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 연설에서 ‘국민의힘과 악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를 놓고 중앙일보가 ‘국민통합’을 강조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 정신을 무색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도 “‘정치 복원’을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의 기조와도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협치는커녕 야당과 전쟁을 선포한 것”이라며 “민주당 내부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지 말고 국민 전체, 국가 이익을 아우르는 큰 정치를 기대한다”고 했다.
지난 2일 정청래 대표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전당대회) 당대표 경선에서 61.74% 득표율로 박찬대 후보(28.26%)를 제치고 당선됐다. 정청래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내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란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내란 추종 세력들이 있는 한 협치는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지금은 여야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사과와 반성이 먼저 있지 않고는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당대표 선거도 좌우한 김어준 파워”
4일자 조선일보 1면 제목은 <야당을 파트너로 안 보는 여당 대표>이다. “정 대표가 대통령실의 의중을 따지겠지만 강성 당원들의 요구에 따라 브레이크 없는 강경 일변도로 갈 가능성이 더 큰 것 같다”는 민주당 관계자 멘트가 기사에 인용됐다.
조선일보는 6면 <당대표 선거도 좌우한 ‘김어준 파워’> 기사를 통해 김어준씨가 당대표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당초 여권에선 ‘명심은 정 대표보다는 박 의원 쪽에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며 여권 관계자를 인용해 “두 후보가 당원들을 상대로 ‘선명성’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과 콘서트가 그 무대가 됐고, 여기서 강성 당원들의 낙점을 받은 정 대표가 압승한 것”이라고 했다.
▲ 4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조선일보는 “정 대표는 김씨의 유튜브 방송과 김씨가 주최한 콘서트 등에 여러 번 등장하며 친분을 과시했다. 반면 박 의원은 개인 일정을 이유로 김씨 콘서트에 불참했고 유튜브 방송에 나가서도 자신이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 아님을 해명해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김어준씨가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였던 강선우 의원의 보좌관 갑질 논란 당시 박 의원을 겨냥한 것이 정 대표의 승리를 굳히는 데 주요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야당과 악수도 않겠다”는 민주당 새 대표> 사설에서 정 대표가 야당과 협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선거 때야 득표를 위해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당선되자마자 제1야당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대결을 선언한 경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야당과 싸움에만 몰두하기엔 안팎의 사정이 급박하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당 대표라면 정부와 함께 이런 현실에 대응해 국민을 지켜낼 책무가 있다. 야당과도 긴밀히 협의하면서 국가 과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 “대통령 취임사 무색, 어느 쪽이 여권 진심인가”
다수 신문이 정 대표가 야당과 각을 세웠다는 점에 주목했다. 4일자 중앙일보 1면 제목은 <민주 새 대표 정청래 야당 향해 선전포고>이고, 동아일보 1면 제목은 <與대표 정청래 “내란당 사과없인 악수 안해”>이다. 한국일보 1면도 <“내란 사과 없이 악수 없다” 초강성 여당시대>이다.
중앙일보는 <국민보다 강성 당원만 바라보는 여당 대표 정청래> 사설에서 “역대 민주당 대표 중에 강성이란 평가를 받은 인사들이 꽤 있었으나 야당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은 여태껏 없었다”며 “정 대표는 국회를 민주당 1당 체제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인데, 이는 명백히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태”라고 했다. 이어 “당장 당의 강성 당원들로부터야 박수를 받겠지만, 장기적으론 극도의 정치 갈등과 사회 분열을 유발해 국가적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
▲ 4일자 중앙일보 사설.
“분열의 정치를 끝낸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도 언급했다. 중앙일보는 “야당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정 대표의 입장은 이 대통령의 취임사 정신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든다. 대체 어느 쪽이 여권의 진심인가”라고 했다.
동아일보도 정청래 대표의 수락 연설이 이재명 대통령의 기조와 구분된다고 지적했다. <與 대표에 정청래… ‘尹 정부-국힘의 실패’ 전철 밟지 말아야>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국민의힘과의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협력까지 배제하는 듯한 태도는 ‘정치 복원’을 강조해 온 이 대통령의 기조와도 거리가 있다”고 했다. 이어 “물론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한 채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107석의 제1야당으로서 실체가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윤 전 대통령은 야당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민심에 귀 닫은 채 독단적 국정 운영을 거듭하다 불법 계엄이라는 자기 파멸적 선택을 했다”며 “국민의힘은 ‘당정일체’만 외치다 국정 실패를 조장하고 방관한 책임이 있다. 정 대표가 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 “민주당 선거, 당원 주권 시대로 나아가”
한겨레는 <당대표 정청래… 더 센 민주당이 온다>, 경향신문은 <‘강경’ 택한 민주당… 개혁 입법 ‘속도’>를 4일자 1면 제목으로 냈다. 한겨레는 정 대표를 <아웃사이더 기질… 지지층과 직접 소통>(3면 기사)로 설명하며 사설 <정청래 새 대표, 국정 책임지는 ‘유능한 민주당’ 이끌길>에서 “더 이상 민주당 선거가 의원 및 계파 중심이 아닌, 당원 주권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고 평했다.
▲ 4일자 한겨레 1면 사진기사.
▲ 4일자 한겨레 3면 기사.
한겨레는 “당원들의 표가 정 대표에게 쏠린 것은 ‘강력한 개혁’에 대한 민주당원들의 염원 때문”이라며 “강도 높은 개혁을 속도감 있게 이뤄내야 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다만 중도층을 포함한 국민 여론 전반을 의식해야 하는 대통령실·정부와 끊임없이 소통·조율하면서 개혁 진행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야당과 ‘협치’를 주문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 개혁하되 협치 손 놓지 말아야> 사설에서 “내란 세력에 대한 단죄·청산도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다. 하지만 자칫 정치적 논쟁과 갈등의 난장으로 변질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며 “국민의힘이 ‘극우’적 퇴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심한 정당이긴 하지만, 3분의 1이 넘는 국회 의석(107석)을 가진 정치적 실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속옷 시위’ 윤석열, 끌어내리기 쉽지 않다”
‘속옷 시위’를 벌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여전히 특검팀의 소환조사에 “불응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4일자 6면 <‘속옷 시위’ 윤석열 버티기…특검, 강제로 끌어낼 방법이 없다> 기사에서 “특검팀은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를 조사실에 앉히겠다고 다짐했지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일단 특검팀은 물리력 행사까지 불사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다음 체포영장 집행 때는 강제로 끌어내는 방안도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끝까지 버티면 강제로 끌어낼 방법이 마땅치 않다. 수사기관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으면 물리력을 행사해 피의자를 강제로 체포할 수 있지만, 구치소에선 수용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려면 조건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에 따르면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100조는 교도관이 7가지 조항에 근거해 수용자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수용자가 도주, 자살, 자해, 교정시설 손괴, 타인에게 위해를 끼치려고 하거나, 위력으로 교도관의 직무집행을 방해할 때 등이다. 윤 전 대통령처럼 구속된 피의자가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는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4일 <윤 전 대통령 ‘속옷 차림 저항’ 소동…국민은 민망하다> 사설을 내고 “특검팀이 법원이 발부한 적법한 영장을 집행하려 했음에도 윤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한 것은 명분 없는 행동”이라며 “피의자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지만, 수사기관의 조사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다. 검찰총장 출신으로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아는 윤 전 대통령이 법원의 판단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법치주의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고발과 재판 등의 이유로 선서를 거부한 채 자리에 앉아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여러 위증 혐의가 드러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부총리 등을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발 주체인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이미 해산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특검이 직접 한 전 총리 등의 국회 위증 혐의를 수사할 수 있도록 내란특검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 ‘3대 특검 종합대응특별위원회’ 총괄위원장인 전현희 최고위원은 3일 한겨레에 “기존 특검법 미비로 수사하지 못하는 부분은 법을 개정하려 한다. 국회 위증 혐의 수사 방안을 포함해 내란특검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발 주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란특검법 수사 대상에 내란 국정조사 위증죄를 추가하더라도 소급 입법은 아니다. 국회에서 한 위증을 처벌하는 국회증언감정법이 이미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회는 12·3 비상계엄 선포의 내란 관련성을 조사하기 위해 지난해 12월31일부터 올해 2월까지 두 달 간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운영했다. 2차례 기관보고와 5차례 청문회에 증인 453명(중복채택·불출석자 포함)이 채택됐다.
당시 한덕수·최상목 등 핵심 관련자들은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 상황 등에 대해 자기방어적 답변으로 일관했다.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포고문 등과 관련해 “본 적이 없다”(1월15일) “비상계엄 해제 국무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해서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것을 알았다”(2월6일)고 주장했다. 최 전 부총리는 국회 해산을 전제로 한 비상입법기구 예비비 지시 문건에 대해 “내용을 보지는 못했다” “쪽지 형태로 접은 상태에서 받았다”(2월6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국정조사특위가 활동을 종료한 이후 수사기관이 확보한 대통령실 국무회의장(대접견실) 내부 및 대통령 집무실 복도 시시티브이(CCTV) 영상을 통해 상당 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 내용을 직접 살펴보거나 다른 국무위원과 논의하는 모습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한덕수·최상목 등은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진술이나 서면답변에 거짓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한다”라는 증인 선서를 했다. 국회증언감정법은 선서한 증인이 허위 진술 등을 했을 때는 벌금형 없이 징역형(1년 이상 10년 이하)으로만 처벌하도록 한다. 중범죄이지만 해당 위원회 고발이 있어야 수사가 가능하다. 내란 국정조사특위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김성훈 전 경호처 차장, 김현태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장 등 3명만 위증 혐의로 고발을 의결한 뒤 올해 2월28일 활동을 마쳤다.
민주당은 지난달 30일 내란·김건희·채 상병 특검 수사를 지원하기 위해 ‘3대 특검 종합대응특위’를 꾸렸다. 전현희 총괄위원장은 “이번 주 초에 특검별 태스크포스가 모여 현재 상황을 점검하고 법 개정 의견 등을 취합해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핀란드, 3주 연속 30도 넘겨·순록 폐사 위기…북극권도 폭염·더위 익숙지 않은 주민들 '고통'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5.08.03. 22:01:08
올 여름 북반구가 펄펄 끓고 있는 가운데 더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북유럽도 폭염을 피해가지 못했다. 전례 없는 폭염에 북극권 산타 마을의 '산타클로스'도 구슬땀을 흘리고 순록들은 폐사 위기에 처했다.
2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타임스>를 보면 핀란드 기상청은 전날까지 핀란드에서 21일 연속으로 30도 넘는 기온이 관찰됐고 이는 역대 최장 기록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이날도 북부 및 서부 일부 지역 기온이 또다시 30도를 넘김에 따라 곧바로 해당 기록이 경신될 것으로 봤다. 핀란드 기상청 자료를 보면 수도 헬싱키 기준 평년 7월 일 최고 기온은 20도 안팎이다.
핀란드 기상청에 따르면 헬싱키 최고 기온은 지난달 중순부터 연일 평년 일일 최고 기온을 넘어섰고 최근 며칠은 일 최저 기온이 평년 일 최고 기온 수준인 19.6~21.7까지 올랐다. 핀란드 기상청 연구원 미카 란타넨은 지난달 31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북극 지역 기온까지 3주 동안 25도를 웃돌았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과학자들이 이번 폭염 기록을 1961년 이후 최장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7월 중순 노르웨이 북부 해안의 더운 뜨거운 해류와 지속적 고기압 영향으로 북유럽권 기온이 평년보다 8~10도 높은 상태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을 보면 노르웨이 기상청도 지난달 최북단 3개 주에서 30도가 넘는 기온이 12일 기록됐다고 밝혔고 주말에도 다시 30도가 넘는 더위가 찾아올 것으로 예측했다. 스웨덴 기상학자들에 따르면 스웨덴 북부에도 폭염이 지속됐다. 위도가 65도에 이르는 북부 하파란다에서 25도 넘는 더위가 14일 이상 연속 관측됐다.
더위에 익숙지 않은 이 지역 주민들은 폭염에 몸살을 앓고 있다. <가디언>은 현지 언론을 인용해 핀란드 북부 지역에서 한 아이스링크가 무더위 쉼터로 개방됐고 지역 응급실이 꽉 찼다고 전했다. 목동들은 순록이 폐사 위기라고 발을 동동 굴렀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달 25일 북극권인 핀란드 라플란드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에서 긴 수염에 붉은 옷을 입은 '산타클로스'가 작업자들에게 "물을 매 시간 한 잔씩 마시는 걸 잊지 말라", "순록에게 물을 충분히 마시게 하라" 등 일사병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 지역 기온은 7월 말 30도에 육박했다. 방송은 일 년 내내 더운 복장을 해야 하는 산타 마을의 산타가 최근엔 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야 밖에 나간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산타의 썰매를 끄는 순록들도 최근 폭염 그 자체에 더해 높은 기온으로 인해 창궐한 모기의 습격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인근엔 순록들이 이 더위를 피해 올라갈 수 있는 고지대도 부재하다고 전했다.
노르웨이 매체 <뉴스인잉글리시>는 현지 언론에 더위와 백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례가 수없이 보도되고 있으며 주택과 기반 시설이 더위에 대비돼 있지 않아 더욱 어려움이 크다고 전했다. 주민들도 더위에 익숙하지 않아 요양원이 충분히 물을 섭취하지 않으려 하는 고령자들을 돌보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매체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제기후연구소(CICERO)의 비외른 삼셋 연구원은 "지구온난화는 사라지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더 심해질 것"이라며 노르웨이인들이 올해와 같은 더운 여름을 더 자주 겪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달 15일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 로바니에미 산타 마을 온도계가 31도를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용진이 입사한 1995년 무렵 24시간 맞교대를 하던 철도 현장에선 매년 30명 넘는 노동자들이 사망사고를 당했다. ⓒ 정용진 제공
철도노동자가 될 운명이었을까. 정용진(57)씨의 고향은 섬진강변을 따라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이었다. 전라남도 승주군 황전면 비촌리. 지금은 순천시에 편입돼 있다. 비촌리를 지나는 역이 있으니 구례구역이다. 구례로 통하는 입구라는 역 이름대로, 비촌 마을 사람들은 다리만 하나 건너면 되는 구례군을 생활권 삼아 살았다.
그곳에 오래도록 터 잡고 산 집에서 용진이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안 외양간 옆 작은방은 그의 아버지가 태어난 방이기도 했다. 그토록 오래 뿌리내려 살던 터전이었지만 용진의 가족은 용진이 세 살 무렵 서울로 이주했다. 삼형제 중 막내였던 용진의 아버지에겐 계단식 논조차도 돌아오는 몫이 별로 없었던 탓. 55년 전이었음에도 서울로 올라온 시기를 정확히 기억한다.
"우리가 원래는 마포에 있는 와우아파트로 들어가려고 했거든요."
와우시민아파트는 무허가 판잣집들을 헐고 만든 시민아파트 중 하나였다. 시민아파트의 입주 대상은 주로 용진의 가족처럼 농촌을 떠나온 가난한 사람들. 게다가 무허가 판자촌들은 대부분 산 가장자리에 있었다. 아파트를 짓기도 힘들고 지으려면 큰 비용이 드는 땅들, 그런 곳에 턱없이 낮은 단가의 예산을 중간 업자와 공무원들이 떼먹기까지 한 날림 건축물들이 들어선 것이다. 와우시민아파트는 1969년 12월 26일 완공됐지만 불과 4개월도 안 돼 1970년 4월 8일 붕괴하고 만다. 70여 명이 매몰 당했고 34명이 사망한 '부실공화국'의 상징과도 같은 사고였다.
서울이 낯설던 용진의 가족도 친척에게서 이 아파트를 소개받았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다. 얼마 후 붕괴 사고가 일어났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용진 가족이 터를 잡은 곳도 산 밑이었다. 용산의 남산 자락에 셋방을 구했다.
▲용진의 가족은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와우시민아파트 붕괴사고를 피해 자리잡은 터전은 남산 밑이었다. ⓒ 정용진 제공
그곳에서 용진의 아버지는 청소일을 하고, 어머니는 남대문시장에서 행상을 했다. '다라이'(대야)를 가지고 가서 과일을 떼어 오면 과일 장사, 생선을 떼어 오면 생선 장사, 채소를 떼어 오면 채소 장사를 했다. 일을 하느라 어머니는 바빴다. 구청 상용직인 아버지도 저녁에 나가 새벽까지 일을 했다. 세 동생을 챙기는 건 온전히 용진의 몫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동생들하고 하루를 잘 보내는 것이었어요. 어려서부터 밥 하고 라면 끓이고 연탄 갈고. 동생들을 건사하는 게 내 일이었죠."
새 학년이 겁났던 아이
부모님은 장남인 용진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세 명의 동생들에게도 "맏이가 부모다. 용진이 말에는 무조건 순종하라"고 이르곤 했다. 또, 용진에게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라"는 말로써 맏이가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을 종종 드러내셨다. 문제는 용진이 학교와 친하지 않았다는 것.
"새 학년 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새로운 반에 적응해서 새 친구들 사귀는 게 힘들어서요. 학교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곤 했죠. 누가 나를 못 살게 구는 것도 아닌데 학교라는 곳이 편하지가 않았어요."
용진은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 중 작고 왜소한, 그렇다고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닌 학생이었다. 거기에 급식 시범학교에서 급식을 안 먹었다. 전교에 몇 명 없었지만 급식비를 낼 형편이 아니었다. 점심시간이면 집에 다녀오든지 수돗가에서 수돗물을 마셨다. '선생님이 나를 알고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줬으면 좋겠다는 감정이 되게 간절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도 있다는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던 거죠. 간혹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가 있어요. 그때는 그 하루가 너무 좋아. 행복하고 편안한 날이었죠.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급식 대신 수돗가에서 수돗물을 마셨던 용진에게 학교는 결코 편한 장소가 아니었다. ⓒ 정용진 제공
하지만 용진이 학교에서 행복하고 편안한 날은 많지 않았다. 그만큼 공부에 뜻을 두기도 힘들었다. 수학만 좋아하고 다른 과목들엔 큰 흥미가 없었다. 상고나 공고를 갈까도 고민했다. 꿈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과학자, 대통령'을 꿈꾸던 초등학교 시절 그는 장래희망에 '회사원'을 적곤 했다.
"집이 어려우니까 내가 돈을 벌어서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회사원을 꿈꿨죠."
빨리 취직할 수 있는 고등학교를 희망했다. 하지만 대학에 가길 바라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1984년 집 근처 용산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전히 공부보다는 노는 게 좋았다.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 예닐곱과 잘 어울렸다. 중간, 기말고사가 끝나면 사당동까지 나가 극장에 갔다. 야한 영화와 액션물을 동시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시험을 잘 봤든, 못 봤든 우르르 몰려갔죠. 한번은 영화를 보고 있는데 중간에 한 남성이 영화관 안으로 들어왔어요. 근처 고등학교 선도부 선생님이 애들 잡으러 왔던 거예요. 우리는 몰래 빠져 나와 다른 영화관으로 갔었죠."
대공 수사기관이던 남영동 대공분실 건너편에 있던 청소년센터도 그의 학창시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청소년센터에 고등학생 독서토론 동아리가 있었다. 남고 두 곳과 여고 두 곳의 학생들 십여 명이 모였다. "여기 오면 여학생들 있어." 어떤 홍보문구보다 강력했던 친구의 추천에 흔쾌히 참여했다. 책 읽고 토론 하고, 장애인 시설로 봉사활동도 갔다. 숫기도 없고 새로운 사람 사귀는 일에 서툰 용진으로서는 엄청난 용기를 내는 행동이었다. 살 떨리는 일이었지만 도전하면서 사람 만나는 일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비리재단을 몰아내고
군대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계기가 됐다. 훈련하고 남는 시간이면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새 학기만 되면 긴장하고, 마음에 드는 여학생한테도 말 한 마디 못 건네던 스스로가 한심했다. 바뀌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려고 나섰다.
일병 시절, 사단 태권도대회에 나갈 선수를 뽑았다. 입대해서 처음 배운 태권도 단증을 딴 지 얼마 안 됐지만 용진이 자원했다. 또, 겨울에 스케이트대회를 연다고 했을 때도 롤러스케이트를 몇 번 타본 경험만 믿고 손을 들었다. 둘 다 일과 후에 따로 연습을 해야 했음에도 귀찮지가 않았다. 스스로를 바꿔보겠다는 몸부림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런 그를 나댄다고 못마땅해 하는 선임들이 있었다.
"한 명한테 많이 당했어요. 어느 날은 느닷없이 내무반 화목난로 주변에 있던 방화사를 다듬던 오각형 나무 판으로 엄지와 검지 사이를 툭툭 때리더라고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듯이 30분 동안 때리니까 팔이 부어서 못 움직이겠더라고요."
훈련에 적응해 군대가 좋아지던 참이었다. 직업군인까지 고민했지만 이런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에 단념했다. 제대가 가까워지자 먹고사는 일이 걱정됐다. 재수 때까지도 입시공부에 전념을 다하지 않았던 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대학을 바라보는 상이 달라졌죠. 인맥도 없으니 대학이라도 가야겠다. 가서 직업에 대한 시야를 넓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991년 9월 제대해 두 달 반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취업을 목표로 했기에 전문대를 택했다. 인천전문대 기계과에 합격했다. 그런데 인천전문대 재단은 인천대를 비롯해 전체 15개 학교를 거느린, 비리재단으로 유명한 선인학원이었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이어온 '재단 정상화' 투쟁이 용진이 입학할 무렵 크게 타올랐다. 1992년 신입생이 된 용진도 자연스럽게 풍물패,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비리재단을 바꿔내는데 동참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거리투쟁에 나섰다. 이 투쟁에 인천시민들도 적극 호응해 마침내 1993년 12월, 선인학원의 해산을 이뤄냈고 다음해 3월 산하 학교들의 시·공립화를 이끌어냈다.
"일머리보다 필요한 건 좋은 관계"
뜻을 모은 사람들의 힘으로 곪고 곪았던 학교가 바뀌는 걸 본 용진은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사회에 진출해도 "세상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꿈을. 명절에 고향마을에 갈 때마다 타던 기차가 눈에 들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공장에 다니다가 공부를 시작했다.
"1994년엔 신입을 안 뽑고 1995년엔 공고가 났어요. 친구들하고 준비를 했죠.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열심히 공부한 기간이었어요."
절실함이 통했다. 입사시험에 합격했고 철도청 직원이 되었다. 당시엔 공무원 신분이었음에도 그리 인기 있는 직장은 아니었다. 월급도 박한데 24시간 맞교대였다. 아침 9시에 출근해 24시간을 꼬박 일하고 다음날 아침 9시에 퇴근, 다시 그 다음날 아침 9시에 출근하는 근무형태였다. 사실상 휴일이 없었다. 매년 철도 현장에서 30여 명 이상이 직무상 사망사고를 당하는 데는 몸에 무리가 가는 24시간 맞교대의 영향이 컸다. 일하기 쉽지 않은 직장이었다.
용진은 차량 직종으로 발령을 받았다. 디젤전기기관차를 일상적으로 검사하고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일로 150여 명이 두 조로 나뉘어 일했다. 시험 준비를 많이 했지만 직접 부딪힌 현장은 참고서 속과 달랐다. 우선 규모에 압도됐다. 역에 도착한 뒤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직장인 차량사업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객차(승객을 태우는 차량) 한 량만 해도 20미터가 넘으니 객차와 디젤전기기관차들을 손보는 곳도 엄청 넓었다. 낯선 곳에 적응해 갔다. 어렵지 않았다. 일은 모르면 배우면 되니까. 배우려면 필요한 덕목이 있었다. 일머리와 좋은 관계.
"선배들이 하는 걸 보면서 익히는 일머리가 필요해요. 근데 그보다 중요한 건 좋은 관계를 맺는 거죠. 관계가 좋지 않으면 선배들이 '따라와서 봐'라고도 안 하니깐."
20대 후반으로 열정이 가득할 때였다. 가족들보다도 오랫동안 함께 있는 동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군대에서부터 갈고 닦은 적극성을 발휘했다. 점심 빨리 먹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무리와 어울리고, 산악회를 만들어서 지리산, 설악산 등 이름난 산들도 많이 다녔다. 여럿이 함께 일하는 것도 좋았다.
"가정엔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검수대기실에 전자레인지보다 조금 큰 네모난 에어컨이 하나 있었어요. 여름에 일하고 검수대기실에 들어오면 엄청 시원해. 일하고 와서 사람들하고 에어컨 앞에 있는 게 참 좋았어요."
▲3중 간선제이던 철도노조를 바꿔내는 일부터 철도의 민영화를 저지하는 투쟁까지 철도노동자들은 오랜 싸움을 해왔다. ⓒ 정용진 제공
철도노조 민주화 한복판에 뛰어들어
사람들은 좋았지만 현장은 바꿔야 할 게 많았다. 디젤전기기관차 밑으로 들어가 바퀴도 보고 좁은 공간에서 기계부품들을 점검해서 교환하고 조이는 게 일상이었다. 장갑과 작업복엔 늘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런데 한 달에 15일 일하는데 지급되는 목장갑은 열 켤레도 안 됐다. 기름때 묻은 장갑들을 빨아 써야 했다. 작업복도 1년에 한 벌만 나왔다. 신입들은 선임들 옷을 물려 입곤 했다. 또, 일상 통제도 강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아침 점호를 하고, 저녁 밥 먹고 또 저녁 점호를 했어요. 다 아는 얼굴들인데 30여 명 이름을 일일이 부르고 '네'라고 대답을 해야 해. 사람들이 다 불만이었죠. 결혼도 하고 애도 있는 어른들인데 왜 그걸 다 호명하고 있느냐고요."
그런 권위적인 관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용진은 "철도를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24시간 맞교대를 철폐하고 싶었다.
"24시간 맞교대에선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없어요. 결혼하고서 아내는 다이어리에 내가 들어오는 날을 표시해뒀어요. 내가 안 들어오는 날은 '애를 누가 보니, 뭘 사러 가니 마니' 이런 걸 논하고 싶어도 할 수 없잖아요."
당시에는 명절에도 쉬지 못했다. 명절 대수송기간은 열차가 더 많이 투입되고 안전문제도 더 신경 써야 해서 비상이 걸리는 시기였기 때문에. 꼭 그 기간뿐 아니라 휴가나 병가를 쓸 때면 사유를 써야만 했다. 눈치가 보여 연월차휴가도 제대로 못 썼다.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있었지만 한국노총 소속이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의 영향으로 많은 노동조합이 민주화되고 있는데도 철도노조는 달랐다. 여전히 정부와 철도청의 입장을 대변하는 어용노조의 성격이 짙었다. 위원장 선거도 중앙대의원들이 뽑는 3선 간선제여서 조합원들의 의견은 무시되는 구조였다.
이런 비민주적인 노조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났다. 1988년 기관사들이 먼저 '주1일 휴무 보장'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다. 용진이 입사한 1995년엔 철도노조 민주화 추진위원회(노민추)도 결성됐다. 노조 민주화운동 한복판이었다는 이야기. 바꾸고 싶은 게 많았던 용진도 자연스럽게 노민추 활동을 시작했다.
첫 데이트가 아직 생생하지만 위기를 겪기도
한참 동료들을 묶어내 철도노조 민주화를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던 중에 용진은 결혼을 한다. 과학교사이던 김상미씨는 한 교육에서 지나치듯 봤음에도 눈에 띄는 여성이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발랄해 보이는 그에게 계속 관심이 갔다. 용기를 내어 마음을 표현했다. 19997년 5월, 첫 데이트를 아직도 기억한다. 신촌에서 함께 영화를 봤다. 하얀 블라우스에 검정색 바지를 입었던 상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상미를 만나서 연애를 한 것'은 용진의 인생에서 자랑스러운 일 중 하나다. "나도 연애를 할 수 있구나"를 일러준 고마운 사람이기에.
"그 전엔 연애가 너무 어려웠어요.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힘든데 이성관계는 더 하죠. 고등학교 때도 좋아했던 여학생한테 말 한 마디 못 했으니까. 그런 내가 아내를 서른 살에 만나 연애를 한 거예요."
첫 데이트로부터 10개월 뒤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첫 발령을 받은 지 3년이 안 됐던 김상미는 나중에 "담임을 맡은 신규 교사가 새학기 초에 결혼하는 경우는 없다. 내가 미쳤던 것"이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그만큼 서로에게 빠졌던 두 사람에게도 위기가 있었다.
그해 말에 딸이 태어났다. 3년 후 아들도 태어났다. 그 어느 때보다 아빠가 육아에 힘을 쏟아야 할 시기였지만 용진은 현장일로 바빴다. 살고 있는 인천에서 일터인 서울 은평구 수색동까지 왕복 4시간 가까이 걸렸다. 게다가 24시간 맞교대이니 이틀에 한번 집에 갈 수 있던 것. 그나마도 퇴근 후 철도 민주화를 위해 동료들을 만나느라 못 가기도 하고 가는 날도 잠깐 머무는 수준이었다.
"아내도 전교조 활동도 하고 바쁠 때인데 결혼하자마자 아이가 태어난 거잖아요. 아이 때문에 아무 것도 못 하는 것 같아 무기력하고 우울했대요."
집에 가면 살림을 챙기기도 했지만 아내가 필요로 하는 시간과 애정에는 새 발의 피에 불과했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다툼이 반복되다가 서로의 입에서 '이혼'이란 단어가 나오기까지 했다.
"아내가 힘든 걸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문제는 내가 너무 피곤했던 거죠. 애들 보라고 하면 애하고 같이 자고 있는 거지. 애 엄마는 잠깐 보면서 그러고 있다고 화내고. 많이 싸웠죠. 나는 사랑해서 결혼했으니 결혼하면 안 싸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싸우게 되니까 나도 힘들었죠."
"내가 안 보이면 그날 집을 떠난 거"라고까지 말했던 김상미에겐 힘이 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용진의 빈자리를 많이 채워줘 다행히 파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8월 1일, 로스앤젤레스 항구의 APM 터미널에서 운송 컨테이너가 처리되고 있다. 2025.8.1 AP 연합뉴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25년간 세계경제 규모는 3배로 늘어났다. 이런 세계경제 확장의 가장 큰 기여자 중 하나는 미국이고 미국시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선진국’으로 불리는 주요국들을 포함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 파격적인 고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했는데도 모두가 전전긍긍하며 그것을 조금이라도 경감하기 위해 미국과 거의 굴욕적인 협상을 벌이는 걸 마다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많은 나라들의 경제성장이 수출, 그리고 미국시장과 엮여 있기 때문이다.
지속 불가능한 거대한 불균형
2000년 이후 세계경제 규모가 4반세기만에 3배로 늘어나는 동안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도 3배로 늘어, 1조 1000억 달러(약 1527조 원)에 이르렀다. 주로 무역수지 적자 때문이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거대한 (무역)불균형은 미국도 다른 나라 경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 의회 예산국은 미국정부 부채가 5년 뒤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수행을 위해 빚을 잔뜩 진 상태였던 1946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트럼프 지지자들. 2024년 8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집회. 미국 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적어도 당분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경제신문 8월 3일
미 공화당원 70%가 “무역하면 손해”
이런 상황에서는 트럼프가 아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그와 비슷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지적들이 있다. 미국 국내 여론이 그것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미국 조사회사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특히 공화당 지지자의 70%가 ‘무역을 늘리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무역적자가 곧 패배는 아니다. 미국 절대 우위의 ‘달러 체제’ 자체가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다. 미국의 패권은 그런 달러 체제를 근간으로 유지돼 왔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무역적자를 통해 패권국으로서의 막대한 이익을 향유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은 무역장벽을 낮추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주도하면서 자유무역체제를 선도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미국이 무너뜨리고 있다.
114년만에 20%를 넘는 미국의 관세율 추이,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발동된 2025년에 수직상승했다. 일본경제신문 7월 27일
미국 관세율 2%대에서 20%대로
7일부터 새로운 상호관세를 발동하는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이 이번 달에 20.2%에 이를 것이라고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예측했다. 트럼프 정권 이전에 그것은 2%대였다. 18%대였던 1930년대 대공황기 이후 약 100년만의 최고치다. 한마디로 미국은 자유무역을 버리고 보호무역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국부 유출을 막고 해외의 부를 어떻게든 끌어들여 흑자국이 되려는 중상주의 국가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경제신문>은 그 원인을 크게 3가지로 꼽았다. 1. 국가자본주의체제 중국의 등장, 2.포퓰리즘을 부추긴 미국 국내 공동화, 3. 세계 전체의 경제자유화의 정체다.(7월 27일)
중국 비야디(BYD) 전기자동차(EV)들이 지난 3월 2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46회 방콕 국제 모터쇼에 전시되어 있다. 2025.3.24. 로이터 연합뉴스
자유무역체제 파탄의 첫 번째 요인 중국?
중국의 경우 2001년 WTO 가입 이후 경제규모가 15배로 커졌다. 이것 자체가 미국에겐 안보상 위협으로 다가왔고, WTO에 가입한 중국에게 자국 시장을 열어 압축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자유무역체제를 미국 자신이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됐다.
WTO체제는 주로 물품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미국의 우위를 보장해 준 주요 장치 중의 하나인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과 중국의 막대한 보조금 정책에 대해서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게 한다는, 미국에게는 차명타가 될 수 있는 약점을 갖고 있다. 미국이 지적 재산 침해로 입고 있는 연간 피해액은 2250억~6000억 달러(약 301조~802조 원)에 이른다. 중국 국가자본주의가 자국 기업들에 뿌리는 보조금과 그 보조금 덕에 값싼 가격의 가성비를 무기로 밀어내기 수출전략을 구사해 교역상대국 제조업을 초토화시키는 폐해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WTO 체제 내에서는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은 WTO체제에서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 결과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전체의 28% 비중을 차지하게 됐고, 이는 17%로 쪼그라든 미국을 압도한다.
이런 뒤틀림은 소비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의 소비는 세계 전체소비의 12%를 차지해, 31%인 미국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말하자면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막대한 지적 재산권 침해와 천문학적인 정부 보조금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해 미국 제조업과 그 토대 위에 형성된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는 데도 자유무역체제에선 뾰족한 대응방법이 없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 과잉소비가 문제라는 지적 외면
중국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과소비,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길들여진 과잉소비의 거품경제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냐, 미국이 값싼 중국제품 구입 등 자유무역체제에서 누려온 이득이 그보다 더 크지 않느냐고 비판해 봤자, 미국 정치인들과 일반대중들에겐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이 중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중국 탓으로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지금 미국에 조성돼 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자국 내부 문제보다 중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제조업이 무너진 것은 값싼 중국산 수입품의 범람 외에 저임금과 값싼 원자재, 더 넓은 시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미국 제조업의 ‘미국 탈출’도 함께 얽혀 있지만, 어쨌든 미국 제조업은 기업들의 도산이나 해외이전으로 공동화됐다. 2007~08년의 월스트리트발 국제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파산 쇼크’) 이후 가속화한 미국 제조업 공동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부정기적인 서비스업 수입에 의존하는 저소득층(하위 20%)의 소득은 제자리 걸음이었으나 주로 금융과 I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상위 20%의 소득은 같은 기간에 1.6배로 늘었다.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분야의 노동력을 금융 IT의 고소득산업 쪽으로 이동시키는 노동정책 부재가 미국 중산층의 빈곤과 불만을 더 키웠다.
WTO체제도 2001년에 시작된 ‘도하 라운드’에서 농축산품 수출입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 등의 정치가들은 미국이 압박한 농산품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업 종사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개도국들도 자국의 수입 농산품 관세 인하를 거부했다.
G20 국가들의 2023년도경상수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맨 아래)는 돌출적으로 크다. 0을 기준으로 왼쪽은 적자, 오른쪽은 흑자. 한국은 6번째로 큰 대미 무역흑자국이다. 위로부터 중국, 독일, 일본,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이탈리아 순. 단위:억 달러. 일본경제신문 7월 27일
만년 적자국 미국, 만년 흑자국 일본과 유럽, 그리고 한국
결국 세계의 국제수지는 크게 왜곡됐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9184억 달러(약 1275조 원, 2024년)에 이르렀고, 중국과 독일 일본은 항상적인 경상수지 흑자국이 됐다. 이들 나라는 미국을 최종 소비지로 하는 무역 자유화의 은혜를 가장 많이 받아 왔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최근 연간 1000억 달러(약 139조 원)가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보면서 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베트남도 수혜국가의 하나다. 베트남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하면서 중국에서 빠져 나간 자본들의 미국수출 중간 경유지로 활용되고 있다. 베트남 수출의 70%가 한국 삼성전자 등 베트남 현지의 외국기업들에 기대고 있다.
베트남 북부 박닌 성에 있는 삼성 디스플레이 공장. 삼성의 현지공장들은 베트남의 수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 8월 3일
‘플라자 합의’와 ‘트럼프 관세전쟁’의 같은 점과 다른 점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은 가트(GATT,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를 통해 자유무역을 주도하면서 관세율을 5%대로 대폭 내렸다. 그 결과 개방된 미국시장을 패전국 일본과 독일은 적극 이용했다. 그것은 미국이 의도한 것이었다. ‘마셜 플랜’ 등을 통해 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을 패전의 폐허에서 일으켜 세워 냉전의 동맹국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대전 뒤에 누리던 미국의 절대적인 경제적 우위는 이들 나라의 급성장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달러 태환을 중단한 1971년 ‘닉슨 쇼크’를 거쳐 1985년에 레이건 정권은 감당할 수 없게 된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를 일본에 강요했다.
미국 자본주의 위기의 전면화
‘트럼프 관세전쟁’과 비슷한 것이지만, 그때는 일본 일국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고 지금은 전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달리 말하면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겹친 ‘쌍둥이 적자’로 표출된 당시의 미국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는 일본 한 나라에 대한 공세와 압박으로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해야 할 만큼 더 위중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위기의 전면화다.
게다가 플라자 합의 당시 미국 경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자본주의 주요 선발국 몇 나라와 손을 잡으면 당시 신흥국 일본의 산업정책 수정을 강요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럴 힘이 없다. 지금은 그 주요 타겟이 동맹국 일본이 아니라 패권 경쟁국 중국이라는 점도 다르다.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자체 생존에 결국은 유리하다고 판단했으나, 중국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플라자 합의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총리는 무역수지, 경상수지 적자 불균형 시정을 강압한 미국의 요구에 맞춰 주기 위해 자신의 사적 자문기구인 ‘국제협조를 위한 경제구조조정연구회’에 보고서를 쓰게 했다. 마에카와 하루오 전 일본은행 총재가 좌장을 맡고 있던 연구회의 보고서(‘마케카와 보고서’)는 수출입과 산업구조의 근본 개혁, 금융자본시장 자유화 국제화 추진 등 미국산 수입 증대와 소비 강화를 통해 대미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들을 담고 있었다.
플라자 합의로 엔 시세가 2배로 뛰는 초강세가 단기간에 진행됐지만 일본의 미국산 수입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일본은 거액의 대미 무역흑자를 지속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작성된 마에카와 리포트는 일본 내수를 자극하기 위한 급진적 금융완화정책으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부풀어 올랐던 거품경제가 1990년대 초에 꺼지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일본 지금까지 별로 바뀐 게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 그 플라자 합의의 확대판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사정으로 볼 때 어느 정당 누가 집권을 하든 ‘관세전쟁’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 책임을 미국에게만 덮어씌울 수도 없고, 덮어씌운다고 해도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수 진작을 위한 각국의 과감한 구조개혁? 중국의 수출 위주 압축성장전략의 수정? 가능할까? 어쩌면 세계가 성장 자체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동아시아예문서원은 2일 오후 일본 도쿄도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에서 ‘전후50년+30년의 현재부터 세계에 말을 전한다’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 - 통일뉴스 조정훈 통신원]
전후 80년인 올해 8.15을 앞두고 일본 정부의 담화 발표 여부가 주목받는 가운데, 전후 일본의 책임론을 강조해 온 다카하시 테츠야(高橋哲哉) 교수는 “행동없는 담화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2일 오후 일본 도쿄도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에서 동아시아예문서원 주최로 ‘전후50년+30년의 현재부터 세계에 말을 전한다’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다카하시 테츠야 도쿄대 명예교수는 전후 80년 일본 정부의 담화 발표 여부를 두고 “한국과 중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전후 80년 담화를 기대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일본 정부가 담화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지조차도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형식으로 일본 정부가 담화를 발표하더라도 매우 부족할 것”이라고 짚었다. 올해는 1995년 무라야마담화 발표 30년이 되는 해인데, 무라야마담화는 식민지 침략에 대해 반성을 담았지만 말에만 그쳤을 뿐 후속 조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카하시 교수는 “독일의 경우, 독일 대통령의 과거사 관련 발언이 홈페이지에 매우 상세하게 나와 있다. 말에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독일의 침략을 당한 국가를 방문해 전쟁피해 관련 지역을 방문한다. 현장을 방문해 말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2023년 11월 탄자니아 손게아를 방문해 식민지배를 사죄했고, 2024년 8월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서도 독일 나치의 범죄에 대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일본 역대 총리들은 독일과 같은 행보를 보이지 않았던 것. 이에 다카하시 교수는 “총리가 서울이나 베이징 등을 방문해 전쟁 책임에 대한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 없이 담화만 발표하는 것은 매우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론회에서는 일본 문예평론가 가토 노리히로(加藤典洋)가 ‘패전후론(敗戰後論)’을 발표한 지 30년을 맞아 현재 일본의 우경화 흐름을 연계시키기도 했다.
가토 노리히로는 1995년 1월 잡지 <군상>에서 발표한 ‘패전후론’에서 “식민지 피해자에 대한 사죄가 필요하지만 먼저 전쟁에서 죽은 일본인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해 좌우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이에 다카하시 교수가 반박을 하면서 전후 책임론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벌어졌다.
가토의 주장은 최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인 우선주의’를 내세워 약진한 참정당과 결이 같다는 지적이지만, 30년 전보다 우경화된 현재 일본 사회에서 가토의 주장은 현재 좌경화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다테 키요부(伊達聖伸) 도쿄대 교수는 “30년 전 우익 쪽에 가까웠던 가토의 주장이 지금은 좌경화 취급을 받는다”며 “아베 정권의 영향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만든 정치적, 사회적 보수화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고, 참정당이 약진하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미마키 세이코 도시샤대 교수, 수도 테루히코 도쿄대 교수 등이 발제자로 나섰으며, 200여 명이 참가했다.
2029년 12월 개항. 가덕도 신공항의 공식 일정이다. 국토교통부는 애초 부산엑스포 행사에 맞춰 공항 문을 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부산 엑스포가 물 건너간 것은 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부산 엑스포 행사 시점과 가덕도 신공항 건설 완공 시점을 연계하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애초 2035년에 개항 예정이었지만 부산엑스포를 고려하여 2029년으로 당겨진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현장의 목소리와 공사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계획은 거의 환상에 가깝다. 이는 건설 현장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 일정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수 있다. 해수를 메우고 산을 깎아 엄청난 양의 바윗덩어리와 흙모래를 운송해서 바다를 메워서 공항을 조성해야 하는 초대형 인프라 공사를 불과 5년 만에 완공하겠다는 자체가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다.
최근 국토부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공기 연장문제로 공사 포기를 하면서 다시 재입찰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업계에 그 공사 기간을 맞춰줄 건설사는 없을 것이다. 신공항 건설이 매립지반에 대한 충분한 조사 없이, 부등침하 방지 대책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다면, 안전성과 유지비는 국가가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 이웃 일본의 국제공항인 간사이 국제공항도 애초 50년간 11.5m의 부등침하를 예상했지만 불과 개항 6년 만에 기반침하가 11m나 진행되어 긴급하게 보수 공사를 하고 해안 제방과 방조제 및 인공섬을 복구하는데 2천억 원 이상을 투입되었다는데 유사한 입지환경을 가진 가덕도 신공항 건설 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례이다.
특히 가덕도 신공항은 설계 변경과 공사비 증액이 불가피한 구조로 되어 있다. 가덕도는 해저지반 특성상 변수가 많다. 해저지반은 조사할수록 변수투성이이다. 단단한 암반에 닿을 때까지 파일을 박고, 침하를 방지해야 하며, 추가 매립·보강공사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어떤 계약서를 들이밀어도, 공사는 계획보다 수년 길어질 것이고, 총사업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이는 수시로 설계 변경을 유발하고, 공사 기간을 몇 년 단위로 늘어지게 만든다. 실제로 국내 항만·공항·철도·교량 등 유사한 대형 건설 공사에서 이미 수없이 반복된 사례이자 건설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다. 아무리 계약상 공사 기간과 준공 일정이 명시되어도, 현장에서는 예외 없이 지연과 추가 비용이 발생해왔다.
그 이유는 건설업자들이 막상 시공에 들어갔을 때 지형과 지반 구조상 예상치 못한 부분이나 자연재해 적인 요인 등으로 인하여 난공사가 발생할 수 있고 추가적인 공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기 때문에 계약상 공기는 자연스럽게 연장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서 추가적인 설계 변경을 통하여 공사비도 증액이 되기 마련이다. 국토부는 신공항 공사비를 대략 13조 원 정도로 예상하나 KDI 조사에 따르면 공사비는 16조 원 이상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건설이 6개월간 신중한 검토 끝에 공사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다른 건설사들 역시 그러한 리스크를 안아야 하므로 선뜻 입찰에 나서지 않을 수 있다. 설령 다른 건설사들이 재입찰에 나선다 하더라도 그 경우는 부실한 공사와 공사 기간 등의 검토는 제쳐두고 일단 입찰을 따고 보자는 계산일 수도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업의 추진 배경이다. 2021년 2월,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불과 23일간의 심사를 거쳐 국회를 통과했다. 당시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다음 해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무슨 일인지 한목소리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김해신공항 백지화와 함께 수차례 입지 평가에서 최하위를 받았던 가덕도가 단숨에 최우선 입지로 올라섰다. 예비타당성조사는 면제됐고, 전략환경영향평가도 졸속으로 진행되었다. 항공대학교 컨소시엄의 "가덕도 신공항 사전 타당성 검토연구 용역" 결과를 보더라도 비용 편익(B/C)분석이 0.51~ 0.53으로 경제성의 최저 기준인 1.0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정치인과 지자체에서 써먹기 좋은 문구를 빌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였다.
▲ 아미산에서 바라보는 낙동강하구와 가덕도 풍경. ⓒ습지와새들의친구
가덕도 건설 시 세계적 멸종위기종 상괭이가 사라진다면
가덕도에는 멸종위기종인 상괭이가 서식 중이다. 상괭이는 웃는 얼굴의 토종 돌고래인데 매년 1100마리 이상이 그물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물에서 꺼내어 바다로 돌려보내도 생존하기 힘들다고 한다. 가덕도 신공항 활주로 건설로 인해 바다가 매립되면 당연히 물흐름이 바뀌게 되어 상괭이의 먹이인 숭어 떼가 이동을 하게 되고, 먹이사슬이 깨지면서 가덕도 앞바다의 생태계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생태 환경 파괴는 가덕도뿐만 아니라 새만금 신공항과 최근 논란이 되는 경기 국제공항도 매 한 가지다. 최근 추진 중인 새만금 신공항이나 경기 국제공항의 경우 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지정되거나 해양수산부의 습지보호 지역으로 지정되었거나 람사르 습지로 등재할 예정이다. 갯벌과 습지와 해양에 사는 수많은 희귀 동식물의 보호는 우리 세대의 책무이고 다음 세대에 온전하게 물려줄 자연유산으로 마구잡이식으로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짓이다.
신공항 건설의 경제성과 타당성이 매우 부족하다. 최근 국내공항의 신규 건설 붐이 일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새만금 신공항, 울릉공항, 흑산공항, 백령공항, 경기국제공항 등 이미 국내 15개의 공항이 있으나 이 중 11개 공항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으며, 운영적자로 인해 폐업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추진 중인 새만금 신공항 역시 전북특별자치도의 지역 인구 경제적 특성상 여객은 물론 수출 화물을 창출할 수 있는 뚜렷한 대기업과 중견 중소기업도 거의 없고 물동량 창출의 기반인 배후 도시와 산단 및 인구가 턱없이 적은 현재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설령 신공항이 건설 운영되더라도 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사의 입장에서 과연 새만금 신공항에 장거리 항공노선의 신규취항을 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공항 이용의 고객은 항공사이고 그 항공사의 고객은 항공기 승객과 화물 운송을 위탁한 화주 기업이기 때문에 항공사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정부와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공항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최근 추진 중인 신공항의 경우 공항건설의 타당성 즉 경제성 지표인 B/C를 1.0 이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의적으로 데이터를 넣어 수요는 부풀리고 비용은 최대한 축소하는 식의 연구용역 결과가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특히 가덕도 신공항, 대구·경북통합 신공항, 새만금 신공항, 경기국제공항의 경우 여객만으로는 수요부족으로 공항건설의 타당성과 경제성 입증이 곤란하게 되면서 항공화물 수요를 임의로 창출하여 마치 물류 수요 측면에서 공항이 필요하다는 식의 논리와 주장을 펴는 경우가 많아졌다. 최근 코로나-19 펜데믹과 러-우 전쟁, 이-하마스 전쟁, 미·중 디커플링 전략, 관세 무역 전쟁, 기후변화 등 세계 경제의 예측할 수 없는 변수와 변동성 여기로 인하여 세계 경제 성장률이 거의 정체 수준이고 한국 역시 올해 1% 미만의 성장률을 수정 예측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먼로주의, 관세 무역정책, FTA의 파기, 국제기구의 탈퇴 등 전 세계 국가를 위협하는 수준의 정책으로 인해 해상화물 수요는 물론 항공화물의 수요가 거의 증가하지 않고 항공운임 역시 답보상태다. 게다가 최근 그간 미국이 적용해온 전자상거래 물품에 대한 개인 관세면제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서 알테쉬 등 이른바 차이나커머스의 항공화물 물동량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항공화물 시장의 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필자가 물류와 무역 분야에 40년 이상 일하고 있으나, 그간의 많은 경험측상 최근 세계 경제와 한국경제의 위기는 기후위기와 전쟁과 펜데믹과 국가간의 갈등과 자유무역의 퇴보 등 다양한 원인과 변수에 의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이 되고 점점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드는게 아닌가 싶다.
항공수요는 국내 GDP 변화, 세계 정치 경제의 변화, 코로나 19와 같은 펜데믹, 그리고 정치적 불확실성 등 다양한 요소를 반영해야 하는데, 이러한 국제적이거나 세계적인 사건들을 배제하고, 국토교통부의 공항부문 사업의 수요예측 방법론 관련 지침에 의하면 국제선 수요예측은 계량경제모형을 활용하여 장래 항공수요를 예측하도록 하고 있다. 세계 GDP와 여객킬로당 실질 여객수입을 변수로 계량경제모형을 통해 장래 수요예측하는 국제항공기구(ICAO)와 항공사별 수요예측 의견을 수렴하여 종합적인 예측 실시하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세계 전망치를 단순 정량적인 증가추세를 반영한 모델 등 여러 수요예측 모델이 있으나 이들을 그대로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건 무리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침체, 1인당 GDP의 변동, 정치·경제적인 불확실성 등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수요예측으로,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발 자유무역의 쇠퇴에 보호무역주의의 강화, 국가 간 협정으로 국내법보다 상위 적용되어야 하는 FTA의 일방적인 배제와 폐기 등 WTO가 규정하는 다자간 자유무역을 축소하는 환경변화는 항공화물의 감소와 더불어 공항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지고 기존의 공항 운영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공항 간의 극심한 경쟁 구도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객과 화물에 대한 막연한 수요예측을 대입하여 경제성을 부풀리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고, 설령 신공항이 건설된다 하더라도 개항 시 운영적자에 시달리게 되며 그 천문학적인 건설비용과 이자 그리고 운영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원래 건설에 대한 타당성이 매우 낮은 부정적 입지였다. 그 이유는 김해국제공항의 여객수송 취급 능력이 부족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공항을 건설해야 할지 아니면 기존 김해국제공항을 확장해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했고, 그러한 컨설팅용역을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세계적인 공항건설 컨설팅회사이자 파리공항공사의자회사인 파리공항공단(ADPi)에 발주를 한 것이다. 그 컨설팅용역의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파리 공항공단의 사전 타당성 조사 결과는 굳이 천문학적인 국가재정을 투입하여 새로운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기보다는 기존 김해국제공항을 확장해서 사용하는 김해신공항 계획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당시 김해신공항 확장공사는 2016년 정부의 연구용역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영남권 5개(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지자체 단체장의 합의하에 진행되었는데 그 당시 세계적인 공항컨설팅 업체의 용역 결과를 부·울·경 지자체장들이 이의 없이 수용하기로 합의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러한 합의를 무참하게 깨 버린 것이다. 당시 국토부는 이 안을 최종 확정했고, 5개 단체장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울·경 단체장을 중심으로 파리공항공단(ADPi)이 제시한 신공항을 건설할 경우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백지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세계 최고의 공항건설컨설팅 회사의 결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와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 회사인데도 말이다.
이제 가덕도 신공항은 정치적 셈법에 따른 초고속 추진을 해왔다. 그리고 수년 전부터 부·울·경의 행정적 정치적 통합과 확장에 대한 열망과 해당 지역 주민의 표심을 의식한 나머지 김해국제공항을 확장한다는 것은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공항 개발의 주무 부처인 국토부의 입장과 무관하게 여야 정치권과 지자체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하여 담합이라도 하듯이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와 전략 환경영향 평가까지 건성으로 실시 한 것이었다 이처럼 법과 제도를 무시한 채, 정치 일정에 맞춘 인프라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2021년 국토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식 보고서에는 가덕도 신공항이 안정성, 시공성, 운영성, 환경성, 경제성, 접근성, 항공수요 등 7대 항목에서 모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도 사업은 대통령 지시 한 마디에 따라 조기 개항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고,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에도 일정은 바뀌지 않았다. 이쯤 되면 행정이 정치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정치가 국가 인프라를 자기 돈 쓰듯이 마음대로 소모품처럼 사용하는 격이다.
공사는 기술이지만, 인프라는 철학이다. 설계와 입지, 공사 기간과 공법, 재원과 타당성까지 고루 고려한 공공적 숙의가 있어야 진짜 인프라다. 15조 원 이상이 들어가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재정이 투입될지도 모르는 국책사업을 법과 제도도 생략한 채 심지어 국회의 일방적인 입법행위 하나로 간단히 통과시키고 나서 이제 추진 속도만 강조해선 안 된다. 안전, 자연환경, 여객과 화물의 이용수요 등 중요한 것들을 외면한 공항 개발은 언젠가 국민 혈세를 가중할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거대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른다. 지금 가덕도 신공항은 그 기본을 모두 무시하고 있다. 공항을 정치 이벤트와 지역 표심에 호소하여 졸속으로 짓는다면, 그 후과는 모두 국민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박인철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차 세계국회의장회의에서 러시아·몽골·베트남·라오스 대표와 회담했다고 3일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최고인민회의 대표단이 7월29~31일 제네바에서 진행된 제6차 세계국회의장 대회에 참가했다”며 “최고인민회의 의장 박인철 동지는 국제의회동맹 위원장과 총서기, 로씨야(러시아)연방의회 의장, 몽골국가대회의 의장, 윁남(베트남)인민회의 의장, 라오스민족회의 부의장과 각각 만나 담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러시아 대표가 “조선을 지지하는 로씨야의 입장은 불변하다”고, 몽골 대표는 “조선인민이 앞으로도 보다 큰 성과를 거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노동신문은 박 의장이 회의에 참가한 중국의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만났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자오러지 상무위원장이 브라질·파키스탄·러시아·카자흐스탄 의회 지도자들과 회담했다고 1일 보도했을 뿐 북한 대표와 만남은 언급하지 않았다. 요컨대 박인철 의장과 자오러지 상무위원장의 회담은 없었다는 뜻이다.
회의에는 우원식 국회의장도 참석했으나, 박인철 의장과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세계국회의장회의는 국제의원연맹(IPU)이 2000년부터 5년마다 여는 ‘의회 정상’ 회의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과 어찌 손을 잡을 수 있겠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는 전당대회 종료 직후부터 '협치'보다는 '내란 척결'이란 강경 메시지를 쏟아내며 국민의힘에 대한 공세 수위를 끌어올렸다. 특히 국민의힘 정당해산 심판 청구와 관련해선 "내란특검을 통해 국민의힘 내부에 내란 동조 세력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국민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며 임기 내 추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정 대표는 2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뒤 기자들과 만나 "아직도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이 국민의힘에 있다면 그들과 어찌 손을 잡을 수 있겠나"라며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다. 여야 개념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헌법을 파괴하려 한 세력과,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한 세력이다"라고 정의했다.
정 대표는 당심과 민심이 다르지 않다며 '개혁 당대표' 이미지도 부각했다. 그는 "당원들의 마음과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일치한다"라며 "지금 국민들의 요구는 검찰·사법·언론개혁을 추석 전에 끝내라는 것이다. 개혁에 따르는 저항은 제가 온몸으로 돌파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전당대회 결과와 관련해선 "이재명 대통령도 정청래도 당의 주류가 아니었다"라며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건 민주당의 주류가 바뀌었다는 뜻이고, 정청래가 당대표가 됐다는 건 이제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정 대표는 이날 전당대회에서 누적 득표율 61.74%를 얻어 이재명 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잔여 임기 1년 동안 대표직을 수행하게 됐다. 다음은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국힘 내란 동조 밝혀지면 당대표로서 현명하게 판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선출된 후 당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 대주주 양도세 기준 때문에 여론이 안 좋은데 재검토할 건가. 현재 세제 개편안에 대한 입장은.
"오늘은 전당대회 관련된 것만 물어보면 좋겠다."
- 협치보다 내란 척결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내란 정당 해산에 대해 어떤 입장인가.
"12·3 비상계엄과 내란을 통해 계엄군에게 총을 들려 국회로 쳐들어왔다. 헌법을 공격하려 했고 파괴하려 했다. 사람을 죽이려 했다. 거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먼저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과 악수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반성하고 사과해도 모자란데 아직도 윤석열을 옹호하는 세력이 국민의힘에 있다면 그들과 어찌 손을 잡을 수 있겠나.
내란특검을 통해 윤석열 내란수괴 피의자뿐 아니라 국민의힘 내부에 내란 동조 세력과 내란 방조자·협력자들이 있다는 게 밝혀지면 자연스럽게 위헌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라는 국민적 요구가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당대표로서 현명하게 판단하도록 하겠다."
- 선거운동 기간 전반에 걸쳐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힘들고 어렵다고 느꼈던 지점이 있나.
"선거운동 기간 내내 현장에서 당원들의 눈빛을 너무나 많이 봤고 당원들의 열기를 느꼈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오직 당원만 믿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혹시 힘들고 외롭고 쓸쓸할 땐 어떡하지 생각했는데, 솔직히 그럴 때는 별로 없었다. 현장에 가면 당원들 많은 지지와 열기를 느낄 수 있어서 위로가 됐고 힘차게 뛸 수 있었다.
당심과 여의도의 마음은 일치하지 않는다. 선거공학, 정치공학, 언론공학에 의해 기계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취재를 열심히 하면 앞으로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 집권여당 수장이 되면서 여야 관계 설정도 중요한 과제일 텐데,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예방하는 등 향후 야당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건가.
"지금은 내란과의 전쟁 중이다. 여야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헌법을 파괴하려 한 세력과,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한 세력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지난 6개월간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키라는 준엄한 명령을 했다. 저는 국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당원이 가라는 대로 갈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
- 경제도 굉장히 어렵다. 여당 대표로서 첫 번째 민생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치나 정책으로 생각하는 게 있나.
"전당대회 기간 내내 싸움은 제가 할 테니 대통령은 일만 하라고 말씀드렸다. 개혁은 국회에서 입법으로 하는 것이다. 그 입법을 통해 민생도 보살피는 것이다. 국회와 민주당 대표로서 저는 개혁 작업을 속력을 내서 할 것이고, 행정부에서 민생을 보살피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 개혁 과정에서 당심과 일반 여론이 거리가 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건가.
"당심과 민심이 틀리지 않다. 다르지 않다. 민주당 당원들의 마음과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일치한다. 지금 국민들이 요구하는 건 검찰·사법·언론개혁을 추석 전에 끝내라는 것이다. 그것이 지상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개혁엔 저항이 따르게 돼 있다. 저항은 제가 온몸으로 돌파하겠다."
- 권리당원에선 많은 표를 얻었고 대의원에선 (박찬대 후보보다) 조금 뒤지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 차이는 무엇이라고 분석하나. 내란 청산, 이재명 대통령 뒷받침 등 (두 후보의) 입장이 거의 비슷했는데 어떤 요인이 승패를 갈랐다고 보나.
"전당대회가 끝났다. 전당대회에 대한 표 분석은 언론인들이 해주길 바란다. 저는 민주당 당원과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당대표가 됐기 때문에 그것으로 오늘 행사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여러 좋은 분석은 언론인들이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박찬대 후보께는 포옹을 하면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보자고 했다. 박찬대와 정청래는 전당대회 기간 내내 '안 헤어질 결심'을 여러 차례 했다. 헤어지지 않고 손잡고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이다. 박찬대와 정청래, 정청래와 박찬대는 헤어질 수 없는 정치적 동지다. 선거 때 혹시 두 사람의 헤어짐을 기대했다면 그 기대는 빨리 접으셔야 할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신임 당대표가 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차 임시전국당원대회에서 경쟁했던 박찬대 후보와 포옹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장준하 선생은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1944년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병영을 탈출했다. 탈출 후 광복군으로 편입돼 미 OSS 훈련을 받고 국내 침투를 계획하다가, 급격히 이루어진 일본의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환국했다. 장 선생은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사상계> 잡지를 발행하는 언론인으로, 그리고 생애 막바지에는 제7대 야당 국회의원과 재야 민주투사로 줄기차게 박정희 독재에 맞서 싸웠다. 독립군 출신으로,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의 숙적일 수 밖에 없었던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가 절정을 치닫던 1975년 8월 17일 인적 드문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독재권력이 내세운 공식 사인은 실족사였지만 민주진영에서는 아무도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 그의 두개골 후두부에는 둔기로 맞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직경 6cm의 큰 함몰 자국이 있었다. 그는 조국의 광복과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였다.
중앙정보부 기록에서 명백히 드러난 장준하 탄압 흔적
나는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썼는데 그중에 두 권이 이 분, 장준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한 권은 그의 40주기 되던 2015년에 쓴 평전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이고, 다른 한 권은 2003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 조사관으로서 그의 사인 의혹을 추적한 책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이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960년대 이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작성한 장 선생 관련 미행 사찰과 도감청 기록을 입수하여 샅샅이 살펴봤다. 이를 통해 박정희 독재 정권이 얼마나 악랄하게 장 선생을 탄압했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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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만 지음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기록 중에는 장 선생이 집 안방에서 통화한 전화통화 내역도 많이 있었다. 일상의 소소한 통화조차도 중정은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장 선생이 어디를 갔으며 누구와 만났는지는 기본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철저히 감시되고 미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장 선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집에서 마당 변소간(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감시받으며 살고 있다”고 호소할 정도였다. 특히 1973년 12월 장 선생이 주도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일주일 만에 무려 30만 명의 국민이 참여하는 등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자 그 감시와 탄압은 극에 달했다.
그렇게 관련 기록을 읽던 중 나는 한 대목에 이르러 결국 분노로 인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잔인해도 이리 잔인할 수 있을까. 1974년 1월 26일에 있었던 장준하 선생의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피의사건’ 증인신문 조서를 읽으면서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꾼 유신 악법을 개정 이전의 헌법으로 돌려놓으라는 요구를 담은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것이 장 선생의 죄였다. 처음엔 재판을 받는 장 선생이 인간적으로 진심 불쌍하다는 연민을 느끼다가, 마지막엔 독재자 박정희를 향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유죄 정해진 법정에 부인과 자녀를 증인으로 세운 독재정권의 잔인함
그러한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세 사람이 있었다. 장 선생이 구속되기 전, 74년 1월 11일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 도쿄 특파원 엘리자베스 폰드 기자와 <뉴욕타임스> 도쿄 특파원 비터 휠드 기자를 집에서 만나 유신헌법을 비난하는 인터뷰를 한 사실, 그리고 그에 앞서 74년 1월 9일 미국 대사관 소속 정치담당 2등 서기관 보드만의 숙소에 가서 면담한 사실을 입증할 증인이었다. 그들에게 유신헌법을 비난한 것이 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증인이 장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와 장남 장호권, 장녀 장호경이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처럼 긴급조치 위반 재판은 형식적이었다. 민간인 신분임에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고 기소 자체가 이미 유죄였던 것이다. 그런 재판에 불리한 증언을 하라며 부인과 자식들을 증인으로 끌고 온 독재자 박정희. 그때 법정으로 끌려나온 처, 자식을 바라보고 있었을 장 선생의 심정을 생각하니 나는 정말이지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구명은 고사하고, 해서는 안 될 진술을 강요당하고 있던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것을 두고 어찌 박정희 18년 통치를 ‘독재’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1974년 1월,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죄’로 구속된 장 선생은 군사 재판정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다. 그의 나이 56세. 선고받은 징역을 다 살고 나오면 71세의 노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음모가 숨어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평균 수명은 60대 초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도 좋지 않은 장 선생이 어찌 15년형을 다 살고 71세에 석방될 수 있을까. 결국 박정희의 진짜 목적은 장 선생을 영원히 감옥에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병중에도 투쟁 멈추지 않았던 장준하 선생
하지만 박정희의 음모는 무산된다. 1974년 12월 3일, 장 선생이 병보석으로 석방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미국이 장 선생의 즉각 석방을 외교적으로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선생의 반독재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감옥에서 얻은 깊은 병에도 불구하고 장 선생은 감옥을 나오자마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은 2004년 3월 어느 날, 당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 조사관으로서 법정 스님을 길상사로 찾아갔을 때 직접 들은 것이다.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의 증언이다.
“1974년 12월 말이었어요. 구속되었다가 11개월 만에 석방된 장 선생이 서울 종로 조광현 내과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습니다. 장 선생이 엄청 반가워하며 안부 인사를 나눈 직후 갑자기 부탁이 있다며 자신의 베개 밑에서 한 뭉치의 서류를 꺼내 저에게 건넸습니다. 그러면서 누구 누구를 만나 서명을 받아달라고 말했지요.”
나는 법정 스님의 말씀에 귀가 번쩍 트였다. 다가서며 “그것이 무엇이었나요?”라고 여쭙자 스님은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제2차 100만인 서명지’였다고 답하셨다.
그랬다. 나는 독재자 박정희가 왜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장 선생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 법정 스님의 증언을 듣고 확신했다. 영구집권을 꿈꾸던 독재자에게 장준하는 결코 살려둘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일상생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다가 인적 드문 포천 약사봉에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의 민주주의 밑거름 된 장준하의 치열했던 반독재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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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날로부터 어느덧 50년 세월이 흘렀다. 올해 50주기를 맞이하며 그 분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먼저 8월 11일(월)부터 17일(일)까지 국회 의원회관 3층 로비에서는 ‘장준하 아카이브 사진전’을 연다. 개막식은 11일(월) 오후 2시. 이어 같은 날인 11일(월) 오후 3시부터는 ‘집중 강연, 장준하를 말한다’ 행사가 개최된다.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이부영 전 의원(‘장준하와 한국 민주주의’), 손남훈(‘권력에 저항한 시대정신, 사상계’), 고상만 전 조사관(‘장준하 선생은 타살되었다’)이 차례로 강연한다.
또한 8월 17일(일) 오전 10시에는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장준하 선생 50주기 추모제>가 거행되며, 같은 날 오후 5시에는 서울 안국동 소재 노무현 시민센터에서 ‘내 영혼 노을처럼 번지리’라는 주제로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 추모음악회>가 개최된다. 일제 식민지배와 독재권력에 일생을 통해 항거한 고 장준하 선생. 우리 역시 그의 정신을 잊지 않아야 옳지 않겠나. 이를 다짐하는 50주기 추모행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할 것을 기대한다.
주한미군이 올해 초부터 상하가 뒤바뀐 동아시아 지도를 활용해 내부 교육을 진행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이 지도는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의 지시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캠프 험프리스(주한미군 사령부)를 중심에 두고 있다.
지도에는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북한 평양, 베트남 하노이, 필리핀 마닐라, 대만 타이베이까지의 직선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평택 캠프 험프리를 중심으로 하는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 주한미군기지가 미국 동아시아 전쟁의 센터임을 알 수 있다.
뒤집힌 지도가 충격적인 이유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 작전에서 주한미군 기지가 중심에 위치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 평양, 울란바토르, 베이징, 타이베이, 하노이, 마닐라 등 동아시아 주요 도시들을 하나의 전장(원 시어터)으로 설정할 경우, 주한미군 기지는 그 모든 지역에 군사력을 최단 거리로 투사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 된다.
이 지도가 공개되자,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주목했다. 실제로 브런슨 사령관은 “지도를 보지 않으면 왜 전략적 유연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도의 함의는 단순히 전략적 유연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에, 대만은 대만 해협과 동중국해에 위치한다.
문제의 지도는 한반도는 물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단일 전장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전쟁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중심에는 바로 대한민국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해당 지도는 미국이 동아시아 전쟁 지도를 완성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주한미군 기지를 발진기지로 하는 새로운 전쟁 계획이 착실히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62대의 F-16 전투기로 구성된 2개의 슈퍼 비행대대가 오산 공군 기지에 배치
지난해 7월, 미 제7공군은 군산에 있던 F-16 전투기 9대를 오산으로 재배치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기존에 오산에는 22대의 F-16이 있었기 때문에, 총 31대로 구성된 ‘슈퍼 비행대대(Super Squadron)’가 창설된 것이다.
주한미공군사령관인 미국 제7공군사령관 아이버스는 이에 대해 “미국의 국가안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투 능력과 준비태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슈퍼 비행대대의 창설은 태평양공군의 전략 문서 『전략 2030(Strategy 2030)』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해당 문서는 “70년 전에 최적화된 현재의 기지 태세가 오늘날의 신속 대응 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 광범위한 위기에 신속 대응 가능한 태세 구축
▷ 인도-태평양 전역에 걸쳐 접근이 용이한 기지 배치
▷ 전략적 거점에서의 민첩한 전투 운용 능력 배양
미 공군은 2025년, 두 번째 슈퍼 비행대대를 오산에 추가로 창설할 계획이다.
데이비드 올빈 미 공군 참모총장은 지난 4월 25일 오산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두 번째 슈퍼 비행대대 창설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올빈 미공군 참모총장이 오산기지에 두번째 슈퍼비행대대를 창설할 계획을 자신의 X에 공개했다.
미국의 군사 전문지 『Air & Space Forces』도 지난 4월 24일자 기사에서, 미 공군이 오산기지에 F-16 전투기 31대를 추가 배치해 두 번째 슈퍼 비행대대를 창설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두 번째 슈퍼 비행대대는 오는 10월까지 배치를 완료할 예정이다.
한편, 미 공군 참모총장 대변인은 “슈퍼 비행대대의 목표는 인력과 물류 지원 요구를 줄이는 동시에, 전투 준비와 훈련 면에서 이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곧 F-16 전투기가 참여하는 한미 연합 공중훈련이 더욱 빈번하게 실시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군산 기지에 F-35A 전투기 배치 계획이 없다고?
군산기지에는 F-16 전투기로 구성된 제8전투비행대대(제8비행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군산에 있던 F-16 전투기들이 오산으로 재배치되면서, 제8비행대대는 사라지는 것일까?
『Air & Space Forces』의 보도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제8비행대대는 “한국에 주둔하는 미 공군력의 주요 훈련 및 순환 전력 배치 장소”로서 계속 운영될 계획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전투기가 앞으로 군산기지에 배치될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해 F-35 전투기가 군산에 배치될 것이라는 보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미 공군 대변인은 “미국은 현재 한국에 F-35A 전투기를 영구 배치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공식 입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군산에 배치돼 있던 F-16의 전투 행동반경은 약 550~800km 수준으로, 대만이나 베이징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반면 F-35A는 행동반경이 약 1,100km에 달하며, 베이징은 물론 동중국해와 대만 해협 일대에서의 작전도 가능하다.
게다가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A는 중국의 방공망을 회피하여 대만으로 직접 비행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대만연구소 등 미국의 여러 싱크탱크들은 “미국은 반드시 F-35를 한국에 영구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미국이 한국을 대중국 전초기지로 만드는 데 있어 핵심적인 전투기는 바로 F-35A다. 스텔스 기능과 정밀 타격 능력을 갖춘 이 전투기가 배치되어야만 대중국 공군 전력 태세가 완비된다.
따라서 미 공군 대변인이 밝힌 “현재까지 배치할 계획이 없다”는 말에서 핵심은 바로 그 ‘현재까지’(current) 라는 표현이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해 2025회계연도 국방예산에 F-35 도입 프로그램에 총 124억 달러를 배정했고, 이 예산에는 F-35A 44대 구매 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 미국은 F-16이 철수한 이후에도 군산기지의 제8비행대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F-35A를 수용할 공간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다만, 아직은 F-35A 구매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까지 배치할 계획이 없다”는 미 공군의 입장은, “구매 절차가 완료되면 배치할 계획이다”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한미군수협조 체제의 완비 본격화
7월 8일, 한미연합군수협조단(이하 군수협조단)이 창설되었다.
“전시와 평시 군수 지원의 신속성과 정확성 확보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는 판단이 창설의 배경이다. 하지만 군수 지원의 신속성과 정확성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상황은 ‘전시’다.
한미연합군수협조단이 7월 8일 창설되었다.
군수협조단이 창설된 이후, 7월 한 달 동안에만 세 차례의 군수 보급 훈련이 실시되었다.
▷7월 11일: 예비전력 호송 훈련
한국 육군 동원전력사령부와 주한미군 658지원단이 함께 호송작전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은 경기 평택시에서 포천시까지 약 154km를 이동하며 예비전력을 호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전시에 병력과 장비를 안전하게 후방에서 전방으로 이동시키는 군수 수송 능력 확보를 위한 훈련이다.
▷ 7월 18~24일: 한미 해병대 군수단 연합훈련
해병대 상륙작전 시, 상륙군에게 필요한 군수물자(식량, 탄약, 박격포 등)를 보급하는 방식의 연합 군수지원훈련이 실시되었다.
전시에 해병대가 적 해안에 상륙한 직후, 즉각적인 전투지속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절차를 숙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7월 21~25일: 한미 연합 공중 재보급 훈련
적 후방에 침투한 특수작전부대에 장비와 물자를 공중에서 보급하는 훈련이 실시되었다.
이번 훈련에서는 식량, 탄약 등 총 6,000kg 규모의 물자를 보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중 보급은 지상 접근이 어려운 전장 상황에서 특수부대의 작전 지속성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이다.
이로써 7월 한 달 동안, 육군, 해병대, 공군이 모두 참여한 전시 군수 보급 훈련이 실시된 셈이다.
세 가지 훈련 모두 전시 상황을 가정한 실전적 훈련이었으며, 이는 군수협조단 창설과 연계된 작전 능력 강화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쟁 준비 태세 구축 본격화
뒤집힌 동아시아 지도,, 신속 기동이 가능한 정밀 폭격 전력인 F-16과 F-35A의 전진 배치, 그리고 ‘전시’ 군수협조단 창설과 함께 육군·해병대·공군이 모두 참여한 군수 보급 훈련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본격화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미 윤석열 정부 시절, 미국은 한미일 동맹 구조를 고착화하고, 핵과 재래식 전력을 통합(CNI)하며, ‘다영역전’이라는 새로운 전쟁개념을 적용한 군사훈련을 한미 또는 한미일 체제로 반복적으로 진행해왔다.
이 모든 과정은 중국을 겨냥한 전쟁준비 태세 구축이라는 미국의 대전략과 정합성을 갖고 있으며, 그 전략은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24년 12.3 내란 시도가 저지되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섰지만, 미국이 추진해온 전쟁준비 구도는 중단은커녕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지금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평화가 아닌 전쟁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 당시 영상. 당시 서부지법으로 들어간 몇몇 대통령 지지자들이 기름으로 추정되는 물질을 깨진 서부지법 창문을 통해 뿌리고 불을 붙이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발견됐다. ⓒ 유튜브 '제이컴퍼니'
1.19 서부지법 폭동 사태 가담자들 63명에 대한 1심 판결이 1일 무더기로 나왔다. 당시 건물 내부에 방화 시도를 하고, 법원 7층까지 침입한 속칭 '투블럭남' 심아무개씨에게는 징역 5년이 선고됐고,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로 알려진 윤아무개씨에게는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됐다.
심씨가 받은 징역 5년은 서부지법 폭동 사태 가담자들 가운데 최고 형량이다. 검찰 구형이 그대로 유지됐다. 심씨는 특수건조물침입,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존건조물방화미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서울서부지법 제11형사부는 이날 오후 2시 30분 심씨 등 서부지법 폭동 사태 가담자 49명에 대한 선고재판을 열었다. 심씨 이외에도 ▲ 법원 1층 유리 출입문을 철제 차단봉으로 깨뜨리고, 경찰관들을 강하게 밀치거나 방패를 잡고 흔드는 등 폭행을 저지른 피고인에 대해서는 징역 4년이 ▲ 소화기로 법원 1층 현관 자동유리문을 2회 내리친 피고인에 대해서는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됐다.
또한 ▲ 법원 7층까지 난입해 형사 단독 판사실 2개 호실을 발로 차 개방한 후 내부 수색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출입문에 설치된 전기 자석 도어락을 파손한 피고인에 대해서는 징역 3년이 ▲ 법원 당직실 내 컴퓨터 모니터, 키보드를 부수고, 1층 현관 출입구 셔터를 강제로 들어올려 파손시키고, 법원 7층까지 올라가 판사실 출입문 손잡이를 잡아당는 등 수색을 벌인 피고인에 대해서는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됐다.
법원 경내로 난입해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재판을 받은 피고인 대부분에겐 징역 1~2년 정도가 선고됐다.
"사법권 독립 심각하게 위협... 법치주의 크게 후퇴"
재판부는 양형 이유를 통해 "법원의 재판 과정이나 결과가 개인의 신념이나 기대와 다르다는 이유로 법률이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채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법원을 공격하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고, 어떠한 명분으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헌법이 부여한 사법권의 정당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법관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내릴 독립적인 판단을 위축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를 크게 후퇴하게 만들었다"며 "합리적인 비판은 불법적인 폭력과 구별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특히 피고인들의 행위를 두고는 "재판에 대한 의견을 정당한 절차와 방식으로 표명한 것이 아니라, 다중의 위력을 보여 법원에 침입하고 그 과정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관들을 폭행하며, 법원의 기물을 파손함으로써 법원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며 "행위의 죄질이 무겁고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사건은 단순한 불법행위를 넘어, 법치주의의 핵심 요소인 사법권의 독립을 심각하게 위협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겪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 훼손과 이에 따른 심리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법원의 물적 피해, 정당한 공권력의 무력화로 인해 경찰공무원이 입은 인적 피해 등 실질적인 결과 역시 참혹하다"고 덧붙였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취재하다 특수건조물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윤석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해서는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개인적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을 표현의 자유 내지 예술의 자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개인적인 작품 활동의 경우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보도 목적이 명백한 언론기관과 비교하여 그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한지, 제3자의 법익을 침해하는지 등 정당행위의 성립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해 "당시 법원이 외부인의 출입 자체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던 점, 피고인은 경찰이 정문 출입을 막자 강제 개방된 후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간 점, 피고인은 경내로 진입하기 전에도 법원 담벼락 사이로 경찰과 집회참가자들의 대치 상황을 촬영하였다는 것으로, 침입 행위 없이도 다큐멘터리 제작에 필요한 영상을 어느 정도 촬영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긴급성, 보충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영장실질심사 받는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윤모씨서울서부지법에서 벌어진 폭력 집단난동 사태에 가담한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윤모씨가 2월 5일 오후 서부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서울 마포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전광훈씨가 목사로 있는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였던 윤아무개씨 또한 같은 날 오전에 열린 서울서부지법 형사1단독 재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윤씨 역시 전직 대통령 윤석열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서부지법에 난입해 법원 출입문 셔터를 망가뜨린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박지원 부장판사는 "(윤씨에 대한)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면서 "법원의 판단에 불만을 갖게 되면 법정 내 분쟁이 일어날 수 있고, 해소되지 않는 사회적 갈등으로 심각한 피해를 불러오게 된다. 이러한 범행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엄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왼쪽), 박찬대 당대표 후보가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MBC)에서 열린 TV토론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의 사퇴로 넉 달 동안 공석이던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가 2일 오후 새로 선출된다. ‘내란 세력 청산’과 ‘이재명 정부 성공’이라는 두 과제를 내걸고 보름 남짓 경쟁했던 정청래·박찬대(기호순) 후보는 선거 막판까지 “전투형 지도자가 필요하다”(정 후보), “국민의 힘 해산을 청구하겠다”(박 후보)며 표심에 호소했다.
“내란정당 국민의힘 해산” 몰아치기엔 한목소리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두 후보는 한표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한 막판 선거전을 펼쳤다. 정 후보는 이날 오전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출연해 “내란과의 전쟁 속에서는 정청래 같은 강력한 리더십, 전투형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부분을 당원과 국민이 공감해주는 것 같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당 대표 선거전의 승기가 본인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과시하며 ‘굳히기’에 나선 모양새다. 정 후보는 이날도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 맞고 해산해야 될 것”, “당 대표가 되면 검찰 개혁을 최우선으로 배치하겠다”는 등 수위 높은 대야당 공세 발언을 이어갔다.
선거 초반 ‘협치와 통합’을 외치다 후반부터 ‘내란 척결’ 등 강경 메시지로 선회한 박 후보도 질 수 없다는 듯 “국민의힘 해산”을 외쳤다. 박 후보는 지난달 31일 “내란 특검을 통해 (국민의힘이) 내란에 동조했다는 것이 수사로 밝혀져 죄가 인정된다면, 법무부 장관에게 해산 심판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한남동 관저 체포 저지’ 집회에 나섰던 국민의힘 의원 45명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밝히고 있다.
이재명 정부 첫 해 집권 여당을 이끌겠다며 출사표를 낸 두 후보가 나란히 ‘국민의힘 때리기’에 몰두하는 것은 전당대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큰 권리당원을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전당대회 투표에서 국민 여론조사는 30% 반영되지만 권리당원 표심은 두 배 가까이 많은 55%가 반영된다. 권리당원의 표심을 잡기 위해 두 후보 모두 전력으로 질주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특히 ‘추격자’로 평가되는 박 후보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정 후보를 얼마나 앞서느냐가 역전의 관건으로 꼽힌다.
권리당원 표심을 놓고 두 캠프의 설명은 엇갈린다. 정 후보 쪽은 지난달 19∼20일 충청·영남권 권리당원 투표에서 확인된 득표율 격차가 2일 발표되는 최종 전국 권리당원 득표율 격차에서 더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 후보 쪽 관계자는 이날 “최근 정 후보가 다른 일을 제쳐놓고 수해 복구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선 점을 당원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며 “당원들은 처음부터 강력한 개혁 당 대표를 원했고, 최종 권리당원 득표율은 충청·영남권 합산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 후보 쪽 관계자는 “수해로 권역별 순회경선(지난달 26∼27일 호남권과 경기·인천권)이 취소되면서 앞서 투표한 충청·영남권 외 지역의 당원들이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며 “격차가 상당 부분 좁혀졌다”고 주장했다.
“격차 더 벌어져” vs. “대의원 표 합산 땐 역전”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두 후보는 전체 투표 결과에서 15%를 차지하는 대의원 표심 잡기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인지도가 높은 정 후보가 일반 여론조사(30% 반영)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 가운데, 1표가 권리당원 17명의 표에 맞먹는 대의원 표심 향배에 두 후보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지난 1일 정 후보는 라디오 출연 외 공개 일정을 잡지 않고 국회의원, 시·도당 위원장,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원 등에게 전화를 돌려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후보도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에서 당원 간담회를 열었고, 나머지 시간은 ‘전화 선거운동’에 매달렸다고 한다.
박 후보 쪽에서는 현역 의원들의 지지세가 박 후보에게 크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의원 표의 상당 부분도 박 후보에게 쏠릴 것이라고 자신한다. 박 후보 쪽 관계자는 “박 후보에 대한 대의원 지지세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상대적 열세인 점을 충분히 만회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정 후보 쪽은 “권리당원 표심에서 정 후보가 워낙 앞선 데다 예전처럼 국회의원 지시에 대의원들이 모두 따르는 분위기가 애초부터 아니다”라고 말했다.
1일 오후엔 두 후보 간 막판 신경전이 격화되기도 했다. 정 후보가 MBC 라디오에서 “당원들이 국회의원을 압도적으로 이긴다”고 말한 데 대해, 박 후보 쪽이 ‘갈라치기’라고 반발하면서다. 정 후보는 전날 페이스북에도 “국회의원의 ‘오더’(지시) 표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박 후보 캠프는 “당원과 국회의원의 마음이 따로 노는 것처럼 당을 분열시키려는 시도에 강력한 경고의 뜻을 표하며, 지금 당장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경기 고양 일산 킨텍스에서 2일 오후 2시 시작한다. 수해로 결과 발표가 미뤄진 호남권, 경기·인천권, 서울·강원·제주권 권리당원 투표 결과와 함께 대의원 투표, 일반 여론조사 결과가 한 번에 발표된다.
GDP 규모, 한국이 일본ㆍEU보다 대미 투자 더 많아
방위비ㆍ주둔비ㆍ무기수입 등 트럼프 날강도 짓 아직 남아
중소기업, 고용문제, 민생경제, 산업공동화 치명상 우려
탈미 외교통상 국가들과 연대, 자주권 절실
ⓒ대통령실
한미 간 2+2 (재무·통상 장관) 협의에서 관세 협상이 큰 틀에서 타결됐다.
31일 대통령실 브리핑에 따르면, 미국의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은 15%이며, 한국은 미국에 3,500억 달러(487조 원) 규모의 투자를 제공한다. 조선업 협력에 1,500억 달러가 조성되며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에 투자될 전망이다. 또한 한국은 3년 반 동안 1,000억 달러의 미국산 에너지를 구입해 러시아산을 대체한다. 반면 쌀과 소고기는 추가 개방하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흑자 규모가 각각 660억 달러, 685억 달러(미국통계 기준) 로 비슷한 상태에서 경제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5,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일본에 비해 3,500억 달러 투자로 한국이 선방했으며, 펀드 운용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프로젝트 산출물의 책임은 미국 정부가 지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라는 단서를 달았다고 자평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소유·통제하는 프로젝트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며 이익의 90%를 미국이 갖는 조건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1,000억 달러의 LNG 등 에너지를 구매하고 추가로 투자 목적의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기로 합의했고, 한국이 자동차와 트럭, 농산물을 포함한 미국 제품을 수용해 무역을 완전히 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한국 자동차에 대한 관세는 15%이며 철강·알루미늄은 50% 그대로 적용되며, 반도체와 의약품은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게 대우받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한국과 미국 발표의 차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투자이익의 90%를 가져간다는 것은 재투자 개념이며, 농산물에 대한 추가 개방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요구한 디지털 지도, 디지털 플랫폼 등의 추가 양보도 없었다.
한국은 일본, EU 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수준으로 합의했다. 미국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은 알래스카 가스사업 투자, 보잉기 100대와 수십억 달러의 무기 구매, 쌀 시장 추가 개방 등을 양보했다. EU는 7,500억 달러(3년간) 미국산 석유·천연가스·핵연료를 구매하며, 막대한 규모의 무기 구입도 합의했다. 반면 한국은 미국 상품 구매와 시장 개방에서 비교적 선방했고, 이를 반영하여 타결 직후 코스피가 상승했다.
그러나 2024년 GDP 규모(EU 19.4조, 일본 4.0조, 한국 1.9조 달러)로 볼 때, 한국의 3,500억 달러 투자는 이들 국가보다 많은 편이다.
또한 국방비를 GDP의 5%로 인상, 주한미군 주둔비 9배 인상, 미국 무기 구입 등의 요구는 진행 중이다. 변덕스러운 트럼프에 의해 추가 양보 요구가 지속될 전망이다.
한미 관세 협상을 동맹국들과 상대적인 비교가 아니라, 국민경제 차원에서 평가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먼저 형식에서, 관세 협상 과정에 이해 당사자와 국민에게 협상 내용을 공유하지 않았다. 언론은 미국이나 기업 입장에서만 접근했고, 미국의 부당에 요구에 국민경제와 노동자·농민·국민의 피해는 부각하지 못했다. 정부는 밀실 협상으로 몇몇 장관과 기업 총수와만 논의하고 국민의 지원하에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내용에서, 관세 부과 이전과 비교하면 국민경제가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다. 한국은 한미FTA로 관세가 대부분 0%였는데, 이번 합의로 자동차 15%, 철강·알루미늄·파생제품 50%, 그리고 반도체·의약품·구리 15~30% 예상 등으로 품목별 관세가 인상됐다. 또한 모든 상품에 적용되는 보편관세 15%도 현재 0%에서 대폭 상승한 것이다. 무엇보다 3,500억 달러 첨단산업의 미국 투자는 산업공동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한미 조선협력의 성과를 말하지만, 이는 기술이전과 현지공장 설립으로 한국에 매우 불리한 합의이다. 미국의 쇠퇴한 조선업을 도와주는 것인 만큼 숙련된 인력, 기술, 기자재 공급망이 있는 한국에서 선박을 건조·수리해서 미국에 수출해야 지역경제와 일자리에 도움이 되는데, 미국 퍼주기로 끝났다. 기술과 투자를 제공한 한국이 오히려 하청기지가 되어 미국 내에서 선박을 건조하거나 한국에서 반제품 형태로 만들어 미국 현지 공장에 공급하므로, 대부분의 부가가치는 미국에 귀속될 것이다.
자동차 관세 부과로 미국으로 따라가지 못한 부품사는 완성차에 공급할 물량과 수출 물량이 동시에 감소하여 고용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 투자는 기업 차원에서는 배당을 받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는 고용·세수·지역의 산업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로 타국의 주권을 침탈하는 날강도 트럼프에 대해, 자주권이 없으면 두 번 세 번 양보하고 나라의 곳간이 털리게 된다. 현재 러시아, 중국, 브라질, 인도, 이란 등 브릭스 국가들이 탈미 외교통상을 추구하고 있고, 캐나다, 멕시코, 남미 등의 나라들도 미국의 일방적 관세에 대응하고 있다.
80년간 원나라의 지배를 받은 고려는, 원이 수행하는 일본 정벌과 홍건적 토벌에 군대와 각종 물자를 제공하여 재정이 파탄 나고, 백성들은 쌍성총관부 등을 차지한 친원 매국노들에게 토지를 빼앗기고 공물과 궁녀 상납 등으로 피폐해졌다. 자주권을 되찾기 위한 공민왕의 개혁이 실패하면서 결국 고려는 멸망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자주권을 회복해야, 한국의 미래가 아래와 같이 몰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종속된 한국은 외교통상과 군사 주권을 상실하고, 천문학적 국방비와 미군 주둔비를 부담하여 재정이 고갈되고 미국의 전쟁에 끌려갈 처지가 됐다. 현대판 공물인 ‘농축산물 수입개방’, ‘디지털 플랫폼 개방 확대’, ‘미국에 수백조 원 투자’ 등으로 미국의 산업 부흥과 고용 창출에 기여하고, 한국은 산업공동화로 국민의 삶이 피폐해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국무부에서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한-미 외교장관이 31일(현지시각) 첫 회담을 열고 굳건한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한·미·일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외교부는 1일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의 회담 뒤 보도자료를 내고 이렇게 밝혔다. 두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미 관세 협상의 타결을 축하하고,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와 다양한 성과 거양을 위해 일정 등 세부사항을 긴밀히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과 2주 이내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 것이라고 했다.
이 자리에서는 미국이 강조해 온 ‘동맹 현대화’에 대한 얘기도 주요하게 오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대만 문제 등에서 한국이 더 큰 역할을 해야 하고,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외교부는 “두 장관은 한미동맹이 한반도는 물론 역내 평화·안정·번영의 핵심축임을 재확인했으며, 변화하는 역내 안보 및 경제 환경 속에서 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 중요성도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동맹을 현대화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회담 뒤 미국 국무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양측은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가 국제사회의 안보와 번영을 위한 필수 요소임을 강조했다”고 돼 있지만, 우리 외교부 자료에는 대만해협 문제가 빠져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관계자는 “루비오 장관이 많은 부분을 중국에 대해 할애하려고 했다”며 “(한국이) 어떻게 해달라는 건 없었다. (한국은) 공감을 표시하면서도 동북아 평화·안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또 두 장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확고히 견지해 나가기로 했다. 외교부는 “두 장관은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확고히 견지하기로 했다”며 “북한 관련 상호 평가를 공유하고, 앞으로 북한 문제 관련 양국 간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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