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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19
    이사 중...
    hongsili

미국내 건강 불평등 연구의 정치학 - 나바로

International Journal of Health Service 2004:34(1)에 발표된 나바로의 글 (원제  "the politics of health inequalities research in the United States".

2003년도에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6th conference of the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Health Policy 에서 강연했던 내용이란다.

 

나바로는 미국 내에서 (다른 분야는 차치하고) 보건의료 분야의 연구들이 어떻게 탈 이념화되고 있으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미국 학문 사회의 구조를 이야기하고, 이치로와 케네디가 저술한 (그리고 내가 번역에 참가한) "the Health of Nations"에 대한 비판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주로 생의학적 이슈들을 다루는 NEJM 이나 JAMA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보건의료 정책들을 다루는 대표적인 저널들에서 계급 관점의 분석을 시도한 논문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고, 저자들이 혹시라도 "노동계급, 계급투쟁"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면 교조적이라고 게재거부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계급 이슈를 다룬다는 것은 그 연구자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걸 뜻하게 되고, 이는 곧 학문적 사망 선고나 다름 없다. 베버, 혹은 뒤르켐의 분석 틀을 쓴다고 해서 그 사람을 "베버주의자, 뒤르켐주의자"라고 딱지를 붙이는 건 아니지만, 유독 마르크스의 경우만 특별하다 ^^

연구기금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나바로가 재직하고 있는 존스홉킨스 대학만 해도 교수(와 그 비서) 월급의 80%가 연구비에서 비롯된다. 연구비를 못 딴다는 것은 일자리를 잃는 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펀딩기관, 대개 정부와 록펠러, 맥아더 등의 거대 민간 재단의 정책과 성향에 맞는 연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Elizabeth Fee 같이 명성자자한 사람(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공중보건 역사학자 중 한 명,[Women's Health, Politics, and Power: Essays on Sex/Gender, Medicine, and Public Health] 의 편집자 )도 연구비를 못 따서 결국 존스홉킨스를 떠났다고 한다. 

 



사실 1960-70년대에 사회 전반적인 흐름에 맞춰 사회의 근본 구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소위 "유물론 역학" 이 성장을 했고, 사회에 매우 비판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았으나... 기득권의 대응 전략은 첫째, 무시, 둘째,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을 때는  좀더 건전(^^)한 주류 연구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이 과격분자들을 몰아내는 것이었다. (낯익기도 하여라~). 그리고 일부 ex-radicals (우리 말로 하면 전향인사, 내지는 귀순자들 ㅎㅎ)이 이러한 순화 과정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이것도 낯익다 ㅎㅎ). 이는 미국 국내 뿐 아니라 외국, 개도국에 대한 지원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남미에 공산주의자들이 활개를 칠 때에는 사민주의 방식에 대한 연구를 지원했고, 공산주의가 더이상 위협이 되지 못하자 이제는 신자유주의적 지향의 연구들에 대해 지원을 하고 있다. 무시, 배제, 주변부화...

 

이런 의미에서 미국 내에 건강 불평등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활발한 듯 보이지만, 주류 연구들은 계급 관계보다 대개 소득, 소비, 혹은 사회적 자본, 결속력 등에 집중되어 있다. 나바로는 이 지점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health of Nations 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인데, 넘 졸리네... 글의 시작이 너무 창대했던 탓이다 ㅜ.ㅜ  오늘은 일단 여기서 마무리하고 낼 이어서 쓰자... 1. health of nations, 2 나바로의 글과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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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실신한 국보법 : '김용갑 의원 졸도' 사태를 보고

실신한 국보법
  
  김용갑 의원이 국회 단상에서 제 분을 못 이기고 쓰러졌다. 대한민국을 한 몸으로 떠받치던 인간 국보법이 제 풀에 지쳐 졸도했다. 상징적이다. 50년 동안 선무당처럼 펄펄 뛰던 그 악법도 이제 기운이 다 쇠한 모양이다. 물론 아직도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칼로 제 배를 갈라 그 놈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이 미련한 신체 예술로 그들이 보여준 것은 ‘국산 칼, 더럽게 안 든다’는 사실뿐이다.
  
  언뜻 보면 국보법의 폐지에 반대하는 흐름이 대세같다. 착시현상이다. 촛불도 꺼지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낼름거리는 법. 우익 시위의 격렬함은 ‘마지막 발악’이다. 그 살벌한 제스처로 저들은 국가의 안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공포는 북한의 안보위협에서 오는 게 아니다. 국보법이 폐지되면 도대체 이 사회에 자신들이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 저들은 그게 무서운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그 또한 착시현상이다. 여론은 추이를 따라 동태적으로 읽어야 한다. 국보법에 관한 여론의 추이는 목하 ‘개정불가’에서 ‘개정가능’을 거쳐 ‘폐지가능’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게다가 반대론자들의 상당수가 사안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는 “경제가 급한데 웬 국보법 논란이냐”는 상황논리에 잠시 설득된 상태. 경제가 급한데 국보법 ‘폐지’에 목숨 거는 것을 이해 못하는 이들은 경제가 급한데 국보법 ‘수호’에 목숨 거는 것도 이해 못한다.
  
  50년 넘게 존속했던 법을 없애자니 시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정치권에서 자꾸 대체입법이니, 형법보완 운운하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최근 형사법 전문가들은 국보법의 공백은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뭘 더 대체하고, 뭘 더 보완한단 말인가? 대체입법이니 형법보안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국가의 ‘안전’(安全)을 위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 유권자의 ‘안정’(安靜)을 위한 심리요법일 뿐이다.
  
  대체나 보완은 필요 없다. 형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권유린이다. 고작 “불안감” 따위를 해소하기 위해 시민의 권리를 법적으로 제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은 따로 있다. 국보법을 확실하게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이미 사문화되어가는 법, 폐지해도 별 일 없다는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하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이 또 있을까?
  
  여당 내의 기회주의 분파는 제 이름대로 개혁을 “안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어영부영 타협하거나 질질 끄는 것은 전술적으로도 현명하지 못하다. 빈틈을 주면 안 된다. 선명하고 명확한 입장을 정해 신속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보수층이 국보법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상징성 때문이다. 국보법의 폐지가 기정사실이 되면, 깃발을 잃은 저들의 반항은 순식간에 무력화할 것이다. 국보법은 죽었다. 남은 것은 진단서를 떼고 송장을 치우는 일뿐이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표면에 이는 보수의 거센 파도에 불구하고 바다 속의 조류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금 개혁정권은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도 차기정부의 성격을 묻는 설문에 시민의 56.9%가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라 응답했고, 오직 35.7%만이 “보수안정 성향의 정부”라고 대답했다. 현 정권의 보수화에 실망해 떨어져나간 지지층이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도 여전히 “진보개혁”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뭘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가?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 따위에서 국보법의 대안을 찾는 것은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다. 누군가 국보법 폐지의 ‘대안’을 요구하거든, 가령 취약한 정보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 등,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 제시할 일이다.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을 못 받아들이겠는가. 야당 역시 제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부정적 발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뭔가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 2004.9.25 진중권 (정치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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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isible people

오늘은 Cambridge Center for Adult Education 에서 ESL 강좌가 개강하는 날이다. 강의 시간이 저녁 8시라, 모처럼 사무실에 늦게까지(일곱 시 ^^)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초저녁이지만, 사실 여기에서는 처음으로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일단, 남아 있자면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사먹자니 돈이 없고.. 또 밤에 혼자 남아 있는것이 괜찮을까 싶어서 아직 시도를 해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할 수 없이 도시락을 두 개 (그래봤자 샌드위치 두 덩어리) 싸가지고 와서 저녁까지 떼웠는데....

여섯 시에 한 낯선 남자가 건물에 들어왔다. 하도 들락거리는 연구자들이 많다보니 또 다른 펠로우인가 싶었는데...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청소와 정리 등의 일을 한단다. 인도에서 왔고, 이곳에서 일한지 15년 째.. 그동안 수많은 펠로우들이 이 곳을 거쳐갔고 사진과 명패를 통해서 나를 이미 알고 있단다. 일하는데 방해가 되는게 아닌가 싶어서 남아 있어도 괜찮겠냐고 했더니만.. 걱정 말란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이 전에도 여러 명의 펠로우들이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하고는 했으니 걱정말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쓰레기통이며 회의실 탁자며.. 아침마다 항상 치워져 있었는데, 나는 그게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셀프 서비스라고 생각했었다. 어떻게 그런 깜찍한 생각을 했을까? 보건대학원에서도 대개 강의가 5시 반에 끝나는데, Women, Gender & Health 강좌는 6시 반에 끝나고 이걸 듣고 나오면 계단과 복도를 부지런히 닦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대부분 히스패닉이나 흑인들이다. 우리가 일과 수업을 끝낸 후에, 이들은 유령처럼 나타나서 소리없이 일하고 사라진다. 이들은 낮동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들도 용역, 혹은 파견 노동자들일까? 노조는 있을까? 일당은 얼마나 받고 있을까?

 

가끔씩...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나의 일상이 굴러가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는 한다. 그걸 깨달을 때면.. 그냥 혼자 쪽팔리지...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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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방문기 #2


인디언 거주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인도 이외에 인디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남아공이라고 하더군요. 같은 식민모국을 둔 덕분이랄까.... 그들은 플랜테이션에서 일하기 위해 끌려왔고, 남아공의 민주화 투쟁 동안 역시 "유색인"으로서 함께 투쟁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간디의 비폭력 평화 사상은 남아공의 투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네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세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수학, 문학.. 그리고 lifeskill... 도대체 이건 뭐냐 물었더니만... 자기 몸의 소중함, 영양, 에이즈, 다른 인종 혹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평등과 민주주의... 이런 걸 배우는 과목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초등학교 선생님은 고개를 숙여서 동양식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바로 이런 걸 배우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고.... 저는 이런 걸 배운 적도, 학교에서 가르칠 거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학교 운영은 물론 각종 지원금 유치나 결연을 통해 어린이들의 생활 문제를 해결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나라 경제는 어렵지만 기본 교육 12년은 무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새삼... 중요한 것은 가치.... 비록 남아공이 지금 경제적으로 어렵고, 과거의 불행한 유산으로 인해 커다란 교통을 겪고 있지만 그 어느 곳보다 인간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아공의 주요 종족은 줄루 족입니다. 11개의 언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하고 있을 만큼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줄루 킹덤이 가장 강하고 아직도 국가 중대사는 정부 관계자가 국왕이나 족장들과  협의를 하고 자문을 구한다고 하더군요. 사진은 이들의 전통 청혼 의식입니다. 일부다처제 사회인데, 경제력이 되는 한 부인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소 열 마리 이상을 주고 신부를 데려온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한 곳은 일종의 민속촌 같은 곳이었는데 단지 보여주기만 하는게 아니라 실제 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 엄마는 남자친구가 돈이 없어서 아직 결혼을 못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줄루족 마을 바로 옆에 악어와 뱀 농장이 있었습니다. 제 평생 이렇게 가까이서 악어를 본 적은 첨.... 손만 뻗으면 만질 수도 있었는데, 엄청 무섭더만요 -_- 안내원 총각(?)이 어찌 해박한지 악어의 종류, 습성, 그리고 뱀의 경우 cytotoxic, neurotoxic toxin에 이르기까지 정말 재밌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악어가 90살이 넘어서까지도 몸이 계속 자란다는 거 모르셨죠? 부화 온도에 따라 성별이 달라진다는... 퀴즈 프로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

지역 공공병원의 소아과 대기실 풍경입니다. 이곳의 의료 체계는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일단 민간의료보험제도에 의해 많은 부분이 이루어지고... 6세 미만의 어린이, 임산부, 실업자, 장애인, 노인 등은 조세에 의한 완전 무상의료 혜택을 받고 있었습니다. 좀 부끄럽더군요. 도덕적 해이니, 재정 파탄이니.... 교육 사례에서 보았듯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보호해야 할 핵심인지 잘 알고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기관은 낡기는 했지만 상당히 큰 규모에 괜찮은 시설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보수를 했다더군요. 부유층이 모여있는 주택가에는 민간 클리닉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의대는 엄청 인기가 있다고 하네요. 문제는 고급인력들이 자꾸 해외로 유출되는 것이고, 농촌 지역일수록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더번 시 ANC 지부 사무실을 방문했었습니다. 이전 혁명 동지들의 기념 사진과 선거 포스터가 어지럽게 붙어있었습니다. 현재 움베키 대통령에 대한 인기가 이전 만델라만큼은 못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90% 이상의 의석을 차지할만큼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코사투와 SACP(남아공 공산당)의 연합 전술 덕분이었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말 노력하고 있구나... 그리고 가치와 철학을 중시하는 정치 문화, 사무치는 평등과 연대의 정신, 그리고 놀라운 민중들의 평화 존중... 이 모든 것에서 남아공의 밝은 미래를 보았습니다. HIV 유병률 22%, 실업률 40%라는 이 사회가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자신의 힘을 잃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더욱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유인물 한 장.. 열추적 미사일에 발각될 수 있으니 작전 지역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는 피델 카스트로의 메시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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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방문기 #1



난생 처음 본 남반구의 일출입니다.
묵고 있는 호텔에서 걸어나와 1분만 걸어가면 바로 이 해변. 한가롭기 그지없는 풍경이지만, 막상 은행에라도 갈라치면 호텔 경비원과 함께 동행해서, 한 명씩만 들어갈 수 있는 통제된 출입구를 지나야 하죠. 보건대학원의 한 선생님은 이 멋진 해변에 신발을 벗어놓고 달리기를 한 후 신발을 잃어버리셨습니다. 남아공판 선녀와 나뭇꾼?



지역 사회 청소년 교육 기관인 Love Life Y center 입니다. 이곳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직접적 교육은 물론 컴퓨터, 자아 개발, 스포츠, 방송 활동 등 폭넓은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기 몸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가 교육자가 되어 지역 내 다른 청소년들의 리더가 되도록 하는 곳입니다.

아프리카식 저녁 만찬에서 한 남아공 흑인 여성이 자신의 살아온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남아공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영어가 짧아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감동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이 곳이 흑인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처음 보면 정말 어리둥절하죠. 도심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산비탈에 허름하게 모여있는 판잣집들...동사무소, 학교, 하다못해 교회 하나 보이지 않는.. 도대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었을까요? 지금은 새마을 운동과 같은 주택 건설운동이 한참 진행되면서 일부는 철거되고 일부는 건설 노동자들이 임시로 묵기도 하고, 또 여전히 주민들이 살고 있기도 했습니다.   

이 곳이 주택사업에 의해 새로 건설되고 있는 단지입니다. 무슨 창고같기는 하지만, 아직 전기나 수도 설비가 미비해서 많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살 곳이 없던 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보금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업이 진행되기까지 불만없이 차근차근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남아공 민중들의 인내에 사실... 놀랐습니다.

차를 타고 20분 이상 도심을 빠져나가면, 코엑스 몰 만큼이나 큰 대형 쇼핑 센터가 있습니다. 가는 길 또한 어디 미국의 부유한 도시를 지나는 듯 했습니다. 아름다운 대저택들과 놀라운 조명들....  남아공의 백인들은 다 어디 있나 했더니 이 쇼핑몰에 다 와있더군요 (^^). 물론 공식적으로 흑인이 입장금지된 것은 아닙니다만... 굳이 금지시키지 않아도 돈도 없고, 차도 없어서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또래들과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백인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지만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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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 나이 (민지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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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웃겨요...(민지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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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환 :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하는 10가지 이유(진보누리)

기득권 세력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소수의 소유자들이 전횡을 하고 대다수 사회적 약자들을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몰아넣는 천민적인 사유재산 절대주의 사회였다. 그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였다. 국가보안법은 이 비정상적 체제를 지키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논리의 확대 필요성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전후 세대의 지지를 받는 전후 세대 대통령으로서 당연한 자세이다. 그동안 국가보안법이 정권안보를 위해 반정부  인사들의 인권을 억압해왔으며, 이제는 우리 사회의 정상적인 발전을 위해서 족쇄가 되고 있음을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 전쟁을 경험한 보수적 주류 인사들은 국가보안법을 존속시켜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민주진보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을 다수 국민들을 상대로 설득력 있게 제시함으로써 국가보안법 존속 주장을 극복해야 한다.

   그동안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의 지배적인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통일운동이나 자주화운동에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종속시키는 논리>는 국가보안법 폐지투쟁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민중의 생활과 직접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논리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권운동사랑방 서준식 대표는 철저하게 <인권의 논리>로 국가보안법 철폐투쟁을 전개할 것을 제안하고 그러한 방향의 운동을 시도했다. “국가보안법 문제에는 철저히 '인권'의 언어를 가지고 '인권'의 입장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인권'은 정치정세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나 소리높이 외칠 수 있으며 안정적인 입지를 보장해준다. 또한 '인권'운동은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고 UN이라는 장에서 쉽게 먹혀든다는 이점이 있으며 일반시민․대중에게 공포감을 주지 않으므로 특히 '냉전 이후' 시대에 있어서 운동의 대중성을 달성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통일운동과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은 이제 막연히 혼재되어서는 안되며,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은 자체의 독립된 전문성과 전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서준식, “새로운 국가보안법 철폐운동을 향하여-기본구상”, 학술단체협의회, <국가보안법, 필요한가?> 토론회 발제문, 1996. 12).

   그러나 인권의 논리만으로는 다수 국민들의 국보법 철폐투쟁 참여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웠다. 일반 국민들 가운데서도 인권을 담보 잡히지만 생활만 향상시킬 수 있으면 국가보안법에 의한 자유의 제약을 감수하겠다는 실리적 사고방식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조갑제 기자는 박정희의 역사적 공과를 평가하는 TV토론 석상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이 인권을 억압한 것이 아니라 신장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대통령이 자유권을 약간 억압했지만 그 당시 다수 국민들이 겪고 있었던 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야말로 가장 크게 인권(생존권 생활권)을 신장한 것이 아니냐는 논리였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권+생활의 논리>가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은 단순히 소수 사회운동가, 양심수들의 인권 억압이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사회규범을 지배함으로써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하는 등 사회 전반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대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전 대표 서준식씨도 국가보안법 폐지의 필연성을 모든 국민의 희생에서 찾아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희생자는 극히 일부 기득권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다. 왜 모든 국민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것을 해내지 않으면 국가보안법 반대운동의 대중화는 불가능하다. 안이하게 ‘국가보안법=양심수’의 도식을 만드는 일, ‘국가보안법 피해자선언’을 발표해대는 일, 이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운동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교도소에서 ‘양심수’와 ‘잡범’ 사이에 계급이 있듯이 운동권 엘리트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 아닌가?”(서준식,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에 관한 몇 가지 단상”, ꡔ인권하루소식ꡕ, 인권운동사랑방, 1999년 11월 2일)

   한국사회의 변화와 국가보안법의 시대착오성

   국가보안법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을 ‘국가보안법체제’라고 부를 수 있다. 국가보안법이 견고한 재생산구조를 가지고서 지속적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1970년대에 대하여 ‘유신체제’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국가보안법체제’는 이와 동일한 차원의 개념이다. 이 때의 체제란 특정 개인의 퍼스낼리티나 정치세력의 집권을 넘어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구조화된 질서로서 재생산되고 상당한 지속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보안법은 단순한 법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성격과 변화에서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로서 작용해왔다.

   국가보안법체제가 한국자본주의 발전에 미친 영향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국가보안법체제는 인권을 억압하는 체제인데도 지금껏 유지되어왔다. 그런데 왜 최근에 와서는 국가보안법 폐지의 적극적 주장이 나오고 지배세력 일각에서도 페지 내지 근본적 개정 주장이 나오게 되었는가. 그동안 무엇이 어떻게 변화되었는가.

   1960, 70년대까지는 북한의 위협이 실재하였고, 이에 따라 다수 국민들은 전쟁의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과 자유의 제약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수용한 면이 있다. 그리고 고도성장을 이루기 위하여 노동권의 억압을 수용하였고, 또 자유를 희생하는 대가로 국민들의 생활수준은 꾸준히 향상되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역사적 공과에 대해서 상당수 국민들, 특히 1960, 70년대에 사회활동을 한 노령층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에는 이러한 근거가 있다. 국가보안법체제가 고도성장에 일정한 순기능적 역할을 한 것이다. 따라서 대다수 국민들도 국가보안법 철폐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1980, 90년대에는 한국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경제로 되었기 때문에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기능이 부재한 상태에서 재벌체제, 사유재산절대주의 등 구조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 1997년말의 IMF 사태와 같은 파국적 경제공황의 발생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오늘 우리는 전기, 가스, 통신망, 금융거래망 등 고도로 복잡한 기술시스템의 속에서 살고 있어서 어느 한 군데라도 잘못되면 그 파급력이 엄청나고 우리의 삶과 생명이 위협받는다. 이제는 자유와 인권의 보장 없이는 경제적 생존도 어려워지는 상황으로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오면 국가보안법체제는 자본주의체제 모순 완화와 체제의 안정적 재생산에 역기능적 역할로 전환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적 모순의 심화와 경제불안정 및 재생산위기 사태가 국가보안법체제의 전환과 종식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이  크게 진전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의 폐해, 곧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들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기본적 인권을 탄압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과 창의성을 억압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정당을 탄압함으로써 정치의 민주화를 억압했고,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했고, 한국이 미국에 종속되도록 했다. 국가보안법은 경제적으로는 재벌체제와 사유재산 절대주의를 옹호함으로써 재벌독재체제와 부동산투기 고지가 문제를 야기했다. 국가보안법은 사회적으로는 민주적 노동운동을 억압하고 사학재단의 부패와 전횡을 옹호했다. 국가보안법은 문화적으로 평등을 추구하는 좌파 사상을 억압하고 우파사상을 만연하게 했다.    

   첫째, 국가보안법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억압했다. 일제하부터 최근까지 계속되어온 종전의 전향제도나 99년에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에게 사면을 할 때 제출을 강요하는 준법서약서 제도는 바로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종교도 심하게 왜곡되어 기복신앙이 판치는 것도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문제를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해결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정성과 기도 등에 의존하여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정신상태를 배경으로 한다.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국민들은 진실과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없었고 많은 언론인들은 진실을 보도하다가 억압을 당했다.  

   둘째, 국가보안법은 학문의 자유와 문학 예술 창작의 자유까지 억압했다. 학문은 우리의 지식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고 진실을 추구한다. 그런데 학문적 연구결과를 사법적으로 재단할 경우 사회과학분야에서 진리 추구라는 학문의 존립근거는 없어지고 학문에게는 체제정당화 기능만이 남게 된다. 검찰이 1988년 학술단체협의회 심포지움의 서관모교수 발제문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려 한 것이나 1994년에 경상대학교 교양교재인 {한국사회의 이해}를 이적성 서적으로 규정해 저자들을 기소한 사건은 학문의 자유 침해의 전형적 실례이다. 조선일보가 김대중정권에 자문역할을 한 최장집 교수에까지 ‘마녀사냥’의 칼날을 들이댈 수 있었던 근거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고 민주화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존속하는 한 조선일보의 안보상업주의를 잠재울 수 없고 제2, 제3의 최장집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국가보안법은 문학과 예술의 자유를 억압했다. 해방 이후 한국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인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화가 신학철 그림의 초가집이 김일성의 생가와 닮았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선생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레드헌트}라는 영화는 대법원에서 이적 표현물이 아니라는 판결이 났지만 이 영화상영을 주도했던 인권운동 사랑방 대표 서준식씨는 구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작품,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한 작품이 나올 것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보안법은 사회심리적으로 인간의 창의력을 침해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기고 무의식적인 공포를 조장해왔다. 많은 사회인사, 진보인사들은 자신의 발언과 글이 혹시 국가보안법에 걸려들까 봐 자기검열에 전전긍긍하였다.
   이제 한국은 중국 경제의 급속한 추격에 대응하여 과학기술 수준을 높이고 인문사회과학에서도 한국의 상황에 적합한 이론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인간의 창의적인 활동을 억압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셋째, 국가보안법은 민주정치를 억압하고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저지해왔다. 국민들은 이력서의 정당, 사회단체, 가입 란을 보면 주눅부터 든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다. 자기 생각대로 정치적 입장을 폈다가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곤욕을 치를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의 정치세력화를 저해했다. 국가보안법은 자본주의적 모순이 심화된 한국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근로대중들이 정치적으로 단결하여 정당을 조직하고 선거를 통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1958년에는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1987년 6월 항쟁후 민주화가 진전되고 1997년 외환위기 후 민주노동당이 2000년에 결성될 때까지 진보정당의 존립은 불가능했다.  

   넷째, 국가보안법은 남북관계 개선을 방해하고 통일을 지연시켰다. 국가보안법은 변화된 남북관계에 맞지 않게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 사회주의 진영도 해체되었고, 북한은 한국과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당국자 회담이 진행되고 있고, 개성공단에 한국 기업들이 들어가고 있는등 남북 교류도 활발해졌다. 그런데도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도 시대착오적이다.

   다섯째, 국가보안법은 대미종속적인 외교, 국방의 원인이 되어왔다. 국가보안법의 뒷받침을 받아 남북이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을 배경으로 한국은 미국에 군사적 외교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한국경제의 규모가 세계 12위에 있는 지금 군사 활동, 국제통상교섭 등에서 개도국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이라크 파병요구 거부 등 평화외교를 펼칠 수 있는 자주적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여섯째, 국가보안법은 사유재산 신성시 관념을 강요했다. 우리 사회에는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뭐가 문제냐”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사회주의국가나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는 사유재산의 규제가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사유재산의 한계에 대한 비판을 국가보안법이 억압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상가와 주택 임대차의 권리 보호를 지연시켰고, 부동산은 투기대상이 되고 가격 폭등이 일상화되었다. 국민소득에 대비한 지가수준이 세계 최고가 된 것은 국가보안법의 탓이 크다.  

   일곱째, 국가보안법은 재벌체제에 대한 공격을 저지해왔다. 재벌체제는 독점 대기업들이 국민경제를 지배하고, 이 독점대기업들을 소수의 재벌총수가 미미한 지분을 가지고 계열사간 지분소유를 수단으로 지배하는 이중적 독재체제이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재벌의 폐해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전경련 상무는 재벌에 대한 비판과 노동자의 경영 및 소유 참가 주장을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매도했다.  

   여덟째 국가보안법은 민주적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활동을 억압했다. 우리는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도록 들어와고, 부모들로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라는 교훈을 들어야 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참아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 관련 서적을 읽고 노동자단체들이 사회주의적 주장을 하는 것을 억압했다.

   아홉째, 국가보안법은 사회의 공공적 부문에서도 족벌의 전횡을 조장했다. 국가보안법은 사립학교와 사립 병원, 족벌 언론, 족벌 교회의 전횡을 뒷받침해주었다. 사립학교 재단 설립자들은 학교를 사유물로 취급하고 학교 재산과 수입을 자기 것으로 빼돌리는 범죄행위를 저질러왔다. 이에 대응해 전교조 교사들과 학부모,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면 사회주의를 하자는 것이냐 하며 반발한다. 국가보안법에 의지해서 사학에 대한 전횡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언론기관이 집권세력이나 특정재벌 및 족벌의 사유물로 전락하게 되는 데도 국가보안법은 기여했다.

   열째, 국가보안법은 이기주의, 기회주의, 출세주의를 만연시켰다. 국가보안법이 인간평등론과 연대를 통한 저항을 강조하는 좌파적인 사고방식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우파적 사고방식을 조장한 것이다. 우파들은 불평등은 선천적인 것이며, 따라서 제거될 수 없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불평등한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파들은 대답은 “억울하면 출세하라”이다. 우파 정치세력은 현재의 불평등구조를 존속시키거나 확산시키려 한다. 우파는 사람사이의 관계를 수직적 지배종속관계로 본다. 위 사람과 아래 사람으로 구분하고 위 사람을 잘난 사람으로 우러러보고 부러워한다. 우파는 지위와 재산을 인간의 존엄성보다 중시하고 지위와 재산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우파적 사회분위기 속에서 부모들은 자녀가 공부를 못하면 마구 구박하고 심지어는 죽어버리라는 극언하는 등 자녀를 자살로까지 몰아세우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우파적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것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평등주의를 본질로 하는 좌파적 사고방식과 실천이 완전히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다수 국민의 행복과 정상적인 사회를 위해서

   정부 관료들은 국가보안법은 이제 신중하게 적용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극소수라고 하고, 사회 고위직을 차지했던 기득권자들은 국가 보안법이 한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소리높여 옹호한다. 그리고 다수 국민들은 국가보안법은 그 법에 위배되지 않는 일을 하지 않을 나한테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소수의 소유자들이 전횡을 하고 대다수 사회적 약자들을 견디기 어려운 고통으로 몰아넣는 천민적인 사유재산 절대주의 사회였다. 그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사회였다. 국가보안법은 이 비정상적 체제를 지키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다수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는 정상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은 이제 폐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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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료/문화 개방 사유화 저지를 위한...


  

셋째 정부는 경제자유구역내 외국병원이 유치되면 국부유출은 없고 오히려 외국진료의 국내흡수 가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선 외국진료가 1조원 규모라는 연구는 근거가 없음이 밝혀진지 오래이다. 미국전체의 외국인에 의한 진료수입이 연간 1조 2천억원 수준이다. 이러한 규모로 보았을 때 한국 한 나라에서만 외국진료로 인한 외화유출이 1조원이라는 것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수치이다. 또한 외국진료의 대부분은 원정출산이나 여러 외국병원의 세계일류부문에 한한 것이다. 국내외국병원에서 출산할 때 외국국적을 주는게 아닌 이상, 그리고 국내 한 병원에 여러 외국병원의 초일류부분만 모을 수 없는 이상 외국진료의 대부분은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국내의 외국병원에 대한 신규수요만 늘리게 될 것이며 이는 곧 국부유출로 이어질 것이다. 국내외국병원이 유치될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유치된다고 하여도 이는 외국병원과의 연계구실을 하게 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넷째 외국인설립이 아니라 외국인투자기업까지 병원설립자격요건을 확대한 것을 재경부는 국내기업에 대한 차별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이야기 하나 사실상 이는 외국병원의 투자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조치라고 보인다. 중국에서 확인된 바로는 한국에서 양해각서 체결 이야기가 나온 유펜이나 하바드 대학병원의 경우 내수시장이 넓고 병실료와 인력이 훨씬 유리한 중국과 투자협정을 상당정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한국진출은 사실상 없었던 일이 되고 있다.
  결국 이번조치는 국내의 몇몇 대형병원들이 외국브랜드만 유치한 형태로 영리법인화를 허용하는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이는 국내병원간의 차별을 노정하여 결국 역차별 논리에 입각한 국내병원 전체의 영리법인화를 촉진하게 될 것이다.

  다섯 번째 재경부는 국내공공의료체계의 확충을 보완정책으로 내놓고 있는 바 공공의료확충은 그 자체로 필요한 것이지 의료개방의 보완물이 아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바로 이러한 말을 하는 재경부가 2004년은 물론 2005년 내년 예산 심의에서 공공의료확충예산을 일반회계에서 전액삭감하였고 기금예산에서 조차 대폭 삭감하여 공공의료확충이 거의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공공의료확충예산을 거의 전액삭감하고 한편으로는 공공의료확충을 보완조건으로 이야기하는 재경부는 거짓말을 전문적으로 늘어놓는 부서인가?

  이처럼 재경부의 주장 전체가 사실상 거짓말일뿐이며 이미 밝혀진 사실과 전혀 다르다

  2. 경제자유구역 병원의 내국인진료, 영리법인허용안은 철회되어야 한다.

  현재 최대다수 가입자단체인 민주노총과 전농, 시민단체와 진보적 보건의료단체 등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재경부의 이번 조치를 반대하고 있다. 또한 국내의 의료계 직능 4단체 모두 재경부의 조치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보건복지부도 의료개방은 매우 신중하게 처리해야할 사안이라고 말했으며 재경부가 예산의 거의 전액을 삭감한 공공의료가 확충되기 전까지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즉 시민사회단체 전체와 직능단체 전체가 반대하고 있으며 정부부서간의 협의도 아직 채 이루어지지 않은 조치가 이번 재경부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이다.

  경제자유구역내 병원의 내국인 진료와 영리법인화는 누차 지적하여왔듯이 그 자체로 국내 고급수요층의 의료수요만을 겨냥한 것으로 의료이용의 빈부격차만을 증가시킬 것이며 외국인 환자유치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또한 경제자유구역내 병원의 영리법인화는 연쇄적으로 전체병원의 영리법인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며 이는 당연히 의료의 고급화와 의료비 지출의 급등을 부추킬 것이다. 이러한 의료비를 건강보험재정이 담당할 수 없으므로 건강보험과 경쟁적인 대체형 민간보험도입은 필연적이 된다.
  이러한 영리법인-민간의료보험체제는 한마디로 재경부가 말하는 국내병원경쟁력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나 남미처럼 비효율적이면서 불평등한 체제로 귀결된다는 것이 이미 전세계적으로 확인된지 오래이다. 미국은 의료비로 GDP의 14%를 쓰면서 5000만명에 가까운 인구가 의료보험이 아예 없고 국민의 의료만족도가 10%내외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남미의 경우 인구의 10%정도가 민간보험에 가입하여 영리병원을 이용하고 인구의 나머지는 보험혜택이 극소로 축소된 공적 보험으로 의료불평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영리법인-민간의료보험도입은 현재도 민간기관이 중심이어서 매년 의료비상승률이 GDP 성장률의 2배인 한국의 의료비 상승폭을 폭발적으로 만들것이 분명하며 이는 거시경제적으로 엄청난 비효율과 의료이용의 빈부격차의 심화를 낳을 것이다.

  재경부의 이번 입법예고는 동북아 허브라는 정부의 구상에 의료의 특성을 모르는 채 적당히 구색맞추기로 끼워넣은 동북아허브병원 구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근거로 든 싱가포르나 중국, 제한적 영향론, 경쟁력 강화론, 외국진료억제론 등은 하나도 근거가 없음이 이미 명백하다. 위험성은 극히 크나 실익은 없거나 극히 의심스럽다.

  한국의 보건의료체계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의료보장률45%, 공공의료기관비율 8%는 OECD 평균 의료보장률 70-80%, 공공의료관비율 75%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동남아시아 국가보다도 공공성이 취약하다. 정부가 해야할일은 이러한 한국의 취약한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지 현실불가능한 외국진료수요나 국내일부 부유층의 고급의료수요를 충족시키려다가 국내의료체계를 붕괴시키는 경제자유구역 병원의 내국인진료허용과 영리법인허용이 아니다. 이 입법예고안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이 법안을 저지시킬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우리의 주장

1. 경제자유구역내 병원의 내국인진료․영리법인화 허용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철회하라
2. 재경부장관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파괴하는 입법예고안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
3.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주무장관으로서 경제자유구역법개정안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혀라
4. 참여정부는 의료보장률 80%, 공공의료비율 30% 확충공약을 준수하고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경제자유구역내 병원의 영리법인화 허용과 의료개방조치를 즉각 철회하라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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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글] 최순영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보내는 서한

고 김경숙 열사 제25주기 추도식을 맞이하여


  비가오는 여름날이면 어김없이 몸소리치는 두려움에 떨며 밤을 맞이합니다. 그러다가 옆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서야 비로서 과거가 아니라 현재임을 확인하고 평정심을 찾는 것을 반복한 지도 벌써 25년째입니다. 오늘은 YH 지부장으로서 조합원들과 함께 신민당사에 진입하여 사흘밤을 뜬눈으로, 고향집 부모님과 어린동생들을 생각하며 버티었던 마지막 날입니다. 그 날 기어이 박정희 정권은 폭력으로 어린 노동자들을 짓밟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마저도 무참하게 빼앗아 갔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빨갱이로 덧칠이 되는 것을 보면서 권력자의 야만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산업화의 역군이라고 유신내내 칭송하던 그들이 순식간에 입을 닥고 빨갱이로 몰아가는 파렴치함에 치를 떨고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운명을 달리한 경숙이만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분노가 동시에 온몸을 짓누릅니다.

  연일 벌어지고 있는 두 보수의 국가정체성 논란을 보면서 참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박근혜 대표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역할을 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판사와 변호사를 하면서 지낼때 숨막히는 공장에서 공순이로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그 이상의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 고혈로 만들어진 경제성장을 마치 박정희 개인이 만든 것처럼 왜곡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미래만을 언급하는 역사관으로 국가정체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그동안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국가 정체성’이라는 잣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나요. 그동안 국가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아시나요. 그 수많은 국민들이 바로 국가 정체성이며, 국가 정체성은 그들이 원하던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요. 그 국민들이 권력의 정체성 전쟁이라는 광장에 타의로 끌려나와 커다란 고통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다 알지 않은가요.  

박근혜 대표님이 얘기하는 국가정체성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반공주의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요. 아니면 다시 산업역군이라고 칭송하던 성장제일주의로 되돌아 가자는 얘기인가요.  국가 권력이 개인이 생존여탈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던 그 ‘좋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얘기인가요.

박근혜 대표님!

  10일 오전 님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도동 자택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지난 79년 신민당사에서 우리 그렇게 처절하게 싸울 때, 님의 부친이 당시 김영삼 신민당사 총재를 만났더라면, 경숙이의 억울한 죽음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님은 극구 부인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 규명 등을 둘러싸고 발언하는 님의 국가정체성에는 여전희 박정희의 그늘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습니다. 님이 퍼스트레이디로 있을 때, 사람잡고 경제잡는 성장이데올기에 우리는 수없이 속아왔습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권력이 앞장섰다면, 지금은 폭력적인 시장주의가 우리를 옭아매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님이 국가정체성을 말하기 전에 경제의 고도성장과 정치의 권위주의가 수레바퀴처럼 굴러갈 때 벌어진 수많은 일들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저는 경제성장이 곧 박정희라는 등식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경제는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노동자의 희생속에 성장했을 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른 바, 고도성장의 그늘이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찼는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에게 감히 당부드립니다. 아버지의 독재를 시대적 요청으로 인식하는 거나, 경제성장을 박정희 작품이라고 보는 것부터 교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님이 이렇게 국가 정체성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언급은 삼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권위주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유산에 대한 욕심을 제발 버리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하는 국가정체성 또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유신이냐, 미래냐’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헌법을 위반하면서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것인가요. 박정희 정권 때도 그렇게 베트남에 파병을 했는데, 과연 ‘유신이냐, 미래냐’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부끄럽지 않은가요. 개혁에 대한 실천은 않고 벌써부터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가요. 과거로 회귀하려는 갖가지 정책이 열린 우리당에서 쏟아지는데 과연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가요.

노무현 대통령님!

  님께서 2003년 2월 제16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한 말이 기억납니다. 님은 “개혁은 성장의 동력이고, 통합은 도약의 디딤돌입니다.”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갑시다.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나아진 게 전혀 없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인 박일수씨를 비롯해 비정규직 차별과 희망을 잃어가는 노동자들의 자살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얘기인가요. 미래만을 얘기할 수 있는건가요. 님이 선택을 강요하는 ‘유신이냐,미래냐’는 현재의 노동자, 서민의 삶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굳이 역사학자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재의 우리 국민들의 삶을 고민한다면 민생을 챙기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재벌개혁을 비롯해 각종 개혁은 선거용이었다면, 지금이라도 보수의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장밋빛 희망만을 양산할 뿐, 현실이 되지 못하는 미사어구에 불과한 말잔치에 더 이상 속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개혁과 진보는 실천을 할 때 비로서 개혁과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넘어서지 못하는 박근혜 대표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용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권력을 두고 벌이는 게임만이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서민들의 민생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우리 노동자 서민에게 고통과 비극을 가져다준 아픈 현대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있다면, 국가정체성 논쟁보다는 당장 민생의 바다에서 짠 바닷물을 마시며, 고통을 나눠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 서민에게 좌절과 실패를 안겨주었던 분단도 어찌보면 두 보수처럼 ‘국가 정체성’을 빙자한 권력싸움이 만들어낸 과거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내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경숙이를 만난다는 설레임 때문일까요. 솔직히 잠이 안옵니다. 그동안 같은 공순이로서 언니로서 경숙이를 만나왔는데, 내일은 국회의원이라는 옷을 하나 더 걸치고 가야하기 때문인지, 더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가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들은 하나같이 모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일찍이 고향과 부모곁을 떠나 냉혹한 사회에 뛰어 들어 산업의 역군들로서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번 돈은 그대로 고향집으로 보냈습니다. 부모님의 자식농사에 보태고, 다시는 우리처럼 못배워 고생하지 말라는 거였지, 경제성장의 단맛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분께서는 이 점을 깊이 깨달아주셨으면 합니다.

2004. 8. 10(화) 밤에 최순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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