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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자유 아니면 생존을 위해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읽고)

  • 등록일
    2005/03/27 08:17
  • 수정일
    2005/03/27 08:17

혁명의 과정에 개입하는 사회적 문제들은 필연적으로 폭력 혹은 테러를 부르게 되고

이는 혁명의 필수불가결한 실패를 단정짓게 된다....

 

프랑스 혁명은 사회적 문제 즉, 빈곤의 문제가 대두됨으로써 폭력적으로 실패하게 되었고

이에 비해 미국혁명은 온전히 제도와 자유에 바쳐짐으로써 성공하였다 ...

 

자유를 위한 혁명에 생존의 문제가 대두됨으로써 정치적 공간이 사장되고

이러한 변질은 공히 폭력을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한나 아렌트의 [혁명론]을 읽었다.

 

역쉬 생각한 대로 딱히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한나 아렌트가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폭력의 야만, 폭력을 부르는 작동원리의 혐오

이러한 생각들이 곳곳에 묻어난 혁명에 대한 정리라기보단

혁명에 수반되어진 지난 시기의 폭력이라는 것들에 대한 고찰을 살펴보는 책인 것같다.

 

한나 아렌트가 워낙 그의 개인적 경험과 시대적 경험들 속에서

철저한 반폭력주의자로서의 생각들을 뿌리깊게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어느 순간이 오든 정치라는 공간의 독립적인 역할들을 중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정치철학자 다운 풍모들이 곳곳에 묻어나는 책이었다. 

 

읽으면서 내내

민주노총의 최근 모습들이 눈에 그려졌고

답답한 현실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가 꿈꾸던 자유로운 정치라는 공간이란 무엇일까 ?

실제 가능은 한 것일까 ?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하기}라는 독특한 문체에 의해

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힌다.

또한 많은 부분 한나 아렌트가 고찰하는 지난 시기의 혁명의 양상들과

그 혁명이 내포한 자기 완결적인 모습의 부재,

그리고 실패한 혁명이 보인 필요악 혹은 필수불가결해 보이는 폭력의 동반이라는 것들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갖게 된다.

 

난 솔직히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는 많은 부분이

이해되고 수긍가는 부분이 있다.

다만 그 진정성이나 한나 아렌트가 발견한 그 사실들에서 도출되어지는

주장들에 대해서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을 빼면 말이다.

 

특히,

혁명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자유라는 것을 상정한 채 진행되어지는 것 만이 옳바르다고 보는 것과

이러한 자유가 결국은 많은 계급적 이익들을 뛰어넘어

시대적 사회적 대안일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주장은

어쩌면 미국의 정치논리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다.

 

과연 제 3세계에서의 혁명이라는 것

아님 온전히 프랑스혁명에서의 생존이라는 문제가

과연 자유라는 문제보다 뒤에 것일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혁명이라는 정치적 격변기에

과연 자유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주장했어야 하는 것인지

온전히 혁명의 전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일차적인 문제인

생존문제를 제 1의 선결과제로 내세우는 것이

필연적으로 실패를 상정하게 되는 것인가 하는 문제도 의심스러웠다....!!

 

다만

한나 아렌트가 지적하는

폭력에 대한 생각들

그 폭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많은 혁명가들의 생각들

그런 폭력을 잉태하는 사회의 특징들은

무척 공감이 가고 많은 생각들을 던져주었다.

 

한나 아렌트....!!

 

다른 생각들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특히

그가 주장한 사회의 올바른 작동기제로써의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정치라는 공간

이는 결국 사회속에서의 자유스러운 의사소통 혹은

의견개진, 의사표현의 수단으로써의 정치와

어느 순간이되든 최선을 다한 대화와 타협으로써의 정치라는 공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면

어쩌면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공론의 장으로써의 공공의사소통영역의 필요성이라는 것과

합치되는 내용인 것 같기도 하고....!!

(아 ! 물론 그 출발점이나 궁극적인 목표 혹은 이유는  판이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한나 아렌트의 문제의시과 그의 생각을 가지고

하버마스의 책들을 다시 읽어 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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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고 싶은 집....(성주군 한개마을답사..2)

  • 등록일
    2005/03/27 07:50
  • 수정일
    2005/03/27 07:50

한옥을 배우고 나서

어느 마을에나 가면 한옥을 유심이 보게되고

그러다가 보면 아 !! 저런 집을 짓고 살아 보았으면 하는 집이 한두채는 있다.

 

한개마을도 몇번 가보면서 아 !! 하는 집이 있다면

아마 한주종택일거다.

이곳 마을의 종가 집으로 마을의 가장 위쪽에 위치해 있어서

마치 종가집 밑으로 다른 집들이 고개숙이듯 자리잡고 있는데

그런 종가댁으로써 떡하니 마을을 지키고 있는 곳이 한주종택 혹은 종가이다.

 

종가집은

어느 집처럼 솟을대문이 있고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그 옆의 행랑채가 붙은 형식으로 보이고

그 가운데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간 대문이 있다.

중간 대문을 들어서면

다시 안채가 나오는 방식으로 집은 ㅁ 자형 집으로 되어 있다.

 

솟을 대문채와 사랑채 옆으로 작은 길이 나있고

그 길로 들어서면

산쪽으로 사당으로 들어가는 중문이 보이고

옆으로는 쪽문이 보이는데

이 쪽문이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이집의 숨어있는 비경을 볼수 있는 별당채 혹은 정원 혹은 원림이 있는 곳이다.

 

 

한주 종택은

다른 여타의 경상도식 집들 혹은 신라계의 집들처럼

 ㅁ 자형 집이고 사랑채와 행랑채가 붙어 있으면서

그 사이에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이 있는 등

특별한 점이 있거나 사람들의 문을 끄는 구석이 없지만

이 별당채 혹은 원림만은 거의 이 동네 집들에서 독보적일 정도로

빼어나다.

 

우선 사랑채쪽으로 난 작은 쪽문을 들어서면

바로 나타나는 것이 울창한(?) 나무들이다.

소나무와 은행나무, 향나무들이 제각의 위용대로 서있고 그 사이로

이층루각을 가진 별당채가 보인다.

 

 

이 별당채는

높은 단을 쌓고 그 위에 다시 이층 루각을 지음으로써 매우 인상적으로 높아 보이며

따라서 이층 루각에 앉으면

마을 전체뿐만아니라 눈 앞에 떡 하니 펼쳐진 자연경관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루각과 잇데어져 있는 방들은 역식 단을 쌓아서 일층으로 지었으나

그 높이는 앞의 이층루각과 같은 층을 이룸으로써

일층의 집에 이층의 루각을 붙여 높았어도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이 방들의 기능으로 이 별당채는 4계절을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별당채가 가진 매력은

실제 집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별당채를 둘러싼 자연일 것이다.

 

 

 

우선 별당채 앞에 서 있는 작은 화단과 그 화단에 서있는 소나무의 위용과

그 옆으로 다양한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그야말로 작은 산속에 들어 온 듯 연출한 모습.

 

 

별당채 옆으로 두개의 연못을 파고 이들을 연결지어 놓은

그리고 연못의 한가운데에 작은 섬을 조성한 모습.

 

 

그리고 연못의 섬과 연못가를 다리로 연결해 놓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모습

그리고 연못 주위를 따라 산책로가 있고

산책로 옆으로 작은 시내가 조성되어 있다.

 

 

이 시내를 넘어서 담장들이 둘러쳐져 있고

이 낮으막한 담장 넘어로 대단한(?) 암석군과

그 암석군을 둘러싼 소나무 군락들

 

 

소나무 군락들보다 좀 앞쪽으로 담을 따라 내려오면

또한 대나무 군락이 파도소리를 내며 별당채를 마주보고 있다.

 

처음 이집의 별당채를 무심코 들어 왔다가

아 !!  비밀의 화원이닷.....!!

 

놀랬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별천지에 놀라기도하고

별당채가 가진 그 고유한 멋에 몰라기도 하고.....!!

 

처음 한옥에 관심을 갖고

한옥에 재미와 동경을 가지게 되고

그러다가 직접 목수일을 배우면서

나름대로 진화한다고 느낀 점은

나 스스로 건물에서 건축으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즉, 한옥 한채 한채의 생김새와 기법이니 양식이니를 주되게 보다가

각각의 한옥들이 어우러지는 모습들에 재미를 느끼게 되고

이후에는 그 집이 위치한 마을이나

그 집이 속한 주변들 혹은 자연들을 느끼게 되었다는 거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건

어떤 한옥집에 갔을때 왠지 불편하거나 하면

거의 그 집이 가지는 어떤 인상들때문이다.

즉, 지나치게 가식적으로 보여지는 혹은

지나치게 자연을 혹은 그 속에 속한 사람을 거느리고 있는 듯한 모습에

나 스스로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실제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집은

그 건물의 아름다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이 속한 어던 환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집이라는 것이 바라보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면

어느날 찾아와서 사진한장 찌고 사라질 것이 아니면

건물이 아름답기 보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지 중요할테고

그러다면 자연스레 그 위치지어진 형국이나 사람들의 어우러짐이 중요하지 않을까 ...!!

 

그런 의미에서 이 집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이나 화단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멀리 보여지는 안산과 들판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담장 밖의 암석군, 소나무, 대나무, 그리고 숲들이

오히려 이러한 인공적인 조형물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준

그야말로 황홀한 원림이 되어버린 집이다.

 

최근 한옥답사를 다니면서

눈에 그리고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원림이다.

소쇄원과 서석지를 구경하고나서는 더욱더 그런 멋들에 빠져든다고나 할가 ?

명옥헌도 그렇고

의성의 소우당도 그렇고

상주의 대산루도 그렇고

이집 한주종택도 그렇고............!!

 

집이 자연의 일부가 되고

그속에 살아가는 사람들마저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이 원림의 특징이 항상 가슴에 진한 여운들을 남겨주곤 한다.

 

 

요즘 한주종택의 이별당채를 보면서

조금 아주 조금 안타까운 것은

상대적으로 잘 관리되어진 안채에 비하여

별당채가 점차 퇴락해 가는 것의 안타가움이다.

이곳저곳이 무너지고

집도 나무들이 이곳저곳 부식되어 떨어져 버린

한 몇년후면 무너지지 않을까 할정도로 관리가 되어지지 않은 모습이다.

 

아마 집주인이 안채는 사람이 사니 관리를 하는 모양이지만

이 별당채는 아무도 기거하지 않다보니 관리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것을 보면 옛 조상들의 풍류와 그 조상들이 후손들을 위해 조성한 이 풍류들이

이젠 각박한 세상만큼이나 후손들에게 즐길만한 여유도

그런 것들에 흥미를 느낄만한 감수성도 남겨주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그저 자기가 누운 곳의 작은 공간들이나 죽어라 고나리할 뿐

그 공간들이 속한

확대된 영역으로는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현대에 살아가는 도시인의 감수성이

어느새 이런 산촌벽지가지 몰려와서는

자신들이 가진 멋스러움들마저 잊고 지내게 만들어버린 듯 해서

조금..아주 조금...서글퍼지기도 한다.

 

아 ! 물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에

관리관청에서 조금 더 신경 써주면 좋으련만

관리관청마저 그런 것들까지 신경써주지 않기는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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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공부방 아이들을 가르치며....!!

  • 등록일
    2005/03/24 23:34
  • 수정일
    2005/03/24 23:34

간만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몇년동안 해오던 일이라 뭐 새삼스러울 것 없겠거니 하고 시작한 일이지만

막상 아이들 앞에서 칠판에 못쓰는 글씨 써가며 악을 쓰다보면

아 ! 아이들이 바뀐 만큼 가르친다는 것도 나날이 바뀌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중간에 관두고 부터

어언 7년이 넘게 공부방과 인연을 맺어 온것같다.

최근 한옥을 배운답시고 잠시 떠나기 전까지

몇년동안 매주 아이들을 접하다 보니 은연중에 습관화되어버린 가르친다는 일들이

이렇게 몇 개월 쉬고 나서 다시하려니 감회가 새롭다고나 할까 ?

 

이번에 가르치는 아이들은 중1 아이들이다.

배우는 아이들이 총 7명인데

그 중 두 놈은 5학년때 가르쳤던 아이들이다.

 

5학년때는 나를 무척 무서워 했던 것 같더니

이젠 수업시간에도 곧잘 나를 무시하고 딴짓을 일삼는 것이

아마 그만큼 나란 놈과 익숙해져서일까......!!

온갖 협박과 공갈에도 전혀 무서워하질 않아 수업 집중도가 떨어지니 원.....쯧쯧

 

그래서 오늘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수업끝나고 라면끓여주기.....?....헤헤헤

 

아이들에게 최고의 보약은 역쉬 라면이다.

이건 거의 7년이 지나도록 변하질 않는 것 같다.

 

가르치는 것이 수학이라서 그런지

 

경만이란 놈은 2시간 수업 중 30분은 지각 30분은 졸고 30분은 딴 질문만하고

마지막 30분은 하기 싫다는 것을 온 얼굴에 다 나타내며 안절부절.....

 

혜림이는 이젠 지가 무슨 성인줄아는지 온통 새침시침삐침의 도사가 되어서

조금만 농담해도 토끼눈을 하고 흘켜보기 일쑤다.

수학문제 질문하라면 온통 남자애들 이야기만 질문하고 그 질문꺼리마저 떨어지면

괜히 샌티해져가지구 날 당황시킨다.

 

그렇게 한 2시간 가량 수업을 하다보면

점차 수업에 재미가 붙어가고 그런 재미가 붙어갈 쯤 수업이 끝난다.

이때 괜히 욕심부려서 수업을 더 끌고 나가면

바로 반격이다.....!!

 

영광이 녀석 1시간 30분이 지나가면서

노골적으로 졸기 시작하고

칠판에 나와서 풀어보라고 하면 다들 자기네 끼리 서로 킥킥 거리며

뭐가 좋은지 연달아서 웃음보가 터진다....!!

 

야 ! 다들 왜그래 ?......하면

선생님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요 ...?....에휴......헤헤헤

 

내둥 가만있던

영임이가 한마디 하는 것으로 수업은 끝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다들 착하고 다들 자신들의 고유세계가 있고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만큼 꼭 그만큼 나에게 다가선다.

 

괜히 선생이 되어가지구 우쭐대면

아이들도 자기네도 사람이다 라는 식으로 우쭐대며 개기고

그래 내가 잘못했다. 니들 최고다 해주면

지네들도 나를 최고다 라고 해준다.

 

뭐 이 정도면

어디 내놔도 다들 훌륭한 놈들이 될것같다....!!

다만 아쉽다면

아이들이 자기 부모님들 아니면 자기 가족들 아니면

주위 이웃들에게 사랑 좀 받기를 바라는 정도랄까 ?

 

오늘 한 놈이 라면먹다말고 재미나는 이야기를 한답씨고

지네 아부지는 좃까고 맨날 술쳐먹고 지랄이란다.

술만 쳐먹으면 자기가 밥먹는 것 같고도 지랄이란다.

 

다른 아이도 다들 동의하는 것으로 보아

뭐 다들 그런가 보다.

 

이런 이야기 나올땐 괜히 어른이랍시고 혼내키면 더 난리다.

그렇다고 모르는 척해도 더 난리다. 

대게는 나의 반응을 보기위해 아이들이 짐짓 싸움을 거는 것이고

이럴때 잘하면 점수를 왕창 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 야 ! 먹을때 지랄 좀 하지말고 먹어라 !

먹을때 그런 애기하면 라면 뿐다. 자식들아...!...

라면은 자고로 주변에서 폭탄이 터져도 짐짓 못들은 척

 태평하게 먹어야 제 맛이다 알았냐 ?" ......헤헤헤

 

아이들에겐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이해한다고 해도 그들만의 아품이 있다.

그저 옆에서 라면 안뿔케만 해주어도 좋아하는 아이들이다.

뭘 더 말하겠나.....!!

 

아이들은 어른이

특히 나같은 소위 가르친다는 사람이

지나치게 자신들을 이해하는 척해도 금새 뛰쳐나간다.

그리고 너무 무관심해도 마찬가지로 뛰쳐나가는 것 같다.

그저 옆에서 라면이나 같이 먹어주고

자기들 이야길 들은 척 못들은 척 해주는 것이 딱이다.

지난 7년여 동안 공부방 하면서 는거라고는 이런 눈치다.

 

뭐 어차피 내가 정식 선생도 아니니

그저 같이 어울려줄 수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외에

내가 더 특별한 생각도 하질 않지만 말이다.

 

아이들 대다수가 이런저런 가정의 문제가 있고

그런 가정의 문제를 내개 해결하거나

아이들의 부모들을 바꾸어 줄 도 없으니 더더욱 말이다.

 

다만 이런 아이들 곁에서 오래 있다보면

아이들 스스로 잘 극복하고 자기들의 삶을 산다는 것을 믿는 다.

 

이제까지 공부방을 다녔던 저 애들의 선배들을 봐도

지금은 어느 공장에서 혹은 어느 학교에서 다들 잘 지낸다.

더 이상 부모님들때문에 방황하거나 미치지 않고도 잘 지낸다.

뭐 그정도면 되지 않겠나....!!

 

학범이 놈은 군대가서도 양아치 짓하고 있지만 지 실속은 잘차리고 있고

승영이는 학교에 아르바이트에 정신없고

미애는 이젠 취업공부에 거의 목숨걸고 있고

새롬이는 드디어 취업되어 힘들지만 열심히 돈 벌고 있고

우영이는 이번에 드디어 충북대에 들어갔고

기준이 놈은 실습나가 있고

이름도 가물가물한 영태 놈은 신부된다고 신학대학에서 뺑이치고 있고

쌍둥이 애들은 전문대에 합격했다니 잘되었고..

거봉이는 아직도 아르바이트 돈버는 재미에 빠져 있다고 하고....

뭐 다들 사람들 사는 것 만큼은 살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나....

 

(..흑흑..다만 이놈들이 아직도 술값을 나보고 내라는 무지막지한 어거지를

쓰고 있다는 것은 약간 문제군....흑흑...나두 백순데 말이다....?...헤헤헤)

 

생각해 보니

졸업한 아이들과 술 안먹은 것도 거의 한 달이 지나가는 것 같다.

다음주에는 졸업생 아이들이나 집합시켜서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남자애들은 거의 군대에 가있고

이젠 여자애들만 남아서 뭐 술을 많이 먹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자식들 잘 지내나.....?

그러고보니 이노무시키들 싸가지가 없군

내가 연락하기전엔 술자리를 만들지 않는 것을 보니...에이 나쁜 놈들...?..헤헤헤

 

여하튼

간만에 공부방 수업을 하니 좋았다.

다음주에는 시험이란 걸 봐서 애들이나 골탕먹여볼까나....?...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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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가이드일까 답사일까...!!

  • 등록일
    2005/03/23 22:38
  • 수정일
    2005/03/23 22:38

금요일에 처음으로 가이드비 받고 사람들을 데리고 놀러간다.

 

사회단체에서 일할때는

거의 의무방어전처럼 10여명의 회원들데리고

주로 문화유적들을 보러가는 거였고

다들 아는 처지라서 내게 특별한 것들을 요구하지도 않았었는데

이렇게 60여명이라는 대규모의 사람들을 데리고 놀러가면서

그 안내를 맡기로 한적은 없었기에

요 며칠 신경이 쓰인다.

 

뭐 굳이 전문가들처럼 준비하지 않아도 될 성 싶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아직까지도 정하지 못해서 난감하기도 하고..................!!

 

금요일날

자활후견기관에 소속된 자활수급자 분들을 데리고 간다.

관공버스 두대를 예약하여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이라 약간 고민도 되고

당일치기라 일정을 무리하게 잡는 것도 무리지만

더 문제되는 것은

자활수급자 분들의 욕구가 좀 난감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연상하듯이

문제는 우리나라 관광버스 문화가

나를 좀 난감하게 만든다는 거다.

 

자활 사무실 상근자들의 부탁은

1. 버스 이동이 가급적 2시간 이내일것

2. 술은 가급적 돌아오는 시간에 줄 것

3. 가장 문제가 되는 관광버스 춤은 가급적 짧고 짧고 또 짧게 할 것

4. 가급적 상근자들이 같이 춤추지 않도록 분위기를 만드어 주라는 것....?

 

헤헤헤

결론은 자활 사무실 상근자들이

수급자 분들의 관광버스 춤에 영 적응을 하지 못해

놀러갈때마다 난감해 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런 춤엔 억지로 끼긴해도 썩 즐기지도 바라지도 않는다는 것인데

그래도 수급자 분들이 일년에 한두번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생각하는 나들이에

가무가 안따라주면 그 원성이 대단하다는데 있다.

즉, 상근자들 소원을 들어주면 수급자 분들이 싫어하고

수급자 분들 소원을 들어주면 상근자들 원성이 심해서 다음 영행안내는 물건너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에구구.....?....헤헤헤

 

근데

실제로 그런 50-60대 아줌마 아저씨들

그것도 수급자라는 딱지를 몸에 새기고 사시는 분들에게는

문화유적답사니 선진적 관광문화라니 하는 것들이 다 시덥잖아 보인다는 것이고

이런 나들이에선 항상 세상에 대한 불만들이

술과 춤으로 마구마구 터져나온다는 것인데...........!!

 

에구구

결론은 가급적 그 분들 놀이 문화를 맞추어 주려는 생각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 문화로 이끌기에는 좀 난감한 것이

이 프로그램이 단순한 나들이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공동체적 문화, 함께하는 문화, 그리고 열심히 살아보아야 겠다는 생각들을 심어주어야 하는

교육프로그램의 일종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보니 쉽게 딱딱해지고

수급자 분들이 굉장히 수동적으로 바뀌어 버린다는 것이다.

 

에구구........어떻게 할까 ............?

 

엣날에 한글학교 어머님들과 소풍을 가면

거의 십중팔구 오가는 버스에서 광란의 춤판이 벌어지곤 했었는데

그땐 그들이 이런 놀이에서라도 한들을,

세상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이번 자활 수급자분들과의 나들이 또한

크게는 그들의 억눌린 한들을 풀어드리는

그야말로 인정사정 볼것 없는 스트레스 해소용 레저를 제공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에구구.어떻게 할까 ....?

 

에라  ! 모르겠다.

잠이나 자고 내일 결정하여야 겠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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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담에 새겨진 세월이란.....!!(성주군 한개마을답사..1)

  • 등록일
    2005/03/23 18:49
  • 수정일
    2005/03/23 18:49

성주군 한개마을을 갔다.

 

이번이 벌써 네번째 정도 되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지역도 자주는 가지만

이곳 성주군은 워낙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멀어보이는 관계로

선듯 답사를 나설 길이 아님에도

왠지 그런 잡다한 이유들을 무시하고

이런저런 인연으로 벌써 4번째나 오게 되었다.

 

 

한개마을은 멀리서 보면

어디서나 볼수 있는 그런 시골마을이다.

간혹 보이는 기와지붕이 고풍스럽기는 해도

차도에서 휙하고 지나가도 아쉬울것 없어 보이는 동네다.

 

특히 안동 하회마을이나 경주 안강의 양동마을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쳐지는 동네로 보일 것이다.

그래서 주위깊게 보지 않으면

마을 찾는 것도 쉽지않은 그런 동네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을 끌어드이는 묘한 매력이 있을까 ?

 

나에게 한개마을은 우선 담장과 골목길이 가장 선명하게 남는다.

 


 

마을 어귀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쉽게 눈에 들어오는

이 낡디낡은 담장들의 무게란........에휴.....?...헤헤헤

 

마치

내가 살았던

그 고향집들의 구석구석들이 보이는 듯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특히, 성주군이 군비가 적었던지

거의 방치하다시피한 한옥들과 담장들은

고스란히 세월의 무게들을 따스한 햇살아래 들어내 놓으며

방문객들을 한없이 나른하게 만들어준다.

 

 

담장들이 지붕만 새로 한것이 있고

흙을 다져서 쌓은 담장이 있고

고운 흙과 돌을 섞어 만들 담장이 있고

그저 주변의 막돌들을 주워다가 만든 담장이 있고

이미 허물어져 담장인지 아닌지 구분가지 않는 담장도 있고

그저 돌무지기만 쌓여 있는 곳도 있고......

 

한 마을안에 살면서도

이렇게 각자의 모습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담장들 사이사이로

드러나는 한옥들을 구경하면서

아 ! 역시 오길 잘했군...하는 생각에 빙그레 웃어 보이기도 했다.


 

어찌 안그렇겠나.....!!

이 길을

이 인적없는 길을 허우적 거리며 걷는 기분을

어디가서 다시 맞이해 보랴......크크크

 

 

담장의 돌과 흙의 미소들이 알알이 마음 속에 새겨지는 듯.......

 


 

겹겹이 쌓인 마음의 생각들이 햇살과 부는 바람에 씻기듯 날아가 버리니........

 

 

아 ! 담에 집을 지으면

내가 살 집을 지으면

난 꼭 담장을 쌓고 싶다.

꼭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이 가진 그 정겨움만을 느낄 수 있도록

별도의 담장 구경이 가능한

그런 담을 지어보고 싶다.

 

 

짓다가 말아도 그런대로 정취가 있을테고

어리버리한 내 성격에

무너져 버려도 그런대로 좋을 듯 싶은 그런 담을 짓고 싶다.

 

담장 처럼

담장이 품고 있는 길의 이미지처럼

아니 담장이 만드는

사람을 위한 안전한 그리고 새로운 길들에 대한 좋은 감정들을

쌓고 쌓고 또 쌓을 수 있는 그런 담장을 ....................................!!


 

지금은 담장위에 자리잡은 이끼만큼도

하늘 거리는 길의 삶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아는 가 ?

살아가다보면

마을에서 동네사람들과 살아가다보면

나도 그 동네사람들이 꾸는 새로운 길에 동참할 수 있을지...?............!

 

 

굳이 정돈되어지고

치장되어질 이유가 있으랴 ?

 

그저 덤덤이 자기 자신이 가진

자신만의 그림과 모양으로

자신이 품었던 것들에 대하여 책임질 수 만 있다면...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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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간 아품들......(선산지역답사...2)

  • 등록일
    2005/03/20 17:37
  • 수정일
    2005/03/20 17:37

탑을 뒤로하고 선산읍내를 들어가 다시 나오면

좀 뜨악해 보이는 성문이 하나 나오고

그 성문앞을 지나 조금만 가면 금오서원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논들 사이 일직선으로 난 포장된 농로를 따라 달리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 끝에 갑자기 나타나는 동네에 금오서원이 있다.

 

금오서원은

선산지역을 갈때마다

아니면

선산은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을 답사갈때

시간남은며 꼭 들러보는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남은

그러나 고스란히 세월의 흐름을 집 전체가 안고 있는

그야말로 퇴락한 서원이다.

 

여기저기 무너지고 깨지고 나무들이 들뜨고  구멍나고.....

같이간 형님이 성질낼 정도로 보존이나 보호와는 담쌌다는 듯이

그야말로 퇴락한 채 쓸쓸히 서 있다.

 

 

하지만 비록 건물이 퇴락했다고 해도

그 건물이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사연마저 없어지지는 않는다.

 

금오서원도

비록 건물은 누추하지만 그 사연은 깊은 곳이다.

 

조선의 성리학의 도통설에 의한 계보에서

무려 네명이나 관련된 곳이다.

 

 

도통설에 의하면

목은 이색 - 포은 정도전 - 야은 길재 - 김숙자 - 김종직 - 김굉필 - 조광조로 이어지는데

이중에서 야은 길재에서 김굉필까지가 이곳과 연관되어 있는것이다.

 

금오서원은

야은 길재를 모시는 서원이고 야은 길재가 선산지역 젊은이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야은은 원래 이곳 선산지역 출신이다.

고려말에 이방원(나중의 태종)과 함께 권근의 제자였다.

 

하지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하자

불사이군을 내세우며 선산지역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인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한때 친구였던 태종 이방원의 부름도 있었으나 간곡히 마다함으로

태종이 허락하여 이곳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김숙자 등을 가르쳤다.

 

그런 야은 길재를 모신 이 서원은

나중에 그의 제자인 김숙자가 자신의 아들 김종직과 지역의 젊은이들을 가르쳤고

김종직도 벼슬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서 일두 정여창과 한훤당 김굉필 같은 재자들을

가르치게 된다.

 

서원은

좀 가파른 언덕에 급하게 서 있는데

지금은 정문이 많은 잡초만 무성하고 잠겨 있어서 옆의 쪽문으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들어서면 강학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강학당 앞에 동재, 서재가 뒤로 사당이 있다.

 

강학당에 올라서면

바로 앞에 드 넓게 펼쳐진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강줄기를 앞에두고

거대한 사상의 흐름이 서원에 펼쳐진 것이다.

 

유구한 자연의 흐름속에

유구한 조선 성리학의 흐름이 이곳 금오서원에 넘쳐나는 것이다.

 

다들 알지만 결국 우리나라에서 손꼽는 동방오현 중

김굉필, 정여창이 이 선산출신 김종직의 제자이고 김굉필의 제자가 조광조이니

오현 중 3명이 이곳과 관련이 있는 것이요

도통설의 길재, 김종직까지 치면

그야말로 조선 전기 성리학의 가장 중요한 역할들이 이지역에서 이루어진 셈이다.

 


서원은

지금의 사립 중고교과정과 흡사한데

지금으로보면 선산의 금오서원은 일종의 명문 사립학교인 셈이다.

 

이 금오서원에는 지금도 칠조라는 학칙 혹은 교칙이 있는데

요즘의 학칙으로 사용해도 전혀 무리없는 내용이다.

 

 

첫째, 창과 벽에 낙서하는 행위

둘째, 책을 망가뜨리는 행위

셋째, 놀면서 공부 안하는 행위

넷째, 함께 지내며 예의가 없는 행위

다섯째, 술이나 음식을 탐하는 행위

여섯째, 난잡한 음담패설을 즐기는 행위

일곱째, 옷차림이 단정하지 않은 행위

를 한자는 왔으면 돌아가고

오지 않았으면 오지 말라......!!....헤헤헤

 

완전 요즘 학교에서 교칙으로 사용해도 무방한 내용이면서

지금이나 그 옛날이나 학생이라는 신분은

항상 같은 일들을 벌이곤 한다는 사실이 재미있기도 하다.

 

참고로

금오서원에 배향된 사람은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 신당 정붕, 송당 박영, 여헌 장현광을 모시고 있다.

 

참고로

이곳 금오서원은

한가지 특이한 것이 있는데
무엇이냐면 술이다.

 

선산지역의 민속주인 선산약주는

원래 점필재 김종직이 이곳에서 담가

서원을 찾아오는 손님이나 아니면 제사때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제자들을 위해 손수 담가 먹은 것에서 유래한단다.

즉, 스승이 먼저 모범을 보이며 음주문화를 가르치던 노력이

이렇게 몇백년 후에도 서원을 중심으로 남자들이 담가 먹었던 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야말로 모든 것이 자본주의 !! 

재미나지 않나 ?

술먹으면 퇴학인 학교에서

스승이 먼저 술 가지고와 세상을 논하고 세월을 논하고

앞에 펼쳐진 강물과 그 흐름을 논하며 술한잔 한다는 것이 ....?...헤헤헤

 

다들 갑자기 성리학자가 된 기분인 저를 용서하시길....?

 

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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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이 꾸는 꿈........(선산지역답사..1)

  • 등록일
    2005/03/20 16:21
  • 수정일
    2005/03/20 16:21

상주에서 내쳐 달려서 간 곳이 구미시 선산읍.....!!

 

원래는 구미는 작은 동네고

선산은 옛부터 이름난 동네였는데

우리의 위대한 (?) 독재자 박정희의 고향이 구미라서

구미가 갑자기 개발붐에 휩싸이고......

그래서 이젠 작은 동네였던 구미가 선산을 통합하여 구미시가 되었다.

 

여하튼 그런 사연때문인지

선산읍은 거의 발전을 하지 못해서 그런지

옛 풍물 그대로 남아 있는 동네다.

 

다만 선산을 휘감아도는 낙동강일대가 온통 모래채취로 몸살을 앓는 것만 빼면......!!

 

선산 톨게이트를 나오자마자

나오는 것이 죽장리 5층석탑이다.

 

 

내가 알기로는 5층 석탑중 가장 크지 않나 싶을 정도로 크고 웅장하게

야트막한 산등성이 중간에

따스한 햇살받는 위치에 딱하니 서 있다.

 

새로 지은 법당이 몇 보이기는 해도 워낙 석탑이 웅장하여

절집에 들어서며 석탑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감실에 최근에 다시 안치한 작은 부처님이 앉아 계시는데

그 앞에 재미있게도 말법집이 부처님보다 더 크게 매달려 있다.

 


 

아침 햇살이 탑위에 서성일때

아찔한 현기증 나듯 하늘향해 서있는 석탑을  쳐다보며

멍하니 몇백년을 버텨온 세월의 칸칸을 그려 보았다.

 

 

항상 석탑에서 느껴지는

그 처연덕 스러운 무뚝뚝함이란...............!!...나 같은 가벼운 인생은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항상 고개돌리게 만드는 신비함이 있다.

딱히 석탑에 대한 감상을 할 줄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탑을 마주하며 하늘한번 쳐다보면

항상 가벼운 나의 삶에 흠칫 놀라곤 한다.

아니 쉼없이 나의 곁을 뺘져 나가는 시간들에 화들짝 놀란다고나 할까 ?


원래 불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전래될때만 해도

탑이라는 것이 부처님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탑이 절의 중앙에

가장 중요한 곳에 모셔지고

그 탑주위를 돌면서 많은 불자들이 자신들의 욕망들을 구했다고 한다.

 

이런 탑이 몇백년 혹은 몇천년동안

많은 사람들의 그 숨기지 못하는 욕망들을 받아들이면서

굳건히 버티다보면

아마도 탑 스스로도 함부로 몰락하거나

함부로 웃음을 보여줄 수가 없었으리라........!!

 

 

그렇게 덕지덕지 붙은 사람들의 욕망의 때를 혼자서 묵묵히 버티며

그렇게 사람들이 사라져간 공간을 자신홀로 채우다 보면

어느 순간

이 탑처럼

자연의 일부가 되어 누구도 가보지 못한 초월의 궁극을 경험하며 서있을 수 있지 않을까 ?

 

지금 내 눈앞에서도 이렇게 턱하니 서서

나의 욕망들을 받아줄 듯이 서 있는 저탑은

내가 나의 집으로 돌아가

이 탑을 돌며 나의 욕망을 표출했는지도 잊어버리고 아웅다웅 살아갈지라도

그 혼자서 나 떠난 빈자리를 휑한 바람들로 채우며

그렇게 서있으리라.

 

아 ! 아마도 탑은

사람없는 공간에서

자연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마지막 문지기가 아닐지.........................!!

 

선산의 관문에

그런

자연과 동화되어버린 외로운 탑하나가

그렇게 사람들에 무관심한채 사람들의 욕망의 때를 묻힌채 서있다.

멀리서도 보이는 그 따스한 언덕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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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동천을 가다.....(상주시 옛집답사)

  • 등록일
    2005/03/19 21:09
  • 수정일
    2005/03/19 21:09

아침 여명을 받으며

봄날로 달려갔다.

 

온지 한참이나 지난 봄날을

이런 저런 핑계로 외면하다가

불현듯 코끝을 스치는 향기에 취해

형님과 함께 새벽부터 서둘러 달려 갔다.

 

그래서 아침공기 상쾌할때 도착한 곳이

상주시 우산리에 있는 우산동천이다.

 

이 곳은 우복 정경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영조가 하사한 땅인데

우복 정경세의 5대손인 정주원이 치세를 이룬 곳으로

우산동천이라 불리는 곳이다.

 

멀리서도 한눈에 아 ! 할정도로 외진 산자락에 우뚝 서있는 곳이다.

 

 

몇년전에 이곳에 들렀을때는 한창 보수공사중이었는데

그 공사가 끝났는지 멀리서도 위압감 느낄 정도로 검은 색 새 기와로 단장되어 있었다.

솔직히 옛기와의 정취를 더 좋아하는 나로써는

이렇게 이질적으로 보일정도의 새기와들이 얹혀져 있는 우복동천의 모습이

다소 낯설어 보였다....역시 손을 대면 정취가 사라지는 가 보다.

 

도로에서 아직 일들을 시작하지 않은봄 논들 사이로 난 일직선 포장농로따라

쭉 들어가면 냇가가 나오고

냇가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우산동천의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솔직히 몇년전에 왔을땐 이곳 다리 밑에서 라면도 끓여먹고 수영도 했었는데

지금은 따스한 봄날이라고는 하지만 여름정취를 즐기기엔 다소 이른감이 있고

이런 나의 기분을 알아주는 듯

버들강아지가 햇살받은 냇가 주변을 흔들고 있었다.

흔들 흔들....?...헤헤헤...강아지들이란...?.....헤헤헤

 

 

여기서 잠깐 !...?...헤헤헤

 

우복 정경세에 대하여 알아보자면

퇴계의 제자인 류성룡의 수제자다. 그래서 퇴계학파의 거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원래 퇴계 이황의 제자 중에는 류성룡과 김성일이 가장 이름높다.

이들 중 류성룡은 이황의 학문을 김성일은 학통(혹은 세력??)을 물려받은것으로 평가받는다.

류성룡은 제자가 아주 드물어 우복 정경세 정도밖에 없지만

정경세가 퇴계학파 인물들중 독보적인 학문의 성과를 냄으로써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은 성과물을 남기게 되고

김성일은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둠으로써

이후 퇴계학파나 영남학파를 성립시키는 실질적인 태두가 된다.

 

우복 정경세는 류성룡의 학문을 이어받아

주로 초야에서 학문을 익히는데 전력을 다했는데

그 중에서도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퇴계의 학문을

현실의 세계로 즉, 실천적 철학으로 재정립 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실제 성리학에서 퇴계의 주리론은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관념론으로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비해 경쟁관계에 있었던 율곡의 주기론은 상당히 현실적인 실천론을 기반으로 함으로써

주리론 보다 더 현실개혁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이에따라

임진왜란이후 세상을 안정시키는 실천론은

율곡의 문인 이었던 김장생, 김집 등의 예학을 중심으로 주기론에서부터 나왔다.

하지만 주리론은 당시까지도(류성룡과 김성일이 활약하던 시기)

아직까지 주리론을 바탕으로 한 실천론적 행동철학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나타난 것이 정경세이다.

정경세는 퇴계학의 심득을 바탕으로 주리론만의 독자적인 실천론(예론)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런 정경세가

평생을 뿌리박고 그의 후손들이

이러한 조상의 숨결을 간직하며 보존해온 곳이 우산동천이다.

 

 

이런 정경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우산동천에는

정경세가 학문을 수양했다는 초가집 계정과

후손들이 지은 산을 대한다는 뜻의 대산루

그리고 정경세가 후학들을 가르쳤던 곳에 세워진 우산서원

그리고 정씨들의 종가집이 있다.

 

난 개인적으로

한국의 한옥집들중에서

나중에 내가 따라 짓고 살았으면 하는 건물이 대산루이다.

 

우산동천에 몇번씩 답사를 감행하는 이유도 대산루가 있기 때문이다.

 

아 !....대산루.....산을 마주대하는 정자....?...헤헤헤

 

 

대산루는

특이하게 T자형 집이다.

일자형으로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집이있고

이것과 붙어서 이층으로 된 루각이 다시 일자형으로 붙어서 T자형을 이룬다.

 

 

이층 루각은 철저하게 집주인의 공간으로

루각과 한칸의 취침공간과 두칸의 책방으로 이용된 방이 있다.

이 방들을 빙둘러 난간이 있어서 난간에 앉아 책을 읽기에도 그만인 구조이다.

 

 

난 솔직히 한옥에서

이런 개인도서관 역할을 하는 공간이 계획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도 처음보며

특히 루각의 취침공간이 이층임에도 불구하고 온돌이 깔려 있는 것 또한

처음 보았다.

 

 

 

즉, 이 취침 공간은 아궁이에 불을 서서 자신의 얼굴높이에서 불을 지피는 구조이다.

신기하지 않나 ?.....헤헤

어쨋든 그 다이나믹한 구조나 그 구조의 실제 용도

그리고 정자가 위치하고 마주대하는 자연과 인간의 삶의 공간등

어디하나 나무랄때 없는 작품이 대산루이다.

 

대산루에서 마주대하는 산의 반대쪽 언덕 위에는 종가집이 있다.

대대로 정경세의 후손들이 살아온 유서깊은 종가집이다.

 

전에 왔을땐 사랑채와 안채릐 지붕보수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이젠 모두 말끔히 끝났고

당시 현장사무소였던 곳은 농기계 창고로 쓰이고 있었다.

 

내가 답사를 다니면서

한옥집의 기와와 흙들을 모두 털어내고 순수하게

나무 골조만 남아있는 것을 본것은 이 우산동천에서가 처음이다.

그때 아!!..하는 감탄이란.......에휴...이후 한옥에 대한 욕심들

내가 내가 살 집을 짓고 싶은 욕구들이 날로날로 샘솟아

결국 한옥학교를 다니게 된 사연을 제공한 뜻깊은 곳이다.....?...헤헤헤

 

 



종가집은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대하는 사랑채가 남다르다.

높은 기단위에 지어진 사랑채를 보노라면

너무나 위압적인 모습에 쉽게 압도되거나

아니면 왠지 심한 거부감을 가지게만든다.

그럴만큼 높은 기단위에 벌덕 서있는 모습이다.

 

 

ㅁ자 튼 집의 형태대로 옆이 터진 채로 들어가는 안채역시

사랑채 못지 않게 높은 기단위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왜이렇게 높이 높이 서있는 것일까 ?

그건 이곳 상주의 집들에서 보이는 흔한 특징이란다.

 

이곳 우산동천뿐만 아니라

양진당, 오작당 등과 같은 민가나

상주향교같은 공공건물까지 상주지역은 온통 높은 기단

혹은 무지막지하게 우겨서 겨우겨우 만든 2층 한옥(?)의 형식을 띄고 있다.

 

이는 상주 지역을 흐르는 낙동강의 영향이란다.

낙동강은 안동과 상주사이를 큰 타원형으로 돌아 남쪽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상태적으로 원의 안쪽에 위치한 안동은 물난리가 거의 없으나

이 곳 상주는 원의 반대 즉, 많은 힘을받는 부분에 위치하다보니

예로부터 상습적인 홍수피해, 침수 지역이었단다.

이에 그런 자연환경에 대한 대비로써 이렇게 높은 기단과

이상한 이층 건물들이 상주 고건축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하튼 이러한 지역적 특색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산동천은

여러 부속 건물들의 나름대로의 멋과

그런 모든 멋들을 완결해주는 대산루가 있어서 언제나 답사여정의 즐거움으로 남는다.


 

우산동천하면 떠오르는 또하나의 시샘은

앞의 냇가다

깊지도 물이 많지도

그렇다고 말라버린 또랑도 아닌

그야말로 집앞의 냇가가 가진 운치, 풍취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속에서 여간내기가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 !....난 언제나 저런 집 지어볼까 ?....헤헤헤....^^;;

 




참고로

이런 우뚝솓은 건물이 영 내키지 않는 분들에게

몇마디 변명아닌 변명을 말씀드리자면

원래 한옥은 바깥에서 안쪽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을 응시하는 건물이다.

 

따라서 대다수 어줍잖은 답사객들의 오만방자함의 원인은

그들이 한옥을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의식이 없어지고

단지 아는 문화재로, 관광상품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어찌 그 속에 살았던 혹은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삶의 온기들을 느끼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제발 사랑채를 뒷배경으로 열심이 다녀간 사실에 대한 기록만 남기지 말고

잠시 시간내어 대청마루에 앉아  

앞을 여유롭게 쳐다보았으면 한다.

 

 

그러다 보면 아 !...이렇구나 하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런 느낌들이 곧 답사의 매력이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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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위원장...차라리 솔직해져라...!!

  • 등록일
    2005/03/18 00:40
  • 수정일
    2005/03/18 00:40

왠만하면 말하기 싫었다.

오늘 먹은 술만 아니었어도

잘나지 못한 내가 푸념만 주절거릴까봐 망설였었다.

하지만 너무하지 않나.....?

 

좀 솔직해 져도 될텐데................!!

 

차라리 무관심해지려 노력했는데 이것이 좀처럼 쉽게 되질 않아서

그냥 내생각들을 말하기로 했다.

원래는 이 문제가 터지기전 즉, 민주노동당일을 사실상 정리할때부터

나 스스로를 심각한 회의감에 빠지게 했던

일반 민주주의 원칙들에 대한 생각들이 있었다.

 

당시 내가 속한 민주노동당 지구당에서도

몇 년동안 민주노동당과 다른 길을 걸었던 아니 공공연한 김대중 지지자였던

그리고 이제까지 진보정당건설에 냉담했던 통일일꾼들이 무더기로 들어오면서

참 ! 이제 되는 정당이 되니 몇일이 다 생기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별일들이 다 생겼었다.

 

아직도 공공연히 김대중 혹은 그 아류로써의 노무현을 지지하면서도

떡하니 중앙의 결정으로 입당하는 농민회 분들이나 통일관련 단체 분들이나.....

 

솔직히 나는 아직도 농민회 분들이 싫다

당비도 한번 내지 않던 그들이 무슨 당내 선거만 있으면

당권확인하면서 밀린회비 한꺼번에 내는 것도 싫고

강기갑 현 의원처럼 이제까지 김대중 지지자 였다가 어떠한 검증도 없이

어떠한 사과도 없이

입당 몇 개월만에 떡하니 몰표를 받아 국회의원이 되는 현실도 싫고

특히 우리 지역의 농민회원들의 그 철두철미할 정도의 통일농군으로써의 사명감은

나로써는 감당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

또한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코빼기도 보이지않다가 통일한마당에는

자신의 식구들까지 대동해서 열광적으로 참가하는 전교조 선생들도 싫고

(그들 대다수는 노무현 구하기에도 열심이었던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그러면서도 당의 결정사항에 대하여 몰표 이외에 어떤 활동도 보이지 않는 그들

그들이 다수결이라는 무기로 단 3-4개월만에 당의 모든 것들을

그들 뜻대로 바꾸어 버리는 것을 보면서 아 !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참 !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이가 탄핵받을때

심지어 내가 속한 지구당에서는

일부 신참(하지만 막대한 다수결주의자들)은 노무현 구출작전에 목숨을 걸었고

이런 시기에 꼭 지역에서 출마해야 하느냐는 이야길 했다.

아 ! 물론 선거이후에는

마치 자신들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승리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지만 말이다.

 

심지어 몇몇 그러한 우파 노동조합 위원장은

탄핵반대 집회때문에 우리 후보자가 자신의 사업장에 찾아오는 것도 결사반대였다.

지금은 반한나라당 전선에 복무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 이유였다.

심지어 우파의 한 청년회는 전원이 민주노동당 당원을 가입했으면서도

반한나라당 전선 구축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논리로 열우당에 동조했었다.

 

이들이 그들의 소원대로 노무현이가 구출된 후에 가질 생각이라는 것은 뻔하다.

 

이제 자신들이 구한 노무현과 함께 정치를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이수호 위원장이 당선되는 때부터

현재 문제시 되고 있는  사회적 합의니 하는 안건 혹은 사안 혹은 경향들은

예정되어 있었다.

 

이미 지난 시절 충분히 뼈저리게 느낀 것이지만 

이수호 위원장을 배출한 민주노총내의 정파들은 이미

이러한 경향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처음부터 이미 노무현 정권과 어떤 식으로든 타협하고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하에

이제 까지 민주노총이 걸어왔던 어떤 길보다도 다른 길들을 모색하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예견되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대의원 대회는 그저 기만이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

 

왜 그들을 이렇게 매도할 수 있는 것일까 ?

 

솔직히 이수호집행부가 속한 정파들의 생각들을 보면

명확해 진다,.

 

우선 그들은 노무현 정부의 집권세력과 근대적 감수정으로서의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

보통 386세대라는 둥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가지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감수성의 친밀감은

한나라당을 공동의 적으로 상정하는 순간 거의 동지애적인 감수성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즉, 한나라당 반대를 위해서라도 열우당 혹은 노무현이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혹은 그런 감수성의 친밀함을 느끼는 집권세력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스스로 복종하는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 

당연히 한나라당의 반대를 위해서.....

그리고 가는 길은 다르지만 어쨋든 한때의 동지인 집권세력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라면 적어도 노무현이라면 내 이야기를 들어 줄거라는 생각.....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

 

그 이유는 이미 민주노총 집햅부는 정치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국민을 생각해야 하고

향후 정치일정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일반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이젠 자신들은 국민들을 생각하고 정치를 생각해야하는

대단한 신분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 민주노총 선거에서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병호도 정치하는 데 우리라고 못하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들의 의지에 반대하니 참을 수 없는 것이요

어떤 타협과 양보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왜 ?

이젠 국민들을 생각해야지

국가의 경제도 생각해야 하고

민족의 통일도 생각해야 하고

반외세도 생각해야 하고

 

이런 무수한 일들에 끼지도 못하는 노동운동이니 빈곤이니는 자신들이

처리해야하거나

책임져야할 사항들이 아닌 것이다

왜 아직도 이런 일들에 목숨걸고 일해야하는 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고매한 인품이나 사회적 지위에 걸맞지도 않은 것이다.

 

자신들의 이러한 의지들이 이미 일반화된 조직의 정책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것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들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노총의 다른 정파와 합의하느니

노무현이와 합의하는 것이 훨씬 더 편하고 옳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겠는가...

 

민주노총 집행부는 이미

비정규직문제나 빈곤의 문제를 자신들이 떠안을 수 없다는 판단인 것이고

따라서 이런 판단하에

차라리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들을 강화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 권좌에서 물러날때까지 절대로

빈곤과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할 방향조차도 제시하지 않을것이다.

 

다만 제사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속한 정파의 이해관계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뿐........!!

 

다음 지자체 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이수호나 몇몇 그 집행부들이 열우당과 민주대연합을 한다고해서

놀랄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제가지 원래 하나였음을...........!!

 

이제

차라리

이수호집행부는 솔직해 졌으면 한다.

더 이상 노동운동 하기 싫다고

이젠 점잖게 정치를 하고 싶다고....

왜 자꾸 파업하고 물리적인 충돌을 야기하냐고

이젠 말로해도 되고

뒤로 알아보니 노무현이가 다 들어준다고 했다고........!!

 

이수호위원장 개인에게 묻고 싶다.

 

지난 전교조 활동에서 배운 것은

결국은 자신들의 집단이익창출을 바탕으로 한 기득권밖에 없는지.....!!

 

지난 10년간 오른 월급만큼 망가진 교육을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아직도 대화와 타협만이 살길인지

그 대화와 타협속에서 당신이 하던 교육은 살아남고 있는지.....

당신이 목숨걸고 파업으로 지키려 했던 그 교육은 결국

한번의 파업으로 끝나고 그 덕에 기득권이 되어버린 당신이

이제 다른 파업에 한번이라도 전교조 선생님들을 이끌고 참가할 수 있는지....

 

전교조가 참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파업한

역사적으로 유일무이한 사건은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을 것인지

오직 교사들의 이익만이 남아 길이길이 파업으로 번창할 것인지...........!!

 

 

술취한 김에 횡설수설...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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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자연스로운 복종이란....!!..(영화정리)

  • 등록일
    2005/03/12 11:53
  • 수정일
    2005/03/12 11:53

복종이다.

억압이나 가용가 아닌 복종이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복종심리가 있는 듯 하다.

아마 어렸을때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수많은 영웅들의 신화에 익숙해졌던지

아니면 스스로 이 험악한 세상을 홀로 버티기 힘들어 누군가에게 기대고픈

어줍잖은 로맨스적 감성이 선천적으로 있든지..............!!

 

요즘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이라는 책을 읽고

며칠동안 머릿속에서 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말이 맴맴 돌고 있다.

일상에서 나 스스로는 이러한 자발적 복종을 솔선수범해서 자청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반선 아닌 반성을 전제하면서까지 말이다.

 

요 몇년 동안 본 영화중에서

아무 생각없이 재밌게 보고 

혹시 누군가가 알면 창피할가봐 몰래 열광한 영화들이 몇 편있다.

 

(내 주변에 소위 영화매니아들이 있어서 조심했다.

 그래도 사회운동판에 있다는 놈이 허리우드 영화나 좋아한다고 타박받을까 봐서...헤헤

 실은 모든 영화를 거의 다 보는 편이지만 이런 허리우드 영화를 볼땐

 좀 남의 눈치를 보는 편이다.

 뭐...소위 영화 매니아라는 그 친구들을 내가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활동하면서 갖가지 도움도 많이 받았고......그들이 좋아하는 소위 다큐라든가

  독립영화들도 좋아하기때문에 굳이 불편해 하도록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다..)

 

가령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나 뭐 이런 류의 영화들은 머리 아플때

그냥 멍하니 보기엔 제격인 영화가 아니겠나 싶다.

 

굳이 자발적 복종이라는 단어가

무슨 스님에게 주어진 화두처럼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는 지금에

이런 영화들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

 

아마도 이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어떤 판타지 ...복종이라는 판타지를 강렬하게 받은 탓일거다.

 

 

가령 매트릭스에서

네오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모피어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촛짜에게 복종하는 가 ?

그들은 이렇게까지 네오를

메시아처럼 받들고 스스로들 목숨을 걸면서까지 복종하는 것일까 ?

 

그것은 아마도

계시라는 예언가라는 오라클의 말 즉, 언어에 의한 복종일 것이다.

성서라는 것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록이요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은 결국 말씀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매트릭스의 인간들은 철저하게 이 묵시론적 언어라는 것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보여준다

유일하게 성서속의 유다처럼 네오를 팔아넘기는 싸이퍼는 결국 악의 천사인

루시퍼의 변종이고보면 그리고 그가 외면하는 것은 매트릭스라는 가상의 현실....

즉 진실이 아니라 언어로 예언된 네오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을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

 

실제 우리는

이 언어라는 것에 대한 선량한 복종들을 도처에서 볼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선량한 행동에 의한 제도의 발전보다

선량한 제도 특히 헌법에 의한 사람들의 개조 혹은 정치의 재구축이 훨씬 더

역사속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찾아내는 것 처럼

그래서 주저없이 프랑스혁명보다는 미국혁명이 더 성공적이었다 평하는 것처럼

어쩌면 정치, 혹은 법이라는 언어라는 수단으로 획득되어지는 이데올로기에 복종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 언어적 권위에 과감히 맞설 수 있을 가능성마저도 없다거나

아니면 언어적인 강압들이 너무나 강해서도 아니면서

사람들은 스스로 그냥 주저없이 복종하는 것으로

이 체계를 지탱해주고 그런 독재자 혹은 독재적 권력들을 지탱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지의 제왕에서의 복종은 무엇일까 ?

그것은 출신 혹은 혈통에 대한 복종일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왕의 귀환이 의미하는 것

그리고 중간계든 인간계든 그 판타지 세계가 안정화되는데 있어서

왕의 귀환이 갖는 의미라는 것은 결국 출신 계급에 대한 그리고 혈통에 대한 향수일 것이다.

 

아라곤이 곤도르 자기의 백성을 버리고 떠도는 동안

곤도르를 통치하고 곤도르를 이끌어 갔던 인물들은

다들 죽거나 미치거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할 뻔한다.

이는 결국 출신 계급에 대한 사회적 체계에 대한 방한은 비극밖에 없다는

어쩌면 지배이데올르기를 보여주는 전형이 아닐까 ?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계급에 편안히 안주하는 것으로

돌아온 왕에게 절대복종하는 것으로 편안함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자발적 복종이라는 사회집단 전체의 모순적인 이데올로기가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영화는 무엇보다도 아더왕이다.

 

원래 아더왕이야기는 다 알고 있다시피

엑스칼리버라는 영웅의 검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 칼에 복종을 한다.

 

 

존 부어만 감독의 [엑스 칼리버]가

판타지라는 장르속에 다양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 영웅전설의 핵심은

사람들이 이 칼에 복종한다는 것이다

어린 소년이 칼을 잡아 뽑았을때 사람들은 모두다 무릎을 꿇고 이 어린 전사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사람들 스스로 칼이라고 하는

힘과 무력앞에 얼마나 무기력하게 자발적 복종의 길로 나아가는 지를 알려주는것이다.

칼로 대변되는 이러한 힘과 무력은

가장 고전적인 방식의 복종을 강요하는 것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아더왕 영화인 킹아더는

이젠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것이

아주 달라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나온 [킹아더]는

아더왕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전혀 다른 복종의 이야기를 만들어 준다

원래는 켈트족의 전설이었던 아더왕이

이젠 선진화된 문화를 가진 로마의 영웅이야기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토록 자신들을 죽이고 자신들의 땅에서 쫓아낸 아더에게

멀린이라는 마법사는 그가 가진 카리스마와 문화, 제도가

미개한 자신의 부족을 바구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들의 모든 것들을 기거이 헌납하며 복종하는 것이다.

 

이영화에서 결국

미개한 그들이 선택하는 선진 문화에 대한 자발적 복종은

결국 현재 사회에서 허리우드 혹은 힙팝으로 대변되는 미국문화에 대한

모든 문화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야기하는 것이요

이러한 자발적 복종이

오늘날 이런

문화적인 식민지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영화에서의 켈트족처럼

우린 어쩌면

어떠한 자발적 복종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

 

우린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자세히 돌아보지 않고

과연 어떠한 힘과 계급과 문화에 복종을 자청하는 것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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