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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9/02/04
    못 생긴 건 누구의 죄냐! (5)
    곰탱이
  2. 2009/02/03
    그냥 좋아서...^^ (3)
    곰탱이
  3. 2009/01/31
    달리기...
    곰탱이
  4. 2009/01/27
    설 연휴 잘 지내셨나요?^^ (4)
    곰탱이
  5. 2009/01/23
    용산 철거민 살인 진압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웹자보, 펌) (4)
    곰탱이
  6. 2009/01/16
    멍... (3)
    곰탱이
  7. 2009/01/13
    겨울 숲에서.
    곰탱이
  8. 2009/01/09
    좋은 친구를 다시 찾기 위하여... (2)
    곰탱이
  9. 2009/01/03
    2009년 토정비결^^ - 대체로 무난함^^(2)
    곰탱이
  10. 2009/01/03
    목로주점^^... [펌-네이버 블로그 산사랑]
    곰탱이

주절주절...

0.

어젯밤에 꿈을 꾸었는데, 전두환이 잡혀 가는 꿈을 꾸었다.

머리가 전두화처럼 훌러덩 까진 별 넷 장성이 직접 전두환을 호송해 가는 꿈...

그 호송하는 차량 맨 뒷좌석에 나도 타고 있었다는...

근데 난 잡혀 가는 게 아니라 기자처럼 관찰자 정도인 것처럼 보였다는... 

 

근데 이 이야기는 왜 쓰고 있을까...

시어머니도 몰라, 며느리도 몰라...

 

0.

요즘 학교에서 운동을 하는데,

갑자기 왜 운동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운동하는 게 무슨 수련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옛날 소림사의 스님들이 무예를 닦으면서 수련을 하듯이...

그 스님들이 수련을 하는 것은 아마도 잡 상념들을 모두 비워버리고

그 비워둔 곳에 열반의 도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능...

(이거 완전히 조지콩 님의 글쓰기 스타일로 되어가고 있다능...)

 

그것처럼 잡생각이 많은 나로서는 잡생각이 들면

일단 증오와 적개심이 타오르는지라...

그러한 증오과 적개심을 사그라트리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운동을 해서 숨을 고르는 데만 신경 쓰도록 하는 것처럼 생각이 들었다는...

그 증오와 적개심이 가득찬 잡생각을 비우고,

거기에 충만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 넣을 수만 있다면...

 

이제 스님들처럼 아예 머리를 밀어볼까...

근데 두상이 안 예뻐서 머리 미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폐를 끼칠 것 같은...

그로 울 여친께서 가만 안 둘 것이고...

울 엄니도 가만 안 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찰 것이고...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별로 머리를 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능^^...ㅋㅋ...

 

0.

요즘도 계속 졸린다.

잠을 7시간 이상 못 자는 날엔 짤 없다.

그렇다고 7시간 이상을 자면 졸음이 안 오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조는 정도가 좀 야갈 뿐이다.

난 보통 1시 반에서 2시에 잔다.

늦으면 4시에 잘 때도 있다.

일어나는 것은 보통 8시인데,

아침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은 짤 없이 6시 반에 일나야 한다.

왜냐하면 하도 곰탱이처럼 행동이 느릿느릿하기 때문이다.

(이것 때매 군대에서 고생 많이 했다!)

 

7시간 이상 못 자면,

학교 오자마자 10분도 안 돼서 30분 이상 졸아주셔야

점심 먹기 전까지 쫌 가준다.

그러다가 점심 먹고 와서 또 10분도 안 돼서 40분 이상 졸아주셔야

운동 가기(4시 반)전후까지 쫌 가준다.

운동 끝나고 저녁을 먹고 와서 또 10분도 안 돼 20분 정도 졸아주셔야

집에 갈 때까지 쫌 살아주신다.

 

문제는 테레비다!

테레비를 안 봐 주셔야 덜 졸 텐데...

집에만 갔다 하면 테레비부터 켜 놓는다.

테레비 안 켜 놓으면 쫌 뭐랄까 적막강산이다.

적막강산, 이거 이거 안 겪어본 사람들은 모른다.

얼마나 거시기한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날이 좀 더 쌀쌀해지면 덜 졸래나...

테레비를 확 끊어버릴까...

그러면 위약금 물어야 한다...

3년 약정으로 할인 요금 내는데,

아직 2년도 채 안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막강산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ㅋㅋ...

 

몰라! 배째!

 

이상 주저리 주저리 뉴스였심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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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이론의 발전과 사회주의 페미니즘 7

4. 전략에 관해 몇 가지 주목할 것

 

 

앞서 논의했던 모든 것들은 혁명 전략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첫째, 잠재적으로 혁명적인 프롤레타리아트와 관련하여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개념들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목적을 위한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둘째, 고전 맑스주의에 의해 규정된 잠재적인 것이 과연 앞으로 미국에서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 몇 가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그리고 이론과 전략의 발전이 상호 연관되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할지라도, 나는 그것들을 어느 정도 분리된 행위들로 본다. 이론을 통해 당신은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전략은 그 가능성들로부터 나타난다.

 

이런 논의는 사회주의 페미니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지만 그 이론의 전략에 관한 몇 가지 논의들을 발전시키기가 다소 망설여진다. 전략은 앞으로 이론을 사용하려는 시도들로부터 완전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누군가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이론 논의들로부터 추상적으로 전략을 규정하려고 할 때, 현재 존재하고 있는 혁명적 전략들을 현실에 강제로 적용하고자 하는 경향은 너무나 크다. 현재 존재하는 혁명 정식들은 혁명적 변화를 구성하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한하고 왜곡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전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전략이 가지고 있는 중요성은 그 전략이 생산, 재생산, 소비의 영역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일상적인 투쟁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점이다. 혁명적 의식의 잠재성은 여성들이 집과 일터 양쪽에서 착취 당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타난다. 여성들은 현재 노동력 부문에서 저임금으로 일을 하고 있고 무보수로 가족 체계를 유지시키고 있다. 이것은 의식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이다. 여성들은 정치적 행위를 조직할 필요가 있으며 여성 억압이 자본주의 노동 분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관해 이해하는 것을 토대로 자신들의 억압에 대한 정치적 의식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Nancy Hartsock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페미니즘의 힘은 일상의 삶과 부닥치는 데서 나온다. 현대 페미니즘의 의미는 일상의 삶을 이해함으로써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분석 방식을 다시금 만들어 내는 것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그 누군가의 일상적 삶(whose everyday life; 여성의-옮긴이)에 대해 물어야 한다. 여성들의 일상적인 삶들 사이에는 현실적인 차이들이 있지만, 또한 계급과 교차하는 구성 방식의 토대(a basis for cross-class organizing)를 제공하는 접촉 지점이 있다. 그 현실적인 차이들이 인정될 수밖에 없지만 (그리고 정치적 우선권이 주어지지만), 페미니즘의 투쟁은 가부장제에서 여성들이 공유하는 특별한 역할로부터 나타나는 공통성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는 처음에 급진적 페미니스트였다. 그들의 여성으로서 그들의 억압을 느꼈고, 그런 후에 그들이 이런 억압 체계에서 자본주의의 역할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또한 그들은 사회주의에 전념하게 되었다. 비슷하게, 점점 더 많은 가사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상적인 삶이 아주 거대한 체계의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집(가정)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그들이 전문직이건 비전문직이건 간에, 경쟁력 있는 어머니와 가정 보호자가 되라는 압력과 근심을 견디며 살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이중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자 좌파들(Male leftists)과 여성 사회주의자들은 종종 여성이 집안에 격리되어 있고 그녀 남편의 계급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결코 조직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여성 사이의 계급 갈등 때문에 계급과 교차하는 구성하는 방식이 모든 점에서 가능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유산, 건강관리, 강간, 아이 돌봄과 같은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능하다. 우리가 우리의 계급 차이들을 의식적으로 다루고 그 차이들을 무시하는 대신에 그 차이들에 우선성을 부여할 때, 계급과 교차하는 구성 방식은 진지하게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동시에 여성들의 삶은 기존의 가부장제적 통제와 매우 비슷하다. 바로 우리는 이것이 어떻게 잘 작동하는지 좀 더 잘 알 필요가 있고 그럼으로써 이것과 관련하여 우리의 정치적 행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모든 여성을 움직일 수 있는 전략은 결코 시도된 적이 없다. 이런 전략의 실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삶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게 될 때 (전략 실행의-옮긴이) 시작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 끝 -

 

** 다음에는 같은 논문 모음집에 있는 하이디 하르트만(Heidi Hartmann)의 논문 [자본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Capitalism, Patriarchy, and Job Segregation by Sex)을 해석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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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졸릴까...

봄도 아닌데,

무척 졸린다.

특히 이젠 낮에(어떤 때는 아침, 저녁으로도) 조금씩 책상에 엎드려 있지 않으면

컨디션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다...

(네가 운동 선수냐! 컨디션 어쩌구 저쩌구 하게! ㅋㅋ)

 

지난 학기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번 학기 들어와서는 정말 심해졌다...

운동을 새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할 일은 많은 것 같은데,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자꾸 졸음이 쏟아지니 짜증이 살살 난다.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서 그런가?^^

고삐를 조금 죄는 것도 마음을 조급하게 먹는다고 자기 핑계를 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날 좋은 가을날에 건물 안에 처박혀 있으려니,

살짝 부아가 난다...

이 좋은 날 훌훌 털고서 떠나지 못하고 건물 안에 처박혀 있는 것일까!^^

가까운 산에라도 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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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1. 개강이구나...

근데 아무 생각이 없구나...

불교에서 말하는 무심(無心)이거나 무념무상(無念無想)이랑은

쫌 거리가 먼 것 같고...

대체 뭘까...

이 마음의 상태는...

도대체 넌 누구냐!

 

2. 그리고 한 달 이상 입었던 반바지며, 샌들과는 이제 헤어질 시간이구나...

반바지야 안녕!

샌들아 안녕!

무엇인가를 보내고 무엇인가를 맞이한다는 건

아주 소소한 일상인데도,

뭔가 짠한 느낌이 드는구나...

 

3. 어제로 여름방학 과학사 스터디가 끝났다...

마지막까지 참여한 사람은 나까지 3명...

마지막 기념이라고 소주 한잔 하렸더니,

다들 바쁘다고 밥만 먹고 갔다...

밥 안 먹고 간다는 걸 억지로 우겨서

밥 같이 먹고 보냈다...

뭔가 허전한 느낌...

 

4. 아...

그러고 보니 생활도서관도 오늘 내일 부로 못 나오겠구나...

그리고 중앙 도서관으로 옮겨가야 하는구나.

 

5. 오늘 울 엄니께서 시집오실 때 십자수를 놓았던 작품(?!)을

핸펀으로 찍어와서 소개하려고 했는데,

핸펀과 컴을 연결해 주는 선이 없어서 올리지 못하고 있다.

울 엄니 솜씨 하나는 정말 끝내주더라...

너무 예쁘더라...

고건 내 보물로 아무도 못 가져가게 해야지^^...

울 엄니의 시집올 당시의 솜씨를 오늘 처음 보았다...

시집 오시기 전에는 온 동네 제문(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조침문 같은)을 다 쓰셨다더라...

제일 큰 외숙모께서 마음이 헛헛하시면 그 제문을 꺼내 읽으시면서 눈물을 흘리신다더라...

그 제문도 찾아와서 내 보물로 만들어야 하는데...

울 엄니께서 요즘 태어나셨더라면 아마도 작가가 되셨으리라... 

나를 낳고서 나를 글 쓰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당신이 못 이루신 꿈을 나를 통해 이루려고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근데 나는 글 쓰는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 

울 엄니의 꿈은 물 건너 간 것이리라... 

참으로 불효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재주가 없는 걸 어쩌랴...^^... 

어무이! 용서하시소! ^^ 

 

6. 내 정신아!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모든 것을 용서할(?) 터이니, 

그리고 아무 것도 묻지 않을 터이니 

제발 돌아오거라... 

 

** 누구든지 나의 정신을 봤다고 제보하거나, 

찾아 주는 분께 후사하겠습니다!!! 

 

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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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아이들이 아프다던데 2...

곰탱이님의 [쌍용차 아이들이 아프다던데... ] 에 관련된 글.

 

 

3.

 

우리가 생산해야 할 진지의 거점은 현실적으로 일단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 생산 장소로서의 지역적인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까지 대학은 모든 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였으며, 모든 운동 인자들을 생산하던 생산기지 역할을 하였다. 현재도 미약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활동가들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그러한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고 또한 살려야 한다. 총연맹이나 산별 연맹 등의 노조 중심적인 체계는 새로운 생산력으로서의 노동계급 생산 기지 역할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 체계는 자본과 직접적으로 격돌하여 싸우는 전장이기 때문이다.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이 행정 단위 구역으로 거의 조직되어 있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설령 조직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새로운 세대의 노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장소, 즉 예를 들면 노동회관 같은 자치의 장소가 확보되어 있지 못함으로써 새로운 생산력을 생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은 대체로 행정 구역 단위로 분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행정구역상 가까운 지역의 대학으로 아이들을 보낼 수 있다. 그리하여 이 대학에서 같은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서로 모여서 대학생 언니, 형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들의 자치조직을 꾸려 가면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예를 들어 쌍용차 아이들이 우울증을 겪거나 학교에서 이른바 왕따를 당하는 것 등에 의해서 고통과 아픔을 잘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노동계급으로서의 부모님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또한 이에 따라서 노동자들이 단사의 노조를 통해서 조직되기도 하지만 지역을 통해 서로 다른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이 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문제와 관련하여 다른 노동자들과, 대학생들 사이의 협의와 연대를 통해 모든 문제를 개인 스스로 고민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이고 사회적으로 풀어가는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부모들도 새로운 노동력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고립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역운동을 지역의 노조 중심으로 풀어나가려는 움직임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둘째, 대학 학생 운동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학 학생 운동 방향은 대체로 노동운동과 직접 결합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 있을 때 노동자 계급투쟁에 대한 소양을 넓히고, 노동자 집회에 참가하며, 노동자들의 투쟁 일정에 따라 학생운동의 사업 방향을 정하고 집행한다. 그런 과정을 다 거치고 난 후 졸업하게 되면 노조의 상근자, 또는 활동가로 진출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학생 운동 활동가들의 기본적인 진로 경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학생운동을 하겠다는 학생도 소수이지만, 졸업이 다가오면 대다수는 이 운동과정에서 이탈하여 개인의 생존을 위해 취업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현상은 학생운동을 고립화시키는 것이며, 대학생 대중의 힘을 극도로 약화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대학생 대중들로 하여금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도록 한다.

대학을 거점으로 하는 새로운 생산력의 생산은 학생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대학생 도우미(대학학생운동 활동가)들을 일단 봉사 동아리 형태로 활동하도록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대학생 도우미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동아리 형태로 확보한다. 그 공간 속에서 아이들의 교육과 학습, 취미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펼쳐 나간다. 이후에 각 단과대 학생회와 총학생회 안에 대회 협력부를 만들고 그 대외 협력부가 총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 아이들과 관련된 여러 층위의 계급운동, 그리고 진보 운동과 연관한 사업을 공공연맹의 각 지부 또는 각 노조와 연대하는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좀더 힘 있는 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에 종속된 하위 운동이 아니라 지역의 코뮌 건설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학은 대학생들과 새로운 세대의 연대와 소통, 그리고 이러한 연대와 소통을 바탕으로 하는 각 코뮌 단위들의 연대와 소통의 광장 역할을 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의 아이들은 자신들의 코뮌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 나이별, 학습별, 취미별의 여러 자치 활동 등으로 코뮌을 형성할 수 있으며, 어느 한 코뮌에만 속하지 않고 여러 코뮌에 속하게 된다. 이 코뮌은 그 어떤 누구에게도 간섭받거나 억압 받을 수 없다. 대학생 언니, 형 들의 코뮌은 노동계급 아이들 코뮌에 대한 대화 상대자이자 도우미 역할을 한다. 서로가 각자의 코뮌을 구성하고 운영해 나가되, 각각의 코뮌이 어떤 방식으로 자유로이 결합하고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 서로 각자의 의견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단지 대학생과 아이들의 코뮌뿐만 아니라 이들을 지원해야 하는 아이들의 부모와 지역 노조 등이 모인 대회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렇게 모이고 가르는 광장의 관계를 통해서 노동계급 아이들은 분업적인 인간이 아니라 총체적이면서도 다양한 차이를 이해하는 비판적 인간으로 자신을 매순간 새롭게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대학은 일상적으로 대학의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강사와 교수들 그리고 노동계급 활동가들 사이의 관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하여 교육 프로그램의 방향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에 대해서 서로 논의하고 협의해 나갈 수 있는 연대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 이러한 연대의 장을 통해 노동계급 아이들은 이론과 실천 사이의 통일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존 노동계급(아이들의 부모들) 또한 자신의 생산력을 새롭게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을 새롭게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4. 

 

새로운 생산력의 증대는 노동자 계급인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개별적 개인으로서 각 노동자의 단순한 임금 인상으로는 절대로 새로운 생산력을 생산, 증대시킬 수 없다. 그러한 임금 인상분은 자본에 적합한 인간을 재생산하는 비용으로 소비되어서 결국은 자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계급의 임금투쟁은 새로운 생산력 생산을 위한 진지 건설을 위한 것이어야 하겠다. 그럴 때 노동자는 고립적으로 투쟁하다 패배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이 아프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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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아이들이 아프다던데...

앙겔부처님의 [쌍용 자동차 아이들이 아프다] 에 관련된 글.

얼마 전에 파업을 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아이들이 많이 아프단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학교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이번 파업 때뿐이겠는가!

이전에 많은 파업이 있었고, 그 파업한 노동자의 아이들이 비슷하게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 아이들 중에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된 아이들과 아직 많이 아픈 아이들은 노동자의 파업을 어떻게 생각하며, 파업을 하였던 부모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모진 학대를 당하고 있는 또는 이미 당했던 아이들은 노동자인 부모의 파업을 기피해야 할 공포의 대상, 반드시 없애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정신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그 상처로 인하여 세상을 자본가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 자신의 인권을 포기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만일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면 새로운 세상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생산력의 증대, 다시 말해서 새로운 인간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일이 필요하고 아주 시급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1.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의 갈등과 모순이 눈에 띄게 드러날 때, 노동계급은 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파업투쟁을 택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노동계급 전체의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파업투쟁을 선언하고 투쟁에 돌입하더라도 자본계급은 거의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파업투쟁의 수위가 높아갈수록 불안해 하는 것은 자본계급이 아니라 노동계급이다. 그리고 옥쇄투쟁을 벌이고는 그 투쟁의 보람과 성과도 없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는 형태로 패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본계급은 자신의 도구인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그 투쟁을 고립시키는 것으로 싸움을 결말짓는다. 그러면서 노동계급인 우리는 늘 패배한 싸움을 안타까워하고 자본계급을 비난해 보지만 대체로 허탈해 한다. 이것이 우리가 늘 보아온 싸움의 과정과 결말이다.

우리의 노동계급 투쟁은 늘 패배한다. 물론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경우(이것도 거의 가뭄에 콩 나듯이 한다)도 있지만 전체적인 전선에서는 늘 밀리면서 패배를 하게 된다. 어떤 우리 노동계급 자신의 혁명적 변화 없이는 우리는 늘 패배할 것이다, 아니 패배한다. 우리 노동계급은 십중팔구 패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이 현실적인 조건들은 무엇일까? 이 현실적인 조건들을 따지기 전에 먼저 도대체 무엇이 패배이고 승리의 의미인지를 따져봄으로써 이 현실적인 조건들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자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경우는 대단히 어려워 보인다. 순수하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경우는 아주 드물며,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경우를 막는 것만으로도 승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현상유지를 하는 경우를 승리라고 대부분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승리도 아주 쉽지 않은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현재의 상황에서 최대 승리라고 생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전술적 의미에서 승리이다. 다시 말하자면 전체 계급투쟁 전선에서 보자면 정규직 쟁취 투쟁은 하나의 회전(전투)에 불과하다. 계급투쟁의 최종 목적은 자본주의를 지양하고 대체할 수 있는 노동해방, 인간해방의 새로운 사회, 즉 공산주의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최종 목적이 현실화되어 갈 때 비로소 우리 노동계급은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죄종 목적의 현실화라는 승리와 연관되지 않는, 연관될 수 없는, 또는 연관시키지 못하는 전술적 승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패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승리를 유지할 수 있는 노동계급의 ‘힘’이 거의 없기 때문인데, 이는 그 승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소진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계급투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은 바로 전술적 승리를 유지하여 계급투쟁의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힘(투쟁력)을 끊임없이 새로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진지가 없다는 것이다. 한 기업의 노동조합, 즉 개별자본과 대항하는 노동조합 또는 그 연맹은 진지가 될 수 없다. 그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를 수행하는 돌격대 또는 선봉대이기 때문이다. 이 돌격대 또는 선봉대가 계급투쟁 전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도록 전방위적 지원사격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력을 생산하고 보급 조달하며 교체할 수 있는 진지가 필요하다.

이러한 진지는 자본주의 내부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자본주의 외부를 건설할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이 진지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에 저항하면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창조할 수 있는 생산력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새로운 생산력이 기존의 생산력을 대체할 수 있고 대체함으로써 자본을 전방위적으로 뒤흔들어 승리를 쟁취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기존의 생산력은 자본에 그 수를 이미 읽히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투수가 타자들에게 볼 배합을 읽혀서 두들겨 맞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산력은 자본에게 그 수를 쉽게 읽히지 않는다. 좋은 새로운 투수가 타자를 요리할 수 있듯이 새로운 생산력은 자본을 자기 맘대로 요리할 수 있을 것이다.

 

2.

 

 

그렇다면 새로운 생산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맑스가 “생산력은 곧 인간 자신”이라고 말했듯이, 이는 새로운 인간 생산을 통한 생산력이다. 이 새로운 인간은 여성주의에 입각한 노동자 계급이다. 맑스가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현재의 노동자들은 잃어버릴 것이 있다. 맑스가 ‘잃어버릴 것’을 착취적 관계를 의미하고 있듯이, 현재의 노동자, 특히 남성으로 대표되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소비재를 소비하는 ‘타인’, 즉 ‘여성’의 노동을 착취하는 구조와 관계가 ‘잃어버릴’ 것으로 남는다.

새로운 인간은 바로 ‘잃어버릴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여성주의적 노동자 계급이다. 새로운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더 이상 착취 관계와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인간이다. 그런데 이런 착취구조와 관계는 가족 이데올로기로 포장되어 있다. 이 가족 이데올로기의 포장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착취구조와 관계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그 물질적 토대를 해체해야 한다.

그 물질적 토대는 한 개별 노동자의 임금으로 한 개별 가족이 고립적으로 생활해 나가는 방식이다. 이 생활 방식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에서의 기본적인 생활 방식 단위이다. 이 단위 속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은 가사노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데, 이 가사노동은 자본주의적 성별 분업 형태에 의하여 대체로 여성들에게 강요된다. 그리고 그 재생산에 들어가는 재생산 생산노동은 거의 아무런 대가 없이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임금은 노동력 재생산에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소비재의 구매 비용이지, 그 소비재를 가지고 자신의 욕구에 맞게 변형시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노동 비용은 그 임금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가사노동을 거의 전담하였던 여성들은 임금노동을 해야 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당한다. 그리하여 이제 여성은 이중적 착취와 억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강요된 임금노동의 대가인 임금은 여성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노동력 재생산과 자식들의 다음 세대 노동력 생산에 거의 투입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중적 착취의 구조와 관계가 해체되지 않고서는 새로운 세계를 차출해 낼 주체를 생산해 낼 수 없다. 오히려 자본주의 생활 방식 구조와 관계를 그대로 유지시키는 인간만이 재생산될 수 있을 뿐이다. 일상적으로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익숙해져 버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이 경제를 파탄시키는 행위이고,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주범이며 가족을 내팽개치는 파렴치한 행위라는 이데올로기가 ‘상식’으로 돼 버린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간은 이러한 착취와 억압이 익숙한 것이 아니라 아주 낯선 것이며 해체되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인간이다. 이 새로운 인간은 개별적 생활 방식을 깨뜨리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동자 계급 안에 내재해 있는 착취와 억압 구조와 관계를 해체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 갖춰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이전에 개별적으로 해결해야 할 생활 전반의 문제들을 조직적이고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의 내부에 자본의 외부인 노동자 계급의 코뮌을 건설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억압과 착취의 관계와 구조를 깨뜨려 나가기 위해서, 이 새로운 인간은 ‘자기 비판적’이어야 한다. ‘자기 비판적’이라는 측면에서 이 새로운 인간은 ‘과학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이 ‘자기 비판’은 끊임없는 상호소통과 협력‧연대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과정 속에서 각 개인은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으며, ‘자유로운 각 개인이 연대하는 사회’인 ‘코뮌’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의 내부에 있는 자본의 외부인 자유로운 개인들의 상호소통, 협력과 연대 과정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활 방식의 물적 토대를 형성해야 한다. 이 형성을 위해 대자본 투쟁의 기초인 임금‧단체협상 투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개별적인 개인과 가족의 생활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공동으로 살아갈 수 있는 코뮌의 물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인간의 생산은 새로운 세대의 생산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현재이자 미래이며, 또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산은 그들 스스로가 수행하도록 해야 하며, 그 생산을 도와야 한다. 이 생산은 ‘자기 비판’ 능력을 생산하는 것인데, 그들 스스로가 상호소통하며 협력과 연대를 할 수 있는 코뮌을 통해 이루어진다(이러한 비판 능력을 키우는 것이 ‘대중화’의 진정한 의미이며 노동자 계급의 교육 목표라고 생각한다. 이 대중화와 교육 목표는 ‘자본의 공교육’ 체제 아래에서는 현실화될 수 없고, ‘노동자 계급의 공교육 체계’(이는 자본의 공교육에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이른바 ‘사교육’을 지양하고 해체하는 체계이다)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대중화와 노동자 계급의 공교육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를 빌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새로운 세대의 자기 생산과 코뮌의 싹에 관한 예로 영화 <우리학교>와 <더 사이더 하우스 룰즈>를 들겠다. 우리학교는 조총련계 조선인 학교의 아이들과 그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더 사이더 하우스 룰즈는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부모가 없는 고아원 아이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들에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활 규칙을 자신들이 만들어 나가며,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일에 아주 익숙해져 있다. 특히 <우리학교>에서는 학교(이 학교는 일본 공교육 체계 밖에 있는 조선인 공교육 체계로서의 학교이다)라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코뮌들 사이의 연대, 그리고 그 학교를 통해 지역 조선인들의 코뮌과 그 코뮌과의 연대가 나름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자기 생산과 코뮌은 기성세대 노동자들의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리하여 기성세대 노동자들을 그들 스스로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본다(맑스가 “교육하는 자도 교육 받아야 한다”고 말했듯이 말이다). 바로 이 토대가 노동자 계급의 진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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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별로 느낌 없다...

그가 오늘 가셨단다...

근데 별로 감흥이 없다...

사람이, 그것도 전직 대통령씩이나 한 사람이 죽었다는데

별 감흥이 없다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잘 가시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후배들이 조직 사건으로 엮여 달려갔고,

그가 재임하고 있을 때에

천하의 악법 중 하나인 비정규직 법이 통과되었다.

그 때문에 노동자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그가 짐작이라도 했을까...

돌아가실 때 노동자의 삶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셨을까...

 

뭐 돌아가신 양반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하고 싶지 않다.

다만 잘 가시라는 말밖엔...

 

민주주의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은 하지 말자...

그러면서 추모를 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도 하지 말자...

 

그저 편히 가시라는 말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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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상태...

계절학기 끝난 다음부터 거의 머리가 공황상태에 이르고 있다.

정말 시쳇말로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냥 멍한 상태...

맨날 술이나 생각나는...

이러다가 정말 뭔일 내는 거 아닌가 하는 느낌이...

 

하여간 정신이 돌아와야 책을 읽던, 글을 쓰던 뭔가 비전을 가지고

뭘 할 텐데...

정말 걱정이다...

혹시 이런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지금은 머리가 백지 상태라,

예전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것 같다...ㅠ...

 

제발 정신이 빨리 돌아오라고 광고라도 내야 하지 않을까...

근데 어떻게 광고를 내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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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지방견찰청장의 어이없는 말

행인님의 [경기지방경찰청장의 법 질서] 에 관련된 글.

 

과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말을 잃게 만들어 버렸다...

육두문자가 입밖으로까지 나왔다...

이런 XXX!!!

 

http://tvnews.media.daum.net/cp/YTN/popup/view.html?cateid=100000&newsid=20090807151505574&p=yt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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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신 분께 드립니다^^...

 

 

학생 자치기구인 생활도서관에서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이 있어서, 

혹시 필요하신 분들이 있으면 드리려고 합니다. 

물건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석유난로 큰 것 1개 

- 14인치 컴퓨터 모니터

- 스티로폼(전지 2~3배크기) 5장.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 덧글에 메일 주소 남겨 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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