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비키랍신다

잡기장
이발을 하고, 간만에 샤워도 하고, 새로 산 옷을 입고, 부푼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봄을 한껏 느껴보려고.. 에구 근데 바람이 분다. 하늘은 구름도 별로 없이 파랗고, 공기는 정말 따땃한데, 어느새 개천가엔 벚꽃들이 한껏 피어 있고... 흠~ 좋아.. 하지만 그런 감상에 너무 빠지지 않도록 바람은 정면에서 불어온다. 페달을 밟는데 힘이 들어가니 주변으로 향하는 시선과 마음을 계속 수습해야 한다. -_- 역시, 완벽한 건 없나부다. 뭐 하나씩은 꼭 아쉬운게 있지. 그래도 봄이다. 디카는 어디간걸까. 이 광경들을 찍고 싶군하...

띵~
띵~
뒤에서 울리는 소리. 흠? 내가 그렇게 느리게 가는 것 같지 않은데? 내 옆에는 공간도 있어 추월하려면 충분히 할 수 있을건데. 혹 급하게 어디 가는 사람인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두 사람이 예의 그 맘에 안드는 전용(?) 복장을 하고, 선글라스까지 껴 주시고는 내 뒤에 바짝 붙어 있다. 쩝. 괜히 양보하기 싫어져서 속도를 더 내본다. 그러다 이게 뭔 짓이냐 얼릉 보내자 하고 살짝 오른쪽으로 붙어 지나가기 쉽게 했다.
띵~ 띵~

아놔, 순간적으로 짜증이 팍 솟는다. 차도로 다니며 큰 차들의 빵빵~ 소리에 실컷 시달리다 모처럼 자전거 도로로 왔는데 여기서도 시달려야 하나. 옆으로 더 붙어 멈춰 선 다음 옆을 지나치는 그네들을 찍 째려봐준다. 아, 그만 좀 하지? 들리기나 했을지 모르지만 한마디 쏘아줬다.

지나쳐 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짜증이 더 솟는다. 역시 그들은 급하게 약속장소로 가거나, 출퇴근 같은 걸 하는 사람은 아니다. 속도도 내가 가던 그것보다 아주 약간 빠른 정도. 그러면서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띵! 띵! 거리면서 간다. 정말 계속~.
열받는다. 따라가서 한마디 해주고 싶다. 여기가 니 길이냐. 왜 비키라 마라 성화냐. 니가 급하면 조금만 더 신경쓰면 충분히 옆으로 돌아 추월해갈 수 있겠는데 왜 니가 편하게 가려고 앞에 가는 사람 비키라고 난리냐. 느린게 죄냐? 저 사람도 모처럼 큰 차에 시달리지 않고 편안히 걸으며 봄을 느끼고 싶을텐데 뭔 권리로 행패냐. 실제로 내 페달 밟는 속도는 계속 올라가 그 둘을 바짝 따라잡고 있다. 아놔. 정말 한마디 해줘 말어, 아우... 그러고 보니 내가 왜 계속 말리는 거야. 봄이나 느끼자 젠장.

잠깐 있다 보니 그 둘이 멈췄다. 그리고 서로 뭔가 얘기하고 손가락으로 어디 가리키고 그런다. 아마 어디로 노닐까를 얘기하나 부다. 이 사람들에게 개천가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장애물일 뿐인걸까? 또다시 그들에 대한 미움이 마음에 가득 차오니 얼릉 지나쳐 간다. 나만 손해잖어. 그렇게 한참을 갔다. 더 신경이 쓰여 절대 띵~ 울리지 않고 앞사람을 조심조심 피해서 안전하게 추월해갔다. 그러다 보면 속도는 조금 떨어지게 마련. 아 그랬더니 조금 후에 다시 뒤에서 띵~ 띵~ 띵~소리가 난다. 쉣!!!!!!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인도도 마찬가지겠지만 차도로 다니다보면, 이건 정말 힘있는 자들의 경쟁, 각축장이다. 여기서 힘 없는 사람들은 계속 위협을 느끼고 핍박을 당한다. 힘 있는 차는 당당하게 다니며 가고 싶은데로 쑥 들어가기 일쑤고, 자기 앞을 가로막는 차들에 거리낌 없이 빵빵거린다. 자전거는 그 힘의 위계에서 가장 아래쪽에 있다. 버스, 트럭 등 덩치가 크거나, 비싼 차, 돈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그 차는 안보이는 보호막이 쳐져 있다. 건들면 뒤진다-_-) 차가 가장 꼭대기에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큰차, 보통 차, 작은 차, 아, 그리고 작아도 날쌘 차는 힘이 더 있다. 그리고 오토바이. 물론 오토바이 중에도 소형 승용차보다 더 센(!) 차가 있지. 그리고 그 아래 자전거. 자전거를 타고 차도를 다닌다는 것은 이미 알다시피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데, 그 중 도무지 용서가 안되는게, 정글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계속 부당한 폭력을 당하고, 그 울분을 속으로 삭혀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하물며, 자전거끼리도 그런 힘의 우열이 있다면 어떨까? 비싼 자전거, 더 빠른 자전거. 속도가 무엇보다 중시되는 세상에서 더 빠른 자전거는 당연히 더 느린, 값싼 자전거가 옆으로 물러서 길을 비켜줘야 하는 귀한 존재인걸까? 또, 스스로 굉장히 뭔가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은 "라이더"들의 온갖 악세사리와 복장들. 난 그걸 보면 왠지 역겹다. 자전거를 잘타고 못타고를 떠나, 지나치는, 함께 달리는 사람과 조화를 이룰 줄 모르는, 배려할 줄 모르고 혼자 즐거움을 만끽할 뿐인 사람들, 함량 미달의 라이더. 그들에게는 자전거를 탄다는 것도 힘의 과시일 뿐인지도 모른다. 재력과 체력.

난 자전거를 어쩌다 한번 타는게 아니라 출퇴근용으로 쓰고, 약속장소로 갈때도 항상 타고 다닌다. 그러다보니 자전거를 아무리 많이 타고 다녀도 평상시 복장 그대로 타게 된다. 주말에 할게 없어, 스포츠로 타고 다닌다기보단 내 생활에 그냥 녹아 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좋다. 요란한 헬멧과 현란한 색과 무늬, 늘씬하고 몸에 착 달라붙어 때로는 살짝 민망하게 만드는 그런 옷들을 보면 부담스러울때가 많다. 그냥 타면 안되나? 꼭 그렇게 티를 내야하나. 그래야 라이던가? 아니 그 전에 라이더가 뭔데?

나를 자극시킨 두 사람도 그런 복장을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건 그들이 태극기를 달고 다니지는 않는다는것. 이거야 말로 정말 꼴불견이다. 종합해보면, 쓸데 없이 비싼 자전거를 타고, 온갖 복장과 악세사리는 있는대로 다 갖춰 놓고는, 일반 시민들이 편안히 거닐고 쉬는 자전거/보행자 전용도로를 마구 마구 휙휙 다니면서 길 비키라고 뭐라 지롤지롤하는 "애국" "청년"들 정말 비호감이다. 제발 부탁인데, 주체할 수 없는 라이더의 본성, 피가 끓는 열정을 가진 분들은 그냥 차도로 다니면서 자전거를 핍박하는 다른 차들에게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길 바란다. 그냥 개천가는 조용하게, 천천히 걸어다닐 수 있게 해줘. 그리고 어쩌다 놀러 나온 거라면, 아 그 좋은 자전거와 완벽한 준비태세(마음은 몰라도 일단 껍데기는 준비된 것 같은데)를 가지고 왜 동네 개천과 한강에서 썩고 있어? 서울 밖으로 나갔다 오세요. 제발. 자전거로 힘자랑하지 마시고. 정말 자전거 좋아하는 사람이 즐겁게, 자연과 하나되어 달릴 수 있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4/09 17:19 2007/04/09 17:19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2dj/trackback/363
샤♡ 2007/04/09 18:02 URL EDIT REPLY
어제 자전거 타고(혼자) 집에서부터 이촌한강공원까지 갔다가 왔음.
보도블럭 따라서 갔는데..올때는 너무 힘들어서 버스를 탔다는...
아아 스트라이더 사길 잘했어요-_-근데 엉덩이가 넘 아프요 ㅠㅠ
지각생 2007/04/09 18:10 URL EDIT REPLY
ㅎㅎ 계속 타다보면 적응될거에요. 굴하지 않기 :)
샤♡ 2007/04/09 21:44 URL EDIT REPLY
아까 밥먹는데 승욱이 지각생보고싶어 하더군요.(엄훠)
ㅋㅋ 풀로그하기 힘들어서 위키하고 싶은가봐염.
지하조직 2007/04/09 21:59 URL EDIT REPLY
허거걱... 조금더 빠르다는 하이브리드로 살려구 맘먹고 있었는데, 찔리네요....
지각생 2007/04/09 23:51 URL EDIT REPLY
샤♡// 아, 나도 승욱씨 보고싶음 ㅎㅎ

지하조직// 찔릴게 무어 있삼. 비싼 자전거를 뭐라고 한게 아니고, 타는 사람에 대해 한 말입니다. (더 찔리시는 건가요? ㅋㅋ)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