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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2/02
    2015년 9월 메모들
    쩡열 :)
  2. 2016/02/02
    2015/10/23 책언니 메모
    쩡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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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집회에 대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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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쩡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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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onotones - Into the nigh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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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5/12/22
    송곳, 꿈, 강화도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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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5/12/22
    22.Dec.2015 :: 2015년의 몇가지 메모
    쩡열 :)
  9. 2015/12/15
    공감에 뜬 The Monotones 정보
    쩡열 :)
  10. 2014/10/09
    8.Oct.2014 :: 첫 문신
    쩡열 :)

2015년 9월 메모들


2015년 9월 20일 · 

Gbus tv에서 갑자기 walk the moon 소개가 짧게 스쳐갔다. 깜짝이야! 2012년 겨울, 요괴소년 호야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그런 날이 있었다. 호야의 벽에 빔으로 틀어놓는 뮤비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재밌는 뮤비가 나와 이름을 물어 집에 와 찾아 들었다. 

그 무렵 운전면허를 따러 다녔다. 겨울도 시험장도 추웠다. 부천에서 인천을 오가며 노래를 참 많이 들었다. 운전면허는 힘들었다. 그 당시의 마음도 머리도 힘들었다.

2012년 겨울을 보면 밴드이름을 넣으면 비슷한 밴드를 마인드맵으로 보여주은 앱을 다운받았고, 악틱을 입력했을 때 뻗어나오던 밴드들을 찾아 듣고 있었다. 쿡스, 프란츠 퍼디난드, 블록파티, 리버틴즈까지가 멜론 2012 11월 가장 많이 들은 내역에 남아있다.(내역을 보면 그 해 9월에는 AAR, NFG, Simple plan같은 옛노래를 다시 듣고 있었다. 웃긴건 10월엔 14살에 좋아하던 힙합들이다. 과거 회귀 기간이었나?) 그 와중에 Walk the moon은 내가 처음 좋아한 뾰뵤뵹한 음악이었다.

꿀꿀한 일요일 아침부터 예상치 못한 곳에서 walk the moon을 보고, next in line을 들으니 그때 소사의 우리 동네도, 사라져버린 홍대의 요괴소년 호야도,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도 마구 머릿속을 스쳐갔다.
호야에서 더 뻗어나간 기억선에 서교동 나다의 우리들도 스쳐갔다. 못되쳐먹었던 우리들ㅋㅋㅋ 이야기하고 놀고 싸우고 미워하고 술마시고 담배피고 웃고 떠들던. KMC와 미니스탑도.
그때 초등부 강좌를 듣던 사람이 고딩이 되어 나다에 와 그때의 나를 기억한다 말할 때의 민망함과 흐른 시간에 대한 놀라움도 떠오른다.

서교동에서 나아가니 지금 나다에서 시작되고 있을 초등 일상강좌도 떠오른다. 특강에서 만나 또 찾아와주는 친구들. 낮에 시작될 나다wom 회의에 찾아올 애들도. 어제 마신 술이 꿈틀거리는 뱃속도. 노래로 생각을 시작하면 기억은 늘 뻗어간다. 주절주절 말이 안멈출 정도로ㅡ 멍하니 앉아 블로그에 근황과 머릿속을 털어내고 싶어졌다.

 


2015년 9월 9일 · 

소녀팬이라며 부끄러움 없이 뛰어다니던 그 때에 대한 글을 썼다. 부끄러운 짓이 한둘이 아니다. 이불킥 백번감이지 정말. 그럼에도 쓰다보니 고맙고 따뜻하다. 그래서 머신카페에 한줄게시판에 글을 남기고 왔다. 머신크루가 아니더라도 셭뤂 사람들도, 베레언니도 다들 다정했다. 정말. 

그 글에는 자비로운 효드럼이 돈없는 청소년인 나를 가엾이 여겨 게스트로 넣어줬던 이야기도 적었다. 팬을 게스트로 넣어준다고 혼났던 것도. 내 앞에서 그 말을 했던 건 참 나빴다. 나 그래도 성실한 관객이었는데. 내가 진짜 돈이 없고, 어려서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는데!

글을 쓰려고 떨리는 손으로 싸이에 들어가 흑역사를 열어보니 성균오빠가 뜬금없이 네이트온으로 나에게 '안 움직이면 살쪄 임마' 했던 것도 있고, 재영오빠가 인터뷰 취소됐다고 나에게 소리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효드럼의 담뱃재가 바람에 날려 내 등에 흩뿌려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날 부를 땐 야임마였지만 그래도 다정했던 루나틱이었어.

학교도 안다니고 친구도 자주 못 만나고 혼자 집에서 심심했던 15살 나를 다들 어리다고 무시도 안하고, 부끄러움 모른다고 싫어하지도 않고 참 잘해줬구나 싶다. 그래서 나는 그 때 즐겁게 맘껏 뛰어다닐 수 있었다. 고맙다고 직접 말하기는 언제나 부끄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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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책언니 메모

2015년 10월 23일 · 서울 · 

오랜만에 다녀온 자람의 메모ㅡ 글쓸때 참고해야지

2주만에 만난 책언니 애들이 나에게 "니가 오늘 오니까 남겨왔어~(사실은 자기가 이 빵을 싫어한다며 웃었지만 나를 생각해 챙겨준 건 맞았다.)"빵도 주고, 보고싶었다고도 해주고, 막 애정을 줬다. 실컷 놀고 왔다ㅡ 어른들만 보다 오랜만에 열살의 인간을 보니 새삼 참 작고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신기하고 예뻤다. (이러다 공격하고 괴롭히면 금새 이 맘을 잊겠지? 일희일비의 문제다) 커피믹스를 몰래 타서 방안으로 들고와 금기를 넘는 짜릿함을 만끽하는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너무 쓰다고 인상쓰는 사람, 키득키득 웃음을 못 참는 사람, 이런게 커피의 맛이지.. 하며 좀 마셔본, 인생의 비밀을 말하듯 하는 사람ㅡ ㅋㅋㅋ 

나에게 병아리야 병아리야 하며 놀아달라 잡아끄는 그들의 동생인 여덟살은 더 작다. 칠판에 누군가 적어둔 너는 돼지야 라는 말에 까르르 까르르 웃는다. 늘 심심하다고 놀아달라며 책언니가 진행되는 방 바깥으로 나올때마다 나에게 안기고 말을 거는 이들에게 미안하다 엉엉

늘 우리 책언니를 함께 하는 구성원은 우리를 홀대하듯 괴롭히다가도 바깥의 이들이 끼고 싶어하고 부러워할때는 자랑스러워 했다. 모임에 함께하지 않고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은 우리를 좋아했으며(!) 그들이 보이는 관심에 구성원들은 경계하며 강하게 내쫓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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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집회에 대한 메모

1차 민중 총궐기


2015년 11월 14일 · 서울 · 

너무 많이 다치고 잡혀갔고 나는 집에 간다. 이게 뭔가

 

2015년 11월 14일 · 서울 · 

잘 모르겠다ㅡ 이제 집회에 오고 나면 늘 속이 너무 쓰리다

 

2015년 11월 15일 · 서울 · 

계속 화가 난다ㅡ

이 안전한 집이, 그 살벌하던 거리가 가진 거리만큼의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함께 있게 된 나래와 둘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우리를 위한 게 아닌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하자며ㅡ 잠이 오질 않는다

 

2차 민중총궐기

 

2015년 12월 6일 · 서울 ·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마냥 

경찰이 허가한 집회를 하고 왔다. 

완전 재롱을 떨고 온 기분이다. 우리 이러케 법 잘지키지! 완전 준법하다구~ 

대체 집회는 무엇이고, 그 준법/평화시위에 왜 우리는 목을 메게 되었고, 공기의 글처럼 평화란 무엇이냔 말이다. 짜증난다. 저들이 원하는 평화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가 다르지 않나.

이것 보시오 우리는 이토록 준법시위를 잘 마무리했습니다가 마치 어제의 슬로건이자 미션컴플리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병원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할 때, 덜덜 떨던 덕분에 몸살만 났다. 백남기씨 가족의 발언과 술마시는 사람들과 병원 앞의 밤중 집회는 괜찮은걸까 하는 의구심과. 이러는 건 내가 운동적이지 못한 건가 싶음과.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면 그걸로 된건가 싶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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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3 데이트 폭력에 대한 메모

2015. 12. 3 페이스북에 올렸음.

원고를 쓰며 메모장을 뒤적거리니 이런 게 나왔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논의가 한참 이뤄질 때 수수글을 보고 혼자 끄적거리고 차마 못 올리고 메모장에 고이 넣어뒀던 것 같다.


2015. 6. 23

"그 때의 나는 어렸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옴짝달싹 할 수 없게 좁은 곳에 갇힌 기분이었다. 데이트 성폭력이라는 말 조차 알지 못했고, 그 상황을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로 2년을 어영부영 보냈다. 

당시 너무 확연한 폭력의 상황을 겪고도 사실은 나의 잘못이 더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라면 절대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줄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혹여나 내가 잘못했기 때문인 거면 다시 나의 문제로 돌아올 상황이 무서웠다. 내가 어리다는 사실도 어린게 벌써 발랑까져서라는 말로 돌아올 나의 약점인 것만 같았다. 동시에 이중적으로는 그 사람들이 성폭력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줄지를 알았기에 나 때문에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매장될까봐 하는 마음에 그 사람을 보호하려고 했던 내 결정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그 후 어느 순간 나와 너무 근접한 곳에서 그가 지내기 시작했고, 나의 친구들이 이미 있는 그 공간이었기에 그사람과 아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됐다. 심지어는 같은 이에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만났다. 그 때마다 술을 마셨다. 분노와 두려움과 내가 잘 대응하지 못해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그 사람이 내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화. 그 후로 하자와 관련된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들을 늘 꺼려왔다. 혹여나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될까봐. 용기 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게 된 나의 '남성'인 친구에게 그 사실을 고백했을 때는 더 이상 그렇게 연결되어 그 사람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길 바래서였다. 하지만 대답은 미지근했고, 참 별로였다.

 

이제는 7년이 넘은 이야기이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자신을 더 이상 탓하지 않게 되었다. 이겨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 속에서 사라지진 못한다. 그토록 마주치고 싶지 않던 사람이 6년이 지난 시점에 뜬금없이 우리집 지하실에서 그 사람이 나와 나를 스쳐갔을 때, 더 이상 그 사람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지만 너무나 화가 났다. 왜 쟤는 죽지 않고 아직도 내 근처에 존재하는가. 나는 그 후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 속에서 잘 살아왔지만, 그는 절대로 잘 살지 않길 바랬었다. 좋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다.

가해자를 단순히 개새끼로 만들고 끝나게 되는 것이나 개인에 대한 처벌로 끝내는 방식이 아닌 재발을 막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노력들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 해왔지만, 그 후로 제 3자의 입장에서 내가 아는 두 사람간의 성폭력 사건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나는 화를 냈다. 제 3자의 일로 만들지 못하고 화를 냈다. 어쩌면 그 사람 대신 화풀이를 했던 기분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피해자로서의 분노와 사람을 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닌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마음, '성폭력'에 대한 총체적 접근 같이 복잡한 머릿속은 아직 정리되지 못했다. 최근 시작된 사람들의 폭로는 어른스러웠다. 나는 여전히 어른스럽지 못하다. 나는 아직도 성폭력 사건이 두렵다.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어서 더욱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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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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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서늘한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 썰>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보고 괜히 맘이 복잡해져서 말이 많아졌다. 원문은 요기에서 볼 수 있다.)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임상심리와는 전혀 다르다고 했던 것 같지만) 어렸을 때부터 정신분석이 배우고 싶었다. 우선 재밌어보이니까!_! 사람을 읽는 작업이었고, 세상과 내 맘이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 가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처음 꿈 상징과 해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무의식 그거 대체 뭐야! 하는 느낌이랄까. 애초에 꿈을 (흔히 말하는 응축, 치환 이딴 게 전혀 없이)곧이 곧대로 꾸는 나는 내 속을 잘 아는 편이었다. 아, 난 뭐가 힘들구나. 이걸 배우고 싶던 이유는, 세상의 입김에서 내가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걸 확실하게 설명해버려서. 세상을 설명하고, 내 삶을 설명하고, 사람을 설명해주는 것들에 늘 혹했다. 특히나 이건 나를,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랬다.

상담이 기만적이라고 느꼈던 순간은, 그 삶의 조건을 별개로 치부하고 상담을 통한 치료가 가능할까에 대한 의문때문이었다. 삶의 조건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이 변한다는 게 개인의 노오오력일테고, 삶의 조건을 보지 않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어제 술을 마시다 뷰티인사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실 보진 않았지만) 외형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람의 본질이 있고 어쩌고의 설정이 너무 구리다는 이야기였다. 어제는 술먹고 담배피다 오늘은 과자에 우유마시고, 어제는 생리하고 오늘은 몽정하는 인간이 대체 어떻게 제정신일 수 있냐는 말인가. (그래 영화니까, 뭐 넓은 아량을 발휘한다 해도) 옆사람이 그 사람을 계속 사랑하는 건 둘째 치고, 본인이 제정신일 수가 있을까. 나를 둘러싼 세상의 시선과 내가 처한 사회적 조건이 계속해서 달라지는데 그에 따른 내 움직임이나 사고나 태도가 일정할 수 있다고? 인간을 구성하는 것에 물질적 조건이 그토록 부수적이란 주장인가? 여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이 만화 마지막의 문장에 문득 말이 많아지고 싶었다. 현실에서의 모습과 말이 동떨어진 입만 동동 뜬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을 보지 않으며, (혹은 세상의 비참함마저 내 장식으로 이용하며) 말만 번지르르한, 내 멋에 취해 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아직도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의 모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니까) 그래서. 언제나 내 입장에서 세상이 설명되지 않거나, (지적허영이나 권력자들을 위한 게 아닌)어떻게 써먹어야 할 지 모르겠는 건 배우고 싶은 맘이 전혀 없었다. 확실히 난 공부형 인간은 아니다.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쓸모와 필요로 움직이는 것 같다.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무기력하지 않다. 그건 나쁜 거다 그냥. 삶의 비참함을 외면하는 학문은 삶의 비참함을 만들어내는, 조장하는 학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치달았다. 아 궁상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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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notones - Into th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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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해의 시작이 좋은 것 같아. 작년이 빡쳤던만큼 올 해는 왠지 시작부터 좋은 일들이 많아서, 기쁘다.

요즘 들을 노래가 많아서도 완전 좋음. 가끔 대체 뭘 들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지만 요즘은 들을 음악이 끊기질 않는다! 요즘은 매일매일 권나무를 듣고 있다 :)

 
그래서 최근의 음악 패턴을 돌아봤다.

 

-> 겨울이 시작될 무렵엔 역시 김동률이지! 하고 6집이랑 기타등등을 매일 돌려들음 

->  곧 모노톤즈가 나와버리는 바람에 모노톤즈를 계속 들었던 듯 

-> 그 무렵 정새난슬이랑 김사월 신보를 듣다가

-> 겨울이 깊어질 무렵에는 김목인이 시작됐다. 자기 전 김목인 최고.

-> 그러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언니네 이발관 신보에 습격당해 애도만 주구장창 들었음

-> 애도를 듣다가 연말에 스트릿건즈보고 향수에 잠겨 스트릿건즈 반복재생

-> 좋다던데 받아볼까 했던 권나무가 요즘 플레이리스트를 점!령!

 

모노톤즈 Into the night은 11/19일 발매했는데 2달동안 한 노래만 180번을 들었다고 아이튠즈가 알려줬다. 60일동안 180번을 들으려면... 하루에 3번씩 들었다는 거잖아 매일매일. 중간중간 다른 노래 듣던 시간들을 빼면 거 참 징글징글하네.

얼마전에 같이 술마셨던 어떤 사람이 자기는 좋아하는 노래를 1000번씩 돌려듣고 그런다면서, 하루는 오빠랑 같이 사는데 오빠가 문을 쾅 열고 들어와서 제발 그만좀 틀으라고, 너는 연애도 그렇게 하지! 하고 나가버렸다고 했다.ㅋㅋㅋㅋ

사실 나도 한 노래만 겁나 돌려듣는데 하하하. 좋아하는 음식이나 가게가 생기면 맨날 거기만 가고, 그것만 먹음. 좋아하는 영화도 많게는 10번씩 볼 수 있다 ㅋㅋㅋㅋ (나는 요즘 편의점에서 파는 길쭉한 밀크티가 좋다. 권나무도 좋다.) 이게 뭔가 사람을 질리게 하는 건가 하하 

 

이런 글은 역시 일하기 싫을 때 쓰는 법이지 후후 

 

차차는 사랑이니까♡♡

 

 

 

The Monotones -​ Into the night

 

Into the night

뉘 부르는 소리 아득히 들려오네 

Into the night 

검은 베일 사이로 새하얀 살결을 봐

작은 창가에 기대어

그녀의 속삭임을 느낄 때

그렇게 밤이 찾아왔네

All through the night

차가운 눈동자 고요히 반짝이네

All through the night

작은 손등 위에 살짝 입맞춤 하네

은은한 향내에 휩싸여

둘만의 밀월을 꿈꾸던 찰나에

그렇게 밤이 지나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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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꿈, 강화도 혼자

송곳, 꿈, 강화도 혼자

송곳을 보며 마음이 복잡하다ㅡ 만화에 적혀있던 최규석다운 말들이 실제 지현우의 나레이션으로 들려오니 마음에 주는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 안내상의 대사들에는 마음이 쿵 하곤 한다. 왠지 울컥해서 멍하니 보고 있다가 언제나 좋아했던 지현우의 등장에 심각한 장면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웃음을 띄고 있다. 지현우의 전신샷 같은 것에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더 멋져졌구나. 저 내용에 대한 와닿음, 몰입과 지현우의 외모에 대한 탄성이 함께라니! 부끄럽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복잡하다. 그럼에도 복잡한 생각이 더 많다.

 

JTBC의 노조는 싫지만 노조는 팔아주지도 떠오르고, 실제 모델이라던 사람의 데이트 성폭력 논란도 떠오르고, 언제나 최규석의 섹시함을 좋아했지만(만화도 좋아했지만 실제 겉모습의 섹시함은 정말 좋아했다.) 최규석의 트윗 논란도 떠오르고. 아ㅡ

꿈은 꿈대로 난잡하다. 강화도에 혼자 남아 하루종일 잠만 잤다.

  • 천호(상영이때문일까?)로 이사간다는 엄마와 화성 집에서 상원이를 데리러 가니 온갖 강아지들이 엄청나게 살고 있고 더럽고 쥐 시체도 있는, 사람이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혼자 있는 상원이.
  • 차차가 나오는 꿈도 꿨다. 우리집 옥상에서 녹음 중인 차차의 핸드폰을 찾아주다. 
  • 갓태어난 내 아가를 껴안고 사람을 죽이며 도망쳐야했다. 전쟁같은 것?

난 아무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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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Dec.2015 :: 2015년의 몇가지 메모

2015년엔 아무 글도 쓰지 않았구나.

왜 그랬을까, 이유는 안다. 공개할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내 이야기라면 상관없지만, 온전한 내 이야기만일 수 없는 것들이니까. 그래서 일기장에 썼다. 일기장에 혼자 적어뒀고, 혼자 봤다. 물론 그것도 많지는 않다. 그 중 공개할 수 있는 메모 하나 정도. 올해는 끔찍했도다.

 

요 무렵 클럽데이에서 레이지본을 보고, 내가 나왔다며 박씨가 찾아서 보내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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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카페에 엄마랑 아들이랑 이모랑 와서 가족 회의를 한다. 이모가 조카를 잘 설득해서 학교에서 뭐가 힘들면 그만두게 해주겠다. 선생도 막상 학교 나오면 선생 별거 아니라고 막 얘기해준다.

엄마랑 아들은 사이가 안좋다. 엄마는 자기도 할아버지한테 엄청 맞고 살았다고 이야기하고. 애는 엄마 기준에 자기를 맞추지 말라고 하고. 그래서 자기가 집을 나간거라고.

이모가 엄마도 완벽하지 않고 다 실수한다고 이야기하니 엄마가 화를 낸다. 너 왜 자꾸 왔다갔다 하냐고. 이모에게 조용히하라고 한다.

그러자 이모가 말했다. “언니는 화가 나면 ㅇㅇ이를 때릴 수 있고, 화를 낼 수 있지만 얘는 그럴 수가 없잖아. 둘의 관계가 평탄하지 않은데 내가 뭐가 왔다갔다 해”

결국 이모가 화가나서 나갔다. 이모가 아들편을 들자 엄마는 화를 냈고, 이모가 가버렸다. 아들이 막 울면서 엄마한테 이야기를 한다. 왠지 슬프다.

그래도 아들은 이모의 말이 도움이 됐을 거다. 엄마에게 이모가 했던 말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요기는 내가 블로그로 돌아오게 된 페이스북 글들 

 

이 바쁜 시기에 흥청망청한 나흘을 보냈다ㅡ 온종일 잠만자던 이틀이 지나 술마시고 아침에 잠드는 이틀을 보냈다. 삶이 어두웠는데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가 죽을 거라고 주정부리면 I proud of you 라며ㅋㅋㅋㅋ 괜찮다고 말해주고, 느지막하게 일어나 서로의 멍청함에 낄낄거리고, 함께 술마시고 춤추는 노래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12월에 할일을 잔뜩 쌓아두고 정신 못차리고 있다보니 벌써 열흘 남았다. 흥청망청 나흘은 나에게 부끄러움과 즐거움과 큰 위로를 남겨줬다.

시간을 이렇게 보내버린 것에 대한 후회를 하기는 늦었다! 
이미 시간은 갔어! 이제부터 일하면 되는 거지! 
저는 이제 워킹모드로 불타오르겠습니다! 
망나니+천둥벌거숭이는 다시 넣어두겠습니다!

p.s. 나의 망나니+천둥벌거숭이 주간을 견뎌내 주고 보살펴 준 나다+나다wom 등 주변의 모두에게 고맙고 미안 :) 

- 2015/12/21

 

요즘 올해 들어 가장 일하기 시름 상태에 도달했다ㅡ 이렇게 일하기 싫어서 페북에 글을 싸지르는 내가 너무 낯설다. 대체 얼마만인가. 망했어 망했어. 심지어 블로그가 하고 싶어진다. 블로그가 하고 싶을 땐 세 가지 정도 이유가 있다. 심지어 지금은 세가지 다 해당된다! 젠장!

1)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정리되지 않았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조울이 널을 뛴다)
2) 써야할 글은 싫고 아무거나 쓰고 싶다. 
(그렇다. 매우)
3) 덕질을 하고 싶다. 
(언니네 신보에 모노톤즈에 드라마에 립스에... 현재 내 블로그는 2012년 영국남자들 잔뜩 쟁여놓은 후 아무런 덕질도 하지 않았다!)

= 한참 생각을 해보니까 결국 딴짓을 하고 싶은 것 같다.

-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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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우리에게 그는 늘 이런 존재였다. 1996년 노브레인을 결성하며 이 땅에 조선 펑크(punk)의 뿌리를 내리사, ‘청년폭도맹진가를 부르짖으며 성난 청춘들의 뜨거운 분출구가 되었던 풍운아 차승우’. 이후 노브레인을 탈퇴한 그가 두 번째 밴드 더 문샤이너스를 통해 1960년대 록을 순결하게혹은 사정없이 토해냈을 때 차차키즈(차승우에게 영향을 받아 뮤지션의 길을 걷는 이들)는 다시금 로큰롤의 축복을 받았고팬들은 슬램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러나 2012음악적 매너리즘을 이유로 더 문샤이너스는 공식적인 해체를차승우는 홀연 자취를 감춘다그리고 2년이 지난 2014년 초 한 가지 소식이 SNS를 달구기 시작한다그 사건 개요는 다음과 같다.

 

- 2014년 2월 22일 클럽 FF. 신인 밴드 더 모노톤즈(The Monotones)’의 데뷔 무대에 몰린 사람들로 순식간에 마비되다

하지만 삐삐밴드의 박현준(베이스)이 차승우와 의기투합한 것은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그 시기는 2012년 말

이후 서교그룹사운드의 최욱노(드럼)’이 가세하며 본격적으로 합주를 시작한다

최욱노와 같은 팀이자차차키즈였던 김세영의 합류로 더 모노톤즈의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 2014년 4월 5일 라일롹에서 5회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그들.

  그러나 김세영이 건강상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팀을 나가게 된다

결국 1년의 휴지기가 생겼고 총 11명의 보컬이 더 모노톤즈를 거쳐갔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선발된 이는 영국에서 온 훈 조이다

순조로워 보이는 듯했던 앨범 작업 중 창단 멤버인 박현준의 탈퇴로 마지막 위기가 찾아온다

- 2015년 11월 19실의를 딛고 1Into The Night발매

 

더 모노톤즈의 데뷔작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만큼이나 각색의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로커빌리와 펑크(punk)로 청자의 몸이 달아오를 무렵엔 은은한 선율로 마음을 두드리고호방한 기색을 드러냈다가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이것은 에너지로 가득했던 밴드 결성 초기에서(곡 ‘A’)불투명했던 시기를 지나(곡 ‘Popo’), 칩거에 들어가야 했던(곡 ‘Into The Night’) 차승우의 심경 변화와밴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겼기 때문이다또한 장르적으로 어쩌고저쩌고하는 분류에서 벗어난 음악을 추구한다.로큰롤 안에서만큼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이 그 이유가 될 것이다그렇게 더 모노톤즈는 한층 세련된 사운드와 일종의 여유그리고 낭만을 지니게 되었다비틀즈를 보며 꿈을 키웠던 소년들이 록스타로 변신할 때음악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실제로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큰 영감을 준 뮤지션으로 비틀즈를 꼽았던 차승우는 과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그 멘트를 마지막으로 더 모노톤즈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다.

 

 

 

난 처음부터 록 스타가 되고 싶었다아니면 의미가 없지.

비틀즈한테 고무가 됐었는데그렇게 빛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만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지.

내가 그랬거든로큰롤을 처음 들었을 때

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출연진 : 차승우(기타), 훈 조(보컬/기타), 최욱노(드럼[객원하선형(베이스)

프로그램 : A, Into The Night, 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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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Oct.2014 :: 첫 문신

2년정도 고민했었다. 문신을 하고 싶은데 어떤 걸 해야할지.

어떤 걸 해야 후회하지 않을지. 뭐든지 금방 질리는 내가 뭘 계속 지켜나갈 수 있을지.

쇄골에 레터링을 하고 싶었다. 스페인어를 좋아했을 때 스페인어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실패했다. 나는 스페인어를 잘 할 수 없었다. 검증이 불가능하니 선뜻 엄두가 안났다.

결정된 문장의 내용은 같았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0대 어느 날 버스에서 다이어리에 그런 말을 적었다. 사람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 이전의 나를 부정해야 하기 때문인가. 라는 내용이었다. 변한다는 건 이전까지의 나를 부정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힘든 것 같다는 것을 새삼 나 스스로 깨달았기에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기도 하다.

나는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까지의 내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변하지 않으려고 하는 나를 내가 아직 용납할 수 없다. 아니 자주 그러긴 하지만 최소한 그러면 안된다고는 생각은 있다. 

그리고 유물론에서 모든 것이 변한다는 말을 했다. 맞다. 변해야한다. 촛불 무렵, 혁명이 일어나면 집회가 없는 세상이 올까? 생각하고 웃던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어떤 세상이던 집회가 없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일 거라고. 반대가 없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일 거라고 했다.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젠 조금은 알겠다. 변하지 않는 세상은 무서운 세상일 거다. 

변한다는 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거다. 그 변화가 좋아질 건지 나빠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변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좋은 방향으로 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정도일 뿐. 안되도 하는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모든 건 변한다. 생각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고 모습도 변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내가 가진 과거도 변하고 추억도 변한다. 그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고 산다면 자꾸 고집쟁이가 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변하는 걸 인정하고 그에 맞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변화에 맞춰 나를 또 변화시키면서. 도망치지 않고, 고민하면서.

 

πάντα χωρεῖ καὶ οὐδὲν μένει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

 

변이 수업 때 이야기 해줬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번 담글 수 없다고 했던 헤라클레이토스.

그 사람의 말은 이미 책에 실린 것이라 검증이 필요 없으니 골랐다. 플라톤 책 어딘가에 있는 걸 그리스어 원본도 찾아보고 나름 애썼다. ㅈㅋ가 ㅈ2라는 말을 꺼내서 울었다. 사실 쫌 쪽팔렸다. 나도 그리스어에 헤라클레이토스같은 고대 철학자 말을 새기는 게 좀 부끄러웠다.

하지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했다. 내용은 안부끄러웠다. 만물은 유전한다고 하면 웃기지만, 저 내용은 2년간 고민했는 걸. 그리고 저 정도는 지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타투를 하게 된 건 다 날토때문이다. 늘 하고 싶었지만, 왠지 찾아가기 무서워서 못 가고 비쌀까봐 못가고 그랬다. 마치 미용실가면 늘 혼나듯이 혼날까봐도 무섭고, 내 몸에 새기는 건데 누군가에게 쫓기고 눈치보며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날토가 타투를 배우겠단 소리는 몇년 전부터 했었고, 하다 말았었는데 어느새 스튜디오를 오픈했다. 그 사이 또 배웠단다. 가격도 덜 부담되고, 친구니까 편하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집이랑 10분 거리인 염창에 있다. 집들이겸 놀러가 언니랑도 인사하고, 날을 잡고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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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니까. 내 타투니까. 미리 그리스어 폰트도 잔뜩 찾아서 글씨를 고르고, 날토와 만나 크기를 정하고, 수정할 부분을 수정했다. 도안을 정하는데만 1시간. 전사지로 위치 잡는데 1시간이 걸렸다. 살이 약해서 전사지로 찍은 걸 지우는 동안 빨갛게 부어올라서 날토가 걱정을 했다. 살이 부으면 잉크를 안먹는단다. 그걸 5번쯤 찍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왼쪽 쇄골에 예쁘게 자리 잡았다. 이제 시술만 하면 된다.

 

이미 2시간이라 배가 고파 컵라면을 사와서 나눠먹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시작하는데, 아프다! 커터칼로 살을 긁는 듯한 느낌이다. 뭐 놀랐긴 하지만 죽을만큼은 아니었다. 쇄골이 워낙 아픈 곳이기도 했다. 다른 곳은 덜 하다니까. 처음엔 긴장해서 1시간을 보냈다. 선만 땄다는데 나는 이미 너무 신기하다. 이게 뭐람. 진짜 내 몸에..??? 한번 쉬고 다시 시작했다. 이젠 슬 적응이 되서 막 졸립다. 그렇게 1시간정도를 더 하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살이 더 이상 잉크를 안 먹는다니 다음에 다시 와서 하잔다. 나는 또 와서 아프기 싫으니 그냥 하자고 했지만 안된단다. 신기해서 거울을 몇번을 봤다. 어색해서 예쁘고 뭐고 구분도 안간다. 사진을 몇개를 찍어보지만 어색하다. 이게 정말 내 몸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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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척 사진을 찍어봤지만 어색한 건 마찬가지다. 그래도 설레고 들뜬다. 강화도로 돌아갔다. 따끔따끔하다. 비판텐을 사서 발랐다. 잘 무렵이 되니 빨갛게 부었던 게 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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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신 :: πάντα χωρεῖ καὶ οὐδὲν μένει | 왼쪽 쇄골 아래 | 날토 | 1.Oct.2014

 

예쁘다. 예쁘다. 날토는 아직 서툴지 않을까 하고 어느정도 각오 했던 게 있는데 완전 예쁘다. 약간 불균형한 부분이 있지만, 글씨체도 워낙 손글씨체고 해서 잘 어울린다. 사실 그 자체로도 난 만족스럽다. 예쁘다. 곧 리터칭 하러 갈텐데 빨리 끝내고 잘 자리잡으면 좋겠다.

 

이게 다 되면, 언니에게 꽃 섬그림도 받아야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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