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만남

잡기장
지난 금요일, 워크샵 뒷풀이 2차를 포기하고 모처럼 학교 동기와 후배들을 만나러 갔다.
이제 몇학년이냐고 묻는것보다 몇년차냐?고 묻게 되는, 나이 들어가고 사회 물 들어가는 녀석들.
가끔 간간히 5~6명씩 모이곤 했었는데 이번엔 꽤 많이 모였다. 심지어 학부생들, 05학번도 있었다.
내 눈엔 아직도 풋풋 파릇 신선하게 보이는 99학번 후배들이지만, 그 얘길 했더니 "쟤랑 나를 비교해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남?"하고 물었을때... ".. 그렇구나"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ㅎㅎ

하지만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해서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점이 더 늘어나고, 전체적인 분위기와 뭔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껄끄러운 느낌은 더 크다.
삼성, LG등 대기업에 나가고, 이제 신입딱지를 서서히 벗어가며 뭔가 Power 를 갖는 듯한 (그래서 왠지 측은해보이기도 하는) 모습들을 보며, 이제 약간의 오바질과 과거 회상 등으로 덮기엔 그 틈이 더 벌어지고, 각자의 영역이 공고해졌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심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주로 만나게 되는 IT 비정규직 노동자들, 전산과를 나오지 못했고, 대기업을 거치지 않은, "정통" 루트를 거치지 못한 사람들. 파견가서 같이 일하는 사람과 차별대우 받고, 하도급 구조 속에서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빼앗기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과 나누는 대화 한 토막 토막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명문대에 들어왔고, 요즘 좀 수그러 들었어도 IT는 여전히 한국에서 유망한 분야, 그리고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오히려 풍요로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보이는 코스를 밟게 된 사람들. 그리고 그때까지 몰아온 주위 사람들의 기대와 욕망들.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내가 만일 땡땡이 치며, 알바를 하면서도, 운동하는 사람들 변두리에 맴돌면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중간 정도의 성적만 계속 나왔더래도 사실 모르는 일이다. 나조차 내 불안을 감추며 합리화하고 그런 코스를 밟았을게 거의 뻔하니까. 그저 어쩌다보니 그런 길을 갈 수 없게 된 나로서 내친 김에 여기까지 온 것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그 즐겁게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소외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라, 사실 파워를 가진 몇사람 빼고는 다 어느정도 그런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그런 분위기를 어떻게 바꿔볼 수 있는것도 아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늘 그래왔던대로, 선배들의 오바질과 후배들의 예의바름으로 유지되는 권위적인 술자리. 뻔한 주제의 대화. 그 가운데 부드럽게 화제를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나. 그렇다고 그런 대화에 낄 수도, 끼고 싶지도 않은 나.

그 가운데 괜히 미안해진다. 내게 관심과 호의를 보이는 몇 사람들에게. 왜 미안할까? 말이 잘 안나온다. 나도 다른 선배들처럼 뭔가 주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서일까? 아니면 내가 하는 말이 지금껏 그랬듯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거라는 생각에 괜히 내게 호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하는게 꺼려지는 걸까?

반복되는 불편함과 어색함. 그러다 술에 흠뻑 취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 처음의 열기가 가라앉으면 조금씩 얘기해볼만한 주제와 분위기가 된다. 그래서 그때까진 보통 남아있어봤지만, 이번엔 조금 힘들었다. 결국 슬쩍, 늘 그랬듯, 요란하게 배웅하는게 싫어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무슨 취미 생활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라면 마음 편할텐데.. 그냥 거리를 두면 될텐데.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아무래도 앞으로는 그런 모임에 무조건 나가게 되진 않을 것 같다. 차라리 그런 자리를 기다리기 보다는 내가 찾아다니며 한두명씩 만나 얘기하고 놀고 그러는게 낫겠다. 어차피 이제 조금 있으면 시간도 많아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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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9 17:06 2007/03/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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