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from 우울 2006/12/13 16:47

내가 오늘 이렇게 중구난방 뛰어다니는 이유는 아마도,

내 머릿속이 이렇게 근질근질 움찔움찔 거리는 이유는 아마도,

너에게 대답을 하기 위해서 일거야.

 

개토는 왜 그렇게 성의없는가에 대한 대답.

왜 아무 것에도 노력하려들지 않는가에 대한 대답.

개토는 정말 그런 개토를 그대로 둘 것인가에 대한 대답.

글이라도 하나 정말 처절하게 써보라는 너의 그 선뜻한 사랑에 대한 대답.

그 대답을 성의있게 하기 위해서

개토는 정말 온 머릿속을 헤집어냈어.

정말이야.

아마도 그래서 내게 네가 필요한가봐.

 

머릿속을 뒤집고 또 뒤집어 풀풀 날리는 먼지를 가득 뒤집어 쓰고

꾸불꾸불 좁고 물컹한 골목들을 지나 늪에 빠지고 산에도 오르면서

나는 생각했어.

답을 찾아야해. 답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야. 정말 그랬던 건 아니었어.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찾기 힘들었는지도 몰라.

그 초라하고 또 초라한 대답.

그 한가운데 앉은 건 그저 상처받아 여기저기 비뚤어지고 자라지 못한 작은 영혼.

 

나는 그 영혼을 구해내야해.

누구보다 멋진 글을 쓰거나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나는 이미 죽음 한가운데 들어앉아버린 그 영혼을 구해내야해.

그 영혼으로 내가 어떻게 무언가의 진실을 바라보겠니?

 

칼을 들고 엄마의 목을 조른 아빠를 봐.

내복을 입고 있어.

눈앞에 하얀 빛들이 있어. 나는 그 빛아래 발기 발기 찢겨지겠지.

발끝부터 가슴까지 깁스를 하고 1년 동안 누워있는 거야.

깁스한가운데에는 대소변을 보기위한 구멍이 뚤려있었지.

사촌동생은 이불을 걷어 날 놀렸어.

방안이 그림에서나 나오는 원근감을 가져.

내가 있는 구석은 콩알만한데 아빠는 거대한 빗자루로 나를 때리고 있어.

빚장이는 내 침대끝에 앉아 성경을 읽고 있고

나는 메탈리카의 음악을 최대 볼륨으로 들어.

내 몸 위에 올라탄 검은 시체를 봐. 나는 그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찢긴 스타킹과 공허하던 아랫도리의 느낌.

 

대표적인 것만 뽑아보았어. 너무 대표적이라 이제 닳을대로 닳아져 고통조차 없어.

나는 무척 담담하면서도 흥분되어 있어.

이런 것을 왜 쓰는 걸까?

그런 것들이 정말 내 영혼을 상처입힌 걸까?

자존심이 강한 내가 말하지.

나는 그런 것들로 상처받지 않아. 나는 내 인생을 살거야.

 

하지만,

 

미묘하게도 나는 자꾸 내 손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숨어버려.

산다는 게 너무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어쩌면 내가 위에 쓴 것들과 내 영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도 몰라.

나는 처음부터 그랬던 걸지도 몰라.

 

하루에 다섯번씩 죽고 싶다고 생각하기.

 

사실은 살고 싶어. 살고 싶지. 왜 아니겠어?

그러니 여즉 살아있겠지.

 

개토는 재능이 많은 아이야.

할 수 있는게 많을거야.

사랑해주는 이들도 많아.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해.

남들이 받지 못해 안달난 사랑들.

 

개토는 그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거 같아.

 

사랑을 똑바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아.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건 왜 일까?

 

답을 쓰려고만 하면 머리가 흐려져.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어지럽다...

 

내가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이런 나라도 버리지 말아달라는 것뿐...

나중에 다시 써볼께.

 

하루종일 먹는 것을 잊고 있다가, 방금 라면을 먹었더니 너무 피곤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2/13 16:47 2006/12/13 1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