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from 우울 2006/11/22 19:40

인간의 본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그리하여, 가장 인간적인 인간은 아마도 예술가이거나 과학자일거라고 믿어온 것이다.

 

정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애인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까?

어쩌면 평생 갈지도 모를 애인은 있으니

손가락이 섬세하고 예술적인 작업을 하는 약간 미친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나름의 성적 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옷과, 립글로스, 표정 같은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머뭇거리고 당황하고 충동적으로 반응하는

조금 어리숙해보이고 살짝 귀여운 남자가

애타게 내 눈을 쳐다보며

내 거짓말과 내 진실과 내 허풍에 숨막혀 하면 좋겠다.

 

결혼같은 건 하지 않을 사람이라면 좋을텐데.

 

그리고 내 애인이, 그냥 모른체 해주면 좋겠다.

 

훗.

 

아직까지는 내 눈에 차는 정부를 구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내게 용기가 있을까?

무모함은 있지만 애인에게 엄청난 상처를 줄 용기는 없다.

 

삶의 순간순간에 집착하는 나는

사실은, 가끔 정부가 생길 가능성을 느낄 때마다 안타깝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내 욕망을 희생한다.

애인에게 상처주는 것보다는 애인과 보장된 안정된 관계를 잃는 것이 겁나는 걸까?

 

애인은 어찌 그리 대단한지,

나를 참 잘도 코 꿰어 놓았다.

한 남자만 사랑하고 살 수 있으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었는데

나는 그와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

 

정부. 얼마나 짜릿한가.

애인이 없다면 정부는 애인이 되어버린다.

슬픈 일이다.

 

내가 곧 숨이라도 끊어버릴 것 처럼

슬픈 눈으로

애원하고 숭배하고 무릎꿇는 정부.

 

훗.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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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2 19:40 2006/11/22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