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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각종 세미나 발표"들"이 임박한 가운데, 또다시 잡념이 왕성하게 들끓어오른다. 병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내가 해보았던 노동 혹은 부업에 대해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봤자 뭐 대단한게 있을까마는... 시골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 닭서리하고 논밭에 나가 부모님 거들고... 우리 세대에도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서울 달동네에서 내내 살아온 나에게 이는 책과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유사체험이다. 농활가서 9박 10일 있어본게 나의 가장 긴(!) 농촌 생활이다. 그런데 도시 아이들이라고 매일 다방구하고 구슬치기만 했던 것은 아니며, 집안 일을 거들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설겆이하고 빨래하고.. 이런걸 했다는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동네에서 엄마들이 많이 했던 부업(? 말이 부업이지. 이거 없으면 살기 힘들다) 이야기다. 음.. 이야기는 1) 초중고 시절의 가내 부업 도우미, 2) 대학 시절의 알바, 3) 대학 졸업 이후의 각종 돈벌이.. 발전과정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사실 이걸 써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 것은 아니다. (또 시작이 영 창대한걸... 꼭 이러다가 본론은 못 쓰지) 대학에 입학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전공의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대학이라는 곳에 취직을 하면서 나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우리 집이 특별히 가난하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우리 집보다, 우리 동네보다 어려운 곳도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가보니 다른 세상이 있었다. (울 학교는 세검정에 위치해 있어서, 달동네 홍제동과 우아한 평창동 학생들이 함께 공부를 할 수 있는 천혜의 계급 친화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 후 대학에 들어가고 의사가 되고, 교원이 되고 나서는, 주변에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새록새록 깨달아야만 했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현재 내 주변에서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만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지금의 어린이들은 출신이 다른 서로를 "정상적으로는"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그래서.. 내기 지금 속한 사회에서는 "특이"하기만 한 "평범한 달동네" 생활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고 싶었다.
개봉박두.
* 이 글은 해미님의 [술을 빌미로 노동자를 통제하라!?] 에 관련된 글입니다.
후배가 올린 글을 보고, 이전에 썼던 글을 올린다는 것을 까먹었음을 깨닫다. 이목희 의원의 깜찍한(^^) 주장에 대한 반론을 노건연에 있는 * 선생님이 쓰셨는데, 거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해옴에 따라 재반론에 나서게 된 것이었다. 원래 글이 좀 길어서 노건연의 전** 동지가 편집을 해서 매일노동뉴스에 보냈었다. 사실 나는 재반론이라는 성격 때문에 가급적 꼬치꼬치, 좀 폼나는 학술 용어도 사용하면서, 그리고 아주 매너있게(!!!) 썼는데.. 나중에 수정된 걸 보니 원래 글에 사족이 너무 많았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원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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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과학 사이
이 의원은 다양한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산재와 음주의 관련성, 음주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책 자료집에 인용된 외국 자료에 의하면 전체 산업재해의 25%가 음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국내 현황에 대해서는 간접적인 자료를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요한 근거가 된 사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제조/건설업종이 산재의 총 66.7%, 산재사망의 50.9%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 두 업종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월등히 높고, 음주량과 음주빈도가 높다. 둘째, 연간 주류 출하량과 산재 사망자 수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관찰된다.
음주는 작업장에서의 재해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런데,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위험을 “증가시켰다”는 것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그동안의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산업재해는 소규모 사업장, 특히 1-49인 규모의 사업장에 집중되었다. 이를테면 2002년에 전체 산재의 71.2%가 5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했으며, 사업장 규모에 따른 재해발생의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표 1 참조). 또한 소규모 사업장 중에서도 건설업이나 운수창고 통신업보다는 제조업에서의 재해율이 두드러졌다(표 2). 이러한 상황을 소규모 사업장의, 특히 제조업 사업장의 해이한 음주 문화 때문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하자면, 대규모 사업장, 혹은 소규모 사업장 중에서도 제조업 이외 다른 업종의 사업장들이 소규모 제조업 사업장보다 적극적인 음주규제를 했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낳았다고 해석할 수 있을까?
참고 표1 . 연도별 규모에 따른 재해자 수 및 재해율 (인권위원회 보고서)
참고 표2 . 연도별 1인에서 49인 규모의 사업장의 재해자 및 재해율(인권위원회 보고서)
또한, 정책자료집에 제시된 그림에 의하면 주류 출하량과 산재 사망자 수는 일정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그림 1). 그러나, 사망자 수가 아닌 사망률을 적용하면, 주류 출하량이 급격히 증가한 98-2001년도에는 사망률이 감소하고 2001년 이후 증가하기 시작한다. 더구나 음주와 관련성이 높을 것으로 짐작되는 사고에 의한 사망률은 더욱 크게 감소하며, 질병으로 인한 사망률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그림 2). 특히 이 기간 중 뇌심혈관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가장 많이 늘어났는데 전자의 경우 과로, 스트레스 및 노동강도의 증가가 직접적 원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후자는 작업 요인(반복성, 신체부담 자세, 힘, 진동 등)과 장시간 근무 및 노동강도의 증가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그림1. 주류 출하량과 산재 사망자와의 상관관계(이목희 의원 정책 자료집)
참고 그림2. 연도별 산재 사망(사고+질병) 만인률 (인권위원회 보고서)
결론적으로, 음주가 작업장에서의 사고 위험을 높일 것 같다는 직관은 가능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산업재해의 양상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 음주라는 것을 입증할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이 정책 자료집에서 채택한 분석 방법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생태학적 오류라 할 수 있다. “생태학적 오류”는 집합적 수준의 관계로부터 개인 수준의 관계를 추론할 때 나타나는 오류를 말한다 (신영전 등 『사회역학』2003). 예를 들면, 산재 사망자 수가 증가한 시기 동안 출산률은 급격히 감소했다. 하지만, 출산률 감소가 산재 사망과 관련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처럼, 주류 출하량이 늘어났다고 해서 이것을 바로 산재 사망에 연계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
비록 음주가 산업재해 발생에 결정적인 기여는 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충분한 개연성은 존재하며 따라서 음주규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이 노동자 건강에 해로울 이유는 전혀 없다. 산업재해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동자 건강증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가.
이 의원은 정책자료집 발간사에서 이러한 정책제안을 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선진국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하드웨어적인 안전조치는 분명 한계가 있다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산재로부터 작업자를 지켜주는 것은 안전모나 낙하방지물이 아니라 결국 그들 자신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사회의 노동안전보건 관리가 과연 그 “어느 수준”에 도달했을까?
“세계화”를 지상과제로 삼았던 김영삼 정부 이래 기업 활동에 관한 각종 규제들이 완화되면서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각종 규제들도 함께 철폐되거나 완화되어왔다. 이를테면 97년의 기업규제완화법 개정으로 2년 또는 1년 주기로 시행되던 프레스,리프트에 대한 정기검사가 면제되었고, 30-49인 사업장 중 유해위험업종에 대해서 안전 관리자를 선임토록 한 규정도 철폐되었다. 또한 광범위한 구조조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급속한 비정규직 확대를 가져왔다. Qulian 등(2000)은 선진국에서 발표된 90여 편 이상의 논문을 검토한 후, 불완전 고용 형태는 전반적인 안전보건의 퇴조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외주, 구조조정/기구 축소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이러한 구조 조정은 필연적으로 노동 강도의 강화를 야기했으며, 이는 뇌심혈관 질환, 근골격계 질환의 가장 중요한 위험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이제 가능한 안전 조치들이 다 이루어졌고, 노동자 자신의 생활습관만 바꾸면 될 차례인가? 노동 강도와 직무스트레스가 점증하는 현실은 그냥 둔 채, 스트레스 대처기술과 음주 습관을 바꾸는 대증요법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규제 때문에 기업 운영이 어렵다며 정기 검사도, 안전관리자도 없애는 마당에 EAP 도입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의원의 노동자들에 대한 애정은 각별해 보인다. “우리사회가 조속히 그들의 위험천만한 관행을 멈추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그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상담하고 진정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하루하루 술을 위안삼아 술독에 빠져 지내는 그들을 도와주고 치료해내야 된다.”
우리도 노동자들이 좀더 건전한(!) 음주문화를 가짐으로써 자신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휴식 시간에 운동도 할 수 있으면 좋겠고, 사내 급식을 통해 권장량의 야채와 과일도 충분히 섭취하면 좋겠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들의 작업장이 좀더 안전했으면, 일이 덜 힘들었으면, 스트레스가 더 적었으면, 그리고 특히 안정된 일자리였으면 좋겠다.
선의가 항상 좋은 결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건강을 염려하여 제기한 “도발”은 아직 때 이른 것이었고, “몸통”은 놔둔 채 “깃털”만 건드린 꼴이 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나름대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가끔은 생활 속의 내모습은 의외로 보수적인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인류생태학 수업을 같이 듣는 인도 여학생이 있는데, 의상이 영.. 당혹스럽다. 나는 그런 골반바지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나 입고 다니는 줄 알았지, 일반인(ㅜ.ㅜ) 도 입는 줄은 몰랐다. 서 있을 때는 그냥 견딜만 한데 앉으면 바지 허리 선이 심하게(!!!) 내려간다. 한번은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나 봤더니 거의 Iliac crest 높이에 근접한 듯.. 물론 상의의 길이는 짧기 때문에 등짝-허리-엉덩이 일부까지 훤하게 드러내놓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마음이 참으로 심란하다. 그 뿐이랴.. 윗옷을 보면, 스판 섬유의 놀라운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저렇게 조여대면 숨쉬기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마저 들때가 있다. 어쩜 숨쉬기가 힘들어서 윗단추를 그렇게 많이 풀어놓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추측도 해보았다. 그 아가씨가 옷을 입고 수업하던, 홀라당 벗고 수업하던 사실 아무 상관도 없는데.. 왜 이리 맘에 안 드는거야...
한 2-3주 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관계사를 이용한 대화연습을 하는데 50도 훨씬 넘은 브라질 아줌마가 나한테 "네가 마지막으로 춤추러 갔던 것은 언제니?" 하고 물어보았다. 음.. 언제였더라. 아마도 문* 형 결혼식 때 였던거 같은데.. 춤을 추러 갔다기보다 나이트에 가서 술을 마시고 왔지... (그 때 생각하면 정말 웃겼다. 새신랑만 신나서 머리에 넥타이 두르고 광란의 스테이지를 벌이고 우리 하객들은 그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고담준론을 나누었다 ㅎㅎㅎ). 그래서 "약 5년 전 인거 같아" 하고 대답했더니 아줌마가 화들짝 놀라면서 옆에 앉은 페루 아줌마한테 "어머, 얘 정말 보수적이다. 춤을 춘지 5년 되었대. 나는 매주 두 세번은 춤추러 가는데.." 허걱..... 충격받았다. 보/수/라/니....
선배 언니 왈, 요즘에는 육체를, 욕망을 이야기해야 진보 명함을 내밀 수 있단다.
그래요? ......... ㅡ.ㅡ
혼란스럽군.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자 누구인가... 따위를 읇조리며 포스트모던의 분위기를 풍기려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인류 생태학" 수업을 들으면서 생각했던 것 몇 자 끄적...
올해 초, 한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비용-편익 분석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사실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비용-편익 분석은 그야말로 투입과 산출의 비교를 통해 여러 가지 대안들 중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과학적" 도구였다. 위해도 평가도 마찬가지다. 방법론이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현존하는 위해(hazard)에 대해 수용가능한 기준점을 찾는 역시 "과학적" 도구였다.
근데 이렇듯 무미건조한 "사실"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우리의 건강이 관련되어 있는 한, 과연 비용은 무엇이고 편익은 무엇인가? 노동자 한 사람 죽어서 보상하는데 5천만원 들고, 안전 설비를 설치 유지하는데 1억원이 든다면 우리는 기꺼이 안전 설비를 포기해야 하는가? 실제로 대처와 레이건 시대에 이루어진 많은 규제완화 조치들이 "비용/편익 분석"이라는 evidence-based policy 채택하고 있었다. (사실, 비용/편익 분석은 자본론만큼이나 인간 노동의 "상품"가치를 잘 보여준다. 훌륭도 하지)
불확실성과 복잡성의 위험사회에 위해도 평가는 어찌 보면 가장 인기 있는 연구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전자파가 어떻고 라돈이 어떻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 어떻고.... 그래서 여차저차 계산해보니 최대 허용량은 어떻게 되겠더라, 혹은 이거는 인간한테 위해하지 않은 거 같더라 등등... 근데, 위해도 평가는 수많은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다. 환경역학자들은 동물실험 결과와 기존의 문헌 리뷰를 통해 충분히! 합리적인 가정을 설정한다고 스스로들 믿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러다보니 연구 결과가 하나 나올라치면 연구 방법론, 가정의 타당성에 관한 논쟁이 주류를 이루고 정작 본질은 논의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테면 GMO(유전자 변형식품)에 대한 위해도를 평가할 생각은 하면서도 굳이 GMO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해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신발 가게에 가서 구두를 살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점원이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빨간 거 살래요, 파란 거 살래요 하는 식이다. 이러면 대개 정신이 팔려서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빨간색과 파란 색중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게 된다)
이런 방법론들은 대안적 전략(alternative strategy)에 대한 가능성을 가려버린 채 객관식 문항처럼 좁은 틀 안에서 주어진 것들 중 무엇이 제일 좋을까만 고민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과학이 사회적으로 재구성된다는 상식에도 불구하고 줄곧 까먹고, 또 가끔씩 새로운 일인양 다시 깨닫고는 한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학부 때, 전공의 때 배운 예방의학은 너무 "맥락"이 없었다. 사회적 고려 없이 진공 상태에 놓여있는 창백한 과학을 배운 듯 싶다. 뭐 누굴 탓하겠나.
요즘 읽은 몇 편의 논문들이 하나같이 어찌나 interdisciplinary or transdisplinary approach 를 강조하는지 마치 이것만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생물학과 사회과학이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는 사회역학 분야는 이러한 접근법이 그 어느 분야보다도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Kaplan 이 사회역학의 한계와 미래를 전망한 리뷰 논문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역학의 많은 개념과 주제들이 사회과학으로 유래한 것인데 사람들(소위 사회역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그 용어의 일상성과 친숙함으로 인해 마치 자신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haplotype" 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겠지만, "빈곤", "지역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내 이야기다). .
그러나 막상 interdisciplinary reseach 를 하려면 결코 쉽지가 않다. 인접한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과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한다고 해도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 연구 방법론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본인 스스로의 전문분야가 아닌 것을 스스로 다 파악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여러 학문 분야의 최신지견을 다 알기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대한 실례로 kaplan 은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이 바닥에서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면 영국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한 기념비적 연구인 화이트홀 연구와 중심 연구자인 Marmot 를 알 것이다. 이 연구의 가장 큰 의미라면, 절대 빈곤을 넘어서 사회적 위계 그 자체가 건강 격차를 낳는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곧잘 영장류에 대한 Sapolsky 의 연구와 비교된다. 원숭이 집단에서조차(!) 사회적 위계가 낮을수록 코티졸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다는 것이다. Marmot 는 이를 Serengeti 생태계와 whitehall 생태계의 유사성이라고 표현하였고 건강불평등을 매개하는 사회심리적-신경내분비 기전의 훌륭한 근거로서 수많은 논문들에 인용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영장류에 대한 연구들을 모아서 리뷰해본 결과 위계와 건강위험에 대한 연관성을 확정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Sapolsky 도 다른 요인들의 영향을 배제한다면 이러한 연관성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천하의 Marmot 도 타 영역을 빠삭하게 알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Richard Levins 는 ecosocial epidemiology, 복잡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학문적 성과들은 대개 분야의 경계, 혹은 분야를 가로지르는 도전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학문의 민주주의가 중요하며 학교들의 department system과 학회 중심, 분야에 따른 연구비 배분 등이 이러한 소통을 가로막는 주요한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는 토마스 쿤이 이야기한 "정상과학"의 정상적인(?) 발전과정 아닌가?
학문 분야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그에 대한 반성과 반동으로 학제간 연구에 대한 강조가 넘쳐나는 듯 싶다. 세미나 때 사회역학 포스닥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처절하기는 하다. 대개 취업은 본인의 전공분야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인데, 이렇게 학제간 연구와 트레이닝을 마치면 막상 전공분야의 "업적"이 없어서 힘들단다. 이를테면 자기가 사회학과 나와서 사회역학과정 포스닥을 하고 있는데, 임상의학 학술지에 논문을 실은 것들은 나중에 취업하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Levins 는 제자들의 추천서 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단다. 생태학 혹은 생태역학을 전공했다게 뭔지, 이게 회사나 학교에 어떻게 중요한지 설명하는 것 자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연구비를 받을 때 여러 학문분야가 같이 한 과제에게 높은 우선순위가 부여된단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할 말이 많지만 짧게 ㅡ.ㅡ+
미국 연구자들은 학제간 연구가 부실하다고 불만이지만, 사실 나한테는 이러한 수준도 놀라웠다. 한 20여명이 참여하는 사회역학 관련 세미나에 MD 는 기껏해야 4-5명을 넘지 않는다. 심리학, 생리학, 생물학, 역사학, 경제학, 사회학..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causal inference 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한다. 내가 있는 연구소만 해도 펠로우 4명 중 나만 MD. 나머지는 사회학과 인구학, 심지어 공학(road safety)을 전공했고 스탭들도 상당수 사회학, 경제학 전공자들이다.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가끔은 터무니 없기도 하고(ㅎㅎㅎ) 가끔은 기발하고 창조적인 의견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다른 분야의 최근 경향들, 그리고 건강과의 관련성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한국에서 역학회는 어땠었나? 일단 아무도 공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역학은 일단 MD 의 영역이다. 최근 일부(!) 나아지기는 했지만 역학이 마치 "예방의학"의 한 분과인 양 존재하는 이상 이러한 MD 편향은 바뀌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다양한 요인의 causality 에 대한 논의는 거의 불가능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숫자도 얼마 안되는 역학 전공자들이 하나같이 molecular or genetic epi 를 한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 유지의 필수적 조건이듯 학문 분야에서의 다양성도 매우 중요할텐데, 영 그렇지가 못한 상황이다. 이러다가 재난이라도 닥치거나 치명적이 천적이 나타나면 다함께 멸종(? 헉.)할 수도 있다.
근데.. 아쉽게도 kaplan 의 논문이나 Levins 의 논문들은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강조하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고 있지 않다. 뭐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이거 다시 "조직화".. 좀더 거창하게 이름붙이면 "네트워킹"의 문제로 돌아가는 것인가? 나혼자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사물놀이?) 다 하려고 하기보다 연구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데 어떻게?
요즘 한국 상황이 참으로 거시기하다.
도대체가 *** 했으면, ***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중에 하나도 되는게 없다.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
대략 생각나는 것만 적어보자
. 비정규법 개악
. 공무원 노조 탄압
. 경제특구내 영리병원 및 내국인 진료 허용
. 이라크 파병 연장..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법안은 아마도 물건너갈것 같고, 새로 임명된 국가인권위 위원장의 이력은 참으로 가관이다. 복음주의자들의 준동까지 더하면 반동의 셋트메뉴라 보기에도 너무 과한거 아닌가?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곰곰 생각좀 해보자. 이역만리에서 그냥 혼자 답답해 어쩔 줄 몰라하는 것 말고 무엇이 더 가능할지..
지난 2년여에 걸쳐 꾸준하게 아시모프의 원저를 읽어왔다.
1) 일명 로봇 시리즈
I, Robot
The Caves of Steel
The Naked Sun
The Robots of Dawn
Robots and Empire
2) 일명 파운데이션 시리즈
Prelude to Foundation
Foundation
Foundation and Empire
Second Foundation
Foundation's Edge
Forward the Foundation
지금에 와서 보면 현대의 소설작법에 비해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이고, 더구나 헐리우드 식의 극적인 작법을 따르는 점들이 거슬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으니..
선한 의지라는 인간의 본성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 로봇으로서 양전자두뇌에 임프린팅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우리가 강박처럼 가지고 있는 도덕률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대의를 위한 희생, the first law 에 우선하는 the zeroth law 라는 것이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을까
그토록 자명했던 역사도 시간이 가면 잊혀지고, 안락함 속에 쇠락의 기운이 드리우는 것은 본래의 법칙... 은하계의 쇠락과 인류 문명의 후퇴, 파운데이션의 처절한 몸부림은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 충분히 예상가능한 우울한 미래를 보여준다.
학/혹은 학문의 길은 함께 갈 때에 발전이 있는 법. 솔라리아에서는 모두가 한 분야의 전문가일뿐더러, 오로라에서는 로봇과학자들이 평생에 걸쳐 자기 연구만 진행하기 때문에 남이 무슨 발견을 했는지 도대체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발전이 정체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끄는 것은 다니엘. 믿음직스럽고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고, 그리고 무엇보다 베일리, Giskard라는 벗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실로 오랜 기간을 고독하게, 인류의 운명만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 적인 삶....로봇에게 고독, 혹은 운명, 이런 단어들이 적합한가? 하지만 그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즐겁고 한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오늘 로봇과 제국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물론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통해서 이후 수천년 동안 다니엘이 무척이나 잘 해나갔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지 않은가. 한편으로 그가 인간이 아닌 것이 다행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적으로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인지하되 그것을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존재의 이중성이 가슴 아프다.
내가 알고 있는 주인공들 중, 가장 매력있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는 정말 힘들다.
1. 계란 말이
광화문, 구세군 회관 앞 육교 건너편 골목 입구에 자유인이라는 허름한 술집이 하나 있다. 거기 계란말이는 정말 맛이 있다.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서 지난 주말에 도전했다.
양파, 당근, 파를 "송송" 썰어넣고, 소금간을 맞추고... 나한테는 "송송"만큼 어려운 단어가 없다. 가끔 "착착착착" 리듬감 있는 소리를 내면서 무언가를 써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마저 든다. 하여간... 근데 문제는.. 도대체 달걀이 말아지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을 뒤집개로 말면 다른 쪽이 무너져내리고.. 결국 계란을 말았다기보다 은근슬쩍 밀고 뭉개서 비스무레한 모양을 만들고 말았다. 나물이 홈피에 보면 김밥 마는 대나무 발에 싸서 썰면 모양이 예쁘다고 해서 그걸로라도 모양을 좀 만회해볼까 했지만.. 결국 가느다란 발 사이에 끼인 계란하고 야채 파내느라(ㅜ.ㅜ) 설겆이만 힘들었다. 뒤집개의 크기가 작아서일까, 아님 야채를 너무 크게 썰어서일까? 순식간에 일주일 분량인 계란을 네 개나 축냈지만(비율을 맞추다보니..) 결국 내가 찾던 그 모양과 그 맛을 내지 못했다. 얼만큼의 수련이 더 필요한 것일까..
2. 오징어채
일전에 미국에 다녀가신 선생님께서 오징어채를 한 봉지 주고 가셨다.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왕 있는거니 이걸로 밑반찬이나 만들어보자. 갸륵한 생각을 했다. 역시 나물이 요리책을 찾아본 즉.. 설탕을 많이 넣으면 너무 딱딱해진다고 주의사항이 써 있다. 워낙 단 것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해서 설탕은 안 넣고, 그냥 써있는대로 물엿만 넣었다. 그런데... 우리집 레인지는 가스불꽃이 아니고 전기코일로 가열이 되는데.. 가열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지만 빨랑 식지를 않는다. 그래서... 순식간에.. 어찌 손써볼 사이도 없이 오징어채가 심하게 그을러버렸다. 고추장 양념에 물엿을 뒤집어 쓴 오징어채의 화상은 참혹했다. 일단 가장 문제는...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밥 먹을 때마다 한 가락씩 떼어내는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반만 하고 나머지 반 봉지를 남겨놓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3. 오이김치
매번 손이 가지 않으면서 신선한 야채를 안정적으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고민하던 중, 마침 "크자"님이 오이 김치에 대한 정보를 주셨다. 오이, 부추, 양파, 파, 마늘, 고추, 고춧가루 등등등... 뭐 엄마가 해주던만큼의 깊은 맛은 없지만 작은 유리통에 담겨서 냉장고 선반에 얌전히 앉아 있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절로 흐뭇해진다. 최소 1주일 동안은 반찬 걱정을 안 해도 되는구나...
다음달 중순에 펠로우 저녁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기로 했다. Korean dinner 를 준비하겠다고 이야기는 해 놓았는데... 뭘 하는게 좋을까.. 더구나 두 명은 채식주의자들... 가장 간단한 고기 구워 상추쌈 싸먹는게 불가능한 상황... 고민이 필요하다.
기대했던 방문 이벤트는 실패로 끝나고..
이상하게도 나에게 길을 묻는 사람이 많다.
서울 살 때는 물론이요, 대전에 내려가서도 이틀(?)만인가 길을 묻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영국(2주)과 미국(3주)에 잠깐 교육받으러 갔을 때에도 다가와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뿐인가. 하루는 다른 학교에 세미나를 하러 가는 길이었는데, 당시에 후배와 이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한테만 길을 물어봐... 왜 그럴까 어쩌구저쩌구... 그 때 심상찮게 보이는 행인이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나를 콕 찝어서 길을 물어보는게 아닌가. 일행 모두 쓰러질 뻔했다.
여기 캠브리지에 오고 나서도 물론 이런 기이한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첫 주에는 한 할머니가 옷가게 (GAP)를 물어왔는데 잘못 가르쳐주기도 했다. 위치도 모르지, 영어도 못하지.. 할머니는 계속 버티고 서있지... 대략 기억을 떠올려 주절주절 설명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더라.
프랑스 작가가 쓴 "표절"이라는 소설이 있다. 작가 이름은 물론 까먹었는데... 거기 주인공인 작중 화자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자기한테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결국 자신이 길거리의 안내표지판처럼 무미건조하게 생겨서 그렇더라는 것이다.
오늘 저녁, 발걸음을 재촉해서 영어학원에 가는 길에.. 웬 승용차가 한 대 슬금슬금 다가와 내 앞에 서더니만 Kendall square 에 어떻게 가야하냐고 묻는다. 왜 하필 나야.. 하지만... 표지판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친절하게(손짓발짓) 설명해주었다.
오늘 저녁, 운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위대한 결심을 했다.
1. 뭐 그럴 줄은 알았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이 있었는데 막상 현실로 닥치니 좀 허탈하다. ("경제특구 내 외국 병원에 내국인 진료 허용") 좀, 논리라도 세련되었으면 좋겠다. "동북아 중심국가 구상과 경제자유구역의 성공적 조성을 위해 외국 유수 병원의 설립ㆍ운영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내국인 진료 허용이 불가피하다" 이거 도대체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앞뒤가 연결되는 문장인가?
2. 공무원 노조의 파업, 아니 파업을 둘러싼 정부와 언론, 그 잘난 "시민"들의 반응을 보니 아주 웃기지도 않는다. 잘들 논다. ("대한민국, 정신병동인가"을 읽어보시라) "파업 전원파면 약속 지켜야".. 요즘에는 애들도 이렇게 유치하게 놀지는 않는다.
3. "수업 중이라도 빨갱이 소리만 들으면 뛰어나가던 사람이다" ... 그래서?
세상에는 참으로 웃긴 일들이 많다. 거창하게 사회운동이니 계급투쟁이니 부를 것도 없이, 그냥 보통의 상식과 보통의 논리로 맞설 수 있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점잖게... 상식과 논리로 이야기해도 될 일을, 자꾸 싸우게 만든다.
어이없는 인간들이네.. 하고 무시해버리자니 사방에 어이없는 인간들 뿐이다. 지난 프랑스 대선에서 르펜이 하는 이야기들이 하도 어이없어서 좌파는 이를 무시했고,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났다. 대한민국의 현실은 이를 떠올리게 한다. "놀고 있네" 하며 혼자 비웃어버리기에는 실로 황당하고 가공할만한 일들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
뭐 어디 거창하고 진정한, 정말 뽀다구 나는 투쟁이 어디 따로 있으랴? 전선은 사방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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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정책자료집을 처음 보고 들었던 생각은.. 노동자 술마시는거 걱정말고 너 의정활동이나 잘해라.. 였지만.. 그렇게 쓸 수는 없었다 (ㅜ.ㅜ) 그리고 기왕 작업현장 음주단속할꺼라면 국민 대표작업장인 국회도 아침점심 음주측정했음 좋겠다. 의원나리들 엇저녁에 마신 고급양주와 점심에 걸친 반주 때문에 중요한 국가중대사에 대한 판단을 그르친다면 그것만큼 나라 발전에 해로울게 있으랴?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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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덕분에 고마워요. ^^ 참, 글고 hotmail로 보낸 멜은 받으셨어요? 자료 부탁하는 메일인디.. 우찌 되었나 궁금하네요. 답글 남겨 주셔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