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놀이

from 2001/06/23 12:31
투르게니예프

나는 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

나의 운동은 아주 개인적이고 또 합리적인 이유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시대에는 많은 것들이 죽었다.
우리시대가 있기 바로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나는 아주 오래된 오래 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 시기에 우리들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살았는지
혹은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살았는지
혹은
'요즘 젊은 애들은'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마녀를 사냥하라'라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한편으로 우리와 비슷하고 다른 한편으로 다른 사람들이 살았던 건지...
위에서 우리의 역사를 주욱 내려다본 무엇인가가 아니라면
이것을 알기는 힘들지 않을까?
혹시 그 무엇이, 나처럼 기억력이 나쁘다면
그조차도 아무것도 정확히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에 죽은 것들이 정말 죽은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사랑의 구멍에서 빠져나올 때처럼, 그 것들은, 우리가 카페와 문방구와 술집을 지나는 와중에 어디선가 사라지듯 죽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육체를 가지지 않은 것, 사물과 대치되지 않는 언어로 표현되는 것들,
그런 것들은 그렇게 사라진다.
우리의 육체가 더 이상 숨쉬지 않더라도,
우리의 죽음은 오랫동안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사라진다.

그래서 내가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어쩌면,
아마도, 거리를 헤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사라질 것임을 알고 있다.
헤매이는 그들을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어느 유행가의 가사에서 말하듯,
'슬픈 마음도 이젠 소용없'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살았던 시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거리로 내모는 법을 몰랐다.
언어화된 기억 - 그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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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3 12:31 2001/06/23 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