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의 기준에 의하면 세상에는 세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것이 우습기는 하지만,
가끔은 분류하지 않고는 못배길 때가 있다.
이 분류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일쑤여서 사실은 굉장히 조심해야 하지만
블로그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매우 관대해진다.
어디까지 관대해도 되는 걸까에 대한 질문은 어딘가에 남겨둔 채로.
다시 돌아가서 개토의 기준에 의하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유지하는 자와 변화시키는 자
(어슐러 르귄의 분류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그는 이를 존재화는 자와 행동하는 자로 부르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표현하는 자이다.
세부류의 사람들은 또다시 각자 두 종류로 나눌 수 있게 된다.
역시 편하게, 나 자신에게 관대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진짜(좋은)와 가짜(나쁜) 정도가 되겠다.
나는 언제나 좋은(진짜) 유지하는 자에 대한 외경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내가 그런 존재를 꼭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6종류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고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아직 나쁜(가짜) 표현하는 자에 속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언젠가는 진짜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있다.
표현하는 자가 진짜가 되려면,
그들은 삶의 진실을 보아야만 한다.
표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것이 가만히 있는 것이건, 움직이고 있는 것이건,
그 진실을 정확하게 보고 거짓없이 옮기는 것.
내가 표현하는 내용이 비록 아주 작은 삶의 부분이라도
나는 그것이 섬세하고 아슬아슬하게 장식된 화려한 장식품이기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명확한 진실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뿌연 내 삶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다.
가끔은 눈앞이 맑아지면서 삶이 보일때가 있다.
언듯언듯 번득이는 진실.
그것을 셀수 없는 이름 가운데 하나로 어느 지점에 고정시키기.
친구의 말대로 한참 더 처절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전달할 더 좋은 어떤 표현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내 마음을 보내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가 가짜 같아서 너무나 두렵지만.
그렇지만 어떨 땐 그냥 아름다운 게 진실 같아요.
당고님 글에 제 분류가 한방에 우스워지는...^^; 야옹...
당고님 글에 묻어나는 반짝반짝 윤기나고 부드러운 힘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