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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남편을 둔 어머니들에게 재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부재혼(寡婦再婚)에 따라 자식들은 몇 번이고 새로운 이름을 새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죽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금기가 됐고, 어머니의 새로운 남편은 얼마나 딸들이 생기느냐에 따라 사회적 성공 여부가 결정됐습니다. 여자들은 채 10살이 되기도 전에 늙은 남편과 결혼이 정해졌고 심지어 어머니 배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짝이 맺어지기도 했습니다. 남자들은 24살 또는 25살이 되기까지 후견인으로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30살, 아니 40살이 될 때까지도 아내를 맞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혼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티위사람들’이 서구 학자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대부분의 문화인류학 연구들이 그렇듯 하트C.W.M. Hart와 필링Arnold R.Pilling이 각기 1928년에서 30년까지 그리고 1953년에서 54년까지 ‘연구’한 성과로 펴낸 <The Tiwi of North Australia> 역시 연구자의 시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자 서문에는 ‘다양한 민족지들을 접하게 함으로써, 인류학이라는 연구 분야의 참다운 성격 그리고 인류학 연구에서 그 핵심이 되는 문화(文化)라는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또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p.5)라고 인류학에 대해 옹호하고 있지만. 좀 심하게 말하자면. 실은 그 다양했던 문화가 단일한 서구 문화로 수렴되고 만 것에 대해선 외면하면서. 그저 ‘티위사람들’과 티위 문화에 대해 추억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권력은 건들이지도 않으면서 ‘문화상대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얄팍한 추억(1954년 여행을 온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춤을 추기 위해 퀸즈랜드로 보내어 진 호주 북부지역 원주민들과 ‘티위사람들’이나 미국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티위 춤을 즐길 날이 오리라고 기대되는 일처럼 말이지요. p.150)과 약탈한 문화들로 가득 채운 거대하고 화려한 박물관들뿐인 셈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트와 필링이 그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는 건 억울한 일일 겝니다. 그들이 관찰한 대로 ‘티위사람들’이 가진 문화가 파괴되고 사라진 건. 일부일처제를 위해 어린 여아를 사들인 카톨릭 신부, 철과 젊은 아내들을 맞바꾼 일본인 진주 조개잡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마구잡이로 노예를 잡아들인, 식민지 개척 경쟁에 뛰어든 유럽인들일 테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학계가 ‘침묵의 카르텔’로 권력과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일처럼, 아무 상관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모든 문화는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문화란 고정되거나 단일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사라진 것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이름을 유지하고자 할 뿐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셀Gsell신부를 속인 폴리Polly처럼. <티위사람들>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폴리와 결혼한 카바지가 담배를 얻기 위해 새로 혼인한 젊은 다른 여인을 신부에게 준 것처럼, 한 문화가 어떻게 사라지고 파괴되는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인류학, 문화인류학 ‘연구’성과들만큼이나 그래서 뭘 얘기하는 거지, 대체 어쩌자는 거야, 책을 다 읽고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일 겝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리 먼 길도 한 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장 지오느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에 등장하는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도토리나무를, 자작나무를, 떡갈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환경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아주 소중한 실천이 될 수 있겠습니다. 뭐, 나무가 잡아두는 이산화탄소야 나무가 살아있을 때나 유효한 것이니 별 소용이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가 단순히 숲을 가꾸고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사라지고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일이라면. 지배와 착취라는 인관-자연 관계를 새롭게 바꾸는 일이라면 말입니다. 한 무더기 도토리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정성껏 골라 땅에 쇠막대기로 구멍을 파고, 심고, 덮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과학이 인간 문명을 이끌고 진보라고 하는 업적을 쌓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과학 연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얼마나 될까요? 또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미술관에 가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일까요? 과학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로 간주하거나 단지 수동적이고 동기화가 미약하며 ‘우발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과학과 대중이 만날 때.....』, p. 239)까지 이런 물음에는 선뜻 답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춘천을 떠나며 산 책>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이 활개를 치면서. 동네 서점은 학습지 판매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판국인지 오래됐습니다. 일, 이백 원도 아니고 몇 백 원 또는 몇 천 원씩 싸게 파는 마당에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당장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틀이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을 찾아 가는 게 되레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돼버렸지요. 그래도 부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보는 재미며. 동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이 다 있네, 하며 반갑게 들쳐보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는. 아무래도 동네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겠지요.
춘천에도 꽤나 큰 서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ㄱ문고니, ㅇ문고니, ㅂ어쩌고 저쩌고는 아니지만. 나름 본점에 지점까지 하나, 둘씩은 갖고 있었으니. 분명 큰 서점임에 틀림없지요. 하지만 춘천이 서울이나 하겠습니까. 그 큰 서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동네 서점들보다야 크긴 크지만. 말이 좋아 지점도 있는 큰 서점이지. 겨우 서가 한 켠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들. 한 층을 온통 차지하고 늘어선 초.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수험서들을 보자면. 동네 서점이라 할 만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가끔 책 구경을 나서게 되면. 책 절반은 조지 오웰이 직접 영국 중북부 지역의 광산촌에 들어가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리도 나머지 절반엔 사회주의가 왜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책을. 그래, 이런 책도 여기서 볼 수 있구나, 하며 선뜻 계산대까지 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태백에 와 처음 산 책>
느닷없이 태백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어울릴 듯. 보름 상간에 방 빼고 방 구하고. 도배, 장판에, 버릴 것 버리고 쌀 것 싸고. 자칫 번갯불에 볶은 콩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보름간 머물 오피스텔까지 하나 구해 놓고 춘천에 왔다, 다시 태백으로 갔다, 를 수차례. 다행히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좋은 곳에 집을 얻어 고생은 길게 하진 않았지만. 차비없이 한 이사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더랬습니다.
춘천에 비하면 사람 수만 봐도 5분의 1.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아 다니기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 크기도 대충 그만큼은 하려나. 아무튼 춘천보다도 더 작은 도시이니 서점이라곤 학교 앞 참고서 파는 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번화가라고 해봐야 걸어서도 겨우 20여분이면 다 둘러보는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E. H. 카아, 하워드 진과 같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역사학자들부터 챈들러, 캐너다인, 립겐스와 같은 생소한 역사학자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난 연구자에서부터 지역적으로도 미국뿐만 스페인, 독일, 프랑스, 러시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과 같은 책이 떡하니 서가에 진열돼 있는 서점이 있다니. 오호, 여기 태백. 아, 이런 책들도 여기 있구나, 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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