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도씨

from 2006/12/13 12:43

새벽3시, 그녀는 잠이 오지 않는다.

체온이 0.5도씨 정도 올라있다.

이 시간에 그녀의 체온은 언제나 0.5도씨 정도 더 높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0.5도씨의 차이로 더워진 피는 그녀의 몸에서 습기를 증발시키고 몸을 건조하게 만든다.

입술도 손끝도, 발끝도 부풀어 오른다.

낮동안 피가 돌지 못하던 곳까지 구석구석 피가 돌면서 그녀는 온전히 깨어난 새로운 사람이 된다.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대답해야할 너무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아주 오래 질문들을 외면해왔다.

질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질문들은 산더미처럼 그녀의 옆얼굴에 쌓여있다.

고개를 돌리자 질문들이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린다.

 

나는 그와 잠을 자야하는 걸까? 혹은 자면 안되는걸까? 그렇다면 왜? 와 같은 대답하지 않아도 될 질문부터 주문해둔 청소기는 언제 도착하는 걸까?, 나에게 맞는 진실의 크기는 얼만한 것일까?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지금 잠을 자야하는 걸까? 일어나서 책을 읽을까? 그에게 뭐라고 대답하면 성의있어지는 걸까? 내일은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회사에 가면 피곤할까? 의외로 피곤하지 않을까? 다음 프로젝트의 컨셉은 귤로 할까? 아님 레몬으로 할까? 다시, 그와 잠을 자면 뭔가가 달라질까? 대답하지 않아도 됨.

 

그런 생각마다에 각각의 대답들을 얼기설기 얹어두던 중에 그녀는 몸을 열심히 더듬고 있는

그를 문득 느끼게 된다.

몇시간 전부터(!) 무심히, 끊임없이 그를 밀어내는 그녀의 몸을 그는 끝도 없이 만지작 거린다.

허벅지에 놓인 손을 치우면 다른 손이 가슴으로 올라온다.

가슴에 놓인 손은 그 손을 밀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잠이 든 가운데서도 그는 집요하다.

그녀는 그에게 들리도록 끙끙대면서 그를 밀친다.

그의 몸이 활처럼 굽혀지고 등과 발은 멀어졌지만 그럴수록 머리와 손은 그녀에게 파고든다.

 

"제발 좀 개토를 내버려둬! 혼자있고 싶단 말야!"

 

그가 눈을 뜬다. 겁먹은 눈. "누구 손이 개토를 만졌지?"

 

그는 멀리 떨어진다. 이불도 3분의 1만 덮는다. 이내 잠이 든다.

그녀는 다시 상념에 잠긴다.

나는 어떤 진실을 말하게 되어있는걸까? 나는 언제쯤 내게서 죽음을 몰아내거나 함께 살아가게 되는 걸까? ...

 

그를 본다. 아이처럼 자고 있다. 그의 머리를 당겨, 그의 몸쪽으로 이동한다.

그는 추처럼 무겁다.

그의 손을 들어 등 뒤로 돌리고 그의 머리를 가슴에 묻는다.

그는 자연스럼게 몸을 움직여 그녀의 몸에 밀착한다.

와 같은 사랑이야기는 좀 그래...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바라본다. 아이처럼 자고 있다.

그의 머릴를 감싸 가슴속에 밀어넣고 그의 허벅지에 다리를 두른다.

그의 몸에서 달착지근한 땀냄새가 난다.

0.5도씨 때문이다.

 

그의 몸을 둘러싼 더운 호흡들이 미묘하게 자극적이다.

그는 자면서도 그녀의 감정변화를 쉽게 눈치채고 대담하게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얹는다.

"손치우지 못해!"

그의 손이 얼른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 즐거운 인생.

 

 

 

 

 

글이나 그림은 정직하다.

나 이상의 것이 그려지지 않는다.

무모함과 무지함, 혹은 스스로에 대한 관대함으로

그걸 그려보지만

나자신이 싫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미묘한 개인적 감정의 변화들을 공들여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아하면서도 기껏 할 줄 아는 것이 그뿐이다.

마음가짐의 변화가 아니라 환경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혼합프레스 컴플렉스 꿈을 꾸었다.

컴플렉스 덩어리가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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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3 12:43 2006/12/13 1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