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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행인님의 ["부끄러운 기록"] 에 관련된 글.
이메일도, 휴대폰도 안쓰는 조세희 선생님이지만 카메라는 두대씩 메고 다니십니다. 볼 때마다 '선생님 이 사진 언제 다 발표하실라고 맨날 찍기만 하세요' 하고 여쭤보면 '정리를 해야되는데 사진만 쌓이고 정리를 못해 그래도 사진은 나 죽어도 남는거니까 누가 정리할 수 있잖아' 하고 웃으십니다.
조세희 선생님은 인터뷰나 글을 부탁해도 웃기만 하시고 큰 가방을 메고 여전히 사진을 찍을 따름입니다. 이번아펙 때 부산에 가고 싶은데 사고가 날까봐(건강이 그닥 좋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혹시 짐 될까봐 못가겠다시데요.
요즘도 그렇지만, 연말이 되고 겨울이 되면 집회 시위가 더 많아집니다. 젊은 내 손도 시리고, 볼펜이랑 수첩도 귀찮은데 선생님은 사진 찍느라 장갑도 못 끼시고 카메라 든 손 호호 불어가며 집회장 앞뒤를 부지런히 오갑니다. 가까운 편의점에 들어가서 따뜻한 쌍화탕 같은거 사다 쥐어 드리면 맑게 웃으십니다. 아래 사진은 작년에 찍은 것들입니만 올 해도 그의 모습은 별 다르지 않습니다.
'어른' 이런 단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어른'대접 받아 마땅한 '어른'인데 아쉽습니다. 떠들석하게 사람들이 알은척 하지 않아서 맛있는 음식 아껴먹듯이 거리에서 인사드리고 안부 여쭙고 폐부를 찌르는 잠언들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그런 혜택을 혼자서만 누리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싶기도 합니다.
주절주절 썼다가 '이글은 나만 볼래요' 버튼을 클릭해뒀다가 그냥 삭제하기를 몇 차례 한 걸 제외하면 거의 두 달 만이군. 약 2주간 일을 안(못) 해서 좀이 좀 쑤셔하다가 다시 출퇴근이란걸 한 이후 지금까지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절반 나마 마친 교육기간 동안 졸며, 심드렁해 하며, 내가 가졌던 선입견(선입견이라고 해서 꼭 나쁜쪽인건 아니다 이러저러해서 괜찮을거야 하는 선입견도 있는게니..)을 실제로 확인할땐 가당찮게 묘한 만족감을 느끼고 또 때론 흥미도 느끼고, 앗 이건 훔쳐야 할 혹은 배워야 할 덕목(스킬?)이라고 눈 반짝거리고...뭐 그랬던 듯 싶다. 몇 차례 나간 필드에선 '신나라' 했고 예전에도 느꼈던 갑갑함과 비슷한 감정을 또 느끼고...
예전에 알던 사람들을 이러 저러한 자리에서 만났을땐 생각보다 그리 불편치 않았다. 그 사람들이 속 내를 안 드러낸 탓도 있을테고, 나한테 전해진 반응들이 예상의 진폭을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내 감수성이 남달리 두텁긴 하지만 물론 몇차례의 '찡'한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근데 지난 주 부산에 내려갔을때 낯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해오길래 답례를 하고 뻔한 이야기를 몇마디 늘어놓은 후 "그런데 날 어떻게 알아보셨느냐"고 물었더니 "RTV에서 봤노라"고 대답하는걸 들었을 떈 기분이 좀 이상했다.
난 그람시가 인용한 소렐의 말 '지성의 회의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믿지 않는다는 알튀세르의 말에 매우 공감하고, 심지어 '지성의 회의주의와 의직의 낙관주의를 믿는다'는 사람 조차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그 다음에 이어지는 알튀세르의 아포리에 대해서는 지금은 뭐라 말하기 힘들다)
뭐 그렇다는 거다.
미국 대중지 네셔널 인콰이어러가 재밌는 기사를 하나 썼다. 오늘 한국 신문 몇 곳이 받아 썼고 티비 뉴스에도 나오더라. 간략하게 말하자면 요즘 골썩을 일이 많은(카트리나, 이라크등등) 부시가 다시 술에 손을 댔다는게다.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기사에 의하면 텍사스만한 잔(그니까 큰 잔이란 말이겠지 맥주잔 같은)에 짐 빔을 따라 마시다가 로라 부시한테 딱 걸렸댄다. 로라는 "스탑 조지"라고 외쳤다나...네셔널 인콰이어러는 부시가 몇 주 전부터 로라 몰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단다.
유엔에서 콘돌리자 라이스한테 '나 오줌 마려, 지금 화장실 가도될까'라는 메모를 보내 허락 받는게 로이터에 찍혀 쪽팔았던 부시 또 이상한 건으로 쪽팔았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주로 독점고백 '마이클 잭슨은 나를 이렇게 성희롱했다" 류의 연예인 가쉽 기사를 주로 쓰는 곳이라 믿음성은 좀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개뻥을 치는 곳은 아니고 나름 탐사보도^^를 하는 곳이라 맹탕 근거 없이 부시 음주 기사를 썼을 가능성도 낮다.
알다시피 부시는 젊은 날 술을 느무느무 사랑했다가 40살 생일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딱 끊은 것으로 유명하다. 로라 부시가 '조지 나냐 짐빔이냐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 고 강한 압박을 가해 부시를 '새 사람'으로 만들었단다. 근데 조지가 그 때 짐빔을 선택했으면 로라나 조지는 불행했겠지만 인류는 지금보다는 아주 쬐금 더 행복해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짐빔은 버번 위스키다. 그니까 스코틀랜드 위스키가 아니라 옥수수로 만든 미국술이란거지. 할인마트 가면 700미리리터 짜리 큰병을 한 사만몇천원 주면 살 수 있는 술이니 그리 비싼 것은 아니고 다른 버번위스키가 그러하듯 머랄까 좀 폭음성향이 있는 육체노동자들이 즐기는 거친 느낌의 술이다. 미국 대통령이면 비싼거도 먹을 수 있는데 오랜 금주 끝에 다시 손댄게 짐빔이라니 좋아하긴 좋아하나 보다.
술소개는 각설하고, 한겨레 한승동 기자가 부시의 정신상태인가 하는 책을 번역해 출간했던데 거기 보면 금주자는 다시 술을 먹는 성향이 있다, 알콜중독은 절대 낫지 않는다 등등 내용이 있단다. 하튼술을 어느날 갑자기 딱 끊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결단력을 높이 살 수 있는 점도 있겠지만 '담배 끊는 놈하고는 사돈도 맺지마라'는 옛속담이 증명하듯(우리 엄마 아버지는 원래 담배 안 폈으니까 혹시 하는 걱정은 마시라) 뭔가 비정상적인 구석이 있다는걸 의미할게다. 애초 술에 의존했던 점에 대한 문제는 말해 무엇하랴만은.
하여튼, 저 뉴스를 처음 보고 잠깐 부시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무뇌스러운 인물이지만 지는 또 요즘 얼마나 힘들었으면 술 끊은 걸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로 삼던, 로라와 철석같이 약속을 했던 부시가 또 술에 손을 댔을까 하는 생각이 든게지. 생각은 꼬리를 물어, 부시가 만일 또 폭주를 하게되면 안그래도 이상한 짓 많이 하는데 더 이상하게 되는건 아닐까? 이북에 쳐들어가기라도 하면 어카지? 심신상실이 되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백악관이 실제 주인이라 평가받는 딕 체니가 대통령이 되 2008년까지 해먹을 건데 그 넘은 더 무서운 넘이자나 하는 생각까지..ㅋㅋ 또한 짐빔 입장으로서는 부시의 음주 소식이 강력한 광고효과를 발휘하겠다는 생각도...
내세녈인콰이어러의 표지다. 메인커버 기사는 안젤리나 졸리의 입양이 불법적 요소를 내포했다는 것이고 우측 상단에 부시 사진과 음주 이야기가 있다. 카트리나가 부시를 booze(술을 마시다)하게 몰고 갔단다.
꼭 블로그에 써야지 한 건 아니지만 단상을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싶은게 있었는데 까먹었다가 생각났다. 이 생각이 나서 잠이 번쩍 깼다 ㅋㅋ 그려 에보 말마따나 블로그란게 이런거 쓰라고 있는거 아니겠나
지난 주 초 발행된 시사저널이 몇몇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었다. 난 취재와 추석 귀향을 엎쳐서 화요일날 일찌감치 내려갔는데 서울역에서 시사저널 추석합본호를 샀다. 기대를 안고. 곧 언급하겠지만 기대는 충족됐다.
보통 부산 가는 기차를 탈 땐 밤차의 경우, 술먹고 그냥 잔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일요신문을 사서 아주 샅샅이 읽고 써먹을 것을 머리속에 쟁여둔다 남는 시간은 씨네21 같은거 본다.. 그것도 아니면, 읽던 것 들고 간다.인데 이번엔 시사저널을 샀다.
시시껄렁한 특별기획, 커버스토리와 달리 시사저널 추석합본호는 '삼성완전정복' 이었다. 책 말미 영화, 공연 소개한 대여섯장 빼고는 백여페이지가 전부다 '삼성'...
사회부, 정치부, 체육연예부, 모든 기자들이 자기 취재 영역에서 삼성을 뒤볐다. 물론 시사저널 편집장이 스스로 털어놓은 것 처럼 대특종이 있다던가 그런것은 아니었다. 그간 알려진 사실들은 꼼꼼히 정리해놓은 것, 그리고 각 부서에서 삼성을 다각적으로 치다보니 독자 입장에서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점 등이 크게 다가왔다.(정보를 모으는 것을 넘어 통합의 경지에 이르러 입체적 시야를 주는 것은 내 글쓰기의 강력한 목표중의 하나다. 실제로 성취되는지는 별개로 하더라도)
선택과 집중이 훌륭하게 이뤄줬을때 얼마나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는지 이번 시사저널은 참 잘 보여줬다.
그 책을 보면서 내가 몰랐던 것을 새로 알게된것은 하나, 구조본 산하의 지대위가 노조파괴공작의 실제 근원이다 라는 것-그러나 이러한 것 하나를 발굴하기가 얼마나 어렵던가? 좌파민중언론을 자임하면서 엄두나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일을 종합지들은 이렇게 해낸다. 딴 동네 일이거니 하고 멍하니 있을 바에야 차라리...- 정도 였다.
썩어도 준치라고 , 1960년대 주간한국 창간 그 이후 1980년대 선데이 서울의 전성기를 뛰어넘어 시사주간지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시사저널의 저력이 여실히 느껴지더라. 김훈도 가고 서명숙도 갔지만 (그러고 보니 이문재도 시사저널 출신이구만)아직 시사저널은 명실이 상부하다. 이숙이 기자나 주진우 기자의 경우 아는 사람은 아는 네임벨류를 유지하고 있잖나.
게다가 종이책, 활자의 파워라는게 확 느껴졌다.
정확히 계량할 순 없겠지만 아마 내가 요즘 보는 텍스트들의 상당부분은 디지털화 된 것, 아니면 출력물이고 내가 생산하는 텍스트들도 디지털 텍스트다. 기실 원래 난 책의 미래를 믿는 사람인데다 인터넷 매체에서 일하긴 하지만 종이에 대한 애정이 보수적일 정도로 강력한데 이번 시사저널을 보고 그 아련한 짝사랑이 다시 ㅋㅋ
또한 시사저널의 삼성 조지기에 비하랴만은 아젠다를 잡아서 전방위적으로 쪼아내는 것을 참으로 하고 싶었고 몇번 시도(?)를 했는데 주객관적 조건이 뒷받침이 안돼ㅠㅠ 번번이 접었었고 X파일 직후 나 역시 '삼성'(!)에 대해 다각적으로 다뤄보자는 의견을 제시(강력하게? 아니면 지나가는 말로?) 했건만 역시...라서 상당히 배가 아팠다.
상업적으로도 성공했을 것이, 듣기에 시사저널 삼성 특집호는 팔리기도 엄청 팔렸단다. 이 책 구하러 몇군데나 다녔지만 못 구했다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을 정도니...또한 나 처럼 귀향길에 이 책을 산 사람들은 아마 고향에 가서 시사저널 이야기에 침이 말랐겠지. 개나소나 시사평론가인 한국 같은 정치공화국에서 이번 추석에서 돈 안되는 노가리 주제중의 하나가 삼성 일 것은 분명하고 시사저널은 톡톡한 효과를 거뒀을 것이다. 단기적이나마 열독율도 높아졌을 것이고.
다시 종이에 대한 애정으로 돌아가자면^^ 전술했듯이 그런 애정이 넘쳐 자주는 아니지만 각종 활자매체(거의가 기관지지만)에서 글을 부탁하면 신나하는 편이다.(솔직히 말하면 빵꾸 낸적도 꽤 있다ㅠㅠ) 왜 그런거 있잖아 어릴적에 자기 이름이랑 글이 박혀 나온 책을 보면 그게 학급문집이라도 가슴 뿌듯한 거. 그런 촌스러움을 탈피 못했다는게지...
스트레스를 강력하게 많이 받고 있다. 화딱지 나는 일들이 많고, 열받기 시작하니까 사사건건 눈에 밟힌다. 이게 몸으로 바로 드러나는게 환절기랍시고 감기도 직빵으로 걸렸고 심각하진 않지만 몇가지 육체적 징후로도 드러났었다.(왼쪽 다리가 길어진다던가...앗 이건 스트레스랑 관련 없나?)
일로 부딪히는 건 정말 쿨하게 지적하고 돌아서고 또 웃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건 뭐...열받지 말고 그냥 내꺼나 잘하자 주의로 살아야지 싶어 한동안 그랬는데 그것도 어느 임계치를 넘어선 느낌이다. 차곡 차곡 쌓아두고 있다.
예전 경험으로 보면 이런게 엉뚱하게 폭발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노라' 는 명제를 실현해 자폭하곤 했는데 뭐 이젠 그럴것 같진 않고.
오늘 한 후배랑도 잠깐 이야기 하다 나온 이야긴데 평소엔 허허 거리다가도 확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때가 있단다. 내가.
생각해보니 맞다 싶기도 하다.
안 그럴려면 조금씩 조금씩 배출을 해야하는데...
사실 내가 속으로 가지고 있는 주위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높긴 하다. 근데 맘으로 바라는 것과 별개로 실제로 그 만큼 바라지도 않고(내 바램대로 됐음 벌써 세상이 다 변했게) 강요같은걸 하는 편도 아니라는게 내 생각이다(그래 만고 내 생각이라니까...)
어딘들 무엔들 맘에 쏙 드는 게 있으랴만은 내 머리와 경험과 상식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많다. 아주 오랜만에 '벅차다'는 감정을 느끼는 요즘이다.
환절기마다 통과의례 처럼 다가 오는 감기 몸살이 또 왔다. 아마 연휴 끝나고 서울 집에 올라온 날 몸에서 열이나 활딱 벗고 선풍기 까지 틀고 자다 새벽 선선한 기운에 탈인 난게 아닌가 싶다.
어제는 일찍 나가서 기사 두개만 딱 쓰고 몇가지 일 처리하고 일찌감치 들어왔고 오늘은 골골이다. 어제 밤부터 오늘 낮까지는 거의 환장할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픈 짐승들이 그런다길래 나도 아프면 아무것도 안 먹고 물만 디립다 마시며 끙끙거리곤 한다. 그러다가 몸이 좀 나아진다 싶으면 먹기 싫은 것(에컨데 달콤한 빵아니 초컬릿 같은 열량 높은것) 억지로 꾸역꾸역 먹기도 하고...
머 혼자 사는데 몸도 아프니 서럽다 는 단계는 이미 지나간지 오랜지라 그런건 별로 없고 그냥 몸으로 느껴지는 밸런스의 무너짐 그 자체가 싫긴 하다. 또 자야 겠다. 경험칙상 많은 물, 많은 수면이 가장 훌륭한 약이 더라.
내일 아침에는 다 떨치고 일어날 수 있었음. 아프다 나은 직후의 약간의 나른함을 즐길 수 있었으면 싶네.
첨언: 지금 히스토리 채널에 나오는데 50년대 미국에선 무안 양파 아가씨, 청양 고추 아가씨 뽑듯이 라스베가스 원자탄 아가씨도 뽑으며 원자탄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높이려 노력했단다 --;;
기다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만 역시 또 오랜만이 포스트군ㅋㅋ 그리고 역시 궁금해 하는 사람 별로 없겠지만 난 부산에 와 있음 ㅋㅋ
다들 알다시피 김동윤 열사 건이 터졌고 추석도 얼마 안 남은지라 겸사겸사 부산에 내려왔다. 화요일 밤에 부산역에 도착해서 빈소가 차려진 부산의료원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자정깨. 이런저런 이름 날리느 사람들은 낮에 왔다가서 그런지 몰라도 빈소는 생각보다 한산하더라.
빈소 앞이 비좁을 정도로 빼곡히 서있는 화환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죽어야 저렇게 대접받는구나 싶다가 속사정이야 어떻든 열사 이름도 못 붙이는 사람도 있지만 유가족이 전적으로 대책위와 뜻을 모은 김동윤 열사는 그래도 낫다는 희한한 생각도 들고...
졸지에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빈소르 지키고 있던 모녀는 같이 소복을 입고 얼굴이 핼쓱해진지라 얼핏봐서는 구별도 힘들지경이었다. 대책위 사람들 만나 몇마디 나누고 여기저기 카메라 들이대다가 불콰해진 조합원한테 육두문자 듣기도 했고...이번 부산 방문 동안 카메라, 사진에 얽힌 이야기는 계속된다.
서울->부산 기찻삯 부산역->부산의료원 부산의료원->우리 집 차비로 받아 온 출장비는 동이 났다ㅠㅠ
그리고 다음 날 부산시청 앞 결의대회. 검정조끼에 검정바지 세무 전투화를 차려입은 화물연대 선봉대는 북파공작원 동지회를 방불케 할 정도 였지만 결의대회를 앞두고 골라잡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눈 선봉대원 이야기는 기가 찼다.
화물차 6년에 남은 것은 빚 2,400만원. 동생이랑 처남한테 빌려온 돈은 포함도 안 된 것이란다. 자기는 카드로 돌려 막다가 동생 돈 빌려서 부가세 막았고 김동윤 열사는 그거 못막은게 유일한 차이란다.
김동윤 열사가 생전에 몰던 화물차가 무대로 쓰였다. 집회 시작 전 냉큼 운전석에 올라가보니 그 신산한 삶이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담배, 운송사 로고 찍힌 잠바, 화물연대 티셔츠, 사탕, ,커피믹스.
대쉬보드 위에는 주인이 먹다 남긴 농심 육개장 사발면 하나가 덩그라니 남아있다. 그 옆에 붙어있는 화물연대 스티커가 애처롭더라.
'화물차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오빠' 로 시작해서 '우리 오빠 살려내라'는 절규로 마무리된 고인의 동생의 추모사는 그예 시커멓게 그을린 화물운짱 3천명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들더니 눈물을 뺐다. 그 절절한 사연은 TRS단말기로 운행중인 조합원들에게도 전해졌고...
결의대회가 이후 시가 행진 전에 성난 조합원들이 굳게 닫힌 시청 청사 출입문을 박살냈다. 한 바탕 할 것 같다는 긴장감으로 얼굴 굳어졌던 선봉대는 오히려 성난 일반 조합원들 말리느라 진땀을 뺐다. .이 와중에 지문날인반대연대 티셔츠 입은 노뉴단 활동가 한 명은 캠코더 들고 왔다갔다 하다가 몇 대 맞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 위험에 처했으나 기자란 말이 안통할 것 같아 민주노총이라고 고래고래 고함쳐 위험을 간신히 벗어났다--;;
집회 끝나고는 보통때는 소닭보듯 하다가도 객지에서(굳이 따지면 난 객지가 아니지만) 반가움이 더하는 몇몇 동지들과 시청 뒤에서 소주 일배. 항상 그렇지만 정보교환, 이렇다 할 대상이 없는 뒷다마,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은 정세전망이 뒤섞인 술자리였지만 꽤나 좋았다.
그 동지들은 부산역으로 가서 귀경, 난 집으로 귀가.
그리고 다음 날(목요일이다) 은 아펙반대부산시민행동(정확한 명칭인지...) 취재.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에서 애쓰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안타까움이...그러나 여기서 쓰기 힘든 황당함도 적지 않았고--;;;
그리고 어제, ,아펙 열리는 곳을 돌아밨다. 먼저 해운대 벡스코(부산전시컨벤션센터) 무지하게 덥더라. 나름대로 경비병력이 배치되어 있고 담배를 사며 고액권을 내는 사람, 갑자기 북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 등등의 간첩식별법과 그닥 다르지 않은 테러범 식별법(아랫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사람도 테러범일 확률이 높단다!! 의심 받지 않으려면 다이어트가 필요하닷)0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지만
경비 서는 의경애들은 너무나 나른해 보였고 내 눈에도 구멍은 많아 보이더라.
그리고 해운대 동백섬의 누리마루(아펙 정상회의장). 일단 이 곳은 삼면은 바다고 진입로가 두군데긴 한데 하나는 산책로 수준이고 하나느 일방통행로 수준이라 듣던대로 경비하기는 아주 쉽겠더라. 경치도 그야마로 절경이고...저렇게 좋은 곳에서 헛짓거리들 할 생각하니 어찌나 배가 아픈지.
동백섬 입구는 출입금지라는 팻말, 바리케이트가 있고 역시 의경둘이 경비중. .동태를 살피니 대략 산책 운동 나온 사람들 겉보기로 별 이상 없어 보이느 사람들은 무사통과인 모양. 관광객으로 가장해 동백섬 입장 성공. 산책로 따라 쭉 나가며 눈치 보며 사진 촬영.
드디어 공정률 90%를 기록중이 누리마루가 눈 앞에 나타났다. 일단 나무 뒤에 숨어 찰칵 찰칵. 누리 마루 앞으로 접근하니 경비는 좀 더 철저해지고 사진및 비디오 촬영 엄금이라는 팻말이 떡하니 있다. .역시 동태르ㅡ 살피다 숨어서 찰칵찰칵. .저 쪽에서 카메라 메고 올라오느 할아버지한테 경비 의경이 뭐라머라 하는게 보인다.
그 틈을 타 나는 또 찰칵, ,앗 그러다 들켰다. 모른 척하고 당당한 걸음으로 빠져나오기 시작. .이럴때 일수록 긴장하거나 도망가면 의심을 산다. 그런데 뒤에서 누가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부른다. .못들은척 하고 계속 이동 ㅋㅋ 목소리가 좀 더 커진다. .돌아보고 영어로 답했다 "What?"' "What is problem? I'm sightseeing" 쉬운 영어지만 최대한 노력해 혀를 꼬며 계속 이동.
지들끼리 투덜거리는 소리에 쾌재를 부르며 시야를 벗어나는 커브를 돌았다. 쫓아오지는 않는 모양. 나를 쫓아오면 경비장소를 비우게 될테니...그 때부터 안전 지대까지 질주.
근데 사진찍는 것은 그렇다 쳐도,, 지형상 아펙반대 투쟁대오가 해운대 접근하는 것도 쉽잖을텐데..괜히 걱정이 좀 되더라. .전 날 만난 활동가는 십만이 오면 다 해결된댔지만--;;
그리고 민주노총 지역본부 건물로 이동해 파산지원연대의 파산교육 취재. 이리저리 실무적 아쉬움은 엿보이지만 아무리 생가해도 파산지원연대는 '블루오션'을 잡은 것이 틀림없다고 다시 한 번 재확인.
이상으로 부산 취재는 끝(그렇지만 취재내용 기사로 풀어내야할 것은 최소 두건 남았다--;;)
그리고 오늘(금욜)은 온 식구가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 벌초및 성묘. 독립유공자 포상과 함께 대전현충원 이장이 울 아버지의 플랜이었지만 보아하니 그닥 쉬울 것 같진 않다. 예전엔 김해였던 할아버지 묘소 소재 집안 선산이 부산된지도 10년이 가까운데 산 바로 앞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더라. 르노 자동차 공장인근도 모자라 무슨무슨 과학단지 조성한단다. 그 산의 실 주인인 8촌형은 부자 됐겠더라.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귀찮고 더운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백화점 가자는 말에 혹시 재수좋으면 머 하나 생길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군소리 없이 따라갔다가 팥빙수 먹고 귀가ㅠㅠ
그리고 모레 오전에 귀경. .모레 밤 기차에 새벽 도착인줄 알고 피곤하겠다 싶었는데 오전 기차로 오후 도착이더라.
키는 화물녕하하물연.머다 남긴농심 육개장 사발면 하나가 주인 이에느,,운송.드삼ㄹ함 신.ㅈㅂ회무차ㅁㄹ던
라나ㅏ.마은게 시는 그게 비ㅣ려 .ㅏㄹ비려온 , 촤무하물차
우ㅜㄴ르 나누야ㅣ를붙잡아 르 ㅇㄴ 입젙
왜 요즘 블로그 쓰는게 귀찮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소통을 갈구해봐도(근데 이 소통이라는 말 정말 맘에 안든다. 예전 임병수 노래 중에 '사랑이란 말은 너무 너무 흔해 너에게 만은 쓰고 싶지 않지만~' 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었는데..그 가사랑 비슷한 심정이다. 도찐개찐 소통이니 이거 원 다른 말을 쓰고 싶지만 적당한 말이 없다) 별 소득도 없고 그러다 귀찮아져서 걍 케세라 세라 되버린 것이 아닌가 싶네. 사고방식이 정말 달라도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외눈박이 나라에 홀로 선 두눈박이라기보단^^ 두눈박이 나라에 홀로선 외눈박이 같애--;;
무엇의 전조나 징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어제 부산에 있는 일가들 거의 모두와 광복절 기념식에 갔더랬다.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기념식이었는데 재밌는 것이 부산시민회관 옆에는 부산근로복지회관(민주노총 부산본부 사무실)이 있다.
뭐 그건 그렇고,,,, 제대 한 이후 거의 처음으로 애국가를 불러봤다. 4절까지 부르라는데 되게 어색하더라. 하튼, 애국가도 부르고 광복회 부산지회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기념사도 듣고..(좋은 말씀 하시더라. 금전만능주의, 자본주의가 판을 치면서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고유의 사상이 땅에 떨어졌다던가..)
그 이후에 유족 대표로 아버지가 부산시장한테 건국포장을 수여받았다. 부산에선 건국훈장, 포장, 대통령 표창 해서 10명에게 추서됐다. 대통령 표창을 받은 한 유가족은 대성통곡을 하던데 맘이 좀 짠하더라.
훈포장을 받는 유족들은 맨 앞줄에 앉았는데 아버지 옆에 앉은 할아버지는 자기 부친이 대통령 표창을 추서받았는데...감동이라기보다는 분개의 연속이었다. 보훈처에서 이거 가져오라 저거 가져오라 그러고 제대로 안되니 브로커한테 돈 주고 관계 서류 구비하고, 또 보훈처 공무원한테 급행료도 주고...뭐라더라 지금까지 한 오백만원 썼다나?
한국의 현대사란게 워낙 격변을 많이 거쳐 왠만한 가정이면 가족사 자체가 소설로 몇권이지만, 일제에 고생한 집안들은 그 소설 권수가 좀 더 늘어난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사람을 또 만난게다.
근데 광복절 기념식이 꽤 그로테스크 했다. 기념사를 한 부산 시장, 만세 삼창을 선창한 부산 시의회 의장은 입을 모아 '아펙 이야기'더라. 시장은 임진왜란때도 왜군이 부산에 주둔을 했고 개항도 먼저 됐으니 항일도 부산이 많이 했다는 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를 했고(친일파가 상대적으로 많았을 가능성이 훨 높지) 독립 정신을 이어받아 아펙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한다고 중언부언했고 부산시의회 의장도 만세 삼창하러 올라가서 아펙 찬양을 잊지 않더라.
골까는 것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부산시립합창단이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리운 금강산' 뭐 이거야 좀 냉전적 노래긴 하지만 장중하고 이런 행사곡으로 많이 불리니까 그렇다 치고, 그 다음 레퍼토리인 '상록수'는 훌륭했는데...그 다음은 뭔고 하니 CM송 메들리를 부르더라.
'손이 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가'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팔도 비빔면' '열두시에 만나요 해태 부라보 콘' 그 밖에 '옴파로스' 무슨 이런 노래들을 쭉 부르더라.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광복절 기념식에서 개별 상품과 회사 이름이 나오는 CM송을 부른 건지 도통 이해가 안되더라. 맘 같애선 항의하고 싶었는데 걍 참았다. 내가 부산일보, 국제 신문 같은 부산 지역 언론사 기자였으면 아마 분명히 문제 삼았을 건데...지금까지도 이해가 안된다. 더 가과이었던 것은 CM송 메들리가 이어지니까 광복절 기념식 참석한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따라 부르려 했다는 것..ㅠㅠ
포장증, 건국포장(훈장 비슷하게 생겼더만)이랑 시장이 준 팔목시계를 받았느데 그 팔목시계는 싯가로 약 1만5천원 정도 되 보이더라. 뒷판에는 지 이름은 떡하니 새겨놓고 ㅋㅋ
기념식 끝나고 일가들이 기념식장 인근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나이 든 고모들은 서훈을 기뻐하시고, 이것 저것 구비서류 찾아서 성공했다고 나한테 칭찬하시던데 송구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어제 밤 엠비시 뉴스데스크가 사회주의자 훈격 일괄 강등에 대해 리포트 했다. 내 인터뷰는 빠졌지만(잘 됐다는 생각도 든다.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고) 조선공산당 책임비서를 지냈던 김철수 선생 손자분 등의 인터뷰가 나왔다. 보훈처 공무원들의 말도 안되는 헛소리도 직접 전파를 탓으면 좋았을 텐데 그건 그냥 기자 리포트로 처리됐고...
서훈 받은 것 자체보다 오히려 사회주의자 훈격 강등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부족하나마 매체 몇 군데 보도된 것에 대해 나를 더 칭찬 해주고 싶다. 민주노동당 모 의원실로도 문제를 제기했는데, 거기선 '아이구 그러십니까 우리도 적극 대응하겠습니까'라고 응답했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아마 그 의원은 815 하느라 바쁘고, 국내`국외 사회주의 항일인사들이 이북이랑 그닥 사이가 안 좋게 종결된 탓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리라 짐작은 된다만...쳇
이번 서훈이 고생만 하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그리고 이 땅에 살아있는 그 분들의 자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빌 뿐이다.
붉은사랑님의 [휴가] 에 관련된 글.
산에서 주먹밥 만들기가 쉽잖을 텐데...
하튼 보통 만드는게, 소고기 볶음 주먹밥, 참치마요네즈 주먹밥, 볶음김치 주먹밥, 소고기고추장 주먹밥.
일단 밥을 한다. 그 다음 밥을 주걱으로 뒤젂여 주며 열기와 수분을 약간 날린다. 밥과 단촛물을 섞는다(단촛물 만들기= 식초를 끓이고, 설탕과 소금을 약간 씩 넣는다. 분량은 밥에 섞었을 때 약간 새콤할 정도로. 식초 다섯스푼이면 설탕 두스푼, 소금 반스푼 정도.. 단촛물이 좋은게 여름에 밥이 상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하거등)
주먹밥을 만들어서 산에 가지고 가는지 아님 산에서 만들어 먹는지 모르겠지만...산에서 만들어 먹는다 치고..단촛물을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하는 바임. 밥을 뜨겁게 해서 단촛물 섞으면 되니까..할 때 마다 단촛물 만들기는 번거로우니까..
소고기 볶음 주먹밥은 갈아놓은 소고기, 스몰다이징한 당근(여유가 되면 우엉도 포함할 것)을 간장에 볶아 고명을 만든다(굴소스를 섞으면 더 맛이 좋음) 모든 주먹밥에 공통적인게 고명은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니 간을 세다 싶을 정도로 해야한다는 것.
참치마요네즈 주먹밥은 참치캔에서 기름을 따러내고 숟가락등으로 균일하게 부스러뜨린 다음에 마요네즈, 소금 약간, 후추 약간을 넣어 마구마구 섞어 고명을 만든다.
소고기고추장 주먹밥은 소고기, 참기름, 고추장을 볶아 볶음 고추장을 만들어 고명을 만드는 것이지
다진 소고기에 다진양파, 생강 참기름, 다진 마늘, 다진 양파등으로 재워 고추장, 참기름, 설탕 약간 해서 달달 볶아 주세요. 설탕은 마지막에 넣어 졸여줄 것. 막판에 참기름 투여해 약고추장 만듬.
이렇게 고명을 만들면, 밥으로 만두를 빚는다는 생각으로 주먹밥을 만들면 됨. 밥약간 손에 쥐고 고명 넣고 밥약간 덮는 식으로 주먹밥 만들어주세요. 만든 이후 검은 깨 살짝 뿌리면 됨. 빨리 빨리 만들지 않아 밥에서 수분이 날아가면 나중에는 잘 쥐어지지 않음.
산에서 주먹밥을 만들어서 먹겠다면, 산 아래서 약고추장, 소고기 볶음(안상하게 할려면 좀 짜게)을 만들어 간다음에 고명으로 삼는게 어떨까 싶음. 약고추장,소고기 볶음, 단촛물을 다 만들어 가라는 것이지..참치마요네즈는 물생기니까 만들어 가긴 힘들테고..
그건 그렇고 나도 지리산 가고 싶네ㅠㅠ
시판하는 국시장국(가스오부시, 소고기 국물맛 다양하게 있음)을 한 병 사가면 그다지 무겁지도 않고 물만 끓여 그것만 풀어도 그럴듯한 국물이 되니 휴대하면 후회는 안 할 듯.
근데 얼굴 본지도 오래됐는데..
하여튼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고 돌아와 주위사람한테도 마구마구 지리산의 정기를 나눠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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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Sc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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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들었어요. 거긴 지낼만 해요?부가 정보
mo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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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질문이네요. 좋아 죽겠다는 답도, 후져 빠졌다는 답도 하기 힘든. 예상했던 것하고 별로 다르진 않아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는데 제가 가졌던 선입견과 아직 그리 다르진 않네요. 하여튼 수습기자의 일상은 빡세다기보단 지루합니다. 2주 정도 교육을 더 받을 것 같아요. 형은 잘 지네시나요? 남쪽으론 언제 넘어가시는지..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