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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02/19 01:08

예술의전당 한가람 디지털미술관에서 '삶의 향상 - 스웨덴 이노베이션 디자인'전이 개최되고 있다.

원래 기대는 스웨덴의 실용적이면서도 새로운 디자인을 갖춘 생활용품 정도였는데,

목적에 적힌 걸 보니 새로운 발명이나 기존 제품의 개발에서도 뭔가 상업적 성공을 거둔 아이디어를 의미하는 거였다.

내가 보고 싶었던 전시는 'new design'이라고 나눠준 책자에서나 볼 수 있었다.

 

완전 비호감이다. 상품 전시회같다. 그냥 KOEX에서 하시지.

우연히 예술의 전당 갔다가 시간이 남아돌면 몰라도 절대 보지 마시라.(나 경고했슴다.--/)

 

여기 전시된 제품 중에 가장 관심간 건 스스로 알아서 왔다갔다하면서 청소해준다는 바로 요 청소기. ㅋㅋㅋ

 



전시된 상품 중 가장 나의 욕구를 만족시켜준 상품이라고나 할까?

 

오히려 중간중간 게시되어있는 사진이나 이미지가 더 좋았다. 아래 사진은 스웨덴 라플란트 북부에서 해마다 열리는 아이스호텔 조각상이다.

 

이건 달라호스(dalahorse)라고, 스웨덴 전통 목각인형이란다.

 

 

전시회장 옆에 원래는 서점인 것 같은데, 그 협소한 공간을 이용하여 [브루노무나리 소장전]이 개최되고 있다.

브루노 무나리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조각가, 그림책작가, 교육자 등 다양한 타이틀로 불리우고 있었다. 왠지 궁금해지는 사람이다.

전시도 재미있었는데, 참고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공간이 전시공간의 전부이다. 그 이상 볼 거 없다...-_-;;; 나중에 좀더 풍성한 전시회 기회가 생기길 바라며...

 

 

뒤에 있는 육각형은 휴지통이다...ㅋㅋ

 

[작은 방, 닫혀진 방]이라는 이 작품은 조립식 구조물로, 아이들에게 놀이, 공부, 수면이 모두 가능한 공간을 마련해주면서도 스스로 배치나 형태를 변경할 수 있는(즉, 분해와 재조립이 가능한) 공간을 부여한 것이다.

 

브루노는 동화책도 많이 제작한 것 같은데, 동화책 재질도 다양하고 그림도 독특했다. 한 권 정도는 꼭 소장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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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9 01:08 2006/02/1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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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01/03 14:48

야수파(Fauvism)는 20세기 대표 화가중 하나인 마티스를 배출한 것 치고는 1905~07년 새 3년간 반짝한 파인가 보다. 마티스가 원래 변호사였다는 사실만큼이나 나름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전시회장을 둘러보면 중간 중간 마티스가 말한 어록이 적혀있었는데,

음... 마치 야수파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야수주의가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시작이다."

"예술에서 말로 할 수 있는 건 유효하지 않다."

야수파는 그야말로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을 지향했다고 하는데, 실제 어느 초등학생은 어떤 그림을 보고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치 아이들의 그림처럼 듬성듬성 빠진 것 같기도 하고, 단순화된 것 같기도 하고, 가려진 것 없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기도 하면서, 태양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색채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매혹되었다. 분명 어디에 걸려있어도 빛날 법한 그림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작품은 앙드레 드랭의 [육녀].

두 여인의 나신을 붉은 배경이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캔버스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신에 눌려 강렬한 붉은 색조차 자자드는 기분이다.

그 옆의 알베르 마르케의 [아틀리에의 누드모델] 역시 강렬한 청록계열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나신의 강렬함을 누를 수 없었다. 특히 유난히 단정한 붉은 머리 아래로 목과 어깨선이 참 매력적이다.

 

 

처음 보게된 앙리 마티스의 작품 [과일이 있는 정물]은 놀라운 색의 편견에 대한 파괴가 느껴졌다. 이 그림이 말 그대로 '정물'로 보이는 게 참 신기하다. 색만으로 명암 구분이 되는 느낌.

 

라울 뒤피의 그림 중에는 묘한 느낌을 주는 게 몇 작품 있었는데, 

[카페의 테라스]는 그림 자체를 마치 볼록렌즈로 본 듯 테두리쪽이 왜곡되어 보였다.

한편 [상트아드레스 해변]은 굵은 면과 같은 테두리로 음영을 나타냈는데, 마치 하늘, 바다, 사람들, 배 등이 각자의 퍼즐과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이번 전시회 플랭카드와 티켓에 게시된 그림인 키스반 동겐의 [라플라자에서, 난간에 있는 여인들].

강렬한 색채와 눈에 확 들어오는 인물들... 속 편한 평면 같아보이지만 미소띈 입가 주변의 주름과 영롱하게 빛나는 반지가 시선을 적절하게 분산시켜준다.

특히 빛나는 반지, 정말 눈길을 끈다.

 

모리스 마리노의 [정원의 여인과 아이]는

왼쪽에 현관문이 보이고 그 앞에 여인의 뒷모습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 뒤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색이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에서 공놀이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희한한 건 이들의 뒤에 위치한 나무숲길과 나무들은 굴곡이 엄청 심해서 마치 조금만 발을 떼어 밖으로 나가면 왠지 모를 모함과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외딴 세계로 나가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모리스 마리노는 유리공장에서 세공을 하던 사람이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그의 [창가에 바느질하는 여인]에 나타난 창문의 세공 표현이 죽여준다. 이 작품은 색이 많은 데도 시각이 분산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프리에즈의 [까시스의 깔랑끄]는 정말 독특한 느낌.

거대한 돌로 된 계곡 사이에 은밀한 옥빛 호수가 있다. 한 사람이 쪽배를 타고와 휴식을 취하고 있고, 하늘에는 오로라 빛깔 나는 둥근 띠들이 무지개 형태로 지나가고 있다.

마치 동양화같은 느낌도 드는데, 탁 트인 산수도 아니면서 냉정해보이는 옥빛의 작은 만이 착가워보이지 않는 희한한 그림이었다.

 

아주 어두운 색을 쓴 작품들도 있는데 오귀스트 샤보의 그림이 그러하다.

샤보의 [프로방스의 시장]은 어두운 색과 굵은 테두리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인물들이 일본만화 허리케인 죠나 보물섬의 존 실버를 연상시키는 각진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역시 샤보가 그린 [삯마차]는 색이 아니었다면 정말 물체가 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지독하게 어둡다. 사람이나 동물도 면 몇개로 간략화해서 그런지 기계같다는 느낌도 든다.

 

전시관 중에는 마티스의 작품만 따로 모은 방도 있었다.

 

 

이 작품은 [희고 노란 옷을 입은 책읽는 여인]인데, 실제로 보면 여인보다는 꽃병의 꽃들과 양탄자의 역동성이 장난 아니다. 예전엔 그림의 지적인 분위기를 주기 위해 책 읽는 여인이 많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왠지 이 그림의 주인공은 책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는 듯...^^

 

마티스는 후반에 들어 동양화를 보고 매우 감명을 받았단다. 어떻게 색을 안쓰고 사물을 표현하고 움직임을 담아낼 수 있는가?

그래서인지 후반엔 석판화를 이용한 흑백작품이 많다.  옛날 모로코 왕을 모시는 할렘의 여인을 일컫는 오달리스크를 그린 그림이 많은데, 이상하게 야한 옷과 포즈에도 불구하고 캔버스를 똑바로 주시해서 그런지 별로 섹시하진 않아 보인다. 마치 아직 성에 눈을 뜨지 않은 소년이 그린 그림같다.

 

전시의 마지막에 와서 또 하나의 기쁨, 조르쥬 루오의 그림이 눈에 띄었다.

마티스와 피카소가 얼굴이라도 봤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루오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함께 영감을 나누고 예술을 나눌 수 있었던 비슷비슷한 시기에 살았다는 사실에 왠지 흥분되었다. 물론 서로 얼굴이나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면서 주로 서민, 빈민을 많이 그린 루오는 후반에 와서 자신이 그릴 사람은 예수라고 깨닫고 예수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물론 저는 기독교인 아닙니다만 루오 그림은 왠지 모르게 좋더라고요.)

몰랐는데 루오도 마리노처럼 유리공장에서 일했는데, 세공을 한 건 아니고 틀을 만드는 일을 했단다. 그래서 그런지 루오의 그림은 액자가 필요없을 정도로 굵은 테두리로 틀이 지어져있는 그림이 많다.

 

 

* 관람료가 매우 쎄다(-_-)는 것 말고는 참 괜찮은 전시회 (-.-)b  2시간은 잡고 가시라~!

 

서울시립미술관 2006년 3월 5일까지

사진출처 : http://www.matisse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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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3 14:48 2006/01/0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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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12/25 00:01

극장가에선 해리포터와 다가올 '태풍'에게 밀리고,

운동권에선 총파업과 WTO에 밀린

그런 다큐 한편이 있다.(지금쯤이면 있었다인가?)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다큐 한편.

서울에 사는 나는, 결국 시네아트(맞나?)에서 할 때를 놓치고 인천까지 가서야 볼 수 있었다. 일본인이 갖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생각, 지도자들이 단절시킨 민중의 알 권리,

요즘 황우석을 비롯한 APEC, WTO 등을 다루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서 알 권리, 생각할 권리가 조작됨으로써 사람들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지 깨닫게 된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수백만명의 사망자를 낸 소위 '대동아전쟁'.

아시아를 유럽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이 전쟁에 대해 일본인들은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 일본은 이 전쟁을 통해 수많은 아시아 민중들을 학살하고, 강간하고, 징병하고, 굴욕을 안겨주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중 한국인은 이희자라는 50대 아줌마.

그녀는 태어난 지 13개월 만에 아버지가 일본군에 징병당했다.

기다렸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재혼하였다.

그녀가 새삼스레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나서게 된 동기는 다소 궁금하지만,

어떻든 수많은 세월이 지나 1995년부터 아버지의 존재를 찾아나선 그녀는 3년만에 아버지가 중국의 난징에서 죽고, 천황을 위한 전쟁에 위대한 죽음을 맞이한 일본군으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모셔진 걸 알게 되었다.

 

또 한명의 주인공인 일본인 후루카와 마사키.

그는 공무원으로 사회운동과의 인연이 나름대로 있는 사람 같다.

우연한 기회에 고베에서 이희자씨를 만난 그는, 그녀의 일본에 대한 엄청난 분노에 놀라고 만다.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낸 고베 지진에 대해 그 당시 희자씨는 안되었지만 받을 만한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후루카와 마사키씨는 희자씨의 아버지 찾기에 상당히 많은 지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는 조력자 중 하나가 되었고, 그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신뢰감과 안정감이 느껴진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본 장면 중 하나는 제2의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난징대학살 박물관 장면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내가 영화를 본 다음날인 12월 18일 새벽 MBC에선 난징대학살에 대한 다큐를 방영하고 있다.

거기엔 [안녕사요나라]에서 이희자씨가 기겁을 하며 봤던 박물관의 모습이,

내 키보다 높은 흙더미 사이엔 빼곡하게 묻힌 뼈들의 단면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한 지역에서 200여명이 넘게 발견된 시체엔 번호표가 붙어있었고, 성인 키의 1/3도 안될 것 같은 작은 시체는 아이들이었다.

중국까지 함께 날아갔던 또다른 영화의 주인공 후루카와 마사키씨는 연신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되뇌이고 있다.

 

또 하나의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야스쿠니 신사 앞 시위.

한 20대로 보이는 여성이 연신 일본어로 야스쿠니신사의 문제점에 대해 지나가던 일본인들에게 외치다가 경비원인지 보수쪽 인물인지 모를 아저씨에게 정통으로 얼굴을 가격당했다. 싸가지...-_-;;;

당연히 모를만한 일, 몰라도 누가 뭐라하지 않을 일에 당당히 나선 그녀의 벌개진 얼굴을 희자씨가 어루만져주었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미안합니다'를 외칠 뿐이다.

 

두 주인공을 번갈아 보여주고 일본 내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반대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희자씨의 굳은 표정 속에서 그녀의 분노를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조센징은 가라!" 고 외치는 일본 우파들 앞에서 '그런 조센징을 왜 야스쿠니신사에 모셔놓았냐? 내놔라!'라고 외치는 그녀의 말엔 재치를 넘어서 늘상 당하는 폭력들에 단련된 강인함과 분노가 잔뜩 서려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분노가 녹아내리고 강인함 속에 갇혀있던 여린 마음의 벽이 부서지는 그 순간은 그녀와 뜻과 생각을 나누는 일본인들과 어울려 있을 때였다.

그렇게, 이 영화는 희망을 말한다.

 

 

* 여기서 여차저차 끝냈으면 좋겠지만 몇마디 뱀발을 달자면,

이희자씨의 다양한 감정선을 따라가본 것은 매우 좋았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화면에서 나타나는 감정과 심지어 보여주는 공간조차 여러번 반복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공분 또는 슬픔, 전쟁의 처절함을 느끼게 할만한 다양한 정보가 제시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좀 생긴다.

난징을 남경이라고 표현한 것도 차라리 중국인의 발음으로 해주는 것이 맞지 않았나 싶다. 그 '남경대학살'이 '난징대학살'인 거 파악하는데 좀 걸렸다...-_-;;;

 

근데 참 희한하지? '이희자'씨 성함을 적는데, 계속 '김지희'라고 적고 있다.

 

* 안녕사요나라 홈페이지 - http://www.annyongsayonara.net

* 한겨레 리뷰 - 야스쿠니신사의 재조명, <안녕, 사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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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5 00:01 2005/12/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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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12/04 01:25

달군님의 [[단편애니메이션] 아빠가 필요해] 에 관련된 글.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단아한 여성들의 재빠른 늑대 따귀 때리기, 날아올라 얼굴 차기 등 ㅋㅋ 

압권이다.

그밖에도 긴장하면 흔들리는 늑대의 꼬리, 냉장고의 사슴,

여자아이 영희가 뽀로로 굴러서 늑대의 팔을 베개삼아 자는 장면들 역시 인상적이다.

 



2가지 정도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첫번째

사슴이 요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 장면에서 좀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아이를 기르거나 가사를 하는 일이 아주아주 먼 옛날에는 노예에게 미루어져왔던,

노예가 사라진 이제 여자에게 미루어져온 바로 그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물론 같은 노예라도 여자 노예가 많았겠지만...)

왠지 앞치마를 두른 사슴이 식탁을 준비하는 모습 속에서 가족이라는 테두리 속에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지위를 상징하는 행위처럼 보인다.

 

 

두번째

예전 돌봄노동에 대한 문건을 읽다가 돌봄을 시민적 의무화 시킬 필요성에 대해 피력한 글을 봤다. 예를 들어 남자들 군대 의무 복무하듯 말이다...헉...

음... 나는 보육노동자 몇년 해봤으니 이미 제대한 셈인가? ㅋㅋㅋ

 

당연히 돌보는 게 즐거우니까 하라는 건 아니었고...

요지는

1) 무지무지 힘드니까 누군가에게 떠넘길 문제가 아니라서 심지어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당사자들에게만 부과할 수 없다는 거.

2) 누가 되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순간 사회적 가치 절하와 낮은 보상체계로 인해 넘겨받은 이에 대한 착취가 시작된다는 거.

3) 결정적으로 아이는 돌봄이 없다면 결정적 해를 입게 되는 대상인지라 나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미비하더라도 차라리 지금 그 아이를 돌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수 밖에 없는 매커니즘으로 인해 돌볼 수 밖에 없다는 거.

등등이었던 것 같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아이를 기르는 건 늑대가 영희의 진짜 아빠가 되고플 만큼 달콤하고, 모든 아이가 영희처럼 귀엽기만 한 건 아닐거다.

 

그렇다고 아이가 주는, 내지는 아이를 기르며 갖게 되는 놀라운 삶의 장면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인생에서 누군가가 자신만을 온전히 필요로 하는, 내가 없다면 삶을 영위하지 못할 것 같은 존재가 옆에 있다는 건 참 색다른 경험이다.

그런데 그게 참 아이는 자라게 마련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때는 언젠가 사라진다.

그런데 기르다보면 조금씩  "나는 얘때문에 살아요", "이 아이가 내 삶의 전부죠"라고 말하게 만드니 참 곤란곤란...

(가끔은 나를 잊게 해... 40,50대 아줌마들의 자아 상실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래서 말인데 좀 cost 가 쎄긴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건 늑대가 운전기사로 전업할 만큼 꽤 해볼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문제

1) 전업 정도의 각오로는 애를 키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의 현실..-_-;;;

2) 애도 잘 키우고, 나의 자아도 쑥쑥 성장하게 하는 놀라운 중도(中道)를 찾는 길.

(자~ 살리고 살리고 늑대로 살리고, 영희도 살리고~~~

사슴도 잊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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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4 01:25 2005/12/04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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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10/25 16:37

단 한번의 폭발 굉음도 없고,

테러리즘에 대한 어떠한 입장도 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러에 관한 내용을 담은 영화가 있다.

 

말레이지아의 감독 우밍진(Woo Ming Jin)은 2002년도 발리에서 있었던 폭탄 테러 사건을 바라보면서, 이 영화 [월요일 아침의 천국 / Monday Morning Glory ]을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이 밝히는 이 영화는 '테러리즘이 아닌 테러리스트에 대한 영화'이며,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빈곤하고 실업 상태에 놓인 말레이지아 청년이 선택한 직업에 관한 영화이다.

 

처음엔 낚시터를 운영하는 두 형제가 청년 두 사람을 일터에 채용한 줄 알았는데,

왠지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서로 심각하게 대화 나누고 하는 폼이 영 심상치 않다.

어느덧 제조된 폭탄에 대한 이야기를 열심히 나누더니 두 청년이 오토바이로 폭탄을 운반하다가 터져버리고, 결국 한 청년 A(이름 까먹었다-_-;;)만 살아남는다.



장면이 바뀌어 그들은 이미 경찰에 붙잡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포박된 채 사건 재현을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살아남은 한 청년 A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경찰청장 비슷한 사람은 연신 폭탄테러범 생포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사건 재현의 순서에 따라 화면은 과거를 오고가며

실제 낚시터의 두 형제와 그들 조직의 지도자, 청년 A와 새로 채용된 또 하나의 청년이 행했던 폭탄 제조, 테러 장소 물색, 예비 연습 등의 장면들을 보여준다.

간간이 낚시터 두 형제와  지도자가 있을 때는 이번 투쟁의 의의를 언뜻언뜻 언급하고 청년들의 의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청년들끼리 있을 때는 이번 일의 위험성과 이번에 벌 수 있는 돈, 어디에 쓸까에 대한 대화가 오고간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 즈음이 되어 청년 A는 그들이 테러 목표로 정한 미국인이 많이 있을 것 같은 나이트클럽 화장실 변기에 폭탄 가방을 놓고 잠시 세면대에서 얼굴을 씼으면서 심하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오려는 순간, 클럽 손님 중 하나가 그에게 가방을 놓고 갔다면서 다시 건네준다.

잠시 후 낚시터 두 형제가 클럽에서 나오고 등뒤로 들리는 폭발음,

그리고 청년 A의 애인이 청년A가 일한다고 데리고 온 적 있는 낚시터에서 물끄러미 물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 스친다.

 

 

우밍진 감독은 처음엔 폭발 장면을 넣어볼까 고민을 했다가 예산도 없고 오히려 극을 이끌어가는데 방해가 될 수도 있을 듯 싶어서 폭발 장면 전혀 없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 폭탄을 실고 가는 오토바이에서 한 명의 사망자가 나올 때에도 일어난 당시의 폭발은 자르고 그 이후 길가에 내팽겨쳐진 청년 A와 얼굴에 붕대를 덕지덕지 붙인 청년 A의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보기에도 테러리즘보다는 테러리스트에게 초점을 맞춰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지를 잘 드러낸 방식같다.

 

한편 이 영화는 내가 알고 있던 테러리스트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깼다. 간혹 중동에서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자살폭탄테러를 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마음으로 와닿지는 않았는데, 실제 생활고와 실업을 맞이하면서 직업처럼 선택하는 청년 A를 보니 그야말로 '실감이 난다'.

 

부가적으로 말레이지아 경찰이 테러리스트를 다루는 관행일지도 모르는 행위에 대해서도 언뜻 엿볼 수 있었다.

테러범으로 붙잡힌 낚시터 두 형제와 폭탄제조자, 지도자 등은 이번 테러의 정당성에 대해 끊임없이 역설한다. 그 와중에 경찰은 지도자를 풀어주고, 다음 날 지도자는 강가의 사체로 발견된다. 언론에 '도주'라고 표현된 이번 사건 이후로 낚시터 두 형제는 테러에 대해 자신들의 죄로 규정짓는 기자회견을 갖게 된다.

 

그냥 일반인과 하등 다를 것 없는 테러리스트의 삶과 생각에 대한 고찰.

테러리스트에게 테러는 이념의 실현, 체제의 저항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내지는 누군가에게는 - 타인과 자신의 목숨을 담보했음에도 불구하고 - 밥벌이의 수단이요, 삶의 한 꼭지이다.

 

왠지 자본주의와 미제국주의에 맞서는 테러리즘이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과 실업의 심화를 통해서 

목숨조차도 걸고 흥정할 만큼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을 통해서

기존과는 좀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 모순의 도출로써 작동하고 있는 듯 하다.

체제의 저항이었을 테러는 체제의 모순을 통해 점차 체제 내에 속한 일상의 하나로 재생산되고 있다.

 

* 사진출처 : PIFF (http://www.pif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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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5 16:37 2005/10/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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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10/03 02:17

그러고보니 서극의 영화는 꽤 본 것 같다.

일단 [황비홍] 시리즈는 다 봤을테고, [요수도시], [청사], [금옥만당], [칼(刀)], [촉산전] 등...

헉, 명절 때 TV의 압력으로 [넉오프]와 [더블팀]도 봤다.-_-;;

 

내가 본 영화중에서...

무협을 좋아하는 지라 현대물은 별로지만 [금옥만당]은 재미있게 본 듯...

그런데 황비홍 시리즈와 청사, 금옥만당은 아무리 봐도 소품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현대물 빼고 소품 느낌 빼면 남은 영화들이 [칼(刀)]과 [촉산전], 그리고 이번에 본 [칠검]인데...

 

걔중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칼(刀)].




 

원래 이연걸과 견자단에 비해 조문탁의 무술은 기계적일 뿐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느낌이었다.

( 그래봤자 다 이소룡 kids 고, 연기 자체는 별 평가 못 받을 지라도 무술만은 (--)b )

 

그런데 [칼]만은 틀렸다.

그의 외팔도, 거대한 칼도, 무술도 이때만큼 수려하고 가슴 아팠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에 스토리도 분명 감성적이고 탄탄했다. 

이 모든 건 감독 서극의 힘이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촉산전]이 나왔는데, 무술만 부족할 뿐 나머지 모든 것이 오버였다.

이 당시 서극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보려고 한 것 같다.

이연걸이나 과거 이소룡, 성룡등의 무술로 넓혀진 스크린의 시계를

CG로 보다 획기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아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지평을 열기에 정이건은 역부족이었다.

넘쳐나는 CG속에 홍금보조차 가려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러면서도 서극은 스크린 속의 인물들에게도 미련이 남아있어 매우 엉성한 영화가 되었다.

 


 

그러다가 [칠검]이 나왔는데, 이연걸도 무술 안하겠다고 나온 마당에 이제 무협계엔 견자단 밖에 안 남았다!

서극과 견자단이라... 이 정도면 [칼]을 꿈꿔도 되지 않을까?

우선 [칠검]에는 CG가 사라졌다. 인물에 집중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검이 7개나 되었다.

이렇게 검이 많아지면 제1검에 완전 초점 맞춰주셔야 한다.

(황비홍에서도 주변 훌륭한 제자 많으나 언제나 주인공은 황비홍일 뿐이다.)

그런데 [칠검]의 (무술) 주인공 자리는 견자단과 여명 사이에서 줄타기가 심하다.

여명이 축소하기엔 나름대로 무게가 있는 캐릭터라도, 무협인데 과감히 조연에 충실했어야 주연, 조연 모두 부각되었을 것이다.

검이 7개나 되니 서생 차림(여명) 1명 정도야 멋지게 봐줄 수 있지만, 

투톱으로 세우고 싶었으면 둘을 적당히 라이벌로 만들던가 했어야지.

하지만 견자단과 여명... 기본적으로 너무 멀다.

 

단 하나 건진 장면, 견자단과 적이 1m 남짓되는 공간에서 칼부림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머지는 자꾸 끊기고 마무리가 이상한 느낌이다.

게다가 첫 장면부터 유혈낭자, 잔인참혹극... 리얼리티를 강조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이건 과잉이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너무나 단순 희망 만발한 얼빵 결말과의 댓구도 영 맞지 않는다.

 

[칼]에서 느낀 서극은 무술 장면을 통해 사람을, 감성을 불어넣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촉산전 찍으면서 많이 멀어졌다.(그래도 갈때까지 간 것 같진 않았다. 그저 새로운 실험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곤 [칠검]으로 돌아오려나 싶었는데 아직 덜 왔다. 어정쩡하다. 아니, 사실 좀 불안하다. 과연 서극은 [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칠검]에서 사라진 스토리와 화면의 일관성이, 왠지 안어울렸던 유혈낭자가 마음에 걸린다.

 

* 사족 - 이연걸이 무술에서 은퇴했다. 이제 [영웅]의 기원 scene 같은 건 다시 못보는 건가? T.T 누가 견자단과 이연걸 한번만 더 붙여줘~~!

* 사진출처 : http://www.cine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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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3 02:17 2005/10/03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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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09/22 01:23

아시는 분은 아실 지 모르겠으나, 나는 전혀 모르던 사실.

글쎄 아시는 분은 아실 만한 움베르토 에코가 동화를 3편이나 썼단다.

동화책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에는 움베르토 에코가 쓴 '폭탄과 장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뉴 행성의 난쟁이들'이 수록되어 있다.

 



[폭탄과 장군]

 

첫장을 폈다.

"옛날에 아토모라는 원자가 있었습니다."

네? 원자라고요?

'원자라니? ATOM 말이냐?'

 

2장을 넘겼다.

"...원자가 모이면 분자가 되고,...엄마도 원자로 만들어졌고..."

아뿔사~ 그 '원자'가 맞다!

 

매 장을 넘길 때마다 그 장에서 느끼거나 알거나 생각해야 할 것들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이를 테면 원자가 모든 물질의 근원인 거,

아토모라는 원자가 속해 있는 폭탄이 터지면 어떻게 될지,

권력자와 자본가가 만나면 어떤 음모를 꾸미는 지,

폭탄이 없는 게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깨달음,

막판에 권선징악까지^^;;

(물론 이렇게까지 어렵게 쓰건 아닙니다요)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

 

이 동화는 미국, 러시아, 중국인들이 서로 우주인을 화성으로 보내면서 의사소통 부재, 서로간 불신을 겪다가, 고독감과 '마마'라는 단어의 공유를 통해 이해를 확보하는 내용이다.

물론 이들이 만난 화성인은 공격적 외모로 인해 처음엔 불신을 가졌으나, 마찬가지로 소소한 행동으로 인해 서로간의 이해가 가능해진다.

 

나름대로 독특하게 본 내용은 지구인이 우주로 우주인을 보낸 이유.

우주인들은 매우매우 위험했지만 행성을 여행하고 별을 정복하고 싶어했다.

why?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지구가 좁아졌기 때문.^^

꿈과 희망과 호기심에 가득찬 기존의 우주 여행 동화와 마구마구 비교되는 대목이다.

 

 

[뉴 행성의 난쟁이들]

 

제일 재미있게 본 동화인데, 환경문제, 권력문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동화를 보니 움베르토 에코는 '오래된 미래'를 꿈꾸나 싶은 생각이 든다.

 

지구의 한 힘있는 황제가 신대륙 발견을 꿈꾼다. 하지만 지구엔 더이상 신대륙이 없다.

그래서 우주로 신하를 내보내봤다.

그러다가 '뉴'라는 행성을 발견하고 문명을 전해주려 한다.

하지만 뉴 행성의 거주인 난쟁이들은 초대형 망원경으로 지구를 봤으나 영~ 탐탁치 않다.

매연으로 아예 안보이고, 빠르게 가려고 차를 개발했다면서 도로가 꽝꽝 막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래서 오히려 뉴 행성의 난쟁이들이 제안한다. '우리가 지구를 발견한 걸로 하자'고...

 

이 동화는 첫줄부터 재치가 넘친다.

"옛날에 힘 있는 황제가 지구에 살았습니다.

혹시 지금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동의 (-.-)/

 

 

[다 보고나니]

 

움베르토 에코의 동화책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나 그 사실의 함의를 기반으로 깔고 그 위에 자신의 가치관을 창작의 내용에 섞어 보여준다.

예를 들어 원자가 뭔지를 설명할 때나 미국, 러시아, 중국 우주인 등등은 그의 현실 기반적 모습을 명확하게 드러내준다.

한편 권력자와 자본가가 모여 폭탄 투하 계획을 짜거나 지구인의 우주 진출 계획에 숨겨진 야망, 인간 문명의 모순 등은 벌어진 현상에 대한 가치 해석을 동반하고 있다.

 

이 동화책은 이러한 모양새 하나 하나를 살펴나가면서

소소한 표현에 섞인 의미가 주는 잔 재미와 씁쓸함을 독해해나가는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인지 난 3편 모두 굉장히 재미있게 봤다.

그러나 나(我)나 움베르토 에코를 너무 믿으면 안된다.

아이들은 냉정하다.

초등학생 2명의 자식을 가진 한 엄마가 애한테 이 책 사줬더니, 좀 보다가 재미없다고 던졌단다.^^

 

사실 뜻 맞는 어른끼리 공유하는 동화책과 아동,어른이 공히 나눌 수 있는 동화책은 백지 한장 차이조차 안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어떻든 세상은 가끔 공평하다지 않던가?

움베르토 에코에게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을 기대하면 안되쥐.

하지만 확실히 새로운 동화글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만족.

 

[사족1]

내가 출판사였다면 3권 엮어서 내지 않았다, 다 따로따로 냈지.

보육노동자 입장에 초점을 맞춰서 볼때,

대략 책 구독 대상이 유아 ~ 초등학생이라 치고

책 내용이 위와 같으면 어른과의 상호작용을 염두에 둘 것 같다.

 

3권 엮고 크기를 작게(지금 나온 모양새가 이렇다) 하면,

보육시설에선 사용하기 힘드니까 보호자들의 개별 구매방식으로 가게 되고, 아동의 흥미에 따라 개별 아동으로 구매된다. 그러면 첫눈의 호감에 엄청난 신경을 쓰는 반면, 보호자가 이 동화책의 의미를 이해하고 아동과 적절한 상호작용을 모색할 지 여부를 확신할 순 없게 된다.

 

하지만 낱개로 만들고 책 크기를 키우면 시설의 교사가 선택하는 영역 범위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고(책은 일단 크고 튼튼해야 어린이집 교사가 눈길 준다.), 이는 해당 교사의 책에 대한 이해를 담보하는 동시에 아동과의 적절한 상호작용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앗, 근데 이렇게 하면 초딩에겐 접근성 떨어지는 건가? 모르겠당.)

 

사실 존 버닝햄이나 앤서니 브라운 책은 유명하지만, 그 '유명하다, 훌륭하다'라는 평가 안에는 교사의 선택과 아동과의 상호작용이 큰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족2]

근데 삽화, 죽인다.

에우제니오 카르미라는 사람이 그렸다는데, 정말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상징적 표현으로 내용 이해를 배가시키는 그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주의~!

아동의 시각은 전혀 다를 수 있다.

말했죠? 냉정하다고..ㅋㅋ

 

* 사진출처 : http://www.alad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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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2 01:23 2005/09/22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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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08/28 02:03

무위님의 [펭귄 - 위대한 모험] 에 관련된 글.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뜯어고칠 수 있다면, 성우 빼고 나레이션도 빼고
찰리 채플린 영화식으로 화면 중간중간 간단한 설명 깔아주고 끝내고 싶다.
물론 펭귄들의 소리와 근사한 배경음악은 필수~!

 

어디서 읽은 바로는
영화감독 자신이 성우를 꼭 썼으면 했다고 하고 프랑스판 역시 성우가 나온댄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동물의 의인화에 반대하여 실제 나레이션만 넣다고 한다.
감독의 의도는 대략 알 것도 같은데 동의는 안되고, 매우 미안하지만 차라리 미국판 구해보고 싶다 -.-#



인간의 음성들을 제외하고 화면만 평하자면 그야말로 장관.
내 평생 영하 40도의 남극과 살을 애는듯한 겨울바람,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황제 펭귄과 오로라를 체험하지 못할 것이며,
펭귄들이 물 속에서 얼마나 멋진 새처럼 날아다니는 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할 것이며,
그들이 새로운 생명을 위해 자신에게 닥쳐오는 생명의 위협을 몇 고비나 넘기는지 지켜보지 못할 것이다.

이 영화를 보지 못했더라면
같은 하늘 아래 그다지도 지독하게 아름다운 곳이 존재함을, 펭귄의 아름다움을, 그들이 함께 뭉쳐 이루어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이 영화의 컨셉을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어느덧 스며들어 있는 인간 중심의 사고, 편협한 정상가족 개념에 대한 집착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4살이 넘으면 짝짓기를 위해 추위와 천적을 피해 얼음이 단단히 어는 오모크까지 한참을 걷는다.
그리고 짝짓고 알 낳고 품고, 수컷에게 알 넘겨주고, 암컷은 먹이 구하러 가고, 수컷은 자기들끼리 몸을 촘촘히 붙여 바람을 막고, 암컷이 돌아올 때쯤 새끼 펭귄이 나오면 먹이 주고, 수컷은 또 떠나고...
이 사이에 칼날같은 겨울 바람이, 물표범이, 새가 시시때때로 그들을 위협하고 목숨을 앗아간다.

 

그들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한다. 뭍에서 걸을 때도, 짝짓기할 때도, 추위를 막을 때도, 바다에서 먹이를 구하고 새를 쫓을 때도 그들은 언제나 무리지어있다.
늦가을에 만나 초여름에 모두 뿔뿔이 헤어질 때까지 그들은 거대한 공동체 그 자체이다.
함께 모여 무언가 헤쳐나가는 모습, 감격 그 자체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의 1부1처제에 주목하고 아빠, 엄마, 아기 펭귄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옆집 아저씨 펭귄이 없었다면 과연 추위에 살아남았을까?
앞집 아줌마 펭귄이 없었다면 아빠,엄마가 모두 먹이 구하러 간 아기 펭귄은 새의 먹이가 되지 않았을까?


실제 새끼가 적당히 자라 각자 제 갈 길 떠나는 걸로 위대한 한 단락을 마친 펭귄들의 모습에 (매우 폭력적인) 정상가족 개념을 각인시키고 가족애를 환기시키는 것은 감정이입을 완전! 방해하신다.
왠지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인간의 잣대로 재다가 뭔가 제대로 된 모습을 못 보게 된 꼴이라고나 할까?

 

기간동안 펭귄이 보여준 모습은

그저 삶을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존재들의 위대함이며,
그야말로 '모험'이라 불리울 만한 거대한 노정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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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8 02:03 2005/08/2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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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08/16 21:28

레니님의 [SICAF 2005 #1] 에 관련된 글.

 

COEX 메가박스에선 SICAF 애니메이션, 태평양관에선 전시회가 진행중이다.(가 아니라 오늘 끝났겠는 걸?^^;;)

 

전시회장이 워낙 넓어서 제대로 다 본건지 알 수 없지만 몇가지 찍은 거 올려보면...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이두호 특별전.

이두호는 [임꺽정]과 [머털도사...]로 유명한데, 전시 작품 중에도 두 캐릭터가 많다.

 

근사한 그림들도 많았지만 작가가 메모지에 끄적거린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이 사진은 머털도사와 작자의 모습인데, 나는 왠지 SD를 좋아하나봐.^^

(SD : Super Deformation. 보통 2등신으로 얼굴을 과장시킨 캐릭터를 말해요.)

이 그림 근처에는 작가가 썼다는 펜촉이 아크릴 각 안에 하나 가득한데,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려왔는 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래 같은 삽화도 눈에 띄는데, 시대 모습을 정말 푸근하게 표현한다는 느낌이다.



COEX 전시회에 오면 왠지 장사치들이 쫘~악 깔려 기분 안좋을 때가 많은데, 애니, 만화, 캐릭터는 일반인도 즐길만한게 많다 싶어서 그런지 나름대로 볼 것도 있는 것 같다.

얘는 토로(Toro)라던데, 표정이 끝내줌~!

 

이번 전시회에선 새삼스레 한국의 만화 재벌 두 회사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서울문화사와 대원이 바로 그 회사들...

한켠에 "19세미만 판매불가"라 붙어있던 BL 코너. (저거 못 본거다, [환월루기담(?)])

 

 

이번 전시회의 메인 주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해방 60년]이라던데, 그중 '저항 만화' 코너가 가장 볼 만 했다. 

표현이 재미있고 신선하다고 느꼈는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직선적인 표현이 오랜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 만화는 지주에게서 쥐어짜지는 농민의 모습.

 

대체로 6공 때쯤 그려진게 아닐까 싶은데, 반미, 노동운동, 군대.경찰의 과잉진압등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림 가운데 군인 개들 보이는가?

 

언제나 남의 탓만 하는 전두환의 모습^^ 훌륭하시옵니다, 민족미술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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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6 21:28 2005/08/1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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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5/08/14 17:24

지난 8월 2일부터 일민미술관에서 2005 동아LG 국제만화 페스티벌 (DIFECA 2005)이 열리고 있다.

 

크게

자유로운 감성전 - 해외만화 초대전 (독립만화)

즐거운 발견전 - 만화 공모전 수상작 전시

유쾌한 상상전 - 한국만화 특별전

로 구성되어 있는데, 3가지 섹션 모두 볼 만함. (O_O)b



자유로운 감성전 - 해외만화 초대전

 

1층에서 열리는 해외만화 초대전은 해외의 독립만화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종이와 펜'이 아닌 다양한 재료의 사용이 눈에 띈다.

 

벨기에의 티에리 반하셀은 유명한 독립만화가이자 독립만화 출판자라고 한다.

그의 작품 [야만(Brutalis)]은 빛과 육체의 움직임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더 압권인 건 [야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얼알론(Hollalone)].

[얼알론]은 벽 3면에 육체와 풍경의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만들며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느낌이 언젠가 본 모래 애니메이션과 비슷하다.

 

포르투갈의 페드로 노라는 사회비판적이고 우울한 만화를 그린다고...

그의  [미스터 버로우(Mr. Burroughs)]는 실존인물의 삶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배경을 처리할 때 일정한 짧은 사선으로 면을 채움으로써 뭔가 긴장되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

 

스위스의 이븐 알 라빈은 미니멀라이즘 경향을 보이는 대표적인 만화가.

말풍선 모양으로 다양한 표현을 한 [추상만화 BN **]이나 [축제의식]을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대사 한마디 없고 배경도 없이 단선으로 그린 캐릭터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슬로베니아 출신 안드레이 스툴라 역시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많이 전달한다고 하는데 작품중 [러시아인]이 눈에 띈다. [러시아인]은 작가가 러시아와 러시아인에게 헌정하는 작품이라던데 외국어라 한마디도 읽을 수 없음...-_-;;;

 

역시 슬로베니아 출신인 토마스 라브릭의 작품 [불빛의 신]은 파괴된 미래와 환경재앙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는 데, 역시 외국어라...-.-;;

 

스위스의 프레데릭 피테르스의 작품은 전시된 어떤 작품보다 개성만점으로 느껴졌는데, 캐릭터가 일본만화처럼 눈이 엄청나게 커서 그런 것 같다. 그의 작품은 시대가 불분명해도 대체로 SF적 냄새가 솔솔나는 게 정말 독특하다.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리치의 작품중에는 [사피아 야세프]라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 있는데, 그림 표면에서 질감이 느껴지고 전반적으로 매우 우울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의 스테판 블랑케는 애니메이션[슬픈 피부]와 [나의 찻잔 받침]이 선보이고 있는데,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지만 절지인형과 같이 뚝뚝 끊어지는 움직임을 보인다. 마치 위에서 누가 줄로 동작을 만드는 것 같다.

그 옆에는 스테판이 만들어놓은 [악몽의 방]이 있는데, 사방이 악몽의 그 현장이고 가운데 놓인 침대안의 사람 머리 위에서 악몽들이 종이조각에 그려져 날아올라가고 있다. 언제나 저런 생각만 하고 살면 노이로제 걸릴 텐데...-.-

 

 

즐거운 발견전 - 만화 공모전 수상작

 

2층에 올라가보니 이번 공모전의 수상작중 캐릭터와 카툰 부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캐릭터는 그다지 맘에 드는 게 없었는데 2가지 정도 뽑으라면

2등신도 아닌 1등신 동물들 [미니게임팻]과

 

[플래넷 큐몬]

 

 

카툰 부분에선 볼만한 게 많았는데, 재미있는 점이 조지 부시와 핸드폰에 대한 작품이 많다는 점이다.

 

이건 콜롬비아 Freddy Pibaque 의 작품 [조지 부시]이다.

 

하나 더 소개하자면 이건 중국의 Xu Caixiao 가 그린 [조지 부시].

(대략 분위기는 알만 하지요?^^)

 

 

핸드폰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핸드폰에 중독된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건 중국 Huang Kun 의 [무제]

 

이건 이란 Tarbriz Cartoon Society 의 [무제]이다.

 

 

한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다룬 작품도 눈에 띄는데, 이 작품은 루마니아 Pavel Constantin 의 [무제]이다.

 

이란 Ali Divandary의 작품 [무제] 역시 거대한 현미경으로 노동이 감시당하는 것과 같은 현대인의 삶을 나타내고 있다.

 

콜롬비아의 Freddy Pibaque 의 작품 [Productive Use] 는 반전의 메시지를 알리고 있다.

 

 

유쾌한 상상전 - 한국만화 특별전

 

신명환의 [팔방치기 횡단보도]는 짧은 컷 만화를 실제 공간에 표현해본 것이다. 횡단보도가 땅따먹기라면? 건너는데 꽤 시간 걸리겠지? ㅋㅋ

 

백주연의 [대머리 위의 계란후라이]벽과 탁자등에 계란후라이들이 잔뜩 놓여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모두 머리 위에 계란 후라이가 놓여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사진의 왼쪽 사람은 제목과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겠지?

 

신명환의 [깔깔깔 구리기 짐볼을 구해주세요]는 정말 내 무릎정도의 지름을 가진 커다란 짐볼들이 가득 있다. 그려진 표정들이 정말 귀여워.

 

조주현의 [유아용 비데]는 출산 욕구를 높히기 위해 '유아용 비데 설치를~'이라는 *** 연구소의 문구가 보이는 데, 왠지 국가의 출산장려정책만큼이나 허무해보인다.

노란 방은 참 예쁨.

 

신명환의 [뭉크의 절규]. 왜 절규하는지 이제 알았지?

 

정은향의 [어항변기]. 근데 물 빠질 때 붕어들은 어쩌나?

 

이 그림 아시나요? 바로 그 유명한 델로스. 이 소파 말고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건 신명환의 [눈사람 아이스크림]. 알고보면 아이스크림은 진짜 이렇게...^^;; 이 아이스크림은 진짜 사먹을 수 있다.

 

 

* 사족.

이번 전시회 참가의 또다른 즐거움, 진짜 델로스를 봤다!

오, 역시 또 편견의 시각으로 '어리다 싶은 젊은 여자' 생각했다가, '그냥 젊은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좀 말랐고 신경 예민할 듯 싶지만, 매우 스타일리쉬함!

 

일민미술관은 광화문역 교보문고로 나와 길 건너 광화문 우체국 있는데 있다.

페스티벌은 8월 21일까지

 

* 사진출처 : 일민미술관(http://www.ilmin.org) + 거의 다 직접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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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14 17:24 2005/08/1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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