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는 자

from 우울 2006/12/13 11:56

개토의 기준에 의하면 세상에는 세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가끔은 분류하지 않고는 못배길 때가 있다.

이 분류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여서 사실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지만

블로그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매우 관대해진다.

어디까지 관대해도 되는 걸까에 대한 질문은 어딘가에 남겨둔 채로.

 

다시 돌아가서 개토의 기준에 의하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유지하는 자와 변화시키는 자

(어슐러 르귄의 분류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는 이를 존재화는 자와 행동하는 자로 부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표현하는 자이다.

 

세부류의 사람들은 또다시 각자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게 된다.

역시 편하게, 나 자신에게 관대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진짜(좋은)와 가짜(나쁜) 정도가 되겠다.

 

나는 언제나 좋은(진짜) 유지하는 자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내가 그런 존재를 꼭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6종류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고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아직 나쁜(가짜) 표현하는 자에 속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언젠가는 진짜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표현하는 자가 진짜가 되려면,

그들은 삶의 진실을 보아야만 한다.

표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것이 가만히 있는 것이건, 움직이고 있는 것이건,

그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거짓없이 옮기는 것.

 

내가 표현하는 내용이 비록 아주 작은 삶의 부분이라도

나는 그것이 섬세하고 아슬아슬하게 장식된 화려한 장식품이기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명확한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뿌연 내 삶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가끔은 눈앞이 맑아지면서 삶이 보일때가 있다.

 

언듯언듯 번득이는 진실.

그것을 셀수 없는 이름 가운데 하나로 어느 지점에 고정시키기.

 

 

 

 

 

 

친구의 말대로 한참 더 처절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전달할 더 좋은 어떤 표현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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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3 11:56 2006/12/13 1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