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4/09/05

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05
    트랙백 이번엔 꼭 되라!(6)
    molot
  2. 2004/09/05
    북국으로 살펴본 신촌의 외식 문화
    molot
  3. 2004/09/05
    '라 마시께따' 디렉토리 와 어원의 소개(6)
    molot
  4. 2004/09/05
    1945년 오늘(9.6) 건준, 조선인민공화국 선포
    molot
  5. 2004/09/05
    퀵 라이더 이야기
    molot

트랙백 이번엔 꼭 되라!

나도 앙겔루스 노부스를 읽었답니다. 진중권 이름값이 한창 인지라 출간될때 언론도  꽤 탓고 책도 어느 정도 팔린 모양이던데 정작 책이 꽤 나간 후에는 전혀 이슈화가 못 되더군요.

 

그 책을 읽으면서 뭐랄까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지요. 진중권의 최대 장점중의 하나인 스타일 상의 경쾌함이 엿보이지 않더라구요. 아마 온라인 상에서 온갖 글들 쏟아놓고 정치적 이슈들로 이전투구 하는데다가 신문 같은데서도 진중권한테 원하는게 그런 것이니 자기도 좀 힘들었겠죠. 그래서 맘 먹고 쓴 책이라 오히려 역편향을 보인건 아닌가 싶네요.

 

신천사라 길래 무슨 말인가 했더니 앙겔로스 노부스를 번역한 말이군요.^^ 

 

'미래를 위해 과거를 조직하라!등 뒤의 미래가 아니라 파국의 현재를 바라보라.' 이런 진중권의 벤야민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만...그래도 나 자신은 과거의 재구성, 현재를 조직화 하는 것은 전망을 위해서가 아닌가 하는 촌시런, 단선적인, 좀 안이한 관점을 져버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미래로 밀려나다니...머 미래로 밀려나는게 맞기야 하겠지만 인정하기 싫은 것도 같고 ㅠ.ㅠ

 

첨언: 이 글은 新天使(신천사)와 연쇄 작용 에 관한 트랙백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국으로 살펴본 신촌의 외식 문화

집에서 요리를 잘 안 한지가 벌써 몇달이 지났다. 일단 집에서 밥먹는 횟수가 줄어든 탓도 있고 식 재료를 사놓았다가 상해서 몇 번 버린 이후로(김치 냉장고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치 맛도 유지되고 야채랑 과일도 정말 오래 가던데..)는 기껏 해 먹어봐야 통조림 꽁치 조림, 카레, 김치찌게, 된장찌게 정도다. 레시피도 자꾸 까먹는것 같고 요리 실력도 줄어드는 듯 해서 속이 상한다.(요즘 사무실에선 엄청나게 요리하고 있지--;; 직책수당 신설하랏!)

 나는 음식 만드는것도 즐기고 맛있는 음식 찾아먹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회사 다닐 땐 나름대로 특기와 취미를 살렸는데 요즘은...ㅠ.ㅠ 맛난 음식 해먹는 것, 찾아서 사먹는 데 돈도 필요하긴 하지만 필수적인건 외려 부지런함이다.

 

이렇게 먹는 것에 예민한 나의 관점에서 볼때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신촌은 정말 맘에 안 드는 동네다. 이 동네 정말 먹을 것 없다.(패밀리 레스토랑이나 패스트 푸드점 같은 공장표 음식을 제외하곤) 명물거리에 몇군데 돈주고 사먹을 만한 메뉴와 맛을 갖춘 식당들이 있긴하지만...

 글쎄 내 생각엔 20대 여성의 비위 맞추는데 급급한 나머지 맛보다는 음식의 외형이나 인테리어, 화장실 시설에만 신경쓰는 집들이 다수 인 듯 하다. 그러나 어쩌랴 업주들은 여성의 지갑을 여는 것도 여성이요 남성의 지갑을 여는 것도 여성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니~

경상도 음식이 맛없다는건 널리 받아들여지는 통설이지만 부경지역 음식 중엔 손에 꼽을 만한 것이 몇가지 있다. 특히 단품 식사류에 강점을 보인다. 예컨데 돼지국밥, 밀면, 경상도식 추어탕 등등이다. 그 중에서도 첫손을 꼽으라면 그건 지상 최고의 해장국인 복국일게다.

부산 본가(아 물론 삼년전에 이사가 지금은 아파트 촌에 살지만) 주위에 법원, 검찰청, 대학병원, 구 도청, 학교등이 산재해 있었기에 참 맛깔 난 음식점 들이 많았다. 말 그대로 료릿집들도 많았지만 까다로운 공무원들 입맛을 맞추기 위한 재첩국, 복국, 추어탕 집들은 가격대 성능대비가 참으로 훌륭했고 지금도 그렇더라.

하여튼 요즘 복국이 정말 먹고 싶다. 신촌 이 동네도 복집들 몇군데가 있더라만 딱 보면 꽝이라는걸 안다. 새로 간판 올리는 주제에 무슨 무슨 전통의 복집 어쩌고 하는 과대포장을 하는 곳들, 객단가 높일 라고 무조건 복사시미나 복정식을 주메뉴로 떡하니 내미는 곳 하며 정말 맘에 안 든다.  일반 한식류 특히 단품 전문점 같은 경우엔 식당 겉모습과 주인장 인상만 봐도 맛있는 집인지 아닌지 바로 진단이 나온다. 물론 임대료나 권리금이 높은 탓도 있겠지만 객단가 높인다고 어디 매출이 뛰고 회전률이 높아지던가?

 

서린동 SK 본관 옆에 있는 식사 시간이면 대가리 터지는 모 식당의 경우 메뉴는 사시사철 5000원 짜리 대구탕 하나다. 강남권도 그렇다. 무등산 이나 삼원 가든 같은 곳도 물론 있지만 5500 혹은 6000짜리 설렁탕으로 저력을 자랑하는 식당들이야 말로 진정한 그 동네의 강자들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신촌의 음식문화는 너무나 저급하다. 이건 기본적인 퀄러티는 유지하되 양과 가격에서 강점을 보이는 대학가 공통의 장점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생겼다가 망하길 반복하고 한 해는 찜닭의 광풍 한해는 불닭의 광풍식의 지랄 용천을 특징으로 가지고 있으니..이런 저급성은 업주들만의 탓이 아니라 지역 소비자들의 취향에 기인하는 바도 클거다.

 

그나마 신촌에서 저력을 자랑하는 식당(구월산이나 철대문집)은 서대문 지역 아저씨, 아줌마들과넥타이 부대가 주력군인 실정이다. 문화의 불모지 신림에도 순대볶음을 랜드마크로 내밀고 고대 앞은 아직도 제기시장이나 이모집이 건재한데 신촌은 뭘 랜드마크로 내밀 수 있겠나? 신계치나 신선 설농탕도 돈 좀 벌곤 공장이 되버렸다.

복국 이야기 하려다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버렸는데 복국은 정말 훌륭한 음식이다. 일단 복국은 자격증 소지자들이 끓인다.(아 물론 식당 주방에서 메인 볼라면 조리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개나 소나 다 따는 자격증이 아니라 독극물 관리사에 버금가는 조련과 경력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복조리사 자격증 소지자들이 끓이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집이던 일단 기본은 유지한다.

 

그리고 모든 뛰어난 음식이 그렇듯 복국은 재료 자체의 맛을 충분히 끌어내는데 역점을 두는 음식이다. 들어가는 거라곤 복, 콩나물, 미나리, 다진 마늘 약간, 소금 약간이 전부다. 쫀득쫀득과 쫄깃쫄깃의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씹는 맛을 지닌 껍질 부터 흰살 생선 특유의 퍽퍽함과는 거리가 있는 담백함을 지닌 속살을 초간장에 찍어 먹는 맛은 말할 것도 없을 뿐더러 시원하면서도 위를 묵직하게 눌러주는 그 맑은 국물 맛에 비견될 만한 것은 없다. 잘 끓인 전주 남부시장식 콩나물국 정도가 비견될 만하다.

아 침이 키보드 위로 막 떨어지려고 하는구나. 특히 술 먹은 담날 사우나 후에 복국 한 그릇 떄리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는 그 맛이란~ 캬....

첨언: 이 글은 약 4개월전 싸이 미니 홈피에 쓴 글을 약간 수정한 것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라 마시께따' 디렉토리 와 어원의 소개

이 디렉토리에선 음식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간단한 요리교실에서 부터 음식 비평, 식문화 비평, 맛집 소개, 절대 피해야 할 식당 소개까지 그리고 식문화와 사회현상, 철학, 역사 속의 음식 등등 하여튼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사실 이런 걸 쓰려면 잘 먹고 자주 만들고 그래야 되는데 요즘 나의 식단은 거의 일식삼찬 수준이고 맛난거 사먹으러 다닐 시간과 능력이...ㅠ.ㅠ 그래서 글을 써서라도 먹거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이 디렉토리를 만들었다. 초기엔 예전에 내가 썼던 글들이 자주 올라오게 될 듯 하다.

 

근데 걱정 되는게 한가지가 있다. 사실 음식에 관한 웹컨텐츠들이 인기를 끌려면 화려한 사진빨을 자랑해야 하는데 내 능력상 그건 정말 무리다--;; 하지만 화려한 사진 보고 흘리는 침보다 글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흘리는 침이 양도 많고 훨씬 끈적끈적 할거야^^

 

첨언: 아 참 '라 마시께따'라는 디렉토리 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아 어원을 밝힌다. 97년도에 유럽을 세달 동안 돌아다닌적이 있었다. 서유럽에선 비싸서 맛난 것도 잘 못 먹고 닭도리탕이나 해먹고 돌아다니곤 하다가 유럽의 변방으로 가선 참 잘 먹고 다녔다. 그 중에서 이베리아 반도 음식이 참 맘에 들더만....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같은데야 물가 비싸지만 스페인에서도 시골로 내려가면 빠에야 같은건 적당한 가격에 많은 양과 풍부한 맛^^

 

특히 교통이 불리해 남들은 잘 안가는 포르투갈을 갔을땐 정말 죽였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버스를 타고 그리 오래 가지 않으면 카보 다 로카 (로카 곶,유럽의 끝이다. 거기서 헤엄쳐서 계속 가면 아메리카 대륙이 나온다. 섬하나, 바위 하나 보이지 않는 끝없는 수평선이 보이는데 정말 매혹적인 곳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해남 땅끝은 좀 별로다. 섬들이 워낙 점점히 박혀있는지라 땅끝이란 기분이 안 난단 말이지.)   

 

아 잡설이 너무 길었다. 하여튼 그 리스본 뒷골목에 있는 포르투갈 정통요리 전문 식당(파도 공연도 한다.) 의 이름이 바로 '라 마시께따' 이다.................라고 할 줄 알았겠지만 '열라 마시께따'(맛있겠다)란 경상도 사투리에서 그냥 '열'을 떼버린고 지은 이름이 바로 '라 마시께따' 인 것이다. ㅋㅋㅋ

 

뭐라고??? 열받는 다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945년 오늘(9.6) 건준, 조선인민공화국 선포

 1945년 9월 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소집하여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주석은 이승만--;;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지적하는 거지만 건준의 '인공'과 이북의 '인공'은 줄임말은 같지만 다른거다. 건준의 인공은 말했다시피 조선인민공화국이고 이북의 그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말이지.

 

이 디렉토리를 관심있게 읽어보고 있는 사람은 눈치챘겠지만 여기서 이야기 하고 있는 사건들은 상호 영향을 받고 있다. 45년 9월 6일 건준이 좀 급작스레 인공을 선언한 것은 4일 전 있었던 일본 항복 조인식(45.9.2) 의 영향이 크다. 미소의 분할점령이 공식화 되자 건준 측에선 마음이 급해졌고 양측 군대가 본격적으로 조선반도 전체를 점령하기 전에 건준의 위상을 기정사실화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좀 급작스럽게 인공을 선언했는데 기정사실화는 커녕 미소양군은 기냥 썡까버렸다.(소련은 약간 다르긴 하다.) 미소양군 뿐인가? 좌에서 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파의 정치지도자들 조차 콧방귀만 뀌어버렸으니...오늘날의 관점에서 볼때 조급한 인공의 선언은 패착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인공 선언 이후 건준은 착착 인민위원회로 조직을 전환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는 극우반공주의자를 제외한 좌파 부터 중도우파까지 다 참여했었다고 한다. (심지어 김대중도...이거 떄문에 빨갱이 소리를 오래 듣긴 했지만.) 그러나 그 인민위원회들을 인공이 제대로 제어 할 수 있었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올시다ㅠ.ㅠ

 

물론 인공 선언은 조급했지만 그 주체인 여운형은 일제최말기에 이미 건국동맹을 조직했고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엔도로 부터 치안유지를 부탁받기도 했다. 그리고 해방직후 대중성이 있으면서도 친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국내 정치지도자는 여운형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각 지역별로 자치에 대한 요구가 너무나 컸기에 45년 8월 31일에는 건준 지부가 전국적으로 145개에 달했다고 한다.

 

하여튼 미 군정의 통제가 점점 강해졌다. 그리고 이승만이 45년 10월 16일에 미군용기를 타고 귀국해서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인공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아버리면서 인공은 점차로 유명무실해졌다. 비극이라기엔 좀 비장미가 떨어지고 소극이라기엔 너무 꿀꿀한 사건이다.

 

그런데.....건준은 뭐가 좋다고 이승만을 인공의 주석으로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을까? 임시정부 주석당시의 공금횡령, 조선의 미국편입 주장 논란등으로 임정라인과 사이가 클어진지가 수십년이고 골수 반공주의자라 좌익계 항일세력과도 친하지 않고 미국에서도 장인환, 전명운 의사 재판 통역 거부부터 시작된 지속된 스캔들로 악명을 떨쳤는데 말야..

 

여기서 한 에피소드를 들여다 보자.

 

해방 후 첫 여론조사는 1945년 10월 10일부터 11월 9일 사이에 실시됐다. 그 결과는 당시 우익 성향의 선구회가 펴낸 잡지 《선구》12월호에 게재됐다.
“조선을 이끌어갈 양심적 지도자는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 1위는 누구일까? 몽양 여운형이다. 2위는 이승만. 1위와 2위의 차이는 12%로 몽양이 33%의 지지를 받았다. ‘생존 인물 중 최고의 혁명가“를 묻는 질문에도 몽양은 단연 1위였다. 그러나 정작 ‘내각이 조직될 경우 대통령감으로 적당한 인물’항목에서는 이승만이 1위를 차지했으며 여운형은 외무부장감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 이유가 뭘까? 내가 추측하기엔 이승만도 일단 항일은 항일인게 확실한데다가 큰 항일 단체 옆에서 좋던 나쁘던 항상 소란을 일으켰기에 독립투쟁의 중심인물로서 민중들에게 확고히 인식되었던게 아닐까? 게다가 초대 임정주석이기도 했을뿐더러 일본의 자리를 미국이 차지하게 됨에 따라 미국박사, 영어능통한 이승만에 대한 민중들의 기대는 클 수 밖에 없었던것 같고..

 

권력을 잡고자 하는 자들이여 이슈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말지어다! 잊혀지는 것보다야 욕먹는게 훨씬 낫노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퀵 라이더 이야기

미디어의 역할이 뭘까? 폭로? 고발? 뭐가 제일 중요한 역할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의제선정도 몇손가락 안엔 꼽힐꺼다. 그런면에서 이 기사는 영 꽝이다.--;;

 

라이더 연대(퀵서비스 오토바이 기사들의 모임 http://onquick.ce.ro)의 초동주체 두사람의 전화를 받고 인터뷰를 하면서 간만에 좀 찡한 걸 느꼈다. 뭐 찡하고 열받는 일들이야  많지만 내가 짐작도 하지 못한 곳에 숨겨진 진실들을 알게되서 느낀 찡함은 또 다른더라.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고....하여튼 난 기사는 기사고 이 양반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직접적 도움을 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 또 의제화 시키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매명욕이 그 안에 1%도 없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일단 내 기사 자체는 아무 반향도 없다.--;; 그리고 몇군데 다른 매체에다가 초동주체 연락처랑 상황들을 토스했는데 역시 별 무반응(한군데서 월요일날 취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분들이 그동안 총연맹 서울본부, 서비스 연맹등등도 좀 쑤시고 다닌 모양인데 별 호응이 없는듯 하여 컨택 시킬만한 곳을 좀 알아봤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고...그냥 서울본부에만 잘 부탁한다고 전화 한 통 떄렸는데 어케 될란간 두고 봐야 알겠다. 우리 센터에 호스팅 하면 보안 문제나 고소고발 건은 걱정 안해도 된단 말을 하긴 했는데...꼭 영업 뛰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만 찝찝했고..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가 나간 후에 초동주체로 부터 감사전화를 받았다.^^ 꺽꺽 목메는 음성이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리는데 차마 말을 잇지도 못하고 뭐라 말해야 될지도 모를 정도로 흥분하시더라. 내가 미안할 정도로...이 때 기분은 참 좋았다. 이런 느낌 계속 갖고 가야지...

 

그 통화 이후에 '그래 내 눈엔 안보이지만 어딘가에선 라이더 연대 문제가 아젠다로 떠오르겠거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