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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 가지 화두

요즘 부쩍 드는 의문인데....

 

#1.

 

한국에서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를 과연 무얼로 설명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무슨 자문회의 갔는데, 참석자 열 명 중에 안 보는 사람이 나밖에 없었음... ㅡ.ㅡ

 

각종 문화비평이나 칼럼들은 공정한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 비주얼 중심의 아이돌 가수문화에 대한 식상... 대강 뭐 이런 걸로 설명하고는 했다. 글쎄...

 

내가 그런 프로를 안 보는 이유는...

등수를 내고, 탈락자를 정하는게 싫어서다.

학생시절 내내 등수를 매겼고,

심지어 일터에서도 끊임없이 평가를 받는게 한국 사람들의 일상인데

이제 지겹지도 않나???

자신이 대상자가 아니라, 점수를 매기는 사람의 위치에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범국민적인 복수전?

 

#2.

 

아까 뉴스데스크 보는데, 기업들의 해병대 체험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단다.

군대에서 훈련한 리더쉽이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된대...  (웃어야 하나???)

 

이건 정말 분열증이라고 이야기할수밖에 없다.

 

작년 아이폰 '사태'를 겪으면서, 이제는 창의적 인재의 시대라며

방송이며 신문이며 밤낮없이 떠들어대더니만 뜬금없이 군대 문화???

 

또한 올해 초부터 끊이지 않는 대학에서의 폭력 사태 구설수는

뿌리깊은 군사문화로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는데...

 

기자들 정신세계는 한 번 탐구해볼만...

 

#3.

 

어디까지가 공모이고 어디까지가 희생인지....

내가 보기엔 분명히 공모자인데, 스스로를 희생자로 그리는 이들을 보면 어이 상실...

 

사실, 원칙을 미리 정해두고 그 조건에 부합하는 경우에만 희생자로 정의하면 좋겠지만

현실에서는 참 판단이 어렵다.

 

하지만,

충분히 저항할 수 있는 물적/사회적 토대가 있음에도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부당한 질서를 공고화하는데 기여했다면

(본인은 희생자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극적 공모만큼은 아니더라도, 죄가 없다고 말하지는 못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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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성을 전복하는 영화 두 편

최근에 본 영화 두 편, 외양은 엄청나게 다르지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존의 전형성을 전복하는데다,

바탕에 '소통과 교감'의 중요성을 강조한게 아닐까 싶다. 물론 전적으로 내 생각...

 

#1. <황당한 외계인 폴> 2011년 (그렉 모폴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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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에 본 영화들 중에 가장 발랄하고 웃겼던 작품

세 주인공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그리고 폴 역의 세스 로건)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단다.

 

외계인 폴은, 한편으로 우리 통념이랑 너무 똑같아서 ('기존' 외계인과 똑같은 외모, 그리고 여타의 영화에서처럼 영어를 쓴다는 ㅋㅋ) 미지와의 조우를 기다리던 자에게 한없는 실망과 허탈함을 안겨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통념이랑 너무 달라서 (너무 터프하고 외설적이야 ㅋㅋ) 사람들을 식겁하게 만든다.

그동안 인구에 회자되던 모든 외계인 괴담들을 총망라했고 (이를테면 항문에 probe를 집어넣는다, 앨비스 프레슬리 살아있다 등등) 또 SF 를 둘러싼 독특한 팬덤을 아주 재간있게 비틀어놓은지라 (코믹콘에서 수여되는 상이 Hugo와 쌍벽을 이루는 Nebular award 가 아니라 Nebulon award, X-file 의 멀더캐릭터나 스필버그 ET 컨셉은 모두 폴이 조언해준 것이었어!!!) SF 를 좋아하는 자라면 정말 즐거워하며 볼 수 있는 영화...

심지어 마지막에 등장하는 우리 시고니 위버 왕언니... ㅋㅋㅋ

 

정부는 요원을 통해 폴을 추적하고,

우연하게 이들과 동행이 된 애꾸눈 처녀 때문에

복음주의 광신도 아버지가 이들을 추적하고,

정규직 요원자리를 차지하고픈 꼬붕 요원들이 다시 또 이들을 추적하고...

엄청 정신없는 추적극과 대소동 속에서

은근히 드러나는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방을 긍정하는 따뜻한 마음..... 이라고 하면 내가 오바쟁이?

 

 

#2. <파수꾼> 2011년 (윤성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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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내내, 전형성에 길들여진 나의 무의식적 통념과 배반이 이어졌다.

이건 나만이 아니라 같이 본 도끼도 호소한 증상이다.

 

첨에는 누가 죽은 줄 몰랐다,

다음에는 괴롭힘을 당하던 희준이가 죽은 줄 알았다,

그리고는 기태 아버지가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무언가 어두운 음모가 밝혀질 줄 알았다.

아이들의 어정쩡한 말투에서 분명 무언가를 숨긴다고 생각했다.

기태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복수' 의 징벌을 당한거라고 믿었었다.

 

동윤이와 기태와 결정적으로 갈라서는 순간에도

동윤이의 여친 세정이에게 기태 일당이 무슨 대단한 해꼬지라도 한 줄 알았다.

심지어 집단성폭행이라도 한게 아닌가 의심했다.

 

동윤과 기태가 밤을 지새우며 수다를 떨 때도,

'나도 한 잔 줘' 하는 대사에 당연히 술을 줄 것으로 알았다.

물병을 보고도 믿지 못해, 저것들이 물병에 술을 따랐나 했다.

애들이 쌈박질 하는 장면에서도 체인이나 주머니칼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근데 그냥 치고받고 싸우기만 했다.

 

나보다 한술 더뜬 도끼는 이 남자아이들이 서로 사귀는 줄 알았단다... ㅡ.ㅡ

그래서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한 아이가 세상을 뜨는...............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들어맞지 않았다...

아이들의 파국은 그저 사소한 오해와 미숙한 대화, 상처받은 여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우리는 영화적인 '드라마'와 '스펙타클'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들은 차마 영화적 갈등의 요소가 될 거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던 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떠오른 한 마디는 "애들은 애들이다" ....

내가 너무 때묻은 존재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니... ㅡ.ㅡ

 

겉모습은 마초에 야생마 같았지만

아이들의 속마음은 너무 여렸고, 스스로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알지 못했다.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도 모호할 뿐더러

살아남은 아이들이 기태 아버지를 만나 영문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던 것은

'저런 영악한 놈들!'이 아니라 정말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 선생이나 부모는 그저 주변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이게 현실에서도 사실이리라.

파수꾼 한명 없는 비정한 안개 속 세계에 던져진 아이들.....

서로라도 따뜻하게 보듬을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영화는 신인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짜임새가 빼어났고,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기태 역을 맡은 배우는 박해일 동생인 줄 알았음)

감독과 배우들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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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기록

지난 달에 산수유 매화 보러 남도에 다녀왔었다. (그걸 이제 올려...ㅡ.ㅡ )

꼭 포스팅을 해야 한다고 누가 쪼아대는 건 아니지만,

일더미에 묻혀 있다가도 문득 돌아보는 나들이 포스팅들이

상큼한 자극이나 한숨 돌리게 하는 위안이 된다는 점에서 '저축' 삼아 올린다.

 

#1. 구례 산수유 마을....

 

아침 7시 반에 양재역에서 버스에 올라 잠시 휴게소에서 화장실 다녀온 것 말고는 정말 눈 잠깐 붙였을 뿐인데,  벌써 구례에 도착해 있었다.

당시, 꽃샘 추위 때문에 산수유가 완전히 만개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평일, 조용한 마을,

따뜻한 기운과 함께 나른하게 피어오르는 산수유 무리는 

'봄'을 실감케 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산수유는 학생 때 국어교과서에 나온

"...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붉은 산수유 열매..."

근데 정작 같이 간 주먹도끼는 이걸 기억하지 못했다. 나만 이상한 사람 됨... ㅡ.ㅡ

 

기이하게 촌스러운 산수유 열매 동상 (?) 도 나름 귀엽고

사진은 못 찍었지만 멀리서 바라본 산수유 대형 동상도 유쾌 ㅋㅋ

돌담길의 예쁜 그림도 정감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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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광양 매화마을

 

매화마을로 이동하는 동안 도끼와 나는 창밖 도로변 하얀 꽃의 정체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먼저 주먹도끼는 그것이 매화라고 주장했지만,

내가 그럴리 없다. 내가 아는 매화는 좀더 분홍색이라고 반박했다. 그자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는 그것이  '배꽃'이라고 추정했다.

근거는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시조에 따라 배꽃은 봄에 피고, 또 하얀 색이며, 과수원처럼 생긴 곳에 중점적으로 피어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둘다, 자신은 없었다.

버스에서 열심히 아이폰을 검색해봤지만 결론을 내리기에는 양쪽 다 근거가 부족했다.

 

남한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섬진강변을 열띤 토론(?)과 함께 지나며 매화마을에 도착해서 알게 된 것은...

매화가 눈처럼 하얀 것부터 빨간 색까지 아주 다양하더라는.. ㅡ.ㅡ

내가 예전에 낙안읍성에서 본 분홍 매화는 그 중 하나...

 

매화는 한심했을 것이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꽃구경이랍시고 천리길을 달려왔다니.. ㅜ.ㅜ

 

매화는 아름답고,

매실을 담가둔 항아리들의 풍경은 평화로웠으며,

작은 대숲은 청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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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봄 향기를 실컷 맡고,

심지어 현지에서 지인들에게 엄청 자랑질 문자를 날려댔으나,

약효는 믿을 수 없을만큼 짧았다.

정말 일주일도 안 가..... ㅜ.ㅜ

 

약발이 짧은 만큼,

자주 다녀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보아하니 지구 멸망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은데,

올해 목표 중 하나인 한 달에 한번씩 나들이 간다는 꼭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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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차

시사매거진 2580 보는데 참으로 가슴이 서늘해졌다.

 

포항지역에서 성매매에 종사하던 여성들 몇 명이 연달아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물론, 그건 착취와 관련된 것이었고, 직접적으로는 부채, 특히 사채와 관련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서로 보증을 서왔기에 누군가의 죽음은 다음 사람의 부담으로 이어졌던 게다. 

사건이 이쯤 되고 보니 지역에 대대적인 단속이 이어졌고, 그래서 인근의 유흥업소들 매출이 뚝 떨어졌단다.

업주들은 시위에 나섰다.

 

아주 놀랄만한 소식은 아니다.

 

내가 뉴스 화면에서 놀란 것은 두 가지였다.

 

우선 경찰은, 언론이 왜 이 여성들의 죽음에 유독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모텔 주인이라는 한 중년 여성은 죽은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게 뭐냐며 고함을 질러댔다. 우리는 세금내며 장사하는 사람들인데 이럴 수가 있냐는 거다...

 

연민없는 이 세상을 마주볼 용기가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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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 [휴전]

hongsili님의 [이것이 인간인가...] 에 관련된 글.

 

드디어 전쟁이 끝나고,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끝나나 싶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조차 순탄치는 않았다.

세계 정치라는, 도대체 우리네 일상과는 닿아있지 않을 법한 그 거대한 질서가

그들의 귀향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역사의 회오리에 휘말린 자들,

그들 개개인이 경험한 '비일상'을 어떻게 스스로에게 또 타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휴전
휴전
프리모 레비
돌베개, 2010

 

 

전편 [이것이 인간인가] 와 마찬가지로,

책을 읽으면서, 또 읽고 나서 생겨나는 감정은 그야말로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는 경험 속에서 깨달은  '인간'으로서의 본원적 욕구와 고유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 하릴없고 상대적으로 건강하게 보낸, 그래서 가슴속에 스며드는 향수로 가득한 두 달이었다.

향수는 깨어지기 쉽고 섬세하며,

본질적으로 다른 고통이다.

구타와 추위, 배고픔, 공포, 박탈, 질병 같은,

우리가 그 때까지 겪었던 고통들보다는 더 친밀하고 인간적인 고통이다.

맑고 깨끗한 고통이다.

그러나 절박한 고통이다..."

 

물론, 전작과 다르게 문득문득 기지와 유쾌함이 발휘되기도 한다.

이전 작품이 '증언'이라는 시급한 복무에 따라 폭풍처럼 쓰여졌다면,

이 책은 무려 20년이 흐른 후에 어쩌면 (이런 말을 써도 될는지 모르지만) 관조의 시선으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찾은 후에서 더욱 차분하게 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전자가 바닥을 알 수 없는 나락에 대한 기록이라면,

과정이 어쨌든 이책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기에 그런 것이기도 할게다.

 

제각기 개성이 뚜렷한, 위기 상황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변이를 보이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무척 '재미있다'

심지어 수용소를 벗어나 벌거벗은 수렵채집인의 생활을 하는 한 포로의 기술발전사(?)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무거운 마음 중에도 웃지 않을 수가 없다.

"... 그렇더라도 그 또한 사람의 아들이었으므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지식과 덕을 추구했고

매일같이 자신의 기술과 도구를 단련했다.

그는 칼을 제작했고 그런 다음 창과 도끼도 만들었다.

시간이 있었다면 농업과 목축 기술도 재발견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건 원래 더글라스 아담스 전공인데...

러시아 수용소에서 겪은 영화상영의 일화는 또 어찌나 황당하던지...

잠시 열차가 정차한 순간 물을 길러 갔다가 차를 놓칠뻔한 이야기도 요즘 유머 게시판 수준이다.

 

그렇다고, 옮긴이가 후기에 쓴 것처럼 이 책이 그렇게 '유머 가득한 시선'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독자들로 하여금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성찰에 동참하게 했다는 해설도 도저히 동의하기 어렵다.

 

프리모 레비는 차분하지만 끈질기게. 인간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 질문의 무거움은, 앞서의 유쾌함과 생동감으로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모든 역경을 거치고 마침내 오른 거대한 귀환 열차는 비엔나를 거친다.

 

"우리는 패배한 독일인들과 파괴된 비엔나를 보면서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가슴 아팠다.

연민이 아니라 좀더 폭넓은 의미의 아픔이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비참함과 혼동되는, 가혹하고 곧 닥쳐올 듯한 느낌,

회복될 수 없고 결정적이고 도처에 있는 병의 느낌,

유럽의, 세계의 뱃속에 궤양처럼,

미래 재앙의 씨앗처럼 자리잡은 병마의 느낌과 혼동되는 아픔이었다."

 

열차는 오스트리아 국경을 지나 다시 뮌헨에 정차한다.

 

"... 처음으로 우리의 발밑에 독일의, 상 슐레지안이나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바로 독일의 한 자락을 느낀다는 사실은

피곤함에 더하여, 견딜 수없는 초조함과 좌절과 긴장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심정을 한층 가중시켰다.

우리는 독일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언가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엄청난 것들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독일인 각각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결산을 해야 할,

체스 선수들이 경기가 끝날 때 그러는 것처럼 질문하고 설명하고 논평해야 할 절박함을 느꼈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자기집 문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상적으로 자행된 조용한 대학살에 대해 '그들'은 알고 있었던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길을 가고 집으로 돌아와 자기 자식들을 바라보고

교회의 문턱을 넘어 들어갈 수 있었단 말인가?

만약 아니라면 그들은 경건하게 우리에게서,

나에게서 모든 것을 당장 들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그래야 한다.

나는 내 팔에 문신으로 새겨진 숫자가 쓰라린 상처처럼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을 들었다.

 

또한번 우리의 열차가 좌초하여 누워있는 역 주변,

잔해로 가득한 뮌헨의 거리들을 배회하면서

나는 마치 각자가 내게 무언가를 갚아야 하지만 갚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지불 불능의 채무자 무리들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 아그라만테의 진영에, '지배민족'의 한가운데에 나는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적었고, 많은 이들이 불구자였고,

많은 이들이 우리처럼 누더기를 입고 있었다.

그들 각자가 우리에게 당연히 질문을 할 것이라고,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얼굴에서 읽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할 것이라고 나는 기대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고

아무도 대면해서 이야기하려하지 않았다.

그들은 귀머거리, 벙어리에 장님이었다.

의도적인 무지의 요새 속에 있는 양 자신들의 폐허 속에 피신해 방어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강하고, 아직도 증오와 멸시를 할 수 있는,

오만과 죄의 그 오래된 매듭에 묶인 포로들이었다..."

 

나는 웬지 이 심정을 스스로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다.

실제로는 이런 경험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이건 인간의 보편적인 도덕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프리모 레비의 탁월한 통찰력과

그에 걸맞는 담백한 글쓰기 덕분일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영성 체험' (?) 때문에 사람이 책을 읽는 게 아닌가 싶다.

작년이 존 버거의 차분함에 경도되었던 해라면,

올해는 단연 프리모 레비의 '깊이'에 몰두하는 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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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

엄청 웃긴데, 사실은 슬픈 내용이고,

또 가슴이 무너질듯 하지만, 주저앉지만은 않게 만드는 기묘한 두 권의 책 이야기다

 

#1. 더글라스 아담스, 마크 카워다인 [ 마지막 기회라니?]

 

"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나는 이것 말고 더 필요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 기회라니? - 20주년 개정판
마지막 기회라니? - 20주년 개정판
더글러스 애덤스.마크 카워다인
홍시, 2010

그러게나 말이다.

 

오랜만에 독특한 그의 글을 읽자니,

사라져버린 도도새만큼이나 아쉬운 것은

더글라스 아담스 역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리차드 도킨스도 책머리 추천사에서 이 점을 대단히 아쉬워하고 있다.

 

더글라스 아담스가 사라져서,

나에게 지구는 조금 더  가난하고, 암울하고, 쓸쓸한 곳이 되었다.  ㅜ.ㅜ

 

#2. 프리모 레비 [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로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내팽겨쳐진 삶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 작품보다  [태백산맥]을 더 꼽고 싶다.

정서적 거리가 가깝기도 하거니와

(분량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그 생생함과 짜임새있는 플롯에서 훨씬 낫다는 생각이...

사실, 상당 부분 사실에 기초한 자전적 소설을 두고

플롯이니, 등장인물의 속성들을 논하는게 좀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는데...)

그래도 이것이 르포가 아니라 소설인 이상,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이 안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노마드북스, 2010

 

"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 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인간 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모든 길은 책 바깥에 있으니까."

 

시오니즘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곳곳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유태인 빨치산 대장 게달레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척박한 팔레스타인에 정착해

사막에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를 심는 자유로운 삶의 공동체를 희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분명히, 빨치산 여전사 라인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 포로들의 학살 '작업'에 참여한

유태인 포로들을 비난한다.

".. 도대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뭐죠? ... 아무리 하늘같은 상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게 잘못된 명령이면 당연히 거역해야죠. 왜냐하면 인간은 바로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버린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

 

현대사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맹목적 폭력의 희생자였던 유태인들이,

희생의 역사를 전가의 보도 삼아 듣도보도 못한 깡패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오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짓거리들을 떠올리면, 

그저 땅한뙈기 얻어서 오렌지, 올리브 심는게 소원이라던 소박한 유태인들의 모습이

마냥 따뜻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시오니즘 이야기는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어둡고 혼돈으로 가득찬 시절에,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작 [이것이 인간인가?] 에서 했던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

 

이보다 더 폐부를 찌르는 '잠언'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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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대접받을 때까지 우리는 여기 나와 행진할 것이다”

[노동과 건강] 봄호에 실은 해외이슈 글이다.

인쇄되어 나오기 직전에, 주 상원에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물론 하원에서도 날치기 되었었다.

날치기는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와 한숨이 동시에 나오는 이 기이한 감정은 무엇... ?

 

혹자는 위스콘신의 투쟁이 '전통적인' 계급투쟁이 아니라, 중산층의 이익 싸움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임금과 고용 부문은 지난 3년간 상당한 양보가 이루어진 상태다.

이번 투쟁의 핵심은 단체교섭권이다. 

만일 한국의 진보진영이 이걸 중산층 '귀족' 노동자들의 이익 투쟁이라고 비판한다면

미국 보수 언론과 다를게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리고, 밥그릇 지키자고 싸우는게 과연 나쁜 건가?.

 

하여간, 위스콘신이 이리 되었으니,

미국 전역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 박탈 시도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최고 '부자'나라의 '귀족' 노동자들마저도 살기 힘든 세상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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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대접받을 때까지 우리는 여기 나와 행진할 것이다”

- 미국 위스콘신 주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 -




구제역에 전세대란에, 멀리는 리비아 민중혁명 소식까지 겹쳐지면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뉴스가 있었다. 2월 말에 접어들어 정부출연 연구기관들이 일제히 단협 해지를 선언한 것이다. 지난 2009년 노동연구원에서 시작된 공공기관의 단협 해지 행렬이 끝내기 한 판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측의 일방적인 단협 해지라는 게 한국 사회에서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보니, 사실 아주 놀랍지는 않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이 비슷한 사안을 두고 미국,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자유시장주의의 선두주자 바로 그 미국에서, 10만 명의 노동자들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1월에 선출된 공화당 주지사 스캇 워커 (Scott Walker)가 2월에 예산 수정법안을 제출하면서 주 (state), 군 (county), 읍/면/동 (municipality)에 속한 공공 노동자들의 단체 교섭권을 폐기하는 내용을 끼워 넣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주지사는 상하원 모두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1월에 적극적인 감세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그런데 2월에  갑자기 주 정부의 재정 파산을 공표하면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해고는 물론 임금삭감과 연금/건강보험 같은 부가급여의 노동자 분담율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없애겠다고 했다. 주지사는 금요일에 법안을 제안하고 다음 주 목요일에 하원 투표를 하겠다고 했으며, 심지어 이런 중대 사안을 흔히 15분 사전 토론이 배정되는 예산 일부 수정법안 뒤에 덧붙임으로써 의회에서의 논쟁 자체를 차단하려 했다. 노동자들의 저항까지 예상하고, 일찌감치 주방위군 소집 명령을 내려두기까지 했다.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면서 즉각적인 반발이 일어났다. 2월 14일, 한국에서 초콜렛과 사탕이 불티나게 팔리던 발렌타인데이에 가장 먼저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조교 노조 (Teaching Assistant Association)에 소속된 대학원생들이었다. 이어서 교사들과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의사당으로 집결했고, 학교들은 문을 닫았으며, 사건은 순식간에 전국 이슈가 되어버렸다. Democracy Now 같은 미국의 대표적 독립 언론은 아예 매디슨 시에 위치한 주 의회 앞에 스튜디오를 열고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으며, 오바마 대통령마저도 단체교섭권은 노동자의 기본권이며 주의 재정파탄 원인을 노동자에게 돌리지 말라고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하원에 상정된 법안은 60시간이 넘는 긴 논쟁이 벌어지던 가운데 새벽 두 시, 공화당 측의 갑작스런 토론 중단과 날치기 투표로 순식간에 통과되어 버렸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투표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당시 의사당 바깥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철야시위를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의사당 안팎에서는 ‘Shame! (부끄러운 줄 알아라!)’이라는 함성이 넘쳐났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경호 속에 의사당을 빠져나갔다.
이제 법안은 상원으로 넘어왔고, 민주당의 의석수는 공화당보다 적은 상황에서 민주당 상원의원 14명은 이웃 일리노이 주로 피신했다. 아예 의원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도록 하자는 전략이다. 주지사는 투표 강행을 위해 상원의원 자택으로 경찰들을 파견하여 의원들을 데려오도록 했지만, 그들은 이미 집을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이 와중에 시위 참여자는 점점 더 늘어나서 2월 28일에는 10만 명이 모였다. 이는 베트남 전 반대 시위 이래 최대 규모라고 한다. 참가자들 스스로, 또 서로에게 놀라고 있다.   


 

* 주 의사당 실내를 가득 메운 시위대 모습을 보도하는 뉴욕타임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연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 이들은 무슨 생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조합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임금삭감이나 연금, 보험료 부담 증가 문제가 아니다. 바로 단체교섭권의 박탈이 핵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래 많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미 임금삭감이나 보험료 부담 증가를 경험했기 때문에, 이는 그리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예 단체교섭권을 없앤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테이블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이고, 이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돈은 가져가라. 하지만 우리의 권리는 안 돼! (Take the money, but don't take our right)” 라는 구호는 문제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위스콘신 주의 재정이 어려워진 것은, 부자와 기업들에 대한 엄청난 감세정책에 기인한 바가 큰데다, 실제로 ‘위기’라고 부를 만큼 심각한 상황도 아니라고 한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듯 소위 귀족 노동자들의 해고, 임금과 부가급여 삭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예산절감의 규모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 공화당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예산 절감 효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며, 그냥 이것이 자신의 철학이라고 솔직하게 답했다.

위스콘신은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노동조합 운동이 강력한 지역이다. 노조 조직률은 상위 10개 주에 속하며, 모든 공공부문은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다. 1932년에 AFCME (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가 가장 먼저 설립된 곳이자, 여성노동자 보호와 아동노동 금지, 실업보험을 처음으로 도입한 곳도 위스콘신이다. 물론 이는 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이룬 것들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왔으며, 미국 전역에서 공공부문의 노조 조직률은 36%에 달한다 (민간 부문 약 7%). 이들 공공 노동자들은 대개 부유하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혹은 서민 계층으로서, ‘공익’의 수호자라는 자부심도 상당하다. 실제로 필자가 만나본 미국의 보건소 직원들 중 자신을 ‘공공의 옹호자 (public advocate)’라고 표현한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아닌 단체교섭권이 공격을 받은 것은 초유의 사태로, 이는 노동권에 대한 침해일 뿐 아니라 사회 공공성 전반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다. 이곳에서의 투쟁 결과가 다른 지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파 진영과 노동계급 모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오하이오 같은 인근 주에서 연대 집회가 열리고 있을 뿐 아니라, 멀리 캘리포니아의 노동자들이 연대를 위해 위스콘신으로 집결하기도 했다.
 
이번 법안에는 소방직과 경찰 노조만을 예외로 두었는데, 이들 노조가 지난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노조의 노동자들도 분명한 연대의사를 표명하며 현장을 함께 지키고 있다. 경찰 노동자들은 ‘노동자를 위한 경찰 (Cops for Labor)’이라는 티셔츠를 입고 함께 행진했다. 심지어 의사당 경찰은 주지사의 시위대 퇴거 명령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시위가 평화적이라는 이유로 강제집행을 거부했다. 뿐만 아니다.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저항에 대한 지지와 연대의 물결이 넘치고 있다. 최근 독재자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이집트에서 익명의 지지자가 의사당 근처 피자가게에 전화하여 시위대에게 피자를 배달시킨 것이 큰 화제가 되면서, 근처 피자 가게와 도넛 가게들은 미국 전역, 외국의 지지자들로부터 주문을 받느라 북새통이다.

* 의사당 내 시위대에게 피자배달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을 보도한 뉴욕타임즈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한국의 진보진영이 보기에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반(反) 노동적이기는 매한가지라지만, 최소한 이번 투쟁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태도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물론 ‘더 네이션 (The Nation)’의 기자 존 니콜스 (John Nichols)가 지적했다시피, 이런 강력한 저항이 없었다면 민주당이 문제제기야 했겠지만, 이런저런 사유를 달아 결국 법안에 동의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밤새도록 의사당을 점거하고 거리를 메운 군중들의 행렬은 민주당에게 큰 압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하원 투표 시 공화당 의원 4명도 반대표를 던졌다. 니콜스는 위스콘신 주의 명망 높은 진보적 정치지도자 로버트 라폴럿 (Robert LaFollete)의 “민주주의는 생활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민주주의란 투표만 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선출된 이들이 우리를 지배하는 게 아닌,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우리를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도 이번 사례만큼 사회운동이 제도권 정당을 성공적으로 ‘견인’해간 사례도 드물 것이다. 운동을 결국 ‘법안’과 ‘제도’로 협소화시킨다는 비판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이 투쟁의 과정에서 진정한 연대감을 맛본 현장의 10만 명, 단체교섭권이 노동자의 소중한 권리라는 것을 배운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의 경험 자체를 폄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집회 현장 노동자들의 발언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매디슨 시 경찰노조의 조합원인 브라이언 오스틴 (Brian Austin)은 Democracy Now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이 직업에 투신했을 때, 우리는 이 지역사회 성원들을 받들고 봉사하며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지금 이들과 함께 여기에 나와 있음으로써 하고자 하는 바로 그 일이다.” 중고등학교 선생님들, 음악대학원 박사과정의 대학원생들, 소방 노동자들과 경찰들, 간호사들, 기간통신망 노동자들이 자기는 어느 지부의 조합원 아무개라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지구 반대쪽 노동자가 보내온 피자를 나눠먹는 연대의 모습은 단식투쟁과 고공크레인, 죽음을 무기로 싸워야 하는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머나먼 것이다.

10만 명이 모인 지난 토요일 (2월 27일)의 집회 이후에도 주지사는 강경한 태도를 거두지 않고 있다. 주(州) 건강보장 프로그램의 대폭 축소와 소속 지자체의 재정지원 감소를 공언했고,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돌아와 법안처리를 하지 않으면 1,500명에 달하는 공공 노동자들의 해고절차를 시작하겠단다. 위스콘신 노동계는 이에 맞서 총파업을 심각하게 논의 중이다. 이 사건이 과연 어떻게 귀결될지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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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책, 애매한 책...

도서관 반납 때문에 허둥지둥 정리...

사무실에도 몇 가지 정리할 책들이 곱게 쌓여있는디...

기록이 없으면 기억도 없어지는 처참한 현실을 몇 번 경험하고 짧게라도 독후감을 꼭 남겨두려 하는데 이것도 쉽지는 않아...

 

 

#1. 테리 이글턴 [반대자의 초상]

 

반대자의 초상 - 지젝부터 베컴까지 삐딱하게 읽는 서구 지성사
반대자의 초상 - 지젝부터 베컴까지 삐딱하게 읽는 서구 지성사
테리 이글턴
이매진, 2010

 


언론의 리뷰가 하도 좋길래 빌렸는데, 황새 쫓아가려다 다리 찣어진 뱁새 꼴이랄까...
비평 대상으로 삼고 있는 대상과 배경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어서 도무지.. ㅡ.ㅡ


딱히 텍스트를 구구절절 참조한 것만은 아니기에
꼼꼼하게 읽어보면 굳이 비평 대상 아니더라도 그 자체로 좋았겠지만

일단 흥미가 떨어져서리....

그나마 백만년 전에 세미나했던 프랑크푸르트 학파,

재작년에나 읽었던 데이비드 하비에 대한 이야기 정도만 어렵사리 이해...
저작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워낙 유명하고 난해한 인용문들 때문에 이름만 알고 있는 스피박에 대한 비평 약간 이해... 그녀의 글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 최대 수확이랄까...

한 10년 지나도 이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뭐 꼭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여우와 신포도)

한 가지 궁금점... 이 책에 대한 호평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다들 참 유식하구나.... ㅡ.ㅡ
 

#2. 문제적 저작 [세계시민주의]

세계시민주의 -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
세계시민주의 - 이방인들의 세계를 위한 윤리학
콰메 앤터니 애피아
바이북스, 2008

 

"시민"이 스스로 충성을 맹세한 특정 폴리스에 속한다는 것에 비해,
"세계시민주의"는 코스모스 (우주)에 속함으로써 모든 시민이 여러 공동체 중 하나에 속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점을 거부... !

내가 지향하는 '나라없는 사람' (보네커트의 에세이집 제목이자, 아인슈타인이 실제로 10대에 성취했던 놀라운 업적)에 대한 설명과 사람들의 궁금함, 고민의 지점들을 차분히 설명해주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


어쩌면 가장 기본적 의심은

추상적 개념인 인간의 이름으로 구체적 대상에 대한 충성과 애착을 포기할 수 있냐는 것..

쫌 황당한 에피소드라면,

'인류의 친구이지만 그와 관계있던 모든 사람들의 적'이라고 평가받은 미라보는
'인간의 벗'을 집필하느라 아들이 투옥되는 걸 알지 못했고

연민을 인간의 본성으로 이야기한
루소는 다섯 아들을 고아원으로... ㅡ.ㅡ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에 대한 철저한 무지는 강자의 특성이라는 말에 절대 동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상대주의가 진리라면,

결국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내가 옳다. 그렇지만 네가 서 있는 곳에서는 네가 옳다'로 끝나고

그러면 대화는 불가능해짐

흔히 상대주의가 우리를 관용으로 이끌 것이라 생각하지만
서로에게 배울 수 없다면 대화는 무의미하고

상대주의는 대화를 장려하기보다 침묵하게 만든다는데도 역시 동의!

우리가 하는 웬갖 특이한 습속들의 이유는 어떤 특별한 근거가 있다기보다

대부분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이기 때문'
이를테면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성이 높아진 것은 합리적인 견해를 찾거나 사회적으로 합의가 성숙해졌다기보다 단순히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 있음...
이는 반드시 뭔가 합의에 도달해야 서로를 인정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줌.

또 일치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시사...


인류학의 교훈이라면,

이방인이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존재라는 점을 인지하고

사회적 삶을 공유하면 호불호를 떠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나의 진리를 세계 보편으로 만들겠다는 보편주의의 위험성 지적에는 동의.
그리고 단 하나의 보편적 진리라면

모든 인간은 다른 모든 인간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것... . 즉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 모든 차분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불편한 지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의 근원이

율법에 철저한 무슬림과 유대인 모두 예루살렘성전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는 것 때문?
장난하셔???


마찬가지로, 문화제국주의가 주변부 사람들의 의식을 구성한다는 담론은 타자를 무지렁이로 취급한다는 비판에 일정부분 동의하지만, 만일 그러한 영향이 전혀 없다면 다국적 기업들은 왜 그리 결사적으로 주변부 시장 공략에 나서나? 맥도널드가 저개발 국에서 서구적이라는 이유로 인기를 끄는게, 기업 본사에서조차 결정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는 것이 과연 적절한 설명?

사람들은 알아서 재량껏 상품을 고르고 산다고???

.
또 국가성립 100년밖에 안 된 나이지리아,

아무 기여한 것 없는 이집트 후손들이 조상들의 문화유적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게 어불성설이라는 이야기는 미치겠음...
모든 유물을 돌려받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약탈당한 유물이 반환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뭔 소리임?
특히나 식민지배와 관련된 약탈과 착취를 이리 간단하게 말해도 되는 것이여?

한편 '무슬림이 아닌 우리같은 사람들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슬림을 타자화...

대부분의 내용이 성찰과 깊은 윤리적 기반을 갖고 있는데 비해

막상 정치경제학적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찌나 리버럴하신지....

기묘하게 흥미롭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한.. 애매한 책이라는 생각...

 

이런 건 여럿이 함께 읽고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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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불평등을 말한다] 건강과 사회 기획강좌

시민건강증진연구소에서  강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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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사회 기획강좌>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말한다

 

 

유행처럼 쓰이다 보니 ‘양극화’라는 단어는 이제 무덤덤한 미사여구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날것의 시장 논리 앞에서

‘불평등’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일 뿐 아니라, 극복할 수도 없는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시 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과 사회 2011년 기획 강좌]는 우리 사회 질서의 공정함을 나타내는 민감한 지표라 할 수 있는 건강불평등 현상을 살펴보고, 그에 이르기까지 작동하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속살들을 차분하게 들춰보고자 합니다.

 

 

 

일정

주제

강사

1강

3월 17일(목)

19:30-21:00

한국사회의 건강불평등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강

3월 24일(목)

19:30-21:00

교육 - 평등사회를 향한 입구인가, 걸림돌인가?

이범

(교육평론가)

3강

3월 31일(목)

19:30-21:00

부동산 계급사회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저자)

4강

4월 07일(목)

19:30-21:00

불평등의 알파이자 오메가 - 노동시장 유연화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5강

4월 14일(목)

19:30-21:00

만들어진 불평등 - 지역 격차

조명래

(단국대 사회과학부)

6강

4월 21일(목)

19:30-21:00

그들이 사는 세상 - 대중문화의 불평등 재생산

주은우

(중앙대 사회학)

7강

4월 28일(목)

19:30-21:00

한국사회 불평등과 정치의 역할

박상훈

(후마니타스)

 

 

○ 수강생 : 40명

 

○ 수강료 : 15만원 (교재 포함)

 

○ 수강료 입금 계좌 :

하나은행 199-910004-60804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

 

○ 수강신청 방법

이름, 소속, 연락처를 아래 메일로 보내주신 후 입금완료 하시면 됩니다.(3월15일까지)

phprc@hanmail.net

 

○ 문의

070-8658-1848 / 담당자 : 서상희

 

※ 시민단체 상근자 및 전업 학생은 12만원(20% 할인)

※ 연구소 회원의 경우 할인받을 수 있습니다.

 

○ 장 소 : 민주노총 교육장 (정동 경향신문사 건물 15층)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 5번출구 도보 5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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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도마뱀과 기이한 경제학자

내 소중한 뇌의 시냅스들이 빠찌직 거리며 타들어가고 있다........................ㅡ.ㅡ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일정 속에 지하철 독서시간에만, 나는 자유인일세... ㅜ.ㅜ

 

#. 기묘한 도마뱀이 벌인 떠들썩한 소동 이야기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크리스토퍼 무어
푸른숲, 2010

 

웃겨 죽어......ㅋㅋㅋ

이 황당무계한 소동극은 대체 어쩌란 말여......(하지만 은근히 '사상자'는 많아...)

발랄한 상상력과, 그에 걸맞는 또 발랄한 문체에 반했음.

짜임새도 좋고, 보네거트 할배만큼 시니컬하지는 않지만 과학적 사실들은 은근 정교하고 시선은 냉철...

다른 책도 빌려봐야겠쓰.... 이런 책은 뇌에 주는 선물....

 

#. 가장 재미난 경제학  이야기

 

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세속의 철학자들 -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 시대와 아이디어
로버트 하일브로너
이마고, 2008

 

원래 껍데기가 저렇게 요란 뻑쩍지근하게 생겼구나...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회색 하드커버만 남아 있어서... 원....

뭐 경제관련 책은 별로 읽어본 것도 없긴 하지만... 이렇게 재미난 책은 처음!!!

 

칼 폴라니가 오늘날과 같은 시장 질서가 유구한 전통을 가진 것이 아님을 강조했듯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이윤 추구의 동기는 겨우 현대인과 함께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지적으로부터 글을 시작...

 

하일브로너는 대표적인 경제학자들의 생애와 그들 사상의 핵심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개괄하며

경제학이란 학문의 본성과 진화를 논하고 있다.

경제사상사라고 분류되지만, 말하자면 이론들에 대한 이론 - 메타적 접근이라고 보면 되겠다.

각 이론들이 옳았냐, 혹은 본인이 동의하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그러한 사상이 진화했고

그것이 당대에 혹은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고 보면 엄청 어렵고 딱딱할 것 같은 이 내용들을

너무너무 재미있고 눈에 쏙쏙 들어오게 썼더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건 이런 거다.

현재의 시각으로 완결된 구성물을 이러니 저러니 논평하는게 아니라,

당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왜 그러한 사상이 출현했고,

또 그게 당시로서는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거....

지금 보면, 누구나 다 아는 것 같고 혹은 결함투성이의 주장일지라도

그 배경과 속내를 알고 나면 '우와' 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것들이 많다.

 

인물에 대한 뒷얘기라면...

 

 

케인즈 잘난 거 소문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엄청 잘난 인간...

아침에 침대에서 30분씩 투자해서 완전 부자된데다, 가문도 좋아, 예술에도 조예가 깊어..

인품도 훌륭해, 수학도 잘해.... 정치면 정치, 경제면 경제....

제일 황당했던 건 케인즈 자신의 표현

"경제학을 연구하는 데는 전문화된 고도의 재능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 참 쉬운 분야인데도 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참 쉬운 분야래.............. 참 쉬운 분야...............

이 한마디로 전세계 수천명의 수재들을 바보 만들었어..... ㅋㅋㅋㅋㅋ

 

공상적 사회주의자들로 오언, 생시몽, 푸리에, 밀 등을 한 챕터에 묶어놓았는데,

생시몽은 공상적 사회주의자 수준이 아니라 완전 사이코같애... ㅡ.ㅡ

가장 지적인 동물 비버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을 가능성을 고민했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일브로너는 이야기한다

"그들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그들의 괴벽도 아니고

그들이 제시한 환상의 다채로움가 매력도 아니다.

우리의 주목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용기다.

그들의 용기를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지적인 풍토를 파악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게.... 막 웃어버리기는 뭐한데... 그래도 비버의 충격은... ㅡ.ㅡ

JS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은 아들을 엄청 쪼아대며 공부를 시켰는데,

그래서 1806년에 태어난 JS 밀은 "1809년 (1819년이 아니라)부터 " 그리스어를 배우고

일곱살에는 플라톤을 읽은데다 고전들을 다 떼고 열 두살에는 홉스의 저작들을,

열세살에는 정치경제학의 모든 저작들을 다 읽었단다...

그래서 하일브로너의 논평은 "밀이 훗날 위대한 저서를 저술한 것이 기적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어쨌든 심각한 인격장애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마르크스에 대한 마지막 문장들은 이렇다.

" 마르크스는 그를 향해 바쳐진 모든 우상숭배에도 불구하고 분명 무오류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어떤 존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즉 자신이 발견한 사회사상의 대륙에 지울 수 없는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탐험가인 것이다. 마르크스의 발견에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 대륙을 더 깊숙이 탐험하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류를 위해 처음으로 팻말을 꽂은 그 사람에게 존경을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제목이 '겅제사상사'가 아니라 '세속의 철학자들'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자본주의 태동 이전에는 경제학이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필요가 없었고)

사회를 읽어내는 새로운 체계이던 '정치경제학'은 (그래서 '세속의 철학')

빅토리아 시대를 거치면서 '경제학'이 되었고 점점 더 강단으로 이동하여

엄밀한 과학 중심주의로 변해간다.

그리고 1, 2차 대전과 대공황, 세계혁명의 갈등 와중에

이러한 문제에는 아랑곳 없이 (심지어 조절과 균형 이론을 꽃피우며)

강단 경제학은 이상적 가정과 수학적 복잡성 속에서 점점 더 고고하게 '발전'해나간다.

당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해결하려던 노력이었던 경제학은 어디로................

 

미국민중사에도 등장하는 아수라 지옥 자본축적기에 벌어진 일들은

참 다시 봐도 믿어지지 않을 지경인데 (이를테면 철도 지배권을 두고 양측 자본가들이 기관차 몰고 서로 돌진하여 승부를 가리는... ㅜ.ㅜ)

이 대혼란의 시대에

"이 모든 것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생각한 게 별로 없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자신을 가르친 유럽 선생들의 발자취를 따라갔고, 미국 사회를 전혀 맞지 않은 틀에 강제로 집어넣었다. 피비린내 나는 돈싸움의 환상적인 게임을 두고 '검약과 축적'의 과정이라고 표현했고, 명백한 사기행위를 '사업'이라 했으며, 그 시대의 금빛 나는 사치를 아무 색깔 없이 '소비'라고 묘사했다."  ---- 

이 구절을 읽으면서 오늘날 한국사회를 떠올리면 내가 오바인가?  한국의 전문가들은 미국 선생들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 사회에 맞지 않는 틀에.........

 

하일브로너는 경제학을 과학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는 것에 환호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두 가지 들었다. 첫째는,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과 달리 인간의 행위를 다룬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의지를 가진 인간, 사고하는 인간, 선택하는 인간,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두번째는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사회생활이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학 - 아니 세속 철학의 유용성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몇 세기 동안 적어도 몇몇 자본주의가  가능한 한 안전하게 나아가는 데 구체적이지는 않아도 비전으로나마 도움을 주는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재탄생하는 세속철학이 가장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자본주의의 사회적 측면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추가 독서 안내글에서 "훌륭한 교과서를 몇 권 독파하려면 낙타와 같은 지구력과 성자와 같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썼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손목의 근력, 인간세상에 대한 호기심만 있으면 충분....

적절한 타이밍에 웃고, 분노하고, 깜짝 놀라며 맞장구 쳐 줄수 있는 센스가 있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연정이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뭘 알고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음 ㅋㅋ)

대학에 합격하면 꼭 사주고 싶은 책이다... 

참, 이 책이 사무엘슨의 [경제학] 이래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네....

하일브로너 자신도, 기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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