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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뎡야핑님의 [왓챠 드라마 추천 -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AND YEARS) : 이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에 관련된 글.
어제 밤에 모처럼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어렸을 때 아껴 먹던 맛있는 과자처럼, 개인적으로 아끼면서 보는 영화다.
그런 영화들 중에는 브레스트 오프, 풀 몬티, 빌리 엘리엇, 파업전야, 우리 학교 등이 있다.
어제 본 [일 포스티노]를 보고 떠올랐던 단상을 주저리 주저리 메모해 본다.
시는 혁명이고, 혁명은 가랑비와도 같다.
사회주의는 메타포어이며,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자신이 관게하는 모든 타자에 대해 모른다는 한계를 자각하고,
그 타자를 향해 현재 자신을 넘어서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코로나19에 대한 주요한 방역 대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거론되고 있다.
새로운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한 단상을 잠깐 정리해 본다.
방역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소통하는 것을
당분간 자제하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자본주의 체제는 본래 사회적 거리두기를 자신의 기초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은 자본의 허락 없이 각기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서로 모여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노동생산물이 자본의 승인을 통해 시장에서 비로소 상품이 되어
다른 노동생산물과 관계를 가지게 되고, 생산자들 역시도 서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자본의 승인하에 취업을 하게 되고, 사회적 관계를 맺게 된다.
자본의 승인이 없으면 사회적 관계망에서 배제되어 <사회적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자본은 자신의 승인 없이는 어떠한 사회적 관계도 허락하지 않는다.
자본의 이익 생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노동조합 등 모든 소수자 집단의
자발적인 사회적, 정치적 관계들을 배제시키려고 한다.
이러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 일상에서 수도 없이 들어왔다.
누구 누구와 어울리지 말아아, 데모에 참가하지 말아라 등...
우리는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상화하면서 살아왔을 터이다.
코로나19에 의해 희생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사회적 관계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차단된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다.
사회적 관계가 약화될수록 면역력이 급속히 낮아진다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코로나19의 장기적인 방역대책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바로 일상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단기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관계의 강화, 즉 각기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연대, 소통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생산, 강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중파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적 거리두기는 유행전염병의
새로운 방역 대책이 아니라, 오히려 코로나19를 발생시킨 근본적인 원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어쩌면 자본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경고일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에 의해 규정(승인)될 수 없는 자연(nature)의
자본에 대한 투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코로나19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공장이 멈춰서고, 세계의 교통이 점점 동맥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한 생각일 수도 있다. 나도 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자본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의해 발생한 코로나19 같은 유행전염병을
진정시키는 일은 바로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적 관계의 강화이고,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강화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공중파에서 코로나19의 시민사회의 새로운 방역대책으로 내세운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단상을 두서없이 끄적여 보았다.
차분히 다시 정리해볼 필요가 있겠다.
그제 어제는 눈이 내렸다. 많이도 내렸다.
그런데 그제 어제 온 눈은 미련이다.
겨울에 대한 미련...
이 미련은 나를 닮았다.
아무리 겨울에 대한 미련을 가진들
봄을 향한 마음을 다시 얻지 못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즈음의 한겨울에 내렸다면
세상의 마음을 얻었을 텐데...
이 미련은 부질없거니와
또한 세상사의 이치임을...
그래서 세상은 동장군을 안타까워 하리라.
부질없음과 세상사의 이치의 경계는 어디일까...
눈을 닮되 눈을 닮지 마라
나를 닮되 나를 닮지 마라
세상을 닮되 세상을 닮지 마라
이 끄적임도 부질없지만 세상사의 흐름이라...
~# 『시인 백석-백석 시 전집』 (송준 엮음, 흰당나귀, 2012) 중에서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샅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달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디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턴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 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꿀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믈다는 곧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시인 백석-백석 시 전집』 (송준 엮음, 흰당나귀, 2012) 중에서 #
[나 취했노라]
나 취헸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것과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오늘 이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 『시인 백석-백석 시 전집』 (송준 엮음, 흰당나귀, 2012) 중에서 #
[힌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힌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힌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 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 글은 다 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힌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지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끊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힌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마리아·릴케」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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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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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래전에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작고 아담한 섬마을이 참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가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네요.
네루다의 시는 개인적으로 마음에까지 와닿지 않아서 잘 안 읽히지만
사랑과 혁명을 참으로 잘 표현하는 시인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한 영화였습니다.
부가 정보
곰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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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저는 뭔가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아주 가끔씩 보는 영화입니다. 이번에 보고서는 여기에 나오는 섬이 고립된 현대의 노동자의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고립된 노동자가 새로운 세계(네루다의 시 세계)를 보고 사랑을 발견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다시 그 새로운 세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새롭게 자신을 생산해내는 노동자의 모습으로 변해 가는 모습을 시처럼 아름답게 그려내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뭐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 보면 다른 맛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