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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19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 (프레시안)
    hongsili
  2. 2004/09/19
    "열사의 영전에 원내진출 보고합니다" (오마이뉴스)
    hongsili
  3. 2004/09/19
    이사 중...
    hongsili

시간 바이러스?

일욜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알람 소리와 함께 몸부림을 치며 엎어졌다 뒤집었다 하기를 몇 차례..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수하고 아침 먹고... 이멜 확인할게 있어서 컴을 켰는데...

 

이상하게도, 컴의 시간이 내 손목 시계보다 한 시간이 느렸다.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것이, 별 일이네.. 내가 언제 건드렸나? 시간을 고치고 일거리를 챙겨서 사무실에 나갔다. 집에서 해도 상관 없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괜히...

 

근데, 사무실 컴을 켠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으니... 사무실 컴도 역시 한 시간이 느린 것이었다.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바/이/러/스.... 컴의 시간을 한 시간 늦추는 신종 바이러스임이 분명하다. 이런 기괴한 바이러스가 등장하다니.... 집과 사무실의 내 컴이 동시에 감염된 걸로 보아 common source infection.. 내가 자주 들르는 인터넷 사이트에 악성 스크립트를 통해 감염된게 틀림없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길한 생각이 나래를 펴던 중...

 

혹시, 내 손목시계가 틀린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혼란에 빠졌다. 지금 진짜 시간은 몇 시일까? 뭐가 진실일까?

불과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실로 엄청난 시간 정체성에 혼돈이 오고야 말았으니...

 

급히 인터넷으로 세계표준시를 확인해보았다. (인터넷 없으면 어쩔뻔 했나?). 오늘 새벽으로 미동부지역 섬머타임이 해제되어 한 시간이 늦어진단다. 앗, 그렇지...

 

컴퓨터 바이러스가 문제가 아니라,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내 머리 속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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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2

* 이 글은 최용준님의 [이중성]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최용준 샘은 여기에 덧붙여 레빈스에 대한 글에 아래와 같은 덧글을 달아주셨다.

 

"샘이 만나셨다는 그 분, 신영전 선생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결론은 옳은 얘기인데요, 문제는 늘 그 Political movement가 구현되는 방식과 방향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끔씩은 고민되는 운동가이자 연구자로서 이중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한데, 지금 그 세계를 위해 나는, 우리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아래서 말씀하신 Kaplan의 사회 역학의 미래에 관한 글도 참 궁금하네요. 사실 전 한편으로 <사회 역학>에 관한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요. 2004/10/30"

 

이전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권력과 지성인"을 읽고 어쩌란 말인가 고민한적이 있었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은 고민...

그는 단호하게 쓰기를, 자신은 여태까지 학계에 몸을 담고 살아오면서 정부 위원회니 자문위원이니 이런 거를 단 한 번도 해본적이 없었단다. 그는 "co-opt" 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번역자는 이걸 "흡수고용"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던 것 같다(맞나? 기억이 가물가물). 물론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려갔단다.

 그는 지성인의 독립성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으며 기회주의, 침묵, 혹은 애국심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라고 지적했었다. 그는 지성인들이 좀더 아마추어적으로 살아가야한다고 주장했었다.

 근데,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사이드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정부에서 발주하는 각종 프로젝트나 자문위원회에 곧잘 참여할 기회를 갖는다. 물론 명예나 어떤 사심이 있어서라기보다, 이렇게 해서 하나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저히 어찌해볼 여지가 없이 돌아가는 미국의 시스템에 비해서 그래도 우리가 참여해서 무언가 좀 바꿀 수 있는게 있지 않을까 이런 소박한 믿음이 있는게 사실이다 (나만 그런가?).  여기에 덧불여 생존(^^)의 문제도 부정할 수는 없지. 사이드나 되니까 자기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지, 우리야 어디 그런가 ㅜ.ㅜ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연구자, 소위 전문가들이 "아마추어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형태일까? 이전에 올렸던 포스트(항상 깨어있기)에서도 그러한 고민을 잠깐 이야기했었다. 더구나 일(직업) 따로 가치관 따로가 아니라, 일의 내용이 바로 삶의 고민을 담고 있다면.... (한편으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괴롭기도 하다)

 

 나 자신이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현실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냐... 좋은 연구결과를 많이 발표한다? 대중을 위한 왕성한 저술활동을 한다? 각종 정책 개발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한다? 흑... 진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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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생태학...

예과 때, 이런 과목이 있었다. 누가 가르쳤는지도 기억난다. 그 때도 좀 미심쩍기는 했었지만 전혀 생태적이지(?) 않은 사람이고.. 그 이후로 이 명칭이 웬지 후져보이는 느낌을 받곤 했다.

하긴, 학생 때 특히 예과 때 수업이 재밌거나 감동적인 적이 있었나 뭐... 

 

이번 Fall2 시즌에 Human ecology라는 강의를 듣고 있다. 번역하면 인류생태학인데, 같은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어쩜 이렇게 느낌이 다를 수가...

Richard Levins 는 오랜 기간 동안 푸에르토리코와 쿠바에서 생태주의 운동을 벌여왔단다. 물론 생물학, 통계적 방법론과 생태주의 철학에 대한 학문적 업적 또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강의를 듣고 있노라면, 온갖 철학적 성찰들이 오랜 동안 곰삭은 끝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는게 그냥 느껴진다. 그리고 내 머리 속이 정말 복잡해진다. 수업 두 시간 끝나고 나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내가 그동안 쥐뿔도 모르면서 eco-social epi 를 떠들어댔던게 무지하니 부끄럽게 느껴진다.

 

학기가 끝날 때면 항상 일부 학생들이 불만을 제기한단다. 수업의 관점이 너무 편향되어 있다고... 백발이 성성한(수염까지) 노학자는 맞는 소리라고 이야기했다.

 

오전에 연구실로 잠깐 찾아갔었는데, 그는 내가 무엇을 모르고 어떤 지점에서 고민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나 스스로는 고민이 정리가 안 되서, 그리고 그걸 영어로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해서 답답했는데 말이다. 심지어 독심술? 나의 이런저런 횡설수설과 초절정고수의 몇 마디 조언이 오고간 후... 결국 실천은 political movement 를 통해 가능하다고, 또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는 말을 하면서 그는 끝을 맺었다.

 

소위 생태적 관점이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가치중립적 뉘앙스 (마치 인권이나 윤리를 이야기할 때마다 찜찜하게 만드는).. 하지만 진정한 생태주의는 그런게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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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보건의료개혁...

사실, 지금 보고서 땜시 정신이 없는데 시간 지나면 까먹을 것 같아서 몇 자 끄적..

 

요즘 하버드 보건대학원에 와 있는 동아시아(한,중,일,대만) 펠로우들이 모여 2주에 한 번 정도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첫 시간에는 김창엽 샘이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의 역사와 변화를, 둘째 시간에는 대만의 Rachel이 single payer system을 특징으로 하는 healthcare reform을, 그리고 오늘은 중국의 Lyning 이 역시 최근에 이루어진 healthcare reform 에 대해 발표를 했다. 

이미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동아시아에 정말 이 정도로 무지했나 하는게 마구마구 반성이 되는 그런 시간이다. 돌아보면, 미국이나 영국의  질병 분포, 의료제도에 대해서는 어쩌구저쩌구 (물론 그것도 잘 모르면서) 하면서 막상 붙어있는 옆나라, 그리고 상당부분 경험과 역사를 공유한 사회에 대해서는 어찌 이리도 모를까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양의학 교과서와, 서양의 사회과학 이론들을 고금의 진리로 공부해온 탓이라고 하기도 민망하고....

 

어쨌든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중국의 상황은 충격과 경악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놀란 건 아니다. 진실을 말하자면, 내가 알고 있는 중국의 모습은 "중국의 붉은 별", "한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 "모순론" 과 아니면 구음진경, 규화보전 따위가 아니던가...

 

 



중국혁명이 일어난 이후  상당기간 동안(90년대 후반까지), 소위 의료보험은 정부 피고용인들- 즉, government officials & normal workers (국영산업체에 정식으로 고용된 노동자를 이렇게 부른단다 ㅜ.ㅜ 그럼 abnormal worker는 뭐야..)에게만 적용이 되었단다. 인구의 15%... 이 프로그램의 이름이 "socialization medicine"이란다. 그리고 현재는 인구의 50% 미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어쨌든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혁명 직후 거의 80%)은 그냥저냥 방치되다가 68년에야 협동조합 형태의 보건의료체계(양과 질에서 모두 부족한)를 만들고 우리가 예방의학교과서에서 배웠던 "맨발의 의사"들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나머지 인구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어린이, 노인, 여성, 그리고 정식 고용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아무런 사회보장 수단이 없었단다. 놀랍지 않은가... 그 힘든 대장정을 끝내고 농민과 노동자의 힘으로 건설된 나라에서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별로 사회적 요구가 없었단다 (사실 이건 대만, 한국도 마찬가지다. 건강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된 적이 없고, 건강보험제도의 변화도 상당부분 정부가 주도권을 행사하지 않았나. 물론 대만과 한국 모두 특별한!!! 사연이 있었지... 체제 경쟁의  파트너가 있었으니 ㅎㅎㅎ).

 

그러나... 세월은 흘러흘러 socilization medicine 의  부담이 커지고, 민영 기업들이 증가하고, 또 이들이 세금 내는 걸 싫어하고, 사람들은 도시로 밀려오고(farmer worker: 농촌에서 도시로 온 이주노동자, 대개 임시직, 불법적 지위)... 여차여차 하면서 결국 중국도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으니....

 

98년에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한 개혁은 고용주들이 보험료의 80%를 내고, 피고용인들이 20%를 부담하는 "건강보험"의 형태를 띈다.  이 돈을 정부가 모두 모아서, 일부는 savings account (1년에 1인당 100불)를 할당하여 이걸로 외래 이용을 하게 하고, 나머지는 병원 서비스의 급여에 할당한다. 한편, 농민들을 위한 제도도 바뀌는데 중앙정부, 지방정부, 농민 이렇게 3자가 보험료를 내서 "New countryside Health system"을 운영하기 시작했단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 급여의 범위와 폭이 많이 넓어졌단다.

 

바뜨...

보건의료에 대한 정부 지출은 줄어만 갔고(2001년 현재 37.2%),  당연히 보건의료기관들은 알아서 살 길을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약 산업에 의한 로비와 리베이트가 판을 치게 되었고, 의사들은 이들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 좀더 고가의 서비스와 고가의 약을, 환자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되었단다 (다른 사람들이 이 부분을 잘 이해못했는데, 나와 김창엽 샘은 단박에 이해해버렸다. 왜일까 ㅎㅎㅎ).  어디 그뿐이랴.. 민간 기업주들이 보험료 못 내겠다고 사보타지를 하고, 정부도 실업률 상승을 우려하여 보험가입을 강력히 쪼아대지 못할 뿐더러, 심지어 지방 정부조차도 농민을 위한 보험료 부담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일반 대중은 물론 특히 농민, 실업자, 아동과 부양 가족들(중국은 보험 가입이 개인단위라서 다른 부양가족까지 포괄하지는 않는단다)은 보건의료 체계에서 소외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단다. 이게 reform 이다. .....대개, 아무리 가난한 나라라도 어린이나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그것이 무늬만일지라도)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너네 나라 진짜 웃긴다고 말하는 것은 동방예의지국민의 태도가 아닌지라... 발표 잘 들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나의 감정은 좀 복잡하다. 허나, 영어 수업에 가야할 시간인고로 나중에 다시 컴백하여 정리해야겠다. 며칠 전에는 미국의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그에 대해서도 좀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Kaplan의 사회역학의 미래(?)에 대한 논문도 한국 상황과 관련하여 좀 정리해야 하는데... 일단... 이번 주는 보고서의 한 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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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편지

둘째 조카 우재 생일이라 카드를 보냈더니만 답장이 왔다.

물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기 때문에 (다섯 살), 일곱 살 누나가 대신 쓴 것이다.

 

개구리고모카드보내조서고마워
개구리고모는왜바다에서안살아  우재말.

 

내가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울 오빠는 나를 (청)개구리로 불러왔다. 그런데 결혼하고, 조카들이 생기고 나서도 여전히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조카들은 나를 개구리 고모라고 부른다. 바쁠(?) 때는 그냥 개구리라고 한다 (ㅜ.ㅜ) "야.. 개구리다 ~~ " 이건 내가 조카네 현관문을 들어서면 아이들이 너무 반가워하면서 지르는 소리다. 그리고 잊을만하면 내 앞에서 한번씩 노래를 부른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살았니 죽었니.. 살았닷!"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꺄르르....

 

그런데... 개구리가 바다에서 산다고 생각하다니... 도대체 새언니와 오빠는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 것일까?

 

아.. 보고 싶은 조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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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말의 우승

두어 시간 전부터 바깥에서 괴성들이 자꾸 들린다 싶더니만... 갑자기 메신저에 있던 친구가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날린다. 한국은 정말 뉴스가 무지하니 빠르다. 뉴욕타임즈에 들어가보니 아직도 9회 기사가 올라있던데 ㅎㅎㅎ

이어서 자동차 경적 소리에 사람들 괴성에 죽을 맛이다. 텔레비젼을 켜보니 생 난리다.

월드컵의 악몽(?)이 떠오른다.

 

저 관심과 저 열정을 반만 다른 곳(!)에 투자해준다면, 전세계인들이 좀더 평화롭게 살 수 있을텐데...

 

내가 지나치게 정치편향인가?

그렇담.. 다시 생활로 돌아와서... 우승도 했다는데 기념으로 따뜻한 빨간 양말 한켤레씩 나눠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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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5 - 요리 이야기

* 이 글은 molot님의 [무엇을 할 것인가?]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molot 님에게는 불길 시뻘겋게 타오르는 이스크라가 있지만, 나는 없다. 우리집 전기레인지는 빨갛게 달아오르기만 할 뿐 불꽃, 그 핵심이 없다. 엄청난 속도의  가열, 그리고 빠르게 식지 않는 속성 때문에 온도 조절이 쉽지 않다... 초보 요리사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아닐 수 없지.

 

대전으로 독립한 이후, 지금까지 해본 요리는 무엇이 있을까?

 

1. 일상식 

 

잡곡밥

 

온갖 종류의 된장국(두부, 감자, 배추, 콩나물 등등), 미역국, 북어국, 쇠고기 무우국, 앗. 오뎅국이 있었지. 무우와 다시마를 오래오래 끓여서 만든 국물맛이 내가 먹어봐도 환상이었는데.. 

 

김치찌게(돼지고기, 스팸, 참치)

 

취나물 무침 :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할인마트에 삶은 것을 팔길래 그냥 사다가 무치면 되는 줄 알았더니만, 물에 씻어 헹구고 간을 해서 볶아야했다. 더구나 양도 많아서 프라이팬에 두 번 나누어 볶아야했고 거의 일주일을 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연히 그 시즌에 방문한 친구들이, 나의 호화식단("자취생이 나물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비빔국수 : 김치넣고 참기름 넣고 대충만 해도 맛이 나는 고마운 음식

 

유부국수 : 유부가 남아서 그냥 해본 건데 정말 맛있더라.

 

그 외 각종 무침. 콩나물, 오이, 등등. 샐러드는 넘 쉽기 때문에 음식 목록에 안 들어간다.

 

 

 



알밥 : 대전과 캠브리지 모두에서 손님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두부 두루치기 : 이건 영국에 갔을 때 해본 건데, 있는 재료를 그냥 쓸어넣었는데 그런 맛이 났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기적에 가깝다. 아주 호평을 받았지.

 

유부초밥 : 풀무원 재료를 사다하면 아주 쉬운데, 그냥 유부를 사다가 만들려면 손이 장난 아니게 많이 간다. 남은 재료로 주먹밥도 만들면 좋다.

 

스파게티 : 햄, 냉동 새우 등을 다양하게 이용해서... 재료만 잘 다듬어 놓으면 20분 내에 요리 완료해서 먹을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맛난 음식

 

고추잡채 : 대전에 있을 때 상당한 호평을 받았던 음식이다. 그 기억을 되살려, 이번 주 주말 손님 초대에 이 비장의 카드를 꺼낼 생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매워서 잘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냉동 꽃빵은 지난 번 중국 마트에서 사다놓은게 있지...

 

잡채 : 펠로우들 모임 때 역시 호평을 받았던 음식... 인도 출신의 Sangeetha 는 나에게 레시피를 적어달라고까지 했는데(^^).. 그건 좀 무리지... 심지어 나보구 요리 잘한다고 다음에는 김치를 해가지고 오란다. 황당하지 않을가. 그건 너무 어렵다고 했더니만 "너네 엄마한테 가면 틀림없이 간단한 레시피가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음에 꼭 맛보자"....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씻어서 갖은 양념을 만들어 적절한 온도에서 적절한 기간 익혀야 한다는 걸 어찌 인도 아줌마가 알 수 있단 말인가... -_-

 

생선전: 물론 한국에서 제사 때 수도 없이 부쳐보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생선을 사서 썰어서 전 과정을 준비해보긴 처음이었다. 사실 생선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전자사전 들고 생선 진열대 앞에 가서 하나하나 이름을 쳐보고 cod 가 대구 인 것을 알았다 (ㅜ.ㅜ)

 

근데 써놓고 보니 별로 해본게 없구나. 이게 다 쓴거 맞나?

 

3.  이번 주의 도전 과제

 

아이들 손님을 위하여 특별히 치킨 데리야끼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사회역학 공부하러 와서 요리만 공부하는 느낌이다. 이러다 현모양처 되는게 아닐까 우려했더니만, 김, 전 선생님 부부께서 현모양처를 넘 우습게 보지 말라고 충고해주셨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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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 생활 #4

2년 반 남짓 대전에 살면서 참으로 많은 손님치레를 했다. 유성 호텔촌에서 워낙 학회들이 많이 열리다보니, 난데없이 전화와서 "나 여기 유성인데~" 하는 돌발 손님에서부터, "누나, 이번 주에 한번 다같이 내려갈라고 하는데~" 하는 단체 엠티 손님까지... 같이 술마셔주고 밥해주고, 맛난 거 사주고... 관광 안내.. 관광이래봤자 대전에 뭐 볼게 있나, 엑스포 공원 두 번 갔는데 반응은 싸늘했고 (ㅜ.ㅜ), 시민 천문대 두 번 갔던 것은 아주 호평을 받았고, 그 밖에 금산, 계룡산, 칠갑산, 좀 멀리 진출한 변산, 전주 등은 꽤 반응이 좋았다. 의보사 후배들이 계룡산으로 엠티왔을 때... 이마트에서 선양 소주를 한 박스 들고 계산대로 가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가족끼리 단란하게 쇼핑카트 끌면서 반찬거리를 사고 있었다. 젊은 처자가 커다란 카트에 소주만 한 박스 덜렁 싣고...(-_-)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박스 크키가 훨씬 작은 "청하"로 바꾸고 나서야 부끄러움이 좀 사라졌다. 그리고는 계룡대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친구한테 찾아가 군납 맥주 몇 박스 ㅎㅎㅎ

 

이야기가 샛길로....  여기 캠브리지에 둥지를 튼지 어언 한달 반... 드뎌 첫 번째 벗이 자원방래한고로, 지난 주말을 몹시도 힘겹게 보냈다. 혹시나 관광 다니면서 찍은 사진 좀 올렸으면 하고 바라는 지인이 있을지 모르나... 내 사진기는 들고 나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진은 절대 없다. 궁금하신 분은 현지 방문해주시면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찰칵 ^^

 

첫 날 오후에는, 남들 다 하는대로 Harvard Square 를 중심으로 이곳 저곳, 이를테면 하버드 서림(행당 서림을 따서 내가 붙인 이름 ^^ 원래는 harvard book store), 기념품 매장 등을 둘러보고 캠퍼트 투어를 했다. 정식 가이드 투어를 한 건 아니고 그냥 대충대충 내가 안내를 했는데, 중간에 길을 잃어서 가이드 체면 구겼다. 좀 많이 걸어야 하는 Radcliff와 Divinity school 들은 아예 언급도 안 했다. 가보자구 하면 다리 아프니까... ㅎㅎ 그리고 역시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harvard  동상과 Weidener library 앞에서 기념 사진 찰칵...  손님이 염치도 없이 배고프다고 생떼를 쓰는 바람에 일찌감치 집에 와서 밥을 했는데... 세상에나 그 비싼 김치로 김치찌게를 끓여달라고 하더니, 먹기도 많이 먹는다. 2박 3일 지나고 나니 김치통이 반이나 비어버린 데다가 쌀 봉투가 바닥이 났다. 주말에야 장을 보러갈텐데, 걱정일세... 

 

 



시내 트롤리 관광을 했다. 아무래도 현지 가이드로부터 대략의 설명을 듣고 명소를 가보는게 좋을 것 같아서... 아저씨가 참 재미나게 설명을 하기는 했는데....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very, very nice, antique.." 그 다음 설명 들어보면 겨우 200년 된 건물, 뭐 하나 설명할 때마다 "the oldest in this country, the largest in the world" 어쩌구... 뭐 이 쪼그만 도시에 국내 최고, 세계최대가 이렇게도 많은지... 중국 사람들 뻥에 비견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나는 아저씨가 한마디 할 때마다 두 마디씩 궁시렁댔다 (물론 한국말로). 설명하는 기사 아저씨도 웃기지만 승객들도 장난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별 허접한 걸 다 사진찍고, 질문하고... 우리는 점심으로 싸온 주먹밥을 까먹으면서 쉴새 없이 궁시렁대고 분개(-_-)했다. "아니, 뭐 저런걸 사진찍어, 어디 시골 촌구석에서 살다왔나, 아이고.. 신났네 신났어..." 관광 프로그램 중에 freedom trail 이란게 있는데 소위 미국의 독립전쟁과 관련된 유적을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다. 다섯 명 죽었다는데,  "massacre"라고 써있다. 이런 젠장..  유람선 타면 헌법 박물관에도 갈 수 있는데, 미국의 정신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하도 가당치도 않아서 들어가지 않고 배타고 그냥 돌아오면서 경치만 구경했다. 항구에는 그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의 유적이 남아 있다. 어쨌든 바다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풍경은 꽤나 멋지다. 고담시를 연상시키는 시카고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저녁에는 야경을 본다고 행콕 빌딩에 갔는데 911 이후 안전 문제로 문을 닫았단다. 프루덴셜 타워에 갔더니만, 세상에나.... private party 때문에 통째로 임대를 해서 일반 입장이 안 된단다. 입장하는 사람들의 옷 차림새를 보아하니 우리같은 촌놈들은 감히 끼일 자리가 아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든든하게 먹고(아이고.. 내 쌀) 찰즈 강변을 산책하고, 하버드 스퀘어 가서 기념품 사고, 보스턴의 자랑이라는 fine art museum 에 갔다. 자원봉사로 박물관 투어가이드 하는 아줌마 설명이 아주 재미났다. 하지만, 세계 4대(도대체 누가 갖다붙인건지) 미술관이라는 미술관의 콜렉션은 좀 실망스러웠다. 근대 미술로는 유럽의 무수한 미술관들에 비할 바가 못 되고, 고대 혹은 아시아 수집품으로는 대영박물관과 메트로폴리탄에 비할 바가 못 되고.. 미술관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맘 먹고 정리해볼 기회가 있음 좋겠다. 일본의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 예술도 모르면서 비싼 명화들 싹쓸이해간다고 서양인들이 일본을 얼마나 경멸했던가? 미국 미술관에 와 보면, 그런 비판이 얼마나 어줍잖은 것인지 5분만에 깨달을 수 있다.

하여간, 마지막으로 말레이지아 식당에 가서 맛난 저녁 먹고 찰즈 강에 다시 나가서 야경까지 구경하니 길고도 힘들었던 가이드 생활이 끝이 났다. 물론 수족관, 과학 박물관을 비롯한 각종 볼거리들, Jamaica Pond와 식물원 같은 곳을 돌아보지는 못했지만..뭐 이번이 마지막도 아니고...  다음 번에 다른 손님이 오면 이런 데를 가봐야지. 보스턴 심포니나 버클리 퍼포먼스 센터 공연도 가보고...

 

하여간... 보스턴 근처에 오실 분은 꼭 연락하시라... 세계 최고(^^)의 투어 가이드와 함께 재미난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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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침몰..


어제 UMass 로웰 대학에 있는 브라질 연구자와 세미나를 했다. 세미나를 했다기보다 나는 청중(-_-). 신흥자본주의 국가로서 브라질과 한국의 노동자 건강문제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가능하면 연구도 함께 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다. 거기서 그 양반(이름 에두아르도)가 발표한 내용을 잠깐 소개...

보여준 슬라이드는 이미 온라인 상에 공개되어 있는 것이었다. (http://www.picnet.com.au/resources/PicNet%20-%20Platform%20-%20PetroBra.pps)

이 사건은 굉장히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petrobra 는 브라질에서 가장 큰 국영 석유회사고, 그 중에서도 P-36 은 가장 큰 정유채굴 플랫폼 중 하나란다. 구조조정과 유연화 전략, 당연히 동반되는 안전/유지보수의 약화, 효율성 극대화를 위한 내부 경쟁 체제 도입, 이에 동반되는 통제 관리의 무정부성... 이런 것들이 누적되었고, 2001년 3월... 이 거대한 플랫폼은 서서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어찌나 규모도 크던지, 기울어지면서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닷새나 걸려서 브라질 전역에 생생하게 그 과정이 중계가 되었단다. 물론 진상조사의 결론은 순전히 기술적인 문제, 몇몇 개인의 잘못.. 이렇게 났고, 닷새나 되는 침몰 시간 동안 구조되지 못한 노동자들의 목숨에 대해서는 별반 언급이 없었단다.

 

에두아르도는 이 사건이야말로 신자유주의가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열변을 토했다.  (사족이지만, 자기가 흥분하여 어찌나 왔다갔다하면서 발표를 하는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 

 

슬라이드에 따옴표로 인용된 말과 함께 넘겨보면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차분히 한 번 보시라....

 

* 이 날은 neo-liberalism 이란 단어를 한 천번도 넘게 들었다. 오고가는 차에서까지... 나중에 에두아르도의 차에서 내리고 나니, "neoliberalism" 이 정겹게(-_-)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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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깨어있기...

* 이 글은 뻐꾸기님의 [가을 설악산에서 있었던 일]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며칠 간의 공백 끝에 선배가 올린 글을 보니, 마음이 몹시도 울적하다. 

학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구나.....

 

허겁지겁 시간에 쫓기는 발표와 접대성 멘트, 혹은 기술적 문제들만을 토론하고 끝내는 내가 속한 모 학회보다 그래도 나아보인다는 생각도 들고... 

본인 스스로 특정 분야에서 전문성이 모자라기 때문에 나서기 어려워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맞고 한 편으로는 들린 생각이다. 실제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혹시 잘못된 결론을 도출할까봐 우려하고 겸양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세부 갈래가 다르다는 이유로 나서지 않으려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어땠을까? 어느날, 대전 시내 택시 안에서 지역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었다. 그 프로에서는 신장 내과 전문의가 나와서 시민의 전화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근데, 전화를 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기저기가 쑤신 나이드신 분들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쑤셔서 잠을 잘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 의사의 대답. 저는 그 쪽 전문의가 아닙니다. 류마티스 내과나 정형외과, 재활의학과에 가보시요. 또다음 전화. 몇 년 전에 무거운 걸 들다가 허리를 삐끗한 거 같은데 이게 왜 통 낫질 않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몇 통의 전화들... 그 날 상담시간에 의사가 한 이야기는 저는 그 전문의가 아니라는 소리 뿐... 근데, 사실 신장내과 전문의라고 해서 동네에 개업하면 관절염 환자 안 보는 것도 아니고 요통 환자를 안 보는 건 아니다. 이 프로 진짜 웃긴다고, 택시 운전사 아저씨랑 낄낄대고 웃다보니 그 의사가 별로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모든 분야에 다 기웃거리는 것도 웃기고, 그리고 실제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저는 예방의학 중 역학 분야만 전공하기 때문에 전염병 관리니, 건강보험이니, 노동자 건강문제니 이런 건 "절대" 못 한다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사회역학이라는 전공을 하면서 앞으로, 소위 내가 전문가가 아닌 수많은 사회적 의제와 학술적으로, 혹은 현실적으로 부딪히고 개입해야할 것이다. 과연 그 때는 어떤 논리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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