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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 야딩(15 - 꽁링스 貢岺寺) - 길위에서 길을
샹그릴라 향에 이르기 전에 검문소가 있었다.
이제는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었다. 야딩 입장권을 보여주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만약 야딩 입장권이 없었다면 아마도 입장권(150위안)에 준하는 벌금을 물었을 것이다.
아마 그 벌금도 흥정이 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attach/2191/STH74942.JPG)
샹그릴라 표지판 - 한글이 선명하다.
샹그릴라는 윈난의 쫑티엔이 있고 따오청의 옛 르와춘(日瓦村)이 이제는
샹그릴라향으로 바뀌었다. 명칭가지고 윈난과 사천 당국간에 논란도 있었다 한다.
하지만 어디 샹그릴라가 한 두구데 일까? 전혀 없을 수도 있구,
중국 여행을 하면서 유명하다는 관광지에는 많은 곳에 한국어 안내표지가 있다.
어지간히도 한국인이 많이 왔다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일본어나 한국어는 두 나라밖에 사용안하는데도 두 나라의 관광객이
외국인 관광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서양의 대부분 나라는 영어를 사용 할 줄 아니,,,,
르와춘의 마을 풍경 - 어딘가 좀 어수선 하다.
![](/attach/2191/STH74943.JPG)
![](/attach/2191/STH74944.JPG)
![](/attach/2191/STH74945.JPG)
르와춘은 여기저기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것도 대규모로,
기사 왈 선전인지 상해인지(지금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의 사장 세명이 합작으로
대규모 호텔을 짓는다고 한다.
아마도 야딩도 곧 쓰촨의 주자거우(구채구)처럼 국민관광단지가 되려나 보다.
제발 개발하는 것도 좋은데
1. 자연경관을 해치지 말 것
2. 지역 주민의 삶에 보탬이 될 것
3. 지역 문화가 지켤 질 것
그래도 덜 훼손되기 전에 다녀온 여행자의 바램이다.
20여분을 달려 꽁링쓰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운전기사는 이 곳이 자기 고향이란다. 현재 어머니가 살고 있다고 한다.
집에도 들릴겸 이전부터 약간문제가 있어보이는 차도 손볼겸 들렸다 가잔다.
불감청 고소원이다.
각자 산책하는 기분으로 마을 주변을 돌아보며 꽁링스에 갔다.
![](/attach/2191/STH74947.JPG)
꽁링쓰는 황교사찰(게룩파)로 1170년에 지어졌다.
입구에 입장권 파는 곳이 있지만 먼지만 가득 쌓인지 오래였다.
![](/attach/2191/STH74948.JPG)
![](/attach/2191/STH74949.JPG)
절안은 한산 했다.
난 밖으로 나와 절 주위를 한바퀴 돌았다. 으례 라마불교사원에는 코라를 돌 수 있겠끔 길이 있다.
그런데 데이비드와 중국인 친구는 그냥 돌아갔나보다.
![](/attach/2191/STH74954.JPG)
절 뒤편에 있는 백탑과 마니석 무더기
젊은이 한무리가 놀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갈것인지 뭐하며 노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노는 것은 분명했다. 자기들끼리 웃고 떠든다.
![](/attach/2191/STH74950.JPG)
멀리 오래된 나무다리와 몇채의 집이 보였는데 그 규모가 비교적 크고 정갈했다.
![](/attach/2191/STH74951.JPG)
강가에는 야크떼가 강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attach/2191/STH74952.JPG)
리더로 보이는 야크 한마리가 강을 건너고 그것을 다른 야크들이 지켜보고 있다.
무리를 이끄는 리더는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만 한다.
![](/attach/2191/STH74953.JPG)
세월에 무너진 담장이 손보지 않고 방치되있기도 했다.
![](/attach/2191/STH74956.JPG)
당나귀인지 말인지 모르겠다.
마치 모델처럼 포즈를 취한다.
코라를 돌던 한 티벳 청년이 사진을 보자고 한다.
사진을 보더니 멋있다고 한다. 말이,,ㅎㅎㅎ
코라를 다 돌았을 무렵 전화가 왔다.
이제 떠난다고 한다.
가다가 한 사람을 태웠다.
오랜 노동으로 지친 농부였다. 야크를 키운다고 한다.
한참을 달려 자기집에 다 왔다고 내린다.
이곳은 6월이 되면 두견화(진달래꽃)가 장관이란다. 그때 꼭 와보란다.
기회가 되면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그런 기회가 다시 올지는 모르겠다.
우리도 용변을 보기 위해 내렸다.
농부가 도착한지를 알았는지 저 멀리 집에서 가족들이 반기러 나왔다.
어릴쩍 할아버지는 5일장이 설때마다 장에 가시곤 했다.
꼭 물건을 사고자 함이 아니라 정해진 일과 비슷한 거였다.
그 때마다 술이 거나해서 돌아오시곤 했다.
때론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시지 않으면 몇군데 길을 나누어서
아버지와 고모들이 마중을 나가곤 하였다.
주전부리 할 꺼리가 많지 않았던 시절,
나는 할아버지가 다른 건 몰라도 반드시 사가지고 오던 밥풀과자를 기다리다 잠들곤 했다.
![](/attach/2191/STH7495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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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ch/2191/STH7496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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