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쳐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날만도 한데 어찌된 게 점점 더 무섭기만 해지네요. 뭐, 민간인을 향해 포탄을 날린 쪽을 두둔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또 이런 짓거리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때는 이때다, 마치 전쟁이라도 하려는 듯 온갖 과격한 말을 다 동원해 난리 법석을 떠는 모양새가. 그래요 처음엔 화가 났지요. 민간인이 죽어나갔는데도 최신형 포만 더 갖다 놓을 생각만 하고. 결국 목숨을 담보로 해야만 하는 이들을 고작 찜질방에 몰아놓고는 전투기를 동원해 폭격해야 한단 말만 늘어놓고. 이럴 때일수록 ‘응징’을 외기기 보단 ‘대화’를 하자고 해야 할 터인데, 또 미국을 등에 업고 무력시위를 하기보단 얼굴을 마주하고 얘길 해야 할 터인데 말이지요. 결국 국방부장관에 임명된 사람이나 뭔 일이 터질 때마다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이나 연일 무서운 말만 쏟아내더니. 두려움에 떨던 날이 엊그제 같은 데 무슨 또 사격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이러니 이거 정말 ‘전쟁’ 나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
롤란트는 부모님, 누나 유디트, 여동생 게스틴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여름 휴가를 떠납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살고 계시는 세벤보른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롤란트 가족은 외갓집을 코앞에 두고 그 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일을 당하고 맙니다. “그것은 부모들이나 어른들이 상상하고 있었던 대로 되어가지 않았다. 예를 들어 거듭 반복되는 경고문이나 선전포고도 없었다. 알프스 산속이나 지중해의 섬으로 피난갈 수 있을 만한 충분한 시간 여유도 주어지지 않았다”(p.9)는 말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당신들 때문에 핵폭탄이 떨어진 거야! 아이들이야 어떻게 되든 아무런 관심도 없었겠지. 자기들만 좋으면 상관없다는 거겠지. 우리가 이렇게 비참한 상태가 되어도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아.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야?”(pp.128-129)라고 말하는 양쪽 다리를 잃은 소년의 말처럼. 일은 벌어졌으나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는, 그런 일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 일은 그처럼 쉽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말로 다하기 어려운, 너무나 무시무시한,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폭발과 함께 녹아버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폭풍이 지나간 후 발병한 전염병에 죽어간 여동생. 방사능 오염으로 온 머리카락이 듬벙듬벙 빠지고 온 몸에 반점이 돋은 채 숨을 거둔 누나. 눈과 양팔이 없는 아이를 낳고는 아이와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간 어머니와 막내 동생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이런 일들은 롤란트 가족들만 겪은 참상이 아니었습니다. 독일 전역에서 아니 전 유럽에 걸쳐서 일어났던  것이지요. 
 
3 
한나라당 대표라는 사람은 전쟁나면 입대해 싸우겠다고 했다지요. 또 한나라당 모 의원은 연평 포격 사건 때 대통령에게 확전되지 않게 하라고 건의했던 청와대와 정부 내 사람들에게 욕설을 했다고 하구요.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고. 재협상은 없다고, 글자 하나 고치지 않겠다고 강변하던 통상교섭본부장마저 FTA협상이 잘못됐다면 해병대에 지원하겠다고 말했답니다. 뭐, 너도나도 입대하겠다는 사람들 굳이 말릴 생각은 없지만요. 이번 기회에 무기 만들어 돈 버는 기업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네 상권부터 나라를 상대로 한 상권까지 깡그리 틀어쥐고 있는 재벌들에게 또 막대한 돈다발을 안겨주려고 안달이 났거나, 아니지요. 이번 기회에 아예 한반도를 요새화하려고 맘먹은 사람들. 연평도 말고도 사람들 마음속에도 연일 폭탄을 떨어뜨리는데 광분한 이 사람들에게 꼭 한 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핵폭발이 있은 지 3년이나 지난 뒤에야 겨우 세워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롤란트의 아버지에게 어느 여자 아이가 했던 질문입니다.
 
“선생님은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하셨나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12/18 19:06 2010/12/18 19:06

 

사용자 삽입 이미지1.

언제 어느 때고 ‘혁명’을 얘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수업까지 빼먹고 참석한 학회 세미나에서도. ‘가투’가 끝난 술자리에서도. 심지어 단체 미팅을 나가서도 머릿속엔 온통 딴 생각이었지요. 그러니 영화며, 소설도 ‘혁명’을 얘기하지 않으면 취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던가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라는 영화 한편을 보기 위해. 반나절이 넘는 치열한 ‘전투’도 마다하지 않았고. 선배들이 건네주는 두툼한 복사본, ‘정치경제학’을 두고는 순번까지 정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책들이 번역돼 나오면. 전공 책은 선배들한테 떼써서 물려받을지언정 꼭 사보았습니다.  

  

여기 니콜라이 알렉세비치 오스트로프스키Nikolai Alekseevich Ostrovskii가 쓴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처럼 말이지요.

  

2.

두 눈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몸마저 점점 마비가 되는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폭풍 속에 태어나는 자》라는 소설을 써낸 코르차긴은 글쓴이 오스트로프스키 자신이겠지요.

  

자구(字句)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로로 여러 행의 홈을 만들어 놓은 판지로 된 깔개를 이용한 글쓰기. 오스트로프스키 스스로가 만든 이 방법으로 코르차긴은 글을 써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스트로프스키(1904-1936)는 소설 속 주인공 파웰이 한 번은 분실했던, 자신이 전에 코토프스키 사단에 보냈던 전시(戰時) 중 추억을 다룬 ‘폭풍 속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을 두 번째 작품으로 써 내려가던 중, 32세라는 짧은 나이로 생을 마치고 맙니다.

 

코르차긴의 어머니 마리야 야코브레브나가 아들들에게

“그런데, 얘들아, 너희들 이제부터 어떻게 할 작정이냐?”

라고 묻자,

“다시 제자리로 들어앉는 거지요 뭐, 어머니”

하고 말하는 형 아르촘과 달리 일이 기다리고 있는 키에프로 돌아가는 파웰과도 같이, 모스크바로 향하던 도중에 말입니다.

 

3.

글을 옮긴이는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숄로호프Michail Aleksandrovich Sholokhov가 쓴 <고요한 돈강>,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의 <고뇌 속에 가다>와 함께 이 책을 러시아 혁명을 무대로 한, 진정한 혁명의 서사시라고 추켜세웁니다.

 

물론 뒤의 두 책들이, ‘혁명을 만나서 사상적 동요와 회의(懷疑)의 포로가 된 인간의 심리를 그려낸 것으로써, 소비에트 문학에 새로운 한 장(章)을 추가한 것’(p.8)이 분명하다면.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는 그야말로 정통적인 혁명 소설임이 틀림없다고 단언하지요.

 

철저한 노동자 출신으로 러시아 혁명에 뛰어든 가난한 소년공 파프카. 그리고 오스트로프스키. 그들이야말로 무수한 난관을 뚫고 강철로 거듭난, 진정한 혁명가라는 것이지요. 

 

 4.

‘민주주의’만 얘기해도 ‘빨갱이’라 몰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니 ‘혁명’을 말한다는 건. 그래요. “쉬운 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엔.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건 너무 낭만적으로만 회상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또. 지금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혁명’을 술안주로 올리기엔. 이 순간. 이 시대. 그리 녹녹치만은 않으니. 20년이나 지난 어제, 다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데. 가슴 속에 뭔가가 꿈틀꿈틀.

 

아직 늦지 않았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9/14 21:54 2010/09/14 21:54
1.
월산대군, 양녕대군과 효령대군, 하원군과 하릉군, 임해군, 이재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조선시대 왕의 형으로 살았던 이들입니다. 월산대군은 성종의 형으로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은 세종, 하원군과 하릉군은 선조, 임해군은 광해군, 마지막 이재면은 고종의 형이었던 겁니다.
  
봉건왕조시대에 태어나 왕으로 오르지 못한 채 상왕 또는 대군으로 살아야했던 이들은 타의든 자의든 늘 권력투쟁의 중심에 있었지요. 그 때문에 어떤 이는 궁을 떠나 은둔의 삶을 살아야 했고, 또 어떤 이는 권력의 허망함을 탓하며 주색잡기에 빠지기도 했지요. 물론 밤이 깊도록 왕과 국사를 논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이도 있었지만.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 이들의 운명이었다면. 너무 가혹한 것인가요.
 
 
2.
전기환. 노건평. 대통령의 형이라는 이들. 모두 감방에 가야했습니다. 물론 동생들이 대통령에서 물러난 이후에요. 전기환은 노량신수산시장 강제 강탈 건으로. 노건평은 세종증권(현 NH증권) 매각비리로 말입니다.
  
요즘 어떤 한 사람이 자주 신문에 오르내립니다. 하긴 일본으로 리비아로 그리고 또 볼리비아로 하도 왔다 갔다 하니 기사거리도 많겠지요. 게다가 이 사람 동생이 지금 대통령을 하고 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헌데. 이 형이란 사람 말이지요. 일본인들을 만나서 한 일이란 게. 한일강제병합 100주년 사과 담화에 앞서 ‘전향적 담화가 나올 경우 역사인식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한 거랍니다.
 
또 리비아에서는 당초 ‘자원외교’를 하기 위해 갔다고 했으나. 간첩 혐의로 추방된 주리비아 대사관 정보담당 직원 문제 해결을 위해 특사로 방문한 거였다는데. 가서는 ‘몸이 아픈 데도 직접 왔다고 팔의 주삿바늘을 보여’주는 눈물겨운 일을 하고 왔답니다.
 
하하. 이러니 일부에서는 ‘만사兄통’이니 ‘영포대군’이니 하는 말들이 나도는 것인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3.
볼리비아는 300여 년 동안 스페인의 통치 밑에 있다가 1825년에야 겨우 독립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독립 이후 최근까지 무려 150-200여회에 이르는 쿠데타가 있었구요. 심지어 19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말까지 19명의 대통령 가운데 13명이 군인이었다고 하는데. 당시 중남미에서 친미반공정권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었던 미국으로부터 결코 볼리비아 역시 자유롭지 못했음을 보여주지요.          
 
헌데 볼리비아가 이처럼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게 된 데에는 볼리비아가 갖고 있는 풍부한 지하자원. 1545년 볼리비아 북서지방 포토시(Potosi)에 도착한 스페인 침략자들이 처음 발견한 세계 최대 은(銀) 탄광에서부터 석유, 가스, 석탄, 철광, 주석에 이르는 다양하면서도 많은 매장량을 갖고 있는 자연자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국주의 세력을 등에 업은 군부, 자본가들의 야욕이. 토착 원주민을 자원개발의 노예로 전락시켜 만들어 낸 막대한 부를 서로 독점하려는 이전투구가. 무수한 군부 쿠데타로 이어진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볼리비아 민중들이 겪은 수난과 고난은 이루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지경이구요. 바로 도미틸라 바리오스 데 츙가라가 구술하고 모에바 비처가 기록한. <어머니들>은 이런 볼리비아의 아픈 역사를, 아픈 민중들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한.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투쟁하며 전진하는 민중들의 모습을 힘 있게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4.
2006년 1월 21일. 이날은 볼리비아 대통령 취임식 하루 전날이었습니다. 수도 라 파즈(La Paz)에서는 보기 드문 축하 예식이 진행됐는데요. 에보 모랄레스(Juan Evo Morales Ayma) 대통령 당선자는 인디언 전통을 상징하는 붉은 겉을 걸치고, 또 맨발로 단상에 올랐구요. 인디언 부족인 Aymara족의 지도자는 이 맨발의 대통령에게 토착원주민의 상징인 은과 금으로 장식된 지휘봉을 증정했답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또 하나의 새로운 사회주의정부가 출범하는 데 대한 축하 행사가 토착 원주민의 전통 풍속으로 거행된 것이지요.
 
그리고 다음날 대통령에 공식 취임한 모랄레스는 과거 스페인의 침략과 착취, 그리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신자유주의 광풍이라는 불안한 볼리비아의 현실 속에 굴하지 않고 사회주의 혁명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뚜빠흐 까따리, 뚜팍 아마루 등 잉카의 지도자들에 대한 묵념에서. “체 게바라의 못다 이룬 혁명을 이어가겠다”는 목소리에서. “볼리비아의 모든 천연자원은 볼리비아인들의 것”이라는 외침에서. 인종차별(인디오에 대한 차별정책) 철폐, 신자유주의 모델 폐기, 전연가스 등 국내 자연자원에 대한 통제 강화라는 볼리비아 민중들의 염원은 현실이 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5.
우리나라와 볼리비아가 리튬개발에 손을 잡았다고 호들갑들을 떨고 있습니다. ‘한편의 역전 드라마’니 ‘자원외교의 성과’니 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이런 얘기들 속에, 곁다리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의 형이란 인물도 간간이 나옵니다. ‘특사역할을 한몫했다’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그 먼 볼리비아까지 세 번이나 갔다 왔다던 ‘대군’. 리튬개발에 열광하는 언론들. 볼리비아의 아픈 역사에 대해, 볼리비아가 갖고 있는 저 자연자원으로 인해 생겼던 그 아픈 역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하기야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안에서도 제 나라 국민들이 겪는 고초를 나몰라 하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는 얼마나, 알은체라도 했을까요.
 
‘자원외교의 쾌거’ 뒤에 숨겨진 그늘. 여러분들이라도 이 책과 함께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는 것, 어떤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9/02 18:22 2010/09/02 18:22

사용자 삽입 이미지‘밥심으로 일 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하는, 흔히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이 썼지요. 헌데 큰 힘을 쓰려면 당연 고기를 먹어야 하겠건만. 왜 밥을 앞에 두었을까요. 그야 뭐, 옛날엔 워낙 고기를 먹는 다는 게 워낙 흔한 일이 아니어서. 겨우 명절날이나 제삿날, 생일이었으니. 늘 먹던 것이지만 밥이라도 든든히 먹어 두자, 그런 뜻이 아닐까 합니다만.

 

재작년쯤인가. 쌀 직불금이 크게 문제가 됐었습니다. 어떤 곳은 절반 이상이, 또 어떤 곳은 거의 모든 논과 밭이 외지인 소유라는 거. 그거 별로 새삼스런 일도 아닐 지경인 상황에서 난데없이 벌어진 일입니다.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결국 또 애꿎게 농사짓는 사람들만 피해를 보겠군,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처음부터 부정수급쪽으로만 초점이 맞춰지더니 끝까지 그 얘기만 하더군요. 문제는 경자유전(耕者有田), 땅 투기였지만요. 결국 소작농부들, 농사지을 땅만 구하기 힘들어지게 된 채로 끝이 났습니다. 

 

요즘 막걸리가 유행입니다. 외국으로 수출도 잘되고 물론 국내 판매량은 놀랄 만치 늘었고요. 이 유행에 편승해 막걸리를 소재로 한 드라마도 나왔으니. 이만하면 열풍인가요. 또 갈수록 높아가는 'well-being' 바람에 쌀을 재료로 한 과자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누룽지도 인터넷으로 팔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과자, 막걸리, 누룽지. 저 바다 건너에서 가져온 쌀로 만든 게 참 많기도 하네요.   
 

‘여주.이천 쌀’이라면 때깔 좋고 밥맛 좋은 걸로 알아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 명성은 여전하구요. 하지만 이젠. 뭐라나, 1,500년 만에 찾아온 더 없는 지역 개발 기회라고들 하는데.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만고진리도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간단히 무시하고. 강물이 논물보다 높으면 자연 논은 망가진다는 순리도 들리지 않고. 강 주변 논보다도 높게 물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 死大江 사업인 걸. 쌀농사보단 땅 파는 게 더 남는 장사란 걸 이제야 깨달았나 봅니다. 

 

우리네 밥상(그러고 보니 이미 ‘밥상’이라는 말에 ‘밥’이 들어가 있네요)에 가장 중심이 된 밥, 정확히는 쌀. 이 쌀이 대체 언제부터 상에 올라왔던 걸까요. 기록으로 살펴보자면 멀리는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와 신라본기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벼농사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pp.33-38). 그리고 남아있는 유물로는 경기도 여주 흠암리 탄회미가 가장 오래 된 것으로 대략 3,000년 전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것이 있습니다(pp29-31). 이렇듯 벼는 아주 오랜 세월동안 함께 해왔는데요. (물론 밭벼가 있기는 하지만) 이 쌀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논’. 사람에게는 ‘밥심’을 주고 자연에게는 또 다른 ‘심’을 주는 이 ‘논’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밥에 고깃국’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야 들어본 적이 없겠지만. 나름 쌀집 자식이었다는 비교적 유리한 환경에서도 흰 쌀밥을 먹는 게. 불과 20년 전만해도 역시나 생일이나 제사, 명절이 때였으니. ‘고기’와 ‘이밥’이 한 상에 올라오는 건. 잔치상 말고는 보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웰빙이란 이름으로 이 ‘이밥’이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아도는 ‘이밥’ 때문에 애꿎은 갯벌이 통째로 메우는 데 이용만 되고. 먼 이국땅에서 자신의 배를 갈라가면서까지 지키고자 해도 늘 ‘자동차’, ‘반도체’에 밀려 뒷자리로 밀려나고. 이런 걸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하는 건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26 13:19 2010/08/26 13:19

결국 사람이 문제인가요. 책을 쓴 이는 단호히 말합니다.

 

인간의 문제가 간과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분신인 문명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면죄부를 얻으려는 위선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비판을 외면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p.196

 

그리고 

 

문명비판론자들이 우리 시대가 직면한 위기의 근원을 문명으로 지목하는 과정의 영악성과 이기성을 지적 p.200

 

하고자 글을 썼다고 합니다. 예컨대 글쓴이가 말하듯이 ‘수질오염’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 ‘생태위기’의 주범을 가정용세제로 몰아가는 것은 “자본논리의 시녀노릇을 수행하기 위해서 만만한 가정주부들을 속죄양으로 삼고”있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글쓴이는 <숲속에 사는 사람, 숲밖에 사는 사람>(pp.96-119), <씨를 말리는 화학무기>(pp.165-183>와 같은 글들을 통해.

 

또, <문명론과 문명비판론의 반생태학: 에필로그>(pp.184-205)라는 글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사건(북미 동남부의 행여비둘기(passenger pigeon), 북극권의 雪車革命, 사회주의혁명과 아랄海)들을 살펴봅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지가 우리 시대의 생태학적 위기의 근원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편리함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부수는 작업을 해왔다. 편리함의 부산물로 생성된 쓰레기는 편리함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파괴된 다른 種과 다른 사람을 適所(niche)를 대체함으로써 돌이키기 어려운 “適所置換”(niche displacement)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파괴된 다른 종과 다른 사람의 삶을 밑거름으로 삼아서 피어난 편리함의 꽃을 우리는 문명이라고 불러왔고, 그러한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으로서 인간은 문명론과 문화이론을 구축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라는 종의 편리함을 구축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생태권이 시달림을 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위기의 본질임을 알 수 있다. p.203

 

고 일갈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은 글쓴이가 말하는 문명을 구성하는 세 요소, 즉 기술과 이념, 이 양자가 함께 생산한 조직 가운데 ‘본질적으로 중립적인’ 기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데요. 즉,

 

어떤 기술이 “좋다, 아니다”하는 가치판단의 기준 속에 들어가는 것은 그 기술이 적용된 상황과 적용방법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 기술이 적용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기술의 의미는 선악의 가면을 쓰게 되는 것 p.187

 

이라고 합니다. 어때요. 이만하면 글쓴이가 매우 일관되게 ‘무엇’이 문제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나요.  

 

헌데, ‘인류학자의 환경론’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 왜 제목이 ‘똥이 자원이다’ 일까요. 도올 김용옥씨가 쓴 추천하는 글을 보니 이렇습니다.

 

애초에 전경수 선생이 이 책의 좋은 제목을 하나 생각해 달라고 하기에 “문명을 어떻게 운영하나?”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랬더니 몇일 후에 전경수 선생은 “똥은 자원이다”로 가자고 하였다. 나는 역시 그의 등치다웁게 과감한 판단에 대해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나의 제목은 매우 소극적 제안이나 질문에 지나지 않은 것에 불과한데 반하여 전경수 선생은 그 핵심적 해답을 이미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똥이 밥이다! 문명의 똥을 다시 문명의 밥으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논의야말로 노동의 결실로서 성스러운 “밥”이라는 기존의 논의를 한차원 뛰어넘는 것이다. 밥과 똥은 지나가는 엘리멘타리 트랙(the alimentary tract)이라고 하는 소화기계의 캐널에 의하여 연결된 개념이며 그것은 一心二門과도 같은, 一體二用의 개념인 것이다. 밥과 똥은 天地自然의 에코체인에 있어서 연기론적(화엄실상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총체적 일환의 두 측면인 것이다. pp.32-33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애당초 쓰레기라는 말이 없었던. 순환만이 존재하는 자연계에서 일탈한 인간이 이제는 이 순환의 고리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역시 문제는 사람인 셈이다, 는 그 말이겠지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8/16 11:51 2010/08/16 1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