over a determined population. The United States has faced the same reality. It waged a full-scale war in lndochina, conducting the most brutal bombardment of a tiny peninsula in world history, and yet was forced to withdraw. In the headlines every day we see other instances of the failure of the presumably powerful over the presumably powerless, as in Brazil, where a grassroots movement of workers and the poor elected a new president pledged to fight destructive corporate power.

 

Looking at this catalogue of huge surprises, it's clear that the struggle for justice should never be abandoned because of the apparent overwhelming power of those who have the guns and the money and who seem invincible in their determination to hold on to it. That apparent power has, again and again, proved vulnerable to human qualities less measurable than bombs and dollars: moral fervor, determination, unity, organization, sacrifice, wit, ingenuity, courage, patience--whether by blacks in Alabama and South Africa, peasants in El Salvador, Nicaragua and Vietnam, or workers and intellectuals in Poland, Hungary and the Soviet Union itself. No cold calculation of the balance of power need deter people who are persuaded that their cause is just.

 

I have tried hard to match my friends in their pessimism about the world (is it just my friends?), but I keep encountering people who, in spite of all the evidence of terrible things happening everywhere, give me hope. Especially young people, in whom the future rests. Wherever I go, I find such people. And beyond the handful of activists there seem to be hundreds, thousands, more who are open to unorthodox ideas. But they tend not to know of one another's existence, and so, while they persist, they do so with the desperate patience of Sisyphus endlessly pushing that boulder up the mountain. I try to tell each group that it is not alone, and that the very people who are disheartened by the absence of a national movement are themselves proof of the potential for such a movement.

 

Revolutionary change does not come as one cataclysmic moment (beware of such moments!) but as an endless succession of surprises, moving zigzag toward a more decent society. We don't have to engage in grand, heroic actions to participate in the process of change. Small acts, when multiplied by millions of people, can transform the world. Even when we don't "win," there is fun and fulfillment in the fact that we have been involved, with other good people, in something worthwhile. We need hope.

 

An optimist isn't necessarily a blithe, slightly sappy whistler in the dark of our time. To be hopeful in bad times is not just foolishly romantic. It is based on the fact that human history is a history not only of cruelty but also of compassion, sacrifice, courage, kindness. What we choose to emphasize in this complex history will determine our lives. If we see only the worst, it destroys our capacity to do something. If we remember those times and places--and there are so many--where people have behaved magnificently, this gives us the energy to act, and at least the possibility of sending this spinning top of a world in a different direction. And if we do act, in however small a way, we don't have to wait for some grand utopian future. The future is an infinite succession of presents, and to live now as we think human beings should live, in defiance of all that is bad around us, is itself a marvelous victory.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계몽의 시대?

미국 선거 결과를 두고 이래저래 말도 많다.

뉴욕타임즈에는 뉴욕 시민들의 기이한 자괴감에 관한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자기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민주당을 지지했고, 자기 주변에서 아무도 공화당을 지지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막상 투표함을 열어보니 다수의 미국인들이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란다. 더구나 테러를 직접 당해본 자기네들도 민주당을 찍었는데, 세상에 폭탄 한 번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저기 시골 알라바마, 네브라스카, 아이다호 이런데가 테러 위협 때문에 공화당을 찍었다니 원 얼마나 황당한가.  스스로 미국 내 왕따라는 생각이 드는가보다. 물론 내가 일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센터 소장인 Reich는 자신의 상태를 "post-election trauma syndrome"이라고 표현했다. Ichiro 는 일본에 지진 난 것보다 이게 더 충격이라고 했다.

 

마이클 무어는 이래저래 이유를 대며 그래도 이번 선거가 희망적인 이유를 쓰기도 했다. 물론 외국인들은 이해하려 하지도 말라고 했다.

 

발빠르게, 뉴욕타임즈에는 민주당의  실책(?)을 비평하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종교나 도덕, 총기 등 사회적인 의제에 민주당이 너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럼 어쩌란 소리인지 모르겠다. 민주당도 낙태에 반대한다고, 동성결혼에 반대한다고, 총기 허용에 찬성한다고 소리를 높이라는 소리인지, 아님 더욱 적극적으로 자유주의 가치를 옹호하라는 소리인지....

 

이번 선거는 Fact 에 대한 Faith의 승리라고들 한다. 선량하고(!) 정신나간(!) 미국 복음주의자들 덕분에 온 세계가 4년 동안 잠못 이루는 밤을 보내게 생겼다. 노골적인 계급적 반동성을 "종교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내공이 이미 우화등선의 경지에 오른 공화당의 노련함이 두려울 뿐이다.

과거에 세미나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역사는 단선형으로 발전하는게 아니라 나선형 발전을 한다고 했었다. 가끔은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도 있는 법이다.  다시금 신정일치의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제 이 어둠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한번 계몽주의의 불꽃이 피어오르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팔자에 없는 르네상스 인이라니.... 

 

하긴.. 이렇게 미국 흉보는 것도 좀 부끄럽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삼위일체 꼴통(자본과 언론과 종교)들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어제 밤에 선거방송 본다고 논문도 안 읽어가서 수업시간에 횡설수설했다. 남의 나라 선거를 이렇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봐야하는 우리네 처지란....

울적한 마음에 (그렇다고 케리가 되었으면 좋아했을까도 의문이지만), 영화를 보러갔다. 극장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좌석번호가 없다. 손님은 달랑 네 명, 음질과 화면도 꽤나 훌륭한데.. 고맙기도 하지.

 

영화는 정말 재미(!)가 있었다. 시종일관 두 사람의 티격태격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그리고 아름다운 남미의 자연과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일상...

가장 가슴에 남는 장면은... 오토바이도 없이 추적거리며 사막(고원)을 걷다가 마주친 젊은 부부.. 그들은 공산주의 사상 때문에 추방당해서 일자리를 찾아 광산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은 에르네스토와 알베르토에게도 일자리를 찾아 여행 중이냐고 묻는다. 이어지는 침묵... 우린 그냥 여행을 위해 여행하는 거다..... 그 당혹스러움이란.... 다음날 광산 입구 땡볕에 앉아 노동자로 뽑히기(!) 위해 죽치고 앉아있는 남루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분명히 살아있는 사람이건만 삭막한 광산지대, 바위들 틈에 또다른 바위처럼 고정되어있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생명있는 인간이 아닌 듯 싶었다. 체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가는게 당연했다.

 

그러나, 에르네스토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물 네 살의 고민을 스물 대여섯 살 혹은 서른살을 기념하여 (잔치는 끝났다고 장탄식을 하면서) 접어버리는 반면,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천식 때문에 고생하는 그 유약한 청년이 어떻게 게릴라 투쟁을 해나갈 수 있었는지.... 다소 과장되어 보이는 휴머니스틱(!)한 장면들이 없지는 않았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을 괴로워하는 예비의사의 갈등... 나환자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 어찌 보면 너무 진부한 모습이지만, 이게 미국식 영웅주의 모험담이 아니라 실존했던 청년의 이야기였음을 떠올린다면 결코 그렇게 폄훼할 수가 없다. 그걸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속물성이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이다. 더구나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실제 사진들을 보고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영화 마지막, 알베르토 옹(ㅜ.ㅜ)의 현재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마음은 한량없이 무거워졌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이 영화를 봤다니...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

하워드 진의 사인을 받다!!!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영어 시간에 강사인 매튜가 알려주기를 최근 하워드 진의 새 책 Voices of a people's hitory of the United States 이 발간되었는데, 기념 행사가 이 근처에서 열린다고 같이 가보자고 했다. 매튜 왈, 자기가 이 양반을 진짜 존경하는데, 나이도 이제 일흔을 넘었고, 아마도 이번에 보는게 평생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거라 했다. 듣고 보니 그럴거 같기도 하고, 실제 궁금하기도 하고.. 직접 가보게 되었다.

 

가보니 예상과는 좀 다른 행사였다. 대강당에서 열리는 하워드 진의 강연회인줄로 알았는데, 막상 가보니 동네(Somerville)의 소극장(지역 행사가 많이 열리는 듯했는데, 규모는 대학로의 학전보다 조금 작은 정도..)에서 낭독회 겸 저자와의 대화가 이루어졌고,예상했던 방식의 "강연"은 없었다. 시작 무렵에는  바람잡이 겸 해설자의 한바탕 원맨쇼가 열려서, 정말 어리둥절(ㅜ.ㅜ)했다. 이거 무슨 시골 악극단 공연도 아니고...

 

이번에 발표된 책은 하워드 진이 직접 저술했다기보다 책 제목대로 미국의 민중운동사에 길이 남을 "민중"들의 목소리를 모아놓고 거기에 해설을 덧붙인 것이다. 16세기부터 2003년까지 포괄하고 있으니 광범위하기도 하다. 여기에는 노예제 반대 투쟁에 나섰다가 법정에 선 흑인의 변론, 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는 미국 IWW의 연설문, 최근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참전 군인의 편지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에 집회나 문화행사 등에서 시 낭송을 하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이렇게 산문을 읽어주는 행사는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는데... 워낙 연설문, 편지, 이런 것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낭송 자체가 주는 울림이 정말 굉장했다.

 

한편, 중간의 소개말과 강독이 끝난후 질의 응답 시간에 보여준 진의 태도는 차분하면서도 낙관에 차 있는, 조금 전의 격렬한 연설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람들 질문하는 것을 들어보니 웃겼다. 도대체 왜 미국인들이, 특히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부시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냐...  우리만 궁금한줄 알았더니, 자기네들도 그게 진짜 궁금했었나보다. 진의 대답은, 부시의 어젠다로부터 benefit 을 얻는 사람이 있고, benefit 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시가 감세를 내세우는데, 그게 무슨 내용인지는 대개 소개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막연하게 자기 세금이 깎이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그가 가진 낙관주의의 근원에 대해서 물어봤다. 낙관주의라고 부를수도 있겠지만, 진은 우리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이걸 낙관으로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의 운동이 결정할거란다. 부시를 찍느냐, 케리를 찍느냐가 아니라 백악관 밖에서 벌어지는 사회, 진보 운동이 사회의 발향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전반적인 노예해방 운동의 맥락 속에서 링컨이 마지못해 실제적인 조치에 나설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낭송과 질의 응답이 끝나갈 무렵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하나, 정말 형형한 눈빛을 가졌구나

둘, 이제 곧 세상을 뜰텐데, 안타깝구나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 얼마 전에 자크 데리다... )

셋, 뛰어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조직된 운동으로서 그는 무엇을 해왔을까?

넷, 미국 사회 진보 운동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런 행사에 참가하는 사람들보면 대개 머리가 희끗해진 68 세대로 짐작되는 이들... 물론 젊은이도 있지만... 심지어(!) 민주당만 지지해도 "radical"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미국 진보진영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들의 실천은 무엇일까...

다섯, 미국 공식(?) 역사 교과서는 현대사를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

 

특히 셋째, 넷째 궁금증은 시간 여유가 생기면 좀 확인해볼 문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