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합리주의’ 또는 ‘합리성’이라는 말을 쓸 때 아주 당연하다는 듯 ‘서구’, ‘서구적’, ‘서양’과 연관 짓습니다.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동양’, ‘동양적’이라는 말을 쓸 때는 ‘지혜’이니 ‘정신’이니, ‘도덕주의’를 떠올리는데요. 이런 생각들은 한편으론 ‘합리성’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그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론 ‘합리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양’이니 ‘서양’이니 하는 말이 갖는 이분법도 그렇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이런 방식으로 나눈 다는 것이 정말 맞기는 한 건가요. 
 
그럼에도 학문적, 지적 세계에서나 전통, 혹은 문화의 측면에서나. 이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이분법 또는 서양의 ‘합리주의’에 대응한 동양의 ‘지혜’ 혹은 ‘도덕주의’는, 생각보다 꽤나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환경위기를 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니 말이지요. 물론 이런 생각들이 우연치 않게 드러난 것인지 아니면 진짜 속마음이 이런 ‘정신’들로 나타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환경위기를 바라보는 두 시각. 참 많이도 다르면서 같다는 걸 보여줍니다.
 
2.
<원은 닫혀야 한다: 자연과 인간과 기술 The Closing Circle: Nature, Man, and Techonlogy>을 쓴 카머너 B.Commoner 는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지구를 부수지 않고 사는 방법 CHIKYU WO KOWASANAI IKIKATANO HON>를 쓴 쓰치다 다카시槌田劭 는 공학부를 나왔구요. 전공 분야는 생물학과 금속물리학으로 다르지만 둘 다 현대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 가장 큰 밑바탕이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한 사람이 ‘시험관 속에 격리된 분자를 연구해서 현대생물학의 방대하고도 상세한 문헌들을 축적해 왔다. 그러나 이런 분리된 자료로는, 예컨대 호수의 생태나 그 취약성을 설명할 어떤 종합적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원은 닫혀야 한다> p.24), 또 한 사람은 ‘지하자원에 빌붙어 움직이는 문명이라는 게 한마디로 자신의 어머니를 해치고 그 체내에서 피를 훑어 내가며 사는 듯한 일’(<자연과 더불어 지구를 부수지 않고 사는 방법> p.129)이라며 현대 과학을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그리고는 끊긴 생명의 ‘원’을 다시 닫자, ‘순환’의 삶을 살자, 합니다. 어째, 이만하면 과학계에 이단아들 같지 않나요.
 
하지만 이 두 사람. 카머너가 이리호, 일리노이주, 로스앤젤리스를 돌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 본질을 파헤치듯. 다카시 역시 아시오足尾 동(銅)광산, 도쿄, 말레이시아 사라와그나 사바주를 얘기하며 푸른 지구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살펴보는 데에서는 과학자임에 틀림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다카시가
 
주스를 마시면 빈 깡통이 남지요. 슛 - 하고 쓰레기통에 던집니다. 이 쓰레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처분될지 모르면서도. 우리가 학교에서, 집에서, 거리에서 내놓는 쓰레기는 누군가가 어딘가로 가져가 줍니다.
p.41
 
와 같이 쉽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쓰는 데 반해 카머너는 좀 딱딱하지요.
 
생태학의 제2법칙:
모든 것은 어디엔가로 가야 한다
이 법칙은 물론 물질은 파괴될 수 없다는 물리학의 기본법칙을 딱딱하지 않게 다시 써 본 것이다. 이 법칙은 생태학에 적용하면 자연에는 <쓰레기>라는 것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p.42
 
또 카머너가 ‘환경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공업화된 나라들의 사람들이 <풍요한> 생활방식을 포기할 필요가 있으리라는 것을 반드시 뜻하지 않는다.’(p.293)고도 말하고, ‘다분히 인간 개인의 사실상의 복지보다는 생태학적으로 잘못되고 사회적으로 낭비적인 생산유형을 반영한다.’(같은 쪽)고도 하며, ‘기술의 목적이 어떤 외견상 접근하기 쉬운 부분에로가 아니라 생태계 전체로 방향지어진다면 적절한 과학지식으로 잘 인도될 때 기술은 생태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음’(p.188)을 얘기합니다.
 
반면 다카시는 ‘공해문제의 기본은 오염원 대책(汚染源 對策)입니다. 쓰레기 공해문제의 오염원을 끊어버리기 위해서는 상품생산을 규제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p.48), ‘그러므로 용기와 지성을 가지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이기주의와 찰나주의, 눈앞의 것과 자기의 일밖에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것은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p.85)라고 말하지요.
 
3.
중세 서양,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 ‘정신’은 베버((Max Weber)가 말한 “근대 서양의 독특한 합리주의라는 세계사적 현상”으로 자본주의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이 원동력은 자연에 대한 지배 질서까지도 창조해내지요. 결국 인간 ‘정신’은 ‘진보’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채 지구별을 망가뜨리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동양의 ‘정신’은 ‘이성’과는 매우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나 합리화를 넘어서려는, 적극적이고도 창조적인 활동보다는 전통 속에,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성질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근본주의’가 갖는 한계 역시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두 책, 그리 꼭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어울리며 대화를 하다보면 길이 보일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드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10 21:21 2010/08/10 21:21
1.
어렸을 적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할부로 들여놓은 책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세계문학전집이니 어린이명작동화니 뭐 그런 것들 말이지요. 그리고 그 중에는 ‘위인전’이란 것도 있었습니다. ‘이순신’이니 ‘강감찬’이니 하는 ‘장군’들 얘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암튼 대략 50권은 돼 보이는, 보통 한질이라고도 하는 이 문집을 몇 날 며칠 밤새며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유난히도 ‘장군’들이 많이 등장한 건. 총, 칼로 정권을 찬탈한 군인들이 자신들의 취약한 정당성을 과거 ‘국난극복’의 우상들을 내세워 어찌어찌 희석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가난이란 게 뭔지 쬐끔은 알았던 나이였던지. 어머니께서 큰맘 먹고 사놓은 그 책들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었지요. 다른 친구들은 읽고 나면 눈물까지 흘리며 감동을 받았다고 하던데. 도통 감명 따위 같은 것은 눈곱만치도 생기지 않으면서도 말입니다. 
 
2. 
머리가 굵어지고 다시 위인전이란 걸 접하게 된 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본명은 장지락(張志樂)으로 평안북도 용천 출생. 중국 공산혁명을 통한 조선 독립 운동에 몸을 던졌던 김산의 삶을 기록한. 그 역시 1930∼40년대 중국을 누비며 모택동의 대장정에 참가했던 님 웨일즈가 쓴 <아리랑>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땐 어릴 적 기억 때문이었는지, 뭐 대단한 재미가 있으려니 싶었지요. 하지만 읽는 내내, 또 두 번, 세 번을  읽어도 똑같이 느껴지던 전율. 그래요. 그거야 말로 ‘감명’, ‘존경’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3. 
선거철이 되면 여기저기서 출판기념회가 열리고는 하지요. 출마예정자들이 합법적인 선거운동 기간 전에 자신을 알리기 위해 이런 저런 책들을 내놓기 때문이지요. 머. 대부분이 자기들 돈 내고 하는 일이니 뭐라 욕할 순 없지만. 선거 때만 나타나 굽실굽실하는 꼬락서니들에, 선거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배지 달고 으스대는 모양새까지. 그 모든 걸 다 적어는 놓았는지 궁금하지도 하지만. 또 그 많은 책들 가운데 과연 자기가 쓴 글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에세이나 회고록, 대담 등은 그래도 좀 봐줄만 하지요. 자서전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일 아닙니까.
 
4. 
요즘은 어떤 책을 읽어도 그렇게 감명을 받거나 깊은 인상을 받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메말라졌다고도 할 수 있고. 또 조금은, 아니 세상 물이 많이 들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금처럼 책을 읽는 다는 건. 그저 글자를 읽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래도 손에서 책을 놓지는 않습니다. 이것저것, 장르를 따지지 않고. 에세이를 읽기도 하고, 소설을 읽기도 하고. 천문학 책을 뒤적이기도 하고, 여행기를 사 보기도 하고. 또 <주은래>(司馬長風 지음, 태창문화사. 1979),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시몬느 뻬트르망 지음, 까치. 1978)와 같이 헌책방에 발견한 ‘위인전’도 보면서 말입니다.
 
5.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본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을 반성할 수도 있고. 같은 뜻이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을 계획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고. 모두가 본받아야 할 삶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관계를 맺고, 그러다 어떻게 죽어갔는가, 뭐. 그런 것들을 알고자 하는 것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감동’, ‘존경’, ‘감명’들과 같은, 마음을 움직이는 삶을 살았던 이들을 보며 한 방울, 눈물 떨어뜨릴 수 있는 시간. 그거면 충분한 건가요. 만약 이런 기준이라면 최근에 읽었던 ‘위인전’, <주은래>와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이 두 책 가운데 한 권만 해당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네요. 아, 그렇다고 ‘주은래’의 삶이 ‘감동’, ‘존경’과 같은 말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주은래>를 쓴 사람이 ‘주은래’의 한쪽 모습만을 들여다봤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일 뿐이지요. 해서 이번 기회에 다른 이가 쓴 책들을 찾아보기로 했답니다. 반대로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는 앞에 기준들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이 책 역시, 쓴 사람이 시몬느를 ‘성자’의 이미지로 지나치게 그리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 시몬느 베이유가 살아왔던 시간들을 꼼꼼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또, 그녀가 남긴 많은 글들을 굳이 다 읽지 않더라도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값진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7/14 14:48 2010/07/14 14:48

1. 

처음 이 책을 헌책방(금호동에 있는 <고구마>) 환경관련 코너에서 발견했을 땐. 제목만 봐선 꼭 ‘인디애나존스’류의 탐험 이야기거나. 고대 이집트 문명 소개서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흘깃 보니.

 

존 웨인에서 시작해 게리 쿠퍼, 험프리 보가트, 록 허드슨, 율 브린러와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고. ‘리오 브라보 Rio Bravo’, ‘역마차 Stagecoach’, ‘정복자 The Conqueror’ 등의 영화 제목들이 나오는 게.  

 

당체 뭔 책인지 알 수가 없더라구요.

 

2.

이 책도 역시 헌책방(외대 앞 <신고서점>) 환경관련 코너에서 발견했습니다. 도서출판 따님에서 환경신서 다섯 번째로 펴낸 책으로 제목만 봐도. 역시 내용을 흘깃 봐도.

 

“전쟁놀이의 방법과 거기에서 생겨난 계획 기술을 민간부문에 응용하는 것”(이 책 p.88)이 “계획 단계부터 실제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옹호해야 하는 것”(p.96)으로부터 출발해 “기업의 계획에 대한 신뢰를 흔들지도 모르는 약점과 틀린 계산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침묵 의무가 관철”(p.148)되고, 심지어 “필요한 경우에는 말을 너무 안 듣는 시민을 실제로 미치게 만드는 것도 불가능의 영역에 놓여 있지 않은 것처럼”(p.197)되어 마침내 “우리는 수십 년 뒤에 반도 전체를 완전히 봉쇄하고 구제불능이라는 판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p.77)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가 있었습니다.

 

3.

존 웨인의 ‘정복자’는 1954년에 유타 주의 사막 한가운데서 촬영됐습니다. 하지만 220명이나 되는 스태프와 캐스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페이유트 족의 한 부족인 인디언과 시비위트 족의 엑스트라 3백 명은 거의 모두가 암, 백혈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리고 <왕가(王家)의 골짜기> 149쪽에서 151쪽, 215쪽에서 219쪽에 나열된 영화배우와 스태프, 핵실험에 참가했던 군인들, 서부 3주(네바다, 유타, 애리조나)의 주민들이 똑같은 병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원자력 제국: 반생명적 기술 핵에너지의 본질>은 ‘네바다에서의 핵실험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과 히로시마 희생자와의 대화를 계기로 파괴적인 기술’인, 원자력이라는 이름을 그럴듯하게 포장된 핵기술의 이면과 정치, 사회적인 의미를 광범위한 조사와 면접, 인터뷰 등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히로세 다카시와 로버트 융커, 그리고 <원자력 제국>과 <왕가의 골짜기>를 잇고 있는 것은 네바다입니다. 정확히는 네바다에서 행해진 대기 중 핵실험이지요. 세상에 밝혀진 것만 모두 97회에 달하는 핵 혹은 수소폭탄 실험 말입니다.

 

4.

대체 우리나라는 언제부터 핵 기술을 사용하게 됐는지 자료를 찾다가 참 재미난 기사(http://gonggam.korea.kr/gonggamWeb/branch.do?act=detailView&type=news&dataId=148686981&sectionId=gg_sec_21)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 내용을 흘깃 봐도 알 수 있듯이. 뭐, 우리나라 원자력 개발 역사를 쓴 건데요. 내용이야 뭐 소개할 것까진 없고. 말미에 이런 말이 쓰여 있던데요.

 

“한국 원자력발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독재자로 불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에 발전해오다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맞아 국산 원전 첫 수출이란 엄청난 ‘방점(傍點)’을 찍게 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이명박. 일부러 이렇게 연관 지은 건가요? 아님 꼭 그런 계보를 잇게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건가요? 무슨 얘길 하고 있는지, 알쏭달쏭합니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6/13 20:40 2010/06/13 20:40
1.
선거철입니다.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홍보영상물이며 연설이 흘러나오고. 색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노래에 맞춰 이리저리 몸을 흔들고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으니요. 또 되도 않는 공약(空約)과 사탕발림 말잔치로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몇 달 전만해도 어림도 없다는 식으로 치부했던 무상급식이며 무상교육을 뻔뻔히 자기네도 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선거만 끝나면 통 보이지도 않는, 어깨에 힘 ‘빡’ 들어가는 동네 유지들을 보고 있자니요.
 
여기 강원도로, 춘천으로 오고 나서 첫 선거이니. 관심이 꽤나 갑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진보정당 혹은 시민운동 활동들이 있어서였을까요. 은근히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 후보들이 있나 살펴보게 되더라구요. 그리구. 그래요.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표 찍는 것이 민주주의의 전부인 양 선전해대는 보수 언론들. 정치꾼들. 그래서 이런 선거는 의미가 없다, 고만 하기엔. 삶이 너무 팍팍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때론 신자유주의자들과 손을 맞잡는 정치적 자살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2.
종종 생태학과 경제학은 서로 상극인 것처럼 얘기되곤 합니다. 하지만 프란츠 알트가 쓴 <생태적 경제기적>의 추천사를 쓴 헤르만 세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삶에 대한 원초적인 물음, 즉 ‘현재와 미래의 인간 존재를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이해의 출발로 ‘생태학’은 지구상의 외적인 조건이 지속적이고 믿음직하게 작용하는 것, ‘경제학’은 이 조건을 조직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라 한다면 경제와 생태 사이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둘 사이의 화해가 중요한 것도 아니며 단지 나쁜 경제와 좋은 경제, 즉 생태적인 경제와 비생태적인 경제 사의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경제는 생태의 하위 부문이다. (<생태적 경제기적>, 프란츠 알트, 6-7쪽)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생태라는 것이 그저 자연을 보호하자, 자연을 그대로 두자, 는 것은 아닐 겁니다. 그것은 인간의 삶이, 자연과 조화로운 삶이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시각을 바탕으로 한 생태적인 노동, 태양에너지로의 전환, 생태적 교통정책, 생태농업을 통한 완전고용이라는 주장은. 생태를 경제보다 우선시하는. 생태를 경제의 상위 부문으로 위치지우는 일이구요. 또한 작금의 경제위기를, 대량실업의 사회를 극복하는 길은 생태적인 상상력을 활짝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지구적인 생태적 사고와 윤리를 기반으로 생태적인 경제기적을 이룩하자’는 알트의 주장은 금세 큰 울림을 얻습니다. 
 
3.
너도나도 경제 이야기입니다. 보수꼴통들도 경제를 살리자, 진보정당들도 경제를 살리자. 누가 베꼈는지 모를 정도로 기업 유치에, 일자리 창출, 대규모 국책 사업, 초고층 아파트 건설까지. 어찌 이리도 한결 같은지요. 한편으론 살기가 참 팍팍하다, 는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대체 언제까지 이 죽일 놈의 ‘성장’, ‘개발’, ‘건설’이 화두가 되어야 하는 건지요. 하긴 강원도 도지사로 나섰다는 이가 여전히 “자연보호가 중요하지만, 쑥부쟁이 때문에, 전국에 수억 마리가 있는 도룡뇽 몇 마리 죽는다고” 설쳐대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요.
 
원자력대신 태양광, 바람, 물, 바이오매스로부터 얻어지는 에너지로의 전환을 이야기하고, 자동차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 교통수단 말고 철도와 버스, 자전거에 더 많은 돈을 쓰자는, 토양과 물과, 공기와 동물, 식물과의 평화로운 생태농업에서 미래를 보자고 말하는 이들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노동이 아니라 영적인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노동하자는 후보자들은. 정말 없는 것인지요.      
 
모처럼 바람 쐬러 갔다 왔더니 어느새 아파트 입구 담벼락에 한결 같은 얼굴 표정들이 끝 간 데 없이 늘어서 있더군요. 그리고 플래카드도 부쩍 늘었구요. 조용히 책이라도 볼라치면 언제 나타났는지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선거일이 가까워질수록. 저 아까운 플래카드들 다 걷어다가 내년 농사지을 때나 쓰면 딱 좋겠다는 생각만 드니. 이러다 이거 선거 때, 산에나 가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5/26 13:13 2010/05/26 13:13
1. 
아주 오랫동안 여성노동자들은 억압과 착취의 가장 직접적이면서 일차적인 대상으로 존재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이 ‘경제기적의 시대’라 칭송받을 만한 때였는지 심히 회의감이 드는 1970년대. 그래요. ‘산업역군’이란 허황된 이름아래 노동권은커녕 생존권도 보장받지 못한 생존의 길목에서 그 시대를 올곧이 견뎌냈습니다. 그리고 그이들은 이 절망의 시대에도 희망의 물을 길어 올렸고. 끝내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을 만들어냅니다. 여기 YH노동조합과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여성노동자들이 말이지요. 
 
2.           
 
이어 호소문이 낭독되었다. “이제부터 어머님의 약값은 누가 댈 것이며 동생의 학비는 누가 보탤 것입니까 … ” 이순주 부지부장은 눈물로 목이 메어 끝까지 읽지를 못한 채 오열했다. 이어 김경숙 상집위원(경찰 침임 때 추락하여 사망 함)이 하늘을 찌를 듯한 목소리로 결의문을 읽었으며 박사무장의 성명서 낭독을 끝으로 종결대회를 마쳤다. 눈물범벅이 된 조합원들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동지들의 몸을 부둥켜안고 떨어질 줄 몰랐다. 조합원들의 뜻은 “우리의 직장을 정상화시켜 달라”는 것이었고 “죽음으로 투쟁한다”는 것이었다. , 전YH노동조합/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 엮음. p.198.

 
1966년 자금 100만원, 종업원 10명으로 시작한 작은 가발공장은 밀어닥치는 가발수출의 호경기와 정부의 수출 정책에 힘입어 불과 2년 만에 면목동에 5층 건물을 지어 본공장을 이전하고 1970년에는 국내 최대의 가발업체가 됐습니다. 바로 장용호라는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따 이름 지은 YH무역 주식회사입니다. 장용호는 당시 수출실적으로 대통령표창, 동탑산업훈장까지 받기도 하는데요. 1970년 진동희를 사장을 앉혀놓고는 미국으로 건너가 용 인터내셔널 상사를 설립, YH 제품을 수입 판매합니다. 국내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내 상품을 만들어내면 이를 외상으로 수입해 판매함으로써 이중으로 치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장용호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겠지만 이로 인해 회사는 급격한 하향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이때,
 
YH무역 노동자들은 1974년 5월 24일 서울역 앞 우남빌딩 섬유노조 본조 회의실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합니다. 회사와 유신독재정권의 비인간적인 처사와 노동 착취, 휴 폐업에 맞서기로 한 것이지요. 하지만 YH노동조합의 목숨을 건 투쟁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합니다. 독재정권의 비호아래 막대한 외자를 빼돌리고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만 열을 올린 나머지 부채와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간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와 박정희 정권은 YH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노동조합이 강하기 때문에 회사가 망한다”, “노동조합이 있어서 다른 기업에서 인수를 꺼린다”는 악의적인 헛소문을 퍼뜨립니니다. 결국,
 
YH 노동자들은 김경숙 조합원이 공권력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린 신민당사로 향하게 됩니다.
 
3.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들이 무참히 학살을 당하던 1980년 5월 말. 숨 쉬는 것 말곤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암흑의 시기. 학살당한 이들을 위해 모금운동이라는 무모한 짓거리를 벌인 이들이 있었습니다. 영등포 대림동에 자리 잡고 있었던 원풍모방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바로 그이들입니다. 당시 1,700여 노동자들은 모금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4백 70만원이라는 돈을 모아 천주교 광주교고장 윤공희 대주교에게 전달을 했는데요. 원풍모방 노동조합이 걸어왔던 그 1970년대를 돌이켜보자면 이 무모한 짓거리가 가능했던 건. 그렀습니다. 그만큼 전설적인 노동자들이었지요.
 
원풍모방 노동조합은 비상사태가 선포돼 단체행동이 일절 금지되었던 1972년, 파업농성을 통해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민주노조를 출범시켰습니다. 이후 노조는 회사가 부도위기에 처했던 1974년에는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권력에 빌붙어 되레 노동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데 앞장서고 있던 섬유노조 본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하며 싸움에 나서기도 합니다. 허나.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까지 권력에 집착하고 있던 신군부가 ‘노동계 정화조치’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민주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의 표적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곧 지부장과 부지부장은 수배가 떨어지고 간부들은 삼청교육대로 끌려갑니다. 회사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도산(都産)이 들어오면 도산(倒産)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퍼뜨리며 조합원들을 흔들어댑니다. 결국 원풍모방 노동자들은 한가위 달이 환하게 비추는 가운데 수백 명의 사복경찰들에게 쫓겨 회사 앞 6차선 도로를 맨발로 내달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새벽 5시경, 드디어 작전은 개시되었다. 수백 명의 폭력배들이 야수처럼 달려들어 끌어내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농성장은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사람 살려!” 울부짖는 소리, 뒤를 돌아보니 아, 소름이 끼쳤다. 눈이 뒤집혀 있는 폭력배들,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었다. 조합원들은 온 힘을 다해 악착같이 버티었다. 끌려가면 안 된다. 다시는 못 돌아올지도 모른다. 결코 끌려가면 안 된다. (중략) 때 아닌 추석날 새벽 대림동 바닥은 비명과 통곡의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쫓겨 달리는 대림동 육교 위에 펄럭이는 ‘선진조국창조’라는 플래카드는 딴 나라 얘기인가? 난리도 그런 난리는 없었다. 구경꾼마저도 없는 조상대대로의 명절날 새벽에 차도 한가운데에서 광분한 늑대에게 쫓기는 양떼마냥 조합원들은 맨발로 달리다 새벽예배를 보기 위해 훤하게 불이 켜진 예배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민주노조 10년: 원풍모방 노동조합 활동과 투쟁>, 원풍모방 해고노동자 복직투쟁위원회 엮음. pp.302-303.
 
4. 
올해도 지하철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시간당 4,110원인 최저임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길거리에서 몇 날을 새울 겁니다. 하긴 노조를 만들기 전엔 화장실에서 숨어 똥 누는 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어야했던 여성노조 인천지부 인하대분회 여성조합원들을 생각해보면 길거리에서 일 년을, 십 년을 더 싸워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수세력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나선 2010년의 풍경들. 이 땅에 여성노동자들은 경제성장의 기적을 얼마나 더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07 13:58 2010/04/07 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