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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훅스의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와 관련해서는
이미 염둥님께서 자세하게 내용을 잘 소개하셔서 쓸 말이 별로 없기는 하다.
그래서 아주 간략하게 독후감 정도의 글로 대신할까 한다.
벨 훅스는 노동 계급과의 연대를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특히 흑인 인권 운동가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고 노동 계급과의 연대가 아주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흑인사회에 만연한 물신숭배가 이전의 흑인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으며,
이런 파괴에 의해 흑인 젊은이들이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져 마약에 물들어가고 있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건 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비교해 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최고 관심사가 연봉이 많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노동 계급과 연대할 수 있으며, 또한 단순히 노동 계급과 연대한다고 해서
새로운 희망을 볼 수 있을까, 오늘날 노동운동의 위기가 거론되는 시점에서?!
이 두 개의 문제는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결국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대안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직접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노동 계급은 어떤 시스템으로 자신을 재생산하며,
또한 새롭게 생산하는 것인가?
이는 성별 분업화되어 있는 가부장제 시스템을 노동 계급 자기 생산의 기초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서 단순히 노동 계급과 연대한다는 것은 착취와 관련한 상당한 문제를 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것은 노동 계급인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착취 시스템을 해체하는 노력을 집단적으로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집단적 노력은 착취 시스템을 스스로 파괴하면서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체'인
코뮌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벨 훅스는 이런 코뮌을 이전의 흑인공동체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
스스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나갔던 흑인 공동체,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서로의 인격을 존중했던 공동체...
과연 이러한 흑인 공동체의 상이 오늘날 가능한 상일 수 있을까?
만일 가능하다면 어떻게 현실화시킬 수 있을까?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 세대의 노동 계급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세대의 노동 계급은 자본의 무한한 적대적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제도권 공교육과
더불어 사교육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서 자신의 착취 시스템을 해체하는 노동 계급 공동체 자체 내에서의 대안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각 대학을 노동 계급의 자녀들의 대안 교육의 거점으로 확보하게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 대학생들을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 자치 조직의
도우미의 역할을 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어렸을 때 각자 자기 동생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놀았던 것처럼 각 자치 조직은
자기보다 한 단계 어린 자치 조직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대학의 학생운동은 이제 새롭게 다음 노동 계급 생산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각 지역의 코뮌을 서서히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간단하게 쓰려고 했는데, 중언부언 말이 많아졌다.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았다.
대안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뱀다리 : 왜 책 제목을 [계급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뽑았을까?
원제목은 [Where we stand : Class matters](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 문제는 계급이다)인데 말이다.
'계급'이라는 용어가 진부하다고 여겨서 그랬을까?^^
4. 성별 분업 - 여성 억압의 물적 기초.
1) 성별 분업은 가부장제와 가부장적 관계의 물적 기반으로 인식.
① 성별 분업은 모든 사회를 특징짓는 남성과 여성 간의 불평등한 관계의 중요한 표현으로 인식. 모든 사회 속에서 성별 분업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남성 지배가 존재함을 증명하는 것으로 간주. 남성 지배와 여성 종속의 본질적 속성.
② “성별 분업은 한편으로는, 남성은 생산관계에 대해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연관을 갖게 되는 데 비해 여성은 반대로 생산과정에의 적극적인 참여로부터 배제되어 가정과 가내 영역으로 축출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화는 여성의 생산 자원 또는 임금에 대한 접근을 부정함으로써 여성을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만들며, 종속적 위치에 놓이게 한다는 것이다. ..성별 분업에 의해 설명되는 또 하나의 현상은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이 차별적으로 위치지워진다는 것이다. 생산적 노동력은 성에 따라 분화되어 여성은 낮은 임금과 낮은 지위의 직업에 위치하도록 제한된다. 자본주의 내에서 성별 분업은 여성들이 경제적인 생존을 위해 남편에게 의존하는 형태를 기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고서도 자본가 계급에게 고도의 착취가 가능한 노동력을 제공한다.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노동은 가사종사자로서 그리고 자녀양육자로서 주된 역할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생산 영역에서의 성별 분업은 가정 내에서 여성의 종속을 경제적으로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성에 따른 노동분업은 인간 역사를 통해 보편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성별 분업은 남성이 꼭대기에, 여성이 밑바닥에 자리하는 위계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과 역사학이 보여 주는 바에 의하면, 이러한 성별 분리는 언제나 위계적인 것은 아니었다.... 내 주장은 현재와 같은 여성의 사회적 뿌리는 성 위계적인 노동분업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남녀가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얻고자 한다면, 그리고 남녀 모두의 인간 잠재력이 완전하게 발달하려면, 양성간의 위계적 성격을 갖는 노동분업이 철폐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양성간의 분업 그 자체가 철폐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론적으로 성별 분업 그 자체가 양성간의 불평등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으나,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성별 분업이란 여성의 노동에 낮은 지위를 부여하는 분업이다. 성별 분업은 또한 남녀의 살므이 경험을 서로 다르게 하는 성별 하위문화의 기초가 된다. 더구나 그것은 가사노동으로부터의 면제아 더 나은 취업 기회의 보장이란 면에서뿐만 아니라 시리학적 측면에서도 행사되는 남성권력의 물적 기초이다.”
2) 성별 분업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가? ‘남성의 일’, ‘여성의 일’이라는 표현이 우리의 일상적인 어휘와 경험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성별 분업의 물적 기초인가?’ 성별 분업 자체는 어떻게 발생하며 어떤 방식으로 지속되는가?
① 성별 분업은 남성에 의한 여성의 노동 혹은 노동력의 통제에 기반.
남성들은 여성들로부터 계속적으로 가정에서의 요리, 세탁과 같은 개인적 서비스를 제공 받기 위해 연대한다. (노동력의 통제) 여성이 가정에 묶여서 새존을 위해 남성에게 의존할 것을 전제로 한다. 여성의 활동적인 노동력으로부터 재베됨으로써 확고해진다. 가족은 여성의 종속을 뒷받침해 온 중요한 사회제도이며, 가족 내에서 남성이 여성 노동력에 대해 행하는 통제는 사회적 수준에서의 성별 분업과 가부장적 관계의 재생산에 대한 배후의 추동력이다. (하트만)
② 재생산에서 여성이 담당하는 생물학적 역할에 대한 통제.
여성이 출산자로서 갖는 기능에 대한 교묘한 통제가 여성 억압의 원인이다. ‘어머니로서의 여성’은 성별 분업의 전형. ‘어머니’라는 사회적 역할은 남편에 대해 여성이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 및 사회적으로 확산된 이데올로기와 국가에 의해 재생산된다.(질라 아이젠슈타인)
③ 남녀의 성별화라는 심리학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과정의 결과.
가족 및 보다 넓은 사회의 성 역할의 생산과 강화의 동학을 강조한다. 여성의 억압을 존속시키는 중요한 동인은 사회적으로 남성적, 여성적인 인성 유형을 주조하는 것에 있다는 점에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낸시 초도로우)
5. 여성주의 정치경제학-여성노동에 대한 유물론적 분석을 위하여
- 여성 노동에 대한 재개념화
- 여성 노동권
- 지구적 차원에서의 분석
- 이주의 여성화와 관련된 논의
- 섹슈얼리티/젠더와 여성 노동
-->(소결론) 여기서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아래에서 여성 노동의 의미가 무엇이고, 여성 노동이 차별 받게 되는 근본적인 생리 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자본의 생산구조와 가부장제 구조의 관계를 파헤쳐야 한다고 본다. 즉, 결국 자본은 어떻게 각기 서로 다른 자본주의 생산구조와 가부장제를 결합시키는가의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자본의 생성과 관련된 두 구조가 서로가 서로에게 귀결되지 않지만, 출발점이 되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구조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환원되지는 않지만, 서로가 밀접한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알튀세는 이미 이러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층결정론’을 확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중층 결정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 심급이 경제에 있다’는 모호한 말만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리보위츠의 ‘자본의 총체성’ 개념이다. 총체로서의 자본은 자본의 생산구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의 생산구조는 그 자체로 불완전한 것이다. 자본의 생산구조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바로 ‘노동자의 생산구조’이다. 자본의 생산구조는 ‘무한한 적대적 경쟁 관계’를 기초로 한다. 반면에 노동자의 생산구조는 ‘단결과 협력, 연대 관계’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성별 분업화된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단결과 협력, 연대’의 관계가 ‘성별 분업화’와 관련하여, ‘남성’들만의 ‘단결과 협력, 연대’라는 여성주의의 주장은 타당하다. 노동자의 생산은 그 노동자를 생산할 수 있는 누군가의 노동을 전제로 한다. 그 누군가는 성별 분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체로 ‘여성’이라고 인식돼 있다. 그러므로 ‘남성’의 단결과 협력, 연대의 관계는 ‘여성’의 노동을 전제로 한다. 이 ‘여성’의 노동이 없으면 ‘남성’의 단결과 협력, 연대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은 자신에 의해 생산된 ‘남성’ 노동자의 노동력의 가치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남성’ 노동자의 임금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물론 여성 노동이 자본으로부터 직접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임금의 기준, 즉 그 가치의 기준은 항상 남성 노동자의 임금에 준해서이다). 그런데 이 남성 노동자의 임금은 그 남성 노동자가 간신히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다. 그리고 여기서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력의 비용을 자본은 계산하지 않는다. 남성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노동 과정에서 들어가는 노동력의 비용은 무상이며, 스스로 알아서 충당해야 한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남성 노동자는 다음날 자본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충분히 소비할 수 없게 된다. 이는 자본의 걸림돌이 된다.
남성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생산관계가 필요하게 된다. 이 생산관계는 자본-노동 생산관계의 전제이며 토대다. 그런데 이것은 자본-노동 생산관계가 드러나면 날수록 은폐되며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것이 기존 맑스주의가 가지고 있는 한계라고 지적하는 여성주의의 주장은 온당한 것이다.
이 생산관계는 성별 분업화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부르주아적인 결혼, 가족 제도로 나타나는데, 자본-노동의 관계와 같은 착취, 억압의 남녀 관계로 나타난다. 이런 착취의 관계가 아니면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력 재생산은 이루어질 수 없다.
가부장제는 총체로서의 자본의 한 축 또는 한 과정인 노동력 재생산, 즉 노동자의 자기 생산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시스템 또는 구조이다. 가부장제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직접적인 착취 시스템 또는 구조는 서로에게 환원·귀결되지는 않지만, 서로에 대한 출발점 또는 전제가 된다. 노동해방은 노동자의 자기 생산의 착취 시스템인 가부장제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 오라던
이왕이면 더 큰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 앉아서
그래 그렇게 부딪쳐 보자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 하려마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 줄께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월말이면 월급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을 오르고
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
가장 멋진 내친구야 빠뜨리지마
한다스의 연필과 노트한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출처] 목로주점 / 유연실 ,|작성자 산사랑
★ 작은 틀 ★
1. 문제 제기 - 계속되는 질문들.
1) 성의 측면에서 좀더 평등했던 분업이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2) 위계적인 분업이 어떻게 하여 현재의 임금노동에까지 확대되었는가?
- 가사노동에 대한 분석과 여성 임금노동에 대한 분석이 분리.
70년대 초 중반, 가사노동이나 가부장제의 개념에 대한 분석 등 페미니즘에서 중요한 새로운 논의들이 등장하고, 여성의 역사에 대한 페미니즘적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의 여성 임금노동자의 위치에 대한 분석에 포함되는 문제들은 상대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
- 여성의 공적인 노동력으로의 진입이 해방은커녕 여성들은 오히려 그들의 이중의 임무.
대규모 산업이 여성을 가정에서 노동시장과 공장으로 내몰고, 가족의 생계 책임자로 만들면서부터 프롤레타리아트 가정에서의 남성 지배의 최후의 보루는 모두 무너져 버렸다(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
“여성해방의 최우선의 전제조건은 전 여성이 공공산업으로 재투입되는 것이다.”
- 여성노동에 대한 연구는 여성이 담당하는 노동의 성격에 의해서도 밝혀질 수 있지만 여성이 처한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한 조망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자체와 그 속에서 관철되고 있는 성별 분업의 논리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뜻.
2. 여성노동에 대한 사회적 이론 검토 및 비판.
--> (강사 선생님 말씀) 여기에서 주요 이슈는 여성에 대한 차별, 불평등이 “왜” 저임금․불안정․비정규직 노동으로 현상하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한 논의는 크게 2가지가 있다.
1) 인적 자본론
--> (강사 선생님 말씀) 이것의 대표적인 예는 <여성은 일 시킬 만하면 일을 그만 둔다>이다. 이 예는 위의 “왜”라는 문제 제기에 대한 기존 사회학 이론의 답변(자본 이데올로기) 이다. 이 논의는 이 논의의 한계를 비판하는 이중노동 시장론으로 이어진다.
- 노동시장은 동질적, 완전 경쟁적이며 개별 근로자의 직업적 지위나 임금 수준은 학력, 직업훈련, 업무경험, 기술습득 등 인적 자본에의 투자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인적 자본에 투자함으로 노동생산성이 질적으로 떨어지며, 이러한 차이가 결과적으로 임금이나 직업적 지위 면에서 성 차별을 가져오게 된다.
- 여성들이 가족 내의 지위 때문에 남성보다 인적 자본을 덜 가진다는 입장. 인적 자본론자들은 노동시장의 결과가 합리적 선택의 결과임을 암시한다.
비판) 직업에서의 여성의 지위를 가족 내의 여성 지위의 결과로서 설명하며, 이는 가족 구성원이나 전체 사회 모두에 기능적인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파슨스의 기능주의와 동일한 논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개인의 노동 전략이라기보다는 가구의 노동 전략이라는 관념을 인적 자본론과 파슨스 이론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며, 성과 노동에 관한 많은 사회학적 분석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특히 인적 자본론은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그들의 가치에 맞게 임금을 주는 완벽한 노동시장의 가정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돈을 많이 받는 직업’은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직업이고, 이는 실제 기술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강한 권력을 가진 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업이 고도로 숙련된 것으로 불리도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크다.
남성과 여성에게 노동시장을 불평등하게 구조화시키는 제도화된 권력관계를 간과한 것이 인적 자본론, 그리고 이와 유사한 사회학 이론들이 실패한 핵심적인 이유이다.
2) 이중노동 시장론
--> (강사 선생님 말씀) 이 이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노동시장이 왜 이중적인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는 이론이다.
- 노동시장이 완전 경쟁적이고 동질적이기보다 질적으로 구분되는 여러 부분들로 분절되어 있으며 분절된 부분들은 각기 다른 직종으로 이루어져 다른 원리 및 고용관행에 의해 움직여진다는 것. 1차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좋은 근로조건, 다양한 승진 기회,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며, 2차 노동시장은 여자, 연소노동자, 도시빈민 층으로 구성되며 저임금, 열악한 근로조건, 승진 기회의 부족, 고용 불안정성 등이 그 특징이다.
3. 노동 과정과 산업예비군 이론
1) 노동 과정-매뉴팩처로부터 근대산업으로의 이행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분석
- 근대산업으로의 이행 과정
① 기계의 도입
② 근대산업에 있어 숙련노동을 미숙련노동으로, 남성을 여성으로, 성인노동을 소년노동으로 대체하려는 경향.
③ 여성과 어린이의 고용. 남성 노동자들의 기계발전에 대한 저항을 무화.
④ 공장 밖 생산. 여성과 어린이가 고용되는 새로운 형태의 가내공업.
⑤ 여성과 어린이의 고용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과, 남성과 여성 사이의 새로운 관계가 등장.
- 자본이 여성을 고용함으로써 갖게 되는 이익.
① 근대 산업이 가족 구성원 모두를 고용함으로써 재생산 비용이 인구의 모든 구성원에게 나누어지기 때문에 노동력 가치가 낮아지는 경향. 노동자의 재생산 비용이 줄어들면서 잉여가치가 증가.
② 여성 고용으로 상품의 수요가 증대하며 순환 과정이 빨라진다.
③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남성 노동자의 저항을 무너뜨린다는 점.
- 여성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① 여성의 낮은 훈련 비용. 노동력 재생산 비용도 낮다.
② 여성은 재생산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져 여성의 노동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가치. 이것이 여성은 가족의 부차적 수입원이고 남편의 임금이 가족의 재생산 비용에 책임이 있다는 가정 때문에 여성 임금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라고 설명. 남편과 아버지가 없는 경우에도 여성의 위치는 가부장적 구조에서의 가족 개념으로 규정.
2) 산업예비군 이론
(각주-산업예비군의 정의 1) 유동적 산업예비군의 노동자들은 때로는 근대산업의 중심부에 유인되어 들어가고 때로는 밀려 나간다. 이것은 대부분의 근대산업이 숙련노동자를 미숙련 노동자로, 남성을 여성으로 그리고 성인을 아동으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과 연결된다. 2) 잠재적 산업예비군은 자본주의적 농업 방식의 침투에 의해 농토에서 추방된 농업인구 가운데 존재한다. 3) 정체적 산업예비군은 가내공업 등에 비정규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로 구성되는데, 그 성원은 근대산업과 농업의 임시 고용인으로부터 충원된다(베로니카 비치, “여성과 생산”, 『제3세계 여성노동』, 여성평우회 편, 창작과 비평사, 1985)).
- 맑스는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때에 노동자로 하여금 임금과 고용조건에 대해 협상할 능력을 차단하는데 산업예비군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 “가장 마지막으로 고용되고 가장 먼저 해고되는” 노동자군.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있고 임금이 상승될 위험이 있을 때 임금노동에 충원될 수 있고, 그런 다음 이 수요가 감소하고 실업이 증가하는 불황의 상태에서 잉여노동자가 된다(기혼여성).
비판) 남자보다 먼저 여자가 일자리를 잃는 과정을 결정짓는 것이 자본이라고 생각한다면, 남자보다 낮은 임금으로 고용될 수 있는 여성을 먼저 그만두게 하는 것이 고용주의 이익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경험적인 증거들이 이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성별 직업분리를 설명하지 못함.
어제 나의 학생 하나가 찾아왔다.
시집을 들고서...
그리고는 엷게 미소를 지으면서, 수줍은 얼굴로
시집을 내밀었다.
-선생님 드리려고 책 내자마자 달려왔습니다...
시집은 이 녀석이 시 동인으로 있는
<사의 문학>(제1호)였다.
이 녀석의 얼굴은 더 야위었다...
- 그 후로 10년 -
(이 녀석)
물결이 어울거리는 모양에
옛 기억이 함께 약동한다.
투명한 파로호 앞에서
우리 사랑을 맹세하던 날
나는 웃고, 너는 울었지
그 이후로 10년,
너는 내 곁에 없고
나는 다시
한없이 찬란한 봄날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파로호와 마주한다.
우리 사랑을 맹세하던 날
너는 웃고,
나는 울었네.
울 엄니께서 오늘 오전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서
응급구조대원이 나에게 연락을 하였다.
뭥미, 이것은 또!
올해 울 엄니께서는 두 번이나 같은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셨다.
한 번두 아니고 그것도 두 번씩이나...
올 여름엔 아파트 축대 위에 있는 화단에서 꽃화분 정리하시다가
축대에서 떨어지셔서 머리 꼬매고, 갈비뼈, 척추4번 돌기뼈가 부러지셨더랬다.
그것 때문에 한 두 달 고생하셨더랬다.
그런데 이번에는 올해 마지막 걷기 대회에 오늘 참가하셨다가
청계천 계단을 내려오시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셨다.
그런데 안경을 쓰고 계셔서 눈 옆이 크게 찢어져서 꼬맸다.
그런데 의사 말이 살점이 떨어져 나가서 흉이 질 거란다.
울 엄니께서는 흉지는 게 영 맘에 걸리시는 것 같았다.
나중에 성형 수술을 해 드려야 하는데,
의사 말로는 흉 제거가 말끔하게 되지는 않는단다.
흉터 때문에 울 엄니 이제 바깥 다니시기 고민되실 텐데...
참 걱정이다, 혹시 우울증 같은 것이 오지 않을까 말이다...
빠른 시일 내에 성형 수술해 드려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걸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울 엄니께서는 2000년 초에 구안와사가 오신 다음에는
기운이 아주 쇠약해지셨다.
그래서 머리가 바늘로 쑤시듯 송곳으로 쑤시듯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고,
심장이 안 좋아지셔서 가슴 한가운데가 뻐근하게 아프고 쑤셔서 입원한 것도 한 두어 번 된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아마도 풍기가 있으신 것 같다.
그런데 가끔씩 찾아오는 것 같은데,
그때마다 사고로 이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이런 생각을 하냐 하면은
사고 당하셨을 때,
술 취했을 때 필름이 끊기듯 끊어지신 것 같다.
이게 단순히 기운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풍기가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큰일이 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내 생각으로는 풍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양방으로는 없는 것 같고,
한방에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실밥 빼고 나면 울 엄니 경희대 한방 병원에 모시고 가야겠다...
좀 있다 울 엄니 집에 가야지...
내가 이렇게 속상한데,
나 키우실 때 울 엄니 속은 어땠을까...
아마도 속이 타 들어가셨을 게다...
응급실에서 나 딱 보시드니만 하시는 말씀...
- 내가 디기 밉재(내가 무척 밉지)!
그러면서 시익 웃으시더만...
위로...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위로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일...
차마 터져 나오는 그 뭐라 할 수 없는 삶의 무게에다 대고
무어라 이러쿵 저러쿵 말을 건넨다는 것은
참으로 말할 수 없는 가벼움일 것이다...
참으로 엄청난 오만일 것이다...
삶의 무게가 얼만큼인데,
거기다 대고 위로를 한단 말인가...
참으로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 위로는...
키에르 케고르라는 철학자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눈빛...이란 말을 했다던데...
그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걱정하고 염려하는 눈빛으로 응시할 뿐...
우리는 서로가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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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매연대에서 곧 이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려고 해요.같이 이야기해보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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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 반갑습니다^^. 시간이 되면 꼭 참석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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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 진부해서 그러는지 몰라도 지금 한국의 대안교육은 교육내용과 체계에서는 나을지 몰라도 또다른 이너써클을 형성하는 것 같아 좀 저어스러워요. 공교육 체제는 어쨌든 근대의 산물인데 이를 근대를 넘는 방향으로 이끌 궁리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했다눈.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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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둥> 지금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안교육은 염둥 님 말씀처럼 좀 저어스럽긴 해요^^. 이 대안교육은 우리 노동계급의 사교육 정도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걸 다시 공교육 체제를 바꾸는 기초로 삼으면 좋겠다는 생각인데... 아직 많이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