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길이는 언년이와의 사랑을 위해 양반과 노비가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하지만 대길이의 이 꿈은 과거에 급제해 높은 벼슬을 한 후에라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꿈도, 실은 도술을 부린 홍길동도 바꾸지 못했기에 실현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송태하는 임금을 바꾸는 것이 아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역모를 도모합니다. 하지만 송장군이 꿈꾸는 세상은 양반과 노비가 없는 세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양반이라는 신분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 같구요.
 
2.
업복이는 양반과 상놈이 뒤집어져 양반을 부리는 세상보다는 양반, 상놈 구분 없이 사는 게 더 좋은 세상이 아니냐고 나지막이 얘기합니다. 자신들을 이용하는 세력들이 만들려는 천지개벽이 결국 지금의 불합리한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면 그건 아니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업복이는 끝내 양반과 상놈, 구분 없는 세상도 좋지만 그 전에 복수는 하고 싶다는 초복이의 말마따나 총을 들고 맙니다.   

 
3.
대길: 네 놈이 무슨 연유로 제주를 갔다 왔는지 모르겠다만 결국 네 놈은 네 놈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거 그거 말고는 없어. 예전처럼 떵떵거리면서 살고 싶은 거겠지.
태하: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는가? 조선의 질서를 바로잡는다며 추노를 한다지만 무고한 백성을 들볶고 왈패처럼 거들먹거렸겠지.
대길: 당연하지.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그래야 살 수 있는 세상을 너 같은 벼슬아치들이 만들었으니까.
태하: 그럼 너는? 단 한번이라도 그런 세상을 바꾸려고 한 적 있었나?
대길: 어이, 노비. 아니지. 노비양반. 홍길동이 알지? 그 놈은 도술까지 부렸는데 이 세상을 바꾸지 못했어. 근데 도술도 못 부리는 내가 이 지랄 같은 세상을 바꾼다?
태하: 세상은 도술로 바뀌는 게 아니다. 사람이 바꾸는 거지.
대길: 언놈이 지랄 연병을 해도 이 지랄 같은 세상은 말이야 절대로 바뀌지가 않아.
태하: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마라. 그런 말을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으니.  
 
4.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의 U(없다)와 topos(장소)의 복합어로서 ‘어디에도 없는 땅’이란 뜻 입니다. 곧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이 유토피아인 셈이지요.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라는 저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꿉니다. 필요한 만큼 일하고, 쓸 수 있는.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구분 없는. 나아가 소유가 필요치 않은 사회를 말이지요. 16세기 혼돈의 영국 사회에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은 이상향’을 놀라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단순한 픽션 혹은 문학으로만 분류되진 않습니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펼쳐냈다는 면에서는 소설임에 틀림없지만. ‘현실’을 고발하고, 부정함으로써 그 세계에 속박됐던 이상을 자유롭게 했다는 면에서. 정치, 경제, 교육, 도덕, 사회체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하고 설계함으로써 사회사상사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출간된 지 500여년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  
 
5. 
드라마라곤 보면서도, 또 봤으면서도 통 어디 가서 얘기 하진 않지만. 꼭 한번 되짚어 보고 싶었던 건. ‘추노’가 보여주는. 결코 양반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들만이 양반, 상놈 구분 없는 ‘유토피아’가 어찌 가능한지를 꽤나 잘 알고 있다는 다소 거북한 설정 때문이었을까요. 아님 그래도 총을 거두었던 업복이가 다시 화약에 불을 댕기지 않았으면 하는 기대 때문일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3/05 10:38 2010/03/05 10:38
1.
기차는 괜찮겠거니, 하고 기차역으로 나갔답니다. 온통 길 막힌다고 난리들이어야지요. 택시라도 탈 요량으로 길을 나서니. 그 많던 차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길은 텅텅 비었는데. 이런. 차가 통 앞으로 나가질 않습니다. 서울 나들이는 새로 길이 뚫리고는 늘 버스였는데 이번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바로 들더군요. 그래 기차역으로 향한 것이지요.   
 
평일 오후인데도 벌써 사람들로 북적북적했습니다. 길이 저 모양이니 다들 역으로 몰린 것이지요. 서둘러 표를 끊으니 12시 50분 차였습니다. 시계를 보니 12시 30분. 택시가 거의 기다시피 했는데도 다행히 시간이 조금은 남았네요. 오늘은 편안히 눈 구경 실컷 하면서 가겠거니 싶습니다. 그런데..... 어째 출발 시간이 10분도 채 남지 않았는데. 개찰구는 굳게 잠겨있고. 가야할 기차는 아직 플랫폼에 들어와 있지도 않네요. 그리고 역무원도 표만 팔뿐 문 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거 어째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2시 50분에 출발한다던 기차가 서울에서 오는 도중에 계속 연착을 하면서 늦어져 결국 1시 30분이 되서야 출발을 했답니다. 그리구요. 겨우 한 정거장. 김유정역에 도착해서는 한 시간 가까이나 서 있기도 하고. 그래 성북역에 도착하고 나니 작은 시계바늘이 4를, 큰 시계바늘은 30에 가까워 있더군요. 12시쯤 집을 나섰으니. 아. 기차라고 다 빠른 건 아니네요. 하지만 한참을 머물렀던 김유정역에서는 눈을 밟으며 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눈보라를 일으키며 지나는 모양새에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백색으로 뒤덮인 산자락들을 보며 황홀경에 빠지기도 하고. 해를 넘겨 붙들고 있던 피터 싱어Peter Singer의 책 <동물해방 Animal Liberation>을 다 읽어 내려갔답니다.   
 
3. 
18세기만 하더라도 노예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그닥 많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대략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채 10살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지요. 물론 여성에 대한 투표권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60여 년 전엔 한 인종이 다른 인종을 ‘청소’하는 일까지도 벌어졌더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습니다. 이 모든 ‘차별’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인돼서도, 용인해서도 안 될 일로 여겨집니다. 노예제도도, 아동노동도, 성․인종 차별도 말이지요. 하지만.
 
산란용 암탉들은 병아리일 때 뜨거운 칼날로 부리를 잘린 채 철사로 얽은 좁은 닭장 안에 밀어 넣어져 밤인지 낮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곳에서 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갓 태어난 새끼 돼지 역시 진통제도 없이 꼬리를 잘린 채 곧바로 성장-급식 시설(growing-feeding unit)로 보내져 도축 무게에 이를 때까지 몸도 돌리지 못하는 좁은 우리에 갇혀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태어난 진 겨우 3일 또는 4일밖에 되지 않은 비일 송아지는 양동이를 통해 젖을 마시기 시작해 철분이 함유됐다는 이유로 반추(反芻 ruminate)하려는 욕구를 차단당한 채 몸집만을 불립니다.
 
두 마리의 코끼리가 사슬로 우리에 묶입니다. 암코끼리는 “LSD 투약 절차와 양을 결정하기위한” 범위-탐색(range-finding) 실험 대상이 됩니다. 코끼리에게는 입으로, 그리고 화살 총으로 약이 투입됩니다. 다음으로 실험자는 2달에 걸쳐 두 마리 코끼리 모두에게 약을 투여합니다. 환각제가 다량 투입된 암코끼리는 옆으로 넘어져 1시간 동안 전율을 일으키며 겨우 숨을 쉽니다. 수코끼리는 LSD를 다량 투입할 경우 공격적이 되었으며 이러한 반복적인 공격적 행위를 “온당치 못하다고(inappropriate)” 서술한 실험자를 공격합니다. 뇌 연구에 생생한 실험도구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원숭이의 두뇌를 몸에서 완전히 떼어내어 유체 내에서 살아 있게 하기도 하고. 머리만을 내밀고 고정되는 장치에 놓인 토끼는 실험자가 집어넣는 (표백제, 샴푸, 또는 잉크와 같은)실험 재료를 눈으로 다 받아내야만 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화씨 113도까지 체온을 올려야 하는 개와 토끼. 한 물질의 독성을 확인하기 위해 강제로 목구멍까지 튜브를 주입당하거나 강제로 집어넣어지는 쥐와 고양이.  
 
싱어는 (극단적으로 장인하거나 냉혹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대부분의 평범한 인간들이 세금을 사용하여 다른 종 구성원들의 가장 중요한 이익을 희생시키는 데 참여하고, 이를 묵인 또는 승인하는, ‘종차별주의’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정당화시키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본적인 도덕 원리에 대한 호소를 통해, 동물 사용을 정당화하려는 노력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의 근저에 대한 논리적 반박을 통해, 종차별주의라는 추상적인 철학적 개념을 선명하고도 분명한, 그리고 구체적인 형태로 드러내 보이는 방법을 통해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책의 울림은 깊으면서도 크고도 강합니다.      
 
3.
온통 눈 천지입니다. 날이 추운 탓도 있겠지만. 서울은 1937년 적설관측 이래 가장 많이 내렸다고 하니. 그친지도 열흘 가까이 되는데도 여적 여기저기 쌓여 있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길이 미끄러워 도통 밖에 나가가기 꺼려지기도 하고. 또 딱히 일이 없는 날이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눈이 꼭 좋기만 한 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눈 구경하겠다고 따뜻한 남쪽에서 조카가 올라오고. 베란다 창밖으로 온통 하얀 나무, 산, 길을 보고 있자니. 그래도 눈이 참 좋습니다.
 
꽤나 많은 눈이 오면 무엇보다도 찻길이며 사람길이며 항시 길이 문제지요. 하지만 길도 길 나름입니다. 서울은 강남 길과 강북 길에 차별이 있고. 모든 길은 찻길이 먼저 치워지고. 달동네 고갯길은 ‘거기까지 어떻게 제설을 합니까’. 하기사 먹고 살기 바빠 아빠, 엄마 모두 일 나가야 하는데 눈 안 치운다고 100만원씩 벌금까지 내라고 하니. 서해안에는 벌써 많은 눈이 내렸고 여기 춘천도 곧 시작된다고 하는데. 이쯤 되면 그것 참. 곱게만 볼 수는 없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14 12:22 2010/01/14 12:22
1.
칠레를 얘기할라치면 미제국주의가 만들어 낸 독재자 피노체트, 그리고 그 독재자에 의해 살해된, 선거로 세워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아엔데 정부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와 같이 쿠테타로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는 제3세계를 되돌아볼 때면 말이죠. 하지만 사회주의 정부를 세우는데 앞장섰던 다른 많은 이들에 대한 얘기는 잘 모릅니다. 이 책 <끝나지 않은 노래 Victor: An Unfinished Song by Joan Jara>에 등장하는 이들. 앙헬, 이사벨 파라 부부, 킬라파윤, 인티 이이마니 그룹의 멤버들, 파트리시오 카스티요, 인민연합을 구성하고 있던 이름 없는 수많은 칠레 민중, 그리고 여기 주인공인 빅토르 하라와 그의 노래와 투쟁을 전해주는 조안 하라가 그러합니다.
 
2.
빅토르 하라(Victor Lidio Jara Martinez 1932-1973)는 칠레, 아니 남미의 살아있는 연극 연출가이자, 민요, 민중 가수입니다. 그리고 하라는 그의 노래들의 가사들처럼 늘 칠레 민중, 남미의 억압받고 착취당하나 끝내 희망을 움켜쥐고 전진하는 민중들과 연대했던 문화운동가였습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내 조국을
노동자 민중의 피로 더럽히려 하네
입으로는 자유를 말하나
두 손은 죄의 흔적이 새겨진 자들
우리들의 자녀와 그 어머니들을
갈라놓으려 하네
그리스도가 졌던 십자가를
다시 지우려 하네
 
그들은 수백 년 동안 대물림해온
수치를 감추려 하나
살인자의 표지들은
그들의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네
이미 수천 수만 명이
그들의 피를 희생으로 바쳐
그 흐르는 피의 강(江)이
빵 덩어리의 숫자를 불려왔건만
 
이제는 나는 살고 싶어라
내 아이와 형제와 더불어
우리 모두가 매일매일
건설하고 있는 새 세상에서
너희들의 위협도 나는 두렵지 않다
비참함의 주인들 너희들이여
희망의 저 별은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것이니
 
민중의 바람이 나를 부르고 있다
민중의 바람이 나를 실어간다
그 바람은 내 가슴을 열어젖히고
내 목을 통과해서 불어간다
그래서 시인의 음성은 들리게 되리라
죽음이 나를 앗아갈 때까지
민중이 가는 그 길을 따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 「민중의 바람」(<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 pp.293-294)
 
또 하라는. 죽음을 앞둔 그에게 기타를 던져주며 노래를 불러보라 조롱하던 그 순간에도 민중의 노래를 끝내 부르고야 말았던 혁명가였습니다.
 
3. 
90년대 초반, 대학에 갓 들어간 어느 날. 도서관 앞에서 벌어졌던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던 선배들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더랬습니다. 국기에 대한 맹세는커녕 애국가조차 부르지 않다니. 그리고는 움켜진 주먹을 하늘로 뻗으며 난생 처음 듣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좀 나중에야 알았는데 이걸 ‘민중의례’라 했습니다). 엊그제 입학식 때만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노래도 노래지만 선배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찌나 굳어 있던지요.
 
그 후로 학생회실에서, 대성리로 갔던 첫 MT에서, 지랄탄이 어지럽게 구르던 종로 거리에서. 이제까지 들어왔던, 불러왔던 노래들과는 전혀 다른, ‘민가’로 속칭했던 ‘민중가요’란 걸 ‘대중가요’ 보다 더 많이 듣고, 또 부르게 됐지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임을 위한 행진곡」*
 
4.
MB이 공식 석상에서 공무원노조의 ‘민중의례’에 대해 한마디 했다고 하지요. 그리고 MB의 이 한마디에 곧장 행정안전부는 징계 회부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민중의례’가 무에, ‘공무원 품위에 떨어진다’고 그러는지 말입니다. 참말로 궁색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저들은요.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이유를 들어가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건요.
 
그래요. MB은 알고 있는 겁니다. 노래의 힘을 말이죠. 그것도 민중의 분노와 의지가 담긴 노래라면 더 그렇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독재자 피노체트도 칠레의 음악혁명가 빅토르 하라를 그렇게, 다시는 기타를 치지 못하도록 손목을 꺾으면서까지 죽였던 것이구요. MB 역시 공무원 노동자들이 민중의 편에 서는 걸 막아보려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지요. 
 
*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에서 따온 것인데요. 1982년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있었던 광주민중항쟁 시민군 대변인 故 윤상원과 故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서 처음 빛을 봤습니다.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의 폭정으로 작곡을 했던 김종률 씨는  수차례 수사기관에 끌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하구요. 백기완 선생의 싯구절을 따 작사를 한 소설가 황석영 씨는 광주 운암동 산중턱에 있던 자신의 집에서 비밀리에 카세트레코더를 이용, 녹음할 수 있게 했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집회는 물론이고 각종 행사와 회의 시작 전, 국민의례를 대신해 불리고 있으며, 민중의 희망을 위해 싸우다 먼저 산화해간 열사들에 대한 묵념과 함께 ‘민중의례’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1/23 10:06 2009/11/23 10:06
<범우고전선 가운데 8번째이네요. 1987년 개정 4쇄판으로 읽었답니다>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동시대를 살았던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과 함께 17세기 영국 청교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에게 이런 명성을 가져다 준 책이 바로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입니다.
 
하지만 <천로역정>은 그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어떤 의도(意圖)에 따라 저술된 것이 아니라 일련의 여러 사건들을, ‘거룩한 땅’으로 안내하기 위해 짜 맞추듯 늘어놓고 있어 보기에 따라서는 도식적이다, 거북스럽다, 느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로역정>이 존 번연의 대표작이라는, 단순한 종교서적으로 특정인들 사이에서만 읽혀진 것이 아니라,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걸작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이 쓴 <인간의 권리 Rights of Men>와 더불어 영국 노동계급 운동의 양대 기본 문헌 가운데 하나로 널리 읽혔기 때문입니다(E.P. Thompson,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나종일 외 옮김 p.44). 즉, <천로역정>은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고난과 역경을 넘어 ‘천성(天城)’에 당도한다는, ‘신앙의 문제를 우화(寓話) 형식으로 형상화한 종교소설’을 뛰어넘어 ‘1790년에서 1850년까지의 노동계급 운동의 기본 바탕을 이룬 이념과 입장의 형성에 가장 크게 기여(<영국노동계급의 형성> pp.44-45)한 ‘복음서’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천로역정>에 등장하는 무수한 비유(譬喩)들 속에서 ‘18세기를 통해 내내 보존되어 19세기에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터져 나오곤 했던 잠재된 급진주의(<영국노동계급의 형성> p.44)’의 흔적들을 읽어내기란 녹녹치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혹 그런 흔적들을 읽어냈다손 치더라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과장된 감동, 현세에 복종적인 태도, 개인적 구원에 대한 자기 중점적 추구(<영국노동계급의 형성> p.49)’,들을 보고 있자면 역시나 종교소설이라는 틀을 벗겨내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무래도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17세기와 18, 19세기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배경에 대한 또 다른 읽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할 때에야 비로소 <천로역정>을 특정인들 사이에서만 읽히는 ‘복음서’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10/30 12:37 2009/10/30 12:37
1.
나이가 있으시니 그러게도 하겠지, 싶다가도 어머니 스스로 뭐든 돌아서면 깜빡깜빡 잊으신다는 말씀에 적잖이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누구는 화투를 친다고도 하고, 노인대학에 다닌다고도 하는데. 친구 분들과 함께라면 모를까. 선뜻 이건 어떨까요, 하고 말씀드리기가 조금은 망설여지더라고요. 또 모 방송에선 그림그리기가 좋다고도 하는데, 그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 건지 막막한 게 또 선뜻 권하기가 쉽지 않구요. 그래 고민고민하다. 그래도 주일이면 빠짐없이 성당에 다니시고. 아침, 저녁으로 묵주기도에 때마다 거르지 않고 이런 저런 기도를 올리시는 게 떠올라 성경쓰기는 어떨까. 그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침, 저녁 기도하시고 난 후 성경 쓰기를 하시는 건 어떤가, 하구요. 물론 점잖게 말하지만은 않았어요. 뭐든 대답은 잘 하시는 데 나중에 보면 잘 하지 않으시는 게 많았거든요. 해서 다음에 어머니 집에 가게 되면 노트 검사를 하겠다, 하루라도 빠졌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춘천으로 오겠다, 협박(?)아닌 협박까지 했답니다. 헌데. 다음 날이던가요. 바로 공책을 샀다고 하시는데. 이만하면 성공이다, 싶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
예수를 생태적, 평화적, 여성적, 민주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그의 말과 행동을 기록한 성경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기독교이든 천주교인든, 잘은 모르겠지만 수십여 개에 달한다고 하는 그 많은 교단들이 제각기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는 걸까요. 독일의 환경상인 ‘황금제비상 Golden Schwalbe'과 ’유럽태양상 Europaischer Solarpreis'을 수상한 바 있는 독일의 언론인 프란츠 알트 Franz Alt 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한 권 책에 담았는데요. 예수와 관련된 부분들을 걸러서 읽게 되면 그저 여느 환경관련 책과 다를 바가 없지만요, 논리적이지 않으면서 게다가 전혀 신학적이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예수의 말과 행동을 쫒아가며 위기의 시대를 극복할 전망을 제시하는 데에 우직함이 엿보이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간단명료하다 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지성적이라기보다는 실존적인 것이고. 그러하기에 생태적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을 공부할 필요조차 없다. 그저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태양과 바람, 물, 성장, 사랑, 신뢰에 대한 예수의 생태적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어떤가요. 감이 좀 오나요. 잘 모르겠다구요. 그래요. 쉽지는 않습니다. 생각건대 전부터 예수의 말을 믿고 따랐던 이라면 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말로 450쪽이 넘는 이 두꺼운 책을 꼼꼼히 읽다보면 말이죠. 서울을 봉헌하겠다던 이가 믿는 예수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른 예수가 이만치 다가오는 걸 느끼실 겁니다. 
 
3. 
추석이 다음 주라 곧 뵙기는 하겠지만 주말에 의정부엘 다녀왔습니다. 이미 지난주에 다치셨다는데 통 말씀을 하지 않으시니 모르고 있다, 엊그제서야 그걸 알게 돼 급하게 다녀온 겁니다. 다행히 다치신 곳은 꾸준히 병원에 다니신 덕에 얼굴은 좋아 보이셨지만 가뜩이나 어깨가 아픈데다 갈비뼈를 다치셔서 팔을 쓰시기가 여간 불편해 보이더라구요. 그래 기차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어데 웬간하면 지난번에 약속한 성경쓰기를 하셨나, 노트 검사를 하려 했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냥 접고 말았지요. 그리고 보기엔 한 달은 넘어야 겨우 다니시는 곳도 나갈 수 있으니 당분간은 말도 꺼내지 못할 듯한데. 그 순간 성경에 손길이 가는 건. 좀 전에 손을 땐 알트의 이 책 때문 만이었을까요. ‘씨를 뿌리는 사람은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누가복음 4장 14절의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09/30 12:35 2009/09/30 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