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선을 앞두고 앞 다퉈 내놓는 ‘공약(空約)’들뿐인 건가요. 아님 정말 우리 사회가 ‘복지사회’로 나가려고 하는 건가요. 그동안 ‘복지병’이 생길 거라고 큰소리치던 새누리당도 ‘복지’를 외치고 있고. 그나마 만들어놨던 복지정책들을 다 후퇴시켜놨던 통합민주당도 다시 ‘복지’를 외치고 있으니. 이걸 말 그대로 ‘공약’으로 봐야 할지, ‘진보’로 봐야 할지 헷갈립니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볼 때도 보수주의자든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자 모두 ‘복지’를 얘기하고 제도로 만들었으니 말이지요.  
 
2.
하지만 넘쳐나는 ‘복지’ 공약이 되레 걱정되는 건 왜일까요. 한편으론 그동안 싸워왔던 것들이 결실을 맺는 게 아닌가, 기쁘기도 하겠지만 말입니다. 저 많은 공약들이 제대로 될지 생각해보면. 허참, 4대강에 쏟아 부은 돈은 있어도 무상급식 할 돈은 없다고 생떼 쓰는데. 또 백지수표만 남발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게다가 토인비가 사회서비스를 고안했던 이유가 산업혁명에 의해 초래된 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던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가 복지를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와 늘어나는 빈곤층 때문이니.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유해한 국면을 완화시키기 위해 조직적인 국가 권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큰 걱정입니다. 또 ‘인간의 상황에 대한 분노감과, 그러한 상황들을 해결하지 못한 기존의 집단행위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행동’(p.185)이 시작됐다기보다는. 눈앞에 둔 표를 잡기 위해 제안되고 있어 더욱 그렇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3. 
누군 ‘생애주기별 맞춤형복지’를 애기합니다. 또 누군 ‘저녁이 있는 삶’을 애기하구요. 하지만 최근 벌이지고 있는 ‘무상보육’ 논란만 봐도. 그것들이 <복지국가의 사상>에 등장하는 이들처럼 치열한 연구와 토론을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 때론 끝내 만들고야 말겠다는 타협 없는 투쟁심, 때론 정책을 제도화하기 위한 협상과 타협을 거친 것인지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비록 그들 모두가 개혁가는 아닐지라도. 또 제각각 자기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그들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도. 짧은 시간에 복지 정책과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인 이 책을 권하는 건. 데이비드 도니슨David Donnison이 말한 것과 같이. ‘오늘날의 개혁가들로 하여금 사회정책 발달상 다음 단계에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공헌할 수 있게 도와줄 이러한 선구자들로부터 오늘날의 개혁가들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p.172)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4. 
하지만 이 책 하나로 복지국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건 아니니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복지국가라고 말해지는 나라들이 동일한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니까요. 급격한 변화를 거친 나라가 있었다면 점진적으로 제도를 만들어나간 나라도 있고. 단선적으로 복지국가를 이룩한 나라가 있다면 때론 후퇴하고 때론 앞으로 나가기도 하면서 복지국가를 만든 나라도 있으니까요. 더구나 격렬한 계급간 투쟁을 겪은 후에야 복지제도를 만든 나라도 있으며, 이 투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구책으로 복지를 도입한 나라들도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말해, 하나의 추진력과 방향으로 이루어진 건 아니란 얘깁니다. 그러니 참고는 될지언정 답은 아니겠지요.  
 
5.
또 영국사회라는 한정된 정치.사회적 배경과 그에 따른 사상적 변화과정이라는 점. 소개되고 있는 사상가, 15명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있고(예를 들어 찰스 부스니 에브니저 하워드, 에뉴런 배반 같은 이들). 또 몇 번 들어봤던 이름들도 알고 보면 잘 모르기도 하니까요(대표적인 이들이 에드윈 채드윅, 윌리엄 베버리지, 리차드 티트머스가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영국 복지국가 형성에 있어 개척자들이라고 알려진 이들을 불과 4-5페이지에 걸쳐 소개하고 있으니. 그들이 어떤 정치.사회,역사적 환경 속에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를 파악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전 생애를 샅샅이 훑어보지 않으면 잘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을 한 권에 다 넣었으니까요. 게다가 15명이 활동했던 시기에는 이들 말고도 수많은 다른 사람들 역시 복지제도 발전에 기여를 했으니. 속속들이 알기에는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책을 소개하는 것 말고도 다른 노력들이 필요하단 얘깁니다.    
 
6.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작다는 얘긴 절대 아닙니다. 다만 책 서문에서도 ‘복지국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지만. 서로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 사상가들이 복지국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역사와 사상, 정책이나 제도의 발달과정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각 나라가 가진 특징을 서로 비교하고, 각 나라가 지나온 발자국을 살펴보고, 사상사로 정리한다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겠지만 말이지요.
 
7.  
지난 몇 년간 정치권이 우려먹은 것들 중에 ‘복지’만큼이나 짭짤했던 건 없을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어떻게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복지’를 강하게 요구 하고 있고도 볼 수 있는데요. 시민적 권리가 강화되면서 이야기된다기보다는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따라온 결과라는 점에서. 그리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게다가 정작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은 철저히 배제된 채, 이해득실만 따지는 이들이 만들고 있으니. 뿌리를 든든히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에 그다지 기대를 걸지 않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가요? 아님 이번 기회에 다들 ‘복지’라도 열심히 공부하라, 쓴 소리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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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0 13:28 2012/07/20 13:28

사용자 삽입 이미지늙은 남편을 둔 어머니들에게 재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부재혼(寡婦再婚)에 따라 자식들은 몇 번이고 새로운 이름을 새 아버지로부터 받아야 했습니다. 죽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은 금기가 됐고, 어머니의 새로운 남편은 얼마나 딸들이 생기느냐에 따라 사회적 성공 여부가 결정됐습니다. 여자들은 채 10살이 되기도 전에 늙은 남편과 결혼이 정해졌고 심지어 어머니 배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짝이 맺어지기도 했습니다. 남자들은 24살 또는 25살이 되기까지 후견인으로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아야 했으며 30살, 아니 40살이 될 때까지도 아내를 맞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혼인 제도를 가지고 있었던 ‘티위사람들’이 서구 학자들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대부분의 문화인류학 연구들이 그렇듯 하트C.W.M. Hart와 필링Arnold R.Pilling이 각기 1928년에서 30년까지 그리고 1953년에서 54년까지 ‘연구’한 성과로 펴낸 <The Tiwi of North Australia> 역시 연구자의 시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자 서문에는 ‘다양한 민족지들을 접하게 함으로써, 인류학이라는 연구 분야의 참다운 성격 그리고 인류학 연구에서 그 핵심이 되는 문화(文化)라는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또 보다 생생하게 전달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p.5)라고 인류학에 대해 옹호하고 있지만. 좀 심하게 말하자면. 실은 그 다양했던 문화가 단일한 서구 문화로 수렴되고 만 것에 대해선 외면하면서. 그저 ‘티위사람들’과 티위 문화에 대해 추억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권력은 건들이지도 않으면서 ‘문화상대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얄팍한 추억(1954년 여행을 온 엘리자베스 여왕 앞에서 춤을 추기 위해 퀸즈랜드로 보내어 진 호주 북부지역 원주민들과 ‘티위사람들’이나 미국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티위 춤을 즐길 날이 오리라고 기대되는 일처럼 말이지요. p.150)과 약탈한 문화들로 가득 채운 거대하고 화려한 박물관들뿐인 셈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트와 필링이 그 모든 죄를 뒤집어쓴다는 건 억울한 일일 겝니다. 그들이 관찰한 대로 ‘티위사람들’이 가진 문화가 파괴되고 사라진 건. 일부일처제를 위해 어린 여아를 사들인 카톨릭 신부, 철과 젊은 아내들을 맞바꾼 일본인 진주 조개잡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서 마구잡이로 노예를 잡아들인, 식민지 개척 경쟁에 뛰어든 유럽인들일 테니까요.

 

하지만 오늘날 학계가 ‘침묵의 카르텔’로 권력과 자본을 위해 봉사하는 일처럼, 아무 상관이 없는 건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모든 문화는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문화란 고정되거나 단일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사라진 것들을 대상화함으로써 이름을 유지하고자 할 뿐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기셀Gsell신부를 속인 폴리Polly처럼. <티위사람들>에서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폴리와 결혼한 카바지가 담배를 얻기 위해 새로 혼인한 젊은 다른 여인을 신부에게 준 것처럼, 한 문화가 어떻게 사라지고 파괴되는지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인류학, 문화인류학 ‘연구’성과들만큼이나 그래서 뭘 얘기하는 거지, 대체 어쩌자는 거야, 책을 다 읽고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일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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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12:47 2012/07/11 12:47

사용자 삽입 이미지‘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무리 먼 길도 한 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장 지오느가 쓴 <나무를 심은 사람>에 등장하는 엘제아르 부피에처럼 도토리나무를, 자작나무를, 떡갈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환경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아주 소중한 실천이 될 수 있겠습니다. 뭐, 나무가 잡아두는 이산화탄소야 나무가 살아있을 때나 유효한 것이니 별 소용이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가 단순히 숲을 가꾸고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사라지고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시키는 일이라면. 지배와 착취라는 인관-자연 관계를 새롭게 바꾸는 일이라면 말입니다. 한 무더기 도토리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정성껏 골라 땅에 쇠막대기로 구멍을 파고, 심고, 덮는 일을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지만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라는 책을 쓴 존 벨라미 포스터가 도토리를 심는 있는 부피에를 본다면 무슨 얘기를 할까요. 사적이윤 추구와 맞물려 있는 경제체제를 재조직화하지 않는다면.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 됐던, 하이브리드 자동차나 절전형광등과 같은 에너지 절감 기술이 됐던. 자연과 인간 사이에 결코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아마도 따끔한 충고를 할 겁니다. 지속가능하고 생태적인 경제를 가능케 하기 위해선 사회적 토대로서 생산을 사회화해야 한다는 말이겠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고르디우스 매듭’을 말끔히 잘라냄으로써 문제를 풀었다는 알렉산더 이야기도 되새겨볼만 합니다. 더구나 환경위기가 언급된 지도 벌써 반세기가 넘었고, 태평양 섬나라들이 국민들을 이주시킬 곳을 찾고 있는데도 마땅한 대책들이 나오지 않는 상황인 걸 보면 말입니다.
 
All or Noting. 어떤 문제가 됐건 그 해결책을 찾는 데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전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일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제쳐놓는다면 결국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니까요. 물론 찾아낸 해결책이 미봉책으로 그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을 더욱 꼬이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되레 문제가 드러나지 않게 가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경 위기만 놓고 보자면 말입니다. ‘천 리길도 한 걸음부터’ 뗀 사람도 찾기 힘들뿐더러, ‘고르디우스 매듭’ 앞에서 여전히 머리만 굴리고 사람들만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사이, 인간으로 인해 시작된 재앙이 결국 파국으로 끝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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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4:23 2012/06/20 14:23

사용자 삽입 이미지과학이 인간 문명을 이끌고 진보라고 하는 업적을 쌓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과학 연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위치는 얼마나 될까요? 또 과학에 접근하는 것이 미술관에 가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일까요? 과학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로 간주하거나 단지 수동적이고 동기화가 미약하며 ‘우발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들(『과학과 대중이 만날 때.....』, p. 239)까지 이런 물음에는 선뜻 답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더구나 최근 급속한 발전을 하고 있는 생명공학 기술과 IT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대한 반응은 이해와 수용보다는 거부감과 불편함이 앞서는 상황입니다. 또 과학자 집단 혹은 정부가 이야기 하는 과학적 조언과 견해에는 신뢰보다는 의구심, 불신이 강하지요. 예컨대 우리 사회만 해도 광우병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명쾌하기 설명하지 못하는 것, 조작과 은폐로 의혹을 자초한 천안함 침몰 사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기는커녕 안전사고에 대한 축소, 은폐기도 등등으로 과학은 그 신뢰가 땅으로 떨어졌지요.
 
물론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과학자 집단 스스로가 자초한 면이 큽니다. 먼저 번 서평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던 간에. 과학자, 과학자 집단은 그들의 과학실, 컴퓨터와 현미경 속으로 빠져듦으로써 대중의 과학 이해라는 문제에 대해 소홀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소통수단을 통해 견고하고 높은 성을 쌓는데 열중했던 겁니다. 결국 과학은 인류를 보다 나은 미래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라 불리는 것에 참여-직접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배트를 휘두르는 사람들에서부터 소파에 누워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관람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그 방법은 매우 다양하지요-하는 사람들 숫자보다도 못한 관심을 받게 된 겁니다.
 
물론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취해왔던 접근 방식, 즉 ‘과학 대중화science popularization’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대중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아 멋진 왕자님이 키스만 해주면 깨어날 수 있다는 것이 이 해결방식의 핵심인데요. 무지몽매한 대중에게 과학 지식을 전파해야한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계몽적 관점으로 대중은 수동적으로 과학 지식을 수용할 뿐인 존재이며 대중의 역할은 철저히 배제되기 마련(같은 책 옮긴이의 말, pp.268-269)이므로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이에 새롭게 등장한 관점이 바로 ‘대중의 과학 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입니다. 이 방법은 과학의 사회적 구성론이라고도 하는데요. 불균질한(heterogenous) 대중, 암묵지, 민간지 더 나아가 무지까지 확장된 과학 지식, 불명료하고(inarticulate) 암묵적인 이해의 형태라는 세 측면을 대중이 처한 상황과 대중의 능동성을 토대로 새롭게 구성하는 것입니다. 즉 대중들이 과학을 이해하는 과정이 단순한 지식의 수용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능동적으로 과학 지식을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보은 것이지요(같은 책 옮긴이의 말, pp269-270).
 
우리와 마찬가지로 BSE와 인간 광우병 문제로 곤욕을 치렀던 영국이 2000년에 발간한 상원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현대 사회의 민주적 시민권이 과학적 개념과 주장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비판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민권들의 능력에 크게 좌우되며 … 이러한 신뢰는 과학자 공동체 자체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같은책 옮긴이의 말, pp.272-273).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광우병, 천안함, 핵발전소, 4대강 사업, 선관위 디도스 공격 등등. 2mb 정부와 기능적 지식인 아니 기능적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추문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과 반(反)대응은 우리 사회의 시민권 확장을 둘러싼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독선과 아집, 거짓과 은폐로 점철된 2mb 정부로 인해 불러 일으켜진 이 투쟁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 어떤 결과로 귀결될 것인지는 제처 놓더라도. ‘대중의 과학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만한 아이러니가 또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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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06 13:46 2012/06/06 13:46

사용자 삽입 이미지<춘천을 떠나며 산 책>

 

대형 서점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인터넷 서점이 활개를 치면서. 동네 서점은 학습지 판매점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나가는 판국인지 오래됐습니다. 일, 이백 원도 아니고 몇 백 원 또는 몇 천 원씩 싸게 파는 마당에 당해낼 재간이 없겠지만. 당장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면 이틀이면 집에서 편안히 받아볼 수 있으니. 이래저래 동네 서점을 찾아 가는 게 되레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 돼버렸지요. 그래도 부러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꺼내 보는 재미며. 동네 서점에서도 이런 책이 다 있네, 하며 반갑게 들쳐보게 되는 책들을 만나게 되는 재미는. 아무래도 동네 서점만이 가지는 매력이겠지요.

 

춘천에도 꽤나 큰 서점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ㄱ문고니, ㅇ문고니, ㅂ어쩌고 저쩌고는 아니지만. 나름 본점에 지점까지 하나, 둘씩은 갖고 있었으니. 분명 큰 서점임에 틀림없지요. 하지만 춘천이 서울이나 하겠습니까. 그 큰 서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동네 서점들보다야 크긴 크지만. 말이 좋아 지점도 있는 큰 서점이지. 겨우 서가 한 켠 정도만 차지하고 있는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적들. 한 층을 온통 차지하고 늘어선 초.중.고등학교 자습서와 수험서들을 보자면. 동네 서점이라 할 만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가끔 책 구경을 나서게 되면. 책 절반은 조지 오웰이 직접 영국 중북부 지역의 광산촌에 들어가 체험한 것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글들이 그리도 나머지 절반엔 사회주의가 왜 노동계급으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가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지적한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책을. 그래, 이런 책도 여기서 볼 수 있구나, 하며 선뜻 계산대까지 가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태백에 와 처음 산 책>

 

느닷없이 태백으로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다는 말이 어울릴 듯. 보름 상간에 방 빼고 방 구하고. 도배, 장판에, 버릴 것 버리고 쌀 것 싸고. 자칫 번갯불에 볶은 콩이 탈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출근은 해야겠기에 보름간 머물 오피스텔까지 하나 구해 놓고 춘천에 왔다, 다시 태백으로 갔다, 를 수차례. 다행히 베란다로 보이는 풍경이 꽤나 좋은 곳에 집을 얻어 고생은 길게 하진 않았지만. 차비없이 한 이사에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더랬습니다.

 

춘천에 비하면 사람 수만 봐도 5분의 1.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이 많아 다니기가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뿐 크기도 대충 그만큼은 하려나. 아무튼 춘천보다도 더 작은 도시이니 서점이라곤 학교 앞 참고서 파는 곳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지요. 그러니 인문, 사회과학 서적을 파는 곳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번화가라고 해봐야 걸어서도 겨우 20여분이면 다 둘러보는 시내 한복판에 말입니다. ‘역사학의 지평을 넓힌 12인의 짧은 평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E. H. 카아, 하워드 진과 같은 꽤나 유명세를 타는 역사학자들부터 챈들러, 캐너다인, 립겐스와 같은 생소한 역사학자들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미시사, 일상사, 구술사, 기업사와 같은 전통적인 정치.사회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난 연구자에서부터 지역적으로도 미국뿐만 스페인, 독일, 프랑스, 러시와 같은 다양한 나라들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과 같은 책이 떡하니 서가에 진열돼 있는 서점이 있다니. 오호, 여기 태백. 아, 이런 책들도 여기 있구나, 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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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6 14:56 2012/04/06 1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