튕기다

잡기장
부끄러워 비밀로 했던 글을 다시 공개로 바꿨다. 술먹고 글은 자제효..-_-

그래도 좋은 점을 역시나 발견했다.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걸, 그리고 태연한 척 하지만 사실 잘 못견딘다는 걸 확인한거고, 나를 불안하게 하는 내 "한계"를 공개해버렸다는 것. 이 두가지는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정신 없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면 외롭다, 공허하다 이런 생각도 못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한번 올라간 회전 속도를 떨어뜨릴 생각도 못하고 계속 그렇게 돌아가기 마련인데, 내가 뭐때문에 그러고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된 셈이다.

외로움에 대한 내 대처법은 사람들에게 뭔가 주려는것, 그러면 자연히 사랑을 받을 수 있겠지. 뭔가 주려면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줄 만해야 하고. 그러니 난 계속 노력하고 뭔가를 계속 쌓아가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다른 방법이 있었다. 언제나,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것. 지금 내 자신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그냥 그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

원래 그래서 하려고 했던 것인데 하지 못한것, 그걸 계속 방치해둔 탓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통신활동가네트워크라는 것. 이걸 하기 위해서 뭔가 내 영역이 확실히 있어야 하고, 내가 가진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역시 같은 실수를 지금껏 범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나는 계속 피곤하고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건데.

부끄럽지만 내 속내를 드러내는 건, 더 비꼰 말이긴 했지만 탄력이랄까, 그것이 나를 집어삼키지 않게 하려는 반발력. 악순환을 끊고 싶다는 열망, 그런게 생기는 효과가 분명 있다. 그 덕에 내가 잊고 있던, 계속 미뤄두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하고 그걸 더 미룰 필요가 없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적기다, 외로움을 느끼고, 내 한계를 인식하고, 그걸 몇사람이나 봤을지 모르지만 여튼 남들이 다 볼 수 있도록 꺼내놨으니 이제 내가 할 건 어차피 그대로, 하려던대로 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 깨우쳤으니 잘 된게 아닌가.

내가 배고프지 않으면 굶주린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성적 판단으로, 필요와 당위로 인해 생각한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내가 간절히 그것을 원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나에게는 외로움을 절절히 느끼는것, 만나려 하는 것, 열고자 하는 맘이 생기는 것이었다. 불을 당긴다고 할까?

오늘 천막농성장에 가 있었다. 지재권대책위에 평소에 하는게 없는지라 역시 "이거라도 해야지" 하며 지난주에 약속한거라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 있었다.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들 바빠 제 일을 하러 어디론가 사라져 금방 혼자가 됐다. 거기에 많은 사람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내가 모르는 사람이고, 또 이 바닥에 있으며 생긴 안 좋은 습관이 자동적으로 사람들의 정체를 파악하려 하는 거라, 옛날 아무것도 모를때는 잘 했던 그 짓을 이젠 못하겠어서 혼자 구석에 조용히 있었다. 밖에는 비가 오고, 하늘은 온통 흐리다. 비오는 도시의 낮 회색 풍경은 오랫만에 넋놓고 봤던 것 같다. 그런데 혼자 되고 나서 얼마 안돼 갑자기 비바람이 거세졌다. 비닐이 엄청 풀럭 거리더니 갑자기 천막들을 받치고 있던 기둥들이 쓰러지고, 부러지기 시작했다. 천막은 주저 앉고 비닐은 바람에 날려 비가 안으로 들어오고, 전기를 얼릉 끊어 난로도 꺼졌다. 얼릉 사람들이 천막 보수에 들어갔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늘이 노한거다, 협상이 쇼로 마무리 될 것 같으니 노한거다 누가 그런다. 그런데 그 진노가 왜 우리한테 떨어지나? -_- 알 수 없다.

천막을 다 보수한후, 전기까지 나가 책도 읽을 수 없고, 깜박하고 작성할 서류들을 안 가져와 할게 없어졌다. 연습장을 꺼내 낙서를 좀 하다가 그것도 심심해 다시 밖으로 나와 비만 겨우 그으며 천막 바깥쪽에 쭈그리고 앉았다. 30분 정도 남았는데 뭐하나.. 전화기를 꺼냈다. 난리통에 못받은 전화가 있다. 그 중엔 스팸도 있다. 날 굉장히 좋아하는 듯한 메시지다. 그대로 믿는다면. 난 201개의 전화번호가 등록돼 있는데, 실수로 버튼을 잘못눌러 전체 목록 보기로 들어갔다. 간만에 느긋해 진터라 한사람 한사람씩 아래로 내려가며 본다. 이사람이 누구지? 아 그사람이군. 그때 그일로 만난. 이 사람은? 아... 군대... 201명을 다 보며 새삼 느껴지는 것. 아무때나, 정말 아무 일 없이 전화해서 그냥 얘기 털어놀 친구는 거의 없구나.. 다들 일로 만났거나 학교 군대등 내가 싫어하는 사회의 끈들로 아는 사람.. 내 인생이 참 팍팍하구나. 몇 사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다. 훗. 내가 외로우니까 전화를 하게 되는구나. 그동안 통화했을땐 항상 "나? 잘지내. 응 응 ㅎㅎ 그래. 야 미안한데 나 지금 뭐 하는 중이라, 회의하는 중이라... 나중에 전화할게. 그래 그래 언제 밥이나 먹자고. 조만간 놀러갈께. 이게 얼마만이냐.." 이랬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외롭다고들 하지. 보통 그런말은 폼 잡으면서 하는데. 어쨌든 그런 외로움을 부정할 생각 말고 그냥 그러면 자연스럽게 맘가는대로 행동하면 되는거 아니겠어. 오랫만에 먼저 전화하고, 일 없을때 만나고. 이럴땐 오히려 뭔가 만날 꺼리가 있으면 더 좋지. 그 핑계로 만나면 내가 덜 어색할테니. 내가 외롭다 외롭다 하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미안해지기도 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는것이, 내가 외로움을 유달리 느끼는 이유가 어차피 그 사람들이 줄 수 없는 두가지 이유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중 한가지는 오히려 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고.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집에 오는 길 내내 의욕과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어렵게 느껴졌던 일들이 쉽게 느껴졌다. 집에 오자마자 연습장을 꺼내 순식간에 한장을 다 채워 메모를 하고는, 이것또한 바로 여기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면 내가 계속 이런 글을 제 3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돌이킬 수도 없게 되고, 혹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얻을지도 모르고 여러가지로 좋으니까. 그리고 어제의 우울하고 심약한 부끄러움을 긍정적으로 극복한 것처럼 생각되고, 보여질 수도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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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9 01:12 2007/03/29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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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 2007/03/29 02:17 URL EDIT REPLY
오늘 촛불집회 끝나고, 남대문쪽에서 역주행하는 자전거맨을 봤음(밤 11시 넘어서) 근데 지각생이 아닐까 혼자 걱정...아니었겠죠?!
아규 2007/03/29 02:26 URL EDIT REPLY
ㅋㅋ 오늘 정신 없었구마....^^ 우리가 전화 여러번 했는데 안 받길래...뭔일인가 했네 그려...
ScanPlease 2007/03/29 16:33 URL EDIT REPLY
혹시 안 바쁘시면, 내일 밤에 우리집에 오세요.ㅋㅋ 보드게임하러~ 술도 있어요.
지각생 2007/03/29 16:54 URL EDIT REPLY
샤♡// 아니었삼 :) 내 자전거에 비를 맞힐 순 없죠. ㅎㅎ 아침 일찍 멀리 갈 일이 있어 자전거를 두고 나왔어요

아규// 그르게. 안그래도 두 사람 생각나더만 ㅎㅎ 다시 만날날을 목빼고 기다리는중 :)

ScanPlease// 간만의 채팅으로 얘기했듯, 토요일은 찔러도 뭐 안나올만큼 꽉꽉 일정이 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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