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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7
    어제 롯데-한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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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8/08/25
    바위처럼[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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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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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호 감독이 내 말에 귀를 귀울이셨나^^?[야구]-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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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8/08/04
    아...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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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7/31
    제일호 감독님, 아~~~.... [야구](2)
    곰탱이
  9. 2008/07/31
    잠실벌서 갈매기들 힘차게 날다^^[야구] (4)
    곰탱이
  10. 2008/07/30
    진보, 도대체 누구냐, 넌?! - 3
    곰탱이

서양 미술사 스터디 시작합니다^^

10년 겨울방학 중 <서양미술사> 스터디 모임 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장소 : 건대 제2학생회관 2층 생활도서관

 

날짜 :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1시 30분

 

교재는 전에 말씀 드린대로 곰브리치가 쓴 <서양미술사>(예경, 2009)이고요.

진도는 19장(바로크 양식)부터 나가기로 했습니다.

1월 18일 화요일부터 방학 끝날 때까지 하기로 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밑에 댓글 달아주시고 오셔요.^^

무지무지 환영합니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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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겨울방학 서양 미술사 스터디 예비 모임^^

서양 미술사를 겨울방학 때 같이 공부하기로 했는데,

예비모임2011년 1월 11일 화요일 늦은 5시

 

학생회관 1층 식당에서 하고자 합니다.^^

 

교재는 <서양 미술사>(E. 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이종숭 옮김, 예경, 2009)이고요,

진도는 19장 [발전하는 시각 세계]부터 하고자 합니다.

같이 공부하실 분은 밑에 덧글을 달아주시고 연락처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변동 사항이 생길 경우 바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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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뱀, 고양이, 쥐들에게 고함!

하도 매스컴 여기 저기서 GR GR하면서 쥐20을 떠들어대니,

하긴 학교 내에서도 쥐20때문에 건물 출입을 밤 9시부터 세컴을 작동시켜 통제한다더라마는...

참으로 뭐라 할까...

사람 사는 이 땅에 쥐가 얼마 전부터 설레발을 치고 온나라를 4대강 사업이니 어쩌니 하면서 들쑤시고 파헤치고 다니다보니, 그것도 모자라서 지구상의 방귀께나 뀐다는 쥐들을 20마리 초청했다나 어쨌다나,..

그러다보니 사람은 뒷전이고 쥐들이 먼저라,..

사람 먹고 싸는 것까지 뭐라 한다는 소리도 들리더라마는...

 

이에 이 땅의 모든 쥐들이 불만이 쌓여 볼멘 소리들을 해댄다.

- 아니, 빌어먹을 언제 지들이 우리 쥐들의 대표라구 이 땅에 모여서 GR들이야, GR들이!

- 도대체 그 놈들 때문에 밤에도 맘 놓고 다닐 수가 있어야지.

- 아니, XX... 짭새들이 우리들까정 검문한다고 난리라니깐...

- 그럼 우린 언제 밥 먹고 사냐, 밤에 인간들 거 살짝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데...

 

하여간에 이 땅에 쥐 한마리가 온통 물을 흐리더니만,

이젠 지랑 비슷한 넘덜을 델꼬 와서 물만 흐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난리 부르스를 추고 야단이다...

울나라 그 쥐와 다른 쥐19마리가 모여 이제 사람 사는 것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 한다는데...

하도 어이가 없는지라 일단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뭐, 이 땅의 모든 고양이들이 갱찰에 의해 집단으로 감금되었다는  소문이 있어서 그런지

학교에 길냥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갱찰이 한숨 놓는 것은 뱀들이 겨울잠 자러 들어갔기 때문이라던데,

뱀들이 겨울잠만 자지 않았어도,

이 쥐20마리가 설레발이치치 못하지 않았을까...

겨울잠을 자고 있는 뱀들을 깨워서 전국의 고양이들을 감금으로부터 해방시켜

사람과 쥐, 고양이, 뱀들이 연대하여 쥐20이 이 땅에서 설레발이치치 못하게 해야 된다고 본다!

 

전국의 뱀들이여, 고양이들이여, 쥐들이여!!!

우리 인간과 연대의 깃발 높이 들고 쥐20마리를 몰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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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 플리즈 님 글에 대한 이야기^^...

ScanPlease님의 [등록금 투쟁과 대학입시] 에 관련된 글.

 

스캔 플리즈 님 글 잘 읽었습니다.

스캔 플리즈 님 글 요지는 대학 입학은 쉽게 하고 대학 졸업을 어렵게 해야

사교육비가 감소하는 등 대학 입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대학 입학을 쉽게 하고 졸업을 어렵게 하는 정책은 이미 전두환 정권 시절에 <졸업 정원제>라는 이름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전두환 정권이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단행한 정책 중 하나로서, 대학의 엘리트화에서 대학의 대중화로 대학의 성격을 바꾸어 놓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수혜(?)를 입어서 저도 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학의 대중화는 신분 상승의 기회를 넓혀 준 계기가 되었고, 이것은 동시에 사교육의 대표격인 입시 학원을 활성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교육 폐해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는 대학 입시 전형의 다양화로 대학 입학이 조금 더 쉬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꼭 공부를 잘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특기가 있다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오로지 공부를 잘 해야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던 것에 비하면 그렇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학이 졸업하기 쉽다고 하셨는데, 졸업하기가 이전에 비해서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일단 졸업 이수 학점이 대체로 좀 높아졌고, 설렁설렁해서 졸업할 수 있는 조건이 못됩니다.

한 학기에 18학점 정도 듣는 것은 그나마 적게 듣는 것입니다. 보통 20학점씩 정도를 들어야 합니다.

거기다가 학점이 나쁜 과목은 삭제시키고 다시 그 과목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18학점 정도 듣는다면 레포트에다가 뭐에다가 일주일에 3일은 밤을 새워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점이 잘 나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평균이 그렇다는 거지요.

거기다가 토익 점수가 보통 750점 이상이어야 한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 제가 공부할 때와 비교해 보면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지금으로서도 입학은 예전에 비해 쉬워졌지만, 졸업은 훨씬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의 문제는 대학 입학을 쉽게 하고 졸업을 어렵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입시 문제는 대기업의 취직 입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대학생들의 사교육비는 고등학생의 사교육비와 맘먹거나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직에 맞는 스펙을 쌓으려면 그 스펙에 맞는 여러 학원들을 다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해외 어학 연수를 1년 정도 다녀 오려면 1,500만원 정도 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교육비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대학입시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학 입학을 쉽게 하고 졸업을 어렵게 한다고 해서 이것이 대학입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입시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대학이 얼마나 자본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느냐>, 즉 <대학생들이 얼마나 정치세력화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정치 세력화를 위한 첫걸음은 바로 대학생들 자신이 스스로를 정치세력화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의 확보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유시간 확보 투쟁은 한 학교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투쟁이고, 오히려 전국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대정부 정치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서 대학생들은 자신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할 수 있는 실전활동(이것을 맑스는 <프락시스>라고 하더군요^^)을 활발히 펼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학은 지금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등록금을 주물럭 주물럭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입생들의 등록금을 자기 맘대로 올리다간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학입시 문제는 대학생들 자신이 자신들의 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유시간 확보 투쟁>을 통해서 자신들을 정치세력화시켜 대학을 자본에 대한 강력한 저항 교두보로 변화시킬 때 대학입시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는 것입니다.^^

대학이 중급 노동자 양성소 기관으로 전락하게 되면, 즉 자본에 종속되면 대학입시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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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투쟁에 관한 단상...

서울의 모 대학 총장이 일명 <빵장>으로 불리고 있다.

그 이유인즉슨, 그 총장이 <더 맛있는 빵을 먹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내야 한다>면서,

내년도 등록금을 2~3배 정도 올려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란다.

물론 그 이후에 해명을 했단다. <단과대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려면 등록금을 그 정도로 올려야 한다는 뜻으로 말했다>고.

뭐,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시대가 천박하니까 교육자라는 사람도 입이 경박해지고 천박해지는가부다.

맑스가 한 말이 절실하게 생각난다.

<교육자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교육자를 누가 교육을 시킬 것인가?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학생들이다.

학생들의 <힘>이 없으니까 즉흥적으로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힘이 있었다면 저런 식으로 교육자가 천박함을 드러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교육자가 천박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책임이 크다 할 수 있겠다.

 

90년대 이후로 줄기차게 대학 사회의 중요한 이슈 중이 하나가 된 것이 바로 <등록금 인상> 문제이다.

학교는 끊임없이 인상하려고 하고, 학생들은 인하하려는 저항을 계속 해 왔다.

그러나 등록금은 학교가 마음 먹은대로 계속 인상되어 왔고,

학생들의 저항은 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였다.

이러한 것은 곧 학생 운동권의 불신을 넘어서서 학생회 자체에 대한 불신,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아주 중요한 공부이자 활동인 <자치>에 대한 무관심과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제 자치는 학생들에게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그러고서는 오로지 취업, 취직만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

대학은 이제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불모의 땅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이라는 횃불이 점점 더 사그러지고 있다.

 

그러다고 하더라도 아주 절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전히 투쟁의 불씨는 남아 있다.

그 불씨가 바로 등록금 인하 투쟁이다.

지금까지의 등록금 투쟁은 대학 재단과 총장에게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니까 등록금을 인하해 달라는 식이었다고 본다.

이때 대학의 답변 역시 먹고 살기 힘드니까, 다시 말해 자꾸 물가가 오르니까 등록금을 올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 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똑같은 전제를 깔고 있는데, 누가 더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싸움의 승패를 가를 수가 있을까?

그러니 이 투쟁은 아무런 진전도 없이 지리하게 이어지는, 김 빠진 사이다와 같은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칼자루를 대학 재단이 쥐고 있으니 싸움을 오래 끌면 끌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학생들 쪽이다.

그러니 이 싸움의 승리는 결국 재단이 하게 된다.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한다고 대학 본관(행정관),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한다고 해도 학생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싸움의 승자를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싸움은 지리멸렬하게 끝나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늘 항상 투쟁의 방식은 이런 식이었음을 학생들은 보아 왔다.

학생회는 학교에 선전포고를 한 다음에 말싸움 몇 번 하고 서명을 받고는 더 이상 무엇을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것 이외의 어떤 다른 전술도 생각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학생회, 학생운동 진영의 상상력의 빈곤... 이것은 교육자의 천박함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단순히 등록금만 인하하자고 하는 투쟁은 이제 안 하느니만 못한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안 하자니 마땅히 할 사업이 없고, 하자니 이미 결판난 싸움이고, 또 학생들한테 곱지 않은 눈길을 받을 테고.

 

<등록금 투쟁은  졸업 이수 학점을 대폭 낮추는 투쟁과 결합해야 한다!>

 

먼저 등록금 투쟁은 학생들의 관심과 주체적인 참여가 있어야만 승리할 수 있다.

이 말은 아주 진부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진부하다고 생각되는 이 말 속에 진리가 있다.

진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학생들의 관심과 주체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할 수 있을까?

그것은 학생들이 현재 수준에서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만 한다.

학생들은 과중한 노동, 즉 학점을 이수해야 하는 재미 없는 공부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공부에 지쳐 있다.

그래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너무도 필요로 한다.

그들의 입에서는 <어휴~~! 힘들어!> 하는 소리가 무의식중에 흘러 나온다.

속된 말로 똥 누고 밑 닦을 틈도 없는 것이 학생들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학생들은 정말로 약간이라도 인간적인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재미 있는 대학생활을 원한다.

학기 중엔 잠도 맘 편히 실컷 자볼 수도 없다.

시험과 레포트에 치여 일주일에 삼사 일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한다.

(잠 좀 자자라는 말은 촛불시위를 당긴 여고3학년의 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대학생들 전체의 입 속에서 신음소리인 듯이 나오는 말일 것이다.)

어느 딱한 책상물림들이 한국 대학생들은 공부를 안 한다고 했던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고3보다도 더 빡빡한 생활을 하는 것이 한국의 대학생들이다.  

 

친구들과 마음 편히 영화 한편, 연극 한편 등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그러한 여유를 누리고 싶지만, 거의 대부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럴 시간에 토익 한자라도 더 공부해야 하고,

A+ 학점을 맞기 위한 공부를 한자라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어렴풋이 자기가 꿈꾸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러한 것을 할 시간이 없다.

늘 해야 하는 것의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그러다가 졸업할 때쯤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했는지도 잘 모르게 된다.

그냥 그렇게 떠밀려 대학을 떠나게 된다.

대학생들은 이러한 것을 대단히 두려워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체념하면서 받아들인다.

 

학생들의 공부라는 노동의 강도를 완화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완화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처럼!!

이러한 노동 강도의 완화 투쟁은 졸업을 위한 이수 학점을 대폭 낮추어야 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절반 이상으로 낮추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고, 인간다운 대학생활을 위한 자유시간을 쟁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유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즉 졸업 이수 학점을 절반으로 낮추는 투쟁을 어떻게 등록금 투쟁과 연결시킬 것인가?

학교 측의 경제 논리를 역이용하면 된다고 본다.

학교 측의 논리는 대체로 등록금 인상 요인이 일반적으로 물가 상승이고, 이러한 물가 상승이 인건비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국 인건비의 상승이 등록금 상승의 요인이라는 것이다(그렇지만 대학 교육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시간강사의 경우 강사료의 인상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거의 20년간 강사료의 인상율은 그간의 물가 상승율에 비하면 거의 10분의 1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이 인건비를 낮추면 등록금을 인하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졸업 이수 학점을 낮추어서 인건비를 절감하면 된다. 다시 말해서 졸업 이수 학점을 절반으로 낮춘다는 것은 그 학점에 해당하는 과목 또는 강좌를 줄인다는 것이고, 이는 곧 그 과목 또는 강좌를 담당하는 교강사를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등록금 인하 요인을 학교 측의 경제 논리를 이용하여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되었을 때 당장 생존에 지장을 받는 이는 나 같은 시간강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존 보장의 책임은 학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부 및 자본에게 있다. 그러므로 교강사들의 생존 보장은 학생들의 노동 강도 강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정부 및 자본에 대해 요구함으로써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요구 투쟁을 할 때 학생들은 기꺼이 연대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학교 측에 공을 넘겨 버리면 학교는 분명히 <졸업 이수 학점을 낮추는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 의지의 문제이다>라고 하면서 비껴가려고 할 것이다.

학교의 답은 분명히 맞는 답이다.

사실상 졸업 이수 학점 감소 문제는 개별 학교에서 투쟁할 사안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국 전체 대학생의 문제로서 정치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간답게 공부하기 위해, 즉 과도한 노동강도의 공부, 그리하여 재미 없게 된 공부의 양을 대폭 줄이기 위해 학생들 스스로 촛불시위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학생들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지난 번 촛불시위는 여고3학년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이제는 좀더 구체적이고 절실한 삶의 문제인 노동강도의 완화로서의 졸업 이수 대폭 감소를 위한 촛불시위는 대학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충분히 시작될 수 있으리라 본다.

대학 안에 갇혀 있던 대학, 외부와 소통이 단절된 대학이 아니라 사통발달의 거리 광장의 대학,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대학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거리에서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해 와서 발표하고 토론하며, 또한 서로 격려해 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스스로 대학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러한 대학 만듦은 자연스럽게 대학 안에 갇힌 대학에 대한 동맹 휴업으로 나타날 것이고, 휴학 투쟁으로 나타날 것이고, 졸업 연기 투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본은 서서히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자본은 자기 입맛대로 노동력을 공급 받을 수 없을 텐데, 졸업하는 학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대학은 더 이상 대학에 갇힌 대학이 아니라 사통발달의 광장의 대학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할 커리큘럼을 만들기 시작하고, 이 커리큘럼대로 공부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 공부한 것을 발표하고 토론하며 서로 격려해 가는 공부의 장, 축제의 장, 소통의 장, 정치의 장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러한 장은 축제라는 이름으로 열릴 것인데, 이는 기존의 축제와는 전혀 다른 학생들 스스로를 생산해 내는

생산력 발전의 축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축제는 곧 학생들 자신의 코뮌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이것은 곧 등록금 인하가 아니라 대학의 무상 교육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 대학 입시제도도 폐지될 것이고, 누구든지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대학에 올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학의 <민주주의>를 달성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좀 더 생각이 구체화되는 대로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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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할 줄 알아요?^^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날려줄 고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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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미술사 같이 공부해 보고자 해요^^.

이번 여름 방학 때는 근대서양 미술사에 관해서

스터디를 하려고 합니다.
서양 미술사를 인문학적, 특히 철학적으로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뭐, 제가 이에 관해서 잘 아는 건 아닙니다^^.

저도 잘 모르지만 같이 토론하면서 공부를 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미술관 전시회도 같이 가 볼 생각입니다.

가서 그림 감상도 하고요^^.

 

텍스트(교재) : 곰브리치(저자)의 [서양미술사](예경, 1997)

                     12장부터~

예비 모임 : 7월 15일(목) 오후 5시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1층 학생식당

 

주중에 스터디를 할지, 주말에 스터디를 하게 될지는 예비모임 때

같이 논의해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같이 공부해 볼 사람은 밑에 댓글 달아주시고, 이메일 주소 남겨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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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티드 시스터의 노래...^^

 

 

 

 

 

 

사실 이 노래는 연부를 비롯해 억압과 착취에 대항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짜증나는 일상의 더위를 나려 보내 줄 수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이 노래는 영화 <감사용>에서 나온다.^^

도넛츠(Donots)라는 그룹이 2002년에 동영상을 제작하면서 리메이크한 곡이기도 하다.

 

Twisted Sister - We're No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We've got the right to choose and

There ain't no way we'll lose it

This is our life, this is our song

우린 선택할 권리가 있고그 권리를 앗아갈 순 없지이건 우리의 인생, 우리의 노래야

 

We'll fight the powers that be just

Don't pick our destiny 'cause

You don't know us, you don't belong

우린 침묵하는 권력과 싸울거야

우리 운명을 정하려 하지마넌 우릴 몰라, 네가 있을 곳이 아냐

 

Oh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Oh you're so condescending

Your gall is never ending

We don't want nothin', not a thing from you

 넌 겸손한 척 하지만

그 뻔뻔함은 결코 끝이 없어우린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아너에게 원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Your life is trite and jaded

Boring and confiscated

If that's your best, your best won't do

닳고 낡아 빠진 네 삶따분하고 차압당한 네 인생너의 최선이 고작 그 정도라면아무리 애써도 헤어나질 못할거야

 

Oh.....................

Oh.....................

 

We're right/yeah

We're free/yeah

We'll fight/yeah

You'll see/yeah

우리는 정당해, 우리는 자유로워우리는 싸울거야, 두고 보라구

 

Oh we're not gonna take it

No,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Oh we're not gonna take it

No,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Oh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No way!

절대 안돼

 

Oh.....................

Oh.....................

 

We're right/yeah

We're free/yeah

We'll fight/yeah

You'll see/yeah

우리는 정당해, 우리는 자유로워우리는 싸울거야, 두고 보라구

 

We're not gonna take it

No, we ain't gonna take it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We're not gonna take it, no!

No, we ain't gonna take it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Just you try and make us

한번 해봐 그렇게 만들어봐

 

we're not gonna take it

Come on!

No, we ain't gonna take it

You're all worthless and weak!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Now drop and give me twenty!

We're not gonna take it

Oh crunch pin!

No, We ain't gonna take it

Oh you and your uniform!

We're not gonna take it anymore

우린 참지 않을 거야

덤벼!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

넌 약해빠진 쓰레기야!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나에게 고통을 가하겠지만 택도 없는 소리!  

틀에 박힌!

절대 받아 들일 수 없어

너와 너의 제복!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볼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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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선거가 끝났다.

선거 기간 동안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유세차량 방송이 엄청 시끄러워서였다.

별로 관심 없던 선거여서 더 그런지도 몰랐다.

나는 이번에도 투표에 참가하지 않았다.

선거에 참여하지 않아서 사표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표를 만들었다는 그런 멍청한 말은 이제 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들이 투표를 한다고 해봤자 전국적으로 기껏해야 1만표 정도였을 것이다.

1만표 얻어서 당선될 것도 아닌데...

그리고 비판적 지지해서 한명숙이라도 당선됐다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출 것인지...

 

그렇게 표 확인해서 어쩔 것인가...

진보 진영이 1만표 정도 더 얻었다는 거 확인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는가?!

전국적으로 3.4%에서 3.5%로 올라갔다고 자족하고 말 것인가?!

한명숙 등 민주당이 당선돼서 비판적 지지자들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민주당이 당신들의 정체성이라는 환상에 젖어봤자,

민주당이 당신들의 정체성이 될 리도 만무하거니와

자신의 모든 정치적 생존을 민주당에 모두 맡기는 멍청한 짓을 한다고 생각해 보지 않으셨는지...

그러니까 표 갈라먹었다고 민주당한테 욕을 얻어 먹는 상황을 자초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근본적으로 하나 물어보고 싶다.

도대체 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인가?!

우리는 먼저 이것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선거 때가 오니까 선거에 참여한다는 관성에 의한 것인가?!

당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인가?!

진보진영인 우리가 있음을 알려리려고?!

그건 평소에 하여야 하는 일 아닌가?!

왜 하필 선거 때만 되면 알리지 못해서 그러는가?!

몇 표인지 확인해 보려고?!

 

이건 아니잖아~~~...

그렇지 않은가?!

 

이명박 뽑았다고, 한나라당 뽑았다고

대중들 욕할 필요도 없고,

사실 그럴 욕할 자격도 없는 게 사실이다.

이번에는 한나라당 뽑지 않고 민주당 뽑았다고

대중들 칭찬할 건가, 대중의 의식이 높아졌다고?

 

어떤 선거이던지 선거에 참여하려면

뭔가 보여줄 만한 능력이나 실제 행하고 있는 대안들을 제시해야 한다.

대중들은 '소박한' 유물론자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험론자들이라 뭔가 보여 주어야 한다.

진보 진영 스스로가 뭔가 대안을 실험하고 있으며 그 성과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대중들은 부르주아 정치 공간에서 진보 진영이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진보 진영이 늘 부르주아 정치 공간 안에서 부르주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항상 부르주아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놈한테 직접 요구하는 것이 빠른가,

아니면 제3자(그렇다고 이 3자가 부르주아 하고 아주 친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고,

미운털이 박혀도 단단히 박혀 있는 3자다)를 통해 요구하는 것이 빠른가?! 

대중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직접적인 요구를 하는 쪽이 빠르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성향이 극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재작년에 나타난 촛불 시위 현상이고, 

이번 선거에 민주당에게 표를 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선거가 끝났다. 

민주당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고, 그 속에서 어떤 떡고물을 찾을 것이냐 하는 것에, 

그리고 심상정이나 노회찬의 정치노선이 어떻다라는 것에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 

이미 예견했던 일이 나타난 것이고, 이미 선거 과정과 그 결과를 통해서 그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죽은 자식 뭐 만지기'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스스로 우리가 내걸었던 구호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러한 구호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개별적인 노동자들이 자본이 주는 개별적인 임금을 통해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토대가 될 수 있는 모든 물질적 조건들을 공동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인프라의 구축을 자본에게 청원해 봤자 자본은 콧방귀도 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자본의 투쟁(이 투쟁은 수동적인 청원의 의미가 아니라 빼앗긴 우리의 것을

우리가 되찾아오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투쟁이다)을 벌여서 그 물적 토대를 다져야 한다.

그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최선봉의 투쟁이 바로 노동자 계급의 임금, 단체 협상 투쟁이다.

이러한 투쟁은 개별 노동자들의 임금을 몇 %인상한다거나,

이와 밀접하게 관련하여 개별적인 노동조합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즉 개별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 스스로 대안을 마련하고 실험하면서 현실화시켜 나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신뢰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대중의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대중의 신뢰를 받게 되면, 

이제 대중은 이 실천활동에 죽극적이고도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바꿔 나갈 때 우리의 정치적 힘이 생성, 증대되며 

그럴 때 선거가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이제 6월에 민노총 총파업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이 총파업을 우리의 공동 삶을 현실화시키는 디딤돌로 만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인 민노총에게 정당하고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무늬만 총파업을 하지 말고,

우리 공동 삶을 위한 하나의 디딤돌로 총파업을 실시하자고 말이다.

우리에겐 우리 공동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가와 관련하여 진보 블로그들이 모여

토론하고 그 토론의 결과를 민노총에게 전달하고,

민노총을 견인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진보넷이 이러한 토론회를 마련해 봤으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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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에 관하여...쫑알쫑알...

요즘 선거로 대(?)한민국이 난리부르스가 아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둥 하면서 북풍으로 선거라는 배를 당선의 항구로 향하게

하려는 '당나라 당'의 '사대강 삽질'의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거기에 야권을 비롯한 진보 일부 세력들이 여전히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이라는 망령을 등에 업고

'반엠비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모양이다.

결국 될 놈을 밀어주자라는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의 망령은 우리의 의식을 갉아먹고서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 빼 놓고는 아무 생각 없는 '좀비'를 만드려고 하고 있다.

국민을 좀비로 만드려고 한다는 점에서 엠비나 반엠비나 '초록은 동색'이다.

 

뭐, 나란 인간은 90년 초반부터 투표 행위에 일체 참여를 하지 않았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둥, 사표를 만든다는 둥 하면서 힐난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아 살 물건이 없으면 사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맘에 들지 않아 투표를 하지 않았다. 

누구 좋으라고 투표하냐!!! 

그런데도 투표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파쇼의 논리일 뿐이다! 

 

그래서 이번 선거도 시큰둥이다... 

한명숙을 찍던, 오세훈을 찍던, 노회찬을 찍던 찍는 사람 마음 아니겠나... 

근데 이번에도 난 찍을 사람 없어 안 찍을란다. 

 

교육감 선거도 있는 모양이다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교육과 관련해서 쫑알쫑알대기로 했으니 쫑알대보기로 하겠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교육과 관련한 커다란 두 개의 문제는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가(이것은 공교육의 위기로 일컬어지곤 한다)와

이에 맞선 공교육의 강화이라고 본다.

이 두 문제는 다음과 같은 위치를 점한다.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가의 반대는 공교육의 강화이다. 

그런데 정말 이 둘은 동시에 양립할 수 없는 모순적인 것인가?

그런데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 둘은 딜레마를 구성하는 쌍생아일 뿐이다.

어느 한 쪽을 택해도 교육문제는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즉 적대적인 무한 경쟁 이데올로기에 저당 잡힌 세대들을 계속해서 길러낸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비판적 지지와 현실성이라는 망령이 판을 치게 만드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먼저 공교육과 관련해서 이야기해 보자.

공교육의 대표적인 기관은 일선 학교이다.

그러므로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은 학교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학교 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가?

그것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시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열심히 시킨다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공부를 열심히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곧 대학입시라는 무한 적대적인 경쟁에서 살아 남아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입시는 어떻게 치루어지는가?

대학입시는 곧 적대 경쟁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 경재에서 살아 남는 자와 도태되는 자를 가르는 기준은

양적인 기준이 되는데,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양적인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단시간 내에 많은 상품을 생산하여 최대 이익을 뽑아 내야 살아 남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양적인 시스템은 누가 더 많이 짧은 시간 내에 단편적 지식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을 빠른 시간 안에 떠올릴 수 있는가이다.

이는 텔레비전의 퀴즈프로그램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학교 선생님들은 주어진 시간 내에 많은 단편적 지식들을 학생들 머리 속에 꾸겨 넣어야 하고, 

그 꾸겨 넣은 기억들을 단시간내에 떠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그러니 학교 선생님들은 이것 외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수도 업고 신경 써서도 안 된다는 논리가 도출된다. 

학교 선생님들은 이런 일 외에 노조 활동 등의 여타 정치적 활동 등을 해서는 안 되며,

수업 시간에 쓸데없이 이념 교육이니, 통일 교육이니 시가 어떻고 문학이 어떻고 예술이 어떻고 하는, 

대학입시와 하등 관계가 없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전교조 선생님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징계를 하고, 퇴출시키겠다는 협박을 하며, 

심지어는 무슨 연구기관에서 전교조 선생님이 많은 학교에서 대학입시 모의고사 성적이 낮게 

나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뉴스를 통해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럼 아이들은 어떤가? 

아이들 역시도 이런 시스템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공정택이 초등학교 때부터 일제고사를 실시한다는 것도 공교육의 강화 차원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공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일제고사를 보게 되면 아이들은 또 시험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시험을 잘 봐야 하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는 즉 무한한 적대적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사교육의 대표적인 장소인 학원에서 11시 12시가 다되도록 파김치가 된다. 

학교에 학원에 아이들은 시들어간다. 

재작년에 여고생 3학년들이 잠 좀 자자고 촛불을 들고 나온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공교육을 강화시키게 되면 정말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잘 들어가게 될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공교육의 강화는 결국 사교육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한 적대적 시스템인 대학입시에서 살아 남으려면, 

남보다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단편적 지식을 꾸겨 넣어야 한다. 

아무리 학교에서 빡세게 한들 어차피 정해진 경쟁 내에서는 누가 잠을 더 안 자고, 

누가 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며, 누가 더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더 많은 단편적 지식을 꾸겨 넣을 수 있다. 

그러니까 공교육을 강화시키면 시킬수록 공교육은 황폐되며, 

사교육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교육 시스템이며, 

현재 우리의 교육 시스템이다. 

 

제도권 교육, 아니 자본 계급의 교육 시스템에서 두 개의 축인 공교육과 사교육은 

상호 대립적이지만 상호 보완적이면서 통일적인 것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답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당면한 딜레마 상황인 것이다. 

오죽 했으면 진보넷 블로거 중 한 명께서 자식 교육을 포기하겠다고 하셨겠는가!!! 

 

우리의 대안을 공교육으로 잡는다면, 

우리는 무한 적대 경쟁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우리의 무능력에 다름 아니다. 

진보 운동의 위기가 왜 생겨나겠는가? 

유치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학교 교육에서 

무한 적대적 경쟁 속에서 살아 남는 법만 배운 젊은이들이, 

그리고 돈 버는 외의 활동을 다 쓸데없는 활동이라는 생각을 생활 속에서 체득한 

젊은이들이 어떻게 살지는 뻔할 뻔자이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데올로기... 

이것이 슬프지만 오늘날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이데올로기이다. 

딱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고 느낄 때만 움직이며, 그 위협이 잠시 사그라든다고 생각하든가 

그런 움직임이 생존에 더 위협을 준다고 느끼면 얄짤없이 스톱 앤 고우 백이다! 

 

그러면 교육에 있어서 우리의 대안은 무엇이겠는가? 

이 대한민국 땅에서 사교육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저 꼴통 보수인 당나라 당도 공교육 강화를 외치고 있다.

공교육은 진보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공교육은 자본의 측면에서 볼 때의 공교육이기기 때문이다.

 

대안은 공교육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교육인데, 이는 곧 여성, 장애인, 소수자 인권 등의 소수자 교육이다.

우리는 이러한 교육을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며 현실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공교육, 사교육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마도 이러한 계급 교육, 소수자 교육을 사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본의 생산을 위한 영역에서의 사교육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고민 없이 사교육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런 계급 교육을 위한 준비를 하고 그러한 교육을 시행하지 않으면,

우리 진보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계급 교육, 소수자 교육은 현재 수준에서는 제도권에서는 실시될 수도 없고,

실시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교육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하는 교육,

대다수의 민중들에게 현실적인 대안 교육이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의 요체는 자기 비판(이것을 북한 식의 자아비판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내탓이오'와도 동일시해선 안 된다.

이 자기 비판은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질적으로 구별시켜 주는 계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만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의미를 가진다)과

이 비판을 바탕으로 하는 '산파술'로서의 상호토론이어야 한다.

이것은 맑스가 [포이에르바하 테제] 3에서 <교육은 그 환경 뿐만 아니라 교육자 그 자신도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한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삶 속에서 체화되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금의 학교에서처럼 교과서를 가지고서 주입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고,

오로지 일상의 삶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상의 삶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무한 적대적인 경쟁 시스템이라는 일상의 삶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코뮌>에서의 일상적인 삶이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숨쉬며 맘껏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 가고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코뮌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동시에 이런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속에서 우리 자신 역시도 코뮌을 형성해 나갈 수 있다.

이 코뮌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각기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인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물적 토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곧 계급투쟁이며, 소수자 투쟁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물적 토대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이러한 물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출발점은 노동자 계급의 임,단투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임금 투쟁, 단체협상 투쟁을 단순히 경제투쟁, 개량적 투쟁의 시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이러한 투쟁을 코뮌이라는 진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투쟁의 서막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현재 이러한 투쟁이 개량적 투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개별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라는 측면에서만 고찰되고 실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립적이고 개별화된 임금 노동자의 임금 보전과 인상이라는 측면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노동자의 기본 소득 보장에 대한 논의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러한 투쟁은 개별 노동자의 임금 인상 수준에서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와 민중 전체를 위한 수준에서 논의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투쟁 속에서 자본에게 착취 당했던 부분을 되찾아 개별적인 노동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민중 전체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코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기본적으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먼저 자연 친화적인 우리 농산물의 공급은 농민회와 연대하면 된다. 

농민회와 민주노총 사이의 직거래를 하면 된다. 

필요한 만큼 주문을 받아서 농민회는 필요한 만큼 농사를 지면 된다. 

여력이 된다면 농민회 차원에서 주말 농장 같은 것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직접 흙을 만지고 농사를 짓는 수업을 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재원은 물론 민주노총 차원에서, 아니면 지역 노총 차원에서 

대자본 임단투 투쟁을 통해 마련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아이들을 자본의 교육 영역(제도권 교육)으로 완전히 넘겨서 방치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방과 후에 자신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간은 다양하게 쓰일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을 일단 지역 차원에서 하나씩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마련하는 방식은 임단투 투쟁을 통해서 얻은 재원을 가지고,

노동 계급 스스로가 짓거나 임대하면 된다.

이 재원이 어떻게 쓰이는지와 관련하여 자본의 간섭을 단협을 통해 완전히 배제해 버린다.

마련된 건물에 아이들의 공부방, 문화시설, 식당, 놀이방, 토론회 장소, 휴식 공간 등을 마련한다.

아이들은 이 공간 속에서 자신들의 코뮌을 형성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지원책을 요구하고 스스로 집행해 나가는 학습을 한다.

물론 이러한 학습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제도권 교육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 교육 대신 스스로의 교육을 통해 자신의 삶을 꾸려 갈 것인가의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한 선택을 통해서 부수적으로 군 입대를 하지 않을 수 있고,

이는 곧 전쟁 반대의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의무 교육인 중학교만 마치면,

내가 알기로는 군대에 가지 않고, 공익 요원과 같은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데,

그 봉사활동 기관은 곧 자신이 학습했던 코뮌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건물 확보가 당장 모든 지역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경우에 과도기적으로 대학을 거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의 학생운동의 방향은 새로운 인간의 생산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운동은 합법적으로 봉사 동아리의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봉사 동아리의 형태는 학생 대중들과의 연계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대학 내에서 방과 후에 아이들이 같이 먹고 같이 놀며 같이 공부하면서

또한 자신들의 코뮌을 형성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부수적으로 파업 파괴에 아이들이 이용되지 않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인간의 생산은 기존의 노동운동에 새로운 자극제가 될 것이며,

노동운동의 새로운 변태(허물 벗음), 새로운 변혁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노동자들은 자기 가족들 때문에, 아이들 때문에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 자신의 조직을 버릴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그러한 부모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아이들은 그러한 부모를 격려, 비판하면서 함께 싸우는 동지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새로운 교육, 비제도권 교육으로서의 계급 교육은 공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한 교육 속에서 노동자들은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

다시 말하자면 <계급>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자본과의 한판 싸움을 위해서, 즉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위한 투쟁의 수단으로서 의식적으로 <임금 노동자>가 되거나,

아니면 우리의 코뮌을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노동자>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그들 스스로의 관계, 즉 코뮌 속에서 풀어나가게 되면,

우리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의 하나인 가족 이데올로기에 매몰될 필요도 없거니와,

우리 아이들에게 온통 신경이 팔려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억압적 삶을

살 필요가 없게 된다.

이 속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가족 내에서의 위계적 관계가 아니라,

코뮌-코뮌 구성원으로서의 동등하고 민주적인 관계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각자가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렇게 자유로운 개인들이 서로 연대하는 공산주의 삶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각기 자유로운 개인들이 연대하는 사회>인 공산주의 사회의 실현이라는

우리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떻게?

우리의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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