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였습니다

잡기장
또 다른 맘이 들기 전에 얼렁 써놔야겠습니다.

제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뭔가 멋있고, 그럴듯한, 깊이가 있어보이거나 하려구
보상 심리, 내가 해 보지 못한, 갖지 못한 무언가를 폄하하고
스스로 뭐 대단한 게 있어 보이려구 해왔습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스로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하다고, 어릴때 건강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하고 일만하고 자라며 이런 저런 경험을 못해본 것때문에, 사실은 모르는게 많다고, 어설프고, 서투르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걸 감춰야 한다고, 남들 만큼 재주가 있고, 경험이 있고 그런 것처럼 보여야 사람들이 함께 해줄 거라고, 관심 가져주고, 존중해주고, 사랑도 해줄거라고..

누군가에게 온전히 맘을 쏟고 있고, 일하는 거 외에, 딱히 빠져들고 있는 취미도 없이, 어찌보면 무료한 삶의 공백을 모두 한 사람에 대한 복잡한 심정으로 가득채우고 있는 내자신이, 뭔가 문제가 있다 싶었습니다. 이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고, 내가 너무 어리고, 철없고, 그렇다고. 그러면서 자신있게 나가지도 못하면서 물러나지도 못해왔습니다. 며칠전, 즐거움 뒤에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도망쳐버렸습니다.

내 자신이 더 뭔가, 멋있어지고, 갖추고, 경험해보고, 생각을 더 하고, 공부하고, 그런 걸 조금만 더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았습니다. 마치 어떤 단계에 오르기 직전에 있는 것 같아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지금의 나보다 한 단계 높은 무언가가 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지금 하고 있는 바보 같은 생각과 감추려는 행동, 그리고 모든 피곤하고 불합리한 일들로부터 초월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자그마한 충격에도 흔들리는, 나약한 내 자신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이 상태로는 누군가를 건강하게, 아름답게 사랑할 수 없다. 짐이 되고, 부담만 될 거다. 내 이런 모습을 얼마 가지 않아 싫어하게 될거야.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거리를 두고 내 자신을 추스리자, 할 수 있을 거라고. 건방을 떨었지만, 사실은 도망치던 그때부터 나는 계속 커져가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어딘가에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 와중에도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다른 고민, 평소에 하던 고민을 얘기하듯, 뭔가 깊이 있는, 그럴듯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웅얼웅얼 거리고 말았습니다. 글을 다시 읽으며 참을 수 없이 ㅤㅅㅗㄷ구쳐 오는 부끄러움과 자괴감. 난 스스로 고급스러운 사람 마냥 지금까지 늘상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감출 수 없는 부분도 그것이 뭔가 아주 초월해서 그렇게 표현되는 것처럼 꾸미며, 속으로는 항상 나와 다른 것들을 무시하고, 폄하하고, 하찮게 보아왔습니다.

여전히 나는 어릴때의 감성에 머물러 있고, 그때의 기억의 찌꺼기가 붙어다니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을 두려워하고,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 숨가쁘게 쓰다보니 여기서 글타래가 끊기는군요.
하여간, 나는 허위의식, 허세로 채워져 있습니다. 내 약한 모습을 지금부터라도 그대로 사람들에 드러낼 수 있을까요? 그래도 되는 것이겠죠? 그래야 정말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거겠죠? 줄 수 있는 거겠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11/04 13:57 2006/11/04 13:57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2dj/trackback/242
이내 2006/11/04 14:09 URL EDIT REPLY
저도 나름대로 비슷한 고민을 꽤 오랫동안 또는 지금도 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현재까지 제 진척 상황은 그러한 허위 의식이 내가 진짜 원하는 무언가를 가리고 못 보게 한다는 깨달음이더군요. 타인에 주는 피해는 무시해도 좋을만큼 미미할지도...
요즘은 오히려 좀 더 나답다는 것에 가깝게 가려고 노력 중입니다. 님 글을 읽고 제 자신이 생각나 몇 자 주제넘게 적었습니다.
나루 2006/11/04 16:42 URL EDIT REPLY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용기예요
디디 2006/11/04 17:38 URL EDIT REPLY
음 -_- 지각생은 무척 사랑스런 사람인데.
스머프 2006/11/04 18:15 URL EDIT REPLY
아.....나도 비슷한 고민을 한적 많은데, 이렇게 글로 조목조목 써 보지는 못했삼..지각생 멋진 분인데...^^ 한번 사귀어 보자고 할까나?? ㅋ
지각생 2006/11/05 00:42 URL EDIT REPLY
모두들 정말 감사.. :) 공감과 칭찬에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짐.

그나저나 머프님 -_- 이러시면 곤란함 ㅋㅋ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