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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4/09/04

1985년 오늘(9.5) 북한특사 허담, 비밀리에 서울방문하여 전두환과 회동

1985년 9월 5일 당시 북한 대남담당비서 허담과 유엔대사 한시해가 비밀리에 휴전선을 넘어와 전두환과 회동했다. 허담은 '각하(전두환)과의 평양 상봉이 이뤄지길 기대한다"는 김일성의 친서를 갖고 방문했으며 그로 부터 두달 뒤에는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과 박철언  청와대 보좌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회동을 가졌다.

 

알다시피 휴전 후 대북밀사는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72년에는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와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의 상호방문이 있었고 그들은 각각 박정희, 김일성과 회동을 갖기도 했다. 그 결과 물이 7.4 남북공동성명이다.  뿐인가? 516 직후 내려온 비운의 밀사 황태성(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친구로 대구경북 10.1항쟁의 적극적 가담자, 남로당계열로 북에서 경공업성 부상을 지냄)도 있지 않은가? 물론 그 뒤에도 밀사는 있었다.

 

 90년에는 당시 안기부장 서동권이 북에 밀파되어 김일성, 김정일과 연속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남북교류협력법이 생기기전에 비밀리에 대한민국을 잠입탈출하여 김일성에 대한 극찬(주석님, 애국자운운)을 하며 고무, 찬양을 하고 한국의 정보를 알림과 동시에 대화를 합의함으로 백번 죽어 마땅한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이다! 그러나 molot는 국보법은 국보가 아닐뿐더러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기 떄문에 이들을 국보법으로 소급적용 처벌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이런 남북 간의 비밀 회동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짚어보아야 한다.

 

먼저 516 직후 파견된 밀사 황태성은 간첩죄로 사형 당했다. 박정희와 개인적 친분이 깊었던 그는 왜 사형당했을까? 여기에서 지난  '오늘은'의 한편을 떠올리시라.(이 디렉토리를 꾸준히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의 차이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리비아 카다피의 쿠테타를 설명하면서 60년대 말 3세계에선 청년장교들에 의한 쿠테타가 대유행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그 성격은 주로 민족주의적, 반기득권(기득권은 친미세력), 사회주의가 가미된 경제체제를 핵심으로 한다. 한국의 쿠테타 또한 농촌 출신의 청년장교, 사회주의 전력이 있는 박정희 중심, 구체제에 대한 환멸등을 기본 배경으로 깔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케네디 미 행정부로 부터 상당한 의심을 받았던 것이다.

 

그 의심 받은대로라도 하면 좀 좋으련만 박정희군부 세력은 친미만이 살길이요.를 외치고 있던 차라 황태성을 접촉하면 미국이 갈굴까 싶어서 기냥 바로 총살에 처해버린것이다.

 

72년의 남북 밀사 파견 또한 별 다르지 않다. 어느정도 장기집권과 경제성장에 자신을 얻은 남북의 독재자들은 국내정치에 이용하기 위한 속셈으로 밀사를 파견하고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다. 그것에 흥분했던 남북 양측의 민중들만 속은 셈이었다. 자 72년 남북공동성명 이후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의 확립, 김정일의 전면배치, 왕창 숙청하고 그 나마 남았던 제 세력의 숙청으로 이어졌고 남한에서는 10월 유신--;;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도대체 이게 머냐고????

 

이 지점에서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에 대한 기억을 각자 되짚어 보시라. 그리고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라는 개념 또한 떠올려보시라. 남한에선 북한이 독재하니까 우리도 대응하기 위해선 민족적 민주주의(우웩)을 강화해야 한다며 설레발을 떤거고 북한에선 미국의 압잽이 박정희가 독재를 하니 우리도 천리마 정신을 강화해야 하고 주체를 중심으로 뭉쳐야 된다며 민중들은 쪼게 된거다.

 

85년도 그닥 다르지 않다. 뜬금없이 대통령 자리를 꿰찬 전두환은 81년 1월 국정연설에서 조건없는 최고책임자의 상호방문을  여론타개책의 일환으로 제시했다. 북한의 반응은 썰렁했으나 83년 아웅산 테러 이후 북에 대한 국제 여론이 싸늘해지자 84년에 들어서면서 북한 또한 대화의 필요성(혹은 대화하는 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전두환은 85년 초에 영원한 의리맨 장세동에게 정상회담 추진을 명했고 결국 그 와중에 남북한의 밀사가 상호방문을 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에는 이르지 못했으니..그 이유를 짚어도록 하자.

 

당시 안기부 문건에 따르면 남측의 정상회담 추진목표에는 북의 대남혁명전략 포기 유도 및 전쟁방지, 북의 남북한, 미국 3자회담 주장 무력화, 86년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등이 포함돼 있었고 북의 회담 전제조건은 정상회담 내용은 7·4 공동성명에 근거한 통일방안 마련과  불가침 선언이 되어야 하며 그 선행조건은  군사훈련 중단(지금은 안하는 팀스피리트), 상호비방 중지 등이었다. 둘 다 한발짝도 양보 안하니 될 턱이 있다.

 

하여튼 이런 생쇼 특사 파견은 남북 양측 독재자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있어왔다. 앞으론 박터지게 싸우면서 뒤로는 지들끼리 '딜'하고 말야. 그러면서 민중들은 맨날 반공궐기 대회나 미제규탄대회에 동원이나 시키고...

 

결국 00년 615에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전세계에서 이 광경을 보며 가장 배아파 한 사람은 누구? 바로 03)  이전에 비하면 확실히 전향적이긴 하지만 5억불을 싸발랐느니 하며 보수정치권에서 싸우는 꼴이라던지, 우리는 태양민족이에여~ 조선민족이여 일어나세~ 615선언만 이행하면 만고 장땡~을 외치고 있는 일부 운동세력을 보면 내 참. 멀어도 많이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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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뉴스 베타 서비스 실시!!

포털들이 제각기 뉴스 서비스를 실시해 재미를 보고 있는 가운데 세계최강자(?)구글이 드디어 한국판 뉴스 서비스를 개시한다. 현재는 베타 서비스( http://news.google.co.kr/?promo=hpp-newskr)

 

미국판으로는 몇년전(정확히는 모르겠음. 일이년전일지도)부터 서비스를 개시했는데 그 알고리즘을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것이다.

 

뉴스 편집이 자체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실행되고 그 개별 뉴스마다 관련뉴스들이 또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지금 확인 해보라. 일단 엄청난 정보량과 일목요연한 분류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즉 에디터가 기사 중요도를 판단해서 편집하는게 아니라 키워드 검색으로 모아진 뉴스들의 클릭수를 중심으로 하여, 그 기사를 실은 매체의 인터넷 영향력 (예컨데 같은 내용의 기사가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떳다 치자. 한겨레 기사가 클릭수가 월등히 높다면 한겨레 기사가 위로 올라가겟지만 클릭수가 같다고 가정할땐 조선일보 기사가 위로 뜬다, 왜냐? 웹상에서의 지표와 영향력을 볼때  디지털 조선이 더 우월하기 떄문이다.) 까지 포함한 기준들이 알고리즘에 적용되어 자동 편집되는거다. 놀랍지 않은가?? ( http://news.google.co.kr/intl/ko_kr/about_google_news.html )

 

미국현지 포털들의 뉴스서비스 시장이 어떤식으로 할거되고 있는진 잘 모르겠지만...스킨과 디자인만 좀 가다듬으면 한국구글의 뉴스서비스는 돌풍을 일으킬 것 같다. 카인즈도 타격을 입을테고 네이버 뉴스도 큰 타격을 입겠군. 자체 기사를 생산하는 다음은 그 비중을 높이고자 애쓸것 같고..

 

구글뉴스를 한 참 들여다 보고 있는데 보면 볼 수록 기가 질린다.오리지널 판 구글 뉴스의 특징은 시시각각 뉴스 방향이 널뛰듯 한다는건데(십분전에는 보수적 기조이다가 십분후에는 또 열라 진보적 기조로 돌변) 그건 이 뉴스의 독특한 편집 시스템 떄문이다. 미국판 구글뉴스에서도 검증됐듯이 여기서 현재 여론의 추이를 캐취할 수 있다. 예컨데 캐리를 칭찬하는 기사가 부시를 칭찬하는 기사보다 상위에 여러개가 동시다발적으로 뜬다면 현재 캐리를 칭찬하는 뉴스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내고 있다는거다. (물론 캐리 지지율이 지금 높다는 식으로 바로 연결되는건 아니다. 하지만  눈 빠른 사람들은 연관성을 찾아내겠지)

 

뿐만 아니라 구글 뉴스 각국판을 보면 그 해당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는거다. 이런건 우리도 유용하게 써먹으면 될 듯 하다.

 

하여튼 요약하자면 다른 사이트들에서 생노가다해서 결과물을 내놓으면 구글은 그걸 지표화해서 알멩이만 뺴먹는 시스템인거다. --;; 아 위대한 google이여......ㅠ.ㅠ

 

인터넷 미디어 종사자로서(얼마나 됐다고--;;) 정말 갈 길이 멀다는게 다시금 느껴진다.

자본으로 무장한 저들의 재주는 끝간데 없이 농간을 부린다. 현장에 노트북(노트북 컴퓨터가 아니다. 말그대로 노트북-수첩, 공책)을 들고가서 기사 쓰는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아 힘빠져라~ 하지만 어딘가에 약한고리가 있겠거니...그 고리가 절대반지려니 하고 찾으러 가자구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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