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 삽입 이미지1979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30년도 넘었네요. 아마도 백기완 선생님이 한창 젊었을 적, 호기롭게 살았던, 감옥 드나들길 제 집처럼 했던 때 썼던 책인 듯싶은데. 송건호 선생과 고은 시인이 말했듯 민족통일에 대한 ‘높은 식견과 용기’, ‘대원칙’과 ‘전투적 논리’가 돋보이는 책이지만.
 
가만가만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 보다는. 1976년 2월 선생이 직접 취재했다고 하는 이야기,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1), (2)>와 같은 가슴 먹먹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말입니다.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사무치듯 그리워하는 사모곡(思母曲)이요. 동생들과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어린 나이 모진 공장일로 해야 했던 여공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것임을 알 수 있는  글 들이 많습니다.
 
또 이 땅 민중들과 함께 악에 바친 삶을 살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니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살아왔던 노동자, 민중들에게 악질로 살자 외쳐왔던 삶인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악질로 살고 있는 선생님, 부디 오래도록 올곧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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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05 14:01 2013/06/05 14:01

사용자 삽입 이미지전작 <동물농장>과 마찬가지로 <1984> 또한 종종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책으로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두 책을 읽고나면. <동물농장>은 풍자와 해학이 섞여 있고 <1984>는 좀 더 어둡고 암울하다는 차이만 있을 뿐. 전체주의에 대한 엄중한 경고 일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더불어 <1984>나 <동물농장> 모두 미래 사회 혹은 상상된 사회에 대한 경고 정도로만 소개되곤 합니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사회 모두 에서 분명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범죄예방이라는 미명하에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 CCTV만 보더라도 감시사회는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자의 의도를 왜곡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읽었나봤나 싶기도 하고. 보긴 봤어도 자기 좋을 대로만 읽었구나 싶은 게. 꼭 무슨, 무슨 신문과 방송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가 쓴 일련의 다른 책들, 이를테면 <카탈로니아 찬가>나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같은 글들까지 함께 본다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가 바로 오웰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터이니. 무슨 말을 하던 그냥 그대로 내버려둬도 괜찮겠단,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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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6 10:52 2013/04/26 10:52
사용자 삽입 이미지1894년 고부에서 일어난 봉기를 시작으로 ‘척왜척양(斥倭斥洋)’, ‘보국안민(輔國安民)’ 기치를 든 일련의 사건들을 일컬어 보통은 ‘동학농민운동’ 혹은 ‘동학농민혁명’이라고 합니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고 그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곳들도 대게는 이를 차용해 이름이 붙었으니 그렇습니다.
 
하지만 작가 박태원은 <갑오농민전쟁>이란 이름을 붙였더랬습니다. 눈이 멀고 몸이 굳어지는 와중에도 끝내 마무리를 한 동명(同名)의 장편역사소설에서 말입니다. 한편에선 이를 두고 사회주의에 토대를 둔 작가의 이념이 투영된 것이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이 명칭을 쓰기도 하니 이런 얘기들은 흘려들어도 될 만합니다.
 
또 ‘동학농민운동’이나 ‘동학농민전쟁’이라고 한다면. 자칫 ‘동학(東學)’이라는 특정 종교와 이를 따르는 도인(道人)들이 일을 일으킨 것으로 한정되는 측면이 있으니. 갑오년(甲午年)이라는 특정 시간대를 두고 이름을 붙이는 게 좋을 듯싶기도 합니다. 또 당시 무장봉기를 일으켰던 이들을 두고 농민군(農民軍)이라 불렀으니 당연히 이 또한 이름에 넣어야 할 것이구요. 마지막으로 봉건 잔재를 일소하는 일대 사회변혁의 사상은 물론 일본 제국주의와의 피할 수 없는 싸움까지 내포하고 있었으니 ‘전쟁’이 아니 붙을 수 없으니. 어찌 보면 ‘갑오농민전쟁’이 맞을 듯싶습니다.
 
다만 이제껏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으로만 불렸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봉기를 주도했던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동학(東學)의 접주(接主)였고 또 도인(道人)들이 많이 참여를 했던 것은 틀림없지만. 그 후 극심한 탄압으로 동학(東學)은 그 세(勢)가 거의 없어져 명맥이 끊겼으니 굳이 이를 고수하려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 터인데 말이지요.
 
아무튼 북으로 갔지만 남로당계열로 숙청된 데다 구술(口述)에 의존해 마무리 지었다는 <갑오농민전쟁>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또 다른 월북작가 홍명희가 쓴 <임꺽정>과 더불어 최고 역사장편소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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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2 17:39 2013/02/22 17:39

사용자 삽입 이미지1. 미완(未完)

『임꺽정(林巨正)』은 다 써진 얘기가 아닙니다. 마지막 <자모산성> 편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제 막 얘기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끝이 나고 있는데다, 임꺽정이 구월산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맞습니다. 단행본으로 10권에 달하는데 아직 못한 얘기가 남아 있다니. 홍명희가 건강상 문제가 없었다면. 또 1940년대라는 일제말기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이 아니었다면(홍명희는 1930년대 들어 문학을 통해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가려고 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민족해방이 점차 요원해지는 1940년대가 되자 붓을 들기가 쉽지 않았던 듯합니다. 게다가 관군에 쫓겨 구월산에서 최후를 맞게 되는 임꺽정을, 우리 민중의 영웅의 최후를 쓴 다는 것은 더욱 그러했겠지요.). 문학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요즘 우리 출판사상에서도 매우 보기 드문 장편역사소설이 됐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임꺽정에 비견할만한 역사소설은 흔치 않지만 말입니다.
 
2. 사회주의(社會主義)
식민지시기에 근대장편역사소설상 기념비적인 작품, 『임꺽정』을 쓴 벽초(碧初)는 작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운동가에 더 가까웠습니다. 3.1운동 당시 고향인 괴산에서 만세 시위를 모의, 조직,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1920년대 말에서 30년 대, 식민지시기에 최대 민족운동단체였던 신간회(新幹會) 결성과 운영을 주도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지요. 게다가 토오꾜오 유학시절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접했던 홍명희는 3.1운동 이후 신사상연구회, 화요회, 정우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조봉암, 박헌영, 김단야 등과 같이 해외에서 사회주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이들과 같이 말입니다. 또 홍명희는 당시 문단에서 큰 세력을 떨치고 있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와도 관련을 맺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선배로 대접받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임꺽정』을 쓰지도 않았던 때인데 말입니다. 해방 후 홍명희는 1947년 남북연석회의 참가 차 평양에 갔다 다시 돌아오질 않았습니다. 이후 북에서 내각 부수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후 1968년에 죽습니다.    
 
3. 기필(起筆)
『임꺽정』이 처음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은 1928년입니다. 이해 11월 21일부터 이듬해 12월 26일까지 모두 300여회에 걸쳐 연재된 「봉단편」, 「피장편」, 「양반편」은 『임꺽정전』이라는 제목이었지요(당시 동아일보에는 이광수의 역사소설 『단종애사(端宗哀史)』가 연재되고 있었으니 후에 친일로 돌아선 이광수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후 『임꺽정』은 홍명희가 신간회 민중대회 사건으로 검거, 구속되거나 어려서부터 유달리 병약했던 탓에 병고에 시달리면서 휴재와 연재를 거듭합니다. 2차 연재는 1932년 12월 1일부터 1934년 9월 4일까지, 3차 연재는 1934년 9월 15일부터 1935년 12월 24일까지, 4차 연재는 1937년 12월 2일부터 1939년 7월 4일까지 말입니다. 그러다 조선일보사가 강제 폐간이 된 후인 1940년, 「조광」이라는 잡지 10월 호에 「화적편」, ‘자모산성’장의 일부가 실린 것을 마지막으로 연재가 중단되고 맙니다.    
 
4. 민중사(民衆史)
『임꺽정)』에는 조선시대 민중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매우 세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개성 뚜렷한 등장인물들과 사실적인 배경 설명, 정사(正史)와 야사(野史)를 넘나들면서 전개되는 줄거리, 그리고 이들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고 있는 우리말의 향연. 적어도 이런 점들이 이 소설을 근대역사장편소설 가운데 최고로 꼽는 요인들일 것입니다. 이는 벽초가 『임꺽정』이 연재되기 시작한 시기 조선어와 조선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추세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구요. 다른 한편으론 철저히 현실에 바탕을 둔 리얼리즘문학을 추구하지 못하고 있던, 조선 프로문학에 대한 반성적 글쓰기를 몸소 보여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민족․민중 문학, 리얼리즘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직접 글로써 보여준 것이지요.      
 
5. 임꺽정(林巨正)
제4차 연재가 중단된 직후인 1939년에 단행본 『임꺽정』 제1권이 출간됩니다. 이때에는 전8권으로 임꺽정을 출간할 예정이었는데요. 11월에 2권이, 12월 3권, 이듬해 2월 4권이 각각 나오게 되지만 5권에 실릴 예정이었던 <화적편>을 비롯해 <봉단편>, <갖바치편>, <양반편>은 간행되지 못합니다. 그러다 해방 후, 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임꺽정』 전6권을 차례로 펴내게 되는데요. 이때 나온 『임꺽정』은 일제 강점기에 출간됐었던 초판 4권을 6권으로 읽기 좋게 나누었던 것입니다. 이에 맞춰 홍명희도 『임꺽정』을 완결하고 기왕에 나와 있던 것들도 수정하려는 의욕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1948년 남북연석회의 참가 차 북에 갔던 홍명희가 그곳에 남게 됨에 따라 끝내 이루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후 『임꺽정』은 남쪽에선 금서가 됐고. 1985년 사계절출판사에서 다시 간행될 때까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6. 일일일독(一日一讀)
분량으로 치자면, 다 마치지 못한 얘기들까지 넣지 않더라도. 일단 권수가 10권이고 각권이 300페이지 내외이니 장편소설 치고도 꽤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만 보면 사설과 같아 건너뛰고 읽어도 무방할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봉단편>만 해도 한권을 다 차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족히 보름이나 한 달은 잡아야 다 읽을 수 있을 터인데. 워낙에 나오는 사람도 다양하고 여기저기 동네 이름도 많으니. 그렇게 길게 잡고 읽으면 자꾸 앞쪽을 들추게 돼 되레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고. 아예 책을 잡으면 하루 한 권은 읽는다, 마음먹어야 할 겝니다. 또 빈 종이에 등장인물들을 쭉 적어 놓고 가계도(家系圖)도 그려가며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짧은 시간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을뿐더러. 나중에 그게 누구지? 라며 헛갈리지 않거든요. 하지만 뭐, 책이 워낙에 야무지게 재밌고 짜임새가 있으니 그냥 봐도 별 상관은 없지만 말입니다. 
 
* 이 글은 강영주가 쓰고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벽초 홍명희 연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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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7 01:26 2013/02/07 01:26
사용자 삽입 이미지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역사인물 찾기 시리즈이니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도 한데. 당체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뇌봉’이라는 이름이 여간 흔하지 않은 이름이니 스쳐가듯 이라도 들었더라면 분명 기억 못 할리 만무하니 말입니다.
 
헌데 올 초 모 신문에 ‘레이펑’이란 이름이 올랐던 적이 생각났습니다. 혹여 그 사람이 아닐까 싶었었는데, 어이쿠 맞았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레이펑 사후 50주기를 맞아 ‘레이펑 정신 실천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기사였던 것 같은데. 그 레이펑이 바로 뇌봉이었던 겁니다.
 
당시 신문을 다시 찾아보니. 관영언론을 통해 특집기사들을 내보내고 각 지방정부마다 이런저런 행사를 준비했다고 하네요. 심지어 ‘레이펑 배우기’ 우수자에게 의료, 주택, 취직 등의 혜택까지 주겠다는 말까지 나왔으니. 나름 야심차게 일을 진행했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 후에도 별다른 소식이나 얘기가 없었던 걸 보면. 관료화된, 아니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 당 지도부가 강요하는 도덕 재무장이란 게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인지, 몰랐던 모양입니다.    
 
요즘은 거진 헌책방을 기웃거리다 집어온 책을 읽게 됩니다. 뇌봉도 마찬가지. 외대 앞 헌책방 한 귀퉁이에서 골라왔지요. 하지만 책도 오래됐고 주인공 뇌봉도 오래 전 사람이지만. 그가 가다듬고 실천한 정신과 사상은 다시 되새겨야 할 것들이 많을뿐더러. 다 읽고 나면 감히 나서서 본받자, 따르자 할 사람도 아니란 걸 알게 되니.
 
언제 적 얘기냐며 덮어두기엔 아까운 책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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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9 20:23 2013/01/19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