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희망버스...

from 단순한 삶!!! 2011/07/12 20:48

1차 희망버스에는 타지 못했고,

진보신당에서 그 다음주엔가 버스 한대로 간다고 할때 따라 갔다 왔다.

(20여명이 하룻밤 김진숙을 지켰나? ㅎ)

그리고 이번에 2차 희망버스를 탔다.

고양시에서 버스 한대로 출발했다.

 

부산역에 내려서 비 쫄딱 맞으면서 멋진 공연보고,

한진 중 앞에까지 비 맞으면서 걸어갈 때는 좋았다.

그리고는 절벽.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그냥 이렇게 밤 샐거 같아서

뒤로 나와서 어느 건물 벽에 기대서 어떻게라도 눈좀 붙여 볼까 할때까 3시쯤.

그리고 와~~ 소리가 나길래 일어났더니, 물대포가 춤을 추고 있네..

물대포 계속 쏜다고 경고 방송했으니까, 이제 와서 한번 쐈나 보네...

그리고 또 쪼그리고 앉아서 졸까 말까 고민...

이번에는 사람들이 뒤로 마구 밀려 온다.

젖은 양말까지 벗어 놓고 앉아 있다가,

후다닥 배낭에 집어 넣고 일어나 보니까,

헉!! 이건 장난 아닌가 보네.

 

아우성에, 눈 못뜨겠다고 울부짖고..

가지고 있던 물 부어주고 상황판단해 보려고 했더니,

이미 상황 종료...

연행도 되고, 파란 물도 뿌리고, 10년만의 최루액에 아우성이고...

근데, 그게 하나도 아까운게 없는데,

방송차와 그걸 돌리는 전기차가 저놈들 손에 넘어가버렸다는 거...ㅠㅠ

이제 밤새워 뭘 가지고 난장을 까고 놀 것인지..

 

그래도 뒤에 작은 트럭에 앰프와 마이크가 있었나 보네.

조금 떨어지면 들리지도 않는 음향으로 공연 같은걸 하고 있네..

뒤에서 잠도 못자서 다시 트럭 앞으로 갔더니,

우와 저 젊은 것들은 뭐지???

악!! 악~~, 악!!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그 졸린눈으로도 나도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거라..

오늘 에사 유투브에서 찾아 봤는데,

'무키무만만수' 라고 홍대부근에서는 꽤 떴다는 친구들이라네...

오늘 부터 이친구들 열렬 팬 하기로 하고,

음반 나왔냐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그렇지 않은거 같다네요..ㅠㅠ

그 친구들 덕분에 정신 차리고 밤을  꼴딱 샜다는...

50 평생에 이렇게 밤 새워 본적이 없는데..

 

암튼.

아침에 아침밥을 두 끼나 먹고 나서

계속 비실비실 거리다, 더워서 잠도 못자고,

다시 고양 버스를 타고 돌와왔지요.

김진숙 얼굴도 못보고, 목소리만 전화목소리 앰프로 듣고...

 

단 한가지..

1차 희망버스 때 담장을 넘어서라도 한진중에 들어가서

난장도 까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울기도 하고,

김진숙의 크레인에도 가보고.. 그랬던 모양이라..

그래서 노동자 집회와는 달리 폭력도 없고,

자유롭고... 어쩌고, 눈물나고..

또 경찰과 협상도 없고......

그런얘기들이 생각나네..

 

근데, 2차 희망버스는 1키로 앞에서 딱 막고 나서니까,

몸싸움도 하고, 모래포대 가져다가 성도 쌓아 보고,

중간중간에 경찰에게 경고도 했다가,

경찰과 협상도 하고,,,,

도대체 이게 그동안의 민주노총 집회하고 뭐가 다른 것인지,

(물론 요즘 김영훈은 그전의 민주노총하고도 전혀 달라서

  뭔가 가치 부여를 할 것도 없지만....)

민주노총도 집회도 하고, 싸움도 하고, 끌려가고, 온갖 지랄 다해 봐도

그 막강한 경찰력 앞에 도무지 아무런 수가 안생기니까.

지금의 그모양 그꼴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런 분위기에다

위원장이라는 놈까지 '구속을 각오하고' 뭘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으니,

당연히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과 짜인 각본까지만 하고

술한잔 먹고 집에 가는 것이지...

 

결과적으로 들은 소식은

경찰과 협상에서

가대위가 농성자들 면담하게끔 해 준다는 것과

3차 희망버스를 허용(?)한다 는 그런 거였다는데...

이런게 희망버스가 경찰과 협상할 내용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래도,

3차 희망버스도 한다는데,

또 막고 있으면, 2차 처럼 그렇게 할 것인지...

그럼 사람들 식상하고 재미 없다고 흐지부지 될 것은 아닌지.

무키무키만만수  가 다시 온다면 또 갈테지만...

희망버스도 민주노총 집회를 닮아가는 거 같아서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는  그런 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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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2 20:48 2011/07/12 20:48

7월부터 건기연 지부장이다.

만신창이가 된 노동조합을 지켜줄 적임자인 거 같지는 않지만,

돌고, 밀리고 이러다가 어쩔수 없이 맡게 된 것이다.

어쩔수 없지는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이다.

 

4일 취임식을 했다.

 

노동조합 상황이 외부에 쪽팔리기도 해서

바깥 사람들 초대하지도 않았는데,

진보신당에서 심상정 전의원과 많은 당원들이 와 주셨고,

우리 식구인 공공연구노조 간부들이 많이 와 주셨다.

조합원들도 꽤 많이 와서 분위기는 좋았다.

밖에서 문자로도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신

동지들께도 감사를 드린다.

축하 받을 일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ㅎㅎ

 

어디든 연설할 게 있으면 할 말도 별로 없어서

몇마디 안하고 마는데,

그동안 하고픈 말이 좀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말로 하면 상소리나 할 거 같아서

원고를 열심히(?) 써서 길게 읽었다.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별로 변하지 않는 사측 사람들을 보면 한심함이 느껴진다.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서 한번 뒤틀어진 모습을

바로잡는데는 두배 세배의 힘이 들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요즘이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께!

 

지난 3년간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400명이 넘던 조합원이 60여명으로 줄어 들었고, 단체협약은 해지되었고, 노사간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단지 노동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유무형의 탄압을 받았고, 승진과 급여, 연구과제 참여, 인센티브, 평가 등 모든 부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조합원으로 남아 노동조합을 지켜주신 동지 여러분께 먼저 무한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조용주 원장 3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치료하지 못할 고질병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습니다. 옆의 동료를, 선배를 후배를 그리고 본부장을 실장을, 팀장을, 팀원을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연구도 팀워크이고 협동이 중요한 것이고, 행정이나 지원업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연구를 하는지,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노동조합 간부를 만나기만 하면 조용주 원장과 그 하수인들을 비난하던 사람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보직자가 되어서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현실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 3년간 건기연에서는 주위의 동료를 서로 감시하고, 이를 거짓으로 보고하고, 이런 것으로 업무능력을 평가 받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건기연이 기관평가에서 2년 연속 미흡을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구나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고, 서로를 헐뜯고 감시하는데 열중하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실적이 나올 수 있겠으며, 어떻게 평가를 잘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밥 한끼 사거나 안면 있는 평가위원들에게 전화해서 부탁하는 것으로 평가 결과가 잘 나올 거라면 무엇 때문에 다른 기관들이 연구에 매진하고 있겠습니까?

 

지난 3년간 건기연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원장의 말 한마디가 법이나 규정보다 앞선다는 웃지 못할 논리가 그대로 활개를 치는가 하면, 얼마나 많은 규정이 바뀌고, 원장의 방침이 제정되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직원들의 의견수렴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원장이나 또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 있다거나, 누구를 못살게 만들 거리가 있다면 아무 거리낌 없이 규정을 바꾸고 방침을 만들어 왔습니다. 규정을 바꾸기 위해서 부서장이 직원들 회의를 열고 문 앞에 지키고 서서 직원들에게 서명하라고 강요하는 이런 행태는 기관운영의 문제에 앞서 심각한 인권유린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아 보면 이런 행위들이 연구원의 발전을 위해서, 또는 직원들의 일할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은 단언컨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있었다면 노동조합에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못살게 굴기 위해서, 조직운영의 근간을 이루는 원규와 방침을 마음대로 만들고 바꾸고 해 온 것입니다.

 

저는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건기연의 직원으로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진 적도 있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연구사업을 확대하고 오늘의 건기연으로 만들어 온 헌신적인 직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건기연이 있었고, 나름대로 어느 공공기관과 비교해 보더라도 나름대로 비리나 부정에는 깨끗한 풍토를 유지하고, 직원들 간에 신뢰와 활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용주 원장 3년 동안 이런 자부심은 완전히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운영되는 기관이 공공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동료야 죽든 말든, 부하들이야 죽든 말든 오로지 내 것만 챙기면 된다는 흡혈귀 같은 사람들이 넘쳐 나게 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성과 양심을 버리고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동안에 건기연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건기연에는 이런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노동조합만이 메아리 없는 절규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일 뿐입니다. 노동조합이 기관을 살리거나 죽일 힘도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엉뚱하게 노동조합에 화살을 돌려 모든 것을 노동조합의 탓으로 돌리는 눈 먼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그들의 거짓과 폭력에 눌려서 그들의 손발이 되어준 건기연의 주인들이 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건기연 직원으로서 오래 된 시니어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앞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

 

세상이 어렵습니다. 누구나 하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옆의 동료들을 팔아서 몇 푼의 돈을 더 챙기는 건 비열한 행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내 것을 더 챙기기 보다는 더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직급이 더 낮은 동료들을 챙겨주는 풍토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노동조합이 깨지면서 몇 년째 임금협상도 못하고 있습니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임금은 동결이거나 평가를 잘 못 받아서 깍이고 있으니 누군들 불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혼자서 동료들을 제치고 내 임금 조금이라도 더 받아가겠다는 지금의 풍토로 계속 가면 함께 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용주 원장이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달라지거나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의 원장직무대행을 비롯한 경영진은 조용주 원장 시절의 완장에 대한 향수가 너무도 그리워서인지 다른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인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노사간에 몇 사람씩 만나서 이런저런 문제를 협의하고 작성한 회의록을 게시판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노력한다, 추진한다, 강구한다’ -- 이런 것 밖에 없습니다. 단 한 건의 문제도 해결할 의지도 없고,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 보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새로운 원장이 누가 오든 간에 지금의 직무대행이나 경영진과 얼마나 달라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새로운 원장도 조용주 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쉽게 버리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도 전임 원장 시절에 일어난 일이라면서 끝까지 법적인 판단을 받아 보자고 할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직장인 건기연을 남의 일로 여기는 원장직무대행과 경영진이라는 이름을 쓴 사람들에게 내맡겨 둔 채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채 떠내려 가고 있는 꼴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계속 경영을 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비젼을 말 할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지부장으로 취임하면서 앞으로 2년 간의 그럴 듯한 사업계획을 내세우고 조합원 여러분께 함께 싸워 나가자는 얘기를 해야 하는데, 만신창이가 된 노동조합으로서는 지금 거창한 사업계획을 낼 수 도 없습니다.

다만, 임금인상은 물론이고, 건기연의 조직을 정상화 시킬수 있는 집단은 노동조합 밖에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그동안 뼛 속 깊이 느꼈을 것이기에, 노동조합을 다시 복원하고 정상적인 활동을 할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씀을 취임약속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동지 여러분들이 함께 조합원 배가운동을 해 주셔야 가능한 일이기에, 여기에 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와 함께 앞으로 직원들간의 신뢰를 회복하고, 서로를 믿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동조합이 노력하겠습니다. 누구를 탓하기 보다는 서로를 격려하고 새로운 건기연을 만드는데 여러분이 함께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동안 수백명의 조합원이 조합사무실로 찾아와서 미안한 눈빛으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탈퇴서를 내 밀고 갈 때 이것들을 한 장 한 장 받으면서 억장이 무너지고, 심장이 막히는 안타까움과 분노와 상처를 입었을 박근철 전 지부장과 박희성 전 사무국장님께 무한한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작은 노동조합도 남아있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게 그리고 끝까지 조합을 지키고 계신 상집위원들께, 대의원들게, 그리고 조합원 여러분께 서로 힘찬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11. 7.4.

전국공공노동조합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지부

지부장 곽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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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10:07 2011/07/0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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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에 폴란드에서 부유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나

독실한 카돌릭 집안에서 공부하고 법학을 전공했으나

흥미를 잃고 프랑스 유학을 하고서도 변호사 공부를 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단다.

 

1939년 아르헨티나 기사를 쓰기 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갔을때

2차 세계대전이 터져서 고국 폴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르헨티나에 남아서 생활고를 겪어가면서 작품활동을 했단다.

 

나치와 소련 체제에서 작품들은 판금으로 묶였고,

1957년 폴란드 민주화 운동으로 잠시 해금이 풀렸지만

다시 묶였고, 1960년대 중반에야 폴란드에서 출판되었다고..

 

제목이 섹시하기도 하지만

16살, 17살 어린 청춘의 내면 변화를 두 아저씨가 잘도 읽어내고,

부부와 어린청춘 둘, 아저씨 둘, 그리고 어린 청춘의 약혼자.

이들이 벌이는(?), 이들이 생각의 공감과 내면의 반격

이런 것들이 흥미진진하다.

 

아저씨들간의 질투와 음모, 거짓말,

그리고 서로간의 수많은 유혹이 난무하는 가운데

결말은.......

 

책을 보시면 되겠지요.

 

폴란드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한데,

그보다 더 힘든 전쟁과 핍박을 받은 이나라에서

이런 상상력을 보여 줄

작가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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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23:10 2011/07/03 23:10

오랜만에 탁하지만 간결한 소설 한편을 읽었다.

일본 전쟁시기인 1909~1948년까지 서른아홉살을 살다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고리대금업으로 신흥부자가 된 집안의 11명 남매중 10번째로 태어나서

서른살에 애인과 함께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가

혼자만 살아 남았고,

죽을때까지 5번의 자살 시도 끝에

마지막 애인과 함께 자살에 성공한 작가....

 

그의 인생유전을 기록한 것이고

자전소설이다.

'퇴폐의 미'  '파멸의 미'라고도 불린다는데,

어릴때부터 온갖 파행을 다 겪어가면서

정신병동까지 거치면서

아버지에게 버림받으면서도 할수 있는 건 다 해 본 주인공이다.

 

일본 패망 후에 젊은이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는게

오히려 아이러니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책 뒤에 붙어 있는 단편소설  '직소'는

예수의 제자인

가롯 유다의 변명(?) 같은 구술이 있는데

이런 해석도 나름대로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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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22:57 2011/07/03 22:57

엄청 무덥고 짜증나는 날씨일 거라 예상했는데,

구름이 내려앉고 안개가 끼어서인지

해가 보이지 않아서 제법 시원하게 자전거 탈만했다.

호수공원에서 행주대교로 안양천으로 그리고 목감천을  따라서..

처음에는 소래 갯골공원까지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지체되는 바람에 물왕저수지에서 점심 먹고 돌아왔다.

산오리보다 10년쯤은 나이가 많은 분들이

자전거는 산오리보다 10배쯤은 더 잘 타시는 거 같았다.

역시 살아가는 것은, 운동하는 것도, 물리적인 나이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뭐 제대로 하는 일도 없고,

바쁜 일도 별로 없는 거 같은데,

왜 자전거는 안타고 있는건지 나도 그걸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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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왕저수지 앞에 있는 이 칼국수집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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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물왕저수지  가기 직전에 있는 칠리 저수지

뱃살 좀 감추려고 힘좀 줬더니 인상이..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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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게 저수지 한복판 작대기 위에 앉아 있는 놈은 살아 있는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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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13:52 2011/07/0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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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어 놓았다가 까먹었다는 야그는 아니고...

 

지난 녹색평론을 뒤적이는데, 이계삼 선생이 미국을 갔다 와서 쓴 글을 보았다.

이런 저런 얘기가 있었는데, 이 분이 놀란건 미국인들의 비만이었다는 거다.

이렇게 심한 비난으로 나라가 지탱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했다는 그런 야그.

가끔 산오리도 텔레비전 화면을 보거나 길거리에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볼때면

(그들이 다 미국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미국은 비만으로 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계삼 선생은 그 비만의 원인으로 미국인들의 먹을 거리를 들었는데,

값싼 팜유와 무슨 당분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요즘 들어 산오리도 뱃살이 장난아니게 늘었다.

한주먹 잡힐 정도이니까 ..

아내가 살이 쪄서 입을 옷이 없다고 투덜거리기라고 하면,

조금 덜먹고 운동 좀 하면 될걸, 그렇게 투덜거리느냐고 남말하듯이 했고,

길거리를 가다가 살찐 사람들 보면, 저렇게 관리가 안될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근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불어난 뱃살을 느끼면서

이게 그리 만만한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돌아 보니까,

귀찮다고 투덜거리면서 국선도를 했던 것도 제법 벌어 놓은 것이었고,

힘들게 자전거 타고 싸돌아 다닌 것들도 제법 벌어 놓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그 난리판에서 헤매다 보니까

별다른 운동도 없고, 자전거도 타지 못했고

저녁자리는 술자리로 때웠던 결과이니, 당연한 결과일 터다.

 

다시 뭔가 벌어야 하기에

당장 주말에 자전거라도 끌고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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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16:19 2011/07/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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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어가면서, 이즈음 들어서 자주 물어본다.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왜 사는 거냐?"

 

한참 젊어서 그랬다면, 쬐끔은 이해가 될 법도 하다만,

내가 생각해도 젊은 시절에 대충 단순하게 살자 하면서 살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생뚱맞게 지금에 와서야 왜 사냐고 묻는다는 게 참 거시시하다...

내가 내게 되물어 봐도..

 

되는 일 제대로 없고,

안된다 하더라도 그게 왜 안되는지

둔한 머리로 약간은 이해가 되야 하는데

그마저도 안되니까 뒤늦은 혼돈에 빠져서 되물어 본다.

"왜 사는 거지?"

 

1. 조용주 원장이 도망치듯 나가고 나서는 건기연 일이라도 좀 풀리나 했다.

모든걸 기획했고, 어떤 내외부의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노동조합 탄압도 하고,

마음에 안드는 인간들을 못살게 굴기도 했던 그가 물러 났으니 끝나려나 했다.

그렇게 쉽게 끝나거나 정리 된다면 세상사는 맛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조용주가 떠난지 두어달이 되었는데도 변화라고는 거의 없다.

그냥 누구도 잘 못한 사람은 없고, 누구도 해결할 의지도 없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래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세월만 가고 있다. 이게 공공기관의 본래 모습인지 뭔지...

노동조합과 얘기는 좀 해 보자고 하지만, 얘기만 해 볼 뿐이고,

무슨 결정을 하든 새로운 원장이 와서 해야 한다는 그런 야그다.

노동조합을 향해 무수한 창과 칼을 던지고 죽든 살든 상관도 없다는 듯이

조용주를 팔아서 날뛰던 사람들이지만,

이제는 그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조용주의 유령이 살아있는 것 같아서 사람들은 무서워 하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거지?

도대체 당신들은 왜 사는거지?

 

2. 공공운수노조 대산별로 가자고 일년간 별 짓을 다해 가면서 투표에 붙였는데,

부결되었다. 2/3를 넘겨야 하는데, 57%인가 그정도 밖에 찬성을 받지 못했다.

위원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모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그리고 비대위를 꾸리자고 하는데, 비대위를 맡을 지부장도 찾기 어렵고,

억지로 꾸려지는 비대위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을 사람은 더더구나 없다.

부위원장이랍시고 제대로 역할을 못해서 미안하고, 사퇴는 했지만

한 덩어리의 교섭을 맡고 있는거마저 나몰라라 할수 없어서 비대위원에는 참가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모양새를 따져보면 웃기는 야그다.

근데, 이거 부결되면 안그래도 어려운 사업 제대로 안 될 것도 예상되고,

힘겹게 끌고 가고 있는 교섭도 더 어려울 거라고 예상할 수 있고,

그나마 위원장 사무처장 전임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

더 부려먹을수도 없는, 그래서 일할 사람 몇 명이 없어지고 만다는 걸 알수 있고,

모든 걸 다 알수 있다는 사람들은 왜 이 투표를 부결시켰는지 알수가 없다.

몇 지부장은 터놓고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는 걸 얘기했다.

그래도 100% 찬성이나 반대는 나오지 않았다, 근데, 아무런 얘기도 없던 지부에서

100%이거나 그에 가까운 반대표가 나오는 것은 도무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또 물어본다.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지?

도대체 당신들은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거지?

 

3. 그나마 가지고 있는 진보신당도 탈당하고픈 생각이 굴뚝같다.

그래도 그 속에서 억수로 고생하고 있는 소위 독자파들을 보면, 나 혼자 도망가겠다는 소리는 못하겠다.

죽든 망하든 같이 죽고, 같이 망해야 하는 게 어찌 되었건 친구요, 동지가 아닐까 싶어서.

(물론 통합파들이 같이 죽거나 같이 망하자는 야그는 아니고...)

무슨 파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불리는 것도 웃기지만,

어쨌든 무조건 통합에는 반대하는 입장, 도로 민노당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독자파라고 불리우고있는 듯하다.

전국위원에서 떨어졌고, 대의원은 아니니까 당대회에 가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일요일 당대회 꼬라지를 보고서는 정말 정나미가 떨어졌다.

뭔가 목적한 바가 있다면, 또는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저렇게 정해진 규정도 마구 바꿔가면서 처리해버리면 되는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된다

5.31합의라고 한것도 노동조합으로 따지면 직권조인 같은 걸 하고,

그걸 승인 받는 과정에서도 의결정족수까지 바꿔가면서 승인이 아닌 걸로

시간을 미루고 있다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알 수 가 없다.

그래서 또 물어본다.

도대체 나는 뭘 어쩌자고 사는 거지?

도대체 당신들은 뭘 어쩌자고 사는 거지?

 

4. 자주 술을 마신다.

술자리에 앉으면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일년 365일 가운데 300일을 마시네, 330일을 마시네 한다.

나는

"일년 365일 가운데 450일 술을 마신다" 고 말한다.

사실이다.

못 마시는 술이지만, 저녁에 만나는 자리는 온통 술이 있어야 하고,

집에 들어가서 12시가 넘어서도 또 술을 마시는게 하루 이틀은 아니다.

(가끔은 아내가 혼자 마시는 술에 붙어서 마시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마시기도 한다)

그러니 대충 450일은 마시는 거라 생각해 보는 거다.

어쨌거나 이건 심각한 알콜 중독임에 분명하다.

중독이란 걸 알지만 중단하지도 못하기에 더 심각한 중독이겠지

오래전부터 만나온 친구들은 그런다.

두어잔 마시면 옆에서 엎어져 잠자더니, 요즘에는 왜 그렇게 술을 잘 마시느냐고...

어찌 어찌 술과 함께 사는 세상에 살다 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거겠지만

가장 나약한 게 술에 기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또 물어본다.

도대체 나는 왜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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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8 17:41 2011/06/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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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주말 용으로 집을 샀다는 친구의 집에 갔다(5/28)

너무 넓은 집에 조경도 잘 하고 관리되어 있었지만,

겨울에 난방비 어떻게 감당할지 내가 걱정이 됐다.

그래도 몸 아픈 친구가 주말에라도 와서

얼른 건강이 회복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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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다니는 길에서 안쪽으로 꽤 들어가 있어서

조용한 게 좋더라.

같이 온 친구들과 같이 삼겹살 구워 먹다가 느지막히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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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에서 성화를 들고 전국을 순회하는 최저임금 선전전을 했다.

고양에는 6월 3일 오후에 한시간 들렀는데,

웨스턴 돔에서 라페스타까지 걸으면서 거리선전전을 하고,

미관광장에서 서명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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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초엔가 갔었던 피아골엘 다시 갔다

피아산장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산책하고, 먹고 마시고,

계곡물에 들어가서 놀았다. 6월 초라 아직은 약간 추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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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7 17:19 2011/06/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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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밤에 마포대교를 가는 수야를 따라나섰다.

행신역까지 가는 것도 힘들거 같아서

백마역에서 전철로 이동했다.

 

오르막 없는 한강길을 밤에 달리는 건 시원하고 좋았다.

한줄로 간다고는 하지만 스무명이 넘게 몰려가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강북으로 가서

마포대교를 건너서 쉬고

강남으로오다가 방화대교 아래서 맥주와 음료수 한잔씩

하고돌아왔다.

한 아파트 단지 사는 친구와 같이 와서

동네 편의점 앞에서 맥주 한병씩 더 마셨는데,

담날 속도 머리도 영 좋지 않았다.

내게 맥주는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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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사진에서도 산오리는 찾기 어렵구나...

마침 사진 찍는다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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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23:17 2011/05/2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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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탈 시간 내기 참 어렵다.

뭘하고 사는 것인지...

 

5월 21일 예뫼골 정기라이딩에 간만에 붙었다.

장흥으로, 소머리인지 말머리인지 고개를 뒤로,

송추에서 점심 먹고, 북한산쪽으로 지축뒤로 해서 돌아왓다.

풍산역 마당에서 연로(?)하신 분들과 맥주 한잔 하고 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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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23:07 2011/05/27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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