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이었지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라던 나로호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 뒤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대기권에서 소멸됐던 일이 있었습니다. 처음 이 나로호가 발사됐을 때만해도 성공에 대한 자축의 박수가 연신 터져 나오고, 또 곧이어 나로호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다 결국엔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타 버렸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것 참 고소하다, 는 생각만 들었었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절반의 성공’에 안타까워하는 데. 무슨 심보인지 연신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으니 대체 뭐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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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共存):
명사 ① 함께 존재함
         ② 함께 도우며 살아감
공생(共生):
명사 ① 공동의 운명 아래 함께 삶
         ② (생) 종류가 다른 두 생물이 한 곳에서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공동생활을 하는 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중에는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같은 뜻인 것처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것들이 꽤나 있습니다. 공존과 공생도 그러하지요.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공존은 함께 도우며 살아감, 공생은 공동의 운명 아래 함께 삶,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그게 그 말 같고 그 뜻이 그 뜻 같은데. 혹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반핵, 반원자력 활동가로 알려진 다카기 진자부로는 에콜로지라는, ‘자연을 제어, 지배,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서 향상시키고 자유를 확대시킨다는 이른바 합리주의적 사상, 사실은 실리적인 자연 이용의 사상 이상으로 인간중심주의의 자연관’을 대신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 속에서 이 두 말의 의미를 설명하는데요.
 
에콜로지는 “지구 생태계는, 다양한 생물이 놀라울 만큼 정교한 공존관계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진다. 우리가 직면한 모든 위기는 대부분 이 공존관계를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데서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간 중심의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도 자연계의 일원으로,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가자”는 의미를 지닌 다고 합니다. 결국 ‘자연과의 공존’이라고 할 수 있는 셈이죠.    
 
하지만 이 지점에서 다카기는 ‘자연과의 공존’이 지닌 애매한 입장에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 ‘자연과의 공생’을 얘기합니다. 즉 인간과 자연을 대치시키고 나서 조화나 공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전체 내에서 인간을 상대화하는, 오히려 자연 속에서 사는 것 자체가 인간의 주체성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인간에게 최고의 원리였던 이성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원리로서 자연의 영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가요. 이쯤 되면 공존과 공생의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지 않나요. 
 
3.
‘우주시대’, ‘우주개발’, ‘우주강국’
나로호가 발사되기 전부터, 아니 개발 단계에서부터 우리 언론들은 이런 수식어들을 붙여댔습니다. 우주 역시 인간을 위해 이용되는 수단으로 밖에 인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기사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우주개발을 체계적으로 진흥하고 우주물체를 효율적으로 이용·관리하도록 함으로써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적 탐사를 촉진하여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는 <우주개발진흥법>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겁니다. 우주발사체 개발을 주도하는 정부의 시각조차 이러한데 자신의 정체성을 시시각각 바꾸는 우리 언론들에게서 뭘 더 바랄까요.
 
그래요. 솔직히 처음엔 MB정부 때 이런 일이 생겨서 그저 고소하단 생각만 했었습니다. 발사체가 성공하게 되면 고스란히 자신의 치적으로 생색낼 게 뻔 한 그림이었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공존과 공생의 미묘한 차이를 깨닫게 해 준 이 책, 벌써 10년도 전에 쓰인 <지금, 자연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읽고 나니 그저 고소하다고만 생각했던 게 너무 한심해지는 거 있죠. 
 
공존이냐 공생이냐, 지금부터 다시 고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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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20:25 2009/09/11 20:25
1. 
혹시 영국의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자 2006년도에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를 알고 있는지요. 우리나라에는 <레이닝 스톤>을 시작으로 <랜드 앤 프리덤>, <빵과 장미>, <칼라송> 등이 극장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졌고, 좀 다른 경로이긴 하나 <명멸하는 불꽃>이나 <네비게이터>와 같은 작품으로도 알려진 사람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바로 감독 켄 로치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애기를 하곤 합니다. 켄을 얘기할라치면 늘 주된 화제가 되고 마는 정치성과 계급성에 대해 조금은 자유로워야 그의 절반의 영화들을 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절반의 영화를 못 봐서인가요. 아직까진 켄 로치의 영화 속에 각인되어 있는 그 정치성과 계급성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아마도 그건 가장 최근에 본 <보리밭을 흐드는 바람>에서도 여전한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소개한 그 어떤 영화들보다 <랜드 앤 프리덤>을 가장 먼저 봤기 때문일 겁니다.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독일의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무솔니로부터 지원을 받은 프랑코 군대에 맞서 스페인 민중과 인민전선정부를 지키기 위해 전세계에서 모여든 이름 없는 혁명가들의 싸움으로 밖에 알려진 바 없는 그 스페인 내전을 말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이 <랜드 앤 프리덤>란 영화, 사실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도 말입니다. 처음 봤던 그 순간에 아, 이 영화는 단순히 스페인 내전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구나, 라는 걸 느꼈더랬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더 복잡한 배경을 갖고 있더라는 걸, 더 복잡한 이념형의 각축장이었음을 알아차렸더랬습니다. 도대체 시도 때도 없이 영화 중간중간마다 튀어나오는, 대체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는 긴 ‘토론’ 장면들. 사실 지금이야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알겠지만 처음 봤을 땐 통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무슨 얘기들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던 그 긴 ‘토론’ 시간들을 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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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나 환경과 관련된 책, 혹은 자연주의적 색채를 띠는 저서들 가운데 종종 이 책을 언급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꼭 100년이 조금 넘은 때이던 1906년, 당시 미국 육가공산업이 급성장한 경을 된 비밀을 폭로한, 그로인해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 등이 제정되게끔 한 <정글 The Jungle>을 말입니다.
 
업튼 싱클레어는 이 책 한 권으로 일약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가로 알려지게 됐는데요. 사실 그가 쓴 글을 읽고 있노라면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는 육가공 공장의 내부 모습이 놀랍기만 합니다. 헌데 말입니다. 싱클레어도 지적했듯이 <정글>이 육식의 안전성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가 더 큰 주의를 기울였던 자본의 무자비한 이윤추구의 현장에 대한 생생한 고발에 대한 환기는 뒤로 밀려난 듯 해 본말이 전도됐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이윤 추구라는 목적 하에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가 서슴지 않고 자행될 수밖에 없는 게 어디 이 소설에서 고발하고 있는 육가공 산업뿐이겠습니까. 
 
<정글>은 이미 1979년에 한 번 출간 된 적이 있었습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채광석의 번역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때 출간된 <정글>은 번역자의 표현대로라면 주인공인 유르기스의 미래상에 대한 저자와의 여러 가지 상이점 때문에 29-31장이 빠진 채였음에도 판매 금지 도서로 지정됐답니다. 물론 아는 사람들만은 몰래몰래 책을 보았구요. 그러다 1982년에 동녘출판사에서 재출간하기에 이르렀구요, 다시 10년 흐른 1991년, 초판 번역본 당시 누락됐던 29-31장이 추가되어 완역본이 나오게 됩니다.
 
3. 
초판 번역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29-31장의 내용은 어찌 보면 도식적이다, 싶을 만한 내용들입니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갖은 착취와 불의 속에 가족을 모두 잃다시피 한 유르기스가 ‘사회주의’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이 특별한 개연성 없이 서술되고 있으니까요. 더구나 작가가 가지고 있던 진보에 대한 확고함 때문이었을까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문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이 들 정도라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처럼 도식적이고 강고한 문체로 읽기가 까탈스러우면서도 말입니다. 오래 전에 봤던 <랜드 앤 프리덤>의 그 긴‘토론’ 장면이 내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그리고 말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할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스페인 내전을 알게 된 손녀가 장례식에서 윌리엄 모리스의 시 “전투에 참여하라. 아무도 실패할 수 없다. 육신은 쇠하고 죽어가더라도 그 행위들은 모두 남아 승리를 이룰 것이므로”를 낭송하는 모습과 사회주의자로서 처음 맞은 선거에서 사회당의 놀라만한 성과에 감탄한 유르기스에게 “우리는 그들을 조직할 것입니다 그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 단결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적을 압도할 것이며, 우리 앞에서 그들을 쓸어버릴 것입니다”를 외치는 연사의 외침이 겹치는 건, 또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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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9 22:19 2009/08/19 22:19

1.

언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썼었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버니지아가 살던 때에는 상상도 못했을 전자통신수단의 발달 때문에 이젠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그것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는 매우 비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하거든요. 하긴 시간이 곧 돈인 시대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비효율적이라 해도, 그리고 편지를 받아볼 이가 없다 해도 또 보낸 편지에 답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도 가끔은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물론 한 자, 한 자 펜으로 꼼꼼히 쓰지는 않더라도요.

 

2.

둘이 벌다 하나만 일을 그만둬도 금세 지갑이 얇아지는데 둘 다 일을 그만두니 당장 이것저것 줄여야 할 게 많습니다. 그동안 뭘 했는지 모아둔 돈은 없고 그저 퇴직금 받은 것밖에 없으니까요. 어떻게 해서든 이 돈으로 4년을 써야 하는데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답은 씀씀이를 줄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습니다. 해서 외식비는 없애고, 공과금 나갈 것은 줄이고, 또 허리를 핑계로 그 좋아하는 걷기여행도 가지 말자,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저기 5천원, 3천원, 1만원씩 내던 후원금, 회비도 당분간은 중단하자, 했습니다. 헌데 어찌 보면 얼마 되지도 않은 돈들이기도 하고 빡빡한 생활 속에서 그나마 여유로움을 주던 돈들을 막상 줄이려 하니 쉽지가 않더군요. 더구나 후원금. 통장에서 매달 25일 혹은 10일에 그렇게 빠져나가는 이 적은 돈들까지 끊는 건 정말 어려웠습니다. 일일이 후원하는 단체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여건이 되면 꼭 연락하겠다, 고 말하는 게 여간 쉽지가 않더라 이겁니다. 그래 어찌할까 고민하다 은행엘 갔답니다. 그리고는 그동안 자동이체 해왔던 곳들의 목록을 뽑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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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버지니아는 어떻게 하면 전쟁을 방지할 수 있느냐를 물으며 기부를 청해온 한 통의 편지를 받습니다. 이 편지는 그녀 스스로 그 편지에 대한 긴 답장의 글에서도 밝혔듯이 당시로서는 매우 유별난 편지였습니다. 왜냐면 일찍이 ‘교육받은 남성’이 여성에게 어떻게 하면 전쟁을 방지할 수 있겠느냐고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유별난 편지를 받은 그녀는 무려 3년이나 지난 후에야 답장을 씁니다. 그녀로서는 답장이 저절로 씌어지거나 다른 사람들이 답장해주기를 바랐지만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온 ‘교육받은 남성’조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못 내린 채 놔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온 신사의 요청에 그녀는 응답을 합니다. 당신의 기부 요청에 기꺼이 1기니의 돈을 보내줄 수는 있다고. 하지만 자신 앞에 놓인 또 다른 두 통의 편지에 대한 답장이 먼저라고 합니다. 여자 대학의 증축을 알리는 다른 한 금전출납원이 보낸 편지와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의 전문직 고용을 도와주는 단체의 생활비 마련을 호소하는 또 다른 한 통의 편지 말입니다. 또 그녀는 당신 단체에 1기니를 보내기에 앞서 여자 대학 증축을 위해, 또 여성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각각 1기니의 돈을 보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당신 스스로가 부가하는 조건 외에 다른 어떤 조건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1기니를 보낼 수는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신사에게 1기니를 보내기는 하나 당신 단체의 가입신청서는 작성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왜냐면 그녀에게 신사가 물어왔던 폭력과 전쟁 방지, 그리고 지배의 철폐는 그것들을 만들어낸 ‘교육받은 남성’들의 말과 방법과는 다른 새로운 말과 새로운 방법을 창조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마지막 말을 전합니다. 그녀가 제안한 새로운 말과 새로운 방법의 창조는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받아왔던 가정교육에 대한 유일한 대안인 공교육을 위한 여자 대학의 설립과 함께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4.

은행에서 뽑아준 목록은 그리 길지 않았더랬습니다. 이미 전화로 두어 군데 후원을 중지하는 전화를 했기 때문입니다. 수화기 너머 되려 무슨 일이 있느냐며 안부를 물어오는 그런 전화를 말입니다. 그래, 자동이체를 해지하는 일은 무척이나 금방이더군요. 몇 장의 동의서에 서명만 하면 끝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은행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제 더 미안함에 망설이며 전화를 걸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말입니다. 사람 마음 참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은 지 이제 일 년이 훌쩍 지났고, 지금도 그때, 꼭 일 년 전 수화기를 들었던 그때, 미안함에 은행문을 나서던 그때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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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3 13:49 2009/06/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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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이 책에 손이 가게 된 이유는 소설가 박태원 때문이었다. 월북 작가라는 왠지 모를 호기심도 호기심이었지만 17여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것도 급작스런 병으로 실명에, 전신불수까지 온 상태에 이르렀어도 끝내 대하역사소설 <갑오농민전쟁>을 써내고 말았다는 얘기에 언제고 그가 쓴 글을 읽어야겠다, 마음먹었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박태원의 글들이 1988년 7월 해금된 이후에나 장편 <천변풍경>, <임진조국전쟁>을 비롯해 완역한 <삼국지> 등이 소개됐고, 지금은 절판돼 구하기가 어렵지만 <갑오농민전쟁>이 출판사 깊은샘을 통해 출판됐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소설과는 꽤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이담이 쓴 ‘경성 만보객-新 박태원 전’과 함께 한 권으로 엮인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에도 박태원의 글 ‘소설가 구보(九甫)씨의 일일’(이하 ‘일일’)이 있다.

 

‘일일’은 박태원이 1934년 8월 1일부터 9월 19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글로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도시소설이라는 장르로 쓰였다. 또 주인공의 하루 산책을 따라가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이라는 독특한 방식에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는 몽타주 기법을 가미한 매우 독창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 월북 작가의 글들 중 많은 것들이 내용면에서뿐만 아니라 형식이나 소재면에서도 다분히 실험적이고 독창적인데 ‘일일’ 역시 그런 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2.

현대적 도시의 대로(大路) 중심성은 서울의 거리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세종로를 축으로 동대문 방향으로 곧게 뻗은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 남대문과 서울역 방향으로 서울시청 앞에서 잠시 꺾인 태평로의 모습. 이런 풍경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던 수많은 골목길들이 사라진 것을 연상케 하는데, 민중들 위에 군림하려는 권력자들의 의지를 극명하게 투영한다.

 

서울을 도읍으로 정한 조선 봉건 왕조는 쭉 뻗은 이 길 양편에 궁궐과 관청들을 늘어 세워 비천한 백성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도록 했고, 뒤이은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세종로 광화문을 경복궁 오른편으로 옮기면서까지 조선총독부를 세워 식민지 민중들을 위압적으로 굴복시키려 했다. 이후 박정희로부터 MB에 이르기까지 이 거리는 정권의 부도덕성을 지우고 근엄한 위엄을 억지 세우기 위해 동상을 세우기도 하고, 애꿎은 천(川)을 콘크리트로 덮었다 들어내기도 하고, 급기야 차벽으로 길의 숨통마저 틀어막고 있다.

 

그렇게 서울의 길은 민중들에게 있어 낯선 거리일 뿐이다.

 

3.

스물여섯의 구보씨는 늙은 어머니의 ‘일즉어니 들어오너라.’는 말을 뒤로하고 천변 길을 광교로 향하여 걷는다. 그러나 딱히 어디로 갈 것인지 정하지 못한 구보씨는 종로통으로 걸음을 옮기다 종로네거리에서 동대문방향 전차에 오른다. 전차가 동대문에서 방향판을 ‘한강교’로 갈고 훈련원을 지나 조선은행 앞을 지날 때까지도 별 볼일 없던 구보씨는 잠시 다방에 들러 홍차를 마시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태평로2정목 고물상 거리를 따라 태평통을 걷던 구보씨는 경성역에서 중학 시대 열등생을 우연히 만난다. 마음에도 없는 만남을 시큰둥해하던 구보씨는 그와 해어진 후 다시 다방으로 돌아가 시인과 마주 앉는다. 그러나 집, 아니 여사(旅舍)로 돌아가는 벗과 달리 구보씨는 여전히 거리를 방황한다. 어느 틈엔가 종로네거리에 선 구보씨는 하얗고 납작한 조그만 다료(茶寮)엘 들러 벗을 데리고 나온다. 벗과 설렁탕으로 저녁을 때운 구보씨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열점, 늦어도 열점 반’에 다시 다방에서 만나자는 벗과 헤어진 후 이번엔 광화문통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멋없이 넓고 또 쓸쓸한 길을 아무렇게나 걷던 구보씨는 열점에 다시 보기로 한 벗을 만난다. 벗과 다시 만난 구보씨는 벗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카페의 여급을 찾아 낙원정으로 향한다. 가는 비 내리는 오전 두시, 드디어 구보씨는 내일 밤에 또 만나자는 벗의 인사에 ‘내일, 내일부터 집에 있겠소, 창작하겠소.’라는 말을 끝으로 이 낯선 거리에서의 배회를 끝낸다.

 

4.

‘일일’은 형식면에서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면에서는 별 싱겁기 그지없는 사건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 싱겁기 그지없는 일들이 구보씨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물 흐르듯 그려지면서 알 수 없는 현실감이 생겨나는 건 아무래도 필자의 의식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필치 때문일 것이다. 또 주인공 혹은 주인공과 벗이 함께 만 하루 동안 배회한 거리에 대한 치밀하고도 세밀한 묘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들과 함께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이쯤되면 아무래도 글쓴이의 힘이 느껴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덥지도 않게 동대문 방향 전차 안에서, 경성역에서, 종로네거리에서, 광화문통에서 끊임없이 욕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근대 도시의 상징이랄 수 있는 우뚝우뚝 솟은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고물상들을 어떻게 거리에서 쫓아낼 것인가를 생각하기도 하는 구보씨를 보자면 다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의 만보객 구보씨의 뒤를 차분히 쫓아가노라면 19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담겨있는 문화를 느낄 수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대개 새로운 책을 손에 잡으면 일주일 혹은 열흘 정도면 다 읽게 되는데 어찌된 게 이번 것은 이주가 넘도록 마지막 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봄 농사 준비로 바쁜 시기라 해도 이주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과는 다소 다른 어법이나 문법체계가 글을 읽어나가는 속도를 더디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또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구보씨와 태평로며 광화문, 종로, 을지로의 거리를 걷고 있는 느낌을 갖도록 그의 행적을 꼼꼼히 되짚어 준 상당히 많은 분량의 주해도 한 몫 했으리라. 게다가 덤이라기에는 매우 완성도가 높은, ‘일일’이 등장하기 직전인 1934년까지의 경성을 배경으로 ‘박태원’이 주인공인 또 한편의 소설이 있었기에 더 그랬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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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0 15:49 2009/06/10 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